2012년 8월 16일 목요일

솔로구프 시선: 불타는 원

솔로구프 시선: 불타는 원
표도르 솔로구프 지음 / 박영은 옮김
분야 : 시선집
출간일 : 2012년 3월 20일
ISBN : 978-89-6680-287-6 00890
18000원 / A5 제본 / 177쪽
☑ 책 소개


죽음이란 절망할 수밖에 없는 비극적인 종말인가, 아니면 신의 본질에 다가가는 구원의 방법인가? 러시아의 보들레르라 불리는 솔로구프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예술적 완성도와 심미성이 높은 시집 ≪불타는 원≫을 옮겼다.


☑ 출판사 책 소개

러시아 혁명 이전에 솔로구프가 ≪불타는 원(Пламенный круг)≫(1908)을 출판했을 때에는 이 시집을 심오한 철학과 세련된 미학적 성과의 정점에 도달한 것으로 평가하는 당대의 문인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혁명 이후 이 작품은 소비에트 사회주의 문학세계의 장벽에 갇혀 오랫동안 적절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 이렇게 소비에트의 문학적 관점에서 벗어나고 새로운 부활을 꿈꾸어야 할 러시아문학의 웅비와 위용을 위해서도 솔로구프는 재평가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국내에서도 솔로구프의 독특한 시세계는 독자들에게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으며, 그의 ≪불타는 원≫이 국내에서 번역된 것 역시 첫 번째 시도이다. 특히 이 시집은 솔로구프의 여러 작품 가운데에서도 예술적 완성도와 심미성이 가장 높은 시집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시집의 주제와 시인의 세계관을 이해하는 방식에서는 출판 당시에도 비평가들의 상반된 관점이 공존했다. 솔로구프의 시집에 나타난 삶과 죽음의 과정은 영원한 반복에 불과하다며 그의 죽음관을 비극적인 차원에서 이해하는 관점과, 솔로구프의 시에는 가시적인 현세를 넘어서서 신의 본질을 응시하려는 낙관주의 정신이 장엄하게 울려 퍼진다는 관점이 그것이다.
쇼펜하우어가 ≪의지와 표상의 세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솔로구프 역시 세계는 목적도 없이 움직이는 사악하고 맹목적인 악의 의지라는 사실을 인식했으며, 세계는 단지 이 의지의 표상이기에 인간의 운명은 상실, 슬픔, 죽음으로 점철되어 있다고 간주했던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시집에서 표현하고 있는 윤회와 열반의 관점 역시 이것을 일종의 공포로 생각했던 서양의 문화사적 맥락과 무관하지 않다.
여기서 쇼펜하우어 사상을 계승한 솔로구프에 대한 해석은 우파니샤드 철학이라는 매개를 통해서 새롭게 이해될 수 있다. 인도를 넘어 전 세계로 전파되었던 우파니샤드의 신비주의적 영성(靈性) 철학은 쇼펜하우어에게도 깊은 영향을 주었다. 쇼펜하우어는 책상에 늘 라틴어로 된 우파니샤드를 놓았고, 잠자리에 들기 전 이 책을 탐독하곤 했다. 특히 “우파니샤드는 인류 최고의 지혜의 산물이니, 이것이야말로 곧 인류의 신앙이 될 것”이라고 찬탄했다고 한다. 또한 쇼펜하우어가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의 초판 서문에서 자신의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 플라톤과 칸트 이외에 우파니샤드 철학에 대한 지식을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그 관련성을 알 수 있다.
시상이 가득 찬 시인이자 사상가였던 우파니샤드 기록자들이 일상의 저급한 부분에서 지고한 존재로 우리 인간을 이끌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시’를 통해서만이 가능하다고 보았던 것처럼, 이 시집은 ≪작은 악마≫, ≪악몽≫ 등의 음울한 ‘소설’과는 달리 ‘시’를 통해 현실을 넘어서는 해탈의 기쁨을 전하고자 했던 솔로구프의 예술관을 문학 장르의 차원에서 재해석하는 데에도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솔로구프의 인간 영혼에 대한 이해가 투영된 ≪불타는 원≫은 150여 편의 서정시가 시간적인 연속 선상에 따라 하나의 내러티브를 구축하고 있다. <전생의 가면>에서 <마지막 위안>으로 이어지는 9개 장의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각각의 장에서 주요한 시를 발췌해 85편 정도 완역했다. 여기서 역자가 선택해 번역한 시는 솔로구프의 시 창작 세계에서도 그 의미가 깊을 뿐만 아니라 시인의 세계관을 이해하는 데에도 필수적인 시들이기 때문에, 독자들이 시인의 예술관을 공유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 책 속으로

●나는 천국에 있던 한 사람,
아담이라 불리었소.
꽃들은 태초의 향기로
내 육체를 찬미했지.

●나는 부활하고 싶지 않다.
난 천국도 필요치 않다.
나는 죽어 가며, 탄식한다.
그 어느 곳으로도 날아오르지 않을 거다.

나의 천체에 불을 끌 거다.
나는 입을 굳게 다물 거다.
말로 표현되지 않는 존재 속에서
과거에 있었던 모든 것을 영원히 잊을 거다.

●아무도 그를 죽이지 않았다.
그는 조용히 홀로 죽었다.
그는 창백했고 작았지만
천상으로 달려가고픈 마음으로 불탔다.

하지만 하늘은 멀었고
아예 하늘은 없었다.
붙잡아라, 그리고 춤추듯 가볍게 살아라.
그곳에서 우리는 빛과 함께 있다.

●오, 무수한 빛줄기에 대한 푸념,
그 빛들, 하나로 결합되지 못했다는 푸념!
만일 내 우물에서
암흑을 더듬어 열쇠를 찾지 못했다면!
하지만 열쇠를 찾게 된 나는 궁전으로 들어갔고
그 모든 빛과 결합했다.
내 속에 빛이 있다. 나는 모든 것이고, 나 홀로 신(神)이다.
나의 언어는 검(劍)이다.
나 홀로 신이다. 하지만 나는 작고 약하다.
원인의 창조자가 나였다.
내 원인의 길 가운데에 나는 영원한 노예였고,
존재의 포로였다.


☑ 지은이 소개

표도르 솔로구프[Федор Сологуб, 본명은 표도르 쿠지미치 테테르니코프(Федор Кузьмич Тетерников), 1863∼1927]
≪작은 악마≫의 작가이자 러시아의 보들레르로 알려져 있는 표도르 솔로구프[Федор Сологуб, 본명은 표도르 쿠지미치 테테르니코프(Федор Кузьмич Тетерников)]는 1863년 2월 17일 페테르부르크의 한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농노 출신이었던 아버지가 솔로구프가 네 살 되던 해에 폐결핵으로 사망한 이후 그의 어머니는 어려운 생활을 전전하던 끝에 어느 지주 귀족 집안의 하녀로 일하게 된다.
편모슬하에서의 고된 삶이었지만 어머니가 가정부로 일했던 지주 귀족의 예술 애호 취향은 어린 솔로구프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게 된다. 학교교육을 받을 수 있게 했던 주인의 배려는 솔로구프의 지력을 형성하는 토대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연극과 문학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었던 분위기는 그가 한 작가로 성장할 수 있는 심미안의 자양분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복할 수 없었던 출생 신분의 고통과 어머니의 가학적인 성격은 솔로구프의 성격 형성에 암울한 영향을 미쳤다. 또한 신분의 격차로 인해 어린 시절부터 보고 느꼈던 심한 모욕과 분노가 솔로구프의 작품에 페시미즘과 어둠의 그림자를 드리워지게 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솔로구프가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은 열두 살 때였다. 그가 좋아했던 시인은 네크라소프였으며, 미성년 때 그에게 가장 강렬한 영향을 준 것은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이었다고 한다. 또한 솔로구프는 프랑스 상징주의에 심취했는데, 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폴 베를렌에 빠져들어 이미 1892년에 베를렌의 시를 감흥에 넘쳐 자발적으로 번역하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솔로구프는 보들레르, 랭보, 폴 베를렌 같은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들의 미학 이론과 쇼펜하우어 철학에서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고 평가된다. 또한 1892년부터 초기 러시아 상징주의자들인 메레시콥스키, 기피우스 등과 친교를 맺으며 ≪북방 통보≫지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면서 자연스럽게 이들의 영향 역시 받게 된다.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욕망과 악과 증오, 공상과 환상, 잠과 꿈의 세계는 이들의 시학과 철학이 그에게 준 영향으로 설명된다.
솔로구프는 이미 초기 시집에서부터 욕망과 악과 증오의 세계인 현세에서 벗어나 공상과 환상과 잠의 세계에서 구원을 찾아야 한다는 관점을 보여 주었다. 따라서 그의 시에서 낮과 태양이 비추는 세계는 ‘악’으로 형상화되는 반면, 밤의 어둠과 죽음은 ‘미’의 극치로 표현되기도 한다.


☑ 옮긴이 소개

박영은
박영은은 강릉여고를 졸업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에 입학해 태국어와 러시아어를 복수 전공했다. 이후 동 대학원에서 러시아 문학으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석사논문 <아나톨리 김의 ≪연꽃≫에 나타난 시간의 미학: ‘순간’, 그 영원성에 대하여>를 기반으로 작가 아나톨리 김의 정신의 지형도를 구축한 이후, 점차 이를 확장해 <아나톨리 김의 우주론 연구: 상승과 변형의 시학>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한인 3세 출신의 러시아 작가 아나톨리 김의 작품 세계를 연구하면서 러시아 문학이 동양적 사유와 만나는 접점에 관심을 갖고 연구를 진행했다. 표도르 솔로구프의 ≪불타는 원≫에 대한 번역 작업 역시 러시아 작가 솔로구프가 동양적 사유와 만나는 장(場)을 생각했던 사유의 소산이라 할 수 있다.
대표 논문으로는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에 나타난 도스토예프스키의 신비주의와 만유재신론>을 비롯해 <표도르 솔로구프의 서정시집 ≪상승≫: 동심원의 확장을 통한 비상(飛翔)의 꿈>, <표도르 솔로구프의 ≪불타는 원≫에 투영된 우파니샤드 철학> 등 다수가 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외국문학연구소의 책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며, 유럽의 문예사조와 러시아 문학을 강의하면서 학생들과 만나고 있다.


☑ 목차

서문 ························5

I. 전생의 가면(Личины переживаний)
나는 천국에 있던 한 사람 ··············9
브라만이여! 당신의 목소리가 나를 깨웠군요! ······11
백발 왕의 개 ····················13
죽음의 물이 밭을 따라 흘러들며 ···········18
신(神)의 달은 저리 높건만 ··············19
동굴 속 짐승처럼 나는 살았다 ············21
고요한 요람 ····················23

II. 지상의 고뇌(Земное заточение)
하얀 어둠이 장벽을 만드네 ··············29
바람이 먹구름을 몰고 가며 ··············30
일에도 지치지 않는 가련한 내 가슴이여 ········31
우리는 포로가 된 짐승들 ···············33
한낮의 빛과 꿈같은 어스름 속에서 ··········35
내 시의 준엄한 소리 ·················36
강력한 신들이시여 ·················37
짧은 기쁨은 소진되어 버리고 ·············39
울적한 내 램프에 불이 타올랐다 ···········40
도달할 수 없는 나라에 있는 너 ············41

III. 죽음의 그물(Сеть смерти)
화염으로 팽팽해진 혈관 ···············45
그리스도 부활의 날에 ················46
죄인이여, 창조주를 노하게 한 것을 너는 알고 있는지 ··48
시들어 버린 무력함이여 ···············50
나는 부활하고 싶지 않다 ···············51
아이들만이, 아이들만이 살아 있고 ··········52
악마의 그네 ····················54

IV. 타오르는 향(Дымный ладан)
거기, 벽 뒤에, 강에서 피어오르는 차가운 안개 ·····59
세상과 거리를 두는 공상가는 ·············61
아무도 죽이지 않았다 ················63
죄 많은 그는 홀로 살았다 ··············65
강 위에 드리워진 안개의 흔들림 ···········66
내 고단함은 산보다 높이 솟아 있고 ··········67
슬픈 시선을 기울이고 ················68
준엄한 친구여, 너는 음울한 내가 불만이구나 ·····69
나는 슬픔 속에 잠들었다 ···············71
캄캄한 동굴에 사는 나는 ···············73
숲에서 마을로 내려온 그녀 ··············74

V. 변형(Преображение)
포도주 속에 농염하게 익은 주연의 광기여 ·······77
나는 벌거벗은 냉기를 극복했다 ············78
내 피 속에 타오르는 불길이여 ············79
화창한 날 우리는 묻었다 ···············80
너의 영혼은 황홀하게 떨리는 크리스털 ·········81
노을처럼 선명하게 나를 사랑하라 ···········82
순결한 꿈이여 ···················83
너는 아무도 몰래 사라졌다 ·············84
이른 아침 이슬의 호흡으로 숨 쉬네 ··········86
난 이해하지 못한다, 어째서 빈약하게 죽어 간 자연 속에서 88
모든 것은 오래전에 이야기되었다 ···········90
삶은 가벼운 몽상으로 흘러들고 ············92

VI. 점술(Волхвование)
고뇌의 사슬로 이어진 출구 없는 나라에서 ·······95
달이 고인 술잔 잡고 괴로워했다 ···········96
거칠고 지친 황야 위로 ················97
여기, 십자로에서 ··················98
달의 순결한 광휘 ··················100
잔잔한 물에 비친 그들은 ··············102
여기 이별의 순간이 ················104
마귀할멈이 독이 든 술잔 내밀며 ··········106
고요한 저녁, 두 길의 교차로에서 ··········108
어두운 마법의 고리 속에서 ·············110
순진하게 시간을 믿고 ···············112
너는 어둠을 두려워 마라 ··············113

VII. 고요한 골짜기(Тихая долина)
나는 순결하고 당당히 나의 길을 간다 ········117
내 위에 펼쳐진 푸른 슬픔 ··············118
세상 만물에 상응(相應)이 깃들어 있나니 ·······119
강변을 따라 숲은 어두워지는데 ···········121
풀숲에 파묻혀 누워 있네 ··············122
너는 내게 여러 차례 왔었지 ············123
갈대가 흔들리며 ·················124
운명의 횡포로 ··················126
새벽노을 다시금 웃기 시작했고 ···········128
나는 구슬프고 죄스럽다 ··············130

VIII. 단일한 의지(Единая воля)
오, 무수한 빛줄기에 대한 푸념 ···········135
내가 모든 자연에 마법을 걸었다 ···········136
창백하게 병들었던 낮은 다 타 버렸고 ········137
기나긴 이별의 고통 중에서 ·············139
황홀한 슬픔, 고요하고 어슴푸레한 빛의 여명 ·····141
파멸의 길에서 ··················142
내 하얀 은방울꽃 시들어 간다 ···········144
사악한 나날들의 마지막 빛 속에 ··········145

IX. 마지막 위안(Последнее утешение)
신비하고 아름다운 한 송이 흰 꽃이여 ········149
엘리자베타, 엘리자베타 ··············150
내 사랑은 순수하다 ················153
나는 먼 길을 달려 그녀에게 왔다 ··········155
나의 유희에 매혹되었네 ··············157
과거에 있었던 것이 다시 나타날 것이다 ·······158
우리는 축제의 아이들이었다 ············160
기적의 시간이 왔다 ················161

해설 ·······················163
지은이에 대해 ··················171
옮긴이에 대해 ··················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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