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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21일 수요일

고백(Les Confessions) 천줄읽기


도서명 : 고백(Les Confessions) 천줄읽기
지은이 : 장 자크 루소(Jean Jacques Rousseau)
옮긴이 : 서익원
분야 : 천줄읽기/수필
출간일 : 2012년 11월 30일
ISBN : 978-89-6680-421-4 03860 
가격 : 12000원
규격 : A5    제본 : 무선제본    쪽 : 240쪽



* 이 책은 원전의 20%를 발췌한 것입니다.



☑ 책 소개

≪고백≫은 장 자크 루소의 자서전이다. 루소는 “지금 존재하고 있고 또 앞으로도 존재할 수 있을 유일한 인간상”을 보여주기 위해 ≪고백≫을 집필했다. 이 작품의 매력은 텍스트에서 드러나는 개성뿐만 아니라 인간의 자아 상실이라는 현대적 문제점을 고찰하는 데에 있다.


☑ 출판사 책 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 천줄읽기>는 오리지널 고전에 대한 통찰의 책읽기입니다. 전문가가 원전에서 핵심 내용만 뽑아내는 발췌 방식입니다. 

18세기에 프랑스는 경제적·사회적으로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깊은 변화를 겪는다. 루이 15세와 루이 16세는 이 새로운 현실을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정치적인 개혁을 할 수 없었고, 결국 구체제는 1789년 몰락하게 된다. 하지만 볼테르, 루소, 디드로 등으로 대표되는 ‘계몽주의 철학자들’은 이 현실을 이해하고, 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은 기본 원칙을 고수했다. 첫째, 그들은 이성인(理性人)으로서 과학적인 관찰에 의해 입증된 것 혹은 논리적인 추론에 의해 증명된 것만을 진실로서 받아들인다. 둘째, 정신과 지식의 진보를 믿기에, 지식에 관련된 모든 영역에 흥미를 느끼면서 그것을 퍼뜨리려고 애쓴다. 셋째, 투쟁하는 인간으로서, 인간의 자유와 존엄과 행복을 위한 싸움에 참여하는 것을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루소가 1750년부터 1762년까지 쓴 작품들, 즉 ≪학문예술론≫, ≪인간 불평등 기원론≫, ≪사회계약론≫, ≪에밀≫, ≪사부아 보좌신부의 신앙고백≫, ≪신 엘로이즈≫ 역시 인간의 운명을 개선하고자 하는 자의 근심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루소와 ‘철학자들’은, 루소와 두드토 부인 사이의 연애 사건을 계기로 파국을 맞이했다. 루소는 1756년에 에르미타주로 이주했는데, 그가 마음의 평안과 서서히 다가오는 노년의 슬픔 등 새로운 감정에 젖어 있을 때, 30세의 두드토 부인을 만나게 된다. 디드로가 그를 위로하기 위해 에르미타주에 왔을 때, 루소는 그에게 그녀와의 목가적 사랑을 상세히 이야기했고, 디드로는 그 사실을 전 파리에 알렸으며, 소문은 증폭된다. 프리드리히 그림의 획책대로 데피네 부인은 루소를 멀리하게 되고, 1757년에 루소는 결국 에르미타주를 떠난다.
이 사건 이후 루소는 ‘철학자들’이 그를 파멸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공작을 꾸민다고 생각한다. 박해받고 있다는 의식과 자신의 무고함에 대한 확신으로 인해 그는 “지금 존재하고 있고 또 앞으로도 존재할 수 있을 유일한 인간상”을 보여 주는 작품을 쓸 생각을 한다. 그의 계획은 ≪고백≫을 통해 구현되고, 그는 이 작품에서 자신의 삶을 밝히고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고자 한다. 이 작품은 총 12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권부터 6권까지는 유년기와 형성기를, 7권부터 11권까지는 성공의 시기를, 그리고 12권은 박해의 시기를 묘사하고 있다.
독자들이 오늘날 ≪고백≫을 읽고 어떤 흥미를 느낀다면, 그것은 글쓰기의 선택이나 이 텍스트에 드러나 보이는 개성 때문에 독자들이 이 작품에 무관심해질 수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 자서전이 인간의 자아 상실이라는 현대적인 문제점을 뚜렷하게 부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루소는 이 자아 상실의 원인을 교육 방식과 사회생활의 속박, 타인의 시선 속에서 찾고 있다. 이에 루소는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제기한다. 어떻게 억누르지 않고 교육하는가? 어떻게 자연에 어긋나지 않게 교육하는가? 어떻게 강요하지 않고 가르치는가? 어떻게 현실적인 경험과 책에서 얻어진 지식을 양립시키는가? 어떻게 사람들을 타락시키지도 자연에 어긋나지도 않게 하면서 그들 사이의 관계를 조직하는가? 어떻게 사회를 개인이 억압받는 장소가 아니라 자아의 개화와 실현의 장소로 만들 것인가? 어떻게 개인이 자신에 대해 갖는 이미지와 타인들이 그에 대해서 갖는 이미지를 일치시킬 것인가? 어떻게 루소의 바람대로 자신의 영혼을 투명하게 만드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타인과의 진정한 관계를 세울 것인가? 이 질문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시사성이 있는 것들이다. 이런 질문에 답하는 것은 곧 상실해 가는 자신의 본모습을 찾는 것이고, 이 작품은 이런 문제에 대한 한 인간의 성실한 고백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고백을 디딤돌 삼아 오늘날 자아를 상실해 가는 우리 자신의 문제를 풀어볼 수 있는 것이다.


☑ 책 속으로

Je forme une entreprise qui n'eut jamais d'exemple, et don't l'exécution n'aura point d'imitateur. Je veux montrer à mes semblables un homme dans toute la vérité de la nature; et cet homme, ce sera moi.

나는 일찍이 유례가 없었고, 또 앞으로도 실행에 옮기려는 모방자가 없을 그런 계획을 세우고 있다. 내 동포들에게 한 인간을 본성의 참다운 모습 그대로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그 인간이 바로 나일 것이다. - 22쪽

그렇게 열여섯 살이 되었다. 나는 불안했고, 내 신분에 대한 취향도 없이, 내 나이 또래의 기쁨도 없이, 모든 것에, 심지어는 나 자신에까지 불만이었다. 욕망이 가슴에 사무치는데도 그 대상을 알 수 없었고, 눈물을 흘릴 이유도 없이 울었으며, 까닭도 모르면서 한숨지었다. 결국 주위에서는 내 꿈에 비길 만한 어떤 것도 볼 수 없으니까, 그 꿈만을 소중하게 마음속에 품는 것이었다. - 40~41쪽

학문에 조금이라도 진정한 관심을 가진다면, 거기에 몰두하면서 처음에 느끼는 것은 그것들 사이의 연관이다. 학문들이 서로 끌어주고, 서로 도와주며, 서로 명확해지도록 하는 연관, 한 가지 학문이 다른 학문 없이는 지탱할 수 없는 그런 연관 말이다. - 130쪽

은둔자들에 대한 여러 가지 무례하지만 아직은 참을 수 있는 말들 중에, “홀로 있는 것은 사악한 자뿐이다”라는 조금도 가차 없이 신랄하고 가혹한 잠언을 발견하고서, 나는 깜짝 놀랐고 심지어는 좀 슬퍼지기까지 했다. 이 잠언은 애매해서 내 생각에는 두 가지 뜻을 나타낸다. 하나는 아주 옳고 다른 하나는 아주 그릇되었다. 홀로인 사람과 홀로이기를 원하는 사람은 누구를 해칠 수 없고 또 해치기를 바랄 수도 없으며, 따라서 그가 사악하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 194쪽


☑ 지은이 소개

장 자크 루소(Jean Jacques Rousseau, 1712~1778)
장 자크 루소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태어났다. 1728년까지 가족의 품에서 유년기를 보내고, 랑베르시에 목사의 기숙학교에서 잠시 교육을 받으며, 조각사 수습공이 된다. 1728년 제네바를 떠나 각지를 떠돌다 후원자인 바랑 부인을 만나고 가톨릭으로 개종한다. 바랑 부인의 후원으로 신학교에 들어갔으나 사제가 될 의향이 없어 신학 공부를 포기하고 르메트르의 지도하에 음악을 공부한다. 1732년부터 1740년까지 샹베리와 샤르메트에서 바랑 부인 곁에 살면서 음악에 몰두하고, 많은 독서를 하며 다방면에 걸쳐 교양을 쌓는다. 1742년 새로운 악보 표기법을 정리하고, 파리로 가서 그것을 아카데미에서 발표하지만 기대했던 성공을 거두지 못한다. 1745년 일생을 함께할 테레즈 르바쇠르를 만난다. 그들 사이에 다섯 아이가 태어나지만 모두 고아원에 맡긴다. 1749년 달랑베르의 ≪백과전서≫ 편찬에 참여해서 음악에 할당된 항목을 쓰고 다음해에 ≪학문예술론≫을 출판한다. 1752년 오페라 <마을의 점쟁이>를 작곡하고, 1755년 ≪인간 불평등 기원론≫을 발표한다. 1756년 에르미타주에 정착해서, ≪사회계약론≫, ≪신 엘로이즈≫, ≪에밀≫을 집필하기 시작한다. 1761년에 ≪신 엘로이즈≫가 파리에서 간행되어 큰 성공을 거둔다. 1762년 ≪에밀≫과 ≪사회계약론≫을 출판하는데, 이 두 작품은 성직자를 공격하기 때문에 물의를 빚고, 파리에서 유죄를 선고받는다. 1764년 ≪시민들의 감정≫이라는 익명의 작품(나중에 볼테르였음이 밝혀진다)이 제네바에 나타나 루소를 공격한다. 이것에 응수하기로 결심하고서 ≪고백≫을 집필하기 시작해서 1769년에 완성하고, 1772년부터 1776년에 걸쳐 ≪루소가 장 자크를 판단한다≫를 쓴다. 1777년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을 쓰면서 자신의 정체성에 관해 명상하지만 집필을 끝내지 못하고, 1778년 7월 2일 죽는다.


☑ 옮긴이 소개

서익원
고려대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신 엘로이즈에 나타난 자연>으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경원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로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루소의 ‘쥘리 또는 신 엘로이즈’ 연구서설−정념과 미덕의 관계를 중심으로>, <루소의 자연법 연구>,<루소 연구서설−소설의 윤리성을 중심으로> 등이 있고, 역서로는 ≪신 엘로이즈≫가 있다.


☑ 목차

해설
지은이에 대해

고백

옮긴이에 대해


2014년 7월 28일 월요일

예술을 사랑하는 어느 수도사의 심정 토로



도서명 : 예술을 사랑하는 어느 수도사의 심정 토로
Herzensergießungen eines kunstliebenden Klosterbruders
지은이 : 빌헬름 바켄로더(Wilhelm Wackenroder) · 루트비히 티크(Ludwig Tieck)
옮긴이 : 임우영
분야 : 수필비평
출간일 : 2014년 7월 28일
ISBN : 979-11-304-5722-2 03850
가격 : 18000원
규격 : 사륙판 제본 : 무선제본 쪽 : 260쪽



☑ 책 소개

18세기 말 독일, 모든 것을 이성으로 해석하려는 계몽주의와 형식 위주의 고전주의에 반발해 새로운 문화가 꽃핀다. 르네상스 시대를 동경하고 중세 독일 문화를 부흥시켰다. 독일 낭만주의의 시작이다. 이 문화 혁명에 불을 붙인 것이 바로 바켄로더와 티크의 ≪예술을 사랑하는 어느 수도사의 심정 토로≫다. 당시 예술계에 종교 붐을 불러올 정도로 큰 반향을 일으킨 이 작품을 국내 최초로 소개한다.
 


 
☑ 출판사 책 소개
 
≪예술을 사랑하는 어느 수도사의 심정 토로≫는 문학사에 저자로 두 사람의 이름이 들어가 있지만 실제로 이 책을 쓴 사람은 빌헬름 바켄로더(Wilhelm Heinrich Wackenroder, 1773∼1798)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했던 이 얇은 책은 원래 1796년 가을, 1797년 날짜로 인쇄되어 익명으로 베를린에서 출판되었다. 이 출판사는 1796년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를 이 책과 똑같은 형태로 출판했다. 루트비히 티크(Ludwig Tieck, 1773∼1853)가 1799년 1년 전에 죽은 친구 바켄로더의 유고를 정리해서 ≪예술에 관한 환상들(Phantasien über die Kunst)≫이라는 책으로 편집할 때 원저자의 이름을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이 이름은 오랫동안 완전히 뒷전에 머물러 있었다. 티크는 자신의 초기 낭만주의 소설들로 각광을 받았고, 공개적으로도 이 책의 저작자로서 명성을 혼자서 차지하게 되었다. 이 책으로부터 결정적인 영향을 받았던 젊은 쇼펜하우어조차 바켄로더의 말을 그대로 인용할 때 티크의 말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예술을 사랑하는 어느 수도사의 심정 토로≫가 가장 강조하는 점은 바로 예술가의 “열광(Enthusiasmus/Begeisterung)”이다. 라파엘로의 경우 마돈나를 그릴 때 꿈에서 계시를 받고 그림을 완성하는데, 이처럼 예술가의 열광이란 ‘신적인 것’을 인식하고 느낄 수 있는 능력이다. 바켄로더는 <라파엘로의 환상>에서 바로 이러한 예술가의 영감과 열광을 강조한다. 일반인들이 얻을 수 없는, 천재적인 예술가만이 얻을 수 있는 하늘로부터의 영감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괴테의 초기 시에서 강조하는 예술의 “수호신(Genius)”과 맥락을 같이한다. 예술가의 열광을 통해서만 신이 창조한 자연과 감정적으로 교감할 수 있고, 예술가의 심장을 “타오르게(glühen)” 해서 예술 작품을 창작하게 만든다고 괴테는 주장했던 것이다. “나는 내 영혼으로 들어오는 마음속의 어떤 그림에 의지해 그린다”는 라파엘로의 고백은 이런 예술가의 고양된 감정, 숭고한 감정, 신과의 영적인 교류를 통해 영감을 얻고 있음을 말해 준다. 즉, 라파엘로의 영혼 속에 떠오르는 성모의 모습이 꿈에서 보았던 성모의 모습과 일치되어 라파엘로의 그림에 “천상적인” 성모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과정을 보여 주면서 바켄로더는 라파엘로에게 “신과 같은 라파엘로(Der Götterliche Rapfael)”라는 칭호를 붙인다.
바켄로더는 이런 천재들에 의해 탄생한 예술을 거의 종교와 같은 수준에 올려놓으면서,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들의 태도와도 연결 짓는다. “예술은 그 사람 위에 존재한다. 우리는 그 신성한 사람들의 훌륭한 작품들을 단지 감탄하고 존중할 수만 있으며, 그리고 우리의 모든 감정들을 녹여서 정화하기 위해 우리 마음 전체를 그 작품들 앞에서 열어 놓을 수 있다.” 그래서 예술은 종교 자체가 되어 그 자리를 차지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우리 위에 떠도는 것”을 예술만이 “신의 불꽃”의 중계자로서 “우리의 감정 안으로” 끌어내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바켄로더는 주장한다. 이런 논리로 바켄로더는 진정한 예술의 향유를 기도와 같은 반열에 올려놓고, 아주 드물게 경험할 수 있는 “신처럼 변용된 관조의 순간들”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 둔다. 아름다움의 비밀은 말로 표현할 수도 없고, 정교하게 고안해 낸 규칙으로도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비록 그 규칙으로 예술 작품을 기계적으로 파악할 수는 있겠지만, 영혼을 불어넣은 열광적인 “예술 정신”은 파악할 수 없다. 그 예술 정신은 예술가의 위대한 인간성을 매개로 ‘초월적인 것(das Transzendente)’을 숨김없이 보여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켄로더는 예술이 종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예술은 하나의 종교적 사랑이 되거나, 내가 이렇게 말해도 될지는 모르지만, 하나의 사랑하는 종교가 되어야 하네.” 예술가뿐만 아니라 그의 예술을 향유하는 사람도 “마음속 깊이” 예술을 ‘신의 계시’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즉, 종교적인 깊은 신앙 없이는 아무리 천재적인 예술가도 이런 신의 계시를 작품에 표현할 수 없으며, 예술을 감상하는 사람도 똑같은 신앙심이 없으면 그 예술 작품에 표현된 신의 계시를 느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분은 세상의 모든 지역에서 각각의 예술에 그분에게서 나간 하늘의 섬광이 인간의 가슴을 거쳐 그 작은 창조물로 들어갔다가, 거기서 다시 위대한 창조주를 향해 빛나는 모습을 바라보신다.” 바켄로더는 예술에 대한 경건함을 주장하는 이런 이상이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그림들과 15, 16세기의 독일 예술에서 전개되었음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은 보다 옛 시대의 예술 시대를 발견하려 했던 후기 낭만주의에 결정적인 자극을 주었고, 많은 낭만주의자들이 가톨릭으로 개종하는 계기가 되었다.
 
 

 
☑ 책 속으로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외로운 수도원 생활을 하면서 가끔씩 멀리 떨어진 세계를 어렴풋이 생각하며 다음의 글들을 조금씩 써 갔습니다. 나는 젊은 시절에 예술을 매우 사랑했고, 이 사랑은 마치 소중한 친구처럼 이 나이가 될 때까지 나와 함께 계속 동행해 주었습니다. 내가 이런 사실도 모른 채 마음의 충동에 북받쳐 이 회상들을 적어 나갔던 것을 친애하는 독자 여러분은 관대한 눈으로 봐 주시기 바랍니다. 이 글들은 요즘 어조로 적혀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오늘날의 어조에 익숙지 못하고, 정직하게 말씀드리자면 그런 어조를 좋아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젊은 시절 세상을 살아가면서 현세적인 일에 많이 얽혀 있었습니다. 나의 가장 큰 갈망은 예술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내 삶과 보잘것없는 재능을 모두 예술에 바치고 싶었습니다. 몇몇 친구들도 내 스케치가 그렇게 서툴지만은 않다고 평가해 주었고, 내가 모사(模寫)한 작품이나 내 창작품들도 완전히 불만스럽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러나 위대한 예술가들이 그린 성모 마리아상을 생각하면 언제나 말할 수 없는 신성한 놀라움이 엄습해 왔습니다. 머릿속에 라파엘로나 미켈란젤로라는 이름이 떠오르면 내가 손에 잡고 있는 목탄 연필이나 붓을 움직인다는 것이 아무래도 이상하고 멍청한 짓이라고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정말 고백하건대, 그들의 작품이나 생애가 선명하게 떠오를 때면 나는 가끔 이루 형언할 수 없는 고통스러운 마음에 울어야만 했습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그림들을 좋은 그림과 소위 나쁜 그림으로 구분해서 결국엔 냉정하고 비판적인 눈으로 평가하기 위해 모두 한 줄로 차례대로 세울 수가 없었습니다.−그런 생각은 마치 신을 모독하는 것같이 여겨졌습니다.−아마도 요즘의 젊은 예술가들이나 소위 예술 애호가들은 즐겨 그렇게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나는 H. 폰 람도르(H. von Ramdohr)의 글을 읽고 썩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의 글을 좋아하는 사람은 내가 쓴 글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 손에서 바로 내려놓을지도 모릅니다. 처음에는 이 글들을 책으로 인쇄하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특히 이제 막 시작하는 젊은 예술가들이나, 자신을 예술에 바치려고 생각하고는 있지만 지난 시대에 대한 신성한 경외심 때문에 아직도 마음이 부풀지 못해 조용히 있는 젊은이들에게 이 글을 바치고자 합니다. 이들은 내가 이 글을 쓸 때와 똑같은 사랑으로 읽을 것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는 의미도 없을 내 말에 혹시 많은 감동을 받아 더욱 깊은 경외심을 불러일으키게 될지도 모릅니다.
하느님은 내 삶을 수도원에서 끝맺도록 정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 시도는 지금 내 능력으로 예술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입니다. 이 글들이 아주 불만스럽지만 않다면 혹시 2부로 이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2부에서는 각각의 예술 작품을 개별적으로 평가하는 것을 반박하고 싶고, 하늘이 건강과 시간을 허락하신다면 기록해 놓은 내 생각들을 여기에 맞게 정리해서 분명하게 설명해 드리고 싶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또 다른 그림을 언급해야 하는데, 그 상황이 특이했기 때문이다. 내가 말하는 그림은 리자 델 지오콘도(프란체스코의 아내)의 초상화다. 그는 이 그림을 4년에 걸쳐 그렸는데, 머리카락 하나하나를 정성스럽고 정교하게 세부 작업을 하면서도 그림 전체의 정신과 생명력을 질식시키지 않았다. 그 고귀한 부인이 그림 때문에 그렇게 자주 와서 앉아 있어도 그는 매번 몇 사람들을 불러서 편안하고 즐거운 음악을 악기로 연주시키고 사람들 목소리를 들려주면서 부인의 기분을 즐겁게 해 주었다. 얼마나 재치 있는 착상인가. 나는 이런 것 때문에 항상 레오나르도 다빈치에게 감탄했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앉아 있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보통 딱딱하고 공허한 엄숙함이 나타나기 쉬운데, 만약 그러한 표정이 그림에 계속해서 남아 있는 용모로 굳어져 버리면 무뚝뚝한 모습이 되거나 심지어 어두운 모습이 되어 버린다는 사실을 그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즐거운 음악이 그 사람의 얼굴 표정에 작용하며, 모든 표정을 풀어 주고 기분 좋고 즐겁게 하는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얼굴의 상당한 매력을 화판에 생생하게 옮겼고, 한 가지 예술을 수행할 때 또 다른 예술을 보조 수단으로 유리하게 이용해서 그 영향이 앞선 예술에 반영되게 할 줄 알았다.
 
●아름다움이란 신기할 정도로 이상한 말이다! 각각의 개별 예술적 감정에 따라, 각각의 예술 작품에 따라 새로운 말을 발견한다! 각각의 예술 작품에 다른 색이 역할을 하며, 각각의 예술 작품을 위해 인간의 몸 안에 새로운 신경계가 만들어진다.
그러나 그대들은 이 단어에서 이성의 술책으로 하나의 엄격한 시스템을 만들어 모든 사람들에게 그대들의 규정과 법칙에 따라 느끼라고 강요하려 한다. 그러나 그대들 자신은 느끼지 않는다.
하나의 시스템을 믿는 사람은 자기 가슴에서 공통의 사랑을 몰아낸다! 이성의 배타심보다 감정의 배타심은 그래도 참을 만하다. 시스템에 대한 믿음보다는 미신이 훨씬 낫다.
그대들은 감상적인 사람들더러 농담조의 노래를 부르며 즐겁게 춤추는 것을 기분 좋게 느끼라고 강요할 수 있는가? 아니면 다혈질인 사람을 강요해서 비참하게 공포에 차 있는 사람들에게 기꺼이 그의 마음을 바치게 할 수 있는가?
태양 아래에 있는 각각의 사람들과 민족들에게 자신들의 믿음과 행복감으로 살아가게 하라!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기뻐할 때 그대들도 기뻐하라. 비록 그들에게 가장 사랑스럽고 가장 가치 있는 것에 대해 그대들이 함께 기뻐할 줄 모르더라도 말이다.
 
 
“내가 그대에게 라파엘로에 대해 말해 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것은 그가 예술가로서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도 고결하고 친절한 사람이었단 사실이네. 그는 다른 예술가들이 갖고 있었던 음울하고 거만한 성격을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았네. 그들은 가끔 너무 지나칠 정도로 이상한 것들을 열심히 받아들이지. 그러나 라파엘로의 삶과 활동은 마치 흐르는 시내처럼 단순하고 부드럽고 즐거웠지. 그의 친절함은 낯설거나 전혀 모르는 화가들까지 그에게 직접 스케치해 달라고 부탁해도 자기 작업을 중단하고 우선 그들의 요구를 들어줄 정도였네. 그렇게 사람들을 아주 많이 도와주었고 마치 아버지처럼 가르쳐 주었다네. 그것도 아주 친절하게 말일세. 예술에서 그의 탁월함은 그의 제자가 되려고 열심히 노력하던 많은 화가들을 그의 주위로 모여들게 했고, 그들 중에는 배울 나이가 지난 사람들도 있었네. 그들은 그가 궁정으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서면 함께 따라나서는 바람에 긴 행렬을 이루기도 했네. 그러나 서로 다른 생각을 하던 그 많은 화가들이 분명히 불협화음이나 갈등 없이 살 수는 없었겠지. 만약 그들의 위대한 스승의 정신이 신비할 정도로 그들에게 평화의 햇살을 비춰 주어 그들 영혼의 오점들을 벗겨 주지 않았다면 말일세. 그래서 그들은 그의 붓에 제압당했듯이 그의 정신에도 제압당했다네. 라파엘로의 삶에서 아름다운 기적의 이야기가 아직 남아 있네.
바로 이 이야기라네. 그는 그리스도가 여러 인물들과 함께 십자가를 끌고 가는 뛰어난 그림을 그리고 있었네. 그 그림은 팔레르모의 어느 수도원을 위한 것이었지. 그런데 그 그림을 싣고 가던 배가 심한 풍랑을 만나 난파하고 말았네. 사람들과 물건들도 모두 바다에 빠져 버렸지. 오직 이 그림, 특히 취급주의 물품이었던 이 그림만은 잔잔한 파도에 밀려 제노바 항구까지 오게 되었다네. 그곳에서 사람들은 전혀 손상을 입지 않은 이 그림을 상자에서 끄집어냈다네. 말하자면 그 거친 파도조차 이 신성한 사람에게 자신들의 경외심을 보여 주었던 것일세. 이 그림은 다시 팔레르모로 보내졌고 그곳에서 옛날 바사리가 표현하고 있는 대로 지금까지 시칠리아 섬에서 에트나 화산과 마찬가지로 위대한 보물로 여겨지고 있다네.”
 
 
 
 
☑ 지은이 소개

빌헬름 바켄로더(Wilhelm Wackenroder) · 루트비히 티크(Ludwig Tieck)
루트비히 티크와 빌헬름 하인리히 바켄로더는 베를린 출신으로 동갑내기였다. 티크는 1773년 3월 31일에 그리고 바켄로더는 6월 13일에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두 사람은 아주 친하게 지냈는데, 티크의 아버지는 밧줄을 만드는 장인(匠人)이었고, 바켄로더의 조상은 신학자, 교수, 법률가와 같은 학자들이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이들은 15세기에 후스(Hus, 1372∼1415, 체코의 종교 개혁가)파 전쟁 때문에 체코의 모라비아에서 이주해 북독일 포메른(Pommern)에 정착했다고 한다.
바켄로더의 아버지는 1748년에야 베를린으로 와서 곧 프로이센의 높은 관직까지 올라갔다. 아버지는 깔끔한 일처리와 사려 깊은 마음씨, 엄격하면서도 부드럽고 조심스런 행동으로 명성을 얻었다. 아버지는 규칙을 강조하는 계몽주의 시대의 대표적인 송가(頌歌) 시인이었던 람러(Karl Wilhelm Ramler, 1725∼1798)와 친했는데, 아들인 바켄로더는 그로부터 문학의 기본 개념들을 느낄 수는 있었지만 점차 그로부터 회의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아버지에게는 아들의 예술적 성향이 낯설었고, 그에게 철저하고도 광범위한 교육을 받도록 했다. 이와 함께 성악과 바이올린 그리고 작곡을 공부하는 데도 동의했다. 그러나 이것을 직업으로 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였다. 아버지는 그가 법률가가 되기를 바랐다. 아들을 엄하게 교육해서 그가 인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때 대학을 다니지 못하게 하고 베를린에서 1년간 배석 판사한테서 교육받게 했다. 할레(Halle)와 괴팅겐에서 이미 대학 공부를 하고 있던 티크와 헤어지게 된 것도 바켄로더에게는 고통스런 일이었다. 1792년 4월부터 1793년 3월까지 서로 교환했던 편지들이 이들의 우정을 증명해 주는 유일한 기록물이 되었다. 이 편지들은 문학에 대한 두 사람의 관심뿐만 아니라 연극과 음악에 대한 관심도 엿볼 수 있게 해 준다. 그리고 바켄로더의 영혼 속에서 이미 “천상의 황홀함”과 인간들의 평범함 사이에서 벌이는 전쟁을 예감케 해 주고 있어 그의 성숙한 판단력에 대한 감탄을 자아낸다. 정서가 불안정해서 고약한 행동을 자주 했던 티크에 비해 바켄로더는 훨씬 성숙했던 것이다.
≪예술을 사랑하는 어느 수도사의 심정 토로≫가 출판되고 1년 후인 1798년 2월 13일 바켄로더는 장티푸스로 죽었다. 그는 좋아하는 예술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지도 못했고, 싫어하는 직업을 수행해야 하는 현실을 체력적으로 견디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자신의 이상이 성취되는 작품을 쓰는 것이, 다시 말해서 예술에 축복받은 삶을 그려 보는 것이 그의 위안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새로운 영역에서의 예술 체험이 바켄로더에게는 진지했으며, 그런 삶을 살려고 했고 그렇기 때문에 죽었다. 그는 이렇게 떳떳하게 말해도 될 것이다. ‘나는 신을 찬미하기 위해 새로운 제단을 세웠다’고 말이다. 바켄로더의 추종자들은 생겨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심정 토로”는 계속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얻고, 그의 채워지지 않은 동경은 그래도 여러 사람을 깨워서 이끌어 줄 것이다.
 
 

☑ 옮긴이 소개

임우영
임우영은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를 졸업하고 독일 뮌스터대학에서 독문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 교수로 있으며, 한국괴테학회 부회장을 지냈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기획조정처장과 사이버한국외국어대학교 학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대학생을 위한 독일어 1, 2≫(문예림, 공저), ≪서양문학의 이해≫(한국외국어대학교 출판부, 공저), ≪세계문학의 기원≫(한울아카데미, 공저) 등이 있다. 역서로는 오토 바이닝거의 ≪성과 성격≫(지식을만드는지식), 뤼디거 자프란스키의 ≪낭만주의≫(한국외국어대학교 출판부, 공역), 라테군디스 슈톨체의 ≪번역이론 입문≫(한국외국어대학교 출판부, 공역), 니콜라스 보른의 ≪이별연습≫(월인), ≪민중본. 요한 파우스트 박사 이야기≫(한국외국어대학교 출판부), ≪미학연습. 플라톤에서 에코까지. 미학적 생산, 질서, 수용≫(동문선, 공역), ≪괴테의 사랑. 슈타인 부인에게 보낸 괴테의 편지≫(연극과 인간) 등이 있다. 논문으로는 <흔들리는 호수에 비춰보는 자기 성찰. 괴테의 시 <취리히 호수 위에서>>(2014) <괴테의 초기 예술론을 통해 본 ‘예술가의 시’ 연구. <예술가의 아침 노래>를 중심으로>(2013), <‘자기변신’의 종말?: 괴테의 찬가 <마부 크로노스에게>>(2011), <“불행한 사람”의 노래: 괴테의 찬가 <겨울 하르츠 여행>(1777)>(2008), <영상의 문자화.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의 단편소설에 나타난 ‘겹상자 문장’ 연구>(2007), <괴테의 ≪로마 비가(Römische Elegien)≫에 나타난 에로티시즘>(2007),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에 나타난 ‘체념(Entsagung)’의 변증법>(2004), <괴테의 초기 송가 <방랑자의 폭풍 노래> 연구. 시인의 영원한 모범 핀다르(Pindar).>(2002), <괴테의 초기 시에 나타난 신화적 인물 연구>(2001), <새로운 신화의 창조−에우리피데스, 라신느, 괴테 그리고 하우프트만의 ≪이피게니에≫ 드라마에 나타난 그리스의 ‘이피게니에 신화’ 수용>(1997) 등이 있다.
 
 
 
 ☑ 목차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5

라파엘로의 환상······················································································9
이탈리아에 대한 동경···············································································17
생존 시 널리 유명했던 화가이자 롬바르드 유파의 일인자 프란체스코 프란차의 특이한 죽음·········································································································20
연습생과 라파엘로···················································································32
피렌체의 젊은 화가 안토니오가 로마에 있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41
재주가 많으면서도 학식이 깊은 화가의 전형. 피렌체 유파의 유명한 시조인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삶에서 소개함··················································································47
두 가지 그림 묘사····················································································70
예술에서 일반적인 것, 관용 그리고 인간애에 대한 몇 마디····································80
우리의 존경하는 조상 알브레히트 뒤러의 명예를 기념하며····································87
놀라운 언어 두 가지와 그 신비한 힘에 대해·····107
피렌체파(派)의 옛 화가 피에로 디 코시모의 특이성에 대해 ··································115
어떻게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세상의 위대한 예술가의 작품을 감상하고 자기 영혼의 안녕을 위해 이용해야 하는가? ············································································127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위대함·································································133
로마에 있는 어느 젊은 독일 화가가 뉘른베르크에 있는 한 친구에게 보낸 편지············145
화가들의 초상화····················································································155
화가들의 연대기····················································································162
음악가 요셉 베르크링거의 이상한 음악적 삶 1, 2부···········································193
 
 
해설··································································································225
지은이에 대해·······················································································243
옮긴이에 대해·······················································································252



2012년 8월 3일 금요일

간디 자서전(An Autobiography or The Story of My Experiments with Truth)


간디 자서전(An Autobiography or The Story of My Experiments with Truth)
모한다스 간디(Mohandas K. Gandhi) 지음 / 김선근 옮김
분야 : 수필
출간일 : 2012년 7월 31일
ISBN : 978-89-6680-528-0 02890
12000원 /  A5 제본 / 236쪽


☑ 책 소개


간디는 인도 민중에게 몸소 본보기를 보임으로써 그들의 정신과 사회 풍토를 변화시켰다. ≪간디 자서전≫은 간디가 진리를 찾아 실험하고 경험했던 일들을 회상한 자서전이며, 인도 휴머니즘의 생생한 전형이다. 간디는 누구나 진리를 깨달으면 위대한 인물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책은 전체 5편, 167장 중에서 우리가 진리를 공부하는 데 도움이 될 장을 옮긴이가 선별해 번역한 것이다.


☑ 출판사 책 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 천줄읽기>는 오리지널 고전에 대한 통찰의 책읽기입니다. 전문가가 원전에서 핵심 내용만 뽑아내는 발췌 방식입니다.

진리와 함께 한 나의 실험 이야기
간디는 그의 자서전에 ‘진리와 함께한 나의 실험 이야기(The Story of My Experiments with Truth)’라는 부제를 붙였다. 이것은 깊은 의미를 가진다. 간디는 자기 자신을 진리의 실험대에 올려놓고 몸소 여러 가지 실험을 했다. 우리가 물리나 화학 실험을 하듯이 간디는 진리에 관해 스스로 실험을 했다. ≪간디 자서전≫은 진리 실험의 생생한 기록이다. 그의 인생을 지배한 정열은 진리에 대한 정열이었다. 그는 겸손과 용기를 가지고 진리를 실천하고 실험했다. 중기의 우파니샤드인 ‘문다카 우파니샤드(Muṇḍaka Upaniṣad)’는 “진리는 언제나 승리한다. 진리가 아닌 것은 그렇지 않다. 신에 이르는 길은 진리로써 포장되어 있다”고 진리의 추구를 강조했다. 간디는 이 진리를 몸소 실험하려고 했다. 그는 자서전에서 “나는 한 사람에게 가능한 것은 만인(萬人)에게도 가능하다고 언제나 믿고 있다”고 강조하면서 이 진리를 실현하기 위해서 각각 응분의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자기 파멸로부터의 탈출구는 어디에도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간디는 “진리를 바로 깨닫고 바로 훈련하면 누구나 위대한 인물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두려워하지 말라
간디는 인도인의 마음에서 공포심을 제거했다. 영국 경찰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 감옥에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 가난이나 고난이나 시련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을 인도인의 가슴속에 불러일으켰다. 공포심의 제거에서 용기와 신념이 생긴다. 1914년경까지 인도는 침체했고, 위축됐고, 비겁했고, 의기소침했다. 그러나 간디는 남아프리카에서 1914년 사티아그라하 투쟁을 승리로 이끌고, 1915년 1월에 22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와서 인도인에게 새로운 정신적 활력소를 불어넣었다. 그는 인도인에게 희망을 주고, 용기를 주고, 신념을 주고, 자존심을 주었다. 좌절감과 절망과 무기력에 휩쓸린 분위기를 간디는 일소해 버렸다. 그래서 시인 타고르는 전 인도 민중을 대표해 간디에 대해서 ‘마하트마’라는 찬사를 보냈다.


☑ 책 속으로

To see the universal and all-pervading Spirit of Truth face to face one must be able to love the meanest of creation as oneself. And a man who aspires after that cannot afford to keep out of any field of life.

우주적으로 편재해 있는 진리의 정신을 직접 체험해 보기 위해서는 피조물 중 가장 비천한 생물까지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사랑을 실천하기를 갈구하는 사람은 일상생활의 어떠한 분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 지은이 소개

모한다스 카람찬드 간디(Mohandas Karamchand Gandhi, 1869∼1948)
간디는 인도의 민족주의자 정치가로서 영국의 교육을 받은 변호사 출신이었다. 간디는 독립운동 외에도 힌두ᐨ이슬람 간의 갈등 문제, 불가촉천민과 여성의 인권 문제, 여러 가지 악법에 대한 저항 운동, 올바른 교육, 농촌 경제 등 사회적 불의와 불평등의 개선을 위해 죽는 날까지 투쟁했던 행동가였다. 간디는 마치 자연과학적 지식이 진리가 되기 위해서 실험적으로 검증되어야 하는 것처럼, 종교적·철학적 사상도 삶의 구체적 현실인 정치·경제·사회적 문제에 적용되고 실험적으로 검증되어야 한다고 믿었던 실용주의적 유심론자(Pragmatic Spiritualist)였다. 그의 사상은 현실적인 문제에 적용될 때만 의미와 가치를 갖는 것이다. 인도 독립의 아버지인 간디는 1915년 1월 이후 국민회의파의 지도자로서 총탄에 쓰러지기까지 인도 민족을 위해서 활동했다. 그는 일반적인 혁명가와 동일한 유형의 사람이 아니었으며, 평화적인 수단을 사용하면서 영국의 제패를 전복하려고 했다. 영국 상품의 불매(不買)를 실행하는 동시에 농촌의 잉여 노동력을 이용해 가내공업을 일으켜 차르카 운동을 통한 민족자본 축적을 목표로 했던 것이다. 종교를 정치적으로 구현한 점에서 그는 사상사적으로 독자적인 의의를 인정할 수 있다. 그의 삶의 목표인 해탈은 생명에 대한 봉사다. 생명에 대한 헌신적인 봉사가 간디의 신(神)을 실현하는 방법이다. 간디의 사상 구조는 무어(G. E. Moore, 1873∼1958)의 패러다임에 대비하면, 형이상학적 윤리설이라고 볼 수 있다. 그가 일생을 통해서 2388일을 감옥에서 보낸 것도 진리에 대한 헌신적인 봉사의 표현이다. 그야말로 간디는 ‘보현보살의 행원(行願)’ 그 자체를 실현한 성자였다.


☑ 옮긴이 소개

김선근
김선근은 1946년 경북 금릉에서 출생했다. 동국대학교 인도철학과에서 공부해 문학사와 문학 석사,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 도덕 및 종교교육 교육학석사, 2003년 인도 바나라스 힌두대학교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동국대학교 인문과학대학 철학과와 인도철학과 학과장으로 재직했으며 현재는 명예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1991년부터 1994년까지 인도 네루 대학교 한국학 담당 교환교수였고, 2005년 8월에는 일본 류코쿠대학에서 교환 강의를 했다. 1991년 외무고등고시위원(국민윤리), 2001년부터 2005년까지 인도철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인도철학회 고문과 한국불교학회 명예회장 겸 법인이사, 선진통일연합 공동대표다. 저서로는 ≪인도 정통철학과 대승불교≫(동국대학교 출판부, 2005), ≪모든 이웃을 부처님처럼≫(민족사, 1999), ≪The Philosophical Thoughts of Mahatma Gandhi≫(New Delhi: Vikas Publishing House, 1996), ≪마하뜨마 간디 철학연구≫(불광출판부, 1990), ≪베단따 철학≫(불광출판부, 1990), ≪여의주≫(삼화출판사, 1981)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힌두 스와라지≫(지식을만드는지식, 2011)가 있다. 지식이 삶에서 실천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믿고 있다.


☑ 목차

해설

지은이에 대해


머리말


I

1. 출생과 가문

2. 조혼

3. 영국으로 갈 준비

4. 종교를 알게 됨

5. 면허. 그렇다면?


II

1. 레이찬드바이

2. 남아프리카로 갈 준비

3. 프리토리아로 가는 길

4. 소송 준비

5. 종교심의 발효

6. 인간이 제안하고 신이 처리한다

7. 3파운드의 세금

8. 종교의 비교 연구


III

1. 인도로 돌아옴

2. 국민회의 개회

3. 베나레스에서

4. 다시 남아프리카로


IV

1. 사랑의 노력은 허사인가

2. 아시아에서 온 독재자들

3. 자기반성의 결과

4. 권력과의 대결

5. <인디언 오피니언>

6. 사티아그라하의 탄생

7. 단식

8. 고칼레를 만나러

9. 정신적 딜레마

10. 본국으로


V

1. 첫 경험

2. 푸나에서 고칼레와 함께

3. 샨티니케탄

4. 3등 승객의 비애

5. 쿰바멜라

6. 아슈람 창설

7. 계약노동제 철폐

8. 롤래트 법안과 나의 딜레마

9. 놀라운 광경

10. 히말라야적 오산

11. <나바지반>과 <영 인디아>

12. 펀자브에서

13. 암리차르 국민회의

14. 국민회의에 입회함

15. 카디의 탄생

작별 인사

옮긴이에 대해





2012년 3월 23일 금요일

조선 사람들의 개성 여행



☑ 책 소개


고려의 500년 도읍지로 유서 깊은 문물을 간직하고 있는 곳 개성. 조선의 사대부들은 이곳을 어떻게 보고 느꼈을까? 우리가 북한 금강산 유람을 간 기분일까? 문장으로 이름 높은 여러 선비들의 문집에서 개성 여행기만 뽑아 엮었다. 만경대, 선죽교, 박연폭포 등 개성의 여러 볼거리들을 코스별로 소개하는가 하면, 동경과 우월감, 호승심, 비판 정신 등 사람에 따라 같은 곳에 대한 감상과 표현도 가지각색이라 이를 비교해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 출판사 책 소개

조선 전기에는 개경의 여러 지역을 두루 구경하는 경우가 두드러진다. 특히 채수나 유호인 등은 사가독서(賜暇讀書, 채수의 <유송도록>의 주4 참조)의 기회를 얻어 개경을 가는 경우였는데, 여행 기간도 길면서 이동 거리 역시 상당히 길게 나타난다. 조선의 개국을 앞장서서 이끌었던 사대부들이어서 그런지 이들의 글에는 벼슬아치로서의 자부심이나 여행의 즐거움이 작품 전체에 한껏 배어 있기도 하다.

이러한 흥겨운 여행 분위기가 고려 문화에 대해서는 상당히 비판적이면서 철저히 유학자적인 입장으로 바뀌는데, 그 대표적인 글이 바로 생육신의 한 사람이기도 한 추강 남효온의 글이다. 즉 남효온의 글에는 유학적 입장에서 보면 당연히 배제될 법한 괴력난신의 이야기나 남녀가 함께 어울려 노는 당시 풍속들이 그대로 드러나 있으면서도 그러한 풍습이나 이야기를 바라보는 태도는 아주 비판적이다. 한마디로 남효온의 글은 착한 모범생이 옳지 못한 장소에 갔을 때 자신의 도덕적 입장이 더 크게 드러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러한 글의 특징을 개인적인 성격의 탓으로 돌릴 수도 있겠지만, 크게 보면 조선 전기를 넘어서면서 성리학이 사대부들의 내면으로 서서히 침투해 들어가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조선의 산하와 풍속들에 대해 성리학적 입장에서 새판을 짜 가는 과정인 셈이다.

조선 중기에 이르러서 개경은 일종의 유학적 성지(聖地)로 부각된다. 이러한 변신은 조선조에 성리학이 발달하면서 나타난 일로 조선 중기 이후 개경의 기행문을 보면 포은 정몽주나 화담 서경덕의 흔적이 깃든 곳인 선죽교나 화담 등이 단골 메뉴처럼 등장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아마도 이 두 인물이 개경의 여행 코스에 자주 등장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1573년(선조 6)에 이들을 모시기 위한 숭양서원(崧陽書院)의 건립인 것 같다.

그러나 조선의 전후기를 가릴 것 없이 빼어난 경치를 보기 위해서는 반드시 박연폭포를 찾았다는 것은 전혀 변함이 없다. 박연폭포를 필수 코스로 삼는 까닭으로 뛰어난 풍경 말고도 큰 힘 들이지 않고 찾아갈 수 있는 뛰어난 접근성을 꼽을 수 있다. 한마디로 개경 여행은 박연폭포 찾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책에 실려 있는 글들은 ‘한국문집총간(韓國文集叢刊)’ 가운데 채수의 ≪나재집(懶齋集)≫ 권1, 유호인의 ≪뇌계집(㵢溪集)≫ 권7, 남효온의 ≪추강선생문집(秋江先生文集)≫ 권6, 조찬한의 ≪현주집(玄洲集)≫ 권15상, 김육의 ≪잠곡선생유고(潛谷先生遺稿)≫ 권14, 김창협의 ≪농암집(農巖集)≫ 권23, 오원의 ≪월곡집(月谷集)≫ 권10에서 뽑아서 번역한 것이다.


☑ 책 속으로

● 웅덩이 물이 넘쳐서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데, 마치 은하수가 거꾸로 걸린 듯하다. 폭포는 구슬 같고 눈발 같은 물방울을 뿜어내고 휘날리면서 바위 골짜기를 쾅쾅 울려 대는데, 그 소리는 마치 성난 우렛소리 같았다. 해괴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해 이루 다 말로 할 수 없었다. 조물주의 재주가 이 지경까지 이를 줄이야! 혹시라도 와 보지 못했다면 항아리 속 초파리 꼴을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휘어진 소나무들이 비탈을 따라서 거꾸로 드리워져 있었다. 따라온 종자(從者)들이 원숭이처럼 소나무에 붙어서 아래를 내려다보는데, 머리칼이 솟고 정신이 떨려 가까이 하지 못했다. 돌 위에는 이곳을 찾아왔던 사람들의 이름이 잔뜩 새겨져 있었다.

● 4일(경오). 적전판관(籍田判官) 정서가 찾아와 함께 화원으로 향했다. 화원은 공민왕 23년에 세웠다. 팔각전에 있는 옥좌에는 먼지가 뽀얗게 끼었고, 창살에는 거미줄이 얽혀 있었다. 계단 아래에 있는 앵두나무 수십 그루에는 열매가 주렁주렁 열려 있었다. 팔각전 뒤에는 괴석(怪石)으로 산을 만들어 놓고, 진기한 꽃들을 돌 틈에 가득 심어 놓았다. 이는 우왕이 임금 자리를 도적질한 10여 년 동안 즐기던 풍경이건만, 지금은 민가가 되어 사라져 버렸다. 참으로 사람이 잃고 얻는 것도 결국 이 티끌세상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말이 미덥지 아니하랴.

도평의사(都評議司)를 지나서 서쪽 벽 움푹 들어간 곳에 석각(石刻)이 있었다. 삼봉 정도전이 지은 기문(記文)이다. 세 그루 회화나무가 허술한 곳을 채워 주고 있을 뿐 사방은 모두 쓸쓸했다. 어떤 사람은 충신이라고, 어떤 사람은 간신이라고 쓰여 있으니, 이 어찌 ‘살갗 밑에 춘추(春秋)가 들어 있는 것’이 아닌가?

● 박연폭포의 경치는 천하에서 뛰어나고 사해(四海)에 으뜸이니, 하나의 일이나 하나의 말로서 그 형세를 드러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래쪽 하박연의 검푸른 절벽은 칼로 깎아 세운 듯하다. 노을빛에 주름이 접히고 안개에 찢어진 듯하고, 담벼락이나 병풍을 우뚝 세워 놓은 듯도 하다. 높이는 거의 수백 길이 되고 넓이는 수백 걸음이 된다. 폭포수는 긴 부리 모양의 매끈한 길을 따라 쏟아져 내린다. 폭포는 부리 모양의 길을 따라 쏟아져 내리기도 하고 뿜어 오르기도 하면서 우렛소리 쾅쾅 울리고 번개를 치는 듯하다. 바야흐로 그 우람한 모습은 하늘이 열리며 노을이 떨어지는 듯하고 구름이 걷힌 뒤 용이 길게 걸려 있는 듯하다.

● 한 마장쯤 가니 범림암(梵林菴)이었다. 이곳에서 잠깐 쉬었다. 다시 길을 꺾어서 세 마장쯤 올라가자, 보현봉과 문수봉 아래에 있는 적조암(寂照庵)이 나왔다. 이곳은 아주 높아서 열에 일고여덟 정도 되는 높이에 자리한 듯했다. 수많은 봉우리들이 빙 둘러서 화살처럼 서 있어서 하늘의 별을 보고 절을 하는 듯했다. 그 봉우리가 바로 천마봉, 나월봉, 노적봉, 원적봉, 법주봉, 청량봉이다. 봉우리 하나하나가 높이 솟아 있어 마치 옥비녀를 꽂아 놓거나 푸른 연꽃을 심어 놓은 듯했다. 참으로 산의 진면목이 여기에 몽땅 모여 있었다. 아직 금강산의 정양사(正陽寺)에 가 보지는 못했지만, 여기보다 낫지는 못할 것 같았다. 암자가 뛰어난 경치 속에 자리 잡고 있으며, 법당 또한 지극히 깨끗해 한 점 티끌이 붙어 있지 않았다. 아마도 사람들로 하여금 수많은 일을 제쳐 두고 열흘쯤 여기에 앉혀 둔다 해도 이런 풍경을 찾아낼 수 없을 것 같았다.


☑ 지은이 소개

채수(蔡壽)

채수는 조선 초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인천(仁川), 자(字)는 기지(耆之), 호(號)는 나재(懶齋)다. 1468년(세조 14) 생원시에 합격하고, 이듬해 문과에 장원해 사헌부감찰이 되었다. ≪세조실록≫, ≪예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했다. 1703년(숙종 29) 함창의 사림들에 의해 임호서원(臨湖書院)이 건립되면서 표연말(表沿沫), 홍귀달(洪貴達) 등과 함께 그곳에 제향되었다. 문집으로 ≪나재집≫이 있다. 좌찬성에 추증되고, 시호는 양정(襄靖)이다.

그는 유교 경전뿐만 아니라 산경(山經), 지지(地誌), 패관소설(稗官小說)에까지 해박했고 음악에도 조예가 깊었다. 또한 산수를 좋아해 삼각산, 금강산, 지리산, 팔공산, 가야산, 비슬산, 황악산, 속리산 등의 정상을 두루 올랐다고 한다. 만년에는 서울의 남산 밑에 집을 짓고 인공으로 폭포를 만들어 놓고 눈과 귀, 입을 즐겁게 한다는 ‘폭포 삼락(瀑布三樂)’을 즐기기도 했다.

유호인(兪好仁, 1445∼1494)

유호인(兪好仁, 1445∼1494)은 조선 전기의 문신이다. 자는 극기(克己), 호는 뇌계(㵢溪)다. 함양에서 태어나 김종직에게서 배웠고 1462년(세조 8) 생원시와 진사시에 합격했다. 1474년(성종 5)에 문과에 합격하고 승문원 정자가 되었다. ≪동국여지승람≫의 편찬에도 참여했다.

1487년 일흔이 넘은 늙은 어미와 어버이를 잃은 두 딸, 어미를 잃은 두 손자를 돌보기 위해서 사직하고 의성의 현감으로 내려갔다. 이때 성종은 “이시렴 부디 갈까? 아니 가든 못할쏘냐? 무단(無端)이 싫더냐 남의 말을 들었느냐? 그려도 하 애도래라 가는 뜻을 닐러라”라는 시조를 써 주면서 안타까움을 전하기도 했다. 장수의 창계서원(蒼溪書院), 함양의 남계서원(藍溪書院)에 제향되었다. 2007년 12월 함양읍 죽장 마을에는 그를 기려 뇌계공원이 세워지기도 했다.

남효온(南孝溫, 1454∼1492)

남효온(南孝溫, 1454∼1492)은 조선 단종 때의 문신으로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이다. 본관은 의령. 자는 백공(伯恭), 호는 추강(秋江), 행우(杏雨), 최락당(最樂堂), 벽사(碧沙)다. 김종직(1431∼1492)의 문인으로 김굉필(1454∼1504), 정여창(1450∼1504) 등과 함께 수학했다. 1478년(성종 9) 올린 상소에 소릉(昭陵)의 복위를 상주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 당시 훈구파들로부터 미움을 샀다.

1480년 어머니의 명령에 따라 생원시에 응시해 합격하고 나서는 다시 과거에 나가지 않았다. 그 뒤 벼슬을 단념하고 신영희(1442∼1511), 홍유손(1431∼1529) 등과 죽림거사(竹林居士)를 자처하고 평생 전국의 명승지를 돌아다니면서 울분을 달랬다. 사후 갑자사화(1504) 때 소릉의 복위를 주장한 일로 부관참시당했다. 고양의 문봉서원(文峰書院), 장흥의 예양서원(汭陽書院), 함안의 서산서원(西山書院), 영월의 창절사(彰節祠), 의령의 향사(鄕祠) 등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저서로는 ≪추강집≫, ≪추강냉화(秋江冷話)≫, 당시에는 큰 화를 당할 수도 있었던 사육신(死六臣)의 순절을 다룬 ≪육신전(六臣傳)≫ 등이 있다.

조찬한(趙纘韓, 1572∼1631)

조찬한(趙纘韓, 1572∼1631)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한양, 자는 선술(善述), 호는 현주(玄洲)다. 1601년(선조 34) 생원이 되고 1605년 정시(庭試)에서 장원을 했는데, 선조가 그의 글이 기이하다 해서 어필로 비점을 주고 특별히 전시(殿試)를 보도록 허락했다.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했다. 1618년(광해군 10) 4월 형인 위한(緯韓)과 함께 지리산을 여행하고 <유두류산록(遊頭流山錄)>을 지었다.

그는 특히 사륙변려문에 뛰어났다. 또한 글씨는 종요(鍾繇)와 왕희지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평가받아 사람들이 그의 글씨를 얻으면 귀중히 간직했고, 그와 교유한 권필(權韠, 1569∼1612), 이안눌(李安訥, 1571∼1637), 임숙영(任叔英, 1576∼1623) 등은 그를 예원(藝苑)의 거장으로 뽑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의 후진으로는 이경석(李景奭, 1595∼1671), 오숙(吳䎘, 1602∼1675), 신천익(申天翊, 1592∼1661) 등이 있다. 장성 추산사(秋山祠)에 제향되었다. 저서로 ≪현주집≫이 있다. 그는 박연폭포를 장편으로 노래한 60줄짜리 7언 고시인 <박연가(朴淵歌)>를 남기기도 했다.

김육(金堉, 1580∼1658)

김육(金堉, 1580∼1658)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청풍(淸風), 자는 백후(伯厚), 호는 잠곡(潛谷), 회정당(晦靜堂)이다. 1605년(선조 38)에 사마회시에 합격해 성균관으로 들어갔다. 1609년(광해군 1)에 성균관 유생들과 함께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 이황 등을 문묘에 향사할 것을 건의하는 상소를 올린 것 때문에 문과에 응시할 자격을 박탈당하고 가평 잠곡에 은거했다. 1623년 인조반정 이후 증광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했다.

대동법을 건의해 충청도에 시행하도록 했고, 중국에 두 차례 다녀와서 화폐의 주조와 유통, 수레의 제조와 보급, 시헌력(時憲曆)의 제정과 시행에 노력했다. 저술로는 문집인 ≪잠곡유고≫,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인 ≪유원총보≫, 흉년에 대처하는 방도를 적은 ≪구황촬요≫ 등이 있다. 미원서원(迷源書院)과 봉강서원(鳳岡書院), 계몽서원(啓蒙書院), 숭양서원(崧陽書院) 등에 배향되고, 1704년(숙종 30)에 잠곡서원(潛谷書院)에 독향(獨享)되었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김창협(金昌協, 1651∼1708)

김창협(金昌協, 1651∼1708)은 조선 후기의 유학자다. 본관은 안동, 자는 중화(仲和), 호는 농암(農巖) 또는 삼주(三洲)다. 좌의정 김상헌의 증손자로 아버지는 영의정을 지낸 김수항이다. 1669년(현종 10) 진사시에 합격하고, 1682년(숙종 8) 증광문과에 전시장원으로 급제했다. 1689년(숙종 15) 청풍부사로 있을 때 기사환국으로 아버지가 유배지인 진도에서 사사되자, 사직하고 영평(永平)에 은거했다.

김창협의 형제는 모두 여섯으로 장동에서 태어나 모두 뛰어난 문재를 지니고 있다고 해 당시에 장동육창(壯洞六昌)으로 불렸다. 그는 숙종의 묘정에 배향되었으며, 양주의 석실서원(石室書院), 영암의 녹동서원(鹿洞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농암집≫ 등이 있고, ≪강도충렬록(江都忠烈錄)≫을 편집했다.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오원(吳瑗, 1700∼1740)

오원(吳瑗, 1700∼1740)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백옥(伯玉), 호는 월곡(月谷)이다. 1723년(경종 3) 사마시에 합격하고, 1728년(영조 4) 정시문과에 장원했다. 그는 영조에게 양세법(兩稅法)의 여섯 가지 폐단을 논한 글을 올려 크게 칭찬을 받았다.

그는 노론으로 인현왕후의 폐위를 반대하다가 유배 중 죽은 오두인(吳斗寅, 1624∼1689)의 손자이고, 김창협의 외손이자 권상하(權尙夏, 1641∼1721)의 손자사위이며, 이재(李縡, 1680∼1746)의 문인이다. 뛰어난 글재주로 부제학, 대사성, 문형 등에 등용되었지만, 노론 준론(峻論) 쪽에 서서 영조의 탕평책에 반대해 사직과 출사를 반복하면서 산수를 자주 유람했다. 저서로는 ≪월곡집≫이 있다. 시호는 문목(文穆)이다.


☑ 옮긴이 소개

전관수

전관수(田寬秀)는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연구교수다. 저서로 ≪손곡 이달 연구≫(공저), ≪장서각 수집 고서 해제≫(공저) 등이 있고, 논문으로 <박연폭포 시에 대한 일고찰>, <주몽신화(朱蒙神話)의 천문신화학적 연구> 등이 있다.


☑ 목차

유송도록(遊松都錄) ···············1

유송도록(遊松都錄) ···············23

송경록(松京錄) ·················61

유천마성거양산기(遊天磨聖居兩山記) ·······103

천성일록(天聖日錄) ···············123

유송경기(遊松京記) ···············145

서유일기(西遊日記) ···············167

해설 ······················195

옮긴이에 대해 ··················202

2012년 3월 22일 목요일

태평광기



☑ 책 소개


불로장생하는 신선에서부터 기이한 동식물에 이르기까지 각종 고소설을 수록하면서 역사·지리·종교·민속·명물·전고·문장·고증 등의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학문적 연구에 중요할 뿐만 아니라 예술 작품의 소재와 제재로도 활용되는데, 영화 <천녀유혼(倩女遊魂)> 또한 이 작품에 수록된 이야기를 다룬 것이다.


☑ 출판사 책 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 천줄읽기>는 오리지널 고전에 대한 통찰의 책읽기입니다. 전문가가 원전에서 핵심 내용만 뽑아내는 발췌 방식입니다.

≪태평광기≫는 한대(漢代)부터 북송 초에 이르는 소설·필기·야사 등의 전적에 수록되어 있는 이야기들을 광범위하게 채록해, 7000여 조에 달하는 이야기를 수록한 책이다. 각 고사의 끝에는 채록 출처를 밝혀놓았는데, 인용된 책은 거의 500종에 가까웠으며, 그중에서 절반가량은 이미 망실된 것이었으나 ≪태평광기≫에 의거해서 적지 않은 내용이 세상에 전해지게 되었다. 또한 현존하는 절반가량의 인용서도 ≪태평광기≫에 인용된 해당 고사에 근거해 잘못된 부분을 고증하거나 교감할 수 있다. 따라서 고소설의 일문(佚文)을 보존하고 있는 측면과 고소설의 변화, 발전을 연구하는 측면에서 볼 때 ≪태평광기≫의 중요성은 지대하다고 하겠다.

≪태평광기≫에 수록된 이야기는 신선귀괴(神仙鬼怪)와 인과응보(因果應報)에 관한 것이 비교적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어떤 경우는 한 부류가 한 권으로 되어 있기도 하고 어떤 경우는 한 부류가 여러 권으로 되어 있기도 하다. 그중에서 <신선(神仙)>·<여선(女仙)>·<보응(報應)>·<신(神)>·<귀(鬼)>·<요괴(妖怪)> 등의 부류가 다른 부류의 권수보다 상대적으로 분량이 많다. 이러한 경향은 고대 민간풍속과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 이래 지괴(志怪)소설의 흥성을 반영하고 있다. 또한 <잡전기(雜傳記)>류는 모두 당대(唐代)의 전기(傳奇) 작품을 수록했는데, 이를 통하여 당대 전기에 주로 어떤 종류의 내용이 기록되었는지를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부류별로 고사를 배열하는 이러한 체제는 독자들이 이를 분석하고 연구하는 데에 많은 편리함을 제공하고 있다. 그래서 송대 이전 고소설의 변천과 발전 상황을 알고 싶으면 이 책에 근거해서 탐색해 나갈 수 있다.

≪태평광기≫는 작심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독파할 책은 아니다. 소재에 따라 92개의 큰 부류와 150여 개의 작은 부류에 체계적으로 분류된 7000여 편의 이야기 중에서 관심 있는 부분만 골라 읽으면 된다. 이 책은 작품성을 위주로 고르고 골라 20편을 뽑았다.


☑ 책 속으로

비록 존신(尊神)·악귀·야차·맹수·지옥이 나타나거나 그대의 친족이 감옥에 갇혀 온갖 고난을 당하더라도 모두 진실이 아니라네. 절대로 움직이지도 말하지도 말게. 마음을 편히 하고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결국엔 아무런 고통도 없을 것이네. - 22~23쪽

부귀와 관직이 지극하고,

그 권세가 도성을 기울여도,

달관한 사람이 이를 본다면,

저 개미 떼들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 159쪽


☑ 지은이 소개

≪태평광기≫의 편찬에는 모두 13명의 학자가 참여했는데 이방(李昉)이 그 대표자다. 이방(925∼996)은 송(宋)나라 초기의 학자로, 자는 명원(明遠)이고 심주(深州) 요양(饒陽: 지금의 河北省에 속함) 사람이다. 오대(五代) 후한(後漢) 건우(乾祐) 연간(948∼950)에 진사(進士)가 되었고, 후한과 후주(後周)에서 벼슬했으며, 송대에 들어와 우복야(右僕射)·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를 지냈다. 일찍이 칙명을 받들어 ≪태평광기≫를 비롯하여 ≪태평어람(太平御覽)≫·≪문원영화(文苑英華)≫·≪구오대사(舊五代史)≫의 편찬을 이끌었다. 문집 50권이 있다. 그 밖의 참여자는 호몽(扈蒙), 이목(李穆), 서현(徐鉉), 송백(宋白), 장계(張洎), 왕극정(王克貞), 조인기(趙隣幾), 오숙(吳淑), 여문중(呂文仲), 탕열(湯悅), 동순(董淳), 진악(陳鄂)이다.


☑ 옮긴이 소개

김장환

김장환은 연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연세대학교 중문과를 졸업한 뒤 서울대학교에서 <세설신어연구(世說新語硏究)>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연세대학교에서 <위진남북조지인소설연구(魏晉南北朝志人小說硏究)>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강원대학교 중문과 교수와 미국 하버드-옌칭연구소(Harvard-Yenching Institute) 객원교수(Visiting Scholar)를 지냈다. 전공 분야는 중국 문언 소설과 필기 문헌이다.

그동안 쓰고 번역한 책으로는 ≪중국문학의 벼리≫, ≪중국문학의 갈래≫, ≪중국문학의 숨결≫, ≪중국문언단편소설선≫, ≪유의경(劉義慶)과 세설신어(世說新語)≫, ≪중국연극사≫, ≪중국유서개설(中國類書槪說)≫, ≪중국역대필기(中國歷代筆記)≫, ≪봉신연의(封神演義)≫(전 9권), ≪열선전(列仙傳)≫, ≪서경잡기(西京雜記)≫, ≪세상의 참신한 이야기―세설신어≫(전 3권), ≪고사전(高士傳)≫, ≪태평광기(太平廣記)≫(전 21권), ≪태평광기상절(太平廣記詳節)≫(전 8권), ≪소림(笑林)≫, ≪어림(語林)≫, ≪곽자(郭子)≫, ≪속설(俗說)≫, ≪담수(談藪)≫, ≪소설(小說)≫, ≪계안록(啓顔錄)≫, ≪세설신어보(世說新語補)≫(전 4권), ≪신선전(神仙傳)≫, ≪옥호빙(玉壺氷)≫, ≪열이전(列異傳)≫ 등이 있으며, 중국 문언 소설과 필기 문헌에 관한 다수의 연구 논문이 있다.


☑ 목차

해설

지은이에 대해

두자춘(杜子春)−자식 사랑 때문에 이루지 못한 신선의 꿈

백수소녀(白水素女)−하늘에서 내려온 우렁각시

정덕린(鄭德璘)−생사를 뛰어넘은 숙명적인 사랑

정혼점(定婚店)−붉은 실로 묶인 세상 남녀의 사랑 인연

소무명(蘇無名)−치밀한 도둑 떼를 잡은 예리한 통찰력

규염객(虬髥客)−구레나룻 수염의 협객

한지화(韓志和)−실물과 다름없는 갖가지 동물 로봇

천일주(千日酒)−천 일 만에 깨어나는 술

인부(鄰夫)−남편에게 멋진 시를 지어 달라다가 망신당한 부인

이탄녀(李誕女)−괴물 뱀을 처치한 용감한 효녀 이기

매분아(買粉兒)−죽은 애인을 살려낸 분 파는 아가씨

판교삼낭자(板橋三娘子)−사람을 나귀로 둔갑시키는 술법

왕주(王宙)−영혼과의 사랑, 천녀유혼(倩女遊魂)

원무유(元無有)−다듬잇 방망이, 등잔대, 두레박, 깨진 솥의 정괴

신도징(申屠澄)−정숙한 여인으로 둔갑한 호랑이와의 결혼

구양흘(歐陽紇)−미인을 잡아가는 신비한 능력의 흰 원숭이

임씨(任氏)−미인으로 둔갑하여 남편을 섬긴 여우의 정절

순우분(淳于棼)−꿈속 개미왕국의 영화, 남가일몽(南柯一夢)

신라(新羅)−도깨비 방망이

앵앵전(鶯鶯傳)−정열적이면서도 이성적인 앵앵의 사랑

옮긴이에 대해

2012년 2월 27일 월요일

용재수필



☑ 책 소개

남송 시대의 홍매가 독서를 통해 얻은 지식을 그때마다 정리해 집대성한 것이다. 역사, 문학, 철학, 정치 등 여러 분야의 고증과 평론을 엮었다. 홍매는 자신의 저작을 ‘수필(隨筆)’이라고 명명했다. 이는 정통적이고 주류적인 고문(古文)의 영역과는 달리 홍매 자신만의 생각을 풀어냈기 때문이다. 홍매가 구슬처럼 꿰어내는 역사의 반복을 통해 지금 우리의 삶을 비춰볼 수 있다.



☑ 출판사 책 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 천줄읽기>는 오리지널 고전에 대한 통찰의 책읽기입니다. 전문가가 원전에서 핵심 내용만 뽑아내는 발췌 방식입니다.
이 책은 ≪용재수필(容齋隨筆)≫(上海古籍出版社, 1998), 쿵판리(孔凡禮) 점교(點校)본 ≪용재수필≫(中華書局, 2006)을 저본으로 삼았습니다. 총 1229조목에서 68조목을 선별했습니다.

홍매의 일생이 담긴 책

≪용재수필≫ 16권, ≪속필≫ 16권, ≪삼필≫ 16권, ≪사필≫ 16권, ≪오필≫ 10권인 5부작으로 구성되어 있다. ≪오필≫을 제외하고는 매 편마다 서문이 있는데 ≪사필≫의 서문에서 “처음 내가 ≪용재수필≫을 썼을 때는 장장 18년이 걸렸고, ≪이필≫은 13년, ≪삼필≫은 5년, ≪사필≫은 1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고 했다. 이와 ≪오필≫을 합쳐 본다면 홍매는 근 40년의 세월을 ≪용재수필≫과 함께한 셈이다. 총 1229조목에 달하는 분량은 개인의 필기로는 보기 드문 것으로 여기에는 홍매 일생의 모든 학식이 오롯이 담겨 있다.
‘수필’이라는 용어의 사용

흔히 에세이(essay)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수필(隨筆)’이라는 용어를 제일 처음 사용한 용례가 바로 ≪용재수필≫이다. 그러나 홍매가 사용했던 ‘수필’이라는 용어의 함의는 지금처럼 개인의 경험과 감상을 가볍게 서술하는 신변잡기식의 감성적 글쓰기와는 거리가 있다. 홍매는 자신의 글을 ‘수필’이라 명명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생각이 가는 대로 써 내려갔으므로 두서가 없어 수필이라 했다.” 생각을 따라 자유롭게 쓴 글이라는 의미로 보이지만, 실제 내용은 그렇지 않다. ≪용재수필≫은 경전과 역사, 문학작품에 대한 고증과 의론, 전인의 오류에 대한 교정이 주를 이루는 것으로 독서의 심득을 기록한 공부의 산물이다.



☑ 책 속으로

今夫飛者以翼爲用, 縶其足, 則不能飛. 走者以足爲用, 縛其手, 則不能走. 擧場較藝, 所務者才也, 而拙鈍者亦爲之用. 戰陳角勝, 所先者勇也, 而老怯者亦爲之用. 則有用、無用, 若之何而可分別哉? 故爲國者, 其勿以無用待天下之士, 則善矣!

날짐승은 날개로 날지만 만약 그들의 다리를 묶는다면 날 수 없게 된다. 달리는 것은 다리를 써서 달리지만 그 팔을 묶어버린다면 달릴 수가 없다. 과거 시험장에서는 학문과 재능이 중요하지만 무디고 아둔한 자 또한 쓸모가 있다. 전쟁을 할 때는 용기를 우선으로 하지만 겁쟁이도 쓸데가 있는 법이다. 어떻게 쓸모 있음과 쓸모없음을 일괄적으로 구분하겠는가? 그러므로 군주는 천하의 많은 선비들을 무용지물로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 지은이 소개

홍매(洪邁, 1123∼1202)

자는 경로, 호는 용재이며, 시호는 문민공으로 파양 사람이다. 홍매가 태어나고 3년 후, 송나라는 금나라가 남침해 수도인 개봉을 점령당하고 황제인 휘종과 흠종을 포로로 잡아가는 ‘정강의 난’을 겪게 된다. 난을 피해 남쪽으로 도망한 흠종의 동생 고종이 지금의 항저우인 임안을 새로운 수도로 정하고 남송을 재건했다. 광활한 북쪽 영토를 이민족에게 빼앗기고, 그들에게 신하로서의 예의를 지키며 조공을 바치는 굴욕적 조약에 의해 구차한 평화를 유지하는 데 급급했던 나약한 왕조가 바로 남송이었다. ≪용재수필≫에는 이러한 시대에 대한 개탄과 현실 정치에 대한 비판이 글 곳곳에서 표출되고 있다. 홍매의 부친과 형들은 모두 명성 있는 학자이자 관료였다. 부친인 홍호는 금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15년간 억류되었다가 천신만고 끝에 송나라로 돌아왔다. 당시 황제였던 고종은 홍호에 대해 “소무라도 이보다 더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가상히 여겼다. 홍매는 3형제 중 막내였는데 형들 또한 학문적으로 상당한 성취를 이루었고 저작을 남겼다. 이러한 가풍 속에서 성장한 홍매는 자연스럽게 사대부로서의 처세와 학문의 자세를 익힐 수 있었다. 홍씨 가문의 3형제는 당시 “3홍의 문명이 천하에 가득하다”고 할 정도로 손꼽히던 수재들이었다. 홍매의 관직 생활은 비교적 평탄한 편이었다. 20대 초반이었던 고종 소흥 15년 박학굉사과에 급제한 후 천주, 길주, 공주, 건녕, 무주, 진강, 소흥 등에서 지방관을 지내면서 교육, 수리 사업에 힘쓰는 등 실무 경험을 쌓았다. 중앙에 있는 기간에는 기거사인, 중서사인 겸 시독, 직학사원, 한림학사 등의 관직을 거쳐 단명전학사로 관직 생활을 마감했다. 홍매는 방대한 서적을 섭렵한 학식을 바탕으로 다양한 저술을 남겼다. 저작으로는 기이한 이야기 모음인 ≪이견지≫, 당시 선집인 ≪만수당인절구≫, 독서 필기인 ≪용재수필≫, 문집으로 ≪야처유고≫가 있다. 홍매는 특히 30여 년 동안 사관으로 지내면서 북송 신종, 철종, 휘종, 흠종 4대 왕조의 역사인 ≪사조국사≫와 ≪흠종실록≫, ≪철종보훈≫을 집필했다. 홍매의 경전과 역사, 문학 어느 한 방면에 국한되지 않는 해박한 지식과 탁견은 40여 년의 시간에 걸쳐 집필된 ≪용재수필≫에 잘 드러나 있다.



☑ 옮긴이 소개

안예선

중국 상하이 푸단 대학에서 <송인 필기 연구−수필과 잡기류를 중심으로>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고려대학교, 서울여자대학교, 순천향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무겁고 진지한 고문보다는 필기나 일기, 소품처럼 가볍고 솔직 담백한 글을 좋아하며, 이를 통해 전통 시기 문인들의 일상생활을 조명하는 것에 관심을 갖고 있다. <송대 필기와 만명 소품>, <송대 일기: 역사 기록에서 사생활의 기록으로>, <송대 문인의 취미 생활과 보록류 저술> 등의 논문이 있다.



☑ 목차

해설
지은이에 대해
장량의 후손이 없는 이유(張良無後)
조참과 조괄(曹參趙括)
황제의 모친들(漢母后)
전천추와 질운(田千秋郅惲)
여 태자(戾太子)
관부와 임안(灌夫任安)
이태백(李太白)
공자의 뜻(冉有問衛君)
절개를 지킨 여인들(三女后之賢)
현명한 부모와 형제(賢父兄子弟)
사마광의 족자(溫公客位榜)
비방을 담은 책(謗書)
진 문공(晉文公)
상관걸(上官桀)
김일제(金日磾)
한신과 주유(韓信周瑜)
한 무제의 논공행상(漢武賞功明白)
옛사람의 이름과 자(三代書同文)
주 문공과 초 소왕(邾文公楚昭王)
우세남(虞世南)
명재상(名世英宰)
제갈공명(諸葛公)
도연명(陶淵明)
동진의 장수와 재상들(東晉將相)
‘의(義)’ 자의 다양한 의미(人物以義爲名)
불효자 유흠(劉歆不孝)
한나라의 금기(漢法惡誕謾)
친구 사이의 의리(朋友之義)
범증을 어찌 위인이라 하겠는가(范增非人傑)
스스로 멸망을 자초한 육국(戰國自取亡)
장수 교체(臨敵易將)
도적 소탕(漢二帝治盜)
한 경제(漢景帝忍殺)
간언의 어려움(諫說之難)
안자와 양웅(晏子揚雄
화를 피하려 애쓰는 일(有心避禍)
진나라와 연나라의 용병술(晉燕用兵)
이덕유의 편지(李衛公帖)
한 문제의 도량(漢文帝受言)
주운과 진원달(朱雲陳元達)
전횡과 여포(田橫呂布)
주온의 세 가지 일(朱溫三事)
글 파는 문인들(文字潤筆)
의리의 힘(大義感人)
방어의 미덕(深溝高壘)
한 무제의 관리 임용(漢武留意郡守)
백성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民不畏死)
쓸모없음의 쓸모(無用之用)
화장 풍속(民俗火葬)
이임보와 진회(李林甫秦檜)
태종과 현종의 명예욕(唐二帝好名)
취한 정장(醉尉亭長)
유방과 항우의 성패(劉項成敗)
명분 없이 신하 죽이기(無名殺臣下)
개자추와 한식(介推寒食)
우물 안 개구리(三竪子)
이름 없는 현인들(賢士隱居者)
채경의 관리 채용(蔡京除吏)
조덕보의 ≪금석록≫(趙德甫金石錄)
풍속의 차이(南舟北帳)
상하(常何)
글 짓는 비결(東坡誨葛延之)
황제와 후계자(漢唐三君知子)
인심을 얻는 방법(曹馬能收人心)
호가호위(狐假虎威)
한 무제와 당 덕종(漢武唐德宗)
소영사의 지조(蕭穎士風節)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의 습관(貧富習常)
옮긴이에 대해

2012년 1월 31일 화요일

김일엽 산문집



목사의 딸로 태어나 승려의 아내로 살다가 마침내 출가한 여인. 자유연애를 주장한 여성운동가. 시인이자 소설가이며 수필가로 소설보다도 더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던 김일엽, 그녀의 글을 처음 발표되었던 형태 그대로 다시 만난다.



☑ 책 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 고전선집>으로 출간하는 한국 근현대문학은 작품이 처음 발표된 대로 현대에 살려내겠다는 기획 의도에 따라 초판본을 그대로 싣고자 했습니다. 초판본을 구하지 못한 작품은 원전에 가장 근접한 것을 사용했습니다.

일엽 김원주는 한국 근대문학 또는 근대문화에 문제적 궤적을 남긴 인물이다. 여기서 근대문학과 함께 근대문화를 말하는 것은 문학 이외의 사회·문화 영역에서 그의 이름이 당대에 가졌던 화제성 또는 문제성 때문이다. 그녀는 젊은 시절부터 자유연애를 표방한 급진적 여성운동가의 면모를 보였으며 스스로 언명한 자유연애를 실천한 삶을 살았다. 그의 이력에 대한 공식적 기록의 이면에는 스스로 표방한 신여성으로서는 비교적 이르다고 볼 수 있는 시기에 연상자와 맺은 혼인과 그 실패에 대한 옹호, 해명의 맥락과 관련된 ‘비극적’ 조건, 그리고 이에 이어진 방종한 애정 행각으로 오해될 소지를 지닌 ‘자유연애’의 도정이 있으며, 여기에 타자에게는 대단히 극적인 반전으로 보일 종교적 인생 전환이 자리 잡고 있다.

그의 문제적 삶에도 불구하고 그가 남긴 문학적 성취에 대한 연구는 아직 미미하다. <동생의 죽음>의 신체시 효시 논란, 이광수와 비견되는 계몽주의 여성 논객으로서의 면모가 아직 드러나지 않은 것은 그가 반생을 승려로 살았다는 것도 한 이유가 될 것이다. 그러나 종교인으로서 그의 여생에서 유일한 장르로 남은 산문이야말로 그 삶의 무게와 깊이를 지니고 있을 것이다.

최근 우리 근대문학 연구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문화론적 관점, 풍속사적 미시 관찰, 매체 중심적 독법 등의 새로운 접근 방식 덕분에 대대적인 근대 텍스트 다시 읽기가 진행되고 있다. 이 점에서 김일엽의 텍스트는 다시 읽힐 만한 여건을 충족하고 있다. 이미 여성 담론의 측면에서 상당한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인데, 차제에 문학적 의의와 성취도 더 정치하게 되짚어 보게 될 기회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 선집이 최초 매체에 실린 형태를, 허용하는 한 가공 없이 살리고자 하는 의도는 소중한 것이라고 판단된다.

이 선집에 실린 글들은 김일엽이 남긴 산문의 일부다. 이 중 상당수는 현대어로 손질되어 이미 대중들에게 제공된 바 있는 것이나, 새로 소개되는 글도 일부 있다. 처음 발표된 형태 그대로 다시 책을 엮는 일은 그 번거로움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시대의 요청에 부응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자가 많이 섞여 있고 표기 형태가 낯설어, 불편하게 여기는 독자들이 적지 않을 것이나, 힘들게 읽어 내는 사람에게 보람이 없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는 다시 만든 사람에게 보람이 될 것이다. 이 선집을 통해, 일찍이 가족을 모두 여의고 거세게 변화하는 세상에 홀로 서, 정신과 육체의 외로움과 싸우면서, 아울러 역사의 흐름 속에서 여성으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찾고 또 소명을 다하고자 애썼던 한 영특한 인물의 초상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되기를 기대한다.


☑ 책 속으로


●우리의 社會가 文明할사록 우리의 家庭의 程度가 놉하질사록 一般 男子의 事業熱이 沸騰할사록 敎育바든 女子를 要求하는 聲이 漸高하옵니다. 그런故로 오늘날 文化의 程度가 날노 놉하지고 社會의 現狀이 로 複雜하야지는 이 時代에 우리도 남과 가튼 快活하고 健全한 社會를 이루랴면 우리도 남과 갓치 和平하고 安樂한 家庭을 이루랴면 무엇보다도 몬져 女子 敎育의 必要를 提唱하옵니다.

●사랑을 나서는 貞操가 업슴니다. 그러고 貞操는 愛人의 對한 他律的 道德觀念이 안이고 愛人에 對한 感情과 想像力의 最高調化한 情熱인 故로 사랑을 나서는 貞操의 存在를 他一方애서 求할 수 업는 本能的의 感情임니다.
그럼으로 만일 愛人에 對한 사랑이 식어진다 하면 同時에 貞操觀念도 업서질 것임니다. 라서 貞操觀念은 戀愛 意識과 갓치 固定한 것이 안이오 流動하는 觀念으로 恒常 새로운 것임니다.
그러나 舊道德에 立場으로 보면 貞操를 한 物質視하엿슴으로 過去를 가진 女子의 사랑은 新鮮美가 업는 陳腐한 것으로 생각하여 왔슴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그릇된 觀念을 專혀 버려야 되겟슴니다.
貞操는 以上에 말한 바와 갓치 어듸지던지 사랑과 合致되는 同時에 人間의 情熱이 無限하다 할진대 貞操觀念도 無限이 새로울 것임니다. 無한 사랑이 即 貞操라 하면 貞操觀念이 더럽힘을 밧는 制度된 感情이라고는 할 수 업슴니다. 貞操는 決코 道德도 안이오 단지 사랑을 白熱化 식히는 戀愛 意識의 最高 絶頂임니다. 우리는 一生을 두고 이러한 戀愛 意識의 最高 絶頂(對象者가 變하고 안이 하는 데는 아모 相關이 업슴)에서만 恒常 살어야 되겟슴니다.

●우리는 하루 세 끼 밥 얻어먹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요 붉은 살을 가릴 만한 아무런 옷가지도 용이히 입어지지 안는 형편이니 어느 겨를에 音樂이니 詩니 노래니 하리오. 누가 그러치 않다고 말할 사람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나라도 집도 없이 天涯地角으로 떠돌아단니는 집시에게도 노래가 잇지 안느냐.
아모에게라도 학대를 받고 뉘게라도 外面을 當하는 검둥이들에게도 노래가 잇지 안느냐.
강아지도 닭의 새끼도 개구리도 맹꽁이도 새도 한두 달 된 핏덩어리 갓난애도 모다 노래를 부르지 안느냐.
노래는 밥이 넉넉하고 옷이 찬란해야 나오는 것이 아니다.
마음이 편안하고 몸이 튼튼하여야 노래가 되는 것도 아닌 모양이다.
배고프면 배고픈 이의 노래가 잇고 헐벗고 학대받는 이는 그대로의 反抗的 노래가 새여 나올 것이다.
아픈 사람에게는 아프다는 하소연이 흐를 것이요 슬프면 슬퍼하는 눈물이 입가으로 숨여들 때 노래로 變하는 作用이 생길 것이다. 노래는 動物의 本能的 行動이엿만 우리는 노래를 잃어버린 民衆일는지도 모르는 것이다.

●‘大悟는 大夢’이라고 莊子 ≪南華經≫에 씨어 잇슴니다.
오직 ‘悟’외다. 닷고 보면 어느 것인들  아니엇든 것이 잇겟슴니.
人生은 ‘’이외다.
‘’이매 덧업슴니다.
‘덧’업슴애 永生을 바람니다.
‘永生’을 바라오매 宇宙의 큰 품에 안기려 함니다.
저는 지금 부처님의 큰 품에 안기엇슴니다. 그 무릅은 羊의 털가치 無限히 부드럽고 그 손은 어머님 손길가치 듯하고 그 마음은 가을 하늘가치 티 하나 업슴니다.
조고만한 이 몸이 그 무릅에 안즈매 아모것도 무서운 것이 업스며 慾心 나는 것이 업스며 괴로운 것이 업슴니다. 부처님은 저에게 모든 것을 다 주섯슴니다. 平和와 安息과 勇氣를!
저는 이제 완전히 救濟되엇슴니다. 大慈悲의 듯한 日光에 온몸이 完全히 녹어 가옵니다.


☑ 지은이 소개


김일엽(金一葉, 1896∼1971)

김일엽(金一葉, 1896∼1971)은 시인, 소설가, 수필가 등 어느 호칭으로 불려도 좋을 만큼 전방위 글쓰기를 보여 준 사람이다. 또한 여성운동가, 계몽운동가, 종교인의 면모도 간과할 수 없다. 널리 불렸던 일엽(一葉)은, 춘원 이광수가 일본의 유명 여성 문인의 이름에서 따와 지었다고 알려지기도 한 아호인데, 본명은 원주(元周)다. 후일 불가에 귀의하고 얻은 이름은 하엽(荷葉), 도호(道號), 백련도엽(白蓮道葉) 등이나 널리 알려진 것은 아니다.

1896년 6월 9일(음력 4월 28일) 평안남도 용강군 삼화면 덕동리에서 5대 독자이며, 개신교 목사인 용겸(用兼) 씨와 이마대(李馬大) 여사의 5남매 중 장녀로 태어났다. 구세학교와 진남포 삼숭여학교를 다녔는데, 신체시 <동생의 죽음>이 육당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보다 한 해 앞선 1907년에 창작되었다는 견해가 있어, 사람에 따라서는 이를 신체시 또는 신시의 효시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1909년에 어머니를 병으로 여의고, 이화학당을 다니던 1915년경 아버지마저 여의었다. 그사이 동생 넷도 세상을 떠나 가족을 모두 잃게 되었다. 이후 그의 가세를 자세히 알 길은 없으나, 이 무렵 첫 번째 결혼을 하게 되고 1918년에는 이화전문을 졸업하며, 이듬해 3·1 운동 때는 전단을 작성해 돌리는 등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이어 외할머니의 후원으로 일본에 건너가 도쿄 영화(英和)학교에 다녔는데, 1920년에 이 학교를 수료하고 귀국한 후 잡지 ≪신여자≫를 창간해 4호까지 간행했다. 이 무렵 기독교 청년회관에서 ‘여자 교육과 사회 문제’를 주제로 강연을 하고, ≪동아일보≫에 <여자 교육의 필요> 등의 계몽적 주제의 글을 싣는 등 여성 운동에 앞장섰다. 아현보통학교 등에서 교사로 잠시 재직한 적이 있으며, 첫 번째 결혼의 실패에 이은 ‘사랑’의 문제를 둘러싼 방황으로 세인의 주목을 크게 받은 바 있다. 이 무렵 단편소설로, <계시>(1920), <어느 소녀의 사>(1920), <혜원>(1921) 등을, 시로는 계몽적 주제의 창가류에 이어 개인의 애욕과 정서를 표현한 <짝사랑>, <그대여 웃어 주소서> 등을 썼다.

1923년 9월에는 충남 예산 수덕사에서 만공 스님의 법문을 듣고 크게 감명을 받은 바 있었고, 1927년에는 불교 기관지 ≪불교≫에 관여해 1932년까지 문예란을 담당하면서 활발한 집필 활동을 보여 주었다. 1928년 금강산 서봉암에서 입산하고, 이어 서울 선학원에서 만공법사 문하에서 수계를 했으며, 1933년 수덕사 견성암에서 득도한 후 이 암자의 입승(入繩)으로 25년 동안 머물렀다. 입산 후 사회생활을 가능한 한 자제한 채, 수도에 전념하다가 1971년 1월 28일 총림원 별실에서 열반했고, 수덕사가 있는 덕숭산 기슭에서 다비식이 거행되었다. 생전에 ≪어느 수도인의 회상≫(1960), ≪청춘을 불사르고≫(1962), ≪행복과 불행의 갈피에서≫(1964) 등의 산문집을 펴냈으며, 열반 직후 유고집 ≪미래세가 다하고 남도록≫(1974)이 간행되었다.


☑ 옮긴이 소개


이희중

이희중은 경상남도 밀양에서 태어나 서울 동북고와 고려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같은 대학 국어국문학과 대학원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공군사관학교 교수부 국어과 교관, 고려대, 경기대, 경원대, 서울예대, 한국항공대 강사 등을 지내다가, 1997년 이후 현재까지 전주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박목월 시 연구−변용과정을 중심으로>(석사), <김소월 시의 창작방법 연구>(박사), <정지용 초기시의 방법 비판>, <서정주 초기시의 다중진술 연구> 등의 논문을 발표했으며, 발표한 논문들을 모아 손질해 연구서 ≪현대시의 방법 연구≫(월인, 2001)을 펴냈다.

1987년 <광주일보> 창간기념문예 시 부문에 당선했으며, 1989년 월간 <현대시학>에서 운영하던, 이미 등단을 했다고 볼 수 있으나 이런저런 이유로 제대로 활동하지 못하는 시인을 재발굴하는 프로그램, ‘시인을 찾아서’ 난에 10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시인으로 등단했다. 199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에 당선했으며, ≪푸른 비상구≫(1994, 민음사), ≪참 오래 쓴 가위≫(문학동네, 2002) 등의 시집과, ≪기억의 지도≫(하늘연못, 1998), ≪기억의 풍경≫(월인, 2002) 등의 평론집을 낸 바 있다.


☑ 목차


여자 교육(女子敎育)의 필요(必要) ·················3
근래(近來)의 연애 문제(戀愛問題) ·················9
부인 의복(婦人衣服) 개량(改良)에 대하야 한 가지 의견을 리나이다 ·················12
L 양(孃)에게 ·················22
우리의 이상(理想) ·················30
의복(衣服)과 미감(美感) ·················39
아부님 영전(靈前)에 ·················44
나의 정조관(貞操觀) ·················49
불문(佛門) 투족(投足) 2주년에 ·················55
오호(嗚呼), 구십 춘광(春光)! ·················61
묵은해를 보내면서 ·················64
신불(信佛)과 나의 가정(家庭) ·················72
여인과 서울 ·················75
노래가 듣고 싶은 밤 ·················80
1932년을 보내면서 ·················86
학창(學窓)을 나는 여성(女性)에게 다섯 가지 산 교훈을 졔공한다 ·················93
아버지와 고향 ·················97
불도(佛道)를 닥그며 ·················101
해설 ·················109
지은이에 대해 ·················119
엮은이에 대해 ·················122

2012년 1월 5일 목요일

무라사키시키부 일기 紫式部日記



세계 최초의 장편소설 ≪겐지 이야기≫의 작가 무라사키시키부. 그녀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헤이안 시대의 대표적인 재녀로 손꼽히는 그녀의 일기를 국내 최초로 소개한다. ≪겐지 이야기≫의 배경이 된 궁중 문화와 귀족들의 생활 모습을 맛볼 수 있는 것은 물론, 글에 드러난 솔직한 서술을 통해 무라사키시키부라는 독특한 여인을 만날 수 있다. 당대의 라이벌이었던 ≪마쿠라노소시≫의 작가 세이쇼나곤, 와카의 명수 이즈미시키부에 대한 비평도 있다.
정순분 교수의 상세한 주석과 친절한 해제, 전문적인 해설이 독자를 헤이안 시대로 안내한다. 부록으로 실린 논문 두 편은 무라사키시키부를 좀 더 깊이 알고 싶은 독자를 위한 덤이다.

☑ 출판사 책 소개

무라사키시키부가 궁중에 출사해서 2, 3년 지날 무렵에 일어난 일대 경사가 쇼시 중궁의 출산으로, 쇼시 중궁의 부친이자, 당대 최고의 권력자였던 후지와라노 미치나가는 이 중대사의 전말을 무라사키시키부에게 기록하도록 명하고, 그에 그녀는 타고난 관찰력과 치밀함으로 출산 전부터 출산 당일, 그리고 그 후의 축하 연회 등에서 사람들의 배치나 복장, 행동 등을 남김없이 메모해 두고 그것을 토대로 해 2년 후인 1010년 여름부터 가을에 걸쳐 회상록 형태로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본 일기는 쇼시 중궁이 회임해 친정집인 쓰치미카도(土御門) 저택에 퇴궐해 출산을 기다리는 7월 중순부터 시작되고 있다. 미치나가에게는 정권을 확립해 가문에 영화를 가져다 줄 쇼시 중궁의 출산이 그야말로 역사적인 사건에 해당했으며 그 대단한 사건의 전말을 써서 남길 필요가 있었다. 이에 미치나가는 학문적 재능이 있던 무라사키시키부에게 쇼시 중궁의 출산 장면을 기록하도록 명한 것이다.
무라사키시키부는 여기에 현재의 신문 기사와 같이 객관적인 기록의 형태를 취하지는 않았다. 쓰는 주체인 자신을 전면에 내세워, 이를테면 ‘무라사키시키부가 본 쇼시 중궁님 출산 전후’라는 르포, 혹은 수기와도 같은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래서 작품 여기저기에 궁중 생활에 적응을 못하고 괴로워하는 자신의 모습과, 마음을 터놓고 지낸 동료 여방들이 종종 등장한다. 이러한 사항들은 언뜻 보면 쇼시 중궁의 경사스러운 일과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러한 것들 때문에 독자는 무라사키시키부라는 한 개인의 눈과 마음을 통해서 쇼시 후궁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듯한 생생함을 느끼게 된다. 또한 국모인 중궁도 시키부가 그린 모습은 권위적이고 딱딱한 것이 아니었다. 쇼시 중궁이 걸어온 길이 얼마나 험난했나 하는 것은 당시의 귀족들에게도 잘 알려진 사실이었다. 이 일기는 화려한 세계 속에 들어 있는 ‘고통’의 면까지도 빼놓지 않고 있는 그대로 서술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시키부가 아니면 쓸 수 없는 인생의 화려함과 쓸쓸함, 달콤함과 씁쓸함이 공존하는 개성적인 궁중 출사 기록. 거기에는 약간 앞선 시기에 쓰인 세이쇼나곤(淸少納言)의 ≪마쿠라노소시(枕草子)≫를 의식한 흔적이 역력하다. ≪마쿠라노소시≫는 쇼시 중궁과는 라이벌 관계가 되는 데이시 중궁의 후궁 문화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시키부가 쇼시 중궁의 후궁 문화를 기록하는 이상, 경쟁의식을 갖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시키부에게 있어서 세이쇼나곤은 넘어야 할 하나의 큰 산이었음이 분명하다. 본 일기, 혹은 ≪겐지 이야기≫가 ≪마쿠라노소시≫의 세계를 넘어서 어떤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는지 살펴보는 것도 좋은 감상법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 함께 읽으면 좋은 책
헤이안 여류 일기문학의 효시 ≪청령일기≫(미치쓰나 어머니 / 정순분)
헤이안 수필문학의 효시 ≪마쿠라노소시≫(세이쇼나곤 / 정순분)
세계 최초 장편소설 ≪겐지 이야기≫(무라사키시키부 / 김종덕)
≪겐지 이야기≫에 대한 최고의 해설서 ≪겐지 이야기를 읽는 요령≫(모토오리 노리나가 / 정순희)
헤이안 최초의 칙찬 와카집 ≪고금와카집≫(기노 쓰라유키 외 / 최충희)
일본 최초의 시가집 ≪만엽집≫(유라쿠 천황 외 / 고용환, 강용자)


☑ 책 속으로

●황자님 첫 목욕식은 유시부터라고 했다. 등불을 켜고 중궁직 하인이 보통 옷 위에 백견 도포를 입고 목욕물을 날랐다. 목욕통을 앉힌 받침대는 모두 흰 천으로 씌워져 있었다. 오와리노쿠니 지방 수령인 지카미쓰와 중궁직 시장인 나카노부가 목욕통을 메고 발 있는 데까지 날라 오면, 발 안에서 기요이코(淸子) 명부와 하리마(播磨) 여방이 그 통을 받아 물 온도를 가늠하고, 오모쿠(大木工) 여방과 우마(馬) 여방이 그것을 받아 항아리 하나하나에 부었다. 열여섯 개의 항아리를 다 채우자 나머지 물은 욕조에 부었다. 여방들은 얇은 천의 우와기와 당의를 입고 오목 무늬 치마를 둘렀으며, 앞머리에는 사이시를 꽂고 뒷머리는 하나로 해서 흰 천으로 묶었다. 머리가 평상시보다 단정하고 깔끔했다. 황자님께 물 끼얹는 역할은 사이쇼 여방이 하고, 그 보조역은 다이나곤 여방이 맡았는데 두 사람 모두 흰옷 입은 모습이 매우 정갈하게 보였다.
황자님은 대감님께서 안고 오셨는데, 고쇼쇼 여방과 미야노 내시가 각각 신검과 호랑이 두상을 들고 그보다 앞섰다. 내시의 당의는 솔방울 문양이 그려진 것이었고, 치마는 바다 그림 위에 주변 경치를 수놓은 것이었다. 특히 눈에 띈 것이 치마 허릿단으로, 얇은 천에 당초 문양을 수놓아 매우 화려했다. 고쇼쇼 여방도 허릿단에 가을 풀숲, 나비, 새와 같은 문양을 은사로 수놓은 치마를 둘렀는데 옷감은 신분에 따라 정해져 있으므로 허릿단을 색다르게 꾸며서 입은 것이리라.
대감님의 두 도련님과 겐노 소장(源少將)께서 쌀을 뿌리시는데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이 소리가 크게 나게 뿌리셨다. 마침 호신법 때문에 대령해 있던 조도사 스님은, 쌀을 피하려고 얼른 부채를 펴서 머리 위에 썼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우스운지 젊은 여방들은 웃음을 못 참고 내내 키득거렸다.

●천황님 행차 날이 가까워지자 대감님께서는 집안 단장에 한층 더 신경을 쓰셨다. 실로 멋있게 핀 국화를 어디에선가 캐 오시어 집 안을 환하게 장식하셨는데, 형형색색으로 핀 국화 중에서도 탐스러운 노란 국화를 아침 안개 사이로 보고 있자니, 옛말에도 있듯이 몸이 저절로 젊어지는 것 같았다. 아, 내가 이 허무한 세상에서 적당히 사는 사람이었더라면 이런 광경을 보면서 얼마나 행복을 느낄까? 이렇게 멋있고 근사한 것을 앞에 두고도 오히려 출가하고픈 마음만 더 강해지니 이 무슨 조화란 말인가?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한테는 모든 게 우울하고 한탄스럽기만 하다. 그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잘 모르겠다. 가슴속에 응어리진 안 좋은 일은 다 잊어버리자고 굳은 결심을 해도 아무 소용이 없고, 이런 식으로 살면 오히려 죄만 더 깊어진다며 하루라도 빨리 마음을 고쳐먹으려고 해도 날만 새면 또다시 멍하니 상심에 빠지게 된다. 연못의 물새들도 언뜻 보면 아무런 근심 없이 유유히 노닐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과연 그럴까?

저기 물새를 물 위에 뜬 허망한 거라 보겠나 이 몸 또한 뜬세상 허무하게 사는데

저 물새들도 남 보기에는 즐거운 듯해도 그 몸이 되어 보면 나처럼 힘든 점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대감님께서 ≪겐지 이야기≫가 중궁님 어전에 있는 것을 보시더니, 농담 식으로 매실 아래 깔린 종이에 다음과 같이 쓰셨다.

바람둥이라 소문 다 나 있으니 본 사람마다 모두 꺾었을 거라 이 몸은 생각하네

그래서,

“남에게 아직 꺾인 일 없는 사람 그 어느 누가 바람둥이라는 말 함부로 하는 건가

이상도 해라” 하고 여쭈었다.

●2일, 중궁님 대향은 중지되고 임시 손님맞이만 동쪽 마루방을 꽉 채운 채 진행되었다. 열석한 공경님들은 부대납언, 우대장, 중궁 대부, 4조 대납언, 권중납언, 시종 중납언, 좌위문독, 아리쿠니 재상, 대장경, 좌병위독, 겐 재상 등으로, 서로 마주 앉아 계시는 식이셨다. 겐 중납언, 우위문독, 좌우 재상 중장은 중방 아래쪽의 당상관 자리 상석에 앉아 계셨다. 대감님께서 황자님을 안고 납시어 인사를 올리도록 하셨는데, 그때 안방마님께 “작은 황자님을 안아 드리게” 하시자, 큰 황자님께서 “싫어” 하며 투정을 부리셨다. 대감님께서 얼른 큰 황자님을 달래셨는데 그 모습을 우대장께서는 흥미롭다는 듯이 보고 계셨다.
공경들께서 세이료덴에 대령하고 주상 전하께서 대전에 납시자 아악 연주가 시작되었다. 대감님께서는 언제나 그렇듯이 술에 취해 계셨다. 나는 시끄러운 것이 싫어 나가지 않고 숨어 있었는데 결국 대감님께 들켜 버렸다. “자네 아버지는 아악 연주에 불렀는데도 대령하지 않고 바로 퇴청해 버렸다네” 하며 기분이 상한 듯 말씀하셨다. “내 화가 풀리도록 노래 하나 읊어 보게나. 아버지 대신 벌을 받는 거니까 그렇게 알게. 더구나 오늘이 초자일이니 노래를 읊지 않고 지나갈 수는 없지” 하고 재촉하셨다. 하지만 바로 읊어 올린다 해도 제대로 된 것은 아닐 것이다. 대감님 얼굴은 취기가 올라 불그스름한데 그 모습이 불빛에 비치니 빛이 나고 보기에도 좋았다. “이 수년 동안 중궁께서 아이 하나 없이 쓸쓸히 계셨는데 이렇게 양쪽에 황자님이 계신 모습을 보니 그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소”라고 하시며 침상 휘장을 제치고 황자님의 잠든 얼굴을 들여다보곤 하셨다. 그리고 “들판에 어린 솔이 없었더라면” 하고 읊조리셨다. 이런 때는 새로운 노래를 읊는 것보다 옛 노래 중에 걸맞은 것을 읊조리는 것이 더 풍취가 있다.


☑ 지은이 소개

무라사키시키부(紫式部, 10세기∼11세기, 생몰년 미상)
지은이 무라사키시키부(紫式部, 10세기∼11세기, 생몰년 미상)는 헤이안 시대인 중기의 여성 작가이자 가인(歌人)이다. 세계적인 고전 ≪겐지 이야기(源氏物語)≫의 지은이이기도 한 그녀는 1920년대 영국의 아서 웨일리가 ≪겐지 이야기≫를 번역, 소개하면서 전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는데, 사실 무라사키시키부(이하 시키부)라는 호칭은 본명이 아니라 궁정에 출사했을 때의 여방(女房)명이다. 당시의 여성은 황족이 아니면 이름(본명)이 없었으며, 귀족 여성의 경우에는 주로 아버지 이름을 따서 아무개 딸로 불렸다. 단지 궁중에 여방으로 출사한 사람은 여러 사람 중에 특정해서 칭할 이름이 필요했으므로 여방명이 있었다.
시키부는 출사 초기에는 아버지 후지와라노 다메토키의 성(姓)과 관직을 따서 도시키부(藤式部)라고 불렸는데, ≪겐지 이야기≫가 널리 읽히면서 ≪겐지 이야기≫의 여자 주인공 무라사키 부인의 이름을 따서 무라사키시키부로 칭해지게 되었다.
태어난 해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없어서 주변 문헌에 의거해 유추할 수밖에 없는데 973년 설 외에도 970년 설, 978년 설 등이 있다.
시키부는 매우 총명해 한학자인 아버지가 남동생 노부노리에게 가르치고 있던 한문을 옆에서 귀동냥으로 배워 노부노리보다도 빨리 터득했다고 한다. 아버지가 이 아이가 남자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탄식을 했을 정도였다. 궁중에 출사하고 나서는 모시고 있던 쇼시 중궁에게 백낙천(白樂天)의 ≪백씨 문집≫을 진강할 정도로 한시문에 대한 소양이 깊었으며 그러한 학문적 지식과 그에 의해 터득한 인간에 대한 통찰력은 ≪겐지 이야기≫ 창작에 풍부한 밑거름이 되었다.


☑ 옮긴이 소개

정순분
정순분은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어과를 졸업했으며 일본 와세다대학교 대학원 문학연구과(일본 문학 전공)에서 일본의 대표적인 고전문학인 헤이안 문학을 폭넓고 깊이 있게 연구, ≪마쿠라노소시≫에 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귀국 후 한국외국어대학교, 고려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등에서 강사로 활동하다가 현재 배재대학교 일본학과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7년 9월부터 2008년 8월까지 미국 플로리다대학 아시아어문학부 객원교수로 있었다. 저서에 ≪枕草子大事典≫(공저, 2001), ≪枕草子 表現の方法≫(2002), ≪枕草子와 平安文學≫(2003), ≪平安文學の風貌≫(공저, 2003), ≪交錯する古代≫(공저, 2004), ≪日本古代文學と東アジア≫(공저, 2004), ≪일본고전문학비평≫(2006), 옮긴 책에 ≪돈가스의 탄생≫(2006), ≪마쿠라노소시≫(2008) ≪청령일기≫(2009) 등이 있으며 그 외에 헤이안 문학에 관련된 다수의 논문이 있다.


☑ 목차

1. 쓰치미카도 저택의 가을−1008년 7월 19일 ·····3
2. 대대적인 기도회−7월 20일 새벽녘 ········8
3. 아침 이슬 머금은 마타리꽃−그날 아침 ······14
4. 대감님의 장남 요리미치 님의 내방−그날 저녁 ··19
5. 풍아한 연회−7월 하순 ·············23
6. 관료들의 숙직−8월 20일 지나서 ·········26
7. 사이쇼 여방의 낮잠−8월 26일 ··········29
8. 중양절, 국화꽃에 씌웠던 솜−9월 9일 ······33
9. 향 피우기−같은 날 밤 ·············36
10. 기도하는 사람들−9월 10일 ··········40
11. 중궁님 순산 기원−9월 11일 아침 ········47
12. 황자님 탄생 ·················53
13. 크나큰 경사 ·················58
14. 신검, 탯줄, 첫 모유를 먹이는 의식 ·······62
15. 첫 목욕 의식−같은 날 밤 ···········64
16. 여방들의 복장−9월 12일 ···········70
17. 황자님 탄생 사흘째 날의 축하 의식−9월 13일 밤 ·74
18. 황자님 탄생 닷새째 날의 축하 의식−9월 15일 밤 ·78
19. 달밤의 뱃놀이−9월 16일 밤 ··········86
20. 황자님 탄생 이레째 날의 축하 의식, 흰옷을 보통 옷으로 교체−9월 17일 밤, 18일 ·········90
21. 황자님 탄생 아흐레째 날의 축하 의식−9월 19일 밤 ······················93
22. 첫 손자를 귀여워하는 미치나가−10월 10일이 지나서 ······················95
23. 나카쓰카사노미야 집안과의 인연 ········98
24. 물새에 마음을 담아서−10월 13일 ·······99
25. 시구레 내리는 하늘 ·············103
26. 천황님의 쓰치미카도 저택 행차−10월 16일 ···106
27. 아악 연주, 승진−같은 날 밤 ·········114
28. 황자님의 첫 이발과 담당 관리 임명−10월 17일 ·119
29. 중궁 대부와 중궁 권량−같은 날 밤 ······120
30. 오십일 축하 의식−11월 1일 ·········123
31. 8천 년 이어질 태평성대−같은 날 밤 ······130
32. 책 만들기−11월 10일 전후 ··········132
33. 황자님의 성장 ················136
34. 사가에서의 우울한 마음−11월 15일 전후 ····137
35. 중궁님과 황자님의 환어−11월 17일 밤 ·····142
36. 대감님께서 중궁님께 보내신 선물−11월 18일 ··147
37. 고세치 무희들−11월 20일 ··········151
38. 대전(大殿)의 연취(淵醉), 어전 시범−11월 21일·156
39. 동녀 어람 의식−11월 22일 ··········159
40. 사쿄 여방−11월 23일 ············164
41. 고세치도 지나서−11월 26일 ·········170
42. 임시 마쓰리−11월 28일 ···········171
43. 연말에 혼자 읊조리는 노래−12월 29일 밤 ···174
44. 섣달그믐날 밤의 강도 ············177
45. 신년 하례식−1009년 정월 초하루 ·······181
46. 여방들의 용모와 성격 ············184
47. 재원과 중궁전 ················191
48. 이즈미시키부, 아카조메에몬, 세이쇼나곤 비평 ··200
49. 내 인생을 뒤돌아보며 ············206
50. 저마다 다른 여방들의 심성 ··········212
51. ≪일본서기≫ 박사, ≪백씨 문집≫ 진강(進講) ·214
52. 출가에 대한 고민 ··············219
53. 편지를 마무리하며 ··············220
54. 공양당 참배와 뱃놀이 ············223
55. 대감님과의 증답 ···············226
56. 문 두드리는 사람 ··············228
57. 황자님들의 공양 떡 올리기−1010년 정월 ····230
58. 중궁님의 임시 손님맞이, 초자일 놀이 ······232
59. 나카쓰카사 유모 ···············234
60. 둘째 황자님의 오십일 축하 의식−정월 15일 ··235


부록
비평문학의 새로운 장을 열다−젠더적 시점에서 ··241
마타리꽃 연정의 실체−미치나가의 시첩설 ·····289

참고 도해 ···················328
연표 ······················335

해설 ······················339
지은이에 대해 ··················352
옮긴이에 대해 ··················357

2011년 8월 31일 수요일

청령일기 蜻蛉日記


일본 여인, 천 년 전의 하루.

<<청령일기>>는 975년에 쓰여진 일본 여류 일기 문학의 출발작이다. 책 이름은 '하루살이일기'라는 뜻. 그러나 천년을 넘어 세계의 고전이 되었다. 와카를 전령사로 미치쓰나 어머니와 그의 남편은 소식을 전한다. 마음은 애틋하고 오고 가는 시구는 눈 녹은 물처럼 투명하다.










≪청령일기≫는 ‘하루살이일기’라는 뜻으로, 이는 작가 자신의 삶이 마치 있는지 없는지조차 알 수 없는 하루살이의 일생처럼 허무하다는 의미를 나타낸 것이다. 이 일기에는 당대 최고의 권력자였던 후지와라노 가네이에와의 결혼 생활에서 느끼는 애환이 낱낱이 서술되어 있다. 이처럼 공직에 진출하지 않은 일반 귀족 여성의 개인적 삶이 서술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여타의 헤이안 시대 일기 문학과 구분된다.


☑ 책 소개

헤이안 시대 귀족 여성의 삶을 들여다보다 − 국내 초역된 세계 여성문학의 선구작

자신의 심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자조문학의 선구적 작품. 젠더적인 여성성을 구현한 최초의 여류 일기문학. 이와 같은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청령일기≫는 자신의 결혼 생활을 낱낱이 서술하고 객관화해 헤이안 시대의 여류문학 가운데서도 보기 드물게 보통의 귀족 여성의 삶을 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문화사적 가치가 높고, 세계문학사, 특히 여성문학사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져 왔다.

이러한 ≪청령일기≫가 드디어 국내에서 처음으로 번역·출간되었다. 헤이안 문학 전공자의 정밀하고 통찰력 있는 번역을 통해 천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한국어로 다시 태어난 이 책은 원전의 면모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이와 함께 일본 문학 전공자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의 눈높이를 배려한 상세한 각주와 해설 그리고 권말 부록은 작품에 대한 이해를 넘어서 천년 전 일본 헤이안 시대의 생활상과 문화를 이해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작품에서 작자는 일부다처제에서 오는 심적 고통의 나날들을 유려한 글솜씨로 우아하게 그려냈다. 특히 작자의 뛰어난 와카 실력은 당시부터 유명했고,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와카를 통해 그 높은 문학성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일기에 수록된 와카 가운데 가장 유명하고, 작자의 심정과 일생을 잘 드러낸 이 한 수의 작품, “한숨 속에서 홀로 지새는 밤이 밝기까지는 얼마나 길고 긴지 그대는 아는지요”는 후대의 ≪햐쿠닌잇슈(百人一首)≫에도 수록되어 있다.


☑ 책 속으로

반생의 세월을 허무하게 보내고 의지할 데라곤 하나 없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지내는 여자가 있었다. 남들보다 외모가 뒤떨어지고 사리 분별력 또한 없어서 그저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에, 세상에 퍼져 있는 옛 모노가타리(物語)를 들여다보니 온통 진부한 이야기들뿐인데도 사람들한테 인기가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보잘것없는 사람의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일기로 써보면 조금 더 신기하고 재미있게 여기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더할 나위 없이 높은 신분의 사람과 결혼하면 그 생활이 어떨지 미리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아서 그 사람한테도 하나의 본이 되고 싶었다.


☑ 지은이 소개


미치쓰나(道綱) 어머니
작자 미치쓰나 어머니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당시의 여성들은 대부분 한 남자의 아내로서 또는 아이의 어머니로서 살아갔고, 주변 남성과의 관계에 의해서 호칭이 붙여졌다. 따라서 작자는 미치쓰나 어머니로 칭해지고 있다.
작자는 936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헤이안 3대 미인으로 꼽힐 정도로 교양 있고 용모 단정했으며, 와카에는 특히 재능이 뛰어났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954년, 19세의 나이로 후지와라노 가네이에(藤原兼家)로부터 구혼을 받고 결혼해 이듬해 8월 하순 미치쓰나를 출산했다. 21년간의 결혼 생활을 낱낱이 서술한 ≪청령일기≫를 통해 보통의 귀족 여성의 삶을 재현했다.


☑ 옮긴이 소개


정순분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어과를 졸업하고 일본 와세다대학교 대학원 문학연구과(일본문학 전공)에서 헤이안 문학을 폭넓고 깊이 있게 연구, ≪마쿠라노소시≫에 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배재대학교 일본학과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7년 9월부터 2008년 8월까지 미국 플로리다대학 아시아어문학부 객원교수로 있었다. 저서에 ≪枕草子大事典≫(공저, 2001), ≪枕草子 表現の方法≫(2002), ≪枕草子와 平安文學≫(2003), ≪平安文學の風貌≫(공저, 2003), ≪交錯する古代≫(공저, 2004), ≪日本古代文學と東アジア≫(공저, 2004), ≪일본고전문학비평≫(2006), 옮긴 책에 ≪마쿠라노소시≫(2004), ≪돈가스의 탄생≫(2006), ≪마쿠라노소시≫(2008, 지식을만드는지식 고전선집 29) 등이 있으며 그 외에 헤이안 문학에 관련된 다수의 논문이 있다.

2011년 5월 18일 수요일

최부 표해록

1873년 이후 12번째 등장,
≪표해록≫

소설가 이병주가 ≪동방견문록≫과 ≪하멜 표류기≫와 함께 3대 여행기로 꼽고 중국의 거전자(葛振家) 교수가 세계 3대 중국 여행기로평가한 ≪최부 표해록≫의 12번째 번역판이 출간되었다.
기존의 모든 판본을 참고하여 여정은 더 크고 넓어졌다.










소설가 고 이병주 선생이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하멜의 ≪하멜 표류기≫와 더불어 3대 여행기로 꼽은 책이다. 중국의 강남 지역부터 북경 일대까지 중국의 문화와 풍속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어 당시 중국의 역사·문화적 환경을 생생히 볼 수 있다. 또한 최부의 유학자적인 정신 자세와 곧은 정신도 엿볼 수 있다.

세계적인 여행기
이 책은 조선시대에도 고전으로 취급되어, 여섯 차례나 간행된 바 있다. 조선 말엽의‘언해본’을 비롯해 현대어 번역까지 우리말 번역도 10종이 넘는다. 이것은 수십 종의 번역이 나와 있고 앞으로도 계속 번역되어 나올‘사서삼경’과도 비견될 수 있을 듯하다. 이 책에 대한 관심은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일본에서 일찍이 제목을 달리하여 ≪통속 표해록≫으로 간행되었을 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구두점을 찍고 주석을 붙인 판본이 간행되었으며, 미국에서도 출판되어 있다. 이런 세계적 관심만으로도 독자들은 이 책의 진가를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
이 책을 정독하면서 배울 수 있는 점을 크게 네 가지 정도로 생각할 수 있다. 첫째, 사람이 가장 어려운 환경에 처했을 때 어떻게 반응하며, 어떤 태도를 갖는지에 대한 사실적 기록이라는 점에서 인간의 속성을 배울 수 있다. 둘째, 선비로서의 마음가짐을 배울 수 있다. 스스로 옳다고 믿는 바를 몸소 행동으로 실천하는 일은 숙연히 우리를 스스로 되돌아보게 만든다. 셋째, 최부가 서른다섯 살의 젊은 나이였지만, 방대한 학문 소양과 식견을 갖추었다는 점에서 반성되는 바 크다. 넷째, 일기체 형식의 견문 여행 기록에 대한 체제를 알 수 있다. 여기 기록된 개별 사건들과 그 서술 방식은, 또한 당시 사람들이 외부 세계에 대해 무엇을 궁금하게 여겼는지를 우리들에게 알려준다. 비록 일개 선비에 지나지 않았지만, 수차 제도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배우려는 그의 실용 정신에 대해서는 누구나 감복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 책 속으로

“비록 그 내용이 세 권에 지나지 않지만, 큰 바다의 변화를 그려내고 중국 절강성 구동으로부터 연경까지 이르는 길에서 보았던 산천·토산·인물·풍속들이 찬란하게 나열되어 있다. 선생의 세상을 다스리는 재주 또한 가히 열에서 하나 정도는 얻을 수 있다. 그러니 많이 얻어듣고 널리 보고자 하는 선비들로서 이 책을 구해 읽으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 지은이 소개

최부(崔溥, 1454∼1504)
1454년에 태어나서 갑자사화에 휘말려 1504년에 죽임을 당했다. 본관은 강진이고, 자는 연연이며, 호는 금남이다. 아버지는 진사 최택이다. 1487년에 제주 등 3읍의 추쇄 경차관에 임명되어 제주로 건너갔다. 이듬해 정월에 거기에서 부친상 기별을 받고 고향으로 급히 가는 도중에, 풍랑을 만나 중국에 표류했다가 6월에 우리나라로 돌아왔다. 그가 귀국하자 성종은 8천 리 길을 거쳐 지나온 중국 땅에서의 견문을 적어 바치도록 했다. 이에 따라 남대문 밖에서 8일간 머무르면서 견문을 기술해 ≪표해록≫ 3권을 완성했다. 1497년 연산군의 잘못을 극간하고 책임을 망각한 공경 대신들을 통렬히 비판했기 때문에, 1498년 7월 무오사화 때 화를 입어 함경도 단천으로 유배되었다. 여기서 6년 유배 생활을 하다가, 1504년 10월 갑자사화 때 참형을 당했다. 선생은 의연하여 형을 받을 때에도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았다고 전한다. 향년 51세였다. 1506년 중종반정이 성공하자, 임금은 통정대부 승정원 도승지 벼슬을 추증해 주었다.


☑ 옮긴이 소개

김지홍
제주대학교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1988년 이래 경상대학교 국어교육과에 있다. 번역서로 ≪옥스포드 언어교육 지침서≫ 듣기·말하기·쓰기·읽기·어휘·문법·담화·평가(전8권, 범문사, 2003), 학술진흥재단의 명저 번역으로 출간한 르펠트의 ≪말하기: 그 의도에서 조음까지≫ 1·2(나남, 2008)가 있다. 또한 월리스의 ≪언어교육 현장 조사연구≫(나라말, 2009), 클락의 ≪언어사용 밑바닥에 깔린 원리≫(도서출판 경진, 2009), 그리고 유희의 ≪언문지≫(지식을만드는지식, 2008)와 최부의 ≪표해록≫(지식을만드는지식, 2009) 등이 있다.


☑ 차례

해설
지은이에 대해

≪탐진 최씨 금남선생 표해록≫유희춘 서문
≪금남집≫유희춘 서문

1487년 가을 9월 17일, 경차관에 임명되고 11월 12일, 제주에 도착하다
1488년 정월 30일, 아버지가 돌아가신 소식을 듣다
윤정월 1일, 개인 소유의 튼튼한 배를 빌려 오다
윤정월 2일, 관련 문서 이첩을 끝내고 떠날 준비를 갖추다
윤정월 3일, 배를 띄웠으나 바람이 순조롭지 못하다
윤정월 4일, 표류하여 큰 바다 가운데로 들어가다
윤정월 5일, 사방으로 안개가 자욱이 끼어 지척을 분간할 수 없다
윤정월 6일, 뱃사람들이 미신 때문에 짐 꾸러미 물건들을 용신에게 바치다
윤정월 7일, 큰 파도가 배 안으로 밀려들어 절반이 잠기다
윤정월 8일, 어디로 표류해 가는지 막연히 짐작해 보다
윤정월 9일, 멀리 희미하게 산 모습이 나타나다
윤정월 10일, 표류하면서 목숨을 이어갈 방책을 세우다
윤정월 11일, 급박히 암벽에 부딪칠 뻔하다가 큰 바다로 되돌아 나와 표류하다
윤정월 12일, 영파부 경계에서 해적을 만나다
윤정월 13일, 항해 도구도 없이 다시 바다 한가운데를 떠다니다
윤정월 14일, 여전히 바다 한가운데를 하염없이 떠다니다
윤정월 15일, 정처 없이 계속 바다 한가운데를 떠다니다
윤정월 16일, 임해현 우두 바깥 바다에 이르러 정박하다
윤정월 17일, 결단을 내려 드디어 배를 버려두고 뭍으로 오르다
윤정월 18일, 천호 허청을 길에서 만나다
윤정월 19일, 도저소에 도착하다
윤정월 20일, 도저소에 머물다
윤정월 21일, 도저소에 머물면서 파총관의 요구에 따라 공초를 쓰다
윤정월 22일, 도저소에 머물면서 공초를 몇 줄 고쳐 쓰다
윤정월 23일, 드디어 도저소로부터 절강성 성도인 항주를 향해 길을 나서다
윤정월 24일, 건도소에 이르다
윤정월 25일, 월계 순검사에 도착하다
윤정월 26일, 영해현을 지나다
윤정월 27일, 서점역에 머물다
윤정월 28일, 연산역에 도착하다
윤정월 29일, 영파부를 지나다
2월 1일, 자계현을 지나다
2월 2일, 여요현을 지나다
2월 3일, 상우현을 지나다
2월 4일, 소흥부에 이르다
2월 5일, 서흥역에 이르다
2월 6일, 항주에 이르다
2월 7일, 무림역에 머무는데 학교 제조가 찾아와 여러 가지를 묻다
2월 8일, 무림역에서 우리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
2월 9일, 무림역에 머물면서 비로소 양달에서 목욕을 하다
2월 10일, 무림역에 머물면서 북경까지 갈 길을 듣다
2월 11일, 무림역에 머물면서 북경으로 올린 공문을 보다
2월12일, 잘 돌봐준 무림역 관리 고벽에게 선물로 입은 옷을 벗어주다
2월 13일, 절강성 항주로부터 길을 나서다
2월 14일, 가흥부 숭덕현을 지나다
2월 15일, 가흥부 부성을 지나다
2월 16일, 소주부 오강현을 지나 소주부 부성에 이르다
2월 17일, 소주부 고소역 앞에 머물며 잠을 자다
2월 18일, 상주부 석산역에 이르다
2월 19일, 상주부 부성에 이르다
2월 20일, 진강부 여성역을 지나 진강부 부성에 이르다
2월 21일, 양자강에 이르다
2월 22일, 양주부 광릉역에 이르다
2월 23일, 양주부 부성을 지나다
2월 24일, 양주부 우성역에 이르다
2월 25일, 양주부 고우주를 지나다
2월 26일, 회안부 회음역에 이르다
2월 27일, 회안부 부성을 지나다
2월 28일, 회안부 삼차천포를 지나다
2월 29일, 회안부 고성역에 이르다
2월 30일, 회안부 숙천현을 지나다
3월 1일, 회안부 비주를 지나다
3월 2일, 서주부 방촌역을 지나다
3월 3일, 서주부 부성을 지나다
3월 4일, 서주부 탑응 부창을 지나다
3월 5일, 서주부 유성진을 지나다
3월 6일, 서주부 패현을 지나다
3월 7일, 곤주부 사하역을 지나다
3월 8일, 곤주부 노교역을 지나다
3월 9일, 곤주부 제령주에 이르다
3월 10일, 곤주부 개하역에 이르다
3월 11일, 곤주부 안산역에 이르다
3월 12일, 동창부 부성에 이르다
3월 13일, 동창부 청양역을 지나다
3월 14일, 동창부 청원역 앞에 이르다
3월 15일, 동창부 하진창 앞에 이르다
3월 16일, 동창부 무성현을 지나다
3월 17일, 동창부 고성현 앞에 머물다
3월 18일, 제남부 덕주를 지나다
3월 19일, 하간부 양점역을 지나다
3월 20일, 하간부 동광현을 지나다
3월 21일, 하간부 창주를 지나다
3월 22일, 하간부 흥제현을 지나다
3월 23일, 하간부 정해현을 지나다
3월 24일, 천진부 천진위를 지나다
3월 25일, 천진부 하서역에 이르다
3월 26일, 천진부 소가림리에 이르다
3월 27일, 천진부 장가만에 이르다

드디어 북경에 도착하다

3월 28일, 드디어 북경에 도착하여 회동관(옥하관)에 머물다
3월29일, 병부로가다
4월1일, 옥하관에 머무는데, 홍려시 통역관 이상이 정황을 알려주다
4월2일, 옥하관에 머무는데 북경에 먼저 온 송문위 천호 부영을 만나다
4월 3일, 옥하관에 머무는데 홍려시 통역관 이상이 다시 오다
4월 4일, 옥하관에 머무는데, 하왕이 집에 초대해 주다
4월 5일, 옥하관에 머무는데, 예부에 공문이 도착했음을 듣다
4월 6일, 옥하관에 머무는데, 유구국 사신을 따라온 사람들의 접대를 받다
4월 7일, 옥하관에 머물면서 병부에서 예부로 보낸 공문을 보다
4월 8일, 옥하관에 머무는데, 국자감 생원들이 찾아와 만나다
4월 9일, 옥하관에 머물면서 북경 사람 장원 등과 이야기를 나누다
4월 10일, 옥하관에 머물면서 귀국 허락 소식을 듣다
4월11일, 옥하관에 머무는데, 중국에 귀화한 고려 사람이 찾아와 만나다
4월 12일, 옥하관에 머무는데, 우리말을 잘 하는 이해라는 사람이 찾아와 만나다
4월13일, 옥하관에 머무는데, 북경 사람 장기가 초와 장을 갖다주다
4월 14일, 옥하관에 머무는데 손금이 먹을 것들을 갖다주다
4월 15일, 옥하관에 머무는데, 예부 관리가 우리 일행의 명단을 적어가다
4월 16일, 옥하관에 머무는데, 교위 손웅이 귀국을 재촉해 주마고 약속하다
4월 17일, 옥하관에 머무는데, 귀국하는 유구국 사람들을 전별하다
4월18일, 예부로가다
4월 19일, 예부에서 내려주는 상을 받다
4월 20일, 대궐 안에서 은혜에 감사하는 절을 하다
4월 21일, 옥하관에 머물면서 귀국 허가 공문을 보다
4월 22일, 2주 전에서부터 아픈 조짐이 있었는데 결국 병이 나다
4월 23일, 옥하관에 머물면서 탕약을 얻어먹다

북경으로부터 귀국길에 오르다

4월 24일, 회동관(옥하관)으로부터 귀국길에 오르다
4월 25일, 하북성 백하를 지나다
4월 26일, 하북성 공락역에 이르다
4월 27일, 천진부 어양역에 이르러 우연히 사은사를 만나다
4월 28일, 하북성 양번역에 이르다
4월 29일, 하북성 옥전현을 지나며 길에서 중국 사신을 만나다
4월 30일, 하북성 풍윤현을 지나다
5월 1일, 하북성 신점 체운소에 이르다
5월 2일, 하북성 영평부 성의 남쪽에 이르다
5월 3일, 하북성 난하역에 머물다
5월 4일, 하북성 무령위에 도착하다
5월 5일, 하북성 유관역을 지나다
5월 6일, 하북성 천안역에 이르다
5월 7일, 하북성 산해관을 지나다
5월 8일, 요령성 전둔위를 지나다
5월 9일, 요령성 동관역에 이르다
5월 10일, 요령성 조장역 성에 이르다
5월 11일, 요령성 영원위를 지나다
5월 12일, 요령성 행산역에 이르다
5월 13일, 요령성 능하역에 이르다
5월 14일, 요령성 십삼산역에 이르다
5월 15일, 요령성 여양역에 이르다
5월 16일, 요령성 광녕역에서 황제 생일을 축하하러 가는 우리나라 사신을 뵙다
5월 17일, 요령성 광녕역에 머무는데, 관리들이 음식을 대접하며 위로해 주다
5월 18일, 지금까지 호송해 준 백호 장술조를 요령성 광녕역에서 작별하다
5월 19일, 요령성 광녕역에서 의복을 지급받고 우리 임금께 아뢰도록 요청받다
5월 20일, 요령성 반산역에 이르다
5월 21일, 요령성 고평역에 이르다
5월 22일, 요령성 재성역에 이르다
5월 23일, 요령성 안산역에 도착하다
5월 24일, 요양 재성역에 머무는데, 중국 귀화승 계면이 찾아오다
5월 25일, 요양 재성역에 머물면서 대접을 받다
5월 26일, 요양 재성역에 머무는데, 중국인 통역관이 찾아오다
5월 27일, 요양 재성역에 머무는데, 통역관이 찾아와서 싣고 갈 짐의 규모를 묻다
5월 28일, 요양 재성역에 머무는데 큰비가 내리다
5월 29일, 요동으로부터 귀국길에 오르다
6월 1일, 연산관에 이르다
6월 2일, 이승둔에 이르다
6월 3일, 팔도하를 건너다

마침내 우리나라로 돌아오다

6월 4일, 마침내 우리나라 압록강을 건너다
표류 및 귀국길에 대한 총정리

≪최부 표해록≫유희춘 발문
≪최부 표해록≫정중원 발문
≪금남집≫나두동 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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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에 대해

2011년 3월 29일 화요일

춘풍천리

1930년대 조선 최고의 문장들

<<춘풍천리>>는 1938년에 당대 최고의 수필을 모아 국내 최초의 수필 선집 형태로 간행한 <<현대 조선 문학 전집-수필 기행집>>에 수록된 41편의 글 중 27편을 이민희가 번역, 주해한 책이다. 식민지근대의 감수성이 최고조를 달리던 당시의 맨털리티가 80여년의 세월을 돌아 이 봄에 우리를 찾아온다.











☑ 책 소개

이 책은 1938년에 당대 최고의 수필을 모아 국내 최초로 수필 선집 형태로 간행한 ≪현대 조선 문학 전집−수필 기행집≫(조선일보사 출판부)에 수록된 글 중 27편을 엄선해 번역, 주해한 것이다. 1930년대 후반 출간 당시 울림이 컸던 작품 중 여전히 현대 독자들의 취향에 부합하고 공감과 관심을 끌 만하다고 판단되고, 아직 널리 소개되지 않은 작품을 위주로 선정했다. 원본에는 총 열여섯 명의 작가에 총 41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는데, 여기서는 열네 명의 작가가 쓴 총 27편의 작품을 선별, 수록했다[제외된 작가는 김동인(金東仁)과 노자영(盧子泳)이다. 김동인의 경우, 소설 <광화사(狂畵師)>가 실려 있어 수필 선집이란 성격에 부합하지 않는 관계로 배제했다. 노자영의 경우, 총 세 편의 수필이 실려 있는데, <반월성 순례기(半月城巡禮記)>처럼 주로 기행 수필이면서 문학적 감동과 여운 전달보다 기행지에 대한 단순한 사실 소개에 그치고 있는 것들이라 수록하지 않았다]. 물론 1985년에 국학자료원에서 ≪현대 조선 문학 전집≫(전 7책)을 영인·간행하면서 이 책에서 소개하는 글들도 모두 영인본 형태로 묶여 나왔다. 또한 일부 글들은 수필집 형태의 단행본에 일부 포함되어 소개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책의 차별성이라면, 첫째, 원문 표기를 최대한 살리고 원문이 주는 글의 묘미를 해치지 않으면서 가능한 한 현대어로 쉽고 친근하고 이해하기 쉽게 다시 쓰기를 시도했다는 점, 둘째, 난해하거나 생경한 어휘와 표현에 대한 주석을 성실히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특히 후자의 경우, 그동안 여러 편의 수필들이 원문 표기 그대로 소개된 바 있지만 독자들이 구체적으로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없었다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데 초점을 맞춘 결과다. 사실 1920∼1930년대에 쓰인 작품이라지만, 이미 80∼90년이란 시간적 상거(相距)가 있을 뿐더러 오늘날 거의 사용하지 않는 어휘와 고사(故事), 그리고 어색한 표현들이 적지 않아 오늘날 독자들이 쉽게 독서하기 어렵다는 점이 크나큰 아쉬움이었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비록 고전 텍스트는 아니지만, 시대적 차이에 따른 미적, 문학적, 수사적 풍미(風味)를 가급적 살리면서 가독성을 높이는 데 신경을 썼다. 고전문학을 전공한 역주자가 1920∼1930년대 수필을 소개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책 속으로

다시 경부선 열차를 탔다. 시시각각으로 접근하는 남쪽 지방의 봄 빛깔은 앉아서 산수의 묘경에 노닐게 하는 듯 하다. 청일전쟁의 명소로서 우리들 기억에 남아 있는 성환역 부근에서는 벌써 눈록을 바라보는 몇 그루의 수양버들을 보았다. 속요에 나오는 ‘천안 삼거리 능수버들’을 생각하게 한다. 부강에 오니 황량한 촌락에 살구꽃이 만발했고 개나리꽃은 더욱 한창이다.
신탄강 입구에서 두건을 쓴 사공이 좁고 긴 목선에다가 네다섯 명 되는 흰 옷 입은 남녀를 싣고 맑고 푸른 강물을 건너려는 것을 보며 무르녹은 시취에 잠기려 했다. 그러나 그것이 인생행로 중 알 수 없는 피안을 상징하는가? 하고 생각하면 묘연한 감정과 생각이 형언할 길 없다.
- 안재홍의 <춘풍천리> 중에서


☑ 지은이 소개

김자혜(金慈惠)
1910년 1월 3일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났다. 1930년 이화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하고, 그 후 모교에서 재직했다. 1932년부터 2년간 동아일보사에서 근무하고, 그 후 중국 베이징에 거주했다.
작품으로 소설 이외에 수필 수십 편이 있다. 김자혜(金慈惠)
1910년 1월 3일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났다. 1930년 이화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하고, 그 후 모교에서 재직했다. 1932년부터 2년간 동아일보사에서 근무하고, 그 후 중국 베이징에 거주했다.
작품으로 소설 이외에 수필 수십 편이 있다.

김진섭(金晋燮)
수필가·독문학자. 호는 청천(聽川). 1903년 8월 24일 전남 목포에서 태어났다. 서울 양정고보(養正高普)를 거쳐 도쿄 호세이대학(法政大學) 독문과를 졸업했다. 한때 경성제국대학 도서관(현 서울대학교 도서관)에서 근무했으며, 후에 서울대·성균관대 교수를 지냈다. 해외문학연구회와 극예술연구회를 조직해 외국문학 소개에 힘썼으며, 수필을 문학의 수준으로 끌어올린 작가로 평가된다.
작품으로 수필집 ≪인생 예찬≫, ≪생활인의 철학≫ 등이 있다.

나도향(羅稻香)
소설가. 호는 도향(稻香). 본명은 나경손(羅慶孫), 필명은 나빈(羅彬). 1902년 3월 서울 용산에서 태어났다. 배재학당 졸업 후 경성의전(京城醫專)에 입학했다가 중퇴하고 도쿄에 가 고학(苦學)했다. 1921년에 동인지 ≪백조(白潮)≫ 창간 후 소설 창작에 전념했다. 1927년 7월 15일에 폐결핵으로 25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작품으로 장편 ≪환희≫, ≪청춘≫ 및 단편집 ≪진정(眞情)≫, 중편소설 <물레방아>, <벙어리 삼룡이>, <뽕> 등의 명편이 있다.

박태원(朴泰遠)
소설가. 호는 몽보(夢甫), 구보(丘甫). 1909년 12월 7일 서울 청진동에서 태어났다. 경성 제일고보 졸업 후 도쿄 호세이대학에서 수학했다. 이태준, 이상 등과 함께 구인회에서 활동했으며, 한국전쟁 중 월북해 북한에서 창작 활동을 계속했다.
작품으로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천변 풍경≫ 등이 있다.

박화성(朴花城)
소설가. 호는 소영(素影). 1904년 4월 16일 전남 목포에서 태어났다. 정명여학교(貞明女學校) 고등과를 졸업하고, 1918년 서울 숙명여학교(淑明女學校)를 졸업했다. 숙명여학교 졸업 후에는 7년간 교원 생활을 했으며 1930년 니혼여자대학(日本女子大學) 영문과 3년을 수료했다.
작품으로 ≪하수도 공사≫, ≪백화(白花)≫ 등이 있다.

심훈(沈熏)
소설가. 1901년 9월 12일 노량진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대섭(大燮). 경성 제일고보(第一高普)를 졸업하고 북평(北平)·항주(杭州) 등지에서 유학했다. 동아일보·조선일보·중앙일보 기자를 거쳐 1933년 이후 충남 당진에서 창작에 정진하다가 1936년 9월 16일에 경성제국대학병원에서 사망했다.
작품으로 ≪영원의 미소≫, ≪직녀성≫, ≪상록수≫ 등의 장편소설과 시 <그날이 오면> 등이 있다.

안재홍(安在鴻)
독립운동가·정치가. 호는 민세(民世). 1891년 11월 경기도 진위(振威)에서 태어났다. 일본 와세다대학 정치과를 졸업했고, 3·1 운동 이후 대한청년외교단을 조직해 활약했다. 중앙학교 학감(學監)과 기독교청년회 간사를 거쳐 시대일보사 논설위원, 조선일보사 주필(主筆) 및 사장을 역임했다. 광복 후에는 국민당 당수, 한성일보 사장, 제2대 국회의원 등을 지냈다.
작품으로 <백두산 등척기> 외에 다수의 평론, 수필이 있다.

양주동(梁柱東)
시인·국문학자. 호는 무애(无涯). 1903년 6월 24일 개성에서 태어났다. 1928년 일본 와세다대학 영문과를 졸업했고, 1928년부터 1937년까지 평양 숭실전문학교 문과 교수로 재직했다. 1930년 시집 ≪조선의 맥박≫을 간행, 1935년경부터 신라향가(新羅鄕歌) 연구에 진력했다. 1947년 동국대학교 교수로 취임했다.
작품으로 ≪조선 고가(古歌) 연구≫, ≪여요 전주(麗謠箋注)≫, 수필집 ≪지성의 광장≫ 등이 있다.

이광수(李光洙)
소설가. 호는 춘원(春園). 1892년 2월 1일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났다. 14세의 나이로 일본에 유학, 1910년 도쿄 메이지학원 중학부를 졸업했다. 1910년 봄부터 1913년까지 정주 오산학교에서 근무했고, 다시 일본으로 유학해 1918년에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문학부 철학과에서 수학했다. 2·8 독립 선언서 초안을 썼으며, 독립신문사 사장, 동아일보사 편집국장, 조선일보사 부사장, 조선문인협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한국 근대문학의 개척자이자 사상가로서 커다란 족적을 남겼으나 일제 말기에 적극적 친일 행적을 보였다.
작품으로 ≪무정≫, ≪흙≫, ≪유정≫, ≪단종애사≫, ≪마의태자≫ 등이 있다.

이선희(李善熙)
소설가. 1911년 12월 17일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났다. 1928년 원산 누씨(樓氏)여자보통고등학교 졸업 후 이화전문학교 문과에서 수학했다. 1934년 개벽사 기자로 1년간 근무했다. 백신애, 강경애 등과 함께 2세대 여성작가로 평가받는다.
작품으로 장편 ≪여인 명령(女人命令)≫, 단편 <계산서>, <오후 11시>, <도장>, <매소부(賣笑婦)> 등이 있다.

이원조(李源朝)
문학평론가. 호는 여천(黎泉), 필명은 백목아(柏木兒). 1909년 6월 12일 경북 안동에서 태어났다. 시인 이육사(본명 이원록)의 동생이다. 대구 교남학교(嶠南學校) 졸업 후 도쿄 호세이대학 불문학과에서 수학했다. 조선일보사 학예부 기자로 활동을 시작해, 조선문학가동맹 초대 서기장을 지냈다. 해방 후 조선공산당에 입당, 후에 월북했으나 1955년 남로당 숙청 시 처형되었다.
월북 전 왕성한 평론 활동을 전개해 100여 편의 평론과 수필 등을 남겼다.

이은상(李殷相)
시조 시인. 호는 노산(鷺山). 1903년 10월 22일 경남 마산에서 태어났다. 마산 창신학교(昌信學校) 고등과를 졸업하고, 서울 연희전문학교 문과 중퇴 후 도쿄 와세다대학 역사과에서 수학했다. 동아일보 기자를 거쳐 조선일보 출판부에서 근무했으며, 이병기 등과 함께 시조 부흥 운동을 전개했다.
작품으로 ≪노산 시조집≫, ≪조선사화집(朝鮮史話集)≫, 수필 <무상(無常)>, 수필집 ≪노방초(路傍草)≫, 기행집 ≪한라산≫ 등이 있다.

이태준(李泰俊)
소설가. 호는 상허(尙虛). 1904년 11월 7일 강원도 철원에서 태어났다. 휘문고보를 거쳐 일본 조치대학(上智大學)에서 수학했다. 개벽사(開闢社)와 중앙일보 학예부를 거쳐 이화여자전문학교에서 재직했다. 이상, 정지용 등과 함께 구인회 활동을 전개했으며, 한국 단편소설의 완성자라는 평을 받았다. 1930년대 후반에 창간된 문예지 ≪문장≫을 주재했고 해방 후에는 조선문학가동맹에 참여, 이후 월북했다.
작품으로 단편집 ≪달밤≫, ≪가마귀≫와 장편 ≪제2의 운명≫, ≪구원(久遠)의 여상(女像)≫, ≪불멸의 함성≫, ≪성모≫, ≪황진이≫, ≪화관≫ 등이 있다. 그 밖에 수필집 ≪무서록≫과 문장론 저서인 ≪문장강화≫ 등이 유명하다.

정인섭(鄭寅燮)
영문학자·문학평론가. 1905년 3월 31일 울산 언양(彦陽)에서 태어났다. 대구고보(大邱高普) 졸업 후 도쿄로 가 이쿠분칸중학(郁文館中學)에서 수학하고 와세다대학 영문과를 졸업했다. 1929년에 연희전문학교 교수로 취임했다.
저서로 ≪만국 동화집≫(영문), ≪온돌 야화(溫突夜話)≫, ≪세계문학 평론≫, ≪조선 현대 시 영역집≫ 등 다수가 있다.


☑ 엮은이 소개

이민희
이민희(李民熙)는 강화에서 태어났다.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고전문학을 전공,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폴란드 바르샤바대 한국어문학과 교수를 거쳐 현재 강원대 국어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파란·폴란드·뽈스까!−100여 년 전 한국과 폴란드의 만남, 그 의미의 지평을 찾아서≫(소명출판, 2005), ≪16∼19세기 서적 중개상과 소설·서적 유통관계 연구≫(역락, 2007), ≪조선의 베스트셀러≫(프로네시스, 2007), ≪조선을 훔친 위험한 책들≫ (글항아리, 2008), ≪역사영웅서사문학의 세계≫(서울대출판부, 2009), ≪마지막 서적 중개상 송신용 연구≫(보고사, 2009) 등이 있고, 국문 고소설 번역서인 ≪여용국전·어득강전·조충의전≫(지만지, 2010)과 대하 장편소설 번역서인 ≪낙천등운≫(공역, 한국학중앙연구원, 2010) 등이 있다.
지금까지 고소설·고전산문·고전문학교육·비교문학 등에 관심을 갖고 연구해 왔으며, 최근에는 고전문학과 수학·미술·인문지리학·행동심리학 등 인접 학문 간 소통에 골몰하고 있다.
이메일 주소는 wallenrod@kangwon.ac.kr다.


☑ 차례

삶의 정경

우산 | 박태원
첫여름 풍경 | 박태원
병원 | 박태원
적권세심기 | 심훈
낙서 | 이태준
노변잡기 | 양주동
다락루 야화 | 양주동

기억의 표정

회향 |이원조
기설문 | 이은상
낙엽일기 | 이원
그 은행나무 | 박화성
주찬 | 김진섭

시대를 보는 눈

봄은 어느 곳에 |심훈
조선의 영웅 | 심훈
여인의 도성 | 이선희
고달픈 여인들 | 김자혜
그 늙은 인력거꾼 | 김자혜

지나는 길에서

금강산 비로봉 등척기 | 이광수
춘풍천리 | 안재홍
애급의 여행 | 정인섭
산성의 정오 | 박화성

깨닫는 소리

참회 | 이광수
사랑 | 이광수
창 |김진섭
그믐달 | 나도향
낙엽은 패잔병 | 김자혜
무수석불 |이은상


해설
지은이에 대해
역주자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