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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7월 2일 목요일

고석규 평론선집


도서명 : 고석규 평론선집
지은이 : 고석규
엮은이 : 남송우
분야 : 한국문학/평론
출간일 : 2015년 7월 6일
ISBN : 979-11-304-5741-3 03810 / 979-11-304-6267-7(세트)
가격 : 20000원
규격 : 사륙판    제본 : 무선제본    쪽 : 247쪽




☑ 책 소개

1958년 26세에 문단에서 사라졌던 평론가 고석규. 1990년 유고 평론집이 발간되자 평론가들은 그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전쟁의 체험에서 비롯한 실존 사상에 바탕을 둔 개성적인 비평문으로 평론가 고석규는 부활했다.


☑ 출판사 책 소개

‘한국평론선집’은 지식을만드는지식과 한국문학평론가협회가 공동 기획했습니다. 한국문학평론가협회는 한국 근현대 평론을 대표하는 주요 평론가 50명을 엄선하고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를 엮은이와 해설자로 추천했습니다.
작고 작가의 선집은 초판본의 표기를 살렸습니다.

시인이자 비평가 고석규는 1958년 스물여섯 살에 요절함으로써 한국 평단에서는 잊힌 존재가 되었다. 1990년 유고 평론집 ≪여백의 존재성≫(지평, 1990)이 발간되면서 그에 대한 평가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유고집 발간 이후 김윤식 교수를 필두로 고석규 비평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한 인간으로서 고석규는 일찍 사라졌지만, 1950년대 비평사에서 평론가 고석규는 언제나 살아 있는 존재로 부각된다.
고석규의 문학 활동 기간을 시와 산문이 보이는 1952년 이후로 잡는다면, 1958년까지는 육칠 년에 해당되는 짧은 시간이다. 그에 비해 그가 남겨 놓은 글들은 쉽게 건너뛰기 힘든 무게를 지니고 있기에, 1950년대 한국 비평사를 다룰 때는 간과할 수 없는 대상이 되고 있다.
이 책에는 고석규 비평의 토대라고 할 수 있는 <여백의 존재성>, 그의 실존 사상이 구체화한 <지평선의 전달>, 시의 본질에 접근한 <현대시와 비유>, 개성적인 시론을 바탕으로 이육사·윤동주·김소월·이상을 다룬 <윤동주의 정신적 소묘>, <시인의 역설>을 담았다.
‘L에게’라는 편지글 형식을 차용한 <여백의 존재성>은 릴케의 예술론에 다가서려는 힘든 몸짓을 보여 준다. 릴케의 ‘소리 없는 소리’와 발레리의 ‘아름다움의 이데에는 아름다움이 존재치 않는다’는 역설을 여백의 존재성을 통해 풀어내려고 했다. 릴케에게서 상징된 미의 창조로서의 여백은 고석규에게 와서는 실존적 차원의 부재를 통한 존재와 확인 혹은 증명으로 나아온다.
<지평선의 전달>은 소월 시를 논하기 위해 마련한 서론 격에 해당하는 평문이다. 나의 현재의 실존을 과거와 미래를 연결 짓는 중간 선상에 놓음으로써 자신의 지평을 어떻게 열어 갈 것인가를 고민한다. 이는 던져진 수동의 삶에서 던져 가는 능동의 삶으로 바꾸어 가고자 하는 삶의 자세다. 그래야만 실존적 불안을 떨쳐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전쟁을 통해 죽음을 체험한 고석규에게 전쟁은 존재를 무화하는 현실적 상황이다. 이러한 실존적 상황 속에서 자기 존재성을 여백의 존재성으로 확인한 그는 여백과 부재성을 넘어설 사유의 방향성을 실존주의에서 찾는 것이다. 그 방향성의 하나가 실존적 상황을 여백의 존재성이란 역설로 받아들이는 일이며, 다른 하나는 실존의 기투적 성격이다. 이러한 역설성과 기투성이 함께 어우러져 만든 실제 비평이 이육사·윤동주·김소월·이상을 다룬 <시인의 역설>이다.
고석규는 실존주의적 비평만 선보인 것은 아니다. 그는 시의 본질적인 문제에도 집착하면서, 시의 본질이나 원론에도 접근한 모습을 보인다. 그 대표 평문이 <현대시와 비유>다. 이 글은 시에서 비유란 무엇인지를 사전적 의미에서부터 대상을 새로운 상태로 놓기 위한 의미 작용이란 차원까지 정리하고는, 한국 현대시 시인들의 시에 나타난 비유의 양상을 검토하고 있다.


☑ 책 속으로

나는 나의 여백을 한동안 믿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이 절박한 시간을 극복하는 나의 안정이라 할 것 같으면 나는 나의 불투명한 여백과 부재의 사고에서 새로운 투명과 새로운 존재를 다시 발견할 것이 아닙니까.
―<여백의 존재성>

현대란 시의 메타포아 속에 압축되며 존재가 메타몰포오즈하는 전장이며, 다시 정신의 메타피직한 초월의 시대라는 것을 어찌 부인할까.
‘상상’과 ‘의미’와 ‘상상’과 그리고 또 ‘신화’의 곁에서 비유는 실존의 기를 세우는 언어의 재건이 되라. 눈감은 ‘방법의 직인’이여! 다시 ‘비유의 직인’이여! 꽃이며 나무며 인정이며 하는 전율의 살창에서 시방 그대의 소리 없는 울음을 느껴라. 그러나 “그것은 정신일 것이다. 어디서 오는지도 모르는 정신일 것이다. 우리가 타일러도 묵묵하는, 아니 들리는 것이란 벌써 인간의 말소리가 아니다. 그는 우리들의 종이 아니라 주인일 것이다”.
―<현대시와 비유>


☑ 지은이 소개

고석규(高錫圭, 1932~1958)
1932년 9월 7일 함남에서 고원식(高元植)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1956년 3월 부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후,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를 1958년 3월에 수료하고 부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강사가 되었다.
대학 재학 시 손경하, 하연승, 김일곤, 홍기종, 장관진 등과 함께 동인 활동을 활발히 하여 ≪신작품≫, ≪시조≫, ≪시 연구≫, ≪부산 문학≫ 등을 펴냈다. 1957년에는 김재섭과 함께 2인 공저 ≪초극≫을 간행하였고, 그해 ≪문학예술≫에 평론 <시인의 역설>을 6회에 걸쳐 연재하였다.
1958년 4월 19일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26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했다. 그가 남긴 유고 <시적 상상력>은 ≪현대문학≫에 연재되었고, 유고 평론집 ≪여백의 존재성≫이 1990년에 선을 보였으며, ≪고석규 유고 전집≫(5권)이 1993년과 2012년에 각각 발간되었다.


☑ 엮은이 소개

남송우
198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평론으로 평단에 나왔으며, 평론집 ≪비평의 자리 만들기≫, ≪지금 이곳의 비평≫ 등이 있으며, 현재는 부경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있다.


☑ 목차

여백의 존재성
지평선의 전달
현대시와 비유
윤동주의 정신적 소묘
시인의 역설

해설
고석규는
엮은이 남송우는


2015년 7월 1일 수요일

조연현 평론선집


도서명 : 조연현 평론선집
지은이 : 조연현
엮은이 : 서경석
분야 : 한국문학/평론
출간일 : 2015년 7월 6일
ISBN : 979-11-304-5780-2 03810 / 979-11-304-6267-7(세트)
가격 : 18000원
규격 : 사륙판    제본 : 무선제본    쪽 : 194쪽




☑ 책 소개

‘면도칼’에 비유되었던 석재 조연현의 비평. 지금까지 그에 대한 연구는 남한 문단의 주류로서 그가 학계와 문단에서 행사한 영향력을 밝히는 데 집중되었다. 그러나 그는 수완가이면서 일류 비평가였다. 이 책에는 그의 비평 세계의 발원이 되는 초기 비평문(1947∼1950년)을 선별해 실었다.


☑ 출판사 책 소개

‘한국평론선집’은 지식을만드는지식과 한국문학평론가협회가 공동 기획했습니다. 한국문학평론가협회는 한국 근현대 평론을 대표하는 주요 평론가 50명을 엄선하고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를 엮은이와 해설자로 추천했습니다.
작고 작가의 선집은 초판본의 표기를 살렸습니다.

조연현은 순수문학을 옹호하는 ‘청년문학가협회’의 일원으로서 6·25전쟁 이후 김동리·서정주·조지훈 등과 더불어 남한 문단의 주류를 형성했으며, 국어국문학의 학제 속에 현대문학을 하나의 분과 학문으로 정립하는 데 일익을 담당했고, 유수 문예지를 주관하며 수많은 문인을 배출해 내어 문단의 흐름을 좌우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수완가임과 동시에 일류 비평가였다. 당대 ‘면도칼’에 비유되었던 그의 비평은 좌파 계열 문학가들이 주축이 된 ‘조선문학가동맹’과 벌인 공방에서 순수문학파의 논리적 방어선을 구축하는 데 큰 역할을 해냈다. 또한 우리 문학사에서 비평이라는 문학 형식의 본질에 대한 물음을 제기한 최초의 비평가이기도 했다.
흥미롭게도 조연현은 1938년 ≪조광≫의 독자 투고란에 시 <하나의 향락>을 게재하며 문학가의 삶을 시작한다. 그러나 그는 후일 ‘시국의 급박함’ 때문에 비평가가 되었다고 밝혔는데, 이는 해방 공간에서 좌파 계열의 문학자들이 한국 문단의 선편을 쥐는 형국을 좌시할 수 없었다는 뜻이다. 그들과의 논리 공방을 수행하려면 ‘시’라는 예술의 한 형태보다 직접적 언어로 수행되는 ‘비평’이 더욱 효과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양한 지면에서 스스로 포기했던 ‘시’에 대한 미련을 드러내며, 밖으로는 ‘문맹’과의 논전을 통해 이러한 부채 의식을 일종의 소명 의식으로 전환하며 대립각을 세웠고 안으로는 자신이 몸담았던 ‘청문협’의 수장 김동리와의 대결 의식으로 전환하며 돌파구를 마련한다. ‘문맹’원 대다수가 월북하고 김동리마저 극복해 버린 1949년에 이르러서는 시나 소설에 비해 이차적으로 인식되는 비평이라는 형식의 열등성을 극복하기 위해 비평가로서 자신의 삶의 윤리를 발견하려 한다.


☑ 책 속으로

文學이 ‘究竟的인 生의 形式’을 志向하는 것은 事實이나 그것이 完成되는 瞬間 文學은 宗敎나 혹은 그 外의 哲學과 같은 다른 領域으로 戶籍을 옴기고 만다는 것이다. 文學의 領域은 어디까지나 ‘究竟的인 生의 形式’을 志向하는 過程에서만 成立되여질 수 있는 性質의 것이지 그것이 完成되면 文學과는 別個의 領域이 展開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文學과 思想>

詩나 小說이 現實을 直接的으로 取扱함으로서 作品을 通하야 作者의 世界를 表現하는 것처럼 批評은 對象의 價値를 評定하는 形式을 通하야 自己의 世界를 表現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批評의 最初의 要求는 價値判斷에 있으나 批評의 究竟의 目的은 그러한 價値判斷을 通하야 自己의 世界를 完成해 가는 詩나 小說과 마찬가지의 價値 創造의 事業이라는 것이다.
―<批評의 論理와 生理>


☑ 지은이 소개

조연현
석재 조연현은 1920년 9월 8일 경남 함안군 함안면 봉성동에서 출생했다. 1남 2녀 중 장남이다. 본관은 함안으로 집안의 세거지이기도 했다. 1933년 함안 공업보통학교를 졸업한 그는 바로 보성중학에 입학했으나 그해 10월 학업을 중단하고 다시 고등예비학교로 진학한다. 그러고는 이듬해 중동중학에 2학년으로 입교하여 교원 시인 김광섭과 만나 문학에 대한 열의를 키워 나갔던 것으로 보인다. 1935년 조연현은 중동중학을 그만두고 배재중학에 3학년으로 다시 편입한다. 이때부터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하는데 그해 10월에 <과제>라는 시를 ≪시건설≫에 게재했고, 1937년엔 정태용 등과 동인지 ≪芽≫를 발간하여 두 편의 시를 싣는다. 그가 한곳에 적을 두지 않고 다양한 학교를 전전한 까닭은 외부적 상황은 아닌 듯하다. 학업보다 문학이 더 중요한 일로 여겨졌다던 때라고 술회한 것으로 보아 본인의 부적응이 잦은 이적의 이유로 생각된다. 1938년에 와서야 그는 비로소 본격적으로 문학가의 삶을 시작하는데, 이원조의 도움으로 ≪조광≫ 기성란에 <하나의 향락>을 발표하며 등단했던 것이다. 이때 그의 나이 19세였다. 이듬해 하얼빈에서 학생 노릇을 하며 1년간 체류한 그는 1940년 혜화전문학교(현 동국대학교)에 입학했다. 이때 조지훈을 만나 교유했으나 그것도 잠시, 다음 해인 1941년 모종의 학생 사건에 연루되어 중퇴하고 만다. 곡절 끝에 귀향하여 면 총력계 서기로 근무하던 중 해방을 맞이한다. 해방에 당면한 그의 대처는 매우 신속했다. 해방 즉시 상경하여 ≪예술부락≫을 창간했던 것이다.
1946년은 조연현의 생애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들이 속속 일어난 해였다. 그는 동년 김동리, 서정주, 조지훈, 박목월, 곽종원 등과 함께 ‘청년문학가협회’를 결성하며 순수문학에 뜻을 모았다. 그들이 결성한 ‘청년문학가협회’가 주축이 되어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전국문필가협회’를 발족했으며 조연현 역시 이에 동참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때부터 조연현은 시가 아닌 비평을 통해 좌파 계열 문학 단체 ‘조선문학가동맹’과 본격적인 대결을 펼치기 시작한다. 또한 최상남과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기까지 하는 등 여러모로 전환점이 되는 해였던 것이다. 이듬해인 1947년엔 ≪민주일보≫, ≪민중일보≫ 기자를 거쳐 ≪민국일보≫ 문화부장과 사회부장을 겸하고 ≪문학정신≫을 주재하는 등 왕성한 활동력을 보여 주는데, <논리와 생리>, <합리주의의 초극>(≪경향신문≫)은 이때 쓰였다. 1948년엔 한국문학가협회를 결성, 수많은 평론을 발표하며 우익을 대표하는 이론가로서 입지를 다진다. <무식을 폭로>(≪구국≫), <고갈한 비판 정신>, <문학의 영역>, <비평문학론>(≪해동공론≫), <문학과 사상> 등등 조연현 비평의 성과들이 발표되었다. 이렇듯 해방 공간에서 수행된 비평들은 이듬해 그의 첫 평론집 ≪문학과 사상≫(세계문학사)으로 출간되었는데, 조연현의 비평을 언급할 때 가장 첫머리에 오르는 성과물에 해당된다.
1950년 6·25 당시 조연현은 90일간 서울에 잔류하며 지하 생활을 견디고 9·28 수복 때 부산으로 피난을 갔다가 1953년 다시 상경하며 전쟁으로 위축되었던 문학 활동에 다시 활기를 찾는다. 1955년에 이르러 ≪현대문학≫을 창간하고 주간을 맡으며 수많은 문학인을 배출할 산도를 마련했다. 교육자로서 행보는 그가 42세가 되던 1961년부터 시작되는데 이해에 동국대학교 전임 교수로 취임하고 서울대·연세대·성균관대에서 강의를 시작했던 것이다. 동년 출간된 ≪한국현대문학사≫(1·2부 합본, 인간사)는 갓 분과 학문으로 자리 잡아 가던 현대문학의 학적 근거를 풍부하게 했다. 1968년 문협 파동으로 인해 김동리와 반목하여 잠시 문협을 탈퇴했던 일을 제하고는 문단에서 꾸준히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조연현 문학 전집≫(전 6권, 어문각)은 1977년 조연현 자신의 손을 거쳐 출간되는데, 자신이 썼던 비평문을 선별하여 싣고 있다는 점에서 나름의 의의를 지니고 있다. 1978년엔 동국대 교수를 사임하고 한양대학교 문과대학 학장으로 취임하여 교육자 생활을 이어 나가다 1981년 11월 24일 일본 체류 중 뇌졸중으로 사망했다. 그의 수상, 수훈 경력을 일별하자면 다음과 같다. 문화포상 수상(1963년), 대한민국예술상 수상(1965년), 예술원상 수상(1966년), 3·1문화상 수상(1970년), 국민훈장 동백장 수훈(1970년).


☑ 엮은이 소개

서경석
1959년 서울에서 출생했다. 1979년 서울대학교 인문대학에 입학, 1992년 이 대학 국문과에서 <한설야 문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로 한국 경향소설과 그 전통에 관해 연구했고 1988년 ≪한국문학≫에 <분단문학의 기원>으로 신인상을 받으며 평론 활동을 시작했다. ≪한국 근대 리얼리즘 문학사 연구≫, ≪한국 근대문학사 연구≫ 등의 저서가 있으며 <해방 공간 소설의 현실 인식과 그 전망>, <해방 공간의 민족주의와 민족문학론> 등의 논문이 있다. 1992년부터 대구대학교 인문대학 국문과에서 근무하다 2001년 9월 한양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과 교수로 부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 목차

論理와 生理−唯物史觀의 生理的 不適應性
枯渴한 批判 精神−眞正한 價値判斷을 爲하여
文學의 領域−宗敎와 哲學과 文學의 基礎的 內容
文學과 思想−文學에 있어서의 思想性
虛無에의 意志−<黃土記>를 通해 본 金東里
本格小說論−小說의 正道와 그 究竟
批評의 論理와 生理−나의 批評文學觀
槪念의 空虛와 그 模糊性−白鐵 氏의 ≪朝鮮 新文學 思潮史≫를 中心으로
近代 朝鮮 小說 思想 系譜論 序說−우리의 近代小說이 試驗한 思想的 課業
救援에의 渴望−生의 創造로서의 文學
批評人의 悲哀−未知의 靑年 ×에게

해설
조연현은
엮은이 서경석은


김기진 평론선집


도서명 : 김기진 평론선집
지은이 : 김기진
엮은이 : 오태호
분야 : 한국문학/평론
출간일 : 2015년 7월 6일
ISBN : 979-11-304-5745-1 03810 / 979-11-304-6267-7(세트)
가격 : 22000원
규격 : 사륙판    제본 : 무선제본    쪽 : 353쪽




☑ 책 소개

무산계급문학의 주창자 팔봉 김기진의 대표 평론을 뽑아 엮었다. 한국 평론문학사에서 논쟁의 시대로 기록되는 1920년대에 김기진은 박영희와 ‘내용과 형식 논쟁’, 임화와 ‘대중화 논쟁’을 벌이며 현대 문예비평의 기초를 닦았다.


☑ 출판사 책 소개

‘한국평론선집’은 지식을만드는지식과 한국문학평론가협회가 공동 기획했습니다. 한국문학평론가협회는 한국 근현대 평론을 대표하는 주요 평론가 50명을 엄선하고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를 엮은이와 해설자로 추천했습니다.
작고 작가의 선집은 초판본의 표기를 살렸습니다.

팔봉 김기진은 1920년대 이래로 창작과 비평을 통해 프로문학을 주창한 근대문학의 선구자다. 1924년 단편소설 <붉은 쥐>를 발표하며 무산계급문학의 창작적 실험의 첫출발을 보였다면, 그보다 한 해 앞서 <클라르테 운동의 세계화>를 ≪개벽≫에 게재하며 평론가로서 본격적 활동을 시작했다.
<클라르테 운동의 세계화>는 유물론적 세계관을 표방한 글이다. 김기진은 이 글에서 프롤레타리아문학이, 구시대적이고 “그릇된 미의식 위에 입각한 부르주아의 문학에 대항해서 일어난” ‘오늘의 문학’임을 강조한다. 결국 ‘프롤레타리아의 미학’이 구시대적 부르주아 미학의 거부와 파괴를 거쳐 새로운 건설로서의 미학을 산출해야 하는 당위적 미학임이 주창된다.
한국 평론문학사에서 1920년은 논쟁의 시대로 기록된다. 특히 1926년 발표한 김기진의 <문예 월평−산문적 월평>은 ‘소설의 내용과 형식 논쟁’을 불러일으킨 글이다. 이 글에서 그는 최서해를 고평하고, 방인근, 조명희, 이기영과 박영희를 비판한다. 특히 박영희의 <철야>에 대해서는 “한 개의 건축”으로서 소설이 아니라, ‘기둥이나 서까래’의 기초도 없이 “붉은 지붕만 입히어 놓은” 비소설적 건축이 되었다고 비판하고, <지옥 순례>에 대해서는 소설의 요건을 구비하지 못한 실패작으로 규정한다. 이 두 작품에 대한 비판의 핵심은 작가의 세계관이 작품의 묘사력을 압도하고 있는 형국에 대한 비판이다. 이러한 문제 제기는 마르크스주의적 입장에서 엥겔스가 발자크의 작품 세계를 분석하면서 “세계관에 대한 리얼리즘의 승리”를 강조하는 부분에서 알 수 있듯 지극히 타당함에도 불구하고, 박영희는 이것을 형식주의적 관점으로 치부하고 김기진의 비평에 반박을 가하며 논쟁을 벌인다.
1920년대 이래로 서사적 개연성과 묘사의 적절성이라는 문학주의적 입장을 강조하긴 하지만 김기진의 문학관은 기본적으로 무산계급 지향적이며 도구적이었다. 1928년 발표한 <문예 시대관 단편−통속소설 소고>에서는 춘원의 소설이 누구나 보고 알 수 있는 “쉬운 문장으로써 이름”이 있으며, “어려운 ‘문자’를 안 쓰고 일반이 말하는 말을 가지고 유창하게 글을 쓴다는 것”이 통속소설의 무기라고 판단한다. 평이한 문장과 언문일치체가 대중적인 춘원 문체의 핵심이라고 간파한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무산대중을 계몽의 대상으로 파악하는 계몽주의적 입장으로 이어지면서 1920년대 후반 ‘대중소설론’을 통해 대중화 논쟁을 불러일으킨다.
팔봉의 문학적 업적이 자리하는 공간은 1920∼1930년대에 해당한다. 1940년대에 들어서면 그는 적극적 친일의 길로 들어선다. 1920년대 프로문학의 선구자로서 새로운 무산계급문학의 주창자에서 내선일체를 강조하는 친일문학인으로의 변신은 계급적 신념의 기반이 얼마나 나약한 사상누각의 논리에 기대어 있는지를 보여 준다. 조선인의 영혼을 버리고 일본의 지방이자 속국인으로서 살아가는 길은 자신의 과거를 땅에 묻고 미래를 저당 잡힌 행위에 해당한다. 역사적 전망이 불투명할 때 식민지 지식인은 어떠한 선택지를 갖고 있어야 하는지를 되묻는 반면교사에 해당하는 존재가 바로 팔봉인 것이다.


☑ 책 속으로

회월 형은 이것들을 선전문학으로 썼을 것이다. 그러나 선전문학도 문학으로서의 요건−소설로서의 요건을 구비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나는 형에게 문채(文債)에 못 이기어서 이와 같은 소설을 내놓지 않기를 바란다.
―<문예 월평−산문적 월평>

우리는 一九二三年 以後로 나타난 프로레타리아的 作家들의 諸 作品에 잇서서 프로레타리아文學으로서 內容과 題材와 統一 調和된 形式을 가추운 作品을 發見하기에 困難하다. 언제인가도 말한 바와 가티 그들의 創作에는 事件의 按排나 人物의 性格이나 其他의 描寫와 說明이 로는 主觀的이요 空想的이오 抽象的이요 非實在的이며 로는 그와 反對로 客觀的이요 現實的이요 具體的이요 實在的이며 甚하면 一箇의 作品 中에서 이 相異한 態度와 手法이 混濁되어서 救할 수 업는 不統一 不調和를 보여 왓다. 同時에 그들은 形式의 무엇임을 理解하지 못하얏다.
―<변증적 사실주의>


☑ 지은이 소개

김기진(1903∼1985)
1903년 6월 29일(음력) 충청북도 청원군 남이면 팔봉리에서 안동 김씨 둘째 아들로 출생한다. 부친은 함경도 성진군수였던 김흥규이며, 2년 연상의 형 김복진과 누님 두 분이 있었다. 큰집은 당시 팔봉리 일대를 지배하는 대지주였다. 1916년 3월에 영동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배재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한다. 이때 박영희와 친교를 맺고, 1년 위에 나도향, 같은 학년에 김여수와 박용철이 재학 중이었다. 1921년 일본 릿쿄대학(立敎大學) 영문학부에 입학했으나 중퇴했다. 1922년 박승희·이서구·김복진·박승목·이제창·김을한 등과 함께 최초의 근대 극운동 단체인 ‘토월회’를 조직했다.
1923년 시 <애련모사>를 발표하면서 ≪백조≫ 3호부터 동인으로 참가했고, 수필 <떨어지는 조각조각>(1923)에서 신경향파 문학의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이때 박영희·안석영·김형원·이익상·김복진 등과 함께 카프의 모태가 되는 ‘파스큘라’를 조직한다. 이후 소설 <붉은 쥐>(1924), <젊은 이상주의자의 사(死)>(1925) 등을 발표함으로써 카프에서 이론적 측면에서나 실질적 측면에서 지도자 역할을 수행했다. 평론으로는 <클라르테 운동의 세계화>(1923), <지배계급 교화, 피지배계급 교화>(1924), <문예사상과 사회사상>(1927), <예술의 대중화에 대하여>(1930) 등을 지속적으로 발표했다. 이때부터 ≪매일신보≫·≪시대일보≫·≪중외일보≫·≪조선일보≫ 등의 기자를 역임하며 해방 이후에까지 언론계에 종사한다.
1926년 박영희와 ‘내용과 형식 논쟁’을 시작하고, 1927년에는 이 논쟁의 종결과 함께 카프의 주도권이 박영희에게 넘어가게 된다. 1929년에는 임화와 ‘대중화 논쟁’을 벌이고, ‘변증법적 사실주의’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1931년에는 카프 제1차 검거 사건으로 체포되었다가 조선프롤레타리아문학운동의 시말에 대한 자술서를 쓰고 10일 만에 석방되었다. 1934년에는 형 김복진과 함께 ‘애지사(愛智社)’를 창립하고, 박영희의 전향 선언문을 반박한 <문예 시평: 박 군은 무엇을 말했나>를 발표한다. 1935년 경기도경찰국에 카프 해산계를 제출하고, 카프 제2차 검거 사건으로 70여 일간 구금된다. 1940년 이후 <문예 시평>, <국민문학의 출발>, <신세계의 첫 장> 등 대표적인 친일 문필 활동을 ≪매일신보≫를 중심으로 펼친다. 1944년에는 대표적 친일 문인 단체인 ‘문인보국회’ 상무이사에 취임하여 이광수와 함께 상해 대동아문학자대회에 참가한다. 귀국 도중 체포되어 평양에서 취조를 받고 석방된다.
1945년 해방 이후 ‘애지사’를 다시 창립하여 인쇄 출판에 전념한다. 1950년 6·25전쟁 직후 서울에서 애지사 인쇄 조판공들에 의해 고발되어 인민재판에 회부되어 즉결 처분을 받았으나 구사일생으로 살아난다. 1951년 대구로 피난을 갔다가 종군작가로 입대하여 ‘육군종군작가단’ 부단장으로 활약하면서 ‘금성화랑무공훈장을 수상하기도 하였으며, 1953년까지 주로 전선문학에 해당되는 글을 창작한다. 1958년에는 ‘민권옹호투쟁위원회’ 부위원장에 취임하며 자유당 독재를 비판하고, 1960년에는 ≪경향신문≫ 주필로 취임한다. 1961년 5·16 군사쿠데타 이후 ‘재건국민운동’ 중앙회장에 취임한 바 있다. 1985년 5월 8일 숙환으로 별세하였고, 경기도 포천군 내촌면 마명리에 유택이 마련되어 있다.
1923년 9월의 관동대지진 이후 신경향파 운동의 선구자로서 프로문학 운동에 전념한 공로가 크다. ≪개벽≫에 <클라르테 운동의 세계화>라는 비평문을 3회 분재하면서 프로문학의 이론을 처음으로 피력한 프로문학의 제창자였으며, 박영희·임화·염상섭 등과 벌인 논쟁을 통해 현대 문예비평의 기초를 닦은 바 있다.
김기진의 초기 문학론은 정치를 우위에 두고 문학을 수단화함으로써 문학의 형식을 배제하는 데에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실제적인 각종 작품에 대한 월평에서는 언어나 시의 리듬 등 외적 형식의 창조를 위한 표현 수단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형식에 대한 관심은 박영희와의 ‘내용과 형식 논쟁’의 발단이 된 바 있다. 1920년대 후반부터 프로문예 양식론을 제기하면서 <단편서사시의 길로>(1929)나 <대중소설론>(1929) 등을 통해 프로문예의 형식적 가능성을 개진할 것을 주창하였다.
해방 이후 한국 펜클럽과 한국문인협회의 고문 역할을 수행했으며, 1세대 근대문학인으로서 문단과 관련된 다양한 회고의 글을 남겼다. 그의 글은 1988년 문학과지성사에서 ≪김팔봉 문학전집≫ 여섯 권으로 완간된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사회 문화적 업적을 인정하여 을지무공훈장과 문화훈장 등을 수여했다. 그의 비평가로서의 선구적 업적과 그 유지를 계승하기 위해 1990년 한국일보사에서 ‘팔봉비평문학상’이 제정되었으며, 제1회는 평론가 김현이 수상한 바 있다. 2002년에는 역사문제연구소가 발표한 42인의 친일 문학인에 포함되었다.


☑ 엮은이 소개

오태호
경희대 국어국문학과을 졸업하고, 1998년 <황석영의 ≪장길산≫ 연구>와, 2004년 <황석영 소설의 근대성과 탈근대성 연구>로 각각 석사 학위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글쓰기 등을 강의하며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에 객원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1년에는 ≪조선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에 당선되었고 이후 여기저기에 잡문을 쓰고 있다. 2005년에는 소설 평론들을 모아 ≪오래된 서사≫를, 2008년에는 시 평론들을 모아 ≪여백의 시학≫을, 2012년에는 소설 평론집 ≪환상통을 앓다≫를 출간하는 등 세 권의 평론집을 상재했다. 2012년 한국문학평론가협회에서 수여하는 ‘젊은평론가상’을 수상했다.


☑ 목차

클라르테 運動의 世界化
今日의 文學, 明日의 文學
문예 월평-산문적 월평
無產 文藝 作品과 無產 文藝批評-동무 懷月에게
寫實主義 問題
文藝 時代觀 斷片
辯證的 寫實主義-樣式 問題에 對한 草稿
大衆小說論
단편 서사시의 길로-우리의 시의 양식 문제에 대하여
藝術의 大衆化에 對하야-新年은 이 問題의 解決을 要求文藝 詩評
朝鮮 文學의 現在의 水準
朝鮮 文學의 現 階段

해설
김기진은
엮은이 오태호는


2015년 6월 30일 화요일

이광수 평론선집


도서명 : 이광수 평론선집
지은이 : 이광수
엮은이 : 임정연
분야 : 한국문학/평론
출간일 : 2015년 7월 6일
ISBN : 979-11-304-5770-3 03810 / 979-11-304-6267-7(세트)
가격 : 20000원
규격 : 사륙판    제본 : 무선제본    쪽수 : 208쪽




☑ 책 소개

근대문학사의 첫머리에 자리매김하고 있는 춘원 이광수. 소설가가 아닌 평론가 이광수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평론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비전문적 판단이 횡행하던 1910년대 조선에서 문학과 비평에 대한 선구적 혜안을 제시했다.


☑ 출판사 책 소개

‘한국평론선집’은 지식을만드는지식과 한국문학평론가협회가 공동 기획했습니다. 한국문학평론가협회는 한국 근현대 평론을 대표하는 주요 평론가 50명을 엄선하고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를 엮은이와 해설자로 추천했습니다.
작고 작가의 선집은 초판본의 표기를 살렸습니다.

이광수는 소설 65편 외에도 350여 편에 달하는 논설과 평론을 쓴 걸출한 논객이자 근대 비평의 선구자였다. 소설사의 궤적이 워낙 선명하기 때문에 그 외의 글들은 부산물처럼 여겨지기도 하지만,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문명사적 전환기의 다양한 지적 문화 풍조의 세례를 받은 문제적 개인이자 이를 독자적인 예술론과 문학론으로 체계화한 시대의 석학이었다.
이광수가 문학론 성격의 글을 발표하기 시작한 1910년대는 ‘비평’이나 ‘평론’의 개념이 명확히 확립되기 전이었다. 이때 그는 비평이나 평론이 문예 글을 일차 텍스트로 삼아 비판하는 메타 장르라는 인식을 드러냄으로써 이를 다른 장르와 구별하고자 했다.
1916년 발표한 <문학이란 하오>에서는 비평과 평론이 논문의 하위 범주로서 문학 텍스트를 전문적으로 평가하는 활동을 의미한다는 점을 부각한다. 이후 점차 문예비평적 글쓰기를 지칭하는 분류 체계가 따로 설정되면서 1920년대 초 문예 동인지에는 비평적 성격을 지니는 산문을 지칭하는 용어로 ‘평론’ 또는 ‘비평’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다.
<문학에 뜻을 두는 이에게>(1922)와 <조선 문단의 현상과 장래>(1925)에서 그는 평론이 창작에 못지않은 중요한 가치임을 밝히고 비평을 다른 문예 영역에서 분리해 독립된 활동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생각을 구체화하며, 비평가에게 ‘문예’라는 분화된 영역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로서의 독립적 위상을 부여한다.
춘원 이광수의 사상적 기반은 개인의 감정 계발과 인격 수양, 그리고 계몽적 공리주의라는 주춧돌 위에서 다져진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묻는다. 이것은 한국 근대문학의 존재론을 모색하는 원론적인 질문으로, 그의 문학론과 비평관은 평론의 개념조차 미비하던 근대 초기 한국문학계에 선구적 혜안을 제시했다. 평론가로서 이광수는 문학의 개념을 정의하고 문학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할 것을 주장했으며 인생과 사회에 대한 효용성을 강조함으로써 근대성 획득의 도구로서 문학의 역할과 필요성에 주목했다. 그는 개별 평론 작업에 앞서 평론을 하는 기준을 수립하고 올바른 평론의 방향을 실천적으로 모색했다. 물론 이 때문에 그의 비평은 실제 작품 분석과 유리된 관념적 성격이 짙고 선동적인 차원에 머물고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광수의 선구적 저작들은 평론 장르의 발전과 정착을 위한 출발점이 되었다. 이것이 역사적 공과와 무관하게 한국 근대문학과 민족문학의 원점으로 이광수라는 존재가 수성(守成)한 변치 않는 가치다.


☑ 책 속으로

今日 所謂 文學이라 은 西洋人이 使用 文學이라 語義를 取이니 西洋의 Literatur 或은 Literature라 語 文學이라 語로 翻譯얏다 이 適當다. 故로 文學이라 語 在來의 文學으로의 文學이 아니오 西洋語에 文學이라 語義를 表 者로의 文學이라 지라 前에도 言얏거니와 如此히 語同意異 新語가 多니 注意 바이니라.
―<문학이란 何오>

나는 일즉 文士로 自處하기를 질겨 한 일이 없엇다. 내가 ≪無情≫, ≪開拓者≫를 쓴 것이나 ≪再生≫, ≪革命家의 안해≫를 쓴 것이나 文學的 作品을 쓴다는 意識으로 썻다는 것보다는 대개가 論文 代身으로 내가 보는 當時 朝鮮의 中心 階級의 實狀−그의 理想과 現實의 乖戾, 그의 모든 弱點을 如實하게 그려 내어서 讀者의 鑑戒나 感奮의 材料를 삼을 兼 朝鮮語 文의 發達에 一刺激을 주고 될 수 잇으면 청년의 文學慾에 不健全치 아니한 讀物을 提供하자−이를테면 이 政治 알에서 自由로 同胞에게 通情할 수 없는 心懷의 一部分을 말하는 方便으로 小說의 붓을 든 것이다. 그럼으로 小說을 쓰는 것은 나의 一餘技다. 나는 只今도 文士는 아니다.
―<余의 作家的 態度>


☑ 지은이 소개

이광수(1892∼1950)
한국 근대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춘원(春園) 이광수는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났다. 아명은 보경(寶鏡)이고, 작가이자 문학평론가, 사상가이자 기자, 논객으로 활동하며 고주(孤舟), 외배, 올보리, 장백산인(長白山人), 춘원생, Y생 등의 필명을 썼다.
이광수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1905년 일진회(一進會) 유학생으로 도일해 일본 와세다 대학 문학과와 철학과에서 수학하면서 신학문을 접하게 된다. 홍명희·최남선 등과 교류하고 톨스토이·바이런 등의 외국 사상가의 저서를 읽으면서 세계를 향해 시야를 넓혀 가던 이 시절은 그가 한국 근대문학의 기틀을 닦는 사상적 자양분을 마음껏 흡수할 수 있던 시기였다. 이때 발표한 <문학이란 하오>는 한국 근대문학의 범주와 방향을 제시한 본격적인 근대문학론이라 할 수 있다. 이광수는 1909년 첫 작품 <사랑인가>를 발표한 이후 <어린 벗에게>, <윤광호>, <소년의 비애> 등의 소설을 통해 자유연애를 옹호하고 기성의 도덕을 부정하는 진보적 사상을 고취했다. 특히 1919년 학비 보조를 위해 ≪매일신보≫에 연재하기 시작한 ≪무정≫은 계몽주의적 자유연애론과 근대적 자아의 각성 문제를 다룸으로써 인습에 반기를 들고 신문명의 기치를 든 청년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 냈다.
소설뿐 아니라 시와 논설, 평론 등을 발표해 사상가로서 초석을 닦고 있던 이광수는 이미 재일 유학생 사회에서 저명인사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존재였다. 이에 따라 그는 자연스럽게 유학생 활동에 앞장서면서 1919년 ‘2·8독립선언서’의 초안을 작성하는 일을 맡게 된다. 이후 상하이로 탈출해 그곳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관지인 ≪독립신문≫의 주간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여기서 그는 도산 안창호를 만나고 그의 사상에 깊이 감화되어 그를 ‘아비’로 칭하고 평생에 걸쳐 존경심을 표한다.
1921년 귀국한 즉시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지만 춘원의 후원자인 아베 요시이에(阿部充家)의 도움을 받아 불기소처분을 받아 풀려난 뒤로 ≪동아일보≫ 편집국장을 지낸다. 1921년 ≪개벽≫에 조선 민족의 민족성을 개조하자는 내용을 골조로 하는 <민족 개조론>을 연재해 조선 사회에 엄청난 반향과 비난을 불러일으켰다. 춘원의 집과 개벽사가 습격당할 만큼 거센 반발이 있었지만 그의 입장에서 이 논설은 돌출되거나 변질된 사상이 아니라 그가 일관되게 주장해 온 민족 개조론과 실력 양성론을 실천적으로 구체화한 글이라 할 수 있다.
1924년 ≪동아일보≫에 발표한 소설 ≪재생≫은 문학사적 의의 외에도 이광수가 본명을 사용한 첫 소설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 작품이다. 이를 계기로 춘원은 10여 년간 가장 왕성한 문학 활동을 펼치면서 문단의 중심에 서게 되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그는 순문예지 ≪조선 문단≫의 주재로 활동했고, ≪혁명가의 아내≫, ≪사랑의 다각형≫, ≪삼봉이네 집≫에 이르는 ≪군상≫ 3부작과 역사소설 ≪단종애사≫, ≪마의태자≫ 등의 작품을 발표했을 뿐 아니라 ≪흙≫(1932), ≪유정≫(1933) 등의 대표작을 남겼다. 특히 ≪흙≫은 그가 조직한 흥사단의 국내판 수양동우회와 ≪동아일보≫ 편집국장 신분으로 전개한 ‘브나로드 운동’의 방편으로 쓰인 농촌계몽소설이다. 1938년에 발표한 전작 소설 ≪사랑≫에는 아들의 죽음, 도산의 죽음, 수감 생활로 이어지는 일련의 고통스러운 사건을 거친 후 종교적 세계에 안주하려는 춘원의 현실 초극 의식이 잘 드러나 있다.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은 이광수에게 변절의 오명을 덧씌운 결정적 계기가 되는데, 이 사건 이후 그는 “천만 동포를 천황의 독자로 만드는 데 여생을 바치겠다”는 맹세에 따라 친일 행각에 앞장섰기 때문이다. 그는 ‘가야마 미쓰로(香山光郞)’로 창씨개명을 하고, 황국 위문 작가단을 결성하고, 친일 단체인 조선문인협회 초대 회장으로 앞장서 내선일체 구현을 강조하는 일본어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후에 이 모든 행위가 조선 민족을 보호하기 위한 타협책이었다고 변명하기도 했으나 광복 후 반민특위에 의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 그러나 이때 이미 폐병과 결핵으로 온몸이 만신창이 상태였던 이광수는 아들의 탄원 덕분에 병보석으로 풀려났다. 불행히도 1950년 납북된 후 그의 마지막 모습은 확인할 수 없으나, 평양감옥에 수감되었다가 자강도 고개동에서 사망, 모처에 매장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광수의 삶은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해방에 이르는 역사의 파고 가운데 민족의 운명과 더불어 부침을 겪었다. 그는 문사(文士)이자 지사(志士)로 공론의 장에 참여해 목소리를 높이면서 역사 속으로 자신의 삶을 투항했다. 비록 친일의 낙인이 찍힌 ‘흠 많은’ 우리 문학의 아버지일지언정, 이광수의 삶과 문학에는 우리 근대사의 공과가 그대로 새겨져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 엮은이 소개

임정연
이화여자대학교에서 <1920년대 연애 담론 연구−지식인의 식민성을 중심으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 논문은 1920년대 ‘연애’의 공론화 과정을 추적하고 연애 서사를 분석해 ‘연애’가 배타적인 독서 경험을 통해 구성된 지식인의 특권적 소통 형식이라는 점을 규명한 것이다.
그 연장 선상에서 지식인의 집단적 정체성을 구성하는 심리적 기저를 밝히기 위해 ‘지식’과 ‘문화’를 의제로 일제강점기 문화 담론의 근대성과 식민성에 관한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아울러 젠더적 시각에서 문학 텍스트를 읽는 일과 한국문학의 감수성이 형성되는 과정을 통해 한국 낭만주의문학의 계보를 밝히는 작업에도 관심을 두고 후속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논문으로는 <근대 젠더 담론과 ‘아내’라는 표상>, <임노월 문학의 악마성과 탈근대성 연구>, <여성 연애 소설의 양가적 욕망과 딜레마>, <근대소설의 낭만적 감수성−나도향과 노자영의 소설을 중심으로>, <여성 문학과 술/담배의 기호론>, <청춘의 표상과 감성의 정치−해방기 이봉구 소설을 중심으로>, <1950∼80년대 여성 여행 서사에 나타난 이국 체험과 장소 감수성>, <김유정 자기 서사의 말하기 방식과 슬픔의 윤리>, <1930년대 초 소설에 나타난 연애의 모럴과 감수성> 등이 있으며, 엮은 책으로는 ≪임노월 작품집≫, ≪방인근 작품집≫, ≪지하련 작품집≫, ≪노자영 시선≫이 있고, 공저로는 ≪한국어문학 여성 주제어 사전≫ 1∼5권이 있다. 현재 이화여자대학교에 재직 중이다.


☑ 목차

婚姻에 對한 管見
婚姻論
子女 中心論
문학이란 何오
文士와 修養
藝術과 人生−新世界와 朝鮮 民族의 使命
朝鮮 文學의 槪念
余의 作家的 態度
톨스토ᐨ이의 人生觀−그 宗敎와 藝術

해설
이광수는
엮은이 임정연은


2015년 6월 25일 목요일

지만지한국문학평론선집


도서명 : 지만지한국문학평론선집
지은이 : 고석규 외 49인의 평론가 / 편저자·해설자: 남송우 외 45인의 평론가
분야 : 한국문학
출간일 : 2015년 7월 6일
ISBN : 979-11-304-6267-7 04810(세트)
가격 : 각 권 18,000∼22,000원/세트 980,000원
규격 : 사륙판(128*188) / 제본 : 무선제본 / 쪽 : 각 권 180∼390쪽





☑ 책 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과 한국문학평론가협회(회장 김종회 경희대 교수)가 공동 기획한 ‘한국문학평론선집’은 1900년대 초 한국 근대문학을 이끈 평론가부터 현재 활발하게 활동하는 평론가까지 한국의 근현대 대표 평론가 50인 각각의 문학평론 선집이다. 책은 평론가의 대표 평론 4∼20여 편, 평론 세계 해설, 평론가 소개로 구성됐다.


☑ 출판사 책 소개

작품으로 새기는 대한민국 문학평론 100년사의 기록
홍명희와 함께 조선의 3대 천재로 불린 최남선과 이광수는 시인과 소설가로 유명하지만, 글쓰기에 과학적 방법론을 도입함으로써 한국 문학평론의 새로운 장을 연 뛰어난 평론가이기도 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한국 평론은 한국문학이 그랬듯이 역사적 상황의 격랑에 휘말리며 나아갈 길을 모색했다. 전쟁 후에도 순수와 참여 등 저마다의 노선과 이념 속에서 때로는 논쟁하고 때로는 화합하며 성장했다. 그렇게 100년이다. 그동안 한국 평론은 비약적으로 발전해 한국문학의 한 장르로 우뚝 서게 됐으며, 수많은 평론가들이 자신의 이론을 펼치며 한국문학 발전을 견인했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의 문학평론은 소설과 시의 그늘에 가려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기 일쑤였고, 문학사적으로도 정리되지 못했다.
그러나 선구적인 평론가들의 노력으로 지금은 문학평론을 보는 시각이 달라졌다. 종전의 소설과 시의 하위 장르라는 왜곡된 개념에서 벗어나 시대를 통찰하고 문학의 길을 제시하는 대표적 문학 장르로 자리 잡고 있다. 이제 한국 문학비평 100년의 역사를 정리할 때가 되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한국문학평론선집’을 만들었다. 한국의 근현대 평론을 대표하는 주요 평론가들의 작품을 체계적으로 정리함으로써 한국문학의 학문적 발전을 꾀하는 한편, 일반 독자에게 우리 평론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자 한다. 한국 근현대 문학사에서 독자적 미학 이론을 제시하며 평론의 선도적 역할을 충실히 담당해 온 평론가들. 그들의 선집은 문학이 사라지는 이 시대, 한국문학 부흥을 이끌 것이다. 또한 미래 한국문학의 소중한 문학적 보고(寶庫)가 될 것이다.

한국 근현대 문학평론사에 남을 대표 작가 50인
‘한국문학평론선집’의 참여 평론가는 한국문학평론가협회에서 추천했다. 학술적 가치와 의의, 문학사 및 문단사적 영향력, 비평 이론의 독자성, 동시대 현장 비평의 유효성 등의 제반 비평적 덕목을 고려해 1차적으로 평론가를 선정했다. 이후 전국 대학의 한국문학 전공 교수, 현장 평론가들의 설문조사 결과를 참고해 한국 근현대 문학평론을 대표하는 평론가 50인을 확정했다. 50인에 선정되었으나 여하한 사정으로 참여하지 못한 평론가들도 있다. 이들의 문학평론 선집은 추후 출간 예정이다.
이 선집에서 평론가는 스스로 자신의 대표작, 또는 애착을 가지는 작품을 골랐다. 작고한 평론가의 작품은 편저자가 작품을 선정하고 작가 소개와 해설을 썼다. 우리 문학의 역사성을 드러내는 평론, 문학적 보편성을 지닌 평론, 아직 주목받지 못했지만 앞으로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을 평론이 선정 기준이다. 작고한 평론가의 글은 오리지낼리티를 훼손하지 않기 위해 발표 지면에 근접한 원본의 표기를 살리고 오기가 분명한 경우만 바로잡았다.


☑ 책 속으로

今日 所謂 文學이라 은 西洋人이 使用 文學이라 語義를 取이니 西洋의 Literatur 或은 Literature라 語 文學이라 語로 翻譯얏다 이 適當다. 故로 文學이라 語 在來의 文學으로의 文學이 아니오 西洋語에 文學이라 語義를 表 者로의 文學이라 지라 前에도 言얏거니와 如此히 語同意異 新語가 多니 注意 바이니라.
‣ ≪이광수 평론선집≫ <문학이란 何오> 중

缺點을 指摘함도 低級한 讀者를 啓蒙하기 爲하야 또는 天才의 脫線을 막기 爲하야 必要함니다. 그러나 作品의 缺點을 摘發할 때는 評家는 목청을 낫추어야 함니다. 성난 빗을 뵈이지 말어야 함니다. 그리고 그는 金剛石 우헤 티를 찻는 것도 有用한 일이나 모래알 속에서 金剛石을 發見하는 것은 한層 더 有用한 일이라는 것을 非難보다 讃美가 더 高貴한 心情에 屬한다는 것을 잇저서는 안이 됨니다.
‣ ≪김환태 평론선집≫ <文藝批評家의 態度에 對하야> 중

최고의 수준에 이르지 않으면 그것은 예술일 수 없으며, 철난 뒤에 익힌 일본어로서는 예술적 경지에 이르기가 거의 불가능한 이 이중 구속에 그는 전면적으로 노출되어 있었고 이러한 절망의 질이랄까 밀도가 낳은 산물이 그의 창작들이다. 그 절망의 질이랄까 밀도의 어떠함을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 <향수> 속에 나오는 ‘북해공원의 에피소드’이다. 고립무원에 놓여 독립운동가인 남편의 타락과 배신으로 아편 밀매로 연명하는 누나란 무엇이뇨. 그 자체가 어머니이자 고향이 아닐 수 없다. 북해공원 벤치에 모처럼 앉은 오뉘란 그 자체가 ‘모국어의 실체’가 아닐 수 없다. 그 틈으로 끼어든 것이 중학과 대학의 동창인 일본인 이토 소위였다. 이토 소위란 그러니까 그 자체로 ‘일본어’가 아닐 수 없다. 이 틈에 놓인 ‘나’란 무엇인가 이토를 뜻밖에 만나자 ‘나’는 일본어의 실체로 동화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나’의 무의식 속에 일본어의 실체가 은밀히 작동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한순간 일어날 수 없다. 이 무의식의 작동의 힘의 위세는 그의 ‘의식’을 넘어서고도 남는 것이었다. 누나를 향해 저도 모르게 일본어로 외치는 상황이 벌어질 만큼 절대적이었음이 판명된다. 의식의 레벨(조선어의 실체)을 무의식의 레벨이 무화(無化)시키는 이 장면이란 새삼 무엇인가. 조선어를 두고 ‘일본어가 되라!’라고 평소에 염원하지 않았다면 이런 사태가 벌어질 이치가 없다. 그 결과는 과연 어떻게 되었던가.
‣ ≪김윤식 평론선집≫ <조선 작가의 일어 창작에 대한 한 고찰> 중


☑ 각 권 소개

≪고석규 평론선집≫ 남송우 엮음
≪권영민 평론선집≫ 김종욱 해설
≪권택영 평론선집≫ 김석 해설
≪김기림 평론선집≫ 김유중 엮음
≪김기진 평론선집≫ 오태호 엮음
≪김남천 평론선집≫ 남승원 엮음
≪김동리 평론선집≫ 정호웅 엮음
≪김동인 평론선집≫ 양진오 엮음
≪김붕구 평론선집≫ 장성규 엮음
≪김성곤 평론선집≫ 변지연 해설
≪김억 평론선집≫ 김진희 엮음
≪김열규 평론선집≫ 오윤호 엮음
≪김용직 평론선집≫ 문혜원 해설
≪김우창 평론선집≫ 이재복 엮음
≪김윤식 평론선집≫ 윤대석 엮음
≪김인환 평론선집≫ 오형엽 해설
≪김재홍 평론선집≫ 고봉준 해설
≪김종회 평론선집≫ 김문주 해설
≪김준오 평론선집≫ 고현철 엮음
≪김지하 평론선집≫ 홍용희 엮음
≪김치수 평론선집≫ 심은진 엮음
≪김환태 평론선집≫ 오형엽 엮음
≪김흥규 평론선집≫ 고인환 해설
≪박영희 평론선집≫ 허혜정 엮음
≪백철 평론선집≫ 이승하 엮음
≪신동욱 평론선집≫ 김용희 해설
≪안막 평론선집≫ 문경연 엮음
≪안함광 평론선집≫ 이성천 엮음
≪양주동 평론선집≫ 방인석 엮음
≪이광수 평론선집≫ 임정연 엮음
≪이숭원 평론선집≫ 유성호 해설
≪이승훈 평론선집≫ 이재복 해설
≪이원조 평론선집≫ 이훈 엮음
≪이헌구 평론선집≫ 차선일 엮음
≪임헌영 평론선집≫ 오창은 해설
≪임화 평론선집≫ 이형권 엮음
≪정태용 평론선집≫ 김유중 엮음
≪조남현 평론선집≫ 김학균 해설
≪조동일 평론선집≫ 하상일 해설
≪조연현 평론선집≫ 서경석 엮음
≪채광석 평론선집≫ 고명철 엮음
≪최남선 평론선집≫ 문흥술 엮음/김학중 해설
≪최동호 평론선집≫ 이상숙 해설
≪최유찬 평론선집≫ 오문석 해설
≪최일수 평론선집≫ 하상일 엮음
≪최재서 평론선집≫ 이경수 엮음
≪한설야 평론선집≫ 이경재 엮음
≪한효 평론선집≫ 오태호 엮음
≪현철 평론선집≫ 백지연 엮음
≪홍기삼 평론선집≫ 김춘식 해설
(가나다 순)




최일수 평론선집


도서명 : 최일수 평론선집
지은이 : 최일수
엮은이 : 하상일
분야 : 한국문학/평론
출간일 : 2015년 7월 6일
ISBN : 979-11-304-5785-7 03810 / 979-11-304-6267-7(세트)
가격 : 20000원
규격 : 사륙판    제본 : 무선제본    쪽 : 263쪽



☑ 책 소개

우리의 비평사 연구에서 최일수는 거의 묻혀 있다시피 한 비평가다. 민족문학론 논의와 관련해 간헐적으로 언급되기는 했으나, 그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최근에 와서야 활발히 전개되고 있는 실정이다. 최일수에 대한 본격적인 평가는 1950∼1960년대 비평의 연속성을 확보하는 중요한 비평사적 의미를 발견할 의미 있는 작업이다.


☑ 출판사 책 소개

‘한국평론선집’은 지식을만드는지식과 한국문학평론가협회가 공동 기획했습니다. 한국문학평론가협회는 한국 근현대 평론을 대표하는 주요 평론가 50명을 엄선하고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를 엮은이와 해설자로 추천했습니다.
작고 작가의 선집은 초판본의 표기를 살렸습니다.

지금까지 우리의 비평사는 1950년대와 1960년대 사이에 깊숙한 단절 의식이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관점은 전후 비평을 타자화함으로써 4·19 세대 비평의 문학사적 의의를 특별히 강조한 1960년대 비평가들의 세대론적 전략에 가장 큰 원인이 있었다. 또한 1960년대 비평 지형은 ‘1965년’이라는 특정한 연대를 중심으로 양분되어 전반부는 1950년대의 특징을, 그리고 후반부는 1970년대 비평을 형성하는 토대가 되었다고 평가함으로써 사실상 1960년대 비평의 자리는 실종되고 말았다. 따라서 앞으로 우리의 비평사 연구의 방향은 무엇보다도 1950년대−1960년대−1970년대로 이어지는 연속성을 확보하는 데 주력할 필요가 있다.
이런 점에서 1950년대 후반 분단 극복과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민족문학을 한국문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제시한 최일수의 비평이 지닌 중요성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최일수의 비평은 김동리로 대표되는 보수적 민족문학론을 비판하면서 진보적 민족문학론의 방향을 새롭게 제기하였다. 그는 당시 민족문학의 과제를 전통의 올바른 계승과 외래 문학에 대한 비판적인 섭취로 파악하고, 그 토대 위에서 이념 대립과 분단 현실을 초극하는 통일 지향의 새로운 민족문학론을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그의 민족문학론의 방향은 한국의 역사적 특수성 위에 놓여 있었고, 서구적 보편성을 민족문학의 현대화 방향으로 삼기보다는 한국과 유사한 정치사회적 경험을 한 동남아 문학의 전통에서 세계문학의 가능성을 찾고자 했다. 이는 민족문학과 세계문학의 관계를 주체성의 관점에서 새롭게 정리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최일수의 비평 의식은 전통론과 민족문학론으로 전개된 1950∼1960년대 우리 비평 지형의 총체적 성격을 선취하는 중요한 문제의식을 보여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에 이르기까지 그의 비평은 우리 비평사에서 소외된 지점에 머물러 있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 특히 1950년대와 1960년대의 뚜렷한 단절 의식에 바탕을 두고 비평 활동을 전개한 당시 비평가들과는 달리, 그의 비평은 1950년대와 1960년대를 연속성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세대 의식을 지녔기 때문에 사실상 어느 쪽에도 소속되지 못하고 양쪽 모두로부터 비판을 받고 말았다는 사실을 간과하기 어렵다. 즉 ‘화전민 의식’으로 구세대 비평과의 철저한 단절을 외쳤던 이어령은 최일수가 “당시 조연현의 대변인 같은 글을 많이 쓰고 있어서 세대 의식이 없는 ‘새끼 우상’이라고 불렀”다고 회고하고 있으며, 4·19 세대의 현실주의 비평가인 염무웅은 최일수의 비평에 대해 “참 답답하고 재미가 없”어 당시 이어령과 유종호에 더욱 신뢰감을 가졌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1950∼1960년대 최일수 비평의 소외는 담론만으로는 해명될 수 없는 문단의 역학 관계도에는 문단 정치학도 얼마간 개입되어 있음이 틀림없다. 따라서 앞으로 최일수 비평 연구의 방향은 당시 특정 비평 에콜로 조직화된 문단 상황에 대한 실증적 문제 제기와 아울러 논의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최근에 와서 민족문학론의 계보를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으로 최일수의 비평은 중요한 연구 대상으로 부각되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연구 대부분이 민족문학론과 전통론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에서 아직까지 그의 비평의 총체적 성격은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특히 그의 비평이 현실주의적 성격을 강하게 드러냈다는 점에서 모더니즘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취약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1950∼1960년대 우리 비평의 주요 쟁점으로 모더니즘론, 민족문학론, 실존주의문학론, 세대론, 전통론 등을 언급할 때, 최일수의 비평은 이 모든 비평적 쟁점을 아우르는 종합적인 방향에서 전개되었다. 이런 점에서 모더니즘과 실존주의에 대한 그의 비평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평가한다면, 1950∼1960년대 비평의 연속성을 확보하는 중요한 비평사적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 책 속으로

순수 인간과 영원성의 탐구는 인간의 본질을 구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면에는 사회악을 혐오함으로써 그것을 도리어 영속화하며 또한 인간을 원시적 형태로 증류하면서 개성도 생활도 없는 그저 범용 그대로 유형화하려는 이러한 전후 감정이 회고주의자들에게 파격적으로 영합되었던 역사의 낙후성에서 설명되어야 할 것이다.
―<現代文學과 民族意識>

돌이켜 보건대 ≪現代의 温度≫를 결론적으로 총괄하면 확실히 그 가운데 아직도 관념의 잔흔이 씻기워지지 못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에 비하여 그 의식의 강도나 자아의 객관적 관찰력이나 또는 역사적 경험과 그 ‘시츄웨이션’에 있어서 보다 커다란 차질을 지니고 비약했을 뿐만 아니라 무원칙한 반항으로부터 벗어나 현실에서 새로이 긍정돼야 할 역사적 필연성을 자각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또한 그 세계를 창현하기 위한 과감한 대결의 자세를 으젓하게 지니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反省하는 現代詩>


☑ 지은이 소개

1924년 6월 6일 전남 목포에서 2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명은 용남(龍男), 일수(一秀)는 필명. 목포 북교초등학교(당시 이름은 북교공립심상소학교)를 졸업한 것으로 추정되고, 목포상업학교에 진학했지만 가정 사정으로 졸업을 하지는 못했다. 1930년대 후반부터 목포 용당동에 살던 여성 작가 박화성 씨 댁에 드나들며 독서에 탐닉했다. 이후 수리조합 등에 임시직으로 일하면서 중등학교 졸업 자격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1954년 ≪조선일보≫ 문화부 기자를 시작으로 1973년까지 ≪서울신문≫ 문화부 차장, 기획 위원, 신문윤리위원회 심의 위원 등을 역임했다. 195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평론 <현대문학과 민족의식>이 당선되어 본격적으로 평론 활동을 시작했고, 1957년 현대문학상 신인문학상(평론 부문 1회)을 수상했다. 1959년 9월 고원, 장호, 홍윤숙, 신동엽, 한재수 등과 ‘시극연구회’를 결성했고, 1962년 11월 ‘KBS예술극장’에 라디오드라마 <기다리는 사람>, 1963년 2월 <동시 합격> 등의 대본을 집필했다. 그해 6월 ‘시극연구회’를 발전적으로 해체하고 ‘시극동인회’를 결성하여 10월에 무용 시 <분신>을, 1966년 2월에는 신동엽의 작품 <그 입술에 파인 그늘>의 연출을 맡기도 했다. 1972년 그가 각본을 쓴 <수신제>가 ‘KBS무대’에서 드라마로 방영되었고, 1976년 첫 평론집 ≪현실의 문학≫(형설출판사)을 출간했다. 1977년부터 1988년까지 서울예술전문대학에 출강했다. 1980년 한국문학평론가협회 제2대 회장으로 취임했고, 1981년 저서 ≪독립운동 총서−학예, 언론 투쟁≫을 집필했다. 1983년 두 번째 평론집 ≪민족문학 신론≫(동천사)을 펴냈고, 1993년 세 번째 평론집 ≪분단 헐기와 고루살기의 문학≫(원방각)을 펴냈으며 자유문학상을 받았다. 1995년 2월 담도암 판정을 받고 투병 생활을 하다 4월 21일 세상을 떠났다.


☑ 엮은이 소개

하상일은 부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1960년대 현실주의 문학비평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7년 ≪오늘의 문예비평≫으로 비평 활동을 시작했으며, 평론집으로 ≪타락한 중심을 향한 반역≫(2002), ≪주변인의 삶과 시≫(2005), ≪전망과 성찰≫(2005), ≪서정의 미래와 비평의 윤리≫(2008), ≪생산과 소통의 시대를 위하여≫(2009), ≪리얼리즘‘들’의 혼란을 넘어서≫(2011)가 있고, 연구서로 ≪1960년대 현실주의 문학비평과 매체의 비평 전략≫(2008), ≪한국문학과 역사의 그늘≫(2009), ≪재일 디아스포라 시문학의 역사적 이해≫(2011)가 있으며, 공저로는 ≪주례사 비평을 넘어서≫, ≪한국문학 권력의 계보≫, ≪비평, 90년대 문학을 묻다≫, ≪탈식민주의를 넘어서≫, ≪강경애, 시대와 문학≫, ≪2000년대 한국문학의 징후들≫, ≪문학과 문화, 디지털을 만나다≫, ≪김현 신화 다시 읽기≫ 등이 있고, 편저로 ≪고석규 시선≫, 공동 편저로 ≪고석규 문학의 재조명≫, ≪소설 이천 년대≫, ≪일제 말기 문인들의 만주 체험≫ 등이 있다. ≪오늘의 문예비평≫ 편집 주간, ≪비평과 전망≫ 편집위원을 지냈고, 중국 상해상학원(上海商學院) 초빙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동의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고석규비평문학상(2003), 애지문학상(2007), 설송문학상(2014)을 수상했다.


☑ 목차

現代文學과 民族意識
우리 文學의 固有性
終着驛의 旗手−우리 詩의 近代와 現代
反省하는 現代詩
모더니즘 白書
分斷의 文學

해설
지은이에 대해
엮은이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