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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17일 월요일

카프카의 편지: 밀레나에게 Briefe an Milena


도서명 : 카프카의 편지: 밀레나에게
         Briefe an Milena
지은이 :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
옮긴이 : 이인웅
분야 : 수필비평
출간일 : 2014년 11월 10일
ISBN : 978-89-6680-655-3
가격 : 22000원
규격 : 사륙판     제본 : 무선제본    쪽 : 478쪽




☑ 책 소개

20세기의 고독자 프란츠 카프카가 영원한 연인 밀레나에게 보낸 편지. 그 편지에는 소외된 천재 카프카의 고뇌와 열정, 이상과 절망이 그대로 묻어난다. 인간 카프카를 이해하기 위해 꼭 읽어야 할 책!


☑ 출판사 책 소개

입에서 붉은 피를 토하면서까지 사랑했던 여자! 그러나 남의 아내이기에 끝내 단념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여자! 젊은 베르테르가 이미 약혼자가 있는 로테를 미칠 듯 사랑하고 괴로워하다가 죽어 갔듯이, 20세기의 고독자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는 에른스트 폴라크(Ernst Pollak)의 젊은 아내 밀레나 예센스카(Milena Jesenská, 1896∼1944)를 죽도록 사랑한다. 그러나 끝내 이룰 수 없는 사랑이기에 글로나마 자신의 사랑과 슬픔을 표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얼굴이 둥그스름한 미모의 여인 밀레나는 이 가장 개인적이고 가장 정열적인 연서(戀書)들을 1924년 카프카가 세상을 떠난 후까지 소중히 보관한다. 1939년 봄 독일이 프라하로 진격해 오기 직전에 그녀는 봉투에 넣지 않은 편지들을 묶음으로 만들어 이 서한집의 편집자 빌리 하아스(Willy Haas)에게 직접 넘겨준다. 하아스는 밀레나의 남편이 된 폴라크, 작가 프란츠 베르펠 등과 함께 밀레나가 프라하의 커피숍에서 자주 어울리곤 했던 친구였다. 그러나 그는 고향을 탈출하는 피난길에 이 편지 묶음을 가지고 갈 수가 없어서 프라하에 남아 있던 가까운 친척에게 맡기며, 편지들은 1945년 전쟁이 끝날 때까지 잘 보관된다. 그 후 편자는 카프카의 친구 막스 브로트의 권유를 받아 밀레나의 생일, 국경일, 편지에 붙여진 번호, 기타 여러 가지 사건들을 참고해 편지들의 순서를 정리 편집한다. 카프카의 편지에는 요일은 자주 기록되지만, 애초부터 날짜는 쓰여 있지 않았다. 하아스가 편집한 초판본이 1952년 미국 뉴욕의 쇼켄 출판사(Schocken Books Inc.)에서 나오고, 1966년부터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의 피셔 포켓북 출판사(Fischer Taschenbuch Verlag)에서 간행된다. 그리고 1983년에는 부페르탈대학의 프라하문학 연구소장 보른(Jürgen Born) 교수와 책임연구원 뮐러(Michael Müller) 박사가 편지를 썼을 것이라 추정한 날짜 등을 괄호 속에 표시하고, 초판에 빠졌던 편지들을 보완하며, 학술적으로 새로이 정리한 증보 신판이 출간된다. 한 많은 생애를 마친 카프카의 연서는 편지가 처음 발표된 이후 오늘날까지 서간체로 쓰인 “사랑의 장편”이란 평을 받으며, 세계 각국 젊은 독자들의 깊은 관심 속에 애독되고 있다.


☑ 책 속으로

●밀레나, 우리는 한 가지 특성을 공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즉, 우리는 너무나 수줍어하고 불안에 싸여 있지요. 매 편지가 거의 다르며 거의 모든 편지가 전번 편지에 대해, 또 그 답장에 대해 더욱 놀라고 있습니다. 당신이 선천적으로 그렇지는 않다는 사실을 쉽사리 알 수 있지요. 나도 선천적으로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만, 이미 그것은 천성이 되어 버렸습니다. 다만 절망 속에서와 기껏해야 분노 속에서,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공포 속에서만 그것이 사라져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가 두 개의 문이 마주 달린 하나의 방을 쓰고 있는데, 각자가 문고리를 잡고 한 사람이 속눈썹만 깜박거려도 벌써 다른 사람은 자기 문 뒤로 숨어 버리는 것 같은 인상이 듭니다. 그리고 이제 첫 사람이 단 한마디라도 말을 할라치면 둘째 사람은 벌써 자기 뒤에 문을 꼭 잠가 버려서 모습조차 볼 수가 없는 것이지요. 물론 그 방은 떠나 버릴 수가 없는 것이기에 다시 문을 열 것입니다. 첫째 사람이 둘째 사람과 아주 똑같지 않다면 좋으련만. 그가 침착하고, 외견상으로나마 둘째 사람을 전혀 쳐다보지도 않으며 그 방이 각자 다른 방인 것처럼 서서히 방을 정돈한다면 좋으련만. 그러는 대신에 각자는 자기 문 뒤에서 똑같은 짓을 행하고 있지요. 그래서 때로는 두 사람이 모두 문 뒤에 숨어 버려, 그 아름다운 방을 텅 빈 채로 내버려 두기도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마음을 괴롭히는 오해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밀레나, 당신은 내 편지에 대해 불평하지만 사방으로 돌려 보아도 아무것도 떨어져 나올 게 없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잘못 생각지 않는다면 편지란 바로 내가 당신과 그렇게 가까이 있고, 당신의 피를 제어하듯 끓는 피를 제어하며 깊은 숲 속 고요 속에 휴식을 취하면서 나무들을 통해 위에 있는 하늘을 볼 수 있을 정도 이상은 사실 아무런 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는 그런 것이지요. 이것이 전부이며 한 시간이 지난 후에 똑같은 짓을 반복하게 되는데, 물론 거기엔 “신중하게 숙고하지 않은 말이란 단 한마디도 없다”는 뜻이 깃들어 있지요. 오래 걸리지 않아서 기껏해야 한순간이 지나면 곧 잠 못 이루는 밤의 트럼펫을 다시 불어 대는 것입니다. 

●난 어제 그대에게 편지를 매일 쓰지 말라고 충고했지요. 오늘도 내 생각은 그러하며 그건 우리 두 사람에게 매우 바람직한 일일 겁니다. 오늘 한 번 더 강조해 충고하겠습니다.-그러나 밀레나, 제발 내 충고를 따르지 말고 매일 편지를 보내 주십시오. 아주 짧아도 좋습니다. 오늘 편지보다 더 짧아도 좋습니다. 단 두 줄이라도, 단 한 줄이라도, 단 한마디라도 좋습니다. 그러나 이 한마디조차 없이는 난 무시무시한 고통으로 인해 살아갈 수가 없을 것입니다.

●오늘 아침 편지에 썼던 것 이외에 더 이상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면 난 그대에 대해서조차 거짓말쟁이가 되고 말았을 겁니다. 어느 누구 앞에서보다도 나는 그대 앞에서 그대 앞에서 마음대로 말할 수가 있지요. 그 어떤 일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일에도 불구하고 그대처럼 알면서 또 원하면서 내 편을 들어준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입니다(그 어떤 일에도 불구하고를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과 구별해야 합니다).
그대 편지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그것은 많은 것을 말해 주고 있지요. 왜냐하면 그 편지들에는 전체적으로, 거의 한 줄 한 줄에 내 인생에서 생길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것이 깃들어 있으니까요) 그대가 내 “불안”의 정당성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불안해해서는 안 된다는 설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때때로 내 “불안”에 매수된 변호인인 것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깊은 내면에서는 나 자신도 불안의 정당성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요. 난 사실 불안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불안이 나의 최선일 겁니다. 그리고 불안이 내 최선의 것이기 때문에, 그것만이 그대가 사랑하는 유일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내게 어떤 사랑할 만한 요소를 찾아볼 수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이것만은 사랑할 만한 가치가 있지요. 
가슴속에 불안을 품고서 어떻게 내가 토요일을 “행복하다”라고 말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면 어렵지 않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내가 그대를 사랑하기 때문에(그대, 이해가 더딘 여인이여, 그러니까 바다가 그 밑바닥에 깔린 작은 조약돌을 사랑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난 그대를 사랑하며, 그와 꼭 마찬가지로 내 사랑은 그대 위에 넘쳐흐르고 있습니다.-그리고 하늘이 허락한다면 그대 곁에서 다시 조약돌이 될 겁니다) 나는 온 세상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그대의 왼쪽 어깨가 속해 있지요. 아니, 오른쪽 어깨가 먼저였어요. 마음에 들면 난 거기에 키스를 하지요(그리고 그대는 사랑스럽게도 그쪽 블라우스를 밀어내지요). 그리고 왼쪽 어깨도 있어요. 숲 속에서 내 위에 있던 그대 얼굴, 숲 속에서 내 아래에 있던 그대 얼굴, 그리고 거의 벌거숭이가 된 그대 앞가슴에서의 휴식도 거기에 속해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대가 우리는 이미 하나가 되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옳은 말입니다. 그 때문에 불안해지기는커녕, 그것은 나의 유일한 행복이며 유일한 자랑거리입니다. 그것을 숲 속에만 한정해서 하는 말은 아닙니다.

●사람들이 편지를 통해 서로 교류할 수 있다는 생각을 어떻게 했는지! 멀리 있는 사람은 생각할 수 있고, 가까이 있는 사람은 붙잡을 수가 있지만, 그 외의 모든 것은 인간의 힘을 초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편지를 쓴다는 것은 유령 앞에 자신을 드러낸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유령들은 탐욕스레 그러기를 기다리고 있지요. 편지에 쓰인 키스는 가야 할 곳에 도착하지 못하고, 도중에서 유령들이 홀짝 마셔 버리고 만답니다. 이렇게 풍족한 음식으로 유령들은 엄청나게 증가하고 있지요. 인류는 그걸 느끼고 그에 대항해 투쟁하고 있습니다. 인간들 사이의 유령 존재를 가능한 한 제거해 버리고, 자연스런 교류와 영혼의 평화를 이룩하기 위해 인류는 기차, 자동차, 비행기를 발명해 냈지만 아무런 소용도 없습니다. 그것은 이미 추락하는 중에 발명된 것임에 틀림없어요. 상대편은 그만큼 더 침착하고 강력하답니다. 인류는 우편 이후로 전보와 전화와 무선 전신을 발명해 냈지요. 유령들은 굶어 죽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나 우린 파멸하게 될 것입니다.


☑ 지은이 소개

프란츠 카프카(1883~1924, Franz Kafka)
프란츠 카프카는 1883년 7월 3일 체코의 수도 프라하에서 부유한 유태계 상인 헤르만 카프카(Hermann Kafka)와 그의 처 율리에 뢰비(Julie Löwy) 사이에 첫 아들로 태어난다. 카프카는 초등학교를 마친 후 아버지의 공명심에 따라 독일 교육을 받기 위해 프라하 알트슈타트 김나지움에 입학한다. 가정과 학교 어디에서도 내면적 안정과 자신감을 찾지 못한 카프카는 8년간의 교육 과정에 거의 아무런 흥미를 느끼지 못하면서도 평균 이상의 성적을 유지한다. 이때에 벌써 그는 입센과 자연주의 희곡, 스피노자와 니체를 읽으며, 다윈의 진화론에 영향을 받고, 사회주의 사상에 관심을 가진다. 고등학교 졸업반 때에는 철학을 전공하겠다는 희망을 품지만, 대학에 입학한 후에는 미술사와 독문학으로 방향을 바꾼다. 그러나 결국엔 아버지의 의지에 따라 프라하의 독일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게 되고, 로마 민법, 채권법, 부동산 강제 집행 등 전혀 취미에 맞지 않는 강의를 듣는다. 그러는 동안 그는 최소한의 필수 과목만 이수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플로베르나 호프만슈탈, 헤벨과 슈티프터 등의 작품을 탐독하며, 체코나 독일 극단(劇團)의 연극 공연을 정기적으로 관람한다. 동시에 독일 대학생 독서 토론실에서 개최되는 강연이나 문학 작품 낭독회에 부지런히 참석하는데, 여기에서 일생의 친구 막스 브로트를 알게 된다.
1905년 여름 카프카는 프라하를 벗어나려는 욕구의 해소책으로 조그만 호반의 마을 추크만텔에서 방학을 지내며 요양하는데, 여기서 처음으로 어느 한 여인을 사귀어 첫사랑을 체험한다. 프라하로 돌아와서는 대학 졸업 시험 때문에 괴로운 세월을 보내고, 1906년 6월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함으로써 지겨운 법학 공부를 끝내게 된다. 그해 가을부터는 법률 공무원 복무규정에 따라 1년간 법원에서 실습한다. 그 후 프라하를 멀리 떠나려는 소망에서 여러 계획을 세워 보지만, 결국엔 이탈리아 자본으로 경영되는 일반 보험회사에 임시 직원으로 취직한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글을 쓸 수가 없기에 그는 좀 더 자유 시간을 가질 수 있는 노동자상해보험회사로 자리를 옮긴다. 오후 2시에 근무 시간이 끝났으므로 카프카는 자기 시간을 가지고 문학적 사회적 생활을 영위하며 여러 서클 활동에도 관여한다. 체코 사회주의 정치가들의 강연을 듣고 시위운동에도 참가하며, 사회주의 연구회인 믈라디시 클럽에도 나간다. 판타 클럽에서는 당시 프라하에 거주하던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대한 보고를 듣고, 플랑크의 양자이론,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의 기초 이론 등 첨단을 걷는 학설과도 접촉한다. 그 후 카프카는 브로트 형제와 함께 스위스, 이탈리아, 파리, 라이프치히, 바이마르, 베를린 등으로 여행도 많이 다닌다.
1912년에는 막스 브로트의 집에서 훗날의 약혼녀 펠리체 바우어(Felice Bauer)를 사귀게 되고, 5년간에 걸친 교제를 하면서 500통이 넘는 편지와 엽서를 교환한다. 그동안 그녀와 두 번이나 약혼했다가 파혼하는데, 이유는 문학보다 더 관심을 끄는 그 무엇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데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일생 동안 그는 생활과 문학을 대립적으로 생각하고, 양자택일의 경우에는 언제나 문학을 위해 현실적 삶을 포기하는 태도를 취한다. 1917년 8월에 각혈을 하고 폐결핵 선고를 받으며, 8개월이란 긴 휴가를 얻어 누이동생 오틀라가 살고 있는 보헤미아의 취라우로 떠나간다. 결핵이란 병은 직업상의 책임, 결혼의 의무, 양친에 대한 책임 등에서 그를 일시적이나마 자유롭게 해방해 준다. 그 후 다시 일을 하려다 실패하고, 일찍 은퇴한 카프카는 여러 요양소에 체류한다. 1919년에는 율리에 보리체크(Julie Wohryzeck)라는 어린 체코 처녀를 사귀어 세 번째 약혼을 하지만, 곧 다시 파혼한다. 카프카 작품을 체코어로 번역하기를 원하는 24세의 기혼녀 밀레나 예센스카를 알게 되고, 1920년부터 여행지 이탈리아 메란에서 그들은 사랑의 편지를 교환하기 시작한다. 밀레나는 대학에서 의학과 음악, 그리고 언론학을 공부한 명문가 출신의 여인으로 결혼 생활에 실패하고 카프카를 열렬히 사랑한다. 두 사람은 오스트리아와 체코를 왕래하며 밀회를 거듭하고 수많은 서신을 교환한다. 그러나 소박하고 친절한 여인 도라 디아만트(Dora Diamant)의 출현과 더불어 그들의 사랑도 끝난다. 1923년 7월 40세가 된 카프카는 베를린 피서지에 갔다가 위생보조원으로 일하는 20대의 젊은 폴란드 여인 도라에게 매혹된다. 두 연인은 즉시 동거 생활을 시작하며, 물질적 육체적 궁핍 속에서도 몇 개월간이나마 매우 행복한 삶을 영위한다.
도라 디아만트와의 행복스런 생활도, 고요히 계속되던 창작 생활도 육체적 정신적 고통 때문에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된다. 카프카는 죽음 직전의 육체를 이끌고 다시 프라하로 돌아오지만, 아버지와 삶 자체에 대한 결정적인 패배감을 맛보게 된다. 결핵은 후두부까지 퍼져 치료는 완전히 불가능했다. 도라의 끊임없는 간호를 받으면서 그는 마지막 작품 <여가수 요제피네>를 집필하고, 죽음의 날에도 단편집 ≪단식 광대≫의 교정 작업을 한다. 41회 생일을 한 달 앞둔 1924년 6월 3일 카프카는 자기가 생전에 발표한 작품 이외의 “유고를 모두 불태워 달라!”는 유언을 남긴 채 세상을 떠난다. 그리고 언제나 떠나기를 갈망하면서도 번번이 되돌아오곤 하던 고향 도시 프라하의 유태인 공동묘지에 안장된다. 


☑ 옮긴이 소개

이인웅
이인웅은 충북 진천에서 태어나 청주중고등학교를 거쳐 한국외국어대학교와 동 대학원 독일어과를 졸업했다. 독일정부초청 장학생(DAAD)으로 뮌헨대학교와 뷔르츠부르크대학교에서 독일문학과 철학을 전공하고, 1972년 헤르만 헤세에 관한 연구논문으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기획실장, 교무처장, 통역대학원장, 부총장 등의 보직을 수행하고, 문교부 국어심의회 외래어표기 분과위원, 교육부 국비유학 자문위원, 한국학술진흥재단 인문분과위원(장), 각종 고등고시위원, 한독협회지 초대 편집인, 한국헤세학회장, 한국독어독문학회장, ADeKo(독일동문네트워크) 이사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한국외국어대 독일어과 명예교수다. 
지은 책으로 ≪Ostasiatische Anschauungen im Werk Hermann Hesses≫(독일), ≪작가론 헤르만 헤세≫(편저), ≪현대 독일 문학 비평≫, ≪헤르만 헤세와 동양의 지혜≫, ≪파우스트 그는 누구인가≫(공저) 등이 있고, 번역서로는 헤세의 ≪크눌프≫, ≪수레바퀴 아래서≫, ≪데미안≫, ≪황야의 이리≫, ≪인도 여행≫, ≪꿈이 내 문을 두드릴 때≫, ≪싯다르타≫, ≪동방순례≫, 뒤렌마트의 방송극집 ≪고장≫,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파우스트≫ ≪헤르만과 도로테아≫ 등 40여 권이 있으며, 논문으로 <Hermann Hesse und die taoistische Philosophie>(스위스), <I Ging, das Buch der Wandlungen, im Glasperlenspiel von H. Hesse>(독일), <괴테의 ‘초고 파우스트’ 연구>, <헤르만 헤세와 불교>, <헬레나 비극>, <그라베의 대립적 세계관>, <파우스트와 역사 세계> 등 40여 편이 있다. 그 외에도 문학과 삶에 관해 각종 신문 잡지 등에 230여 편의 글을 쓰고 여러 텔레비전 및 라디오 방송에 출연했으며, 국내외에서 수많은 초청 강연을 했다. 


☑ 목차

카프카의 편지: 밀레나에게 ·············1

해설 ······················425
지은이에 대해 ··················442
지은이 연보 ···················462
옮긴이에 대해 ··················468


2014년 7월 28일 월요일

예술을 사랑하는 어느 수도사의 심정 토로



도서명 : 예술을 사랑하는 어느 수도사의 심정 토로
Herzensergießungen eines kunstliebenden Klosterbruders
지은이 : 빌헬름 바켄로더(Wilhelm Wackenroder) · 루트비히 티크(Ludwig Tieck)
옮긴이 : 임우영
분야 : 수필비평
출간일 : 2014년 7월 28일
ISBN : 979-11-304-5722-2 03850
가격 : 18000원
규격 : 사륙판 제본 : 무선제본 쪽 : 260쪽



☑ 책 소개

18세기 말 독일, 모든 것을 이성으로 해석하려는 계몽주의와 형식 위주의 고전주의에 반발해 새로운 문화가 꽃핀다. 르네상스 시대를 동경하고 중세 독일 문화를 부흥시켰다. 독일 낭만주의의 시작이다. 이 문화 혁명에 불을 붙인 것이 바로 바켄로더와 티크의 ≪예술을 사랑하는 어느 수도사의 심정 토로≫다. 당시 예술계에 종교 붐을 불러올 정도로 큰 반향을 일으킨 이 작품을 국내 최초로 소개한다.
 


 
☑ 출판사 책 소개
 
≪예술을 사랑하는 어느 수도사의 심정 토로≫는 문학사에 저자로 두 사람의 이름이 들어가 있지만 실제로 이 책을 쓴 사람은 빌헬름 바켄로더(Wilhelm Heinrich Wackenroder, 1773∼1798)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했던 이 얇은 책은 원래 1796년 가을, 1797년 날짜로 인쇄되어 익명으로 베를린에서 출판되었다. 이 출판사는 1796년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를 이 책과 똑같은 형태로 출판했다. 루트비히 티크(Ludwig Tieck, 1773∼1853)가 1799년 1년 전에 죽은 친구 바켄로더의 유고를 정리해서 ≪예술에 관한 환상들(Phantasien über die Kunst)≫이라는 책으로 편집할 때 원저자의 이름을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이 이름은 오랫동안 완전히 뒷전에 머물러 있었다. 티크는 자신의 초기 낭만주의 소설들로 각광을 받았고, 공개적으로도 이 책의 저작자로서 명성을 혼자서 차지하게 되었다. 이 책으로부터 결정적인 영향을 받았던 젊은 쇼펜하우어조차 바켄로더의 말을 그대로 인용할 때 티크의 말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예술을 사랑하는 어느 수도사의 심정 토로≫가 가장 강조하는 점은 바로 예술가의 “열광(Enthusiasmus/Begeisterung)”이다. 라파엘로의 경우 마돈나를 그릴 때 꿈에서 계시를 받고 그림을 완성하는데, 이처럼 예술가의 열광이란 ‘신적인 것’을 인식하고 느낄 수 있는 능력이다. 바켄로더는 <라파엘로의 환상>에서 바로 이러한 예술가의 영감과 열광을 강조한다. 일반인들이 얻을 수 없는, 천재적인 예술가만이 얻을 수 있는 하늘로부터의 영감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괴테의 초기 시에서 강조하는 예술의 “수호신(Genius)”과 맥락을 같이한다. 예술가의 열광을 통해서만 신이 창조한 자연과 감정적으로 교감할 수 있고, 예술가의 심장을 “타오르게(glühen)” 해서 예술 작품을 창작하게 만든다고 괴테는 주장했던 것이다. “나는 내 영혼으로 들어오는 마음속의 어떤 그림에 의지해 그린다”는 라파엘로의 고백은 이런 예술가의 고양된 감정, 숭고한 감정, 신과의 영적인 교류를 통해 영감을 얻고 있음을 말해 준다. 즉, 라파엘로의 영혼 속에 떠오르는 성모의 모습이 꿈에서 보았던 성모의 모습과 일치되어 라파엘로의 그림에 “천상적인” 성모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과정을 보여 주면서 바켄로더는 라파엘로에게 “신과 같은 라파엘로(Der Götterliche Rapfael)”라는 칭호를 붙인다.
바켄로더는 이런 천재들에 의해 탄생한 예술을 거의 종교와 같은 수준에 올려놓으면서,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들의 태도와도 연결 짓는다. “예술은 그 사람 위에 존재한다. 우리는 그 신성한 사람들의 훌륭한 작품들을 단지 감탄하고 존중할 수만 있으며, 그리고 우리의 모든 감정들을 녹여서 정화하기 위해 우리 마음 전체를 그 작품들 앞에서 열어 놓을 수 있다.” 그래서 예술은 종교 자체가 되어 그 자리를 차지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우리 위에 떠도는 것”을 예술만이 “신의 불꽃”의 중계자로서 “우리의 감정 안으로” 끌어내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바켄로더는 주장한다. 이런 논리로 바켄로더는 진정한 예술의 향유를 기도와 같은 반열에 올려놓고, 아주 드물게 경험할 수 있는 “신처럼 변용된 관조의 순간들”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 둔다. 아름다움의 비밀은 말로 표현할 수도 없고, 정교하게 고안해 낸 규칙으로도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비록 그 규칙으로 예술 작품을 기계적으로 파악할 수는 있겠지만, 영혼을 불어넣은 열광적인 “예술 정신”은 파악할 수 없다. 그 예술 정신은 예술가의 위대한 인간성을 매개로 ‘초월적인 것(das Transzendente)’을 숨김없이 보여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켄로더는 예술이 종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예술은 하나의 종교적 사랑이 되거나, 내가 이렇게 말해도 될지는 모르지만, 하나의 사랑하는 종교가 되어야 하네.” 예술가뿐만 아니라 그의 예술을 향유하는 사람도 “마음속 깊이” 예술을 ‘신의 계시’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즉, 종교적인 깊은 신앙 없이는 아무리 천재적인 예술가도 이런 신의 계시를 작품에 표현할 수 없으며, 예술을 감상하는 사람도 똑같은 신앙심이 없으면 그 예술 작품에 표현된 신의 계시를 느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분은 세상의 모든 지역에서 각각의 예술에 그분에게서 나간 하늘의 섬광이 인간의 가슴을 거쳐 그 작은 창조물로 들어갔다가, 거기서 다시 위대한 창조주를 향해 빛나는 모습을 바라보신다.” 바켄로더는 예술에 대한 경건함을 주장하는 이런 이상이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그림들과 15, 16세기의 독일 예술에서 전개되었음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은 보다 옛 시대의 예술 시대를 발견하려 했던 후기 낭만주의에 결정적인 자극을 주었고, 많은 낭만주의자들이 가톨릭으로 개종하는 계기가 되었다.
 
 

 
☑ 책 속으로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외로운 수도원 생활을 하면서 가끔씩 멀리 떨어진 세계를 어렴풋이 생각하며 다음의 글들을 조금씩 써 갔습니다. 나는 젊은 시절에 예술을 매우 사랑했고, 이 사랑은 마치 소중한 친구처럼 이 나이가 될 때까지 나와 함께 계속 동행해 주었습니다. 내가 이런 사실도 모른 채 마음의 충동에 북받쳐 이 회상들을 적어 나갔던 것을 친애하는 독자 여러분은 관대한 눈으로 봐 주시기 바랍니다. 이 글들은 요즘 어조로 적혀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오늘날의 어조에 익숙지 못하고, 정직하게 말씀드리자면 그런 어조를 좋아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젊은 시절 세상을 살아가면서 현세적인 일에 많이 얽혀 있었습니다. 나의 가장 큰 갈망은 예술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내 삶과 보잘것없는 재능을 모두 예술에 바치고 싶었습니다. 몇몇 친구들도 내 스케치가 그렇게 서툴지만은 않다고 평가해 주었고, 내가 모사(模寫)한 작품이나 내 창작품들도 완전히 불만스럽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러나 위대한 예술가들이 그린 성모 마리아상을 생각하면 언제나 말할 수 없는 신성한 놀라움이 엄습해 왔습니다. 머릿속에 라파엘로나 미켈란젤로라는 이름이 떠오르면 내가 손에 잡고 있는 목탄 연필이나 붓을 움직인다는 것이 아무래도 이상하고 멍청한 짓이라고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정말 고백하건대, 그들의 작품이나 생애가 선명하게 떠오를 때면 나는 가끔 이루 형언할 수 없는 고통스러운 마음에 울어야만 했습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그림들을 좋은 그림과 소위 나쁜 그림으로 구분해서 결국엔 냉정하고 비판적인 눈으로 평가하기 위해 모두 한 줄로 차례대로 세울 수가 없었습니다.−그런 생각은 마치 신을 모독하는 것같이 여겨졌습니다.−아마도 요즘의 젊은 예술가들이나 소위 예술 애호가들은 즐겨 그렇게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나는 H. 폰 람도르(H. von Ramdohr)의 글을 읽고 썩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의 글을 좋아하는 사람은 내가 쓴 글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 손에서 바로 내려놓을지도 모릅니다. 처음에는 이 글들을 책으로 인쇄하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특히 이제 막 시작하는 젊은 예술가들이나, 자신을 예술에 바치려고 생각하고는 있지만 지난 시대에 대한 신성한 경외심 때문에 아직도 마음이 부풀지 못해 조용히 있는 젊은이들에게 이 글을 바치고자 합니다. 이들은 내가 이 글을 쓸 때와 똑같은 사랑으로 읽을 것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는 의미도 없을 내 말에 혹시 많은 감동을 받아 더욱 깊은 경외심을 불러일으키게 될지도 모릅니다.
하느님은 내 삶을 수도원에서 끝맺도록 정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 시도는 지금 내 능력으로 예술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입니다. 이 글들이 아주 불만스럽지만 않다면 혹시 2부로 이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2부에서는 각각의 예술 작품을 개별적으로 평가하는 것을 반박하고 싶고, 하늘이 건강과 시간을 허락하신다면 기록해 놓은 내 생각들을 여기에 맞게 정리해서 분명하게 설명해 드리고 싶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또 다른 그림을 언급해야 하는데, 그 상황이 특이했기 때문이다. 내가 말하는 그림은 리자 델 지오콘도(프란체스코의 아내)의 초상화다. 그는 이 그림을 4년에 걸쳐 그렸는데, 머리카락 하나하나를 정성스럽고 정교하게 세부 작업을 하면서도 그림 전체의 정신과 생명력을 질식시키지 않았다. 그 고귀한 부인이 그림 때문에 그렇게 자주 와서 앉아 있어도 그는 매번 몇 사람들을 불러서 편안하고 즐거운 음악을 악기로 연주시키고 사람들 목소리를 들려주면서 부인의 기분을 즐겁게 해 주었다. 얼마나 재치 있는 착상인가. 나는 이런 것 때문에 항상 레오나르도 다빈치에게 감탄했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앉아 있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보통 딱딱하고 공허한 엄숙함이 나타나기 쉬운데, 만약 그러한 표정이 그림에 계속해서 남아 있는 용모로 굳어져 버리면 무뚝뚝한 모습이 되거나 심지어 어두운 모습이 되어 버린다는 사실을 그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즐거운 음악이 그 사람의 얼굴 표정에 작용하며, 모든 표정을 풀어 주고 기분 좋고 즐겁게 하는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얼굴의 상당한 매력을 화판에 생생하게 옮겼고, 한 가지 예술을 수행할 때 또 다른 예술을 보조 수단으로 유리하게 이용해서 그 영향이 앞선 예술에 반영되게 할 줄 알았다.
 
●아름다움이란 신기할 정도로 이상한 말이다! 각각의 개별 예술적 감정에 따라, 각각의 예술 작품에 따라 새로운 말을 발견한다! 각각의 예술 작품에 다른 색이 역할을 하며, 각각의 예술 작품을 위해 인간의 몸 안에 새로운 신경계가 만들어진다.
그러나 그대들은 이 단어에서 이성의 술책으로 하나의 엄격한 시스템을 만들어 모든 사람들에게 그대들의 규정과 법칙에 따라 느끼라고 강요하려 한다. 그러나 그대들 자신은 느끼지 않는다.
하나의 시스템을 믿는 사람은 자기 가슴에서 공통의 사랑을 몰아낸다! 이성의 배타심보다 감정의 배타심은 그래도 참을 만하다. 시스템에 대한 믿음보다는 미신이 훨씬 낫다.
그대들은 감상적인 사람들더러 농담조의 노래를 부르며 즐겁게 춤추는 것을 기분 좋게 느끼라고 강요할 수 있는가? 아니면 다혈질인 사람을 강요해서 비참하게 공포에 차 있는 사람들에게 기꺼이 그의 마음을 바치게 할 수 있는가?
태양 아래에 있는 각각의 사람들과 민족들에게 자신들의 믿음과 행복감으로 살아가게 하라!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기뻐할 때 그대들도 기뻐하라. 비록 그들에게 가장 사랑스럽고 가장 가치 있는 것에 대해 그대들이 함께 기뻐할 줄 모르더라도 말이다.
 
 
“내가 그대에게 라파엘로에 대해 말해 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것은 그가 예술가로서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도 고결하고 친절한 사람이었단 사실이네. 그는 다른 예술가들이 갖고 있었던 음울하고 거만한 성격을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았네. 그들은 가끔 너무 지나칠 정도로 이상한 것들을 열심히 받아들이지. 그러나 라파엘로의 삶과 활동은 마치 흐르는 시내처럼 단순하고 부드럽고 즐거웠지. 그의 친절함은 낯설거나 전혀 모르는 화가들까지 그에게 직접 스케치해 달라고 부탁해도 자기 작업을 중단하고 우선 그들의 요구를 들어줄 정도였네. 그렇게 사람들을 아주 많이 도와주었고 마치 아버지처럼 가르쳐 주었다네. 그것도 아주 친절하게 말일세. 예술에서 그의 탁월함은 그의 제자가 되려고 열심히 노력하던 많은 화가들을 그의 주위로 모여들게 했고, 그들 중에는 배울 나이가 지난 사람들도 있었네. 그들은 그가 궁정으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서면 함께 따라나서는 바람에 긴 행렬을 이루기도 했네. 그러나 서로 다른 생각을 하던 그 많은 화가들이 분명히 불협화음이나 갈등 없이 살 수는 없었겠지. 만약 그들의 위대한 스승의 정신이 신비할 정도로 그들에게 평화의 햇살을 비춰 주어 그들 영혼의 오점들을 벗겨 주지 않았다면 말일세. 그래서 그들은 그의 붓에 제압당했듯이 그의 정신에도 제압당했다네. 라파엘로의 삶에서 아름다운 기적의 이야기가 아직 남아 있네.
바로 이 이야기라네. 그는 그리스도가 여러 인물들과 함께 십자가를 끌고 가는 뛰어난 그림을 그리고 있었네. 그 그림은 팔레르모의 어느 수도원을 위한 것이었지. 그런데 그 그림을 싣고 가던 배가 심한 풍랑을 만나 난파하고 말았네. 사람들과 물건들도 모두 바다에 빠져 버렸지. 오직 이 그림, 특히 취급주의 물품이었던 이 그림만은 잔잔한 파도에 밀려 제노바 항구까지 오게 되었다네. 그곳에서 사람들은 전혀 손상을 입지 않은 이 그림을 상자에서 끄집어냈다네. 말하자면 그 거친 파도조차 이 신성한 사람에게 자신들의 경외심을 보여 주었던 것일세. 이 그림은 다시 팔레르모로 보내졌고 그곳에서 옛날 바사리가 표현하고 있는 대로 지금까지 시칠리아 섬에서 에트나 화산과 마찬가지로 위대한 보물로 여겨지고 있다네.”
 
 
 
 
☑ 지은이 소개

빌헬름 바켄로더(Wilhelm Wackenroder) · 루트비히 티크(Ludwig Tieck)
루트비히 티크와 빌헬름 하인리히 바켄로더는 베를린 출신으로 동갑내기였다. 티크는 1773년 3월 31일에 그리고 바켄로더는 6월 13일에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두 사람은 아주 친하게 지냈는데, 티크의 아버지는 밧줄을 만드는 장인(匠人)이었고, 바켄로더의 조상은 신학자, 교수, 법률가와 같은 학자들이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이들은 15세기에 후스(Hus, 1372∼1415, 체코의 종교 개혁가)파 전쟁 때문에 체코의 모라비아에서 이주해 북독일 포메른(Pommern)에 정착했다고 한다.
바켄로더의 아버지는 1748년에야 베를린으로 와서 곧 프로이센의 높은 관직까지 올라갔다. 아버지는 깔끔한 일처리와 사려 깊은 마음씨, 엄격하면서도 부드럽고 조심스런 행동으로 명성을 얻었다. 아버지는 규칙을 강조하는 계몽주의 시대의 대표적인 송가(頌歌) 시인이었던 람러(Karl Wilhelm Ramler, 1725∼1798)와 친했는데, 아들인 바켄로더는 그로부터 문학의 기본 개념들을 느낄 수는 있었지만 점차 그로부터 회의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아버지에게는 아들의 예술적 성향이 낯설었고, 그에게 철저하고도 광범위한 교육을 받도록 했다. 이와 함께 성악과 바이올린 그리고 작곡을 공부하는 데도 동의했다. 그러나 이것을 직업으로 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였다. 아버지는 그가 법률가가 되기를 바랐다. 아들을 엄하게 교육해서 그가 인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때 대학을 다니지 못하게 하고 베를린에서 1년간 배석 판사한테서 교육받게 했다. 할레(Halle)와 괴팅겐에서 이미 대학 공부를 하고 있던 티크와 헤어지게 된 것도 바켄로더에게는 고통스런 일이었다. 1792년 4월부터 1793년 3월까지 서로 교환했던 편지들이 이들의 우정을 증명해 주는 유일한 기록물이 되었다. 이 편지들은 문학에 대한 두 사람의 관심뿐만 아니라 연극과 음악에 대한 관심도 엿볼 수 있게 해 준다. 그리고 바켄로더의 영혼 속에서 이미 “천상의 황홀함”과 인간들의 평범함 사이에서 벌이는 전쟁을 예감케 해 주고 있어 그의 성숙한 판단력에 대한 감탄을 자아낸다. 정서가 불안정해서 고약한 행동을 자주 했던 티크에 비해 바켄로더는 훨씬 성숙했던 것이다.
≪예술을 사랑하는 어느 수도사의 심정 토로≫가 출판되고 1년 후인 1798년 2월 13일 바켄로더는 장티푸스로 죽었다. 그는 좋아하는 예술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지도 못했고, 싫어하는 직업을 수행해야 하는 현실을 체력적으로 견디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자신의 이상이 성취되는 작품을 쓰는 것이, 다시 말해서 예술에 축복받은 삶을 그려 보는 것이 그의 위안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새로운 영역에서의 예술 체험이 바켄로더에게는 진지했으며, 그런 삶을 살려고 했고 그렇기 때문에 죽었다. 그는 이렇게 떳떳하게 말해도 될 것이다. ‘나는 신을 찬미하기 위해 새로운 제단을 세웠다’고 말이다. 바켄로더의 추종자들은 생겨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심정 토로”는 계속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얻고, 그의 채워지지 않은 동경은 그래도 여러 사람을 깨워서 이끌어 줄 것이다.
 
 

☑ 옮긴이 소개

임우영
임우영은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를 졸업하고 독일 뮌스터대학에서 독문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 교수로 있으며, 한국괴테학회 부회장을 지냈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기획조정처장과 사이버한국외국어대학교 학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대학생을 위한 독일어 1, 2≫(문예림, 공저), ≪서양문학의 이해≫(한국외국어대학교 출판부, 공저), ≪세계문학의 기원≫(한울아카데미, 공저) 등이 있다. 역서로는 오토 바이닝거의 ≪성과 성격≫(지식을만드는지식), 뤼디거 자프란스키의 ≪낭만주의≫(한국외국어대학교 출판부, 공역), 라테군디스 슈톨체의 ≪번역이론 입문≫(한국외국어대학교 출판부, 공역), 니콜라스 보른의 ≪이별연습≫(월인), ≪민중본. 요한 파우스트 박사 이야기≫(한국외국어대학교 출판부), ≪미학연습. 플라톤에서 에코까지. 미학적 생산, 질서, 수용≫(동문선, 공역), ≪괴테의 사랑. 슈타인 부인에게 보낸 괴테의 편지≫(연극과 인간) 등이 있다. 논문으로는 <흔들리는 호수에 비춰보는 자기 성찰. 괴테의 시 <취리히 호수 위에서>>(2014) <괴테의 초기 예술론을 통해 본 ‘예술가의 시’ 연구. <예술가의 아침 노래>를 중심으로>(2013), <‘자기변신’의 종말?: 괴테의 찬가 <마부 크로노스에게>>(2011), <“불행한 사람”의 노래: 괴테의 찬가 <겨울 하르츠 여행>(1777)>(2008), <영상의 문자화.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의 단편소설에 나타난 ‘겹상자 문장’ 연구>(2007), <괴테의 ≪로마 비가(Römische Elegien)≫에 나타난 에로티시즘>(2007),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에 나타난 ‘체념(Entsagung)’의 변증법>(2004), <괴테의 초기 송가 <방랑자의 폭풍 노래> 연구. 시인의 영원한 모범 핀다르(Pindar).>(2002), <괴테의 초기 시에 나타난 신화적 인물 연구>(2001), <새로운 신화의 창조−에우리피데스, 라신느, 괴테 그리고 하우프트만의 ≪이피게니에≫ 드라마에 나타난 그리스의 ‘이피게니에 신화’ 수용>(1997) 등이 있다.
 
 
 
 ☑ 목차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5

라파엘로의 환상······················································································9
이탈리아에 대한 동경···············································································17
생존 시 널리 유명했던 화가이자 롬바르드 유파의 일인자 프란체스코 프란차의 특이한 죽음·········································································································20
연습생과 라파엘로···················································································32
피렌체의 젊은 화가 안토니오가 로마에 있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41
재주가 많으면서도 학식이 깊은 화가의 전형. 피렌체 유파의 유명한 시조인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삶에서 소개함··················································································47
두 가지 그림 묘사····················································································70
예술에서 일반적인 것, 관용 그리고 인간애에 대한 몇 마디····································80
우리의 존경하는 조상 알브레히트 뒤러의 명예를 기념하며····································87
놀라운 언어 두 가지와 그 신비한 힘에 대해·····107
피렌체파(派)의 옛 화가 피에로 디 코시모의 특이성에 대해 ··································115
어떻게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세상의 위대한 예술가의 작품을 감상하고 자기 영혼의 안녕을 위해 이용해야 하는가? ············································································127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위대함·································································133
로마에 있는 어느 젊은 독일 화가가 뉘른베르크에 있는 한 친구에게 보낸 편지············145
화가들의 초상화····················································································155
화가들의 연대기····················································································162
음악가 요셉 베르크링거의 이상한 음악적 삶 1, 2부···········································193
 
 
해설··································································································225
지은이에 대해·······················································································243
옮긴이에 대해·······················································································252



2014년 3월 27일 목요일

미국 노예, 프레더릭 더글러스의 삶에 관한 이야기 (Narrative of the Life of Frederick Douglass, an American Slave)


도서명 : 미국 노예, 프레더릭 더글러스의 삶에 관한 이야기
         Narrative of the Life of Frederick Douglass, an American Slave
지은이 : 프레더릭 더글러스(Frederick Douglass)
옮긴이 : 손세호
분야 : 수필비평
출간일 : 2014년 2월 13일
ISBN : 979-11-304-1180-4  03840
가격 : 18000원
사륙판 / 무선제본 / 240쪽



☑ 책 소개

정말, 인간인가?
언어가 아니라 실재로서, 인간의 최소한과 최대한은 어디부터 어디까지인가? <<미국 노예, 프레더릭 더글러스의 삶에 관한 이야기>>, 우리가 인간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증언한다.

미국 흑인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노예 출신 더글러스의 자서전. 노예제 폐지론자로서 노예해방에 크게 기여한 그는 대부분의 노예들이 겪어야 했던 일상과 같은 삶을 살았다. 그는 자신이 글을 배우는 사건을 기점으로 어떻게 노예제의 실상을 깨닫고 자유를 갈망하게 됐으며, 노예제폐지운동가가 됐는지 말한다. 19세기 전반기 미국 노예제의 끔찍했던 실상을 말하는 그의 목소리, 아직도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인종적 편견의 문제를 상기시킨다.


☑ 출판사 책 소개

노예로서의 삶, 자유를 위한 갈망
흑인 노예제의 폐해가 가장 극심했던 남북전쟁 이전에 미국 남부에서 태어난 더글러스의 삶은 보통 사람들과 달랐다. 노예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대부분의 노예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았다. 노예는 인간이 아니라 재산으로 취급되고, 죽을 때까지 강제 노동에 시달렸으며, 농장 주인이나 감독관에게 수시로 채찍질이나 체벌을 당하기도 했다. 노예는 재산을 소유하거나 글을 배우는 것도 법으로 금지되었으며, 법적으로 결혼을 할 수 없었다. 또한 백인 농장주의 성적 착취로 말미암아 흑인 여성 노예에게 자식이 생기더라도 그녀의 자식들은 노예로 취급될 뿐 백인 농장주의 자식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더글러스의 글공부의 경험은 그의 인생에서 엄청난 사건이었다. 노예면서 고아와 다름없는 유년기를 보낸 더글러스는 12세에 주인집에서 알파벳을 배웠다. 비록 얼마 뒤에 주인의 강력한 반대로 중단되고 말았지만 그는 자유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글을 배워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이후 더글러스는 길거리에서 만난 가난한 백인 아이들을 통해 글을 익혔고, 휴의 집에 있는 책이나 신문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특히 더글러스가 잔돈을 모아서 직접 구입한 ≪미국의 웅변가≫는 그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이는 더글러스에게 노예제의 실상을 깨닫게 하고 자유를 갈망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인간다운 삶을 얻기 위한 노력
더글러스는 인근 농장의 노예들과 함께 주일예배를 하면서 이들에게 신약성경을 통해 글을 가르치려 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당시 주인 토머스는 더글러스를 온순하게 만들고자 악명이 높았던 에드워드 코비의 농장으로 보냈다. 이미 글을 깨쳐 백인과 흑인 노예가 서로 다를 바 없는 똑같은 인간이라는 자각을 갖게 된 더글러스는 어느 날 코비의 심한 매질에 저항하며 두 시간 가까이 몸싸움을 했다. 결국 코비가 더글러스에게 앞으로는 심하게 대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면서 몸싸움은 끝이 났고, 다행히 더글러스는 처형당지 않고 무사할 수 있었다.
1년 뒤 더글러스는 비교적 친절한 농장주인 윌리엄 프릴랜드의 농장으로 옮겨 가게 되었다. 더글러스는 이곳에서도 일요일이나 밤에 노예들에게 은밀하게 글을 가르쳤고, 그중 다섯 명의 노예와 북부로 탈출할 계획을 세웠다. 이들의 계획은 보트를 훔쳐 체서피크 만 북쪽 끝까지 간 다음 자유 주인 펜실베이니아까지 가는 것이었다. 1836년 부활절 휴일 직전 계획을 실행할 예정이었으나 공모자 중 한 명이 이를 누설하는 바람에 모두 체포되어 감옥에 갇히고 말았다. 
더글러스는 석방된 후  조선소 견습공으로 선체의 틈을 뱃밥으로 메우는 일을 배우게 되었다. 숙련공이 된 더글러스는 임금을 많이 주는 곳을 찾아다니며 일을 할 수 있었지만, 그가 번 돈은 일주일에 한 번씩 주인에게 모두 갖다 바쳐야 했다. 
볼티모어는 도시였기 때문에 노예 주인 메릴랜드에 있으면서도 자유 흑인들이 비교적 많았다. 이들은 동(東)볼티모어 정신향상협회라는 일종의 교육 모임을 만들었는데, 더글러스는 이 모임에 참석해 애나 머리를 만나 1838년에 약혼했다. 애나는 교육을 받지 못한 수수하고 평범한 자유 흑인 여성이었다. 더글러스는 애나를 만나 사랑에 빠진 뒤 다시 한 번 자유가 얼마나 절실한 것인가를 깨닫고 두 번째 탈출을 시도했다. 
더글러스는 애나에게 돈을 빌려 필라델피아행 기차표를 구입했으며, 자유 흑인 친구에게 자유 흑인 선원임을 증명하는 선원증을 구해 선원 복장을 하고 북부행 기차에 올랐다. 메릴랜드 주를 넘어 델라웨어 주에 도착한 더글러스는 페리를 이용해 필라델피아까지 갔다. 하지만 이곳 역시 도망 노예를 포획하려는 백인들이 많은 곳이라 그 즉시 기차를 갈아타고 1838년 9월 4일 뉴욕 시에 도착해 꿈에도 그리던 자유를 찾을 수 있었다. 

더글러스의 또 다른 전기
뉴욕에 도착한 더글러스는 흑인을 받아 주는 하숙집을 중심으로 도망 노예 추적자들이 활동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며칠간 길거리를 배회한 끝에 어느 흑인 선원의 도움으로 뉴욕자경단위원회의 일원이자 뉴욕 지하철도망을 관리하던 흑인 노예제 폐지 운동가 데이비드 러글스를 만나 잠시 그의 집에서 머물게 된다. 그사이 더글러스는 약혼자 애나를 뉴욕으로 불러 1838년 9월에 결혼했다. 더글러스 부부는 러글스의 추천으로 뉴욕보다는 반노예적 정서가 강해 노예 추적자들의 손길이 잘 미치지 않을뿐더러 일자리도 얻기 쉬운 매사추세츠 주의 뉴베드퍼드로 이주하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노예 시절의 성인 ‘베일리’를 ‘더글러스’로 바꾸었다. 
뉴베드퍼드에서의 생활은 더글러스에게 또 다른 전기가 되었다. 우선 그는 조선소에서 숙련공으로 일하고자 했으나 북부 사회에도 만연해 있던 인종차별로 말미암아 일용 노동자로 일해야만 했다. 애나는 볼티모어에서 그랬듯이 가정부와 세탁부 일을 하며 생계를 꾸려 나갔다. 그러던 중 더글러스는 당대에 가장 유명하고 극렬한 노예제 폐지 운동가인 윌리엄 로이드 개리슨이 발행하던 주간지 ≪해방자≫를 읽게 되었다. 개리슨은 노예제의 무조건적이면서도 즉각적인 폐지를 주장했고, 흑인들의 아프리카로의 식민 계획에도 반대했으며, 노예제를 옹호하는 헌법에 입각한 정부에도 반대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다. 
더글러스는 개리슨의 열렬한 추종자가 되었을 뿐 아니라 노예제 폐지 운동가의 모임에도 정기적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더글러스가 개리슨을 처음 본 것은 1841년 8월 뉴베드퍼드의 노예제 폐지 운동가 모임에서였다. 며칠 뒤 더글러스는 미국노예제반대협회의 매사추세츠 지부의 연례 회합에서 연설할 기회를 얻었다. 이때 더글러스의 연설을 지켜본 개리슨은 그의 자질을 즉석에서 알아보고 더글러스를 협회의 순회 연설자로 고용했다. 연설자로서의 더글러스의 역할은 다른 노예제 폐지 운동가와 북부의 여러 지역을 여행하면서 자신의 노예 시절 경험담을 이야기하고 ≪해방자≫를 비롯한 노예제 폐지 운동 관련 신문 구독을 권유하는 것이었다. 이후 더글러스는 10년간 개리슨파의 일원으로 노예제 폐지 운동에 헌신하게 되면서 19세기 미국의 가장 큰 논점 중 하나였던 노예제 폐지와 흑인 인권 향상을 위해 평생토록 일관되게 투쟁했다. 


☑ 책 속으로

●이 소녀가 죽음에 이르게 된 원인은 다음과 같았다. 소녀는 그날 밤 힉스 여사의 아기를 돌보기로 정해졌고, 밤에 소녀가 잠든 사이에 아기가 울었다. 그날 밤 이전에 며칠 동안 휴식을 취하지 못했던 소녀는 아기가 우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들은 모두 힉스 여사와 함께 방에 있었다. 힉스 여사는 그 소녀가 천천히 움직이는 것을 보고 자기 침대에서 뛰어올라 벽난로 옆에 있던 참나무 막대기를 움켜쥐고 그것으로 그 소녀의 코와 가슴뼈를 부러뜨려 소녀의 삶을 마감하게 만들었다. 나는 이런 끔찍한 살인이 그 공동체에서 아무런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이 사건이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기는 했지만, 그 살인자를 처벌에 이르게까지 하기에는 충분치 않았다. 그녀를 체포하기 위한 영장이 발부되었지만, 결코 집행되지는 않았다. 따라서 그녀는 처벌을 면했을 뿐 아니라 자신의 끔찍한 범죄에 대해 법정에서 죄상의 진위 여부를 심문당하는 고통조차도 겪지 않았다. (중략) 어린 백인 소년들 사이에서조차도 ‘깜둥이’를 죽이는 데는 반 센트의 값어치만 있고, 묻어 버리는 데도 반 센트의 값어치밖에는 없다는 말이 돌았다.

●너희들은 정박장에서 풀려나 자유롭게 되었구나. 나는 사슬에 꽉 매인 노예란다! 너는 순풍에 즐거이 이동하고, 나는 피비린내 나는 채찍 앞에서 슬프구나! 너희들은 세계를 두루 날아다니는 자유라는 날랜 날개 달린 천사들이고, 나는 무쇠 족쇄를 차고 있구나! 아, 내가 자유롭다면! 아, 내가 네 아름답게 꾸민 갑판 위에 있고, 보호해 주는 네 날개 아래에 있다면! 슬프도다! 나와 너 사이에는 혼탁한 물결이 넘실대고 있구나. 계속 가라, 계속 가. 아, 나도 갈 수 있다면! 헤엄쳐 건널 수만 있다면! 내가 날 수 있다면! 아, 나는 왜 인간을 짐승으로 만드는 인간의 소유로 태어났단 말인가! 반가운 배는 가 버린다. 그 배는 멀리 어렴풋한 곳으로 모습을 감춘다. 나는 끝나지 않을 노예제의 가장 뜨거운 지옥에 남아 있다. 오, 하나님, 저를 구원해 주소서! 하나님, 저를 구해 주소서! 저를 자유롭게 해 주소서! 진정 하나님이 있단 말입니까? 저는 왜 노예인가요? 나는 도망칠 거야. 나는 그것을 참지 않을 거야. 붙잡히든 탈출에 성공하든 나는 그것을 시도할 거야. 열병에 걸리나 학질에 걸리나 죽기는 매한가지야. 내가 잃을 건 이 한 목숨뿐이야. 이렇게 살다 죽으나 도망치다 죽임을 당하나 죽기는 마찬가지야. 오로지 이것만 생각하자. 북쪽으로 160킬로미터만 곧장 가면 나는 자유란 말이다! 시도해 봐? 그래! 내가 한다면, 하나님께서 나를 도우실 거야. 내가 노예로 살다 죽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단순한 표정, 말, 또는 동작, 예컨대 실수, 사고, 또는 체력 부족 등의 모든 것이 노예가 언제든 채찍을 맞을 수 있는 이유가 되는 일이었다. 어느 노예가 불만족스러운 듯이 보인다고? 그러면 그에게 악령이 들었군, 채찍질로 몰아내야지라고 말한다. 주인이 보기에 자기 노예가 큰 소리로 말한다? 그러면 그는 교만해지고 있기 때문에 억눌러서 잠자코 말을 듣게 만들어 교만한 기를 꺾어 주어야 한다. 노예가 백인이 접근해 오는데 모자를 벗어 인사하는 것을 잊어버린다? 그러면 그는 존경심이 결여된 것이기에 채찍질을 당해야 한다. 노예가 자신의 행위에 대해 책망받을 때, 그것을 감히 옹호하고자 나선다? 그러면 그는 뻔뻔함이라는 죄를 짓게 되는데, 그것은 노예가 범할 수 있는 죄 중에서 가장 커다란 범죄의 하나다. 노예가 주인이 지적해 준 것과 상이한 방식으로 일하자고 과감하게 제안한다? 그는 정말로 주제넘고 자만하고 있기에 매질 이외에는 별다른 약이 없다. 노예가 쟁기질을 하다가 쟁기를 파손하거나 괭이질을 하다가 괭이를 부러뜨렸다? 그것은 노예의 부주의함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그는 채찍질을 당할 것임에 틀림없다.


☑ 지은이 소개

프레더릭 더글러스(1818?∼1895)
1818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프레더릭 오거스터스 워싱턴 베일리라는 이름으로 미국 남부 메릴랜드 주 해안의 이스턴 인근 애런 앤서니 소유의 농장에서 노예로 태어났다. 
더글러스는 여러 주인의 손을 거치며 유년기에는 주인의 아이 돌보기와 심부름, 청소년기에는 밭일과 조선소 일 등을 거치며 노예가 겪어야 했던 채찍질과 극심한 구타를 감내해야 했다. 하지만 어린 시절 주인의 아내로부터 알파벳을 배운 이래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일이 자유를 향한 길이라는 것을 깨닫고 글을 읽고 쓰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다. 
더글러스는 이후 동료 노예들과 함께 탈출을 시도했지만 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1838년 단독으로 북부로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탈출 직후 뉴욕에서 자유 흑인 애나와 결혼해 매사추세츠 주의 뉴베드퍼드에 자리 잡은 뒤 미국노예제반대협회의 인사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의 권유로 반노예제 집회에서 노예로서의 경험담을 강연한 것을 계기로 노예제반대협회 소속 연사가 되어 흑인 노예제 폐지 운동가로서 명성을 날리게 된다. 이로 인해 동료 백인 노예제 폐지 운동가로부터 질시를 당하기도 했다. 
이후 더글러스는 신문 편집인, 연설가, 저술가, 정치인, 외교관, 그리고 개혁가로서 1895년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사망할 때까지 인간으로서의 자존심과 자립심을 지키며 흑인 인권 향상을 위해 초지일관한 삶을 살았다.
더글러스는 세 권의 자서전을 출간했다. 각각의 제목과 출간 연도는 다음과 같다. ≪미국 노예, 프레더릭 더글러스의 삶에 관한 이야기≫(1845), ≪내 속박과 내 자유(My Bondage and My Freedom)≫(1855), ≪프레더릭 더글러스의 생애≫(1881). 더글러스는 노예제 폐지 운동 신문 발행인으로도 유명하다. 그가 발간한 신문을 연도순으로 정리하면, 가장 유명한 ≪북극성≫(1847∼1851)을 비롯해서 ≪프레더릭 더글러스의 주간지(Frederick Douglass Weekly)≫, ≪프레더릭 더글러스의 신문(Frederick Douglass' Paper)≫(1851∼1860) 등이 있다. 


☑ 옮긴이 소개

손세호
손세호는 연세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했으며, 서강대학교 대학원 사학과에서 서양사 전공으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뉴욕주립대학교(SUNY at Albany)에서 박사 후 연수 과정을 수료했고, 루이지애나주립대 풀브라이트 미국학 연수 프로그램을 이수했다. 최근에는 스탠퍼드대학교 사학과에서 풀브라이트 방문 교수로 미국사를 연구했다. 서강대·연세대·이화여대·건국대 등에서 서양사와 미국사에 관한 강의를 했으며, 현재 평택대학교 미국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학회 경력으로는 한국미국사학회, 한국아메리카학회, 한국서양사학회, 역사학회 이사 등을 역임했으며, 한국미국사학회 회장을 지냈다. 또한 미국사 및 미국학 분야에서 세계적 권위를 인정받는 미국의 미국사학회(OAH)와 아메리카학회(ASA)의 연례 학술대회에서 논문을 발표한 바 있으며, 한국아메리카학회가 수여하는 우암논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주요 저서로는 ≪왜 콜럼버스는 신항로를 개척했을까?≫(자음과 모음, 2013), ≪하룻밤에 읽는 미국사≫(랜덤하우스코리아, 2007), ≪눈으로 본 세계 역사 20: 미국의 독립과 발전≫(교원, 2006), ≪눈으로 본 세계 역사 22: 아메리카와 오세아니아의 발전≫(교원, 2006), ≪세계사 인물 오디세이≫(공저, 서해문집, 2010), ≪역사 속의 소수자들≫(공저, 푸른역사, 2009), ≪영화로 생각하기≫(공저, 방통대출판부, 2005), ≪미국 역사학의 역사≫(공저, 비봉, 2000) 등이 있으며, 번역서로는 ≪뒤를 돌아보면서: 2000∼1887≫(지만지, 2008), ≪서양 문명의 역사(하)≫(소나무, 2007), ≪있는 그대로의 미국사≫(공역, 휴머니스트, 2005), ≪영화로 본 새로운 역사≫(공역, 소나무, 1998) 등이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미국 초기 여권 운동과 윌리엄 로이드 개리슨>, <주요 노예제 폐지론자의 헌법 해석: 개리슨, 필립스, 더글러스>, <에드워드 벨라미의 “뒤를 돌아보면서”를 뒤돌아보며>, <“미국 역사 표준서”와 개정판을 둘러싼 논쟁>, <미국 대학의 자국사 교육의 역사와 현실>, <영미 노예제 폐지 운동과 윌리엄 로이드 개리슨>, <미국 중등학교 미국사 교과서에서의 베트남전쟁 서술>, <에드워드 벨라미와 산업국유화운동>, <에드워드 벨라미의 공화적 사회주의> 등이 있다.


☑ 목차

서문 ······················vii
웬델 필립스로부터의 편지 ············xxiii

제1장 ······················3
제2장 ······················13
제3장 ······················23
제4장 ······················30
제5장 ······················38
제6장 ······················46
제7장 ······················52
제8장 ······················64
제9장 ······················73
제10장 ·····················83
제11장 ·····················140

부록 ······················165

해설 ······················179
지은이에 대해 ··················207
옮긴이에 대해 ··················210


2013년 11월 26일 화요일

사누키노스케 일기 讃岐典侍日記


도서명 : 사누키노스케 일기 讃岐典侍日記
지은이 : 사누키노스케(讃岐典侍)
옮긴이 : 정순분
분야 : 수필비평
출간일 : 2013년 11월 28일
ISBN : 979-11-304-1170-5  03830
가격 : 18000원
사륙판 / 무선제본 / 262쪽




☑ 책 소개

사랑하는 임을 잃으니 눈물로 옷소매가 마를 날이 없다. 꽃을 보아도 눈을 보아도 함께했던 임 생각뿐이다. 제아무리 고귀한 천황이라도 여인에게는 그저 사랑하는 사람이다. 28세의 나이로 병사한 호리카와 천황과의 추억을 애끊는 마음으로 기록했다. 천황을 지고의 존재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 그린 헤이안 여성 일기의 수작이다.


☑ 출판사 책 소개

≪사누키노스케 일기≫는 일기의 제목에서도 나타나 있듯이, 12세기 초에 궁중에서 전시(典侍)로 일한 사누키노스케(讃岐典侍: 사누키는 일본의 옛 지방 이름이나 여기에서는 작자의 아버지가 사누키 지방의 수령을 지낸 것에서 딴 작자의 궁중 호칭이다)라는 여성이 쓴 일기다. 영역본 제목이 ≪The Emperor Horikawa diary≫로 되어 있듯이 내용은 자신이 모시고 있던 제73대 호리카와 천황에 관한 것이다. 헤이안 시대의 여성 문학은 자신과 관련 있는 귀인을 주인공으로 해서 서술한 작품이 많으며 자신이 모시고 있던 주군에 대해서 일기를 쓰는 것은 당시로서는 그다지 특이한 것도 아니었다. 예를 들면 ≪청령 일기≫는 관백이라는 최고 권력자였던 남편 후지와라노 가네이에와의 결혼 생활을 그렸고, ≪마쿠라노소시≫는 세이쇼나곤이 자신이 모시던 중궁 데이시를 중심으로 한 일상을 그렸으며 ≪이즈미시키부 일기≫는 아쓰미치 친왕과 나눈 사랑 이야기를 그린 것이고, ≪무라사키시키부 일기≫는 무라사키시키부가 자신이 모시던 중궁 쇼시의 출산을 중심으로 그린 것이다. 
≪사누키노스케 일기≫도 그러한 헤이안 문학의 맥락에서 생각할 수 있는데 두 가지 점에서 특이하다고 할 수 있다. 첫째는 대상이 천황이라는 더할 나위 없이 고귀한 존재라는 점이다. 현대에도 그런 경향이 있지만 고대에는 더더욱 천황은 신의 자손으로, 구체적으로 인식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문학 작품에서도 추상적이며 막연한 존재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으며 등장 자체도 그다지 많지 않다. 둘째는 그러한 천황의 죽음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죽음은 인간이라면 반드시 거쳐 가게 되는 과정으로서 인간이 아닌 신으로 인식되었던 천황에게는 강조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천황의 죽음을 크게 드러내거나 자세히 얘기하는 경우는 없었다. ≪사누키노스케 일기≫는 그러한 점에서 헤이안 여성 문학 작품 가운데 매우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사누키노스케 일기≫는 상권에서는 호리카와 천황의 발병과 그에 이어진 붕어라는 비상사태를 기술하고 있는데 작자가 병에 고통스러워하는 천황 곁에서 간호하는 입장이었다고는 하지만 거기에는 천황이라는 존엄성이 숨겨지고 병상에서 몸부림치는 한 사람의 인간이 그려져 있다. 결국 ≪사누키노스케 일기≫의 서술에는 작자 사누키노스케의 개인적인 감정이 깊이 관여하고 있으며 그것은 작자가 단순히 전시라는 공적인 여방의 입장에만 있던 것이 아니라 호리카와 천황으로부터 총애를 받은 애첩의 몸이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와 같은 작자의 특수한 입장이 이 일기를 성립시키고 또 특징을 결정한 것이다. ≪사누키노스케 일기≫에는 궁중 여방으로서 근무한 일상 전반을 그린 것이 아니라 붕어에 이르는 병상의 동정이나 붕어 후의 회상, 그리고 애끊는 추모의 정을 사적인 시선으로 그리고 있는 것이다. 이 점이 천황의 죽음이라는 특이한 소재에도 불구하고 ≪사누키노스케 일기≫를 문학 작품으로 성립시킨 요인이며 일본 문학사상 매우 특이한 위치로 자리매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함께 읽으면 좋은 책
헤이안 일기문학의 효시 ≪기노 쓰라유키 산문집≫(기노 쓰라유키, 강용자)
헤이안 여류 일기문학의 효시 ≪청령 일기≫(미치쓰나 어머니 / 정순분)
헤이안 수필문학의 효시 ≪마쿠라노소시≫(세이쇼나곤 / 정순분)
헤이안 최초의 작가 일기 ≪무라사키시키부 일기≫(무라사키시키부 / 정순분)
헤이안 최초의 기행 일기 ≪사라시나 일기≫(다카스에의 딸 / 정순분)
세계 최초 장편소설 ≪겐지 이야기≫(무라사키시키부 / 김종덕)
≪겐지 이야기≫에 대한 최고의 해설서 ≪겐지 이야기를 읽는 요령≫(모토오리 노리나가 / 정순희)
헤이안 최초의 칙찬 와카집 ≪고금와카집≫(기노 쓰라유키 외 / 최충희)
일본 최초의 시가집 ≪만엽집≫(유라쿠 천황 외 / 고용환, 강용자)


☑ 책 속으로

●때는 벌써 5월 장마철, 계속 내리는 비로 항상 젖어 있는 농부의 옷소매처럼 내 소매 역시 눈물로 잠시도 마를 새가 없다. 사가에 돌아와서 할 일 없이 지내면 마음이 좀 편해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옛날 일만 자꾸 떠오르고 가슴은 더욱 답답해졌다. 툇마루에 나가 밖을 내다봐도 하늘은 온통 잿빛 구름으로 뒤덮여 있어 먹구름 낀 내 마음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그 하늘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구름 속의 구름’이라는 와카가 떠오르는데 세상을 떠난 임을 그리며 읊었다는 그 마음이 내 마음과 똑같다. 그 구절 하나하나의 뜻을 되새기며 우리 임을 생각하니 또다시 슬픔이 밀려와 어느덧 눈물이 지붕의 처마 끝 창포 잎사귀를 타고 떨어지는 빗방울처럼 두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때마침 저세상으로 가신 우리 임을 그리며 우는 내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밤에 황천길을 다닌다는 두견새가 와서 구슬프게 울어 대는데 아 이렇게 잠 못 이루는 밤을 두견새 울음소리를 들으며 눈물로 지새운 날이 그 얼마나 많던가. 
생각해 보면 우리 임을 모신 세월은 8년 정도 되는 것 같다. 봄꽃과 가을 단풍을 함께 보며 지냈고 달 밝은 밤에는 나란히 하늘을 올려다보았으며 눈 내린 날 아침에는 밖을 내다보며 도란도란 얘기도 나누었다. 그런 운치 있는 때만 있는 것이 아니라 평상시에도 아침에 참배하시는 모습이나 저녁에 피리 부시던 모습은 특히나 기억에 생생하다. 그렇게 내 임을 못 잊고 슬픔에 잠겨 하루하루를 지내다가 외롭고 허전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래 보려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일들을 두서없이 쓰기 시작했는데 쓸 때마다 눈가에 눈물이 맺혀 붓 끝이 잘 안 보이고 그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려 벼룻물 위로 떨어지니 글씨는 자꾸만 흐려졌다. 글로 써 보면 조금이나마 마음이 편해질까 하고 시작했는데 오히려 슬픔만 더 복받치고 가슴이 미어지니 도대체 어찌하면 좋을지 종잡을 수가 없다.


●새벽녘이 되자 종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날이 밝나 보다 생각하자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까마귀 우는 소리가 들리더니 뒤이어 청소하는 소리가 들렸다. 날이 완전히 밝으면 밤사이에 자고 난 사람과 교대해 나도 잠시 눈을 붙여야지 하고 마음먹고 있었다. 드디어 격자문을 올리고 횃불을 내리는 등 아침 맞이가 시작되었다. 그래서 히토에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막 잠을 청하려던 참이었는데 천황님께서 홱하고 히토에를 걷어 내시는 것이 아닌가. 내가 자 버리면 천황님께서 불안하신가 보다 하고 다시 일어나 앉았다. 그러자 오이도노 삼위께서 “낮 동안에는 내가 천황님 간호를 맡을 테니 자네는 물러가 쉬게나”라고 하시어 사실(私室)로 건너왔다. 하녀가 “마마님 몸이 성해야만 천황님 간병도 하실 수 있는 거지요”라고 해서 다시금 슬픔이 복받쳐 왔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는데 천황님 옥체는 더욱 약해지기만 하셨다. 이번에는 정말 회생하실 가망이 없는 것인가 하고 절망스럽기 짝이 없었다. 재작년에 병환이 나셨을 때처럼 열심히 간병해 드리는 것으로 다시 일어나실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다.
다시 사자가 와서 “어전에 들라 하오”라고 해서 대령했다. 식사를 드려 보기 위해서였다. 다이니 삼위께서 천황님을 뒤에서 안아서 세우고 “어서 음식을 떠 넣어 드리게나”라고 했다. 음식은 작은 소반에 받친 소량의 것이었다. 천황님께서 일어나 앉으신 모습을 마주하고 뵈니 오늘은 특히나 힘에 겨운 모습이셨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관백께서 내 뒤로 대령하셨나 보다. 여느 때 같으면 대령하신 것을 당연히 알 수 있었겠지만 요즘에는 때가 때인 만큼 조심스럽게 납시어 누가 납시었는지 전혀 눈치챌 수가 없다. 그때 천황님께서 “대신이 들었네” 하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알려 주셨다. 정말이지 그 과분함을 어디에 비할 수 있으리. 옥체가 그토록 괴로우신데도 우리가 당황할까 봐 애써 알려 주시는 마음이 너무도 황공하고 송구스러웠다. 다시금 눈물이 솟구쳐서 어쩔 줄 모르는 내 모습을 빤히 쳐다보시더니 천황님께서는 음식이 목에 넘어가지 않으신 듯 다시 자리에 누우셨다. 나 또한 그 옆에 다시 엎드렸다. 

●이렇게 해서 9월이 되었다. 9일에 중양절 수라 올리기 등 이런저런 일을 하다 보니 이미 10일이 지나 있었다.
특별히 하는 일도 없는 낮에 구라베야 쪽을 바라보니 예전에 호리카와 천황님께서 불교 경전을 가르쳐 주신다며 “내가 읽은 경전을 정서해서 주겠노라”고 말씀하시고−그것은 불전에서 근행을 할 때의 일로 두 번째 방에서였다−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구라베야로 오시어 사경을 시작하시던 일이 떠올랐다. 그때 나는 사실에 먼저 돌아와 있었다. 천황님께서는 경전을 써서 가지고 가면 모두한테 웃음거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셨는지 황공할 정도로 신경을 써 주셨다. 그렇게 옛날 생각에 젖어 있는데 도바 천황님께서 납시어 “안아서 장지문 그림을 보여 주게”라고 하시었다. 추억에 잠겨 있던 기분이 싹 가시는 것 같았지만 얼른 조식실 장지문 위의 그림을 보여 드렸다. 그리고 침소 쪽으로 가 보니 벽에 호리카와 천황님께서 아침저녁으로 보고 외워야겠다며 곡을 써서 붙여 놓으신 피리 악보가 아직 붙어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을 보니 다시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피리 악보가 붙어 있던 벽 위의 흔적을 보니
지나간 일은 그저 꿈으로만 여겨져

笛の音の押されし壁の跡見れば
過ぎにしことは夢とおぼゆる

눈물이 나서 소매를 얼굴에 대고 있으니 도바 천황님께서 이상히 여기시며 나를 쳐다보고 계셨다. 하지만 굳이 설명드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 “소인도 모르게 하품이 나와서 눈물이 나온 것이옵니다”라고 아뢰니 “나도 다 아느니라”라고 하시는 것이 아닌가. 그 모습이 얼마나 귀엽고도 황공스러운지. “어찌 아시고 계시나이까?” 하고 여쭙자 “호 자와 리 자가 들어간 분을 생각하고 계신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말씀하신다. 호리카와 천황님에 대해서 어쩌면 그리도 잘 아실까 하고 대견스럽기도 하고 어여쁘기도 했다. 어느새 슬픈 마음이 다 가시고 나도 모르게 미소가 나왔다.

●이 일기를 보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여방인 주제에 뭐든지 안다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어서 얄밉다’고 비난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호리카와 천황님께서 아침저녁으로 부처님 가르침과 같은 좋은 말씀을 해 주셨기 때문에 생각날 때마다 그것을 쓴 것뿐이다. 그러니 나쁘게 보지 말았으면 좋겠다. 물론 호리카와 천황님을 그리워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이 일기를 어떻게 볼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그저 돌아가신 천황님이 너무도 그립고 황공스러울 뿐으로 마치 여성처럼 세심하고 자상하셨던 그 모습을 특별한 의도 없이 글로 쓴 것이다. 

탄식만 하다 한 해 끝을 맞으니 가신 임과의 
이별이 어느새 저 멀리 가서 있어라 

嘆きつつ年の暮れなばなき人の
別れやいとど遠くなりなん


☑ 지은이 소개

사누키노스케[讃岐典侍: 후지와라노 나가코(藤原長子, 1079∼몰년 미상)]
≪사누키노스케 일기≫의 작자는 후지와라노 아키쓰나(藤原顕綱)의 딸 나가코(長子: 1079∼몰년 미상)이다. 한때 미나모토노 요리마사(源賴政)의 딸인 니조인 사누키(二條院 讃岐)라는 설이나 나가코의 언니 가네코(兼子)라는 설도 있었으나 현재는 후지와라노 나가코라는 설이 정설로 되어 있다. 나가코는 제73대 호리카와 천황에게 출사하고 이어서 제74대 도바 천황에게도 출사했다. 도바 천황의 즉위식에서는 휘장 걷는 역할도 담당했다. 헤이안 시대의 모노가타리나 일기에서는 작자의 실명이 미상인 경우가 많은 것을 생각하면 이 일기는 실명이 알려져 있다는 점에서 특이하다고 할 수 있다. 나가코가 사누키노스케라고 불린 것은 아버지 아키쓰나가 사누키 지방의 수령이었기 때문이다.
아키쓰나는 참의 정3위인 후지와라노 가네쓰네의 3남으로 ≪청령 일기≫ 작자의 아들 미치쓰나의 손자에 해당한다. 어머니는 가가 지방의 수령 후지와라노 마사토키(藤原順時)의 딸로 벤 유모(弁乳母)라고 불린 가인이었다. 이 어머니 벤 유모를 통해서 아키쓰나는 천황가와 깊은 관계를 맺었다. 벤 유모는 제71대 고산조(後三條天皇) 천황의 생모인 데이시(禎子) 내친왕의 유모였기 때문이다. 이 덕분에 아키쓰나는 종4위상에 서작되었으며 장녀인 가네코가 제72대 시라카와 천황의 아들인 다루히토 친왕(후에 호리카와 천황)의 유모로 임명되었고 차녀 나가코는 제73대 호리카와 천황과 제74대 도바 천황에게 여방으로 출사하게 되었다. 
나가코의 어머니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으며 ≪사누키노스케 일기≫ 본문(하권 1)에 호리카와 천황에게 출사한 배경에 대해서 서술할 때 ‘그 옛날 처음 출사했을 때도 화려한 궁 생활에 이래저래 고뇌하면서 지냈사옵니다만 부모님과 도 삼위께서 진행한 일이라서 입 밖에 내어 불평을 할 수는 없었사옵니다’라는 대목에서 나가코가 출사할 당시인 1107년까지는 생존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다.
형제로서는 언니인 가네코 외에 오빠로 이에미치(家通), 아리스케(有佐), 미치쓰네(道經)가 있었으며 동생으로는 무네쓰나(宗綱) 등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편은 후지와라노 도시타다(藤原俊忠)로 추정되기도 하나 미상이고 자녀에 대해서도 미상이다.


☑ 옮긴이 소개

정순분
정순분은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어과를 졸업했으며 일본 와세다대학교 대학원 문학연구과(일본 문학 전공)에서 일본의 대표적인 고전문학인 헤이안 문학을 연구, ≪마쿠라노소시≫에 대한 논문으로 석사 학위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귀국 후 한국외국어대학교, 고려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등에서 강사로 활동하다가 현재 배재대학교 일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7년 9월부터 2008년 8월까지 미국 플로리다대학교 아시아어문학부 객원교수로 있었다. 저서에 ≪枕草子大事典≫(공저, 2001), ≪枕草子 表現の方法≫(2002), ≪枕草子와 平安文學≫(2003), ≪平安文學の風貌≫(공저, 2003), ≪交錯する古代≫(공저, 2004), ≪日本古代文學と東アジア≫(공저, 2004), ≪일본고전문학비평≫(2006), ≪平安文學の交響≫(공저, 2012), 옮긴 책에 ≪돈가스의 탄생≫(2006), ≪마쿠라노소시≫(2008), ≪청령 일기≫(2009), ≪무라사키시키부 일기≫(2011), ≪사라시나 일기≫(2012), ≪천황의 하루≫(2012) 등이 있으며 그 외에 헤이안 문학에 관련된 다수의 논문이 있다.


☑ 목차

상권
1. 5월 장마 무렵 일기 집필의 동기를 쓰다 ······3
2. 천황, 병환이 위중해 누워서 지내다 ········9
3. 천황의 간병인이 적음을 탄식하다 ········13
4. 천황이 실신했다가 깨어난 후 양위를 제안하다 ···16
5. 모두들 뜬눈으로 밤새 천황의 양태를 지켜보다 ···21
6. 천황이 가슴을 들썩이며 숨을 가쁘게 몰아쉬다 ···24
7. 천황이 식음을 전혀 들지 못하다 ·········27
8. 천황이 무릎을 세워 작자를 숨겨 주다 ·······32
9. 중궁이 와서 천황과 얘기 나누다 ·········35
10. 천황이 대신들에게 얼음을 하사하고 그 모습을 즐기다 ·····················38
11. 천황의 용태가 급변해 조요 승정이 가지기도를 올리다 ·····················41
12. 천황의 용체가 붓고 귀도 들리지 않게 되다 ····44
13. 모노노케가 나타나 소란을 피우다 ········47
14. 중궁이 다시 와서 천황과 얘기를 나누다 ·····51
16. 천황이 소리 맞춰 법화경을 읊조리다 ······56
17. 천황이 위독해지다 ··············59
18. 기도를 올린 보람도 없이 천황이 붕어하다 ····64
19. 모든 사람이 소리 내어 울다 ··········67
20. 천황의 붕어가 결정되고 유모들이 물러가다 ···72
21. 도 삼위, 천황의 시신 곁에서 떠나지 않다 ····76
22. 다이니 삼위, 사실에서 울며 쓰러지다 ······80
23. 미노 내시, 새 천황에 대해서 말하다 ·······82

하권
1. 도바 천황의 전시로 출사를 명받고 고민에 빠지다 87
2. 복상 정지 분부가 내려 출사를 결심하다 ······94
3. 바쁜 와중에도 호리카와 천황 추모 법회에 가다 ··100
4. 도바 천황의 즉위식에서 휘장 걷는 역할을 맡다 ··104
5. 정월 초하루 도바 천황에게 출사해 호리카와 천황 때를 생각하다 ················109
6. 섭정 다다자네가 호리카와 천황 시절을 회상하며 작자에게 말을 건네다 ·············115
7. 정월에도 호리카와 천황 추모 법회에 참상하다 ··120
8. 2월, 집안사람의 기일에 지난날을 생각하다 ···122
9. 3월, 호리카와 천황 추모 법회와 삼십강에 참석하고 중궁을 배견하다 ···············125
10. 4월, 옷을 바꿔 입고 관불 때 지난 일을 회상하다 ·130
11. 5월, 예전 단오절과 최승강을 생각하다 ·····133
12. 6월, 예전에 구경 갔던 샘물과 부채 뽑기를 회상하다 ······················136
13. 7월, 1주기 되는 날에 예전 동료와 이별을 아쉬워하다 ·····················140
14. 상이 끝나고 마음과는 달리 옷을 바꿔 입다 ···143
15. 8월, 궁궐 행차에 참여해서 지난날을 회상하다 ··147
16. 도바 천황 곁에 누워 호리카와 천황을 생각하다 ·151
17. 앞뜰을 내다보며 호리카와 천황을 생각하다 ···155
18. 9월, 피리 악보를 보고 호리카와 천황을 생각하다 159
19. 10월 대상회의 재계가 거행되다 ········162
20. 고세치, 임시 마쓰리가 가까워지다 ·······165
21. 고세치를 앞두고 예전의 눈 내린 아침을 생각하다 169
22. 우치이데 때 호리카와 천황을 생각하다 ·····175
23. 퇴궐하는 길에 호리카와 천황을 생각하다 ····178
24. 야마토 여방이 이전 고세치를 생각하며 노래를 읊어 보내다 ···················181
25. 세이쇼도의 가구라가 성대하게 거행되다 ····184
26. 지난날을 그리며 스오 내시와 노래를 주고받다 ··191
27. 연말에 호리카와인을 지나며 감회에 젖다 ····194
28. 호리카와 천황과의 이별이 멀어지는 것을 슬퍼하다 197
29. 호리카와 천황 묘 위의 억새꽃이 손짓하는 것을 보다 ······················199
30. 일기를 읽은 사람과 노래를 주고받다 ······203
31. 호리카와 천황을 그리며 히타치 여방과 얘기하다 ·205

부록
참고 도해 ····················209
연표 ······················215

해설 ······················221
지은이에 대해 ··················251
옮긴이에 대해 ··················253


2013년 4월 9일 화요일

뮐러 산문선



도서명 : 뮐러 산문선(Prosa von Heiner Müller)
지은이 : 하이너 뮐러(Heiner Müller)
옮긴이 : 정민영
분야 : 수필비평
출간일 : 2013년 4월 10일
ISBN : 978-89-6680-663-8 03850
18,000원 / A5  / 156쪽



☑ 책 소개

“브레히트 이후 가장 의미 있는 독일어권 극작가”, “동독의 가장 중요한 작가” 하이너 뮐러. 그러나 정작 동독에서는 오랫동안 출판과 공연이 중지되었다. 동독 사회 내부의 모순과 갈등을 직시했기 때문이다. 그의 산문을 국내 최초로 소개한다. 난해할 정도로 자유로운 사고와 독특한 표현 방식은 경악을 통해 독자의 ‘틀’을 깨고 새로움을 창조한다.


☑ 출판사 책 소개

극작가로서 현대 독일 문학계에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하이너 뮐러(Heiner Müller, 1929~1995)는 극작품뿐만 아니라 많은 시와 산문을 남겼다. 그러나 그의 시와 산문은 너무도 뚜렷하게 드러난 극작품의 비중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그 주된 이유는 그의 시와 산문들 중 상당 작품이 극작품의 내용과 연결되어 있어서 극작품을 위한 자료 내지는 부차적 텍스트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뮐러의 산문에 대해 그동안 전혀 언급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의 자전적 산문인 <아버지>(1958)와 <사망 신고>(1975)는 극작품의 중심 주제인 역사 속의 폭력과 배반, 죽음, 그리고 저항과 관련해 빈번하게 인용되었고, 마지막 산문인 <꿈 텍스트 1995년 10월>(1995)에 대한 주관적 논평이라 할 에세이 한 권이 1996년에 출간되었다. 뮐러의 산문은 주어캄프 출판사가 1998년부터 2008년까지 12권으로 된 뮐러의 전집을 간행하면서 비로소 한자리에 모였다. 전집 중 제2권인 산문 편에는 21편의 유고를 비롯해 모두 54편의 산문이 실려 있다. 이 산문집의 발간으로 뮐러의 산문 연구를 위한 기본 자료가 정리된 셈이다.
하이너 뮐러의 사유와 극 쓰기 방식은 극단적이다. 그의 의식의 흐름은 고통을 수반하면서 때로는 악몽으로 때로는 전혀 비논리적인 환상의 세계로 이어진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뮐러의 시각에서 보자면 역사는 발전의 움직임을 멈춘 채 응고되어 있고 인간은 사유의 능력을 상실한 채 현재의 순간에 점령당해 있다. 모든 것이 석화해 있다. 뮐러는 이러한 현재 상황을 부수는 작업에 몰두한다. 새로운 것으로 전이, 새로운 역사의 움직임을 태동시키려는 그의 노력은 굳어 있는 모든 것들을 파괴하는 과정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가 만들어 내는 장면들은 극단적인 난폭성, 테러와 같은 공격으로 채워지고 압축된 언어는 수수께끼와 같은 암호와 상징, 은유로 덮여 있다. 뮐러는 모든 기존의 틀을 그 기초부터 흔들어 놓는다. “경악시키기의 요구”로 규정되는 그의 연극 텍스트는 이를 위한 수단이다. 기존의 틀에 갇혀 있는 독자와 관객에게 그 틀을 부수고 나올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기 위해 필요한 것은 “경악을 통한 교육” 그리고 “경악을 통해 배우기”다.
문학이 해야 할 일은 역사와 상황 그리고 인간 두려움의 중심을 찾아내 그것을 독자, 관객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두려움의 중심을 은폐하거나 덮어 두면 거기에서 얻을 수 있는 에너지에 접근할 수가 없다. 두려움과 대결을 통한 극복이 필요하다. 뮐러의 연극 텍스트가 갖고 있는 경악의 요소는 관객을 심리적 압박 아래 두고 어떠한 반응을 일으키도록 강요한다. 관객의 경악이 그 작품 자체를 향하고, 최소한 방어 반응으로서 어떤 저항감을 가지고 극장을 떠나게 되면 이미 새로운 경험과 기억이 그의 의식 속에 자리하게 되는 것이다. 뮐러는 관객의 이러한 경험이 그들의 실제 생활을 변화하도록 작용하기를 기대한다. 모든 것에 무감각해져 있는 현대인의 의식과 고정 관념의 틀을 깨기 위한 ‘경악시키기’의 표현 형식은 파괴로 이어진다. 뮐러에게 파괴는 건설적, 생산적 힘을 갖는다.


☑ 책 속으로

·그는 많은 사람들 속으로 시선을 돌렸다. 가까이에는 옷을 잘 차려입은 중년의 남자가 여자와 아이와 함께 서 있었다. 여자는 쇼핑백을 들고 있었고, 다른 쪽 겨드랑이엔 종이로 포장된 전기스탠드를 끼고 있었다. 남자의 양손은 비어 있었다. 아이는 여자 뒤에 바싹 붙어 서서 남자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 쳐다보지도 않은 채 말다툼을 했다. 아이가 뭐라고 말했다. 남자가 아이의 손을 잡아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여자는 아이를 자기 뒤로 끌어당기고는 쇼핑백을 남자를 향해 휘둘러 댔다. 왜 저들은 아이를 나누어 가지지 못할까, 대학생은 생각했다. 남자는 오른쪽 반을, 여자는 왼쪽 반을 가지고 서로 헤어져 걸어가는 장면을 상상하자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가 사람들 속으로 뛰어갔다. 남자는 여자에게 아이가 뛰어가 버렸다고 일러 주면서도 자기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여자가 놀라 아이를 뒤쫓아 뛰었다. 어째서 넌 나와 결혼하려 하지 않는 거지? 대학생이 물었다. 아가씨는 대답하지 않았고, 기차가 오자 그에게 악수를 청하고는 기차에 올랐다. 그는 그녀를 따라가려고 했을 때, 금연칸이라고 쓴 표지판을 보았다. 다음 칸으로 갔다. 그는 마치 자신이 시험에 불합격한 것 같았고, 배웠던 것을 다시 한 번 배워야만 할 것 같았다.

·그들은 납병정들을 전투 대열로 맞세워 놓고 교대로 상대방 전선에 돌을 튀기는 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대포 소리를 흉내 내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를 총독 각하라 부르고 사격할 때마다 의기양양하게 죽은 병정의 숫자를 불러 댔다. 병정들은 마치 파리처럼 죽었다. 푸딩이 걸려 있었다. 마침내 한쪽 총독 각하는 병정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 그의 군대는 모조리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이로써 승리자는 결정되었다. 쓰러진 병정들이 우군과 적군이 서로 섞여서, 살아남은 병정들과 함께 판지 상자에 날아들어 갔다. 두 총독 각하가 일어섰다. 그러곤 아침을 먹으러 갔다. 나는 따라갈 수 없었고, 지나가면서 그 아이들은 내 아버지가 범죄자이기 때문에 이제 나와 함께 놀 수 없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누가 범죄자인지 내게 말했다. 그들의 이름을 말하는 건 좋지 않다는 말도 함께. 그래서 나는 친구들에게 그걸 말하지 않았다. 그들은 12년이 지난 후, 위대한 총독 각하에 의해 화염 속으로 보내져, 수많은 진짜 화포의 천둥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2차 세계 대전의 끔찍한 마지막 전투 속에서 죽이면서 그리고 죽으면서 그걸 알게 되었다.

·내가 집에 돌아왔을 때 그녀는 죽어 있었다. 그녀는 부엌 돌바닥에 누워 있었다. 반쯤 배를 깔고 반은 모로 누워, 다리는 잠자고 있을 때처럼 구부리고, 머리는 문 가까이에 두고 있었다. 나는 몸을 굽혀 옆으로 돌려진 그녀의 얼굴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우리 둘만 있을 때 부르던 식으로 말을 건넸다. 나는 연극을 하는 느낌이었다. 나는 문틀에 기대어, 새벽 3시쯤 자신의 부엌 돌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어쩌면 의식불명인, 어쩌면 죽은 아내 위로 몸을 굽히고 그녀의 얼굴을 두 손으로 받쳐 든 채, 나 이외엔 아무도 없는 관객을 위해 마치 인형과 이야기하듯 그녀와 이야기하고 있는 남자를 반쯤은 지루하게, 반쯤은 흥미롭게 바라다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녀는 찡그린 얼굴이었으며, 턱은 마치 탈골된 듯했고, 벌린 입에는 위쪽 치열이 비스듬히 걸려 있었다. 그녀를 일으켜 세웠을 때, 나는 그녀의 입에서라기보다는 뱃속에서 나오는, 어쨌든 멀리에서 들리는 듯한 신음 같은 무엇인가를 들었다. 나는 이미 몇 번이나, 집에 돌아왔을 때 그녀가 마치 죽은 듯이 그곳에 누워 있는 걸 보았다. 그리고 그녀가 죽었으리라는 걱정(희망)으로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마치 필름을 편집한 듯 나는 끝도 없는 물속으로 빠져들었고, 안도와 함께 떠오르며 내 딸이 담긴 대나무 바구니가 내 위쪽, 시멘트 턱 위에 비스듬히 놓여 있는 것을 본다. 그리고 시멘트 턱이 너무도 높아 물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나를 향해 그 아이가 눈을 돌리고 바구니에서 기어 나오려는 것을 두려워한다. 널 도울 수 없는 내게서 떨어져 있어, 무엇인가를 요구하며 믿는 그 아이의 시선이 속수무책으로 물에 떠 있는 내게서 심장을 도려내는 동안 내가 가진 유일한 생각.


☑ 지은이 소개

하이너 뮐러(Heiner Müller, 1929~1995)
하이너 뮐러(Heiner Müller, 1929~1995)는 구 동독 출신으로 동독에서보다는 서구 연극계에서 더욱 주목받은 특이한 극작가에 속한다. 그의 생애를 살펴볼 때,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한 1950년대 이후 사망에 이르기까지 그의 도정은 비난과 오해 그리고 찬사가 한꺼번에 뒤섞인 모순의 과정이었다. 동독 문화 정책과 마찰을 빚은 데 따른 출판과 공연 금지의 역경에서부터 독일 통일 이후 이미 저명인사가 된 그에게 가해진 동독국가보위부(슈타지) 가담 전력에 대한 비난에 이르기까지 그는 계속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양 독일에서는 그의 문학을 중요하게 평하는 글들이 쏟아져 나왔고, 1990년에는 프랑크푸르트 연극제 ‘엑스페리멘타 6’(1990. 5. 19∼1990. 6. 4)이 그에게 헌정되었다. 겉으로 드러나는 이 같은 현상은 이 작가에 대한 명확한 평가를 어렵게 만드는 것이긴 하나, 다른 한편으로는 독일 문단에서 그의 특수한 위치를 암시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 옮긴이 소개

정민영
정민영은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독문학 박사) 독일 뷔르츠부르크대학교에서 현대 독일 문학을 공부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 교수다. 2002년부터 여러 연극인들과 희곡 낭독 공연회를 결성해 번역과 낭독 공연을 통해 여러 나라의 동시대 희곡을 소개하고 있다.
저서로 ≪카바레. 자유와 웃음의 공연예술≫, ≪하이너 뮐러 극작론≫, ≪하이너 뮐러의 연극 세계≫(공저), ≪하이너 뮐러 연구≫(공저) 등이 있고, 번역한 책으로 엘프리데 옐리네크의 ≪욕망≫, ≪하이너 뮐러 문학 선집≫, ≪하이너 뮐러 평전≫, ≪욘 포세 희곡집. 가을날의 꿈≫, 욘 포세의 ≪이름/기타맨≫, 우르스 비드머의 ≪정상의 개들≫, 볼프강 바우어의 ≪찬란한 오후≫, ≪브레히트 희곡선≫, 카를 발렌틴 선집 ≪변두리 극장≫, 독일어 번역인 정진규 시선집 ≪Tanz der Worte (말씀의 춤)≫ 등이 있다. 주요 논문으로 <독일어권 카바레 연구 1, 2>, <전략적 표현 기법으로서의 추>, <예술로서의 대중 오락−카를 발렌틴의 희극성>, <하이너 뮐러의 산문>, <한국 무대의 하이너 뮐러>, <하이너 뮐러의 󰡔사중주󰡕론>, <Zur Rezeption der DDR-Literatur in Südkorea> 등 많은 논문을 썼다. 주요 드라마투르기 작품으로 손정우 연출의 <그림 쓰기>, 백은아 연출의 <찬란한 오후>, <보이첵−마리를 죽인 남자>, 송선호 연출의 <가을날의 꿈>, 홀거 테슈케 연출의 <서푼짜리 오페라> 등이 있다.


☑ 목차

할아버지에 대한 보고 ···············3
위대한 관 판매상의 파산 ··············10
기이한 행진 ···················20
사랑 이야기 ···················25
농부들은 채석장을 등지고 섰다… ·········40
푸줏간 주인과 아내 ················41
철십자 훈장 ···················44
아버지 ·····················48
야경화 ·····················61
헤라클레스 2 또는 히드라 ·············64
사망 신고 ····················71
나는 어느 발코니에 앉아… ············77트라키아의 여름 ·················80
꿈 텍스트. 연출가들의 밤 ·············84
꿈 텍스트 1995년 10월 ··············91

해설 ······················95
지은이에 대해 ··················123
지은이 연보 ···················142
옮긴이에 대해 ··················147

2013년 1월 30일 수요일

소동파 산문선


도서명 : 소동파 산문선(蘇東坡散文選)
지은이 : 소식(蘇軾)
옮긴이 : 류종목
분야 : 수필비평
출간일 : 2013년 1월 31일
ISBN : 978-89-6680-642-3 03820
18,000원 / 168쪽



☑ 책 소개

우리나라 문단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중국 문학가를 꼽는다면 단연 소동파다. 김부식과 김부철의 이름은 바로 동파와 그 아우의 이름을 딴 것이고, 고려 시대에는 그의 시문이 유행한 나머지 이규보가 매년 과거 시험이 끝나면 서른 명의 소동파가 나온다고 할 정도였다. 4000편에 달하는 그의 산문 중 대표작들을 골라 엮었다. 당송팔대가의 이름이 명불허전임을 알 수 있다.


☑ 출판사 책 소개

중국의 산문, 즉 문장은 당나라와 송나라 시대의 것을 으뜸으로 치는데 이 시기의 문장가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사람 여덟 명을 당송팔대가라고 한다. 소동파[蘇東坡, 본명 소식(蘇軾), 1036∼1101]는 부친 소순(蘇洵, 1009∼1066), 동생 소철(蘇轍, 1039∼1112)과 함께 당송팔대가로 꼽히는 것은 물론 그중에서도 가장 걸출한 문장가였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산문은 예술 형식을 강구하기보다는 머릿속에 가득 찬 생각이나 가슴속에 가득 찬 감정을 거침없이 자연스럽게 토로한 것이 특징이다. 그의 산문은 때로는 아주 논리적이고 때로는 지극히 서정적이다. 그의 의론(議論) 산문은 형상감 넘치는 비유로 논리가 더없이 명쾌하고, 그의 서정 산문은 자신의 정서와 영감을 거리낌 없이 그려 내고 있다. 그는 유불도(儒佛道) 사상을 두루 통섭한 폭넓은 사상의 소유자였던 만큼 그의 산문 역시 유가 사상에 치우치지 않고 다양하고 균형 잡힌 철리를 지니고 있다.
소동파의 산문은 약 4000편에 달하는데 이 ≪소동파산문선≫은 ≪사고전서(四庫全書)≫에 수록되어 있는 ≪동파전집≫에서 겨우 23수를 선정한 뒤 창작 시기별로 정리해 번역하고 주해했다. 가마솥의 국을 다 먹어 보아야만 솥 전체의 국 맛을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여기저기서 한 숟가락씩 몇 군데만 떠먹어 보아도 솥 전체의 국 맛을 알 수 있다면 비록 물고기 비늘 하나만큼의 비중도 안 되는 적은 수일지라도 이것을 음미해 보는 것으로 소동파 산문의 전모를 가늠해 보는 것이 터무니없는 일은 아닐 듯싶다.


☑ 책 속으로

·≪서경≫에 이르기를 “죄가 확실하지 않을 때는 가볍게 처벌하고 공이 미심쩍을 때는 후하게 포상할지니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는 차라리 원칙에서 좀 벗어나는 편이 나은 것이다”라고 했다. 아아! 이것은 더할 데 없이 훌륭한 말씀이다. 상을 줄 수도 있고 상을 안 줄 수도 있을 때 상을 주는 것은 지나치게 인자한 것이고, 벌을 줄 수도 있고 벌을 안 줄 수도 있을 때 벌을 주는 것은 지나치게 정의로운 것이다. 인자함은 지나쳐도 군자로서 문제가 없지만 정의로움이 지나치면 그것이 발전해 잔인한 사람이 된다. 그러므로 인자함은 지나쳐도 되지만 정의로움이 지나쳐서는 안 된다.

·나의 글은, 만 섬이나 되는 많은 샘물이 땅을 가리지 않고 여기저기서 마구 솟아 나와 평지에서는 막힘없이 콸콸 흘러서 하루에 천 리를 가는 것도 어렵지 않고, 굽이진 바위를 만나면 그 모양대로 구부러져 형체를 이루지만 어째서 그렇게 되는지는 알 수 없는 것과 같다. 알 수 있는 것은 항상 가야만 할 곳으로 가고 항상 멈추지 않을 수 없는 곳에서 멈춘다는 것이다. 단지 이러할 뿐이다. 그 밖의 것은 나 자신도 알 수가 없다.

·대나무가 처음 생길 때에는 한 치의 싹에 불과하나 마디와 잎이 그 속에 다 갖추어져 있다. 매미의 배나 뱀의 비늘 모양에서 칼을 열 길이나 되게 뽑아 놓은 모양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것이 생기면서부터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대나무를 그리는 사람들은 한 마디 한 마디 그리고 한 잎 한 잎 그려 모으니 어찌 더 이상 참다운 대나무가 존재하겠는가? 그러므로 대나무를 그릴 때는 반드시 마음속에 완성된 상태의 대나무를 구상한 다음, 붓을 잡고 오랫동안 그것을 응시하다가 그리고 싶은 부분이 보이면 얼른 일어나 붓을 휘둘러 단숨에 끝내야 한다. 자기가 본 것을 쫓기를 마치 토끼가 나타난 것을 보고 매가 덮치듯 해야지, 조금이라도 늦추면 그리려는 대상이 사라져 버린다. 여가(與可)가 나에게 이렇게 가르쳤다.

·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이 해가 어떻게 생겼는지 몰라서 눈 있는 사람에게 물었다. 어떤 사람이 “해의 형상은 구리 쟁반과 같소”라고 하자 쟁반을 두드려 그 소리를 들었다. 뒷날 종소리를 듣고는 그것을 해라고 생각했다. 또 어떤 사람이 “해의 빛은 초와 같소”라고 하자 초를 더듬어서 그 형상을 가늠했다. 뒷날 피리를 만져 보고는 그것을 해라고 생각했다. 해는 역시 종이나 피리와는 거리가 멀지만 눈먼 사람이 그 차이를 모르는 것은 그가 직접 본 적 없이 다른 사람에게 물어서 알려고 했기 때문이다. 도는 해보다 더 파악하기 어려우므로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것이 눈이 먼 것과 다를 리가 없다. 잘 아는 사람이 비록 절묘한 비유로 친절하게 일러 준다고 할지라도 해를 쟁반이나 초에 비유해 설명해 주는 것보다 나을 수가 없다. 쟁반에서 종으로, 초에서 피리로, 이렇게 돌려 가면서 형용한다면 어찌 끝이 있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서 도를 논하는 사람 중에는 자신이 본 것에 근거해 말하는 사람도 있고 보지도 않고 억측해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모두 도를 추구하는 잘못된 방법이다. 그렇다면 도는 끝내 추구할 수 없는 것인가?


☑ 지은이 소개

소식(蘇軾, 1036∼1101)
소동파(蘇東坡, 1036∼1101)는 북송(北宋) 인종(仁宗) 경우(景祐) 3년(1036) 12월 19일 미주(眉州) 미산현(眉山縣, 지금의 쓰촨성 메이산시) 사곡행(紗縠行)에서 태어났다. 그의 본명은 식(軾)이고 자(字)는 자첨(子瞻) 또는 화중(和仲)이며, 동파(東坡)는 그의 호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본명 대신 호를 주로 사용해 왔다.소동파는 송시의 성격을 확립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한 대시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으로 손꼽히는 대문장가였고 중국문학사상 처음으로 호방사(豪放詞)를 개척한 호방파의 대표 사인(詞人)이었다. 그는 또 북송사대가로 손꼽히는 유명 서예가이기도 했고 문호주죽파(文湖州竹派)의 주요 구성원으로서 중국 문인화풍을 확립한 뛰어난 화가이기도 했다. 한마디로 말해서 그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 천재 예술가요 못하는 것이 없었던 팔방미인으로서 그가 세상을 떠난 지 천 년이 다 돼 가는 지금까지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중국문예사상 가장 걸출한 인물이었다.


☑ 옮긴이 소개

류종목
편역자 류종목(柳種睦)은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학석사 학위와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대구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를 거쳐 현재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 및 역서로 ≪소식사연구≫·≪당송사사≫·≪여산진면목≫·≪논어의 문법적 이해≫·≪송시선≫·≪범성대시선≫·≪팔방미인 소동파≫·≪육유시선≫·≪소동파시선≫·≪소동파사선≫·≪소동파사≫·≪당시삼백수 1, 2≫·≪정본완역 소동파시집 1, 2≫ 등이 있다.


☑ 목차

형벌과 포상을 지극히 충후하게 함에 관해 논함(刑賞忠厚之至論) ··················3
남행전집서(南行前集敍) ·············12
유후론(留侯論) ··················15
봉상 태백산의 기우제 축문(鳯翔太白山祈雨祝文) ··25
희우정기(喜雨亭記) ···············28
능허대기(凌虛臺記) ···············34
아내 왕씨 묘지명(亡妻王氏墓誌銘) ·········39
구양문충공 영전에 올리는 제문(祭歐陽文忠公文) ··45
후기국부(後杞菊賦) ···············50
초연대기(超然臺記) ···············56
해에의 비유(日喩) ················63
호주 부임 보고서(湖州謝上表) ···········69
문여가가 그린 운당곡의 누운 대(文與可畫篔簹谷偃竹記) ·····················74
방산자전(方山子傳) ···············83
적벽부(赤壁賦) ··················89
후적벽부(後赤壁賦) ···············97
승천사에서의 밤놀이(記承天寺夜遊) ········102
황주안국사기(黃州安國寺記) ···········104
돼지고기 찬가(豬肉頌) ·············109
석종산기(石鐘山記) ···············111
영리한 쥐(黠鼠賦) ················118
사민사 추관에게 보내는 편지(與謝民師推官書) ··123
문설(文說) ···················132
해설 ······················135
지은이에 대해 ··················152
옮긴이에 대해 ··················161

2013년 1월 16일 수요일

비평적 의식




도서명 : 비평적 의식(La conscience critique)
지은이 : 조르주 풀레(Georges Poulet)
옮긴이 : 조한경, 이현진
분야 : 수필비평
출간일 : 2013년 1월 15일
ISBN : 978-89-6680-639-3 03800
28,000원 / 462쪽



☑ 책 소개

≪비평적 의식≫은 책과 작가를 대하는 새로운 방법론에 눈을 뜬 조르주 풀레의 비평서다. 제1부에서는 스탈 부인부터 롤랑 바르트까지 열여덟 명의 비평가가 행한 현대 프랑스 문학비평의 방법론을 분석한다. 제2부에서는 자신의 비평 방식을 논한다. “저자의 사고를 내부에서 다시 한 번 느끼고, 생각하고, 상상함으로써 저자의 사고와 일치하려는” 비평가가 여기 있다.


☑ 출판사 책 소개

독자의 의식과 작가의 의식이라는 두 의식의 일치!
독자와 작가의 의식의 일치는 조르주 풀레와 함께 활동한 소위 주네브학파 비평가들의 중심 주제다. 스위스 주네브를 본거지로 삼아 현상학과 실존주의에 근거한 비평을 전개한 주네브학파 비평가와, 주네브에 근거를 두지는 않았지만 이들과 긴밀한 관련을 맺고 활동을 같이한 이론가들에게 공통되는 특징은 저자의 의식을 자신의 마음속에 자리 잡게 하는 데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 할 일은 자아를 버림으로써 완전한 중립성과 개방성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비평가는 문학작품 속에 자신을 함몰함으로써 언어에서 드러나는 의식과 완전히 동화 또는 융합될 정도가 되어야 한다. 비평 대상은 텍스트 안에 복제되어 있는 저자의 독특한 의식일 뿐, 작품 외적인 것은 배제된다. 그래서 이 학파에 속한 비평가들은 비평을 객관적 과학으로 여기기보다는 문학에 대한 문학으로 간주한다.

자신의 의식에 대한 비평
이 책은 비평가에게 두 가지를 경계하라고 한다. 하나는 작가와 필적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작가나 작품이 아닌 자기 스스로에게 도취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코기토다. 세계에 대한 작가의 해석과 재구성을 통한 작가 의식의 추적은 다음 일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자신과의 접촉이다. 따라서 조르주 풀레에게 진정한 비평이란 근본적으로 비평가 자신의 코기토, 즉 자신의 의식에 대한 비평이다.

스탈 부인부터 롤랑 바르트까지
조르주 풀레에 따르면, 올바른 비평 의식을 가진 비평가는 19세기에 나오기 시작하며, 그 기원은 스탈 부인이다. 그리고 뒤를 이어 샤를 보들레르, 샤를 뒤보스, 롤랑 바르트까지 열여덟 명의 비평가를 천착한다. 그 부분이 제1부다. 제2부는 현상학에 관한 소회다. 전반부에서는 ‘비평적 의식의 현상학’을, 후반부에서는 ‘자아의식과 타자의식’을 언급한다. 제2부는 전체적으로 비평가로서 자신의 작업 방식에 대한 술회라고 말할 수 있다. 동시에 제1부에서 다룬 비평가들에 대해 찬사를 보내거나 의혹을 품으며 다시 한 번 정리하고 있다.


☑ 책 속으로

어떤 작가를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자기 자신을 먼저 알아야 한다. 말하자면, 작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에게서 나 자신을 재인식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가 내게 전하는 감정을 차근차근 전체적으로 되찾을 수 있어야 한다. 작가에 대한 인식은 찬사만으로 그칠 수 없다. 작가에 대한 인식은 과거의 독서를 통해 나의 내부에 퇴적된 다양한 감정이 추억으로 되살아날 수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 20∼21쪽.

어떤 인물의 말과 행동을 인지해서, 그것들을 모방해 인물과 동화되는 사람을 배우라고 한다면, 시인의 말과 사고를 인지해서 그것들을 재차 되새김으로써 시인과 동화되는 사람을 비평가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 39쪽.

진열장에 꽂힌 책들은 내게 구매자가 나타나 선택해 주기를 안타깝게 기다리는 시장의 동물들과 다르지 않은 것처럼 여겨진다. 의심할 여지 없이 동물들은 자신들의 운명이 인간의 선택에 달려 있음을 안다. 인간이 개입하는 순간, 동물은 사물 취급을 모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책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독자가 관심을 보이기 전까지 책은 모멸을 안은 채 자기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을 수밖에 없다. 동물처럼 과연 책도 인간이 개입하는 순간 새로운 존재 형태를 부여받게 되며, 그런 사실을 깨달을까? 나는 그렇게 본다. 우리는 이따금 책들이 희망에 차 있음을 본다. ‘나를 읽어 주시오’라고 금방이라도 말하는 듯하다. 나는 그들의 요구를 저버릴 수가 없다. 그렇다! 책은 더 이상 사물이 아니다.
- 395∼396쪽.

나는 스무 살 때부터 소위 비평가의 소명을 절감했다. 문학은 푸근한 정신적 풍요로움으로 나를 감싸는 듯했다. 그 느낌은, 뭐랄까, 일종의 내적 심오성으로서, 그 그늘에 잠기면, 다른 곳에서는 찾을 수 없는, 오직 내가 떠안을 수밖에 없는 감정과 사유의 세계가 열린다. 문학은 내게 생생하고, 다양한 모습을 지녔으나 무질서한 현전이었고, 그래서 내게 그것이 당연히 가져야 할 생생한 질서를 부여해 달라고 요구하는 듯했다.
- 430∼431쪽.

어떤 문학작품이든 문학작품은 쓴 사람의 자아의식 행위를 전제로 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사유의 물결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 그치지 않는다. 작가는 사유의 물결을 받아들이되 주체가 되어 그렇게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나는 생각한다’라는 말은 ‘나는 나를 사고의 주체로서 파악한다’라는 말이다. 내 안에 흘러든 사유는 내 존재의 밑바닥을 적시고 그 존재를 시원하게 해 주는데, 그렇다고 해서 거기에 어떤 칸막이가 없는 것은 아니다. 나는 내 안에 전개되는 현상들을 지켜본다.
- 436쪽.


☑ 지은이 소개

조르주 풀레(Georges Poulet, 1902∼1991)
주네브학파의 리더 조르주 풀레는 벨기에 리에주 근처 셰네에서 출생했다. 리에주대학교에서 법률과 문학을 전공하고, 에든버러대학교에서 강사를, 볼티모어의 존스홉킨스대학교(1952∼1957)와 취리히대학교(1957∼1969)에서 프랑스 문학 교수를 지냈다. 시간·공간이 문학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그 의의를 천착한 조르주 풀레는 비평 업적으로 20세기 사상의 흐름에 가장 크게 기여했다.
몰리에르, 프루스트, 플로베르, 몽테뉴, 르네 샤르, 보들레르 같은 작가들을 통해 그가 소위 ‘코기토’라고 부르는 의식과 시간을 연구한 ≪인간의 시간 연구≫, ≪내적 거리≫, ≪출발선≫, ≪순간의 척도≫는 시간에 관한 4부작이라고 불린다. 그중 ≪인간의 시간 연구≫는 1950년 생트뵈브상(賞)을 받았고, ≪내적 거리≫는 아카데미 프랑세즈가 수여하는 뒤르숑 루베상(賞)과 문학비평 대상을 받았다.


☑ 옮긴이 소개

조한경
서울대에서 문학 학사·석사·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현재 전북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연암재단의 지원으로 프랑스 리옹3대학교에서, 학술재단의 지원으로 캐나다 토론토대학교에서 교환교수 연구 기간을 가졌다. 한국어 서적의 프랑스어 번역으로는 ≪열두 띠 이야기≫, ≪쥐돌이는 화가≫가 있고 프랑스어 서적의 한국어 번역으로는 ≪미덕이란 무엇인가≫(앙드레 콩트 스퐁빌), ≪에로티즘≫(조르주 바타유), ≪저주의 몫≫(조르주 바타유), ≪어떻게 인간적 상황을 벗어날 것인가≫(조르주 바타유), ≪에로티즘의 역사≫(조르주 바타유), ≪소수집단의 문학을 위하여≫(질 들뢰즈), ≪초현실주의≫(이본 뒤플레시스) 등이 있다. 저서로는 ≪사실주의≫, ≪변혁의 시대와 문학≫(공저), ≪서양 문예사조≫(공저), ≪한국어 한자−불어 사전≫(공저), ≪라모의 조카≫, ≪프랑스 현대문학의 이해≫(공저) 등이 있다. 논문으로는 <절대인간 사드: 부정의 극단, 극단의 부정>, <미술 비평가 디드로와 비평적 태도>, <바타이유와 에로티즘>, <리베르탱 소설 연구: 에로티즘 또는 허무주의 철학> 등 다수가 있다.

이현진
전북대학교 학사·석사를 마친 뒤 프랑스 파리10대학에서 박사 준비 과정(D.E.A.)을 수료했다. 그 후 다시 전북대에 돌아와 <볼테르의 작품에 나타난 세노그라피 연구: 시공간적 배경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전북대학교 불문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다. 그 외 논문으로는 <볼테르의 희극소설에서 여성의 지위>, <볼테르의 작품에 나타난 ‘공간적 배경’의 사용> 등이 있다.


☑ 차례

제1부
1. 서문
2. 스탈 부인
3. 보들레르
4. 프루스트
5. ≪신프랑스평론≫ 비평가들
6. 샤를 뒤보스
7. 마르셀 레몽
8. 알베르 베갱
9. 장 루세와 가에탕 피콩
10. 조르주 블랭
11. 가스통 바슐라르
12. 장 피에르 리샤르
13. 모리스 블랑쇼
14. 장 스타로뱅스키
15. 사르트르
16. 롤랑 바르트

제2부
1. 비평적 의식의 현상학
2. 자아의식과 타자의식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2012년 12월 20일 목요일

사라시나 일기



도서명 : 사라시나 일기
更級日記
지은이 : 다카스에의 딸(孝標女)
옮긴이 : 정순분·김효숙
분야 : 수필비평
출간일 : 2012년 12월 20일
ISBN : 978-89-6680-623-2 03830
18,000원 / A5 / 304쪽


 
 
☑ 책 소개
천 년 전, 차도 여관도 없던 시절, 한 소녀가 가족과 함께 장장 500킬로미터에 이르는 먼 길을 떠난다. 제대로 된 지도조차 없는 여행이 힘들 법도 하건만, 소녀의 시선은 호기심과 동경으로 가득 차 있다. 그렇게 시작된 일기는 만년이 될 때까지의 삶을 사실적으로 기록한다. 기행, 문학 감상, 개인 생활 기록이 고루 들어 있다. 헤이안 시대의 사회와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것은 물론, 한 소녀의 성장 기록을 통해 일기문학의 진수인 반성과 자기 성찰을 맛볼 수 있다.
 
 
☑ 출판사 책 소개
일본의 대표적인 고전의 하나로 헤이안 시대 여류 일기 문학이다. 1008년에 태어난 다카스에의 딸이 11세부터 52세까지의 인생을 되돌아보며 쓴 회고록이다. 헤이안 시대 ‘여자의 일생’을 쓴 작품으로는 청령 일기사라시나 일기가 있는데 청령 일기가 결혼 후 일부다처제 속에서 번민하는 자아를 그렸다면, 사라시나 일기는 소녀 시절에 미래에 대한 부푼 꿈을 안고 지내는 얘기부터 현실 속에서 그 꿈이 무너져 가는 과정, 그리고 결혼 후에 신앙생활에 몰두하는 모습까지 거의 모든 시기를 망라한 일생을 담담한 필치로 그리고 있다. 일본 문학사에서 헤이안 시대 여성의 일생을 가장 자연스럽고 안정된 문체로 그려 내어 현대인이 가장 공감할 수 있는 작품으로 꼽히고 있으며 서양에서도 회고록에 가장 걸맞은 작품의 선구적인 예로 소개되고 있다.
 
* 함께 읽으면 좋은 책
헤이안 일기문학의 효시 ≪기노 쓰라유키 산문집≫(기노 쓰라유키, 강용자)
헤이안 여류 일기문학의 효시 ≪청령 일기≫(미치쓰나 어머니 / 정순분)
헤이안 수필문학의 효시 ≪마쿠라노소시≫(세이쇼나곤 / 정순분)
헤이안 최초의 작가 일기 ≪무라사키시키부 일기≫(무라사키시키부 / 정순분)
세계 최초 장편소설 ≪겐지 이야기≫(무라사키시키부 / 김종덕)
≪겐지 이야기≫에 대한 최고의 해설서 ≪겐지 이야기를 읽는 요령≫(모토오리 노리나가 / 정순희)
헤이안 최초의 칙찬 와카집 ≪고금와카집≫(기노 쓰라유키 외 / 최충희)
일본 최초의 시가집 ≪만엽집≫(유라쿠 천황 외 / 고용환, 강용자)
 
 
 
☑ 책 속으로
 
옛날 와카에서는 히타치 지방을 동쪽 길의 끝자락이라고 했는데 나는 그런 히타치 지방보다도 더 구석진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다. 그렇게 시골뜨기인 내가 어찌 된 영문인지 세상에 모노가타리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어떻게 해서든 꼭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할 일 없는 낮이나 밤에 언니와 새어머니가 조금씩 해 주는 모노가타리나 히카루겐지 님 얘기를 듣고 더욱 갈망하게 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어른이라고 해도 그 긴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외워서 들려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에 나는 약사여래 등신불을 만들어 모셔 놓고 불공을 드리기 시작했다. 손을 깨끗한 물에 씻고는 다른 사람들이 안 볼 때 살짝 그 앞에 가서 “하루빨리 헤이안쿄에 가서 모노가타리를 마음껏 읽게 해 주시기를 바라나이다” 하고 지성으로 기도를 드렸다. 매번 이마가 바닥에 닿을 정도로 빌고 또 빌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 열세 살이 되던 해에 드디어 헤이안쿄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카다에서는 17일 새벽에 길을 나섰다. 도중에 꽤 깊은 강을 하나 건너게 되었는데 배 안에서 어떤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옛날 이 시모쓰사 지방에 마노 장자라는 사람이 삼베를 천 필이고 만 필이고 짜서 헹굼질을 한 다음 집 안에 널곤 했는데 어느 때인지 그 집이 송두리째 강물 속에 잠겨 버렸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강을 건너는데 그 집 기둥인지 아닌지 큰 기둥 네 개가 물속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 기둥을 보고 사람들이 와카를 한 수씩 읊어서 나 또한 마음속으로 읊조려 보았다.
 
다 썩지 않고 서 있는 이 강 기둥 없었더라면
어찌하여 옛 흔적 만날 수 있었으리
朽ちもせぬこの川柱のこらずは
昔のあとをいかで知らまし
 
12월 25일에 내친왕가에 불명회 행사가 있어서 그날 밤만이라도 출사해야겠다고 마음먹고 나갔다. 40명이 넘는 여방들이 겉과 안 모두 흰색으로 된 우치키 겹옷 위에 진한 홍색의 가이네리를 입고 대령해 있었다. 나는 내친왕가에 소개해 준 사람 뒤에 숨어서 많은 여방들 사이에서 얼굴만 내밀고 있다가 새벽녘에 물러 나왔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하늘을 보니 끝없이 떨어지는 눈발 사이로 차가운 달이 떠있고 그 달빛이 내 진한 홍색의 가이네리 소매 위를 비추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달빛이 눈물에 젖어 있다는 오래된 와카 가 떠올랐다. 그래서 이렇게 읊조렸다.
 
한 해 저물고 밤은 이미 새벽녘 교교한 달빛
내 소매에 비치는 이 시간 허망해라
年はくれ夜はあけがたの月かげの
袖にうつれるほどぞはかなき
 
결혼하고 난 다음에는 이런저런 일들에 파묻혀 살다 보니 모노가타리 같은 것은 다 잊고 지냈다. 오로지 현실적인 생활에만 전념하려고 애쓰다 보니 점차 마음도 안정되어 갔다. 그리고 ‘오랜 세월 무위로 지내면서 왜 근행이나 참배를 하지 않았단 말인가? 지금까지 내가 미래에 걸었던 기대는 현실 세계에는 없는 허황한 것들뿐이었다. 히카루겐지 님처럼 멋진 사람이 세상에 있겠는가 말이다. 가오루 님이 우지에 몰래 숨겨 놓은 우키후네같이 복 많은 사람은 애시당초 존재하지도 않았다. 도대체 그동안 나는 무슨 생각으로 살아온 것일까? 어쩌면 그렇게도 세상을 모르고 허상만 좇고 살았단 말인가?’ 하고 마음속 깊이 반성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렇게까지 생각하면서도 착실한 생활을 하지 않은 것은 전과 다를 바가 없었다. 내 의지가 그것을 바꿀 만큼 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 지은이 소개
다카스에의 딸(菅原孝標女, 1008∼?)
지은이는 스가와라노 다카스에의 딸(菅原孝標女, 1008∼?)이며 헤이안 시대 중기의 대표적인 여류 작가다. 아버지 스가와라노 다카스에는 학문의 신으로 유명한 스가와라노 미치자네(菅原道真)의 5대손이며, 어머니 후지와라노 도모야스의 딸(藤原倫寧女)은 ≪청령 일기(蜻蛉日記)≫의 저자인 미치쓰나 어머니(道綱母)와 이복 자매지간이다. 어렸을 때부터 학문과 문학적인 환경에서 자란 지은이는 10세부터 13세까지 아버지의 부임지 가즈사 지방에서 모노가타리 세계를 동경하며 13세 되던 해 헤이안쿄로 귀경해 모노가타리 책 읽기에 몰입하는 문학소녀로 성장해 간다. 32세에 고스자쿠(後朱雀) 천황의 딸 유시(祐子) 내친왕의 여방(女房)으로 출사하지만 이듬해 바로 다치바나노 도시미치(橘俊通)와 결혼해 아들 나카토시(仲俊)를 출산한다. 34세 때 남편이 시모쓰케 지방에 부임하게 되는데 그곳에는 동행하지 않고 다시 유시 내친왕에게 출사해 궁중 생활을 하게 된다. 이때 미나모토노 스케미치(源資通)라는 풍류남과 교제한다. 이후에는 점차 가정생활에 전념하면서 현실 세계에 눈을 뜨고 모노가타리 세계보다는 신앙생활에 정진하고자 노력한다. 52세에 남편과 사별하고 ≪사라시나 일기≫를 집필한 것으로 보인다. 이 ≪사라시나 일기≫ 외에 ≪한밤중 잠 깨어(夜の寝覚)≫, ≪하마마쓰 중납언 모노가타리(浜松中納言物語)≫ 등이 그녀의 작품이라는 설도 있다.
 
☑ 옮긴이 소개
 
정순분
정순분은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어과를 졸업했으며 일본 와세다대학교 대학원 문학연구과(일본 문학 전공)에서 일본의 대표적인 고전문학인 헤이안 문학을 연구, ≪마쿠라노소시≫에 대한 논문으로 석사 학위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귀국 후 한국외국어대학교, 고려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등에서 강사로 활동하다가 현재 배재대학교 일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7년 9월부터 2008년 8월까지 미국 플로리다대학교 아시아어문학부 객원교수로 있었다. 저서에 ≪枕草子大事典≫(공저, 2001), ≪枕草子 表現の方法≫(2002), ≪枕草子와 平安文學≫(2003), ≪平安文学の風貌≫(공저, 2003), ≪交錯する古代≫(공저, 2004), ≪日本古代文学と東アジア≫(공저, 2004), ≪일본고전문학비평≫(2006), ≪平安文学の交響≫(공저, 2012), 옮긴 책에 ≪돈가스의 탄생≫(2006), ≪마쿠라노소시≫(2008), ≪청령 일기≫(2009), ≪무라사키시키부 일기≫(2011) 등이 있으며 그 외에 헤이안 문학에 관련된 다수의 논문이 있다.
 
김효숙
김효숙은 일본 와세다대학교에서 제1문학부(일본 문학 전공)를 졸업하고 동대학교 대학원 문학연구과(일본 문학 전공)에 진학해 ≪겐지 모노가타리≫를 중심으로 헤이안 시대의 문학작품을 연구하며 석사 학위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귀국 후 세종대학교, 명지대학교, 배재대학교, 동남보건대학 등에서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에 ≪日本古代文学と東アジア≫(공저, 2004),≪平安文学の古注釈と受容≫(공저, 2008), ≪源氏物語の言葉と異国≫(2010), ≪東アジア世界と中国文化≫(공저, 2012), ≪平安文学の交響≫(공저, 2012) 등이 있으며 이 외에 헤이안 문학과 관련된 논문이 다수 있다.
☑ 목차
 
1부 헤이안쿄로 향하는 귀경길
1. 가즈사 지방을 떠나다··············3
2. 가즈사 지방에서 시모쓰사 지방으로·······10
3. 출산한 유모와 상봉···············15
4. 무사시 지방에 내려오는 전설··········20
5. 스루가 지방 아시가라야마 산에서 만난 유녀····27
6. 후지가와 강에서 들은 신기한 이야기·······35
7. 덴류가와 강 근처에서 요양···········40
8. 오와리 지방에서 헤이안쿄까지 여정·······46
 
2부 헤이안쿄 집에서 보낸 나날
9. 모노가타리를 읽고 싶은 마음, 새어머니와 이별··53
10. ≪겐지 모노가타리≫ 탐독···········58
11. 집 뜰에서 느끼는 자연, 모노가타리에 파묻혀 지내는 나날····················66
12. 다른 집에서 기거, 기이한 고양이의 방문·····70
13. 장한가 이야기, 13일 밤의 대화·········75
14. 언니의 죽음, 애도의 와카···········82
15. 아버지의 지방관 임용 탈락, 히가시야마 산에서 보낸 나날····················88
16. 히가시야마 산의 나날, 귀경 후 나날·······96
17. 새어머니의 ‘가즈사’가 들어간 이름·······101
18. 아버지의 히타치 지방관 발령·········105
19. 우즈마사 절에 참배, 아버지와 증답·······110
20. 하쓰세사에 거울 공양············115
21. 아버지의 귀경, 가족의 재회··········123
 
3부 출사의 기록
22. 어머니의 출가, 아버지의 은퇴, 다카스에의 딸의 출사·····················129
23. 불명회에 출사, 사가에 돌아와 결혼·······136
24. 모노가타리의 꿈 좌절, 내친왕가에 재출사···142
25. 겨울비 내리는 밤에 스케미치와 대화······150
 
4부 참배의 기록
26. 안정된 결혼 생활, 이시야마사 참배·······165
27. 대상회의 결제를 뒤로한 채 하쓰세사에 참배···170
28. 구라마사 참배, 이시야마사와 하쓰세사에 다시 참배······················179
29. 현재 생활에 만족하고 자식에게 꿈을 가지며 친구와 증답····················185
30. 잠시 이즈미 지방에 체류···········192
 
5부 만년의 기록
31. 병에 걸려 자식의 장래를 걱정·········199
32. 남편의 죽음에 망연자실하며 불행한 인생을 회고·204
33. 아미타불의 내영을 꿈꾸며 보내는 만년·····209
34. 석양빛 속에 오바스테야마의 나날을 회상····212
 
 
부록
헤이안 여류 일기 문학의 흐름···········219
≪사라시나 일기≫의 귀경 여행··········238
참고 도해····················269
연표······················277
 
해설······················287
지은이에 대해··················300



옮긴이에 대해··················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