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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7월 8일 수요일

온정균 사선 溫庭筠 詞選


도서명 : 온정균 사선 溫庭筠 詞選
지은이 : 온정균
옮긴이 : 이지운
분야 : 문학
출간일 : 2009년 10월 15일
ISBN : 978-89-6406-361-3
가격 : 12,000원
규격 : A5    제본 : 양장본    쪽 : 127쪽

핵심 내용 80% 발췌
초역



200자 핵심요약

중국 문학사에서 사(詞)가 자리매김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온정균의 사를 국내에서 처음으로 소개한다. 그의 완약(婉約)하고 염려(艶麗)한 사의 성격은 사의 정격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의 음악적·문학적 재능은 모두 ‘사’에 녹아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그의 자유분방한 삶과 유희, 재주 많고 오만한 시인이 그려내는 당나라 여인과 그윽한 규방을 눈앞에 그려보길 권한다. 


☑ 책 소개

사(詞)란 무엇인가
사(詞)는 시와 비슷한 운문으로, 당 중엽에 민간에서 발생해 송대에 가장 번성했던 문학 양식이다. 민간 가요의 가사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장단이 일정치 않아 ‘장단구(長短句)’라 고도 하며, 초기에는 가창할 수 있었던 근체시의 변형이라고 여겨 ‘시여(詩餘)’라고 부르기도 했다. 사는 음악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사를 창작할 때 일정하게 정해진 악보인 사조(詞調)에 가사를 채워 넣는 방식으로 지어져서, 사를 짓는 것을 두고 가사를 소리에 맞추어 메운다는 뜻의 ‘전사(塡詞)’, 혹은 ‘의성(依聲)’이라 했다. 
사는 시와는 달리 음악과 긴밀한 관계였으므로 유희적 성격이 매우 강했다. 따라서 그 내용도 술, 여색, 애정, 희롱에 대한 것이 많았고, 서정적이고 감상적인 특성이 강해 깊고 섬세한 내면을 완곡하고 함축적으로 표현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처음에는 문사들에게 그리 환영받지 못한 장르였지만, 당나라 말엽에 이르러 문인들도 관심을 갖게 되었고, 송대에는 공전의 번영을 누리게 되었다. 사가 대량으로 창작됨에 따라 염정적이고 개인적인 신세타령에서 벗어나 시국에 대한 개탄이나 국가의 흥망성세 등까지도 읊게 되어 점차 시와 비슷한 성격을 띠게 되었다.

온정균의 사(詞)
온정균은 만당(晩唐)의 시인이자 사인인데, 특히 그의 사는 중국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역대의 평론가는 그를 ‘화간파(花間派)의 비조(鼻祖)’라고 평가했는데, 그것은 사의 풍격이나 성격을 규정짓는 데 큰 역할을 한 ≪화간집(花間集)≫에 온정균의 사가 가장 많이 수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는 본래 민간에서 발생했지만, 온정균의 손에서 단련되어 문사들의 관심을 받게 되었고, 이후 오대와 송대 사인들이 경쟁적으로 창작하게 되어 중국문학의 주요 장르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온정균 이전에 몇몇 시인들이 민간사 형식을 빌려 사를 짓기도 했지만, 온정균은 음악적 재능을 살려 여러 사조를 만들어냈고, 문학적 재능을 쏟아 누구보다도 많은 사를 창작해 낭만적이고 유미적인 감성을 표현했다.
온정균 사의 주제는 대략 여성의 자태, 사랑, 그리움, 이별과 원망으로 한정된다. 편협하다는 느낌이 있을 수 있지만, 이는 온정균 개인의 성향과 사의 초기 성격에 기인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온정균의 성격에 관한 일화는 여럿 전하는데, 대체로 그의 낭만적인 성격과 방탕한 품행이 주를 이룬다. 온정균이 처음 장안에 왔을 때에는 많은 사람이 그의 출중한 재주를 존중했으나, 그는 자신의 재주를 믿고 주색에 빠져 염려한 문사만을 짓거나 권력자를 비꼬거나 비판하는 일을 일삼아 금방 미움을 받게 되었다. 과거시험장에서도 자신의 재주를 자랑하고자 여러 번 부정행위를 저질렀고, 승상이나 권력자, 심지어 왕에게도 방자하게 구는 등, 본래부터 상대방의 기분을 맞추거나 자신을 낮추는 데 소질이 없었던 것 같다.


☑ 책 속으로

小山重叠金明滅, 鬓雲欲度香腮雪. 懶起畵蛾眉, 弄妝梳洗遲. 

병풍에 그려진 작은 산에 금빛은 반짝이고,
흐트러진 머리는 눈같이 희고 향기로운 뺨을 덮고 있네.
느지막이 일어나 눈썹을 그리고,
화장을 하고 천천히 머리를 빗네.


☑ 지은이 소개

온정균(溫庭筠, 801?~866?)
온정균(801?~866?)은 당나라 말엽의 시인이자 사인(詞人)으로, 본명은 기(岐), 자는 비경(飛卿)이며, 태원(太原) 기[祁: 지금의 산시성(山西省) 치현(祁縣)]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거문고와 피리를 잘 다루었고, 영민하고 문재(文才)가 뛰어났으며 글을 잘 지었다. 그는 ‘온팔차(溫八叉)’ ‘온팔음(溫八音)’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온정균이 과거시험장에서 8번 팔짱을 끼었다 풀자 팔운시(八韻詩)가 완성되었다 하여 붙여진 것이다. 그는 이렇게 재주가 뛰어났지만, 과거시험에는 누차 낙방했다.
함통 6년(865) 온정균은 국자조교(國子助敎)에 임명되어 국자감시(國子監試)를 관장했다. 그는 문장으로 사람을 판단하겠다는 기준을 제시했는데, 이것이 권세가와 귀족의 불만을 샀다. 또한 그가 시정을 비판하고 부패한 자를 폭로한 시문을 지은 것이 재상 등의 분노를 사서 결국 방성위(方城尉)로 폄관되었다. 이미 고령이었던 그는 함통 7년(866), 우울함 속에 죽고 말았다. 
온정균은 시와 사에서 모두 뛰어나, 시에 있어서는 이상은(李商隱)과 명성을 견주었고, 사에 있어서는 위장(韋莊)과 이름을 나란히 했다. 그의 시사는 대상의 천착에 뛰어났고, 색채미와 음률미가 있었다. 시는 개인의 조우, 시정에 대한 생각, 행려 중에 느낀 감회 등을 담고 있고, 사는 여인의 규정을 담아 섬세하고 정교한 작품이 많다.


☑ 옮긴이 소개

이지운
이지운은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서울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등의 시간강사를 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전임연구원으로 있다.
당시(唐詩)를 비롯하여 중국 고전시 전반의 시적 아름다움에 관심을 갖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 고전문학에 있어 여성의 창작과 그에 관련된 문화 현상에 대해 공부 중이다. 


☑ 차례

해설
지은이에 대해

01. 보살만(菩薩蠻)
02. 보살만(菩薩蠻)
03. 보살만(菩薩蠻)
04. 보살만(菩薩蠻)
05. 보살만(菩薩蠻)
06. 보살만(菩薩蠻)
07. 보살만(菩薩蠻)
08. 보살만(菩薩蠻)
09. 보살만(菩薩蠻)
10. 보살만(菩薩蠻)
11. 보살만(菩薩蠻)
12. 보살만(菩薩蠻)
13. 보살만(菩薩蠻)
14. 보살만(菩薩蠻)
15. 경루자(更漏子)
16. 경루자(更漏子)
17. 경루자(更漏子)
18. 경루자(更漏子)
19. 경루자(更漏子)
20. 경루자(更漏子)
21. 귀국요(歸國遙)
22. 귀국요(歸國遙)
23. 주천자(酒泉子)
24. 주천자(酒泉子)
25. 주천자(酒泉子)
26. 주천자(酒泉子)
27. 정서번(定西番)
28. 정서번(定西番)
29. 정서번(定西番)
30. 남가자(南歌子)
31. 남가자(南歌子)
32. 남가자(南歌子)
33. 남가자(南歌子)
34. 남가자(南歌子)
35. 남가자(南歌子)
36. 남가자(南歌子)
37. 하독신(河瀆神)
38. 하독신(河瀆神)
39. 하독신(河瀆神)
40. 여관자(女冠子)
41. 여관자(女冠子)
42. 옥호접(玉胡蝶)
43. 청평락(淸平樂)
44. 청평락(淸平樂)
45. 하방원(遐方怨)
46. 하방원(遐方怨)
47. 소충정(訴衷情)
48. 사제향(思帝鄕)
49. 몽강남(夢江南)
50. 몽강남(夢江南)
51. 하전(河傳)
52. 하전(河傳)
53. 하전(河傳)
54. 번녀원(蕃女怨)
55. 번녀원(蕃女怨)
56. 하엽배(荷葉杯)
57. 하엽배(荷葉杯)
58. 하엽배(荷葉杯)
59. 보살만(菩薩蠻)

옮긴이에 대해




2015년 7월 7일 화요일

맹자 孟子


도서명 : 맹자 孟子
지은이 : 맹가
옮긴이 : 장현근
분야 : 인문 > 인문 고전 문고 > 인문 고전 문고 기타
      인문 > 철학 > 중국 철학자 > 맹자
출간일 : 2009년 3월 15일
ISBN : 978-89-6228-320-4
가격 : 12,000원
규격 : A5    제본 : 양장본    쪽 : 131쪽



200자 핵심요약

동아시아 사람 가운데 맹자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맹자 사상의 정수가 담긴 이 책은 조기의 주석서에 입각한 고정적인 배치를 벗어나 여덟 개의 큰 주제를 놓고, 그 내용에 따라 재배치를 시도한 새로운 것이다. 지난 천 년간 우리의 사고와 생활 방식의 근간이 되어온 유교 사상의 주옥같은 가르침들이 담겨 있다.


☑ 책 소개

기존의 배치를 벗어난 새로운 시도
수많은 맹자 관련 서적이 있지만, 이 발췌 번역본에선 새로운 시도를 했다. 조기의 주석서에 입각한 기존의 배치를 벗어나 여덟 개의 큰 주제를 놓고 그 내용에 따라 재배치를 시도했다. 그동안 맹자 연구의 결과물들을 염두에 두면서 ‘본성’, ‘심’, ‘기’, ‘천’, ‘인의’, ‘도’, ‘군자’, ‘왕패’를 주제로 삼아 ≪맹자≫ 내에서 그와 관련된 주장들 일부를 장별로 다시 배치했다.

≪논어≫에 비견될 만한 책
우리 조상들은 아무리 궁벽한 시골에 살더라도 어른이 되면 공자님 말씀, 맹자님 말씀을 예로 들며 자식들을 훈계해 왔다. 그 맹자가 정계를 은퇴한 뒤 말년에 쓴 책이 바로 ≪맹자≫다. 맹자는 공자에 비견되기도 하고, ≪맹자≫는 ≪논어≫의 체제와 비슷하게 만들어져 있지만, 그렇게 된 것은 훨씬 후대의 일이다. 공자가 살아생전인 춘추시대에 벌써 수많은 나라에서 크게 명성을 얻은 탁월한 사상가였음에 비해 맹자는 전국시대의 뛰어난 여러 학자들 가운데 한 사람일 뿐이었다. 공자의 말이 ≪맹자≫에 벌써 최고의 가치를 지니며 인용되었던 데 비해, ≪맹자≫는 한나라 때 잠깐 유행하고 1000년이 흐른 뒤인 송나라 때 와서야 높은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정치적·사회적 이념으로 전면 수용한 유학은 송나라 대 이후의 것이므로 우리의 전통 속에서 맹자는 처음부터 성인의 모습으로 들어왔다고 볼 수 있다.

정치사사의 교과서
≪맹자≫는 사후에나 붙이는 시호가 보인다거나 맹자의 행동거지 등을 추측할 어떤 구절도 없는 등 논란이 있지만 대부분의 학자는 맹자가 말년에 제자들과 더불어 만든 책이라고 추측한다. 비록 사건별, 주장들의 난립 형식으로 구성되긴 했지만 책 전체를 볼 때에는 일관된 사유 체계를 읽을 수 있으며, 주장들 사이에 깊은 연관성과 구체성을 띠고 있다. 또한 격동의 정치 상황 속에서 ‘인의의 정치’로 시대 정치의 난맥상을 타개하려는 정치사상 교과서로서의 역할에 충실한 저작이다.


☑ 책 속으로

孟子曰: “乃若其情, 則可以爲善矣, 乃所謂善也. 若夫爲不善, 非才之罪也. 惻隱之心, 人皆有之; 羞惡之心, 人皆有之; 恭敬之心, 人皆有之; 是非之心, 人皆有之. 惻隱之心, 仁也; 羞惡之心, 義也; 恭敬之心, 禮也; 是非之心, 智也. 仁義禮智, 非由外鑠我也, 我固有之也, 弗思耳矣.

맹자가 말했다. “타고난 성정을 그대로 좇으면 누구나 선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이 내가 선하다고 말한 까닭이네. 선하지 않은 행위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건 타고난 성질이 잘못되었기 때문이 아니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사람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으며,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은 사람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으며, 공경하는 마음은 사람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으며, 옳고 그름을 구별하는 마음은 사람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다네. 측은지심은 인이고, 수오지심은 의이고, 공경지심은 예이고, 시비지심은 지이네. 인의예지는 외부에서 나를 녹이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본래부터 있던 것인데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고 있을 뿐이지.”


☑ 지은이 소개

맹가(孟軻, BC 372∼BC 289)
맹자의 본명은 가(軻)다. 그의 탄생 연도는 정확하지 않으나 대체로 서기전 372년에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289년에 몰했다. 노나라에 붙어 있는 추(鄒)나라 출신이며, 공자의 손자인 자사의 제자로부터 유학을 공부했다. 정확한 자는 전해지지 않고 있으며, ≪맹자≫의 내용 중 그의 아버지 상은 사의 예로 치르고, 그의 어머니 상은 대부의 예로 치렀다는 것으로 판단할 때 부유한 젊은 시절을 보낸 것 같지는 않다. 또한 어머니를 모시고 다니며 극진히 섬기고 말씀에 충실한 점으로 볼 때 어머니의 엄격한 교육 아래 성장한 듯하다. 40세가 넘어 정치 일선에 나섰는데, 주로 군주의 정책 고문 등을 담당했다. 책과 살림살이를 잔뜩 실은 수십 대의 수레에다 수백 명의 종자를 거느리고 이 나라 저 나라를 다니며 유세를 통해 자신의 주장을 전개했다. 그는 추, 노, 임, 제, 송, 설, 등, 위나라 등에 유세했는데, 제선왕으로부터 경의 벼슬을 제수받는 등 융숭한 대접을 받았으나 끝내 어진 정치를 실현하지 못하고 환갑 무렵 고향으로 돌아가 제자를 양성하며 말년을 보냈다.


☑ 옮긴이 소개

장현근(張鉉根)
대만(臺灣)의 중국문화(中國文化)대학교에서 ≪상군서(商君書)≫ 연구로 석사학위를, ≪순자(荀子)≫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유가 사상의 현대화, 동양 경전의 해석과 재해석, 자유ᐨ자본ᐨ민주에 대한 동양 사상적 대안 모색에 몰두하고 있다. 계간 <전통과 현대> 편집위원을 지냈으며, 현재 용인대학교 국제학부 교수다.
저서로는 ≪중국사상의 뿌리≫, ≪상군서: 난세의 부국강병론≫ 등 10여 권이 있고, 역서로는 ≪중국 정치사상사≫, ≪순자≫, ≪신어≫(지식을만드는지식) 등 10여 권이 있다. <사회철학으로서 현대유학의 행로>, <도덕군주론: 고대 유가의 성왕론> 등 40여 편의 한국어 논문과 <상앙(商鞅)의 군국주의 교육관>, <순자 사상 중 ‘해폐(解蔽)’·‘정명(正名)’의 정치적 의의> 등 6편의 중국어 논문이 있다.

2015년 5월 13일 수요일

백토기 白兎記


도서명 : 백토기 白兎記
지은이 : 미상
옮긴이 : 오수경
분야 : 인문 >중국 문학 >희곡
출간일 : 2009년 6월 15일
ISBN : 978-89-6228-394-5
가격 : 12,000원
규격 : A5    제본 : 양장본    쪽 : 129쪽



200자 핵심요약

시, 노래, 연기가 어우러진 중국 남방계 고전극인 남희는 조선 후기 서민들이 즐겼던 판소리처럼 민간에서 발생하여 서민들의 생활상을 대변하는 소재와 그들이 향유하던 악곡으로 이루어져 그들의 일상과 애환을 엿볼 수 있다. 그중 우리에게도 익숙한 소재의 <백토기>를 가장 완성된 판본에서 발췌해 소개한다. 유지원이 16년 만에 삼랑에게 돌아오도록 한 흰 토끼를 따라 천 년 전 중국의 저잣거리로 가보자.


☑ 책 소개

중국 서민들을 대변하는 이야기
<백토기(白免記)>는 당말 오대 시기 유지원(劉知遠)을 주인공으로 하여 그의 개인사를 다룬 남희(南戱) 작품이다. 당이 망하고 분열 시기로 접어들어 후량, 후당, 후진, 후한, 후주의 다섯 나라가 이어지는 시기를 오대 시기(907∼960)라 하는데, 그중 후한(後漢)을 세운 것이 바로 유지원이다. 작품 속 유지원은 영웅의 면모를 보이며 그로 인해 높은 지위에 오르고 사회적인 성공을 이루지만, 아내를 버리고 떠나 16년 동안 돌아보지 않았던 인물이다. 남희는 민간에서 발생한 것이니만큼 서민들이 좋아하던 소재를 중심으로 발전했는데, 그중 대표적인 소재가 의리를 저버린 남자 이야기였다. 당 대 과거 제도의 정착으로 많은 선비들이 과거에 매달리고, 급제 후 더 큰 보장된 미래를 위해 기성 권력과 결탁하면서 혼인을 하게 되는 일이 종종 있었는데 이로 인한 피해는 시골에서 부모님을 봉양하는 조강지처에게 돌아가기 마련이었다. 천 년이 지난 지금에도 낯설지 않은 이러한 소재는 당시에도 서민들의 애환을 대변해 주는 이야기로 사랑받았다.

가장 완성된 형태의 판본의 핵심 단락을 발췌
이후 향유층의 요구에 의해, 시대의 요구에 의해 작품이 개작되면서 주인공 유지원이 의리남으로 변모하기도 하고, 작품의 제목으로 삼을 만큼 극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백토(흰 토끼)가 사라지기도 한다. 이 책은 이러한 다양한 판본 가운데 이른 시기의 판본을 잇는 완성본이자 가장 널리 읽힌 최대 유통본이라 할 수 있는 급고각본을 저본으로 삼아 번역한 것이다. 전체 33단락 중 시작 단락과 전체의 맥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일곱 단락을 골라 옮겼다. 이 단락들은 실제로 중국에서 가장 많이 공연되는 단락들이다. 대체로 편폭이 긴 중국의 전통극들은 전작을 한꺼번에 공연하는 전본희(全本戱) 방식으로 무대에 올리기도 하지만, 볼만한 단락을 골라 공연하는 절자희(折子戱) 공연 방식이 더 일반적이다.


☑ 책 속으로

思之你是個薄倖人. 伊家戀新婚, 交奴家守孤燈. 我眞心待等,
你享榮華, 奴遭薄倖. 上有蒼天, 鑒察我年少人.

이제 보니, 당신은 박정한 사람이로군요.
당신은 신혼의 단꿈에 빠져, 날 외로움에 울게 했소.
난 온 마음으로 당신을 기다렸는데,
당신은 영화를 누리고, 난 박대를 받았지요.
하늘이시여, 이 여인의 고통을 살피소서!


☑ 옮긴이 소개

오수경(吳秀卿)
오수경은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로 중국 희곡을 전공했다. 서울대학교 중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을 수료했으며, 대만에 유학하여 국립 타이완 대학 중국문학연구소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고, 서울대학교에서 <송원 남희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91년 하버드 대학 동아언어문명학과 방문학자, 1998∼1999년 하버드 옌칭연구소 방문학자, 2008∼2009년 중국 칭화 대학 고급방문학자로 연구를 수행했다.
논문으로 <≪오륜전비기(五倫全備記)≫ 연구−민간 남희 연출본의 특색>, <나희 연구가 중국 연극사 인식의 변화에 끼친 영향>, <20세기 중국 연극사 연구의 성과와 한계>, <중국의 축제와 공연문화>, <‘白兔記’ 텍스트를 통해 본 중국 희곡의 아속(雅俗)의 변주>, <중국 호랑이 연희 연구>, <중국 고대 호랑이 신앙 연구>, <중국 전통극의 현대화 작업에 관한 연구> 등 60여 편과 중문 논문 <试探南戏音乐体制中曲破的运用>, <奎章阁本 ≪五伦全备记≫ 初考>, <≪五伦全备记≫ 新探>, <南戏 ‘荊钗记’的流传与小说本的出现>, <明洪武时期対民政策対民间戯剧演出的影响>, <明初民间戏剧环境研究>, <从“文本”问题看中国戏剧研究的本质回归>, <‘白兔记’在近代地方戏中的流传与演变> 등이 있다.
편저로 ≪삼인삼색−2008 한국 희극 무대 현장≫ 등이 있고, 역서로는 ≪중국희곡 선집≫, ≪찻집≫(라오서), ≪버스정류장−가오싱젠 희곡집≫(독백, 야인 포함), ≪피안−가오싱젠 희곡집≫(명성, 생사계, 팔월설 포함), ≪중국 고대 극장의 역사≫와 ≪한국 연극사≫(중역)가 있다.


☑ 차례

해설

제1단락 연극을 시작하다
제4단락 마을 제사를 올리다
제12단락 수박 밭을 지키다
제13단락 부부 이별하다
제18단락 심문을 당하다
제19단락 방아를 돌리다
제30단락 사냥 길에 삼랑의 사연을 듣다
제32단락 몰래 상봉하다


2015년 5월 11일 월요일

법원주림 法苑珠林


도서명 : 법원주림 法苑珠林
지은이 : 도세
옮긴이 : 안정훈
분야 : 종교 > 불교 > 불교경전
출간일 : 2009년 5월 15일
ISBN : 978-89-6228-359-4
가격 : 12,000원
규격 : A5    제본 : 양장본    쪽 : 158쪽



200자 핵심요약

≪법원주림≫은 총 100권 100편으로 구성된 불교의 백과전서다. ≪법원주림≫은 불학 측면에서 최초의 불교 백과전서라는 점, 중국과 인도의 세계관이 잘 융합했다는 점 등 큰 의의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문학 측면에서도 풍부한 서사와 상상력으로 인해 중국 서사문학의 발전에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받는다. 방대한 분량 가운데에서 ≪법원주림≫이 중국 불교사와 문학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잘 나타내주고 가장 재미있는 부분을 발췌했다.


☑ 책 소개

불교 유서 편찬의 새 장을 열었다
불교학사에서 ≪법원주림≫은 최초이자 최대의 불교 백과전서로서의 가치를 가진다. ≪법원주림≫은 위진남북조 시대를 거쳐 당대에 접어들면서 본격화되기 시작한 중국 유서(類書) 편찬의 시대적 분위기와 맥이 닿아 있다. 중국의 고유 유서의 분류 방식인 ‘하늘(天) → 땅(地) → 사람(人) → 사건(事) → 사물(物)’이라는 주제별 분류 방식의 영향을 받고, 여기에 불교의 경(經)·율(律)이 가지는 본래의 체제를 곁들여 세부 항목을 나눴다. 또한 인도 불학의 이론을 기초 삼아, 중국과 인도의 문화적 특징을 융합하여, 불경과 함께 중국의 속서(俗書)들을 널리 인용하여 편찬한 결과물로서, 규모가 방대할 뿐 아니라, 내용과 논리가 세밀하고, 전거가 풍부하게 갖추어져 있어, 가히 불교 유서 편찬의 새 장을 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아울러 ≪법원주림≫에 담겨 있는 중(中)·인(印) 문화 융합의 가치를 언급해야 할 것이다. 불교는 인도 문명의 산물로서, 거기서 제시된 우주관·인생관 등의 철학적 이론은 필연적으로 중국 본래의 것과 다를 수밖에 없고, 이러한 상황에서 불교의 교리를 설파할 때, 그것은 중국 본래의 문화적 관념과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법원주림≫은 불전을 광범위하게 인용하는 것 외에도, 불교 외의 중국 전적들을 널리 수록하여, 그것으로 불법에서 설파하는 것이 거짓되지 않음을 증명하고 있다. 외전(外典)의 인용은 중국 고대 성현들의 권위를 빌려 불법의 입지를 다지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또 다른 측면에서는 중국의 지괴(志怪) 이야기를 널리 채록하여 중국 지괴를 역사 기록의 한 부분으로 설정하고 있다. 도세는 중국 고유의 이야기들을 널리 인용하여 그것을 불법 신봉의 도구로 삼고 있다. 즉 이런 방식을 통하여 중국의 문인과 민중들이 불법의 내용을 더욱 신봉하게 만들고, 나아가 인도 문화와 중국 전통 문화 간의 간극을 메우려는 노력을 했던 것이다.

생동적이고 간결한 이야기
중국 문학사에서 ≪법원주림≫은 그 안에 담겨 있는 풍부한 서사와 상상력으로 인해 중국 서사문학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 ≪법원주림≫ 정문 속에 인용되어 있는 불경 고사들은 많은 부분이 인도 민간 고사에서 기원한 것들이다. 인도는 예부터 세계 민간 고사의 보고로 일컬어져 왔는데, 이는 인도의 민간 고사가 수량이 방대할 뿐 아니라 종류와 내용 면에서도 풍부함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인도 불교는 난해한 육도윤회(六道輪回)나 인과응보 등의 사상에 대해, 이를 민간 고사와 같은, 거칠고 소박하긴 하지만 형상성이 풍부한 감성적 방식으로 민간에 전파하여, 민간 문학 예술의 한 장르로 편입시켰다. 승려나 불교도들이 편찬한 이런 고사집들은 민중 불교의 확산과 숭불(崇佛)의 실천에 일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여, 소설의 형식을 빌려 생동적이고 분명하게, 간결한 문체로 쓰였다. 불전 속에 수록된 이런 이야기들의 내용과 표현 기법은 중국 서사문학의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법원주림≫의 정문뿐 아니라 ≪법원주림≫ 100편 가운데 총 73편의 말미에 수록되어 있는 ‘감응연(感應緣)’ 항목 안에는 중국의 많은 감응 고사들이 증험(證驗)의 실례로 수록되어 있다. 감응연 수록 이야기는 육조 시기부터 당대 초기까지 불교 사상의 영향을 받은 명상류 지괴소설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명상류 지괴 이야기들은 그 서사 방식과 이야기 구조 등에서 인도에서 전래된 불교 문학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으로, 이전까지의 중국 본래의 소설과는 많은 점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불교 유입 이후 그것이 중국 서사문학에 가져다준 거대한 변화를 살펴볼 수 있게 해준다.


☑ 책 속으로

彼人懷妊, 七日八日便產, 隨生男女, 置於四衢大交道頭, 捨之而去. 有諸行人, 經過其邊, 出指含嗽, 指出甘乳, 充遍兒身. 過七日已, 其兒長成, 與彼人等, 男向男眾, 女向女眾. 彼人命終, 不相哭泣, 莊嚴死屍, 置四衢道, 捨之而去. 有鳥名憂慰禪伽, 接彼死屍, 置於他方.

여자가 임신해 7일이나 8일이 되면 아기를 낳는데, 딸이거나 사내거나 태어나면 곧 네거리에 버리고 간다. 그러면 여러 행인들이 그 곁을 지나다가 손가락을 내밀어 빨리는데, 손가락에서 단 젖이 나와 아기 몸에 두루 퍼지게 된다. 아기는 7일이면 다 자라 보통 사람들과 같아지는데, 사내아이는 사내 무리로 향하고, 여자아이는 여자 무리로 향한다. 그들은 목숨을 마쳐도 울지 않고 시체를 깨끗이 단장하여 네거리에 두고 가는데, 우위선가(憂慰禪伽)라는 새가 그 시체를 옮겨다가 다른 곳에 갖다 둔다.


☑ 지은이 소개

도세(道世)
도세(道世)는 당 고종 때의 승려로 속성(俗姓)은 한씨(韓氏)이며, 자는 현운(玄惲)이다. 12세에 청룡사(靑龍寺)에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고, 청룡사와 자은사(慈恩寺) 등에서 불법(佛法)을 닦았으며, 후에 서명사(西明寺)의 최고 영수(領袖)가 되었다. 태종(太宗) 정관(貞觀) 말엽부터 고종(高宗) 현경(顯慶) 연간까지 현장(玄奘) 법사가 자은사에서 서역 불경의 번역 사업을 진행할 때 황제에 의해 발탁되어 역경(譯經) 사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후에 서명사로 초빙되어 중국 율종(律宗)의 시조인 도선율사(道宣律師)와 함께 기거했다. 출가한 이래 율종을 받들어 불법 가운데에서도 율의(律儀)에 특히 통달하여 도선과 함께 당시 최고의 불교 거장으로 꼽힌다. 도선율사와 불교의 포교에 힘쓰는 한편 저술에도 주력했다. 도세의 저술 편찬 업적은 전적(典籍)의 종류에 따라 세 부류로 구분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초소(鈔疏)와 주경(注經) 같은 경전 해설류의 전적들로, ≪사분율토요(四分律討要)≫ 5권과 ≪사분율니초(四分律尼鈔)≫ 5권, 그리고 ≪금강경집주(金剛經集注)≫ 3권 등 총 10부(部) 153권의 전적을 정리했고, 두 번째는 율종 관련 전적으로 ≪수계의식(受戒儀式)≫과 ≪예불의식(禮佛儀式)≫ 등의 저작을 남겼으며, 끝으로 다양한 불교 관련 지식들을 백과전서 형태로 모아놓은 철집류(綴輯類)로서 ≪법원주림≫과 ≪제경요집(諸經要集)≫ 등을 편찬했다. 이 가운데 가장 많은 공력을 들였고, 또한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은 역시 세 번째 부류의 전적들이라고 할 수 있다. 입적(入寂)한 연도는 알 수 없으나, 입적 후 당시 사람들이 그를 호법보살(護法菩薩)로 칭송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 옮긴이 소개

안정훈
1969년 전북 전주 출생으로 1988년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에 입학하여 1997년 같은 과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4년 중국 상하이(上海)의 푸단대학(復旦大學) 중문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박사논문은 <법원주림 서사구조 연구 (法苑珠林敍事結構硏究)>).
전공은 중국 고대 문학이며, 특히 고대 서사문학과 문헌학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불교 전래 이후 지괴의 서사 특성상의 변화 (佛敎傳入後志怪敍事性格的變化)>, <중국문학과 목록학에서의 유서(類書)의 자리>, <고대 중국과 인도의 지리 관념에 대한 비교 고찰>, <불교설화의 중국화(中國化) 과정 고찰을 위한 시론(試論)> 등이 있다.
2004∼2005년에는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소 연구원 및 시간강사로 근무했고, 2006년부터 현재까지 전주대학교 언어문화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 차례

해설
지은이에 대해

서문(序)

삼계편(三界篇) 권2(卷二)
 1. 사주부(四洲部)
  (1) 술의부(述意部)
  (2) 회명부(會名部)
  (3) 지량부(地量部)
  (4) 산량부(山量部)
  (5) 계량부(界量部)
  (6) 방토부(方土部)
  (7) 신량부(身量部)
  (8) 수량부(壽量部)
  (9) 의량부(衣量部)
  (10) 우열부(優劣部)
신이편(神異篇) 권28(卷二十八)
  (1) 술의부(述意部)
  (2) 근통부(觔通部)
  (3) 항사부(降邪部)
  (4) 태잉부(胎孕部)
  (5) 잡이부(雜異部)

옮긴이에 대해

2015년 4월 23일 목요일

구양수 사선 歐陽修 詞選


도서명 : 구양수 사선 歐陽修 詞選
지은이 : 구양수
옮긴이 : 홍병혜
분야 : 문학
출간일 : 2009년 10월 15일
ISBN : 978-89-6406-357-6
가격 : 12,000원
규격 : A5    제본 : 양장본    쪽 : 219쪽


핵심 내용 30% 발췌
국내 처음 번역



200자 핵심요약

구양수의 사를 국내 최초로 번역했다. 구양수의 문학작품을 언급할 때 시와 산문은 익숙하지만 사에 대해서는 생소하다. 사는 작가의 마음을 표현하는 데 가장 유리한 수단이었고, 이전 시기부터 점차 흥행해 구양수가 살던 시기에는 지체의 고하에 관계없이 모두가 애용하는 국민 문학의 형식이 되었다. 그의 가장 솔직한 심리 상태를 알기 위해서는 사를 반드시 읽어야 한다. 구양수가 반듯한 산문으로는 하지 못했던 말, 가장 인간적인 모습을 만나게 될 것이다.


☑ 책 소개

사(詞)란 무엇인가
사(詞)는 시와 비슷한 운문으로, 당 중엽에 민간에서 발생해 송대에 가장 번성했던 문학 양식이다. 민간 가요의 가사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장단이 일정치 않아 ‘장단구(長短句)’라 고도 하며, 초기에는 가창할 수 있었던 근체시의 변형이라고 여겨 ‘시여(詩餘)’라고 부르기도 했다. 사는 음악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사를 창작할 때 일정하게 정해진 악보인 사조(詞調)에 가사를 채워 넣는 방식으로 지어져서, 사를 짓는 것을 두고 가사를 소리에 맞추어 메운다는 뜻의 ‘전사(塡詞)’, 혹은 ‘의성(依聲)’이라 했다.
사는 시와는 달리 음악과 긴밀한 관계였으므로 유희적 성격이 매우 강했다. 따라서 그 내용도 술, 여색, 애정, 희롱에 대한 것이 많았고, 서정적이고 감상적인 특성이 강해 깊고 섬세한 내면을 완곡하고 함축적으로 표현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처음에는 문사들에게 그리 환영받지 못한 장르였지만, 당나라 말엽에 이르러 문인들도 관심을 갖게 되었고, 송대에는 공전의 번영을 누리게 되었다. 사가 대량으로 창작됨에 따라 염정적이고 개인적인 신세타령에서 벗어나 시국에 대한 개탄이나 국가의 흥망성세 등까지도 읊게 되어 점차 시와 비슷한 성격을 띠게 되었다.

구양수의 문학 세계
사람들은 작가로서의 구양수를 유학(儒學)과 밀접하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그와 관련한 대부분을 ‘개인적인 것보다는 사회적인 것’에, ‘해이한 것보다는 경직되고 긴장된 것’에, ‘유흥적인 것보다는 건설적인 것’에 무게를 둔다. 틀린 것은 아니다. 구양수의 시문을 통해 그를 이해한다면 맞는 말이다. 별다른 배경 없이 상식만을 가지고 구양수를 본다면, 구양수는 전혀 아쉬울 게 없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러나 옛날이나 지금이나 아쉬울 게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떤 한 사람을 제삼의 눈으로 보아낸다는 것은 대단히 제한적일 뿐만 아니라, 지금은 아쉬울 것이 없어도 앞으로는 아쉬울 것이 있게 되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특히 심리의 저변은 본인만이 알기 때문에 옆에서 단정 지어 무어라 말할 계제도 아니다. 그런데 구양수는 사를 통해서 아쉬운 소리와 사람들이 보지 못한 많은 심정들을 쏟아내고 있다.
이처럼 구양수가 사를 통해 사람들이 보아내지 못하는 이면의 감정을 상당 부분 노출시킬 수 있었던 것은 당시의 배경 때문이었다. 사는 작가의 마음을 표현하는 데 가장 유리한 수단이었고, 점차 흥행해 구양수가 살던 시기에는 지체의 고하에 관계없이 모두가 애용하는 국민 문학의 형식이 되었다. 따라서 아무리 구양수가 공자(孔子)와 맹자(孟子)를 계승하고 한유(韓愈)의 도통(道統)을 이은 사람이라고 해도 기녀와의 사랑에서 느끼는 세심한 희열과 비애를 사 형식을 빌려 거침없이 쓰는 것이 결격이나 비난의 사유가 되지 않았다. 당황스럽고 민망한 내용이나 표현도 적잖게 보이지만 오히려 인간으로서 자연스러운 모습이 호소력을 가지고 있다. 결국 구양수 문학 세계의 전체적인 면모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의 작품을 망라해 보아야만 하고, 사는 구양수의 문학에 대한 오해를 일소하고 환기할 수 있는 결정적인 관건이 된다.


☑ 책 속으로

人生自是有情癡, 此恨不關風與月.

인생에는 본래 미련한 감정이 있는 것이니
이러한 원망은 바람과 달과는 무관한 것이라네.


☑ 지은이 소개

구양수(歐陽修, 1007∼1072)
구양수(歐陽修)는 1007년에 출생해 1072년까지 66년을 살았다. 1007년부터 1030년까지는 관직 생활을 하기 위한 준비를 하며 보냈다. 그는 4세 때 부친을 잃고 모친과 함께 백부 구양엽(歐陽曄)이 추관(推官)으로 있는 수주(隨州)로 가서 생활하며 빈궁한 어린 시절을 보낸다.
어려서부터 구양수는 한유(韓愈)의 깊고 예리한 문장에 매력을 느꼈고 그를 추앙했다. 1023년 17세 때 처음으로 수주의 지방 고시에 참가하지만 그의 용운(用韻)이 관운(官韻)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실패한다. 그 뒤 1028년 명사인 서언(胥偃)을 찾아가 자신의 문장을 보여주었다. 서언은 구양수의 웅대한 문장에 감탄해 그를 자신의 문하에 받아들이게 된다. 그해 겨울 서언과 함께 경사로 가서 춘계국자감고시(春季國子監考試)에 응시한 구양수는 수석의 영광을 얻었고, 가을에는 국학(國學)에 응시해 또 수석을 차지하게 된다.
1034년에는 아내와 자식이 죽는 아픔을 겪었으나 1043년 인종(仁宗)은 언로(言路)를 확장하기 위해 간관(諫官)을 늘리면서 구양수 등을 지간원(知諫院)으로 삼고 여정(余靖)을 우정언(右正言)으로 임명하자 같은 해 4월에 구양수는 경사로 돌아온다. 1054년 수년 만에 구양수를 만난 인종은 그의 노쇠한 외모와 상황을 측은히 여겨 극진히 대우하며 이부(吏部)의 유내전(流內銓)에 임명한다. 당시 구양수의 정적들은 그의 기용에 두려움을 느끼고 각종 모함과 구설수를 만들었지만, 구양수는 지속적으로 경사에 머무르며 ≪당서(唐書)≫ 편찬에 참여하게 되고 한림학사 겸 사관수찬(翰林學士兼史館修撰)으로 승진하게 된다.
구양수는 66세의 나이로 천명을 다했고, 2년 후에 조정에서 ‘문충(文忠)’이라는 시호(諡號)를 내렸다. ‘문충’은 그가 일생 동안 이루어낸 문학적 위업의 저력을 알 수 있는 상징이다.


☑ 옮긴이 소개

홍병혜
홍병혜는 1969년 서울에서 출생했고,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지금까지 <유우석과 백거이 사의 남방성 고찰> 등을 비롯해 2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으며, ≪구양수 사의 이해≫ 등 10여 권의 저서와 편역서를 출판했다. 동국대학교 중국산업경제연구소 초빙 연구위원과 한신대학교 학술원 연구교수를 거쳐 현재는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대학과 배화여자대학 중국어통번역과에서 강의하고 있다.


☑ 차례

해설
지은이에 대해

제1부 삶과 사랑

01. 주렴이 드리워져; 임강선 1(臨江仙 其一)
02. 한이 가득한데; 도원억고인 1(桃源憶故人 其一)
03. 그대에게 기대어; 석방시(惜芳時)
04. 수심과 걱정이 가득하지만; 해선패(解仙佩)
05. 그 사람 얼굴은 지금 어디에; 감자목란화 1(減字木蘭花 其一)
06. 소매에서 향기가 생겨나는데; 감자목란화 3(減字木蘭花 其三)
07. 끝없는 원망과 근심이 얼굴에 깃든다네; 감자목란화 4(減字木蘭花 其四)
08. 애간장이 마디마디 끊어지니; 답사행 1(踏莎行 其一)
09. 작년의 그 사람은 보이지 않으니; 생사자 1(生査子 其一)
10. 아름다운 구름과 같던 날들이 쉽게 날아가 버리니; 생사자 2(生査子 其二)
11. 가는 이를 보내고; 장상사 1(長相思 其一)
12. 우리는 서로 이별하니; 장상사 2(長相思 其二)
13. 울며 화장하니; 장상사 3(長相思 其三)
14. 그리움만 쌓이고; 작답지(鵲踏枝)
15. 청명절이 되니; 원랑귀 1(阮郞歸 其一)
16. 이별을 원망하네; 원랑귀 1(阮郞歸 其一)
17. 다시 서로 그리워해야; 원랑귀 2(阮郞歸 其二)
18. 은밀하게 기약하니; 원랑귀 3(阮郞歸 其三)
19. 이별의 근심만을; 망강남 1(望江南 其一)
20. 이미 마음을 주었으니; 망강남 2(望江南 其二)
21. 주렴과 막은 여러 겹이 드리웠네; 접연화 1(蝶戀花 其一)
22. 꿈에서도 찾을 곳이 없다네; 접연화 3(蝶戀花 其三)
23. 좋은 소식은 끊긴 채 오지 않으니; 접연화 3(蝶戀花 其三)
24. 서로가 꿈에서 생각하네; 접연화 4(蝶戀花 其四)
25. 올 때의 그대는 보이지 않네; 접연화 8(蝶戀花 其八)
26. 그 사람 돌아오지 않았는데; 접연화 14(蝶戀花 其十四)
27. 아득한 사랑이 있으나; 접연화 15(蝶戀花 其十五)
28. 그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네; 접연화 16(蝶戀花 其十六)
29. 귀한 내 임을 그리워하네; 소년유(少年遊)
30. 인생에는 본래 미련한 감정이 있는 것이니; 옥루춘 4(玉樓春 其四)
31. 이별 후에; 옥루춘 13(玉樓春 其十三)
32. 마음속의 사랑을 쏟을 곳이 없다네; 옥루춘 21(玉樓春 其二十一)
33. 쉬었다 더디 가야 하네; 옥루춘 29(玉樓春 二十九)
34. 오랫동안 그대에게 기대어; 남가자(南歌子)
35. 이별의 한; 소충정(訴衷情)
36. 미인이 부끄러워; 완계사 1(浣溪沙 其一)
37. 추억이 더해오네; 감정추(感庭秋)
38. 그 사람을 생각하면; 간화회(看花回)
39. 다시 만나요; 취봉래(醉蓬萊)
40. 그대는 외롭게 멀리 있네; 청상원(淸商怨)

제2부 삶과 멍에

41. 세월은 모두가 한순간이니; 접연화 2(蝶戀花 其二)
42. 슬픔은 여전한데; 접연화 2(蝶戀花 其二)
43. 떨어진 꽃은; 접연화 5(蝶戀花 其五)
44. 높은 누각에 의지하니; 접연화 11(蝶戀花 其十一)
45. 적막하고 쓸쓸한; 옥루춘 5(玉樓春 其五)
46. 봄빛은 무정하게; 옥루춘 6(玉樓春 其六)
47. 봄날의 근심은; 옥루춘 7(玉樓春 其七)
48. 덧없는 삶을 생각하네; 옥루춘 11(玉樓春 其十一)
49. 술잔을 잡고 탄식하니; 옥루춘 12(玉樓春 其十二)
50. 봄이 가진 원망; 옥루춘 19(玉樓春 其十九)
51. 왜 돌아올 기약을 지키지 않는 것인가; 옥루춘 22(玉樓春 其二十二)
52. 봄날을 저버리게 하지 말아야 하는데; 옥루춘 23(玉樓春 其二十三)
53. 세월이 정말 빨라서; 옥루춘 27(玉樓春 其二十七)
54. 봄은 왔다가 또 떠나니; 낭도사 5(浪淘沙 其五)
55. 세파에 시달리니; 성무우(聖無憂)
56. 술잔 앞에; 완계사 2(浣溪沙 其二)
57. 나를 머물게 하네; 완계사 7(浣溪沙 其七)
58. 헛된 세상에서; 완계사 9(浣溪沙 其九)
59. 장안성의 사람들이 가장 먼저 늙는다네; 어가오 4(漁家傲 其四)
60. 하늘 끝에서 늙어가고; 임강선 2(臨江仙 其二)
61. 충성을 약속했으니; 금향낭(金香囊)
62. 유양으로 출수하는 유원보에게; 조중조(朝中措)
63. 조개에게; 어가오 3(漁家傲 其三)
64. 꽃 앞에서 술을 들고; 정풍파 1(定風波 其一)
65. 이 마음을 어찌할 수 없었는데; 감자목란화 2(減字木蘭花 其二)

제3부 삶과 자연

66. 서호 예찬 1; 채상자 1(採桑子 其一)
67. 서호 예찬 2; 채상자 2(採桑子 其二)
68. 서호 예찬 3; 채상자 3(採桑子 其三)
69. 서호 예찬 4; 채상자 4(採桑子 其四)
70. 서호 예찬 5; 채상자 5(採桑子 其五)
71. 서호 예찬 6; 채상자 6(採桑子 其六)
72. 서호 예찬 7; 채상자 7(採桑子 其七)
73. 서호 예찬 8; 채상자 8(採桑子 其八)
74. 서호 예찬 9; 채상자 9(採桑子 其九)
75. 서호 예찬 10; 채상자 10(採桑子 其十)
76. 서호 예찬 11; 채상자 11(採桑子 其十一)
77. 서호 예찬 12; 채상자 12(採桑子 其十二)
78. 서호 예찬 13; 채상자 13(採桑子 其十三)
79. 1월의 노래; 어가오 1(漁家傲 其一)
80. 2월의 노래; 어가오 2(漁家傲 其二)
81. 3월의 노래; 어가오 3(漁家傲 其三)
82. 4월의 노래; 어가오 4(漁家傲 其四)
83. 5월의 노래; 어가오 5(漁家傲 其五)
84. 6월의 노래; 어가오 6(漁家傲 其六)
85. 7월의 노래; 어가오 7(漁家傲 其七)
86. 8월의 노래; 어가오 8(漁家傲 其八)
87. 9월의 노래; 어가오 9(漁家傲 其九)
88. 10월의 노래; 어가오 10(漁家傲 其十)
89. 11월의 노래; 어가오 11(漁家傲 其十一)
90. 12월의 노래; 어가오 12(漁家傲 其十二)
91. 석류; 양주령(涼州令)
92. 목단; 소년유 2(少年遊 其二)
93. 연꽃; 어가오 10(漁家傲 其十)
옮긴이에 대해

2015년 3월 26일 목요일

심전기/송지문 시선 沈佺期·宋之問 詩選


도서명 : 심전기·송지문 시선 沈佺期·宋之問 詩選
지은이 : 심전기(沈佺期)·송지문(宋之問)
옮긴이 : 최우석
분야 : 인문 > 인문학 일반 > 동양> 시
출간일 : 2010년 5월 15일
ISBN : 978-89-6406-650-8
가격 : 12,000원
규격 : A5    제본 : 양장본    쪽 : 167쪽


350수 중 49수 수록
국내 초역


200자 핵심요약

현재 전해지는 심전기·송지문의 시 350수 중 49수의 작품을 선별해 국내에서 처음으로 번역했다. 심전기, 송지문은 ‘심·송(沈宋)’으로 병칭되어 온 초당 후기의 대표적인 시인. 두 시인은 ‘율시(律詩)’의 격률과 체제를 완비한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이들의 작품은 시가의 제재와 형식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후세 시가 창작의 좋은 전범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당시(唐詩)의 꽃인 성당(盛唐) 시가의 형성에도 매우 중요한 영향을 주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책 소개


중국 ‘율시(律詩)’의 격률과 체제를 완비하다
심전기(沈佺期, 656?∼716?)와 송지문(宋之問, 656?∼712?)은 역대로 심·송(沈宋)으로 병칭(竝稱)되어 온 초당 후기의 대표적인 두 시인이다. 이 두 시인은 같은 해에 태어나서 동일한 시기에 과거에 급제하며, 똑같은 이유로 폄적을 당하는 등 비슷한 인생 역정을 보인다. 또 시가 창작 역시 그 내용이 상당 부분 비슷하다. 
이들은 역대로 중국 ‘율시(律詩)’의 격률과 체제를 완비한 것으로 유명하다. 율시는 초당(初唐)부터 청 말(淸末)에 이르기까지 중국 문인들이 가장 애호했던 시가 형식이었을 뿐만 아니라, 정부의 과거 시험에서 공식적인 형식으로 채택되었으며, 중국 시가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따라서 당시의 시단에서 가장 많은 율시를 창작했고, 또한 율시의 격식을 골고루 사용한 수준 높은 심·송의 작품은 중국 시가사(詩歌史)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할 수 있다. 

시가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성당(盛唐) 시가의 형성에 큰 영향을 주다
이 밖에도 심·송의 작품은 시가의 제재와 형식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정경 융합의 예술적 기교를 본격적으로 구사했으며, 언어를 정련(精鍊)해 후세 시가 창작의 전범이 되는 등 중요한 의의와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와 같이 두 시인의 작품이 중국 시가의 발전에 큰 공헌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의 연구와 논의가 활발하지 못했던 것은, 이들이 궁정의 시인으로 아부를 일삼다가 결국에 폄적당한 인물로 평가받는 데서 기인하는 듯하다. 그러나 이것은 실제 사실과는 다소 차이가 있음이 학계에서 속속 고증되고 있으며, 문여기인(文如其人)의 논리에만 의지해 작품을 무차별적으로 폄하하는 태도는 온당한 문학비평이라 할 수 없다. 
이들이 구현한 시가 예술의 성취는 당시(唐詩)의 꽃인 성당(盛唐) 시가의 형성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주었으니, 심·송의 시가는 곧 성당의 시가로 들어가는 주요한 관문(關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 책 속으로

山月臨窗近
天河入戶低
芳春平仲綠
淸夜子規啼 
浮客空留聽
褒城聞曙雞

산에 뜬 달 창가에 다가서고
은하수는 문에 들어 나직하다
꽃 피는 봄이라 팽나무는 파랗고
맑은 밤이라 두견새 우네
떠도는 나그네 부질없이 귀 기울이면 
보성의 새벽닭 우는 소리 들려온다


☑ 지은이 소개

심전기
심전기(656?∼716?)의 자(字)는 운경(雲卿)으로, 상주내황(相州內黃), 즉 현재의 허난성(河南省) 네이황현(內黃縣) 사람이다. 14세 무렵에 무협(巫峽)과 형양(荊襄)을 유람했던 것으로 전해질 뿐이다. 약관의 나이에 진사에 급제했으며, 이후 협률랑(協律郞)의 벼슬을 거쳐 통사사인(通事舍人)을 지내게 되는데, 이때 그는 ≪삼교주영(三敎珠英)≫의 편찬 사업에 참여해 장안(長安) 원년(701)에 완성했다. 또한 같은 해에 고공원외랑(考功員外郞)으로 전직했다가, 2년 뒤인 703년에 급사중(給事中)으로 승진하게 된다. 그러나 이듬해 뜻하지 않게 뇌물수수죄로 탄핵을 받게 되어 환주[驩州: 현재의 베트남(越南) 북부의 빈(Vinh)]로 유배를 당하게 된다. 이때 그의 나이 49세였다. 그러나 유배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2년 뒤 그는 사면을 받았고, 조정으로 복귀해 수문관학사(修文館學士), 중서사인(中書舍人), 태부소경(太府少卿) 등을 역임하는 등 비교적 순탄한 관직 생활을 영위하다가 그의 나이 61세인 716년경에 세상을 뜬다.

송지문
송지문(656?∼712?)의 자(字)는 연청(延淸)이고 일명 소련(少連)이라 불리기도 했는데, 괵주홍농(虢州弘農), 즉 현재의 허난성(河南省) 링바오현(靈寶縣) 사람이다.
상원(上元) 2년(675)에 송지문은 심전기와 나란히 약관의 나이로 진사(進士)에 급제하고 이때부터 관직 생활을 시작한다. 그 후 35세까지 습예관학사(習藝館學士) 등의 벼슬을 지내며 비교적 순탄한 관직 생활을 유지하다가, 약 36세에 병이 들어 40세까지 육혼산장(陸渾山莊)에서 칩거한다. 이후 다시 관직의 세계로 돌아와 낙주참군(洛州參軍) 등을 지냈고, 심전기 등과 더불어 ≪삼교주영≫의 편찬 사업에 참여한다. 그러나 그의 나이 약 42세부터는 봉환령(奉宦令)의 신분으로 당시의 권력자인 장역지(張易之), 장창종(張昌宗) 두 형제를 섬기는 데 전념하게 되었다. 후일 신룡(神龍) 원년(705)에 장간지(張柬之), 경휘(敬暉) 등이 장역지 형제를 척살하고 동시에 무후(武后)를 강제로 폐위시키며 중종(中宗)을 옹립하는 정변이 발생하는 과정에서 송지문 역시 이에 연루되어 농주(瀧州)로 폄적을 당한다. 그러나 이듬해에 황제의 사면을 받는다. 
조정에 돌아온 송지문은 그해 바로 홍려주부(鴻臚主簿)가 되어 정치에 복귀하게 되는데, 이후로는 특히 위후(韋后), 무삼사(武三思)와 안락공주(安樂公主) 등의 정치 세력과 가깝게 지낸다. 그런데 이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태평공주(太平公主)가 송지문이 고공원외랑(考功員外郞)으로서 지공거(知貢擧)를 지낼 때 뇌물을 받았다고 고발해 월주(越州), 흠주(欽州) 등으로 유배를 돌다가 끝내 현종(玄宗) 원년(712)에 사약을 받아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 옮긴이 소개

최우석(崔宇錫)은 고려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국립대만대학교에서 2000년에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2005년에는 고려대학교에서 이동향 은사님의 지도 아래 박사 학위를 받았다. 상하이 푸단대학과 베이징대학에서 방문학자로 머물며 연구를 한 바 있다. 현재 우송대학교 중국학부의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고전시가를 전공했으며, 시가 연구와 문화 및 문학 비평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저서로는 ≪위진 사언시 연구(魏晉四言詩硏究)≫[중국파촉서사(中國巴蜀書社)], ≪중국 문화의 즐거움≫(공저, 차이나하우스) ≪중국 문학의 즐거움≫(공저, 차이나하우스)이 있으며, 연구 논문으로는 <심전기, 송지문의 시가 연구>(박사 학위논문), <고대 사언시(四言詩)와 율시 속의 아정(雅正) 심미관(審美觀)>, <당대(唐代) 시격론(詩格論)과 선(禪)>, <당시(唐詩) 속의 강남(江南) 의상(意象)>, <한대(漢代) 정교론(政敎論)과 시가(詩歌) 속의 정치적 색채 연구>가 있다. 


☑ 목차

해설
지은이에 대해

1. 궁정에서의 멋
2. 그대에게 전하는 마음
3. 산수를 벗 삼아
4. 탈속과 은일의 여유
5. 유배지에서의 상념
6. 고향의 그리움
7. 변방의 노래
8. 아! 이별

옮긴이에 대해




2015년 3월 5일 목요일

중국 고아(Orphelin de la Chine)


도서명 : 중국 고아(Orphelin de la Chine)
지은이 : 볼테르(Voltaire)
옮긴이 : 이봉지
분야 : 희곡
출간일 : 2015년 2월 25일
ISBN :  979-11-304-6111-3 (03680)
가격 : 14500원
규격 : 사륙판(128*188)  제본 : 무선  쪽 : 142쪽




☑ 책 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 희곡선집>은 인류의 유산으로 남을 만한 작품만을 선정합니다. 오랜 시간 그 작품을 연구한 전문가가 정확한 번역, 전문적인 해설, 풍부한 작가 소개, 친절한 주석을 제공하는 고급 희곡 선집입니다.

**<중국 고아>는 원대 희곡 작가 기군상의 <조씨 고아>를 각색한 작품이다. 작품에 ‘고려(Corée)가 등장해 관심을 끈다.


☑ 출판사 책 소개

볼테르는 기군상의 <조씨 고아>에서 두 가지 비극적 상황, 즉 은인의 아들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아들을 희생해야 하는 정영의 갈등과 친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양아버지를 배신해야 하는 조무의 갈등 중, 전자만 취하고 후자를 배제했다. 대신 원작에 없는 정영의 아내, 즉 이다메를 등장시켜 은인의 자식 대신 자기 자식을 희생해야 하는 부모의 비극적 상황을 더욱 심화하는 한편, 그녀를 사랑하는 정복자 칭기즈칸을 통해 남녀의 사랑과 지배자의 덕목이라는 새로운 주제를 도입했다. 작품의 역사적 배경은 기원전 6세기가 아니라 칭기즈칸 생존 당시인 13세기 초로 설정했다.
볼테르의 <중국 고아>는 18세기 내내 유럽에서 상당한 인기를 누렸다. 1755년, 코메디 프랑세즈에서 초연해 대성공을 거두었다. 코메디 프랑세즈 극단은 1756년 리옹 극장 개장 기념 공연으로 볼테르의 이 작품을 올렸고 오스트리아, 덴마크 등 궁전에서 어전 공연을 하기도 했다. 영국의 경우, 볼테르의 <중국 고아>와 머피가 각색한 작품이 함께 공연되었다. 특히 머피의 <중국 고아>는 미국으로 건너가 1767년 필라델피아 공연을 시작으로 1842년 뉴욕에서 마지막으로 공연될 때까지 여러 번 무대에 올랐다.
볼테르의 <중국 고아>가 한국인에게 특히 의미가 있는 것은 이 작품에 한국에 관한 언급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 책 속으로

이다메: 서방님, 황자를 구할 방도가 있어요.
우리 아들과 함께 멀리 보냅시다. 빼낼 방도가 있어요.
절망하지 말고 빨리 준비합시다.
에탄을 따라 바다 건너 고려로 갑시다.
바다로 둘러싸인 그 음울한 고장에는
인적 없는 황무지와 감춰진 동굴이 있을 거예요.
거기로 아이들을 데려갑시다.
거기까지 참화의 손길이 미치기 전에.
도적들이 그곳을 알기 전에.
한시가 급해요. 한탄하고 있을 때가 아니에요.
≪중국 고아≫ 15쪽


☑ 지은이 소개

본명이 프랑수아마리 아루에(François-Marie Arouet)인 볼테르는 1694년 11월 21일 파리의 공증인인 프랑수아 아루에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1711년 아버지의 뜻에 따라 법률 공부를 시작했지만 곧 그만두고 사교계에 드나들며 시를 쓰기 시작했다. 1717년, 섭정 오를레앙 공작에 대한 풍자시 때문에 11개월 동안 바스티유 감옥에 투옥되었다. 석방된 뒤, 그는 아루에 드 볼테르(Arouet de Voltaire)라는 필명으로 첫 비극 <오이디푸스(Oedipe)>를 무대에 올려 대성공을 거두었다. 1745년, 볼테르는 왕실 사료편찬관으로 임명되었고, 1746년에는 오랫동안 소원해 왔던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풍자를 즐기는 자유분방한 성격 때문에 애써 얻은 궁정의 지위는 다시 위태로워졌다. 게다가 1749년에는 애인이자 친구인 샤틀레 부인이 젊은 애인 생 랑베르의 딸을 낳자마자 출산 후유증으로 사망하게 된다. 더 이상 프랑스에 머물 이유가 없어진 볼테르는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Friedrich II)의 초청을 받아들여 1750년 베를린으로 갔다. 1778년 2월 10일, 볼테르는 파리를 떠난 지 약 28년 만에 비극 <이렌(Irène)>을 상연하기 위해 파리로 돌아왔다. 파리 시민들은 그를 열렬히 환영했다. 그를 위한 행사가 연일 열렸고, 그를 만나려는 방문객이 줄을 이었다. 그의 마지막 비극 작품인 <이렌>은 코메디 프랑세즈 극장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그는 이로 인한 흥분과 무리한 활동 때문에 건강을 해쳐 1778년 5월 30일 파리에서 사망했다.


☑ 옮긴이 소개

이봉지는 서울대학교 불어교육과를 졸업하였으며 미국 노스웨스턴대학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배재대학교 프랑스어문화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Le Roman à éditeur≫, ≪서사학과 페미니즘≫이 있으며 역서로는 ≪수녀≫, ≪공화정과 쿠데타≫, ≪육체와 예술≫(공역), ≪프랑스 혁명의 지적 기원≫(공역), ≪두 친구≫, ≪플로스 강의 물방앗간≫(공역), ≪캉디드≫, ≪보바리 부인≫ 등이 있다.


☑ 목차

나오는 사람들···················3
제1막······················5
제2막······················29
제3막······················51
제4막······················71
제5막······················95
해설······················119
지은이에 대해··················131
옮긴이에 대해··················135

2015년 2월 27일 금요일

소설 小說


도서명 : 소설 小說
지은이 : 은운
옮긴이 : 김장환
분야 : 인문 > 인문 고전 문고 > 인문 고전 문고 기타
출간일 : 2009년 8월 15일
ISBN : 978-89-6406-208-1
가격 : 12,000원
규격 : A5    제본 : 양장본    쪽 : 261쪽


완역
국내 처음 출간



200자 핵심요약

송나라 유의경의 ≪세설신어≫의 뒤를 이어 나온 지인류 필기 문헌이다. 역대 문인 명사들의 일화와 행적 이외에 민간 전설과 산천 풍물, 심지어 적잖은 지괴 고사까지 실려 있다. 사료로서의 가치도 높을뿐더러 문학 작품으로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 책 소개

창작 목적
이 작품은 양 무제의 칙명을 받아 정사에 실을 수 없는 내용을 구별하기 위해 지었다. 기록을 통해 본 ≪소설≫의 내용은 ‘이치에 맞지 않는 이야기’와 ‘사관이 마땅히 기록하지 않은 바’라고 하듯이 역사가 아니라 소설적 특성에 부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사실상 ≪소설≫이 포괄하고 있는 내용은 역대 문인 명사들의 일화와 행적 이외에 민간 전설과 산천 풍물, 심지어 적잖은 지괴 고사까지 실려 있어서 내용이 비교적 광범위하다.

다른 지인 소설과는 다른 특징
≪소설≫의 취재 고사는 노신이 “여러 전적에서 채록했다”고 했듯이 지인 소설과 지괴 소설을 가리지 않고 전대의 옛 책에서 채록한 것이며, 은운 자신이 윤색한 것도 일부 들어 있다. 또한 각 고사마다 인용한 서명을 명기해 놓았는데, 그 인용 서적이 현재 전하지 않는 것도 있고, 전한다 하더라도 해당 고사가 실려 있지 않은 경우도 있어서 그 자료적 가치가 높다. 이는 다른 지인 소설에서는 보이지 않는 ≪소설≫만의 특성으로서 ≪세설신어≫의 유효표 주와 비슷한 점이 있다.


☑ 책 속으로

俗說: 有貧人止能辦隻甕之資, 夜宿甕中, 心計曰: “此甕賣之若干, 其息已倍矣. 我得倍息, 遂可販二甕, 自二甕而爲四. 所得倍息, 其利無窮.” 遂喜而舞, 不覺甕破.

항간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재산이라고는 달랑 독 하나밖에 없는 어떤 가난한 사람이 밤에 그 독 속에서 잠을 자다가 마음속으로 계산하며 말했다.
“이 독을 내다 팔아 그 이문이 이미 배가 남으면, 나는 배가 남은 이문으로 마침내 두 개의 독을 살 수 있고, 두 개의 독이 네 개가 될 것이다. 그렇게 소득이 갑절씩 불어나면 그 이득이 무궁할 것이다.”
이렇게 기뻐하며 춤을 추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독이 깨져버렸다.


☑ 지은이 소개

은운(殷芸, 471∼529)
남조 양나라의 문학가로, 자는 관소며 진군 장평 사람이다. 성격이 활달하고 사소한 예절에 구애받지 않았으나 함부로 사람들과 교유하지 않아서 문하에는 잡객이 없었다. 학문에 정진하여 여러 책을 널리 섭렵했다. 제 무제 영명 연간(483∼493)에 의도왕 소갱의 행참군을 지냈으며, 양 무제 천감 초년(502)에는 서중랑주부가 되었다. 천감 13년(515)에 서중랑 예장왕 소종의 장사가 되었는데, 소종이 안우장군으로 전임되자 은운은 안우장사가 되었다. 이때 양 무제가 그에게 칙명을 내려 ≪소설≫을 짓게 했다. 그 뒤 동궁학사성에서 일하다 59세로 죽었다. ≪양서≫ 권41과 ≪남사≫ 권60에 그의 전이 있다.


☑ 옮긴이 소개

김장환
연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연세대학교 중문과를 졸업한 뒤 서울대학교에서 <세설신어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연세대학교에서 <위진 남북조 지인 소설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강원대학교 중문과 교수와 미국 하버드옌칭연구소 객원교수를 지냈다. 전공 분야는 중국 문언 소설과 필기 문헌이다. 그동안 쓰고 번역한 책으로는 ≪중국 문학 입문≫, ≪중국 문언 단편소설선≫, ≪중국 연극사≫, ≪중국유서개설≫, ≪봉신연의≫(전 9권), ≪열선전≫, ≪서경잡기≫, ≪세설신어≫(전 3권), ≪고사전≫, ≪태평광기≫(전 21권), ≪태평광기상절≫(전 8권), ≪중국역대필기≫, ≪소림≫, ≪어림≫, ≪곽자≫, ≪속설≫, ≪담수≫ 등이 있으며, 중국 문언 소설과 필기 문헌에 관한 다수의 연구 논문이 있다.


☑ 차례

해설
지은이에 대해

진(秦)·한(漢)·위(魏)·진(晉)·송(宋)나라의 여러 황제
1. 진 시황(1)
2. 진 시황(2)
3. 한 고조(1)
4. 한 고조(2)
5. 한 고조(3)
6. 한 고조(4)
7. 한 문제
8. 한 무제(1)
9. 한 무제(2)
10. 한 무제(3)
11. 한 무제(4)
12. 한 무제(5)
13. 한 성제(1)
14. 한 성제(2)
15. 한 성제(3)
16. 한나라의 황제
17. 위 무제(1)
18. 위 무제(2)
19. 위 명제(1)
20. 위 명제(2)
21. 진 명제
22. 진 성제
23. 진 간문제(1)
24. 진 간문제(2)
25. 진 간문제(3)
26. 진 간문제(4)
27. 진 간문제(5)
28. 진 간문제(6)
29. 진 간문제(7)
30. 진 효무제(1)
31. 진 효무제(2)
32. 진 효무제(3)
33. 송 무제(1)
34. 송 무제(2)

주(周)·육국(六國)·전한(前漢) 사람
35. 주왕
36. 개자추
37. 왕자교
38. 노자(1)
39. 노자(2)
40. 공자와 안회
41. 공자와 안회
42. 재아와 안회
43. 자로와 안회
44. 공자와 자로
45. 공자와 뽕 따는 여자
46. 공자와 자하
47. 주공
48. 진나라 때의 속요
49. 공자 우물
50. 귀곡선생과 소진·장의
51. 장량과 사호
52. 장량
53. 번쾌와 육가
54. 가의(1)
55. 가의(2)
56. 동중서
57. 문옹
58. 동방삭(1)
59. 동방삭(2)
60. 동방삭(3)
61. 양웅(1)
62. 양웅(2)

후한(後漢) 사람
63. 마원
64. 원안(1)
65. 원안(2)
66. 최원
67. 호광
68. 마융
69. 곽태와 이응
70. 이응
71. 이응과 진기
72. 이응과 섭계보
73. 이응과 진번
74. 이응과 진식
75. 진번과 서치
76. 서치
77. 하옹과 장기
78. 왕찬과 장기
79. 장형과 채옹
80. 왕윤과 채옹
81. 채옹
82. 정현
83. 정현과 공융
84. 순거백
85. 허건과 허소
86. 허소
87. 진기와 진심
88. 진기
89. 예형
90. 예형과 공융
91. 공융
92. 조조와 양표
93. 사마휘와 방
94. 사마휘
95. 주총과 정소


위(魏)나라 사람
96. 유정
97. 왕찬
98. 반욱
99. 손옹
100. 관녕
101. 관로
102. 왕랑과 화흠
103. 화흠과 진기 형제
104. 조식
105. 부손
106. 평원 사람
107. 가난한 독장수
108. 동소
109. 어떤 호위 군졸
110. 하안과 혜강
111. 왕필
112. 사마사와 하후현
113. 종육과 종회
114. 종회(1)
115. 종회(2)
116. 완간(1)
117. 완간(2)

오(吳)·촉(蜀)나라 사람
118. 제갈량 때의 하급 관리
119. 제갈량(1)
120. 제갈량(2)
121. 제갈량과 사마의
122. 손책과 원술
123. 고소
124. 고옹
125. 심준
126. 심형
127. 제갈각과 한문황
128. 제갈각
129. 섭우
130. 손호
131. 손호와 육개
132. 어떤 빈객

진(晉)나라 사람
133. 산도
134. 위관
135. 배해
136. 왕융
137. 두예
138. 장화(1)
139. 장화(2)
140. 장화(3)
141. 장화(4)
142. 장화(5)
143. 장화(6)
144. 장화(7)
145. 장화(8)
146. 양수(1)
147. 양수(2)
148. 하후담과 반악
149. 석숭과 반악
150. 손초와 왕제
151. 왕제의 시종
152. 오언
153. 배위
154. 육기와 반악
155. 육기
156. 육기 형제
157. 육기의 명견
158. 유보
159. 완첨
160. 송대
161. 손작

송(宋)·제(齊)나라 사람
162. 부량
163. 소갱

옮긴이에 대해

2015년 2월 16일 월요일

진관 사선 秦觀詞選


도서명 : 진관 사선 秦觀詞選
지은이 : 진관
옮긴이 : 송용준
분야 : 인문 >중국 문학 >중국 사
출간일 : 2009년 3월 15일
ISBN : 978-89-6228-329-7
가격 : 12,000원
규격 : A5    제본 : 양장본    쪽 : 149쪽




200자 핵심요약

유영에 이어 대표적인 완약사(婉約詞) 작가로 꼽히지만, 국내에 거의 소개되지 않았던 진관의 사를 소개한다. 전대 완약사의 장점은 극대화하고 단점은 보완해 정과 운치가 동시에 뛰어나면서도 우아한 사람과 통속적인 사람이 함께 즐기는 풍격을 창조한 첫 번째 사인(詞人), 진관의 대표작 35편을 엄선했다.


☑ 책 소개

전대(前代) 완약사(婉約詞)의 장점을 극대화
진관은 현존하는 작품이 110수 정도로 유영이나 소식처럼 많은 작품을 남기지는 않는다. 또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등 문학사적 공로가 큰 작가도 아니다. 하지만 전대(前代) 완약사(婉約詞)를 이어 받아 그 장점을 극대화해 누구나 함께 즐길 수 있고 함축적이면서도 정(情)과 운치가 뛰어난 신형의 사풍(詞風)을 창조했다. 따라서 그의 사를 감상할 때는 정이 뛰어나다는 특징에 주목해야 한다. 단지 연정(戀情)과 염정(艶情)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신세지정(身世之情)과 폄적지정(貶謫之情)도 포함된다. 진관 사는 ‘신세지감을 염정 속에 합병해 넣은 것’으로 요약할 수 있으며 이것이 바로 전대의 완약사를 능가하게 된 현저한 특징인 것이다.

기존의 낡은 몸뚱이에 수혈한 정(情)
만남·이별·원망의 내용으로 염정을 표현한 초기 완약사는 유영에 이르러 작자의 나그네 심정이 담기며 그 경계가 확장되었다. 이어 진관에 이르러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부분적인 질적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자신의 신세와 운명에 관련된 쓸쓸하고 슬픈 감정을 염정의 주제와 결함시킴으로써 낡은 몸뚱이 속에 새로운 혈액을 주입하게 된 것이다.

장점으로 단점을 보충하고 우아함으로 저속함을 구제
짧은 편폭의 소령(小令)에 담겨 있는 ‘뛰어난 운치’도 뛰어나지만, 더욱 주목할 것은 소령의 운치를 만사장조(慢詞長調)에 옮겨놓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소령의 문아함을 이용해 유영 만사의 저속함을 바로잡으면서 다른 한편으로 소령의 함축성을 이용해 유영 만사의 직설적인 표현을 보완하는 데 성공했다. 장점으로 단점을 보충하고 우아함으로 저속함을 구제함으로써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부드러우며, 우아한 사람과 통속적인 사람이 함께 즐길 수 있는 풍격과 미감을 갖춰 완약사의 대표 작가로 우뚝 설 수 있었다.


☑ 책 속으로

霧失樓臺,
月迷津渡,
桃源望斷無尋處.
可堪孤館閉春寒,
杜鵑聲裏斜陽暮.

안개 자욱하여 누대는 사라지고
달빛 희미하여 나루터 보이지 않아
도원(桃源)을 바라보아도 찾을 길 없구나.
외로운 객사에 갇혀 봄추위를 어찌 견딜까?
두견새 소리에 석양은 저문다.


☑ 지은이 소개

진관(秦觀金麟厚, 1510∼1560)
진관은 자(字)가 소유[少游: 처음에는 태허(太虛)를 썼으나 37세 때 바꾸었음]고, 호(號)는 회해거사(淮海居士)로 양주(揚州) 고우(高郵: 지금의 강소성 고우) 사람이다. 그는 송(宋) 인종(仁宗) 황우(皇祐) 원년(1049)에 중소 관료 가정에서 태어났다. 조부 승의공(承議公)은 일찍이 남강(南康)에서 관직을 지냈고, 숙부 진정(秦定)은 회계위(會稽尉)·강남동로전운판관(江南東路轉運判官)·지호주(知濠州) 등의 관직을 지냈다.
진관은 어려서부터 어머니를 모시고 집 안에서 지냈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과 별로 교제가 없었으며, 평시에는 다만 책을 빌려 열심히 읽고 문장을 학습할 따름이었다. 그와 같은 생활은 그의 성격을 유약하게 만들어 급기야 이후의 정치적 풍파와 그의 시(詩)·사(詞) 속에 그러한 성격이 반영된다. 학문을 연마하며 조용하게 성장기를 보낸 진관은 영종(英宗) 치평(治平) 4년(1067) 열아홉 살 때 담주(潭州) 영향주부(寧鄕主簿) 서성보(徐成甫)의 장녀 문미(文美)와 결혼했다.
진관은 당시 구양수(歐陽修)에 이어 문단의 영수로 떠오른 소식을 흠모해 그의 문하로 들어가 배우기를 희망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던 중, 희령(熙寧) 7년(1074) 27세 때 진관은 소식이 항주(杭州)에서 밀주(密州)로 가는 도중 양주(揚州)에 들른다는 말을 듣고 소식이 묵을 절의 벽에다 미리 시 한 수를 적어놓았다. 소식이 그 시를 보고 내심 감탄해 마지않았는데, 나중에 손각이 와서 진관의 시와 사 수백 편을 보여주자 크게 감동해 “절의 벽에 시를 쓴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이군요”라고 하고는 진관과 친교를 맺었다고 한다.
원풍(元豊) 원년(1078) 진관은 경사(京師)에 가서 처음으로 과거 시험에 응시했으나 낙방해 귀가했다. 이것이 벼슬길에 있어서 첫 번째 좌절이었는데, 그 실패로 말미암아 <엄관명(掩關銘)>을 짓고 한동안 집 안에 들어앉아 독서로 소일했다. 얼마 후 그는 소식을 경모하는 마음에 팽성(彭城)으로 가 그를 방문했다. 그때 소식은 서주의 수재(水災)를 다스리고 나서 황루(黃樓)를 지은 참이라 그에게 <황루부(黃樓賦)>를 지어달라고 부탁했다. 그가 작품을 완성하고 보여주자 소식은 그를 칭찬해 “굴원(屈原)과 송옥(宋玉)의 재능을 지니고 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진관은 당대의 대문호요 정치가였던 소식과 왕안석의 인정을 받았지만 과거 시험에 누차 낙방한 탓에 의기소침해서인지 1085년, 마소유(馬少游)라는 위인에게 공감해 자(字)를 소유(少游)로 바꾸었다. 그러나 이해에 진관은 뜻밖에도 과거 시험에 합격해 진사가 되었다. 이후 당파 싸움으로 소식이 실각됨과 동시에 항주(杭州), 침주(郴州), 횡주(橫州), 뇌주(雷州) 등지로 좌천되었다가, 휘종(徽宗)이 즉위하자 사면되어 돌아오는 도중에 등주(藤州)에서 죽었다.
고문(古文)과 시에 능하였고 특히 사(詞)에 뛰어났다. 시문집 ≪회해집(淮海集)≫(40권)과 그 ≪후집(後集)≫(6권), 사집(詞集)으로 ≪회해장단구(淮海長短句)≫(3권) 등이 있다.


☑ 옮긴이 소개

송용준(宋龍準)
송용준(宋龍準)은 1952년에 태어나 1971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중어중문학과에 입학했고, 졸업 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중국 고전시가를 전공해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공군사관학교 중국어 교관, 영남대학교 문과대학 중어중문학과 교수를 역임했고, 미국 스탠퍼드 대학과 중국사회과학원 등에서 연구했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중어중문학과 교수로 있으면서 중국 고전시가를 강의하고 있다. ≪송시사(宋詩史)≫(공저), ≪송시선(宋詩選)≫(공편), ≪중국시율학(中國詩律學)≫, ≪소순흠시 역주(蘇舜欽詩譯註)≫, ≪진관사 연구(秦觀詞硏究)≫, ≪당송사사(唐宋詞史)≫(공역), ≪유영 사선(柳永詞選)≫, ≪중국어어법 발전사≫(공역), ≪현대중국어문법의 제문제≫ 등의 저·역서와 <당시 형성과정 연구>, <송시 형성과정 연구>, <북송사론 연구>, <이색(李穡) 시의 송시 수용과 그 극복> 등 다수의 논문이 있다.


2015년 2월 9일 월요일

음빙실문집(飮冰室文集) 천줄읽기


도서명 : 음빙실문집(飮冰室文集) 천줄읽기
지은이 : 량치차오(梁啓超)
옮긴이 : 최형욱
분야 : 중국 / 문집
출간일 : 2015년 1월 26일
ISBN : 979-11-304-6088-8 03820
가격 : 18000원
규격 : 사륙판    제본 : 무선제본    쪽 : 170쪽




☑ 책 소개

무술변법의 주인공 량치차오. 그의 계몽 사상과 학술·문학계의 혁신 노력은 중국뿐 아니라 조선의 지식인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의 사상을 잘 드러낸 글들을 뽑아 옮겼다. 서구 문명 수용을 제창하고 애국 계몽사상을 고취하는 글에서 열강의 유린에 직면한 조국을 지키려는 동아시아 지식인의 고뇌를 느낄 수 있다.


☑ 출판사 책 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 천줄읽기>는 오리지널 고전에 대한 통찰의 책읽기입니다. 전문가가 원전에서 핵심 내용만 뽑아내는 발췌 방식입니다.


량치차오는 격동의 중국 근대 전환기에 끊임없이 시대를 주도하며 유신파(維新派) 계몽주의 지식인의 대표 이론가이자 실천가 역할을 수행했다. 19세기에 들어서며 내적으로 극심한 체제 이완과 외적으로 서구로부터의 충격이라는 총체적 위기 상황에 처한 중국의 지식인들은 적극적으로 생존과 구국을 위한 변화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특히 19세기 말엽의 진보적 지식인들은 멸망의 위기로 치닫는 격심한 변화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며 정치·사상적 대응 논리를 정립했고, 그에 부응해 문화 전반에서도 새로운 기풍을 일으켰다. 1880∼1890년대 가장 중요한 진보 정치 세력이자 지식인 집단은 바로 캉유웨이(康有爲)·량치차오 사제(師弟)를 비롯한 유신파 계몽주의 지식인들이었다. 이들은 갈수록 심각해지는 위기 속에서 수구파(守舊派)의 낙후성과 양무파(洋務派)·중체서용(中體西用)의 한계를 인식하고, 사회 변혁·경세치용(經世致用)의 경향에서 보다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특히 청일전쟁의 실패를 계기로 그러한 인식을 더욱 강화하며 일종의 개량주의적·계몽주의적 사회 사조(社會思潮)를 형성했다.
이러한 사조의 핵심 인물인 량치차오는 학술 사상적으로 경세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금문공양학(今文公羊學) 기반 위에 사회 진화론·민족주의·계몽주의를 비롯한 근대 서구 사상을 적극 수용해 그 개혁 운동의 중요한 근원으로 삼고, 봉건 왕조의 법제와 사회를 개량할 것을 주장했다. 특히 서구 제국을 모델로 삼아 과학 기술뿐만 아니라 정치·경제·사회·문화 각 분야에서 총체적으로 개혁을 추진해 부강한 민족 국가를 건립하자고 역설했다.
그러나 당시 량치차오를 중심으로 추진된 개혁은 결국 민중으로부터 개혁을 이끌어 내는 데 이르지 못하고 끝내 수구파에 의해 좌절했다. 1898년 무술정변(戊戌政變)으로 변법유신(變法維新)이 실패로 끝나자 량치차오는 일본으로 망명해야만 했다. 하지만 이후 그는 오히려 정치적 실패를 교훈 삼아 국민 개혁을 위해 학술·사상 및 문화 전반에 걸쳐 계몽 운동을 전개해 당시에 이미 커다란 호응을 얻은 것은 물론이고 현대에까지 계속 깊은 영향을 미쳤다.
이렇게 시대 요구에 대응하고 시대를 이끌어 나간 량치차오의 초인적인 역량은 문사철(文史哲)을 중심으로 한 학술 연구에 기반을 두었다. 그의 학문 활동은 문학·역사·철학·정치학·경제학·사회학·교육학 등등 수많은 분야를 망라했고, ‘세계 제일의 박학가(博學家)’니 ‘저술가의 제일인자’니 하는 평가에 명실상부하게 다양한 방면의 깊이 있는 연구 성과를 방대한 저술 속에 담아내어 ≪음빙실전집(飮冰室專集)≫·≪음빙실문집(飮冰室文集)≫[합해서 ≪음빙실합집(飮冰室合集)≫]으로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인구에 회자되는 대표적인 작품들을 골라 맛만이라도 볼 수 있게 했다.
량치차오의 학문 활동이 매우 다양한 분야를 망라하고, 백과사전식의 연구와 저술로 말미암아 역량이 분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근대 학술계 전 분야에서 그의 지위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근대 학술계에서 탁월한 업적을 이룩한 인물로는 그 외에도 스승인 캉유웨이(康有爲)와 왕카이윈(王闓運)·랴오핑(廖平)·류스페이(劉師培)·장타이옌(章太炎) 등을 꼽을 수 있지만, 문사철은 물론이고 정치·경제 등 분야까지 종합해서 본다면, 모두 량치차오를 능가하지 못한다. 문학 분야에서도 물론 량치차오의 앞뒤로 콩쯔전(龔自珍)·황쭌셴(黃遵憲)과 후스(胡適)가 있어, 기풍을 열고 집대성한 공을 세웠다고 하지만, 민중 속으로 깊이 파고들어 널리 실질적인 기반을 닦아 놓은 량치차오의 역할은 더욱 중대한 것으로 여겨진다.



☑ 책 속으로

·그러므로 옛날에 남의 나라를 멸함에는 쳐서 정벌하는 것으로 멸했는데, 지금 남의 나라를 멸함에는 가엾게 여기고 따뜻하게 해 주는 것으로 멸한다. 옛날에 남의 나라를 멸할 때에는 갑작스럽게 했는데 지금 남의 나라를 멸할 때에는 점진적으로 한다. 옛날에 남의 나라를 멸함에는 드러나게 했는데 지금 남의 나라를 멸함에는 은밀하게 한다. 옛날에 남의 나라를 멸함에는 그 나라 사람들로 하여금 그것을 알아서 대비하게 했는데 지금 남의 나라를 멸함에는 그 나라 사람들로 하여금 친해져서 끌어당기게 한다. 옛날에 남의 나라를 멸하는 자는 호랑이나 이리 같았는데 지금 남의 나라를 멸하는 자는 여우나 살쾡이와 같다. 통상으로 멸하기도 하고, 빚을 놓는 방법으로 멸하기도 하고, 군사를 대신 훈련시켜 주다가 멸하기도 하고, 고문을 두었다가 멸하기도 하고, 도로를 뚫어 주고 멸하기도 하고, 당쟁을 부채질해 멸하기도 하고, 내란을 평정해 멸하기도 하고, 혁명을 도와주어 멸하기도 한다. 그 나라의 정화가 이미 고갈되어 기회가 익으면 일거에 그 국명을 바꾸고 그 지도의 색깔을 바꾼다. 그 나라의 정화가 아직 고갈되지 않아 기회가 익지 않으면 비록 그 나라의 이름을 이어 가고 그 지도 색깔을 그대로 두더라도 백 몇 십 년 후에는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아! 서구 열강으로서 이런 새로운 법을 약소국에 시행하는 나라가 몇 나라인지도 모르겠다. 이 말을 믿지 못하겠는가?

·대체로 전 세계에서 개인주의가 가장 발달한 나라로는 조선이 그 으뜸이다[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조선 사람들은 말하기를 아주 좋아한다. 두세 사람이 서로 만나면 하루 종일 이야기로 날을 보낸다. 외국 사람으로 조선인의 성격을 조금 아는 자는 말하기를, “조선 사람이 하는 말은 하나도 충심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없다”라고 한다[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조선 사람은 화를 잘 내고 일을 만들기를 좋아한다. 한번 모욕을 당하면 곧 팔을 걷어붙이고 일어난다. 그러나 그 성냄은 얼마 안 가서 그치고 만다. 한번 그치면 곧 이미 죽은 뱀처럼 건드려도 움직이지 않는다[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조선 사람은 미래에 대한 관념이 매우 박약하다. 서민들은 한번 배부르면 서로 삼삼오오 짝을 지어 차를 달이며 나무 그늘에서 쉬면서 한담으로 날을 보낸다. 내일은 또 어떻게 먹을 것을 구할까 하는 생계 문제를 계획하지 않으니, 태곳적 복희씨 시대 사람들처럼 한가로이 얽매임이 없다. 벼슬하는 사람들도 또한 그러하다. 다만 오늘 벼슬을 하고 권세가 있으면 내일 나라가 망하더라도 본래 상관할 바가 아니다.

·넷째, ‘소매파(笑罵派)’, 즉 비웃고 욕이나 하는 파다. 이 파의 사람들은 방관파라고 하기보다는 차라리 ‘후관파(後觀派)’, 즉 뒤에서 구경하는 파라고 하겠다. 왜냐하면 그들은 늘 남의 등 뒤에 서서 비꼬는 말이나 욕설로 남을 비평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저들은 단지 스스로가 방관자일 뿐 아니라 또 남들로 하여금 방관자가 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저들은 수구(守舊)를 욕하고, 또 유신(維新)을 욕한다. 소인배를 욕하고, 또 군자도 욕한다. 노인들에 대해서는 그들의 무기력이 이미 깊음을 욕하고, 청년들에 대해서는 경솔하게 일을 많이 벌인다고 욕한다. 일이 성공하면 보잘것없는 놈이 요행히 공을 세웠다고 말하고, 일이 실패하면 내가 진즉에 알았다고 말한다. 저들은 늘 지적할 수 없는 입장에 스스로 서 있으니 무엇 때문인가? 일을 하지 않는 까닭에 지적할 수 없고, 방관하고 있으니 지적할 수 없다. 자기는 일도 하지 않으면서 일을 하는 사람 뒤에 서서 자기와 다른 이를 배척해 비웃고 공격한다. 이것은 가장 교활한 술수로, 용기 있는 자로 하여금 기가 꺾이게 하고 겁쟁이로 하여금 절망하게 한다. 단지 사람들로 하여금 절망하게 하고 기가 꺾이게 할 뿐 아니라, 장차 이루어질 일에 대해서도 저들은 비웃고 욕하고 가로막는다. 이미 이루어진 일에 대해서도 저들은 비웃고 욕하고 망가뜨린다. 그러므로 저들은 세상의 음험한 자들이다.

·나는 취미에 속하는 것들은 모두 다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떠해야 ‘취미’라고 할 수 있는지는 설명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떤 일이든 해 나갈 때 취미와 상반되는 결과를 낳지 않을 수 있는 것, 그것이 곧 취미의 주체가 될 수 있습니다”라고 나는 말합니다. 그렇다면 돈내기하는 게 취미가 될까요? 지면 어쩌죠? 술 마시기가 취미가 될까요? 그러다 병나면 어쩌죠? 관리가 되는 게 취미가 되나요? 자리가 없으면 어쩌죠? (…) 어떤 것들은 비록 짧은 시간 내에는 취미가 되는 것 같지만, 결국 속담에서 말하는 “불행이 한꺼번에 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으므로, 그것들을 취미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무릇 취미의 성질은 결국 취미로 시작해 취미로 끝나야 합니다. 따라서 취미의 주체가 될 수 있는 항목은, 첫째 노동, 둘째 유희, 셋째 예술, 넷째 학문 등입니다. 여러분은 나의 이 말을 들으시고 내가 도덕관념에 따라 취미를 선택한 것으로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는 도덕적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재미있는지 없는지를 따지는 것입니다. 나는 결코 도박이 부도덕해서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도박이 본질적으로 재미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으며, 재미없는 결과는 나의 취미주의를 망가뜨리기 때문에 도박을 배척합니다. 나는 결코 학문이 도덕적이기 때문에 학문을 제창하는 것이 아닙니다. 학문의 본질은 충분히 취미로 시작해 취미로 마칠 수 있는 것으로, 나의 취미주의 조건에 가장 부합하기 때문이며, 따라서 학문을 제창합니다.


☑ 지은이 소개

량치차오(梁啓超, 1873∼1929)
량치차오(梁啓超, 1873∼1929)는 자(字)가 탁여(卓如), 호(號)는 임공(任公)이며, 필명(筆名)은 음빙실주인(飮冰室主人)·음빙자(飮冰子)·만수실주인(曼殊室主人)·신민자(新民子)·소년중국지소년(少年中國之少年) 등등이다. 서구 열강의 침략과 대항의 최전방 지역이었던 광둥성(廣東省) 신후이(新會) 사람으로, 반경반독(半耕半讀)의 향신(鄕紳) 가정에서 태어났다. 동치(同治) 12년(1873), 즉 아편전쟁이 일어난 지 33년 뒤, 태평천국의 난이 평정된 지 10년 뒤, 서구의 충격이 한창 중국으로 물밀듯이 거세게 쳐들어오던 시기였다.
량치차오는 중국 역사상 그 어느 시기보다 중요한 근대 전환기를 살면서 끊임없이 시대를 이끌어 간 대표적 지식인이었다. 신문·잡지 및 교육을 기반으로 변법유신(變法維新)을 도모하고, 근대화된 서구 문명을 선전함으로써 폐쇄되었던 근대 중국에 새로운 개혁의 기풍을 일으켰으며, 특히 탁월한 계몽주의 사상가·정치가·언론인·교육자·문학가로서 중국 문화사(文化史)에서 절대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일반적으로 량치차오의 생애는 크게 수학(修學) 시기(1873∼1894), 유신 운동과 계몽 활동 시기(1895∼1903), 입헌 추진과 정치 재개 시기(1904∼1917) 그리고 강학(講學)과 저술 시기(1918∼1929) 등 네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의 인생 역정은 한마디로 중국의 근대화를 위한 투쟁의 역사였다. 정계에서 은퇴한 1917년 무렵까지는 주로 정치가로서 학술 활동을 병행하면서 자신이 말한 학자의 임무인 ‘세상을 깨우쳐야 한다(覺世)’는 사명감 아래 근대 중국의 신문화(新文化) 창도자·실천자로서 소임을 충실히 수행했으며, 1918년 이후로는 학술 연구에 전념하면서 ‘세상에 전하고자 하는(傳世)’ 전통문화의 수호자로서 최선을 다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도 그 변화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도록 1918년 이후의 작품도 일부 실었다.


☑ 옮긴이 소개

최형욱
최형욱(崔亨旭)은 1962년 서울에서 태어나 한양대 중문과를 졸업하고, 1988년 타이완 국립정치대학 대학원에서 <청대 양호파의 원류 및 그 문학 이론 연구(淸代陽湖派的源流及其文學理論硏究)>라는 논문으로 문학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연세대 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마치고, 1996년 <량치차오의 문학 혁명론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4년부터 한양대, 연세대 등에서 시간 강사를 역임하고, 1998년부터 2000년까지 경동대 전임 강사를 거쳐 현재 한양대 중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6년 여름부터 1년간 방문학자로서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버클리 캠퍼스 중국학센터에서 연구한 바 있다. 주요 논문 및 저역서로 <조선의 량치차오 수용과 량치차오의 조선에 대한 인식>, <량치차오의 중국 국민성론 및 조선 국민성 비판 탐구>, <중국 근대의 계몽주의 문학 사조>, <량치차오의 시계 혁명론이 개화기 한국 시론에 미친 영향>, <량치차오의 추풍단등곡(秋風斷藤曲) 탐구>, <한중 전통문화 관련 디지털 인문 콘텐츠 실태 비교 및 수준 향상 방안 연구>, ≪신편 명심보감≫, ≪량치차오, 조선의 망국을 기록하다≫ 등이 있다.
역자는 평소 중국의 근현대 문학 이론, 근현대 한중 사상·문학 비교, 특히 중국 근대 문학과 현대 문학의 연계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대체로 1910년대 후반, 즉 5·4 운동 무렵을 기점으로 보는 중국 현대 문학사는 왕왕 이전의 장구한 중국 문학이나 역사와 단절시켜 논의하는 경향이 있다.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전통은 계승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루쉰(魯迅, 1881∼1936) 이전에는 마치 문학이 없다시피 한 것으로 보이게 했다. 중국 근현대 문학의 발전 양상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또 그 가운데서 이전 문학과 연계된 흐름을 이해한다면, 중국 문학 특히 근현대 문학 연구에 새로운 시야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연구에 임하고 있다.
또한 중국 근현대 문학 및 사상에 대한 연구는 그 자체로서뿐만 아니라 이 시기 우리 문학과 사회를 이해하는 데에도 상당한 연구 가치가 있다고 여겨진다. 근현대 사회로 접어들면서 전통적인 관념들이 왜, 어떻게 새로운 방향으로 변화해 갔는가, 문학을 비롯한 서구 문명이 밀려들어 중국과 충돌하고 또 융화되면서 어떤 양상을 보였는지 등에 관한 많은 문제는 우리나라의 경우와 비교해서도 큰 관심을 갖게 한다. 즉, 우리나라도 중국과 마찬가지로 근대화 시기에 서구 열강 및 일본의 침탈을 겪음으로써, 부득이 우리의 본모습을 잃고 커다란 곤혹과 수모를 치르며 파행적인 근대화의 과정을 겪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 근대화에서도 서구적 근대화에 대한 저항과 수용이 중요한 문제 중 하나였으며, 이로 인해 중국과 유사한 모습들이 보였다. 때문에 본서의 작업을 포함한 역자의 연구 과제들은 중국 근현대 문학 및 사상의 형성·연계와 그 본질을 살피는 데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그에 대한 이해를 통해 또 다른 각도에서 중국과 우리나라 및 세계의 근현대 문화와 사회를 이해하는 기반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 목차

해설 ······················vii
지은이에 대해 ··················xv

1. 변법에 대해 두루 논의함(變法通議) ········3
2. 남의 나라를 멸망시키는 새로운 법(滅國新法論) ··6
3. 조선 멸망의 원인(朝鮮滅亡之原因) ·······11
4. 중국이 허약해진 근원을 논함(中國積弱遡源論) ··33
5. 국민에게 필요한 10대 원기를 논함(國民十大元氣論) 37
6. 서로 반대가 되고 동시에 보완해 주는 열 가지 덕성(十種德性相反相成義) ·············45
7. 과도기론(過渡時代論) ·············50
8. 방관자를 꾸짖노라(呵旁觀者文) ·········56
9. 신민설(新民說) ················65
10. ≪중국의 무사도≫ 서문(≪中國之武士道≫自敍) 94
11. 음빙실자유서(飮冰室自由書) ··········98
12. ‘이룰 수 없음을 알면서도 하는’ 주의와 ‘하되 가지지 않는’ 주의(知不可而爲主義與爲而不有主義) ·113
13. 학문하기와 사람 되기(爲學與做人) ·······119
14. 학문의 취미(學問之趣味) ···········133
15. 학문 연구에 관해(治國學雜話) ·········141

옮긴이에 대해 ··················146

2015년 2월 5일 목요일

쉬즈모 시선 徐志摩詩全集


도서명 : 쉬즈모 시선 徐志摩 詩選
지은이 : 쉬즈모 徐志摩
옮긴이 : 이경하
분야 : 중국 현대시
출간일 : 2010년 7월 15일
ISBN : 978-89-6406-571-6
가격 : 12,000원
규격 : A5    제본 : 양장본    쪽 : 162쪽
국내 초역, 40편 선별 수록




200자 핵심요약

풍부한 상상력과 예민한 감수성으로 사랑을 노래하고 자연의 소중함과 도시 문명의 폐해를 표현한 쉬즈모의 시 40편을 실었다. 1931년 35세 짧은 나이로 생을 마감한 쉬즈모는 신월시파의 핵심 인물로 중국 시단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엘리트 시인이다. 순수한 이상에 반해 참혹했던 현실을 삶과 유리되지 않은 순수문학으로 구현했다. 


☑ 책 소개

이데올로기와 시대를 초월한 사랑을 노래한 시인
학창시절 책 읽기를 즐겼지만 시에 대해 감흥을 느끼지 못했던 쉬즈모에게 시가 운명처럼 다가온 것은 미국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은 후 영국으로 건너가면서부터다. 케임브리지에 머물면서 서구문학에 매료되었고, 그 중 낭만파 시인 키츠, 셸리, 워즈워스, 하디의 영향을 받게 된다. 이 밖에 인간의 개성 해방과 절대적 자유를 추구한 바이런, 타고르, 톨스토이, 로맹 롤랑의 사상에 많은 감동을 받는다. 근대화로 인해 인간이 타락해 가고 생명의 존엄성이 위협받고 있는 현실 속에서 이에 대해 끊임없이 성찰하고 비판했던 타고르를 존경해 그의 작품을 중국에 알리기 위해 노력한다. 
쉬즈모의 시 세계는 종종 1925년을 기준으로 두 가지 특징으로 나뉘어 언급되곤 한다. 그의 초기 작품들에 이상 추구에 대한 열정과 낙관적인 희망이 넘치고 있다면, 1925년 이후의 작품에서는 삶에 대한 비관과 회의, 사랑에 대한 절망이 주조를 이루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단순 신앙’, 즉 ‘사랑’, ‘자유’,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살았다. 그의 이상은 순수했지만 현실 세계는 너무 참혹했기에 그의 이상주의는 실패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문학이 삶과 유리될 수 없다고 여기며, ‘삶’과 ‘예술’ 사이의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스스로 “아마도 나는 천성적으로 감성적인 사람일 것이다”라고 고백한 것처럼, 쉬즈모는 풍부한 상상력과 예민한 감수성으로 사랑을 노래하고, 자연의 소중함과 도시 문명의 폐해를 표현한 시인이었다. 

경제학도가 인생을 시로 노래하다.
쉬즈모는 생전에 세 권의 시집을 출간했고, 짧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후 지인들이 그의 유고 시집을 발표했다. 1925년 중화서국에서 출판된 그의 첫 번째 시집 ≪즈모의 시≫는 1922~1924년 창작시들로 구성되었으며 시인으로서의 명성을 얻게 해 주었다. 두 번째 시집 ≪피렌체의 하룻밤≫은 자신의 두 번째 결혼 1주년을 기념해 1927년 상해서점에서 출판되었다. 이 시집에는 번역시 7편과 1925~1926년 사이에 창작된 시가 수록되었는데 그의 삶과 사상에 있어 큰 전환이 이루어지던 때였다. 1931년 세 번째 시집 ≪맹호집≫은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 <호랑이>에서 따온 것으로, 그가 사랑했던 부인과 부모 사이의 심리적 긴장 속에서 고통과 괴로운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1931년 쉬즈모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이듬해 7월 후배 문인 샤오쉰메이와 천멍자는 그를 추모하기 위해 ≪맹호집≫ 이후 창작된 시편들과 번역 작품을 모아 유고 시집 ≪운유(雲游)≫를 출판했다. 이 시집에는 번역시 2편을 포함해 총 13편의 시와 루샤오만이 쓴 서문이 수록되어 있으며, 작품 속에는 고통스러운 현실 속에서도 구속받지 않는 자유로운 사랑에 대한 추구와 실연의 아픔에 대한 토로가 주로 표현되어 있다.


☑ 책 속으로

我不知道風  
是在哪一個方向吹 ―  
我是在夢中,  
在夢的輕波裏依洄。  

我不知道風  
是在哪一個方向吹 ―  
我是在夢中,  
她的溫存,我的迷醉。

나는 모릅니다 바람이
어디에서 불어오는지 —
꿈속에서,
꿈의 찰랑이는 물결 속에 휘돌아 흐릅니다.
나는 모릅니다 바람이
어디에서 불어오는지 —
꿈속에서,
그녀의 부드러움에, 도취되었습니다.


☑ 지은이 소개

쉬즈모(徐志摩, 1897∼1931)
쉬즈모는 1897년 저장성에서 독자로 태어났다. 1915년 항저우제일중학을 졸업하고 그해 상하이의 거부였던 장룬즈의 딸 장유이와 결혼했다. 1916년 톈진 베이양대학 법학과에 진학한 후 량치차오를 알게 되어 그를 스승으로 삼았다. 1918년 미국 유학길에 오른 쉬즈모는 클라크대학 역사학과에 들어간 지 1년 만에 명예졸업하고 뉴욕 컬럼비아대학 경제학과에 입학해 1920년 석사학위를 받는다. 러셀(Bertrand Russell)에 대한 존경심으로 영국으로 건너가 런던대학 정치경제학원에서 반년을 보내게 된다. 이때 량치차오의 친구인 린창민과 그의 딸 린후이인을 만나 운명적 사랑을 느끼게 된다. 장유이와 1922년 정식 이혼을 한 후 유럽, 싱가포르, 홍콩, 일본 등지에 머물면서 자신의 열정을 시 창작에 쏟아부었고, 독자들은 사랑과 이별의 아픔을 노래한 그의 작품에 뜨거운 호응을 보였다. 
린후이인에 대한 마음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량치차오의 장남 량쓰청과 결혼해버리고 쉬즈모는 다시 한 번 실연의 고통을 겪는다. 1924년 우연히 선배인 왕겅의 아내 루샤오만을 알게 되고 다시 불같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녀에게 불행한 결혼생활을 끝내고 자신과 결혼해 달라 청혼하지만 주위의 반대로 무산되고 이후 5개월간 시베리아를 거쳐 유럽의 묘지를 순례하고 돌아와 <신보부간> 편집을 맡는다.
쉬즈모를 중심으로 신월시파는 신격률시 창작과 이에 관련된 연구와 토론을 하며 순수시 운동을 전개했다. 신월시파는 고전시와 구별되는 현대적 의미의 격률을 추구하며 질서와 균형을 내포하는 형식이 시적 표현에 있어 장애가 돼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류샤오만과 결혼했지만 결혼 후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부친은 아들이 가족의 의견을 무시한 채 이혼과 재혼을 감행하자 경제적 지원을 끊었고 그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여러 대학을 다니며 강의하고 원고를 쓰며 바쁘게 지냈고 류샤오만은 무료함을 견디다 못해 마작과 아편에 손을 대면서 관계가 소원해진다. 
이후 베이징과 상하이를 오가며 바삐 지내다 린후이인의 부탁으로 베이징에 강의를 하러 비행기에 몸을 싣게 되는데, 불행히도 지난 부근에서 짙은 안개로 인해 산에 부딪혀 추락해 버린다. 이 사고로 쉬즈모를 포함한 탑승자 전원이 사망했다. 
늘 자유를 꿈꾸었기에, ‘날고 싶다’는 표현이 유난히 많이 등장했던 그의 시구들, 그러나 자유와 광명에 대한 이상을 가슴에 품고만 살았지, 빈곤하고 낙후된 사회 현실에 대항해 투쟁할 용기는 없었기에, 그는 자신이 쌓아 올린 상상의 세계에서만 비상할 수 있었다. 자신이 선택해 짊어진 십자가가 너무 무겁고 힘겹게 느껴졌지만, 그렇다고 스스로 삶의 괴로움이 무엇인지 절실히 느꼈던 바로 그 순간에 비행기 사고로 삶을 마감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영원한 아쉬움을 남겨 주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이후 그는 프롤레타리아 혁명문학에 반대한 ‘부르주아 시인’으로 낙인찍혀 그의 작품은 형편없는 것으로 취급되었고, 이러한 그의 작품에 대한 족쇄한 1978년 개혁개방 이후에야 풀리게 되었다. 


☑ 옮긴이 소개

이경하
이경하(李庚夏)는 덕성여자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이화여자대학교 중어중문학과에서 문학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베이징대학 중어중문학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베이징대학 동양언어학부 한국어 강사를 지냈으며, 현재 덕성여자대학교, 서강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중국어문학을 가르치고 있다. 학위 논문 <北島詩硏究>(석사), <1930年代上海文學期刊與現代派詩潮>(박사)를 비롯해, 역서 ≪戴望舒詩選≫, ≪떨리듯 와서 뜨겁게 타다 재가 된 사랑 노래: 중국 현대 애정시 선집≫(공역), ≪매의 노래: 바진 타계 일주년 추모 수상록 선집≫(공역) 및 학술 논문 <北島를 바라보는 세 가지 시선>, <‘소수의 행복한 독자’를 위하여―大公報·文藝·詩特刊에 대한 試論> 등이 있다.


☑ 차례

해설
지은이에 대해

사랑하다 죽으리 情死
기도 一個祈禱
스후 골목 7번지 石虎胡同七號
뇌봉탑 雷峰塔
선생님! 선생님! 先生! 先生!
빌어먹어도 싸지 叫化活該
사랑이란 도대체 무엇인가요 戀愛到底是什麽一回事
떠나요 去吧
독약 毒藥
갓난아이 嬰兒
밝은 별을 찾아서 爲要尋一個明星
눈꽃의 즐거움 雪花的快樂
남겨진 시 殘詩
겁 많은 이 세상 這是一個懦怯的世界
어두운 빛의 한 이정표 一塊晦色的路碑
쑤쑤 蘇蘇
내겐 하나의 사랑이 있을 뿐 我有一個戀愛
낙엽의 노래 落葉小唱
“담장을 쌓아 올리며” “起造一 座墻”
신음 소리 呻吟語
여행 중 客中
한밤 깊은 골목 안의 비파 소리 半夜深巷琵琶
우연 偶然
마지막 그날 最後的那一天
“나는 모릅니다. 바람이 어디에서 불어오는지” “我不知道風是在哪一個方向吹”
생활 生活
원망 怨得
깊은 밤 深夜
그의 눈에 당신이 있네요 他眼裏有你
다시 케임브리지와 이별하며 再別康橋
모두 바치리라 拜獻
젠장 活該
꾀꼬리 黃鸝
계절 季候
낡아 빠진 殘破
왜냐하면 爲的是
미약함 渺小
꼬집지 말아요, 아파요 別擰我, 疼
산속에서 山中
운유 雲游

옮긴이에 대해





2015년 2월 4일 수요일

영회시 詠懷詩


도서명 : 영회시  詠懷詩
지은이 : 완적
옮긴이 : 심우영
분야 : 시
출간일 : 2010년 9월 15일
ISBN : 978-89-6406-578-5
가격 : 12,000원
규격 : A5    제본 : 양장본    쪽 : 195쪽

완역



200자 핵심요약

죽림칠현의 대표적 인물인 완적의 시를 종합했다. ‘영회’는 ‘마음에 품은 바를 노래한다’는 의미다. 위나라의 이름 있는 문인으로서 나라가 기울어 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드는 생각들을 시에 담은 것이 <영회시>다. 정권을 찬탈한 자들과 권력에 아첨하는 자들에 대한 비판, 권력 싸움이 치열한 현실 세계를 벗어나 차라리 신선이 되고 싶은 마음 등을 노래한 완적의 시 82수가 모두 담겨 있다.


☑ 책 소개

<영회시> 82수는 죽림칠현을 대표하는 완적의 작품이며, 중국의 고전 시가 중에서도 최고의 수작으로 꼽힌다. 선진 시대에 ≪시경≫이 탄생해 중국의 정통 시가 문학을 출발시켰다고 한다면, <영회시> 82수는 이보다 약 8세기가 지난 위진 교체기에 5언 신시체로 나와 최고의 서정시로 자리매김했다. 물론 한대 악부시와 <고시 십구수> 그리고 조식(曹植)을 비롯한 건안 시가의 영향을 받아 탄생했다.
<영회시>는 일정한 시기에 의도적으로 지은 것이 아니며 평소 감정이 복받칠 때마다 지은 작품이다. 내용을 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첫째, 고통스러운 삶과 고독한 정회를 묘사했다.
둘째, 권력 찬탈과 변절자에 대해 풍자했다.
셋째, 노년기 인생 역정과 불안한 여생을 서술했다.
넷째, 은둔 생활과 신선 세계를 추구했다.

<영회시> 82수의 최대 특징은 비흥(比興), 상징, 용전(用典) 등의 수법이 자주 사용되어 시인의 의도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곧 시의 난해성을 얘기하는 것인데, 그 이유는 대강 다음과 같다.

첫째, 작품 자체의 시작 수법에서 기인했다.
둘째, 복잡 미묘한 시인의 심리적 갈등이 상식을 뛰어넘었다.
셋째, 창작 배경이나 정황이 기타 문헌에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넷째, 판본에 따라 다른 글자가 많아 정확한 해석이 불가능하다.

이런 이유로 종영(鍾嶸)이나 이선(李善) 등 역대 수많은 비평가들이 <영회시> 82수를 지극히 난해한 시라고 규정했다. 하지만 이런 난해성에도 불구하고 청일현원(淸逸玄遠)의 미를 구사했다는 점과 그의 철리(哲理)와 정사(情思) 그리고 의상(意想)이 적절하고 풍부하게 두루 포함됐다는 점은 또 다른 예술적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영회시> 82수는 일찍부터 비평가들의 이목을 끌었는데, 종영의 ≪시품≫에는 상품(上品)에 올라 있고, 소명태자의 ≪문선≫에는 17수가 선록되었으며, 명 왕세정(王世貞)과 청 왕부지(王夫之), 방동수(方東樹) 등도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후대에 많은 영향을 끼쳐 유사한 작품들이 많이 나왔는데, 좌사(左思)의 <영사(詠史)> 8수, 도연명(陶淵明)의 <음주(飮酒)> 22수, 유신(庾信)의 <의영회(擬詠懷)> 27수, 진자앙(陳子昻)의 <감우(感遇)> 38수, 이백(李白)의 <고풍(古風)> 82수 등의 연작시가 이에 해당한다.


☑ 책 속으로

夜中不能寐
起坐彈鳴琴
薄帷鑑明月
淸風吹我襟
孤鴻號外野
翔鳥鳴北林
徘徊將何見
憂思獨傷心

한밤중 잠 못 이루어
일어나 앉아 거문고 타니,
엷은 휘장에 밝은 달 비치고
맑은 바람 옷깃 스친다.
바깥 들녘 외기러기 울부짖는 소리
북쪽 숲 뭇 새들 우는 소리.
배회한들 무엇을 볼 수 있으리?
깊은 근심에 마음만 상할 뿐.


☑ 지은이 소개

완적(阮籍, 210∼263)
완적은 위진 교체기의 최고 시인이며 죽림칠현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자가 사종(嗣宗)이고, 건안 15년(210) 진류군 위씨현(陳留郡 尉氏縣, 지금의 허난성 카이펑시)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건안 문학을 대표하는 건안칠자 가운데 한 사람인 완우(阮瑀)다. 그가 태어난 시기는 후한과 촉 그리고 오나라가 정립된 삼국 시대였는데, 후한은 사실상 조조의 수중에 있었다. 220년에 후한이 멸망하고 조조의 아들인 조비가 위나라를 세웠다.
완적이 두 살 때인 서기 222년에 부친인 완우가 죽자, 당시 완씨는 명문대족(名門大族)이긴 했으나 청렴결백한 아버지를 둔 관계로 생활이 풍족하지 못했고, 홀어머니를 위해서 어릴 적부터 효도를 몸에 익혔다. 그는 여덟 살 때 이미 좋은 글을 썼고, 이후 독서에 매진해 수개월 동안 두문불출하기도 했으며, 열네댓 살 때에는 ≪시경≫과 ≪서경≫ 등의 유가 경전에 탐닉해 안연(顔淵)과 민자건(閔子騫) 같은 유자(儒者)가 되기를 꿈꿨다. 그리하여 제세(濟世) 의지도 확고하게 갖췄다. 그는 완우의 아들이라는 점과 종형인 문업(文業)이 그를 인재로 보았다는 이유로 일찍부터 세상에 알려지게 되는데 벼슬과는 항상 거리를 두었다. 서른두 살(242) 때 태위(太尉) 장제(蔣濟)의 추천을 받았으나 오히려 언짢게 여기고 거절하다가 화를 자초할지도 모른다는 주위의 권유로 잠시 직무를 보다 병을 핑계로 사직했다. 서른여덟 살(248) 때는 상서랑을 지내다 당시 최고의 실세인 조상(曹爽)의 참군(參軍)으로 부름을 받았으나 역시 병을 핑계로 거절했다. 한 해가 지나 고평릉 사건으로 조상이 죽자 세상 사람들은 그가 선견지명이 있다고 얘기했다.
249년 고평릉 사건을 계기로 조씨 권력이 사마씨로 넘어간 후, 이를 다시 되찾으려는 조씨와의 싸움이 더욱더 치열하게 전개됐다. 이에 명사들은 현학과 청담이 성행하고 피세 사상이 만연한 사회 분위기에 따라서 자신들의 생명을 보전하기 위한 새로운 돌파구를 찾았다. 술과 거문고 그리고 청담으로 세월을 보낸 죽림칠현이 그 대표적인 예다.
사마씨가 정권을 잡은 후 위나라 태부(太傅)가 된 사마의(司馬懿)는 완적을 종사중랑(從事中郞)으로 발탁했고, 사마의가 죽은 후에도 가평 3년(251)에는 관배대장군(官拜大將軍)인 사마사(司馬師: 사마의의 장남)가 그를 종사중랑으로 삼았다. 정원 원년(254)에는 사마사가 주군(主君)인 조방(曹芳)을 폐위해 제왕(齊王)으로 앉히고 조모(曹髦)를 옹립한 후 그를 관내후(關內侯)로 봉했다가 다시 산기상시(散騎常侍)로 자리를 옮겨 주었다. 다음 해인 정원 2년(255) 정월에 관구검(毌丘儉)과 문흠(文欽)이 반란을 일으켰으나 실패로 끝나고, 다음 달인 2월에는 사마사가 병사해 그의 동생인 사마소(司馬昭)가 대장군의 지위를 이어받았다. 사마소는 완적을 동평상(東平相)에 임명했으나, 그는 열흘도 채 못 되어 그만두고 돌아왔다. 그래서 사마소는 그를 다시 대장군종사중랑으로 임명해 왕침(王沈) 등과 더불어 위서(魏書)를 편찬케 했다. 그 후 완적은 보병 병영에 술 잘 빚는 주방장과 좋은 술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자청해 보병교위(步兵校尉)가 되었다. 이때부터 완적은 본격적으로 반예교적 방탕 행위를 시작했다. 그러나 완적 자신은 의도적인 반예교적, 반인륜적 방탕 행위를 자행했지만, 아들만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하며 여느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아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완함(阮咸: 완적의 조카) 하나만으로도 족하니, 너는 그렇게 해서는 아니 된다.”


☑ 옮긴이 소개

심우영
심우영(沈禹英)은 부산 출신으로 부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 중어중문학과에서 문학사를 취득한 후, 교환학생 자격으로 대만 국립정치대학에 유학해 동 대학원에서 문학석사 및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상명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20년 이상 재직하면서, 캐나다 UBC 방문 학자로 1년간 해외 연수를 다녀왔으며, 한국중문학회 회장 및 한국중어중문학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현재는 상명대학교 어문대학장 및 한중문화정보연구소 소장을 겸임하고 있다. 저서로는 ≪중국 시가 감상≫, ≪학생들과 함께 떠난 중국 시가 여행≫, ≪태산, 시의 숲을 거닐다≫ 외 다수가 있으며, 완적 관련 논문으로는 <육조 은일시 연구>, <영회시 82수에 나타난 자연물의 상징 양상>, <완적의 처세 태도에 대한 재검토>, <완적의 이상경계>, <죽림칠현의 은일관 연구> 등이 있다.


☑ 차례

해설
지은이에 대해

제1수 夜中不能寐
제2수 二妃遊江濱
제3수 嘉樹下成蹊
제4수 天馬出西北
제5수 平生少年時
제6수 昔聞東陵瓜
제7수 炎暑惟玆夏
제8수 灼灼西頹日
제9수 步出上東門
제10수 北里多奇舞
제11수 湛湛長江水
제12수 昔日繁華子
제13수 登高臨四野
제14수 開秋肇涼氣
제15수 昔年十四五
제16수 徘徊蓬池上
제17수 獨坐空堂上
제18수 懸車在西南
제19수 西方有佳人
제20수 楊朱泣岐路
제21수 於心懷寸陰
제22수 夏后乘靈輿
제23수 東南有射山
제24수 殷憂令志結
제25수 拔劍臨白刃
제26수 朝登洪坡顚
제27수 周鄭天下交
제28수 若木耀西海
제29수 昔余遊大梁
제30수 驅車出門去
제31수 駕言發魏都
제32수 朝陽不再盛
제33수 一日復一夕
제34수 一日復一朝
제35수 世務何繽紛
제36수 誰言萬事艱
제37수 嘉時在今辰
제38수 炎光延萬里
제39수 壯士何忼慨
제40수 混元生兩儀
제41수 天網彌四野
제42수 王業須良輔
제43수 鴻鵠相隨飛
제44수 儔物終始殊
제45수 幽蘭不可佩
제46수 鷽鳩飛桑楡
제47수 生命辰安在
제48수 鳴鳩嬉庭樹
제49수 步遊三衢旁
제50수 淸露爲凝霜
제51수 丹心失恩澤
제52수 十日出暘谷
제53수 自然有成理
제54수 夸談快憤懣
제55수 人言願延年
제56수 貴賤在天命
제57수 驚風振四野
제58수 危冠切浮雲
제59수 河上有丈人
제60수 儒者通六藝
제61수 少年學擊刺
제62수 平晝整衣冠
제63수 多慮令志散
제64수 朝出上東門
제65수 王子十五年
제66수 寒門不可出
제67수 洪生資制度
제68수 北臨乾昧溪
제69수 人知結交易
제70수 有悲則有情
제71수 木槿榮丘墓
제72수 修塗馳軒車
제73수 横術有奇士
제74수 猗歟上世士
제75수 梁東有芳草
제76수 秋駕安可學
제77수 咄嗟行至老
제78수 昔有神僊士
제79수 林中有奇鳥
제80수 出門望佳人
제81수 昔有神仙者
제82수 墓前熒熒者

옮긴이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