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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6월 1일 수요일

예술철학 Philosphie der Kunst

예술 없는 예술 이론들을 비판하는 프리드리히 셸링

미학은 바움가르텐이 1750년, '지각하다'라는 동사에서 끌어낸 단어다. 그 방법은 심리적이고 감각적이다. 셸링의 생각은 다르다. "예술은 오직 예술에 의해서만" 규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헤겔에 훨씬 앞서 변증법을 사용해 대립물의 동일성을 찾아가는 그의 여정이 아름답다. 사유의 예술이다.










<<예술철학>>은 셸링이 대학에서 강의한 내용을 엮어 셸링 사후에 그 아들이 발간한 책이다. 비움가르텐의 ‘미학’ 개념에 맞서 예술 자체를 대상으로 하는 예술학의 정초를 마련코자 했던 셸링의 가장 핵심적인 예술철학의 명제들을 만날 수 있다.

≪예술철학≫은 셸링이 어떤 체계적 구축을 통해서 세계 속의 수많은 대립, 즉 이론과 실천, 자연과 정신, 개별과 보편, 주관과 객관, 자유와 필연, 존재와 사유 같은 이원론을 극복하는가, 그리고 그 극복의 완성 지점을 왜 예술철학에서 구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셸링에게 예술철학은 흔히 생각되듯이 철학의 특수한 분야 중 하나가 아니라 보편 철학과 같다. 예술철학을 통해 셸링은 미적 직관에 따라 절대자의 이념의 가시적인 형태를 우리에게 제시하는 것이 예술이라는 것을 명백히 하려고 한다. 이러한 해명에서 주목되는 점은 방법론적으로 변증법의 도식이 이미 제시되고 있으며, 더 나아가서 완성되고 있다는 점이다. ‘변증법’ 하면 헤겔이 떠오르고 또 헤겔만이 회자되는 우리나라의 현 상황에서 셸링의 변증 논리를 고찰해 보는 것은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이다.

예술학을 개정하도록 만드는 동기
셸링이 이 책에서 다루는 예술학은 사람들이 그때까지 예술학 또는 미학과 같은 이름 아래 행해 왔던 모든 것, 혹은 예술에 관한 이론이나 학문이라는 이름으로 행해 왔던 모든 것들과 구분된다. 셸링은 책의 서문에서 학문적 혹은 철학적이라 할 수 있는 진정한 예술 이론이 그 어디에도 없다고 단정한 뒤 자신만의 예술이론을 펼쳐나간다. 비움가르텐의 ‘미학’은 철저히 거부된다.

보편철학으로서의 예술철학
예술철학의 출발점은 지각된 아름다움으로서가 아니라 절대자가 진리를 표현하는 한 가지 방식으로서 예술을 통찰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 예술철학은 셸링에 의해 자연철학, 역사철학과 동일한 방식으로 탐구된다.


☑ 책 속으로

무한자의 표현으로서는 예술은 철학과 같은 높이에 서는 것이기도 하다. 철학이 절대자를 원상(Urbild)에서 표현한다고 한다면 예술은 절대자를 모상(Gegenbild)에서 표현한다.

우리는 진리와 미가 하나의 절대적인 것을 각기 다른 두 가지 관찰 방식으로 본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밝혀 주어야만 한다.

예술의 역사 속에서 드러나는 것은 모든 예술 작품들의 본질적이고 내적인 통일성이다. 즉, 모든 예술 창작은 하나의 동일한 정신에서 나온다. 비록 동일한 정신이 두 가지 다른 형태, 즉 고대 예술과 근대 예술이라는 두 가지 다른 형태로 대립되는 것으로 제시될지라도.


☑ 지은이 소개


프리드리히 셸링(Friedrich Wilhelm Joseph Schelling)
셸링은 1775년 독일 뷔르템베르크의 레온베르크에서 루터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조숙했던 셸링은 15세에 튀빙겐대학교에 입학했다. 튀빙겐대학교에서 헤겔(Hegel) 및 횔덜린(Hö̈lderlin)과 친구가 된다. 17세 때 이미 원죄에 관한 내용으로 학위논문을 썼다. 이어 1793년부터 지속적으로 일련의 철학 논문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처음의 몇몇 글에서는 피히테의 영향이 많이 보이지만, 1797년에 발표한 ≪자연철학에 대한 이념≫에서부터는 자신만의 고유한 철학 세계를 펼쳐 나가기 시작한다. 곧이어 1798년 괴테의 추천으로 예나대학교의 교수로 초빙된다. 셸링은 예나에서 괴테, 실러, 슐레겔 같은 독일 낭만파 작가들과 사귀었으며, 카롤리네 슐레겔을 만나 1803년에 결혼한다. 1802년과 1803년에 헤겔과 함께 ≪철학 비판지(Kritisches Journal der Philosophie)≫를 제작했다. 헤겔은 셸링보다 다섯 살 위였지만 셸링을 친구이자 스승처럼 생각했고, 헤겔의 첫 번째 저술도 ≪피히테의 철학 체계와 셸링의 철학 체계의 차이(Differenz des Fichteschen und Schellingschen System der Philosophie)≫(1801)다. 그러나 튀빙겐대학교에서부터 맺어 온 셸링과 헤겔의 우정은 헤겔이 ≪정신현상학(Phänomenologie des Geistes)≫(1807)을 발표한 후 안타깝게도 깨지고 만다.

셸링은 1803년 뷔르츠부르크대학교 교수로 자리를 옮겼고, 1806년에는 뮌헨으로 가서 바이에른 학술원 회원과 미술대학 사무총장을 역임하게 된다. 에를랑겐대학교에서도 강의했으며, 1827년에는 뮌헨대학교 교수직을 맡고 미술대학 학장도 지내게 된다. 1841년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가 베를린대학교로 셸링을 초빙했으며 그는 그곳에서 1846년까지 교수직을 수행했다. 베를린에서 그의 강의를 들은 학생 중에는 나중에 유명해진 사람이 많았는데, 그중에는 키르케고르(SØren Kierkegaard), 엥겔스(Friedrich Engels), 부르크하르트(Jacob Burckhardt), 바쿠닌(Mikhail Bakunin)도 있었다. 셸링은 1854년 스위스의 바트라가츠에서 죽었다.


☑ 옮긴이 소개


김혜숙
김혜숙은 건국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화여자대학교, 인천교육대학교, 아주대학교, 상명대학교, 건국대학교 등에서 강의했으며, 저서로는 ≪셸링의 예술철학≫, ≪논리학의 이해≫, 역서로는 ≪인간의 이해력에 관한 탐구≫, ≪선험적 관념론의 체계≫, 논문으로는 <셸링의 예술철학에 관한 존재론적 연구>, <셸링  자연철학에 있어서의 주관의 자기 전개>, <셸링의 예술철학에 대한 연구>, <셸링과 근대 합리론>, <셸링 사유에 있어서의 자유의 가능성으로서의 선과 악의 가능성에 관한 고찰> 등이 있다.


☑ 차례

해설 ·······················9
지은이에 대해 ··················16

서론 ······················21
예술학을 개정하도록 만드는 동기 ·······21
예술철학의 가능성 ··············27
예술철학의 보편적 연역 ············36


제1장 예술철학의 보편적인 부분
제1절 예술 일반의 그리고 보편적인 것으로서의 예술의 구성 ·····················45
제2절 예술의 소재의 구성 ·············63
1. 예술의 소재로서 신화학을 이끌어 냄 ·····63
2. 신화학과 관련해 본 고대 시와 근대 시의 대립−종교철학적 전개 ···············77

제3절 특수자 혹은 예술의 형식의(특수한 예술 작품의) 구성 ·····················87
1. 예술 작품 일반론: 숭고함과 미의 대립, 소박함(Naiv)과 감상적임(Sentimental)의 대립, 스타일과 작풍(Manier)의 대립 ··············87
2. 미적 이념의 구체적 예술 작품으로의 이행 ··107


제2장 예술철학의 특수한 부분
제1절 실재적 계열과 이상적 계열의 대립에서의 예술형식들의 구성 ················121
1. 예술 세계의 실재적 측면 혹은 조형예술 ···121
2. 예술 세계의 이상적 측면 혹은 언어예술(좁은 의미에서의 시) ··············127

전체 차례 ··················140

옮긴이에 대해 ·················1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