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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4일 수요일

사랑의 행진 El desfile del amor

멕시코의 근대에 대한 탈멕시코의 시각

"가슴의 응어리를 풀고, 겁 없이 넓은 세상과 맞서기 위해 배수진을 치는 것. 그것이 내가 살아 온 전략이며, 곧 나의 문학 작업이다."
세르히오 피톨은 인터뷰 기법을 사용해 멕시코의 미시사와 거시사를 함께 담아 냈다.












국내 최초로 소개되는 멕시코 작가, 멕시코 소설. 
세르히오 피톨은 2005년 스페인어권 노벨 문학상이라고 할 수 있는 세르반테스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로 권위있는 번역가이기도 하다. 그의 장편소설의 매력은 지극히 멕시코적인 역사와 정서를 다루면서도 탈 멕시코적인 관점을 선택한다는 데 있다.


세르히오 피톨(Sergio Pitol)은 누구인가?

“가슴의 응어리를 풀고, 겁 없이 넓은 세상과 맞서기 위해 배수진을 치는 것.
그것이 내가 살아온 전략이며, 곧 나의 문학 작업이다.”
- 세르히오 피톨,  2005년 12월 세르반테스 문학상 수상 연설 중에서.

생애와 작품 
세르히오 피톨은 1933년 멕시코의 푸에블라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이탈리아계로, 어린 시절은 역경의 연속이었다. 네 살 때 어머니가 익사하고, 곧 이어 아버지가 뇌막염으로 사망하자 피톨의 누이는 절망감으로 세상을 버린다. 고아가 된 그는 삼촌과 할머니의 손에서 성장했는데 늘 병을 달고 다니는 심약한 소년이었다. 사춘기부터 특히 러시아와 동구권 문학에 깊이 심취했고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를 좋아했다. 멕시코 국립대학(UNAM)에서 법학을 공부한 뒤 1966년부터 외교관 생활을 하며 단편소설과 장편소설을 썼다.
1988년 멕시코에 다시 정착할 때까지 20여년을 주로 동구권 국가에서 생활했다. 피톨의 첫 작품은 1959년에 출판된 단편소설집 《닫힌 시간》이었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작품 활동을 시작한 것은 1971년이었다. 이때부터 피톨은 번역과 창작을 병행하게 되는데, 제임스 조이스와 조지프 콘래드, 그리고 안톤 체호프 등 유럽 소설들을 스페인어로 번역한 권위 있는 번역가이기도 하다.

대표작으로는 소설 삼부작 《사랑의 행진》, 《신성한 백조 길들이기》, 《부부생활》과, 단편집 《메피스토의 왈츠》와 《푸가의 기술》을 들 수 있다. 특히 《사랑의 행진》과 《푸가의 기술》은 대중성과 작품성 모두에서 대단한 반응을 이끌어내었다. ‘인생과 예술의 관계 혹은 그에 대한 명상’은 그의 단편소설의 특징을 요약한 키워드라고 할 수 있다. 인물의 사건과 행위는 예술에 대한 인문학적 고찰과 함께 어우러져 이른바 ‘예술가 소설’의 전형을 보여준다 (한국문학의 이청준을 떠올리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피톨의 장편소설의 매력은 지극히 멕시코적인 역사와 정서를 다루면서도 탈멕시코적인 관점을 선택한다는 데 있다. 그건 그의 오랜 외국 생활로 말미암아 멕시코를 바라보는 데 익숙해진 관점이기도 하다. 멕시코 외부에서의 멕시코 바라보기인 셈이다. 같은 맥락에서 여행과 탐색은 피톨의 소설에서 스토리를 직조해 내는 근원적인 힘이다. 예를 들어 《푸가의 기술》은 1980년대 러시아 여행에 대한 이야기이고, 인터뷰 형식의 탐색과 심문은 《사랑의 행진》의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서사적 힘으로 작용한다. 소설의 형식에 있어, 피톨은 전통적 형식으로부터 자유로운 몇 안 되는 작가 중 한 사람일 것이다. 연대기나, 일기의 부분을 사용하는가 하면, 자전적인 정보와 다른 작가들에 대한 비평 등을 절묘하게 엮어내는 재능이 있다. 겉으로만 보면 형식에 무심한 것 같지만, 새로운 형식을 섬세하고 은밀하게 직조하고 있는 것이다.
피톨에 대한 평단의 평가는 오랫동안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한 경향이 있었다. 글의 성격이 라틴아메리카 소설을 분류하는 일반적인 방식, 즉 붐 소설과 포스트붐 소설이라는 계보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에는 라틴아메리카 서사체계를 특징짓는 마술적 사실주의가 면면히 흐르고 있다. 피톨에 대한 진정한 평가는 특히 최근 10년 사이에 이루어졌는데, 스페인어권의 노벨 문학상이라고 할 수 있는 세르반테스 문학상을 수상한 사실은 최근에 이뤄진 피톨에 대한 평가와 인기를 잘 보여준다. “스페인어권의 문학적 유산을 풍부하게 했다”는 것이 선정 이유였다.
피톨은 현재 멕시코 베라크루스 지역의 살라파(Xalapa)에서 작품 활동에 몰두하고 있다.

주요 작품 연보 
1959 《닫힌 시간》
1971 《모든 이들을 위한 지옥》
        《피리 소리》
1981 《메피스토의 왈츠》
1982 《꽃의 향연》
1984 《사랑의 행진》
1988 《신성한 백조 길들이기》
1991 《부부 생활》
1996 《푸가의 기술》
2000 《여행》
2005 《비엔나의 마술사》


주한 멕시코 대사가 소개하는 세르히오 피톨

-레안드로 아레야노 (주한 멕시코대사)
세르히오 피톨은 독서를 무척 좋아하는 아이였다. 말라리아에 걸려 장기간 투병 생활을 할 때도 침대에 누워 온종일 책을 읽었다. 멕시코 국립대학(UNAM)에서 법학을 전공했지만, 젊은 시절부터 그를 사로잡은 것은 작가의 길이었다. 외교관으로 피톨은 유럽의 여러 도시에서 문화 영사로 일했고, 프라하 주재 멕시코 대사를 지냈다. 광적인 여행가일 뿐 아니라, 바르셀로나와 베오그라드, 브리스틀, 부다페스트, 카라카스, 모스크바, 파리, 베이징, 프라하, 바르샤바 등 여러 도시에 살면서 다양한 문화를 체험했다. 젊은 시절 잡지 <치나 레콘스트루에>에서 전문 번역가로 일한 적이 있는 그는 동구권 문학에 대한 가장 권위 있는 스페인어 번역가이기도 하다. 소설가로서 피톨은 라틴아메리카의 유서 깊은 소설문학상인 ‘후안 룰포 상’과 ‘하비에르 비야루티야 상’ 등을 수상했고, 마침내 스페인의 ‘세르반테스 문학상’을 수상함으로써, 옥타비오 파스나 카를로스 푸엔테스와 같은 거장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그의 작품은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고, 중국과 일본에 이어 마침내 여기 한국에서도 그의 책이 알려지게 되었다.

<<사랑의 행진>>은 추리소설 기법으로 시대의 모순을 은유하는 거대한 작품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멕시코시티를 배경으로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사랑의 행진>>은 소설 장르에서 큰 획을 그었고, 이런 피톨의 업적은 1984년 ‘에랄데 문학상’에 의해 증명되었다.

스페인어권의 위대한 작가의 한 사람인 피톨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가와 재단이 쉽지 않은 작가다. 문학의 많은 스승들로부터 영향을 받았지만, 어느 누구와도 비교될 수 없는 독특한 경지를 이루어냈기 때문이다.


《사랑의 행진 El desfile del amor》과 인터뷰 소설 
–전기순(옮긴이)

《사랑의 행진》은 1942년 11월의 어느 날 밤 멕시코시티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다. 사건이 있은 지 30년 후 역사학자인 미겔 델 솔라르는 《1942년》이라는 자신의 책을 준비하면서 어린 시절 자신이 직접 경험한 살인사건을 반추하게 된다. 그는 이미 멕시코혁명사를 다룬 《1914》년이란 책을 집필한 적이 있었다. 역사학자인 델 솔라르에게 1942년의 살인사건은 1914년에서 전개된 멕시코혁명의 결과이며 다가올 멕시코 미래의 운명을 가름하는 것이었다. 살인사건은 멕시코 역사라는 공식 역사와 델 솔라르의 개인사를 날줄과 씨줄처럼 만나게 한다. 살인사건이 벌어진 미네르바 건물은 바로 그의 유년의 기억이 묻어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누가 오스트리아 청년 에리히 마리아 피스타우어를 죽였는가? 여기서 피톨이 선택한 탐색의 전략은 인터뷰이다. 델 솔라르는 사건이 있었던 밤, 델피나 우리베의 집에서 벌어진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한다. 역사학자인 그는 인터뷰와 함께 신문이나 잡지 혹은 정부문서 같은 문자 기록을 탐색한다. 문자 기록은 공식 역사를, 사람들과의 인터뷰는 개인사를 상징한다. 공식 역사는 늘 진실을 말해주지 못한다. 그렇다면 인터뷰로 구성되는 개인의 구술로서의 역사는 어떤가?

인터뷰의 진실성이 진지하게 논의된 영역은 다큐멘터리 영화에서다. 1960년 이전까지 다큐영화는 카메라에 담긴 대상과 사건을 화자가 설명하는 내레이션으로 이루어졌다. 내레이션은 이야기의 통일성과 의도된 방향성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내레이터의 ‘의도된 해석’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대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데는 한계가 있고 진실은 어느 정도는 왜곡될 수밖에 없게 된다. 다큐영화의 의미가 진실성과 역사성에 있는 것이라면, 내레이션은 부적절한 방식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1960년대에 들어오면서 다큐멘터리 영화의 진실성을 높이기 위한 새로운 전략으로 등장한 것이 인터뷰이다. 1960년대에 인터뷰 중심의 다큐영화 제작이 가능했던 것은 기술의 발전과도 연관이 있었는데 인터뷰에 꼭 필요한 소형 녹음기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인터뷰에서 대상은 한 사람에 의해 관찰되는 것이 아니라 대상과 관계된 다양한 사람의 관점을 아우르게 된다. 영화의 경우 관객은 인터뷰를 따라가며 스스로 대상을 이해하고 사건을 해석하게 된다. 물론 인터뷰 방식이라고 해서 의도된 해석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질문의 성격과 인터뷰 대상자를 어떤 틀로 정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조작될 소지는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레이션에 비해 인터뷰는 다양한 관점을 제시한다는 면에서 진실 전달에 한층 가까운 전략이다. 한편 인터뷰 방식의 다큐영화 제작은 진실성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바꾸어놓았다. 동일한 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진실은 단수가 아니라 복수일 수 있다는 인식이 그것이다. 때로는 완벽하게 상반되는 진술이 동일한 대상을 수식하는 경우 진실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진실의 복수성을 다룬 대표적인 영화는 오손 웰스의 <시민 케인>과 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몬>을 들 수 있다. <라쇼몬>에서 무사의 죽음에 대한 진실은 4명의 증인, 즉 산적, 무사의 아내, 나무꾼, 그리고 무사의 혼령에 의해 밝혀지는데, 이들은 원님에게 끌려가 한 장소에서 진술을 말한다는 면에서 법정 진술과 유사하다. 법정 진술과 인터뷰의 차이는 진술이 동일한 공간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데 반해, 인터뷰의 유일한 청자는 인터뷰를 주관하는 사람일 뿐이라는 것이다. 《사랑의 행진》의 서사성을 논하면서 대부분의 비평가들이 <라쇼몬>과의 유사성을 언급한 것을 나는 동의하기 어렵다. 유사성을 따지자면 <시민 케인>이 보다 가까운 위치에 있다 할 것이다.

픽션 영화 <시민 케인>에서 오손 웰스는 인터뷰 중심의 다큐영화가 등장하기 훨씬 전에 인터뷰와 진실의 복원이란 주제를 다루고 있다. 언론재벌인 케인이 죽음 직전에 남긴 ‘로즈버드’의 의미를 찾아내기 위해 신문기자는 케인과 가까운 사람들을 인터뷰한다. 인터뷰가 진행되면서 퍼즐의 빈칸이 하나씩 채워지고 기자와 관객은 로즈버드의 의미에 점점 다가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마지막 남은 빈칸은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다. 다만 ‘로즈버드’가 케인이 어린 시절 가지고 놀던 썰매의 이름이라는 것만 관객에게 은유적으로 전달될 뿐이다. 스토리 정보의 대부분이 대사로 전달되는 영화에서, 인터뷰로서의 대사는 긴 호흡과 잦은 회상 장면을 만들어낸다. <시민 케인>에서 인터뷰를 주관하는 기자의 말은 화면 밖에서 발생하는데, 관객은 그의 질문을 듣고 대답하는 인터뷰 대상자의 얼굴을 볼 수 있을 뿐이다. 그런 장치는 관객을 톰슨과 동일시하게 하는 효과를 낳는다.

영화와 달리 대사와 서술로 구성되는 소설에서, 인터뷰 장치는 새롭고도 위험한 방식이라 할 수 있다. 대화와 대화가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일반적인 대사의 형태가 아니라, 짧은 질문과 긴 호흡의 답변이 교차한다. 나는 긴 호흡의 답변을 들으며(읽는 것이 아니라) 말하는 이의 감정과 생각으로 빠져드는 것을 느꼈다. 여기에서 서술은 구술적인 이야기에 빠져 있던 독자를 다시 원래의 객관적 위치로 되돌리는 부차적인 기능을 한다. 이건 분명 이야기에 빠지게 하기 위한 소설의 새로운 방식이다.

《사랑의 행진》의 역사적 배경은 멕시코의 근대사이다. 멀게는 19세기 중엽의 프랑스 침략시대부터 1910년대에 진행되었던 멕시코혁명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추축국에 선전포고를 하던 1942년에 이르기까지 멕시코 근대사가 거론되고 있다. 이 중에서 멕시코혁명은 쿠바혁명과 함께 멕시코뿐 아니라 라틴아메리카의 정신적 유산으로 남아 있다.

소설에서 델 솔라르가 처음 인터뷰하는 그의 숙모 에두비헤스 브리오네스는 몰락한 지주 가문 출신으로, 멕시코혁명으로 몰락한 전통 가문을 대변하고 있다. 그녀는 새로운 질서에 적응하지 못하고 변화된 사회를 저주하며 산다. 반면에 델피나 우리베는 비천한 농촌 집안 출신이지만 혁명으로 새로운 부르주아가 되었다. 그녀는 지적이며 아름답고 전위적이며 적당하게 교양을 가진 ‘완벽한 여주인’이다. 살인사건은 두 명의 여자가 미네르바라는 공동주택에 함께 살면서 벌어진다. 여기에 외세의 영향력을 상징하는 이다 베르펠이 개입된다. 발모란은 프랑스 식민 시대에 살았던 거세된 남자의 비밀을 알고 있다. 거세된 남자는 유럽의 바티칸에서 노래를 부르다 불행한 생을 살아간다.

인터뷰가 진행되면서 역사학자인 델 솔라르에게 역사의 탐색은 결국 자신의 유년시절의 되새김질로 순환된다. 그는 많은 사실을 알았지만, 역사의 진실과 살인사건의 전모를 밝혀낼 수 있었을까?


옮긴이 소개 

전기순 

한국외국어대학교 스페인어과 졸업.
스페인 마드리드 국립대학 문학박사.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스페인어과 교수.
<<벽에 그려진 얼굴들>>(니카노르 빠라 선집, 고려원 1994) 외 4권의 역서가 있고 저서로는 <<세계의 소설가>>(2000), <<환멸의 세계와 매혹의 언어: 붐 이후 라틴아메리카 소설>>(2005)이 있다.
한국 스페인어문학회 편집이사, 서울대 이베로아메리카 연구소 편집위원, 스페인 마드리드 대학교 유럽언어학회 회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도서명: 사랑의 행진        
원서명: El desfile del amor
지은이: 세르히오 피톨   
옮긴이: 전기순   
출간일: 2007년 10월 18일   
판형: 신국판 
분량: 352쪽   
가격: 12,500원   
ISBN 978-89-5887-027-2

2011년 3월 2일 수요일

라틴아메리카 자본주의 발달사 El desarrollo del capitalismo en América Latina

라틴아메리카 자본주의의 종속이론에 대한 비판

국내 초역이다. 라틴아메리카의 자본주의를 이야기할 때, 종속이론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다. 라틴아메리카의 자본주의는 외부(서구)에 종속되어 발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이러한 종속이론을 정면에서 비판한다. 지은이는 종속이론이 사회의 진정한 모순인 내적 계급 모순을 경시하고, 지나치게 종속과 같은 외적 요인에서만 문제의 원인을 찾았다고 비판한다. 원전에서 가장 핵심적인 장만 발췌 번역했다.


☑ 책 소개

종속이론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쿠바 혁명 이후 사회 전반이 급진화되었다. 사탕수수에 국가 경제의 거의 전부를 의존하는, 사실상 미국의 식민지와 같았던 쿠바에서 일단의 젊은 청년들에 의해 발생한 사회 변혁 투쟁이 반제국주의 사회주의의 형태를 띠면서 성공적으로 실현되어 감에 따라, 라틴아메리카에는 새로운 사회 변화에 대한 기대가 넘쳐났다. 그러나 한편으로 쿠바 혁명은 기존 마르크스주의의 사회주의 단계적 실현론에 대한 새로운 이론적 해석을 요구했다. 따라서 자본주의 발전이 거의 없었던 쿠바에서 공산주의가 실현된 데 대한 이론적 설명을 하기 위해 탄생한 것이 바로 종속이론이다.
라틴아메리카의 자본주의는 서구 유럽의 자본주의와는 달리 종속 자본주의의 형태를 띠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식민지적 수탈을 통해 자율적인 자본 축적을 이룰 수 있었던 서구 자본주의와 종속적 수탈을 당하면서 발전하는 라틴아메리카의 자본주의는 본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성격을 지닌다는 것이다. 또 그렇기 때문에 라틴아메리카의 자본주의는 결코 서구 자본주의와 같은 발전의 길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이 종속이론의 핵심적 주장이다. 결국 라틴아메리카가 그러한 종속의 질곡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종속 관계의 고리를 끊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종속이론 비판
종속이론 비판에 있어 가장 선두에 섰던 사람이 바로 이 책의 지은이 아구스틴 쿠에바다. 그는 무엇보다 종속이론이 평등하고 조화로운 자본주의 발전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다고 비판한다. 라틴아메리카의 자본주의가 서구와 같이 자율적으로 발전했다면 평등한 사회를 이룰 수 있었을 것이라는 가정, 즉 “잃어버린 민족적 자본주의에 대한 향수”가 종속이론가들의 주장 저변에 깔려 있다는 것이다. 다만 라틴아메리카와 같은 종속 자본주의의 경우에는 그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라틴아메리카 사회가 종속의 틀을 깨기 위해서는 결국 사회주의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종속이론의 주장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쿠에바는 평등하고 조화로운 자본주의 발전 그 자체를 거부한다. 왜냐하면 그에게 있어 자본주의는 그 자체가 계급 모순을 가지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종속이론의 근원적 문제점은 자본주의 사회의 진정한 모순인 내적 계급 모순을 경시하고, 문제의 원인을 지나치게 종속과 같은 외적인 요인에서 찾은 데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쿠에바도 종속 국가와 제국주의 국가 간의 모순이 존재함을 인정하나 그것 자체가 자본주의의 고유 모순인 계급 모순보다 상위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라틴아메리카 경제사
이처럼 이 책은 20세기 라틴아메리카의 주요 정치·경제 이론의 하나인 종속이론에 대해 비판을 하면서, 20세기 라틴아메리카 경제사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원전의 초판은 19세기 초 독립 이후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라틴아메리카 자본주의가 발전해 온 과정을 통해 내적인 약점이 어디에 있었는지, 그리고 그로 인한 계급투쟁과 그 한계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본 번역서는 그중 1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1970년 중반까지의 경제사를 담고 있다.


☑ 책 속으로

Así́ y todo, resulta claro que el destino de Amé́rica Latina no se juega fuera de ella, sino que depende en ú́ltima instancia de la capacidad organizativa y en general polí́tica de su movimiento popular.

따라서 라틴아메리카의 운명은 그들 밖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결국에는 민중 운동의 조직적 그리고 일반적인 정치적 능력에 달려 있다.


☑ 지은이 소개

아구스틴 쿠에바(Agustín Cueva, 1937∼1992)
아구스틴 쿠에바(Agustín Cueva, 1937∼1992)는 에콰도르에서 태어났다. 에콰도르 국립대학교(Universidad Central de Ecuador)의 교수를 지냈다. 아옌데 시절 권위주의의 탄압을 피해 칠레의 콘셉시온 대학교(Universidad de Concepción, Chile)로 옮겼다가, 역시 그곳에서도 피노체트 군사 정권이 들어서자 다시 멕시코로 옮겨 멕시코 국립대학교 정치사회과학대학에서 재직했다. 1992년 질병으로 삶을 마감하게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그는 조국 에콰도르로 돌아갈 수 있었다.
아구스틴 쿠에바는 라틴아메리카 사회과학계를 대표하는 라틴아메리카 사회학회(Asociación Latinoamericana de Sociología)의 회장을 지내기도 했으며, 정통 마르크스주의자의 입장에서 종속이론 비판의 선두에 섬으로써 라틴아메리카의 대표적 진보 학자 중 한 사람으로 꼽혔다.
대표 저서로는 여기 번역된 ≪라틴아메리카 자본주의 발달사≫ 외에도, 라틴아메리카의 정치 과정과 사회 이론 분야에 있어 고전으로 간주되는 ≪분노와 희망 사이에서(Entre la ira y la esperanza)≫(Nucleo Del Azuay, 1981), ≪라틴아메리카 사회 이론과 정치 과정(Teoría Social y Procesos Políticos en América Latina)≫(Edicol, 1979), 또 모국 에콰도르의 정치를 분석한 ≪에콰도르 정치 지배 과정(El proceso de dominación política en el Ecuador)≫(Planeta, 1990) 등이 있다.


☑ 옮긴이 소개

김기현
한국외국어대학교 스페인어과를 졸업하고, 멕시코 국립대학교(UNAM) 정치사회과학대학에서 중남미지역학(정치경제 전공)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외국학종합연구센터 책임 연구원에 이어, 현재는 선문대학교 스페인어중남미학과 부교수이며 같은 대학교 중남미연구소장 직을 맡고 있다. 또한 한국라틴아메리카학회의 출판이사와 학술이사를 거쳐 현재는 총무이사 직을 수행하고 있다. 대표 저서로는 ≪라틴아메리카: 마야, 잉카로부터 현재까지의 역사와 문화≫(공저)가 있고, 주요 논문으로는 <라틴아메리카 외환 위기의 근원>, <라틴아메리카 달러라이제이션>, <미국의 대쿠바 정책>, <라틴아메리카 원주민 인권: 문화적 다양성의 추구> 등이 있으며, 현재는 라틴아메리카 인종과 정치, 그리고 자원 문제 등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 차례

해설
지은이에 대해

위기와 산업화 과정의 문제
전후 경제의 정점과 쇠퇴
모순의 축적과 체제의 일반화된 위기
현재의 문제점과 경향

옮긴이에 대해

2011년 2월 18일 금요일

여정의 두루마리 Tira de Peregrinación

국내 최초 출간입니다.
이 책은 원전의 분량이 많지 않아 발췌하지 않고 모두 번역한 것입니다.
외래어 표기는 나우아뜰 언어의 현지 음에 가장 근접하게 적고자 하는
옮긴이의 의견을  존중하여 표기하였습니다.


띠라 데 뻬레그리나시온(Tira de Peregrinación, 여정의 두루마리. 이하 띠라라고 부름)은 아스떼까(Azteca) 제국의 신화와 역사가 함께 살아있는 서사시다. 아스떼까 제국은 멕시코부터 벨리세, 과테말라 및 온두라스를 포함하는 메소아메리카(Mesoamerica)라고 불리는 고대 문명 지역에서 발전했던 원주민들의 마지막 나라였다. 아스떼까는 1521년 스페인에 의해 멸망당하기 전까지 번영했던, 현재의 멕시코시티에 있었던 원주민들의 유일한 제국이었다.
이 고문서는 1746년에 보투리니(Lorenzo Boturini Benaduchi, 1698(?)∼1755(?)가 수집한 목록(Catálogo del Museo Indiano de Lorenzo Boturini Benaduchi)에서 처음으로 그 존재가 알려졌다. 현재는 멕시코 국립 박물관 도서관에 원본을 보관하고 관람실에서는 복제본을 전시하고 있다. 아스떼까의 그림문자로 작성된 이 고문서는 스페인 사람들이 도착하기 전 멕시코 원주민들의 그림언어의 진수를 볼 수 있는 자료일 뿐 아니라, 신화적이면서도 역사적인 기록을 읽으며 아스떼까 부족의 사고방식과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가장 귀중한 문서다.


본문 중에서                    

방패도 갑옷도 없이
맨손에 끝을 날카롭게 간 몽둥이를 쥐었다.
그리고 힘차게 소리를 지르며 싸우러 나갔다.


옮긴이                       

정혜주는 멕시코 국립 인류 역사학(Escuela Nacional Antropolgía e História)대학 고고학과를 마치고 멕시코 국립(Universidad Nacional Autónoma de México)대학에서 중미학(Estudios Mesoamericanos)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덕성여자대학교 문화인류학과에서 강의하고 있다. 아스테카와 마야 문명의 여러 유적지의 발굴에 참여했고, 메소아메리카 고대문명의 토기 및 고문서에 관한 여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