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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27일 목요일

옥수수밭에서의 죽음(玉米田之死)


도서명 : 옥수수밭에서의 죽음(玉米田之死)
지은이 : 핑루(平路)
옮긴이 : 고찬경
분야 : 타이완 소설
출간일 : 2014년 11월 21일
ISBN : 979-11-304-5886-0  03820 
가격 : 22000원
규격 : 사륙판(128*188)     제본 : 무선     쪽 : 280쪽




☑ 책 소개

타이완 여성 작가 핑루의 작품집이다. 심리학과 수리통계학을 공부했고 통계 분석가, 일간지 주필, 칼럼니스트 등을 거친 독특한 이력의 작가다. 이런 경력은 소설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어 여타 타이완 여성 작가들과는 차별되는 역동적 다채로움을 형성하고 있다. 


☑ 출판사 책 소개

<켈리와 나>: “마침내 켈리백을 손에 넣은 오후”, 자살을 기도하는 영화배우의 마지막 하루를 그리고 있다. 유명 서양 명품 브랜드들이 언급된다. 그렇지만 명품다운 ‘럭셔리한 분위기’가 연출되진 않는다. 명품조차도 우울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소도구로 이용된다.
<모니카의 일기>: 자신을 버린 친모와 자신을 돌보지 않은 계모에 대한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한 중년 여성이 젊은 시절 낙태한 아이에 대한 죄책감을 이기지 못해 꿈과 현실, 기억과 현실, 환상과 현실 사이를 오가다 결국 자기 분열에 이르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백세 서신>: 타이완 현대사에서 결코 뺄 수 없는 쑹메이링(宋美齡)의 만년을 그렸다. 1927년 장제스(蔣介石)와 결혼한 그녀는 1975년 남편의 사망 이후 근 30년간 혼자 지내다 2003년 106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한다. 소설은 100세 생일을 며칠 앞둔 시점에 그녀가 쓰는 서신을 근거로 전개된다. 작가는 쑹 여사가 남긴 여러 서신을 십분 활용하여 역사적 사건 너머에서 그녀의 삶이, 더욱이 만년에 이른 그녀의 정서가 어떠했을지 추적하고 있다. 
<옥수수밭에서의 죽음>: 워싱턴 특파원인 화자가 현지 옥수수밭에서 숨진 어느 화인 남성의 사인을 추적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돌아갈 수 없는 고국, 그리고 고향에 대한 향수가 병이 되어 버린 남자에게 집 근처의 옥수수밭은 자신이 살던 타이완 남부의 사탕수수밭으로 화한다. 작가는 남자의 아내와 딸, 회사 동료 그리고 고등학교 동창을 인터뷰하는 과정을 통해 그 실마리를 풀어 나간다. 
<인공지능 보고서>: 자신이 만든 인조인간과 사랑에 빠지는 어느 남자 과학자의 이야기다. ‘인지 1호’로 명명된 ‘나’는 언어를 배우고 자아를 인식해 가는 과정을 시작으로 감각과 지능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의 한계를 깨닫게 되어 더 이상 그를 사랑할 수 없게 된다. 인조‘인간’인 ‘나’는 창조와 성장, 그리고 사랑과 그 이후의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게 되는데 연번에 따라 남겨진 이 기록이 그대로 소설의 스토리다. 우리는 이 인조인간의 고백을 통해 인간 존재의 의미라든지 인간과 인간이 만든 로봇의 근원적 차이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소와 대>: ‘대와 소’가 아닌 ‘소와 대’라는 제목에서부터 의미하는 바가 있다. 수록작 가운데 가장 짧지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다소 사변적인데, 여기에 ≪어린 왕자≫에 대한 오마주가 돋보인다.
<기로 위 가정>: “정말 뜻밖이었다. 내 (소설의) 주인공이 날 찾아올 줄이야”라는 첫 문장부터 독자의 구미를 확 당긴다. 화자와 인물의 설정부터 독특한 이 단편을 통해 핑루는 남녀의 사랑과 부부가 이룬 가정의 의미에 대해 묻는 한편, 인생 속 선택의 문제를 자신의 글쓰기에 대한 성찰로 잇고 있다. 
<애정이중주>: 사랑과 시간, 그리고 사랑과 죽음을 대립축으로 일견 복잡한 수학 명제를 풀어 가는 듯한 작품이다. 시간에 맞서, 죽음을 초월해 자신의 사랑을 지키려는 여성 화자의 논리가 어떠한 전개를 거쳐 뜻밖의 결론에 이르게 되는지 유쾌하게 읽어 갈 수 있다.


☑ 책 속으로

**≪옥수수밭에서의 죽음≫, <백세 서신>, 118∼119쪽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녀가 너무 모질었지만, 그녀로서는 보통의 아내들처럼 상황 여하를 막론하고 남편을 역성들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 순간, 그녀는 한 글자도 쓰지 않은 만년필을 내려놓고 자신이 어떻게 수차례 남편을 무시함으로써 그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혔는지 떠올렸다. 영어로 대화가 이루어지는 장소에서 사실 그녀는 남편이 느끼는 극도의 불안함을 알면서도 일부러 도발을 감행했다. 때로 미국인 청년과 말장난을 주고받으며 자신의 매력이 여전히 통하는지 테스트해 보기도 했다. 카이로 회담 당시 처칠 옆에 자리하게 된 남편의 얼굴에 곤란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녀는 남편을 곤경에서 구하려 들지 않았다. 남편은 뻣뻣한 군복 차림으로 두 손은 청천백일기가 새겨진 군모를 무슨 부적이라도 되는 양 꽉 잡고 있었다. 그는 영어를 알아듣는 척했지만, 참석한 이들 모두 그가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교태 섞인 미소를 짓고 수시로 눈웃음을 치며, 앞코가 뚫린 하이힐로 루스벨트 대통령의 절름거리는 다리를 툭 찼다.
그녀는 남편의 아킬레스건이 무엇인지, 또한 두 사람의 위치가 어떻게 되는지 알면서도 모른 척했고, 이 때문에 부부로서의 관계조차 복잡해졌다. 그가 그녀에게 찬성하는데, 그녀가 그에게 찬성하지 않는 것은, 정치적인 것일 수도 정치적이지 않은 것일 수도 있지만, 분명한 건 그녀가 그렇게까지 정치적인 인물은 아니라는 점이다! 훗날 그녀는 꿈에 남편의 손목에 맺힌 피멍과 소리 없이 잇따라 경련이 일던 입술을 수도 없이 보았다. 큰 힘을 가해야 했던 것은 분명하지만, 도대체 그녀는 얼마큼 기운을 몰아 쓴 걸까? 당시 어르신이 이미 유명을 달리했다는 소문까지 떠도는 마당에 이를 불식시킬 호기가 찾아왔기 때문에 그녀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마침 11기 3중전회를 마친 주석단 대표를 롱민종합병원(榮民總醫院)으로 불러 직접 총재를 뵙게 한 것이다. 


☑ 지은이 소개

본명은 루핑(路平)이다. 1953년 6월 17일에 타이완 가오슝(高雄)에서 태어났으며 어릴 때 온 가족이 타이베이(臺北)로 이사했다. 타이완대학 심리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아이오와대학 수리통계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졸업 후 미국우정공사(USPS)에서 통계분석가로 일했으며, 타이완의 가장 권위 있는 종합 일간지 ≪중국시보(中國時報)≫ 주필을 지냈다. 이후 주미 특파원으로 일하며 ≪미주시보주간(美洲時報周刊)≫ 주필을 역임했다. 
타이완으로 귀국한 후 ≪중시만보(中時晚報≫ 칼럼 주임을 지냈으며, 타이완대학 언론대학원(台灣大學新聞研究所)과 타이베이예술대학 예술행정관리대학원(台北藝術大學藝術管理研究所)에서 교편을 잡았다. 2002년부터 2009년까지 타이완과 홍콩 두 지역의 예술과 문화 교류를 목표로 홍콩에 설치된 광화문화센터에서 주임으로 일했다. 2014년 3월 전 민주진보당 주석 린이슝(林義雄), 중앙연구원 부연구원이자 법학 교수인 황궈창(黃國昌) 등과 함께 비정부단체 ‘공민조합’을 발기하여 ‘즐거운 참정’을 기치로 활동 중이다. 
핑루는 1983년 <옥수수밭에서의 죽음>으로 타이완에서 발행하는 중문 일간지 ≪연합보(聯合報)≫에서 수여하는 최우수 소설상을 수상했으며, 시보문학상(時報文學獎) 최우수 극본상을 수상했다. 장편소설로 쑨원(孫文)-쑹칭링(宋慶齡) 이야기를 그린 ≪걸어서 하늘 끝까지(行道天涯)≫(1995)와 2002년 출판된 타이완 국민가수 덩리쥔(鄧麗君)의 수수께끼와 같은 죽음을 추적해 가는 과정을 그린 ≪그대 언제 다시 오려나(何日君再來)≫ 등이 있다. 단편소설집으로 ≪백세 서신(百齡箋)≫, ≪금서계시록(禁書啟示錄)≫, ≪모니카의 일기(蒙妮卡日記)≫ 등이 있으며, 근작 장편소설로 2011년에 출판된 ≪동방의 동녘(東方之東)≫과 이듬해 9월에 출간된 ≪파사의 섬(婆娑之島)이 있다. 소설 외에도 사회·문화·인권 등을 제재로 한 평론과 문화비평 관련 칼럼을 다수 썼다. 산문집으로 ≪마음을 읽는 책(讀心之書)≫과 ≪홍콩에서의 지난날들(香港已成往事)≫ 등이 있다. 


☑ 옮긴이 소개

고찬경은 동아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구청(顧城) 전기 시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10년 2월 부산대학교 중어중문학과의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며 현재 학위논문 작성과 중국 현대문학 작품 번역에 힘쓰는 한편, 신라대학교 등에 출강하고 있다. 중국의 현대시를 주된 연구 대상으로 해서 중국 외의 지역에서 그 창작의 지경을 넓혀 가고 있는 화인화문시(華人華文詩歌)에 관한 연구와 작품 번역을 병행하고 있다. 
번역서로 2011년 2월 지식을만드는지식에서 출판한 ≪예웨이롄 시선(葉維廉詩選)≫과 2012년 9월에 출판한 ≪홍콩 시선 1997∼2010(香港詩選 1997∼2010)≫이 있고, 공동 번역서로 2008년 9월 실천문학사에서 출판한 ≪목욕하는 여인들(大浴女)≫이 있다. 논문으로 <중국인의 20세기 후반 삶의 조건과 개인 욕망의 양상 ― ≪목욕하는 여인들(大浴女)≫의 장우(章嫵)와 인샤오탸오(尹小跳)를 중심으로>(≪인문과학연구≫ 제5호, 동아대 석당학술원, 2013. 2)가 있으며, 서평으로 <다시 쓰는 중국 현대문학사, 그 터 위에 피어난 꽃>(≪코기토≫ 제67호, 부산대 인문학연구소, 2010. 2) 등이 있다. 
최근에는 부산대 현대중국문화연구실에 소속되어 중국 현대문학 연구와 문학작품 번역 등을 진행하고 있다. 이 책 ≪옥수수밭에서의 죽음≫의 번역 또한 이러한 활동의 성과물 가운데 하나다. 


☑ 목차

켈리와 나
모니카의 일기
백세 서신
옥수수밭에서의 죽음
인공지능 보고서
소와 대
기로 위 가정
애정이중주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2014년 3월 21일 금요일

침묵의 섬 (沈默之島)


도서명 : 침묵의 섬(沈默之島)
지은이 : 쑤웨이전(蘇偉貞)
옮긴이 : 전남윤
분야 : 타이완 소설
출간일 : 2014년 2월 28일
ISBN : 979-11-304-1193-4  03820 
가격 : 19500원
사륙판(128*188) / 무선 / 422쪽



☑ 책 소개

타이완 작가 쑤웨이전(蘇偉貞, 1954∼ )의 장편소설이다. ≪침묵의 섬(沈默之島)≫은 1994년 제1회 시보문학백만소설상(時報文學百萬小說獎)에서 심사위원추천상을 받았으며, 1999년 홍콩의 ≪아주주간(亞洲週刊)≫이 고른 ‘20세기 중문 소설 100선’에 뽑혔다.


☑ 출판사 책 소개

감당하기 힘든 고통이나 극한의 상황에 처하게 되면 사람들은 어떻게 그 난관을 헤쳐 나갈까? 작가는 작품 속 화자이자 주인공인 훠천몐(藿晨勉)을 통해서 이런 보편적인 고민을 조금 특별한 방식으로 풀어 보인다. 
훠천몐의 삶은 다소 기괴하다. 통속 소설이나 드라마의 소재로나 등장할 법한 그녀의 삶을 잠시 살펴보자면, 그녀에게는 외국인의 피가 흐르는 방랑벽이 심하고 성적으로 자유로웠던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에게 집착해 살인까지 저지르고 옥중에서 자살한 어머니가 있었다. 천몐 부모의 관심은 오로지 자신들의 감정에 집중되어 있었고, 그들은 그러한 감정을 성적인 방식으로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이런 가정환경 속에서 천몐과 그녀의 여동생 천안(晨安)은 어쩌면 남들에게는 당연한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빨리 어른이 되어야 했다. 이들 자매는 어린 나이에 경제적으로 자립심을 키워야 했고, 주변의 따가운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언제나 고군분투해야 했다. 게다가 평범하지 않은 부모의 영향으로 역시 사랑에 대한 시선 역시 왜곡될 수밖에 없었다. 
어른이 된 후에도 유년시절의 트라우마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천몐에게 현실의 고통을 잊고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의 분신을 만들어 그 속에 욕망을 투영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또 다른 천몐’이다. 그녀는 이 분신에 자신이 이상적이라 생각하는 모습들을 부여했다. ‘또 다른 천몐’은 따뜻한 가정에서 부모의 충분한 사랑을 받으며 자란 덕분에 슬픔이나 상처 따위는 모르며, 타고난 매력으로 여러 남성들과 다양한 연애를 하면서도 결혼이라는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이렇듯 ‘또 다른 천몐’의 삶은 실제 천몐과는 대조적이라 할 만큼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그녀의 인생은 온갖 풍파에 시달리던 천몐에 비해 지루할 정도로 굴곡이 없어 아버지로부터 일부러라도 고통이나 상실을 경험해 보라는 핀잔을 들을 정도였다. 
이렇듯 ‘또 다른 천몐’의 등장은 독자들로 하여금 작품이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에 대해 성급한 짐작을 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영민한 작가 쑤웨이전이 고심하여 만들어 놓은 소설 속 장치들은 매번 독자의 짐작을 조금씩 빗겨 가며 흥미와 재미를 유발한다. 나아가 ‘천몐의 분신’뿐 아니라 천몐의 주변인물도 약간씩 변형되어 등장하기도 한다. 가령 동생인 천안의 성별이 바뀐다거나, 주변인물의 이름은 그대로이지만 인적 사항이 현실과는 다르게 설정된다. 이 점이 일부 독자에게는 혼란을 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어느 한 장면도 허투루 넘길 수 없게 만드는 이 소설만의 특징이기도 한 것이다. 
≪침묵의 섬≫은 1994년 타이완 시보출판(時報出版)에서 초판이 발행됐다. 이번 번역에는 2001년에 발행된 2판 3쇄본을 원전 삼아 완역했다. 감각적이고 효율적인 언어를 구사한 작가의 느낌을 살려 최대한 원문을 훼손하지 않는 방향에서 번역하려 하였으나, 한국어와 중국어라는 두 언어의 태생적 차이로 부득이하게 의역을 하거나 작품의 이해를 돕기 위해 윤문을 할 수 밖에 없던 대목도 있다. 


☑ 책 속으로

**≪침묵의 섬≫, 7~8쪽

천몐(晨勉)은 언제나 ‘그녀들’의 서른 살 생일 이후의 일을 기억하고 있다. 그녀는 그날 타이베이를 떠나 홍콩으로 돌아왔다.
도시를 옮긴다는 것은 지난 몇 년간 그녀의 삶을 통틀어 가장 중대한 경험이었다. 그녀가 막 도착했던 6월 말, 공항고속도로 양옆으로 만개했을 진달래는 이미 제철이 지나 있었다.
이번 휴가 기간에 그녀는 타이베이에서만 꼬박 두 달을 머물렀다. ‘또 다른 천몐’과 둘이서 말이다. 당시 그녀는 빈털터리나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스물다섯 되던 해 어머니는 감옥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녀를 키운 외할머니는 3년 전에 세상을 떠났고, 하나뿐인 여동생은 멀리 영국에 있었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라고는, 그녀가 다섯 살 무렵 보았던 화낼 줄 모르는 머리숱이 텁수룩하고 얼굴이 하얀 남자였다는 것이 다였다.
‘또 다른 천몐’이라는 존재는, 그녀가 대학 졸업 후 출국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수감 중인 어머니를 보러 갔을 때 탄생했다. 어떤 이는 누군가를 쉽게 훔쳐보기 위한 방편으로 자신이 또 다른 공간에 있는 상상을 한다지만, 그녀는 달랐다. 그녀에게 진실하지 않은 것은 필요치 않았다. 자신의 운명을 제 눈으로 보아야겠다는 생각과 뭔가 다른 인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자 그녀는 새로운 자아를 만들어 냈다. 그녀와 상반된 경험을 가진 또 다른 훠천몐(藿晨勉)이라는 존재는 그렇게 탄생했다. 그녀는 ‘또 다른 천몐’에게 “넌 이런 삶을 원해?” 하고 물은 적이 있다. ‘또 다른 천몐’은 침묵했다. 이에 그녀는 말했다. “적어도 너에게 이런 인생을 원했는지 물어봐 준 사람 정도는 있었다는 걸 명심해.” 그녀와 ‘또 다른 천몐’과 처음으로 대화를 나누었지만 놀랍게도 조금의 장애도 없었다. 그때부터 운명은 그들 두 사람의 몫이 되었다.


☑ 지은이 소개

쑤웨이전(蘇偉貞)은 1954년 타이완 타이난시에서 태어났으며, 본적은 광둥성 판위이다. 정치작전대학(政治作戰學校) 연극영화과를 나온 뒤, 홍콩대학에서 중문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연합신문(聯合報)≫ 칼럼 ‘독서인(讀書人)’의 주편을 거쳐, 타이완 국립성공대학(國立成功大學) 중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1979년 ≪연합신문≫에 첫 번째 소설 ≪그와 잠시간의 동행(陪他一段)≫을 발표해 섬세한 필치와 생기발랄한 언어 구사로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현재 타이완의 청장년을 대표하는 작가로 손꼽힌다. 
작품 초기에는 남녀 간의 사랑을 다룬 작품을 주로 썼으나, 차츰 광범위한 제재를 망라해 현대사회의 축소판을 그려 보였다. 또한 인간 심리 묘사에도 탁월하여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쑤웨이전은 소설과 산문 부문으로 ≪연합신문≫, ≪중국시보(中國時報)≫, ≪중앙일보(中央日報)≫, ≪중화일보(中華日報)≫ 등에서 입상을 하였으며 국군문예의 황금사자상 등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희곡과 편집 부문에서도 여러 차례 수상을 했다. 대표작으로는 소설집 ≪그와 함께 한 시절(陪他一段)≫을 비롯해 ≪홍안은 이미 늙어(紅顏已老)≫, ≪열의 소멸(熱的絕滅)≫, ≪퉁팡을 떠나며(離開同方)≫, ≪옛 사랑(舊愛)≫ 등이 있다. 이 외에도 중국 여류 작가 장아이링(張愛玲)의 말년에 서신을 교환하며 문학에 대한 의견을 나누던 내용을 엮어 책으로 출간, 세간의 큰 관심을 받기도 했다.


☑ 옮긴이 소개

전남윤은 부산대학교와 타이완 국립정치대학 중어중문학과에서 석사 과정을 마치고, 중국 베이징으로 건너가 중국 사회과학원 문학연구소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부산대 현대중국문화연구실 소속으로 중국 대륙에 국한된 기존의 연구를 탈피해 타이완과 홍콩은 물론, 세계 각지에 산재해 있는 화인 집단에 대한 연구와 작품 번역 등에 참여하고 있다. 학위 논문으로 <장아이링(張愛玲)의 ≪전기(傳奇)≫ 작중인물의 욕망 연구>와 <중국현대판타지문학연구(中國現當代幻想文學硏究)>가 있고, 역서로는 홍콩 여류 작가 단편소설 모음집 ≪사람을 찾습니다≫(공역)와 타이완 여류 작가 주톈신(朱天心)의 소설집 ≪고도(古都)≫가 있다.  


☑ 목차

침묵의 섬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2014년 1월 21일 화요일

다시 종려나무를 보다(又見棕櫚又見棕櫚)


도서명 : 다시 종려나무를 보다(又見棕櫚又見棕櫚)
지은이 : 우리화(於梨華)
옮긴이 : 고혜림
분야 : 타이완 소설
출간일 : 2013년 12월 30일
ISBN : 979-11-304-1191-0 03820 
가격 : 22,000원
사륙판(128*188) / 무선 / 524쪽




☑ 책 소개

이 책은 타이완 작가 우리화(1931~ )의 대표 작품이자 그녀의 미국 유학 체험이 녹아 있는 자전적인 소설이다. 1960년 당시 타이완의 미국 유학 열풍과 이주를 통해 화인(華人) 디아스포라가 경험하는 정체성의 혼란을 잘 보여 주고 있다. 타이완에서는 유학생 소설로 부르기도 했으며 1960년대 북미 지역 화인화문문학의 대표 작품으로 꼽힌다. 2006년 ≪아주주간(亞洲周刊)≫에서 선정한 ‘20세기 중국어 소설 100권’ 중 한 편이기도 하다. 


☑ 출판사 책 소개

≪다시 종려나무를 보다≫는 자전적 경험이 녹아 있는 명실공히 우리화(於梨華)의 대표 소설로 꼽을 수 있는데, 2006년 ≪아주주간(亞洲周刊)≫에서 선정한 ‘20세기 중국어 소설 100권’ 중 하나다. 이 소설은 타이완에서는 유학생 소설로 불리기도 하며 1960년 당시 타이완의 미국 유학 열풍과 이주를 통해 화인(華人) 디아스포라가 경험하게 되는 정체성의 혼란을 잘 보여 주고 있는 작품으로 꼽힌다. 
우리화의 소설은 1960년대부터 붐을 이룬 미국 유학을 일찍이 경험하고 잘 훈련된 문학적 역량으로 표현해 낸, 유학생 문학 분야를 선구적으로 일구어 낸 작품이다. 당시의 북미 지역으로 가는 유학 붐을 소재로 해 주인공 텐레이가 유학 이후 타이완으로 다시 돌아와서 겪게 되는 이중적 소외에 집중해 소설을 전개하고 있다. 소설은 주인공 텐레이가 미국에서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힘들게 여학생 화장실 청소와 접시닦이 일을 하며 버텨 낸 과거를 타이완에 있는 그의 집에서 부리는 하녀가 알게 된다면 과연 자신을 ‘도련님’으로 부를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던지면서 시작된다.
부모와 그 주변의 공동체 때문에 모국어와 모국의 문화에서 완전히 떠날 수 없어서 다시 타이완으로 돌아온 텐레이는 돌아간 곳에서도 자신이 이방인임을 확인하게 된다. 생동적인 인물의 묘사와 자신의 미국 사회 경험을 자전적으로 풀어내어 소설에 반영했기에 그녀의 소설은 마치 청운의 꿈을 품고 미국 유학길에 오르는 많은 타이완과 중국 대륙의 유학생들에게 필독서처럼 읽혔다. 하지만 이 소설은 유학생 문학의 특징들만이 아니라 화인 디아스포라의 심리 상태를 잘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히 화인 디아스포라 소외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가치를 지닌다.
소설은 플래시백 기법을 통해 타이완과 미국을 오가고 있으며, 전체를 아우르는 서사 구조가 흥미진진하면서도 탄탄한 스토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우리화가 주로 활동한 1950~1960년대 무렵을 통틀어 타이완 문학에서는 ‘뿌리 잃음(無根)’에서 ‘뿌리 찾기(尋根)’로의 경험과 방향성 설정이라는 공통된 인식을 갖게 된 것으로 여겨진다. 1953년 유학을 위해 미국으로 간 우리화는 이주 후 경험한 미국의 삶을 작품에 용해시켜 타이완과 미국이라는 두 장소에서 주인공이 지식인으로서 겪게 되는 여러 가지 사건들을 구성해 1967년에 소설을 발표했다.
소설 속 주인공의 미국 유학과 타이완으로의 일시 귀국, 그리고 심리 상태들은 마치 작가 우리화 자신의 유학 경력과 고국 귀환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미국으로 유학하기 전과 확연히 달라진 주인공의 모습에 자신의 모습을 겹쳐서 표현해 내고 있다. 상상한 고향으로 돌아가서 잃어버린 고향을 확인하는 것은 화인 디아스포라가 겪게 되는 필연적인 하나의 결과이며 이로써 야기되는 정체성의 혼란은 화인 디아스포라들에게 지속적으로 의문을 던지고 있다. ‘자신’으로 존재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탐색을 해야 하고 그것은 함께 살아가는 주변 인물과 현실에 개입함으로써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10년 남짓 유학 생활을 하고서 타이완으로 돌아오지만 오로지 박사 학위와 돈으로만 평가되던 미국의 삶이나 학문적인 성과를 떠나서 미국에서 유학했다는 사실과 학위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대받는 타이완의 현실에서 주인공은 아이러니를 느낀다. 그리고 여전히 이상과 현실의 간극이 발생한다는 사실에 좌절한다. 그는 그가 존재할 수 있는 현실 속 공간인 거주국과 출발지 양쪽에서 동시에 소외된다. 
주인공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섬이고 섬에는 모래뿐이죠. 모래 한 알 한 알이 모두 외로움이에요.” 유학하던 10여 년 동안도 그는 섬이었고 타이완으로 돌아온 순간에도 그는 섬이다. 외로움이라는 모래로만 이루어진 섬은 풍랑에도 쉽게 흩어질 것이고 그것이 형체를 갖추어 섬으로 자리하고는 있지만 언제 산산이 부서져 사라질지 알 수 없는 불안함 속에 항상 처해 있다. 주인공이 경험한 화인 디아스포라 신분의 불안감은 그가 미국에서 겪은 철저한 소외에 기인했다. 게다가 다시 돌아온 고향에서도 그는 미국 유학을 경험한 고향 사람들과는 다른 인간으로 분류되었다. 부모와 형제, 약혼자, 친구들을 만나 보아도 그 어느 누구도 자신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디아스포라가 된 화인들은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더라도 이미 그곳에는 그들이 생각하는 그런 모습이 남아 있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그들이 생각하는 고국과 고향의 모습은 그들만의 시간 속에 잠들어 있는 상상된 공간이기 때문이다. 우리화의 작품에서는 고국으로 귀환한 화인 디아스포라의 괴리감과 자신의 타자성 확인이라는 부분이 주된 정서로 나타난다. 이로써 경험하게 되는 이중적인 소외와 다시금 표류하게 되는 정체성을 통해 자신이 영원히 디아스포라일 수밖에 없음을 확인하게 되는 과정이 담겨 있다. 주인공은 이곳과 저곳 그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하고 있는 디아스포라의 심리 상태를 잘 표현해 낸다. 이 외에도 유학생의 모습을 한 디아스포라의 지난한 삶과, 타자로서 철저히 배제된 신분으로 타국에서 살아가는 것, 고향에 왔지만 이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게 되어 버린 디아스포라의 소외된 모습은 이 작품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 책 속으로

“꼭 모두 돌아오는 건 아니지! 게다가 각자 사정이 다르니까. 그 사람들은 이곳에 뿌리가 있지. 하지만 우리는 아니야.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말할지는 모르겠지만, 난 줄곧 내가 타이완에 속하지 못한다고 느껴. 그냥 여기에 얹혀사는 것일 뿐, 언젠가는 고향으로 돌아가야 해. 비록 우리가 그렇게 어릴 때 이곳으로 왔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여기에 뿌리가 없어.”
텐레이는 컵의 레모네이드를 다 마시고는 손안에서 컵을 돌리고 있었다. “네 생각에 미국에서 살면 그곳에 뿌리가 생길 것 같니?” 그렇게 말하고는 컵을 내려놓고 벗어 둔 긴 바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어 불을 붙였고 텐메이는 재떨이를 가지고 왔다. 그는 깊숙이 몇 모금 마셨다.
―<제9장> 중에서


☑ 지은이 소개

우리화(於梨華, 1931~ )는 저장성(浙江) 전하이(鎭海) 사람으로 상하이(上海)에서 태어났다. 항일 전쟁 시기 푸젠(福建), 후난(湖南), 쓰촨(四川) 등지로 옮겨 다녔고 1946년 저장성(浙江) 닝보(寧波)로 돌아갔다. 1947년 말 타이완으로 이주해 타이중 여중 시절부터 문학에 심취해 선총원(沈從文)의 ≪변성(邊城)≫에 대한 평론을 쓰기도 했다. 1949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타이완대학의 영문학과에 입학했다가 이듬해 역사학과로 전과했고 샤치안(夏济安)이 편집을 주관한 ≪문학잡지(文學雜誌)≫에 글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1953년 대학 졸업 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UCLA의 영문학과에 지원했으나 신문방송학과로 바꾸어 입학했다. 1956년 석사 학위를 받고 같은 해 영어로 단편소설 ≪양쯔강의 수심(揚子江頭幾多愁)≫을 발표해 ‘Samuel Goldwyn Creative Writing Award’에서 1위로 뽑혔다. 같은 해 결혼해 가정과 아이를 돌보면서 작품 활동을 했고, 1961년부터는 중국어로 글을 쓰기 시작해 1962년 장편소설 ≪칭허로 돌아가길 꿈꾸다(夢回青河)≫를 탈고하고 타이완으로 돌아가 가족을 만나면서 1년을 머물렀다. ≪칭허로 돌아가길 꿈꾸다≫의 완성 직후 타이완의 부모를 만나러 가서 ≪황관(皇冠)≫ 잡지에 위 작품을 연재했고 텔레비전에 방송되어 마침내 1963년 출판되었다. 1963년에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으며 프린스턴에서 시카고 북쪽 지역으로 이사했고 1965년에 뉴욕으로 이사했다. 
1967년에 발표한 ≪다시 종려나무를 보다(又見棕櫚又見棕櫚)≫는 그녀의 대표작이며 이 작품으로 ‘타이완자신문예상(臺灣嘉新文藝獎)’ 소설 부문에서 수상했다. 타이완에서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주인공의 모습은 생생한 현장 리포트와도 같이 당시 이주민의 신분으로서 미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이 어떠한지 그대로 보여 준다. 1968년 뉴욕으로 옮겨 가서 올버니(Albany) 주립대학에서 강의를 하게 되었고 중국 현대문학에 관한 수업도 맡았다.
그녀의 작품은 ≪돌아가기(歸)≫(1963), ≪칭허로 돌아가길 꿈꾸다≫(1963), ≪또다시 가을(也是秋天)≫(1964), ≪변화(變)≫(1965), ≪눈밭 위 별(雪地上的星星)≫(1966), ≪다시 종려나무를 보다≫(1967), ≪불꽃(焰)≫(1969), ≪백구집(白駒集)≫(1969)과 ≪눈물 머금은 백합(帶淚的百合)≫(1971), ≪회장현형기(會場現形記)≫(1972), ≪시험(考驗)≫(1974), ≪푸 집안의 자식들(傅家的兒女們)≫(1975), ≪사랑은 물과 같이(愛情像水一樣)≫, ≪상견관(相見歡)≫, ≪삼인행(三人行)≫(1979) 등이 있다.


☑ 옮긴이 소개

고혜림은 부산대학교 중어중문학과에서 중국 현대문학으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부산대학교 현대중국문화연구실 소속 연구원으로 중국 문학 번역 작업 및 연구와 강의를 하고 있다. 역자의 주요 연구 분야는 중국의 현대문학과 화인화문문학, 화인 디아스포라문학과 세계 문화, 세계문학과 화인화문문학 작가들의 정체성 문제다. 이 외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는 페미니즘, 포스트식민주의와 관련한 여러 가지 문학 쟁점, 문학과 영화의 관계, 이종 문화 간 충돌과 결합 등에 관한 문제로, 지속적인 연구를 진행 중에 있다.
대표적인 글로는 학위 논문 ≪북미 화인화문문학에 나타난 디아스포라문학의 특징≫(2013)이 있다. 2013년 부산대학교 대학원 학술상을 수상했다. 기타 학술 논문으로 <장시궈(張系國)의 소설 ≪장기왕(棋王)≫과 ≪바나나수송선(香蕉船)≫에 나타난 화인 디아스포라의 정체성>(2013), <북미 화인화문문학의 역사와 시기구분>(2012), <수용과 배제: 킹스턴의 ≪여인무사≫를 중심으로>(2009), <21세기 중국 문학연구의 전환과 고민: 바이셴융(白先勇)소설을 통해 본 문학에서 문화연구로>(2007)가 있다. 학술 번역으로는 예웨이롄(葉維廉)의 <타이완, 홍콩 모더니즘 시의 역사적 지위>, 량빙쥔(梁秉鈞)의 <1950년대 홍콩 영화를 통해 본 5·4전통의 계승과 변화의 홍콩 문화 읽기>등이 있다. 역서로는 부산대학교 김혜준 교수 외 4인이 공동 번역한 홍콩 여류 작가 단편소설 모음 ≪사람을 찾습니다≫(이젠, 2006)와 ≪장기왕≫(지식을만드는지식, 2011) 등이 있다.


☑ 목차

제1장
제2장
제3장
제4장
제5장
제6장
제7장
제8장
제9장
제10장
제11장
제12장
제13장
제14장
제15장
제16장
제17장
제18장
제19장
제20장
후기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2014년 1월 7일 화요일

이리(狼)


도서명 : 이리(狼)
지은이 : 주시닝(朱西甯)
옮긴이 : 최말순
분야 : 타이원 소설
출간일 : 2013년 12월 20일
ISBN : 979-11-304-1187-3  03820 
가격 : 18000원
사륙판(128*188) / 무선 / 384쪽




☑ 책 소개

이 책은 타이완 작가인 주시닝(朱西甯, 1926∼1998)의 소설 다섯 편을 묶은 것이다. 중국 산둥성 출신인 주시닝은 1949년 국민당 군대와 함께 타이완으로 철수해 온 외성인 작가이며 오랫동안 군에서 복무한 군인작가다.  


☑ 출판사 책 소개

주시닝의 작품 중 창작 시기와 작품 경향, 그리고 인간에 대한 그의 기본적 인식을 보여 준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골랐다. 
<이리>: 부모를 모두 잃고 삼촌 집에 얹혀살게 된 열 살 남짓의 어린아이를 서술자로 설정하여 어른들 세계의 욕망과 이기적인 잔인함을 투시하고 있다. 삼촌 집에 살고 있는 ‘나’는 숙모의 학대를 받는다. 숙모는 자신의 아이를 갖기 위해 양치기로 고용한 일꾼들과 관계를 가진다. 이야기는 양을 잡아먹는 이리를 잡는 과정을 통해 숙모의 간통이 발견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즉, 실제 양을 해치는 이리와 양같이 순한 아이를 학대하는 숙모의 이리 같은 마음을 없애는 과정이라는 두 가지 축으로 전개되는 매우 치밀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동틀 무렵>: 송대 화본소설인 <착참최녕(錯斬崔寧)>을 근간으로 하여 새롭게 구성한 것으로 고전과 현대의 대화를 시도한 것이면서도 동시에 고전소설과는 다른 인간과 사회·체제에 대한 사고를 보여 주는 수준 높은 작품이다. 이야기의 내용은 보리 다섯 석으로 관아의 말단 포졸 자리를 얻은 ‘나’가 일을 시작한 첫날 목도하게 되는 재판 과정의 불합리다. 인명이 걸린 중대한 사건을 대하는 아편쟁이 나리의 게으르고 무심한 모습, 합리적인 조사보다는 억압적인 폭력과 위협을 통한 심문, 재판을 둘러싼 금전 수수와 관아의 각 계층별 이익 분배 등 모순된 사회제도와 그 속의 인간 탐욕을 폭로한다. 
<황금 제련사>: 메타픽션을 연상시키는 수법을 채용하여 전통소설의 불문율인 서술의 완결성을 파기하고 완전히 새로운 시도를 한 작품이다. 소설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인물과 사건의 발단이 등장하는 전반부와 각기 다른 세 개의 결말을 제시하는 후반부가 그것이다. 이런 구조로 인해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의 <덤불 속(藪の中)>과 비슷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주시닝은 인물의 관점과 입장에 따라 변하는 결말이 아닌 소설 속 사건 자체의 완전성이 부정되는 완전히 새로운 서술을 시도하여 더욱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서술에 대한 도전을 보여 준다.
<지금은 몇 시?>: 소설을 언어의 실험장으로 하여 자유연상과 상상, 의식의 흐름의 대량 도입, 생활의 세부적 묘사를 통해 무의식 세계 속의 신감각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소설의 내용은 한 남녀의 아주 평범한 일상과 부단히 변하는 심리 상태가 전부인데, 일정한 주제의식 아래 인생의 도리나 방향을 제시하는 기존 소설과는 달리 생활의 세부 묘사와 대수롭지 않은 인물들의 의식 흐름 자체가 주는 재미에 치중하고 있다. 
<장군과 나>: 주시닝이 평생 추구한 인간성의 경지를 보여 준다. 주인공인 ‘해피(Happy) 왕’은 평생 군대에서 복무한 장군으로 해학적이지만 우직하고 소임에 충실하며 무엇보다 부하와 동료에 대한 따뜻한 마음을 가진 중국인의 전통적인 인애(仁愛)사상과 기독교적 박애사상이 잘 조화된 인물이다. 이 소설은 비록 군인의 삶을 소재로 하였지만 반공 이데올로기의 각성보다는 사소한 일상사를 통해 한 개인의 생명에 대한 독실함과 경건함, 인생에 대한 열정과 인간의 영성(靈性)에 관한 믿음을 보여 주고 있다. 


☑ 책 속으로

**≪이리≫, <장군과 나>, 283~284쪽

장군은 안경을 벗고 웃었다. “여기에 피카소가 친공산당 경향이 있으므로 추상화도 이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나는 우리 군인들이 적진에 대해 너무 신경과민이 아닐까 생각하는데 회화계의 친구들도 경각심이 이렇게 큰지 몰랐습니다. 물론 당연히 좋은 현상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제가 알기에 피카소도 우리와 같이 두 눈이 콧대 위에 붙어 있는 화가일 뿐이지요. 결코 추상화를 그리는 화가가 아닙니다. 또 흐루쇼프는 추상화를 ‘자산계급의 몸에 흐르는 고름’이라고 여러 번 비판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는 흐루쇼프가 이런 연기를 해서 뭘 위장하려고 한 건지도 모르지요. 셋째는 아시다시피 청년들은 자고로 언제나 새로운 것을 좋아하지요. 우리도 젊었을 때 그랬지 않습니까? 얼마 되지 않는 머리칼을 오늘은 왼쪽으로 내일은 오른쪽으로 가르마를 타면서 말입니다. 지금은 다 앞으로 통일하여 내리 빗지 않습니까? 안심하십시오. 올백으로 하든, 가르마를 타든, 어떻게 빗어 보았자 그 머리칼이 그 머리칼이지요. 나이가 들면 다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다른 예를 더 들어 보면, 여러 화가 선생들은 나름대로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법을 아시고 있겠지만, 제 생각으로 여자의 몸은 어디 한군데 안 예쁜 데가 없는데 유독 쭈글쭈글한 정갱이는 보기에 밉지요.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미니스커트, 핫팬츠같이 다들 목숨을 걸고 이 무릎을 내놓으니 아마도 추함을 숨길 줄을 모르는 듯합니다. 하지만 젊은이들이 좋아하니 그렇게 하게 놔두면 되지요. 그게 얼마나 가겠습니까? 안심하고 그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놔두면 됩니다. 우리는 다들 21세기까지 살 수 있을까 걱정하지 않습니까? 21세기는 중국인의 세기이니 우리가 자꾸 말로 제지하기보다는 그들이 행동으로 잘할 수 있도록….”


☑ 지은이 소개

주시닝(朱西甯)은 1926년 중국 산둥(山東)에서 태어나 1949년 국민당 군대와 함께 타이완으로 철수해 온 군인작가이며 1998년 향년 72세로 타계했다. 그는 1946년 항저우예술전문학교에 재학하던 중 학업을 포기하고 종군했으며 상병에서 대령까지 거쳤고, 1972년 전역한 후 창작에만 전념했다. 대륙에서 타이완으로 철수한 국민당 정부는 반공문학을 고취하기 위해 군중문예를 장려했는데 주시닝은 그 주역으로 군중신문예금상장(軍中新文藝金像獎)을 창설하고 관련 업무를 맡기도 했다. 그는 창작뿐 아니라 편집인으로서 반공에 치중했던 군중문예를 순문학의 영역으로 이끄는 데 이바지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주시닝의 창작은 소설 위주지만 다수의 산문과 평론도 남겼다. 1947년에 단편소설 <양화(洋化)>로 데뷔한 이래 모두 28편의 장·단편 소설집을 발간했다. 그의 소설은 양과 질에서 고른 평가를 받고 있으며 소설의 제재와 기교에서도 부단히 변화를 추구해 왔다. 초기 작품의 경향은 사실적이며 주로 군대 체험, 고향의 산천과 사람들을 묘사하는 가운데 반공 주제를 드러내었다. 인간사와 인간성에 대한 깊이 있는 고찰을 보여 준다. 1960년대 중반기부터 현대 사회로 눈을 돌려 비교적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작품을 창작하면서 당대 타이완 문학의 모더니즘 풍조와도 상응하게 된다. 1980년대부터 장편소설 ≪화태평가전(華太平家傳)≫을 집필하기 시작하여 타계하기까지 55만자를 완성했다. 이 작품은 가족사를 국가의 역사에 융합시키는 가운데 기독교의 중국화 과정과 중국 현대성에 대한 사유를 담고 있다. 주시닝 일생의 주요 사상을 표현한 것으로 평가받는 작품이다.


☑ 옮긴이 소개

최말순은 부산대학교에서 중국 문학을 공부하고, 타이완 국립정치대학(國立政治大學) 중문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국립중정대학(國立中正大學) 타이완문학연구소(台灣文學硏究所)를 거쳐 현재 국립정치대학 타이완문학연구소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전공 영역은 식민지 시기 타이완 문학의 근대성에 관한 고찰이다. 기타 동아시아 국가의 현대 진입 과정 및 문학적 대응 등을 비교 연구하는 데 관심이 있다. 
저서로는 박사논문 <現代性與臺灣文學的發展(1920∼1949)>과 ≪海島與半島: 日據臺韓文學比較≫(台北: 聯經出版社, 2013)가 있고, 편저로 ≪타이완의 근대문학 1∼3≫(서울: 소명출판사, 2013)이 있으며, 그간 발표한 논문으로는 <1930년대 대만문학 맥락 속의 장혁주>, <전쟁시기 대만문학의 심미화 경향과 그 의의>, <일제시기 소설의 ‘발전형’ 서사와 인물 ‘신생’의 의의>, <≪오래된 정원≫과 ≪忠孝公園≫-황석영과 陳映眞 소설의 역사인식> 등 30여 편이 있다.
그 외 수 년간 타이완과 한국에서 두 나라의 역사·문화·정치·사회 일반에 대한 강연을 진행하고 있다. 두 나라의 잡지와 신문에 이와 관련한 에세이를 싣고 있는데, 한국에선 ≪부산일보≫, ≪플랫폼≫, ≪말≫, ≪한겨레21≫ 등에, 타이완에선 ≪롄허원쉐(聯合文學)≫, ≪쯔유스바오(自由時報)≫, ≪타이완문학연감(台灣文學年鑑)≫, ≪원쉐타이완(文學台灣)≫ 등에 다수의 글을 발표했다.  


☑ 목차

이리
동틀 무렵
황금 제련사
지금은 몇 시?
장군과 나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침몰하는 섬 II(沈淪)


도서명 : 침몰하는 섬 II(沈淪)
지은이 : 중자오정(鍾肇政)
옮긴이 : 문희정
분야 : 타이원 소설
출간일 : 2013년 12월 30일
ISBN : 979-11-304-1189-7(2권) 04820
        979-11-304-1190-3(세트) 
가격 : 22000원
사륙판(128*188) / 무선 / 372쪽




☑ 책 소개

타이완 작가 중자오정(鍾肇政, 1925∼ )의 장편소설이다. 홍콩의 ≪아주주간(亞洲週刊)≫이 뽑은 ‘20세기 중문소설 100선’에 마흔다섯 번째 작품으로 선정된 바 있다. 1895년 타이완 할양 무렵, 일본군 진주에 저항하는 사람들 이야기다.


☑ 출판사 책 소개

중자오정(鍾肇政)의 ≪침몰하는 섬(沈淪)≫은 ≪타이완인 삼부곡(臺灣人三部曲)≫의 제1부다. 1964년 집필을 시작해 1968년 ≪타이완일보 부간(臺灣日報 副刊)≫에서 연재를 마쳤으며, 그해 단행본으로 출판되었다. 이후 제2부 ≪창명행(滄溟行)≫과 제3부 ≪차톈산의 노래(揷天山之歌)≫가 1976년과 1975년에 각각 출판되었으며, ≪타이완인 삼부곡≫이라는 완전한 형태로 출판된 것은 1980년이다. 이 연작소설은 일본 식민통치 50년간의 타이완을 그렸으며, 역사서보다 더욱 진실에 가까운 사료이자 문학적 성과가 뛰어난 대하소설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침몰하는 섬≫은 청일전쟁에서 패배한 청이 일본에 타이완을 할양하기로 결정한 시점에서 출발한다. 이야기는 3대째 타이완에 정착해 토지를 개간하고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던 루 씨 가문이 자신들의 터전을 지켜 내겠다는 일념으로 자진하여 의용군에 참여한 뒤, 목숨을 걸고 일본군에 저항한다는 내용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소설이 가진 가장 큰 의의는 단연 역사의 산증인으로서 당시 타이완인들의 경험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그들의 정신을 높이 기리며, 그 속에서 고통 받은 사람들을 드러냈다는 점일 것이다. 소설은 많은 지면을 할애해 루 씨 가문이 타이완에 어떻게 정착했는지를 세세히 소개한다. 톈구이 공이 타이완으로 건너와 남의 집 머슴살이로 시작한 것부터, 어떻게 주쭤랴오(九座寮)에 터를 잡고 대대로 존경을 받는 인물이 되었으며, 그 자손들은 또 어떻게 가문을 번창시켜 나갔는지에 관한 서술은 소설의 전반부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내용이다. 그 과정에서 타이완으로 건너온 사람들이 정착 초반에 겪어야 했던 보편적인 과정이나 농사·무역·풍습 등과 관련한 시대상들이 세밀한 필치로 묘사되고 있다.
사실 ≪침몰하는 섬≫은 처음에 ≪타이완인(臺灣人)≫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되다가, 이 낱말과 관련한 여러 가지 민감한 문제 탓에 후에 제목을 바꾸었다. 이런 에피소드는 우리가 상상하는 타이완과 타이완인에 대한 여러 가지 문제들을 상기시킨다. 타이완은 익히 알다시피 다양한 족군들로 구성된 국가다. 물론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타이완은 중국의 일부이거나 한족의 국가로 인식되고 있다. 그렇기에 소설 속에서 상상하는 타이완인의 개념은 더욱 유의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소설 곳곳에서 타이완은 여전히 청나라의 일부로 인식되고 있으며, 하카인으로 대표되는 청나라 이주자들은 타이완을 개척한 선구자로 묘사된다. 
또한 타이완의 원주민을 일본인보다 더욱 잔인하고 야만적인 존재로 묘사하는 점도 당시 대륙에서 이주해 온 한족들의 타이완에 대한 의식이 잘 드러난 부분이다. 한족들이 원주민들을 위협적인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은, 광복 이후 본성인과 외성인 간에 빚어진 충돌이나 타이완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정에서 직면해야 했던 다양한 족군의 공존이라는 과제와도 깊은 관계가 있다. 여기서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것은 한계가 있으나, 이 책을 통해 타이완의 복잡한 역사의 단면을 볼 수 있다는 점은 타이완의 상황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 책 속으로

**≪침몰하는 섬 II≫, 328쪽

“의용군이 돌아온다….”
“루 씨 가문의 용사들이 오고 있다….”
참담할 정도로 초토화한 링탄피 시가지에서 사람들이 이른 아침부터 앞다퉈 소식을 전했다. 그것은 사람들을 고양할 만한 소식도 아니었지만, 사람들은 다분히 고조되었다. 마치 그 용사들이 돌아오기만 하면 집이 부서지고 땅을 빼앗긴 자신들의 크나큰 수치심을 씻어 주기라도 할 것 같았다. 사실 그들도 보복을 하겠노라 큰소리를 쳐 보았으나 더 이상은 일본군을 당해 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망가진 고향 땅을 다시 일으켜 줄 만한 사람도 더는 없었다. 게다가 이 루 씨 가문의 자제들은 사실 패잔병이나 다름없었다. 일본 오랑캐들은 이미 타이베이와 얼자주, 산자오융, 다커칸, 스이펀을 거쳐 링탄피, 뉴란허, 셴차이웡, 신푸, 팡랴오, 홍마오톈에서 신주까지 이어지는 몇백 화리의 노선을 모두 장악했다. 다만 사람들은 안핑읍과 퉁뤄취안, 뉴란허 등지의 전투에 대한 풍문을 통해 가장 장렬하고 용맹스러우며 가장 많은 일본 오랑캐를 죽인 사람들이 바로 그곳 출신의 루 씨 가문 용사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 지은이 소개

중자오정(鍾肇政)은 1925년 타이완의 타오위안현(桃園縣) 룽탄향(龍潭鄕)의 주쭤랴오(九座寮)에서 태어났다. 일제 통치하에서 일본식 교육을 받고 일본어를 사용했으며, 중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초등학교에서 보조교사로 일하기도 했다. 이후 장화(彰化)청년사범학교에 진학, 이때 다량의 세계 명작들을 읽으며 창작의 꿈을 키웠다. 1945년 사범학교를 졸업한 뒤 학도병으로 일본군에 들어갔으나, 같은 해 광복이 되면서 고향으로 돌아와 소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했다. 중자오정은 광복 이후 일본어 창작이 금지되면서 중문 주음부호와 중국어를 익히기 시작했으며, 각고의 노력으로 중문 창작 훈련을 계속해 나갔다.
1948년 타이완대학 중문과에 입학했으나 교과 과정 등에 불만을 품고 중도에 학업을 포기한 뒤 다시 교사로 복직했다. 1951년 <혼후(婚後)>가 잡지에 실리면서 창작 활동을 시작했고, 1962년 ≪연합보(聯合報)≫에 교사로서 경험을 담은 첫 번째 장편소설 ≪루빙화(魯冰花)≫를 발표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이후 ≪탁류 삼부곡(濁流三部曲)≫과 ≪타이완인 삼부곡(臺灣人三部曲)≫ 등을 집필하며 장편소설에서 뛰어난 업적을 인정받았다.
중자오정은 1950년대 반공문학이 주류를 이뤘던 타이완 문단에서 항일과 계몽이라는 신문학운동 정신을 계승해 창작 활동을 벌였다. 당시 타이완 출신 작가들은 반공사상과 중원사상을 강조하던 관(官) 주도의 문단에서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으며, 새로운 언어인 중문으로 창작을 하는 것 또한 익숙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다. 작품을 발표할 지면이 많지 않은 것도 문제였다. 이에 중자오정은 1957년 4월 ≪문우통신(文友通訊)≫을 창간했다. 당시 중자오정과 함께 ≪문우통신≫에 참여했던 대표적인 인물로는 중리허(鍾理和), 천훠취안(陳火泉) 등이 있다. ≪문우통신≫은 처음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점차 소속 작가들이 공모전 등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문학적 성과를 인정받기 시작했으며, 이러한 노력으로 문단의 주류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또한 이들은 당시 암흑과도 같은 시대 상황에서 문학의 다양성을 추구해 나갔으며, 이후 타이완 문학의 밑거름 역할을 훌륭히 해냈다.


☑ 옮긴이 소개

문희정은 타이완 국립정치대학(國立政治大學) 타이완문학연구소에서 수학했으며, 부산대학교 중어중문학과 박사 과정에서 중국 현대문학을 전공하고 있다. 현재 부산대학교 현대중국문화연구실에서 활동하며 타이완과 홍콩 문학에 대한 연구와 번역을 진행하고 있다. <페미니즘 시각으로 본 이벽화(李碧華)의 ≪패왕별희(覇王別姬)≫: 인물 형상과 대립 구조를 중심으로>로 부산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최근 활동으로는 서평 <근대문명과 식민, 타이완 근대문학의 재구성 — ≪타이완의 근대문학≫>(≪아시아≫ 통권 30호, 2013), 번역 논문 <위화(余華), <나는 나를 믿을 수 있는가> 외 2편>(≪중국현대문학≫ 제60호, 2012) 등이 있으며, 역서로 ≪시바오 이야기≫, ≪회오리 바람≫이 있다. 


☑ 목차

침몰하는 섬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침몰하는 섬 I(沈淪)


도서명 : 침몰하는 섬 I(沈淪)
지은이 : 중자오정(鍾肇政)
옮긴이 : 문희정
분야 : 타이원 소설
출간일 : 2013년 12월 30일
ISBN : 979-11-304-1188-0(1권) 04820
        979-11-304-1190-3(세트) 
가격 : 22000원
사륙판(128*188) / 무선 / 418쪽




☑ 책 소개

타이완 작가 중자오정(鍾肇政, 1925∼ )의 장편소설이다. 홍콩의 ≪아주주간(亞洲週刊)≫이 뽑은 ‘20세기 중문소설 100선’에 마흔다섯 번째 작품으로 선정된 바 있다. 1895년 타이완 할양 무렵, 일본군 진주에 저항하는 사람들 이야기다.


☑ 출판사 책 소개

중자오정(鍾肇政)의 ≪침몰하는 섬(沈淪)≫은 ≪타이완인 삼부곡(臺灣人三部曲)≫의 제1부다. 1964년 집필을 시작해 1968년 ≪타이완일보 부간(臺灣日報 副刊)≫에서 연재를 마쳤으며, 그해 단행본으로 출판되었다. 이후 제2부 ≪창명행(滄溟行)≫과 제3부 ≪차톈산의 노래(揷天山之歌)≫가 1976년과 1975년에 각각 출판되었으며, ≪타이완인 삼부곡≫이라는 완전한 형태로 출판된 것은 1980년이다. 이 연작소설은 일본 식민통치 50년간의 타이완을 그렸으며, 역사서보다 더욱 진실에 가까운 사료이자 문학적 성과가 뛰어난 대하소설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침몰하는 섬≫은 청일전쟁에서 패배한 청이 일본에 타이완을 할양하기로 결정한 시점에서 출발한다. 이야기는 3대째 타이완에 정착해 토지를 개간하고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던 루 씨 가문이 자신들의 터전을 지켜 내겠다는 일념으로 자진하여 의용군에 참여한 뒤, 목숨을 걸고 일본군에 저항한다는 내용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소설이 가진 가장 큰 의의는 단연 역사의 산증인으로서 당시 타이완인들의 경험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그들의 정신을 높이 기리며, 그 속에서 고통 받은 사람들을 드러냈다는 점일 것이다. 소설은 많은 지면을 할애해 루 씨 가문이 타이완에 어떻게 정착했는지를 세세히 소개한다. 톈구이 공이 타이완으로 건너와 남의 집 머슴살이로 시작한 것부터, 어떻게 주쭤랴오(九座寮)에 터를 잡고 대대로 존경을 받는 인물이 되었으며, 그 자손들은 또 어떻게 가문을 번창시켜 나갔는지에 관한 서술은 소설의 전반부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내용이다. 그 과정에서 타이완으로 건너온 사람들이 정착 초반에 겪어야 했던 보편적인 과정이나 농사·무역·풍습 등과 관련한 시대상들이 세밀한 필치로 묘사되고 있다.
사실 ≪침몰하는 섬≫은 처음에 ≪타이완인(臺灣人)≫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되다가, 이 낱말과 관련한 여러 가지 민감한 문제 탓에 후에 제목을 바꾸었다. 이런 에피소드는 우리가 상상하는 타이완과 타이완인에 대한 여러 가지 문제들을 상기시킨다. 타이완은 익히 알다시피 다양한 족군들로 구성된 국가다. 물론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타이완은 중국의 일부이거나 한족의 국가로 인식되고 있다. 그렇기에 소설 속에서 상상하는 타이완인의 개념은 더욱 유의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소설 곳곳에서 타이완은 여전히 청나라의 일부로 인식되고 있으며, 하카인으로 대표되는 청나라 이주자들은 타이완을 개척한 선구자로 묘사된다. 
또한 타이완의 원주민을 일본인보다 더욱 잔인하고 야만적인 존재로 묘사하는 점도 당시 대륙에서 이주해 온 한족들의 타이완에 대한 의식이 잘 드러난 부분이다. 한족들이 원주민들을 위협적인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은, 광복 이후 본성인과 외성인 간에 빚어진 충돌이나 타이완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정에서 직면해야 했던 다양한 족군의 공존이라는 과제와도 깊은 관계가 있다. 여기서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것은 한계가 있으나, 이 책을 통해 타이완의 복잡한 역사의 단면을 볼 수 있다는 점은 타이완의 상황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 책 속으로

**≪침몰하는 섬 I≫, 295쪽

“너희 젊은 사람들은 입만 열면 전쟁, 전쟁 하는구나. 맨손으로 호랑이를 때려잡고 걸어서 강을 건너려고 드는 것은 일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아. 당당한 대청제국도 그놈들을 당해 내지 못했는데, 이 손바닥만 한 작은 섬에서 뭘 할 수 있겠느냐?”
“저희들은 청조의 군대 따위와 다르지요!” 아룬은 조금도 양보하지 않았다.
“맞아요, 아버지!” 아쑹도 끼어들었다. “저희는 청조의 군대와 달라요, 저는 창산으로 돌아가지 않을 겁니다. 저는 여기서 막내 숙부를 도와 일본 오랑캐를….”
“아쑹!” 런즈는 아들이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호통을 치며 말을 잘랐다. “너 같은 어린애는 함부로 끼어드는 것이 아니야!”


☑ 지은이 소개

중자오정(鍾肇政)은 1925년 타이완의 타오위안현(桃園縣) 룽탄향(龍潭鄕)의 주쭤랴오(九座寮)에서 태어났다. 일제 통치하에서 일본식 교육을 받고 일본어를 사용했으며, 중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초등학교에서 보조교사로 일하기도 했다. 이후 장화(彰化)청년사범학교에 진학했는데, 원래 문학을 좋아했던 그는 이때 다량의 세계 명작들을 읽으며 창작의 꿈을 키웠다. 1945년 사범학교를 졸업한 뒤 학도병으로 일본군에 들어갔으나, 같은 해 광복이 되면서 고향으로 돌아와 소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했다. 중자오정은 광복 이후 일본어 창작이 금지되면서 중문 주음부호와 중국어를 익히기 시작했으며, 각고의 노력으로 중문 창작 훈련을 계속해 나갔다.
1948년 타이완대학 중문과에 입학했으나 교과 과정 등에 불만을 품고 중도에 학업을 포기한 뒤 다시 교사로 복직했다. 1951년 <혼후(婚後)>가 잡지에 실리면서 창작 활동을 시작했고, 1962년 ≪연합보(聯合報)≫에 교사로서 경험을 담은 첫 번째 장편소설 ≪루빙화(魯冰花)≫를 발표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이후 ≪탁류 삼부곡(濁流三部曲)≫과 ≪타이완인 삼부곡(臺灣人三部曲)≫ 등을 집필하며 장편소설에서 뛰어난 업적을 인정받았다.
중자오정은 1950년대 반공문학이 주류를 이뤘던 타이완 문단에서 항일과 계몽이라는 신문학운동 정신을 계승해 창작 활동을 벌였다. 당시 타이완 출신 작가들은 반공사상과 중원사상을 강조하던 관(官) 주도의 문단에서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으며, 새로운 언어인 중문으로 창작을 하는 것 또한 익숙지 않아 이중의 어려움을 겪었다. 작품을 발표할 지면이 많지 않은 것도 문제였다. 이에 중자오정은 1957년 4월 ≪문우통신(文友通訊)≫을 창간했다. 이 잡지에는 1950년대 중반 타이완 문단의 대표적인 향토문학 작가들이 상당수 참가하였는데, 이들은 대부분 타이완의 식민 경험과 역사 기억에 관심을 가진 작가들이었다. 이들은 잡지에 작품을 발표하고 서로의 작품을 평가하거나 격려하면서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 나갔다. 당시 중자오정과 함께 ≪문우통신≫에 참여했던 대표적인 인물로는 중리허(鍾理和), 천훠취안(陳火泉) 등이 있다. ≪문우통신≫은 처음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점차 소속 작가들이 공모전 등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문학적 성과를 인정받기 시작했으며, 이러한 노력으로 문단의 주류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또한 이들은 당시 암흑과도 같은 시대 상황에서 문학의 다양성을 추구해 나갔으며, 이후 타이완 문학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탐구하고 스스로의 발전 궤적을 완성해 나가는 밑거름 역할을 훌륭히 해냈다.


☑ 옮긴이 소개

문희정은 타이완 국립정치대학(國立政治大學) 타이완문학연구소에서 수학했으며, 부산대학교 중어중문학과 박사 과정에서 중국 현대문학을 전공하고 있다. 현재 부산대학교 현대중국문화연구실에서 활동하며 타이완과 홍콩 문학에 대한 연구와 번역을 진행하고 있다. <페미니즘 시각으로 본 이벽화(李碧華)의 ≪패왕별희(覇王別姬)≫: 인물 형상과 대립 구조를 중심으로>로 부산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최근 활동으로는 서평 <근대문명과 식민, 타이완 근대문학의 재구성 — ≪타이완의 근대문학≫>(≪아시아≫ 통권 30호, 2013), 번역 논문 <위화(余華), <나는 나를 믿을 수 있는가> 외 2편>(≪중국현대문학≫ 제60호, 2012) 등이 있으며, 역서로 ≪시바오 이야기≫, ≪회오리 바람≫이 있다. 


☑ 목차

침몰하는 섬



2013년 12월 24일 화요일

양쿠이 소설선(楊逵 小說選)


도서명 : 양쿠이 소설선(楊逵 小說選)
지은이 : 양쿠이(楊逵)
옮긴이 : 김양수
분야 : 타이원 소설
출간일 : 2013년 12월 26일
ISBN : 979-11-304-1184-2  03820 
가격 : 18000원
사륙판(128*188) / 무선 / 302쪽




☑ 책 소개

이 책은 타이완의 대표적 항일 작가인 양쿠이(1905~1985)의 소설선이다. 대표작 <신문 배달 소년>과 <엄마 거위 시집가네>, <맹아>, <고구마를 심는다> 등 1930~1940년대 일제 강점기의 타이완 사회를 그린 작품을 묶어 펴냈다. 추가로 <타이완 원로 사회운동가의 회고와 전망−일본, 타이완, 중국 대륙에 대한 양쿠이와의 인터뷰>, <일본 식민 통치를 받고 자란 아이>, <양쿠이의 생애와 저작에 관한 연표> 등 양쿠이 인터뷰 글, 양쿠이가 간략하게 자신의 이력을 밝힌 글, 양쿠이 연표를 실었다.      


☑ 출판사 책 소개

양쿠이는 타이완의 루쉰으로 불리는 라이허보다는 좀 뒤에 활동한, 일본어로 글을 쓰는 작가였다. 본 선집에서도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양쿠이의 1934년작 <신문 배달 소년>은 당시 일본 도쿄에서 나오던 잡지 ≪문학평론≫의 현상 공모에서 입상한 작품이다. 1930년대 일본에는 문학 운동이 탄압을 받아 전일본무산자예술연맹(NAPF)와 같은 중심 조직이 와해되어 버리자, 조선이나 타이완의 저항 작가들을 영입해 명맥을 이어 가려 했던 좌익계 잡지들이 있었는데, ≪문학평론≫은 그중 하나다. 당시 조선에서도 일본 ‘중앙 문단’으로의 진출을 꿈꾸던 작가들이 있었다. <아귀도>를 쓴 장혁주나 <빛 속으로>를 쓴 김사량, 혹은 <암모니아 공장>을 쓴 이북명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정치적 성향이나 등단의 배경 면에서 양쿠이와 아주 유사하다. 그 후 장혁주는 친일 작가로 변절했고, 김사량은 한국전쟁에서 전사했으며, 이북명은 38선을 넘어 월북하는 등, 그들의 인생 경로는 그 후로 너무도 판이하게 달라져 버리게 되지만. 
1910년에 일본의 식민지가 된 조선에 비해 1895년에 식민지가 된 타이완은 일제에 대한 굴종의 시기가 상대적으로 좀 일찍 찾아온다. 식민지 시대 타이완 작가들 중에는 친일적 성향의 작가들이 많았고, 좌익적이고 항일적인 양쿠이 같은 저항 작가는 매우 드물었다. 대표작 <신문 배달 소년>은 바로 그런 양쿠이의 스타일을 잘 보여 주는 작품인데, 도쿄에 간 타이완 유학생이 신문 배달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되지만, 계약 사기를 당해 돈을 떼인 후 좌익 사상을 가진 일본 학생을 만나, 함께 투쟁의 길로 나서게 된다는 내용이다. 전개 면에서 다소 비약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동아시아 ‘약자’ 간의 국경을 넘어선 ‘연대’를 주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는 매우 의미 있는 작품이자 연구 자료다. <신문 배달 소년>과 더불어 본 선집에 수록된 <엄마 거위 시집가네>, <맹아>, <고구마를 심는다> 등의 단편소설은 모두 일제 강점기 타이완 사회를 진솔하게 반영한 작품들이다.  
양쿠이는 일본 유학에서 돌아온 후로도 농민운동과 신문화 운동을 했으며, ≪타이완신문학≫ 등의 잡지를 창간하기도 한다. ‘작가 양쿠이’에 비해 ‘운동가 양쿠이’는 덜 알려진 셈인데, 이 부분을 보충하고 당시 타이완 사회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타이완 원로 사회운동가의 회고와 전망>, <일본 식민 통치를 받고 자란 아이>, <양쿠이의 생애와 저작에 관한 연표> 등의 자료들을 본 선집에 넣었다. 특히 위 <타이완 원로 사회운동가의 회고와 전망>의 인터뷰 진행을 맡은 다이궈후이(戴國煇)와 와카바야시 마사히로(若林正丈)는 당대 일본의 타이완 연구를 대표할 만한 인물들이다. 이들을 포함한 일군의 일본 연구자들은 국민당 독재 시절 타이완 내에서 연구가 자유롭지 못했던 때부터 타이완 연구를 시작해서, 나중에 타이완 학계에 일정한 영향을 주기도 했다.  


☑ 책 속으로

“이게 바로 공존공영(共存共榮)입니다.”
종묘원 사장이 또 말했다. 대동아전쟁이 ‘공존공영’을 표방하고 나서니, 이 시골 사람까지도 이 원리를 습득한 것이었다.
“공존공영이요?” 나는 그를 똑바로 쳐다보며 알 수 없다는 듯 물었다.
“그래요, 장사를 순조롭게 할 수 있고 서로 만족스럽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장사를 순조롭게 할 수 있고 서로가 만족스럽다…. 그 말은 맞지만 그 뒤에선 많은 사람들이 이것 때문에 해를 입는다.
≪공영 경제의 이념≫−나는 린원친 군의 저작이 또다시 떠올랐다.
린원친 군은 일찍이 영국 상인이 청조의 관리를 매수해 중국 대륙에서 아편 장사를 한 것을 지적했다…. 이것도 이들 장사꾼들의 눈에는 바로 ‘공존공영’이다. 가증스러운 공존공영! 지금 나도 이렇게 그중의 일각을 담당하고 보니 나도 모르게 마음이 떨리고 간담이 서늘하다. 나는 곧바로 그에게 남은 빚을 청산하고, 그를 피하기라도 하듯 자리를 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수중에 남은 돈을 보면서 마음이 상당히 불안했다. 그 30원은 말하자면 번 것도 아니고, 손실을 면했다고 할까, 아니 엄마 거위를 시집보낸 대가였던 것이다….

―<엄마 거위 시집가네> 중에서


☑ 지은이 소개

본명은 양구이(楊貴)이고 1905년 타이난(臺南)에서 출생했다. 필명으로는 양쿠이(楊逵), 양졘원(楊建文) 등이 있다. 어린 시절 쟈오바녠(噍吧哖)에서 일어난 항일운동과 그에 대한 학살 사건의 영향을 받아 민족의식이 싹트기 시작했다. 1924년 일본으로 건너가 문학을 공부했고, 이때 마르크스주의와 아나키즘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1927년에는 타이완으로 돌아와 농민운동에 종사했다. 대표작인 <신문 배달 소년>이 일본 도쿄에서 발행되는 ≪문학평론≫의 공모에서 2등상을 수상하면서, 타이완 문학이 일본 문단에 진출하는 길을 열었다. 1935년에는 ≪타이완신문학≫이라는 잡지를 창간했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한 후에는 귀농해 수양농원(首陽農園)을 꾸려 가며 살았다. 일본이 패전하자 타이완 사회의 재건에 앞장서는 한편 문학 활동도 재개해 ≪타이완문학총간≫을 창간했다. 1949년에는 <화평 선언>에 서명했다는 이유로 국민당 정부로부터 12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출옥 후에는 타이중(臺中)의 동해화원에서 칩거했다. 1985년 타이중에서 향년 81세로 영면했다. 작품집으로는 ≪신문 배달 소년≫, ≪엄마 거위 시집가네≫, ≪양두집(羊頭集)≫, ≪꺾이지 않는 장미(壓不扁的玫瑰)≫ 등이 있다. 


☑ 옮긴이 소개

김양수는 성균관대학교 중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중국 난징(南京) 대학과 일본 도쿄 대학에서 방문 연구를 했다. 현재 동국대학교 서울캠퍼스 중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전공은 중국 현대문학 연구다. 그동안 중국과 타이완의 현대문학·영화에 관한 논문을 여러 편 썼으며, 번역서로는 ≪100년간의 중국문학≫, ≪현대중국, 영화로 가다≫, ≪오, 나의 잉글리쉬 보이≫, ≪베이징을 걷다≫, ≪흰 코 너구리≫, ≪빅토리아 클럽≫, ≪미로의 정원≫, ≪아시아의 고아≫ 등을 출판했다. 타이완 소설을 번역·소개하는 데 꾸준히 관심을 갖고 있으며, 최근 관심을 갖고 있는 주제는 “올드 상하이의 도시 기억과 한국인”, “동아시아의 문학적 전통과 루쉰” 등이다. 


☑ 목차

탈경계의 시대, 넓어진 시야로 읽는 양쿠이−≪양쿠이 소설선≫ 한국어판 서문

신문 배달 소년(送報伕)
엄마 거위 시집가네(鵝媽媽出嫁)
맹아(萌芽)
고구마를 심는다(種地瓜)
타이완 원로 사회운동가의 회고와 전망−일본, 타이완, 중국 대륙에 대한 양쿠이와의 인터뷰
일본 식민 통치를 받고 자란 아이(日本植民統治下的孩子)
양쿠이의 생애와 저작에 관한 연표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2012년 9월 6일 목요일

뱀 선생(蛇先生)

뱀 선생(蛇先生)
라이허(賴和)  지음  / 김혜준·이고은 옮김
분 야 : 타이완 소설
출간일 : 2012년 9월 1일
ISBN : 978-89-6680-522-8 02820
18,000원 /  A5 제본  / 204쪽



☑ 책 소개

‘타이완 신문학의 아버지’, ‘타이완의 루쉰’이라고 불리는 라이허의 소설을 국내 최초로 출간했다. 이 책에 실린 8편의 소설은 라이허의 단편소설 중에서 그의 문학적 특징과 시대적인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난 작품들로, 일제 식민지 통치의 죄악과 그에 따른 타이완 민중의 고통을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타이완 사람의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 출판사 책 소개

1895년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시모노세키조약을 통해 타이완에 대한 식민 지배를 시작한다. 1945년에 이르러 50년간의 일본의 식민 지배가 끝난 뒤 1949년에는 국공내전에서 패배한 국민당이 타이완으로 철수하면서 타이완은 또 한 번의 역사적인 격변기를 겪는다. 일본은 식민 지배 시기에 토지개혁, 화폐와 도량형 개혁, 철도와 도로 건설, 인구조사 등 근대적 제도를 시행함으로써 타이완을 ‘근대화’시키는 한편 그러한 것들을 바탕으로 타이완 사람들을 억압하고 착취했다. 일본 식민 당국이 황무지에 가까운 땅을 정비하고 교육과 의료 시설을 만들고 새로운 문화를 시행하면서, 타이완 사람들은 표면적으로 보기에는 이전에 비해 보다 나은 삶을 살아가게 된 것 같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지속적인 착취와 동화정책으로 인해 고통을 겪어야 했다. 모든 학교에서 일본어 교육을 실시하고 국가기관에서는 중국어 사용을 금지시키는 등 일본에 의해 타이완은 철저히 일본화되고 있었던 것이다.

타이완의 신문학(현대문학)은 이러한 현실에 회의를 느끼는 지식인들이 늘어나면서 태동하고 발전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5․4운동 이후 중국 대륙의 신문학의 상황과 흡사했다. 1921년 일본에서 유학하고 있던 타이완 학생들이 타이완문화협회를 설립하고 ≪타이완(臺灣)≫이라는 간행물을 출판하기 시작하면서부터 타이완 신문학이 본격적으로 출범했다. 이 잡지를 통해 타이완문화협회는 대륙에서 전개되는 백화운동을 소개하거나 일본 식민지에서 벗어나려면 자국어의 사용으로 정신적 통일을 이뤄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민족주의를 고취하는 계몽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5․4신문학운동의 영향을 받아 1920년대 초 타이완은 문언문(고문)을 반대하고 백화문(현대문)을 제창하면서 구문학을 반대하고 신문학을 제창하는 내용의 문학 개혁 운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타이완 신문학의 발전은 일제 식민 시기 타이완 사람들의 정치적 권리를 쟁취하는 운동과도 맥을 같이했고, 이에 따라 그 형식에서부터 내용에 이르기까지 시대적인 요구에 부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타이완 신문학의 역사와 함께한 라이허는 형식뿐만 아니라 내용, 사상 면에서 새로운 시도를 선도한 대표적인 타이완의 작가다.

라이허는 낮에는 의사로 밤에는 작가로, 뿐만 아니라 조국을 사랑하는 애국자이자 조국의 미래를 걱정하는 항일운동가로 활동했다. 1920년대 초반부터 창작 활동을 시작해 1925년 ≪타이완민보(臺灣民報)≫를 통해 그의 첫 작품인 <무제(無題)>를 발표했다. 이 작품은 산문과 시가 결합되어 있는 새로운 형식으로 사랑하는 여자가 시집을 가 버리면서 실연한 남자의 복잡한 감정을 섬세하고 진실되게 묘사했다. 이듬해 그는 타이완 최초의 현대 단편소설인 <흥 겨루기(鬪鬧熱)>를 시작으로 1925년부터 1935년 사이에 소설, 시, 산문 등을 다량 창작했는데, 타이완 신문학의 출발점으로 평가받는 그의 작품들에서는 기존의 중국 대륙 문학과 차별화되는 점들이 나타난다. 그것은 중국 표준어와 민난(閩南) 방언 및 문언과 일본어가 혼재하는 다언어를 사용하는 문체적인 특성과 일본 식민지 통치에 놓인 타이완의 현실과 타이완 사람들의 어려움을 다룬다는 내용적인 특성이다. 라이허는 당시 타이완에서 신문학운동에 가담했고 일본의 식민지 통치를 직접 눈으로 목격하면서 창작 활동을 펼쳤다. 이 책에 실린 총 8편의 단편소설은 일제 식민지 통치의 죄악과 그에 따른 타이완 민중의 고통을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타이완 사람의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1926년에 발표한 <흥 겨루기>는 타이완 신문학 최초로 백화문으로 창작된 소설이라는 점에서 의의를 지닌다. 또한 용등을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아이들, 징 소리, 아이들을 나무라는 어른들, 행사가 시작되기 전의 마을 분위기 등 ‘흥 겨루기’를 준비하는 마을의 전통적 분위기를 타이완 민중들의 정서로 구성지게 묘사했다는 점에서도 가치가 있다. 그러나 작가는 그와 동시에 타이완 사람들이 겉치레와 체면을 너무 중시해 그것들의 경쟁에만 집중하는 것을 비난하는 한편, 일본의 식민 지배로 인한 타이완 지방자치 권력의 약화를 비판한다. 타이완의 전통문화 중 하나이자 마조 여신을 맞이하는 의식으로 거행하는 ‘흥 겨루기’는 마을 사람들 모두가 즐기는 축제이지만 작가는 옛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추구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이러한 전통적인 의식을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미신과 낡은 풍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마을 사람들을 묘사하며 문화적 혁신과 사회적 진보에 대한 바람을 표현했다. 라이허의 많은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흥 겨루기>는 식민지 체제의 억압과 착취당하는 사람들의 현실을 드러내며 민중의 저항적 의지와 굴복하지 않는 정신을 고취하고자 하는 주제를 담고 있다.

라이허는 일본의 식민지 현실을 고발하기 위해 소설 속에서 다양한 도구와 배경들을 활용했는데, 과학과 법률은 그러한 도구 중의 하나이다. <뱀 선생(蛇先生)>에서 뱀 선생의 전통적 방식의 의료 행위는 일본 식민 당국과 양의에 의해 법적인 규제를 당한다. 라이허는 새롭게 나타난 법이라는 제도를 이야기하면서 일본을 통해서 들어온 양의를 비판하고, 뱀 선생의 입을 통해 소설 속에서 법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표현하며 약자보다 강자를 위해 존재하는 법에 대해 부정적인 관점을 보여 준다. 법은 소중한 것이며 인간은 법이 있기에 살아갈 수 있지만 또한 언제나 그 시대의 법은 그것을 가능하게 만든 당시의 특수한 이해관계에 봉사할 수밖에 없음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다. 사람들을 치료하는 뱀 선생의 선행은 그저 범죄일 뿐이고 특정인에게 이익을 가져다주도록 만들어 놓은 법 앞에서 다수의 사람들은 약자에 불과했다. 라이허는 과학과 법률 등 일본의 식민지 문화가 타이완의 전통, 민간 문화를 억압하는 현실을 풍자적인 기법을 사용해 묘사하는 동시에 뱀 선생의 치료법, 즉 구습만을 좇고 있는 사람들 또한 풍자하고 있다. <뱀 선생>에서는 <흥 겨루기>에 나타난 국민성 비판에 더해 식민지 체제 비판이라는 요소가 함께하고 있는 것이다.

라이허의 소설 속에는 정식 교육을 받은 지식인들이 자주 등장한다. 그는 식민지 시기에 공학교에 다니면서 교육을 받고 일본어를 사용하는 지식인들을 통해 일본이 강조하는 국민성을 비판하고자 했다. <말썽(惹事)>과 <귀향(歸家)>의 주인공들은 당시 교육을 받은 지식인에 해당하는 인물들이다. <말썽>의 주인공은 도박이나 주색에도 취미가 없고 같은 부류의 친구도 없이 그저 무료하게 시간을 허비하는데,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에 간섭을 하지만 결국은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은 채 타이베이로 떠난다. 그는 억압에 분개하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엔 안위를 추구하는 마을 사람들에게 실망과 분노를 느끼며, 자기 자신도 큰소리는 치지만 실질적으로 무언가를 시도하지는 못한다. 그것을 시도하기에는 주위의 방해 요소가 너무 많은 탓도 있을 것이다. <귀향>의 주인공 역시 고향에 돌아온 뒤로 지루한 생활을 이어 가고 있었으며, 그러다가 과거를 돌이켜 보며 그 추억들을 더듬어 가던 중 길가의 상인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상인들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 봤자 어디 가서 일할 곳이 없기에 자기 자식들은 모두 일을 하고 학교엔 가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 이야기를 들은 주인공은 의아해하면서 상인들을 설득하려고 한다. 그러나 당시 하루하루 벌어서 생활하는 일반 사람들에게는 학교, 즉 교육이란 사치에 불과했다. 그들은 정작 일상에서는 별로 쓸 일도 없는 일본어 몇 마디 배우느라 학교 가는 것을 팔자 좋은 사람이나 할 일이라며 이해하지 못한다. <말썽>과 <귀향>의 두 주인공 모두 정상적인 교육을 받은 지식인으로 그들에게 고향은 무지하고 깨어 있지 않은 사람들로 가득한 공간일 뿐이다. 그 속에서 주인공은 방황하면서 발버둥치지만 단지 그뿐이지 어떤 해결책을 찾거나 제시해 주지는 못한다. 라이허는 이 작품들을 통해 타이완 사람들의 우매함이 아니라 이미 일본의 식민지 체제에 교화되어버린 지식인들을 비판하고자 한다. ‘국민성을 함양해야 한다’고 말하는 지식인들을 바라보며 일본의 식민지 국민으로 변해 버린 그들의 현실을 비통해하고 있는 것이다.

<말썽>은 반봉건 의식과 민족의식을 반영하고 있는 작품으로 명목상으로는 민생 치안을 내걸지만 실제로는 여러 가지 악랄한 방법으로 타이완 민중의 고혈을 빨아먹는 일본 경찰의 포악하고 잔인한 허위적 모습을 있는 그대로 그려 내고 있다. 작가는 여러 계층의 묘사를 통해 졸렬한 ‘순사 나리’들과 그들에 의해 구성되는 식민주의 통치에 대해 실감 나는 폭로와 신랄한 풍자를 가한다. 그뿐만 아니라 또 노골적인 비난을 가하면서 일본 식민 통치자에 대한 작가 자신의 적대감과 경멸감을 직접적으로 표출하고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농민의 민주주의 의식과 계급의식의 각성을 역설하면서 풍자적인 방식으로 소설을 이끌어 나간다. 일본 경찰의 너절하고 악질적인 단면을 진실하게 폭로한 소설로는 <말썽> 외에도 <낭만외기(浪漫外紀)>, <저울(一桿稱仔)>등을 들 수 있다. 특히 <낭만외기>는 소설이 시작되는 부분에서 경찰을 따돌리고 도주하는 건달들의 모습을 실감 나게 묘사하여 리얼리즘적 경향을 강하게 보여 주고 있다. ‘타이완인의 전형적인 성격’과 전혀 다르다고 표현하고 있는 소설 속 건달들은 은연중에 작가가 희망하는 진정한 타이완 사람을 대변하고 있다. 구속을 싫어하고 의리를 중시하며 믿음만 있으면 위험을 무릅쓰고 용감하게 도전하는 건달들을 묘사하면서 마치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중국인들을 각성시키기 위해 진정한 지식인, 더 나아가 초인을 바라던 루쉰처럼 작가는 타이완 사람들의 국민성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저울>의 후기에서 라이허는 “이 비극을 본 지는 한참 되었다. 글을 쓰려고 할 때마다 돌이켜 보기만 하면 슬픔이 머릿속을 가득 채워서 펜을 들 수가 없었다. 근일에 아나톨 프랑스(Anatole France)의 <크랭크빌>을 읽고서 이런 일이 미개국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강권이 행사되고 있는 곳에서는 어디든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문장이 졸렬함을 무릅쓰고 문필가들의 비판을 받고자 발표하는 바이다.”라고 말한다. 아나톨 프랑스의 작품이 사회, 정치 문제에 관한 항의와 고발을 독특한 풍자와 희롱을 섞어가며 날카롭게 제기한다는 점, 그리고 더 나아가 사회제도와 개인 간의 문제를 압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는 점에서 라이허의 작품 경향과 거의 일치하는 것이었다. 또한 <마음 같지 않은 신년(不如意的過年)>에서 주인공이 아무 죄도 없는 한 아이에게 분풀이를 하는 장면은 아나톨 프랑스의 작품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일본 순사 나리가 주인공인 이 소설은 그의 시각에서 전개되는데, 새해를 맞이해 순사 나리가 타이완 사람들에게 품는 불만이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는지를 볼 수 있다. <저울>과 마찬가지로 이 작품 역시 식민 지배 현실에 대한 폭로일 뿐만 아니라 봉건 중국 사회에 대한 비판과 타이완 사람들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특히 이는 도박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묘사하는 장면에서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런 면에서 보자면 <저울>과 <마음 같지 않은 신년>은 굳이 국가 의식을 따지지 않아도 될 만큼,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의 대립뿐만 아니라 수탈적 경제구조에서 피지배자들 사이에 일어나는 복잡한 갈등 양상들을 묘사함으로써, 사회적 부조리에 대한 보편적인 문제 제기로 나아가는 경향을 보인다고 할 수 있다.

<가여운 그녀, 죽다(可憐她死了)>는 앞선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일본 식민지 시대 타이완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묘사할 뿐 아니라 이 책에 실린 8편의 소설 가운데 등장인물과 스토리가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작품이다. 또한 주인공 ‘아진’을 통해 여성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아진의 집은 너무 가난했기에 그녀의 부모는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남의 집에 민며느리로 보내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장래의 시아버지와 어린 남편이 죽자 시어머니는 가난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아진을 또 다른 남자에게 첩으로 보내게 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아진에 대한 남자의 관심은 점점 줄어들고 아진은 자신이 혼자라는 생각에 점점 더 고립되어 간다. 그녀는 친부모와 시어머니가 차례로 자신을 다른 사람에게 팔아 버린 사실을 비통해하면서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그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임신한 뒤에는 장차 시어머니를 모시면서 아이와 함께 살아갈 결심을 한다. 그러나 결국 죽음이라는 비극으로 끝나는 이 소설은 외롭고 힘들게 살아온 한 여성의 생애를 통해 여성이 마치 거래 가능한 하나의 물건으로 치부되는 상황을 보여 주면서, 식민지 치하의 척박한 현실 속에서 평범한 타이완 사람들이 겪었던 비참함과 애통함을 더욱 각별한 정서로 표현하고 있다.



☑ 책 속으로

법! 아, 이는 참으로 귀하고도 중한 말일지니, 언제 누가 창조해 내었는지 알 수가 없다. 참으로 유익하기 짝이 없는 발명이므로 지금까지도 전매특허라는 특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 그것이 있음으로 해서 사람들은 감히 나쁜 짓을 못하는 것이요, 돈 있는 사람은 도적질의 위험을 면하게 되는 것이요, 가난한 사람 역시 분수에 따라 굶주림을 참으며 죽기만을 기다릴 수가 있는 것이다. 법이란 침범할 수 없는 것이며, 그것이 정한 조례와 그 권위가 미치는 것이라면 모든 인류가 준수하고 떠받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곧 범법이 되는 것이며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아야만 하니, 가벼우면 감금이요 무거우면 사형이다. 이는 법의 존엄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인 수단인 것이다. 일단 법이 권위를 상실한다면 그것의 특권을 소유한 자―즉 그것으로 밥을 먹고사는 자―는 틀림없이 굶어 죽을 것이므로 여태껏 가벼이 대한 적이 없는 것이다. 이처럼 법은 그것의 특권을 소유한 자에게는 대단히 이익이 되는 것이며, 만일 일반 시민이 법률 바깥에서 자유를 가지거나 또는 법률 자체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된다면, 그들은 이익 면에서 백 퍼센트 완벽하지는 않다고 느끼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인류의 모든 행위, 심지어는 눈으로 볼 수 없는 사상까지도 신성한 법률로 간섭하고 단속하며, 인류의 일상생활과 먹고 마시고 자고 일어나는 것 또한 법률의 용인 속에서만 무사함이 보장되는 것이다.
-<뱀 선생> 중에서


☑ 지은이 소개

라이허(賴和, 1894~1943)
라이허는 20세기 초 타이완에서 시대적 변화에 따른 새로운 문화와 사상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지식인 중 한 명이자 타이완에 대한 일본의 식민 지배 역사와 일생을 거의 함께했던 인물이다. 라이허는 청나라 광서(光緖) 20년 5월 28일 장화(彰化)에서 태어났으며, 1895년 청일전쟁에서 중국의 패배로 인해 태어나자마자 일본제국의 식민지 신민이 되었고, 일제 당국에 의해 두 차례 투옥되었다가 풀려난 후 타이완이 해방되기 직전인 1943년 심장병으로 사망했다.

그의 본명은 라이허(賴河)이고, 한의사 집안에서 자라면서 한문을 포함해서 전통교육을 받는 한편 신식 학교를 다닌 끝에 타이베이에 있던 타이완 총독부 의학교를 졸업했다. 그 후 약간의 수습 기간을 거쳐 1917년 고향 장화에서 병원을 개업했으며, 이듬해부터 1년여 동안 샤먼(厦門)의 한 병원에서 근무하기도 했으나 곧 타이완으로 돌아와 평생 고향 사람들에게 헌신했다. 당시 장화 사람들은 그를 삼국지에 나오는 화타처럼 추앙했고, 그가 사망한 뒤에는 그의 묘에 난 풀을 뜯어 약으로 쓰면 효험이 있다고 해 그의 묘는 항상 반지르르했다고 한다. 그는 의사 일을 하면서 창작 활동을 겸했는데, 대개 낮에는 병원 일에 쫓겨 시간이 없었고 주로 밤에 잠을 설쳐 가며 작품을 썼다. 하지만 그런 중에도 1925년부터 1935년 사이 약 10년간 소설과 시를 포함해 많은 작품들을 발표했다.

라이허는 1925년 8월 처음으로 산문 <무제(無題)>와 시 <깨달은 희생(覺悟的犧牲)>을 발표했다. 당시 라이허는 구시(舊詩)에서부터 신시(新詩), 산문, 소설 할 것 없이 모두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고, 그를 거치면서 타이완의 문학이 큰 변화를 보였기 때문에 그는 많은 작가들로부터 한결같은 존경을 받았다. 그의 작품 중 소설로는 <흥 겨루기(鬪鬧熱)>(1926), <저울(一杆稱子)>(1926), <마음 같지 않은 신년(不如意的過年)>(1928), <뱀 선생(蛇先生)>(1930), <모욕?!(辱?!)>(1931), <낭만외기(浪漫外紀)>(1931), <귀향(歸家)>(1932), <풍작(豊作)>(1932), <말썽(惹事)>(1932) 등 약 30편의 단편이 있으며, 주로 ≪타이완민보(臺灣民報)≫에 게재되었다.

라이허는 일본의 식민지 통치에서 자신이 직접 경험한 암울한 시대 상황을 작품을 통해 절실하게 증언했다. 그의 작품은 타이완의 현실 상황과 타이완 사람들의 심리 상태를 핍진하게 표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20세기 전반 타이완의 역사를 생동감 있게 기록해 놓고 있다. 그의 산문 역시 탁월한 풍자 기법을 사용해 식민 지배자의 추악한 면모와 잔인한 본성을 폭로, 비판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볼 때 그의 초기 작품에는 강렬한 민족의식과 더불어 초지일관 약자의 편에 서서 강자를 비판하는 모습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한편 1921년 라이허는 타이완문학협회에 가입하면서 신문학의 편집과 출판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타이완에서 전개된 신구(新舊) 문학의 격렬한 논쟁 중에는 구문학을 강력하게 비판하고 신문학을 제창했고, 또한 청년 작가들의 양성에도 특별한 관심을 쏟았다. 1945년 타이완이 해방되기 전까지 타이완 사람들은 일본 제국주의의 유린과 수탈을 겪어야만 했는데, 이러한 모습을 직접 목격하고 경험한 라이허는 문학으로 반일 사상을 고취하면서 사실상 식민지 상황에서 타이완의 민족주의 문학을 이끌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그는 타이완 신문학에서 5․4신문학운동의 영향을 비교적 분명하게 받은 작가 중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요컨대 그의 작품 속에 담겨 있는 민족주의, 저항 의식, 계몽 정신, 하층민에 대한 애정, 리얼리즘, 풍자 수법이라든가 그의 작품이 동시대와 다음 시대 많은 다른 작가들에게까지 큰 영향을 끼쳤다는 점 등 모든 면에서 볼 때, 그를 두고 ‘타이완 신문학의 아버지’, ‘타이완의 루쉰’이라고 칭하는 것은 전혀 과찬이 아니다.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나아가서 (적어도 타이완에서는) 루쉰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작가였다고 하겠다.


☑ 옮긴이 소개

김혜준
김혜준은 고려대학교 중문과에서 중국 현대문학을 전공하고 ≪중국 현대문학의 ‘민족 형식 논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부산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그동안 홍콩 중문대학, 중국 사회과학원,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샌디에이고 캠퍼스 등에서 연구생 또는 방문 학자 신분으로 연구를 했다.

구체적 학문 분야로는 중국 현대문학사, 중국 신시기 산문, 중국 현대 페미니즘 문학, 홍콩 문학, 화인 화문 문학 등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에 따라 단독 또는 공동으로 ≪중국 현대문학 발전사≫(1991), ≪중국 당대 문학사≫(1994), ≪중국 현대 산문사≫(1993), ≪중국 현대 산문론 1949∼1996≫(2000), ≪중국의 여성주의 문학비평≫(2005) 등 관련 이론서를 번역하기도 하고, ≪하늘가 바다 끝≫(2002), ≪쿤룬산에 달이 높거든≫(2002), ≪사람을 찾습니다≫(2006), ≪나의 도시≫(2011) 등 수필 작품과 소설 작품을 번역하기도 했다. 저서로 ≪중국 현대문학의 ‘민족 형식 논쟁’≫(2000)이 있고, 논문으로 <화인 화문 문학(華人華文文學) 연구를 위한 시론>(2011) 외 수십 편이 있다.

개인 홈페이지 ‘김혜준의 중국 현대문학(http://home. pusan.ac.kr/∼dodami/)’을 운영하면서, <한글판 중국 현대문학 작품 목록>(2010), <한국의 중국 현대문학 학위 논문 및 이론서 목록>(2010) 등 중국 현대문학 관련 자료 발굴 및 소개에도 힘을 쏟아 왔다. 근래에는 부산대학교 현대중국문화연구실(http://cccs.pusan.ac.kr/)을 중심으로 청년 연구자들과 함께 공동 작업을 하는 데 노력하고 있으며, 이번 번역 역시 그 결과물 중의 하나다.



이고은
이고은은 부산대학교 중어중문학과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현재 일본 화인 화문 문학을 연구하고 있다. 최근에는 동료 연구자들과 함께 부산대학교 현대중국문화연구실에서 이번 번역을 포함해서 여러 가지 공동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논문으로는 <1980년대 이후 일본의 중국인 문학 연구>(석사학위 논문, 2008. 2), <일본 화문 문학의 여성적 글쓰기 연구(論日本華文文學的女性寫作)>(2008. 10), <경계에서 말하다: 양이(楊逸)의 <시간이 스며드는 아침>을 중심으로>(2010. 4) 등이 있고, 그 외 중국 영화 관련 리뷰인 <사랑…. 저 기억 너머>(2008. 8)가 있다.


☑ 목차

흥 겨루기(鬪鬧熱)
저울(一桿稱仔)
마음 같지 않은 신년(不如意的過年)
뱀 선생(蛇先生)
낭만외기(浪漫外紀)
가여운 그녀, 죽다(可憐她死了)
귀향(歸家)
말썽(惹事)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고도(古都)

고도(古都)
주톈신(朱天心)  지음 / 전남윤 옮김
분 야 : 타이완 소설
출간일 : 2012년 9월 1일
ISBN : 978-89-6680-525-9 02820
20,000원 /  A5 제본 / 420쪽



☑ 책 소개

타이완의 중견 여류 작가인 주톈신의 소설집을 국내 최초로 출간했다. 이 책은 1997년 ≪중국시보(中國時報, Chinese Times)≫에서 10대 소설에 선정되었으며, ≪연합신문(聯合報)≫에서 최우수 도서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또한 홍콩 시사 주간지 ≪아주주간(亞洲周刊)≫에서 선정한 20세기 중국 100대 소설에 선정되기도 했다.


☑ 출판사 책 소개

타이완 여성 작가 주톈신(朱天心)의 걸작으로 꼽히는 ≪고도(古都)≫는 이 책의 제목이 된 중편소설 <고도>(1996)를 비롯하여, <베니스의 죽음(威尼斯之死)>(1992), <라만차의 기사(拉曼査志士)>(1994), <티파니에서 아침을(第凡內早餐)>(1995), <헝가리의 물(匈牙利之水)>(1995)까지 총 다섯 편의 중․단편 작품이 실려 있다.

독자는 처음부터 눈에 익은 듯한 제목에 어쩌면 친숙함을 느낄지도 모른다. 짐작하다시피 ≪고도≫에 수록된 작품들은 제목을 대부분 원작이 있는 영화나 소설에서 차용해 왔다. <고도>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동명 소설 ≪고도≫를, <라만차의 기사>는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를, <티파니에서 아침을>은 블레이크 에드워즈의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을, <베니스의 죽음>은 토마스 만의 소설이자 비스콘티 감독의 영화 <베니스에서 죽다>에서 각각 그 이름을 따왔다. 단, <헝가리의 물>은 소설이나 영화가 아닌 ‘헝가리안 워터’라고 불리는 근대 최초의 향수에서 그 제목을 따왔다. 소설 속에서 작가는 농담처럼 작중 화자의 입을 빌려 “가끔 나는 글을 끝내고도 제목을 짓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심지어 프로답지 못하게 두어 번쯤 문예부 편집장에게 제목을 대신 지어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라고 하는데, 실제로 어떤지는 독자의 상상에 맡길 따름이다. 이처럼 친숙하게 서문을 열지만, 소설의 첫 장을 펼치는 순간 작가는 다시, “이봐, 긴장하지 마…. 아무도 죽지 않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야. 토마스 만도 나오지 않을 거고, 비스콘티도 없어. 심지어 진짜 베니스와도 상관이 없어”(<베니스의 죽음>)라는 도발적인 어투로 독자를 당황시킨다. 동시에 이런 발칙함이 독자로 하여금 주톈신이라는 작가는 물론이고 ≪고도≫라는 소설의 특징을 압축적으로 보여 주는 대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것이다.

≪고도≫ 속에서 주톈신은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자신만의 감성과 개성 있는 필치로 간간이 웃음을 자아내기도 하고 깊은 공명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렇지만 주톈신의 글쓰기는 분명 낯설다. 기승전결의 뚜렷한 전개도 없고, 시간과 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소설 속 주인공의 이미지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가 없음은 물론이고, 주인공의 이름조차도 제대로 알려 주지 않는다. 심지어 <고도>에서 작중 화자가 회상하는 추억조차도 ‘나’의 추억이 아닌 ‘너’의 추억이다. 독자는 작중인물과 묘한 거리 두기를 유지하면서, <고도>에 나오는 여행안내 책자처럼 작가가 영리하게 배치해 놓은 동선을 따라가야 비로소 전체의 그림을 볼 수 있게 된다.

우선 <베니스의 죽음>은 앞서 얘기했듯이 토마스 만의 소설을 모티프로 하고 있다. 그러나 주톈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절대적인 미에 대한 추구를 그렸던 토마스 만과 분명 차이가 있다. 여기에서 베니스는 작가의 말대로 실제 베니스라기보다는, 소설이 탄생한 공간인 카페 ‘베니스’를 가리킨다. 그 공간 속에서 화자이자 주인공인 ‘나’는 ‘너’에게 나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문학사적으로 중요한 작가의 대표작은 통상 35세에서 45세 사이에 탄생한다며, 그때까지 힘들게 갈고 닦은 자신의 정수(精髓)를 작품에 쏟아붓겠다는 주인공의 다짐은, 소설을 쓸 당시 주톈신의 심경을 대변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동명 소설의 작가인 토마스 만이 <베니스에서 죽다>를 집필한 당시 나이가 서른일곱이었으니, 주톈신의 주장에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글을 쓸 당시 주톈신 역시 서른셋의 젊은 나이였다. 본인은 부인하지만, 80년이 넘는 시간과 동서양이라는 이질적인 공간을 뛰어넘어 죽음을 바라보는 두 젊은 작가의 시선에서 묘하게 공통분모를 발견하고 기쁨을 느끼게 되는 것이 독자의 과민한 반응만은 아닐 것이다. 또한 토마스 만은 그는 자신의 글 속에서, 아름다운 도시 베니스가 실제로는 썩은 물 위에 떠 있으니, 그 사실을 알고도 물 위에 비친 신기루를 감수하겠느냐며 도발적인 질문을 던졌다. 다시 바닷속으로 가라앉고 있는 베니스를 보면서, 햇빛에 반짝이는 물결에 헛된 기대와 허망한 마음을 실어 보는 주톈신의 정서가 묘하게 오버랩이 된다. 작품 속에서 화자인 ‘나’는, 작가의 개입으로 좌지우지되는 것이 아닌, 작중인물의 주체적인 의지와 운명(비록 그것이 카페에서 울려 나오는 철 지난 포크송이나 휴대 전화 벨소리 같은 소음에 의해서 결정된다 하더라도)을 따라 이야기를 풀어 나가고 싶어 한다. 그런 ‘나’의 모습 역시, 자신의 이상에 부합하는 절대미를 갖춘 작품을 쓰고 싶다는 주톈신의 작가적 욕망의 발로일지도 모른다. 특히 소설 속에서는 카페에 대한 오밀조밀한 묘사와 작가들의 글쓰기에 대한 구체적인 예시를 통해 독자에게 <베니스의 죽음>을 읽는 재미를 준다. 그러기에 작품 속에서 ‘소설’이라는 매개를 통해 자신과의 대화를 시도했던 ‘나’를 보며, 일말의 기대를 품었던 독자는 진짜 베니스도 아닌 카페 베니스에서의 허망한 결말에 더욱 헛헛함은 느끼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런 식으로 독자의 상상을 전복하는 글쓰기는 다른 작품 속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라만차의 기사> 속의 주인공이자 화자 역시 작가다. 스스로를 소시민이자 주변인으로 묘사하고 있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우리는 또 다른 주톈신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라만차의 기사를 자처했던 돈키호테처럼 주인공 ‘나’는 엉뚱하고 기발하며 무모하기까지 하다. 어느 날 죽음의 문턱까지 가는 경험을 하게 된 ‘나’는 죽음에 대한 준비를 하게 된다. 그것이, 내가 죽고 나서 남들이 나에게 섣부르게 내릴 평가와 판단을 거부하기 위한 준비라는 점은 재미있다. 예기치 못한 죽음을 맞이했을 때, 나를 모르는 사람들은 내가 생전에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순전히 죽음을 맞이한 순간의 나의 모습으로만 판단할 거라고 생각하며, 속옷을 정갈히 갖추고 지갑을 정리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묘한 웃음을 자아냄과 동시에 씁쓸함을 느끼게 한다. 신용카드로 자신의 존재와 가치를 인정받는 사회에서, 명함 한 장 제대로 없는 무명작가 ‘나’의 모습은 소시민들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죽음을 그다지 두려워하지 않고 그것을 어느 정도 예측해 사전에 준비할 수 있는 노인에 대한 주인공의 노골적인 부러움은 억지스러우면서도 어쩐지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이다. 이는 끊임없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를 고민하던 주톈신의 일면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작가의 고민이 <티파니에서 아침을>로 옮겨 가면 한층 더 노골적이고 분명한 실체로 드러난다. 스스로를 지하실에 사는 가난한 노동자로 비유하는, 문예지 편집부 직원인 소시민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티파니의 다이아몬드 반지를 통해 신분의 상승을 노린다. 즉, 사치품의 절정인 다이아몬드를, 자본의 노예라는 신분을 벗게 해 줄 매개로 삼겠다는 것이다. 영원불멸한 다이아몬드의 특성은 나의 신분을 격상시켜 주는 것과 동시에, 태곳적부터 인간이 꿈꾸던 불로장생의 욕망을 짧은 순간이나마 충족시켜 주는 것이기도 하다. 인간은 영원하지 못하기 때문에 다이아몬드를 영원토록 소유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것을 소유하기를 꿈꾼다. 지체 높은 왕후 귀족이 죽으면 그들의 몸이 한낱 백골이 되어 흩어져도 그 속에서 이교도 신상의 눈동자처럼 홀로 빛을 발하는 다이아몬드는, 존엄성을 인정받고 진정한 자유를 얻고 싶어 하는 주인공 ‘나’의 욕망이 압축적으로 담겨 있는 대상인 것이다. 거기에 다시 티파니라는 철옹성에서 다이아몬드 반지를 주도면밀하게 ‘절도’해 오겠다는 계획을 짜는 주인공의 모습은 차라리 블랙코미디에 가깝다. 어느 시골 사람이 돈을 짊어지고 가서 “아가씨, 손목시계 한 근에 얼마요?” 했다는 우스갯소리를 면하기 위해 신용카드까지 발급받고(신용카드의 의미는 앞서 작품에서 이미 논한바 있다), 티파니라는 ‘궁전’ 주위를 맴돌며 속으로 수도 없이 예행연습을 하는 ‘나’의 눈물겨운 노력 때문에, 결국 티파니의 다이아몬드를 갖게 되었을 때는 어쩐지 모를 감동마저 느껴진다. 자본의 불평등한 구조 속에서 ‘농노’의 계급은 세습되지만, 평생토록 그 실체조차 제대로 알 수 없는 ‘지주’에게 착취당하는 우리의 운명이 다이아몬드 반지 하나로 자유를 얻게 된다는 상상은 엉뚱하면서도 눈물겹다. 마지막에 작가가 제시한 수수께끼와 비밀번호를 풀면, ‘유레카’를 줍는 소년이 될 수 있을까?

<헝가리의 물>은 이상의 작품들보다는 오히려 이어서 설명할 <고도>와 연관성을 가진다. 바로 ‘기억’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그렇다. 전자는, 후각이 사람의 기억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고민을 했다면, 후자는 공간이 기억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통상적인 기억과는 성질을 조금 달리하는 기억인 셈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시각과 청각, 촉각에 의한 경험은 직접 보고, 듣고, 만지는 과정에서 나의 의지와 의식이 개입된 기억일 가능성이 높지만, 후각에 의한 기억은 오히려 주관이 배제된 무의식적인 습득에 가깝다. <헝가리의 물>에 등장하는 ‘나’와 A의 만남 역시 후각의 개입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무의식적인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시트로넬라유(油)의 냄새는, 잊고 있었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냄새, 혹은 향이라는 실마리를 가지고 두 친구는 몇 번의 만남을 통해 구멍 난 기억들을 메워 가는 것이다. 옷장에 있던 티셔츠에 배인 여러 가지 냄새를 두고 “완벽한 배합”이라고 표현하는 대목은 웃음을 자아내고, 그런 재료들의 배합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기억도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관심을 끌어낸다. 무엇보다도 후각과 같이 무의식적으로 습득하게 되는 감각기관을 자극하여 상대방의 기억을 조종할 수도 있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다. 특히 작중인물 A는 아내가 쓰는 향수에 길들여져 다른 여성을 만나도 아내만 떠올리도록 훈련되어 있다. 여기에는 A의 의지가 어느 정도 개입하고 있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얼마든지 자신의 의지에 반하는 작용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동시에 우리가 시각이나 청각, 촉각 등에 의지한 기억은 생각했던 것보다 불완전하며, 때로는 후각에 의한 기억에 훨씬 못 미칠 수도 있다는 점은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작가는 유년 시절의 기억을 회상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잊고 지낸 기억들이 어쩌면 우리가 죽인 것일지도 모른다는 말까지 한다. 다소 극단적이기까지 한 이런 표현은 소중한 것들을 잊고 사는 우리들에게 많은 점을 시사한다.

마지막으로 <고도>는 처음부터 끝까지 과거의 기억에 대한 작가의 집착적인 애정과 그리움, 분노, 회한 등이 한꺼번에 농축되어 있는 작품이다. 소설은 처음부터 잃어버린 도시에 대한 기억을 회상하고 나열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설마, 네 기억이 아무것도 아니었던 걸까…”라고 서두를 던지며 시작되는 이 이야기는, 타이베이와 교토, 그리고 현재와 과거를 오가면서 오래된 도시에 뿌리내린 사람들의 모습과 사라지고 단절된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하고 있다.

주톈신은 그녀 특유의 섬세한 관찰력과 예민한 감성을 바탕으로 초목이나 자연환경은 물론, 인공적인 건축물에 이르기까지 세밀한 묘사를 진행하고 있다. 그래서 소설 속에서 여러 차례 등장하는 남국의 풍경이 자연스럽게 눈앞에서 펼쳐지며, 타이완에 가 보지 않은 사람도 그 속에서 함께 추억을 공유하며 살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만큼 생생하고 매혹적이지만, 그런 회상이 “과거에 대한 향수가 담긴 바이셴용의 고전소설”과 같은 단순히 감상적인 노스탤지어에 머물지는 않는다. 오히려 감상에 젖어 자신의 이야기를 흘려듣지 못하게 수시로 독자들을 자극한다. 작가는 가로수인 비단목화나무처럼 성장세가 맹렬한 나무들이 얼핏 보기에 이곳에 뿌리내린 지 오래된 듯하지만, 그건 새로운 것들을 가리기 위한 눈속임이라는 것을 상기시킨다. 그러면서 영원처럼 느껴지는 그런 풍경이 사실은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만들어졌음을 의식하게 만든다. 또한 타이베이 거리 풍경에 대한 치밀한 묘사와 여러 가지 꽃과 나무에 대한 생생한 묘사는, 마치 향기가 나는 듯한 느낌마저 들게 하지만, 엄밀히 말자하면 구체성이나 리얼리티와는 조금 다르다. 작품 속에서 현재의 거리 이름과 일본 통치 시대의 그것이 혼재돼 나열되는 대목에 이르면, 독자는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이곳이 타이완인지 일본인지, 현재인지 과거인지 혼란을 겪게 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풍성한 인용이 패턴처럼 반복되는 과정에서, 독자는 점차 현실과 환상이 전복되고, 읽기라는 의식이 붕괴되는 혼란스러운 상태에 이른다.

사실, 소설의 줄거리는 이런 복잡한 감정에 비해 상대적으로 단순하다. 주인공 ‘너’는 어느 날 타이완을 떠난 지 20년이 넘도록 한 번도 돌아오지 않았던 친구 A에게서 팩스를 받는다. A는 일본에 논문을 제출하러 가는 길에 함께 휴가를 보내길 원한다며 호텔 예약을 부탁하면서 말한다. 가능하면 고등학교 때처럼 한방에서 같이 자고 싶다고. 철모르는 시절 동성애까지 생각해 볼 정도로 가까웠던, 너무나 사랑하고 소중한 존재였던 A를 만나기 위해 ‘너’는 교토로 향하는 비행기에 오른다. 교토에서 네가 딸과 얽힌 온갖 추억들과 재회하고 있는 동안에도 A는 끝내 오지 않는다. 처음부터 A가 오지 않을 거란 직감을 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는 너는, 일본에서의 배회를 마치고 결국 타이완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남은 휴가 기간 동안 기온의 서점에서 산 일본어 여행안내 책자를 가지고 타이완을 여행하는 일본인이 되어 보기로 한다. 여기서 작가는 흥미로운 설정을 한다. 그것은 바로 그 여행안내 책자에 있는 일제 식민지 시대의 지도다. 일본식 지명으로 표기되어 있는 타이베이 구(舊)지도를 가지고 너는 과거로의 여행을 떠난다. 그러나 너는 너의 기억과 너무도 다르게 변해 버린 타이완에서, 사회나 역사에 의해서 개인의 기억이 철저히 지워지고 파괴되었음을 목도하고 결국 오열을 터뜨린다. 개인의 추억을 송두리째 부정당해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이 깃들 곳이 어디인지 모른 채 영영 길을 잃었기 때문이다.

≪고도≫라는 작품집 전체에 녹아든 주톈신의 모습을 보면, 집필 당시 작가의 나이가 삼십대였음을 감안할 때 조숙하다 못해 노숙한 느낌마저 든다. 현재를 살면서도 끊임없이 과거를 갈구하고, 또 살아 있으면서도 지나칠 정도로 죽음을 준비하는 모습은 낯설고 기이하기까지 하다. 또한 작가는 처음부터 소위 주류가 아닌, 주변인을 이야기하지만, 늘 날카롭게 핵심을 찌른다. 주톈신 소설의 이런 매력은 주머니 속 송곳처럼 작품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지나치게 박학다식함을 늘어놓아 마치 백과사전이나 역사서를 보는 듯한 느낌마저 자아내지만, 평면적이고 2차원적인 텍스트라는 공간에 오감을 자극하는 다양한 요소의 적절한 배치는 처음부터 끝까지 독자에게 즐거움을 안겨 준다. 독자는 이런 작가의 영리한 유희에 기꺼이 동참하되, 동시에 그 속에 숨겨지거나 때로는 노골적으로 드러난 감정적 실마리와 철학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 책 속으로

언젠가는 이 골목과 거리에, 타이완을 사랑한다는 새 정부에 의해 효율적으로 재산권을 회수당하고, 그 대신 부실 공사로 지어진 우정국 숙소와 세관 숙소, ××대학 교수 숙소, 수장(首長) 관사 등이 생겨날 것이다. 바로 52번지 일대를 제외한 원저우 거리 전체가 그렇게 된 것처럼. 그때가 되면 너에게는 더 이상 갈 만한 길도, 의지할 만한 기억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어찌 다시 가지 못할 뿐이겠는가? 너는 너와 처지가 비슷한 어느 소설가가 쓴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원래 가족이 묻히지 않은 곳은, 고향이라 부를 수 없다.” 너는 그 소설가처럼 가혹한 요구를 하려는 건 아니고, 다만 겸허하게 물어보고 싶었다. 이름이야 어떻게 짓건 간에(보통은 번영이나 진보가 들어가고, 가끔은 희망이나 행복 같은 것이 들어가기도 했다) 사람들이 살아온 흔적이 있는 장소를 보존하지 않는다면, 낯선 도시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그런 낯선 도시를 구태여 특별히 사람들에게 귀히 여기고, 아끼고, 보호하고, 인정하라고 할 필요가 있을까…?
-<고도> 중에서


☑ 지은이 소개

주톈신(朱天心, 1958~)
주톈신(朱天心)은 1958년 3월 12일 타이완 펑산(鳳山)에서 태어났으며, 타이완대학 역사학과 출신의 재원이다. 아버지 주시닝(朱西寧)은 작가로 이름을 떨쳤고, 어머니 류모샤(劉慕沙)는 번역가이며, 언니 주톈원(朱天文) 역시 작가이자 허우샤오셴(侯孝賢) 영화의 각본가로서 이름이 알려져 있다. 특히 언니 주톈원은 우리나라에서 ≪이반의 초상(慌人手記)≫이라는 작품으로 먼저 소개되었으며, 추 티엔 원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주톈신은 양친의 영향을 받아 십 대부터 창작을 시작했으며, 15세에 최초의 작품 <량샤오치의 하루(梁小琪的一天)>가 ≪중화일보부간(中華日報副刊)≫에 게재되면서 작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녀는 일찍이 ≪산산서간(三三書刊)≫의 편집장을 역임하기도 했지만, 현재는 작가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주톈신의 초기 작품은 청춘 소설이 주를 이루었으나, ≪내가 기억하기에…(我記得…)≫(1987) 이후 전후의 타이완 사회를 묘사하고, 자신만의 독특한 역사관․시간관을 고수하는 개성적인 소설을 차례로 발표해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그녀는 중국 본토 출신(외성인)이던 아버지와 타이완 출신(본성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소위 ‘외성인 2세대’ 여성 작가로, 기억과 역사, 그리고 자신과 같은 집단의 심경을 대변하고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묻는 작품들을 발표해 주목을 받고 있다.

주톈신의 작품들 가운데,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고도(古都)≫는 1997년 ≪중국시보(中國時報, Chinese Times)≫에서 10대 소설에 선정되었으며, ≪연합신문(聯合報)≫에서 최우수 도서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또한 홍콩 시사 주간지 ≪아주주간(亞洲周刊)≫에서 선정한 20세기 중국 100대 소설에 선정되기도 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사냥꾼들(獵人們)≫, ≪방주에서의 나날들(方舟上的日子)≫, ≪태평세월의 노래(擊壤歌)≫, ≪어제 내가 젊었을 때(昨日當我年經時)≫, ≪고향의 형제들을 그리며(想我眷村的兄弟們)≫, ≪방랑자(漫遊者)≫, ≪스물두 살이 되기 전에(二十二歲之前)≫, ≪초여름 연꽃 필 무렵의 사랑(初夏荷花時期的愛情)≫등 다수가 있다.
그 가운데 중․단편소설집 ≪고도(古都)≫는 출판 당시 문단과 학계에서 뜨거운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며, 2000년 일본의 겐이치로 시미즈(淸水賢一郞)와 2007년 미국의 하워드 골드블랫(Howard Goldblatt)에 의해 각각 일본어와 영어로 번역․소개되기도 했다. 타이완에서는 여전히 베스트셀러로 꼽히며 독자들로부터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


☑ 옮긴이 소개

전남윤
전남윤은 부산대학교와 타이완 국립정치대학 중어중문학과에서 석사 과정을 마치고, 중국 베이징으로 건너가 중국사회과학원 문학연구소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부산대학교 현대중국문화연구실 소속으로, 중국 본토에 국한된 기존의 연구를 탈피하여 타이완과 홍콩은 물론, 세계 각지에 산재해 있는 화인 집단에 대한 연구와 작품 번역 등에 참여하고 있다. 학위 논문으로 <張愛玲의 “傳奇” 작중인물의 욕망 연구>와 <中國現當代幻想文學硏究>이 있고, 역서로는 홍콩 여류 작가 단편소설 모음집 ≪사람을 찾습니다≫가 있다. 현재 부산대학교 인문학연구소의 지원을 받아 중국 환상문학에 관한 총서를 집필 중이며, 곧 출간될 예정이다.


☑ 목차

베니스의 죽음
라만차의 기사
티파니에서 아침을
헝가리의 물
고도

해설
옮긴이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