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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10일 수요일

초판본 전영택 단편집


도서명 : 초판본 전영택 단편집
지은이 : 전영택
엮은이 : 오창은
분야 : 한국 근현대 소설
출간일 : 2012년 4월 26일
ISBN : 978-89-6680-329-3 00810
가격 : 16000원
규격 : A5    제본 : 무선제본    쪽 : 179쪽



☑ 책 소개


≪전영택 단편집≫에는 <화수분>, <바람 부는 져녁>, <천치(天痴)? 천재(天才)?>, <김탄실(金彈實)과 그 아들>, <외로움>, <해바라기> 등 전영택의 대표 단편을 담았다. 그는 일제 강점기에 배제된 주체들의 비극적 삶을 포착해 식민지 조선에서 형성된 부정적 근대의 진상을 그려냈다. 또한 냉정한 시선으로 과감한 생략과 감정을 배제한 서술로 한국 단편소설의 발전에도 기여했다.


☑ 출판사 책 소개

전영택의 초기 작품은 사회적으로 소외된 약소자(minority)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형상화했다. 그는 삶의 구체적 실상을 약소자를 통해 그려냄으로써 사회의 모순을 사실적으로 인식하려고 노력했는데, 이는 이광수가 뛰어난 재능을 가진 인물이나 지식인을 내세워 계몽주의적 소설을 쓴 것과 대비된다. 초기의 주목할 만한 작품으로 <화수분>·<바람 부는 져녁>·<천치? 천재?>를 꼽을 수 있다.

전영택의 대표작 <화수분>(1925)은 행랑살이를 하는 가난한 가족의 비극적 운명을 그린 소설이다. 주인공 아범 ‘화소분’은 원래 농사를 지으며 남부럽지 않게 살았지만, 차차 가세가 기울어 남의 집 행랑살이를 하는 처지에 내몰리게 되었다. 어느 날 화소분이 형의 농사일을 도우러 양평에 갔다가 몸살로 몸져누운 사이에, 화소분의 아내는 어린 딸 옥분을 업고 그를 만나러 엄동설한에 길을 떠난다. 화소분도 마침 가족을 만나러 길을 나섰다가, 소나무 아래에서 상봉했다. 하지만 어린 것을 가운데 두고 껴안은 채 밤을 지샐 수밖에 없어 결국 추위에 얼어 죽고 만다. 다만, 딸 옥분이만 화소분 부부가 꼭 껴안은 사이에서 추위를 견뎌내고 살아남으로써 생명의 강렬함을 아프게 그려냈다.

<바람 부는 져녁>(1925)은 도시 공간 속에서 개인화되고 있는 주체를 형상화하고 있다. 서울에서 공부하고 있는 정옥은 고향 집에서 집안일을 봐주던 괴팍스러운 할멈을 서울로 올려 보낸다는 전보를 받고 곤란해한다. 어떤 의미에서 할멈은 사회적 질서를 교란하는 문제적 인물이며, 정상적 삶을 살아가려는 정옥을 위협하는 ‘타자’다. 정옥은 이런 할멈이 끔찍하고 무섭게 느껴져서 어떻게든 떨쳐버리려고만 한다. 할멈에 대한 연민만으로 할멈을 책임질 수 없다고 생각한 정옥은, 결국 할멈을 사직골에 버려두고 혼자 집으로 귀가한다. 오빠가 보낸 편지의 구절 “하나님서 내려다보신다”를 읽으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천치(天痴)? 천재(天才)?>(1919)는 근대적 제도 혹은 근대 교육이 어떻게 한 소년을 파멸로 몰아갔는가를 보여준다. 소설 속 화자인 ‘나’는 중화군에 있는 득영학교에 교사로 부임해 주변 사람들에게 ‘천치’로 취급받는 열세 살 난 칠성을 가르치게 된다. 그런데 ‘나’는 관찰을 통해 칠성이 재능을 지닌 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칠성은 마치 자연의 아이나 시인인 것처럼 “玉을 玉판에 굴니는” 듯 고운 소리로 노래를 불러 ‘나’를 놀라게 하기도 하고, “젓지 안코 가는 배”를 만드는 천재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하지만 칠성은 호기심이 많아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만년필을 망쳐 놓기도 하고, 같이 공부하는 학생의 시계를 훔쳐 분해해 버리기도 한다. 결국 ‘나’에게 야단을 크게 맞은 칠성은 평양을 가겠다고 길을 나섰다가 길가에서 얼어 죽고 만다.

1930년대에 들어서 미국 유학과 목회 활동으로 인해 소설 발표를 중단하다시피 한 전영택이 창작을 본격적으로 재개한 것은 1955년경부터다. 이 시기에 발표한 주목할 만한 작품으로는 <김탄실(金彈實)과 그 아들>·<외로움>·<해바라기> 등을 꼽을 수 있다.

<김탄실과 그 아들>(1955)은 전영택이 한국전쟁 기간 중 일본에 체류하면서 겪은 사건을 소설화하고 있다. 김탄실은 한국 최초의 여성 문인 김명순(金明淳, 1896∼1951)의 필명인데, 이 작품은 해방 이후 행방이 묘연했던 김명순이 일본에서 ‘정신이상자’가 되어 살고 있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외로움>(1955)은 소설 형식을 빌려 개인사를 기록한 작품이다. 전영택은 미국 퍼시픽 신학대학을 수료하고 귀국한 후 황해도 봉산 감리교회 목사로 재직한 바 있는데, 이때의 아픔을 이 작품 속에서 그리고 있다. 그곳에서 전영택은 아내가 죽을 뻔한 일도 겪었고, 아들을 잃었으며, 전도 부인의 모함으로 목사직을 그만두어야 하는 처지에 내몰리기도 했다. 이 소설은 전영택 개인사를 서술함과 동시에 1930년대 한국 감리교 교단의 부조리한 운영 방식과 교단 내의 모순을 간접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해바라기>(1958)는 소품 같은 작품이지만, 노년의 곰보 할머니와 오 영감이 갈등을 극복하고 화해에 이르는 과정이 감동적으로 그려져 있다. 장충단 공원 방공호에 홀로 살고 있는 곰보 할머니는 터줏대감·해님 상제·달님 마마를 모시며 ‘샤머니즘’적 삶을 산다. 그런데 곰보 할머니가 사는 곳 앞에 오 영감의 판잣집이 들어서면서 둘은 앙숙이 된다. 그러다 오 영감의 아들 오 소위가 동해안 경비를 하다가 폭풍을 만나 행방불명된 것이 계기가 되어 둘은 화해한다. 곰보 할머니의 아들은 학병으로 끌려가 뼛가루로 돌아왔는데, 이러한 상처가 떠올라 오 영감을 진심으로 위로하자 둘은 서로 부둥켜안고 공감의 눈물을 흘리게 된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진심으로 느낄 때,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는 사실을 이 소설을 감동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 책 속으로

화소분은 양근셔 오정이 거이 되여서 나서 해 저갈 즈음해셔 백 리를 거이 와서 엇든 놉흔 고개를 올나섯다. 칼날 갓흔 바람이 을 친다. 그는 고개를 숙여 압흘 내려다보다가 소나무 밋헤 히무르한 사람의 모양을 보앗다. 그것슬 곳 달녀가 보앗다. 가본즉 그거슨 옥분과 그의 어머니다. 나무 밋 눈 우에 나무가지를 고, 어린것 업는 홋누덕이를 쓰고 한으로 어린거슬  싸가지고 옹크리고 고 잇다. 화소분은 왁 달녀들어 안엇다. 어멈은 눈을 스나 말은 못한다. 화소분도 말을 못한다. 어린거슬 가운데 두고 그냥 안고 밤을 지낸 모양이다.

- <화수분>


“엇더카고 왓소?”

“사직골 가서 두리번두리번할  휙 도라서 왓지.”

할멈은 갓다 버리고 와서 뎡옥은 마음에 죄숑스러운 생각이 만코 큰 죄나 저즐너노은 것 갓해서 공연이 가삼이 술넝거리고 마음이 편치 못하든 터에 오라버니 편지에 ― ‘하나님서 내려다보신다’

하는 구졀에 니르러서는 벽력이 내리는 듯이 속이 직하고 졍신이 앗득하엿다.

- <바람 부는 저녁>



느즌 가을 夕陽이라. 하날은 말고 새소리 하나 아니 들니고 四方이 고요한대 누가 고흔 목소리로 챵가를 부르는 소래가 들니더이다. 그 소래는  내가 열닐곱 살 된 해 녀름에 평양 사랑 고을이라는 데 가슬  녑헷 방에서 들니든 엇든 어린 女學生의 찬미 소래 갓더이다. 그야말노 玉을 玉판에 굴니는 소래 갓더이다. 놀냇습니다. 그 소래의 主人이 七星인 줄을 엇지 아라스릿가. 七星의 목소래가 그러케 죠흔 줄은 몰낫습니다.

- <천치(天痴)? 천재(天才)>


K의 말에 의하면 영순은 결국 아들과 같이 차를 타고 청산(靑山)에 있는 도립 뇌병원으로 갔는데, 가면서 닭을 잘 보아달라고 부탁을 하고 자기 집이나 닭의 우리를 몇 번 돌아보면서 차를 타고 갔다고 한다.

- <김탄실(金彈實)과 그 아들>

그는 이 봉산에 온 뒤부터는 차를 타기만 하면 행여나 아는 사람이나 있을까 해서 객차를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 전부 뒤지는 버릇이 있었다. 어떤 때는 아는 친구를 만나고 어떤 때는 아무도 못 만나도 반드시 뒤져보고야 마는 것이었다. 아무도 못 만난 때는 맥이 빠져 돌아온다.

- <외로움>


“그렇게 울기만 하구 굶어서 늙은신 이가 견디겠오. 이걸 좀 한 술 뜨시우.”

“아이구 고마워라.”

오 영감은 너무 느껴워서 먹지를 못한다. 서로 멍하니 바라보다가 두 늙은이는 달려들어 서로 붙들고 울기를 시작했다. 두 늙은이는 울면서 울음 섞인 목소리로 서로 제 사정을 이야기하면서 밤을 밝혔다.

- <해바라기>


☑ 지은이 소개

전영택(田榮澤, 1894~1968)

전영택은 평양 사창(社倉)골에서 개화파 지식인 전석영과 강순애의 4남 4녀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1908년 대성중학에 입학해 도산 안창호의 영향을 받았으나 가정 형편으로 인해 3학년 때 중퇴했다. 이후 작은형 선택의 영향으로 기독교를 접했고, 한국 최초의 감리교 목사이자 평양 남산현 교회의 설립자인 김창식 목사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1918년, 가우처(J. F. Goucher) 목사가 선교를 위해 제공하는 장학금을 받고 일본으로 건너가 아오야마 학원(靑山學院) 문학부를 마치고, 신학부에 들어갔다. 일본 유학 시절 김동인, 주요한, 김환, 최승만과 교우하게 되어, 이들과 함께 1919년 2월에 최초의 종합 문예 동인지 ≪창조≫의 창간에 참여했다. ≪창조≫ 창간호에 단편 <혜선(惠善)의 사(死)>를 발표해 작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했고, 이후 <천치? 천재?>(1919), <운명>(1919), <독약을 마시는 여인>(1921), <화수분>(1925), <백련과 홍련>(1925), <후회>(1929) 등 활발하게 작품을 발표했다.

전영택은 1923년 아오야마 학원 신학부를 졸업하고 서울 감리교 신학대학 교수가 되었으며, 1927년에는 아현교회 목사로 취임한 이후 목회 활동에 전념했다. 그는 흥사단과 연계를 맺고 있는 계몽적 독립운동 단체인 수양동우회에서 활동하는 등 민족운동에도 깊이 개입했다. 하지만 1937년 일제가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181명의 지식인을 구속한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고초를 겪은 후 현제명·홍난파 등과 친일 단체인 ‘대동민우회’에 가입했다. 1944년에는 평양 신리교회 재직 중 설교 사건으로 한때 구금되기도 했다.

해방 후에는 조선민주당 문교부장, 문교부 편수관, 국립맹아학교 교장, 중앙신학교 교수를 역임했다. 한국전쟁 중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 ≪한국복음신문≫ 주간을 지내다 1953년 귀국했다. 이 시기의 경험은 여성 작가 김명순에 대한 독특한 기록 소설인 <김탄실과 그 아들>(1955)에 잘 나타나 있다. 귀국 후 기독교서회 편집국장으로 있으면서, 다시 활발한 작품 활동을 전개해 <외로움>(1955), <집>(1957), <해바라기>(1959), <크리스마스 전야의 풍경>(1960) 등을 발표했다. 1961년에는 한국문인협회 초대 이사장으로 취임해 근대문학 초기의 작가적 위상이 복원되었으며, 서울시 문화상(1961)과 대한민국 문화포상 대통령장(1963)을 수상했다.

그가 남긴 저서로는 창작집 ≪생명의 봄≫(1926) ≪하늘을 바라보는 여인≫(1958)·≪전영택 창작선집≫(1965)이 있고, 논설집으로 ≪생명(生命)의 개조(改造)≫(1926), 전기로≪유관순전≫(1953), 수필집으로는 ≪의(義)의 태양(太陽)≫(1955) 등이 있다.


☑ 엮은이 소개

오창은

200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에 당선되어 문학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중앙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중앙대학교 대학원에서 <한국 도시소설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행동하는 공부, 실천하는 지식’을 위해 ‘지행네트워크(www.jihaeng.net)’를 만들어 인문적 실천을 위해 노력 중이다. 현재 중앙대학교 교양학부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평론집 ≪비평의 모험≫이 있고, 식민지 시대의 잊힌 작가인 이익상의 작품을 복원한 ≪그믐날≫을 엮었으며, 같이 지은 책으로는 ≪나는 순응주의자가 아닙니다≫ 등이 있다. 1960∼1970년대 한국 근대화 과정에서 인간의 감수성이 어떻게 변했는가를 문학작품을 통해 재구성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 목차

화수분

바람 부는 져녁

천치(天痴)? 천재(天才)?

김탄실(金彈實)과 그 아들

외로움

해바라기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2015년 5월 18일 월요일

김성한 작품집


도서명 : 김성한 작품집 
지은이 : 김성한
엮은이 : 김학균
분야 : 한국 근현대 소설
출간일 : 2010년 3월 15일
ISBN :  9788964063040
가격 : 12000원
규격 : 148 * 210 mm    제본 : 양장본    쪽 : 198쪽




☑ 책 소개

『김성한 작품집』은 「지식을 만드는 지식 고전선집」 시리즈로, 사라져 가는 한국 근현대 소설 100종의 원본을 담았다. 한국문학평론가협회에서 작가 100명을 엄선하고 각각의 작가에 대해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를 엮은이로 추천했다. 또한 엮은이는 직접 작품을 선정하고 원전을 찾아냈으며 해설과 주석을 덧붙였다.


☑ 책 속으로

가난한 자 괴로워하는 자를 구하는 것이 크리스도의 본의일진대, 선천적으로 결정된 운명의 밧줄에 묶여서, 래틴말을 배우지 못한 그들이 쉬운 자기 말로 복음의 혜택을 받는 것이 어째서 사형을 받아야만 하는 극악무도한 짓이란 말이냐? 성찬의 빵과 포도주는 크리스도의 분신이니 신성하다지마는 아무리 보아도 빵이요 먹어도 빵이다. 포도주 역시 다를 것이 없다. 말짱한 정신으로는 거짓이 아니고야 어찌 인정할 도리가 있을 것이냐? 무슨 까닭에 벽을 문이라고 내미는 것이냐? 절대적으로 보면 같은 수평선상에 서 있는 사람이 제멋대로 꾸며낸 것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할 근거가 어디 있단 말이냐?
바비도는 울화가 치밀었다.
-<바비도>


☑ 지은이 소개

저자 김성한(金聲翰)은 1919년 함경남도 풍산에서 출생했다. 그는 1944년 일본 동경제대를 중퇴했으며, 195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무명로(無明路)>가 당선되면서 문단에 등단한다. 1955년 사상계사에 입사하면서 그의 문학은 <사상계>와 깊은 인연을 맺게 된다. 그는 1957년까지 <사상계> 주간을 맡다가 1958년 <동아일보>에 입사해 편집국장(1973), 논설주간(1977)을 맡았다. 그의 문학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사상계>는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한다. 김성한은 1955년 5월호부터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게 되었기 때문에, 창간호의 멤버는 아니지만, <사상계>에 깊이 관여하고 있었다. <사상계>는 2만여 명의 정기 구독자를 포함, 당시로서는 엄청난 부수인 7만여 부까지 발행하기도 했다. 당시 조선일보의 독자가 10만 명임을 감안하면 <사상계>의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다. <사상계>는 1952년 창간된 잡지로 월남한 서북 지역 출신의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제작되면서 뚜렷한 이념성을 지니고 있었다.
1950년대 <사상계>의 편집위원 29명 가운데 21명이 북한 출신이며, 대부분이 서북 지역 출신이었다. 그중에서도 장준하는 <사상계>를 창간한 핵심 인물이다. 그는 1918년 평북 의주 출생으로 부친 장석인은 기독교 목사였다. 열네 살에 평양 숭실중학교에 입학했다가 부친이 교목으로 부임한 평북 선천 신성중학교로 전학해 1937년에 졸업했다. 졸업 후 정주 신안소학교 교사로 3년간 근무하다가 1940년 도일해 1942년 일본신학교에 입학했다. 여기서 전택부, 문익환 등과 공부했는데 전택부는 후에 <사상계> 편집위원으로 참여하게 된다. 1944년 학병으로 끌려가게 된 장준하는 일본군을 탈출해서 김준엽 등과 함께 광복군 훈련반에 들어갔다. 광복 후 임시정부 요인들과 함께 귀국해 김구의 비서로 있다가 1949년 한국신학대학에 편입해서 학병 때문에 중단했던 학업을 마친다. <사상계>가 인지도가 없었던 초기에 장준하는 개인적인 친분을 이용해 필자들을 선정하게 되었으며, 그것은 북한 출신의 지식인들이 <사상계>에 참여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김성한은 서북 지역 출신은 아니지만, 북한 출신이라는 점에서 이들과 지역적 연고를 같이하고 있다.
<사상계>의 인맥은 사상적인 면에서도 뚜렷한 공통점으로 이어진다. 김성한 소설에서 지식인들의 타락을 경고하고, 지식인들의 적극적인 사회 참여를 독려한 것은 <사상계>의 정신을 이어받고 있다. 서북 지역은 기독교를 일찍부터 받아들였고, 이 시기 기독교는 민족주의와 융합해 사립학교 설립을 주도했다. 당시 평북 선천의 신성학교와 평양의 숭실학교는 미국 북장로회 계통의 미션 학교였다. 평북 선천의 신성학교 출신인 장준하와 많은 이 지역 출신 인맥 역시 기독교 정신주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이것은 <사상계> 발간 초기부터 드러나고 있다. 이런 기독교 정신주의는 김성한 문학이 초기부터 교회의 타락이나 종교적인 모티프를 줄기차게 문제 삼은 것과 연관되어 있다. 특히 1956년 사상계사가 제정한 동인문학상의 첫 회 수상작으로 김성한의 <바비도>가 선정된 것은 주목할 만하다. 심사위원들은 ‘이념’을 주목했고, 심사위원 중 한 명이었던 주요한은 “이 작품은 예술적인 동시에 현대 우리 사회에게 주는 한 개의 경종”이라고 평가했다. 주요한은 평양 기독교계의 목사 집안 출신이면서 광복 후에는 흥사단에 깊이 관여한 바 있고, 이 작품을 자유당의 정치적 전횡에 대한 비판으로 이해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서북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사상계>의 인맥은 기독교 정신주의로 이어지면서 김성한의 문학을 이해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1955년 김성한이 <사상계>의 편집주간이 되면서 편집 방향은 민족 통일 문제를 지상 과제로 삼았고, 민주 사상의 함양과 경제 발전, 새로운 문화의 창조, 식민지 정신의 청산을 내걸었다. 여기서 새로운 문화의 창조, 식민지 지배로 인해 비굴해진 민족성의 청산은 김성한 소설의 주제와도 일맥상통하고 있다. 이 시기부터 <사상계>는 비평과 소설을 다수 게재하면서 문학적 성격이 강화된다. <사상계>가 신인들의 등단을 주도하고 문학적 성격이 강화된 것은 김성한 이후였으며, 김성한에 이어 편집주간이 된 안병욱에 의해 더욱 활발해진다. 김성한은 <바비도>, <제우스의 자살>(이후 <개구리>로 개제), <폭소>, <귀환> 네 편을 <사상계>에 게재한다. 김성한 소설이 친일파나 사이비 지식인 등 부정적인 인물들을 형상화한 것은 ‘부정을 위한 부정’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기 위한 ‘건설’을 염두에 두었다는 것은 당시 장준하가 “오직 건설적 목적과 방안을 가진 정당한 비판만이 후진 정체 사회를 문명사회로 발전시킬 수 있다”고 말한 것과 연결되고 있다. 이처럼 김성한 소설은 <사상계>의 인맥과 편집 방향, 기독교 정신주의와 밀접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1957년 <사상계>를 퇴사한 김성한은 1958년 <동아일보>에 입사해 1981년까지 근무하면서 시대의 담론을 주도하는 언론인으로 활동한다. 그는 동아일보에 근무하는 동안에 영국 맨체스터 대학 사학과에서 수학하면서 역사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역사와 사회에 대해 항상 주목했다. 1967년에는 장편 삼부작 ≪이성계≫를 발간했고, 이후에는 ≪이마≫, ≪요하≫등의 역사 장편소설을 다수 발표한다. 일부 연구자들은 장편 ≪이성계≫에 그의 1950년대 단편소설에서 다룬 주제들이 통합되어 있음을 밝히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초기 단편소설에 주목하고 있다. 그는 1956년 <바비도>로 동인문학상을 수상했고, 1958년에는 <오분간>으로 제5회 아세아자유문학상을, 1987년 ≪임진왜란≫을 <동아일보>에 연재하던 중에는 보관문화훈장을 받은 바 있다.


☑ 엮은이 소개

해설
지은이에 대해

自由人(자유인)
暗夜行(암야행)
續·暗夜行(속 암야행)
골짜구니의 靜寂(정적)
五分間(오분간)
바비도
極限(극한)

엮은이에 대해


☑ 목차

천맥(天脈)

해설

지은이에 대해

엮은이에 대해

2015년 5월 15일 금요일

초판본 천맥


도서명 : 초판본 천맥
지은이 : 최정희
엮은이 : 추선진
분야 : 한국 근현대 소설
출간일 : 2012년 7월 30일
ISBN :  978-89-6680-489-4 00810
가격 : 16000원
규격 : A5    제본 : 무선제본    쪽 : 141쪽



☑ 책 소개

<천맥>은 <지맥>, <인맥>과 함께 ‘삼맥(三脈)’이라 불리며, 최정희의 작품 활동 초기에 발표된 대표작 중 하나다. 개인의 욕망, “유일의 즐거움”인 사랑을 빼앗는 현실에 대한 비판 의식을 작품으로 형상화해 냈다. 최정희는 당시로서는 보기 힘든 섬세한 심리 묘사를 통해 여성 문제를 형상화했으며 자기 체험을 토대로 한 자전적인 내용을 그리기도 했다. 윤리가 개인을 억압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문제를 던지는 최정희의 개성 있는 문학 세계를 보여 준다.


☑ 출판사 책 소개

‘삼맥(三脈)’이라 불리는 <천맥>(1941), <지맥(地脈)>(1939), <인맥(人脈)>(1940)은 최정희의 대표작이다.
최정희는 서사 속에서 당시 신여성이 처한 상황을 비판적으로 재현해 내면서 동시에 그의 내면을 섬세하게 표출해낸다. 내면 의식에 대한 감각적인 서술이 최정희 작품의 장점이라는 데에는 많은 연구자들이 동의한다. <지맥>, <인맥>, <천맥>은 이러한 최정희 작품의 장점이 잘 드러나고 있는 작품이다. 세 작품에서 보이는 ‘결혼 제도를 넘어선 연애’ 모티브는 작가의 체험에서 추출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교육을 받느라 혼기가 늦어진 ‘신여성’들의 연애 상대는 아내 있는 남성인 경우가 많았다. 이로 인해 여러 가지 사회 문제들이 발생했는데 이를테면, 혼자 남은 여자들이 겪게 되는 생활고와 사생아 문제 등이다. 작품 속에 투영된 최정희의 삶은 개별적인 체험으로서의 특수성만이 아니라 당시 ‘신여성’들의 삶을 대변할 수 있는 보편성도 가진다. 이 작품의 주인공들은 당시 신여성들이 그러했듯이 ‘윤리’와 ‘사랑’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는 모습을 보인다. 특히 아이로 인해 주인공의 내적 갈등이 보다 극심해지는 양상을 보이는데, 이로 인해 논자들은 주인공이 사회 윤리를 긍정하게 되는지의 여부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다.


☑ 책 속으로

“선생님은 제 말을 못 알아들으십니다. 지금 제 하는 말슴은 애들 슬픔을 말하는 게 안얘요. 애들은 선생님 말슴과 같이 운명적이거니 하느님의 법규거니 하고 전보다 더 사랑하겠어요. 그런 자신두 지금 생기구 신념두 생겼어요. 그렇지만 그 외에두 세상엔 슬픈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란 말슴이얘요. 힘으루두 어찌할 수 없구 이론으루두 어찌할 수 없는… 전 여기 올 때까진 선생님 말슴을 좋겠느라구 약속할 떄까진 아무것두 몰랐어요. 진호만이 나아짐 아무 고통두 슬픔두 없을 줄 알었어요. 그랬는데…”
말을 채 마치지 못했다.
그 뒤에 남은 말은 해낼 용기가 없었다. 침믁이 계속되였다. 그래도 하늘은 여전히 높으고 구름이 흐르고 짱아는 날랐다.


☑ 지은이 소개

최정희(崔貞熙, 1906∼1990)
최정희는 1906년 함북 성진군 예동에서 태어났다. 1924년 상경하여 동덕여학교에 편입학, 다시 1925년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에 편입학해서 1928년 졸업했다. 같은 해 서울 중앙보육(中央保育)학교에 입학, 1929년 졸업한 후 경남 함안의 함안유치원 보모로 근무했다. 1930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 삼하(三河)유치원 보모로 일하면서, 유치진, 김동원 등이 있던 학생극예술좌(學生劇藝術座)에 참여했다. 1931년 일본에서 귀국, 종합지 ≪삼천리(三千里)≫에 입사했다. 같은 해 <정당한 스파이> 발표, 이후 <명일(明日)의 식대(食代)>(1932), <룸펜의 신경선>(1932) 등을 발표했다. 이 시기 작품들은 경향파 문학의 경향을 보인다. 1934년 프롤레타리아 예술동맹의 강제 해산 및 검거 사건에 연루되어 맹원도 아니면서 유일한 여성 작가로 전북 전주형무소에 수감됐다. 1935년 출옥 후 조선일보사에 입사했다.
1937년 ≪조광≫에 단편소설 <흉가>를 발표, 최정희 본인과 많은 최정희 문학 연구자들은 이 작품을 데뷔작으로 인정하고 있다. 이후 <산제>(1938), <지맥(地脈)>(1939), <인맥(人脈)>(1940), <천맥(天眽)>(1941) 등을 발표했다. 이 시기 작품들은 주로 여성 문제를 주제로 하여 사회 비판 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1939년 연출가인 남편 김유영이 사망했다. 김유영과는 1931년 결혼 후, 장남 익조를 얻었다. 김유영 사망 후 시인 김동환과 결혼했다. 1942년에는 <장미의 집>, <야국초(野菊抄)>등의 친일적인 작품을 쓰기도 했다. 1947년 <점례>, <풍류 잡히는 마을>을 발표했다. 1950년 전쟁 중에 남편 김동환이 납북되었다. 1951년 종군작가단에서 종군기자로 활약했다. 1954년에는 서울시 문화위원에 위촉되었다. 1960년 발표한 ≪인간사(人間史)≫에서는 일제 말기에서 4·19혁명에 이르기까지의 격동기를 살아간 지식인의 모습을 비판적으로 그리고 있다. 1969년 한국여류문학인협회장에, 1970년 예술원 회원에 선임되었다. 조연현(趙演鉉) 문학상 운영위원, 한국소설가협회 대표위원으로도 활동했다.
단편집으로는 ≪천맥(天脈)≫(1948), ≪풍류 잡히는 마을≫(1949), ≪바람 속에서≫(1955), ≪찬란한 대낮≫(1976), ≪탑돌이≫(1976) 등이 있다. 장편소설로는 ≪녹색의 문≫(1954), ≪별을 헤는 소녀들≫(1962) 등이 있고, 그 외에 동화집, 수필집 등이 있다. 1958년 장편소설 ≪인생찬가≫로 제8회 서울시문화상을, 1964년 장편소설 ≪인간사≫ 로 제1회 여류문학상을 받았다. 대한민국예술원상(1972), 3·1문화상(1982)을 받았다. 1990년 노환으로 정릉 자택에서 별세했다. 딸인 지원과 채원은 소설가이며, 김지원은 <인맥>에 글을 덧대 최정희 사후 장편소설 ≪소금의 시간≫(1996)을 출간했다.


☑ 엮은이 소개

추선진
추선진(秋善眞)은 1977년 부산에서 출생했다. 문학에 매료되어 청소년기를 보내고, 1995년 경희대 국어국문학과에 입학, 1999년 졸업했다. 같은 해 동 대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 진학, 2007년 문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한민족 문화권의 문학 1·2≫, ≪한국현대문학100년 대표소설100선≫, ≪문학비평용어사전≫ 집필에 참여했다. 현재 경희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 목차

천맥(天脈)

해설

지은이에 대해

엮은이에 대해


2015년 5월 8일 금요일

초판본 임노월 단편집


도서명 : 초판본 임노월 단편집
지은이 : 임노월
엮은이 : 임정연
분야 : 한국 근현대 소설
출간일 : 2012년 3월 26일
ISBN :  978-89-6680-304-0 00810
가격 : 16000원
규격 : A5    제본 : 무선제본    쪽 : 213쪽




☑ 책 소개

오스카 와일드의 예술지상론과 유미주의를 자신의 문학적 신념으로 수용하고 일관되게 실천한 유일한 작가인 임노월의 작품들은, 우리 문학사가 리얼리즘의 문학적 전통을 확립하던 시기로 주목해 왔던 1920년대 문학계가 실상은 낯설고도 불온한 사상들에 뜨겁게 매료돼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


☑ 출판사 책 소개

임노월이 작품활동을 했던 1920년대 전반기는 시대정신으로서의 ‘근대’가 지배했던 전형적인 시기로 근대사에서뿐만 아니라 근대문학사에서도 특기할 만한 시기다. 무엇보다 이 시기는 연애의 열병에 달떠 ‘연애를 연애’하는 낭만의 시대였고 예술지상주의의 기치를 높였던 황홀한 열정의 시대였다.
1920년대 조선에서는 ‘연애’라는 근대적 형식의 사랑이 청춘의 감각을 대변하며 대중적인 유행어가 되기에 이르렀고, 나아가 조선 문단은 유미주의, 아나키즘, 다다이즘과 같은 세기말적 사상과 전위적인 문예사조의 세례를 받아 예술을 향한 열정에 도취되어 있었다. 구습(舊習)의 굴레를 벗고 새로운 가치를 모색하는 것이 절체절명의 명제였던 당시 조선의 지식인 사회에서 ‘자유연애’와 ‘예술’은 낡은 관념을 대체하는 낯설고도 새로운, 그러나 매혹적인 근대의 기호였던 것이다. 이때 일본 유학을 통해 오스카 와일드의 사상과 접하게 된 조선의 지식인들은 그 사상의 새로움에 열광했고, 와일드를 유미주의와 쾌락주의, 죽음을 찬미하는 퇴폐적인 작가로, 개인주의와 예술지상주의의 상징적 존재로 수용하고자 했다. 이 가운데 임노월은 와일드의 예술지상론을 자신의 문학적 신념으로 수용하고 일관되게 실천한 유일한 작가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예술론을 죽음을 불사한 연애 서사를 통해 절대 신성의 경지에서 추구하고 옹호하려 했던 연애지상주의 작가이기도 했다.
임노월이 발표한 7편의 소설은 모두 당시 유행하던 남녀의 연애담을 표방하고 있다. 특히 1920년 ≪매일신보≫에 차례로 연재된 <춘희>, <위선자>, <예술가의 둔세>는 예술가의 꿈을 꾸던 남녀의 사랑이 현실의 장애 앞에 좌초되는 20년대 연애 서사의 공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즉 예술가 혹은 예술가 지망생, 조혼한 남성과 미혼 여성, 배신과 도피 혹은 죽음이라는 비극적 연애를 기본적인 서사 구조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소설들은 ‘비애(悲哀)’라는 비극적 정조를 심미화하고자 했던 임노월 문학관의 적극적 실천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임노월에게 ‘비애’는 단순히 고통스럽고 슬픈, 부정적 정서가 아니라 ‘공포와 비통(悲痛)의 위대한 미(美)’를 구현하는 심미적 경험이었다. 따라서 이들 서사를 지배하는 것은 인물이나 플롯이 아니라 궁구(窮究)의 절대미로서의 예술에 대한 격정적 찬미와 실패한, 혹은 실패할 연애에 대한 감상적 영탄이라 할 수 있다.

<춘희>는 ‘경성여자미술학교’ 입학을 앞둔 예비 예술가인 춘희가 유부남 병선과의 사랑을 끝내 이루지 못하고 당시 유행하던 ‘감기’로 죽게 된다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이들의 사랑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감기’라는 물리적 요인이라기보다 조혼이라는 악습과 그로부터 비롯된 내면의 갈등과 고통이다. 현실에 패배하고 말 사랑에 대한 예감, 이 선험적 비관이 결국 사랑을 비극적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위선자>는 예술적 재능을 가진 이창호와 미술학교 예비 입학생 순애의 사랑과 배신의 스토리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도 순애와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 이혼까지 불사하려는 창호의 순정이 재물에 이끌린 순애의 배신으로 짓밟힌다는 서사 자체보다는 연애의 신성성과 유일성이 훼손된 데 대한 창호의 고뇌와 순애의 참회라는 비탄의 정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예술가의 둔세(遁世)>에 등장하는 병호와 춘희도 각각 경성동양미술학교와 경성여자학원 음악과에 재학 중인 예비 예술가로서, 춘희가 병호의 초상화 모델이 되면서 연애 감정을 나누게 되나 끝내 유부남과의 사랑이 사회에서 지탄의 대상이 되자 새로운 세계로 사랑의 도피 길에 오른다.
이 소설들에서 우리는 좌초된 사랑의 비극성을 예찬하는 임노월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임노월은 예술이야말로 인간에게 비애의 미를 전달해 개인의 인격적 성숙을 이끌 수 있는 절대적 경지라고 했다. 여기서 연애의 비극성은 예술의 비애와 동일시되고 있다. 그는 <예술가의 둔세>에서 춘희의 초상화가 구현하는 예술의 비밀과 춘희와의 ‘로맨스’라는 비밀을 동일한 층위에 놓음으로써 이를 확인시켜 주고 있다. ‘인생의 비밀’을 담보한 새로운 가치로서의 예술과 둘만의 은밀한 비밀인 연애가 유비 관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병치되고 있는 것이다.
임노월은 ‘비애’라는 극단의 심미성을 ‘죽음’에 이르는 치명적 연애를 통해 추구하고자 했다. 이제 연애는 슬픔과 좌절을 넘어 치명상(致命傷)을 남긴다.
임노월에게 죽음은 구극(究極)의 미(美)를 맛볼 수 있는 감미로운 경험이자 진정한 비애의 경지이기에 적극적인 찬미의 대상이 되고 있다. 또한 비애가 악마 혹은 마녀의 성정인 만큼 마녀는 비애로부터 ‘절대고귀의 향락’을 가르쳐주고, ‘무한한 신비와 영원’, 즉 죽음으로 이끄는 매혹적인 존재로 이해된다.(<불멸(不滅)의 상징(象徵)>, ≪개벽≫, 1922. 9)
1924년에 발표한 소설들−<지옥 찬미>를 비롯한 <악마의 사랑>, <악몽>, <처염>에서 임노월은 이와 같은 ‘악’의 세계를 찬미하면서 지옥과 ‘악마’의 존재를 탐색하고자 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이 소설들은 임노월의 악마주의(惡魔主義)적 예술관이 빚어낸 독특한 인물형과 플롯으로 우리 문학사에서 희소성을 띠는 경향의 작품이라 평할 만하다.
<지옥 찬미>는 ‘독약’을 먹고 정사(情死)를 한 연인이 죽음을 앞두고 나눈 대화를 통해 우화적으로 죽음을 예찬하고 지옥을 찬미하는 소품이다. 이에 따르면 가장 아름다운 미는 지옥에서만 구현될 수 있는 것이며, 악마는 행복이라는 ‘허영적 향락’으로 인간의 눈을 어둡게 하는 신(神)에 비해, 보다 본질적인 감정의 약동이 충만한 세계로 인도하는 존재다. 이럴 때 정사(情死)야말로 연애의 승리이자 예술의 승리이자 악마의 최후 승리가 아닐 수 없다.
<악마의 사랑>은 요부형 여성인 영희와 위험한 사랑에 빠진 ‘나’가 끝내 아내까지 죽이게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서 영희는 아내인 정순과 달리 “요염(妖艶)한 미모(美貌)와 살가운 표정(表情)과 상긋한 젓가슴의 향기(香氣)”를 지닌 유혹자이며, 그런 영희와의 연애는 그 자체로 “위험(危險)한 비극성(悲劇性)을 가진 애정(愛情)”이기에 더 자극적이고 치명적이다.
<악몽>의 S도 “요부적(妖婦的)의 기질(氣質)과 복잡(複雜)한 성미(性味)”, “풍염(豊艶)한 몸매”의 여성으로 “여러 남자(男子)에게 사랑을 밧겟다는 허영심(虛榮心)”까지 지닌 인물이다. 그러나 ‘나’는 S의 ‘창부적(娼婦的)’ 기질을 비난하면서도 동시에 그의 사랑을 온전히 소유할 수 없다는 데 대한 모멸감과 질투심으로 삼각관계에 놓여 있던 연적 H를 독살하게 된다.
<처염>에는 “여러 사내에게 귀염을 밧는” “매운 독(毒)” 같은 여자와 그녀에게 매혹되어 병을 얻고 악몽에 시달리다 죽음과 맞닥뜨리게 될 정도의 치명상을 입은 남자가 등장한다. 이때 ‘나’의 병은 “사악(邪惡)하고 생기(生氣)를 죽이는 그 무엇”을 가진 여자의 마력(魔力)에 빠진 대가다.
이처럼 임노월의 소설에서 ‘악’의 존재는 치명적 사랑에 빠진 ‘나’ 자신(<악마의 사랑>)이면서 나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여자(<처염>)인 동시에 연애 그 자체(<악몽>)이기도 하다. 일찍이 임노월은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이나 ≪살로메≫와 같은 오스카 와일드 작품의 영향을 받아 ‘죄악’과 같은 이단적인 행위도 ‘예술의 관능을 자극하는 수단’이 된다면 용인될 수 있다는 예술관을 펼쳐 보인 바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치명적이고 파괴적인 사랑은 ‘독(毒)’인 줄 알면서도 삼키는 ‘약(藥)’과 같다. 그리고 ‘나’의 정열을 자극하는 관능적 연애 대상인 팜므파탈형 여성들은 악의 세계를 체현한 존재들로 임노월이 추구했던 절대미의 현현일 뿐이다. 악마들의 행위인 연애는 그래서 더 매혹적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임노월에게 ‘악마’는 매혹을 은폐하는 조작된 이미지가 아니라 금기가 무엇인지, 금기 너머의 은밀한 욕망이 무엇인지를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수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책 속으로

그리고 形式的인 繁文縟禮도 因習 道德도 常識 구린 나은 合理主義도 다− 버셔나셔 宇宙의 本然性과 平凡 것을 意味잇게  神秘主義와 純雅 情緖 世界로 가야만 되겟다.

-<예술가의 둔세>


☑ 지은이 소개

임노월
임노월은 평안남도 진남포에서 300석 규모의 논과 2만여 평에 달하는 과수원을 보유한 지주 집안 출신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당시 대부분의 조선 지식인들이 유학을 통해 근대 문명의 세례를 경험했던 것처럼 임노월 역시 일본 와세다 대학 문과에서 현대미술사를 전공하고 도요(東洋)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면서 서구의 예술과 철학에 심취했다. 그리고 이때 접한 유미주의 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사상에 깊이 공명한 임노월은 1920년 1월 24일 <춘희>(≪매일신보≫)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장하여 1925년 <무제>(≪동아일보≫)를 끝으로 절필을 선언할 때까지 ≪매일신보≫와 ≪개벽≫, ≪영대≫ 등의 지면에 와일드의 예술관을 포함해 서양의 표현주의 예술론을 소개하고 소설 창작에 몰두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했다.
특히 1920년 ≪매일신보≫에 차례로 연재한 <춘희>(1. 24∼29), <위선자>(3. 2∼8), <예술가의 둔세>(3. 13∼18)와 같은 탐미적 성향의 소설들은 임노월의 예술지상주의 입장을 천명하는 문학적 실천의 증거라 할 만하다. 1921년 와일드의 학설을 소개할 만한 비평가로 ≪창조≫에 동인으로 참여하기도 했던 임노월은 1923년 7월 ≪개벽≫에 <사회주의와 예술: 신개인주의의 건설을 칭함>이라는 평론을 통해 “주관적 또는 개인적 미의식에서만 살 수 있는 개인주의의 세계”를 희망한다는 내용의 ‘신개인주의’를 제창한다.
이후 임노월은 ≪영대≫로 지면을 옮겨 창간호부터 1924년 12월 4호까지 편집인 겸 발행인을 맡으면서 ‘야영(夜影)’, ‘마경(魔境)’ 등 유미주의 색채가 짙은 필명을 사용해 <예술지상주의의 신자연관>(1924. 8), <미(美)의 절대성>(1924. 10), <예술과 계급>(1924. 12), <예술과 인격>(1925. 1) 등의 논문과 비평을 발표했다. <지옥 찬미>(≪동아일보≫,1924.5. 19, 26)를 비롯해, ≪영대≫에 실린 소설 <악마의 사랑>(1924. 9), <악몽>(1924. 10), <처염>(1924. 12) 등은 임노월의 악마주의 예술관을 확인할 수 있는 독특한 성격의 소설들이다.
1925년을 전후로 문단에서 예술지상주의가 쇠퇴하고 민족주의 문학과 사회주의 문학으로 이분화되면서 작가들이 서둘러 입장을 선회하던 때 임노월은 절필을 선언하고 홀연히 종적을 감춘다. 유미주의가 하나의 사조로 자리매김되지 못했던 우리 문학사의 진로에 비추어 볼 때 임노월의 짧은 문학 활동이 남긴 아쉬움은 크다. 그간 김명순, 김원주와의 잇단 스캔들과 여기서 파생된 불명예스런 소문들은 문학가로서 임노월의 이름을 지워왔고, 주류 문학의 권위에 도전한 대가로 문단 내 권력은 그 문학적 성취를 폄하해 왔던 것도 사실이다. 갈피리를 불고  ‘갈대 잎(蘆)’으로 배를 만들며 놀던 ‘달(月)’빛의 추억을 그리던 노월(蘆月)의 미감(美感)이 그의 생애와 오버랩되면서 비수(悲愁)를 불러일으키는 것도 이 때문인지 모른다. 그러나 최근 임노월이 유미주의라는 일관된 문학적 신념을 실천한 작가로 재평가됨으로써 문학사에서 그 지위가 복원되고 있음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 엮은이 소개

임정연
임정연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1920년대 연애담론 연구−지식인의 식민성을 중심으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 논문은 1920년대 ‘연애’의 공론화 과정을 추적하고 연애서사를 분석하여 ‘연애’가 배타적인 독서경험을 통해 구성된 지식인의 특권적 소통 형식이라는 점을 규명한 논문이다. 기존의 연구가 ‘연애’를 근대 체현의 특수한 양식이라는 측면에서 논의해 왔던 것에서 나아가, 연애를 식민 담론의 제도적 장치라는 관점에서 접근해 당시 유행했던 연애 열풍의 실체에 대한 성찰적 시각을 제공하고자 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임노월의 소설에서 팜므파탈형 여성을 향한 남성들의 욕망과 공포, 호기심과 거부라는 이중의 시선을 포착, ‘악마’라는 수사와 ‘관음’의 현장이 어떻게 대상에 대한 매혹을 은폐하고 있는지를 분석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지식인의 심리적 기저에 일관되게 작동하는 ‘고결함’이라는 특정한 관념에 주목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고결함(respectability)’이야말로 지식인의 정체성을 구성하고 보존하는 자기 존중의 원리라는 판단에 따라 근대, ‘지식과 문화’, ‘식민성’을 핵심적 의제로 하여 지식의 동향과 지식의 편성 과정을 탐구하는 방향으로 후속 연구를 진행시키고 있다. 이 가운데 ‘연애’와 ‘취미’ 담론은 근대문학의 지형도를 그리는 데 효과적인 밑그림을 제공해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논문으로는 <홍명희의 “임꺽정” 연구>, <1920년대 연애담론 연구−지식인의 식민성을 중심으로>, <근대성의 경험과 근대 극복의 신화−이광수 “사랑”론(論)>, <‘회복’의 서사와 ‘축제’의 현상학−황석영 “손님”론>, <‘환멸’의 시간과 낭만주의적 욕망의 탐구>, <1920년대 연애담론과 지식인의 식민성−‘아내’와 ‘기생’의 서사적 재현 방식을 중심으로>, <식민지 지식인의 연애와 일상>, <연애 불능에 관한 역설: 나르시시즘에서 타자성으로> 등이 있다.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경희대학교 등에서 강의하고 있다. 


☑ 목차

춘희(春姬)
위선자(僞善者)
예술가(藝術家)의 둔세(遁世)
지옥 찬미(地獄讚美)
악마(惡魔)의 사랑
악몽(惡夢)
처염(凄艶)

해설
지은이에 대해
엮은이에 대해

2015년 3월 31일 화요일

염상섭 작품집


도서명 : 염상섭 작품집
지은이 : 염상섭
엮은이 : 방민호 해설 : 권채린
분야 : 한국 / 소설
출간일 : 2009년 5월 15일
ISBN : 978-89-6228-226-9  00810
가격 : 12000원
규격 : 사륙판    제본 : 무선제본    쪽 : 148쪽



☑ 책 소개

치밀한 리얼리즘 기법으로 한국 현대소설의 문법을 개척한 염상섭. 그는 식민지 조선에 대한 냉철한 응시와 통찰을 통해 한국 근대 소설의 가능성을 탐색했다. 그동안 제대로 조명되지 못했던 단편들을 통해 그의 다양한 면모를 만나 본다.


☑ 출판사 책 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 ‘초판본 한국소설문학선집’은 점점 사라져 가는 원본을 재출간하겠다는 기획 의도에 따라 한국문학평론가협회에서 작가 100명을 엄선하고 각각의 작가에 대해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들을 엮은이로 추천했다. 엮은이는 직접 작품을 선정하고 원전을 찾아냈으며 해설과 주석을 덧붙였다.
각 작품들은 초판본을 수정 없이 그대로 타이핑해서 실었다. 초판본을 구하지 못한 작품은 원전에 가장 근접한 것을 사용했다. 저본에 실린 표기를 그대로 살렸고, 오기가 분명한 경우만 바로잡았다. 단, 띄어쓰기는 읽기 편하게 현대의 표기법에 맞춰 고쳤다.

횡보(橫步) 염상섭(廉想涉)은 한국 근대문학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작가로서, 신소설의 뒤를 이어 오늘날의 현대소설의 문법을 개척하고 완성했다고 평가받는다. 그는 픽션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바탕으로 근대적 인물과 플롯을 창조했으며, 식민지 조선에 대한 냉철한 응시와 통찰을 통해 한국 근대소설의 가능성을 탐색했던 작가였다. 
염상섭은 40여 년 동안 17편의 장편소설과 160여 편의 중·단편 소설을 발표했는데, 이러한 방대한 성과물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그의 문학은 몇 가지 특징으로 규정하기 어려울 만큼 복잡하고 다양한 층위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염상섭 연구가 가장 집중적으로 조명했던 부분은 이데올로기 면에서의 민족주의와 창작 방법상의 리얼리즘이었다. 국수적 독선에 치우치지 않는, 모든 세대와 계급을 아우르는 힘으로서의 민족주의적 전망과 치밀하고 총체적인 리얼리즘적 소설 기법은 염상섭 문학의 근간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삼대≫, ≪만세전≫과 같은 중·장편소설을 중심으로 많은 연구가 이루어진 점도 여기서 기인한다. 
이에 비해 염상섭의 단편에 대한 접근은 상대적으로 미미한 실정이다. 이 책에 실린 세 편의 단편소설은 민족주의와 리얼리즘 같은 염상섭 소설 세계에 대한 주된 평가에 비추어 볼 때 다소 낯선 작품들이지만, 바로 그러한 이유로 염상섭 문학이 지닌 다양한 면모를 가늠할 수 있는 유용한 사례가 될 수 있다. <표본실의 청개고리>는 염상섭의 데뷔작이자 초기 단편의 대표작으로 이미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지만, <검사국 대합실>과 <임종>은 구체적으로 논의되지 못한 작품들이다. 세 소설은 주제론적, 인식론적 차원에서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기 힘들 만큼 상이한 경향을 보이지만, 당대 소설적 풍토에선 이례적으로 ‘내면’에 대한 치밀하고 정치한 접근과 묘사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 책 속으로

·“네! 그러치 안습니. 네! …그것도, 바로 읽을 줄이나 알앗스면, 조켓지만, …假令 天地玄黃 하면, 하날 텬− 이러케 읽으니, 一大라 써노코 왜 하날 대 하지 안습니. 蒼穹(창궁)은 宇宙 間에, 唯一 最大하기 문에 蒼頡(창힐)이 가튼 偉人이, 一大라고 쓴 것이 아니왜니.  흙 야 할 것을 −디 하는 것도, 안 될 것이왜다. −란 무엇이왜니가. 흙이 아니요. 그리기에 흙 土 邊에 焉哉乎也(언재호야)라는 千字文의 왼  字인 이 也 字를 쓴 것이외다그려. 다시 말하자면 −는 흙이요,  宇宙 間에 最末位에 處한 故로 흙 土에 千字文의 最末字 되는 이 也 字를 쓴 것이왜다.”

·그러나, 오래비가 차저와서 질문을 하고 고소지 제긔한 것을 보면 사실 억울한지도 모를 것이다. ‘민중의 지도’니 ‘사회의 목탁’이니 ‘도덕상 방부제’니 하지만 신문 긔자 역시 사람이다. 귀신이 아닌 사람인 이상에는 남의 사행에 대하야 밋두리두리 분명히 알 수 업는 것은 물론이다. 더구나 그 녀자에게 마음을 두엇다가 을 일우지 못하고 제 분에 못 닉여서 그 녀자에게 욕을 보이랴고 긔자를 속여 그러한 보도를 하게 하얏는지 누가 알 일이냐? 신문이 아모리 권위가 잇다 하드라도 하여간 젊은 계집의 창창한 압길을 막아주는 것은―더구나 활자의 세력이라면 팟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고지 들을 만한 이지음의 민중을 상대로 하야 그러한 사실이 잇고 업고 간에 신문에 한 번 나기만 하면 그 시간이 벌서 그 녀자에게 대하야는 운명의 지침(指針)을 밧구어 저주는 날이다. 아모리 신문의 권위, 긔자의 신위가 소중하다드라도 일개인의 운명을 좌우하랴는 것은 무엇보다도 큰 죄악이다−이러한 지론을 가진 나로서는 이러한 문뎨를 당할 마다 량심상 가책을 늣기지 안흘 수 업섯다.

·‘…백 년을 산대도 가던 길을 반도 못 걷고 하던 일을 손에 붙든 채 쓰러지고 마는 것이 아닌가. 자기완성(自己完成)을 하고 떠나지는 못하는 것인데− 미완성인 대로 뒷대에 물려주고 가는 것이 인생이라면야 죽은 뒤에 남은 처자식이 어떻게 되던지 뒤를 깡그리 드리지 못했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죽음의 마지막 순간까지 다만 그것을 두 손으로 바당기고 막아내려는 것이 생물의 본능이나 좋게 말하자며는 생리적 조건이 허락하는 때까지의 자기주장(自己主張)이요, 자기의 존재를 잃지 않겠다는 무서운 단판 씨름이라 할 것이나, 그러나 자기완성을 허락지 않는 바에야 항복이 아니라 앞질러 선선히 길을 비켜서서 뒤에 물려주고 시사약귀(視死若歸)로 조용히 물러가라는 말인데… 그렇지만 ‘시사약귀’란 저마다 할 수 있는 노릇인가…


☑ 지은이 소개

염상섭(廉想涉, 1897. 8. 30∼1963. 3. 14)
염상섭(廉想涉, 1897. 8. 30∼1963. 3. 14)은 서울 종로구 필운동에서 염규환과 경주 김씨의 8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본관은 서원(瑞原), 본명은 상섭(尙燮), 호는 제월(霽月) 또는 횡보(橫步)다.
1906년까지 조부에게서 한문을 수학하다 11세 되던 1907년 관립사범부속보통학교에 입학한다. 그러나 학교에서 조선 역사를 가르치지 않고, 이토 히로부미의 서울 환영식에는 전체 학생을 참가시키고 고종 황제의 동적전 거행에는 반 대표만 보낸 것에 항의하여 3학년 겨울에 자퇴하고 보성소학교로 전학을 갔다. 1911년 보성중학에 입학하고 1912년 일본에 유학 가 아자부(麻布)중학, 세이가쿠인(聖學院)중학을 거쳐 1918년 교토(京都)부립 제2중학을 졸업했다. 1918년 게이오대학(慶應大學) 문과 예과에 입학하였으나 1학기 만에 병으로 자퇴했다. 
1919년 오사카에서 3·1운동 소식을 듣고 천왕사공원에서 거사하기로 했으나 피검되어 옥고를 치렀다. 옥중에서 <어째서 조선은 독립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라는 글을 써 아사히 신문사로 보냈다. 
1920년 동아일보 창간과 더불어 귀국해 정치부 기자가 되었다. 2∼4월 <폐허> 동인을 결성하고 7월에 <폐허> 1호를 출간했다. 남궁벽·황석우·김찬영·김억·오상순·민태원과 교류했다. 동아일보 퇴사 후 오산학교 교사로 재직했으나 이후 줄곧 신문·잡지 편집인으로 생활하면서 소설·평론에 전념했다. 1921년 <폐허> 2호를 간행하고 출세작 <표본실의 청개고리>를 발표했다. <동명>에서 기자로 활동하다가 1922년에는 <개성과 예술>, <지상선을 위하여>을 발표했고, ≪묘지(만세 전)≫를 <신생활> 7∼9월호에 연재했다. 1923년 변영로·오상순·황석우·송진우·최남선·진학문 등과 조선문인회를 결성했다. 1924년 <폐허 이후>를 간행하고, 시대일보 사회부장이 되었다. ≪묘지(만세 전)≫를 재연재·출간했고, 첫 창작집 ≪견우화≫를 냈다. 1926년 <신흥문학을 논하여 박영희군의 소론을 박함>으로 프로문학파에 도전했다. 1927년 <남충서>, <배울 것은 기교−일본문단잡관>, <사랑과 죄>를 동아일보에 기고했다. 1929년 33세의 나이로 김영옥과 결혼했고, 조선일보사 학예부장을 맡았다. 이듬해 조선일보에 ≪삼대≫를 연재하고 매일신보에 <무화과>를 연재했다. 1932년 김동인의 <발가락이 닮았다>로 논쟁이 벌어지고 <모델 보복전>을 <동광>에 보냈으나 실리지 않자 조선일보에 <소위 모델 문제>를 발표했다. 1934년 <모란꽃 필 때>, <무현금>을, 이듬해 <청춘항로>를 발표했다. 1936년 매일신보 정치부장, 만선일보 편집국장을 지냈다. 
1945년 해방을 맞이했고, 11월 신의주 학생 사건을 체험했다. 1946년 경향신문 창간 편집국장이 되었으나 이듬해 사퇴하고, 성균관대에 출강하며 창작에 전념했다. 1948년 ≪만세 전≫을 개작하여 출간했고, ≪삼대≫를 출간했다. 1949년 중간 노선을 견지한 채 문협에 참가했다. 1950년 6·25가 발발하자 12월에 이무영·윤백남과 해군에 입대했다. 이듬해 소령으로 임관하여 해군본부 정훈감실에서 편집과장으로 근무했다. 1952년 ≪취우≫를 조선일보에 연재하고 이듬해 해군 중령으로 제대했다. 1954년 서라벌 예술대학 학장으로 취임했다. 이후 <젊은 세대>, <대를 물려서>, ≪일대의 유업≫ 등을 발표했다. 1961년 가톨릭에 입교했고, 이듬해 12월 <횡보 문단 회상기>를 <사상계>에 발표했다. 1963년 67세로 성북동 자택에서 별세하여, 명동 천주교회에서 문단장을 치르고 방학동 천주교 묘지에 안장되었다. 생전에 서울시 문화상, 자유문학상, 예술원 공로상을 수상하고 대한민국 문화훈장을 받았다. 


☑ 엮은이 소개

방민호
방민호는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4년 ‘현실을 바라보는 세 개의 논리’로 제1회 창비신인평론상을 수상했다. 지은 책으로는 ≪비평의 도그마를 넘어≫, ≪납함 아래의 침묵≫, ≪행인의 독법≫, ≪감각과 언어의 크레바스≫ 등이 있으며, 엮은 책으로는 ≪채만식 중·단편 대표 소설 선집≫, ≪모던 수필≫, ≪구보 씨의 얼굴≫, ≪환상소설첩≫, ≪악마의 사랑≫ 등이 있다. 

권채린
해설을 쓴 권채린은 1974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현대문학을 공부하였고,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05년 중앙일보 중앙신인문학상에 문학평론 부문으로 등단한 이후 문학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 목차

해설 ······················11
지은이에 대해 ··················19

표본실(標本室)의 청(靑)개고리 ··········23
검사국 대합실(檢事局 待合室) ···········99
임종(臨終) ···················121

엮은이에 대해 ··················146



2015년 2월 17일 화요일

초판본 나혜석 단편집


도서명 : 초판본 나혜석 단편집
지은이 : 나혜석
엮은이 : 오형엽
분야 : 한국 근현대 소설
출간일 : 2011년 10월 27일
ISBN : 978-89-6406-803-8
가격 : 15,000원
규격 : A5    제본 : 소프트 커버    쪽 : 178쪽





200자 핵심요약

나혜석은 일련의 여성 소설을 통해 한국 근대 초창기의 파란만장한 삶의 체험에서 얻어진 주제 의식을 드러냈다. 가부장적인 구습에 대한 비판과 여성 해방에 대한 이상과 그 이상이 현실에 부딪쳐 좌절되거나 굴절되는 양상을 그려 내면서, 신여성의 생활적·심리적 위선을 포착한다.

 
☑ 책 소개

<경희>
근대문학 최초의 여성작가로서 나혜석의 활동은 1918년 ‘동경여자친목회’가 낸 <여자계>제2호에 단편소설 <경희>(1918. 3)를 발표하면서 시작된다. <경희>는 일본 유학 중에 귀국한 주인공 ‘경희’가 조선적 현실에서 신여성의 이상을 실현하는 가운데 겪는 갈등과 고뇌를 실감 있게 그린 작품이다. 소설의 구성에서 주인공을 둘러싸고 펼쳐지는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 및 사건의 전개가 긴밀하고 균형감이 있으며, 문제 설정이나 갈등 해결의 과정도 생생한 현실성을 획득하고 있다. 특히 생생한 대화체의 구사에서, 구여성으로 하여금 신여성의 각성된 삶의 방식에 동의하게 만드는 설득의 수사학을 자연스럽게 구사하고 있다. 또한 주인공의 이상을 주창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실의 관습에 부딪혀 안주하고자 하는 갈등과 고민까지 적나라하게 묘사하여, 계몽주의적이지만 이상주의에 빠지지 않는 균형감각을 보여준다.
<경희>의 주제 의식은 봉건사회의 가부장적 구습을 타파하고 여자에 대한 편견에 맞서 인간의 평등과 자율성을 확인하고 실천하는 근대적 주체의 확립이다. ‘경희’는 이러한 이상에 미치지 못하는 자신의 미약한 모습에 대해 반성하기도 하고, 주어진 관습의 편안함에 안주하려는 타협의 심리에 유혹당하기도 한다. 이처럼 주인공은 이상과 현실 사이의 모순과 괴리로 인한 번민을 겪지만,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는 좁은 길을 선택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회생(回生) 손녀(孫女)에게>
나혜석은 <여자계> 제3호에 <회생(回生) 손녀(孫女)에게>(1918. 9)를 발표한다. 이 작품은 화자가 중병에서 회복한 손녀에 대한 사랑과 감사를 애절하게 표현하면서, 폐병으로 투병하던 과거 애인에 대한 자책감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그린다. 이 부분은 작가 자신이 공부 때문에 간호하지 못해 폐병으로 사망했다고 생각하는, 첫사랑의 상대 최승구와의 실제 체험을 승화시키고 있다. 1인칭 주인공의 독백으로 일관하고 있어 소설적 구성이 허약하다는 단점이 있으나, 나이팅게일처럼 수많은 사람들을 치료해 주는 천사의 상(像)을 제시하여, 작가가 내면에 품은 민족에 대한 헌신적 열정을 확인할 수 있다.

<규원(閨怨)>
<신가정> 창간호에 발표한 <규원(閨怨)>(1921. 7)은 부잣집 양반의 딸인 한 여성이 남편 사망 이후 ‘장 주사’라는 남자의 농간과 시가 및 친가의 구습적인 편견에 내몰려 몰락해 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인물의 형상화나 사건의 전개보다는 주인공의 회고담을 통해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는 점에서 구성상의 한계를 가지고 있으나, 구여성의 불행한 생애를 통해 봉건적 관습과 편견에 대한 부정 의식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작품의 후반부가 <신가정> 제2호에 게재될 것으로 예고되어 있으나, 아쉽게도 미완성으로 남아 있다.

<원한(怨恨)>
<조선문단>에 발표한 <원한(怨恨)>(1926. 4)은 아버지가 친구와 술자리에서 맺은 혼약으로 철없고 어린 남편과 결혼한 한 여성의 수난사를 그린 작품이다. 주인공은 과부가 되고 시아버지의 친구에게 봉변을 당한 뒤 그의 첩이 되어 온갖 수모를 겪다가 급기야 가출하여 광주리장수로 전락하고 만다. 가부장제의 남성중심주의적 윤리 구조에 의해 일방적인 희생과 수탈을 강요받는 구여성의 전형적인 생애를 보여줌으로써 전통적 관습과 도덕의 횡포를 고발한다는 점에서, <규원>과 맥락을 같이 하는 작품으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현숙(玄淑)>
1936년에 <삼천리>에 발표한 <현숙(玄淑)>은 신여성 ‘현숙’이 카페 여급으로 있으면서 ‘끽다점(다방)’을 운영할 계획을 세우고 투자할 남성을 구하는 과정을 그린다. 돈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경영과 투자의 개념을 내세우는 주인공 ‘현숙’의 성격은 독특하며 복합적이다. ‘현숙’은 사업의 주체로서 경영과 투자라는 자본의 개념을 체득하고 있는 점에서 신여성적이지만, 사회적 성공을 위해 일정한 서비스를 해주며 투자할 남자들을 만나는 처세술을 가진 점에서는 세속적인 인물이다. 또한 같은 여관에 투숙하는 가난한 노시인 및 젊은 화가와 진실한 마음을 주고받는 인물로도 형상화된다. 이 작품은 비록 구성상의 긴밀함이 부족하지만, 이러한 주제의식을 서술자의 진술이나 화자의 독백적 회고담이 아닌 인물 간의 생생한 대화체로 전개하면서 인물들의 복합적인 성격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어머니와 딸>
1937년에 <삼천리>에 발표한 <어머니와 딸>은 여관을 운영하는 ‘주인마누라’가 마음에 두고 있는 사윗감 ‘한운’과 결혼하지 않고 공부를 계속하겠다고 버티는 딸 ‘영애’의 행동과, 이것을 하숙하며 글을 쓰는 독신 여성 소설가 ‘김선생’의 탓으로 여기는 상황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어 구성이 단순한 편이지만, 연극 대사의 활용이라고 간주할 수 있을 만큼 등장인물들 간의 대화체로만 사건과 인물의 성격을 드러내는 기법은 주목할 만하다. 비록 생생하게 인물의 성격을 형상화하지는 못했어도, 이중적 성격의 인물을 등장시켜 냉소적이고 풍자적인 시선을 통해 신여성의 이상과 그 내면에 자리한 위선의 양상까지 탐색하려 한 점에서, 작품의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책 속으로

아바지가 “게집애라는 거슨 시집가셔 아들 딸낫코 媤父母 셤기고 남편을 恭敬 하면 그만이니라” 하실 때에 “그거슨 녯날 말이야요. 只今은 게집애도 사람이라 해요.  사람인 以上에는 못할 거시 업다고 해요.  사내와 같히 돈도 버를 수 잇고 사내와 같히 벼슬도 할 수 잇셔요. 사내 하는거슨 무어시든지 하는 世上이야요” 하든 生覺을 하며
-<경희> 중에서


☑ 지은이 소개

나혜석(羅蕙錫, 1896∼1948)

정월(晶月) 나혜석 은 1896년 경기도 수원에서 부 나기정과 모 최시의 사이에서 5남매 중 넷째, 딸로는 둘째로 태어난다. 부 나기정은 시흥군수와 용인군수를 지낸 개화 관료였다. 나혜석의 초명은 아지(兒只)였고, 진명여학교 입학 시 명순(明順)으로 불렸으나, 진명여자고등보통학교 졸업 때는 혜석으로 개명한다. 1913년 3월 진명여자고등보통학교를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둘째 오빠 경석의 권유로 일본으로 유학하여 도쿄시립여자미술학교 서양화부 선과 보통과 1학년에 입학한다.

1914년 12월 도쿄 조선인 유학생 잡지 <학지광> 제3호에 최초의 글 <이상적 부인>을 발표하고, 오빠 경석의 친구인 최승구와 연애 관계를 맺는다. 1915년 아버지의 결혼 강요로 여주공립보통학교 교원으로 1년간 근무하여 학비를 마련하고, 11월 복학하면서 고등사법과 1학년으로 전입했으나 제대로 다니지 못한다. 12월 아버지가 사망하고, 애인 최승구는 결핵에 걸려 귀국하여 요양을 한다. 1916년 최승구가 사망한 뒤 오빠 경석의 강력한 권유로 김우영과 교제를 시작한다. 1918년 3월 <여자계> 제2호에 나혜석의 대표작이자 문학사적 가치를 지닌 단편소설 <경희>를 발표하고, ‘H.S.’라는 필명으로 시 <광(光)>을 발표한다. 사립여자미술학교를 졸업하고, 4월에 귀국하여 모교인 진명여학교에서 교편을 잡았으나 건강이 안 좋아 그만두고, 집에서 그림 공부를 한다. 9월 <여자계> 제3호에 <회생 손녀에게>를 발표한다.

1919년 3월 박인덕·신준려·황애시덕·김마리아 등과 3·1운동에 여학생 참가를 의논하고, 개성과 평양으로 가서 자금 모금과 만세 운동 확산을 위해 이정자·박충애와 만나 의논한다. 이화학당 학생들이 만세를 부른 사건으로 체포되어 5개월간 옥고를 치른 후 풀려난다. 1920년 김우영과 결혼하고 그와 함께 전남 고흥군에 있는 최승구의 묘지에 찾아가 비석을 세우고 돌아온다. 1921년 임신 9개월의 몸으로 경성일보사 내청각에서 유화 개인전람회를 연다. 4월 첫딸을 낳고, 7월 <신가정> 창간호에 <규원>을 발표한다. 9월 만주 안동현 부영사로 부임하는 남편을 따라 만주로 이주하고, 1922년 3월 여자 야학 설립을 주도한다. 6월 조선총독부 주최 제1회 조선미술전람회 유채수채화 분야에 출품한 <봄>·<농가>가 입선한다. 1923년 1월 첫딸을 임신하여 낳고 돌이 될 때까지의 심리적·육체적 변화를 솔직히 기록한 <모(母) 된 감상기>를 발표한다. 6월 제2회 조선미술전람회에 <봉황성의 남문>이 4등, <봉황산>이 입선한다. 이후 해마다 조선미술전람회에 유화를 출품하여 입선하며, 1926년 제5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천후궁(天后宮)>이 특선, <지나정(支那町)>이 입선한다. 1926년 4월 <조선문단>에 <원한>을 발표한다.

1927년 만주 안동현 살림을 정리하고 귀국하여 동래 시집에서 지내다가, 6월 남편과 함께 구미 여행길에 오른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모스크바를 거쳐 파리에 도착한다. 스위스·벨기에·네덜란드 등을 여행하고, 법률 공부를 위해 남편이 베를린으로 간 사이 파리에서 야수파 화가인 비시에르의 화실에 다니면서 그림 공부를 한다. 10월 천도교 도령(道令)으로 파리에 온 최린을 만나 예술을 논하고 여행을 하는 과정에서 연애 관계를 맺는다. 1929년 귀국하여 9월 수원에서 ‘구미 사생화 전람회’라는 제목으로 전시회를 연다. 1930년 김우영이 서울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으나 경제적으로 어려웠고, 파리 시절 최린과의 연애에 관한 소문이 나서 남편과의 관계가 악화되고 결국은 이혼한다.

이후 나혜석은 실의를 딛고 그림 작업에 몰두하여 계속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해서 좋은 평가를 얻는다. 1932년 금강산 해금강에서 제13회 제국미술원전람회에 출품하기 위해 그림을 그리다가 불의의 화재로 10여 점밖에 건지지 못해 충격을 크게 받는다. 1933년 생계와 그림 활동을 위해 서울 종로구 수송동에 ‘여자미술학사’를 열고 운영한다. 1934년 김우영과 만나 연애하고 결혼하고 이혼하기까지의 개인적인 생활과 심경을 솔직하게 서술한 <이혼 고백장>(<삼천리>, 1934. 8∼9)을 발표한다. 이 글에서 여성에게 일방적으로 강요되는 정조 관념을 비판함으로써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9월에는 최린에게 정조 유린에 대한 위자료를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여 세인의 주목을 받는다. 1935년 <신생활에 들면서>(<삼천리>, 1935. 2)를 발표하여 구습과 인습에 얽매인 정조 개념의 해체를 다시 주장한다.

1936년 소설 <현숙(玄淑)>(<삼천리>, 1936. 12)을 발표하고, 1937년 소설 <어머니와 딸>(<삼천리>, 1937. 10)을 발표한다. 김일엽을 찾아가 수덕사 밑의 수덕 여관에 기거하면서 해인사·다솔사 등을 돌아다니며 지인을 찾아 서울을 오가기도 한다. 이 와중에도 지속적으로 그림 작업과 산문 쓰기를 병행한다. 1940년 김우영이 아이들을 만나는 것조차 방해하자 실의에 빠지고, 1944년 수덕사를 떠난 나혜석은 아이들이 있는 서울에 자주 나타나고, 딸 나영에게 얼마간 의탁하기도 하고, 서울의 오빠 집에 갔다가 쫓겨나기도 한다. 10월 오빠 경석의 주선으로 서울 인왕산 청운 양로원에 맡겨졌다. 1948년 12월 10일 원효로 시립자제원에서 사망한다.


☑ 엮은이 소개

오형엽
오형엽(吳瀅燁)은 1965년 2월 7일 부산에서 태어났다. 고려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국문과에서 석사와 박사과정을 수료한 뒤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994년 <현대시> 신인상을 받고, 199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부문에 당선되어 평론활동을 시작했다. 평론집으로 ≪신체와 문체≫(문학과지성사, 2001), ≪주름과 기억≫(작가, 2004), 저서로 ≪한국 근대시와 시론의 구조적 연구≫(태학사, 1999), ≪현대시의 지형과 맥락≫(작가, 2004), ≪현대문학의 구조와 계보≫(작가, 2010) 등이 있으며, 역서로 ≪이성의 수사학≫(고려대출판부, 2001)이 있다. 2002년 제3회 ‘젊은 평론가상’을 수상했다. 현재 <현대시>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며, 수원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 목차

경희
회생(回生)한 손녀(孫女)에게
규원(閨怨)
원한(怨恨)
현숙(玄淑)
어머니와 딸

해설
지은이에 대해
엮은이에 대해

2014년 8월 14일 목요일

이익상 작품집



도서명 : 이익상 작품집
지은이 : 이익상
엮은이 : 박연옥
분야 : 한국 소설
출간일 : 2010년 3월 15일
ISBN : 9788964063323 03810
가격 : 16000원
규격 : 138 * 195 mm  제본 : 양장 쪽 : 180쪽.




☑ 책 소개

「지만지 고전선집」 제533권 『이익상 작품집』. 이 시리즈는 국내외 고전 작품을 정리한 책이다. 표지에 사용한 색상은 이 시리즈를 위해 개발한 고유 색상이며, 표지와 본문은 모두 친환경 재질을 사용했다. 초판본을 그대로 실을 수 없는 작품은 원전에 가장 근접한 것을 사용했다. 엮은이가 직접 작품 리스트를 선정하고 원전을 찾아냈으며 전문 해설을 덧붙였다.


☑ 지은이 소개

이익상
저자 이익상은 1895년 지금의 전라북도 전주시 태평동에서 전주 이씨 건한과 김해 김씨 성녀 부부의 두 형제 중 차남으로 출생했다. 본명은 이윤상(李允相), 호는 성해(星海). 

이익상의 문학적 행보는 한국 근대문학사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우선, 1920년 김억·남궁벽·우상순·황석우·변영로·나혜석·염상섭 등이 창간한 동인지 <폐허>에 참여했으며, 1921년 ‘도쿄 조선인유학생학우회’의 기관지인 <학지광> 편집부원을 지냈다. 1924년 김기진·박영희·안석영·김복진·연학년·이익상·이상화 등과 그들의 성과 이름의 머리글자를 따서 <파스큘라(PASKYULA)>를 결성하고 ‘인생을 위한 예술’ ‘현실과 투쟁하는 예술’ 운동을 표방했다. 1925년 파스큘라와 1922년 조직된 최승일·송영·김영팔 등의 좌익 문학 단체 <염군사>를 통합해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APF)>을 결성했다. 그러나 1926년 12월에 개최된 <카프> 임시 총회에서 자진 탈퇴하는데, 투철한 사회주의 이념으로 무장된 투사를 필요로 하는 조직과 부합되지 않는 그의 성격이 그 원인으로 보여진다. 
이익상은 1924년 9월 <조선일보> 기자로 출발해 1927년 11월 <동아일보> 학예부 기자와 학예부장을 역임한 뒤에 1930년 2월부터 <매일신보> 편집국장 대리로 재직하는 등 언론계에서 오랫동안 근무했다. 이익상은 당시 지식인들의 관심 분야인 영화와 연극에까지 폭넓은 관심과 활동을 전개해 나갔는데, 1926년에는 김기진·윤심덕 등과 함께 진보적 연극단체 <백조회>를 결성했으며, 1929년에는 김홍진·박승희·김팔봉 등과 동양영화사를 출범시키기도 했다. 같은 해에 이익상(<매일신보>)은 이서구(<매일신보>), 김기진(<중외일보>), 안석영(<조선일보>) 등 주요 신문사 영화 담당 기자들과 영화산업의 진흥을 위해 <찬영회>를 조직했다. <찬영회>에서는 출범 기념으로 최승희의 무용과 극단 토월회의 연극 공연, 영화 상영회 등을 개최했으나, 1931년 1월 나운규가 주도한 ‘찬영회 사건’을 계기로 해산했다. 
작가와 언론인으로, 그리고 문화운동가로, 당대 지식인들이 선망했던 이상적인 경력의 소유자인 이익상도 식민지 지식인의 생활고는 비켜 가지 못했다. 이익상은 불안정한 생활과 고혈압, 대동맥경화증 등 신병으로 오래도록 고생하였는데, 특히 투병 중이던 최서해에게 대량 수혈한 후유증으로 1935년 4월 유명을 달리했다. 
그가 남긴 주요 작품으로는 단편소설 <낙오자>(1919), <번뇌의 밤>(1921), <연의 서곡>(1924), <흙의 세례>(1925), <쫓기어 가는 이들>(1926), <그믐날>(1927) 등과 장편소설 ≪키 잃은 범선≫(<조선일보>, 1927. 1. 1.∼7. 19), ≪짓밟힌 진주≫(<동아일보>, 1928. 5. 5.∼11. 27), ≪그들은 어디로≫(<매일신보>, 1931. 10. 3.∼1932. 9. 29) 등이 있고, 작품집으로 1926년에 발표된 ≪흙의 세례≫(문예운동사)가 있다..



☑ 옮긴이 소개

박연옥
엮은이 박연옥은 1971년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대학원에서 현대문학(소설)을 공부하고 있으며, 현재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학위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2007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에 당선되어, 한없이 느린 걸음으로 비평 활동 중이다.



☑ 책 속으로

나는 ‘테로리스트’가 되지 못하엿다. 그러한 모험할 성격이 업는 것은 큰 유감이다. 명예와 공리만을 위하야 인간의 참생활에서 거리가 너무나 머른 단적(端的)문제만에 구니(拘泥)하는 이매망량(?魅??)과는 언제?지든지 길을 가티 할 수 업다. 나는 그러한 비열(卑劣)한 생활수단을 취하야 사회?으로 성공자가 되는 것보다 차라리 자긔 량심을 속이지 안코 진실(眞實)한 내면(內面)의 요구에 응(應)하기 위(爲)하야는 사회?으로 실패자(失敗者)가 됨을 도리혀 깃버한다. 

-<흙의 세례>



☑ 목차

해설 

지은이에 대해 



번뇌(煩惱)의 밤 
흙의 세례(洗禮) 
쫏기어 가는 이들 
그믐날 
어엽분 악마(惡魔) 



엮은이에 대해

2014년 8월 13일 수요일

현경준 작품집



도서명 : 현경준 작품집
지은이 : 현경준
엮은이 : 윤송아
분야 : 한국 소설
출간일 : 2013년 8월 1일
ISBN : 978-89-6680-980-6 03810
가격 : 16000원
규격 : 사륙판(128*188) 제본 : 무선 쪽 : 180쪽.




☑ 책 소개

함경도 출신으로 해방 이전에 주로 북쪽에서 활동한 현경준의 단편 하나와 중편 하나를 수록했다. <탁류>는 1935년 ≪조선중앙일보≫를 통해, <유맹>은 1940년 ≪인문평론≫을 통해 발표됐다. 현경준은 이외에도 만주에서 ≪만선일보≫를 통해 상당수 작품을 발표했다.
 



☑ 출판사 책 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의 ‘한국 근현대소설 초판본 100선’ 가운데 하나. 본 시리즈는 점점 사라져 가는 명작 원본을 재출간하겠다는 기획 의도에 따라 한국문학평론가협회에서 작가 100명을 엄선하고 각각의 작가에 대해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들이 엮은이로 나섰다.
1930∼1940년대의 표기법을 그대로 살렸다. 함경북도에서 태어나 만주와 북쪽 지역에서 활동한 작가 특유의 말맛을 느낄 수 있다.
 
<탁류>는 현경준이 중요하게 형상화하고 있는 지식인 사회운동가의 내면적 갈등과 저항의지를 다룬 작품이다. 앞서 밝힌 대로 현경준이 문학활동을 시작한 시기는 일제의 지속적인 탄압으로 인해 프로문학이 점차적으로 쇠퇴하고 이전의 사상운동과 사회활동들이 위축되었던 시기다. 사회운동가들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 열풍과 투옥 과정 속에서 이들은 전향하여 현실 타협적인 동조자로 살아가느냐, 아니면 끝까지 저항하고 투쟁하느냐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작가는 ‘명식’이라는 사회운동가를 등장시켜 이러한 갈등 상황을 어떻게 극복하고 타개해 나갈 것인가라는 문제의식을 제기한다.
작가는 명식을 옥죄는 절망적인 식민지 상황을 ‘검붉은 탁류’로 규정한다. 식민지 현실에 순응하고 타협하면서 그것을 합리화하는 작금의 현실을 비판하며 흙탕물과 오물로 범벅된 사회를 정화시키고 새로운 혁명의 물결로 암울한 현실을 극복해 나가야 함을 시사한다.
<유맹>은 ‘만주국 국책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선전문학의 일종’, ‘언론자유라고는 전혀 없는 상황 하에서 우회적으로라도 당시 조선민족의 실생활의 한 단면을 증언하여 보려는 노력’ 등 평가가 정반대로 엇갈린다.
<유맹>의 캐릭터는 두 인물군으로 나누어진다. 낙오된 폐인들과 범법자들을 교화, 선도하려고 희생과 감화 노력을 아끼지 않는 보도소 소장 측이 그것이다. 부락민들을 빛의 세계로 이끌어내겠다는 자발적이고 강한 의지로 특수부락을 책임지고 있는 소장은 상당히 모범적이고 본받을 만한 것으로 그려진다. 회의적이고 냉소적이던 명우를 적극적으로 신뢰하고 감화시켜 결국에는 국책에 걸맞은 인재로 소생시켜 내는 과정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작가의 시선은 좀 더 복합적인데, 보도소 소장의 긍정적인 측면을 부각시키면서도 이에 대한 부락민들의 상반된 반응을 냉정하게 제시하는 소설의 장면들은 일종의 반어적 효과를 자아낸다.
소장의 진심 어린 설교가 부락민들의 조소와 무관심 속에 부정되는 장면은 만주국의 국책이 은연중 부정되고 도외시됨을 시사한다. 이러한 작가의 시선은 마침내 개심하고 새 일꾼으로 거듭나기로 결심한 명우와는 달리, 끝내 개심을 거절하고 구류소로 끌려가는 과거의 사회운동가 규선, 그리고 자살로 생을 마치는 규선의 처를 결말에 제시한 의도와도 일맥상통한다. 즉 표면적으로는 만주국의 교화정책에 적극적으로 동조하고 부응하는 듯 보이지만, 그 이면에서는 은밀하게 그 정책을 조롱하고 거부함으로써, 소극적인 저항의 형태를 보여 준다.
 




☑ 책 속으로

**≪현경준 작품집≫, <유맹>, 50~52쪽
 
“어째서? …어째서 거짓말인가?”
질문이 아니라 괴롬을 못 이겨 불으짖는 신음소리다.
“거짓말이 아니구요. 일확천금이 어째서 비현실적이구 꿈이라는 말이우?”
병철의 태도는 더한칭 툭명스러워진다.
소장은 또 한동안이나 말없이 내려다보다가 이번에는 확 내뿜듯이 노긔를 잔뜩 띄고 반문한다.
“그럼 그것이 현실적이라는 것을 증명해 보게.”
“얼마든지 하지요. 현재, 지금 누구니 누구니 하며 돈푼씩이나 지니구 뽐내는 그들 중, 자초부터 한 푼 두 푼씩 바른 노릇을 해서 모은 것을 가지구 부자라는 이름을 띈 자가 그래 몇이나 됩니까? 전부가 일확천금을 한 것이라구 해두 틀리진 않겠지요.”
“그렇지만 자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부정업을 해서 얻은 것이야 아니지.”
“천만에 말슴입니다. 그들의 사업은 전부가 밀수가 아니면 부로카 노릇이었지요. 그두 대낮에 공공연하게 한 축이랍니다. 멀리를 생각지 마시구 전번에두 목단강(牡丹江)에서 소장님을 찾아왔지만, 그 무슨 회사 사장인지 한 그 양반이 자초에는 무슨 업을 해서 그렇게 돈을 쥐였는지 아십니까? 자초에는 도문(圖們) 개척 시에 밀수를 굉장히 해서 돈푼이나 쥐었으니까 아쥐 지금 회사두 그때에 얻은 것으루 된 것임에 틀림없겠지요.”
소장의 낯색은 새파랗게 질려간다. 그는 무에라고 말하려고 씩은거리기는 하나 입술만 푸들푸들 떨릴 뿐 종시 입은 열지 못한다.
모다들 킥킥거리며 조소하는 그 속에서 병철은 자못 통쾌한 듯 빙글거리기까지 하며 옆채기에서 천천히 담배갑을 꺼내는 것이었다.
 



☑ 지은이 소개

현경준(玄卿駿)은 1909년 2월 29일, 함경북도 명천군 하가면 화태리에서 태어났다. 경운생(耕雲生), 금남(錦南)이라는 호를 썼으며, 김경운(金卿雲)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도 했다.
1925년 경성고보에 입학했다가 1927년 3학년 1학기에 ‘당시(當時) 거세게 밀려온 시대(時代)의 조류(潮流)’(좌익사상운동)로 인하여 학업을 중단하고 시베리아로 가서 사회주의를 체험하며 유랑생활을 한다. 1929년 귀국하여 평양숭실중학, 일본 동경의 모지 도요쿠니(門司豐國)중학, 일본 관서대학 등에서 공부하다가 사상사건에 연루되어 학교를 중퇴하고 귀국했다. 이후 만주로 이주하여 1937년부터 1940년 7월까지 북간도(연변) 도문의 백봉국민우급학교에서 교원생활을 하였고 1940년 8월부터 ≪만선일보≫에서 반 년 간 기자생활을 하였다. 1934년 9월 ≪조선일보≫에서 주최한 ‘혁신기념사업장편소설응모’에 중편소설 <마음의 태양(太陽)>이 이석(二席)으로 입선돼 문단에 데뷔한다. 1935년 1월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격랑(激浪)>이 당선되면서부터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시작한다.
1945년 광복 후 북한에서 활동한 현경준은 함경북도 예술공작단 단장, 조소문화협회 함경북도위원장, 문학동맹 함경북도위원장 등을 역임하면서 1949년 중편소설 <불사조>를 발표하였고, 1950년 6·25전쟁 때 종군작가로 참전했다가 1950년 10월 전사했다.
 



☑ 엮은이 소개

윤송아(尹頌雅)는 이화여대 기독교학과와 경희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경희대 국어국문학과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 강사로 재직 중이다.
주요 논문으로는 <재일조선인 문학의 주체 서사 연구-가족 ․ 신체 ․ 민족의 상관성을 중심으로>, <≪8월의 저편≫에 나타난 ‘일본군 성노예’ 재현의 의미>, <경계를 와해하는 ‘무국적자’의 레토릭-金城一紀, ≪GO≫를 중심으로-> 등이 있으며, 저서로는 ≪재일코리안 문학과 조국≫(공저), ≪내가 처음 읽는 페미니즘 소설≫(편저), ≪현경준 작품집≫(편저), ≪오유권 작품집≫(편저), ≪백두산≫(편저) 등이 있다.
 



☑ 목차

탁류(濁流)
유맹(流氓)
一. 최초(最初)의 탈주(脫走)
二. 부락점묘(部落點描)
三. 천국도(天國圖)
四. 양심(良心)의 잔편(殘片)
五. 마음의 금선(琴線)
六. 지옥(地獄)으로 가는 길
七. 빛과 어둠
 
해설
지은이에 대해
엮은이에 대해

2014년 8월 12일 화요일

초판본 조명희 단편집




도서명 : 초판본 조명희 단편집
지은이 : 조명희 지음 
옮긴이 : 이정선 엮음
분야 : 한국 근현대 소설
출간일 : 2012년 6월 1일
ISBN : 978-89-6680-364-4  (00810)
16000원 / A5 제본 / 171쪽



☑ 책 소개


포석(抱石) 조명희가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한 것은 1920∼1928년으로 짧은 기간이었다. 그러나 그 기간에 동시를 포함한 시와 희곡, 수필과 평론 등을 모두 아울러, 한반도와 일본과 소련 등으로 옮겨 다니며 민족의 수난기를 관통한 작가 자신의 체험과 맞물려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의 작품 세계는 두 가지 모습, 즉 1925년 무렵을 경계로 한 초기의 관념적·신비적·종교적인 시와 희곡 그리고 후기의 현실주의적 소설을 보여 준다.




☑ 출판사 책 소개

조명희는 1925∼1928년에 단편소설 12편을 창작했다. 처음에는 가난과 식민지 현실을 그렸고 <낙동강> 이후에는 주로 혁명적인 투쟁을 다루었다. 많지 않은 작품들 가운데에서도 이런 차이가 보이는 것은, 1925년 8월에 카프가 창립된 것과 연관해서 생각할 수 있다. 조명희는 카프 회원으로 가입해서, 카프의 열성적인 비해소파로 꼽히는 이기영, 한설야와 이념적인 동지로서 두터운 교분을 가지며 무산자 계급 운동에 가담하고, 식민지 통치에 억압받고 있는 빈궁의 민족적 현실을 고발하는 작품을 발표하는 한편 카프의 방향 설정에도 남다른 관심을 보여왔다.
<땅속으로>(≪개벽≫, 1925. 2∼3)는 그동안 관념적 시를 주로 쓰던 조명희가 문학적인 변신을 선언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동경 유학 때에 사회주의 혁명에 대해 동조하던 조명희는, 귀국 후 ≪시대일보≫ 기자로 일하면서 이 작품을 발표했으며, 이해 8월에 창립된 카프의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당시 ≪시대일보≫의 사장은 홍명희였고, 학예부에는 김기진, 이기영, 최승일, 진학문, 염상섭, 나도향, 김동인, 이상화, 안석영, 김우진, 현진건, 최학송, 양백화, 방인근 등이 기자로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조명희가 카프의 창립 회원이 된 것도 이 ≪시대일보≫ 인맥과 연관해서 이해되기도 한다.
조명희의 초기 시나 희곡에서 그려진 세계는 온갖 비(非)가치만이 지배하는 곳으로 결코 진리에 이를 수도, 참된 가치를 실현할 수도 없는 속악한 곳이어서 오직 그에 대한 저주와 혐오만이 가능했다. 하지만 <땅속으로>에서의 세계는 세계 내에서 가치의 실현이 가능하다는 인식 전환을 보여준다. 자기가 속한 현실 그리고 그 모두에 대한 원인으로서의 일제의 성격 규정에 이르기까지 분명히 드러낸다. 또한 자전적인 소설로서, 동경에서 유학하고 온 작가가 조선의 현실과 자신의 처지에 절망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농촌 사람들>(≪현대평론≫, 1927. 1)은 <땅속으로>에 여전히 남아 있던 관념성이 제거되어 있다는 점에서 보다 현실주의적인 작품이다. 이는 주인공의 설정이 지식인에서 당시의 기층민인 농민으로 바뀌었다는 것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서 보여주는 현실은 전망 부재의 상태이기는 하지만, 현실 그 자체에 관심을 집중시킴으로써 포석 문학 전체에서 약간 이질적인 중요성을 갖는다. 결말은 당시 현실의 구조적 악에 대한 개인의 항거가 무기력하고 현실적으로 패배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낙동강>(≪조선지광≫, 1927. 7)을 비롯하여 이후에 쓰인 <춘선이>(≪조선지광≫, 1928. 1)와 <아들의 마음>(≪조선지광≫, 1928. 9) 등은 뚜렷한 목적의식을 지닌 혁명가·투사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더 이상 가난과 빈궁의 원인을 식민지 현실에서만 찾는 것이 아니라 사회구조에서 찾고, 가난을 그리는 것뿐만이 아니라 계급적인 투쟁을 보여 준다. 그리고 여기에는 이국과 미래 세계에 대한 동경으로 낭만적인 요소가 표현된다. 문제작으로 꼽히는 <낙동강>은 이론을 앞세워 카프계와 민족진영이 논전(論戰)을 벌이던 문단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민요적인 그 지방 노래와 함께 재래의 과열된 이념이나 경제 투쟁 일변도적인 수준을 넘어선다.
<춘선이>는 가난을 그리는 것뿐만 아니라 앞서 살핀 <농촌 사람들>과 달리 이 작품에서는 폭력이나 자살이 아니라 계급적인 투쟁으로 현실 문제에 대응한다. 또한 주인공이 떠나지 않고 조선에서 계급투쟁을 한다는 것도 다른 작품들과 구별되는 특징이다.
포석의 마지막 작품인 <아들의 마음>은 일본에서 일하다가 다친 노동자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은 중국에서 조선인 여자가 비행사로 성공했다는 것을 듣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게 되며, 메이데이 행사에 참가하기로 한다. 작가의 동경 대상은 미래 세계고, 그 미래 세계는 사회주의 국가다. 민족해방을 위해 일을 할 것을 강조하는 행위에는 “세계 무산계급 해방”을 위해서라는 구체적 목표가 드러나 있다. 그러나 그 목표는 막연한 관념으로 제시될 뿐이다. 의지적 인물을 집중 부각시킴으로써 <낙동강>에서 배경의 역할로나마 수용되었던 현실이 아예 배제되어 버리는 결과를 낳는다.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조명희는 소련으로 망명한다. 그 곳에는 일제의 검열이 없으므로 산문시 <짓밟힌 고려>에서처럼 마음껏 일제를 지탄하고 한반도의 처절한 수난상을 그릴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 소련도 그 내부의 정치적 혼란으로 인해 온전한 자유로움이 보장되지 못했고 조명희는 곧 당과 작가동맹의 강압적인 지시에 의해 강렬하고 구호적인 작품을 쓰게 된다. 이는 이후 조명희의 제자들인 고려인 문인들이 산출한 정치색이 짙은 송가문학에서도 많이 드러난다.




☑ 책 속으로

‘그대는 평시에 날더러, 너는 최하층에서 터져나오는 폭발탄이 되라, 하얏나이다.
올소이다, 나는 폭발탄이 되겟나이다.
그대는 죽을 때에도 날더러, 너는 참으로 폭발탄이 되라, 하얏나이다.
올소이다, 나는 폭발탄이 되겟나이다.’
이것은 뭇지 안어도 로사의 만장임을 알 수 잇섯다.
―<낙동강>에서




☑ 지은이 소개

조명희(1894~1938)
조명희는 1894년 8월 10일 충북 진천군 진천읍 벽암리에서 부친 조병행과 모친 연일 정 씨 사이의 4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누대에 걸친 지배계급으로서의 가정환경은 조명희의 현실 인식의 밑바탕이 된다.
1907년경에 13세로 네 살 위인 여흥 민씨와 결혼했는데, 애정이 전제되지 않은 이 조혼은 이후 그가 가정 자체를 거부하는 것으로까지 확산된다. 이 무렵 포석은 진천사립소학교를 다녔고 졸업 후에는 서울로 유학하여 셋째 형 집에서 중앙고등보통학교를 다니다가 당시 유행하던 ‘영웅숭배열(英雄崇拜熱)’에 들떠서 북경사관학교에 들어가려고 고보를 그만두게 된다. 하지만 집으로 붙들려 오게 되고 이때 포석은 ‘소일 격(消日格)으로 소설(小說)이란 것을 읽’으며 문학을 접하게 된다.
1919년에는 3·1운동에 참여했다가 체포되어 몇 개월 동안 감옥 생활을 하고 동경으로 가서, 동양대학 인도철학윤리학과에 청강생으로 적을 두고 유학생들의 모임인 학우회 활동을 한다. 이때 와세다 대학 영문과에 재학 중이던 김우진을 만나게 되는데, 둘은 문학상의 영향을 서로 주고받으며, 포석은 이 인연으로 희곡을 창작하고 연극에 관심을 갖게 된다. 또한 일시적이나마 무정부주의 계열인 흑도회(黑濤會)에 가입해서 사상운동도 체험하게 된다. 동경에서의 생활은 힘든 것이었다. 기울어져 가는 가세로 학비를 전적으로 해결해 줄 수는 없는 일이어서 포석은 학비 구걸을 해야 했다. 그러나 가난이 그에게 상당한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은 그가 생활인으로서의 책임을 강요당할 때, 즉 귀국한 후이다. 1923년 초, 포석은 어려웠지만 자유로울 수 있었던 유학을 중도에 끝내고 귀국한다. 1924년에는 시집 ≪봄 잔디밭 위에≫를 펴냈다. 가족에 대한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강요받는 이즈음에야 그 ‘고통의 떡메’와 같은 현실은 그의 의식 속에 자리를 잡게 된다. 1925년 무렵 포석은 ≪시대일보≫ 학예부 기자로 근무한다. 그가 투르게네프의 <그 전날 밤>을 번역, 연재하는 것도 이 무렵이다. 1925년 8월 창립된 카프 회원으로 가입해 카프의 열성적인 비해소파로 꼽히는 이기영, 한설야와 이념적인 동지로서 두터운 교분을 나누었다. 1925년에서 1928년까지는 조명희의 창작 기간 중에서 가장 활발한 시기다. 이 시기에 그는 단편소설 12편과 시, 수필, 평론 등을 발표했다.
1928년 여름 망명 직전에 포석은 가족을 이끌고 성공회교회에서 세례를 받은 바 있는데, 그 심경은 짐작할 길이 없다. 그리고 얼마 후 모친에게만 하직 인사를 하고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포석은 종적을 감추었다. 하루쯤 지나 한 학생이 쌀 한 가마를 들여주면서 ‘선생님이 떠나셨다’고 알려줘서야 가족들은 비로소 그의 가출을 알았으며, 망명 사실은 한참 뒤 포석에게서 단 한 번 온 편지로 알았다고 한다. 망명 후 포석은 연해주 신한촌의 중학교와 우수리스크 조선사범전문학교에서 교편을 잡았고, 1931년에 황명희와 재혼했다. 구한말 전후에 두만강 건너 블라디보스토크 중심의 연해주 지역에 모여 살던 한인들의 한글 신문인 ≪선봉≫에 정기적인 문예 페이지를 마련했던 조명희는, 10년 가까이 수많은 현지의 한인 청년들에게 한글 문학을 지도했다. 강태수, 김기철, 김증송, 김광현, 조기천, 김두칠, 연성용, 태장춘 등이 포석의 제자다. 이들은 1937년에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 된 후로 카자흐스탄 알마티 등에서 ≪선봉≫의 후신인 ≪레닌기치≫(현 ≪고려일보≫)를 창간하고 그것을 중심으로 한글 문단을 형성해 왔다.
1934년 소련작가동맹의 맹원이 되기도 한 포석은 단편소설과 시, 동요, 희곡, 장편소설 등에 걸치는 폭넓은 작품 활동을 했다. 1937년에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되기 직전, 익명의 편지에 의해 체포되고 1938년 5월 11일에 총살당했다. 당시 가족들은 이런 정황을 제대로 알지 못했으며, 아직까지도 조명희의 무덤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진 바가 없다. 하지만 1956년 소련 정부 당국에 의해서 조명희에 대한 과거의 잘못된 결정을 파기하여 복권시킨 후에, 소련 과학원에서 한글판 ≪조명희 선집≫(1959)이 간행되었다. 그리고 1988년에는 그의 자녀가 살고 있는 우즈베키스탄의 타슈켄트 소재 국립 나보이 문학박물관에 ‘조명희 문학기념실’이 열린 데 이어 1992년에는 타슈켄트에 ‘조명희 거리’가 조성되었다.




☑ 엮은이 소개

이정선
경원대학교 국어국문과 졸업했다. 경희대학교 대학원에서 <최인훈 소설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경희대에서 강의하고 있다. 요즘은 조명희를 비롯해 구소련 지역 고려인의 문학을 탈식민주의적 관점에서 살피고 있다. 한반도의 상황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재외 한민족이 처한 다양한 상황과 문학작품을 통해서 일제 식민주의와 맞물린 우리의 근대를 새롭게 조망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 목차

낙동강(洛東江)
땅속으로
춘선이(春先伊)
농촌(農村) 사람들
아들의 마음

해설
지은이에 대해
엮은이에 대해



2014년 8월 11일 월요일

초판본 계용묵 작품집


도서명 : 계용묵 작품집
지은이 : 계용묵
엮은이 : 강상희
분야 : 한국 소설
출간일 : 2009년 5월 15일
ISBN : 978-89-622-8223-8  (03810)
가격 : 16000원
규격 : 128 * 188 mm   제본 : 양장  쪽수 : 142쪽





☑ 책 소개

「지만지 고전선집」 제286권 『계용묵 작품집』. 이 시리즈는 국내외 고전 작품을 정리한 책이다. 표지에 사용한 색상은 이 시리즈를 위해 개발한 고유 색상이며, 표지와 본문은 모두 친환경 재질을 사용했다. 초판본을 그대로 실을 수 없는 작품은 원전에 가장 근접한 것을 사용했다. 엮은이가 직접 작품 리스트를 선정하고 원전을 찾아냈으며 전문 해설을 덧붙였다.



☑ 지은이 소개

계용묵

1904년 9월 8일~1961년. 평북 선천 태생. 본명은 하태용(河泰鏞). 한국의 소설가. 삼봉공립보통학교를 졸업 후 서당에서 수학했다. 휘문고보를 거쳐 1928년 일본에 건너가 토요대학 동양학과에서 수학했다. 1920년 소년지 ‘새소리’에 시 ‘글방이 깨어져’가 2등으로 당선된 바 있으며 1925년 시 ‘부처님, 검님 봄이 왔네’가 ‘생장’의 현상 문예에 당선되었다. 1927년 ‘조선문단’에 소설 ‘최서방’이 당선되고, 1928년 ‘조선지광’에 ‘인두지주(人頭蜘蛛)’가 발표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전개하였으며, 1935년 ‘조선문단’에 ‘백치 아다다’를 발표하면서 작가로서의 지위를 확보하였다. 1938년에 조선일보사 출판부에서 근무하였으며, 1943년에는 일본왕 불경죄로 2개월간 수감되기도 했다. 1945년 광복 직후에 좌우익 문단의 대립 속에 중간적 입장을 지키며 정비석과 함께 ‘조선’을 창간하였다. 1961년 ‘현대문학’에 ‘설수집(屑穗集)’을 연재하던 중 타계하였다. 1944년 소설집 ‘병풍에 그린 닭이’, 1946년 ‘백치 아다다’, 1950년 ‘별을 헨다’ 등과 1955년 수상집 ‘상아탑’을 남겼다. 작품 경향은 초기에는 현실주의적이고 경향파적이었으나, 1935년 ‘백치 아다다’ 이후에는 인생파적이며 예술파적인 작품 경향을 보였으며. 차차 예술지상주의적 작품을 썼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 책 속으로

아다다는 상쾌하기 그지없었다. 밀녀 나려가는 무수한 그 지전들은 자기의 온갔 불행을 모다 거누워갖이고 다시 도라올 길이 없는 끝없는 한바다로 나려갈 것을 생각할 때 그는 춤이라도 출 듯이 기꺼웠다. 그러나 그 돈이 완전이 눈앞에 보이지 않게 흘너 나려가기까지에는 아직도 몇 푼 동안을 요하여야 할 것인데 뒤에서 허덕거리는 발자욱 소리가 들니길내 도라다보니 수룡이가 헐덕이며 달여오는 것이 않인가. -백치 '아다다'



☑ 목차

해설 
지은이에 대해 

최 서방 
인두지주 
백치 아다다 
마부 
바람은 그냥 불고 

엮은이에 대해

방인근 작품집




도서명 : 방인근 작품집
지은이 : 방인근
옮긴이 : 임정연
분야 : 소설
출간일 : 2010년 03월 15일
ISBN :  978-89-640-6312-5
12,000원 /  175쪽 / 138 * 195 mm






☑ 책 소개

「지만지 고전선집」 제513권 『방인근 작품집』. 이 시리즈는 국내외 고전 작품을 정리한 책이다. 표지에 사용한 색상은 이 시리즈를 위해 개발한 고유 색상이며, 표지와 본문은 모두 친환경 재질을 사용했다. 초판본을 그대로 실을 수 없는 작품은 원전에 가장 근접한 것을 사용했다. 엮은이가 직접 작품 리스트를 선정하고 원전을 찾아냈으며 전문 해설을 덧붙였다.



☑ 지은이 소개

저자 춘해(春海) 방인근은 1899년 12월 29일 충청남도 예산에서 태어나 배재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의 아오야마학원(靑山學院) 중등부를 거쳐 주오대학(中央大學)에서 독문학을 전공했다. 그는 19세기 태생의 마지막 문인으로 1975년 1월 1일 삶을 마감할 때까지 전 생애에 걸쳐 100여 권의 소설 작품을 남긴 다작(多作)의 작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20년대 초기 작품들을 제외한 대다수가 통속대중소설로 분류됨에 따라 방인근은 문학 연구자들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방인근에 대해 기존의 문학사는 작가로서가 아닌 문예지 <조선문단(朝鮮文壇)>의 창간자로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1924년 창간된 <조선문단>은 순수문학을 표방하는 종합 월간 문예지로, 같은 시기 문단을 풍미했던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의 경향파 문학에 대항하는 민족주의 문학파의 거점 역할을 했다. 부유한 포목상의 아들이었던 방인근은 처남인 전영택과 이광수의 권유를 받아들여 사재(私財)를 내어 이광수를 주재(主宰)로 한 문예 잡지 <조선문단>을 창간했다. 당시 <조선문단>은 최서해, 채만식, 박화성, 이장희 등의 문인을 배출한 문단의 등용문이었을 뿐만 아니라, 김동인의 <감자>, 나도향의 <물레방아>, 현진건의 <B사감과 러브레터>, 계용묵의 <백치 아다다> 등 수많은 문제작들의 산실 노릇을 톡톡히 함으로써 한국문단의 육성에 기여한 바가 컸다. 이광수에 이어 5호부터 방인근 자신이 편집을 주도하다가 1926년 재정난으로 판권을 남진우에게 넘기기까지 방인근은 ‘황금시대’를 구가한 <조선문단>의 중심에 있었다. 
이후 방인근은 1927년 숭덕중학(崇德中學)에서 교편을 잡고, 1929년 기독교신보사(基督敎申報社)에 입사해 일하기도 했으나, 곧이어 <문예공론(文藝公論)> 편집장(1930), <신생(新生)> 편집장(1931년), <시조(時兆)> 편집장(1935) 등을 역임하면서 잡지와의 인연을 이어갔다. 1954년에는 춘해프로덕션 사장을 맡으며 영화에 잠시 간여하기도 했다. 
작가로서 방인근은 초기에 <하늘과 바다>(1923) 등의 시를 쓰기도 했으나 소설로 전향하여 <눈 오는 밤>(1920), <어머니>(1924), <비 오는 날>(1924), <살인(殺人)>(1924), <죽지 못하는 사람들>(1925), <자동차 운전수>(1925) <마지막 편지>(1925), <최 박사>(1926), <강신애>(1926) 등 30여 편의 단편들을 발표한다. 그러나 방인근이 본격적으로 작가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30년대 들어 신문에 대중소설을 연재하면서부터인데, <마도(魔都)의 향불>(1932), <방랑의 가인>(1933), <쌍홍무(雙紅舞)>(1936) 등이 이 시기의 대표적인 장편소설들이다. 해방 후에도 <인생극장>(1954), <청춘야화>(1955) 등 애정, 추리, 탐정을 소재로 한 통속대중소설에 몰두해 대중들의 관심과 인기를 얻었다. 이 밖에도 <금십자가(金十字架)>(1932) 외 몇 편의 희곡과 <농민문학과 종교문학>(1927) 등의 평론이 있다. 
당대의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과 관심을 받았음에도 문학사에서 작가로서 가치를 평가받지 못한 방인근, 그의 말로는 비참했다. 1954년 가산을 정리해 설립한 춘해프로덕션의 운영이 어려워지고 그가 발표한 소설들이 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판매되지 못했던 탓에 삶이 피폐해졌던 것이다. 숱한 연애 편린과 전설적인 주당(酒黨), 잡지 발간자, 대중소설로 이름을 알렸으되, 문학사로부터 그 이름 앞에 작가라는 명예로운 직함을 부여받지 못했던 풍운아 방인근은 1975년 파란만장하고 자유분방했던 생을 조용히 마감한다.




☑ 옮긴이 소개

역자 임정연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1920년대 연애 담론 연구?지식인의 식민성을 중심으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 논문은 1920년대 ‘연애’의 공론화 과정을 추적하고 연애 서사를 분석해 ‘연애’가 배타적인 독서 경험을 통해 구성된 지식인의 특권적 소통 형식이라는 점을 규명한 논문이다. 기존의 연구가 ‘연애’를 근대 체현의 특수한 양식이라는 측면에서 논의해 왔던 것에서 나아가, 연애를 식민 담론의 제도적 장치라는 관점에서 접근해 당시 유행했던 연애 열풍의 실체에 대한 성찰적 시각을 제공하고자 했다. 
논문으로는 <홍명희의 ≪임꺽정≫ 연구>, <1920년대 연애 담론 연구?지식인의 식민성을 중심으로>, <근대성의 경험과 근대 극복의 신화?이광수 ≪사랑≫론(論)>,<‘회복’의 서사와 ‘축제’의 현상학?황석영 ≪손님≫론>, <식민지 지식인의 연애와 일상>, <연애 불능에 관한 역설: 나르시시즘에서 타자성으로>, <근대 젠더 담론과 ‘아내’라는 표상> 등이 있으며, 엮은 책으로는 ≪임노월 작품집≫이 있다.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국어문화원 박사 후 연구원으로 이화여자대학교 등에서 강의하고 있다.




☑ 목차

해설
지은이에 대해

눈 오는 밤
어머니
살인(殺人)
자동차 운전수(自動車 運轉手)
마지막 편지

엮은이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