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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7월 9일 목요일

엉겅퀴 (최영철 육필시집)


도서명 : 엉겅퀴 (최영철 육필시집)
지은이 : 최영철
분야 : 시선집
출간일 : 2012년 1월 10일
ISBN : 978-89-6406-299-9 (00810)
가격 : 15000원
A5 / 무선제본 / 214쪽




☑ 책 소개

1986년 등단한 후 꾸준한 작품 활동을 해 온 최영철 시인의 육필 시집.
표제시 <엉겅퀴>를 비롯한 60편의 시를 시인이 직접 가려 뽑고
정성껏 손으로 써서 실었습니다.
글씨 한 자 글획 한 획에 시인의 숨결과 영혼이 담겼습니다.



☑ 출판사 책 소개

새로운 시의 시대를 연다

‘지식을만드는지식’에서 한국 대표 시인의 육필시집 44종을 출간합니다. 
43명 시인의 육필시집과 각각의 표제시를 한 권에 묶은 ≪시인이 시를 쓰다≫입니다. 

한국 대표 시인의 육필시집은
시인이 손으로 직접 써서 만든 시집입니다.
시인이 자신의 대표작을 엄선해 만든 시집입니다.
시인과 독자가 시심을 주고받으며 공유하는 시집입니다.

한국 대표 시인의 육필시집은 현재 한국 시단의 움직임을 주도하고 있는, 한국의 대표적 시인들이 자기들의 대표시를 손수 골라 펜으로 한 자 한 자 정성들여 눌러 쓴 시집들입니다. 그 가운데는 이미 작고하셔서 유필이 된 김춘수, 김영태, 정공채, 박명용 시인의 시집도 있습니다. 

시인들조차 대부분이 원고를 컴퓨터로 작성하고 있는 현실에서 시인들의 글씨를 통해 시를 보여주려고 하는 것은, 시인들의 영혼이 담긴 글씨에서 시를 쓰는 과정에서의 시인의 고뇌, 땀과 노력을 더 또렷하게 느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한국 대표 시인의 육필시집은 생활에서 점점 멀어져 가고 있는 시를 다시 생활 속으로 끌어들이려는 의도에서 기획된 것입니다. 시는 어렵고 고상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쉽고 친근하게 접할 수 있는 것으로 느끼게 함으로써 “시의 시대는 갔다”는 비관론을 떨치고 새로운 ‘시의 시대’를 열고자 합니다. 


시인이 직접 골라 손으로 쓴 시

한국 대표 시인의 육필시집은 시인들이 지금까지 쓴 자신의 시 중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시들을 골라 A4용지에 손으로 직접 썼습니다. 말하자면 시인의 시선집입니다. 어떤 시인은 만년필로, 어떤 시인은 볼펜으로, 어떤 시인은 붓으로, 또 어떤 시인은 연필로 썼습니다. 시에 그림을 그려 넣기도 했습니다.

시인들의 글씨는 천차만별입니다. 또박또박한 글씨, 삐뚤빼뚤한 글씨, 기러기가 날아가듯 흘린 글씨, 동글동글한 글씨, 길쭉길쭉한 글씨, 깨알 같은 글씨... 온갖 글씨들이 다 있습니다. 그 글씨에는 멋있고 잘 쓴 글씨, 못나고 보기 싫은 글씨라는 구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시인들의 혼이고 마음이고 시심이고 일생입니다.

한국 대표 시인의 육필시집은 총 2105편의 시가 수록됩니다. 한 시인 당 50여 편씩의 시를 선정했습니다. 시인들은 육필시집을 출간하는 소회를 책머리에 역시 육필로 적었습니다. 육필시집을 마치 자신의 분신처럼 생각하는 시인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한국 대표 시인의 육필시집은 시인이 쓴 육필을 최대한 살린다는 것을 디자인 콘셉트로 삼았습니다. 시인의 육필 이외에 그 어떤 장식도 없습니다. 틀리게 쓴 글씨를 고친 흔적도 그대로 두었습니다. 간혹 알아보기 힘든 글씨들이 있는데, 독자들이 이를 찾아볼 수 있도록 맞은 편 페이지에 활자를 함께 넣어주었습니다. 


한국 대표 시인의 육필시집 목록

1 한국 대표 시인의 육필시 모음집 ≪시인이 시를 쓰다≫
2 정현종  ≪환합니다≫
3 문충성  ≪마지막 눈이 내릴 때≫ 
4 이성부  ≪우리 앞이 모두 길이다≫ 
5 박명용  ≪하향성≫ 
6 이운룡  ≪새벽의 하산≫ 
7 민영  ≪해가≫ 
8 신경림  ≪목계장터≫ 
9 김형영  ≪무엇을 보려고≫ 
10 이생진  ≪기다림≫ 
11 김춘수  ≪꽃≫ 
12 강은교  ≪봄 무사≫ 
13 문병란  ≪법성포 여자≫ 
14 김영태  ≪과꽃≫ 
15 정공채  ≪배 처음 띄우는 날≫ 
16 정진규  ≪淸洌集≫ 
17 송수권  ≪초록의 감옥≫ 
18 나태주  ≪오늘도 그대는 멀리 있다≫ 
19 황학주  ≪카지아도 정거장≫ 
20 장경린  ≪간접 프리킥≫ 
21 이상국  ≪국수가 먹고 싶다≫ 
22 고재종  ≪방죽가에서 느릿느릿≫ 
23 이동순  ≪쇠기러기의 깃털≫ 
24 고진하  ≪호랑나비 돛배≫ 
25 김철  ≪청노새 우는 언덕≫ 
26 백무산  ≪그대 없이 저녁은 오고≫ 
27 윤후명  ≪먼지 같은 사랑≫ 
28 이기철  ≪별까지는 가야 한다≫ 
29 오탁번  ≪밥 냄새≫ 
30 박제천  ≪도깨비가 그리운 날≫ 
31 이하석  ≪부서진 활주로≫ 
32 마광수  ≪나는 찢어진 것을 보면 흥분한다≫ 
33 김준태  ≪형제≫ 
34 정일근  ≪사과야 미안하다≫ 
35 이정록  ≪가슴이 시리다≫ 
36 이승훈  ≪서울에서의 이승훈 씨≫ 
37 천양희  ≪벌새가 사는 법≫ 
38 이준관  ≪저녁별≫ 
39 감태준  ≪사람의 집≫ 
40 조정권  ≪산정묘지≫ 
41 장석주  ≪단순하고 느리게 고요히≫ 
42 최영철  ≪엉겅퀴≫ 
43 이태수  ≪유등 연지≫ 
44 오봉옥  ≪나를 던지는 동안≫



☑ 책 속으로

엉겅퀴−푸조나무 아래

나 하나 볼품없으니 그대 아름답지요 
나 하나 멈추니 그대 가지요 
나 하나 눈물 솟으니 그대 웃지요 

오래도록 애원해서 매정해진 그대
별만 홀로 빛나라고 그믐달이 되었지요 
나 하나 내가 아니면 
그대 들녘에 서걱이는 엉겅퀴 

바삐 가시는 길 붙잡지 않았으면 
그대 정녕 누구의 사랑일 뻔했어요



☑ 시인의 말

나는 이것들을
피의자 진술서를 쓰듯이 썼다.
무기정학 직전,
반성문을 쓰듯이 썼다.

혹시나 누가 볼까
두려워하며 썼다.

수영성 푸조나무를 바라보며
최영철



☑ 지은이 소개

최영철
1956/ 경남 창녕 출생
1984/ <지평>과 <현실시각>으로 작품 활동 시작
1986/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 <연장론> 당선
2000/ 백석문학상 수상
2010/ 최계락문학상 수상
2011/ 이형기문학상 수상
계간 ≪외국문학≫, 월간 ≪문학정신≫, 월간 ≪현장≫ 편집장,
≪문학과 경계≫ 편집위원 등 역임
부산예술대, 부산외국어대 겸임 교수 등으로 학생들을 가르침
현재 ‘도요출판사’ 편집주간, 계간 ≪시평≫, 계간 ≪시선≫ 자문위원,
격월간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공동 주간
‘시힘’ 동인

시집
≪아직도 쭈그리고 앉은 사람이 있다≫
≪가족 사진≫
≪홀로 가는 맹인 악사≫
≪야성은 빛나다≫
≪일광욕하는 가구≫
≪개망초가 쥐꼬리망초에게≫
≪그림자 호수≫
≪호루라기≫
≪찔러본다≫

산문집
≪우리 앞에 문이 있다≫
≪나들이 부산≫
≪동백꽃, 붉고 시린 눈물≫
어른을 위한 동화 ≪나비야 청산 가자≫

최영철 블로그: http://blog.daum.net/jms5244



☑ 목차

7 시인의 말

 제1부

10 아침
12 풀밭에서
14 섬
16 대숲에서
20 봄 봄
26 5월
28 수박
32 숲 지나기
36 남산 간다
40 나무는
44 잎
46 흥건한 봄
48 엉겅퀴
50 구름
54 나무는 뻗는다
56 나무는 흔들린다
60 나무, 위대한 생애
62 나무가 없다
64 저 산이 나를
68 우짜노
72 화엄정진
74 겨울숲
76 달에게


 제2부

80 사람
82 인연
84 야성은 빛나다
88 복날
92 메밀묵 장수
96 소주
98 쇠에게 주다
102 어느 날의 손님
106 이 세상 사랑에게
110 이 저녁에 땡전 한 푼 없이
114 낡은 집
116 시여 시여
120 무적 FRP
124 톱질
128 지진
130 내가 나의 남성까지도
132 무덤의 추억
134 순장자처럼
138 다대포 일몰


 제3부

144 동태
146 광장의 이유
150 성산 일출봉
152 속도
156 그림자 호수
160 새벽 우포에서
164 촛불에게
168 태풍 전망대
172 종이
174 회진에서
176 연
178 연장론
186 죽어서도 남길 수 없는 이름이여
190 맞는 노래
194 호포에서
198 12월
202 DMZ의 두루미
206 길 

211 시인 연보




2015년 5월 18일 월요일

김성한 작품집


도서명 : 김성한 작품집 
지은이 : 김성한
엮은이 : 김학균
분야 : 한국 근현대 소설
출간일 : 2010년 3월 15일
ISBN :  9788964063040
가격 : 12000원
규격 : 148 * 210 mm    제본 : 양장본    쪽 : 198쪽




☑ 책 소개

『김성한 작품집』은 「지식을 만드는 지식 고전선집」 시리즈로, 사라져 가는 한국 근현대 소설 100종의 원본을 담았다. 한국문학평론가협회에서 작가 100명을 엄선하고 각각의 작가에 대해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를 엮은이로 추천했다. 또한 엮은이는 직접 작품을 선정하고 원전을 찾아냈으며 해설과 주석을 덧붙였다.


☑ 책 속으로

가난한 자 괴로워하는 자를 구하는 것이 크리스도의 본의일진대, 선천적으로 결정된 운명의 밧줄에 묶여서, 래틴말을 배우지 못한 그들이 쉬운 자기 말로 복음의 혜택을 받는 것이 어째서 사형을 받아야만 하는 극악무도한 짓이란 말이냐? 성찬의 빵과 포도주는 크리스도의 분신이니 신성하다지마는 아무리 보아도 빵이요 먹어도 빵이다. 포도주 역시 다를 것이 없다. 말짱한 정신으로는 거짓이 아니고야 어찌 인정할 도리가 있을 것이냐? 무슨 까닭에 벽을 문이라고 내미는 것이냐? 절대적으로 보면 같은 수평선상에 서 있는 사람이 제멋대로 꾸며낸 것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할 근거가 어디 있단 말이냐?
바비도는 울화가 치밀었다.
-<바비도>


☑ 지은이 소개

저자 김성한(金聲翰)은 1919년 함경남도 풍산에서 출생했다. 그는 1944년 일본 동경제대를 중퇴했으며, 195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무명로(無明路)>가 당선되면서 문단에 등단한다. 1955년 사상계사에 입사하면서 그의 문학은 <사상계>와 깊은 인연을 맺게 된다. 그는 1957년까지 <사상계> 주간을 맡다가 1958년 <동아일보>에 입사해 편집국장(1973), 논설주간(1977)을 맡았다. 그의 문학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사상계>는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한다. 김성한은 1955년 5월호부터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게 되었기 때문에, 창간호의 멤버는 아니지만, <사상계>에 깊이 관여하고 있었다. <사상계>는 2만여 명의 정기 구독자를 포함, 당시로서는 엄청난 부수인 7만여 부까지 발행하기도 했다. 당시 조선일보의 독자가 10만 명임을 감안하면 <사상계>의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다. <사상계>는 1952년 창간된 잡지로 월남한 서북 지역 출신의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제작되면서 뚜렷한 이념성을 지니고 있었다.
1950년대 <사상계>의 편집위원 29명 가운데 21명이 북한 출신이며, 대부분이 서북 지역 출신이었다. 그중에서도 장준하는 <사상계>를 창간한 핵심 인물이다. 그는 1918년 평북 의주 출생으로 부친 장석인은 기독교 목사였다. 열네 살에 평양 숭실중학교에 입학했다가 부친이 교목으로 부임한 평북 선천 신성중학교로 전학해 1937년에 졸업했다. 졸업 후 정주 신안소학교 교사로 3년간 근무하다가 1940년 도일해 1942년 일본신학교에 입학했다. 여기서 전택부, 문익환 등과 공부했는데 전택부는 후에 <사상계> 편집위원으로 참여하게 된다. 1944년 학병으로 끌려가게 된 장준하는 일본군을 탈출해서 김준엽 등과 함께 광복군 훈련반에 들어갔다. 광복 후 임시정부 요인들과 함께 귀국해 김구의 비서로 있다가 1949년 한국신학대학에 편입해서 학병 때문에 중단했던 학업을 마친다. <사상계>가 인지도가 없었던 초기에 장준하는 개인적인 친분을 이용해 필자들을 선정하게 되었으며, 그것은 북한 출신의 지식인들이 <사상계>에 참여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김성한은 서북 지역 출신은 아니지만, 북한 출신이라는 점에서 이들과 지역적 연고를 같이하고 있다.
<사상계>의 인맥은 사상적인 면에서도 뚜렷한 공통점으로 이어진다. 김성한 소설에서 지식인들의 타락을 경고하고, 지식인들의 적극적인 사회 참여를 독려한 것은 <사상계>의 정신을 이어받고 있다. 서북 지역은 기독교를 일찍부터 받아들였고, 이 시기 기독교는 민족주의와 융합해 사립학교 설립을 주도했다. 당시 평북 선천의 신성학교와 평양의 숭실학교는 미국 북장로회 계통의 미션 학교였다. 평북 선천의 신성학교 출신인 장준하와 많은 이 지역 출신 인맥 역시 기독교 정신주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이것은 <사상계> 발간 초기부터 드러나고 있다. 이런 기독교 정신주의는 김성한 문학이 초기부터 교회의 타락이나 종교적인 모티프를 줄기차게 문제 삼은 것과 연관되어 있다. 특히 1956년 사상계사가 제정한 동인문학상의 첫 회 수상작으로 김성한의 <바비도>가 선정된 것은 주목할 만하다. 심사위원들은 ‘이념’을 주목했고, 심사위원 중 한 명이었던 주요한은 “이 작품은 예술적인 동시에 현대 우리 사회에게 주는 한 개의 경종”이라고 평가했다. 주요한은 평양 기독교계의 목사 집안 출신이면서 광복 후에는 흥사단에 깊이 관여한 바 있고, 이 작품을 자유당의 정치적 전횡에 대한 비판으로 이해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서북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사상계>의 인맥은 기독교 정신주의로 이어지면서 김성한의 문학을 이해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1955년 김성한이 <사상계>의 편집주간이 되면서 편집 방향은 민족 통일 문제를 지상 과제로 삼았고, 민주 사상의 함양과 경제 발전, 새로운 문화의 창조, 식민지 정신의 청산을 내걸었다. 여기서 새로운 문화의 창조, 식민지 지배로 인해 비굴해진 민족성의 청산은 김성한 소설의 주제와도 일맥상통하고 있다. 이 시기부터 <사상계>는 비평과 소설을 다수 게재하면서 문학적 성격이 강화된다. <사상계>가 신인들의 등단을 주도하고 문학적 성격이 강화된 것은 김성한 이후였으며, 김성한에 이어 편집주간이 된 안병욱에 의해 더욱 활발해진다. 김성한은 <바비도>, <제우스의 자살>(이후 <개구리>로 개제), <폭소>, <귀환> 네 편을 <사상계>에 게재한다. 김성한 소설이 친일파나 사이비 지식인 등 부정적인 인물들을 형상화한 것은 ‘부정을 위한 부정’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기 위한 ‘건설’을 염두에 두었다는 것은 당시 장준하가 “오직 건설적 목적과 방안을 가진 정당한 비판만이 후진 정체 사회를 문명사회로 발전시킬 수 있다”고 말한 것과 연결되고 있다. 이처럼 김성한 소설은 <사상계>의 인맥과 편집 방향, 기독교 정신주의와 밀접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1957년 <사상계>를 퇴사한 김성한은 1958년 <동아일보>에 입사해 1981년까지 근무하면서 시대의 담론을 주도하는 언론인으로 활동한다. 그는 동아일보에 근무하는 동안에 영국 맨체스터 대학 사학과에서 수학하면서 역사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역사와 사회에 대해 항상 주목했다. 1967년에는 장편 삼부작 ≪이성계≫를 발간했고, 이후에는 ≪이마≫, ≪요하≫등의 역사 장편소설을 다수 발표한다. 일부 연구자들은 장편 ≪이성계≫에 그의 1950년대 단편소설에서 다룬 주제들이 통합되어 있음을 밝히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초기 단편소설에 주목하고 있다. 그는 1956년 <바비도>로 동인문학상을 수상했고, 1958년에는 <오분간>으로 제5회 아세아자유문학상을, 1987년 ≪임진왜란≫을 <동아일보>에 연재하던 중에는 보관문화훈장을 받은 바 있다.


☑ 엮은이 소개

해설
지은이에 대해

自由人(자유인)
暗夜行(암야행)
續·暗夜行(속 암야행)
골짜구니의 靜寂(정적)
五分間(오분간)
바비도
極限(극한)

엮은이에 대해


☑ 목차

천맥(天脈)

해설

지은이에 대해

엮은이에 대해

2014년 8월 19일 화요일

난중일기(亂中日記)


도서명 : 난중일기
지은이 : 이순신
옮긴이 : 이은상
분 야 : 문학 / 인물 / 역사
출간일 : 2014년 8월 15일
ISBN : 979-11-304-0080-8 03810
가 격 : 15,920원
판 형 : 사륙판(128*188mm)
제 본 : 무선(PUR)
면 수 : 894쪽







☑ 200자 핵심요약

≪난중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단숨에 읽기보다는 곁에 두고 틈틈이 펼쳐 보며 구절을 되새길 때 더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은 일기 한 편 한 편마다 거기에 배어 있는 이순신 장군의 충혼을 느낄 수 있도록 편집했다. 친필 초고와 마찬가지로 내려쓰기 편집에다가 충분히 긴 호흡으로 읽어 내려갈 수 있도록 여백을 두었다.




☑ 책 소개


꼭 읽어야 할 국민 독본, 그러나…

≪난중일기(亂中日記)≫를 모르는 대한민국 국민이 있을까.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7년 동안 쓴 진중일기로서 국보 제76호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기까지 한 고전. 노산 이은상은 “민족의 성전(聖典)”으로 “우리 국민 누구나 꼭 읽어야 할 국민 독본”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정작 ≪난중일기≫를 한번이라도 읽어본 이는 드물다. 왜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난중일기’란 제목처럼 내용도 어렵고 딱딱하리라는 생각에서 선뜻 접근하지 못한 경우가 적지 않을 것이다. 또한 인간 이순신의 생생한 육성을 마치 학술 문헌처럼 담아낸 기존 책들의 편집도 ≪난중일기≫ 독서에 장애로 작용했을 것으로 판단한다. 그래서 새로운 ≪난중일기≫, 이 책이 필요했다.


≪난중일기≫ 국역본의 원조

이 책은 노산이 1960년대 역주해한 ≪난중일기≫(1968, 현암사)를 새롭게 다시 펴낸 것이다. 노산은 이순신 장군의 친필 초고본을 바탕으로 ≪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에 있는 내용을 보충해 한글로 옮기고 주석을 달았다. 앞서 1960년 당대 최고의 한학자들과 함께 작업한 ≪국역주해 이충무공전서≫(충무공기념사업회 간행)가 기초가 되었다.
노산 역주해본은 ≪난중일기≫ 국역본의 원조 격이다. 현재 출간되고 있는 모든 ≪난중일기≫ 국역본은 이 책에서 비롯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칼의 노래≫의 작가 김훈이 대학 시절 읽었던 ≪난중일기≫도 바로 노산 역주해본이었다.
1960년대 번역이라 문장과 표현이 지금과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맞춤법에 크게 어긋나지 않는 한 그대로 두었다. 다만 관련 자료를 참조해 명백한 오류 또는 오기는 수정했다. 또한 현재 지명 설명은 현재 행정구역상 이름을 반영하는 등 현재 독자들이 읽기에도 전혀 무리 없도록 다듬었다.

가장 ≪난중일기≫다운 ≪난중일기≫

≪난중일기≫는 일기다. 이순신 장군은 전란 상황과 진중 생활을 꼼꼼히 기록하는 한편 국정, 가족, 동료 등에 대한 내밀한 심정을 솔직히 고백하고 있다. 일기마다 간결한 문체에 절절한 심정이 담겨 있다. 소설보다는 아포리즘에 가깝다. 처음부터 끝까지 단숨에 읽기보다는 곁에 두고 틈틈이 펼쳐 보며 구절을 되새길 때 더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은 일기 한 편 한 편마다 거기에 배어 있는 이순신 장군의 충혼을 느낄 수 있도록 편집했다. 우선 친필 초고와 마찬가지로 내려쓰기로 편집했다. 충분히 긴 호흡으로 읽어 내려갈 수 있도록 여백을 두었다. 아래쪽엔 남해의 물결, 조선과 일본의 전선들을 문양처럼 배치했다. 책을 읽다 보면 마치 이순신 장군과 함께 한산, 명량이나 노량 바다의 물결 위를 떠다니는 느낌이다.
책의 분량은 약 900쪽에 이른다. 그럼에도 책을 펼쳐 보기에 불편하지 않다. PUR 제본이라는 제본 방식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덧붙여, 눈치 챘겠지만, 책값 15,920원은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을 상징한다.
백문이 불여일독(讀). 직접 한번이라도 이 책을 펼쳐 보면 이 책의 가치를, ≪난중일기≫의 가치를, 영웅 이순신의 진정을 알게 될 것이다.




☑ 책 속으로

중위장(中衛將)을 불러 내일 새벽 떠날 것을 약속하고 장계를 썼다. 이날 여도 수군 황옥천이 집으로 도망간 것을 잡아다가 목을 베어 군중에 높이 매어 달았다.(임진년 오월 초사흘) −59쪽

비가 오다 말다 했다. 아침에 흰 머리털 여남은 오라기를 뽑았다. 흰 머리털인들 무엇이 어떠하랴마는 다만 위로 늙으신 어머님이 계시기 때문이었다.(계사년 유월 열이틀) −141쪽

가을 기운이 바다에 들어오니 나그네 회포가 어지럽다. 홀로 배 뜸 밑에 앉았노라니 마음이 몹시 산란하다. 달빛은 뱃전에 비치고 정신도 맑아져서 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이에 어느 덧 닭이 울었다.(계사년 칠월 보름) −167쪽

원균이 포구에 있는 수사 배설과 교대하려고 여기 이르렀기로 교서에 숙배하게 하였더니 불평하는 기색이 많으므로, 두 번 세 번 타일러 억지로 행하게 하였다 하니 너무도 무식한 것이 우스웠다.(을미년 이월 스무이레) −383~384쪽

혼자 수루에 의지했다. 나라 정세가 아침 이슬같이 위태로운데 안으로는 정책을 결정할 만한 기둥 같은 인재가 없고 밖으로는 나라를 바로 잡을 만한 주춧돌 같은 인물이 없음을 생각해보니 사직이 장차 어떻게 될지 몰라 마음이 산란했다. 종일토록 누웠다 앉았다 했다.( 을미년 칠월 초하루) −427쪽

장흥 부사, 우우후, 가리포가 와서 함께 활을 쏘았다. 요전번 진 군관들 편에서 한턱을 내어서 모두 술이 몹시 취해 가지고 흩어졌다. 이날 밤에 너무 취해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일어났다 누웠다 하면서 밤을 밝혔다. 봄철의 피곤한 기운이 벌써 이렇구나.(병신년 이월 열엿새) −511쪽

이날 아들 회가 방자(房子) 수(壽)를 곤장 때렸다 하기에 아들을 뜰아래로 붙들어다가 잘 타일렀다. 밤이 든 후에 땀이 줄줄 흘렀다.(병신년 팔월 스무하루) −585~586쪽

종일 노를 빨리 저어 이경에 어머님 앞에 이르렀다. 백발이 부수수한 채 나를 보고 놀라 일어나시는데, 기운이 흐려져 아침저녁을 보전하시기 어렵다. 눈물을 머금고 서로 붙들고 앉아, 밤이 새도록 위로하여 그 마음을 풀어 드렸다.(병신년 윤팔월 열이틀) −608쪽

조수를 타고 여러 장수들을 거느리고 진을 우수영(右水營) 앞바다로 옮겼다. 그것은 벽파정 뒤에 명량(鳴梁)이 있는데, 수효 적은 수군으로 명량을 등지고 진을 칠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여러 장수들을 불러 모으고 약속하되, “병법(兵法)에 이르기를 죽으려 하면 살고 살려고 하면 죽는다 하였고, 또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 명도 두렵게 할 수 있다는 말이 있는데, 모두 오늘 우리를 두고 이른 말이다. 너희 여러 장수들이 조금이라도 명령을 어긴다면 군율대로 시행해서 작은 일일 망정 용서치 않겠다”고 엄격히 약속하였다.(정유년 구월 보름) −769~770쪽

이른 아침에 특별 정찰 부대가 보고하기를 “적선이 수효를 알 수 없도록 많이 명량으로 해서 곧장 우리가 진 치고 있는 곳을 향해 들어온다”고 하였다. 곧 여러 배에 명령하여 닻을 올려 바다로 나가니 적선 백삼십여 척이 우리 배를 에워쌌다. 여러 장수들은 적은 군사로 많은 적을 대적하는 것이라 스스로 낙심하고 모두 회피할 꾀만 내는데 우수사 김억추가 탄 배는 벌써 두 마장 밖에 나가 있었다. 나는 노를 바삐 저어 앞으로 돌진하며 지자(地字), 현자(玄字) 등 각종 총통을 마구 쏘니 탄환은 폭풍우같이 쏟아지고 군관들이 배 위에 총총히 들어서서 화살을 빗발처럼 쏘니 적의 무리가 감히 대들지 못하고 나왔다 물러갔다 하였다. 그러나 여러 겹으로 둘러싸여서 형세가 어찌 될지 알 수 없어 온 배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 돌아다보며 얼굴빛이 질렸다. 나는 조용히 타이르되, “적선이 비록 많다 해도 우리 배를 바로 침범치 못할 것이니 조금도 마음을 동하지 말고 다시 힘을 다해서 적을 쏘아라” 하고 여러 장수의 배들을 돌아보니 먼 바다에 물러가 있는데, 배를 돌려 군령을 내리자 해도 적들이 더 대어들 것이라 나가지도 돌아서지도 못할 형편이 되었다. 호각을 불어 중군에게 군령을 내리는 기(旗)를 세우라고 하고, 또 초요기를 세웠더니 중군장(中軍將) 미조항 첨사 김응함의 배가 차츰 내 배 가까이 왔으며, 거제 현령 안위의 배가 그보다 먼저 왔다. 나는 배 위에 서서 친히 안위를 불러 “안위야, 군법에 죽고 싶으냐. 네가 군법에 죽고 싶으냐. 도망간다고 어디 가서 살 것이냐” 하니 안위도 황급히 적선 속으로 돌입했다. 또 김응함을 불러 “너는 중군(中軍)으로서 멀리 피하고 대장을 구원하지 않으니 죄를 어찌 면할 것이냐. 당장 처형할 것이로되 적세가 급하므로 우선 공을 세우게 한다” 하였다. 그래서 두 배가 적진을 향해 앞서 나가자 적장이 탄 배가 그 휘하의 배 두 척에 지령하여 일시에 안위의 배에 개미 붙듯하여 서로 먼저 올라가려 하니 안위와 그 배에 탄 사람들이 죽을힘을 다해서 혹은 모난 몽둥이로, 혹은 긴 창으로, 또 혹은 수마석(水磨石) 덩어리로 무수히 치고 막다가 배 위의 사람이 기진맥진하므로, 나는 뱃머리를 돌려 바로 쫓아 들어가서 빗발치듯 마구 쏘아댔다. 적선 세 척이 거의 다 엎어지고 자빠졌을 때 녹도 만호 송여종과 평산포 대장 정응두(丁應斗)의 배가 뒤쫓아 와서 합력해 쏘아 죽여 적은 한 놈도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투항한 왜인 준사(俊沙)는 안골 있는 적진으로부터 항복해 온 자인데, 내 배 위에 있다가 바다에 빠져 있는 것을 굽어보더니 그림 무늬 놓은 붉은 비단 옷을 입은 자가 바로 안골 있던 적장 마다시(馬多時)라고 말했다. 내가 무상(無上) 김돌손(金乭孫)을 시켜 갈고리로 낚아 올린즉 준사가 좋아 날뛰면서 “그래 마다시다” 하고 말하므로 곧 명령하여 토막토막 자르게 하니 적의 기운이 크게 꺾였다. 우리 배들은 적이 다시 범하지 못할 것을 알고 일제히 북을 울리고 함성을 지르면서 쫓아 들어가 지자, 현자 대포를 쏘니 그 소리가 산천을 뒤흔들었고, 화살을 빗발처럼 쏘아 적선 서른한 척을 깨뜨리자 적선이 퇴각하고 다시는 우리 수군에 가까이 오지 못하였다. 싸움하던 바다에서 그대로 정박하고 싶었으나 물결도 몹시 험하고 바람도 역풍이라 형세 또한 위태롭고 외로워 당사도로 옮겨가서 밤을 지냈다. 이번 일은 참으로 천행이었다.(정유년 구월 열엿새, 명량해전이 있던 날) −771~776쪽




☑ 지은이 소개


이순신(李舜臣, 1545~1598)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여해(汝諧), 시호는 충무(忠武)이다. 1545년(인종 1) 3월 8일(양력 4월 28일) 한성부 건천동(현재 서울시 중구 인현동)에서 태어났다. 사화로 몰락한 문반 가문의 사형제 중 셋째였다. 이름 순신은 중국 삼황오제의 순(舜) 임금에서 따왔다. 어려서 유학을 공부했고 21세 때 혼인한 이후 병학과 무예를 배우기 시작했다. 28세 때 처음 무과에 응시했으나 낙방했고 32세 때 식년 무과에서 병과(丙科)로 급제했다. 무관으로서 승진과 좌천, 파면과 복직을 거듭하며 동구비보(현재 함경도 삼수)의 권관, 훈련원 봉사, 충청 병사 군관, 발포 만호, 함남 병사 군관, 건원보(현재 함북 경원) 권관, 훈련원 참군, 사복시 주부, 조산보(현재 함북 경흥) 만호 겸 녹둔도 둔전관, 전라순찰사 군관 겸 조방장 등을 거쳤다. 이어 선전관에서 정읍 현감으로 그리고 1591년 재상 유성룡의 천거로 전라좌도 수군절도사에 제수되었다. 다음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옥포해전을 시작으로 사천해전, 당포해전, 당항포해전, 율포해전, 한산대첩, 안골포해전, 부산포해전 등 크고 작은 전투에서 모두 승리를 거뒀다. 1593년 최초로 삼도수군통제사에 임명되었다. 1597년 조정을 기망하고 왕명을 어겼다고 해서 통제사 직에서 해임되고 투옥, 고초를 겪었다. 정유왜란의 와중에 옥에서 풀려나 도원수 권율(權慄) 밑에서 백의종군했다. 같은 해 7월(양력 8월) 원균이 이끌던 조선 수군이 칠천량해전에서 대패함으로써 궤멸 상태에 이르자 다시 삼도수군통제사에 임명되었다. 그리고 두 달 뒤 9월 16일(양력 10월 25일) 명량에서 13척의 배로 수백 척의 일본 수군을 물리쳤다. 1598년 11월 19일(양력 12월 16일) 임진왜란의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에서 적탄에 맞아 전사했다. 선조 37년(1604) 1등 선무공신에 책봉되었고, 인조 21년(1643) ‘충무(忠武)’의 시호를 받았다. 정조 17년(1793)에는 영의정에 추증되었고, 2년 뒤 ≪난중일기≫를 포함해 그의 문집인 ≪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가 간행되었다.




☑ 옮긴이 소개


이은상(李殷相, 1903~1982)

시조 시인이자 사학자이다. 호는 노산(蘆山)으로 1903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났다. 1923년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하고 일본 와세다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했다. 현대 시조의 개척자로서 ‘가고파’, ‘봄처녀’ 등의 작품을 발표했다. 광복 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해방 이후 호남신문사 사장, 대구 청구대 교수, 이충무공기념사업회 이사장, 대한민족문화협회장, 한국시조시인협회장, 안중근의사숭모회장, 독립운동사 편찬위원장, 영남대 교수 등을 지냈다. 언론, 학술, 사학 방면의 많은 저술을 남겼으며, 충무공 연구가로도 이름이 높았다. 1960년대 한학자들과 함께 ≪이충무공전서≫국역 작업에 참여했다. 전서본과 친필 초본을 합쳐 한글로 옮기고 주석을 달아 펴낸 ≪난중일기≫는 이후 나온 모든 국역본들의 바탕이 되었다. 역주해본 ≪난중일기≫와 함께 저서로 ≪노산 시조집≫, ≪조국 강산≫ 등 시조집과 ≪이충무공 일대기≫, ≪조선 사화집≫, ≪민족의 맥박≫, ≪노변필담≫, ≪피어린 육백 리≫ 등이 있다.





☑ 차례


임진(壬辰)...11

계사(癸巳)...71

갑오(甲午)...197

을미(乙未)...369

병신(丙申)...481

정유(丁酉) 하나...630

정유(丁酉) 둘...749

무술(戊戌)...821


작품 해설 ‘세세에 번쩍이는 역사의 면류관’...835

신구 시간 대조표...874

신구 지명 대조표...876

2014년 8월 14일 목요일

이익상 작품집



도서명 : 이익상 작품집
지은이 : 이익상
엮은이 : 박연옥
분야 : 한국 소설
출간일 : 2010년 3월 15일
ISBN : 9788964063323 03810
가격 : 16000원
규격 : 138 * 195 mm  제본 : 양장 쪽 : 180쪽.




☑ 책 소개

「지만지 고전선집」 제533권 『이익상 작품집』. 이 시리즈는 국내외 고전 작품을 정리한 책이다. 표지에 사용한 색상은 이 시리즈를 위해 개발한 고유 색상이며, 표지와 본문은 모두 친환경 재질을 사용했다. 초판본을 그대로 실을 수 없는 작품은 원전에 가장 근접한 것을 사용했다. 엮은이가 직접 작품 리스트를 선정하고 원전을 찾아냈으며 전문 해설을 덧붙였다.


☑ 지은이 소개

이익상
저자 이익상은 1895년 지금의 전라북도 전주시 태평동에서 전주 이씨 건한과 김해 김씨 성녀 부부의 두 형제 중 차남으로 출생했다. 본명은 이윤상(李允相), 호는 성해(星海). 

이익상의 문학적 행보는 한국 근대문학사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우선, 1920년 김억·남궁벽·우상순·황석우·변영로·나혜석·염상섭 등이 창간한 동인지 <폐허>에 참여했으며, 1921년 ‘도쿄 조선인유학생학우회’의 기관지인 <학지광> 편집부원을 지냈다. 1924년 김기진·박영희·안석영·김복진·연학년·이익상·이상화 등과 그들의 성과 이름의 머리글자를 따서 <파스큘라(PASKYULA)>를 결성하고 ‘인생을 위한 예술’ ‘현실과 투쟁하는 예술’ 운동을 표방했다. 1925년 파스큘라와 1922년 조직된 최승일·송영·김영팔 등의 좌익 문학 단체 <염군사>를 통합해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APF)>을 결성했다. 그러나 1926년 12월에 개최된 <카프> 임시 총회에서 자진 탈퇴하는데, 투철한 사회주의 이념으로 무장된 투사를 필요로 하는 조직과 부합되지 않는 그의 성격이 그 원인으로 보여진다. 
이익상은 1924년 9월 <조선일보> 기자로 출발해 1927년 11월 <동아일보> 학예부 기자와 학예부장을 역임한 뒤에 1930년 2월부터 <매일신보> 편집국장 대리로 재직하는 등 언론계에서 오랫동안 근무했다. 이익상은 당시 지식인들의 관심 분야인 영화와 연극에까지 폭넓은 관심과 활동을 전개해 나갔는데, 1926년에는 김기진·윤심덕 등과 함께 진보적 연극단체 <백조회>를 결성했으며, 1929년에는 김홍진·박승희·김팔봉 등과 동양영화사를 출범시키기도 했다. 같은 해에 이익상(<매일신보>)은 이서구(<매일신보>), 김기진(<중외일보>), 안석영(<조선일보>) 등 주요 신문사 영화 담당 기자들과 영화산업의 진흥을 위해 <찬영회>를 조직했다. <찬영회>에서는 출범 기념으로 최승희의 무용과 극단 토월회의 연극 공연, 영화 상영회 등을 개최했으나, 1931년 1월 나운규가 주도한 ‘찬영회 사건’을 계기로 해산했다. 
작가와 언론인으로, 그리고 문화운동가로, 당대 지식인들이 선망했던 이상적인 경력의 소유자인 이익상도 식민지 지식인의 생활고는 비켜 가지 못했다. 이익상은 불안정한 생활과 고혈압, 대동맥경화증 등 신병으로 오래도록 고생하였는데, 특히 투병 중이던 최서해에게 대량 수혈한 후유증으로 1935년 4월 유명을 달리했다. 
그가 남긴 주요 작품으로는 단편소설 <낙오자>(1919), <번뇌의 밤>(1921), <연의 서곡>(1924), <흙의 세례>(1925), <쫓기어 가는 이들>(1926), <그믐날>(1927) 등과 장편소설 ≪키 잃은 범선≫(<조선일보>, 1927. 1. 1.∼7. 19), ≪짓밟힌 진주≫(<동아일보>, 1928. 5. 5.∼11. 27), ≪그들은 어디로≫(<매일신보>, 1931. 10. 3.∼1932. 9. 29) 등이 있고, 작품집으로 1926년에 발표된 ≪흙의 세례≫(문예운동사)가 있다..



☑ 옮긴이 소개

박연옥
엮은이 박연옥은 1971년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대학원에서 현대문학(소설)을 공부하고 있으며, 현재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학위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2007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에 당선되어, 한없이 느린 걸음으로 비평 활동 중이다.



☑ 책 속으로

나는 ‘테로리스트’가 되지 못하엿다. 그러한 모험할 성격이 업는 것은 큰 유감이다. 명예와 공리만을 위하야 인간의 참생활에서 거리가 너무나 머른 단적(端的)문제만에 구니(拘泥)하는 이매망량(?魅??)과는 언제?지든지 길을 가티 할 수 업다. 나는 그러한 비열(卑劣)한 생활수단을 취하야 사회?으로 성공자가 되는 것보다 차라리 자긔 량심을 속이지 안코 진실(眞實)한 내면(內面)의 요구에 응(應)하기 위(爲)하야는 사회?으로 실패자(失敗者)가 됨을 도리혀 깃버한다. 

-<흙의 세례>



☑ 목차

해설 

지은이에 대해 



번뇌(煩惱)의 밤 
흙의 세례(洗禮) 
쫏기어 가는 이들 
그믐날 
어엽분 악마(惡魔) 



엮은이에 대해

2014년 8월 13일 수요일

현경준 작품집



도서명 : 현경준 작품집
지은이 : 현경준
엮은이 : 윤송아
분야 : 한국 소설
출간일 : 2013년 8월 1일
ISBN : 978-89-6680-980-6 03810
가격 : 16000원
규격 : 사륙판(128*188) 제본 : 무선 쪽 : 180쪽.




☑ 책 소개

함경도 출신으로 해방 이전에 주로 북쪽에서 활동한 현경준의 단편 하나와 중편 하나를 수록했다. <탁류>는 1935년 ≪조선중앙일보≫를 통해, <유맹>은 1940년 ≪인문평론≫을 통해 발표됐다. 현경준은 이외에도 만주에서 ≪만선일보≫를 통해 상당수 작품을 발표했다.
 



☑ 출판사 책 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의 ‘한국 근현대소설 초판본 100선’ 가운데 하나. 본 시리즈는 점점 사라져 가는 명작 원본을 재출간하겠다는 기획 의도에 따라 한국문학평론가협회에서 작가 100명을 엄선하고 각각의 작가에 대해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들이 엮은이로 나섰다.
1930∼1940년대의 표기법을 그대로 살렸다. 함경북도에서 태어나 만주와 북쪽 지역에서 활동한 작가 특유의 말맛을 느낄 수 있다.
 
<탁류>는 현경준이 중요하게 형상화하고 있는 지식인 사회운동가의 내면적 갈등과 저항의지를 다룬 작품이다. 앞서 밝힌 대로 현경준이 문학활동을 시작한 시기는 일제의 지속적인 탄압으로 인해 프로문학이 점차적으로 쇠퇴하고 이전의 사상운동과 사회활동들이 위축되었던 시기다. 사회운동가들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 열풍과 투옥 과정 속에서 이들은 전향하여 현실 타협적인 동조자로 살아가느냐, 아니면 끝까지 저항하고 투쟁하느냐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작가는 ‘명식’이라는 사회운동가를 등장시켜 이러한 갈등 상황을 어떻게 극복하고 타개해 나갈 것인가라는 문제의식을 제기한다.
작가는 명식을 옥죄는 절망적인 식민지 상황을 ‘검붉은 탁류’로 규정한다. 식민지 현실에 순응하고 타협하면서 그것을 합리화하는 작금의 현실을 비판하며 흙탕물과 오물로 범벅된 사회를 정화시키고 새로운 혁명의 물결로 암울한 현실을 극복해 나가야 함을 시사한다.
<유맹>은 ‘만주국 국책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선전문학의 일종’, ‘언론자유라고는 전혀 없는 상황 하에서 우회적으로라도 당시 조선민족의 실생활의 한 단면을 증언하여 보려는 노력’ 등 평가가 정반대로 엇갈린다.
<유맹>의 캐릭터는 두 인물군으로 나누어진다. 낙오된 폐인들과 범법자들을 교화, 선도하려고 희생과 감화 노력을 아끼지 않는 보도소 소장 측이 그것이다. 부락민들을 빛의 세계로 이끌어내겠다는 자발적이고 강한 의지로 특수부락을 책임지고 있는 소장은 상당히 모범적이고 본받을 만한 것으로 그려진다. 회의적이고 냉소적이던 명우를 적극적으로 신뢰하고 감화시켜 결국에는 국책에 걸맞은 인재로 소생시켜 내는 과정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작가의 시선은 좀 더 복합적인데, 보도소 소장의 긍정적인 측면을 부각시키면서도 이에 대한 부락민들의 상반된 반응을 냉정하게 제시하는 소설의 장면들은 일종의 반어적 효과를 자아낸다.
소장의 진심 어린 설교가 부락민들의 조소와 무관심 속에 부정되는 장면은 만주국의 국책이 은연중 부정되고 도외시됨을 시사한다. 이러한 작가의 시선은 마침내 개심하고 새 일꾼으로 거듭나기로 결심한 명우와는 달리, 끝내 개심을 거절하고 구류소로 끌려가는 과거의 사회운동가 규선, 그리고 자살로 생을 마치는 규선의 처를 결말에 제시한 의도와도 일맥상통한다. 즉 표면적으로는 만주국의 교화정책에 적극적으로 동조하고 부응하는 듯 보이지만, 그 이면에서는 은밀하게 그 정책을 조롱하고 거부함으로써, 소극적인 저항의 형태를 보여 준다.
 




☑ 책 속으로

**≪현경준 작품집≫, <유맹>, 50~52쪽
 
“어째서? …어째서 거짓말인가?”
질문이 아니라 괴롬을 못 이겨 불으짖는 신음소리다.
“거짓말이 아니구요. 일확천금이 어째서 비현실적이구 꿈이라는 말이우?”
병철의 태도는 더한칭 툭명스러워진다.
소장은 또 한동안이나 말없이 내려다보다가 이번에는 확 내뿜듯이 노긔를 잔뜩 띄고 반문한다.
“그럼 그것이 현실적이라는 것을 증명해 보게.”
“얼마든지 하지요. 현재, 지금 누구니 누구니 하며 돈푼씩이나 지니구 뽐내는 그들 중, 자초부터 한 푼 두 푼씩 바른 노릇을 해서 모은 것을 가지구 부자라는 이름을 띈 자가 그래 몇이나 됩니까? 전부가 일확천금을 한 것이라구 해두 틀리진 않겠지요.”
“그렇지만 자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부정업을 해서 얻은 것이야 아니지.”
“천만에 말슴입니다. 그들의 사업은 전부가 밀수가 아니면 부로카 노릇이었지요. 그두 대낮에 공공연하게 한 축이랍니다. 멀리를 생각지 마시구 전번에두 목단강(牡丹江)에서 소장님을 찾아왔지만, 그 무슨 회사 사장인지 한 그 양반이 자초에는 무슨 업을 해서 그렇게 돈을 쥐였는지 아십니까? 자초에는 도문(圖們) 개척 시에 밀수를 굉장히 해서 돈푼이나 쥐었으니까 아쥐 지금 회사두 그때에 얻은 것으루 된 것임에 틀림없겠지요.”
소장의 낯색은 새파랗게 질려간다. 그는 무에라고 말하려고 씩은거리기는 하나 입술만 푸들푸들 떨릴 뿐 종시 입은 열지 못한다.
모다들 킥킥거리며 조소하는 그 속에서 병철은 자못 통쾌한 듯 빙글거리기까지 하며 옆채기에서 천천히 담배갑을 꺼내는 것이었다.
 



☑ 지은이 소개

현경준(玄卿駿)은 1909년 2월 29일, 함경북도 명천군 하가면 화태리에서 태어났다. 경운생(耕雲生), 금남(錦南)이라는 호를 썼으며, 김경운(金卿雲)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도 했다.
1925년 경성고보에 입학했다가 1927년 3학년 1학기에 ‘당시(當時) 거세게 밀려온 시대(時代)의 조류(潮流)’(좌익사상운동)로 인하여 학업을 중단하고 시베리아로 가서 사회주의를 체험하며 유랑생활을 한다. 1929년 귀국하여 평양숭실중학, 일본 동경의 모지 도요쿠니(門司豐國)중학, 일본 관서대학 등에서 공부하다가 사상사건에 연루되어 학교를 중퇴하고 귀국했다. 이후 만주로 이주하여 1937년부터 1940년 7월까지 북간도(연변) 도문의 백봉국민우급학교에서 교원생활을 하였고 1940년 8월부터 ≪만선일보≫에서 반 년 간 기자생활을 하였다. 1934년 9월 ≪조선일보≫에서 주최한 ‘혁신기념사업장편소설응모’에 중편소설 <마음의 태양(太陽)>이 이석(二席)으로 입선돼 문단에 데뷔한다. 1935년 1월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격랑(激浪)>이 당선되면서부터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시작한다.
1945년 광복 후 북한에서 활동한 현경준은 함경북도 예술공작단 단장, 조소문화협회 함경북도위원장, 문학동맹 함경북도위원장 등을 역임하면서 1949년 중편소설 <불사조>를 발표하였고, 1950년 6·25전쟁 때 종군작가로 참전했다가 1950년 10월 전사했다.
 



☑ 엮은이 소개

윤송아(尹頌雅)는 이화여대 기독교학과와 경희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경희대 국어국문학과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 강사로 재직 중이다.
주요 논문으로는 <재일조선인 문학의 주체 서사 연구-가족 ․ 신체 ․ 민족의 상관성을 중심으로>, <≪8월의 저편≫에 나타난 ‘일본군 성노예’ 재현의 의미>, <경계를 와해하는 ‘무국적자’의 레토릭-金城一紀, ≪GO≫를 중심으로-> 등이 있으며, 저서로는 ≪재일코리안 문학과 조국≫(공저), ≪내가 처음 읽는 페미니즘 소설≫(편저), ≪현경준 작품집≫(편저), ≪오유권 작품집≫(편저), ≪백두산≫(편저) 등이 있다.
 



☑ 목차

탁류(濁流)
유맹(流氓)
一. 최초(最初)의 탈주(脫走)
二. 부락점묘(部落點描)
三. 천국도(天國圖)
四. 양심(良心)의 잔편(殘片)
五. 마음의 금선(琴線)
六. 지옥(地獄)으로 가는 길
七. 빛과 어둠
 
해설
지은이에 대해
엮은이에 대해

2014년 8월 12일 화요일

초판본 조명희 단편집




도서명 : 초판본 조명희 단편집
지은이 : 조명희 지음 
옮긴이 : 이정선 엮음
분야 : 한국 근현대 소설
출간일 : 2012년 6월 1일
ISBN : 978-89-6680-364-4  (00810)
16000원 / A5 제본 / 171쪽



☑ 책 소개


포석(抱石) 조명희가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한 것은 1920∼1928년으로 짧은 기간이었다. 그러나 그 기간에 동시를 포함한 시와 희곡, 수필과 평론 등을 모두 아울러, 한반도와 일본과 소련 등으로 옮겨 다니며 민족의 수난기를 관통한 작가 자신의 체험과 맞물려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의 작품 세계는 두 가지 모습, 즉 1925년 무렵을 경계로 한 초기의 관념적·신비적·종교적인 시와 희곡 그리고 후기의 현실주의적 소설을 보여 준다.




☑ 출판사 책 소개

조명희는 1925∼1928년에 단편소설 12편을 창작했다. 처음에는 가난과 식민지 현실을 그렸고 <낙동강> 이후에는 주로 혁명적인 투쟁을 다루었다. 많지 않은 작품들 가운데에서도 이런 차이가 보이는 것은, 1925년 8월에 카프가 창립된 것과 연관해서 생각할 수 있다. 조명희는 카프 회원으로 가입해서, 카프의 열성적인 비해소파로 꼽히는 이기영, 한설야와 이념적인 동지로서 두터운 교분을 가지며 무산자 계급 운동에 가담하고, 식민지 통치에 억압받고 있는 빈궁의 민족적 현실을 고발하는 작품을 발표하는 한편 카프의 방향 설정에도 남다른 관심을 보여왔다.
<땅속으로>(≪개벽≫, 1925. 2∼3)는 그동안 관념적 시를 주로 쓰던 조명희가 문학적인 변신을 선언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동경 유학 때에 사회주의 혁명에 대해 동조하던 조명희는, 귀국 후 ≪시대일보≫ 기자로 일하면서 이 작품을 발표했으며, 이해 8월에 창립된 카프의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당시 ≪시대일보≫의 사장은 홍명희였고, 학예부에는 김기진, 이기영, 최승일, 진학문, 염상섭, 나도향, 김동인, 이상화, 안석영, 김우진, 현진건, 최학송, 양백화, 방인근 등이 기자로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조명희가 카프의 창립 회원이 된 것도 이 ≪시대일보≫ 인맥과 연관해서 이해되기도 한다.
조명희의 초기 시나 희곡에서 그려진 세계는 온갖 비(非)가치만이 지배하는 곳으로 결코 진리에 이를 수도, 참된 가치를 실현할 수도 없는 속악한 곳이어서 오직 그에 대한 저주와 혐오만이 가능했다. 하지만 <땅속으로>에서의 세계는 세계 내에서 가치의 실현이 가능하다는 인식 전환을 보여준다. 자기가 속한 현실 그리고 그 모두에 대한 원인으로서의 일제의 성격 규정에 이르기까지 분명히 드러낸다. 또한 자전적인 소설로서, 동경에서 유학하고 온 작가가 조선의 현실과 자신의 처지에 절망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농촌 사람들>(≪현대평론≫, 1927. 1)은 <땅속으로>에 여전히 남아 있던 관념성이 제거되어 있다는 점에서 보다 현실주의적인 작품이다. 이는 주인공의 설정이 지식인에서 당시의 기층민인 농민으로 바뀌었다는 것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서 보여주는 현실은 전망 부재의 상태이기는 하지만, 현실 그 자체에 관심을 집중시킴으로써 포석 문학 전체에서 약간 이질적인 중요성을 갖는다. 결말은 당시 현실의 구조적 악에 대한 개인의 항거가 무기력하고 현실적으로 패배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낙동강>(≪조선지광≫, 1927. 7)을 비롯하여 이후에 쓰인 <춘선이>(≪조선지광≫, 1928. 1)와 <아들의 마음>(≪조선지광≫, 1928. 9) 등은 뚜렷한 목적의식을 지닌 혁명가·투사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더 이상 가난과 빈궁의 원인을 식민지 현실에서만 찾는 것이 아니라 사회구조에서 찾고, 가난을 그리는 것뿐만이 아니라 계급적인 투쟁을 보여 준다. 그리고 여기에는 이국과 미래 세계에 대한 동경으로 낭만적인 요소가 표현된다. 문제작으로 꼽히는 <낙동강>은 이론을 앞세워 카프계와 민족진영이 논전(論戰)을 벌이던 문단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민요적인 그 지방 노래와 함께 재래의 과열된 이념이나 경제 투쟁 일변도적인 수준을 넘어선다.
<춘선이>는 가난을 그리는 것뿐만 아니라 앞서 살핀 <농촌 사람들>과 달리 이 작품에서는 폭력이나 자살이 아니라 계급적인 투쟁으로 현실 문제에 대응한다. 또한 주인공이 떠나지 않고 조선에서 계급투쟁을 한다는 것도 다른 작품들과 구별되는 특징이다.
포석의 마지막 작품인 <아들의 마음>은 일본에서 일하다가 다친 노동자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은 중국에서 조선인 여자가 비행사로 성공했다는 것을 듣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게 되며, 메이데이 행사에 참가하기로 한다. 작가의 동경 대상은 미래 세계고, 그 미래 세계는 사회주의 국가다. 민족해방을 위해 일을 할 것을 강조하는 행위에는 “세계 무산계급 해방”을 위해서라는 구체적 목표가 드러나 있다. 그러나 그 목표는 막연한 관념으로 제시될 뿐이다. 의지적 인물을 집중 부각시킴으로써 <낙동강>에서 배경의 역할로나마 수용되었던 현실이 아예 배제되어 버리는 결과를 낳는다.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조명희는 소련으로 망명한다. 그 곳에는 일제의 검열이 없으므로 산문시 <짓밟힌 고려>에서처럼 마음껏 일제를 지탄하고 한반도의 처절한 수난상을 그릴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 소련도 그 내부의 정치적 혼란으로 인해 온전한 자유로움이 보장되지 못했고 조명희는 곧 당과 작가동맹의 강압적인 지시에 의해 강렬하고 구호적인 작품을 쓰게 된다. 이는 이후 조명희의 제자들인 고려인 문인들이 산출한 정치색이 짙은 송가문학에서도 많이 드러난다.




☑ 책 속으로

‘그대는 평시에 날더러, 너는 최하층에서 터져나오는 폭발탄이 되라, 하얏나이다.
올소이다, 나는 폭발탄이 되겟나이다.
그대는 죽을 때에도 날더러, 너는 참으로 폭발탄이 되라, 하얏나이다.
올소이다, 나는 폭발탄이 되겟나이다.’
이것은 뭇지 안어도 로사의 만장임을 알 수 잇섯다.
―<낙동강>에서




☑ 지은이 소개

조명희(1894~1938)
조명희는 1894년 8월 10일 충북 진천군 진천읍 벽암리에서 부친 조병행과 모친 연일 정 씨 사이의 4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누대에 걸친 지배계급으로서의 가정환경은 조명희의 현실 인식의 밑바탕이 된다.
1907년경에 13세로 네 살 위인 여흥 민씨와 결혼했는데, 애정이 전제되지 않은 이 조혼은 이후 그가 가정 자체를 거부하는 것으로까지 확산된다. 이 무렵 포석은 진천사립소학교를 다녔고 졸업 후에는 서울로 유학하여 셋째 형 집에서 중앙고등보통학교를 다니다가 당시 유행하던 ‘영웅숭배열(英雄崇拜熱)’에 들떠서 북경사관학교에 들어가려고 고보를 그만두게 된다. 하지만 집으로 붙들려 오게 되고 이때 포석은 ‘소일 격(消日格)으로 소설(小說)이란 것을 읽’으며 문학을 접하게 된다.
1919년에는 3·1운동에 참여했다가 체포되어 몇 개월 동안 감옥 생활을 하고 동경으로 가서, 동양대학 인도철학윤리학과에 청강생으로 적을 두고 유학생들의 모임인 학우회 활동을 한다. 이때 와세다 대학 영문과에 재학 중이던 김우진을 만나게 되는데, 둘은 문학상의 영향을 서로 주고받으며, 포석은 이 인연으로 희곡을 창작하고 연극에 관심을 갖게 된다. 또한 일시적이나마 무정부주의 계열인 흑도회(黑濤會)에 가입해서 사상운동도 체험하게 된다. 동경에서의 생활은 힘든 것이었다. 기울어져 가는 가세로 학비를 전적으로 해결해 줄 수는 없는 일이어서 포석은 학비 구걸을 해야 했다. 그러나 가난이 그에게 상당한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은 그가 생활인으로서의 책임을 강요당할 때, 즉 귀국한 후이다. 1923년 초, 포석은 어려웠지만 자유로울 수 있었던 유학을 중도에 끝내고 귀국한다. 1924년에는 시집 ≪봄 잔디밭 위에≫를 펴냈다. 가족에 대한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강요받는 이즈음에야 그 ‘고통의 떡메’와 같은 현실은 그의 의식 속에 자리를 잡게 된다. 1925년 무렵 포석은 ≪시대일보≫ 학예부 기자로 근무한다. 그가 투르게네프의 <그 전날 밤>을 번역, 연재하는 것도 이 무렵이다. 1925년 8월 창립된 카프 회원으로 가입해 카프의 열성적인 비해소파로 꼽히는 이기영, 한설야와 이념적인 동지로서 두터운 교분을 나누었다. 1925년에서 1928년까지는 조명희의 창작 기간 중에서 가장 활발한 시기다. 이 시기에 그는 단편소설 12편과 시, 수필, 평론 등을 발표했다.
1928년 여름 망명 직전에 포석은 가족을 이끌고 성공회교회에서 세례를 받은 바 있는데, 그 심경은 짐작할 길이 없다. 그리고 얼마 후 모친에게만 하직 인사를 하고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포석은 종적을 감추었다. 하루쯤 지나 한 학생이 쌀 한 가마를 들여주면서 ‘선생님이 떠나셨다’고 알려줘서야 가족들은 비로소 그의 가출을 알았으며, 망명 사실은 한참 뒤 포석에게서 단 한 번 온 편지로 알았다고 한다. 망명 후 포석은 연해주 신한촌의 중학교와 우수리스크 조선사범전문학교에서 교편을 잡았고, 1931년에 황명희와 재혼했다. 구한말 전후에 두만강 건너 블라디보스토크 중심의 연해주 지역에 모여 살던 한인들의 한글 신문인 ≪선봉≫에 정기적인 문예 페이지를 마련했던 조명희는, 10년 가까이 수많은 현지의 한인 청년들에게 한글 문학을 지도했다. 강태수, 김기철, 김증송, 김광현, 조기천, 김두칠, 연성용, 태장춘 등이 포석의 제자다. 이들은 1937년에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 된 후로 카자흐스탄 알마티 등에서 ≪선봉≫의 후신인 ≪레닌기치≫(현 ≪고려일보≫)를 창간하고 그것을 중심으로 한글 문단을 형성해 왔다.
1934년 소련작가동맹의 맹원이 되기도 한 포석은 단편소설과 시, 동요, 희곡, 장편소설 등에 걸치는 폭넓은 작품 활동을 했다. 1937년에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되기 직전, 익명의 편지에 의해 체포되고 1938년 5월 11일에 총살당했다. 당시 가족들은 이런 정황을 제대로 알지 못했으며, 아직까지도 조명희의 무덤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진 바가 없다. 하지만 1956년 소련 정부 당국에 의해서 조명희에 대한 과거의 잘못된 결정을 파기하여 복권시킨 후에, 소련 과학원에서 한글판 ≪조명희 선집≫(1959)이 간행되었다. 그리고 1988년에는 그의 자녀가 살고 있는 우즈베키스탄의 타슈켄트 소재 국립 나보이 문학박물관에 ‘조명희 문학기념실’이 열린 데 이어 1992년에는 타슈켄트에 ‘조명희 거리’가 조성되었다.




☑ 엮은이 소개

이정선
경원대학교 국어국문과 졸업했다. 경희대학교 대학원에서 <최인훈 소설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경희대에서 강의하고 있다. 요즘은 조명희를 비롯해 구소련 지역 고려인의 문학을 탈식민주의적 관점에서 살피고 있다. 한반도의 상황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재외 한민족이 처한 다양한 상황과 문학작품을 통해서 일제 식민주의와 맞물린 우리의 근대를 새롭게 조망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 목차

낙동강(洛東江)
땅속으로
춘선이(春先伊)
농촌(農村) 사람들
아들의 마음

해설
지은이에 대해
엮은이에 대해



2014년 8월 11일 월요일

초판본 계용묵 작품집


도서명 : 계용묵 작품집
지은이 : 계용묵
엮은이 : 강상희
분야 : 한국 소설
출간일 : 2009년 5월 15일
ISBN : 978-89-622-8223-8  (03810)
가격 : 16000원
규격 : 128 * 188 mm   제본 : 양장  쪽수 : 142쪽





☑ 책 소개

「지만지 고전선집」 제286권 『계용묵 작품집』. 이 시리즈는 국내외 고전 작품을 정리한 책이다. 표지에 사용한 색상은 이 시리즈를 위해 개발한 고유 색상이며, 표지와 본문은 모두 친환경 재질을 사용했다. 초판본을 그대로 실을 수 없는 작품은 원전에 가장 근접한 것을 사용했다. 엮은이가 직접 작품 리스트를 선정하고 원전을 찾아냈으며 전문 해설을 덧붙였다.



☑ 지은이 소개

계용묵

1904년 9월 8일~1961년. 평북 선천 태생. 본명은 하태용(河泰鏞). 한국의 소설가. 삼봉공립보통학교를 졸업 후 서당에서 수학했다. 휘문고보를 거쳐 1928년 일본에 건너가 토요대학 동양학과에서 수학했다. 1920년 소년지 ‘새소리’에 시 ‘글방이 깨어져’가 2등으로 당선된 바 있으며 1925년 시 ‘부처님, 검님 봄이 왔네’가 ‘생장’의 현상 문예에 당선되었다. 1927년 ‘조선문단’에 소설 ‘최서방’이 당선되고, 1928년 ‘조선지광’에 ‘인두지주(人頭蜘蛛)’가 발표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전개하였으며, 1935년 ‘조선문단’에 ‘백치 아다다’를 발표하면서 작가로서의 지위를 확보하였다. 1938년에 조선일보사 출판부에서 근무하였으며, 1943년에는 일본왕 불경죄로 2개월간 수감되기도 했다. 1945년 광복 직후에 좌우익 문단의 대립 속에 중간적 입장을 지키며 정비석과 함께 ‘조선’을 창간하였다. 1961년 ‘현대문학’에 ‘설수집(屑穗集)’을 연재하던 중 타계하였다. 1944년 소설집 ‘병풍에 그린 닭이’, 1946년 ‘백치 아다다’, 1950년 ‘별을 헨다’ 등과 1955년 수상집 ‘상아탑’을 남겼다. 작품 경향은 초기에는 현실주의적이고 경향파적이었으나, 1935년 ‘백치 아다다’ 이후에는 인생파적이며 예술파적인 작품 경향을 보였으며. 차차 예술지상주의적 작품을 썼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 책 속으로

아다다는 상쾌하기 그지없었다. 밀녀 나려가는 무수한 그 지전들은 자기의 온갔 불행을 모다 거누워갖이고 다시 도라올 길이 없는 끝없는 한바다로 나려갈 것을 생각할 때 그는 춤이라도 출 듯이 기꺼웠다. 그러나 그 돈이 완전이 눈앞에 보이지 않게 흘너 나려가기까지에는 아직도 몇 푼 동안을 요하여야 할 것인데 뒤에서 허덕거리는 발자욱 소리가 들니길내 도라다보니 수룡이가 헐덕이며 달여오는 것이 않인가. -백치 '아다다'



☑ 목차

해설 
지은이에 대해 

최 서방 
인두지주 
백치 아다다 
마부 
바람은 그냥 불고 

엮은이에 대해

방인근 작품집




도서명 : 방인근 작품집
지은이 : 방인근
옮긴이 : 임정연
분야 : 소설
출간일 : 2010년 03월 15일
ISBN :  978-89-640-6312-5
12,000원 /  175쪽 / 138 * 195 mm






☑ 책 소개

「지만지 고전선집」 제513권 『방인근 작품집』. 이 시리즈는 국내외 고전 작품을 정리한 책이다. 표지에 사용한 색상은 이 시리즈를 위해 개발한 고유 색상이며, 표지와 본문은 모두 친환경 재질을 사용했다. 초판본을 그대로 실을 수 없는 작품은 원전에 가장 근접한 것을 사용했다. 엮은이가 직접 작품 리스트를 선정하고 원전을 찾아냈으며 전문 해설을 덧붙였다.



☑ 지은이 소개

저자 춘해(春海) 방인근은 1899년 12월 29일 충청남도 예산에서 태어나 배재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의 아오야마학원(靑山學院) 중등부를 거쳐 주오대학(中央大學)에서 독문학을 전공했다. 그는 19세기 태생의 마지막 문인으로 1975년 1월 1일 삶을 마감할 때까지 전 생애에 걸쳐 100여 권의 소설 작품을 남긴 다작(多作)의 작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20년대 초기 작품들을 제외한 대다수가 통속대중소설로 분류됨에 따라 방인근은 문학 연구자들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방인근에 대해 기존의 문학사는 작가로서가 아닌 문예지 <조선문단(朝鮮文壇)>의 창간자로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1924년 창간된 <조선문단>은 순수문학을 표방하는 종합 월간 문예지로, 같은 시기 문단을 풍미했던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의 경향파 문학에 대항하는 민족주의 문학파의 거점 역할을 했다. 부유한 포목상의 아들이었던 방인근은 처남인 전영택과 이광수의 권유를 받아들여 사재(私財)를 내어 이광수를 주재(主宰)로 한 문예 잡지 <조선문단>을 창간했다. 당시 <조선문단>은 최서해, 채만식, 박화성, 이장희 등의 문인을 배출한 문단의 등용문이었을 뿐만 아니라, 김동인의 <감자>, 나도향의 <물레방아>, 현진건의 <B사감과 러브레터>, 계용묵의 <백치 아다다> 등 수많은 문제작들의 산실 노릇을 톡톡히 함으로써 한국문단의 육성에 기여한 바가 컸다. 이광수에 이어 5호부터 방인근 자신이 편집을 주도하다가 1926년 재정난으로 판권을 남진우에게 넘기기까지 방인근은 ‘황금시대’를 구가한 <조선문단>의 중심에 있었다. 
이후 방인근은 1927년 숭덕중학(崇德中學)에서 교편을 잡고, 1929년 기독교신보사(基督敎申報社)에 입사해 일하기도 했으나, 곧이어 <문예공론(文藝公論)> 편집장(1930), <신생(新生)> 편집장(1931년), <시조(時兆)> 편집장(1935) 등을 역임하면서 잡지와의 인연을 이어갔다. 1954년에는 춘해프로덕션 사장을 맡으며 영화에 잠시 간여하기도 했다. 
작가로서 방인근은 초기에 <하늘과 바다>(1923) 등의 시를 쓰기도 했으나 소설로 전향하여 <눈 오는 밤>(1920), <어머니>(1924), <비 오는 날>(1924), <살인(殺人)>(1924), <죽지 못하는 사람들>(1925), <자동차 운전수>(1925) <마지막 편지>(1925), <최 박사>(1926), <강신애>(1926) 등 30여 편의 단편들을 발표한다. 그러나 방인근이 본격적으로 작가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30년대 들어 신문에 대중소설을 연재하면서부터인데, <마도(魔都)의 향불>(1932), <방랑의 가인>(1933), <쌍홍무(雙紅舞)>(1936) 등이 이 시기의 대표적인 장편소설들이다. 해방 후에도 <인생극장>(1954), <청춘야화>(1955) 등 애정, 추리, 탐정을 소재로 한 통속대중소설에 몰두해 대중들의 관심과 인기를 얻었다. 이 밖에도 <금십자가(金十字架)>(1932) 외 몇 편의 희곡과 <농민문학과 종교문학>(1927) 등의 평론이 있다. 
당대의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과 관심을 받았음에도 문학사에서 작가로서 가치를 평가받지 못한 방인근, 그의 말로는 비참했다. 1954년 가산을 정리해 설립한 춘해프로덕션의 운영이 어려워지고 그가 발표한 소설들이 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판매되지 못했던 탓에 삶이 피폐해졌던 것이다. 숱한 연애 편린과 전설적인 주당(酒黨), 잡지 발간자, 대중소설로 이름을 알렸으되, 문학사로부터 그 이름 앞에 작가라는 명예로운 직함을 부여받지 못했던 풍운아 방인근은 1975년 파란만장하고 자유분방했던 생을 조용히 마감한다.




☑ 옮긴이 소개

역자 임정연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1920년대 연애 담론 연구?지식인의 식민성을 중심으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 논문은 1920년대 ‘연애’의 공론화 과정을 추적하고 연애 서사를 분석해 ‘연애’가 배타적인 독서 경험을 통해 구성된 지식인의 특권적 소통 형식이라는 점을 규명한 논문이다. 기존의 연구가 ‘연애’를 근대 체현의 특수한 양식이라는 측면에서 논의해 왔던 것에서 나아가, 연애를 식민 담론의 제도적 장치라는 관점에서 접근해 당시 유행했던 연애 열풍의 실체에 대한 성찰적 시각을 제공하고자 했다. 
논문으로는 <홍명희의 ≪임꺽정≫ 연구>, <1920년대 연애 담론 연구?지식인의 식민성을 중심으로>, <근대성의 경험과 근대 극복의 신화?이광수 ≪사랑≫론(論)>,<‘회복’의 서사와 ‘축제’의 현상학?황석영 ≪손님≫론>, <식민지 지식인의 연애와 일상>, <연애 불능에 관한 역설: 나르시시즘에서 타자성으로>, <근대 젠더 담론과 ‘아내’라는 표상> 등이 있으며, 엮은 책으로는 ≪임노월 작품집≫이 있다.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국어문화원 박사 후 연구원으로 이화여자대학교 등에서 강의하고 있다.




☑ 목차

해설
지은이에 대해

눈 오는 밤
어머니
살인(殺人)
자동차 운전수(自動車 運轉手)
마지막 편지

엮은이에 대해

2014년 8월 8일 금요일

조선 형사 홍윤식



도서명 : 조선 형사 홍윤식
지은이 : 성기웅 지음
분야 : 한국 희곡
출간일 : 2014년 2월 13일
ISBN : 979-11-304-1117-0 (04680)
가격 : 12800원
규격 : 사륙판(128*188) 제본 : 무선 쪽 : 204쪽




☑ 책 소개

**<지만지한국희곡선집>은 개화기 이후부터 현대까지 문학사와 공연사에 길이 남을 작품을 선정했습니다. 희곡 연구와 창작을 돕고 공연에 활기를 불어넣기를 기대합니다.
 
**소화 8년(1933년) 봄, 경성 죽첨정(현재 충정로) 금화장 고갯길에서 갓난아기의 잘린 머리가 발견된 사건을 파헤치는 미스터리 연극이다. 2부 9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봉관이 쓴 ≪경성기담≫에 실린 “죽첨정 단두 유아 사건” 에서 소재를 취했다.
 



☑ 출판사 책 소개
 
극은 마리아가 사건 당시를 회상하는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금화장 고갯길에서 어린아이의 잘린 머리가 발견되자 장안이 발칵 뒤집힌다. 경찰부장은 과학 수사를 통해 사건을 해결하겠다는 방침을 내리고, ‘사건 발생 열 시간 이내, 피해자는 만 1세 내외 남아’라는 법의학적 소견을 바탕으로 수사를 지시한다. 이에 서대문경찰서 사법계의 이노우에 주임 이하 노마, 홍윤식, 임정구 등 형사들이 수사에 착수한다. 일본에서 막 부임해 온 조선의 셜록 홈즈(극 중 샤아록 호움즈) 홍윤식은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수사를 통해 사건 해결의 단서를 찾아간다. 반면 임정구는 심문을 통해 용의자 자백을 받아내 사건을 해결하려 한다. 수사가 좀처럼 성과를 내지 못하는 가운데 아이의 머리통을 쌌던 ‘하트롱’ 봉투를 단서로 수사를 진행하던 홍윤식이 피해자 가족일지도 모를 한창우, 한영이 남매를 찾는다. 그러자 이노우에 주임은 한창우의 죽은 딸 기옥이의 무덤을 파헤치도록 지시한다. 우여곡절 끝에 찾아낸 기옥이의 무덤에서는 머리통이 잘려 나간 채 몸뚱아리만 남은 아기 시체가 발견된다. 기옥이의 고모인 한영이가 간질병 앓는 손주를 위해 어린아이 뇌수를 구하고 있던 어느 부잣집 영감에게 기옥이의 머리통을 팔아넘긴 것이다. 이로써 사건은 급히 종결되지만, 홍윤식은 처음 발견한 아이의 머리가 기옥이 것인지에 대해 여전히 미심쩍어한다. 사건 종결 이후 이노우에는 공을 인정받아 내지로 발령받고, 임정구는 만주로 떠난다. 홍윤식 역시 홀연 경찰서를 떠난다
2007년 4월에 김재엽 연출, 극단 드림플레이 제작으로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에서 초연했다. 관객 호응에 힘입어 7월부터 9월까지 문화공간 이다 2관에서 재공연했다. 2010년 7월 부산문화회관 소극장에서 부산시립극단 제38회 정기공연으로 무대에 올랐을 때는 작가가 직접 연출을 맡았다.
 



☑ 책 속으로

마리아: 그래 나는 홍 상이 다시 나타나는 날을 기대립니다. 그른 날이 오기만 헌다면야 홍 상이 이얘기 숙에서만 살아 있는 자가 아니래는 건 자연 밝히어질 테니까요. 혹여래두 참말 그른 날이 온다면요, 난 홍 상에게 샤아록 호움즈와두 같이 탐정 사무소를 열 것을 권할 작정이에요. 그리구 나는 그 조수가 되길 청하겠지요.
허지만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 버렸에요. 그래 홍 상의 모습은 내 머리숙에서조차 하로하로 흐릿해져만 가구, 사람들한테 내 이른 이얘기는 그저 한 자락 옛이얘기루만 여기어져 간답니다.
 
≪조선 형사 홍윤식≫ 189쪽
 



☑ 지은이 소개

성기웅은 1974년에 태어났다. 2004년, 직접 쓰고 연출한 <삼등병>에서 강압적인 군대 조직 안에서 갈등하는 동시대 젊은이들의 초상을 독특한 감각으로 그려 내며 평단의 주목을 끌기 시작했다. 이후 <조선 형사 홍윤식>(2007), <소설가 구보 씨의 경성 사람들>(2007) 등을 통해 일제시대와 근대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드러냈다. 아픈 역사 가운데서도 낭만을 포착해 예리하게 묘사하는 능력을 보여 준다. 문학적 감수성과 언어적 상상력을 겸비한 극작과 섬세하면서도 재기 발랄한 연출을 선보이며 극작가 겸 연출가로 활동 중이다. 2006년부터 2009년까지 히라타 오리자의 <과학하는 마음> 3부작을 번역, 연출했고, 2011년에는 <과학하는 마음−숲의 심연 편>을 각색, 연출했다. 그 밖에 대표작으로는 <깃븐 우리 절믄 날>(2008), <소설가 구보 씨의 1일>(2010), <다정도 병인 양하여>(2012)가 있으며 체호프의 <갈매기>를 각색한 한일 합작 연극 <가모메>(2013)를 쓰고 협력 연출로 참가했다. 대한민국연극대상 작품상(2011), 오늘의젊은예술가상(2013), 두산연강예술상(2013) 등을 수상했다. 현재 극단 제12언어연극스튜디오를 이끌고 있다.
 



☑ 목차

나오는 사람들···················3
작가의 일러두기··················7
 
제1부······················9
제1장 사건 발생(事件發生)···········11
제2장 현장(現場)················24
제3장 무당 이성녀···············39
제4장 실가아(失家兒)를 찾아서·········55
제5장 쌀봉투와 뻐꾸기·············75
제2부·····················105
제6장 뻐꾸기 울음···············107
제7장 염리 공동묘지··············134
제8장 사건 종결(事件終結)···········168
제9장 남은 이야기···············183
 
<조선 형사 홍윤식>은·············191
성기웅은····················1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