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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월 16일 화요일

조지프 앤드루스/섀멀라(Joseph Andrews/Shamela)


도서명 : 조지프 앤드루스/섀멀라(Joseph Andrews/Shamela)
지은이 : 헨리 필딩(Henry Fielding)
옮긴이 : 김성균
분야 : 영국 소설
출간일 : 2014년 7월 25일
ISBN : 979-11-304-1989-3  03840 
가격 : 42000원
사륙판(128*188) / 무선 / 832쪽





☑ 책 소개

영국 최초의 근대적 소설은 리처드슨이 쓴 ≪패멀라≫(1740)이다. 1년 뒤 이 작품을 패러디한 ≪섀멀라≫가 나왔다. 이어 다음 해엔 ≪섀멀라≫의 스핀 오프인 ≪조지프 앤드루스≫가 나왔다. 작가 헨리 필딩은 ≪섀멀라≫, ≪조지프 앤드루스≫ 모두 익명으로 간행했다.


☑ 출판사 책 소개

≪패멀라≫는 1740년 11월 8일에 발표되었다. 내용은 패멀라라는 아가씨가 귀족인 B 씨의 성적 유혹과 훼절 시도에도 불구하고 순결(또는 덕성. 원어는 virtue)을 지키려 애쓴다는 내용이다. B 씨는 마침내 패멀라의 덕성에 반하고 한갓 노리개가 아닌 진심으로 패멀라에게 접근, 청혼한다.
≪패멀라≫가 출판되고 넉 달 정도 지났을 때(1741년 4월 2일), ≪미시즈 섀멀라 앤드루스 -여주인공의 생애를 위한 변호-≫라는 제목 아래, “≪패멀라≫라는 책의 파렴치한 수많은 허위와 왜곡을 폭로하고 입증하며…”라는 문구로 시작하는 긴 부제가 달린 책 한 권이 익명으로 나왔다. “섀멀라”는 “패멀라”의 첫음절 “팸(Pam)”을 “섐(Sham, 속임수, 가짜, 속이다, 기만하다)”으로 바꾼 것이다. 패멀라의 실체(본명)가 섀멀라라고 주장한다. 이 작품은 제목은 물론 내용도 패멀라의 모든 덕성스러움을 흉하게 흉내 내고 왜곡했다. 패멀라는 순결(virtue) 그 자체를 덕목으로 여기고 목숨을 걸고 지킴으로써 그 결과 행복이라는 보상을 받지만 섀멀라는 “바츄(virtue의 표준 발음을 못한다)”를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한다. 쉽게 말해 ‘꽃뱀’ 짓을 하려는 것이다.
≪섀멀라≫ 출간 10개월 뒤에(1742년 2월 22일) ≪조지프 앤드루스≫가 나왔다. 여기서도 저자명은 밝히지 않고, 부제는 “조지프 앤드루스와 그의 친구 에이브러햄 애덤스 씨가 겪는 진기한 사건들. ≪돈키호테≫의 저자인 세르반테스의 수법을 모방함”이라고 했다. ‘섀멀라에게 오빠가 한 명 있는데 그 이름이 조지프 앤드루스다. 그가 겪는 모험 이야기’라는 콘셉트를 표방했다.
지금 영미권에서는 1차 패러디물인 ≪섀멀라≫보다 거기서 파생된 ≪조지프 앤드루스≫의 작품성을 더 쳐준다. 영미권 출판계에서는 두 작품을 합쳐 단권으로 구성하는 경우가 많다. 두 작품이 각각 독립된 단권을 이루는 경우는 드물다. 창작 시기로는 ≪섀멀라≫가 앞서지만, 현재에 와서는 ≪조지프 앤드루스≫를 더 좋은 작품으로 여기므로 ≪조지프 앤드루스/섀멀라≫ 식으로 배치한 책들이 많다. 이 작품을 완전 처음 접하는 독자들은 ≪패멀라≫를 먼저 읽어 보는 것이 좋다. 여의치 않다면 이 책의 해설 및 ≪섀멀라≫를 먼저 읽고 ≪조지프 앤드루스≫를 보는 것이 이해에 도움이 될 듯싶다. 
≪조지프 앤드루스≫는 ≪패멀라≫의 줄거리 즉 남자 주인이 하녀를 유혹하는 이야기를 흉내 내어 여자 주인이 남자 하인을 유혹하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면 조지프가 여주인의 유혹에 넘어가든지 아니면 여자의 유혹을 물리침으로써 패멀라와 맞먹는 시련이나 비슷한 내용이 끝까지 그 이야기로 전개되고 종결돼야 할 것이다. 그러나 ≪조지프 앤드루스≫는 조지프가 여주인 집에서 쫓겨나면서부터(제1권 제8장) 패멀라가 등장하는 부분(제4권 제5장)까지 즉 작품 전체의 적어도 6분의 5정도는 그가 애덤스 목사·패니와 함께 다니면서 겪는 세상 이야기이다. 다시 말하면 이 작품은 시작과 결말만 형식적으로 ≪패멀라≫의 패러디이고 중간 부분은 시작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 책 속으로

**≪조지프 앤드루스/섀멀라≫, 458∼459쪽

자, 이제 그대여, 그대가 누구이든지, 내 능력으로는 도저히 묘사할 수 없는 이 부분을 묘사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그대는 뮤즈라고 해도 좋고 혹은 그대가 원하는 어떤 다른 이름으로 불러도 무방하겠나이다. 그대는 바이오그래퍼를 지도하며 우리 시대의 모든 전기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나이다. 그대는 저 불후의 걸리버의 펜에 놀라운 상상력을 불어넣었고, 그대가 사랑하는 맬릿의 남성다운 강한 문체를 드높인 한편 그의 판단력은 세심하게 지도하였나이다. 그대는 ≪키케로 전기≫의 헌정사와 서문과 번역문에는 손을 대지 않았나이다. 아마도 손대었더라면 그대는 그 부분을 그 자리에서 지워 버렸을 것이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드릴 말씀은, 그대는 콜리 시버가 (문학적 소양이나 의욕은 전무하면서도) 그의 책의 어떤 부분은 영어다운 영어로 쓰게 하였다는 것이옵니다. 시신이시여.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이 작업에 나를 도우소서. 젊고 쾌활하고 용감한 조지프 앤드루스를 전투 장면으로 안내하여 소개하소서. 남자들은 그의 모습에 감탄과 부러움을 느낄 것이며 다감한 처녀들은 그에 대하여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그의 안전을 걱정할 것이옵니다.


☑ 지은이 소개

헨리 필딩은 사춘기였던 11세 때 어머니를 잃었다. 그 후 그의 아버지는 재산 문제로 장모 즉 헨리의 외할머니와 법정 싸움을 벌였다. 이 와중에 헨리 필딩과 형제들은 어쩌면 받을 수도 있었던 적지 않은 재산을 상속받을 수 없게 됐다. 
12세였던 1719년에 그는 아버지의 주선으로 이튼 학교에 입학했다. 이곳 재학 기간(1719∼1724) 동안 필딩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았는지는 불분명하다. 약 1년간의 학교 무단 이탈, 다른 학생보다 갑절 되는 돈 소비 등등이 알려져 있다. 1728년경 네덜란드의 명문 레이덴 대학에도 잠시 유학했다고 하나 이 역시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다. 대체적으로 학창 시절의 기록이 불확실하다. 
1730년부터 1737년 즉 23세부터 30세까지는 대개 극작 활동 기간이었다. 그는 이 기간에 20편 이상의 희극 및 여러 편의 파스와 벌레스크를 썼다. 그의 최초 성공작은 ≪작가의 파스≫로, 3월 30일부터 7월 3일까지 42회나 공연되었다. 그러던 1737년, 월폴 수상 정권은 연극 검열법을 통과시켰다. 이로써 연극계 분위기가 차갑게 얼었다. 7년 동안 인기를 누리던 극작가의 창작 생활이 막을 내린 것이다. 
검열법 통과로 그는 다른 출구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소설 창작으로 방향을 바꿨다. 그리하여 그는 ≪섀멀라≫부터 ≪아밀리아≫(1751)까지 10여 년간 소설을 썼다. ≪조지프 앤드루스≫는 그의 소설다운 첫 번째 작품이며 영국 소설사 관점에서 보면 ≪패멀라≫와 더불어 소설의 기초를 놓은 중요한 작품이다. 
실상, 헨리 필딩은 그다지 안온하고 행복한 일생을 살았다고 할 수 없다. 어릴 적부터 따져 보면, 선조는 쟁쟁한 분들이었지만 물려받은 재산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자력갱생의 삶을 살아야 했다. 한편으로 필딩은 과격한 성격과 낭비벽과 무절제하고 향락적인 성향을 갖고 있었다. 필딩 전기 작가들은 대체로 그의 엽색 행각을 암시적으로만 언급하곤 한다. 그는 인간적으로 결함이 많은 작가이다. 그러나 그는 적어도 자신이 보고 느낀 세상과 자기 자신을 사실대로 정직하게 그렸다.


☑ 옮긴이 소개

김성균은 서울에서 태어나 1958년에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해 1964년에 졸업했으며, 같은 대학교 대학원 영어영문학과에서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1년부터 연세대학교에 재직했고, 2004년 봄에 퇴임할 때까지 학부와 대학원에서 18세기 영국 소설을 강의했다. 현재 연세대학교 명예교수이다. 
석사 학위 논문은 <그레엄 그린의 소설 연구>(1966)이고, 박사 학위 논문은 <트리스트럼 섄디 연구: 작가의 독자 의식과 소설의 구성>(1979)이다. 저서는 없고, 영국 소설 발생기의 작가들인 존 버니언, 애프라 벤, 대니얼 디포, 엘리자 헤이우드, 새뮤얼 리처드슨, 헨리 필딩, 로런스 스턴 등의 작품에 대한 논문을 한국영어영문학회 학회지 ≪영어영문학≫과 연세대 논문집 ≪영어영문학 연구≫에 발표했다. 주석본으로 대니얼 디포의 ≪몰 플랜더스≫(신아사, 1991), 헨리 필딩의 ≪조지프 앤드루스≫(연세대 출판부, 1995), 새뮤얼 리처드슨의 ≪패멀라≫(연세대 출판부, 1996)를 내었고, 학부 영산문 강독을 위한 주석본 ≪Prose in English≫(연세대 출판부, 1998)를 편집했다. 역서로는 그레엄 그린의 ≪명예영사≫(한길사, 1983)와 새뮤얼 리처드슨의 ≪클러리사 할로≫ 전 8권(지식을만드는지식, 2012. 제7회 유영번역상 수상)이 있다.


☑ 목차

참고문헌

≪조지프 앤드루스≫
머리말
차례
제1권
제2권
제3권
제4권

≪섀멀라≫
헌정사
편집자에게 보내온 편지들
미시즈 섀멀라 앤드루스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2014년 8월 4일 월요일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도서명 :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지은이 :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
옮긴이 : 원유경
분야 : 영국 소설
출간일 : 2013년 2월 8일
ISBN : 978-89-6680-426-9   (03840)
12000원 / 사륙판(128*188)  / 224쪽




☑ 책 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 천줄읽기>는 오리지널 고전에 대한 통찰의 책읽기입니다. 오랜 시간 그 작품을 연구한 전문가가 원전에서 핵심 내용만 뽑아내는 발췌 방식입니다.

**이 책은 원전의 약 50%를 발췌, 번역했습니다.




☑ 출판사 책 소개

1891년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The Picture of Dorian Gray)≫이 단행본으로 나왔을 때 일부 언론들은 “쓰이지 않는 게 나았을 책”, “부도덕하고 불결한 책”이라고 비난했다. 작가 오스카 와드는 예술과 도덕은 별개이므로 도덕적 시각에서 작품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작가 자신의 동성애 문제로 인해 그의 부도덕한 삶이 여실히 반영된 것으로 간주되어, 스캔들과 치욕으로 이어지는 작품이 되었다. 와일드는 작가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완전히 몰락했다. 그러나 사후 차차 그 작품성을 평가받으면서 1970년대 이후에는 진지하게 연구되기 시작했다. 와일드가 가볍고 대중적인 작품을 쓴 그저 그런 작가였는지, 지나치게 현대적인 사상을 개진했던 불우한 사상가인지에 대한 논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 작품은 심미주의에 대한 예찬과 동시에 윤리적 교훈을 담고 있다. 작가를 대변하는 헨리 워턴 경은 새로운 쾌락주의를 주창하면서 영국 보수층의 종교적·윤리적 위선을 공격하고 풍자한다. 헨리 경은 예술의 이상 또는 화신과도 같은 아름다운 도리언에게 인생에서 아름다움이 최고의 가치이며, 순간의 감각이 중요하기 때문에 열정을 갖고 모든 감각을 체험하라고 권하는데, 이것이 도리언에게 끼치는 좋지 못한 영향은 작가가 작중 인물 헨리 경에게 보이는 공감과 비판의 양면적 태도를 잘 보여 준다.
헨리 경의 영향을 받아 삶을 예술로 간주하고 개인적 감각의 향유를 추구하던 도리언은 아름다움을 잃지 않기 위해 악마에게 영혼을 팔고, 초상화가 그를 대신해서 늙어 가게 한다. 바질 홀워드는 도리언에게 사랑을 느끼고 고뇌하며 그에게 영감을 얻어 위대한 예술 작품을 완성했지만, 도리언이 가까운 인물들을 타락의 길로 이끌어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한 장본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를 질책하며 그의 영혼을 구원하려 한다. 이에 도리언은 청교도적 사고를 지닌 바질에게 순간적으로 증오를 느끼고 그를 살해한다. 감각적이고 향락적인 삶을 추구하던 아름다운 도리언은 결국 살인자가 되고, 완전 범죄를 위해 사체를 유기한다. 그러나 범죄 행각이 드러날까 두려운 마음과, 도리언에게 버림받아 자살한 옛 연인의 동생이 그에게 복수하겠다고 쫓아다니는 등 끔찍한 상황에 놓이게 되자, 그는 공포를 잊기 위해 아편 중독자가 된다. 이러한 도리언의 파멸 과정을 통해 작가 와일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예술과 삶은 별개의 영역이며 예술에서 도덕을 따질 수 없다고 예술의 자율성을 주장하던 와일드가 결국은 그 공허함을 깨닫고 자신의 세기말적 심미주의 주장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이 작품은 세기말의 상징적 작품으로서 당대 사회의 권태와 무기력, 나태와 절망의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으며 동성애 코드를 암시하고 있다. 또한 와일드는 런던이라는 대도시의 이면을 들춰낸다. 상류사회의 경직된 사고와 위선을 비판하는 한편 하층민들의 비참한 삶을 묘사함으로써 사회에 내재된 계급 간의 빈부 격차, 이민의 유입, 아편 중독, 타락한 군상 등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이러한 요소 때문에 이 작품은 19세기 말 ‘빅토리아 문명의 묘비명’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 책 속으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22~23쪽
모든 예술은 표층인 동시에 상징이다.
표층의 이면을 보려고 하는 사람들은 그러다가 큰일 나는 수가 있다.
상징을 읽어 내려고 하는 사람들은 그러다가 큰일 나는 수가 있다.
예술이 거울처럼 비춰 주는 것은 인생이 아니라 인생을 바라보는 바로 그 구경꾼이다.
예술 작품에 대한 견해가 다양한 것은 그 작품이 새롭고 복잡하고 활기가 넘치는 것임을 말해 주는 것이다.
비평가들의 의견이 서로 다를 때, 예술가는 자신에게 충실한 것이다.
쓸모 있는 것을 만들어내는 사람은 그것을 숭배하지만 않으면 용서될 수 있다. 쓸모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유일한 이유는 누군가 그것을 무척 숭배하기 때문이다.
모든 예술은 정말로 쓸모없는 것이다.

How sad it is! I shall grow old, and horrible, and dreadful. But this picture will remain always young…. If it were only the other way! If it were I who was to be always young, and the picture that was to grow old! For that―for that I would give everything! Yes, there is nothing in the whole world I would not give! I would give my soul for that!


“정말 슬픈 일이에요! 나는 늙고 끔찍하고 흉해지지만 이 그림은 영원히 젊은 채 남아있겠지요…. 그 반대면 얼마나 좋을까요! 제가 변함없이 젊은 상태로 남아 있고, 그림이 늙어간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기 위해서라면―정말 그러기 위해서라면―난 무엇이든 다 줄 수 있어요! 그래요. 이 세상에 내가 주지 못할 게 없어요. 그걸 위해서라면 내 영혼이라도 줄 거에요.”




☑ 지은이 소개

오스카 와일드는 19세기 말 영국 유미주의의 대표적 작가로 1854년 10월 16일 더블린에서 출생했다. 그는 왕실의 주치의로 문학에 관심이 많았던 부친과, 혁명적 시를 통해 켈트 문화를 전파하고자 했던 모친의 영향을 받아 엄청난 독서가이자 훌륭한 이야기꾼으로 성장했다. 그는 1871년 더블린의 트리니티 대학교에서 그리스와 르네상스 고전문학을 공부한 후 1874년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교에 장학생으로 입학하는데, 옥스퍼드에서 존 러스킨과 월터 페이터 같은 스승을 만나 그들에게서 큰 영향을 받는다. 1878년 학위를 받은 후 런던으로 간 와일드는 위트가 넘치는 화술로 사교계를 사로잡았다. 그는 미국에 유미주의를 알리기 위해 1년 간 순회강연을 다녔고 곧 세계적인 유명인사가 된다. 와일드는 1883년 콘스턴스 로이드와 결혼해서 두 아들 시릴과 비비안을 두지만, 1891년 16세 연하의 옥스퍼드 대학생 앨프리드 더글러스 경을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잡지에 서평을 기고하고 ≪행복한 왕자(The Happy Prince)≫와 같은 동화를 발표하며 여성잡지의 편집장을 맡기도 했던 와일드는 1890년 ≪리핀콧≫이라는 잡지에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연재하기 시작하여 다음해 단행본으로 출판한다. 와일드는 시·동화·소설·희곡·비평 등 여러 방면에 걸쳐 글을 썼는데, 당시 영국 상류사회의 위선을 꼬집은 <윈더미어 부인의 부채(Lady Windermere’s Fan)>, <하찮은 여자(A Woman of No Importance)>, <이상적인 남편(An Ideal Husband)>, <성실함의 중요성(The Important of Being Earnest)> 같은 희곡 작품은 관객들의 갈채를 받으며 런던의 극장에서 계속 공연되었다. 그러나 앨프리드의 부친인 퀸즈베리 후작은 와일드와 아들의 비정상적 관계에 분노해 와일드를 남색가라고 비방하고 와일드는 명예훼손으로 그를 고발한다. 결국 그는 보수층에 의해 외설행위로 단죄되어 2년의 강제 노동형에 처해진다. 41세에 와일드는 그가 평생 추구해 온 영혼의 자유와 아름다움이 철저히 배제된, 추하고 불결한 감옥에서 힘든 노동에 시달리며, 작가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서서히 무너져 버리게 된다.
1897년에 출옥한 와일드는 영국을 떠나 다시 돌아오지 못했으며, 비인간적 형벌 체계에 대한 분노를 담은 <레딩 감옥의 노래(The Ballad of Reading Gaol)>를 발표했을 뿐 홀로 쓸쓸히 떠도는 생활을 하다가 1900년 파리의 한 호텔에서 사망한다.




☑ 옮긴이 소개

원유경은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으며, 모더니즘, 제국주의, 페미니즘, 디아스포라 등의 주제로 18세기부터 현대에 이르는 영국 소설을 연구하였다. 저서 ≪영문학 속 여성 읽기≫를 비롯해 역서로 ≪오만과 편견≫, ≪타임머신≫, ≪당나귀와 떠난 여행≫ 등이 있으며, 그 외 논문 수십 편을 썼다. 현재 세명대학교 영어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 목차


해설

지은이에 대해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옮긴이에 대해


2013년 5월 20일 월요일

올리버 트위스트



도서명 : 올리버 트위스트(Oliver Twist)
지은이 :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
옮긴이 : 이선주
분야 : 영국 소설
출간일 : 2013년 5월 16일
ISBN : 978-89-6680-970-7 03840
12,000원 / 사륙판(128*188)  / 217쪽

* 3분의 1 발췌


☑ 책 소개

19세기 영국의 대문호 찰스 디킨스가 쓴 소설. 경찰도 혼자서는 순찰 가기 꺼렸다는 당대 영국 뒷골목의 세계를 다뤘다. 원전은 494쪽 53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이 책은 그중 3분의 1 정도의 분량을 발췌했다. 


☑ 출판사 책 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 천줄읽기>는 오리지널 고전에 대한 통찰의 책읽기입니다. 전문가가 원전에서 핵심 내용만 뽑아내는 발췌 방식입니다.
디킨스의 소설은 영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널리 인기를 누리는데 그중에서도 ≪올리버 트위스트≫(1838)의 인기는 독보적이다. 디킨스는 ≪올리버 트위스트≫에서 당시 독자의 흥미를 끌던 범죄소설의 플롯을 사용하여 대중성을 확보했다. 한편으론 다른 저급한 범죄소설과는 달리 당시의 중요한 시대적 사안을 작품 속에 끌어와 시사적 담론의 장을 마련하였다.
이 소설의 대중적 인기 요인 가운데 하나는 젠틀맨 품성을 타고난 영국인의 속성을 그렸다는 점이다. 사생아이자 구빈원 출신으로 도둑 집단 속에서도 살았던 올리버가 전혀 타락하지 않고 젠틀맨의 품성을 그대로 유지하며 자라는 모습은 젠틀맨을 국민의 이상으로 생각하는 영국인에게 자부심을 주었다.
또한 ≪올리버 트위스트≫는 악명 높은 신구빈법(新救貧法)에 대한 당대 사람들의 반응을 보여 주는 역사적 사료로도 가치가 크다. 영국은 전통적으로 교구의 빈민이나 취약 계층에게 책임감을 느끼는 온정주의적 전통을 면면히 이어 온 신분제 사회다. 지역의 교구는 빈민에게는 생존 가능한 수준의 경제적 원조를 해 왔다. 그러다 자본주의적 체제로 경제가 움직이면서 빈민에 대한 온정적 지원이 부담스럽게 다가왔고 그러한 지원은 오히려 빈민들의 의존심만 키워 사회악을 유발한다는 비판이 거세졌다. 급기야 1834년 기존의 구빈법을 개정한 신구빈법에 따라 오직 구빈원에 수용된 빈민만을 교구가 지원하도록 했다. 신구빈법에 따라 자립 능력이 없는 사람은 오직 구빈원 안에 수용되어야만 교구의 원조를 받을 수 있게 되었고, 구빈원은 수용된 빈민들을 노동과 통제로 혹독하게 다루었다.
≪올리버 트위스트≫를 신구빈법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는 사회 비평적 소설로 읽는 비평 작업은 상당한 성과를 이루어 왔다. 그 논의는 고아인 올리버가 구빈원에서 겪는 굶주림이나, 빈민을 범죄자로 취급하는 사회에 대해 비판한 텍스트의 내용에 기초하여 이루어졌다. 특히 가난한 사람을 ‘원조 받을 만한’ 빈민과 ‘원조 받을 자격이 없는’ 빈민으로 구분하여 전자만을 구빈원에 수용하고, 구빈원이 안락한 곳이 되지 않도록 대우를 박하게 하고 일을 시키는 감옥으로 만든 점에 대한 비판이 거세었다. 또한 신구빈법은 가난과 타락을 동일시하는 반면, 디킨스는 올리버의 경우에서처럼 가난한 사람은 타락한 사람이라는 단정을 깨뜨린다. 올리버가 구빈원 출신 아이면서도 완전히 도덕적인 소년임을 보여 줌으로써, 혹은 도덕적으로 선하면서도 동시에 완전히 거지임을 보여 줌으로써 구빈원의 공식을 비틀어 놓았다. 디킨스는 바로 당대의 큰 이슈였던 신구빈법 문제를 과감히 붙들고 그 비인간성과 통제성에 대해 비판의 장을 열었던 것이다.
≪올리버 트위스트≫는 디킨스의 상업적 대중성과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이 잘 어우러진 명작이다.


☑ 책 속으로

**≪올리버 트위스트≫ 23~24쪽
이 이사 양반들은 매우 현명하고 심오하고 철학적인 분들로, 그들의 관심을 구빈원에 돌리자마자 보통 사람은 죽어도 알 수 없는 중대한 사실을 발견했다. 사실인즉 가난한 사람들은 구빈원에 있기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가난한 계급에게 이곳은 공공 오락을 즐기는 단골 장소다. 공짜로 술 마시는 주막이요, 국가에서 내는 아침·점심·간식·저녁을 얻어먹는 곳이며, 1년 내내 놀고먹고 일하지 않아도 되는, 벽돌과 회반죽으로 지은 낙원인 것이다. “그렇군!” 이사회는 잔뜩 아는 척하며 말했다. “우리야말로 바로 이것을 시정할 위인들이다. 즉시 모든 것을 다 중지하자.” 그래서 이들은 규칙을 정했으니, 가난한 사람은 양자택일을 해야만 한다. 구빈원에 들어와 점차적으로 굶어 죽든지, 구빈원에 안 들어오고 바깥에서 즉각 굶어 죽든지, 둘 중의 하나를 택하도록 한 것이다. 이런 목적으로 하루 세끼 묽은 죽과 일주일에 두 번 양파 조금, 일요일엔 둥근 빵 반 덩어리를 지급하게 했다. 그들은 또한 가난한 부부를 이혼시키는 일을 친절하게도 떠맡아서 법원의 엄청난 소송비를 면하게 해주었고, 종전처럼 남편이 가족을 부양하도록 강요하는 대신에 처자식을 남편에게서 떼어놓아 다시 독신자로 만들어주었던 것이다!


☑ 지은이 소개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말단 공무원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낙천적 성격으로 돈 씀씀이가 헤퍼서 늘 빚을 졌다. 급기야 열한 살 때에는 아버지가 채무자 감옥(Debt Prison)에 수감되어 온 가족이 감옥에서 1년가량 생활하게 된다. 장남인 그는 학업을 중단하게 되고 구두약 공장에 보내진다.
디킨스에게 심리적 상처를 남긴 이 경험은, 그러나 작가로서는 유익한 경험이었다. 당시의 산업혁명 시대에는 열 살도 채 안 된 수많은 어린이들이 산업 현장으로 내몰렸다. 디킨스의 작품에는 이러한 아이들이 많이 등장한다. 런던의 영세민 속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디킨스는 소설사상 처음으로 도시의 빈민들을 작중에 등장시킨다.
열다섯 살까지만 학교 교육을 받은 그가 처음 시작한 일은 법률 사무소의 서기였다. 여기서 속기술을 익힌 그는 이후 신문 기자가 된다. 고등법원과 의회 출입 기자였던 그는 통찰력 있는 시각과 빼어난 문장력을 습득하게 된다. 스물네 살 때부터 자신이 편집위원으로 있는 잡지에 ≪픽윅 문서≫를 삽화와 함께 기고한다. 중년 신사 픽윅이 영국을 여행하며 겪는 모험과 인정 넘치는 사건들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큰 인기를 끌었다. 같은 시기에 ≪올리버 트위스트≫를 써서 올리버를 온 국민이 사랑하고 돌보아 주고 싶은 어린이로 만들었다. 그 후 디킨스는 생애 마지막까지 2년에 평균 장편소설 한 권을 써내는 괴력을 발휘한다.
디킨스의 인생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대중과의 연애였다. 그는 평생 대중과 연애하듯이 그들에게 충심을 다했고 그의 모든 일이 대중의 관심을 받았다. 그는 생애 마지막 10년 동안 소설 낭독을 위해 영국 곳곳과 미국을 여행했다. 가는 곳마다 대대적인 성공이었고 대중들의 눈물 어린 환대와 지역 유지의 영접을 받았다. 그의 낭송 여행은 개인적 이벤트로 생각되지 않았고 처음부터 끝까지 공적이며 국제적인 행사로 받아들여졌다.
디킨스에 대한 대중의 사랑은 평생 변함이 없었다. 디킨스가 세상을 떠났을 때, 노동자들은 주막에서 “우리의 친구가 죽었다”고 울부짖었다 한다. 아울러 신문과 잡지들은 며칠 동안 그의 일대기로 지면을 도배하다시피 했다.


☑ 옮긴이 소개

이선주는 이화여자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교 대학원에서 <디킨스의 소설에 나타난 근대성 연구>라는 논문으로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송호대학 관광서비스영어과 교수를 지내고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이화인문과학원 HK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19세기영어권문학회 대표 편집이사이기도 하다. 저서로는 ≪디킨스와 신분과 자본≫이 있고, 역서로는 노라 옥자 켈러의 ≪여우 소녀≫와 I. A. 리처즈의 ≪문학비평의 원리≫가 있으며, <이주 여성 노동의 비가시화와 임파워먼트>, <미국 이주 한인들의 디아스포라적 상상력> 등의 논문을 발표했다.


☑ 목차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올리버 트위스트
옮긴이에 대해

2012년 12월 28일 금요일

사일러스 마너




도서명 : 사일러스 마너(Silas Marner)
지은이 : 조지 엘리엇
옮긴이 : 한애경
분야 : 영국 소설
출간일 : 2012년 12월 28일
ISBN : 978-89-6680-632-4 (03840)
18,000원 / 사륙판(128*188) / 370쪽


☑ 책 소개

영국 여류 작가 조지 엘리엇(George Eliot)의 1861년 작품. 18세기 후반~19세기 초의 영국 농촌을 배경으로 직조공 사일러스 마너가 겪는 우여곡절을 그린 소설.


☑ 출판사 책 소개

때는 19세기 초 영국. 발전하는 산업도시와 조용한 농촌 사회가 공존하는 시대였다. 영국 중부 공업도시 랜턴야드에 사는 직조공 사일러스 마너는 친구 윌리엄 데인의 배반으로 교회 돈을 훔쳤다는 누명을 쓰고 그곳을 떠났다. 작은 농촌 마을 래블로로 이주한 마너는 휴일도 없이 아마포를 짜면서 15년 간 고립된 생활을 한다. 그의 유일한 위안은 아마포 짜기로 벌어들인 금화를 혼자 밤마다 세어 보는 일이다. 이렇듯 외롭게 살던 그에게 큰 변화가 일어난다. 그가 아끼던 금화를 도난당하고, 느닷없는 일 때문에 에피를 양녀로 맡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는 금화 대신 금발의 어린아이를 받아들여 아버지 노릇을 하게 되면서 행복을 되찾는다. 그는 에피를 통해 이웃들, 즉 래블로 마을 공동체와 관계를 맺음으로써 인간에 대한 신뢰와 사랑 및 공동체와 관계를 회복하는 셈이다.
한편 마을의 지주의 아들 고드프리는 술집 여자 몰리 패런과 비밀 결혼한 사실을 두고 전전긍긍해한다. 이 사실을 아버지께 말하겠다고 협박하는 동생과 사람들에게 진상을 폭로하려는 몰리로 인해 고민하던 차에, 갑자기 동생은 행방불명되고, 몰리는 길에서 얼어 죽어 버리는 행운(?)을 누린다. 덕분에 평소 흠모하던 상류층 여성 낸시와 결혼하게 된다.
그러나 낸시와 결혼한 뒤, 그는 자식을 가질 수 없고, 16년 전 행방불명되었던 동생 던스턴의 유해가 스톤피츠 채석장 옆 물웅덩이에서 발견되면서, 마너의 금화를 훔친 범인이 동생이었던 것으로 드러난다. 고드프리는 이를 자신의 죄에 대한 징벌로 받아들이고 과거에 저지른 죄를 숨길 수 없다는 인과응보를 깨닫는다. 이러한 깨달음으로 뒤늦게나마 회심하여, 그는 아내에게 에피가 친딸이라고 밝히고 과거의 죄를 뉘우치려고 마너의 집을 찾아가지만, 에피를 딸로 인정하고 자기 집에 들이려는 제의를 거절당한다. 고드프리는 마너 외에 다른 아버지를 상상할 수 없다는 에피의 단호한 말을 듣고, 과거에 에피를 딸로 인정하지 않았던 그 죄는 부(富)나 지위, 그 무엇으로도 보상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 책 속으로

**≪사일러스 마너≫ 111~113쪽
“귀걸이를 했던가요?” 외국인의 관습을 좀 아는 크래큰소프 씨가 알고 싶어 했다.
“글쎄, 잠깐, 생각해 봅시다.” 스넬 씨는 될 수 있으면 정말로 실수하지 않으려는 유순한 점쟁이 여인처럼 말했다. 마치 귀걸이를 보려고 애쓰는 것처럼 입을 다물고 실눈을 뜬 후에, 그는 이런 노력을 포기한 듯 이렇게 말했다. “글쎄, 그 행상의 상자 속에는 판매용 귀걸이도 있었으니 귀걸이를 했다고 생각해도 좋겠죠. 아니, 그는 온 마을을 거의 집집마다 다녔어요. 아마 그의 귀에 걸린 귀걸이를 본 사람도 있겠죠. 제가 봤다고는 할 수 없지만요.”
누군가 그 행상이 한 귀걸이를 기억할지 모른다는 스넬 씨의 추측은 맞았다. 마을 사람들에게 두루 물으면서, 그 행상이 귀에 귀걸이를 했는지 목사님이 궁금해 한다는 것이 점점 강조되고, 이 사실을 알아내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는 인상이 퍼졌기 때문이다. 물론 귀걸이를 하지 않은 행상의 이미지가 분명치 않아서 그 질문을 들은 사람마다 상황에 따라 크든 작든 귀걸이를 한 행상의 모습을 즉시 그려 보았다. 그 모습은 곧 생생한 기억이 되었다. 그래서 바로 다음 크리스마스에 성체를 받겠다는 결심처럼 아주 착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으며 온 동네에서 집안을 가장 깨끗하게 청소하는 유리 가게 부인이 그 행상의 두 귀에 걸린 초승달 모양의 큰 귀걸이를 보았다고 기꺼이 선언했던 것이다. 한편 구두장이 딸인 지니 오츠는 상상력이 더 풍부해서 그 귀걸이를 보았을 뿐 아니라, 거기 서 있는 바로 그 순간처럼 그 귀걸이를 보자 온몸이 섬뜩했다고 말했다.
또한 그 부싯깃통이라는 단서를 더 밝히기 위한 방법으로서, 그 행상에게 구입한 물건을 여러 집에서 모아 몽땅 전시하려고 레인보에 가져오기도 했다. 사실 이 도난 사건을 밝히기 위해서는 레인보에서 해야 할 일이 많으며 그 술집은 엄격히 공적 의무를 수행하는 장소이므로 어떤 남편도 거기 간다고 아내에게 핑계를 둘러댈 필요가 없다는 것이 온 마을에 널리 퍼진 분위기였다.


☑ 지은이 소개

조지 엘리엇(1819∼1880)은 19세기 영문학사상 중요한 작가다. 흔히 <황무지(The Waste Land)>(‘4월은 잔인한 달’이란 구절로 유명)를 쓴 T. S. 엘리엇과 혼동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전자는 19세기 영국의 여류소설가이며 후자는 20세기 미국 시인이다.
엘리엇은 1819년 워릭셔에서 태어났으며, 37세라는 늦은 나이에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녀는 여류작가에 대한 당대의 사회적 편견 때문에 본명인 메리 앤 에번스(Mary Ann Evans)라는 이름 대신 조지 엘리엇이라는 남성 필명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다. 몇 개의 작품이 계속 발표될 때까지 독자는 물론 평론가까지도 모두 그녀를 남성 작가로만 알고 있었다. ≪웨스트민스터 리뷰(Westminster Review)≫라는 비중 있는 잡지의 부편집장을 지냈으며, ‘남성처럼 생각하는 여자 셰익스피어’로 불릴 정도로 지적인 작가였다.
문학 외적으로는 유부남인 문학 비평가 G. H. 루이스(G. H. Lewes)와 동거한 스캔들이 유명하다. 루이스는 엘리엇에게 작품을 써 볼 것을 격려한 사람이었고 뿐만 아니라 엘리엇은 루이스를 통해 사랑을 알았다. 그 덕분에 늦은 나이에 데뷔할 수 있었던 것이다. 루이스는 엘리엇의 인생에서 사랑과 소설 집필이라는 두 가지 전환점을 가져온 인물이라 할 수 있다.


☑ 옮긴이 소개

한애경은 이화여대 문리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영문과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코네티컷대학교, 예일대학교, 퍼듀대학교, 노스캐롤라이나(채플 힐)대학교 등에서 연구한 바 있으며, 현재 한국기술교육대 교수로 있다. 박사학위 논문은 ≪George Eliot과 여성문제≫이며, ≪플로스 강의 물방앗간≫과 ≪위대한 개츠비≫ 등을 공동번역한 바 있다.


☑ 목차

제1부
제2부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2012년 9월 12일 수요일

황폐한 집(Bleak House)

황폐한 집(Bleak House)
찰스 디킨스 지음 / 김현숙 옮김
분야 : 영국 소설
출간일 : 2011년 10월 31일
ISBN : 978-89-6406-977-6
12,000원 /  A5 제본 / 247쪽


☑ 200자 핵심요약

당대 사회에 대한 비판을 통해 인간의 삶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보여주는 리얼리즘을 성취한 책임 있는 작가였던 찰스 디킨스. 이 책은 그의 원숙한 사회 비판이 잘 나타나 있는 후기의 걸작으로 국내에서 처음 번역되었다. 이 소설에서는 두 명의 서술자의 이야기가 교차되면서 챈서리 법정으로 대표되는 당대 사회에 대한 비판과, 순종, 겸손, 근면 등을 여성의 이상적인 미덕으로 간주했던 억압적인 여성 이데올로기에 대한 통찰을 탁월하게 보여주고 있다.


☑ 책 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 천줄읽기>는 오리지널 고전에 대한 통찰의 책읽기입니다. 전문가가 원전에서 핵심 내용만 뽑아내는 발췌 방식입니다.

두 명의 서술자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독특한 구성
이 소설은 두 명의 서술자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3인칭 서술 시점과 현재 시제로 내용을 이끌어가는 전지전능한 서술자는 작가 디킨스의 시각을 대표하면서 당대의 현실을 냉소적으로 비판하는 반면, 주인공이며 1인칭 서술자인 에스터 서머슨은 과거를 회상하면서 주변 사람에 대한 관찰을 완곡하게 전달하고 있다.

당대 사회에 대한 비판과 여성 이데올로기의 억압적 성격에 대한 통찰
≪황폐한 집≫은 잔다이스 대 잔다이스 소송이 진행되는 챈서리 법정과 레스터 데들록 경과 레이디 데들록을 둘러싼 사교계에 대한 묘사, 에스터의 개인적 이야기가 씨줄과 날줄처럼 잘 엮여서 당대에 대한 비판을 생생하게 형상화한 소설이다.

디킨스는 이 소설에서 영국의 챈서리 법정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에스터 서머슨을 통해 당대의 여성 이데올로기를 점검하고 있다. 표면적으로 에스터는 순종, 겸손, 근면 등 당대의 이상적인 여성의 미덕을 소지한 채 집안 살림을 잘 꾸려간다는 점에서 빅토리아조(朝)의 사회적·가정적 미덕을 완벽히 구현한 존재로 여겨진다. 그러나 디킨스는, 집안 살림을 잘한다는 칭찬에 지나치게 집착하면서 이를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에스터의 강박적인 태도를 통해 여성이 집안에서 천사 역할을 해야 한다는 당대 이데올로기의 억압적 성격을 통찰하고 있다. 또한 에스터를 통해 여성을 무성적인 천사로 보는 빅토리아조의 여성관에 도전하고 있다. 자신의 진정한 욕구를 억압한 채 불모의 삶을 살아가는 레이디 데들록에 대한 부정적인 묘사는 에스터가 잔다이스의 청혼을 받아들였을 경우에 처할 수도 있는 운명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 책 속으로

Your mother, Esther, is your disgrace, and you were hers…. Submission, self-denial, diligent work, are the preparations for a life begun with such a shadow on it

에스터, 네 엄마는 너의 수치이고, 너는 네 엄마의 수치다…. 순종하면서, 자기를 부정하고, 부지런하게 일하는 것만이 그런 그늘을 지고 태어난 사람이 가져야 할 마음의 자세다.


☑ 지은이 소개

찰스 디킨스
디킨스는 1812년 영국 남단의 군항인 포츠머스에서 해군 경리국의 하급 관리인 존 디킨스와 엘리자베스의 팔 남매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경제관념이 부족한 존 디킨스로 인해 가세가 점점 기울어 디킨스는 돈을 벌기 위해 구두약 공장에 견습공으로 취직하여 형편없는 환경에서 일을 해야만 했다. 이 경험은 그에게 큰 상처를 남겼으며, 자서전적인 소설인 ≪데이비드 코퍼필드≫(1849∼1850)에는 중산층에 속한다고 생각했던 어린 찰스가 노동 계층으로 전락하여 느끼는 고통스러운 좌절감이 잘 나타나 있다. 이후 그는 여러 신문사에 글을 기고하게 되는데, 1834년 <아침 신문>의 의회 담당 기자가 되어 처음으로 ‘보즈’라는 필명으로 런던의 삶에 대한 여러 편의 글을 발표했고, 1835년 조지 호가스가 편집인인 <저녁 신문>에 <런던의 풍경> 등 여러 글을 기고했다.

디킨스는 조지 호가스와 인연을 맺으면서 그의 딸인 캐서린과 결혼하게 되고, 처제인 메리를 데리고 첼시에 정착하는데, 메리가 1837년에 갑작스러운 병으로 죽자 엄청난 충격을 받는다. 순수했던 메리에 대한 그리움은 나중에 ≪골동품 가게≫(1840∼1841)에서 어린 넬로 재현된다. 디킨스는 스물한 살 때부터 몇몇 잡지에 기고했던 단편 및 소품을 모아 ≪보즈의 스케치≫(1836)를 출판하지만 그의 명성을 확보해 준 것은 ≪픽윅 보고서≫(1836)였다. 이후 디킨스는 ≪올리버 트위스트≫(1837∼1839), ≪크리스마스 캐럴≫(1843), ≪돔비와 아들≫(1846∼1848), ≪황폐한 집≫(1852∼1853), ≪어려운 시절≫(1854), ≪작은 도릿≫(1855∼1857), ≪위대한 유산≫(1860∼1861), ≪우리 서로의 친구≫(1864∼1865) 등 많은 작품을 쓰며 영국인의 사랑을 받았다.
소설의 인기로 많은 돈을 벌게 된 디킨스는 가정적으로는 별로 행복하지 못했다. 결국 거듭된 과로로 인해 ≪에드윈 드루드의 수수께끼≫를 완성하지 못하고, 1870년 6월 9일 58세의 나이로 개즈 힐에서 숨을 거둔다. 이후 디킨스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시인의 묘역에 안장되었다.


☑ 옮긴이 소개

김현숙
김현숙은 부산대학교 사범대 영어교육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영문과에서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풀브라이트의 연구비 지원으로 미국 하버드대학교 방문 교수를 지냈고 학술진흥재단 해외파견 교수로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방문 교수를 지낸 바 있다. 현재 수원대학교 인문대 영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19세기 영어권 문학회 회장직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디킨즈 소설의 대중성과 예술성≫, ≪영미소설 속의 여성, 결혼, 그리고 삶≫(2007년 학술원 우수학술도서 선정), ≪영미명작, 좋은 번역을 찾아서 1. 2≫(공저), ≪19세기 영어권 여성문학론≫(공저)이 있으며, 역서로는 제인 오스틴의 ≪이성과 감성≫, ≪아시아계 미국문학의 길잡이≫(공역), ≪인간 등정의 발자취≫(공역) 등이 있다. 그 외 다수의 논문이 있다.


☑ 목차

해설
지은이에 대해

1장 챈서리 법정에서
2장 사교계에서
3장 경과
4장 망원경적인 박애
6장 편안한 집
8장 수많은 죄를 감추며
9장 표식과 흔적
13장 에스터의 이야기
14장 품행
16장 톰ᐨ올ᐨ얼론스
17장 에스터의 이야기
18장 레이디 데들록
29장 청년
35장 에스터의 이야기
36장 체스니 월드
38장 갈등
41장 털킹혼 씨의 방에서
42장 털킹혼 씨의 사무실에서
44장 편지와 답장
45장 위탁함
48장 좁혀 들어가기
54장 탄광 파기
55장 가출
56장 추적
57장 에스터의 이야기
59장 에스터의 이야기
61장 밝혀짐
62장 또다시 밝혀짐
64장 에스터의 이야기
65장 세상을 새로 시작하기
67장 에스터 이야기의 마무리

옮긴이에 대해

2012년 7월 10일 화요일

프랑켄슈타인




☑ 출판사 서평
 
흔히 ≪프랑켄슈타인≫으로 약칭되지만 원래의 제목은 ≪프랑켄슈타인: 혹은 현대의 프로메테우스≫이다. 제우스로부터 불을 훔쳐서 인간에게 선물로 준, 제우스에게는 반역자이지만 인간에게는 은인인 프로메테우스가 현대의 프랑켄슈타인이다. 여기서 불은 이중성을 갖고 있다. 잘 사용하면 불은 세상을 밝히고 아름답게 변화시킴으로써 인간에게 신적인 위엄을 부여하지만, “불장난”의 경우처럼 잘못 사용하면 순식간에 파괴적인 힘으로 돌변해서 주인인 인간마저 화염 속으로 삼켜버린다. 불은 금단의 열매인 선악과와 같은 위상에 놓인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프로메테우스는 예술과 과학의 신이 된다. 과연 예술과 과학은 인간의 행복과 미덕에 기여하는가? 혹시 프로메테우스는 이브를 유혹했던 구약의 뱀이 아닐까? 과학을 통한 진보의 단꿈에 젖어있었던 계몽주의 시대에 세기의 이단아였던 루소는 학문과 예술을 악으로 규정하였다. 그의 주장을 따른다면 프로메테우스는 불을 인간에게 건네주지 말아야 옳았던 듯이 보인다. 도대체 우리는 프로메테우스 신화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것일까? 신화도 탈신비화되고 해체되어야 하는 것일까? 프로메테우스의 계보에 속한 어떤 작품들보다 더욱 강렬하게 ≪프랑켄슈타인≫은 이러한 일련의 질문들을 독자들에게 강요하고 있다. 더구나 유전자 지도의 해독과 더불어 인간 복제가 눈앞에 성큼 다가선 듯이 보이는 현대에 ≪프랑켄슈타인≫보다 더욱 인간 탄생에 얽힌 상상력을 자극하는 작품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50% 발췌본입니다. 천줄읽기


☑ 책 속으로

I was benevolent and good;
misery made me a fiend.

Make me happy, and I shall again be virtuous.

저는 원래 친절하고 선하였습니다.

불행이 저를 악마로 만들었습니다.

저를 행복하게 해주세요. 그러면 저는 다시 선하게 될 것입니다.


☑ 지은이 소개

메리 셸리


당시의 유명한 혁명가이며 무정부주의자였던 윌리엄 고드윈과 페미니스트였던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고드윈 사이에서 1797년에 태어난 메리 셸리는 16살의 어린 나이에 당시 유명한 시인이면서 유부남이었던 퍼시 비시 셸리와 열렬한 사랑에 빠졌다. 전처였던 해리엇이 죽고 나서야 1816년 정식으로 그와 결혼할 수 있었다. 1822년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유고를 편집하고 출판하는 등 남편의 그늘에 가린 채 살아가는 듯이 보이기도 했지만, 그녀 자신이 뛰어난 문필가이자 소설가였다. ≪프랑켄슈타인≫(1818)을 비롯해서 ≪발퍼가≫(1823), ≪최후의 인간≫(1826), ≪퍼킨 워벡의 행운≫(1830)과 같은 소설을 발표했으며 ≪1840, 1842, 1843년 독일과 이탈리아 산책≫과 같은 여행기를 남기기도 했다. 1851년에 54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 목차

해설


지은이에 대해

1권

1장

2장

3장


2권

1장

2장

3장

4장

5장

6장

3권

1장

2장

3장

옮긴이에 대해

2012년 4월 2일 월요일

클러리사 할로 Ⅷ



☑ 책 소개

전무후무한 세계 서간체 소설의 결정판


≪클러리사 할로(Clarissa Harlowe)≫는 편지 모음이다. 시작부터 끝까지 인물들이 주고받는 편지로 스토리가 전개되는 소설이다. 모든 편지는 실제로 작가가 썼으면서도 표면적으로는 작중인물들이 쓴 것을 편집인이 수집하고 정리한 것처럼 되어 있는 ‘보여 주기’ 기법을 사용한다. 따라서 독자는 겁탈당하고 심신이 탈진한 클러리사의 내면을 숨결과 체취까지 느끼며 들여다볼 수 있다.

새뮤얼 리처드슨(Samuel Richardson)은 이 작품으로 서간체 소설의 새 장을 열었다. 서간체 문학의 모든 기법이 완벽하게 구사되고, 모든 이점이 철저하게 활용된 예는 이 작품이 유일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문학사상 가장 긴 작품

≪클러리사 할로≫는 총 8권이다. 200자 원고지로 16,492장이다. 이 방대한 소설은 오늘날 영어권의 일반 독자는 물론이고 영문학과 학생들, 교수들조차도 전체를 다 읽기 어려워 축약본을 찾는다.

이 작품이 사건에 비해 너무 길다고 불평하는 독자에게 당시의 저명한 비평가 새뮤얼 존슨(Samuel Johnson)은 이렇게 일침을 가한다. “이 작품을 스토리에만 관심을 가지고 읽다가는 너무 지루하고 속상해서 죽고 싶을 지경일 것이다. 스토리는 인물의 내면을 보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읽을 만한 책도, 텔레비전도, 인터넷도 없던 당시에는 많은 독자가 작품이 끝나는 것을 아쉬워했다는 후문도 있다. 이 작품의 길이에 대해 리처드슨은 어느 저명한 비평가의 견해를 인용한다. “작품의 의도가 전편을 통해서 일관된다면, 인물들이 다양하고 자연스러우며 개성적이라면, 흥미를 끄는 다양한 사건들이 독자를 항상 긴장시킨다면 작품의 길이는 길수록 좋다. 그러나 모든 점이 이와 반대라면 한 편의 우화보다 짧다 하더라도 독자를 지루하게 할 것이다.”


전국의 영문학자들이 기다리던 책

이 방대한 분량의 대작을 지식을만드는지식에서 국내 최초로 온전히 번역해 출간했다. 작가가 철저히 수정하고 보완해 많은 학자들이 ≪클러리사 할로≫의 결정판이라고 평가하는 제3판을 저본으로 삼았다. 번역자 김성균은 걸작을 더욱 완전하게 소개하기 위해 리처드슨의 의도를 살린 원전의 편집 형태를 그대로 따랐다. 지은이의 모든 주석을 원전의 표기 그대로 반영하고, 원전의 쪽수를 참고하라는 내용에는 이 책에서의 해당 쪽수를 친절하게 밝혔다.

이 번역이 나오기까지 우리 영문학계는 오랜 시간을 기다렸다. 축약본으로 이 작품을 접할 수밖에 없었던 국내 영문학도, 대작의 번역을 고대하던 교양 독자들에게 이 책은 큰 선물이 될 것이다. 완전한 판본, 완전한 분량, 완전한 번역은 이 작품의 문학사적 의의만큼이나 큰 의미를 우리에게 준다.


새뮤얼 리처드슨과 ≪클러리사 할로≫

영국 소설사가들은 새뮤얼 리처드슨을 같은 시기의 헨리 필딩(Henry Fielding), 토비아스 스몰렛(Tobias Smollett), 로렌스 스턴(Laurence Sterne)과 함께 영국 소설의 기초를 이끈 네 바퀴로 평가한다.

그가 ≪클러리사 할로≫ 이전에 쓴 ≪패멀라(Pamela)≫는 현대적 소설의 효시로 일컬어진다. 빈한하고 미천한 집안 출신이지만 빼어난 미모와 지혜와 신앙심을 두루 갖춘 10대 중반의 어린 하녀가 젊고 부유한 미남 지주의 온갖 유혹과 위협과 술수를 물리치고 마침내 그의 정식 아내가 된다는 ≪패멀라≫는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많은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패멀라≫는 비판적 시각도 만만치 않았는데, “거짓 순수성이 드러나다”라는 부제를 단 ≪반패멀라≫, 허위라는 뜻의 ‘sham’을 합성시킨 ≪섀멀라≫, ≪패멀라≫를 패러디한 ≪조지프 앤드루스≫ 등이 잇달아 출간되기까지 했다.

리처드슨은 이러한 비판에 대해 ≪클러리사 할로≫로 반격했다. ≪클러리사 할로≫는 ≪패멀라≫의 주제의식을 더욱 발전시킨 작품이다. 리처드슨은 두 작품에서 여성의 순결은 중요하며 죽음을 무릅쓰고 지킬 가치가 있다는 자신의 철학을 역설한다. 여기서의 순결은 처녀성이 아닌 인간의 기본적인 가치와 권리를 집약한 상징이다.

당시의 독자들은 리처드슨에게 여주인공을 죽이지 말고 남자 주인공과 결혼시키라고 간청했다. 그러나 작가는 인간 본연의 자유와 권리를 희롱하고 유린하는 자는 반드시 사회적·종교적 응징을 받아야 한다는 신념을 굽히지 않았고, 끝끝내 인기에 영합하지 않았다.


역자 김성균과 ≪클러리사 할로≫

역자는 새뮤얼 리처드슨의 ≪패멀라≫를 읽으면서 근본적으로 일맥상통하는 주제를 보다 완벽하게 전개시킨 ≪클러리사 할로≫에 매료되었다. 대학 시절부터 ≪클러리사 할로≫를 끼고 살았고, 이후 그의 학문 연구 기간 내내 화두가 되었다. 아름답고 총명한 어린 여주인공이 불가항력적인 고난에 강직하고 의연하게 대처하는 모습에서 그는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 후로 그는 클러리사와 반세기를 함께 살았다.

3년 동안 번역했고 4년 동안 가다듬었다. 18세기 작품이라 고증이 필요한 것은 참고 문헌을 뒤적였고, 단어의 의미 하나하나를 제대로 살리기 위해 애썼다. 주석, 표기 어느 것 하나 원전의 의미를 벗어나지 않도록 신경 썼다. 모르는 고전 라틴어 인용문은 전공자들의 도움을 얻었다.

역자에게 클러리사는 현실 속의 그 어떤 사람보다도 더 친근하고 속속들이 안다고 할 수 있는 인물이다. 역자는 이 작품을 탈고하고 나서 “내 일생을 결산하는 최고의 작업이 끝났다”라고 말했다.



☑ 책 속으로

사랑하는 클레리 아가씨, 마침내 모든 것이 제대로 되어가고 있어요. 온 가족이 아가씨에게 호의적이니까요. 아가씨의 오빠와 언니마저도 아가씨와 화해를 해야 한다고 앞장서요.
-15쪽

덕성스러운 체한 그 여자가 여우 같은 여자요. 이렇게 괜찮은 녀석을 망쳐놓다니, 그렇지 않소! 잭! 그 가족들은 그 친구보다 열 배는 더 잘못했소.
-77쪽

존경하는 모든 대령님, 최악의 피해를 입은 당사자는 아가씨입니다. 그 가족들은 모두 그 원인에 일부분 책임이 있으나 아가씨는 그들을 용서합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우리가 감탄하는 아가씨를 모범으로 삼도록 노력하지 않습니까?
-275쪽

그의 표정은 몹시 어두웠소. 나는 그렇지 않았소. 그러나 그는 이렇게 말했소. 내가 보낸 첫 편지에서 나는 참다운 기백을 보였고, 또 이 만남에 즉각 응한 것도 신사다운 면모라고 했소. 내가 다른 점에서도 그랬더라면 좋았겠다고, 그랬더라면 우리가 지금보다 더 좋은 관계로 만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소. 나는 과거지사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이라고 하면서, 나도 그 사람처럼, 어떤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싶다고 했소.
-430~431쪽


☑ 지은이 소개

새뮤얼 리처드슨(Samuel Richardson, 1689∼1791)

새뮤얼 리처드슨의 아버지는 가난하지만 인정받는 장인(소목장이)으로서 특히 몬머스(Monmouth) 공작의 총애를 받았다. 공작이 죽자 그의 아버지는 더비셔(Derbyshire)로 피신했고, 거기서 1689년에 리처드슨 외에 세 자녀를 더 낳았다. 그의 아버지가 그에게 시킨 교육은 기초교육, 즉 읽고 쓰고 셈하기 정도가 전부였다. 가세가 기울어 그는 바람대로 성직자가 되는 필수 조건인 대학 진학을 할 수 없었고, 17세에 런던 올더스게이트 가(Aldersgate Street)에 있는 존 와일드(John Wilde) 인쇄소에 견습공으로 들어갔다. 그는 7년 동안 견습공 생활을 하면서 틈틈이 독서하고, 성실하고 학식 있는 인물들과 서신 교환을 하면서 교양과 정신 계발에 힘썼다. 견습 기간이 끝난 후 다른 인쇄소에서 감독, 식자공, 교정사 등의 일을 하다가 30세 가까워서(1718년 또는 1719년) 자기 소유의 인쇄소를 개업했다.

1720년에 런던의 플리트 가(Fleet Street)의 솔즈베리 코트(Salisbury Court)로 그의 인쇄소를 옮기고 일생 동안 그곳을 근거지로 살았다. 20년 후에 그는 런던의 유수한 인쇄소들 중 하나의 소유주가 되었고, 사업이 번창해서 자기 인쇄소에서 영국 하원과 왕실의 인쇄물을 인쇄하는 등(1742∼1755) 국가의 중요한 서적들을 취급했다. 또한 유명한 시인들과도 가깝게 지내면서 문학적 소양을 길렀고, 다른 작가들의 저서의 머리말이나 헌정사 같은 글을 써주고 색인도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그의 글로 남아 있는 최초의 저작물은 ≪견습공 편람: 젊은이가 항상 지녀야 할 지침서(The Apprentice's Vade Mecum, or, Young Man's Pocket Companion)≫(1733)인데, 이것은 주로 하인들이나 견습공들에게 바른 품행을 가르치기 위한 교훈서다. 이것은 그가 그의 조카를 견습공으로 받아들일 때 그에게 준 편지글에다 다른 유사한 내용을 보충한 것이었다. 그가 그다음으로 쓴 저작물은 ≪상용(常用)서간문≫이었는데, 이 책을 쓰던 중에 ≪패멀라 ≫를 착상해 그것을 먼저 써서 출판한 다음에 완성해 출판한 것이다. 그다음 작품 ≪클러리사 할로≫는 3회에 나누어 1·2권은 1747년 12월 1일에, 3·4권은 1748년 4월 28일에, 그리고 5∼7권은 1748년 12월 6일에 출판되었다. ≪조지프 앤드루스(Joseph Andrews)≫로써 ≪패멀라≫를 통렬하게 풍자했던 필딩은 ≪클러리사 할로≫가 나오자마자 그 작품을 ≪톰 존스(Tom Jones)≫(1749. 2)로 또다시 암암리에 풍자했다. 그러자 리처드슨은 곧바로 그의 마지막 작품인 ≪찰스 그랜디슨 경≫을 써서 1∼4권은 1753년 11월 13일에, 5·6권은 12월 11일에, 그리고 마지막 7권은 1754년 3월 14일에 발표했다.

새뮤얼 리처드슨은 32세였던 1721년 11월 23일에, 그가 처음 견습공으로 들어갔던 인쇄소 주인의 딸인 아홉 살 연하 마사 와일(Martha Wile)과 결혼했다. 10년 후 첫 부인이 죽고 나서(1731. 1. 25) 2년 후에 그는 여덟 살 연하 엘리자베스 리크(Elizabeth Leake)와 재혼했다(1732. 2. 3). 그의 첫 부인은 아들 다섯과 딸 하나를, 둘째 부인은 딸 다섯과 아들 하나를 낳았다. 그러나 첫 부인의 아이들은 전부 어려서 죽었고, 둘째 부인의 여섯 자녀 중에서도 딸 넷만 살아서, 그는 결국 여섯 아들과 두 딸을 잃었다. 생존한 네 딸들 중 큰 딸 메리(Mary)만 필립 디처(Philip Ditcher)라는 내과 의사와 1757년에 결혼했고, 나머지 세 딸은 리처드슨이 살아 있는 동안 미혼으로 지냈다.

그는 견습공을 시작한 10대 때부터 일생 동안 런던에서 인쇄업을 하면서 근면 성실한 생활로 자수성가했고, 자기 사업에 성공했으며, 50세가 지나서 첫 작품 ≪패멀라≫를 두 권(제1·2권)으로 발표했다. 그는 ≪패멀라≫의 인기가 높아지자 누군가가 ≪패멀라≫의 속편을 쓴다는 소문을 듣고 자신이 직접 속편(제3·4권)을 써서 1년여 만인 1741년 12월 7일에 발표했다. 그는 1740년 11월에 ≪패멀라≫를 발표한 후 1754년까지 ≪클러리사 할로≫(7권, 제3판은 8권), ≪찰스 그랜디슨 경≫(7권)을 더 써서 세 작품, 18(19)권을 내었다. 그의 모든 작품은 전부 편지 형식으로 쓰였는데, 그는 실제 생활에서도 지인들이나 그의 작품 애호자들과 수없이 많은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는 항상 편지를 써서, 심지어 집에 함께 있는 가족에게도 글로 자기의 생각을 전했다. 그는 자기가 쓴 모든 편지를 베껴두었고, 받는 편지들도 간직했다. 그의 편지들은 애나 바불드(Anna L. Barbould)가 수집해 간추려 여섯 권으로 출판했으며, 이때 많은 편지가 제외되었다.

리처드슨은 ≪찰스 그랜디슨 경≫ 출판 후에도 많은 인기를 누렸다. 국내에서는 세커(Secker) 대주교(1693∼1768)나 다른 정치적 거물들과 문필가들이 그를 방문했고, 1756년에는 당시 문학계의 거물 새뮤얼 존슨이 채무에 시달려 그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했을 때 리처드슨은 부탁한 것 이상으로 빌려주었다고 한다. 특히 유럽 대륙에서 그의 작품은 프랑스어로, 네덜란드어로, 독일어로 번역되었다. 1758년에는 스위스의 지질학자 기욤 앙투안 드 뤼크(Guillaume Antoine de Luc)는 그를 만나기 위해 영국을 방문했다. 그는 1754년에는 런던 교외 고급 주거지의 저택 파슨스 그린(Parson's Green)으로 이사해서 거기서 많은 방문객을 맞았다. 그의 사업은 번창해서 ≪찰스 그랜디슨 경≫을 출판할 때는 그의 인쇄소에 30명의 직원을 두었으며 1754∼1755년에는 출판협회 회장직을 맡았다. 그가 일생 동안 인쇄한 책은 2349권에 이른다.

그는 일생 실내에서 작업한 탓으로 건강이 좋지 않았으며, ≪찰스 그랜디슨 경≫을 쓰고 난 다음부터는 특히 건강이 악화되었다. 그는 죽기 3년 전(1758)부터는 불면증에 시달렸고, 걷기 힘들어했으며, 펜을 쥘 힘이 없어 딸에게 글을 대필시키기도 했다. 그는 1761년 7월 4일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그의 유해는 그의 집 가까이에 있는 성 브라이드(St. Bride's) 교회당, 그의 첫 부인과 자식들의 곁에 묻혔으며 그의 둘째 부인도 후에 그곳에 묻혔다.


☑ 옮긴이 소개

김성균

김성균은 서울에서 태어나 1958년에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해 1964년에 졸업했으며, 같은 대학교 대학원 영어영문학과에서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1년부터 연세대학교에 재직했고, 2004년 봄에 퇴임할 때까지 학부와 대학원에서 18세기 영국 소설을 강의했다. 현재 연세대학교 명예교수다.

석사 학위논문은 <그레엄 그린의 소설 연구>(1966)이고, 박사 학위논문은 영국 18세기 소설 중 가장 난해하며 최초 의식의 흐름 수법 소설이라고 하는 <“트리스트럼 섄디” 연구: 작가의 독자 의식과 소설의 구성>(1979)이다. 저서는 없고, 영국 소설 발생기의 작가들인 존 버니언, 애프라 벤, 대니얼 디포, 엘리자 헤이우드, 새뮤얼 리처드슨, 헨리 필딩, 로런스 스턴 등의 작품에 대한 논문을 한국 영어영문학회 학회지 *≪영어영문학≫과 연세대 논문집 ≪영어영문학 연구≫에 발표했다. 주석본으로 18세기 주요 소설 대니얼 디포의 ≪몰 플랜더스≫(신아사, 1991), 헨리 필딩의 ≪조지프 앤드루스≫(연세대 출판부, 1995), 새뮤얼 리처드슨의 ≪패멀라≫(연세대 출판부, 1996)를 내었고, 학부 영산문 강독을 위한 주석본 ≪Prose in English≫(연세대, 1998)를 편집했다. 역서로는 그레엄 그린의 ≪명예영사≫(한길사, 1983)가 있다.


☑ 목차

편지 1. 존 벨퍼드 씨가 로버트 러블레이스 씨에게

편지 2. 벨퍼드 씨가 로버트 러블레이스 씨에게

편지 3. 노턴 부인이 클러리사 할로 양에게

편지 4. 애럽 할로 양이 클러리사 할로 양에게

편지 5. 그의 사랑하는 조카딸 클러리사 할로 양에게

편지 6. 벨퍼드 씨가 로버트 러블레이스 씨에게

편지 7. 벨퍼드 씨가 로버트 러블레이스 씨에게

편지 8. 영원히 존경하옵는 제임스 할로 1세, 에스콰이어

편지 9. 영원히 존경하옵는 미시즈 할로

편지 10. 제임스 할로 2세, 에스콰이어

편지 11. 미스 할로

편지 12. 존·앤터니 할로, 에스콰이어

편지 13. 벨퍼드 씨가 로버트 러블레이스 씨에게

편지 14. 벨퍼드 씨가 로버트 러블레이스 씨에게

편지 15. 벨퍼드 씨가 로버트 러블레이스 씨에게

편지 16. 모브리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17.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18. 벨퍼드 씨가 리처드 모브리 씨에게

편지 19. 벨퍼드 씨가 로버트 러블레이스 씨에게

편지 20. 모든 대령이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21. 모든 대령의 편지

편지 22. 모든 대령의 편지

편지 23. 모든 대령의 편지

편지 24. 모든 대령의 편지

편지 25. 벨퍼드 씨가 윌리엄 모든 씨에게

편지 26. 제임스 할로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27. 벨퍼드 씨가 제임스 할로 씨에게

편지 28. 모든 대령이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29. 벨퍼드 씨가 M 경에게

편지 30. 미스 몬터규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31.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32.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33.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34. 벨퍼드 씨가 로버트 러블레이스 씨에게

편지 35.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36.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37. 벨퍼드 씨가 모든 대령에게

편지 38. 사랑하는 윌리엄 모든 사촌 오빠에게

편지 39. 모든 대령이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40. 모든 대령이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41. 벨퍼드 씨가 하우 양에게

편지 42. 하우 양이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43. 하우 양이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44. 벨퍼드 씨가 하우 양에게

편지 45. M 경이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46. 벨퍼드 씨가 M 경에게

편지 47. 벨퍼드 씨가 M 경에게

편지 48. 벨퍼드 씨가 M 경에게

편지 49. 하우 양이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50.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51. 벨퍼드 씨가 로버트 러블레이스 씨에게

편지 52.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53. 벨퍼드 씨가 로버트 러블레이스 씨에게

편지 54.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55.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56.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57. F. J. 드 라 투르가 보낸 편지의 번역문. 런던, 소호 스퀘어 인근의 존 벨퍼드 씨에게

맺는말

후기

클러리사의 저자에게 드림

참고 문헌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클러리사 할로 Ⅶ


☑ 책 소개

전무후무한 세계 서간체 소설의 결정판


≪클러리사 할로(Clarissa Harlowe)≫는 편지 모음이다. 시작부터 끝까지 인물들이 주고받는 편지로 스토리가 전개되는 소설이다. 모든 편지는 실제로 작가가 썼으면서도 표면적으로는 작중인물들이 쓴 것을 편집인이 수집하고 정리한 것처럼 되어 있는 ‘보여 주기’ 기법을 사용한다. 따라서 독자는 겁탈당하고 심신이 탈진한 클러리사의 내면을 숨결과 체취까지 느끼며 들여다볼 수 있다.

새뮤얼 리처드슨(Samuel Richardson)은 이 작품으로 서간체 소설의 새 장을 열었다. 서간체 문학의 모든 기법이 완벽하게 구사되고, 모든 이점이 철저하게 활용된 예는 이 작품이 유일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문학사상 가장 긴 작품

≪클러리사 할로≫는 총 8권이다. 200자 원고지로 16,492장이다. 이 방대한 소설은 오늘날 영어권의 일반 독자는 물론이고 영문학과 학생들, 교수들조차도 전체를 다 읽기 어려워 축약본을 찾는다.

이 작품이 사건에 비해 너무 길다고 불평하는 독자에게 당시의 저명한 비평가 새뮤얼 존슨(Samuel Johnson)은 이렇게 일침을 가한다. “이 작품을 스토리에만 관심을 가지고 읽다가는 너무 지루하고 속상해서 죽고 싶을 지경일 것이다. 스토리는 인물의 내면을 보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읽을 만한 책도, 텔레비전도, 인터넷도 없던 당시에는 많은 독자가 작품이 끝나는 것을 아쉬워했다는 후문도 있다. 이 작품의 길이에 대해 리처드슨은 어느 저명한 비평가의 견해를 인용한다. “작품의 의도가 전편을 통해서 일관된다면, 인물들이 다양하고 자연스러우며 개성적이라면, 흥미를 끄는 다양한 사건들이 독자를 항상 긴장시킨다면 작품의 길이는 길수록 좋다. 그러나 모든 점이 이와 반대라면 한 편의 우화보다 짧다 하더라도 독자를 지루하게 할 것이다.”


전국의 영문학자들이 기다리던 책

이 방대한 분량의 대작을 지식을만드는지식에서 국내 최초로 온전히 번역해 출간했다. 작가가 철저히 수정하고 보완해 많은 학자들이 ≪클러리사 할로≫의 결정판이라고 평가하는 제3판을 저본으로 삼았다. 번역자 김성균은 걸작을 더욱 완전하게 소개하기 위해 리처드슨의 의도를 살린 원전의 편집 형태를 그대로 따랐다. 지은이의 모든 주석을 원전의 표기 그대로 반영하고, 원전의 쪽수를 참고하라는 내용에는 이 책에서의 해당 쪽수를 친절하게 밝혔다.

이 번역이 나오기까지 우리 영문학계는 오랜 시간을 기다렸다. 축약본으로 이 작품을 접할 수밖에 없었던 국내 영문학도, 대작의 번역을 고대하던 교양 독자들에게 이 책은 큰 선물이 될 것이다. 완전한 판본, 완전한 분량, 완전한 번역은 이 작품의 문학사적 의의만큼이나 큰 의미를 우리에게 준다.


새뮤얼 리처드슨과 ≪클러리사 할로≫

영국 소설사가들은 새뮤얼 리처드슨을 같은 시기의 헨리 필딩(Henry Fielding), 토비아스 스몰렛(Tobias Smollett), 로렌스 스턴(Laurence Sterne)과 함께 영국 소설의 기초를 이끈 네 바퀴로 평가한다.

그가 ≪클러리사 할로≫ 이전에 쓴 ≪패멀라(Pamela)≫는 현대적 소설의 효시로 일컬어진다. 빈한하고 미천한 집안 출신이지만 빼어난 미모와 지혜와 신앙심을 두루 갖춘 10대 중반의 어린 하녀가 젊고 부유한 미남 지주의 온갖 유혹과 위협과 술수를 물리치고 마침내 그의 정식 아내가 된다는 ≪패멀라≫는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많은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패멀라≫는 비판적 시각도 만만치 않았는데, “거짓 순수성이 드러나다”라는 부제를 단 ≪반패멀라≫, 허위라는 뜻의 ‘sham’을 합성시킨 ≪섀멀라≫, ≪패멀라≫를 패러디한 ≪조지프 앤드루스≫ 등이 잇달아 출간되기까지 했다.

리처드슨은 이러한 비판에 대해 ≪클러리사 할로≫로 반격했다. ≪클러리사 할로≫는 ≪패멀라≫의 주제의식을 더욱 발전시킨 작품이다. 리처드슨은 두 작품에서 여성의 순결은 중요하며 죽음을 무릅쓰고 지킬 가치가 있다는 자신의 철학을 역설한다. 여기서의 순결은 처녀성이 아닌 인간의 기본적인 가치와 권리를 집약한 상징이다.

당시의 독자들은 리처드슨에게 여주인공을 죽이지 말고 남자 주인공과 결혼시키라고 간청했다. 그러나 작가는 인간 본연의 자유와 권리를 희롱하고 유린하는 자는 반드시 사회적·종교적 응징을 받아야 한다는 신념을 굽히지 않았고, 끝끝내 인기에 영합하지 않았다.


역자 김성균과 ≪클러리사 할로≫

역자는 새뮤얼 리처드슨의 ≪패멀라≫를 읽으면서 근본적으로 일맥상통하는 주제를 보다 완벽하게 전개시킨 ≪클러리사 할로≫에 매료되었다. 대학 시절부터 ≪클러리사 할로≫를 끼고 살았고, 이후 그의 학문 연구 기간 내내 화두가 되었다. 아름답고 총명한 어린 여주인공이 불가항력적인 고난에 강직하고 의연하게 대처하는 모습에서 그는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 후로 그는 클러리사와 반세기를 함께 살았다.

3년 동안 번역했고 4년 동안 가다듬었다. 18세기 작품이라 고증이 필요한 것은 참고 문헌을 뒤적였고, 단어의 의미 하나하나를 제대로 살리기 위해 애썼다. 주석, 표기 어느 것 하나 원전의 의미를 벗어나지 않도록 신경 썼다. 모르는 고전 라틴어 인용문은 전공자들의 도움을 얻었다.

역자에게 클러리사는 현실 속의 그 어떤 사람보다도 더 친근하고 속속들이 안다고 할 수 있는 인물이다. 역자는 이 작품을 탈고하고 나서 “내 일생을 결산하는 최고의 작업이 끝났다”라고 말했다.




☑ 책 속으로

이렇게 한 줄만 써 보내줘. ‘클레리 할로야, 네가 원하는 대로 편지 써도 된다’ 하고 말이야. 그거면 충분해. 그러면 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걸 가장 큰 은혜로 여길 거야.
-86쪽

러블레이스, 제발 부탁인데 자네는 자네가 아가씨를 만나 괴롭히지 않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시오.
-106~107쪽

아가씨의 천사 같은 순수성과 나의 깨어난 양심은 아가씨의 드높은 덕성과 나의 혐오스러운 비열함을 증명하는 불변의 기록이오. 그러나 아가씨가 나를 용서한다면 나는 진심으로 아가씨에게 영원히 감사할 것이오. 그러니 나를 용서하시오. …아가씨도 용서받기를 원한다면, 나도 그렇게 용서해 주시오. 그리고 나를 만나주시오.
-152쪽

제가 앞으로, 몇 주가 아니라 여러 해를 살 수 있고 또 세상에 댁 말고는 다른 남자가 하나도 없다고 하더라도, 저는 댁의 사람이 될 수도 없고 그럴 생각도 없어요.

의무를 피할 수 없어서 이행하는 것은 무가치한 일이에요.
-175쪽

아! 잭! 내 양심은 자네의 그 무딘 질책에도 나한테 칼날을 들이대니, 지금 나는 얼마나 아프겠소!
-562쪽

하지만 만약에 네가 나를 두고 떠난다면 이 세상이,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나한테 무슨 의미가 있니?
-720쪽


☑ 지은이 소개

새뮤얼 리처드슨(Samuel Richardson, 1689∼1791)

새뮤얼 리처드슨의 아버지는 가난하지만 인정받는 장인(소목장이)으로서 특히 몬머스(Monmouth) 공작의 총애를 받았다. 공작이 죽자 그의 아버지는 더비셔(Derbyshire)로 피신했고, 거기서 1689년에 리처드슨 외에 세 자녀를 더 낳았다. 그의 아버지가 그에게 시킨 교육은 기초교육, 즉 읽고 쓰고 셈하기 정도가 전부였다. 가세가 기울어 그는 바람대로 성직자가 되는 필수 조건인 대학 진학을 할 수 없었고, 17세에 런던 올더스게이트 가(Aldersgate Street)에 있는 존 와일드(John Wilde) 인쇄소에 견습공으로 들어갔다. 그는 7년 동안 견습공 생활을 하면서 틈틈이 독서하고, 성실하고 학식 있는 인물들과 서신 교환을 하면서 교양과 정신 계발에 힘썼다. 견습 기간이 끝난 후 다른 인쇄소에서 감독, 식자공, 교정사 등의 일을 하다가 30세 가까워서(1718년 또는 1719년) 자기 소유의 인쇄소를 개업했다.

1720년에 런던의 플리트 가(Fleet Street)의 솔즈베리 코트(Salisbury Court)로 그의 인쇄소를 옮기고 일생 동안 그곳을 근거지로 살았다. 20년 후에 그는 런던의 유수한 인쇄소들 중 하나의 소유주가 되었고, 사업이 번창해서 자기 인쇄소에서 영국 하원과 왕실의 인쇄물을 인쇄하는 등(1742∼1755) 국가의 중요한 서적들을 취급했다. 또한 유명한 시인들과도 가깝게 지내면서 문학적 소양을 길렀고, 다른 작가들의 저서의 머리말이나 헌정사 같은 글을 써주고 색인도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그의 글로 남아 있는 최초의 저작물은 ≪견습공 편람: 젊은이가 항상 지녀야 할 지침서(The Apprentice's Vade Mecum, or, Young Man's Pocket Companion)≫(1733)인데, 이것은 주로 하인들이나 견습공들에게 바른 품행을 가르치기 위한 교훈서다. 이것은 그가 그의 조카를 견습공으로 받아들일 때 그에게 준 편지글에다 다른 유사한 내용을 보충한 것이었다. 그가 그다음으로 쓴 저작물은 ≪상용(常用)서간문≫이었는데, 이 책을 쓰던 중에 ≪패멀라 ≫를 착상해 그것을 먼저 써서 출판한 다음에 완성해 출판한 것이다. 그다음 작품 ≪클러리사 할로≫는 3회에 나누어 1·2권은 1747년 12월 1일에, 3·4권은 1748년 4월 28일에, 그리고 5∼7권은 1748년 12월 6일에 출판되었다. ≪조지프 앤드루스(Joseph Andrews)≫로써 ≪패멀라≫를 통렬하게 풍자했던 필딩은 ≪클러리사 할로≫가 나오자마자 그 작품을 ≪톰 존스(Tom Jones)≫(1749. 2)로 또다시 암암리에 풍자했다. 그러자 리처드슨은 곧바로 그의 마지막 작품인 ≪찰스 그랜디슨 경≫을 써서 1∼4권은 1753년 11월 13일에, 5·6권은 12월 11일에, 그리고 마지막 7권은 1754년 3월 14일에 발표했다.

새뮤얼 리처드슨은 32세였던 1721년 11월 23일에, 그가 처음 견습공으로 들어갔던 인쇄소 주인의 딸인 아홉 살 연하 마사 와일(Martha Wile)과 결혼했다. 10년 후 첫 부인이 죽고 나서(1731. 1. 25) 2년 후에 그는 여덟 살 연하 엘리자베스 리크(Elizabeth Leake)와 재혼했다(1732. 2. 3). 그의 첫 부인은 아들 다섯과 딸 하나를, 둘째 부인은 딸 다섯과 아들 하나를 낳았다. 그러나 첫 부인의 아이들은 전부 어려서 죽었고, 둘째 부인의 여섯 자녀 중에서도 딸 넷만 살아서, 그는 결국 여섯 아들과 두 딸을 잃었다. 생존한 네 딸들 중 큰 딸 메리(Mary)만 필립 디처(Philip Ditcher)라는 내과 의사와 1757년에 결혼했고, 나머지 세 딸은 리처드슨이 살아 있는 동안 미혼으로 지냈다.

그는 견습공을 시작한 10대 때부터 일생 동안 런던에서 인쇄업을 하면서 근면 성실한 생활로 자수성가했고, 자기 사업에 성공했으며, 50세가 지나서 첫 작품 ≪패멀라≫를 두 권(제1·2권)으로 발표했다. 그는 ≪패멀라≫의 인기가 높아지자 누군가가 ≪패멀라≫의 속편을 쓴다는 소문을 듣고 자신이 직접 속편(제3·4권)을 써서 1년여 만인 1741년 12월 7일에 발표했다. 그는 1740년 11월에 ≪패멀라≫를 발표한 후 1754년까지 ≪클러리사 할로≫(7권, 제3판은 8권), ≪찰스 그랜디슨 경≫(7권)을 더 써서 세 작품, 18(19)권을 내었다. 그의 모든 작품은 전부 편지 형식으로 쓰였는데, 그는 실제 생활에서도 지인들이나 그의 작품 애호자들과 수없이 많은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는 항상 편지를 써서, 심지어 집에 함께 있는 가족에게도 글로 자기의 생각을 전했다. 그는 자기가 쓴 모든 편지를 베껴두었고, 받는 편지들도 간직했다. 그의 편지들은 애나 바불드(Anna L. Barbould)가 수집해 간추려 여섯 권으로 출판했으며, 이때 많은 편지가 제외되었다.

리처드슨은 ≪찰스 그랜디슨 경≫ 출판 후에도 많은 인기를 누렸다. 국내에서는 세커(Secker) 대주교(1693∼1768)나 다른 정치적 거물들과 문필가들이 그를 방문했고, 1756년에는 당시 문학계의 거물 새뮤얼 존슨이 채무에 시달려 그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했을 때 리처드슨은 부탁한 것 이상으로 빌려주었다고 한다. 특히 유럽 대륙에서 그의 작품은 프랑스어로, 네덜란드어로, 독일어로 번역되었다. 1758년에는 스위스의 지질학자 기욤 앙투안 드 뤼크(Guillaume Antoine de Luc)는 그를 만나기 위해 영국을 방문했다. 그는 1754년에는 런던 교외 고급 주거지의 저택 파슨스 그린(Parson's Green)으로 이사해서 거기서 많은 방문객을 맞았다. 그의 사업은 번창해서 ≪찰스 그랜디슨 경≫을 출판할 때는 그의 인쇄소에 30명의 직원을 두었으며 1754∼1755년에는 출판협회 회장직을 맡았다. 그가 일생 동안 인쇄한 책은 2349권에 이른다.

그는 일생 실내에서 작업한 탓으로 건강이 좋지 않았으며, ≪찰스 그랜디슨 경≫을 쓰고 난 다음부터는 특히 건강이 악화되었다. 그는 죽기 3년 전(1758)부터는 불면증에 시달렸고, 걷기 힘들어했으며, 펜을 쥘 힘이 없어 딸에게 글을 대필시키기도 했다. 그는 1761년 7월 4일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그의 유해는 그의 집 가까이에 있는 성 브라이드(St. Bride's) 교회당, 그의 첫 부인과 자식들의 곁에 묻혔으며 그의 둘째 부인도 후에 그곳에 묻혔다.


☑ 옮긴이 소개

김성균

김성균은 서울에서 태어나 1958년에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해 1964년에 졸업했으며, 같은 대학교 대학원 영어영문학과에서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1년부터 연세대학교에 재직했고, 2004년 봄에 퇴임할 때까지 학부와 대학원에서 18세기 영국 소설을 강의했다. 현재 연세대학교 명예교수다.

석사 학위논문은 <그레엄 그린의 소설 연구>(1966)이고, 박사 학위논문은 영국 18세기 소설 중 가장 난해하며 최초 의식의 흐름 수법 소설이라고 하는 <“트리스트럼 섄디” 연구: 작가의 독자 의식과 소설의 구성>(1979)이다. 저서는 없고, 영국 소설 발생기의 작가들인 존 버니언, 애프라 벤, 대니얼 디포, 엘리자 헤이우드, 새뮤얼 리처드슨, 헨리 필딩, 로런스 스턴 등의 작품에 대한 논문을 한국 영어영문학회 학회지 *≪영어영문학≫과 연세대 논문집 ≪영어영문학 연구≫에 발표했다. 주석본으로 18세기 주요 소설 대니얼 디포의 ≪몰 플랜더스≫(신아사, 1991), 헨리 필딩의 ≪조지프 앤드루스≫(연세대 출판부, 1995), 새뮤얼 리처드슨의 ≪패멀라≫(연세대 출판부, 1996)를 내었고, 학부 영산문 강독을 위한 주석본 ≪Prose in English≫(연세대, 1998)를 편집했다. 역서로는 그레엄 그린의 ≪명예영사≫(한길사, 1983)가 있다.


☑ 목차

편지 1.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2.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3. 하우 양이 클러리사 할로 양에게

편지 4. 하우 양이 몬터규가의 두 아가씨에게

편지 5. 노턴 부인이 클러리사 할로 양에게

편지 6. 노턴 부인이 할로 부인에게

편지 7. 할로 부인이 주디스 노턴 부인에게

편지 8. 클러리사 할로 양이 주디스 노턴 부인에게

편지 9. Arab. 할로 양이 클러리사 할로 양에게

편지 10. 클러리사 할로 양이 하우 양에게

편지 11. 클러리사 할로 양이 언니 할로 양에게

편지 12. 노턴 부인이 클러리사 할로 양에게

편지 13. 클러리사 할로 양이 노턴 부인에게

편지 14.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15. 샬럿 몬터규 양이 클러리사 할로 양에게

편지 16. 벨퍼드 씨가 로버트 러블레이스 씨에게

편지 17. 클러리사 할로 양이 몬터규 양에게

편지 18. 벨퍼드 씨가 로버트 러블레이스 씨에게

편지 19. 벨퍼드 씨가 클러리사 할로 양에게

편지 20. 클러리사 할로 양이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21. 벨퍼드 씨가 클러리사 할로 양에게

편지 22. 벨퍼드 씨가 로버트 러블레이스 씨에게

편지 23. 애러벨라 할로 양이 클러리사 할로 양에게

편지 24. 클러리사 할로 양이 그녀의 어머니에게

편지 25. 미스 몬터규가 클러리사 할로 양에게

편지 26.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27.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28. 러블레이스 씨가 클러리사 할로 양에게

편지 29. 클러리사 할로 양이 M 경과 그 자매들에게

편지 30. 벨퍼드 씨가 로버트 러블레이스 씨에게

편지 31. 벨퍼드 씨가 로버트 러블레이스 씨에게

편지 32. Cl. 할로 양이 로버트 러블레이스 씨에게

편지 33. 존 할로 씨가 Cl. 할로 양에게

편지 34. Cl. 할로 양이 존 할로 씨에게

편지 35. 하우 양이 클러리사 할로 양에게

편지 36. 클러리사 할로 양이 하우 양에게

편지 37. 앤터니 할로 씨가 클러리사 할로 양에게

편지 38. 클러리사 할로 양이 앤터니 할로 씨에게

편지 39. 노턴 부인이 클러리사 할로 양에게

편지 40. 클러리사 할로 양이 노턴 부인에게

편지 41.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42. 벨퍼드 씨가 로버트 러블레이스 씨에게

편지 43.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44. 벨퍼드 씨가 로버트 러블레이스 씨에게

편지 45. 벨퍼드 씨가 클러리사 할로 양에게

편지 46.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47.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48.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49.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50. 벨퍼드 씨가 로버트 러블레이스 씨에게

편지 51. 벨퍼드 씨가 로버트 러블레이스 씨에게

편지 52.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53.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54.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55. 벨퍼드 씨가 로버트 러블레이스 씨에게

편지 56.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57. 벨퍼드 씨가 로버트 러블레이스 씨에게

편지 58. 루언 박사가 Cl. 할로 양에게

편지 59. 클러리사 할로 양이 루언 박사에게

편지 60. 애러벨라 할로 양이 클러리사 할로 양에게

편지 61. 클러리사 할로 양이 애러벨라 할로 양에게

편지 62. 노턴 부인이 클러리사 할로 양에게

편지 63. 노턴 부인이 클러리사 할로 양에게

편지 64. Cl. 할로 양이 주디스 노턴 부인에게

편지 65. 하우 양이 클러리사 할로 양에게

편지 66. 클러리사 할로 양이 하우 양에게

편지 67. 클러리사 할로 양이 하우 양에게

편지 68. 와이얼리 씨가 클러리사 할로 양에게

편지 69. Cl. 할로 양이 알렉스 와이얼리 씨에게

편지 70.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71. 벨퍼드 씨가 로버트 러블레이스 씨에게

편지 72. 벨퍼드 씨가 로버트 러블레이스 씨에게

편지 73.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74.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75. 브랜드 씨가 존 할로 씨에게

편지 76. 벨퍼드 씨가 로버트 러블레이스 씨에게

편지 77. 벨퍼드 씨가 로버트 러블레이스 씨에게

편지 78. 모든 대령이 클러리사 할로 양에게

편지 79. 클러리사 할로 양이 Wm. 모든 씨에게

편지 80.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81. 벨퍼드 씨가 로버트 러블레이스 씨에게

편지 82. 벨퍼드 씨가 로버트 러블레이스 씨에게

편지 83. 벨퍼드 씨가 로버트 러블레이스 씨에게

편지 84.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85. 벨퍼드 씨가 로버트 러블레이스 씨에게

편지 86. 하우 양이 클러리사 할로 양에게

편지 87. 하우 양이 클러리사 할로 양에게

편지 88. 벨퍼드 씨가 로버트 러블레이스 씨에게

편지 89. 클러리사 할로 양이 하우 양에게

편지 90. 노턴 부인이 클러리사 할로 양에게

편지 91. 벨퍼드 씨가 로버트 러블레이스 씨에게

편지 92. H 의사가 제임스 할로에게

편지 93. 벨퍼드 씨가 윌리엄 모든 씨에게

편지 94.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95. 벨퍼드 씨가 로버트 러블레이스 씨에게

편지 96. 클러리사 할로 양이 노턴 부인에게

편지 97.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98. 벨퍼드 씨가 로버트 러블레이스 씨에게

편지 99. 브랜드 씨가 존 월턴 씨에게

편지 100. 브랜드 씨가 존 할로 씨에게

편지 101.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102. 벨퍼드 씨가 로버트 러블레이스 씨에게

편지 103.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104. 벨퍼드 씨가 로버트 러블레이스 씨에게

편지 105. 벨퍼드 씨의 편지

편지 106. 벨퍼드 씨의 편지

편지 107. 벨퍼드 씨의 편지

편지 108. 벨퍼드 씨가 리처드 모브리 씨에게

편지 109.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110. 벨퍼드 씨가 로버트 러블레이스 씨에게

편지 111. 모브리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클러리사 할로 Ⅵ


☑ 책 소개

전무후무한 세계 서간체 소설의 결정판


≪클러리사 할로(Clarissa Harlowe)≫는 편지 모음이다. 시작부터 끝까지 인물들이 주고받는 편지로 스토리가 전개되는 소설이다. 모든 편지는 실제로 작가가 썼으면서도 표면적으로는 작중인물들이 쓴 것을 편집인이 수집하고 정리한 것처럼 되어 있는 ‘보여 주기’ 기법을 사용한다. 따라서 독자는 겁탈당하고 심신이 탈진한 클러리사의 내면을 숨결과 체취까지 느끼며 들여다볼 수 있다.

새뮤얼 리처드슨(Samuel Richardson)은 이 작품으로 서간체 소설의 새 장을 열었다. 서간체 문학의 모든 기법이 완벽하게 구사되고, 모든 이점이 철저하게 활용된 예는 이 작품이 유일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문학사상 가장 긴 작품

≪클러리사 할로≫는 총 8권이다. 200자 원고지로 16,492장이다. 이 방대한 소설은 오늘날 영어권의 일반 독자는 물론이고 영문학과 학생들, 교수들조차도 전체를 다 읽기 어려워 축약본을 찾는다.

이 작품이 사건에 비해 너무 길다고 불평하는 독자에게 당시의 저명한 비평가 새뮤얼 존슨(Samuel Johnson)은 이렇게 일침을 가한다. “이 작품을 스토리에만 관심을 가지고 읽다가는 너무 지루하고 속상해서 죽고 싶을 지경일 것이다. 스토리는 인물의 내면을 보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읽을 만한 책도, 텔레비전도, 인터넷도 없던 당시에는 많은 독자가 작품이 끝나는 것을 아쉬워했다는 후문도 있다. 이 작품의 길이에 대해 리처드슨은 어느 저명한 비평가의 견해를 인용한다. “작품의 의도가 전편을 통해서 일관된다면, 인물들이 다양하고 자연스러우며 개성적이라면, 흥미를 끄는 다양한 사건들이 독자를 항상 긴장시킨다면 작품의 길이는 길수록 좋다. 그러나 모든 점이 이와 반대라면 한 편의 우화보다 짧다 하더라도 독자를 지루하게 할 것이다.”


전국의 영문학자들이 기다리던 책

이 방대한 분량의 대작을 지식을만드는지식에서 국내 최초로 온전히 번역해 출간했다. 작가가 철저히 수정하고 보완해 많은 학자들이 ≪클러리사 할로≫의 결정판이라고 평가하는 제3판을 저본으로 삼았다. 번역자 김성균은 걸작을 더욱 완전하게 소개하기 위해 리처드슨의 의도를 살린 원전의 편집 형태를 그대로 따랐다. 지은이의 모든 주석을 원전의 표기 그대로 반영하고, 원전의 쪽수를 참고하라는 내용에는 이 책에서의 해당 쪽수를 친절하게 밝혔다.

이 번역이 나오기까지 우리 영문학계는 오랜 시간을 기다렸다. 축약본으로 이 작품을 접할 수밖에 없었던 국내 영문학도, 대작의 번역을 고대하던 교양 독자들에게 이 책은 큰 선물이 될 것이다. 완전한 판본, 완전한 분량, 완전한 번역은 이 작품의 문학사적 의의만큼이나 큰 의미를 우리에게 준다.


새뮤얼 리처드슨과 ≪클러리사 할로≫

영국 소설사가들은 새뮤얼 리처드슨을 같은 시기의 헨리 필딩(Henry Fielding), 토비아스 스몰렛(Tobias Smollett), 로렌스 스턴(Laurence Sterne)과 함께 영국 소설의 기초를 이끈 네 바퀴로 평가한다.

그가 ≪클러리사 할로≫ 이전에 쓴 ≪패멀라(Pamela)≫는 현대적 소설의 효시로 일컬어진다. 빈한하고 미천한 집안 출신이지만 빼어난 미모와 지혜와 신앙심을 두루 갖춘 10대 중반의 어린 하녀가 젊고 부유한 미남 지주의 온갖 유혹과 위협과 술수를 물리치고 마침내 그의 정식 아내가 된다는 ≪패멀라≫는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많은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패멀라≫는 비판적 시각도 만만치 않았는데, “거짓 순수성이 드러나다”라는 부제를 단 ≪반패멀라≫, 허위라는 뜻의 ‘sham’을 합성시킨 ≪섀멀라≫, ≪패멀라≫를 패러디한 ≪조지프 앤드루스≫ 등이 잇달아 출간되기까지 했다.

리처드슨은 이러한 비판에 대해 ≪클러리사 할로≫로 반격했다. ≪클러리사 할로≫는 ≪패멀라≫의 주제의식을 더욱 발전시킨 작품이다. 리처드슨은 두 작품에서 여성의 순결은 중요하며 죽음을 무릅쓰고 지킬 가치가 있다는 자신의 철학을 역설한다. 여기서의 순결은 처녀성이 아닌 인간의 기본적인 가치와 권리를 집약한 상징이다.

당시의 독자들은 리처드슨에게 여주인공을 죽이지 말고 남자 주인공과 결혼시키라고 간청했다. 그러나 작가는 인간 본연의 자유와 권리를 희롱하고 유린하는 자는 반드시 사회적·종교적 응징을 받아야 한다는 신념을 굽히지 않았고, 끝끝내 인기에 영합하지 않았다.


역자 김성균과 ≪클러리사 할로≫

역자는 새뮤얼 리처드슨의 ≪패멀라≫를 읽으면서 근본적으로 일맥상통하는 주제를 보다 완벽하게 전개시킨 ≪클러리사 할로≫에 매료되었다. 대학 시절부터 ≪클러리사 할로≫를 끼고 살았고, 이후 그의 학문 연구 기간 내내 화두가 되었다. 아름답고 총명한 어린 여주인공이 불가항력적인 고난에 강직하고 의연하게 대처하는 모습에서 그는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 후로 그는 클러리사와 반세기를 함께 살았다.

3년 동안 번역했고 4년 동안 가다듬었다. 18세기 작품이라 고증이 필요한 것은 참고 문헌을 뒤적였고, 단어의 의미 하나하나를 제대로 살리기 위해 애썼다. 주석, 표기 어느 것 하나 원전의 의미를 벗어나지 않도록 신경 썼다. 모르는 고전 라틴어 인용문은 전공자들의 도움을 얻었다.

역자에게 클러리사는 현실 속의 그 어떤 사람보다도 더 친근하고 속속들이 안다고 할 수 있는 인물이다. 역자는 이 작품을 탈고하고 나서 “내 일생을 결산하는 최고의 작업이 끝났다”라고 말했다.


☑ 책 속으로

그녀는 돌아서서 손을 빼면서, 나를 혐오하는 듯한, 분개한 표정을 지었소. “내가 댁을 다시 만나는 건 어쩔 수 없기 때문이에요. 댁이 나한테 할 말이 뭐가 있나요? 왜 나를 이렇게 강제로 잡고 있죠?”
-37쪽

“어디든 상관없어요. 이 집을 나가면 내 발걸음은 하느님의 섭리에 따를 거예요. 나는 내 처지가 궁하다는 걸 잘 알고 있어요. 나는 이 세상에 나를 도울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걸 알고 있어요. 이제는 미스 하우까지 나를 버렸어요. 아니면 댁이… 나는 화가 나지만 참겠어요! 내가 모든 사람을 잃게 된 건 댁 때문일 거예요. 그러니까 댁은 지금까지 나의 잔인한 적이었다는 거예요. 댁 자신도 그건 알고 있어요.”
-54쪽

잭, 내가 무슨 수를 써도 안 되오! 나는 그녀가 기어코 하겠다는 대로 해주었지만, 그녀는 나한테 아무런 호의도 베풀지 않소.
-82쪽

자네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우정 어린 열성을 다해서 그녀를 설득하고 그녀가 나한테 편지를 하게 좀 해주시오. … 아니면 자네가 쓰는 편지에 그녀가 ‘Cl. H.’라고 약자 서명만 해도 되오. 나는 최소한 그런 것도 없이 우리 친척들이 다 모인 데 가서 얼간이가 되고 싶지는 않소. 만약에 그녀가 그 날짜를 넘기면 나는 미칠 것이오.
-130쪽

사랑하는 미스 하우!
나는 또다시 탈출했어. 하지만 어쩌면 좋지! 나 자신, 즉 나의 마음은 탈출하지 못했으니! 한심해! 너의 친구 클러리사 할로가 말이야! 너마저도 나를 경멸하겠지! 하지만 네가 모든 걸 알고 나면 그러지 않을 거야!
-187쪽

애나, 지금까지 너는 나를 끔찍이 사랑해 주었어. 내가 지금도 전처럼, 너한테 받을 수 있었던 것과 같은 사랑을 받을 수 있길 바란다면 그건 내가 잘못하는 걸 거야.
-259쪽

이 인간의 끔찍한 거짓 맹세와 배신행위를 볼 때, 건달들, 난봉꾼들이 어린 여자를 자기들 손아귀에 넣으면 무슨 짓을 할 수 있는지 알 수 있겠어. 그렇지 않니? 그 인간은 아마 뻔뻔스럽게도 더 쉽게 정복할 수 있기를 바랐을 거야. 하지만 너의 그 보기 드문 경계심과 드높은 미덕 때문에 그 인간이 약물과 강간과 극악한 폭력을 써야만 그 혐오스러운 짓을 할 수 있었던 걸 보면, 그 인간은 그런 것쯤은 전혀 개의치 않는 것 같아.
-320쪽


☑ 지은이 소개

새뮤얼 리처드슨(Samuel Richardson, 1689∼1791)

새뮤얼 리처드슨의 아버지는 가난하지만 인정받는 장인(소목장이)으로서 특히 몬머스(Monmouth) 공작의 총애를 받았다. 공작이 죽자 그의 아버지는 더비셔(Derbyshire)로 피신했고, 거기서 1689년에 리처드슨 외에 세 자녀를 더 낳았다. 그의 아버지가 그에게 시킨 교육은 기초교육, 즉 읽고 쓰고 셈하기 정도가 전부였다. 가세가 기울어 그는 바람대로 성직자가 되는 필수 조건인 대학 진학을 할 수 없었고, 17세에 런던 올더스게이트 가(Aldersgate Street)에 있는 존 와일드(John Wilde) 인쇄소에 견습공으로 들어갔다. 그는 7년 동안 견습공 생활을 하면서 틈틈이 독서하고, 성실하고 학식 있는 인물들과 서신 교환을 하면서 교양과 정신 계발에 힘썼다. 견습 기간이 끝난 후 다른 인쇄소에서 감독, 식자공, 교정사 등의 일을 하다가 30세 가까워서(1718년 또는 1719년) 자기 소유의 인쇄소를 개업했다.

1720년에 런던의 플리트 가(Fleet Street)의 솔즈베리 코트(Salisbury Court)로 그의 인쇄소를 옮기고 일생 동안 그곳을 근거지로 살았다. 20년 후에 그는 런던의 유수한 인쇄소들 중 하나의 소유주가 되었고, 사업이 번창해서 자기 인쇄소에서 영국 하원과 왕실의 인쇄물을 인쇄하는 등(1742∼1755) 국가의 중요한 서적들을 취급했다. 또한 유명한 시인들과도 가깝게 지내면서 문학적 소양을 길렀고, 다른 작가들의 저서의 머리말이나 헌정사 같은 글을 써주고 색인도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그의 글로 남아 있는 최초의 저작물은 ≪견습공 편람: 젊은이가 항상 지녀야 할 지침서(The Apprentice's Vade Mecum, or, Young Man's Pocket Companion)≫(1733)인데, 이것은 주로 하인들이나 견습공들에게 바른 품행을 가르치기 위한 교훈서다. 이것은 그가 그의 조카를 견습공으로 받아들일 때 그에게 준 편지글에다 다른 유사한 내용을 보충한 것이었다. 그가 그다음으로 쓴 저작물은 ≪상용(常用)서간문≫이었는데, 이 책을 쓰던 중에 ≪패멀라 ≫를 착상해 그것을 먼저 써서 출판한 다음에 완성해 출판한 것이다. 그다음 작품 ≪클러리사 할로≫는 3회에 나누어 1·2권은 1747년 12월 1일에, 3·4권은 1748년 4월 28일에, 그리고 5∼7권은 1748년 12월 6일에 출판되었다. ≪조지프 앤드루스(Joseph Andrews)≫로써 ≪패멀라≫를 통렬하게 풍자했던 필딩은 ≪클러리사 할로≫가 나오자마자 그 작품을 ≪톰 존스(Tom Jones)≫(1749. 2)로 또다시 암암리에 풍자했다. 그러자 리처드슨은 곧바로 그의 마지막 작품인 ≪찰스 그랜디슨 경≫을 써서 1∼4권은 1753년 11월 13일에, 5·6권은 12월 11일에, 그리고 마지막 7권은 1754년 3월 14일에 발표했다.

새뮤얼 리처드슨은 32세였던 1721년 11월 23일에, 그가 처음 견습공으로 들어갔던 인쇄소 주인의 딸인 아홉 살 연하 마사 와일(Martha Wile)과 결혼했다. 10년 후 첫 부인이 죽고 나서(1731. 1. 25) 2년 후에 그는 여덟 살 연하 엘리자베스 리크(Elizabeth Leake)와 재혼했다(1732. 2. 3). 그의 첫 부인은 아들 다섯과 딸 하나를, 둘째 부인은 딸 다섯과 아들 하나를 낳았다. 그러나 첫 부인의 아이들은 전부 어려서 죽었고, 둘째 부인의 여섯 자녀 중에서도 딸 넷만 살아서, 그는 결국 여섯 아들과 두 딸을 잃었다. 생존한 네 딸들 중 큰 딸 메리(Mary)만 필립 디처(Philip Ditcher)라는 내과 의사와 1757년에 결혼했고, 나머지 세 딸은 리처드슨이 살아 있는 동안 미혼으로 지냈다.

그는 견습공을 시작한 10대 때부터 일생 동안 런던에서 인쇄업을 하면서 근면 성실한 생활로 자수성가했고, 자기 사업에 성공했으며, 50세가 지나서 첫 작품 ≪패멀라≫를 두 권(제1·2권)으로 발표했다. 그는 ≪패멀라≫의 인기가 높아지자 누군가가 ≪패멀라≫의 속편을 쓴다는 소문을 듣고 자신이 직접 속편(제3·4권)을 써서 1년여 만인 1741년 12월 7일에 발표했다. 그는 1740년 11월에 ≪패멀라≫를 발표한 후 1754년까지 ≪클러리사 할로≫(7권, 제3판은 8권), ≪찰스 그랜디슨 경≫(7권)을 더 써서 세 작품, 18(19)권을 내었다. 그의 모든 작품은 전부 편지 형식으로 쓰였는데, 그는 실제 생활에서도 지인들이나 그의 작품 애호자들과 수없이 많은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는 항상 편지를 써서, 심지어 집에 함께 있는 가족에게도 글로 자기의 생각을 전했다. 그는 자기가 쓴 모든 편지를 베껴두었고, 받는 편지들도 간직했다. 그의 편지들은 애나 바불드(Anna L. Barbould)가 수집해 간추려 여섯 권으로 출판했으며, 이때 많은 편지가 제외되었다.

리처드슨은 ≪찰스 그랜디슨 경≫ 출판 후에도 많은 인기를 누렸다. 국내에서는 세커(Secker) 대주교(1693∼1768)나 다른 정치적 거물들과 문필가들이 그를 방문했고, 1756년에는 당시 문학계의 거물 새뮤얼 존슨이 채무에 시달려 그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했을 때 리처드슨은 부탁한 것 이상으로 빌려주었다고 한다. 특히 유럽 대륙에서 그의 작품은 프랑스어로, 네덜란드어로, 독일어로 번역되었다. 1758년에는 스위스의 지질학자 기욤 앙투안 드 뤼크(Guillaume Antoine de Luc)는 그를 만나기 위해 영국을 방문했다. 그는 1754년에는 런던 교외 고급 주거지의 저택 파슨스 그린(Parson's Green)으로 이사해서 거기서 많은 방문객을 맞았다. 그의 사업은 번창해서 ≪찰스 그랜디슨 경≫을 출판할 때는 그의 인쇄소에 30명의 직원을 두었으며 1754∼1755년에는 출판협회 회장직을 맡았다. 그가 일생 동안 인쇄한 책은 2349권에 이른다.

그는 일생 실내에서 작업한 탓으로 건강이 좋지 않았으며, ≪찰스 그랜디슨 경≫을 쓰고 난 다음부터는 특히 건강이 악화되었다. 그는 죽기 3년 전(1758)부터는 불면증에 시달렸고, 걷기 힘들어했으며, 펜을 쥘 힘이 없어 딸에게 글을 대필시키기도 했다. 그는 1761년 7월 4일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그의 유해는 그의 집 가까이에 있는 성 브라이드(St. Bride's) 교회당, 그의 첫 부인과 자식들의 곁에 묻혔으며 그의 둘째 부인도 후에 그곳에 묻혔다.


☑ 옮긴이 소개

김성균

김성균은 서울에서 태어나 1958년에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해 1964년에 졸업했으며, 같은 대학교 대학원 영어영문학과에서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1년부터 연세대학교에 재직했고, 2004년 봄에 퇴임할 때까지 학부와 대학원에서 18세기 영국 소설을 강의했다. 현재 연세대학교 명예교수다.

석사 학위논문은 <그레엄 그린의 소설 연구>(1966)이고, 박사 학위논문은 영국 18세기 소설 중 가장 난해하며 최초 의식의 흐름 수법 소설이라고 하는 <“트리스트럼 섄디” 연구: 작가의 독자 의식과 소설의 구성>(1979)이다. 저서는 없고, 영국 소설 발생기의 작가들인 존 버니언, 애프라 벤, 대니얼 디포, 엘리자 헤이우드, 새뮤얼 리처드슨, 헨리 필딩, 로런스 스턴 등의 작품에 대한 논문을 한국 영어영문학회 학회지 *≪영어영문학≫과 연세대 논문집 ≪영어영문학 연구≫에 발표했다. 주석본으로 18세기 주요 소설 대니얼 디포의 ≪몰 플랜더스≫(신아사, 1991), 헨리 필딩의 ≪조지프 앤드루스≫(연세대 출판부, 1995), 새뮤얼 리처드슨의 ≪패멀라≫(연세대 출판부, 1996)를 내었고, 학부 영산문 강독을 위한 주석본 ≪Prose in English≫(연세대, 1998)를 편집했다. 역서로는 그레엄 그린의 ≪명예영사≫(한길사, 1983)가 있다.


☑ 목차

편지 1.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2.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3.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4.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5.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6.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7.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8.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9.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10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11.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12.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13.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14. 러블레이스 씨가 클러리사 할로 양에게

편지 15. 러블레이스 씨가 클러리사 할로 양에게

편지 16. 러블레이스 씨가 클러리사 할로 양에게

편지 17.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18. 벨퍼드 씨가 로버트 러블레이스 씨에게

편지 19.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20. 러블레이스 씨가 클러리사 할로 양에게

편지 21. 러블레이스 씨가 패트릭 맥도널드 씨에게

편지 22. 러블레이스 씨가 앤터니 톰린슨 선장에게

편지 23. 패트릭 맥도널드 씨가 로버트 러블레이스 씨에게

편지 24. 모브리 씨가 로버트 러블레이스 씨에게

편지 25. 벨퍼드 씨가 로버트 러블레이스 씨에게

편지 26.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27. 클러리사 할로 양이 하우 양에게

편지 28. 하우 부인이 클러리사 할로 양에게

편지 29. 클러리사 할로 양이 하우 부인에게

편지 30. 클러리사 할로 양이 해나 버턴에게

편지 31. 해나 버턴의 답장

편지 32. 클러리사 할로 양이 주디스 노턴 부인에게

편지 33. 노턴 부인의 답장

편지 34. Cl. 할로 양이 베티 로런스 부인에게

편지 35. 베티 로런스 부인이 Cl. 할로 양에게

편지 36. 클러리사 할로 양이 호지스 부인에게

편지 37. 호지스 부인의 답장

편지 38. 클러리사 할로 양이 베티 로런스 부인에게

편지 39. 클러리사 할로 양이 노턴 부인에게

편지 40. 노턴 부인이 클러리사 할로 양에게

편지 41. 클러리사 할로 양이 주디스 노턴 부인에게

편지 42. 하우 양이 클러리사 할로 양에게

편지 43. 클러리사 할로 양이 하우 양에게

편지 44. 클러리사 할로 양이 하우 양에게

편지 45. 클러리사 할로 양의 편지

편지 46. 클러리사 할로 양이 하우 양에게

편지 47. 클러리사 할로 양의 편지

편지 48. 하우 양이 클러리사 할로 양에게

편지 49. 하우 양이 클러리사 할로 양에게

편지 50. 클러리사 할로 양이 하우 양에게

편지 51. 하우 양이 클러리사 할로 양에게

편지 52. 클러리사 할로 양이 하우 양에게

편지 53.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54.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55.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56. 러블레이스 씨의 편지

편지 57. 러블레이스 씨의 편지

편지 58.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59. 하우 양이 클러리사 할로 양에게

편지 60. 하우 양이 클러리사 할로 양에게

편지 61. 하우 양이 미스 샬럿 몬터규에게

편지 62.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63. 미스 샬럿 몬터규가 하우 양에게

편지 64. 미스 몬터규가 하우 양에게

편지 65. 벨퍼드 씨가 로버트 러블레이스 씨에게

편지 66. 벨퍼드 씨가 로버트 러블레이스 씨에게

편지 67.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68. 벨퍼드 씨가 로버트 러블레이스 씨에게

편지 69. 벨퍼드 씨가 로버트 러블레이스 씨에게

편지 70. 벨퍼드 씨가 로버트 러블레이스 씨에게

편지 71. 벨퍼드 씨가 로버트 러블레이스 씨에게

편지 72. 벨퍼드 씨가 로버트 러블레이스 씨에게

편지 73.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74. 하우 양이 클러리사 할로 양에게

편지 75. 클러리사 할로 양이 하우 양에게

편지 76. 벨퍼드 씨가 로버트 러블레이스 씨에게

편지 77. 벨퍼드 씨가 로버트 러블레이스 씨에게

편지 78.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79.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80. 벨퍼드 씨가 로버트 러블레이스 씨에게

편지 81. 벨퍼드 씨의 편지

편지 82.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83. 하우 양이 애러벨라 할로 양에게

편지 84. 애러벨라 할로 양의 답장

편지 85. 하우 양의 답장

편지 86. 애러벨라 할로 양이 미스 하우에게

편지 87. 하우 양이 애러벨라 할로 양에게

편지 88. 할로 부인이 하우 부인에게

편지 89. 하우 부인의 답장

편지 90. 하우 양이 클러리사 할로 양에게

편지 91. 클러리사 할로 양이 하우 양에게

편지 92. 클러리사 할로 양이 하우 양에게

편지 93. 노턴 부인이 클러리사 할로 양에게

편지 94. 클러리사 할로 양이 노턴 부인에게

편지 95. 클러리사 할로 양이 애러벨라 할로 양에게

편지 96. 벨퍼드 씨가 로버트 러블레이스 씨에게

편지 97. 벨퍼드 씨가 로버트 러블레이스 씨에게

편지 98. 벨퍼드 씨가 로버트 러블레이스 씨에게

편지 99. 하우 양이 클러리사 할로 양에게

편지 100 .클러리사 할로 양이 하우 양에게

편지 101. 클러리사 할로 양이 하우 양에게

클러리사 할로 Ⅴ



☑ 책 소개

전무후무한 세계 서간체 소설의 결정판


≪클러리사 할로(Clarissa Harlowe)≫는 편지 모음이다. 시작부터 끝까지 인물들이 주고받는 편지로 스토리가 전개되는 소설이다. 모든 편지는 실제로 작가가 썼으면서도 표면적으로는 작중인물들이 쓴 것을 편집인이 수집하고 정리한 것처럼 되어 있는 ‘보여 주기’ 기법을 사용한다. 따라서 독자는 겁탈당하고 심신이 탈진한 클러리사의 내면을 숨결과 체취까지 느끼며 들여다볼 수 있다.

새뮤얼 리처드슨(Samuel Richardson)은 이 작품으로 서간체 소설의 새 장을 열었다. 서간체 문학의 모든 기법이 완벽하게 구사되고, 모든 이점이 철저하게 활용된 예는 이 작품이 유일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문학사상 가장 긴 작품

≪클러리사 할로≫는 총 8권이다. 200자 원고지로 16,492장이다. 이 방대한 소설은 오늘날 영어권의 일반 독자는 물론이고 영문학과 학생들, 교수들조차도 전체를 다 읽기 어려워 축약본을 찾는다.

이 작품이 사건에 비해 너무 길다고 불평하는 독자에게 당시의 저명한 비평가 새뮤얼 존슨(Samuel Johnson)은 이렇게 일침을 가한다. “이 작품을 스토리에만 관심을 가지고 읽다가는 너무 지루하고 속상해서 죽고 싶을 지경일 것이다. 스토리는 인물의 내면을 보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읽을 만한 책도, 텔레비전도, 인터넷도 없던 당시에는 많은 독자가 작품이 끝나는 것을 아쉬워했다는 후문도 있다. 이 작품의 길이에 대해 리처드슨은 어느 저명한 비평가의 견해를 인용한다. “작품의 의도가 전편을 통해서 일관된다면, 인물들이 다양하고 자연스러우며 개성적이라면, 흥미를 끄는 다양한 사건들이 독자를 항상 긴장시킨다면 작품의 길이는 길수록 좋다. 그러나 모든 점이 이와 반대라면 한 편의 우화보다 짧다 하더라도 독자를 지루하게 할 것이다.”


전국의 영문학자들이 기다리던 책

이 방대한 분량의 대작을 지식을만드는지식에서 국내 최초로 온전히 번역해 출간했다. 작가가 철저히 수정하고 보완해 많은 학자들이 ≪클러리사 할로≫의 결정판이라고 평가하는 제3판을 저본으로 삼았다. 번역자 김성균은 걸작을 더욱 완전하게 소개하기 위해 리처드슨의 의도를 살린 원전의 편집 형태를 그대로 따랐다. 지은이의 모든 주석을 원전의 표기 그대로 반영하고, 원전의 쪽수를 참고하라는 내용에는 이 책에서의 해당 쪽수를 친절하게 밝혔다.

이 번역이 나오기까지 우리 영문학계는 오랜 시간을 기다렸다. 축약본으로 이 작품을 접할 수밖에 없었던 국내 영문학도, 대작의 번역을 고대하던 교양 독자들에게 이 책은 큰 선물이 될 것이다. 완전한 판본, 완전한 분량, 완전한 번역은 이 작품의 문학사적 의의만큼이나 큰 의미를 우리에게 준다.


새뮤얼 리처드슨과 ≪클러리사 할로≫

영국 소설사가들은 새뮤얼 리처드슨을 같은 시기의 헨리 필딩(Henry Fielding), 토비아스 스몰렛(Tobias Smollett), 로렌스 스턴(Laurence Sterne)과 함께 영국 소설의 기초를 이끈 네 바퀴로 평가한다.

그가 ≪클러리사 할로≫ 이전에 쓴 ≪패멀라(Pamela)≫는 현대적 소설의 효시로 일컬어진다. 빈한하고 미천한 집안 출신이지만 빼어난 미모와 지혜와 신앙심을 두루 갖춘 10대 중반의 어린 하녀가 젊고 부유한 미남 지주의 온갖 유혹과 위협과 술수를 물리치고 마침내 그의 정식 아내가 된다는 ≪패멀라≫는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많은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패멀라≫는 비판적 시각도 만만치 않았는데, “거짓 순수성이 드러나다”라는 부제를 단 ≪반패멀라≫, 허위라는 뜻의 ‘sham’을 합성시킨 ≪섀멀라≫, ≪패멀라≫를 패러디한 ≪조지프 앤드루스≫ 등이 잇달아 출간되기까지 했다.

리처드슨은 이러한 비판에 대해 ≪클러리사 할로≫로 반격했다. ≪클러리사 할로≫는 ≪패멀라≫의 주제의식을 더욱 발전시킨 작품이다. 리처드슨은 두 작품에서 여성의 순결은 중요하며 죽음을 무릅쓰고 지킬 가치가 있다는 자신의 철학을 역설한다. 여기서의 순결은 처녀성이 아닌 인간의 기본적인 가치와 권리를 집약한 상징이다.

당시의 독자들은 리처드슨에게 여주인공을 죽이지 말고 남자 주인공과 결혼시키라고 간청했다. 그러나 작가는 인간 본연의 자유와 권리를 희롱하고 유린하는 자는 반드시 사회적·종교적 응징을 받아야 한다는 신념을 굽히지 않았고, 끝끝내 인기에 영합하지 않았다.


역자 김성균과 ≪클러리사 할로≫

역자는 새뮤얼 리처드슨의 ≪패멀라≫를 읽으면서 근본적으로 일맥상통하는 주제를 보다 완벽하게 전개시킨 ≪클러리사 할로≫에 매료되었다. 대학 시절부터 ≪클러리사 할로≫를 끼고 살았고, 이후 그의 학문 연구 기간 내내 화두가 되었다. 아름답고 총명한 어린 여주인공이 불가항력적인 고난에 강직하고 의연하게 대처하는 모습에서 그는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 후로 그는 클러리사와 반세기를 함께 살았다.

3년 동안 번역했고 4년 동안 가다듬었다. 18세기 작품이라 고증이 필요한 것은 참고 문헌을 뒤적였고, 단어의 의미 하나하나를 제대로 살리기 위해 애썼다. 주석, 표기 어느 것 하나 원전의 의미를 벗어나지 않도록 신경 썼다. 모르는 고전 라틴어 인용문은 전공자들의 도움을 얻었다.

역자에게 클러리사는 현실 속의 그 어떤 사람보다도 더 친근하고 속속들이 안다고 할 수 있는 인물이다. 역자는 이 작품을 탈고하고 나서 “내 일생을 결산하는 최고의 작업이 끝났다”라고 말했다.


☑ 책 속으로

내가 그녀한테 손 좀 댄 것은 여자 열이면 아홉은 다 그저 장난으로, 희롱 좀 한 것으로 여겼을 것이오. 그걸 가지고 이렇게 야단이니, 그러면 그럴수록 나는 물론 자기한테도 괴로울 터인데 말이오.
-3쪽

아! 무슨 말로 나의 이 감정을 삭일 수 있겠소! 파멸이오! 망했소! 나는 졌소! 속았소! 우라질! 여보게, 그녀가 사라졌소! 완전히 사라졌소! 도망쳤단 말이오!
-27쪽

자, 벨퍼드, 이제 자네는 알 것이오. 내가 기댈 수 있는 모든 것은 베티 부인과 미스 몬터규의 도움을 받는 것과 미스 하우의 편지를 가로채는 것뿐이라는 걸 말이오.
-389쪽

이 두 아가씨에 대해서는 여기까지만 인정하겠소. 즉 하나는 적극적이고 또 하나는 소극적이기 때문에 그렇지 않을 경우보다 그들의 우정은 더 오래 지속될 것이라는 것이오.
-423쪽

자, 이제, 벨퍼드. 나는 더 이상은 못 쓰겠소. 일은 끝나버렸소. 그러나 클러리사는 아직 살아 있소.
-484쪽


☑ 지은이 소개

새뮤얼 리처드슨(Samuel Richardson, 1689∼1791)

새뮤얼 리처드슨의 아버지는 가난하지만 인정받는 장인(소목장이)으로서 특히 몬머스(Monmouth) 공작의 총애를 받았다. 공작이 죽자 그의 아버지는 더비셔(Derbyshire)로 피신했고, 거기서 1689년에 리처드슨 외에 세 자녀를 더 낳았다. 그의 아버지가 그에게 시킨 교육은 기초교육, 즉 읽고 쓰고 셈하기 정도가 전부였다. 가세가 기울어 그는 바람대로 성직자가 되는 필수 조건인 대학 진학을 할 수 없었고, 17세에 런던 올더스게이트 가(Aldersgate Street)에 있는 존 와일드(John Wilde) 인쇄소에 견습공으로 들어갔다. 그는 7년 동안 견습공 생활을 하면서 틈틈이 독서하고, 성실하고 학식 있는 인물들과 서신 교환을 하면서 교양과 정신 계발에 힘썼다. 견습 기간이 끝난 후 다른 인쇄소에서 감독, 식자공, 교정사 등의 일을 하다가 30세 가까워서(1718년 또는 1719년) 자기 소유의 인쇄소를 개업했다.

1720년에 런던의 플리트 가(Fleet Street)의 솔즈베리 코트(Salisbury Court)로 그의 인쇄소를 옮기고 일생 동안 그곳을 근거지로 살았다. 20년 후에 그는 런던의 유수한 인쇄소들 중 하나의 소유주가 되었고, 사업이 번창해서 자기 인쇄소에서 영국 하원과 왕실의 인쇄물을 인쇄하는 등(1742∼1755) 국가의 중요한 서적들을 취급했다. 또한 유명한 시인들과도 가깝게 지내면서 문학적 소양을 길렀고, 다른 작가들의 저서의 머리말이나 헌정사 같은 글을 써주고 색인도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그의 글로 남아 있는 최초의 저작물은 ≪견습공 편람: 젊은이가 항상 지녀야 할 지침서(The Apprentice's Vade Mecum, or, Young Man's Pocket Companion)≫(1733)인데, 이것은 주로 하인들이나 견습공들에게 바른 품행을 가르치기 위한 교훈서다. 이것은 그가 그의 조카를 견습공으로 받아들일 때 그에게 준 편지글에다 다른 유사한 내용을 보충한 것이었다. 그가 그다음으로 쓴 저작물은 ≪상용(常用)서간문≫이었는데, 이 책을 쓰던 중에 ≪패멀라 ≫를 착상해 그것을 먼저 써서 출판한 다음에 완성해 출판한 것이다. 그다음 작품 ≪클러리사 할로≫는 3회에 나누어 1·2권은 1747년 12월 1일에, 3·4권은 1748년 4월 28일에, 그리고 5∼7권은 1748년 12월 6일에 출판되었다. ≪조지프 앤드루스(Joseph Andrews)≫로써 ≪패멀라≫를 통렬하게 풍자했던 필딩은 ≪클러리사 할로≫가 나오자마자 그 작품을 ≪톰 존스(Tom Jones)≫(1749. 2)로 또다시 암암리에 풍자했다. 그러자 리처드슨은 곧바로 그의 마지막 작품인 ≪찰스 그랜디슨 경≫을 써서 1∼4권은 1753년 11월 13일에, 5·6권은 12월 11일에, 그리고 마지막 7권은 1754년 3월 14일에 발표했다.

새뮤얼 리처드슨은 32세였던 1721년 11월 23일에, 그가 처음 견습공으로 들어갔던 인쇄소 주인의 딸인 아홉 살 연하 마사 와일(Martha Wile)과 결혼했다. 10년 후 첫 부인이 죽고 나서(1731. 1. 25) 2년 후에 그는 여덟 살 연하 엘리자베스 리크(Elizabeth Leake)와 재혼했다(1732. 2. 3). 그의 첫 부인은 아들 다섯과 딸 하나를, 둘째 부인은 딸 다섯과 아들 하나를 낳았다. 그러나 첫 부인의 아이들은 전부 어려서 죽었고, 둘째 부인의 여섯 자녀 중에서도 딸 넷만 살아서, 그는 결국 여섯 아들과 두 딸을 잃었다. 생존한 네 딸들 중 큰 딸 메리(Mary)만 필립 디처(Philip Ditcher)라는 내과 의사와 1757년에 결혼했고, 나머지 세 딸은 리처드슨이 살아 있는 동안 미혼으로 지냈다.

그는 견습공을 시작한 10대 때부터 일생 동안 런던에서 인쇄업을 하면서 근면 성실한 생활로 자수성가했고, 자기 사업에 성공했으며, 50세가 지나서 첫 작품 ≪패멀라≫를 두 권(제1·2권)으로 발표했다. 그는 ≪패멀라≫의 인기가 높아지자 누군가가 ≪패멀라≫의 속편을 쓴다는 소문을 듣고 자신이 직접 속편(제3·4권)을 써서 1년여 만인 1741년 12월 7일에 발표했다. 그는 1740년 11월에 ≪패멀라≫를 발표한 후 1754년까지 ≪클러리사 할로≫(7권, 제3판은 8권), ≪찰스 그랜디슨 경≫(7권)을 더 써서 세 작품, 18(19)권을 내었다. 그의 모든 작품은 전부 편지 형식으로 쓰였는데, 그는 실제 생활에서도 지인들이나 그의 작품 애호자들과 수없이 많은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는 항상 편지를 써서, 심지어 집에 함께 있는 가족에게도 글로 자기의 생각을 전했다. 그는 자기가 쓴 모든 편지를 베껴두었고, 받는 편지들도 간직했다. 그의 편지들은 애나 바불드(Anna L. Barbould)가 수집해 간추려 여섯 권으로 출판했으며, 이때 많은 편지가 제외되었다.

리처드슨은 ≪찰스 그랜디슨 경≫ 출판 후에도 많은 인기를 누렸다. 국내에서는 세커(Secker) 대주교(1693∼1768)나 다른 정치적 거물들과 문필가들이 그를 방문했고, 1756년에는 당시 문학계의 거물 새뮤얼 존슨이 채무에 시달려 그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했을 때 리처드슨은 부탁한 것 이상으로 빌려주었다고 한다. 특히 유럽 대륙에서 그의 작품은 프랑스어로, 네덜란드어로, 독일어로 번역되었다. 1758년에는 스위스의 지질학자 기욤 앙투안 드 뤼크(Guillaume Antoine de Luc)는 그를 만나기 위해 영국을 방문했다. 그는 1754년에는 런던 교외 고급 주거지의 저택 파슨스 그린(Parson's Green)으로 이사해서 거기서 많은 방문객을 맞았다. 그의 사업은 번창해서 ≪찰스 그랜디슨 경≫을 출판할 때는 그의 인쇄소에 30명의 직원을 두었으며 1754∼1755년에는 출판협회 회장직을 맡았다. 그가 일생 동안 인쇄한 책은 2349권에 이른다.

그는 일생 실내에서 작업한 탓으로 건강이 좋지 않았으며, ≪찰스 그랜디슨 경≫을 쓰고 난 다음부터는 특히 건강이 악화되었다. 그는 죽기 3년 전(1758)부터는 불면증에 시달렸고, 걷기 힘들어했으며, 펜을 쥘 힘이 없어 딸에게 글을 대필시키기도 했다. 그는 1761년 7월 4일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그의 유해는 그의 집 가까이에 있는 성 브라이드(St. Bride's) 교회당, 그의 첫 부인과 자식들의 곁에 묻혔으며 그의 둘째 부인도 후에 그곳에 묻혔다.


☑ 옮긴이 소개

김성균

김성균은 서울에서 태어나 1958년에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해 1964년에 졸업했으며, 같은 대학교 대학원 영어영문학과에서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1년부터 연세대학교에 재직했고, 2004년 봄에 퇴임할 때까지 학부와 대학원에서 18세기 영국 소설을 강의했다. 현재 연세대학교 명예교수다.

석사 학위논문은 <그레엄 그린의 소설 연구>(1966)이고, 박사 학위논문은 영국 18세기 소설 중 가장 난해하며 최초 의식의 흐름 수법 소설이라고 하는 <“트리스트럼 섄디” 연구: 작가의 독자 의식과 소설의 구성>(1979)이다. 저서는 없고, 영국 소설 발생기의 작가들인 존 버니언, 애프라 벤, 대니얼 디포, 엘리자 헤이우드, 새뮤얼 리처드슨, 헨리 필딩, 로런스 스턴 등의 작품에 대한 논문을 한국 영어영문학회 학회지 *≪영어영문학≫과 연세대 논문집 ≪영어영문학 연구≫에 발표했다. 주석본으로 18세기 주요 소설 대니얼 디포의 ≪몰 플랜더스≫(신아사, 1991), 헨리 필딩의 ≪조지프 앤드루스≫(연세대 출판부, 1995), 새뮤얼 리처드슨의 ≪패멀라≫(연세대 출판부, 1996)를 내었고, 학부 영산문 강독을 위한 주석본 ≪Prose in English≫(연세대, 1998)를 편집했다. 역서로는 그레엄 그린의 ≪명예영사≫(한길사, 1983)가 있다.


☑ 목차

편지 1.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2.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3.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4.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5. 클러리사 할로 양이 하우 양에게

편지 6.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7.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8.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9.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10.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11.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12.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13.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14.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15.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16.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17.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18.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19. 러블레이스 씨의 편지

편지 20.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21.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22.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23.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24.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25.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26.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27.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28.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29.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30.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31.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32.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33. 벨퍼드 씨가 로버트 러블레이스 씨에게

편지 34.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35.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36.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37.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38.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39.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40.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41.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42.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43.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클러리사 할로 Ⅳ


☑ 책 소개

전무후무한 세계 서간체 소설의 결정판


≪클러리사 할로(Clarissa Harlowe)≫는 편지 모음이다. 시작부터 끝까지 인물들이 주고받는 편지로 스토리가 전개되는 소설이다. 모든 편지는 실제로 작가가 썼으면서도 표면적으로는 작중인물들이 쓴 것을 편집인이 수집하고 정리한 것처럼 되어 있는 ‘보여 주기’ 기법을 사용한다. 따라서 독자는 겁탈당하고 심신이 탈진한 클러리사의 내면을 숨결과 체취까지 느끼며 들여다볼 수 있다.

새뮤얼 리처드슨(Samuel Richardson)은 이 작품으로 서간체 소설의 새 장을 열었다. 서간체 문학의 모든 기법이 완벽하게 구사되고, 모든 이점이 철저하게 활용된 예는 이 작품이 유일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문학사상 가장 긴 작품

≪클러리사 할로≫는 총 8권이다. 200자 원고지로 16,492장이다. 이 방대한 소설은 오늘날 영어권의 일반 독자는 물론이고 영문학과 학생들, 교수들조차도 전체를 다 읽기 어려워 축약본을 찾는다.

이 작품이 사건에 비해 너무 길다고 불평하는 독자에게 당시의 저명한 비평가 새뮤얼 존슨(Samuel Johnson)은 이렇게 일침을 가한다. “이 작품을 스토리에만 관심을 가지고 읽다가는 너무 지루하고 속상해서 죽고 싶을 지경일 것이다. 스토리는 인물의 내면을 보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읽을 만한 책도, 텔레비전도, 인터넷도 없던 당시에는 많은 독자가 작품이 끝나는 것을 아쉬워했다는 후문도 있다. 이 작품의 길이에 대해 리처드슨은 어느 저명한 비평가의 견해를 인용한다. “작품의 의도가 전편을 통해서 일관된다면, 인물들이 다양하고 자연스러우며 개성적이라면, 흥미를 끄는 다양한 사건들이 독자를 항상 긴장시킨다면 작품의 길이는 길수록 좋다. 그러나 모든 점이 이와 반대라면 한 편의 우화보다 짧다 하더라도 독자를 지루하게 할 것이다.”


전국의 영문학자들이 기다리던 책

이 방대한 분량의 대작을 지식을만드는지식에서 국내 최초로 온전히 번역해 출간했다. 작가가 철저히 수정하고 보완해 많은 학자들이 ≪클러리사 할로≫의 결정판이라고 평가하는 제3판을 저본으로 삼았다. 번역자 김성균은 걸작을 더욱 완전하게 소개하기 위해 리처드슨의 의도를 살린 원전의 편집 형태를 그대로 따랐다. 지은이의 모든 주석을 원전의 표기 그대로 반영하고, 원전의 쪽수를 참고하라는 내용에는 이 책에서의 해당 쪽수를 친절하게 밝혔다.

이 번역이 나오기까지 우리 영문학계는 오랜 시간을 기다렸다. 축약본으로 이 작품을 접할 수밖에 없었던 국내 영문학도, 대작의 번역을 고대하던 교양 독자들에게 이 책은 큰 선물이 될 것이다. 완전한 판본, 완전한 분량, 완전한 번역은 이 작품의 문학사적 의의만큼이나 큰 의미를 우리에게 준다.


새뮤얼 리처드슨과 ≪클러리사 할로≫

영국 소설사가들은 새뮤얼 리처드슨을 같은 시기의 헨리 필딩(Henry Fielding), 토비아스 스몰렛(Tobias Smollett), 로렌스 스턴(Laurence Sterne)과 함께 영국 소설의 기초를 이끈 네 바퀴로 평가한다.

그가 ≪클러리사 할로≫ 이전에 쓴 ≪패멀라(Pamela)≫는 현대적 소설의 효시로 일컬어진다. 빈한하고 미천한 집안 출신이지만 빼어난 미모와 지혜와 신앙심을 두루 갖춘 10대 중반의 어린 하녀가 젊고 부유한 미남 지주의 온갖 유혹과 위협과 술수를 물리치고 마침내 그의 정식 아내가 된다는 ≪패멀라≫는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많은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패멀라≫는 비판적 시각도 만만치 않았는데, “거짓 순수성이 드러나다”라는 부제를 단 ≪반패멀라≫, 허위라는 뜻의 ‘sham’을 합성시킨 ≪섀멀라≫, ≪패멀라≫를 패러디한 ≪조지프 앤드루스≫ 등이 잇달아 출간되기까지 했다.

리처드슨은 이러한 비판에 대해 ≪클러리사 할로≫로 반격했다. ≪클러리사 할로≫는 ≪패멀라≫의 주제의식을 더욱 발전시킨 작품이다. 리처드슨은 두 작품에서 여성의 순결은 중요하며 죽음을 무릅쓰고 지킬 가치가 있다는 자신의 철학을 역설한다. 여기서의 순결은 처녀성이 아닌 인간의 기본적인 가치와 권리를 집약한 상징이다.

당시의 독자들은 리처드슨에게 여주인공을 죽이지 말고 남자 주인공과 결혼시키라고 간청했다. 그러나 작가는 인간 본연의 자유와 권리를 희롱하고 유린하는 자는 반드시 사회적·종교적 응징을 받아야 한다는 신념을 굽히지 않았고, 끝끝내 인기에 영합하지 않았다.


역자 김성균과 ≪클러리사 할로≫

역자는 새뮤얼 리처드슨의 ≪패멀라≫를 읽으면서 근본적으로 일맥상통하는 주제를 보다 완벽하게 전개시킨 ≪클러리사 할로≫에 매료되었다. 대학 시절부터 ≪클러리사 할로≫를 끼고 살았고, 이후 그의 학문 연구 기간 내내 화두가 되었다. 아름답고 총명한 어린 여주인공이 불가항력적인 고난에 강직하고 의연하게 대처하는 모습에서 그는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 후로 그는 클러리사와 반세기를 함께 살았다.

3년 동안 번역했고 4년 동안 가다듬었다. 18세기 작품이라 고증이 필요한 것은 참고 문헌을 뒤적였고, 단어의 의미 하나하나를 제대로 살리기 위해 애썼다. 주석, 표기 어느 것 하나 원전의 의미를 벗어나지 않도록 신경 썼다. 모르는 고전 라틴어 인용문은 전공자들의 도움을 얻었다.

역자에게 클러리사는 현실 속의 그 어떤 사람보다도 더 친근하고 속속들이 안다고 할 수 있는 인물이다. 역자는 이 작품을 탈고하고 나서 “내 일생을 결산하는 최고의 작업이 끝났다”라고 말했다.


☑ 책 속으로

이 매혹적인 아가씨는 도대체 왜 나에게 이런 수법을 쓰도록 만드시는가? 그러면 나는 점점 더 수고하고 죄도 더 지을 수밖에 없을 거라고 혹자는 말할 텐데? 아니, 이 아가씨는 왜 자기 운명에 맞서느냐고 묻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오.
-15쪽

그녀의 지성에 대해서 말하자면, 그녀는 같은 나이의 어떤 다른 여자보다도 훌륭하오. 외모로 말하면 그녀는 꽃다운 나이에 무한히 감탄할 만한 아가씨요. 완벽한 미녀요. 그러나 영광스럽게도 그녀와 대화를 해본 나로서는, 이보다 더 빈약한 칭찬을 할 수는 없겠소.
-16쪽

애나, 너는 이걸 어떻게 생각하니? 우리 가족들은 분명히 나를 영영 버리기로 작정하시지는 않았을 거라는 거 말이야. 지금까지 일어난 일들을 공정하게 바라보신다면 나만이 아니라 자신들도 어느 정도 잘못이 있다는 걸 인정하실 테니까.
-69쪽

우리 사이는 이제 바로 이런 상태야. 내가 말했듯이 일종의 폭풍 후의 정적이랄까. 그런데 폭풍이든 정적이든 이런 사람을 상대해야 하니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누가 알겠니?
하지만 애나, 결과가 어떻게 되든 나는 비굴하게 굴지는 않겠어.
-163쪽

황공하옵게도 나더러 그 애들은 입적시켜주고, 나는 결혼의 굴레를 쓰는 은혜를 자기한테 베풀어달라는 것이오.
-564쪽

내가 파놓은 함정이고 계략이었소! 그리고 거기 빠진 것이 내가 거둔 결과였소.
-631쪽


☑ 지은이 소개

새뮤얼 리처드슨(Samuel Richardson, 1689∼1791)

새뮤얼 리처드슨의 아버지는 가난하지만 인정받는 장인(소목장이)으로서 특히 몬머스(Monmouth) 공작의 총애를 받았다. 공작이 죽자 그의 아버지는 더비셔(Derbyshire)로 피신했고, 거기서 1689년에 리처드슨 외에 세 자녀를 더 낳았다. 그의 아버지가 그에게 시킨 교육은 기초교육, 즉 읽고 쓰고 셈하기 정도가 전부였다. 가세가 기울어 그는 바람대로 성직자가 되는 필수 조건인 대학 진학을 할 수 없었고, 17세에 런던 올더스게이트 가(Aldersgate Street)에 있는 존 와일드(John Wilde) 인쇄소에 견습공으로 들어갔다. 그는 7년 동안 견습공 생활을 하면서 틈틈이 독서하고, 성실하고 학식 있는 인물들과 서신 교환을 하면서 교양과 정신 계발에 힘썼다. 견습 기간이 끝난 후 다른 인쇄소에서 감독, 식자공, 교정사 등의 일을 하다가 30세 가까워서(1718년 또는 1719년) 자기 소유의 인쇄소를 개업했다.

1720년에 런던의 플리트 가(Fleet Street)의 솔즈베리 코트(Salisbury Court)로 그의 인쇄소를 옮기고 일생 동안 그곳을 근거지로 살았다. 20년 후에 그는 런던의 유수한 인쇄소들 중 하나의 소유주가 되었고, 사업이 번창해서 자기 인쇄소에서 영국 하원과 왕실의 인쇄물을 인쇄하는 등(1742∼1755) 국가의 중요한 서적들을 취급했다. 또한 유명한 시인들과도 가깝게 지내면서 문학적 소양을 길렀고, 다른 작가들의 저서의 머리말이나 헌정사 같은 글을 써주고 색인도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그의 글로 남아 있는 최초의 저작물은 ≪견습공 편람: 젊은이가 항상 지녀야 할 지침서(The Apprentice's Vade Mecum, or, Young Man's Pocket Companion)≫(1733)인데, 이것은 주로 하인들이나 견습공들에게 바른 품행을 가르치기 위한 교훈서다. 이것은 그가 그의 조카를 견습공으로 받아들일 때 그에게 준 편지글에다 다른 유사한 내용을 보충한 것이었다. 그가 그다음으로 쓴 저작물은 ≪상용(常用)서간문≫이었는데, 이 책을 쓰던 중에 ≪패멀라 ≫를 착상해 그것을 먼저 써서 출판한 다음에 완성해 출판한 것이다. 그다음 작품 ≪클러리사 할로≫는 3회에 나누어 1·2권은 1747년 12월 1일에, 3·4권은 1748년 4월 28일에, 그리고 5∼7권은 1748년 12월 6일에 출판되었다. ≪조지프 앤드루스(Joseph Andrews)≫로써 ≪패멀라≫를 통렬하게 풍자했던 필딩은 ≪클러리사 할로≫가 나오자마자 그 작품을 ≪톰 존스(Tom Jones)≫(1749. 2)로 또다시 암암리에 풍자했다. 그러자 리처드슨은 곧바로 그의 마지막 작품인 ≪찰스 그랜디슨 경≫을 써서 1∼4권은 1753년 11월 13일에, 5·6권은 12월 11일에, 그리고 마지막 7권은 1754년 3월 14일에 발표했다.

새뮤얼 리처드슨은 32세였던 1721년 11월 23일에, 그가 처음 견습공으로 들어갔던 인쇄소 주인의 딸인 아홉 살 연하 마사 와일(Martha Wile)과 결혼했다. 10년 후 첫 부인이 죽고 나서(1731. 1. 25) 2년 후에 그는 여덟 살 연하 엘리자베스 리크(Elizabeth Leake)와 재혼했다(1732. 2. 3). 그의 첫 부인은 아들 다섯과 딸 하나를, 둘째 부인은 딸 다섯과 아들 하나를 낳았다. 그러나 첫 부인의 아이들은 전부 어려서 죽었고, 둘째 부인의 여섯 자녀 중에서도 딸 넷만 살아서, 그는 결국 여섯 아들과 두 딸을 잃었다. 생존한 네 딸들 중 큰 딸 메리(Mary)만 필립 디처(Philip Ditcher)라는 내과 의사와 1757년에 결혼했고, 나머지 세 딸은 리처드슨이 살아 있는 동안 미혼으로 지냈다.

그는 견습공을 시작한 10대 때부터 일생 동안 런던에서 인쇄업을 하면서 근면 성실한 생활로 자수성가했고, 자기 사업에 성공했으며, 50세가 지나서 첫 작품 ≪패멀라≫를 두 권(제1·2권)으로 발표했다. 그는 ≪패멀라≫의 인기가 높아지자 누군가가 ≪패멀라≫의 속편을 쓴다는 소문을 듣고 자신이 직접 속편(제3·4권)을 써서 1년여 만인 1741년 12월 7일에 발표했다. 그는 1740년 11월에 ≪패멀라≫를 발표한 후 1754년까지 ≪클러리사 할로≫(7권, 제3판은 8권), ≪찰스 그랜디슨 경≫(7권)을 더 써서 세 작품, 18(19)권을 내었다. 그의 모든 작품은 전부 편지 형식으로 쓰였는데, 그는 실제 생활에서도 지인들이나 그의 작품 애호자들과 수없이 많은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는 항상 편지를 써서, 심지어 집에 함께 있는 가족에게도 글로 자기의 생각을 전했다. 그는 자기가 쓴 모든 편지를 베껴두었고, 받는 편지들도 간직했다. 그의 편지들은 애나 바불드(Anna L. Barbould)가 수집해 간추려 여섯 권으로 출판했으며, 이때 많은 편지가 제외되었다.

리처드슨은 ≪찰스 그랜디슨 경≫ 출판 후에도 많은 인기를 누렸다. 국내에서는 세커(Secker) 대주교(1693∼1768)나 다른 정치적 거물들과 문필가들이 그를 방문했고, 1756년에는 당시 문학계의 거물 새뮤얼 존슨이 채무에 시달려 그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했을 때 리처드슨은 부탁한 것 이상으로 빌려주었다고 한다. 특히 유럽 대륙에서 그의 작품은 프랑스어로, 네덜란드어로, 독일어로 번역되었다. 1758년에는 스위스의 지질학자 기욤 앙투안 드 뤼크(Guillaume Antoine de Luc)는 그를 만나기 위해 영국을 방문했다. 그는 1754년에는 런던 교외 고급 주거지의 저택 파슨스 그린(Parson's Green)으로 이사해서 거기서 많은 방문객을 맞았다. 그의 사업은 번창해서 ≪찰스 그랜디슨 경≫을 출판할 때는 그의 인쇄소에 30명의 직원을 두었으며 1754∼1755년에는 출판협회 회장직을 맡았다. 그가 일생 동안 인쇄한 책은 2349권에 이른다.

그는 일생 실내에서 작업한 탓으로 건강이 좋지 않았으며, ≪찰스 그랜디슨 경≫을 쓰고 난 다음부터는 특히 건강이 악화되었다. 그는 죽기 3년 전(1758)부터는 불면증에 시달렸고, 걷기 힘들어했으며, 펜을 쥘 힘이 없어 딸에게 글을 대필시키기도 했다. 그는 1761년 7월 4일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그의 유해는 그의 집 가까이에 있는 성 브라이드(St. Bride's) 교회당, 그의 첫 부인과 자식들의 곁에 묻혔으며 그의 둘째 부인도 후에 그곳에 묻혔다.


☑ 옮긴이 소개

김성균

김성균은 서울에서 태어나 1958년에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해 1964년에 졸업했으며, 같은 대학교 대학원 영어영문학과에서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1년부터 연세대학교에 재직했고, 2004년 봄에 퇴임할 때까지 학부와 대학원에서 18세기 영국 소설을 강의했다. 현재 연세대학교 명예교수다.

석사 학위논문은 <그레엄 그린의 소설 연구>(1966)이고, 박사 학위논문은 영국 18세기 소설 중 가장 난해하며 최초 의식의 흐름 수법 소설이라고 하는 <“트리스트럼 섄디” 연구: 작가의 독자 의식과 소설의 구성>(1979)이다. 저서는 없고, 영국 소설 발생기의 작가들인 존 버니언, 애프라 벤, 대니얼 디포, 엘리자 헤이우드, 새뮤얼 리처드슨, 헨리 필딩, 로런스 스턴 등의 작품에 대한 논문을 한국 영어영문학회 학회지 *≪영어영문학≫과 연세대 논문집 ≪영어영문학 연구≫에 발표했다. 주석본으로 18세기 주요 소설 대니얼 디포의 ≪몰 플랜더스≫(신아사, 1991), 헨리 필딩의 ≪조지프 앤드루스≫(연세대 출판부, 1995), 새뮤얼 리처드슨의 ≪패멀라≫(연세대 출판부, 1996)를 내었고, 학부 영산문 강독을 위한 주석본 ≪Prose in English≫(연세대, 1998)를 편집했다. 역서로는 그레엄 그린의 ≪명예영사≫(한길사, 1983)가 있다.


☑ 목차

편지 1.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2.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3. 벨퍼드 씨가 로버트 러블레이스 씨에게

편지 4.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5. 러블레이스 씨의 편지

편지 6. 벨퍼드 씨가 로버트 러블레이스 씨에게

편지 7. 클러리사 할로 양이 하우 양에게

편지 8. 클러리사 할로 양이 하우 양에게

편지 9.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10. 클러리사 할로 양이 하우 양에게

편지 11. 하우 양이 클러리사 할로 양에게

편지 12. 클러리사 할로 양이 하우 양에게

편지 13. 하우 양이 주디스 노턴 부인에게

편지 14. 노턴 부인이 하우 양에게

편지 15. 하우 양이 주디스 노턴 부인에게

편지 16. 할로 부인이 노턴 부인에게

편지 17. 하우 양이 클러리사 할로 양에게

편지 18. 클러리사 할로 양이 하우 양에게

편지 19. 클러리사 할로 양이 하우 양에게

편지 20. 클러리사 할로 양이 하우 양에게

편지 21. 클러리사 할로 양이 하우 양에게

편지 22. 하우 양이 클러리사 할로 양에게

편지 23. 벨퍼드 씨가 로버트 러블레이스 씨에게

편지 24. M 경이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25.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26. 벨퍼드 씨가 로버트 러블레이스 씨에게

편지 27.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28.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29. 클러리사 할로 양이 하우 양에게

편지 30. 하우 양이 클러리사 할로 양에게

편지 31. 하우 양이 클러리사 할로 양에게

편지 32.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33.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34. 클러리사 할로 양이 하우 양에게

편지 35.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36.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37.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38.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39.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40. M 경이 로버트 러블레이스 씨에게

편지 41.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42.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43.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44.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45.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46. 클러리사 할로 양이 하우 양에게

편지 47.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48.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49.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50.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씨에게

편지 51.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52.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53.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54.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55.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56. 벨퍼드 씨가 로버트 러블레이스 씨에게

편지 57.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58.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59.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클러리사 할로 Ⅲ



☑ 책 소개

전무후무한 세계 서간체 소설의 결정판

≪클러리사 할로(Clarissa Harlowe)≫는 편지 모음이다. 시작부터 끝까지 인물들이 주고받는 편지로 스토리가 전개되는 소설이다. 모든 편지는 실제로 작가가 썼으면서도 표면적으로는 작중인물들이 쓴 것을 편집인이 수집하고 정리한 것처럼 되어 있는 ‘보여 주기’ 기법을 사용한다. 따라서 독자는 겁탈당하고 심신이 탈진한 클러리사의 내면을 숨결과 체취까지 느끼며 들여다볼 수 있다.

새뮤얼 리처드슨(Samuel Richardson)은 이 작품으로 서간체 소설의 새 장을 열었다. 서간체 문학의 모든 기법이 완벽하게 구사되고, 모든 이점이 철저하게 활용된 예는 이 작품이 유일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문학사상 가장 긴 작품

≪클러리사 할로≫는 총 8권이다. 200자 원고지로 16,492장이다. 이 방대한 소설은 오늘날 영어권의 일반 독자는 물론이고 영문학과 학생들, 교수들조차도 전체를 다 읽기 어려워 축약본을 찾는다.

이 작품이 사건에 비해 너무 길다고 불평하는 독자에게 당시의 저명한 비평가 새뮤얼 존슨(Samuel Johnson)은 이렇게 일침을 가한다. “이 작품을 스토리에만 관심을 가지고 읽다가는 너무 지루하고 속상해서 죽고 싶을 지경일 것이다. 스토리는 인물의 내면을 보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읽을 만한 책도, 텔레비전도, 인터넷도 없던 당시에는 많은 독자가 작품이 끝나는 것을 아쉬워했다는 후문도 있다. 이 작품의 길이에 대해 리처드슨은 어느 저명한 비평가의 견해를 인용한다. “작품의 의도가 전편을 통해서 일관된다면, 인물들이 다양하고 자연스러우며 개성적이라면, 흥미를 끄는 다양한 사건들이 독자를 항상 긴장시킨다면 작품의 길이는 길수록 좋다. 그러나 모든 점이 이와 반대라면 한 편의 우화보다 짧다 하더라도 독자를 지루하게 할 것이다.”


전국의 영문학자들이 기다리던 책

이 방대한 분량의 대작을 지식을만드는지식에서 국내 최초로 온전히 번역해 출간했다. 작가가 철저히 수정하고 보완해 많은 학자들이 ≪클러리사 할로≫의 결정판이라고 평가하는 제3판을 저본으로 삼았다. 번역자 김성균은 걸작을 더욱 완전하게 소개하기 위해 리처드슨의 의도를 살린 원전의 편집 형태를 그대로 따랐다. 지은이의 모든 주석을 원전의 표기 그대로 반영하고, 원전의 쪽수를 참고하라는 내용에는 이 책에서의 해당 쪽수를 친절하게 밝혔다.

이 번역이 나오기까지 우리 영문학계는 오랜 시간을 기다렸다. 축약본으로 이 작품을 접할 수밖에 없었던 국내 영문학도, 대작의 번역을 고대하던 교양 독자들에게 이 책은 큰 선물이 될 것이다. 완전한 판본, 완전한 분량, 완전한 번역은 이 작품의 문학사적 의의만큼이나 큰 의미를 우리에게 준다.


새뮤얼 리처드슨과 ≪클러리사 할로≫

영국 소설사가들은 새뮤얼 리처드슨을 같은 시기의 헨리 필딩(Henry Fielding), 토비아스 스몰렛(Tobias Smollett), 로렌스 스턴(Laurence Sterne)과 함께 영국 소설의 기초를 이끈 네 바퀴로 평가한다.

그가 ≪클러리사 할로≫ 이전에 쓴 ≪패멀라(Pamela)≫는 현대적 소설의 효시로 일컬어진다. 빈한하고 미천한 집안 출신이지만 빼어난 미모와 지혜와 신앙심을 두루 갖춘 10대 중반의 어린 하녀가 젊고 부유한 미남 지주의 온갖 유혹과 위협과 술수를 물리치고 마침내 그의 정식 아내가 된다는 ≪패멀라≫는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많은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패멀라≫는 비판적 시각도 만만치 않았는데, “거짓 순수성이 드러나다”라는 부제를 단 ≪반패멀라≫, 허위라는 뜻의 ‘sham’을 합성시킨 ≪섀멀라≫, ≪패멀라≫를 패러디한 ≪조지프 앤드루스≫ 등이 잇달아 출간되기까지 했다.

리처드슨은 이러한 비판에 대해 ≪클러리사 할로≫로 반격했다. ≪클러리사 할로≫는 ≪패멀라≫의 주제의식을 더욱 발전시킨 작품이다. 리처드슨은 두 작품에서 여성의 순결은 중요하며 죽음을 무릅쓰고 지킬 가치가 있다는 자신의 철학을 역설한다. 여기서의 순결은 처녀성이 아닌 인간의 기본적인 가치와 권리를 집약한 상징이다.

당시의 독자들은 리처드슨에게 여주인공을 죽이지 말고 남자 주인공과 결혼시키라고 간청했다. 그러나 작가는 인간 본연의 자유와 권리를 희롱하고 유린하는 자는 반드시 사회적·종교적 응징을 받아야 한다는 신념을 굽히지 않았고, 끝끝내 인기에 영합하지 않았다.


역자 김성균과 ≪클러리사 할로≫

역자는 새뮤얼 리처드슨의 ≪패멀라≫를 읽으면서 근본적으로 일맥상통하는 주제를 보다 완벽하게 전개시킨 ≪클러리사 할로≫에 매료되었다. 대학 시절부터 ≪클러리사 할로≫를 끼고 살았고, 이후 그의 학문 연구 기간 내내 화두가 되었다. 아름답고 총명한 어린 여주인공이 불가항력적인 고난에 강직하고 의연하게 대처하는 모습에서 그는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 후로 그는 클러리사와 반세기를 함께 살았다.

3년 동안 번역했고 4년 동안 가다듬었다. 18세기 작품이라 고증이 필요한 것은 참고 문헌을 뒤적였고, 단어의 의미 하나하나를 제대로 살리기 위해 애썼다. 주석, 표기 어느 것 하나 원전의 의미를 벗어나지 않도록 신경 썼다. 모르는 고전 라틴어 인용문은 전공자들의 도움을 얻었다.

역자에게 클러리사는 현실 속의 그 어떤 사람보다도 더 친근하고 속속들이 안다고 할 수 있는 인물이다. 역자는 이 작품을 탈고하고 나서 “내 일생을 결산하는 최고의 작업이 끝났다”라고 말했다.


☑ 책 속으로

그러나 내가 말로는 나의 기쁨이 완전하다고 했지만 그게 사실이겠소? 천만에! 나의 기쁨은 나의 지긋지긋한 자존심 때문에 꽤나 손상을 입고 있소. 왜냐하면 말이오. 그녀는 나를 좋아하기보다는 그녀 가족들이 그녀를 학대했기 때문에, 아니면 어떤 다른 놈이 싫기 때문에 나를 택한 것이오.
이런 생각이 드니 내가 참을 수 있겠소?
하지만 나는 이런 생각으로 속을 썩이지는 않겠소.
-3쪽

아! 매혹적인 여인이여, 조심하시오! 그대의 콧대를 낮추시오! 그대 나에게 무관심하더라도, 자신의 성실성을 과대평가하지는 마시오! 나는 이제는 참지 않을 것이오. 그대는 나의 손안에 들어 있지 않소?
-54쪽

그런데 너는 집을 나온 게 아니야. 한편으론 내몰렸고 다른 한편으론 속았을 거야.
그 남자는 지금 겁먹은 바보를 데리고 놀고 있는 걸로 알고 있어!
-62쪽

내가 다시 제안한 이 말을 집에서 들어주기만 하면 내가 얼마나 기쁜 마음으로 나의 약속을 지킬까? 내가 원하지 않았는데 할 수 없이 끌려갔다고 말하는 것이 여러모로 부적절했다고 너는 생각할 거야.
-79쪽

도도한 그 성깔을 단번에 꺾는 최고의 방법은 여자가 돈 문제로 신세를 졌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것이오. 그래서 나 자신은 항상 그런 신세는 절대로 지지 않도록 애써왔소.
-207쪽

그 사람은 완전한 카멜레온이기 때문이야. 어쩌면 카멜레온보다도 더 변화무쌍해. 카멜레온은 붉은색과 흰색은 띠지 못한다고 하지만 이 사람은 그럴 수도 있어.
-243쪽

그녀가 당하는 고난은 미덕을 시험받는 것 아니오? 나는 이 매혹적인 아가씨가 제시하는 증거를 보고 그녀의 가치를 인정하려 하는데 자네는 내가 그렇게 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오? 나는 그녀가 그 증거를 보이면 결혼하는 걸로 그녀에게 상을 주려고 하고 있지 않소?
-485쪽


☑ 지은이 소개

새뮤얼 리처드슨(Samuel Richardson, 1689∼1791)

새뮤얼 리처드슨의 아버지는 가난하지만 인정받는 장인(소목장이)으로서 특히 몬머스(Monmouth) 공작의 총애를 받았다. 공작이 죽자 그의 아버지는 더비셔(Derbyshire)로 피신했고, 거기서 1689년에 리처드슨 외에 세 자녀를 더 낳았다. 그의 아버지가 그에게 시킨 교육은 기초교육, 즉 읽고 쓰고 셈하기 정도가 전부였다. 가세가 기울어 그는 바람대로 성직자가 되는 필수 조건인 대학 진학을 할 수 없었고, 17세에 런던 올더스게이트 가(Aldersgate Street)에 있는 존 와일드(John Wilde) 인쇄소에 견습공으로 들어갔다. 그는 7년 동안 견습공 생활을 하면서 틈틈이 독서하고, 성실하고 학식 있는 인물들과 서신 교환을 하면서 교양과 정신 계발에 힘썼다. 견습 기간이 끝난 후 다른 인쇄소에서 감독, 식자공, 교정사 등의 일을 하다가 30세 가까워서(1718년 또는 1719년) 자기 소유의 인쇄소를 개업했다.

1720년에 런던의 플리트 가(Fleet Street)의 솔즈베리 코트(Salisbury Court)로 그의 인쇄소를 옮기고 일생 동안 그곳을 근거지로 살았다. 20년 후에 그는 런던의 유수한 인쇄소들 중 하나의 소유주가 되었고, 사업이 번창해서 자기 인쇄소에서 영국 하원과 왕실의 인쇄물을 인쇄하는 등(1742∼1755) 국가의 중요한 서적들을 취급했다. 또한 유명한 시인들과도 가깝게 지내면서 문학적 소양을 길렀고, 다른 작가들의 저서의 머리말이나 헌정사 같은 글을 써주고 색인도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그의 글로 남아 있는 최초의 저작물은 ≪견습공 편람: 젊은이가 항상 지녀야 할 지침서(The Apprentice's Vade Mecum, or, Young Man's Pocket Companion)≫(1733)인데, 이것은 주로 하인들이나 견습공들에게 바른 품행을 가르치기 위한 교훈서다. 이것은 그가 그의 조카를 견습공으로 받아들일 때 그에게 준 편지글에다 다른 유사한 내용을 보충한 것이었다. 그가 그다음으로 쓴 저작물은 ≪상용(常用)서간문≫이었는데, 이 책을 쓰던 중에 ≪패멀라 ≫를 착상해 그것을 먼저 써서 출판한 다음에 완성해 출판한 것이다. 그다음 작품 ≪클러리사 할로≫는 3회에 나누어 1·2권은 1747년 12월 1일에, 3·4권은 1748년 4월 28일에, 그리고 5∼7권은 1748년 12월 6일에 출판되었다. ≪조지프 앤드루스(Joseph Andrews)≫로써 ≪패멀라≫를 통렬하게 풍자했던 필딩은 ≪클러리사 할로≫가 나오자마자 그 작품을 ≪톰 존스(Tom Jones)≫(1749. 2)로 또다시 암암리에 풍자했다. 그러자 리처드슨은 곧바로 그의 마지막 작품인 ≪찰스 그랜디슨 경≫을 써서 1∼4권은 1753년 11월 13일에, 5·6권은 12월 11일에, 그리고 마지막 7권은 1754년 3월 14일에 발표했다.

새뮤얼 리처드슨은 32세였던 1721년 11월 23일에, 그가 처음 견습공으로 들어갔던 인쇄소 주인의 딸인 아홉 살 연하 마사 와일(Martha Wile)과 결혼했다. 10년 후 첫 부인이 죽고 나서(1731. 1. 25) 2년 후에 그는 여덟 살 연하 엘리자베스 리크(Elizabeth Leake)와 재혼했다(1732. 2. 3). 그의 첫 부인은 아들 다섯과 딸 하나를, 둘째 부인은 딸 다섯과 아들 하나를 낳았다. 그러나 첫 부인의 아이들은 전부 어려서 죽었고, 둘째 부인의 여섯 자녀 중에서도 딸 넷만 살아서, 그는 결국 여섯 아들과 두 딸을 잃었다. 생존한 네 딸들 중 큰 딸 메리(Mary)만 필립 디처(Philip Ditcher)라는 내과 의사와 1757년에 결혼했고, 나머지 세 딸은 리처드슨이 살아 있는 동안 미혼으로 지냈다.

그는 견습공을 시작한 10대 때부터 일생 동안 런던에서 인쇄업을 하면서 근면 성실한 생활로 자수성가했고, 자기 사업에 성공했으며, 50세가 지나서 첫 작품 ≪패멀라≫를 두 권(제1·2권)으로 발표했다. 그는 ≪패멀라≫의 인기가 높아지자 누군가가 ≪패멀라≫의 속편을 쓴다는 소문을 듣고 자신이 직접 속편(제3·4권)을 써서 1년여 만인 1741년 12월 7일에 발표했다. 그는 1740년 11월에 ≪패멀라≫를 발표한 후 1754년까지 ≪클러리사 할로≫(7권, 제3판은 8권), ≪찰스 그랜디슨 경≫(7권)을 더 써서 세 작품, 18(19)권을 내었다. 그의 모든 작품은 전부 편지 형식으로 쓰였는데, 그는 실제 생활에서도 지인들이나 그의 작품 애호자들과 수없이 많은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는 항상 편지를 써서, 심지어 집에 함께 있는 가족에게도 글로 자기의 생각을 전했다. 그는 자기가 쓴 모든 편지를 베껴두었고, 받는 편지들도 간직했다. 그의 편지들은 애나 바불드(Anna L. Barbould)가 수집해 간추려 여섯 권으로 출판했으며, 이때 많은 편지가 제외되었다.

리처드슨은 ≪찰스 그랜디슨 경≫ 출판 후에도 많은 인기를 누렸다. 국내에서는 세커(Secker) 대주교(1693∼1768)나 다른 정치적 거물들과 문필가들이 그를 방문했고, 1756년에는 당시 문학계의 거물 새뮤얼 존슨이 채무에 시달려 그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했을 때 리처드슨은 부탁한 것 이상으로 빌려주었다고 한다. 특히 유럽 대륙에서 그의 작품은 프랑스어로, 네덜란드어로, 독일어로 번역되었다. 1758년에는 스위스의 지질학자 기욤 앙투안 드 뤼크(Guillaume Antoine de Luc)는 그를 만나기 위해 영국을 방문했다. 그는 1754년에는 런던 교외 고급 주거지의 저택 파슨스 그린(Parson's Green)으로 이사해서 거기서 많은 방문객을 맞았다. 그의 사업은 번창해서 ≪찰스 그랜디슨 경≫을 출판할 때는 그의 인쇄소에 30명의 직원을 두었으며 1754∼1755년에는 출판협회 회장직을 맡았다. 그가 일생 동안 인쇄한 책은 2349권에 이른다.

그는 일생 실내에서 작업한 탓으로 건강이 좋지 않았으며, ≪찰스 그랜디슨 경≫을 쓰고 난 다음부터는 특히 건강이 악화되었다. 그는 죽기 3년 전(1758)부터는 불면증에 시달렸고, 걷기 힘들어했으며, 펜을 쥘 힘이 없어 딸에게 글을 대필시키기도 했다. 그는 1761년 7월 4일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그의 유해는 그의 집 가까이에 있는 성 브라이드(St. Bride's) 교회당, 그의 첫 부인과 자식들의 곁에 묻혔으며 그의 둘째 부인도 후에 그곳에 묻혔다.


☑ 옮긴이 소개

김성균

김성균은 서울에서 태어나 1958년에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해 1964년에 졸업했으며, 같은 대학교 대학원 영어영문학과에서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1년부터 연세대학교에 재직했고, 2004년 봄에 퇴임할 때까지 학부와 대학원에서 18세기 영국 소설을 강의했다. 현재 연세대학교 명예교수다.

석사 학위논문은 <그레엄 그린의 소설 연구>(1966)이고, 박사 학위논문은 영국 18세기 소설 중 가장 난해하며 최초 의식의 흐름 수법 소설이라고 하는 <“트리스트럼 섄디” 연구: 작가의 독자 의식과 소설의 구성>(1979)이다. 저서는 없고, 영국 소설 발생기의 작가들인 존 버니언, 애프라 벤, 대니얼 디포, 엘리자 헤이우드, 새뮤얼 리처드슨, 헨리 필딩, 로런스 스턴 등의 작품에 대한 논문을 한국 영어영문학회 학회지 *≪영어영문학≫과 연세대 논문집 ≪영어영문학 연구≫에 발표했다. 주석본으로 18세기 주요 소설 대니얼 디포의 ≪몰 플랜더스≫(신아사, 1991), 헨리 필딩의 ≪조지프 앤드루스≫(연세대 출판부, 1995), 새뮤얼 리처드슨의 ≪패멀라≫(연세대 출판부, 1996)를 내었고, 학부 영산문 강독을 위한 주석본 ≪Prose in English≫(연세대, 1998)를 편집했다. 역서로는 그레엄 그린의 ≪명예영사≫(한길사, 1983)가 있다.


☑ 목차

편지 1. 러블레이스 씨가 벨퍼드 씨에게

편지 2. 클러리사 할로 양이 하우 양에게

편지 3.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4. 하우 양이 클러리사 할로 양에게

편지 5. 클러리사 할로 양이 하우 양에게

편지 6. 애러벨라 할로 양에게

편지 7.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8.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9.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10.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11. 클러리사 할로 양이 하우 양에게

편지 12.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13.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14.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15. 하우 양이 클러리사 할로 양에게

편지 16. 클러리사 할로 양이 하우 양에게

편지 17. 클러리사 할로 양이 하우 양에게

편지 18. 클러리사 할로 양이 하우 양에게

편지 19.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20. 클러리사 할로 양이 하우 양에게

편지 21.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22.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23. 하우 양이 클러리사 할로 양에게

편지 24. 클러리사 할로 양이 하우 양에게

편지 25. 클러리사 할로 양이 하우 양에게

편지 26. 클러리사 할로 양이 하우 양에게

편지 27. 클러리사 할로 양이 하우 양에게

편지 28. 클러리사 할로 양의 편지

편지 29. 클러리사 할로 양의 편지

편지 30. 클러리사 할로 양의 편지

편지 31.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32. 하우 양이 클러리사 할로 양에게

편지 33. 클러리사 할로 양이 하우 양에게

편지 34. 클러리사 할로 양이 하우 양에게

편지 35.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36. 하우 양이 클러리사 할로 양에게

편지 37. 클러리사 할로 양이 하우 양에게

편지 38. 클러리사 할로 양의 편지

편지 39. 클러리사 할로 양의 편지

편지 40. 하우 양이 클러리사 할로 양에게

편지 41. 클러리사 할로 양이 하우 양에게

편지 42.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43. 조지프 레먼이 로버트 러블레이스 씨에게

편지 44. 러블레이스 씨가 조지프 레먼에게

편지 45. 클러리사 할로 양이 허비 부인에게

편지 46. 하우 양이 클러리사 할로 양에게

편지 47. 벨퍼드 씨가 로버트 러블레이스 씨에게

편지 48. 허비 부인이 클러리사 할로 양에게

편지 49. 클러리사 할로 양이 하우 양에게

편지 50. 클러리사 할로 양이 하우 양에게

편지 51. 클러리사 할로 양에게

편지 52. 하우 양이 클러리사 할로 양에게

편지 53. 클러리사 할로 양이 하우 양에게

편지 54. 하우 양이 클러리사 할로 양에게

편지 55. 하우 양의 편지

편지 56.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57.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58.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59. 클러리사 할로 양이 하우 양에게

편지 60. 하우 양이 클러리사 할로 양에게

편지 61. 클러리사 할로 양이 하우 양에게

편지 62. 클러리사 할로 양이 하우 양에게

편지 63. 러블레이스 씨가 존 벨퍼드 씨에게

편지 64. 클러리사 할로 양이 하우 양에게

편지 65. 클러리사 할로 양이 하우 양에게

편지 66. 클러리사 할로 양이 하우 양에게

편지 67. 클러리사 할로 양이 하우 양에게

편지 68. 하우 양이 클러리사 할로 양에게

편지 69. 클러리사 할로 양이 하우 양에게

편지 70. 히크먼 씨가 클러리사 할로 양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