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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6월 9일 목요일

아방가르드의 이론 Theorie der Avantgarde


도서명 : 아방가르드의 이론(Theorie der Avantgarde)
지은이 : 페터 뷔르거(Peter Bürger)
옮긴이 : 최성만
분야 : 사상 / 미학
출간일 : 2013년 8월 27일
ISBN : 979-11-304-1024-1  03600
가격 : 22,500원
사륙판(128*188) / 무선제본 / 342쪽




☑ 책 소개

오늘날 예술은 사회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뷔르거는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아방가르드 운동을 이야기한다. 아방가르드 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규명하는 ≪아방가르드의 이론≫에는 시민사회에서 형성되고 변천한 예술의 자율성, 예술과 학문의 자기비판, 작품 개념의 변화를 비롯하여 새로운 것, 우연성, 알레고리, 몽타주 등 모더니즘 예술과 문학의 여러 형식요소, 앙가주망의 다양한 관련 주제 등이 포함된다.

≪아방가르드의 이론≫은 2009년 지식을만드는지식 클래식(시리즈 번호 3)으로 출간한 바 있습니다. 이 책은 체계와 판형을 바꾸고 ‘≪아방가르드의 이론≫ 읽기’를 더해 지식을만드는지식 사상선집으로 새롭게 출간하는 것입니다.


☑ 출판사 책 소개

비판적 문예학을 정초하기 위한 작업
≪아방가르드의 이론≫은 1974년 출간되자마자 당시 학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뷔르거는 이 책에서 당시 발표된 관련 문헌을 망라한다. 그는 이데올로기 비판의 전통에 서서 베냐민, 아도르노, 나아가 루카치, 브레히트 등 주요 사상가의 유물론적 미학과 예술학 및 문예학의 중요 쟁점을 포괄적이고 비판적으로 논의한다. 이를 통해 예술제도의 한계를 뚫고 나오려 했던 아방가르디스트들의 시도를 개념적으로 파악할 장치를 마련하려 한다. 역사적으로 제한된 타당성을 갖게 된 아방가르드 운동의 의미를 규명하는 이론적 작업은 그와 동시에 문학이론을 역사적으로 정초하려는 시도를 나타낸다.

역사적 아방가르드 운동 연구
일상에서 아방가르드는 시대마다 일어난 전위적인 예술 운동이나 작품을 지칭하는 양식을 뜻한다. 그러나 뷔르거는 아방가르드 운동 앞에 ‘역사적’이라는 형용사를 붙인다. 자신이 대상으로 삼는 아방가르드 운동을 일상적 용법과 구별 짓는 것이다. 아방가르드는 시민사회의 예술제도(자율성 상태)를 전면적으로 거부하며 삶과 예술을 새로운 차원에서 재통합하려는 의도를 갖고 출현했는데, 그 의도의 실현이 좌절한 뒤 역사적인 사건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역사적 아방가르드 운동은 미래파, 다다이즘, 초기 초현실주의, 나아가 러시아 아방가르드까지 포괄한다.
아방가르드 운동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무의미한 실험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중요한 인식적 가치를 갖는다. 그 운동을 통해 비로소 시민예술의 제도적 성격에 대한 인식과 비판이 가능하게 되었고 그에 따라 예술과 작품의 의미와 기능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열렸기 때문이다.

≪아방가르드의 이론≫에 덧붙여
이 책을 발표하고 24년이 지난 1998년, 뷔르거가 ≪미학사전(Encyclopedia of Aesthetics)≫에 쓴 ‘아방가르드’를 소개한다. 이 글에서는 미학 내재적 변혁이 아니라 실제의 삶을 바꾸려는 정치적·혁명적 기획으로서 아방가르드 운동의 전통을 19세기 역사로 더 거슬러 올라가 추적한다.
또한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옮긴이가 발표한 논문 <페터 뷔르거의 ≪아방가르드의 이론≫ 읽기>를 수정·보완해 함께 실었다. 이 글은 ≪아방가르드의 이론≫과 뷔르거의 사상을 깊이 있게 분석·평가한다.


☑ 책 속으로

비판적 학문이 전통적 학문과 다른 점은 그것이 자신의 활동이 갖는 사회적 의미를 성찰한다는 점이다. 이 점은 일정한 문제들을 던져주는데, 이 문제를 인식하는 것은 비판적 학문을 구성하는 데 중요하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개인적 동기와 사회적 중요성의 소박한 동일시, 오늘날 반권위주의적인 좌파에서 종종 볼 수 있는 그러한 동일시가 아니라 어떤 이론적 문제다. 무엇이 사회적으로 중요한지 규정하는 일은 해석자의 정치적 입지와 맞물려 있다. 이것은 한 대상이 중요한지 아닌지의 물음은 적대적 사회에서는 토론을 통해 결정될 수는 없지만 토론될 여지는 있다는 것을 뜻한다.
- 5∼6쪽.

아방가르드적 요구−내가 바로 이러한 아방가르드적 요구를 하고 있다고 린트너가 주장한 것은 부당하지 않다−를 학문에 그대로 넘겨주는 문제를 두고 보자면, 그 요구는 어떤 변형을 가하지 않고서는 상상할 수 없다. 문예학이 스스로 예술을 실생활로 옮기는 과제를 떠맡을 수는 없다. 그러나 문예학은 아방가르드 운동의 요구를 예술제도에 대한 비판의 형식으로 채용할 수는 있다. 시민사회에서 예술작품과 관계를 맺는 일 및 작품을 생산하는 일을 통제하는 유통형식들이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띤다는 말이 옳다면, 이러한 유통형식들을 끈기 있게 변증법적으로 비판하는 일은 중요한 학문적 과제 가운데 하나다.
- 259∼260쪽.


☑ 지은이 소개

페터 뷔르거(Peter Bürger, 1936∼)
1936년에 태어나 1955∼1960년에 함부르크대학교와 뮌헨대학교에서 독문학과 프랑스문학 및 철학을 수학했고, 1960∼1964년에 프랑스에서 독일어 강사로 재직했다. 1970년 에를랑겐ᐨ뉘른베르크대학교에서 교수자격을 취득한 뒤 1971년부터 1998년에 은퇴할 때까지 브레멘대학교에서 문예학 및 미학이론 전공 교수로 재직했다. 뷔르거는 은퇴한 뒤에도 연구 활동을 계속하여 최근에 사르트르에 관한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그의 중심 연구 분야는 미학, 예술철학, 문예학이다. 구체적으로 아방가르드 운동 및 미적 현대, 프랑스 초현실주의, 관념론 미학 비판,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사 방법론 등 다양한 주제에 쏠려 있다. 국내에 ≪전위예술의 새로운 이해≫를 통해 처음 소개된 뷔르거는 지금까지 ≪미학 이론과 문예학 방법론≫, ≪지배자의 사유≫, ≪관념론 미학 비판≫이 번역되어 나왔다.


☑ 옮긴이 소개

최성만(崔成萬)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했으며,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독어독문학을 전공했다.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독문학과 철학을 수학했으며, 1995년 발터 베냐민의 미메시스론에 대한 논문(<Mimesis und historische Erfahrung : Untersuchungen zur Mimesistheorie Walter Benjamins>)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저서로는 ≪표현인문학≫(공저, 2000)이 있으며, 역서로는 ≪예술의 사회학≫(공역, 1983), ≪전위예술의 새로운 이해≫(1986), ≪윤이상의 음악 세계≫(공역, 1991), ≪한 우정의 역사−발터 벤야민을 추억하며≫(2002) 등이 있고, 미메시스를 비롯해 독문학과 미학 관련 논문들이 다수 있다. 주요 관심 분야는 발터 베냐민, 테어도어 아도르노, 미학, 미메시스론, 매체이론, 문화연구 등이다. 현재 이화여대 독어독문학과 교수로 있다.


☑ 차례

머리말

서론: 비판적 문예학을 위한 예비적 고찰들

I. 아방가르드의 이론과 비판적 문예학
1. 미학적 카테고리들의 역사성
2. 시민사회에서 예술의 자기비판으로서의 아방가르드
3. 베냐민의 예술이론에 대한 논의

II. 시민사회에서 예술의 자율성 문제에 대하여
1. 연구상의 문제점들
2. 칸트와 실러의 미학에서 예술의 자율성
3. 아방가르드에 의한 예술 자율성의 부정

III. 아방가르드 예술작품
1. 작품 카테고리의 문제에 대하여
2. 새로운 것
3. 우연
4. 베냐민의 알레고리 개념
5. 몽타주

IV. 아방가르드와 앙가주망
1. 아도르노와 루카치의 논쟁
2. 부언−헤겔을 회고하며

제2판의 후기
참고문헌

아방가르드 / 페터 뷔르거
≪아방가르드의 이론≫ 읽기 / 최성만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2011년 4월 25일 월요일

천재를 부정한 천재를 아십니까?

천재의 언어는 무엇이 다른가?

셰익스피어의 화려한 언어,
괴테의 정선된 언어만이
감동을 줄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렇지 않은 언어,
곧 뷔히너의 토막말을 만나보시라.
서민의 언어로,
그것도 몇 개의 단어만으로
독자를 감동의 소용돌이로 몰고가는 언어의 천재를 만나게 된다.








24세에 요절한 게오르크 뷔히너의 삶을 그가 남긴 문학 작품을 통해 들여다본다.

정선되고 다듬어진 문어(文語)만이 통용되던 당대 독일문단에서 외설과 일상 언어를 사용하고 반(反)영웅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던 뷔히너. 세상을 떠난 지 40년 후에서야 그의 리얼리즘 문학세계는 ‘힘 있는 언어’의 사용과 ‘생생한 묘사’라는 평가를 듣게 된다.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음에도 참다운 삶의 의미를 ‘더불어 사는 삶’에서 찾고자 했던 뷔히너는 반체제 운동에 가담하고 농민을 위해 투쟁에 앞장섰다.
임호일 교수는 이 책에서 뷔히너가 남긴 세 편의 드라마 ≪당통의 죽음≫, ≪레옹스와 레나≫, ≪보이체크≫와 소설 ≪렌츠≫, 그가 남긴 서신들을 인용하며 천재적 삶을 살다간 뷔히너의 짧은 생을 이야기한다. 저자가 풀어주는 뷔히너의 삶은 곧 저자의 삶의 모습이고 이를 읽는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우리의 상상력을 최대치로 확장할 수 있는 행간을 그 어느 텍스트보다 많이 지니고 있는 텍스트가 바로 뷔히너의 네 작품이다.”


본문 중에서

나는 뷔히너를 통해 진정 아름다운 언어, 힘 있는 언어가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 그렇다, 그는 나에게 전정한 심미안을 열어 준 작가다. 나는 셰익스피어의 언어처럼 화려한 언어, 괴테의 언어처럼 잘 다듬어진 정선된 언어만이 독자를 감동시키는 줄 알았다. 그런데 뷔히너는 일상어를 가지고도, 아니 서민의 언어, 이른바 토막말을 가지고도 나를 충분히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시가 아닌 드라마에서 문장이 아닌 단어 몇 개만 가지고도 얼마든지 우리를 감동시킬 수 있는 작가, 뷔히너는 정녕 언어의 연금술사요, 시대를 앞서간 천재다.
(...)

나는 뷔히너의 삶과 문학을 통해 부끄러움을 배우고 겸손을 배웠다. 독일문학사에 몇 안 되는 천재, 독일문학사가 공인하는 천재 뷔히너가 “교육이라는 우스꽝스러운 외관”과 “학식이라는 보잘것없는 잡동사니”를 무기 삼아 “자기의 이웃 집단을 가증스런 이기주의에 제물로 바치는 자들”을 질타했을 때 나 자신 부끄러웠고, “바보나 범죄자가 되고 안 되는 것이 그 어떤 개인의 힘에 달려 있지 않으며”, “우리가 똑같은 환경에 몸을 담았다면 우리는 모두 같아졌을 것”이라는 그의 말 속에서 나는 겸손을 배웠다. 천재는 환경이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뷔히너는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최소한 이성이나 교육이 빈약하다는 이유로 그 누구를 경멸하는 일은 결코 하지 않겠다”는 다짐은 바로 그의 이러한 천재 부정 사상으로부터 연유한다.(이상의 인용 문구들은 <양친에게 보낸 서신> 중에서 발췌한 것임)

24세에 요절한 뷔히너, 그는 나의 스승이요, 내 인생의 길잡이다. 그는 갈등과 고뇌가 저주가 아닌 축복이라는 사실을 나에게 일깨워 줬다. 그는 이 세상을 선과 악, 미와 추라는 이분법으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그의 삶과 문학으로 웅변해 준 작가다. 빛은 어둠에 빚을 지고 있듯이 가진 자는 가지지 못한 자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 뷔히너, 그는 나의 유토피아요, 오아시스다. 나도 이제 뒤늦게, 환갑이 지난 나이에 철이 들기 시작하는가 보다. 저 스승처럼 “고귀한 분들의 냉담한 마음에 고언(苦言)을 던지기보다는 고통받고 억눌린 사람들에게 동정 어린 눈길”(<양친에게 보낸 서신>중에서)을 한번이라도 더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차례

프롤로그   vii

1장 요절한 천재
1. 천재는 우연의 산물이다   3
2. 조금만 더 살았더라도…   9
3. 영원한 자유인   16
4. 뷔히너와 그의 시대   23

2장 추(醜)의 미학
1. ‘우리 시대는 순전히 물질적인 시대라오’   29
2. 개방문학의 선구자   33
3. ‘가장 보잘것없는 존재의 삶 속으로 침잠해 보라’   66

3장 모든 문학은 앙가주망이다
1. 사회주의자 브레히트와의 접목점   95
2. 개인주의자 한트케와의 접목점   125

4장 추의 미학의 형상화
1. ‘지능은 우리의 정신적인 영역의 극히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137
2. 오만은 편견을 낳는다   160
3. 진리는 역사적이다   181
4. 아이러니와 패러독스를 통한 진실과 허구의 전도(顚倒)   197

에필로그   208
작품 줄거리 요약   213
참고문헌   222
작가 연보   228
저자 소개   231
색인   232


저자 임호일은…

고려대학교 독문학과에서 학사, 석사 과정을 마치고 독일 뮌헨과 마인츠 대학에서 수학했으며, 오스트리아 그라츠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동국대학교 문과대학 독어독문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한국독어독문학회 부회장, 한국뷔히너학회 회장, 동국대학교 도서관장 및 문과대학장을 역임했다.
주요 논문으로는 <번역은 원전에 대한 도전이다?>, <추의 미학의 관점에서 본 뷔히너의 리얼리즘>, <가다머의 예술론>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변증법적 문예학≫(플로리안 파센 저), ≪진리와 방법≫(한스−게오르크 가다머 저, 공역), ≪한스−게오르크 가다머≫(카이 하머마이스터 저), ≪뷔히너 문학전집≫(게오르크 뷔히너 저) 외 다수가 있다.

2011년 3월 3일 목요일

겐지이야기를 읽는 요령 紫文要領

새로운 문학 원리를 제시한 일본 사상사의 중요한 유산

≪겐지 이야기≫는 일본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고전으로 모두 54권으로 이루어진 장편소설이다. ≪겐지 이야기를 읽는 요령≫은 ≪마쿠라노소시≫와 함께 쌍벽을 이루는 헤이안 시대의 대표 작품 ≪겐지 이야기≫를 ‘모노노아와레’설을 통해 분석한 책이다. 모토오리 노리나가의 모노노아와레’설은 기존의 권선징악적인 문학 비평에서 벗어나 문학과 인간에 대한 이해를 질적·양적으로 확대했다는 평과 함께 일본 사상사상 가장 중요한 유산으로 칭해진다.


☑ 책 소개

일본 문학사상 최고 걸작으로 평가받는 ≪겐지 이야기≫
≪겐지 이야기≫는 헤이안 시대 중기 11세기 초 무라사키시키부에 의해서 창작된 장편소설로, 세이쇼나곤의 수필 ≪마쿠라노소시≫와 함께 헤이안 문학의 쌍벽을 이루는 작품이다. ≪겐지 이야기≫는 전체 54권으로 나뉘어 있으며, 세계 최고(最古), 최장(最長)의 고전소설이다. 치밀한 구성과 인간의 심리 묘사, 표현의 정교함과 미의식 등으로 일본문학사상 최고 걸작으로 평가된다.

≪겐지 이야기를 읽는 요령≫은 모노노아와레를 아는 것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있는 책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고 거기에 따라 느끼는 것이 모노노아와레다. 예를 들어 굉장히 아름다운 벚꽃이 만발한 것을 보고 아름답게 여기는 것은 물건의 마음을 아는 것이다. 아름다운 꽃을 알아보고 정말로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이 느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모노노아와레다.”

≪마쿠라노소시≫가 ‘오카시(をかし)의 문학’이라면 ≪겐지 이야기≫는 ‘모노노아와레(もののあはれ)’의 문학이라고 일컬어진다. ≪겐지 이야기≫를 ‘모노노아와레’의 문학으로 정의 내린 사람은 에도(江戸) 시대의 국학자 모토오리 노리나가다. “≪겐지 이야기≫ 54첩은 ‘모노노아와레를 알다’라는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다”고 노리나가는 단정하며 ≪겐지 이야기≫를 모노노아와레를 알게 하기 위해서 창작된 것으로 파악한다. ≪겐지 이야기를 읽는 요령≫은 모노노아와레를 아는 것이 무엇인지를 ≪겐지 이야기≫를 통해서 설명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모노노아와레(를 알다)’는 우리가 어떤 것을 접했을 때 느낄 수 있는 자연스러운 감정 및 감수성을 가리킨다.

‘모노노아와레’ 설은 일본 사상사상 가장 중요한 유산
“모노노아와레 설은 일본 사상사상 가장 중요한 유산의 하나라고 칭하기에 충분하다”는 평가를 얻는다. 노리나가 이전에는 ≪겐지 이야기≫에 대해 호색의 음란 서적이라 하여 부정적인 견해가 많았다. 노리나가는 문학을 도덕과는 별도의 가치 기준을 갖는 독립된 영역으로 설정하고, 그때까지의 권선징악적 문학 비평에서 벗어나서 모노노아와레를 아는 것을 문학의 원리로 삼았다.
이것은 반윤리적이고 음란·퇴폐한 것이 주종을 이루는 일본 문학에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기 위해서 마련한 궁여지책일 수도 있으나, 인간의 마음이 이럴 때 이런 것이구나 하고 알게 하는 것이 문학의 본질이라고 파악한 노리나가의 식견은, 감수성을 풍부하게 하여 인간과 인생에 대한 이해를 질적·양적으로 확대해 주는 문학의 기능에 대한 중대한 발견이라 할 수 있다.


☑ 책 속으로

この物語五十四帖は、‘物の哀れを知る’といふ一言にて盡きぬべし。 (…) 世の中にありとしある事のさまざまを、目に見るにつけ耳に聞くにつけ、身に觸るるにつけて、その万の事を心に味へて、その万の事の心をわが心にわきまへ知る、これ、事のこころを知るなり、物の心を知るなり、物の哀れを知るなり。(…) たとへばいみじくめでたき櫻の盛りに笑きたるを見て、めでたき花と見るは、物の心を知るなり。めでたき花といふことをわきまへ知りて、さてさてめでたき花かなと思ふが、感ずるなり、これすなはち物の哀れなり。

≪겐지 이야기≫ 54첩은 ‘모노노아와레를 알다’라는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다. (…)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여러 가지를, 눈으로 보는 것, 귀로 듣는 것, 몸에 닿는 것, 그 온갖 것을 마음으로 느끼고, 그 온갖 것의 본질을 마음속으로 이해하는 것, 이것이 일의 마음을 아는 것이고, 물건의 마음을 아는 것이고, 모노노아와레를 아는 것이다. (…) 예를 들어 굉장히 아름다운 벚꽃이 만발한 것을 보고 아름답게 여기는 것은 물건의 마음을 아는 것이다. 아름다운 꽃을 알아보고 정말로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이 느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모노노아와레다.


☑ 지은이 소개

모토오리 노리나가(本居宣長, 1730∼1801)

모토오리 노리나가는 에도 후기의 국학자로 이세(伊勢) 지방 마쓰사카(松阪) 출신이다. 아버지는 에도에 점포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호상(豪商)이었으나 가운이 기울기 시작해 노리나가가 11세 때 병사했다. 가업을 이어받은 형마저 죽자, 그는 어머니의 권유로 의사가 되기로 결심해 1752년 교토(京都)로 상경한다. 오규 소라이(荻生徂徠, 1666∼1728)의 영향을 입은 호리 게이잔(堀景山, 1688∼1757)에게서 유학을, 무카와 고준(武川幸順) 등에게서 의학을 배운다. 그러던 중에 게이잔의 소개로 게이추(契沖, 1640∼1701)의 저술을 접하고 고전 연구에 눈뜬다. 1757년 마쓰사카에서 소아과 병원을 개업하고 1763년 가모노 마부치(賀茂眞淵, 1697∼1769)와의 만남을 계기로 국학에 입문하여 ≪고지키전(古事記傳)≫ 집필에 착수한다. 이 무렵부터 ≪겐지 이야기를 읽는 요령(紫文要領)≫, ≪이소노카미노사사메고토(石上私淑言)≫를 집필하는 등 활발한 저술 활동을 하기 시작해 1771년에는 복고사상(復古思想)의 총론이라 할 수 있는 ≪나오비노미타마(直毘靈)≫를 출판한다. 1786년에 간행된 ≪가카이카(呵刈葭)≫에 수록된 우에다 아키나리(上田秋成, 1734∼1809)와의 논쟁도 유명하다. 1798년 35년간 몰두한 ≪고지키전≫을 완성했다. 복고사상에 입각해 일본의 고대 정신을 규명하고자 평생을 바쳐 고전을 연구했던 사람으로, 그의 문하생은 전국에 걸쳐 500명에 달했다고 한다.


☑ 옮긴이 소개

정순희
정순희(鄭順姬)는 1990년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어과를 졸업하고 1992년 일본 문부과학성 초청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교토(京都) 대학 문학연구과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홍익대학교 겸임교수, 이화여자대학교 전임강사 등을 지냈으며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외국어연수평가원 등에서 가르치며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연애의 기술≫, ≪일본인의 미의식과 정신≫, ≪번안과 창작≫, ≪의리와 인정≫ 등의 저·역서가 있다.


☑ 목차

해설
지은이에 대해

상권
작가에 대해
집필 경위에 대해
성립 시기에 대해
작가의 계보에 대해
무라사키시키부라는 이름에 대해
준거(準據)에 대해
제목에 대해
기타 사항
주석에 대해
주제에 대해(상)


하권
주제에 대해(하)

발문

옮긴이에 대해

2011년 3월 2일 수요일

인간사화 人間詞話


도서명 : 인간사화 人間詞話
지은이 : 왕궈웨이
옮긴이 : 조성천
분야 : 인문 >철학 >동양고전
출간일 : 2009년 7월 15일
ISBN : 978-89-8499-986-2
가격 : 12,000원
A5 / 양장본 / 247쪽


완역


☑ 200자 핵심요약

왕궈웨이의 문예미학을 한눈에 살필 수 있는 ≪인간사화≫에 대한 역주서다. 시대의 선후에 따라 전국시대에서 청 초에 이르는 시인, 사 작가, 사 작품을 논해 중국 사를 총체적으로 접할 수 있다. 또한 그의 원의에 가장 부합하는 판본을 번역의 텍스트로 삼아 ≪인간사화≫의 진면목을 두루 살필 수 있다.


☑ 책 소개

다방면으로 뛰어난 업적을 남긴 중국 근대의 저명한 학자 왕궈웨이의 사화(詞話) ≪인간사화≫를 번역하고 꼼꼼히 주를 달았다. 사화는 사 창작의 본질, 수사, 사 작가와 작품 및 시대에 대한 평가, 사 작가들의 행적이나 창작 배경 등을 논하는 것이다. 일찍이 서양의 철학과 미학, 문예 사상 등을 접했던 왕궈웨이는 사 창작을 하면서 중국과 서양의 문예 미학을 융합해 참신한 문예 미학관을 정립하고, 새로운 문예비평의 패러다임을 세웠다. 이 결과물이 ≪인간사화≫로 ‘경계(境界)’를 문예 미학의 최고 이상으로 내세우고 있다.

≪인간사화≫ 전체 내용을 살필 수 있는 완전한 역주서
≪인간사화≫는 원래 왕궈웨이가 생전에 친히 64조목으로 편정하여, <국수학보(國粹學報)>에 발표했는데 후인들이 ≪인간사화≫를 연구하고 주소하는 과정에서 유고를 수집해 증보하여 권1 ≪인간사화≫ 64조목, 권2 ≪인간사화 미간고(未刊稿)≫ 50조목, 권3 ≪인간사화 산고(刪稿)≫ 13조목, 권4 ≪인간사화 부록(附錄)≫ 28조목의 체제를 구성했다. 판본에 따라 권수나 조목 수가 다소 차이가 있기는 하나 왕궈웨이의 원의에 가장 부합하는 체제로 평가받는 삼민서국본의 편차로, 이를 번역의 텍스트로 삼아 ≪인간사화≫ 전체 내용을 살펴볼 수 있다.

왕궈웨이의 문예미학의 핵심 ‘경계’
왕궈웨이는 ‘경계’를 문학의 최고 이상으로 여겨 문학의 예술 미학을 추구했으면서도, 또한 인간의 삶과 인생 근원 문제를 둘러싸고 사유를 진행하여 인간의 완미한 경지를 추구하는 인간 미학을 탐구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는다. 또한 그의 경계설은 중·서 문예 미학의 결합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경계’설은 중국 전통의 천인합일·물아일체 등의 관념, 노장(老莊) 등의 무위자연 철학 사상, 중국 전통의 미학·문예 사상 등에 연원을 두고, 서양의 칸트, 쇼펜하우어, 니체 등의 철학, 미학, 문예 사상의 영양을 섭취하고 각종 미학, 철학 개념을 빌려 이루어졌다.


☑ 책 속으로

文學之事, 其內足以攄己, 而外足以感人者, 意與境二者而已。 上焉者意與境渾, 其次或以境勝, 或以意勝。 苟缺其一, 不足以言文學。

문학이란 작가가 내부로는 자신의 뜻을 충분히 펼치고 외부로는 독자를 충분히 감동시키는 것으로, 그 관건은 ‘작가의 뜻[意]’과 ‘경물[境]’ 두 가지일 뿐이다. 최상의 문학은 ‘작가의 뜻’과 ‘경물’이 혼연일체가 되는 것이고 그다음은 경물이 뛰어나거나 혹은 작가의 뜻이 뛰어난 것이다. 만약 그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빠지면 문학이라고 할 수 없다.


☑ 지은이 소개

왕궈웨이(王國維, 1877∼1927)
왕궈웨이(王國維, 1877∼1927)는 자가 징안(靜安), 호는 관탕(觀堂)으로 저장(浙江) 하이닝(海寧)에서 태어났다.
근대 중국의 저명한 학자로 문학, 희곡, 미학, 사학, 갑골학, 돈황학, 금석학, 역사·지리학, 판본·목록학 등의 여러 방면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그는 일찍이 칸트, 쇼펜하우어, 니체 등의 철학·미학 사상을 연구했으며, 서양의 철학, 미학, 문예 원리로 중국 고전 문예를 비평한 인물이다.
어려서부터 전통 교육을 받고, 과거를 보기 위해 공부했지만 항저우(杭州)에 향시를 치르러 갔다가 마지막 시험을 치르지 않고 돌아왔다. 이로써 과거에 대한 미련을 버렸다.
1894년 청일(淸日)전쟁 후, 변법유신 운동이 일어나고 서양 학문이 밀려들자, 왕궈웨이는 서양 학문을 접한다. 1898년 상하이(上海)로 가서 캉유웨이(康有爲), 량치차오(梁啓超) 등이 주축이 되어 발간하던 개혁 사상 대변지 <시무보(時務報)>의 서기, 교정원을 맡았다. 여가 시간을 이용, 뤄전위(羅振玉)가 세운 동문학사(東文學社)에 들어가 영어, 일어, 수리, 철학, 물리, 화학 등을 공부했다. 이때 뤄전위는 우연히 왕궈웨이의 자질이 뛰어남을 알아보고 다방면에서 도움을 주게 되는데, 이로써 뤄전위와 왕궈웨이의 평생의 만남과 우의가 시작되었다.
1901년 뤄전위의 도움으로 일본 유학을 갔지만 반년도 못 되어 병으로 귀국했다. 뤄전위의 추천으로 상하이난양공학(上海南洋公學), 퉁저우사범학교(通州師範學校), 쑤저우사범학교(蘇州師範學校)에서 교편을 잡고 철학, 심리학, 윤리학 등을 가르쳤다.
1906년 뤄전위를 따라 베이징으로 가서 교육부의 직무를 맡았다. 이 시기에 미학, 문학 이론, 희곡 예술사를 연구해 ≪인간사화(人間詞話)≫, ≪송원희곡고(宋元戱曲考)≫를 저술했다.
1911년 신해혁명 후, 뤄전위를 따라 일본으로 가서 교토(京都)에 머물렀는데, 청조의 유로(遺老)로 처세했다. 이 시기 고문자학, 음운학, 고기물학(古器物學), 갑골문, 사학 등의 연구에 몰두했다.
1916년에 귀국해 상하이에 거주했는데, 유태인 하둔[Silas Aaron Hardoon, 중국식 표기는 하퉁(哈同)]의 초빙을 받아 <학술총간>의 편집을 맡았고, 아울러 하둔이 설립한 창성밍즈대학(倉聖明智大學)의 교수를 겸했다. 이 시기 갑골문, 고고학에 대한 연구를 계속했다.
1923년 청 대(淸代)의 마지막 황제 푸이(溥儀)의 문학 시종이 되었는데, 다음 해 펑위샹(馮玉祥)이 베이징정변을 일으켜 푸이를 출궁시키고 황제의 존호를 폐하자, 비분강개하여 진수이허(金水河)에 투신해 청을 위해 순국하려 했다.
1925년 칭화대학(淸華大學) 국학연구원 교수로 초빙되어, 량치차오·자오위안런(趙元任)·천인커(陳寅恪)와 함께 칭화대학 국학연구원의 ‘네 명의 석학 지도교수’가 되었다.
1927년 6월 2일 이허위안(頤和園)의 쿤밍호(昆明湖)에 몸을 던졌다. 그는 유서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50년의 파란 많은 인생, 단지 한 번의 죽음만은 겪어보지 못했다(五十之年, 只欠一死).
이러한 세상 변란을 겪으니, 도의(道義)에 두 번의 치욕은 받을 수 없구나(經此世變, 義無再辱).”

한 시대의 대학자가 그의 인생과 학문의 황금기에 이렇게 생을 다했다. 그의 죽음은 학술계에 커다란 충격을 불러일으켰고, 그의 사인(死因)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다.
그의 시인과 같은 영혼은 생존경쟁의 세계에서 상처받지 않을 수 없었고, 그가 추구했던 학문은 해탈과 자유를 얻을 수 있는 피안의 세계가 되지 못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오는 고독과 방황, 인생이 주는 우울과 번민은 그의 영혼으로 하여금 육신을 떠나 쿤밍호에서 파문을 일으키며 사라지게 했다.
왕궈웨이의 영혼은 떠났지만, 여러 학술 방면에서 이룬 성취로 그는 “중국 근 300년의 학술을 종결한 사람, 최근 80년래 학술을 창조한 사람”으로 평가된다.


☑ 옮긴이 소개

조성천(趙成千)
조성천(趙成千)은 고려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했다. 유학자 고 김주희(金冑熙) 선생께 사서삼경(四書三經)의 가르침을 받았고, 고려대학교 대학원 중어중문학과에서 <왕선산 시론 연구(王船山詩論硏究)>로 석사학위, <왕부지(王夫之) 시학(詩學)의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홍익대학교 사범대학부속여자고등학교 교사, 고려대·홍익대 강사를 거쳐 현재 을지대학교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중국 문학비평을 전공, 중국 시론(詩論)을 연구했는데, 왕부지의 문예 사상을 집중 조명하고 있다. 그 결과물로 저서 ≪왕부지 시가 사상과 예술론 연구≫, 역주서 ≪강재시화(薑齋詩話)≫, 논문 <중국 시론상 ‘흥회(興會)’의 역사성과 문예 미학적 의의>, <왕부지 시론상의 온유돈후(溫柔敦厚)론>, <왕부지 두보 시가 창작에 대한 비평론>, <왕부지의 역대 시론 수용 양상>, <왕부지의 두보 시가에 대한 호평론(好評論)> 등이 있다.


☑ 차례

해설
지은이에 대해

권1 인간사화
권2 인간사화 미간고
권3 인간사화 산고
권4 인간사화 부록

옮긴이에 대해


2011년 3월 1일 화요일

함부르크 연극론 Hamburgische Dramaturgie

독일 근대극에 큰 영향을 끼친 레싱의 연극 이론

독일의 작가이자 비평가인 레싱이 독일 국민극장의 전속 평론가로 활동하면서, 1767년 개관해서 1769년 3월 문을 닫을 때까지 국민극장 무대에 오른 작품과 공연에 대해 쓴 평론집이다. 특히 레싱의 비극론과 셰익스피어에 대한 찬사는 100년 동안 추종되어 온 프랑스 희곡에 대한 전면적 비판으로 이어지면서, 괴테, 실러 등 다음 세대 작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 기존의 발췌 번역과 중복되지 않는 새로운 내용이 많아 레싱의 연극 이론을 좀 더 깊이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 책 소개

독일 연극의 총체적 개혁을 위해 쓴 ≪함부르크 연극론≫
1767년 4월 22일 개관한 국민극장은 1769년 3월 3일 문을 닫지만, 독일 연극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국민극장의 활성화와 발전, 궁극적으로는 독일 연극의 총체적 개혁이라는 목표를 위해 레싱은 전속평론가로 활동하면서 정기간행물의 영향력을 이용하기로 한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것이 바로 ≪함부르크 연극론≫이다. 그는 예고문을 통해 “본 ≪연극론≫은 공연되는 모든 작품의 비판적인 목록이 될 것이고, 작가뿐만 아니라 배우들의 예술이 여기서 떼어놓게 될 모든 발걸음을 따라갈 것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토대로 치밀하게 탐구한 비극론
레싱은 ≪함부르크 연극론≫을 통해 공연 작품의 분석에서부터 배우들의 연기까지 모든 것을 대상으로 평을 썼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배우들과 평론가 사이에 갈등이 생기고, 그 결과 연기에 대한 비평과 연기술에 대한 탐구를 전면 중단하게 된다. 그 대신 희곡과 연극의 본질에 관한 탐구가 점점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레싱에 따르면 비극의 목표는 인간의 도덕적 교화이고, 교화는 인식의 증진이 아니라 지각 능력의 향상을 통해 이루어진다. 비극의 관객은 시민계급이다. 이 두 가지 전제하에서 레싱은 독일 시민계급의 도덕성과 자의식의 고취를 목표하는 자신의 비극론을 주장하기 위해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토대로 삼아 이론을 전개하고 있다.

당시 100년 동안 추종되어 온 프랑스 연극에 대한 전면적 반박!
레싱은 ≪함부르크 연극론≫을 통해 100년 동안 당연한 것으로 간주되어 온 주장, 즉 프랑스 작가들이 유럽의 드라마를 선도한다는 주장을 전면적으로 반박했다. 아직 걸음마 단계에 있는 독일 희곡과 연극이 발전하려면 프랑스 드라마가 아니라 셰익스피어를 모범으로 삼아야 한다며 독일 드라마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 레싱의 셰익스피어 찬사는 괴테, 실러와 같이 다음 세대인 ‘질풍노도’ 작가들의 셰익스피어 숭배로 이어지게 하는 중요한 공적을 남긴다.


☑ 책 속으로

Der gute Schriftsteller, er sei von welcher Gattung er wolle, wenn er nicht bloß schreibet, seinen Witz, seine Gelehrsamkeit zu zeigen, hat immer die Erleuchtesten und Besten seiner Zeit und seines Landes in Augen, und nur was diesen gefallen, was diese rühren kann, würdiget er zu schreiben. Selbst der dramatische, wenn er sich zu dem Pöbel herabläßt, läßt sich nur darum zu ihm herab, um ihn zu erleuchten und zu bessern; nicht aber ihn in seinen Vorurteilen, ihn in siener unedeln Denkungsart zu bestärken.

장르를 막론하고 훌륭한 문필가는, 단순히 자신의 머리와 학식을 뽐내기 위해 글을 쓰는 경우가 아니라면, 항상 자기 시대와 나라에서 가장 머리가 깨이고 우수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쾌감을 주고 감동시킬 수 있는 것만 쓸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극작가가 무식한 대중에 맞춰 눈높이를 낮추는 경우 대중을 깨우치고 교화하기 위해서 낮추는 것이지, 대중의 선입관과 저열한 사고방식을 강화하려는 것은 아니다.


☑ 지은이 소개

고트홀트 레싱(Gotthold E. Lessing, 1729~ 1781) 

레싱은 1729년에 태어나 라이프치히 대학교와 비텐베르크 대학교에서 공부한다. 목사인 부친의 뜻에 따라 신학 공부를 시작하나 문학에 끌려 신학자의 길을 접고 일찍이 문필 활동과 언론계에 투신한다. 평생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다가 1781년 눈을 감는다. <미스 사라 샘슨>, <미나 폰 바른헬름, 또는 군인의 행운>, <에밀리아 갈로티>, <현자 나탄> 등이 대표작이다. 그 밖의 주요 저술로는 ≪비극에 관한 서신 교환≫, ≪문학 편지≫, ≪라오콘: 미술과 문학의 경계에 관하여≫, ≪함부르크 연극론≫, ≪인류의 교육≫, ≪에른스트와 팔크: 프리메이슨 회원을 위한 대화≫ 등이 있다. 레싱은 독일 계몽주의 시대에 문학평론가, 이론가, 작가로서 또 언론인으로서 문화 전반에 걸쳐 뛰어난 성취를 이루었고, 독일 문학이 낙후성을 극복하고 세계문학의 정상권으로 도약하는 준비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그는 독일 최초의 전업 작가, 시민 비극의 창조자, 전제군주제와 교조적 루터교의 비판자, 시민계급의 선구자, 관용과 지혜의 화신 나탄의 창조자, 독일 근대 희곡의 아버지 등으로 칭송된다.


☑ 옮긴이 소개

윤도중

윤도중(尹度重)은 서울대학교 문리대 독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뮌헨 대학교, 본 대학교, 마인츠 대학교에서 수학한 뒤, 주한독일문화원, 전북대학교를 거쳐 현재 숭실대학교 독문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한국독어독문학회 회장, 숭실대학교 인문대 학장을 역임했으며, 레싱, 괴테, 실러 등에 관한 다수의 논문을 썼다. 저서로는 ≪레싱: 드라마와 희곡론≫(2003), 역서로는 ≪레싱: 필로타스, 미나 폰 바른헬름≫(1991), ≪레싱 희곡선: 현자 나탄, 에밀리아 갈로티≫(1991), ≪괴테 고전주의 대표희곡선집≫(1996), ≪카를 추크마이어: 쾨페닉의 대위≫(1999), ≪독일대표희곡선집 I(근대편)≫(공역, 2001), ≪레싱 전설≫(2005), ≪라오콘: 미술과 문학의 경계에 관하여≫(2008) 등이 있다.

2011년 2월 16일 수요일

악마파 시의 힘 摩羅詩力說

루쉰  魯迅 (중국, 1881~1936)

루쉰(魯迅)  1881년 중국의 저장성(浙江省) 사오싱(紹興)에서 태어나 1936년 상하이(上海)에서 세상을 떠났다. 일본유학시기에 정신의 중요성을 깨닫고 마비된 중국인의 국민성을 일깨우기 위해 전공하던 의학을 버리고 문학으로 전향했다. 귀국 후에는 고향에서 교사로 봉직하기도 했으며 베이징(北京)에서 교육부 직원으로 재직하기도 했다. 그는 베이징 시기에 중국 최초의 현대소설 <광인일기>를 발표하여 정식으로 중국문단에 등장한 뒤 <고향>, <아Q정전>을 비롯한 걸작들을 많이 창작했으며, 현실 비판적인 수많은 잡문(雜文)을 써서 어두운 중국현실과 첨예하게 대결했다. 그는 문학을 통해 중국의 봉건예교와 나약한 국민성을 가장 심각하고 철저하게 폭로·비판함으로써 중국인의 각성을 촉구했는데, 그의 죽음과 동시에 그에게 ‘민족혼’이라는 이름이 부여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대표적인 소설집으로는 ≪눌함(吶喊)≫, ≪방황(彷徨)≫, ≪고사신편(故事新編)≫이 있고, 산문집으로는 ≪야초(野草)≫, ≪아침 꽃을 저녁에 줍다(朝花夕拾)≫가 있으며, 잡문집으로는 ≪무덤(墳)≫, ≪열풍(熱風)≫, ≪화개집(華蓋集)≫ 등이 있다.

해설        

루쉰(魯迅)은 1918년 중국 최초의 근대소설 <광인일기>를 발표하고, 1921∼1922년 사이에 중편소설 <아Q정전>을 발표하여 창작 면에서 중국현대문학의 길을 처음 열었다. 그는 소설 창작을 통해 중국의 ‘인의도덕’의 봉건이데올로기가 사람을 잡아먹는 근원임을 폭로했으며, 시사적인 논평문인 수많은 잡문(雜文)을 써서 ‘창문도 없고 절대로 부술 수 없는 쇠로 된 방’으로 비유한 ‘암흑’의 중국현실과 첨예하게 대결했다. 1936년 10월 19일 그가 죽었을 때, 그의 유해 위에는 ‘민족혼(民族魂)’이라는 명정(銘旌)이 덮여 있었는데, 그의 죽음과 동시에 ‘민족혼’이라는 이름이 부여된 것은 그가 문학적 실천을 통해 가장 심각하고도 철저하게 중국인의 영혼을 해부하여 펼쳐 보임으로써 중국인의 각성을 촉구했기 때문이다.
루쉰은 1918년 정식으로 중국문단에 등장한 이후 1936년 죽을 때까지 18년 간 3권의 소설집, 2권의 산문집 및 10여 권의 잡문집을 펴냈다. 소설집으로는 ≪눌함(吶喊)≫, ≪방황(彷徨)≫, ≪고사신편(故事新編)≫이 있고, 산문집으로는 ≪야초(野草)≫, ≪아침 꽃을 저녁에 줍다(朝花夕拾)≫가 있으며, 잡문집으로는 ≪무덤(墳)≫, ≪열풍(熱風)≫, ≪화개집(華蓋集)≫, ≪이심집(二心集)≫, ≪삼한집(三閑集)≫, ≪이이집(而已集)≫, ≪남강북조집(南腔北調集)≫, ≪위자유서(僞自由書)≫, ≪준풍월담(准風月談)≫, ≪차개정잡문(且介亭雜文)≫ 등이 있다. 또 그는 중국고전문학 연구에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여 중국문학사 관련 저술인 ≪중국소설사략(中國小說史略)≫과 ≪한문학사강요(漢文學史綱要)≫를 남겼고, 고적(古籍)의 집록·교감에도 많은 업적을 이룩했다.

량치차오(梁啓超)는 그의 저서 ≪청대학술개론(淸代學術槪論)≫에서 저장성(浙江省)과 장난[江南, 즉 장수·안후이(江蘇․安徽)]을 ‘근대문화의 중심점’이라 하고 “실로 근대의 인물·문화의 집결지로서 어느 파의 학술예술이든 거의 모두가 이곳을 광염(光焰) 발사의 중추로 여겼다”라고 했다. 저장성은 근대중국의 뛰어난 문인과 학자들이 많이 배출된 곳으로 유명한데, 루쉰 역시 저장성 출신이다. 루쉰은 1881년 9월 25일 저장성(浙江省)의 조그마한 수향 도시인 사오싱(紹興)에서 몰락한 사대부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루쉰이 태어난 19세기 후반은 서양열강의 침탈로 인해 중국사회가 큰 혼란을 겪었고 새로운 사회개혁운동이 크게 일어났다. 서양의 과학기술을 도입하여 부국강병을 도모하고자 했던 양무운동(洋務運動)이나 서양의 문화와 제도를 수용하여 사회개혁을 추진하고자 했던 유신변법운동(維新變法運動)은 바로 그러한 개혁운동의 일환이었다.

전통교육을 받던 루쉰은 1898년 18세가 되던 해에 고향인 사오싱을 떠나 난징(南京)으로 가서 강남수사학당(江南水士學堂)과 광무철로학당(礦務鐵路學堂)에 입학하여 신식교육을 받는다. 그는 이곳에서 처음으로 수학, 화학, 생물학, 진화론 등 신학문을 접하고 중국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세계에 대해 눈을 뜬다. 1902년에는 관비 유학생으로 선발되어 일본 유학 길에 오르고, 도쿄(東京)에 도착한 루쉰은 먼저 당시 중국인 유학생들에게 일본어 및 유학에 필요한 기초지식을 교육하던 홍문학원(弘文學院)에 들어가 2년 간 수학한다. 그는 1904년 홍문학원의 졸업과 동시에 의학을 전공하기로 결정하고 센다이(仙臺)로 가서 센다이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한다. 그런데 루쉰이 의학을 공부하고 있을 무렵 러일전쟁(1905년)이 발발하고, 이때 미생물학 시간에 우연히 러일전쟁에 대한 슬라이드 상연을 통해 한 중국인이 러시아군의 스파이 노릇을 했다는 죄목으로 일본군에 체포되어 중국 땅에서 중국인들이 보는 앞에서 처형되는 장면을 목도한다. 여기서 루쉰은 “무릇 어리석은 국민은 체격이 제아무리 건장하고 튼튼하다 하더라도 전혀 의미 없는 본보기의 재료나 구경꾼밖에는 될 수 없다”(≪눌함≫의 자서)는 심각한 자각에 이르고, 마침내 의학을 포기하고 문학을 선택하기로 결심한다. 왜냐하면 신체의 치유보다 마비된 정신의 치유가 더 시급하여 문학을 통한 국민정신의 개조가 절실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루쉰은 문예잡지 <신생(新生)>의 발간을 기획, 문학에 관한 글을 써서 발표하고 동유럽의 단편소설을 번역하여 출판하는 등 1909년 일본유학을 청산하기까지 매우 열정적으로 문예운동에 투신했다. 루쉰의 초기 비평문으로 유명한 <인간의 역사(人之歷史)>, <과학사교편(科學史敎篇)>, <문화편향론(文化偏至論)>, <악마파 시의 힘(摩羅詩力說)>, <파악성론(破惡性論)> 등이 모두 이 시기에 씌어졌다. 이들은 모두 루쉰 문학의 원형을 구성하는 글이며, 특히 <악마파 시의 힘>은 루쉰 문학의 정수에 육박하고 있어 더욱 주목을 요한다. 루쉰은 <악마파 시의 힘>에서 밝히고 있는 자신의 문학적 전망을 1918년 이후 그의 문학 생애 전반에 걸쳐 구체적으로 구현해 나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바로 루쉰이 일본유학시기에 쓴 <악마파 시의 힘>을 완역한 것이다. <악마파 시의 힘>은 원래 문예잡지 <신생>에 실을 원고의 하나로 집필되었으나 잡지의 발간이 수포로 돌아가자 1908년 당시 일본에서 발행되던 중국인의 동향(同鄕) 잡지인 <허난(河南)>에 발표되었다. 이 글은 나중에 잡문집 ≪무덤(墳)≫(1927년)에 실려 출판되는데, ≪무덤≫은 루쉰의 대표적인 잡문집으로서 그 스스로가 말했듯이 논문의 성격에 가까운 에세이집이다. ≪무덤≫은 루쉰의 여타의 잡문집에 비해 역사적 논거와 차분한 논리가 돋보이며, 당시의 세계문화 및 중국의 역사와 현실에 대한 루쉰의 심오한 이해와 통찰을 담고 있다. <악마파 시의 힘> 역시 루쉰의 초기 문학 활동을 대표하는 글로서 그러한 성격의 에세이다. 20세기 초 전환기의 중국 상황, 문학 일반에 대한 새로운 인식, 중국인의 국민성 개조의 필요성 등 다방면에 걸친 루쉰의 사유를 읽을 수 있다.

루쉰은 일본유학시기에 외세의 침탈로 인해 사회적 혼란을 겪고 있는 중국 민족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민정신의 진작이 가장 시급하다고 판단하고, 국민정신을 진작시킬 수 있는 가장 유효한 수단으로서 문학을 발견했다. ‘마음의 소리(心聲)’로서 문학은 인생의 오묘함을 드러낼 수 있고 ‘불용지용(不用之用)’의 효능을 가지고 있어 국민정신을 진작시킬 수 있다고 보았다. 루쉰은 영국의 셰익스피어, 이탈리아의 단테 등의 실례를 들어 국민정신을 진작시키는 데 기여한 문학의 힘을 예증하고자 했다. 특히 그는 악마파 시인들을 주목했는데, 그들은 ‘반항에 뜻을 두고 행동에 목적을 둔’ 시인들로서 그 정신을 중국에 소개함으로써 국민정신을 진작시킬 수 있다고 여겼다. 루쉰은 먼저 영국의 악마파 시인 바이런을 집중적으로 소개하면서, 기성도덕에 반항하고 자유와 독립을 위해 헌신한 그의 행적을 서술하고 작품 속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의 반항정신과 복수정신을 강조했다. 이어 영국의 셸리, 러시아의 푸시킨과 레르몬토프, 폴란드의 미츠키에비치와 슬로바츠키, 헝가리의 페퇴피 등의 독립정신과 반항정신을 소개했다. 루쉰은 바로 이러한 악마파 시인들의 정신을 소개함으로써 문학의 힘을 구체적으로 예증하고, 이를 빌려 중국의 국민정신을 진작시키고자 했다. 더욱이 국민정신을 진작시킬 수 있는 정신계(精神界)의 전사(戰士)가 나타나 중국의 제2의 유신을 추진할 것을 강렬히 희망했으며, 스스로 그 역할을 떠맡는다고 생각했다. 요컨대 <악마파 시의 힘>은 정신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문학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고, 개인의 독립과 반항정신을 중시하고, 기성도덕의 부정과 새로운 가치의 확립을 추구하고, 애국주의적 열정을 선양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는 5·4신문화운동의 전조로서 풍부한 근대적 이념을 체현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 책은 1981년 중국 인민문학출판사 간 ≪루쉰전집(魯迅全集)≫ 제1권 ≪무덤(墳)≫을 원본으로 하여 거기에 실린 <악마파 시의 힘>을 완역한 것이다. 이 책의 주석 역시 ≪루쉰전집≫을 참고했다. 다만 원주를 번역하면서 불필요한 부분은 많이 생략했다. 일본유학시기 루쉰의 글은 당시 중국의 국학자로 유명한 장빙린(章炳麟)의 영향을 받아서 난해한 문언문으로 씌어졌는데, <악마파 시의 힘>도 역시 그러하다. 역자는 이미 ≪무덤≫을 완역하여 2001년 도서출판 선학사에서 출판한 바 있으며, 이번의 이 책은 이전의 번역을 기초로 원문을 대조하며 수정하는 과정을 거쳐 완성했다. 루쉰의 나이 27세에 발표된 <악마파 시의 힘>을 통해 우리는 청년 루쉰의 애국주의적인 열정과 더불어 동서고금을 가로지르는 그의 해박한 지식과 사유의 깊이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악마파 시의 힘>을 통해 루쉰 문학의 원형에 접근하고 중국에서 개인과 민족의 근대적 관념이 형성되는 계기를 포착할 수 있기를 바란다.

끝으로 <지만지고전천줄> 시리즈의 기획이 국내의 학술 분위기를 크게 고조시키고 지식수준을 한층 더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본문 중에서      

대개 인류가 후세 사람들에게 남겨놓은 문화 중에서 가장 힘 있는 것은 마음의 소리, 즉 문학만 한 것이 없다. 옛사람의 상상력은 자연의 오묘함에 닿아 있고 삼라만상과 연결되어 있어, 그것을 마음으로 깨달아 그 말할 수 있는 바를 말하게 되면 시가가 된다. 소리는 세월을 거치면서 사람의 마음속에 파고들면 함구하듯이 그렇게 단절되지 않고, 오히려 더욱 만연되어 그 민족을 돋보이게 한다. 점차 문사가 쇠미해지면 민족의 운명도 다하고 뭇사람의 울림이 끊기면 그 영화도 빛을 거둔다.

蓋人文之留遺後世者, 最有力莫如心聲. 古民神思, 接天然之閟宮, 冥契萬有, 與之靈會, 道其能道, 爰爲詩歌. 其聲度時劫而入人心, 不與緘口同絶, 且益曼衍, 視其種人. 遞文事式微, 則種人之運命亦盡, 群生輟響, 榮華收光.

일러두기        

이 책은 1981년 중국 인민문학출판사 본 ≪루쉰전집(魯迅迅全集)≫ 제1권 ≪무덤(墳)≫을 원본으로 하여 거기에 실린 <악마파시의 힘>을 완역한 것입니다. 이 책의 주석 역시 ≪루쉰전집≫을 참고하였습니다.

역자 소개      

홍석표
홍석표(洪昔杓)는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강릉대학교 중어중문학과 부교수를 거쳐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중국의 근대적 문학의식 탄생≫(선학사, 2007), ≪천상에서 심연을 보다−루쉰(魯迅)의 문학과 정신≫(선학사, 2005), ≪현대중국, 단절과 연속≫(선학사, 2005) 등이 있다. 주요 역서로는 ≪매의 노래(巴金)≫(황소자리, 2006, 3인 공역), ≪신적시선≫(문이재, 2005), ≪화개집·화개집속편≫(선학사, 2005), ≪한문학사강요·고적서발집≫(선학사, 2003), ≪아Q정전≫(선학사, 2003), ≪무덤≫(선학사, 2001), ≪중국당대신시사≫(신아사, 2000) 등이 있다.

편집자 리뷰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한없이 부끄러웠을 루쉰에게 혼란한 19세기의 중국은 한없이 어리석을 따름이었다. 의학을 접고 문학을 선택하며 육체적 건강보다는 국민정신을 일깨우겠다는 그의 일념은 한 점 펜 끝에서 시작되어 ‘民族魂’으로 추앙받기에 이른다. 민족이여! 사람 잡아먹는 인의도덕에서 탈피하라. 반항과 복수의 정신을 다잡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