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란한 불빛이 범람하는 어두운 도시−홍콩의 단면
≪시바오 이야기≫는 1970년대 후반 홍콩을 이야기한다. 당시 홍콩은 사회 전체의 경제적인 성공을 이룩한 대신, 당시 물질 만능주의가 만연하게 되고 개인의 상대적 빈곤감과 박탈감을 숙제로 떠안았다.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돈으로 치유할 수 없는 외로움을 지니고 있다. 가족과도 공유할 수 없는 외로움과 싸워야 하는 고단한 현대인들이 당면한 현실과 다르지 않다. 전 세계 곳곳에 정부를 둔 쉬 회장과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바깥으로만 나도는 쉬 회장의 부인, 전처의 자식으로 교양 있는 척하지만 거만한 충치, 부모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자괴감과 사랑하는 여자를 가지지 못한 충격으로 끝내 미쳐 버리는 나약한 아들 충수, 철없고 단순하지만 결국 자신의 행복을 찾아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는 막내 충후이, 자신의 야망을 이루기 위해 사랑하지 않는 여자와 결혼했지만 아내가 떠나자 신부의 길을 택하는 쑹자밍, 이들은 가족이지만 서로를 믿지 못하고 자신의 고통을 나누지 못해 불행한 삶을 살아간다.
가난하지만 똑똑한 여대생 시바오는 재벌가와 접촉하게 되면서 학비와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자신의 젊음을 팔아 친구의 아버지와 거래를 한다. 물질 만능주의가 만연했던 홍콩의 현실을 잘 드러낸다. 작가는 그 모든 책임을 힘없는 여주인공에게 짊어지우는 대신 물질이 지배하는 세상이 개인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는가를 관찰하고,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묻는다.
비극? 희극?
작가는 주인공들의 입을 빌려 끊임없이 진정한 사랑과 행복이 어디에 있는가를 묻는다. 그리고 섬세하고 냉정한 시선으로 시바오와 쉬씨 집안사람들의 고민과 갈등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주인공들이 선택한 인생에 대해서도 굳이 시비를 가려 평가하지 않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판단을 유예한다. 그리고 작가는 끝내 행복의 절대적 기준을 말하지 않는다. 다만 사람들이 바라는 행복은 모두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스스로 자신의 행복을 선택하는 법을 제시할 뿐이다.
누군가는 시바오의 삶이 비극적이라고, 그녀의 선택이 옳지 않았다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주인공인 그녀는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 다시 시간을 돌린다고 해도 여전히 같은 선택을 하겠노라 이야기한다. 최소한 스스로 선택한 삶이었기에, 주어진 운명을 비관만 하고 있지 않았으므로.
책 속으로
①
세상일이 어떻게 모두 아름답기만 하겠는가. 나도 어느 정도의 대가는 치러야 하는 법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제 후회하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사실이었다.
-148쪽
②
사랑은 사치스러운 일이다. 지금으로서는, 나는 이미 모든 것을 다 이룬 것이나 마찬가지다. 나는 정식으로 스스로를 축하해 줄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더 이상 세상 사람들의 까다로운 눈치를 살피지 않아도 되고, 내 비참한 운명−한 남자의 손안에서 그의 궁궐에 갇힌 아교로 전락한 것−을 슬퍼할 수 있게 되었다.
-103쪽
③
그녀의 가슴이 기차의 리듬에 맞춰 약하게 떨리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보는 이에게도 가벼운 전율이 느껴졌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청춘. 만약 내가 나이 든 남자라면 나도 역시 그녀의 청춘을 사고 싶을 것이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저건 바로 나다. 3년 전 쉬춘쯔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바로 저런 모습이었다. 지금의 나는 이미 퇴물이 된 기생과 다르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나이 든 부인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름다운 목걸이군요….”
-130~131쪽
지은이 소개
이수(亦舒, 1946∼ )
이수는 홍콩의 여성 작가로, 본명은 니이수(倪亦舒)고 소설가 니쾅(倪匡)의 동생이기도 하다.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태어나 5세 즈음에 가족과 함께 홍콩으로 이주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신문사와 잡지사의 기자와 편집자로 지내다가, 1973년에는 영국 맨체스터에서 호텔조리경영학을 전공했다. 3년 뒤 홍콩으로 돌아와 호텔 홍보부에 근무하게 된 것을 시작으로 차후 홍콩 정부의 홍보관과 PD 등으로 지내기도 했다. 홍콩에서 출판된 책만도 200여 종에 이를 정도로 다작의 작가로, 현재는 캐나다에 거주하면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이수는 십대에 이미 창작 활동을 시작했으며, 첫 소설집 ≪달콤한 잠꼬대≫(1963)를 출간한 이후, 수많은 장·단편소설과 수필을 발표했다. 그중 그녀의 적지 않은 작품이 영화나 드라마로 제작되었고, 독자들에게 막강한 영향을 끼쳤다. 실제로 이수는 작품 활동 초기부터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며, 무협 장르 작가인 진융(金庸), SF 장르 작가인 니쾅과 더불어 홍콩 문단의 3대 기적으로 일컬어지기도 했다.
이수의 소설은 ‘애정 소설’이 주를 이루며, 작품에 1970년대 홍콩의 경제성장 및 사회 변화를 적극적으로 반영해 젊은 여성 독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었다. 특히 기존의 애정 소설의 한계를 뛰어넘어 백마 탄 왕자와 사랑에 빠지는 낭만적이고 감정적인 여성 대신, 고전적인 여성의 틀을 깨고 스스로의 인생을 개척하는 새로운 여성상을 제시하고, 사실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필치로 그녀들에게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그녀의 소설에 대한 대중의 사랑과 문단의 평가가 일치하지만은 않았다. 단시간에 많은 작품을 써내는 대중작가의 특성상 그녀의 작품은 깊이나 완성도에 대해 지적을 받거나, 통속성에 그 작품성이 가려지기도 했다.
이수의 대표작이기도 한 ≪시바오 이야기≫는 홍콩 시사 주간지 ≪야저우(亞洲)주간≫이 선정한 ‘20세기 100대 중문 소설’에서 91번째 작품으로 선정되었고, 그녀의 작품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홍콩과 중국을 비롯한 중화권에서 수많은 독자를 보유하고 있다. 또한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자 하는 그녀의 노력은 소설과 수필, 시나리오를 넘나드는 끊임없는 작품 활동을 통해 계속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