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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7월 6일 월요일

초판본 이무영 작품집


도서명 : 초판본 이무영 작품집
지은이 : 이무영
엮은이 : 오양호
분  야 : 한국 소설
출간일 : 2012년 7월 30일
ISBN : 978-89-6680-486-3 00810
가격 : 16,000원
규격 : A5    제본 : 무선제본    쪽 : 167쪽



☑ 책 소개


한국 소설사에서 농민 소설의 한 축을 형성한 이무영(1908~1960)의 <제1과 제1장>, <흙의 노예>를 실은 작품집이다. 작가가 실제 귀농을 해서 작품 속에 성실한 농민과 귀농한 지식인을 사실적으로 묘사함으로써 농본주의적 세계관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 출판사 책 소개

이무영의 초기 작품은 식민지 농촌 사회의 가난한 소작농들의 문제를 다룬 농민 소설이 중심을 이루고 있고, 그 주제는 대체적으로 농민의 흙에 대한 순교자적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대표작 <제1과 제1장>, <흙의 노예>(<속 제1과 제1장>)에 이런 점이 극명하게 나타난다. ≪먼동이 틀 때≫(≪동아일보≫, 1935)에서는 이광수의 ≪흙≫, 이기영의 ≪고향≫과 동일한, 브나로드 사상을 서사화한 농민 계몽의 주제를 다루었다. 하지만 1939년 귀농한 후에는 ‘보수형 농민 소설’(오양호,<농민 소설론> 참조)을 많이 썼다. 창작집 ≪흙의 노예≫(조선출판사, 1944)에 수록된 7편의 소설들, 곧 <문 서방>, <안달소전>, <모우지도>, <제1과 제1장>, <흙의 노예> 등이 그러하다. 이 작품들은 만주사변 후의 불안한 사회 기류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농민들의 건실한 생활상과 흙에 집착하는 혼을 통해 한 시대 한국인의 의식을 검증한다. 작품집 ≪산가≫(민중서관, 1949)에 수록된 여러 단편도 그 성향은 이런 점과 다르지 않다.
당시 일본의 식민지 정책은 조선 농업을 식량 공급, 원료 조달, 상품 판매를 위한 시장으로 간주했고, 토지조사사업도 형식적 개편을 위한 것이었다. 이무영의 농민 소설은 그러한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무영의 농민 소설은 한국 소설사에서 하나의 축을 형성한다. 박영준, 김유정, 그 후의 오유권, 하근찬, 박경수, 이문구, 방영웅 등의 농민 소설과 테마톨러지 측면에서 변화와 지속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은 지금까지 이루어진 여러 농민 소설 연구에서 증명된다.
이무영의 대표작 <제1과 제1장>, <흙의 노예>는 바로 이런 농민 의식을 테마로 하고 있다. 이 두 작품은 흙에서 나서 흙을 만지며 컸고, 흙을 파먹고 사는 한낱 평범한 농부가, 바지저고리 한 벌에 삼베 행전 한 켤레를 타고 나서 10년 머슴살이로 가정을 갖고 60평생을 살뜰히 산 결과 30여 두락의 자작농이 된다는 내용이다. <흙의 노예>의 부제는 “속 제1과 제1장”이다. 그러니까 <제1과 제1장>과 <흙의 노예>는 이어지는 작품이다.
<제1과 제1장>의 귀농을 표면적으로만 보면 “소설 못 쓰는 소설가”란 이름을 벗어나기 위한 소설가의 귀농이다. 그러나 귀농의 내포는 옛날에는 남이 알까 봐 숨기고, 경멸까지 했던 농민인 아버지의 삶이 이제는 이해될 뿐 아니라 그것이 가장 진실한 삶의 태도임을 깨닫고 긍정하는 것에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 수택은 신문사 일에 쫓겨 늦게 귀가했을 때, “한 달 가야 한 번 건들여 주지도 않는 원고지”를 보고, “사는 의미가 무엇인지 모를” 회의에 빠져 갈 즈음 “흙의 냄새를 맡고” 아버지를 생각하고 귀농을 결심하게 된다.
왜 사는지, 누구를 위해 사는지도 모르고 방황하고 있을 때 맡은 “매키한 흙내”는 주인공에게 참다운 삶의 의미와 목적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준다. 여태껏 농민을 업신여기고 자기 아버지를 일자무식 농투성이라고 “비웃고 가엽게 여겼던” 아들이 “집으로 가 흙을 만지는” 것이 진실하고 값진 삶임을 문득 깨닫는다. 이것은 아버지 세계로의 자발적 회귀다. 이러한 의식의 변화에 촉진제가 된 것이 흙내였고, 아버지의 흙의 노예 사상이다. 아들은 코피를 쏟으며 농사일을 배워 농민들과 친구가 되고, 추운 겨울 저녁 도둑을 지키기 위해 순라도 돈다. 봄이면 아내와 보리밭을 매고, 쟁기질을 배워 논도 간다. 아버지의 흙의 감정에 아들의 도회 감정, “농사는 이해타산으로 짓는 것이 아니라는 것”과 “농사짓는 순간만은 신선의 심정으로 돌아간다”라는 동화가 이루어진다. 이것은 도시로 공부하기 위해 떠난 후 한 번도 이루어지지 않았던 부자의 만남이다. 더욱이 아들은 아버지가 60평생을 고된 노동 끝에 몸져눕게 되었을 때, 그는 아버지를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인물로 평가하고 존경한다.
<흙의 노예>에서는 동경 유학으로 상징되는 유식한 아들이 무식의 표상인 농군 아버지를 위대한 인물로 생각한다. 퇴보로 인식되는 흙의 감촉이 선진으로 인식되는 포도의 감촉보다 삶의 이치로 따져 훨씬 값이 있다는 판단에 이른다. 아버지 세계로의 자발적 귀환이다. 도시문화 향수자 사모님이었던 수택의 아내는 보리밥을 먹고 설사를 하는 아이들을 내버려 두고, 새벽밥을 먹고 산나물을 뜯으러 간다. 또한 수택은 대처로 떠나는 조카에게 “바람만 쐬고 곧 돌아오라”고 당부한다. 이런 언행은 수택이 농촌을 떠나 도시로 공부하러 갈 때 김 노인이 수택에게 타이르던 말과 같다. 수택은 어느 사이에 제2의 김 노인이 되어 있다.
이무영의 많은 농민 소설의 결말이 거의 해피엔드가 된다는 것은 작가 정신이 범휴머니즘에 있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또한 오리엔탈리즘적 인간주의가 삶의 근본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이무영이 도시를 버리고, 귀농한 후 농민 소설을 쓴 행위는 동양적 세계, 민족적인 것으로의 귀환이다. 이런 특성으로 보면 이무영의 농민 소설은 식민지 사회가 새로운 역사의 전환기에 서 있을 때, 자기 계층을 확인하고 우리 민족의 세계관이 뿌리박을 수 있는 근거를 찾아 나선 매우 개성적인 글쓰기 행위의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결론적으로 한국의 문화적 개성이 유지되어 오는 농촌 농민의 세계가 여전히 우리의 본질이고, 나아가야 할 지표임을 깨우쳐주었다. 이무영은 도시란 시대와의 타협지요, 농촌은 우리 민족의 정체성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세계인데 이런 상황에 대한 전모의 묘사, 재창조가 불가능하게 되자, 농민 소설이란 글쓰기를 택했다. 그리고 그런 양식을 빌려 그는 한국인의 사고와 현실관을 그 시대를 살던 인물, 성실한 농민과 귀농한 지식인을 통해 표현했다. <제1과 제1장>, <흙의 노예>가 언제나 이 작가를 대표하는 자리에 놓이는 것은 바로 이런 점 때문이다.


☑ 책 속으로

수택이가 하로 이틀 쉬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그는 하는 일 없이 교외를 빈들빈들 돌아다니었다. 하로는 S라는 동료를 유인해 가지고 청량리로 나갔다. 전부는 아니나 그만둘 게획만을 이야기하고 생게로 이야기가 옮아갔을 때다. 그도 처음에는 그것이 무슨 낸지 몰랐었다. 매키−한 냄새가 코로 콕 찔른다. 그 냄새는 코를 통해서 심장으로 깊이깊이 기어 들어가는 것 같았다―흙내었다.

-<제1과 제1장> 중에서



☑ 지은이 소개

이무영(1908∼19)
이무영은 한국 현대 소설사에서 농민, 농촌의 테마를 가장 먼저 창작 현장으로 이끌어 낸 문제적 작가 중의 한 사람이다. 일찍이 한국의 농본주의 사상을 형상화한 <흙을 그리는 마음>(≪신동아≫, 1932)을 발표하면서부터다. 한국 소설사에서 농민 소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920년대 중반이다. 이익상의 <흙의 세례>(≪개벽≫, 1925), 김동인의 <시골 황 서방>(≪개벽≫, 1925), 이기영의 <농부 정도룡>(≪개벽≫, 1926), 최서해의 <농촌야화>(≪동광≫, 1926), 조명희의 <농촌 사람들>(≪현대평론≫, 1927), 송영의 <군중정류>(≪현대평론≫, 1927), 박승극의 <농민>(≪조선지광≫, 1927), 최인준의 <대간선>(≪조선농민≫, 1929) 등이 당시 농민 소설의 실상을 보여주는 예다. 초기의 이런 농민 소설들은 거의 프롤레타리아 문학과 관련을 맺고 있다.
1930년대에는 농민 소설의 이런 성향이 많이 달라진다. 이광수의 ≪흙≫(≪동아일보≫, 1932. 4. 12∼1933. 7. 10), 심훈의 ≪상록수≫(≪동아일보≫, 1935. 9∼1936. 2), 이무영의 ≪먼동이 틀 때≫(≪동아일보≫, 1935. 8∼1935. 12), 이기영의 ≪고향≫(≪조선일보≫, 1933. 11∼1934. 9) 등의 신문 연재 장편이 당시 사회의 큰 관심사였던 브나로드 사상, 곧 러시아의 나로드니키즘을 작품으로 구현했기 때문이다. 이후 이런 농민 계몽, 농본주의 사상은 확산되어 박영준의 <모범 경작생>(≪조선일보≫, 1934. 1), 서오봉의 <와룡동>(≪신동아≫, 1934. 4). 이석훈의 <황혼의 노래>(≪신동아≫, 1933. 6∼1933. 9), 이기영의 <서화>(≪조선일보≫, 1933. 5∼1933. 7), 박화성의 <홍수전후>(≪신가정≫, 1934. 9∼1935. 3), 이태준의 <꽃나무는 심어 놓고>(≪신동아≫, 1933. 3), 최인준의 <통곡하는 대지>(≪사해공론≫, 1936. 3) 등으로 지속, 변화된다. 한편 이와 때를 같이하여 백철, 안함광, 임화, 박승극 등이 중심이 된 농민문학론이 논쟁적 성격을 띠고, 작품을 뒷받침하고, 논리를 개발하며 문단 전면으로 나섰다. 이런 결과 1930년대 중·후반은 농민문학 시대가 되었다.
이무영은 이런 시대에 가장 문제적 창작 활동을 전개했다. <제1과 제1장>, <흙의 노예>, <아버지와 아들>, <오도령>, <노농>, <당귀삽화>, <농부>, <산가>, <만보노인>, <용자소전>, <궁촌기>, <안달소전> 등의 농민 소설을 집중 발표함으로써 문단이 주목하는 작가가 된 까닭이다. 1940년대에도 <민권>, <귀소>, <향가> 등의 농민 소설을 발표했다.
광복 후의 이무영은 다른 문제를 테마로 한 소설, 그러니까 여성 취향의 애정 소설을 많이 썼다. 그러나 초기의 이런 성과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농민 소설가라 부른다.
이무영은 1908년 1월 14일 충북 음성군 석인리(오리골)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갑룡(甲龍), 아명은 용구(龍九), 무영(無影)은 필명이다. 그러나 1959년 법원의 허가를 받아 필명을 본명으로 바꾸었다. 소년기를 충북 중원군 용원리에서 보내고 1920년에 상경, 휘문고등학교에 진학, 이때부터 문학 공부를 시작했다. 1925년에는 본격적인 문학 수업을 위해 도일, 고학을 하다가 소설가 가토 다케오(加藤武雄)를 찾아가 ‘무슨 일이든지 하겠으니 선생님 밑에서 공부를 하게 해달라’고 사정을 했다가 거절당한다. 그러나 가토 다케오가 다시 불러 그 집의 서생이 되어 혹독한 작가 수업을 한다. 당시 가토 다케오는 ≪농민 문예의 연구≫를 쓴 농민문학 이론가였고, 인기 작가였다.
1927년 19세 때 장편 ≪의지할 곳 없는 청춘≫을 단행본으로 출간하고, 이듬해 <폐허의 울음>을 발표하면서 소설가가 되었다. 1929년 귀국, 무영이라는 필명으로 작품을 썼으나 작가 대우를 제대로 받지 못하자 소학교 교원, 출판사, 잡지사 직원으로 지내면서 <팔년간>, <반역자>, <착각애>, <노파>, <아내> 등을 발표했다. 한편 희곡에도 관심이 있어 ≪동아일보≫ 희곡 현상 모집에 <한낮에 꿈꾸는 사람>이 당선되기도 했다(1932).
1934년에 동아일보사에 입사, 학예부 기자로 활동하면서 이광수의 농민 계몽 소설 <흙>이 끝나자 같은 주제를 다룬 <먼동이 틀 때>를 연재했다.
1936년에는 고일신(高日新)과 결혼하였고, 친우 이흡(李洽)과 문예지 ≪조선문학≫을 창간하기도 했다. 1939년 7월 이무영은 보다 치열한 작가 생활을 하기 위해 동아일보사를 사직하고 경기도 시흥 수리산 밑으로 내려가 실제 농사를 지으며 농민 소설을 썼다. 그의 대표작 <제1과 제1장>, <흙의 노예>를 쓴 것이 바로 이때다.
1946년에는 서울대학교 문리대에서, 1947년에는 연세대에서 소설론을 강의했고, ≪소설 작법≫도 출간하는 등 창작과 이론으로 문단의 중진이 된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종군작가로 입대, 해군 정훈장교가 되었고, 1954년 국방부 정훈국장을 지낸 뒤 1955년에 대령으로 예편하였다. 그 후 국제 펜클럽 중앙위원, 숙명여대 대학원 강사, 단국대 교수가 되었다(1957).
1960년 4월 21일 52세 되던 해에 뇌일혈로 갑자기 타계했다. 1975년 신구문화사에서 ≪이무영 대표작 전집≫ 5권이 간행되었고, 1985년에는 출생지 음성에 ‘이무영 선생 문학비’가 세워졌다. 유족으로 고일신과 그의 자녀 2남 4녀가 외국에서 살고 있다.



☑ 엮은이 소개

오양호
오양호는 경상북도 칠곡 동명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성장했다. 경북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경북대학교 사범대 국어과에 진학했다. 영남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 박사학위를 받았고(1981), 대구 가톨릭대학교 교수를 거쳐, 인천대학교 교수, 교토대학 객원교수(일한교류기금지원)를 역임했다. 지금은 인천대학교 명예교수, 한국문인협회 평론분과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30여 년간 교수 생활을 하며 11권의 책을 간행했다. 그 중 대표적인 저서가 ≪농민 소설론≫, ≪한국 문학과 간도≫, ≪일제강점기 만주 조선인 문학 연구≫, ≪만주 이민 문학연구≫, ≪그들의 문학과 생애, 백석≫이다. 1984년 군부정권하에서 어렵게 간행된 ≪농민 소설론≫은 이기영의 <고향>, 송영 등의 카프계 농민 소설을 <흙>, <상록수>, 이무영, 박영준 등의 농민 소설과 대비 연구하여 1930년대 한국 농민 소설을 투쟁형, 계몽형, 보수형, 이농형으로 분류, 체계화시켰다. ≪한국 문학과 간도≫에서는 암흑기, 친일 문학기 등으로 기술되는 1940년대 초기 문학사기술에 대한 대체론, 이민 문학기를 설정했고, ≪일제강점기 만주 조선 인문학 연구≫에서는 만주 이민들을 문제 삼고 있는 문학작품을 인간의 존재론적 시각에서 해석했다. ≪만주 이민 문학 연구≫는 1940년대의 마도강(만주, 간도) 이민문학을 탈식민주의적 논리로 접근하면서 앞의 두 저서의 논의를 보완, 심화했다.
정년에 맞추어 출판된 ≪백석≫(한길사)에서는 백석의 시를 일본의 서정시인 다나카 후유지(田中冬二)의 시와의 영향관계를 고찰했고, 한편 숨겨진 듯 남아 있던 그의 몇 편의 시와 평론을 발굴하여 백석을 새롭게 조명했다. 이런 연찬의 결과는 모두 농민문학 고찰에 바친 긴 시간과 관련된다. 석사 학위논문으로 <농민 소설 연구>를 발표한 후 꼬박 10년간 동서로 발품을 팔아 자료를 모으고 새로운 논리를 개발하여 완성한 것이 박사 학위논문 <한국농민 소설연구>이다. 이 논문에서 발견한 이농형 농민 소설의 끝, 농민들이 살 길 찾아 마도강으로 떠난 후 생성된 만주 조선인 문학에 대한 연구가 위의 4권 책이다.
다른 저서로 ≪문학의 논리와 전환 사회≫, ≪한국 현대 소설과 인물 형상≫, ≪신세대 문학과 소설의 현장≫, ≪한국 현대 소설의 서사담론≫, ≪낭만적 영혼의 귀환≫, ≪백일홍≫(수필집) 등이 있다.
교토대(京都大) 객원교수 기간에는 재 교토 한국유학생들과 ‘정지용기념사업회’를 만들었고, 그 후 정지용 시를 최초로 일어로 번역했다.(≪鄭芝溶詩選≫, 東京, 花神社, 대산문화재단 지원). 2005년에는 ‘정지용 시비’를 옥천군과 옥천문화원의 지원을 받아 우여곡절 끝에 도시샤(同志社) 대학 구내에 ‘윤동주 시비’와 나란히 세웠다.
받은 상으로는 ‘윤동주 문학상’, ‘조연현 문학상’, ‘신곡문학대상’, ‘심연수문학상’, ‘인천대최우수논문상’, ‘경북대 자랑스런 동문상(학술부문)’, ‘황조근정훈장’ 등이 있다.


☑ 목차

제1과 제1장(第一課 第一章)

흙의 노예(奴隸)

해설

지은이에 대해

엮은이에 대해


2015년 6월 15일 월요일

강용준 작품집


도서명 : 강용준 작품집 
지은이 : 강용준
옮긴이 : 권채린
분야 : 한국 소설
출간일 : 2010년 3월 15일
ISBN :  9788964063026
가격 : 12,000원
규격 : 128 * 188 mm    제본 : 양장본    쪽 : 206쪽




☑ 책 소개

「지만지 고전선집」 제503권 『강용준 작품집』. 이 시리즈는 국내외 고전 작품을 정리한 책이다. 표지에 사용한 색상은 이 시리즈를 위해 개발한 고유 색상이며, 표지와 본문은 모두 친환경 재질을 사용했다. 초판본을 그대로 실을 수 없는 작품은 원전에 가장 근접한 것을 사용했다. 엮은이가 직접 작품 리스트를 선정하고 원전을 찾아냈으며 전문 해설을 덧붙였다.


☑ 책 속으로

이제 저 철조망만 무사히 넘기면 된다. 그러면 그것으로 일은 끝난다. 그 뒤의 일은 자기로서는 관여할 바가 못된다. 아마 무한한 시간이 열려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무한한 시간 속에 인간의 갈등은 또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래도 좋다. 그 침뱉을 인간의 갈등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한 편모라면 그것도 또한 그런대로 내버려 두자.
내게는 단지 철조망이 있다. 철조망 앞에서 나는 단지 초조할 따름이다.


☑ 지은이 소개

저자 강용준(姜龍俊, 1931∼)은 황해도 안악(安岳)군 용문(龍門)면 매화(?花)리에서 부 강성직(姜聖稷)과 모 이한호(李漢湖)의 3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난 작가는 교명(敎名) 루스로 영세를 받았다. 3, 4세 때 신천(信川)읍으로 이사했다. 6세 때 부모와 헤어져 고향 안악으로 돌아와 조부 및 백부 밑에서 성당 소속의 유치원에 1년 다녔다. 다음 해 신천의 가족들도 모두 고향으로 솔가해 왔다. 성당 소속의 봉삼(奉三)초등학교에 들어갔다.
안악중학교, 안악고등학교, 진남포(鎭南浦)공업전문학교 등을 거쳐, 1950년 평양사범대학에 재학 중 한국전쟁이 발발해 그해 7월 인민군 보충병으로 징집되었다. 이후 유엔군의 포로가 되어 부산 동래, 거제도 고현리, 광주 사월산 등지에서 만 3년간 수용소 생활을 했다.
1953년 6월 18일 반공 청년 석방일에 사월산 수용소에서 철조망을 뚫고 탈출해, 이후 전남 함평군 대동면 용성리에서 약 3개월간 기식하다가 부산으로 옮겨 부두 노동 등을 하며 전전했다.
1954년 10월 2일 공병 소위(工兵少尉)로 임관해, 경북 영천 1205건설공병단 508철교중대 소대장으로 부임했다. 1958년 오용숙(吳龍淑)과 경북 영천에서 결혼했다.
1960년 7월 <사상계(思想界)> 제1회 신인문학상에 <철조망(鐵條網)>이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63년 3월 31일 강원도 홍천에서 수도사단 공병대대 중대장으로 복무 중 전역했다. 출판협회 임시직으로 잠시 근무하기도 했다.
1964년 사상계사에 입사해 1966년 퇴사했고, 이어 한국해외개발공사 공보실에 근무하다 1968년 퇴사했다. 같은 해, 장편 ≪태양(太陽)을 닮은 투혼(鬪魂)≫을 간행하고 단편 <악령(惡靈)>을 발표했다. 1969년 장편 ≪밤으로의 긴 여로(旅路)≫를 간행하고, 1970년 중편 <광인일기(狂人日記)>를 발표했다. 1971년 <광인일기>로 한국일보사 제정 제4회 한국창작문학상을 수상했다. 같은 해 장편 ≪사월산≫ 연재를 시작했다.
1972년 <광인일기>가 일본 <요미우리신문(讀賣新聞)>에 ‘세계 10대 소설’로 선정되어 전면에 소개되었고, 장편 ≪흑염(黑焰)≫ 연재를 시작했다. 1973년 단편 <비가(悲歌)>를 발표하고 장편 ≪탈주자들≫을 연재했다. 1974년 창작집 ≪광인일기≫를 간행했다.
1976년 ≪밤으로의 긴 여로≫로 대한민국문학상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1977년 창작집 ≪거도(巨盜)≫를, 1979년 장편 ≪가랑비≫를 간행했다. 1980년 장편 ≪사월산≫ ≪꼬르넷을 벗은 수녀(修女)≫를 간행하고 장편 ≪천국으로 이르는 길≫을 연재했다.
이후 15년 동안 ≪천국으로 이르는 길≫, ≪무정≫, ≪멀고 긴 날들과의 만남≫, ≪어느 수녀의 수기≫, ≪바람이여 산이여≫, ≪검은 장갑의 부루스≫, ≪낯설은 방≫, ≪파도 너머 저쪽≫, ≪탄≫, ≪광야≫ 등 다수의 장편을 상재하고, 중편집 ≪나성에서 온 사내≫와 작품집 ≪아버지≫를 간행하는 등 왕성한 창작 활동을 펼쳤다. 1988년 ≪바람이여 산이여≫로 한국문학 작가상을, 1996년에는 ≪광야≫로 한무숙 문학상을 수상했다.


☑ 옮긴이 소개

역자 권채린은 1974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현대문학을 공부했고,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05년 중앙일보 중앙신인문학상에 문학평론 부문으로 등단한 이후 문학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 목차

해설
지은이에 대해

철조망
광인일기

엮은이에 대해

2015년 6월 4일 목요일

초판본 나도향 단편집


도서명 : 초판본 나도향 단편집
지은이 : 나도향
엮은이 : 김춘식
분  야 : 한국 소설
출간일 : 2012년 5월 25일
ISBN : 978-89-6680-396-5 00810
가격 : 16,000원
규격 : A5    제본 : 무선제본    쪽 : 200쪽




☑ 책 소개


낭만주의적인 격정과 원초적 본능 등이 작품 속의 인간 묘사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런 점 때문에 낭만주의적 성향과 자연주의적인 측면을 함께 지니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나도향의 5편의 단편 모음집이다.

☑ 출판사 책 소개


나도향의 작품 경향은 일반적으로 ≪백조≫ 동인 시절의 낭만적 성향에서 점차 자연주의 혹은 사실주의적 경향으로 발전해 간 것으로 평가된다. 그의 처녀작 <젊은이의 시절>을 비롯한 초기작은 잦은 영탄과 감격, 그리고 감상주의가 두드러지는데, 단편 <여이발사>를 발표하면서 소설 안에 인물의 심리 묘사, 아이러니한 상황 등을 포함하는 등 세밀하고 탄탄한 플롯을 갖추기 시작한다. 그러나 <뽕>, <벙어리 삼룡이>, <물레방아> 등을 보면 여전히 낭만주의적인 격정과 원초적 본능 등이 그의 인간 묘사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런 점 때문에 그의 소설은 낭만주의적 성향과 자연주의적인 측면을 함께 지니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여이발사>는 콩트에 가까운 단편으로 주인공이 여이발사 앞에서 허세를 부린 결과 공연히 삼십 전을 날리고 마는 내용의 이야기다. 내용은 단순하지만 이전의 나도향 소설에 견주어보면 이 작품은 몇 가지 중요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우선 세밀한 상황의 묘사, 주인공의 심리 묘사와 인물의 외모, 성격에 대한 묘사의 핍진성이 상당히 높아졌다는 점이다. 실제로 이 작품을 하나의 전환점으로 해서 나도향의 소설은 구성과 문체, 묘사의 측면에서 작품의 완결성과 미학적 가치를 지닌 작품을 창작해 내기 시작한다. 주인공은 오십 전밖에 없는 돈으로 머리를 깎기 위해서 여러 가지 궁리를 하다가 ‘이십 전’에 머리를 깎는 이발소를 발견하고 그곳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머리를 깎던 남자가 밥을 먹으러 들어가자 그의 아내인 듯한 여자가 나와 면도를 해준다. 여자의 태도에 한껏 마음을 빼앗기고 또 자꾸 웃는 그 여자 앞에서 주인공은 허세를 부리듯이 오십 전 은화를 모두 주고 이발소를 나온다. 그러나 돌아오는 길에 머리를 앞뒤로 쓰다듬어보던 그는 그 여자가 자꾸 웃던 이유가 자기 머리에 있는 어릴 적 쑥뜸을 뜨고 난 자국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는 자신의 허세와 어리석음을 깨닫는다는 내용이다.

<벙어리 삼룡이>는 외모가 못생기고 말도 할 줄 모르는 벙어리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이다. 삼룡이는 비록 벙어리이기는 하지만 충직할 뿐만 아니라 생각도 깊어서 주인 오 생원으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다. 그러나 오 생원의 아들은 성정이 바르지 못해 언제나 삼룡이를 괴롭힐 뿐만 아니라 안하무인으로 행동한다. 삼룡이는 비록 화가 치밀지라도 주인의 아들이 아직 철이 없어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오 생원의 아들이 장가를 들고 새아씨를 얻게 되면서 삼룡이와 아들의 관계는 더욱 악화된다. 오 생원의 아들은 새아씨가 품행이 바른 데 비해 자신의 행동이 바르지 못한 것을 사람들이 서로 비교하면서 말하는 것을 알고 새아씨를 미워하며 구박하기 시작한다. 삼룡이는 새아씨를 불쌍히 생각할 뿐만 아니라 그런 새아씨를 마음속으로 사모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새아씨에 대한 삼룡이의 관심이 오히려 새아씨와 삼룡이 사이의 추문을 만들게 되고 결국 삼룡이는 내당 출입을 금지당한다. 몰래 내당 주위를 맴돌던 삼룡이는 결국 한밤중에 아씨의 방에 들어가 자살하려던 새아씨를 구해내지만, 오히려 삼룡이와 아씨의 관계에 대한 소문만 무성하게 만들고 주인집에서 쫓겨난다. 센티멘털한 정서, 아씨에 대한 사랑으로 벙어리 삼룡이는 어떤 생명의 환희를 느끼곤 했는데, 그런 모든 것이 좌절되자 주인집에 방화를 하고 먼저 주인 오 생원을 구한 뒤, 새아씨를 품에 안고 밖으로 나와 아씨를 내려놓고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숨을 거둔다.

<벙어리 삼룡이>가 ‘낭만적 죽음’의 미적 형상화를 통해 소설의 결말을 끌어내는 점에서 낭만적인 측면을 지니고 있다면, <물레방아> 역시 현실 속에서 배반되고 좌절되는 사랑에 대한 분노가 만든 ‘죽음’에 대한 이야기다.

이방원과 그의 처는 지주인 신치규의 소작인이다. 신치규는 그 지역에서 가장 부자이고 세력이 있는 자로 방원의 ‘처’를 탐내서 물레방아로 그녀를 불러낸다. 방원의 처는 물질적 욕망이 큰 창부형 여자로 신치규의 자신에 대한 그런 욕심을 이용해 팔자를 고치려고 한다. 방원은 아내를 찾으러 물레방아로 갔다가 이런 사실을 알게 되고 아내에게 마을을 떠나자고 애원하지만 방원의 처는 ‘방원’의 애원을 뿌리친다. 분노한 방원이 결국 신치규를 돌로 치지만 곧 순사에게 잡히고 만다. 감옥을 갔다 온 방원은 그의 아내를 만나기 위해 신치규의 집을 찾아간다. 처를 불러낸 방원은 그의 처가 마음을 고쳐먹을 것을 부탁하지만 방원의 처는 오히려 ‘죽음’ 따위는 두렵지 않다고 하면서 물질적으로 편안하고 안락한 생활을 선택하겠다고 말한다. 재물에 눈이 먼 ‘처’에게 분노한 방원은 자신의 처를 칼로 찌르고 자신도 가슴을 찔러 그 위에 쓰러져 죽는다.

<뽕>은 <물레방아>에 나오는 방원의 처처럼 창부형 여자인 안협집이 주인공인 작품이다. 안협집은 재물을 위해서 남편을 배신하지는 않지만 자신의 ‘몸’이 ‘재물’을 구할 수 있는 은 수단임을 알고 있는 여자다. <뽕>에서는 ‘세속적 욕망/사랑’이라는 이원적 대립구도는 오히려 나타나지 않는다. 반대로 이 소설은 ‘관능’, ‘성’의 측면에서 보면 오히려 윤리 이전의 ‘생명력과 원시성’을 더 강조해서 보여주는 섹슈앨리티의 측면이 강한 작품이다. 남편 김삼보는 안협집의 행실을 알면서도 ‘돈’ 때문에 그런 사실을 모른 척한다. ‘삼돌’이라는 동네 머슴이 안협집에게 눈독을 들이면서 안협집의 행실은 동네에 더욱 크게 소문이 나고 김삼보도 더 이상은 그 소문을 모른 척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김삼보와 삼돌이 사이에 싸움이 나고 그 싸움에서 삼돌이에게 오히려 수모를 당한 김삼보는 안협집에게 화풀이를 한다. 화풀이 끝에 안협집이 거의 죽은 줄 알고 급하게 약국에 가서 약을 지어 온 김삼보는 어느새 깨어 앉아 있는 안협집을 보고는 약을 내동댕이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하루를 더 묵은 뒤 길을 떠난다. 결국, 김삼보와 안협집의 관계는 아무 변화도 없이 그대로 유지되는 것이다.

<지형근>은 나도향의 소설적 경향이 낭만주의적인 성향에서 ‘자연주의적인 것’으로 변화해 가는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물론, 나도향 소설의 공통적 특징인 ‘여성’에 대한 관능적 시선과 여성 인물에 대한 감상벽을 지닌 주인공의 등장은 이 소설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 책 속으로

새앗시를 자긔 가슴에 안엇슬 때 그는 이제서 첨음으로 사러난 듯하얏다. 그는 자긔의 목슴이 다한 줄 알엇슬 때 그 새앗시를 자긔 가슴에 힘껏 끼어안엇다가 다시 그를 데리고 불 가운데를 헤치고 박가트로 나온 뒤에 새앗시를 내려놀 때에 그는 발서 목숨이 끈허진 뒤엿다. 집은 모조리 타고 벙어리는 새앗시 무릅에 누어 잇섯다. 그의 울분은 그 불과 함께 살어젓슬는지! 평화롭고 행복스러운 우슴이 그의 입 가장자리에 열게 나타낫슬 뿐이다.

-<벙어리 삼룡이> 중에서


☑ 지은이 소개

나도향(1902∼1927)
나도향(1902∼1927)은 본명이 경손(慶孫)이고 필명은 빈(彬), 호는 도향(稻香)이다. 서울 청파동의 의사 집안에서 맏아들로 태어났다. 할아버지 나병규는 한의사였고 아버지 나성연은 경성의전을 졸업한 양의사였다. 아버지가 의사가 된 것은 할아버지 나병규의 뜻이었는데, 도향의 아버지는 이런 할아버지의 기대와는 달리 의사 노릇 하기를 싫어했으며 문학청년적인 기질을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이 점 때문에 할아버지와 아버지 사이에 갈등이 있었고 도향의 성장과정에서 이런 집안의 그늘이 그의 감상벽, 방랑벽에도 일정한 영향을 주었으리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1919년 배재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해 경성의학전문학교에 입학했으나, 문학에 뜻을 두어 중퇴하고 와세다 대학 영문학부에 입학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러나 학비 부족으로 귀국하여 1920년에는 경상북도 안동에서 보통학교 교사로 근무했다.

1922년 ≪백조≫ 동인으로 참가하여, 홍사용, 현진건, 박영희, 이상화, 박종화 등과 동인 활동을 했고, ≪백조≫ 창간호에 <젊은이의 시절>을 발표했다. 같은 해 <별을 안거든 울지나 말걸>을 발표한 뒤, ≪동아일보≫에 장편 ≪환희≫를 연재했고, 이어 <옛날의 꿈은 창백하더이다>를 발표했다.

1923년에 <은화 백동화>, <17원 50전>, <행랑자식>을, 1924년에는 <자기를 찾기 전>, 1925년에 <벙어리 삼룡이>, <물레방아>, <뽕> 등을 발표했다. 1926년 일본에 다시 건너갔으나 건강 때문에 귀국한 뒤 며칠 후(1927. 8. 26) 사망했다.

초기에는 주로 작가의 자전적 측면에 연관된 내용을 소설로 썼기 때문에 주관적이고 낭만적인 감정 토로, 감상적인 예술가형 주인공이 주로 등장하는 작품을 많이 썼다. 그러나 곧 습작기의 이런 서툰 창작 형태를 벗어나 <행랑자식>, <자기를 찾기 전> 등의 작품을 발표하는데, 이후의 작품은 빈곤, 사회적 계급 관계 등 현실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면서, 낭만주의를 벗어난 사실주의적 성격을 뚜렷이 보여준다.

장편 소설 ≪환희≫는 ≪동아일보≫의 청탁에 의한 것인데, 작자 자신도 “사색과 구상에 들어서 조금도 생각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붓이 내려가는 대로” 썼다고 고백했듯이, 통속 소설의 취향을 따르면서도, 이해하기 쉽게 사건을 자세히 묘사하기보다는 모호한 내면, 환상, 영탄을 사용하는 등 비극적 운명에 대한 감상주의가 두드러진 작품이다. 이러한 나도향의 낭만적 감상주의풍은 <여이발사>를 발표하면서 소설적인 간결함과 냉정한 시선, 객관성을 확보한 문체와 구성으로 극적인 변화를 보여준다. 초기 소설의 단점을 극복해 낸 이런 소설적 성취는 나도향의 작품에 독특한 개성을 부여한다. 즉, 낭만주의적인 감상성, 미학주의와 현실 비판의 냉정한 관찰력이 결합된 그의 소설은 인간의 욕망, 내면을 중요시하는 낭만주의적인 것과 그런 욕망이 사회 속에서 드러내는 행태에 대한 객관적 묘사와 관찰을 동시에 보여준다.

생에 대한 원초적 의지와 욕망이 사회적인 제 관계 속에서 드러내는 현상에 대한 그의 고찰은 낭만적 열정과 사실주의적인 ‘관계성의 냉정한 분석’을 포함한 것이다. <벙어리 삼룡이>, <물레방아>, <뽕> 등의 토속성과 원시적 건강성, 생명력이 낭만주의적인 것이라면, 이 세 작품이 암시하는 욕망의 실패와 좌절은 사회적 관계의 부조리가 원인이 된 것이다. 결국, 낭만적 이상이 지닌 건강성은 현실의 타락한 관계, 환경에 의해서 일그러지고 왜곡된다.

나도향의 소설은 이런 일그러진 원초성, 문명 이전의 건강성을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는 점에서 또한 중요한 특징과 가치를 지닌다.


☑ 엮은이 소개

김춘식
김춘식은 1992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부문에 당선하여 평론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무크지 ≪무애≫, ≪시힘≫ 등과 계간 ≪내일을 여는 작가≫, ≪한국문학평론≫ 등의 편집위원을 역임했고 현재는 시 전문지 계간 ≪시작≫의 편집위원과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를 지내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평론집 ≪불온한 정신≫, 연구서 ≪미적 근대성과 동인지 문단≫, ≪한국문학의 전통과 반전통≫, ≪근대성과 민족문학의 경계≫ 등이 있다.


☑ 목차

여이발사(女理髮師)

벙어리 삼룡(三龍)이

물레방아

뽕(桑葉)

지형근(池亨根)


해설

지은이에 대해

엮은이에 대해


2015년 5월 27일 수요일

이범선 작품집


도서명 : 이범선 작품집
지은이 : 이범선
옮긴이 : 김유중
분야 : 소설
출간일 : 2010년 3월 15일
ISBN :  9788964063286
가격 : 12,000원
규격 : 138 * 195 mm    제본 : 양장본    쪽 : 280쪽



☑ 책 소개

「지만지 고전선집」 제529권 『이범선 작품집』. 이 시리즈는 국내외 고전 작품을 정리한 책이다. 표지에 사용한 색상은 이 시리즈를 위해 개발한 고유 색상이며, 표지와 본문은 모두 친환경 재질을 사용했다. 초판본을 그대로 실을 수 없는 작품은 원전에 가장 근접한 것을 사용했다. 엮은이가 직접 작품 리스트를 선정하고 원전을 찾아냈으며 전문 해설을 덧붙였다. 


☑ 책 속으로

“네. 가시지요. 양심이란 손끝의 가십니다. 빼어버리면 아무렇지도 않은데 공연히 그냥 두고 건드릴 때마다 깜짝 깜짝 놀라는 거야요. 윤리요? 윤리. 그건 ‘나이롱’ ‘빤쯔’ 같은 것이죠. 입으나마나 불알이 덜렁 비쳐 보이기는 매한가지죠. 관습이요? 그건 소녀의 머리 위에 달린 리봉이라고나 할까요? 있으면 예쁠 수도 있어요. 그러나 없대서 뭐 별일도 없어요. 법률? 그건 마치 허수아비 같은 것입니다. 허수아비. 덜 굳은 바가지에다 되는대로 눈과 코를 그리고 수염만 크게 그린 허수아비. 누더기를 걸치고 팔을 쩍 벌리고 서 있는 허수아비. 참새들을 향해서는 그것이 제법 공갈이 되지요. 그러나 까마귀쯤만 돼도 벌써 무서워하지 않아요. 아니 무서워하기는커녕 그놈의 상투 끝에 턱 올라앉아서 썩은 흙을 쑤시던 더러운 주둥이를 쓱쓱 문질러도 별 일 없거든요. 흥.” 
-<오발탄> 


☑ 지은이 소개

저자 학촌(鶴村) 이범선(李範宣, 1920∼1982)은 1920년 12월 30일 평안남도 안주군 신안주면 운학리 19번지에서 대지주였던 부친 이계하와 모친 유심건 사이의 5남 4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넉넉한 집안 환경의 영향으로 고향에서 보통학교(신안주 청강보통학교)를 마친 이후 1938년, 당시 5년제인 진남포 공립상공학교로 진학하여 졸업한다. 졸업 이후로 평양에서 은행을 다니다가 만주로 건너가 회사원 생활을 하는 등 비교적 순탄하게 사회생활에 적응해나가게 된다. 1943년 귀국하여 고향인 신안주 금융조합에서 근무하다가 그 해 10월 평안남도 중화군 출신의 신부 홍순보를 만나 결혼하게 된다. 결혼과 동시에 그는 처남이 간부로 있는 평안남도 개천군 봉천탄광의 경리계에서 근무하게 되는데, 이러한 선택의 이면에는 당시 강화된 일제의 징용을 회피하기 위한 목적이 있었다고 알려진 바 있다. 
일제 패망과 동시에 고향인 신안주로 돌아왔으나, 지주 출신이라는 이유로 북한 당국의 탄압을 받게 되자 1946년 단신 월남하여 27세의 나이로 동국대학교 전문부에 입학한다. 이와 함께 금강전구회사 회계과에 적을 두면서 비로소 안정을 찾게 된 그는 이듬해인 1947년 고향의 부인과 아이를 불러 가족과 더불어 본격적인 서울살이를 시작한다. 1949년 동국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연희대학교 교무과에서 근무하던 중, 예고치 않은 6·25사변을 맞게 된다. 
이때 미처 피난을 가지 못하고 서울에서 숨어 지내던 중 9·28 서울 수복을 맞은 그는 1·4후퇴 시에는 가족을 이끌고 남으로 피난하여 거제고등학교 교사로 3년여 간 근무한다. 이후 정전과 함께 서울로 돌아온 그는 대광고등학교 국어 교사로 근무하면서 작가로서의 꿈을 키워간다. 그 후 1955년, 단편소설 <암표>와 <일요일>을 <현대문학>지에 김동리의 추천을 통해 발표하면서 정식으로 등단한다. 1957년 반공 이데올로기의 시각으로 전쟁의 참상과 역사의 비극을 고발한 단편소설 <학마을 사람들>을 <현대문학>을 통해 발표하면서 문단 내외의 시선을 끌게 된다. 
1958년 단편소설 <갈매기>로 제4회 현대문학 신인상을 수상하게 된 그는 이듬해인 1959년, 오늘날까지도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고 있는 단편소설 <오발탄>을 발표함으로써 전후의 대표 작가로 확고하게 자리를 굳히게 된다. 이 작품으로 그는 이후 제5회 동인문학상(1961년)을 수상하게 된다. <오발탄>은 그러나 그에게 영광과 시련을 동시에 안겨준 작품이다. 유현목 감독에 의해 동명의 영화로 더욱 널리 알려지게 된 이 소설은, 이후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군사 정권에 의해 당시의 한국 사회를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이유로 사상 불온의 혐의 등을 씌워 그를 고등학교 교단에서 쫓아내게 만든 빌미를 제공한다. 
그러나 이때의 해직은 결과적으로는 그에게 행운으로 작용한다. 고등학교를 그만두게 된 그는 한때 한국외국어대학과 서라벌예술대학 등의 강사로 전전하면서 불안정한 생활에 시달린 적도 있으나, 평소의 작품 경향이나 전반적인 사상 배경 등으로 미루어 사상 불온이란 과도한 해석이라는 문단 내외의 중론에 힘입어 애당초의 혐의를 벗어나게 되며, 이어 얼마 지나지 않은 1962년, 한국외국어대학의 교수(전임강사)로 부임하게 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이 작품이 같은 해, 문공부 주최의 5월 문예상 장려상을 수상하게 되면서, 전후 한국 대표 단편 소설로 문학사에 확실하게 자리 잡게 되는 계기를 마련한다. 
이후 평소 즐겨 쓰던 중단편소설 이외에, 장편소설에도 손을 대기 시작하여 각 일간지면과 월간지상을 통해 연재하는 등 활발한 작품 활동으로 문단 활동에 전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교수로 부임한 이후의 작품들은 상대적으로 이전의 작품들에 비해 완성도가 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그의 장편소설들은 단편소설들에 비해 뒤처지는 것이 사실이다. 
1970년 단편소설 <청대문집 개>로 제5회 월탄문학상을 수상했으며, 1981년에는 대한민국 예술원상을 수상하며 동시에 예술원 회원으로 추대된다. 인생의 절정기라 할 수 있는 1982년 2월 28일, 뇌일혈로 쓰러진 그는 경희의료원에 입원하여 한동안 집중적인 치료를 받았으나 끝내 회복하지 못한 채 그해 3월 13일 끝내 사망하고 만다. 그리고 이후 경기도 용인의 공원묘지에 안장된다. 


☑ 옮긴이 소개

김유중(金裕中)은 1965년 3월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에서 학부를 마치고, 이후 국어국문학과 대학원에 진학하여 현대문학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군 복무 중이던 1991년, <현대문학>지의 신인 평론 추천으로 등단하였다. 석사 졸업 후 잠깐 동안 서울 모 고등학교에서 국어과 교사로 근무한 적이 있으며, 이후 육군사관학교와 건양대학교, 한국항공대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금까지의 저서로는 ≪한국 모더니즘 문학의 세계관과 역사 의식≫(태학사, 1996), ≪김기림≫(문학세계사, 1996), ≪김광균≫(건국대출판부, 2000), ≪한국 모더니즘 문학과 그 주변≫(푸른사상, 2006), ≪김수영과 하이데거≫(민음사, 2007)이 있으며, 편저서로 경북대 김주현 교수와 공동 편집한 ≪그리운 그 이름, 이상≫(지식산업사, 2004)이 있다. 현재 한국 현대시의 존재론적 탐구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컴퓨터 게임이 지닌 구조와 특성을 인문학적인 시각에서 분석하고 이해해보려는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 목차

해설 
지은이에 대해 

학마을 사람들 
사망 보류(死亡保留) 
몸 전체(全體)로 
갈매기 
오발탄(誤發彈) 
살모사(殺母蛇) 
명인(名人) 
청대문(靑大門)집 개 
삼계일심(三界一心) 

엮은이에 대해 

2015년 5월 18일 월요일

김성한 작품집


도서명 : 김성한 작품집 
지은이 : 김성한
엮은이 : 김학균
분야 : 한국 근현대 소설
출간일 : 2010년 3월 15일
ISBN :  9788964063040
가격 : 12000원
규격 : 148 * 210 mm    제본 : 양장본    쪽 : 198쪽




☑ 책 소개

『김성한 작품집』은 「지식을 만드는 지식 고전선집」 시리즈로, 사라져 가는 한국 근현대 소설 100종의 원본을 담았다. 한국문학평론가협회에서 작가 100명을 엄선하고 각각의 작가에 대해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를 엮은이로 추천했다. 또한 엮은이는 직접 작품을 선정하고 원전을 찾아냈으며 해설과 주석을 덧붙였다.


☑ 책 속으로

가난한 자 괴로워하는 자를 구하는 것이 크리스도의 본의일진대, 선천적으로 결정된 운명의 밧줄에 묶여서, 래틴말을 배우지 못한 그들이 쉬운 자기 말로 복음의 혜택을 받는 것이 어째서 사형을 받아야만 하는 극악무도한 짓이란 말이냐? 성찬의 빵과 포도주는 크리스도의 분신이니 신성하다지마는 아무리 보아도 빵이요 먹어도 빵이다. 포도주 역시 다를 것이 없다. 말짱한 정신으로는 거짓이 아니고야 어찌 인정할 도리가 있을 것이냐? 무슨 까닭에 벽을 문이라고 내미는 것이냐? 절대적으로 보면 같은 수평선상에 서 있는 사람이 제멋대로 꾸며낸 것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할 근거가 어디 있단 말이냐?
바비도는 울화가 치밀었다.
-<바비도>


☑ 지은이 소개

저자 김성한(金聲翰)은 1919년 함경남도 풍산에서 출생했다. 그는 1944년 일본 동경제대를 중퇴했으며, 195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무명로(無明路)>가 당선되면서 문단에 등단한다. 1955년 사상계사에 입사하면서 그의 문학은 <사상계>와 깊은 인연을 맺게 된다. 그는 1957년까지 <사상계> 주간을 맡다가 1958년 <동아일보>에 입사해 편집국장(1973), 논설주간(1977)을 맡았다. 그의 문학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사상계>는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한다. 김성한은 1955년 5월호부터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게 되었기 때문에, 창간호의 멤버는 아니지만, <사상계>에 깊이 관여하고 있었다. <사상계>는 2만여 명의 정기 구독자를 포함, 당시로서는 엄청난 부수인 7만여 부까지 발행하기도 했다. 당시 조선일보의 독자가 10만 명임을 감안하면 <사상계>의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다. <사상계>는 1952년 창간된 잡지로 월남한 서북 지역 출신의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제작되면서 뚜렷한 이념성을 지니고 있었다.
1950년대 <사상계>의 편집위원 29명 가운데 21명이 북한 출신이며, 대부분이 서북 지역 출신이었다. 그중에서도 장준하는 <사상계>를 창간한 핵심 인물이다. 그는 1918년 평북 의주 출생으로 부친 장석인은 기독교 목사였다. 열네 살에 평양 숭실중학교에 입학했다가 부친이 교목으로 부임한 평북 선천 신성중학교로 전학해 1937년에 졸업했다. 졸업 후 정주 신안소학교 교사로 3년간 근무하다가 1940년 도일해 1942년 일본신학교에 입학했다. 여기서 전택부, 문익환 등과 공부했는데 전택부는 후에 <사상계> 편집위원으로 참여하게 된다. 1944년 학병으로 끌려가게 된 장준하는 일본군을 탈출해서 김준엽 등과 함께 광복군 훈련반에 들어갔다. 광복 후 임시정부 요인들과 함께 귀국해 김구의 비서로 있다가 1949년 한국신학대학에 편입해서 학병 때문에 중단했던 학업을 마친다. <사상계>가 인지도가 없었던 초기에 장준하는 개인적인 친분을 이용해 필자들을 선정하게 되었으며, 그것은 북한 출신의 지식인들이 <사상계>에 참여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김성한은 서북 지역 출신은 아니지만, 북한 출신이라는 점에서 이들과 지역적 연고를 같이하고 있다.
<사상계>의 인맥은 사상적인 면에서도 뚜렷한 공통점으로 이어진다. 김성한 소설에서 지식인들의 타락을 경고하고, 지식인들의 적극적인 사회 참여를 독려한 것은 <사상계>의 정신을 이어받고 있다. 서북 지역은 기독교를 일찍부터 받아들였고, 이 시기 기독교는 민족주의와 융합해 사립학교 설립을 주도했다. 당시 평북 선천의 신성학교와 평양의 숭실학교는 미국 북장로회 계통의 미션 학교였다. 평북 선천의 신성학교 출신인 장준하와 많은 이 지역 출신 인맥 역시 기독교 정신주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이것은 <사상계> 발간 초기부터 드러나고 있다. 이런 기독교 정신주의는 김성한 문학이 초기부터 교회의 타락이나 종교적인 모티프를 줄기차게 문제 삼은 것과 연관되어 있다. 특히 1956년 사상계사가 제정한 동인문학상의 첫 회 수상작으로 김성한의 <바비도>가 선정된 것은 주목할 만하다. 심사위원들은 ‘이념’을 주목했고, 심사위원 중 한 명이었던 주요한은 “이 작품은 예술적인 동시에 현대 우리 사회에게 주는 한 개의 경종”이라고 평가했다. 주요한은 평양 기독교계의 목사 집안 출신이면서 광복 후에는 흥사단에 깊이 관여한 바 있고, 이 작품을 자유당의 정치적 전횡에 대한 비판으로 이해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서북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사상계>의 인맥은 기독교 정신주의로 이어지면서 김성한의 문학을 이해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1955년 김성한이 <사상계>의 편집주간이 되면서 편집 방향은 민족 통일 문제를 지상 과제로 삼았고, 민주 사상의 함양과 경제 발전, 새로운 문화의 창조, 식민지 정신의 청산을 내걸었다. 여기서 새로운 문화의 창조, 식민지 지배로 인해 비굴해진 민족성의 청산은 김성한 소설의 주제와도 일맥상통하고 있다. 이 시기부터 <사상계>는 비평과 소설을 다수 게재하면서 문학적 성격이 강화된다. <사상계>가 신인들의 등단을 주도하고 문학적 성격이 강화된 것은 김성한 이후였으며, 김성한에 이어 편집주간이 된 안병욱에 의해 더욱 활발해진다. 김성한은 <바비도>, <제우스의 자살>(이후 <개구리>로 개제), <폭소>, <귀환> 네 편을 <사상계>에 게재한다. 김성한 소설이 친일파나 사이비 지식인 등 부정적인 인물들을 형상화한 것은 ‘부정을 위한 부정’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기 위한 ‘건설’을 염두에 두었다는 것은 당시 장준하가 “오직 건설적 목적과 방안을 가진 정당한 비판만이 후진 정체 사회를 문명사회로 발전시킬 수 있다”고 말한 것과 연결되고 있다. 이처럼 김성한 소설은 <사상계>의 인맥과 편집 방향, 기독교 정신주의와 밀접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1957년 <사상계>를 퇴사한 김성한은 1958년 <동아일보>에 입사해 1981년까지 근무하면서 시대의 담론을 주도하는 언론인으로 활동한다. 그는 동아일보에 근무하는 동안에 영국 맨체스터 대학 사학과에서 수학하면서 역사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역사와 사회에 대해 항상 주목했다. 1967년에는 장편 삼부작 ≪이성계≫를 발간했고, 이후에는 ≪이마≫, ≪요하≫등의 역사 장편소설을 다수 발표한다. 일부 연구자들은 장편 ≪이성계≫에 그의 1950년대 단편소설에서 다룬 주제들이 통합되어 있음을 밝히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초기 단편소설에 주목하고 있다. 그는 1956년 <바비도>로 동인문학상을 수상했고, 1958년에는 <오분간>으로 제5회 아세아자유문학상을, 1987년 ≪임진왜란≫을 <동아일보>에 연재하던 중에는 보관문화훈장을 받은 바 있다.


☑ 엮은이 소개

해설
지은이에 대해

自由人(자유인)
暗夜行(암야행)
續·暗夜行(속 암야행)
골짜구니의 靜寂(정적)
五分間(오분간)
바비도
極限(극한)

엮은이에 대해


☑ 목차

천맥(天脈)

해설

지은이에 대해

엮은이에 대해

2015년 4월 29일 수요일

이청준 작품집


도서명 : 이청준 작품집 
지은이 : 이청준
옮긴이 : 김연숙 
분야 : 소설
출간일 : 2010년 3월 15일
ISBN : 9788964063330
가격 : 12000원
규격 : 사륙판  제본 : 양장  쪽 : 264쪽



☑ 책 소개

『이청준 작품집』은 「지식을 만드는 지식 고전선집」 시리즈로, 사라져 가는 한국 근현대 소설 100종의 원본을 담았다. 한국문학평론가협회에서 작가 100명을 엄선하고 각각의 작가에 대해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를 엮은이로 추천했다. 또한 엮은이는 직접 작품을 선정하고 원전을 찾아냈으며 해설과 주석을 덧붙였다.


☑ 지은이 소개

저자 소설가 이청준은 1939년 8월 9일 전라남도 장흥군에서 출생해서, 2008년 7월 31일 69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1965년 단편 <퇴원>이 제 7회 <사상계> 신인상에 당선되면서 문단에 등장한 뒤, 1968년 단편 <병신과 머저리>로 제12회 동인문학상, 1969년 <매잡이>로 대한민국예술상 신인상을 수상했다. 이후 꾸준한 작품 활동을 해오며 40여 년간 한국 소설사의 ‘큰 기둥’ 역할을 했다. 1975년 <이어도>로 한국일보 창작문학상, 1978년<잔인한 도시>로 제2회 이상문학상, 1987년 <비화밀교>로 대한민국문학상, 1990년 <자유의 문>으로 이산문학상을 수상했고, 2008년 사후에는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이청준은 한때 사상계사를 비롯하여 잡지 편집 및 언론계에서 활동하기도 했지만, 주로 창작 생활에 전념해 왔다. 그의 작품 세계는 토속적인 민간 신앙에서부터 산업사회에서의 인간 소외와 지식인의 존재 해명을 거쳐 전통적인 정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특히 김승옥이 4·19와 5·16을 체험한 세대의 감수성을 보여주었다면, 이청준은 그 세대의 지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근대 소설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문적인 지성을 보인 작가”로 평가받는다.
초기 작품 세계에서는 환부를 알 수 없는 상처로 몸부림치는 지식인의 삶을 그리거나[<병신과 머저리>(1966), <굴레>(1966)], 저 너머의 삶을 지향하는 장인의 예술 세계를 그려낸다[<줄>(1966), <과녁>(1967), <매잡이>(1968)].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소설적 작업을 활발하게 펼치는데, 정치·사회적인 메커니즘과 그 횡포에 대한 인간 정신의 대결 관계를 주로 형상화한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소문의 벽>(1971), <조율사>1972), <들어보면 아시겠지만>(1972), <떠도는 말들>(1973), <이어도>(1974), <낮은 목소리로>(1974), <자서전들 쓰십시다>(1976), <서편제>(1976), <불을 머금은 항아리>(1977), <잔인한 도시>(1978), <살아 있는 늪>(1979) 등이 있다.
이후 <시간의 문>(1982), <비화밀교>(1985), <자유의 문>(1988) 등에서 인간 존재와 거기에 대응하는 예술 형식의 완결성에 대한 추구를 보여주었고, 이 밖에도 <별을 보여 드립니다>(1971), <가면의 꿈>(1975), <당신들의 천국>(1976), <예언자>(1977), <남도 사람>(1978), <춤추는 사제>(1979), <흐르지 않는 강>(1979), <낮은 데로 임하소서>(1981), <따뜻한 강>(1986), <아리아리 강강>(1988), <자유의 문>(1989) 등이 있다.
현재 장편소설 11권과 중단편집 10권, 연작소설 3편, 총24권이 출판되어 있다. 미국, 일본, 중국,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스페인, 터키 등지에서도 그의 작품이 번역·출간되었으며, 영화·드라마·연극으로 만들어진 작품들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대표적인 예로는 김수용 감독의 <병신과 머저리>(<병신과 머저리>)에서부터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 <천년학>(<서편제>), 이창동 감독의 <밀양>(<벌레 이야기>)에서 최근 2009년 윤종찬 감독의 <나는 행복합니다>(<조만득씨>) 등을 들 수 있다.


☑ 엮은이 소개

엮은이 김연숙은 경희대학교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국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근대 여성 문화의 형성과 근대 소설의 내면성에 관심이 많다. 지은 책으로 ≪소설 구경, 영화 읽기≫(공저), ≪여성의 몸?시각·쟁점·역사≫(공저), ≪신여성?매체로 본 근대여성풍속사≫(공저), ≪확장하는 모더니티≫(공역) 등이 있고, 주요 논문으로는 <1930년대 소설에 나타난 여성 육체의 재현 양상>, <저널리즘과 여성 작가의 탄생>, <근대 주체 형성과 ‘감정’의 서사>, <서사물의 통속적 기획과 감정의 콘텍스트> 등이 있다.


☑ 책 속으로

무엇보다도 우리의 삶이나 이 세계는 논리와 논리 아닌 것, 혹은 일상의 삶의 덕목으로 선택된 질서와 그것이 아닌 것,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다시 말해서 실체와 그림자 그런 두 겹의 힘의 질서로 이루어져 나간다는 게 나의 인식이니까. 현상의 세계와 소망의 세계의 관계라고 할까. 그래서 나는 그 눈에 보이지 않게 숨겨져 실현을 기다리는 소망의 힘 또한 눈에 보이는 현상의 질서 못지않게 소중스럽게 지켜가고 싶은 거라네. 어차피 한 번의 폭발로 모든 소망이 실현될 수가 없다면 내일의 세상에도 꿈만은 줄기차게 이어져 가야 하니까.
-<비화밀교>


☑ 목차

해설
지은이에 대해

병신과 머저리
이어도
비화밀교(秘火密敎)

엮은이에 대해

2015년 4월 24일 금요일

강신재 작품집


도서명 : 강신재 작품집
지은이 : 강신재
옮긴이 : 이성천 
분야 : 소설
출간일 : 2010년 4월 15일
ISBN : 9788964063019
가격 : 12000원
규격 : 사륙판  제본 : 양장  쪽 : 177쪽



☑ 책 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 고전선집」 502번째 시리즈 『강신재 작품집』. 이 시리즈는 국내외 고전 작품을 정리한 책이다. 표지에 사용한 색상은 이 시리즈를 위해 개발한 고유 색상이며, 표지와 본문은 모두 친환경 재질을 사용했다. 초판본을 그대로 실을 수 없는 작품은 원전에 가장 근접한 것을 사용했다. 엮은이가 직접 작품 리스트를 선정하고 원전을 찾아냈으며 전문 해설을 덧붙였다. 이 책은 젊은 느티나무, 해방촌 가는 길, 황량한 날의 동화 등 강신재의 대표작품 5개가 수록되어 있다.


☑ 지은이 소개

저자 강신재는 1924년 5월 서울 남대문로에서 태어났다. 의사인 아버지와 신여성인 어머니 사이에서 장녀로 출생한 그녀는, 1930년에 함경도 청진으로 이사해 그곳에서 소학교를 다니며 유년 시절을 보낸다. 1937년 부친이 별세하자 다시 서울로 돌아와 경기여고와 이화여전에 진학한다. 이화여전 가사과 2학년을 중퇴하고 결혼한-당시 이화여전 학생들은 학칙에 따라 재학 중에는 결혼할 수 없었다-그녀는 이후 친구의 권유로 본격적인 소설 창작을 시작한다. 어려서부터 ‘책벌레’로 불리며 문학에 대한 꿈을 키워가던 강신재는 김동리의 추천으로 <문예>지에 <얼굴>(1949. 9)과 <점순이>(1949. 11)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데뷔했다(강신재의 첫 작품은 1949년 7월 ≪민성≫에 발표한 <분노>로 알려져 있지만 대다수의 작가 연보를 참조할 때 <얼굴>과 <점순이>를 통해 정식 등단한 것으로 보인다). 1950년대에는 단편소설을 꾸준하게 발표하며 단편집 ≪희화(戱畵)≫(1958), ≪여정≫(1959) 등을 출간했다. 그리고 ≪여정≫을 출간하던 해에 단편 <절벽(絶壁)>으로 한국문학가협회상을 수상했다. 1960년대부터는 주로 중·장편 소설을 집필한다. ≪임진강의 민들레≫(을유문화사, 1962)를 비롯해 ≪청춘의 불문율≫(1960), ≪이 찬란한 슬픔을≫(1964), ≪그대의 찬 손≫(1965), ≪바람의 선물≫(1965), ≪신설(新雪)≫(1967), ≪숲에는 그대 향기≫(1969)와 펜클럽작가기금을 받고 쓴 ≪오늘과 내일≫(1966) 등이 모두 이 시기의 작품이다. 1967년에는 ≪이 찬란한 슬픔을≫로 제3회 여류문학상을 받는다. 1970년대에 들어서도 작가 강신재의 왕성한 작품 활동은 지속된다. 1970년에 그녀는 자신의 작가적 명성을 일반 대중 독자들에게 널리 알린 단편 <젊은 느티나무>(사상계, 1960)를 제목으로 단편집 ≪젊은 느티나무≫를 엮는다. 아울러 그녀의 대표작 중 하나로 평가되는 장편 ≪파도≫(1972)를 간행한다. 1970년대를 전후한 시기에는 특히 강신재의 독특한 작품 세계를 규정하는 중요한 작품들이 많이 발표되었는데, 단편집 ≪황량한 날의 동화≫(1976)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 밖에도 장편 ≪유리의 덫≫(1970), ≪북위 38도선≫(1973), ≪레이디 서울≫(1975), ≪서울의 지붕 밑≫(1976), 창작집 ≪그래도 할 말이/이 겨울≫ 등을 상재했다. 특히 1974년에는 ≪강신재 대표작 전집≫을 전 8권으로 간행했다. 한편, 강신재는 장편 ≪천추태후≫(1978)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역사소설을 집필하기 시작한다. ≪사도세자빈≫(1981), ≪소설 신사임당/문정왕후 아수라≫(1987), ≪명성왕후≫(1991), ≪혜경궁 홍씨≫(1992)를 거쳐 ≪광해의 날들≫(1994)에 이르는 작품들은 강신재 특유의 감각적이고 신선한 문체를 바탕으로, 역사적 소재를 예술적으로 형상화한 역사소설들이다. 1994년 마지막 작품 ≪광해의 날들≫을 발표하기까지 강신재가 남긴 작품 수는 대략 중·단편 90여 편과 30여 편의 장편으로 집계된다. 1982년과 1983년에 각각 한국여류문학인회 회장과 대한민국 예술원 정회원으로 피선되기도 했던 작가 강신재는 2001년 5월 12일 77세의 나이로 삶을 마감했다.


☑ 엮은이 소개

엮은이 이성천은 1968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성장기에 강원도 춘천으로 이주해 그곳에서 중·고등학교를 마친 후,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하면서 문학 수업에 입문한다. 대학 시절에는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둔한 학생이었다. 군사독재 정권의 야만적인 폭력과, 폭압적 현실에 저항하며 새로운 사회질서에 대한 ‘꿈’이 공존하던 시대임에도 동시대의 현실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하기보다는 강의실에 머무르며 시를 습작하거나 문학과 철학 책들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낸다. 그 뒤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문학의 본질과 비평의 윤리에 대해 깊이 있게 고민하기 시작한다. 실천적 변혁 의지가 암묵적으로 요구되었던 1980년대와 다원화된 가치가 인정되는 1990년대 사회를 두루 경험하고 난 지점에서, 본격적인 문학 공부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을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광장의 언어’와 ‘밀실의 언어’ 또는 ‘보편과 개별이 창조적으로 융합된 언어(사유)’야말로 문학의 기원적 요소임을 그 시절에야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2002년 <중앙일보> 신인문학상 평론 부문에 당선된 <알리바바의 서사, 혹은 소설의 알리바이>는 이러한 문제의식의 연장선상에서 우리 시대 문학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조명해 본 글이다. 삶의 면역력이 갈수록 약해지고 진지한 삶에 대한 둔감증이 급속도로 확산되는 오늘날의 상황에서 21세기 문학의 위상과 역할을 가늠하고 있는 것이다. 박사 학위논문인 <황동규 시의 존재론적 의미 연구?하이데거의 존재 사유를 중심으로> 역시, 동일한 문제의식으로 기획되었다. 개별 작가론을 통해 한국 현대시의 존재론적 의미를 고찰한 이 글은 언어와 사유, 시와 철학의 본질적 관계에 대한 물음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며 구체적인 답변을 제시한 바 있다. 이후에는 ≪시, 말의 부도(浮圖)≫, ≪한국 현대소설의 숨결≫, ≪작품으로 읽는 북한문학의 변화와 전망≫, ≪한국 소설의 얼굴≫(전 18권) 등의 저서와 공·편저를 출간했다. 현재 경희대학교 객원교수로 재임 중이며, 계간 <시와 시학>, <시에> 등의 문예지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아울러 부질없는 욕망의 환각이 팽배해진 현대의 일상에서 인간의 본래적 삶에 대한 기억을 자극하는 비평적 글쓰기를 지속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 책 속으로

사랑이라는 것이 어떤 감정인지 명순은 지금 한마디로 규정지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말하자면 ?스가 일으키는 트라불이고, 일종의 하찮은 시정(詩情)이었다. 모든 시(詩)가 그러하듯이 그것은 과장을 일삼고, 우상을 만들기에 옆눈도 안 판다. ‘완전한 인생’을 꿈꾸는 것이다.
-<황량한 날의 동화>


☑ 목차

해설
지은이에 대해

젊은 느티나무
해방촌(解放村) 가는 길
황량(荒凉)한 날의 동화(童話)
강(江)물이 있는 풍경(風景)
녹지대(綠地帶)와 분홍의 애드벌룬

엮은이에 대해

2015년 4월 20일 월요일

하근찬 작품집


도서명 : 하근찬 작품집
지은이 : 하근찬
옮긴이 : 이상숙
분  야 : 인문고전
출간일 : 2010년 3월 15일
ISBN :  9788964063477
가격 : 12000원
규격 : 사륙판    제본 : 양장본    쪽 : 266쪽



☑ 책 소개

『하근찬 작품집』은 「지만지 고전선집」의 548번째 권이다. 이 책은 수난의 역사를 소설로 표현한 하근찬의 작품 <수난이대>와 더불어 <흰 종이수염> <왕릉과 주둔군> <족제비> <나룻배 이야기> <일본도> <화가 남궁씨의 수염> 총 7편을 담았다.


☑ 책 속으로

만도는 아랫배에 힘을 주며 끙! 하고 일어났다. 아랫도리가 약간 후들거렸으나 걸어갈 만은 하였다. 외나무다리 위로 조심조심 발을 내디디며 만도는 속으로
‘인제 새파랗게 젊은 놈이 벌써 이게 무슨 꼴이고. 세상을 잘못 타고 나서 진수 니 신세도 참 똥이다 똥.’
이런 소리를 줏어섬겼고, 아부지의 등에 업힌 진수는 곧장 미안스러운 얼굴을 하며
‘나꺼정 이렇게 되다니 아부지도 참 복도 더럽게 없지, 차라리 내가 죽어버렸더라면 나았을 낀데…’
하고 중얼거렸다.
만도는 아직 술기가 약간 있었으나, 용케 몸을 가누며, 아들을 업고, 외나무다리를 무사히 건너가는 것이었다.
-<수난이대>


☑ 지은이 소개

저자 하근찬은 1931년 경북 영천에서 태어났다. 전주사범학교 재학 중 교원 시험에 합격해 수년간 초등학교에서 가르쳤다. 1954년 부산 동아대 토목과에 입학했다. 1955년 잡지 <신태양>이 주최한 전국 학생 문예작품 모집에서 소설 <혈육>이 당선되었고, 1956년 <교육주보> 주최 교육소설 모집에<메뚜기>가 당선되었다. 1957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수난 이대>가 당선된 이후 <나룻배 이야기>, <흰 종이수염>, <위령제>, <분(糞)>, <왕릉과 주둔군>, <족제비> 등 단편 수십 편을 발표하는 등 활발한 작품 활동을 했다. 1972년 장편 ≪야호(夜壺)≫와 단편집 ≪수난 이대≫를 간행했다. 이후에도 <노은사>, <남행로>, <고도행> 등의 단편과 ≪금병매≫, <내 마음의 풍금>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된 <여제자> 등의 작품을 발표하는 등 전후의 대표적 소설가로서 활발히 활동했으며 2007년 11월 타계했다.


☑ 옮긴이 소개

역자 이상숙은 1969년 서울에서 출생,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및 대학원을 졸업했다. 1995년<정현종론>으로 세계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에 당선했다. 2005년 제6회 젊은 비평가 상을 수상. 2006∼2007년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 객원연구원을 지냈고, 고려대학교·서울산업대학교·한경대학교에서 강사로 있었다. 현재 경원대학교 교양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평론집 ≪시인의 동경과 모국어≫, 논문 <북한문학의 민족적 특성론 연구> 외 다수가 있다.


☑ 목차

해설
지은이에 대해

수난 이대(受難二代)
흰 종이수염
왕릉(王陵)과 주둔군(駐屯軍)
족제비
나룻배 이야기
일본도
화가 남궁씨의 수염

엮은이에 대해

2015년 3월 31일 화요일

염상섭 작품집


도서명 : 염상섭 작품집
지은이 : 염상섭
엮은이 : 방민호 해설 : 권채린
분야 : 한국 / 소설
출간일 : 2009년 5월 15일
ISBN : 978-89-6228-226-9  00810
가격 : 12000원
규격 : 사륙판    제본 : 무선제본    쪽 : 148쪽



☑ 책 소개

치밀한 리얼리즘 기법으로 한국 현대소설의 문법을 개척한 염상섭. 그는 식민지 조선에 대한 냉철한 응시와 통찰을 통해 한국 근대 소설의 가능성을 탐색했다. 그동안 제대로 조명되지 못했던 단편들을 통해 그의 다양한 면모를 만나 본다.


☑ 출판사 책 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 ‘초판본 한국소설문학선집’은 점점 사라져 가는 원본을 재출간하겠다는 기획 의도에 따라 한국문학평론가협회에서 작가 100명을 엄선하고 각각의 작가에 대해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들을 엮은이로 추천했다. 엮은이는 직접 작품을 선정하고 원전을 찾아냈으며 해설과 주석을 덧붙였다.
각 작품들은 초판본을 수정 없이 그대로 타이핑해서 실었다. 초판본을 구하지 못한 작품은 원전에 가장 근접한 것을 사용했다. 저본에 실린 표기를 그대로 살렸고, 오기가 분명한 경우만 바로잡았다. 단, 띄어쓰기는 읽기 편하게 현대의 표기법에 맞춰 고쳤다.

횡보(橫步) 염상섭(廉想涉)은 한국 근대문학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작가로서, 신소설의 뒤를 이어 오늘날의 현대소설의 문법을 개척하고 완성했다고 평가받는다. 그는 픽션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바탕으로 근대적 인물과 플롯을 창조했으며, 식민지 조선에 대한 냉철한 응시와 통찰을 통해 한국 근대소설의 가능성을 탐색했던 작가였다. 
염상섭은 40여 년 동안 17편의 장편소설과 160여 편의 중·단편 소설을 발표했는데, 이러한 방대한 성과물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그의 문학은 몇 가지 특징으로 규정하기 어려울 만큼 복잡하고 다양한 층위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염상섭 연구가 가장 집중적으로 조명했던 부분은 이데올로기 면에서의 민족주의와 창작 방법상의 리얼리즘이었다. 국수적 독선에 치우치지 않는, 모든 세대와 계급을 아우르는 힘으로서의 민족주의적 전망과 치밀하고 총체적인 리얼리즘적 소설 기법은 염상섭 문학의 근간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삼대≫, ≪만세전≫과 같은 중·장편소설을 중심으로 많은 연구가 이루어진 점도 여기서 기인한다. 
이에 비해 염상섭의 단편에 대한 접근은 상대적으로 미미한 실정이다. 이 책에 실린 세 편의 단편소설은 민족주의와 리얼리즘 같은 염상섭 소설 세계에 대한 주된 평가에 비추어 볼 때 다소 낯선 작품들이지만, 바로 그러한 이유로 염상섭 문학이 지닌 다양한 면모를 가늠할 수 있는 유용한 사례가 될 수 있다. <표본실의 청개고리>는 염상섭의 데뷔작이자 초기 단편의 대표작으로 이미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지만, <검사국 대합실>과 <임종>은 구체적으로 논의되지 못한 작품들이다. 세 소설은 주제론적, 인식론적 차원에서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기 힘들 만큼 상이한 경향을 보이지만, 당대 소설적 풍토에선 이례적으로 ‘내면’에 대한 치밀하고 정치한 접근과 묘사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 책 속으로

·“네! 그러치 안습니. 네! …그것도, 바로 읽을 줄이나 알앗스면, 조켓지만, …假令 天地玄黃 하면, 하날 텬− 이러케 읽으니, 一大라 써노코 왜 하날 대 하지 안습니. 蒼穹(창궁)은 宇宙 間에, 唯一 最大하기 문에 蒼頡(창힐)이 가튼 偉人이, 一大라고 쓴 것이 아니왜니.  흙 야 할 것을 −디 하는 것도, 안 될 것이왜다. −란 무엇이왜니가. 흙이 아니요. 그리기에 흙 土 邊에 焉哉乎也(언재호야)라는 千字文의 왼  字인 이 也 字를 쓴 것이외다그려. 다시 말하자면 −는 흙이요,  宇宙 間에 最末位에 處한 故로 흙 土에 千字文의 最末字 되는 이 也 字를 쓴 것이왜다.”

·그러나, 오래비가 차저와서 질문을 하고 고소지 제긔한 것을 보면 사실 억울한지도 모를 것이다. ‘민중의 지도’니 ‘사회의 목탁’이니 ‘도덕상 방부제’니 하지만 신문 긔자 역시 사람이다. 귀신이 아닌 사람인 이상에는 남의 사행에 대하야 밋두리두리 분명히 알 수 업는 것은 물론이다. 더구나 그 녀자에게 마음을 두엇다가 을 일우지 못하고 제 분에 못 닉여서 그 녀자에게 욕을 보이랴고 긔자를 속여 그러한 보도를 하게 하얏는지 누가 알 일이냐? 신문이 아모리 권위가 잇다 하드라도 하여간 젊은 계집의 창창한 압길을 막아주는 것은―더구나 활자의 세력이라면 팟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고지 들을 만한 이지음의 민중을 상대로 하야 그러한 사실이 잇고 업고 간에 신문에 한 번 나기만 하면 그 시간이 벌서 그 녀자에게 대하야는 운명의 지침(指針)을 밧구어 저주는 날이다. 아모리 신문의 권위, 긔자의 신위가 소중하다드라도 일개인의 운명을 좌우하랴는 것은 무엇보다도 큰 죄악이다−이러한 지론을 가진 나로서는 이러한 문뎨를 당할 마다 량심상 가책을 늣기지 안흘 수 업섯다.

·‘…백 년을 산대도 가던 길을 반도 못 걷고 하던 일을 손에 붙든 채 쓰러지고 마는 것이 아닌가. 자기완성(自己完成)을 하고 떠나지는 못하는 것인데− 미완성인 대로 뒷대에 물려주고 가는 것이 인생이라면야 죽은 뒤에 남은 처자식이 어떻게 되던지 뒤를 깡그리 드리지 못했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죽음의 마지막 순간까지 다만 그것을 두 손으로 바당기고 막아내려는 것이 생물의 본능이나 좋게 말하자며는 생리적 조건이 허락하는 때까지의 자기주장(自己主張)이요, 자기의 존재를 잃지 않겠다는 무서운 단판 씨름이라 할 것이나, 그러나 자기완성을 허락지 않는 바에야 항복이 아니라 앞질러 선선히 길을 비켜서서 뒤에 물려주고 시사약귀(視死若歸)로 조용히 물러가라는 말인데… 그렇지만 ‘시사약귀’란 저마다 할 수 있는 노릇인가…


☑ 지은이 소개

염상섭(廉想涉, 1897. 8. 30∼1963. 3. 14)
염상섭(廉想涉, 1897. 8. 30∼1963. 3. 14)은 서울 종로구 필운동에서 염규환과 경주 김씨의 8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본관은 서원(瑞原), 본명은 상섭(尙燮), 호는 제월(霽月) 또는 횡보(橫步)다.
1906년까지 조부에게서 한문을 수학하다 11세 되던 1907년 관립사범부속보통학교에 입학한다. 그러나 학교에서 조선 역사를 가르치지 않고, 이토 히로부미의 서울 환영식에는 전체 학생을 참가시키고 고종 황제의 동적전 거행에는 반 대표만 보낸 것에 항의하여 3학년 겨울에 자퇴하고 보성소학교로 전학을 갔다. 1911년 보성중학에 입학하고 1912년 일본에 유학 가 아자부(麻布)중학, 세이가쿠인(聖學院)중학을 거쳐 1918년 교토(京都)부립 제2중학을 졸업했다. 1918년 게이오대학(慶應大學) 문과 예과에 입학하였으나 1학기 만에 병으로 자퇴했다. 
1919년 오사카에서 3·1운동 소식을 듣고 천왕사공원에서 거사하기로 했으나 피검되어 옥고를 치렀다. 옥중에서 <어째서 조선은 독립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라는 글을 써 아사히 신문사로 보냈다. 
1920년 동아일보 창간과 더불어 귀국해 정치부 기자가 되었다. 2∼4월 <폐허> 동인을 결성하고 7월에 <폐허> 1호를 출간했다. 남궁벽·황석우·김찬영·김억·오상순·민태원과 교류했다. 동아일보 퇴사 후 오산학교 교사로 재직했으나 이후 줄곧 신문·잡지 편집인으로 생활하면서 소설·평론에 전념했다. 1921년 <폐허> 2호를 간행하고 출세작 <표본실의 청개고리>를 발표했다. <동명>에서 기자로 활동하다가 1922년에는 <개성과 예술>, <지상선을 위하여>을 발표했고, ≪묘지(만세 전)≫를 <신생활> 7∼9월호에 연재했다. 1923년 변영로·오상순·황석우·송진우·최남선·진학문 등과 조선문인회를 결성했다. 1924년 <폐허 이후>를 간행하고, 시대일보 사회부장이 되었다. ≪묘지(만세 전)≫를 재연재·출간했고, 첫 창작집 ≪견우화≫를 냈다. 1926년 <신흥문학을 논하여 박영희군의 소론을 박함>으로 프로문학파에 도전했다. 1927년 <남충서>, <배울 것은 기교−일본문단잡관>, <사랑과 죄>를 동아일보에 기고했다. 1929년 33세의 나이로 김영옥과 결혼했고, 조선일보사 학예부장을 맡았다. 이듬해 조선일보에 ≪삼대≫를 연재하고 매일신보에 <무화과>를 연재했다. 1932년 김동인의 <발가락이 닮았다>로 논쟁이 벌어지고 <모델 보복전>을 <동광>에 보냈으나 실리지 않자 조선일보에 <소위 모델 문제>를 발표했다. 1934년 <모란꽃 필 때>, <무현금>을, 이듬해 <청춘항로>를 발표했다. 1936년 매일신보 정치부장, 만선일보 편집국장을 지냈다. 
1945년 해방을 맞이했고, 11월 신의주 학생 사건을 체험했다. 1946년 경향신문 창간 편집국장이 되었으나 이듬해 사퇴하고, 성균관대에 출강하며 창작에 전념했다. 1948년 ≪만세 전≫을 개작하여 출간했고, ≪삼대≫를 출간했다. 1949년 중간 노선을 견지한 채 문협에 참가했다. 1950년 6·25가 발발하자 12월에 이무영·윤백남과 해군에 입대했다. 이듬해 소령으로 임관하여 해군본부 정훈감실에서 편집과장으로 근무했다. 1952년 ≪취우≫를 조선일보에 연재하고 이듬해 해군 중령으로 제대했다. 1954년 서라벌 예술대학 학장으로 취임했다. 이후 <젊은 세대>, <대를 물려서>, ≪일대의 유업≫ 등을 발표했다. 1961년 가톨릭에 입교했고, 이듬해 12월 <횡보 문단 회상기>를 <사상계>에 발표했다. 1963년 67세로 성북동 자택에서 별세하여, 명동 천주교회에서 문단장을 치르고 방학동 천주교 묘지에 안장되었다. 생전에 서울시 문화상, 자유문학상, 예술원 공로상을 수상하고 대한민국 문화훈장을 받았다. 


☑ 엮은이 소개

방민호
방민호는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4년 ‘현실을 바라보는 세 개의 논리’로 제1회 창비신인평론상을 수상했다. 지은 책으로는 ≪비평의 도그마를 넘어≫, ≪납함 아래의 침묵≫, ≪행인의 독법≫, ≪감각과 언어의 크레바스≫ 등이 있으며, 엮은 책으로는 ≪채만식 중·단편 대표 소설 선집≫, ≪모던 수필≫, ≪구보 씨의 얼굴≫, ≪환상소설첩≫, ≪악마의 사랑≫ 등이 있다. 

권채린
해설을 쓴 권채린은 1974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현대문학을 공부하였고,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05년 중앙일보 중앙신인문학상에 문학평론 부문으로 등단한 이후 문학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 목차

해설 ······················11
지은이에 대해 ··················19

표본실(標本室)의 청(靑)개고리 ··········23
검사국 대합실(檢事局 待合室) ···········99
임종(臨終) ···················121

엮은이에 대해 ··················146



2015년 3월 19일 목요일

선우휘 작품집


도서명 : 선우휘 작품집 
지은이 : 선우휘
옮긴이 : 강정구
분야 : 인문고전
출간일 : 2010년 3월 15일
ISBN :  9788964063149
가격 : 12000원
규격 : 사륙판  제본 : 양장본  쪽 : 280쪽




☑ 책 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 고전선집> 0515『선우휘 작품집』. 이 시리즈는 점점 사라져가는 원본을 재출간한다는 기획 의도에 따라 한국문학평론가협회에서 작가 100명을 엄선해 그 작품을 수록한 책이다. 이번 책에서는 선우휘의「불꽃」,「깃발 없는 기수」를 소개한다.


☑ 책 속으로

결국 너는 살아본 일이 없었던 것이다. 살아 본 일이 없다면 죽을 수도 없는 일이 아닌가?살아본 일이 없이 죽는다는 것?아니 죽을 수도 없다는 안타까움이 현의 마음에 말할 수 없는 공포의 감정을 휘몰아왔다. 현은 잃어져 가는 생명의 힘을 도꾸어 이 공포의 감정에 반발했다.
-살아야겠다. 그리고 살았다는 증거를 보이고 다시 죽어야 한다-
현은 기를 쓰는 반발의 감정 속에서 예기치 않는 새로운 힘이 움터 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 힘이 조금씩 조금씩 마음에 무게를 가하드니 전신에 어떤 충족감이 느껴지자 현은 가슴속에서 갑짜기 우직하고 깨뜨러지는 자기 껍질의 소리를 들었다. 조각을 내고 부서지는 껍질. 그와 함께 거기서 무수한 불꽃이 뛰는 듯했다. 그것은 다음 차원(次元)에의 비약을 약속하는 불꽃. 무수한 불꽃. 찬란한 그 섬광. 불타는 생에의 의욕. 전신을 흐르는 생명의 여울. 통절히 느껴지는 해방감.
-<불꽃>


☑ 지은이 소개

선우휘
저자 선우휘(鮮于煇)는 평안북도 정주군 정주읍 남산동에서 부친 선우억 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경성사범학교 본과 3년을 마친 뒤 귀향해 구성초등학교 교사로 부임했고, 해방 이듬해에 월남해 조선일보사에 입사, 사회부 기자가 되어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1948년에는 인천중학교 교사로 있었으며, 1949년에는 육군 소위로 임관하고 1950년에는 전진군단 유격대장으로 전쟁에 참여했다.
그의 작품 활동은 전쟁 이후 본격화되었다. 1955년 단편 <귀신>을 <신세계>에 발표해 문단에 데뷔했으며, 1956년에는 단편 <ONE WAY>를 <신태양>에, <테러리스트>를 <사상계>에 실었고, 1957년에는 화제작이자 그의 대표작인 단편 <불꽃>을 <문학예술>에 게재했다. 이 작품은 제2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했고, 그 이후 대령으로 예편하고, 한국일보사를 거쳐서 조선일보사에서 편집국장 등을 지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중편 <깃발 없는 기수>를 비롯해 많은 작품을 발표했고, 작품집으로 ≪반역≫, ≪망향≫, ≪쓸쓸한 사람≫, ≪노다지≫, ≪선우휘 문학선집≫ 등을 출간했다.
1986년 취재 중 부산에서 뇌일혈로 별세한 선우휘는 1950년대 행동주의, 휴머니즘, 실존주의를 대표하는 작가 중의 한 사람이다. 그의 문학 세계는 그가 공산주의를 등지고 월남한 이북 출신이라는 사실과, 사회 부조리를 현장에서 바라보는 기자라는 점이 그의 문학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그는 현장적이면서도 이념적인 작품 세계를 만들었던 것이다.


☑ 옮긴이 소개

강정구
역자 강정구(姜正求)는 1970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났다. 1988년에 춘천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상경해 경희대 국문과에서 대학 생활을 했다. 1992∼1995년에 경희대 대학원 국문과에서 석사 과정을, 그리고 1995∼2003년에 동 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졸업했다. 대학원 시절에는 주로 시인론에 주력했다. 한 시인의 생애와 문학을 통해서 문학의 맛과 멋을 풍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김지하의 서정시 연구>를 석사학위 논문으로, <신경림 시의 서사성 연구>를 박사학위 논문으로 제출했다.
대학원을 졸업해 그 이듬해에 계간 <문학수첩>에서 주관하는 제2회 문학수첩 신인문학상 평론 부문에 당선된 뒤 활발한 문단 활동과 학술 활동을 병행하면서, 가장 중요한 연구 과제로 삼았던 것은 ‘민중시 다시 읽기’였다. 민중시라는 형식은, 1960∼1990년대 진보적 민족문학론에 의해서 진리의 이데올로기를 담은 문학으로 설명되었으나, 그것은 문학을 이데올로기의 차원에서 왜곡하는 것이라는 심증을 가졌기 때문이다. 진보적 민족문학론이 바라본 민중시와 민족문학을 ‘다시 읽기’ 하는 작업은 기존의 중심 담론과 시각의 해체였고 재구성이었다.
이 과정에서 프란츠 파농, 에드워드 사이드, 호미 바바, 가야트리 스피박으로 전개되는 포스트콜로니얼리즘(postcolonialism)과 미셸 푸코, 자크 데리다, 질 들뢰즈, 가라타니 고진, 슬라보예 지젝으로 이어지는 다종다양의 ‘포스트 담론’은 일종의 교과서였고, 권위의 세계를 다시 읽는 방법이 되었다. 신경림의 시를 변혁적·투쟁적인 경향이 아니라 혼성과 모방의 서사로 읽고자 한 논문 <신경림 시에 나타난 민중의 재해석>과 <탈식민적 저항의 서사시>가 그 중간 성과물이었다. 나아가 논문 <1970∼1990년대 민족문학론의 근대성 비판>과 <진보적 민족문학론의 민중시관 재고>를 통해서 진보적 민족문학론의 시각을 문제 삼고자 했다. 앞으로 당분간 이러한 ‘다시 읽기’라는 방법에 매진할 계획이다.


☑ 목차

해설
지은이에 대해

불꽃
깃발 없는 기수

엮은이에 대해

2015년 3월 9일 월요일

까토의 자유


도서명 : 까토의 자유
저자 : 정을병
분야 : 인문 > 한국소설
출간일 : 2010년 4월 15일
ISBN : 9788964063392
가격 : 12,000원
판형 : 사륙판(128*188)  제본 : 양장본  면수 : 146쪽




☑ 책 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 고전선집」 540번째 시리즈 『까토의 자유』. 이 책은 저자 정을병이 1966년 8월에 발표한 중편소설로, 카이사르가 루비콘 강을 건너 로마를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바꾸려 한 정치적 시도에 대해 카토의 관점에서 해석한 것으로 60년대 한국 사회의 실존적 자유의 문제를 다룬 정치적 알레고리 작품이다.


☑ 차례

해설
지은이에 대해

까토의 자유

엮은이에 대해


☑ 지은이 소개

정을병
저자 정을병은 1934년 7월 5일 경상남도 남해에서 태어났다. 1955년 한국신학대학을 다니다가 중퇴하고, 1972년 하와이대학교 동서문화센터에서 수학했다. 1959년 9월 <자유공론> 제1회 신인문학상에 <철조망과 의지>가 당선되어 등단했지만, 소설가로서 본격적인 창작 활동은 4·19혁명 이듬해인 1961년 12월호에 단편소설 <부도>가, 1963년 2월에 <반모랄>이 <현대문학>에 추천되고 나서부터다. 그의 출세작은 <현대문학>에 1965년 3월·6월·11월, 1966년 3월 네 번에 걸쳐 발표된 장편소설 ≪개새끼들≫과 1966년 8월에 발표된 중편소설 ≪까토의 자유≫라고 할 수 있다. 전자는 5·16 군사쿠데타 이후 병역 미필자를 강제 징집해 ‘국토건설단’ 공사 현장에 투입시켜 인권을 유린한 사건을 고발한 작품이고, 후자는 카이사르가 루비콘 강을 건너 로마를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바꾸려 한 정치적 시도에 대해 카토의 관점에서 해석한 것으로 60년대 한국 사회의 실존적 자유의 문제를 다룬 정치적 알레고리 작품이다. 1967년 2월부터 11월까지 <현대문학>에 연재한 ≪아테나이의 비명≫으로 그해 제13회 ‘현대문학상’을 수상한 이후, 그는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에 대한 고발과 정치색이 짙은 실존적 자유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작품화하면서 ‘고발문학의 기수’로 자리매김한다. 1968년 대한가족협회 홍보부장과 지도부장을 역임하면서, 그는 당시 “셋만 낳고 단산(斷産)하자”는 가족계획 운동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설득하며, 과감하게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주장을 내세우기도 했다. 현재 우리 사회가 빠르게 고령화되어 가는 것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임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이러한 당시의 생각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피임사회>(1970)가 있다. 1970년대 초반의 일본 여행과 하와이대학교 동서문화센터에서의 학습 경험은 그에게 한국문제를 국제적인 시각으로 볼 수 있는 넓은 안목을 갖게 해주었다. 그러나 그러한 경험이 창조적으로 생성되기도 전인 1974년 1월 7일 이호철의 ‘문학인 61인 선언’으로 시작된, 갑인사화(甲寅士禍)라 불리는 ‘문인 간첩단 사건’으로 연행된 후 2월 25일 반공법과 국가보안법 위반죄로 구속되어 10월 31일 항소심 공판에서 무죄 선고를 받을 때까지 옥고를 치러야 했다. 이때의 경험이 스며든 작품들로 <육조지>(1974), <본회퍼의 죽음>(1980), <인동(忍冬)덩굴>(1980)이 있다. 이해에 한국일보사 주최 제7회 ‘한국창작문학상’과 1976년 한국소설가협회가 주는 제2회 ‘한국소설문학상’을 수상한 것은 이러한 고초에 대한 보답일까? 1976년 공병우 박사와 함께 문장용 타자기를 개발·제작·보급한 업적으로 1982년 ‘한글학회 공로상’을 수상했고, 1985년 월간 <동서문학> 주간으로 취임했다. 그리고 같은 해에 가족계획 운동에 끼친 공로로 제34회 ‘서울시문화상’을 수상했다. 이때부터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부회장을 맡아 1988년에는 제52회 세계작가대회(국제펜클럽 서울대회)를 유치·개최해 성공적으로 치렀다. 세계작가대회의 성공은 두고두고 회자되었다. 세계작가대회 한 해 전인 1987년에는 제12회 ‘대한민국문학상’을, 1990년에는 제1회 ‘한국난문화대상’과 ‘대한민국문화훈장’을 수상했다. 또 1990년에 한국기업문화협의회 회장을 맡아 전경련으로부터 재정 지원을 이끌어내고 문학과 기업의 연계를 다져 1994년 한국기업메세나협의회가 탄생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그의 행정 능력은 1999년 한국소설가협회 회장을 맡으면서 더 두드러졌다. 먼저, 2000년 인터넷에 ‘스토리뱅크’를 설립해 두고 전업 작가들이 작품의 서사를 요약해 그것을 스토리뱅크에 탑재하면, 정부로부터 받은 10억 원의 지원금에서 10만 원씩의 고료를 지급했다. 이렇게 해서 ‘스토리뱅크’에 저장된 서사의 요약본은 문화 콘텐츠 시대의 핵심 문화 산업인 만화, 게임, 영화, 드라마를 제작하는 데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그리고 소설의 보급과 독자의 확대를 위해 2002년 제7회 ‘한무숙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집 ≪꽃과 그늘≫(2001) 출간 기념으로 2001년 9월 제1회 ‘문예 부흥을 위한 소설 낭송회’를 개최했고, 이를 전국 각지로 확대했다. 이후 계속해서 수많은 작가들의 소설 낭독회가 전국 각지에서 끊임없이 열리고 있다. 2003년에는 ≪2003 소설 낭송회 초대 작품 선집≫을 출간한 바 있고, 참여정부로부터 민주화운동가로 인정도 받았다.
2006년부터 간암으로 투병해 오다, 2009년 2월 18일 향년 75세로 영면했다. 고인의 작품으로는 장편소설 42편과 중·단편소설 150여 편, 그리고 수필집 6권이 있다.

2014년 12월 5일 금요일

김정한 작품집


도서명 : 김정한 작품집 
지은이 : 김정한
옮긴이 : 홍기돈
분야 : 인문고전
출간일 : 2010년 4월 15일
ISBN : 9788964063057
가격 : 12000원
규격 : 128 * 188 mm     제본 : 양장    쪽 : 130쪽




☑ 책 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 고전선집」 506번째 시리즈 『김정한 작품집』. 이 시리즈는 국내외 고전 작품을 정리한 책이다. 표지에 사용한 색상은 이 시리즈를 위해 개발한 고유 색상이며, 표지와 본문은 모두 친환경 재질을 사용했다. 초판본을 그대로 실을 수 없는 작품은 원전에 가장 근접한 것을 사용했다. 엮은이가 직접 작품 리스트를 선정하고 원전을 찾아냈으며 전문 해설을 덧붙였다. 이 책은 요산 김정한의 대표적인 작품인 인간단지, 수라도, 모래톱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 책 속으로

“나라 땅, 남의 땅을 함부로 먹다니! 그건 땅을 먹는 게 아니라, 바로 ‘시한폭탄’을 먹는 거나 다름없다. 제 생전이 아니면 자손대에 가서라도 터지고 말거든! 그리고 제 아무리 떵떵거려대도 어른들은 다 가는 거다. 죽고 마는 거야. 어디 땅을 떼 짊어지고 갈 수야 있나. 결국 다음 이 나라 주인인 너희들의 거란 말야. 알겠어?”
-<모래톱 이야기>


☑ 지은이 소개

김정한
요산(樂山) 김정한(金廷漢)은 1908년 음력 9월 26일 경상남도 동래군 북면(현재 부산광역시 금정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는 집안에서 세운 서당에 나가 한학을 배웠고, 1919년 열두 살이 되자 범어사에서 운영하는 명정학교(明正學校)에 입학했다. 입학 직후 그는 3·1운동에 참여했는데, 범어사는 해인사, 통도사와 더불어 식민지시대 항일 노선을 유지했던 대표적인 사찰로 꼽힌다. 1923년 열여섯 살 때 서울의 중앙고등보통학교로 진학했으나 고향 친구들과 어울려 학비를 탕진한 까닭에 유학 생활은 1년 6개월 만에 마감할 수밖에 없었고, 1924년 9월 동래고등보통학교로 전학하게 되었다. 동래고보 재학 중 동맹휴학에 참여하기도 했으며, 이 시기에 민족적인 울분을 표출하는 방법으로 문학에 눈을 떴다고 한다. 1928년 3월 동래고보를 졸업하고, 9월 울산 대현공립보통학교의 교원으로 부임했으나, 교원 생활은 그리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같은 해 11월 일본인 교사와 한국인 교사의 차별 대우에 분개해 조선인교원연맹 결성을 추진하다가 피검되었고, 이를 계기로 교사직을 그만두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때 그의 나이 스물 하나였다. 따라서 스물 즈음까지 그의 의식을 거칠게나마 정리한다면, 굳건한 민족의식으로 무장해 자신의 세계를 지탱해 나갔다고 파악할 수 있겠다. 김정한이 애초 관심을 보인 문학 장르는 시였다. 예컨대 경상남도 양산에는 그의 외가와 왕고모 댁이 있었고, 1927년 스무 살에 양산의 조분금(趙分今) 씨와 결혼했는데, 이곳을 취해 <수라도>를 비롯한 여러 소설의 배경으로 설정해 나간 것은 몇십 년이 지난 후다. 그러니까 이 시기에는 소설에 뜻이 없었기 때문에 양산에서 벌어졌던 다양한 사건들을 문학으로 끌어들이지 않았던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대신 이때 몰두했던 것은 시 창작이었다. 1928년에는 목원(牧園) 혹은 김정한(金汀翰)이라는 이름으로 <불교>와 <조선일보>에 시·시조를 투고했으며, 1929년 10월부터 1930년까지는 목원생(牧園生), 김목원(金牧園), 김추색(金秋色)이라는 명의로 <조선일보>, <동아일보>, <조선시단>, <대조> 등에 다수의 시를 발표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1931년을 기점으로 해 그는 소설 분야로 방향을 선회했는데, 11월 무렵 <구제사업>이라는 단편소설을 써서 잡지에 투고했으나 일제의 검열로 결국 게재될 수 없었다고 훗날 술회했던 데서 이러한 사실이 드러난다. 시 창작으로 출발했던 김정한이 소설 분야로 나아간 까닭은 계급 사상의 영향과 관련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계급/계층의 대립 구조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기에는 시 장르보다는 소설 장르가 적합하다. 다시 말한다면, 각각의 계급/계층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사건을 구성하고, 이로써 현실의 갈등을 긴박하게 제시하는 데 맞춤한 장르가 소설이라는 것이다. 그가 계급 사상에 빠져들었던 것은 일본 유학 때다. 1929년 2월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1930년 4월 와세다대 부속 제일고등학원 문과 문학부에 입학했다. 이 시절 그는 독서회에 가입해 사회과학 서적들을 탐독하는 한편, 이찬, 안막, 이원조 등과 교류하며 계급 사상에 빠져들었던 것이다. 1931년 11월 결성된 동지사(同志社)에 발기인으로 참여한 데서 알 수 있듯이, 김정한이 품었던 계급 사상의 열도는 대단했다. 재일 조선인 예술 연구 단체인 동지사는 계급의식으로 뭉친 단체였다. 일본 유학을 그만두게 된 계기도 계급 사상과 관련이 있다. 1932년 3학년 여름방학 때 귀향한 후 농민 조직 활성화를 위해 사업을 펼치다가 경찰에 피검되었고, 이 사건으로 인해 9월 학업을 중단하게 되었던 것이다. 같은 해 12월 그의 처녀작 <그물>이 <문학건설>에 발표되었다. 학업을 중단한 후 김정한은 다시 교사가 되어, 1933년 9월부터 남해공립보통학교에서 근무했고, 1939년 5월에는 남해군 남명심상소학교로 발령받아 1940년 3월까지 교직을 이어나갔다. 그가 소설가로 등단한 것은 교직 생활을 펼쳐나가면서였다. 1936년 단편소설 <사하촌(寺下村)>으로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을 거머쥐었던 것. 비참한 농촌의 현실을 실감나게 형상화한 한편, 이에 편승하는 타락한 불교계의 한 단면을 폭로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발표되자마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뿐만 아니라, 농촌을 계몽의 대상으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농민들이 현실에 자각해 나간다는 관점은 다른 작가들과 크게 변별되는 요소였다. 그렇지만 이로 인해 고초를 겪기도 했다. <사하촌>이 사찰을 비방하는 소설이라고 하여 그는 장학사의 조사를 받았으며, 귀향했을 때는 테러를 당하기도 했다. 이때 그의 나이 스물아홉이었다. 1940년 교직을 그만두고 난 후 김정한은 <동아일보> 동래지국을 맡아 8개월여 간 운영도 해보고, 경남 면포조합에 서기로 취직해 사무도 보다가 드디어 해방을 맞이했다. 해방 정국에서 김정한은 좌익 계열 단체에서 활발하게 활동을 벌여나갔다. 1945년 경남인민위원회 문화부에서 활동했고,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 회원으로 이름도 올렸으며, 1946년 2월 조선문학가동맹 부산지부장에 이어 부산예술연맹위원회 회장에 피선된 전력이 이에 해당한다. 이때의 활동으로 인해 김정한은 두 번이나 옥고를 치렀다. 1946년 4월 미 군정은 이러한 활동을 ‘정부 행세’로 규정해 노백용(盧百容), 김동산(金東山) 등과 함께 그를 검거했으며, 1950년 전쟁이 발발하자 한국 정부는 사상 문제로 그를 체포했던 것이다. 그가 김동산으로부터 ‘요산(樂山)’이라는 아호를 받은 것은 1950년 8월 감옥 안에서였다. 아호 요산에는 ‘오래도록 지조를 지키며 살아라’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후 김정한이 보여준 삶의 궤적을 보면, 아호 ‘요산’처럼 살아나갔음을 확인하게 된다. 민주화를 향한 방향으로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나아갔기 때문이다. 1960년 4·19혁명이 일어난 이후 통일운동을 역설하고, 민주화운동을 옹호하는 등 수차례 강연을 했다가 1961년 군사 쿠데타를 만나 쫓겨 다녔고, 예순일곱 살이었던 1974년에는 개헌 촉구 서명에 나섰으며, 1985년 5·18민주혁명 기념사업 범국민운동 추진위원회 고문으로 추대되기도 했다. 1987년 6월에는 개헌 촉구 33인 시국선언에 동참했고, 9월 민족문학작가회의 초대 회장으로 뽑힌 바도 있다. 마지막까지 아호 요산에 담긴 의미를 지켜 나갔던 김정한은 1996년 11월 28일 타계했다. 살아서 그가 꿋꿋하게 이어온 삶의 궤적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그의 장례는 사회장으로 치러졌다.


☑ 옮긴이 소개

홍기돈
편저자 홍기돈은 1970년 제주에서 출생했다. 1999년 평론 <그림자로 놓인 오십 개의 징검다리 건너기?한강론>으로 <작가세계>를 통해 등단했고, 2004년 중앙대학교에서 <김동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평론집으로 ≪페르세우스의 방패≫(백의출판사, 2001), ≪인공낙원의 뒷골목≫(실천문학사, 2006)이 있으며, 연구서 ≪근대를 넘어서려는 모험들≫(소명, 2007)을 펴내었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 목차

해설
지은이에 대해

인간단지(人間團地)
수라도(修羅道)
모래톱 이야기

엮은이에 대해

2014년 10월 2일 목요일

초판본 순애보


도서명 : 초판본 순애보
지은이 : 박계주
엮은이 : 곽승미 
분야 : 한국 소설
출간일 : 2014년 8월 22일
ISBN : 979-11-304-5799-4  03810
가격 : 25000원
사륙판(128*188) / 무선 / 582쪽




☑ 책 소개

1939년 첫 발표 이후 수십 년간 고정 팬을 확보한 소설 ≪순애보≫. 지금 보면 유치한 스토리 같지만, 작금 문제가 되는 막장-유치 드라마보다는 양호한 내용이다. 일부 인물들의 비합리적 행동, 우연에 의한 전개 등이 거슬릴 수 있으나 그 틈새로 나름 알콩달콩하고 지고지순한 사랑을 엿볼 수 있다. 


☑ 출판사 책 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의 ‘한국 근현대소설 초판본 100선’ 가운데 하나. 본 시리즈는 점점 사라져 가는 명작 원본을 재출간하겠다는 기획 의도에 따라 한국문학평론가협회에서 작가 100명을 엄선하고 각각의 작가에 대해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들이 엮은이로 나섰다.

≪순애보≫는 박계주가 박진(朴進)이라는 필명으로 ≪매일신보≫의 ‘일천원 현상공모’에 응모해 당선된 소설로, 식민지시기에 발표되었던 소설 중 가장 많이 팔린 작품으로 알려져 있고, 1930년대의 대표적인 통속소설로 평가받는다. 
≪순애보≫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어서 ≪매일신보≫의 구독률이 2배 이상 높아졌다고도 한다. 그리하여 연재를 끝내자마자 1939년 10월에 단행본으로 출간했다. 이 단행본 역시 인기가 대단하여 1945년 8월 5일까지 47판이 발행되었다.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순애보≫를 원작으로 한 연극이 1943년 2월 5일부터 11일까지 ‘동양극장’에서 공연되었고, 1958년에 영화화되었으며, 현재까지도 지속적으로 읽히고 있다. 지금 시중에서 읽을 수 있는 여타 출판사의 ≪순애보≫는 해방 후 달라진 독서 환경을 고려하여 개작된 것이다. 이 책은 박계주가 처음으로 구상하고 연재한 신문 원고를 그대로 엮은 최초의 책이다. 당시 신문 지면의 1940년대 식 맞춤법 그대로 편집했다.
통속소설이라고 지칭되는 소설의 인물들은 대개 예외적인 이력을 지닌다. ≪순애보≫ 역시 그러하다. 중심인물인 최문선과 윤명희는 모두 범상치 않은 가문에서 태어났다. 문선의 아버지는 독립운동을 하다 간도에서 사망한 것으로 암시되며, 명희는 목회뿐 아니라 사회활동을 하는 목사의 딸이다. 문선은 아버지의 사망 후 경제적으로는 어려워져 진학을 하지 못했지만, 아이들을 가르치며 문학·음악·미술 등 예술적인 취미와 재능을 생활 속에서 발휘하며 살아가고 있다. 명희의 집안은 목회자의 집안이지만 경제적으로 궁핍하지 않으며, 명희 역시 이화여전을 나온 지식인 여성으로 예술적 취미나 지성을 두루 갖추었다. 
“그림과 성악에 천재적 재질을 가젓슬 만 아니라 글을 잘 짓기에 비범한 천분을 가지고 있”는 문선과 “얼굴 잘생기고 얌전하고 공부 잘 하고 글 잘 짓는” 명희의 사랑은 그 자체로 호기심의 대상이 된다. 이 두 인물은 올곧은 심성과 의식을 지니고 서로를 믿는다. 특히 인순을 강간 살해한 누명을 쓴 문선을 명희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이들의 사랑에 장애가 되는 것은 둘 사이의 오해나 다른 사람의 훼방이 아니라, 운명적인 사건뿐이다. 그러나 결국 많은 우여곡절을 이겨내고 둘은 사랑을 쟁취한다. 이러한 서사구조는 우리 전통 서사의 기본인 ‘혼사장애담’이며, ‘영웅의 일대기’라고 할 수 있는 것으로, 그 자체로 친숙하며 동시에 낯설다. 독서의 전통상 익숙하고, 인물들의 생활이나 취향이 일반적인 대중들의 그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낯선 것이다. 


☑ 책 속으로

**≪초판본 순애보≫ 3∼4쪽

“누군지 아라 맛치세요.”
물결치는 해변에 이-젤(畵架)를 세워 노코 캔스에 그림을 그리기에 열중하는 최문선(崔文善)의 뒤에서 갑자기 소리 업시 이러케 무언의 질문을 던지는 이가 잇다.
“…?”
문선은 반사적으로 억개를 움추리면서 그림을 그리든 붓을 왼손에 옴겨 쥐고 바른손으로 자기의 눈을 가리운 사람의 손을 만져 본다.
그것은 부드러운 여자의 손이다.
‘누굴가?’
하고 속으로 말하는 문선은 
“인순 씨가 아니신가요?”
하고 뭇는다.
“노-”(아니요)
문선의 두 눈을 잡은 사람은 목소리를 변하여서 대답한다.
“멀 인순 씬데… 바로 맛첫지요?”
문선의 이 말에
“노-”
하고 그는 다시 대답한다. 
“암만 부인해도 인순 씬 걸 어케 해요?”
“노-”
여전히 부인한다.
“그럼 인순 씨 대신에 거짓말하는 인순 씨가 새로 탄생해서 오신 게로군.”
문선이 놀리는 말에
“아이 선생님두!”
하고 그제야 인순은 문선의 눈에서 손을 다. 


☑ 지은이 소개

박계주는 1913년 7월 26일 간도 용정에서 태어났다. 만주의 구산소학교를 졸업하고, 영신소학교에 편입한 후, 1927년 6년제 영신중학교에 입학하여 1932년에 졸업했다. 중학교 재학중이던 1927년 단편 <적빈>으로 ≪간도일보≫ 신춘문예에 입선했다. 
1933년 가을 평양의 예수교회 중앙선도원으로 가, 총무국에서 ≪예수≫지 편집을 하며, 기독교에 관한 글 30여 편을 발표하였다. 1938년 ≪매일신보≫ 장편 현상 모집에 ≪순애보≫를 기고하여 당선되었다. 해방 후에는 김영수·조풍연 등과 함께 출판사 ‘고려문화사’를 차렸고, ≪민성≫ 주간, ≪한성일보≫ 취체역 겸 편집고문, 자유문학가협회 초대 사무국장·중앙위원을 지내기도 했다. 6·25 때 납북 도중 작가 박영준·김용호 등과 탈출한 후 백마고지, 지리산 전투에 종군했다. 1962년 ≪동아일보≫에 소설 ≪여수≫를 연재하던 중, ‘우리나라가 신탁통치를 받았더라면 중립국이 되었을 것이다’라는 언급이 문제 되어 집필을 중단하는 필화사건을 겪었다. 1963년 5월 21일 연탄가스 중독 후유증으로 병을 얻어 고생하다가 1966년 4월 7일 밤 세상을 떠났다.


☑ 엮은이 소개

곽승미는 이화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1930년대 후반기 한국문학과 근대성≫과 ≪근대의 첫 경험≫(공저), ≪일제 시기 근대적 일상과 식민지 문화≫(공저)가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소설의 통속성에 대한 연구인 <≪순애보≫에 나타난 관계의 미학으로서의 통속성>, <새로움에 대한 선망과 공포의 불균형-1930년대 통속소설의 한 양상, 방인근의 ≪방랑의 가인≫>, <근대 계몽기 서사의 이국 취향을 통해 본 문화의 재배치 과정> 등과 기행서사에 대한 연구인 <식민지 시대 여행 문화의 향유 실태와 서사적 수용 양상>, <세계의 위계화와 식민지 주민의 자기응시> 등이 있다. 현재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 목차

바다에서 생긴 일
죄 업는 거즛말
동심(童心)
저진 그림
과거(過去)
두 여자
새로 온 사람
위괴양(胃潰瘍)
純情의 給血
애원(愛怨)
포옹(抱擁)
마음의 정조(貞操)
제삼포옹(第三抱擁)
새 출발(出發)
암초(暗礁)
아름다운 죄
반레(返禮)
인간페물(人間廢物)
사형수(死刑囚)의 노래
환멸(幻滅)
오해(誤解)
이혼(離婚)
일식(日蝕)
십자가(十字架)
바다 건너의 출세
기화(奇禍)
사랑의 복수(復讐)
유혹(誘惑)
애욕분류(愛慾奔流)
조락(凋落)
익선자(匿善者)
참회(懺悔)
제이탄생(第二誕生)
현란지옥(絢爛地獄)
겸허(謙虛)
분화구(噴火口)
불망초(不忘草)
조수 밀린 뒤
종용(慫慂)
애소(愛訴)
동심천국(童心天國)
수마(水魔)
구호반(救護班)
가엽슨 사람
사랑의 밀사(密使)
지려(砥礪)
적은 비극(悲劇)
희생(犧牲)
향연(饗宴)
눈물의 독창회
슬픈 대면(對面)
수도원(修道院)으로
‘쇼팡’의 이별곡
혈연조(血戀調)
生의 伴奏者
해설
지은이에 대해
엮은이에 대해



2014년 8월 14일 목요일

이익상 작품집



도서명 : 이익상 작품집
지은이 : 이익상
엮은이 : 박연옥
분야 : 한국 소설
출간일 : 2010년 3월 15일
ISBN : 9788964063323 03810
가격 : 16000원
규격 : 138 * 195 mm  제본 : 양장 쪽 : 180쪽.




☑ 책 소개

「지만지 고전선집」 제533권 『이익상 작품집』. 이 시리즈는 국내외 고전 작품을 정리한 책이다. 표지에 사용한 색상은 이 시리즈를 위해 개발한 고유 색상이며, 표지와 본문은 모두 친환경 재질을 사용했다. 초판본을 그대로 실을 수 없는 작품은 원전에 가장 근접한 것을 사용했다. 엮은이가 직접 작품 리스트를 선정하고 원전을 찾아냈으며 전문 해설을 덧붙였다.


☑ 지은이 소개

이익상
저자 이익상은 1895년 지금의 전라북도 전주시 태평동에서 전주 이씨 건한과 김해 김씨 성녀 부부의 두 형제 중 차남으로 출생했다. 본명은 이윤상(李允相), 호는 성해(星海). 

이익상의 문학적 행보는 한국 근대문학사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우선, 1920년 김억·남궁벽·우상순·황석우·변영로·나혜석·염상섭 등이 창간한 동인지 <폐허>에 참여했으며, 1921년 ‘도쿄 조선인유학생학우회’의 기관지인 <학지광> 편집부원을 지냈다. 1924년 김기진·박영희·안석영·김복진·연학년·이익상·이상화 등과 그들의 성과 이름의 머리글자를 따서 <파스큘라(PASKYULA)>를 결성하고 ‘인생을 위한 예술’ ‘현실과 투쟁하는 예술’ 운동을 표방했다. 1925년 파스큘라와 1922년 조직된 최승일·송영·김영팔 등의 좌익 문학 단체 <염군사>를 통합해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APF)>을 결성했다. 그러나 1926년 12월에 개최된 <카프> 임시 총회에서 자진 탈퇴하는데, 투철한 사회주의 이념으로 무장된 투사를 필요로 하는 조직과 부합되지 않는 그의 성격이 그 원인으로 보여진다. 
이익상은 1924년 9월 <조선일보> 기자로 출발해 1927년 11월 <동아일보> 학예부 기자와 학예부장을 역임한 뒤에 1930년 2월부터 <매일신보> 편집국장 대리로 재직하는 등 언론계에서 오랫동안 근무했다. 이익상은 당시 지식인들의 관심 분야인 영화와 연극에까지 폭넓은 관심과 활동을 전개해 나갔는데, 1926년에는 김기진·윤심덕 등과 함께 진보적 연극단체 <백조회>를 결성했으며, 1929년에는 김홍진·박승희·김팔봉 등과 동양영화사를 출범시키기도 했다. 같은 해에 이익상(<매일신보>)은 이서구(<매일신보>), 김기진(<중외일보>), 안석영(<조선일보>) 등 주요 신문사 영화 담당 기자들과 영화산업의 진흥을 위해 <찬영회>를 조직했다. <찬영회>에서는 출범 기념으로 최승희의 무용과 극단 토월회의 연극 공연, 영화 상영회 등을 개최했으나, 1931년 1월 나운규가 주도한 ‘찬영회 사건’을 계기로 해산했다. 
작가와 언론인으로, 그리고 문화운동가로, 당대 지식인들이 선망했던 이상적인 경력의 소유자인 이익상도 식민지 지식인의 생활고는 비켜 가지 못했다. 이익상은 불안정한 생활과 고혈압, 대동맥경화증 등 신병으로 오래도록 고생하였는데, 특히 투병 중이던 최서해에게 대량 수혈한 후유증으로 1935년 4월 유명을 달리했다. 
그가 남긴 주요 작품으로는 단편소설 <낙오자>(1919), <번뇌의 밤>(1921), <연의 서곡>(1924), <흙의 세례>(1925), <쫓기어 가는 이들>(1926), <그믐날>(1927) 등과 장편소설 ≪키 잃은 범선≫(<조선일보>, 1927. 1. 1.∼7. 19), ≪짓밟힌 진주≫(<동아일보>, 1928. 5. 5.∼11. 27), ≪그들은 어디로≫(<매일신보>, 1931. 10. 3.∼1932. 9. 29) 등이 있고, 작품집으로 1926년에 발표된 ≪흙의 세례≫(문예운동사)가 있다..



☑ 옮긴이 소개

박연옥
엮은이 박연옥은 1971년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대학원에서 현대문학(소설)을 공부하고 있으며, 현재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학위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2007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에 당선되어, 한없이 느린 걸음으로 비평 활동 중이다.



☑ 책 속으로

나는 ‘테로리스트’가 되지 못하엿다. 그러한 모험할 성격이 업는 것은 큰 유감이다. 명예와 공리만을 위하야 인간의 참생활에서 거리가 너무나 머른 단적(端的)문제만에 구니(拘泥)하는 이매망량(?魅??)과는 언제?지든지 길을 가티 할 수 업다. 나는 그러한 비열(卑劣)한 생활수단을 취하야 사회?으로 성공자가 되는 것보다 차라리 자긔 량심을 속이지 안코 진실(眞實)한 내면(內面)의 요구에 응(應)하기 위(爲)하야는 사회?으로 실패자(失敗者)가 됨을 도리혀 깃버한다. 

-<흙의 세례>



☑ 목차

해설 

지은이에 대해 



번뇌(煩惱)의 밤 
흙의 세례(洗禮) 
쫏기어 가는 이들 
그믐날 
어엽분 악마(惡魔) 



엮은이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