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일본 수필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일본 수필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15년 1월 30일 금요일

지쿠마 강 스케치(千曲川のスケッチ)


도서명 : 지쿠마 강 스케치(千曲川のスケッチ)
지은이 : 시마자키 도손(島崎藤村)
옮긴이 : 김남경
분야 : 일본 / 수필비평
출간일 : 2015년 1월 15일
ISBN : 979-11-304-6062-8 03830
가격 : 18000원
규격 : 사륙판    제본 : 무선제본    쪽 : 210쪽




☑ 책 소개

시마자키 도손. 낭만주의 시인이 자연주의 소설가로 변신하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을까? 그 해답이 이 수필집에 있다. 지쿠마 강가의 척박한 농촌 마을 고모로에서 그는 인간을 보고 자연을 본다. 말 그대로 ‘스케치하듯’ 사실 그대로 그려 낸 글 속에서 그의 정신적 뿌리를 찾을 수 있다.


☑ 출판사 책 소개

시마자키 도손 문학의 양대 산맥은 센다이(仙台) 시절의 ‘시’와 고모로(小諸) 시절의 ‘산문’에서 비롯한다.
도손은 이십 대 초반, 조용하고 적막한 센다이에서 일본 근대시의 출발을 알리는 ≪새싹집(若菜集)≫을 통해 낭만주의 시인으로 명성을 얻었다. 그리고 10년 후, 검은 돌과 모래, 황량한 고모로에서 인간과 자연을 객관적으로 묘사한 ≪파계(破戒)≫를 통해 자연주의 소설가로 우뚝 섰다. 산문으로의 전환은 도손 문학의 변신과 동시에 일본 문단에 파장을 일으켰다는 측면에서 문학사적 의의가 크다. 
센다이에서 청춘 연애시집 ≪새싹집≫, ≪일엽편주(一葉舟)≫, ≪여름풀(夏草)≫ 세 권을 1년 사이 잇달아 발표하며 시의 형태를 새롭게 개척한 도손은 1897년 7월 도쿄(東京)로 돌아왔다. 촉망받는 시인의 기쁨도 잠시, 그의 꿈을 펼치기엔 문단 현실은 암울했다. 당시 시인의 사회적 위치는 매우 낮았고 일본어로 시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 한계를 느끼며 심적 고통을 겪었다. 1898년 4월 도손은 뜬금없이 피아노를 배우기 위해 도쿄음악학교에 입학해 주변 문인들을 놀라게 했는데, 당시 절박했던 상황에서 그는 시와 음악의 상관성에 주목해 시의 새로운 리듬 모색에 나선 것이었다. 그러나 계속되는 생활고의 압박과 큰형 히데오(秀雄)의 연이은 사업 실패로 경제 위기는 극에 달했다. ‘새로운 자연, 새로운 태양, 새로운 청춘’을 자유롭게 구가하던 시인의 열정은, 생존이란 암담한 현실로 인해 좌절을 맛보며 고전을 면치 못했다.
결국 도손이 고모로행을 택한 이유는, 정신적·재정적 부담에서 탈피하고 싶은 마음에서, 그리고 ‘자신을 좀 더 신선하고 간소하게 하는 것’을 찾기 위해서였다. 1899년 4월 그는 도쿄를 떠나 기무라 구마지(木村熊二)가 창립한 고모로의숙(小諸義塾) 교사가 됐다. 부임 직후 이와모토 젠지(岩本善治) 소개로 메이지(明治)여학교 출신 하타 후유코(秦冬子)와 결혼해 가정을 꾸렸다. 이듬해, 장녀 미도리(緑)에 이어 다카코(孝子)와 누이코(縫い子)까지 가족이 늘면서 교사의 박봉으로 생활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청춘을 노래하며 연애와 정열을 읊던 로맨틱한 꿈에서 벗어나 생활과 예술을 병행해야 하는 현실의 혹독함과 맞닥뜨리게 되면서 도손은 네 번째 시집 ≪낙매집(落梅集)≫(1901)을 끝으로 침묵의 3년을 보내야만 했다. 그 시기에 쓴 ≪낙매집≫에 수록된 <구름(雲)>은 ‘자연의 성서’, ‘산문의 서사시’로 불리는 러스킨의 ≪근대 화가론≫에 나온 구름 관찰을 응용한 산문시다. 
이전에 시에 음악을 접목했던 도손은 산문 습작으로 회화(繪畵)에 주목했다. 같은 시기 부임한 미술 교사이자 수채화가인 미야케 가쓰미(三宅克己)에게 ‘사물을 바르게 보는 법’으로 사생(寫生)을 배워, 날마다 화가가 사용하는 삼각대를 들고 신슈(信州)의 황량한 고원으로 나가 농촌 생활과 사계절의 변화를 스케치하며 새로운 언어 표현의 지평을 넓혔다. 단순한 자연 묘사나 풍경 묘사가 아닌, 혹심한 추위와 더위 속에서 치열한 삶을 영위하는 농민의 고단한 일상을 허위와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 실감나게 스케치하고자 했다. 고모로의 거친 자연과 맞서 투쟁과 순응을 반복하는 농부들의 지혜와 검소한 생활을 직접 보고 느끼고 배운 7년간이 도손의 생활 양식은 물론 문학 형식까지 변화시켰다. “고모로에 시골 교사로 가서 학생이 되어 돌아왔다”는 고백에서 그의 삶에 일어난 혁신적 변화를 읽어 낼 수 있다.
산문의 본격적인 습작으로, 지쿠마(千曲) 강 일대와 아사마(浅間) 산록의 고원, 검은 돌과 모래, 열풍까지 자연과 인간을 관찰해 작품화한 것이 ≪지쿠마 강 스케치(千曲川のスケッチ)≫다. 스케치한 당시의 수첩이 소실되어 그 시작과 내용, 스타일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현행 ≪지쿠마 강 스케치≫는 과거의 자료를 근거로 했다. 또한 ≪중학세계(中學世界)≫라는 발표지 성격을 고려해 젊은이들이 읽기 쉬운 것을 선택, 수정해서 은인 요시무라 다다미치(吉村忠道)의 자녀 시게루(樹) 앞으로 쓰는 형식을 취했다.
작품은 표제가 보여 주듯, 아사마 산록의 고모로와 기타사쿠(北佐久) 지방을 중심으로, 때로는 미나미사쿠(南佐久)의 지쿠마 강 상류 일대, 때로는 하류의 나가노(長野)와 이이야마(飯山)를 여행한 견문도 포함해, 지쿠마 강 유역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 행사, 풍물 등, 지방 풍토의 실태를 연구하고 스케치한 것을 기초로 했다. 계절 변화를 기본 구성으로 풍토적 자연과 인간적 자연을 사실적으로 그려 내려 시도했다. 고모로의 현실 생활의 혹독함을 자본주의적 경제 사회의 현실로 인식한 것이 아니라, 원시적, 야성적, 본능적인 인간의 생태, 즉 인간적 자연 또는 생활 형태로서 오히려 생리적으로 체감하고 있다는 것이 특이하다. 나아가 고모로의 자연이 얼마나 뿌리 깊이 그의 정신적 풍토가 되고 도손 문학의 방향을 결정짓는 요인이 되었는지도 엿볼 수 있다.


☑ 책 속으로

·“좀 더 나 자신을 신선하게 그리고 간소하게 할 수는 없을까?” 
이는 내가 도회 공기 속에서 빠져나와 그 산간 지방으로 갈 때의 마음이었다. 신슈 농민들 속으로 들어가 여러 가지를 배웠다. 시골 교사로서 나는 고모로의숙(小諸義塾)에서 마을 상인이나 옛 무사, 농민의 자녀를 가르치는 것이 직업이었지만, 또 한편으론 나 역시 학교 사환이나 학부형으로부터 배웠다. 결국 7년의 긴 세월을 산 위에서 보냈다. 내 마음은 시에서 소설을 택했다. 이 글은 3, 4년 정도 지방에서 침묵하던 시절의 인상이다.

·경사를 따라 아카사카(赤坂, 고모로 마을의 일부)의 연이은 집들이 보이는 곳으로 나왔다.
아사마 산기슭에 있는 마을들이 잠에서 깼을 때다. 아침밥 짓는 연기가 왠지 습한 공기 속으로 계속 올라간다. 닭 우는 소리도 여기저기서 들린다.
벼 익어 가는 논 주위로 콩도 꼬투리를 드리우고 있다. 벼 중에 벌써 아래 잎사귀가 노랗게 된 것도 있다. 9월도 중순이 지났다. 벼 이삭은 다양해서 어떤 것은 참억새 이삭 색처럼 보이고 어떤 것은 완전히 풀빛, 어떤 것은 붉은 털 송이를 숙인 모양인데 그중에서 짙은 다갈색 벼 이삭이 찹쌀을 심은 논이란 것은 나도 분간이 된다.
아침 햇살은 산골짜기마다 비친다.
논길에 난 잡초는 내 발을 적시며 간지럽게 한다. 그 사이를 돌아다니며 귀뚜라미 우는 소리를 들었다. 이 계절, 아사마는 어떤 날은 여덟 번 가량 연기를 내뿜을 때가 있다.
“아! 또 아사마가 불탄다”며 주고받는 말이 그 고장 사람의 습관이다. 남자나 여자는 일하던 손을 멈추고 밖으로 나와 본다. 하늘을 쳐다보면 반드시 아사마 쪽에서 어마어마하게 큰 연기 덩어리를 목격한다. 그럴 때면 화산 기슭에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런 곳에 사는 데 익숙해진 사람은 평소엔 그런 사실도 잊고 살기 일쑤다. 아사마는 큰 폭발로 인해 붕괴된 산으로, 지금 말하는 깃파(牙齒) 산이 옛날 분화구의 흔적이라고 다들 생각한다. 산 형상에 뭔가 호기심이 발동해 오는 여행객은 대개 실망한다. 아사마 산뿐 아니라 다테시나(蓼科) 산맥을 보더라도 기이함이 전혀 없는 것들뿐이다. 단지 재미있는 것은 산 공기다. 어제 다녀 본 산과 오늘 다녀 본 산이 거의 매일 바뀐다.

·검사가 끝났다. 도살자는 무리 지어 몰려와, 소리로 달래거나 야단치며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 소를 억지로 도살장으로 끌어넣었다. 도살장은 마루방으로 마치 넓은 욕탕의 몸 씻는 데처럼 돼 있다. 방심한 소를 확인하고 도살자 중 한 사람이 가느다란 삼끈을 앞뒤 다리 사이로 던졌다. 끈을 꽉 졸라매자 소는 중심을 잃고, 육중한 몸이 옆으로 넘어지면서 바닥에 쓰러졌다. 그 직전에 이마 언저리를 겨냥해, 예의 큰 도끼의 날카롭고 뾰족한 철관으로 내리치는 사람이 있었다. 소는 눈을 돌리고 발을 버둥거리더니, 콧김도 하얗고 희미한 신음 소리를 남기고 숨이 끊어지려 했다.
아직 숨이 남아 있는 남부 소를 둘러싸고, 도살자 중 어떤 이는 꼬리를 끌고, 어떤 이는 가느다란 삼끈을 잡아당기며, 어떤 이는 식칼로 목 부근을 잘랐다. 그사이 많은 사람이 쓰러진 소 위에 올라타 갈색 배 언저리, 등 쪽 할 것 없이 마구 짓밟자, 검붉은 피가 잘린 목 쪽에서 흘러나왔다. 부서진 앞이마 뼈 사이로 막대기를 깊이 끼워 넣고 돌리며 도려내는 사람도 있었다. 숨이 있는 동안 소는 발버둥치며 신음하거나 발을 팔딱거리며 괴로워했지만 피를 다 흘리자 숨도 완전히 멎었다.
큰 검은 소가 쓰러진 모습이−앞뒤 다리는 하나씩 도살장 기둥에 묶인 채 우리 눈앞에 드러누웠다. 도살자 중 한 사람은 갈색 복부 가죽을 세로로 찢고 곧바로 다리 가죽을 벗기기 시작했다. 또 한 사람은 예의 큰 도끼를 휘둘러 소머리를 두어 번 치는 사이 흰 뾰족한 뿔이 뚝하고 마룻바닥에 떨어졌다. 남부 소의 검은 털가죽에서 흰 지방에 싸인 내용물이 드러난 것은 머지않아서였다.

·자네는 우유가 언 것을 본 적이 없겠지. 초록빛에 우유 향도 없다. 여기서는 달걀도 언다. 그걸 쪼개면 흰자도 노른자도 사각사각 씹힐 기세다. 부엌 개수대에 흐르는 물은 모두 꽁꽁 언다. 파뿌리, 차 찌꺼기까지 얼어붙는다. 불 켜진 창으로 약한 빛이 새어 나올 무렵, 뾰족한 식칼인지 뭔지로 개수대의 얼음을 꽝꽝 두들겨 깨는 광경은 따뜻한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그림이다. 밤을 넘긴 홈통의 물은 아침이 되면 반은 얼음이다. 그걸 햇볕에 쬐고 얼음을 두들겨 떨어뜨린 후 물을 퍼 담는 식이다. 단무지도 쓰케모노도 얼어서 씹으면 서걱서걱 소리가 난다. 어떤 때는 쓰케모노까지 더운 물로 헹구지 않으면 안 된다. 고용인의 손을 보니 거칠고 꺼뭇꺼뭇하며 피부는 찢어져 군데군데 붉은 피가 나고 물을 퍼 올릴 때는 장갑 끼고 두건을 쓰고 한다. 마루방에 걸레질한 자리가 금방 허옇게 얼어 버린 아침이 전혀 낯설지 않다. 밤이 이슥해지고, 방마다 기둥이 얼어 갈라지는 소리를 들으며 독서라도 하고 있으면 정말이지 추위가 뼛속까지 스며드는 느낌이다.


☑ 지은이 소개

시마자키 도손(島崎藤村, 1872∼1943)
도손(1872∼1943)의 본명은 시마자키 하루키(島崎春樹)다. 나가노현(長野県) 신슈(信州)의 기소(木曽)에서 7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에도(江戸)와 교토(京都)를 잇는 교통 요충지 기소에서 대대로 숙박업과 도매업을 운영하는 그 지역 유지이자 촌장을 지낸 유서 깊은 집안이다. 국학자였던 부친의 영향으로 ≪효경≫이나 ≪논어≫ 등을 읽어 한학적 소양이 잡혔다. 집안은 메이지유신 직후 몰락하고, 열 살이 되던 1881년 봄, 문명의 도시 도쿄로 상경한 도손은 요시무라 다다미치(吉村忠道) 집에 기거하면서 학교에 다녔다. 
초등학교 졸업 후 진학한 메이지학원은 기독교 학교로 교사 대부분이 외국인이었다. 이 시기에 셰익스피어나 바이런, 워즈워스 등 서양 문학에 심취하는 한편, 평생 스승으로 존경한 마쓰오 바쇼(松尾芭蕉)나 사이교(西行) 등 일본 문학도 섭렵하며 문학의 꿈을 키웠다. 졸업하던 해에 메이지여학교 교사가 됐다. 이듬해, 시인 기타무라 도코쿠(北村透谷)와 함께 잡지≪문학계≫를 창간해 동인으로 극시와 수필을 발표하며 문학가로 나섰다. 
도코쿠의 자살 그리고 여학교 제자이자 첫사랑 사토 스케코(佐藤輔子)의 병사(病死)에 충격을 받은 도손은 1896년 도쿄를 떠나 센다이 도호쿠학원 교사가 됐다. 센다이의 자연을 벗 삼아 시 창작에 전념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와카(和歌)나 하이쿠(俳句) 외에 일본어로 새로운 시를 쓴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고 신체시인들은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존재였다. 심지어 경멸 대상이었던 까닭에 도손은 숨어서 ≪새싹집≫을 쓴 적도 있다고 했다. 그런 극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새싹집≫은 근대인의 감정과 사고를 대변하는 일본 근대시의 모태가 됐다. 이후 ≪일엽편주≫, ≪여름풀≫을 잇달아 발표해 메이지 낭만주의 시인으로 명성을 떨쳤다. 
1897년 도쿄로 돌아온 도손은 일본어 시의 한계와 가중되는 경제적 부담에서 벗어나고자 1899년 신슈 고모로의숙 교사가 됐다. 고모로에서 하타 후유코와 결혼해 딸 셋을 키우며 산촌 지방의 낯섦과 현실적 생활 문제에 봉착하게 됐다. 1901년 마지막 시집 ≪낙매집≫을 끝으로 ‘시에서 산문’으로 전향하는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문학 양식의 탐색은 외국의 단편 작가, 극작가, 국내외 인상파 화가로 집중된다. 러스킨의 ≪근대 화가론≫이나 다윈의 ≪종의 기원≫,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에서 자연과학적 관찰을 배양하는 한편, 투르게네프의 ≪사냥꾼의 일기≫에서 회화를 보는 듯한 신비한 인상을 받았다. 또한 화가와 친밀했던 체호프나 모파상의 작품에 나타난 인상의 ‘청신함’과 ‘단순함’을 통해 인간의 심리 해부에 주목하게 된다. 시대 분위기 역시 문학과 회화, 즉 글과 삽화, 장정의 접목이 활발했고 일본 예술계에서 인상주의 영향이 절정을 이루고 있었다. 이와 같은 새로운 조류에 발맞춰 도손은 같은 시기에 부임한 미술 교사이자 시슬레에게 사사한 수채화가 미야케 가쓰미(三宅克己)에게 사생(寫生)을 배워 사생문을 성공시킨 것이 ≪지쿠마 강 스케치≫다. 훗날 자신의 산문은 ‘이 스케치로부터 출발했다’[≪선집(選集)≫ 상권 서(序)]고 말한 바 있다. 
고모로에서 7년 남짓 생활하는 동안, 러일전쟁을 비롯해 딸 셋이 죽고 부인마저 야맹증에 걸리는 등 가혹한 시련을 겪으며 죽을 각오로 쓴 작품이 장편 소설 ≪파계≫(1906)다. 일본 문단을 새롭게 장식한 이 작품을 계기로 도손은 자연주의 소설가로 인정받게 됐다. 곧바로 장편 소설 ≪봄≫(1908)과 ≪집≫(1910)을 잇달아 발표했다. 이후 ≪신생≫(1918)은 넷째 류코(柳子)의 출산 후유증으로 죽은 부인을 대신해서 집안 살림을 도와주던 조카딸 고마코와의 불륜을 소재로 해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만년의 ≪동트기 전≫(1932)은 1853년부터 1886년까지의 사회 변천사를 그린 작품으로, 교토와 에도를 잇는 기소 가도(街道)를 중심으로 그 시대에 살았던 자신의 아버지를 모델로 한 역사 소설이다. 그리고 1936년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제10회 국제펜클럽대회에 참가한 여행기 ≪순례≫(1940)가 있다. 마지막으로 1943년 8월 22일 미완성 작품 ≪동방의 문≫을 쓰다가 뇌출혈로 쓰러진 뒤 “시원한 바람이구나”라는 말만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의 유해는 말년에 살았던 오이소(大磯) 해변의 지후쿠사(地福寺)에 안치되었고 유해 일부는 고향 마고메(馬込) 에이쇼사(永昌寺)에 있는 가족 묘지에 분장되었다. 도손의 인생은 한마디로 파란만장했다. 시대적으로는 메이지(明治)·다이쇼(大正)·쇼와(昭和)를 거치며, 청일전쟁, 러일전쟁, 제1차 세계 대전, 중일전쟁, 제2차 세계 대전까지 겪어 낸 굴곡 많은 삶이었던 만큼, 도손은 시와 수필, 소설, 동화 등 장르를 초월해 진정한 작가로 자리매김한 일본 근대 문학가다.


☑ 옮긴이 소개

김남경
김남경은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에서 일본 근대 문학을 전공했고 <시마자키 토오송(島崎藤村)의 수필 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명지전문대학 일본어과 초빙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도손은 여러 문학 장르를 아우르는 만큼 에세이스트·휴머니스트·모럴리스트로서 매력을 지닌 작가다. 특히 그의 수필은 작가의 단순한 인생 도큐먼트가 아니라 예술적 인생의 증언이라고 간주해 연구 테마로 삼았는데 수확은 제법 컸다. 시에서 산문으로 이행하는 시기의 수필 ≪지쿠마 강 스케치≫가 도손 문학은 물론 일본 근대 수필의 백미로 꼽히는 근원을 찾는 과정에서, 시인이었던 그가 인상파 화가의 기법인 사생(寫生)을 문장에 도입해 문학 양식에 독자적인 새 지평을 열었다는 점에 주목하게 됐다. 수필 초기에 사생문을 시작으로 기행문, 감상집으로 표현 양식을 변용해 온 도손 문학의 행로를 지금껏 탐구했다. 이후로 시대상을 잘 반영하는 현실성이 짙은 여행 작품을 통해 기행 수필이 대중 문학으로서 갖는 문학적 가치와 필요성을 찾고자 한다.
대표 논문으로는, 산문시에서 수필을 시도한 <시마자키 도손의 <7일간의 한담> 고찰>과 장르 의식의 변화를 살펴본 <시마자키 도손의 <수채화가>론>, 그리고 만년의 감상 수필에 나타난 아포리즘을 분석한 <시마자키 도손의 인생철학> 등이 있다.


☑ 목차

서문 ·······················3
그 하나 ······················7
학생의 집 ···················7
하늘소 애벌레 ················11
에보시 산록의 목장 ··············11
그 둘 ······················18
청보리 익을 무렵 ···············18
소년들 ···················19
보리밭 ···················21
고성의 초여름 ················24
그 셋 ······················33
산장 ····················33
해독제 파는 여자 ···············38
은바보 ···················39
마쓰리 전야 ·················40
13일의 기온 마쓰리 ··············42
마쓰리가 끝나고 ···············47
그 넷 ······················49
나카다나 ··················49
졸참나무 그늘 ················55
그 다섯 ·····················56
산속의 온천 ·················56
학창 하나 ··················59
학창 둘 ···················61
시골 목사 ··················61
9월의 논길 ··················62
산중 생활 ··················64
산지기 ···················68
그 여섯 ·····················73
가을 수학여행 ················73
고슈 가도 ··················74
산촌의 하룻밤 ················76
고원 위에서 ·················78
그 일곱 ·····················85
낙엽 하나 ··················85
낙엽 둘 ···················86
낙엽 셋 ···················87
고타쓰 이야기 ················88
음력 10월 ··················91
초겨울, 그 언덕가 ··············92
농부의 생활 ·················95
수확 ····················99
유랑자의 노래 ················103
그 여덟 ·····················105
1전짜리 식당 ················105
소나무 숲 속 ················107
깊은 산의 불빛 ···············111
산 위의 아침 ················116
그 아홉 ·····················120
설국의 크리스마스 ··············120
나가노 관측소 ················126
철도풀 ···················127
소 도살 하나 ················128
소 도살 둘 ·················132
소 도살 셋 ·················135
소 도살 넷 ·················137
그 열 ······················141
지쿠마 강을 따라 ··············141
강배 ····················144
눈의 바다 ··················147
사랑의 증표 ·················149
산 위에서 ··················150
그 열하나 ····················152
산에 사는 사람들, 하나 ············152
산에 사는 사람들, 둘 ·············155
산에 사는 사람들, 셋 ·············158
야나기다 모주로 ···············160
소작인의 집 ·················161
그 열둘 ·····················172
길가의 잡초 ················172
학생의 죽음 ················175
따뜻한 비 ··················177
기타야마의 늑대, 그 외 ············178
·····················180
봄의 태동 ··················182
·····················183
첫 번째 꽃 ·················183
산촌의 봄 ··················184

해설 ······················187
지은이에 대해 ··················194
옮긴이에 대해 ··················198


2014년 1월 15일 수요일

이즈미시키부 일기 和泉式部日記


도서명 : 이즈미시키부 일기 和泉式部日記
지은이 : 이즈미시키부(和泉式部)
옮긴이 : 노선숙
분야 : 수필비평
출간일 : 2014년 1월 16일
ISBN : 979-11-304-1196-5  03830
가격 : 18000원
사륙판 / 무선제본 / 282쪽



☑ 책 소개

헤이안시대, 그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사랑하고 열정적으로 살았던 이즈미시키부. 2000수가 넘는 시가를 남긴 헤이안 최고의 여성 가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감정에 솔직했기 때문이었다. 이 일기는 사랑했던 이의 동생인 아쓰미치 황자를 처음 만나 사랑하는 사이가 되기까지의 일화를 담았다. 빼어난 145수의 와카는 이 작품의 백미다.


☑ 출판사 책 소개

≪이즈미시키부 일기≫(이하, ≪일기≫라 약칭)는 레이제이(冷泉) 천황의 넷째 아들인 아쓰미치(敦道) 황자와의 사랑이 이루어지기까지 십여 개월에 걸친 미묘한 마음의 동요를 기록한 사랑의 수기다. ≪청령 일기≫가 미치쓰나 어머니의 반생을 기록한 것이라면, ≪일기≫는 아쓰미치 황자와의 사랑의 한 토막을 기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일기≫가 아닌 ≪이즈미시키부 모노가타리(和泉式部物語)≫라는 제목으로 된 필사본도 있으며, 일기 작품 속에서 이즈미시키부가 자기 자신을 ‘여자’라는 제삼인칭으로 칭하고 있어 소설적 요소를 가미한 점이 특징이다. 
≪일기≫는 이즈미시키부와 황자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나 그들의 심경을 묘사하는 평서문과, 두 사람이 나눈 서간문−서간문에는 주로 와카가 실려 있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와카와 함께 짧은 문장이 곁들여지기도 한다−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구성 속에서, ≪일기≫는 145수의 와카가 중심축이 되어 이야기를 전개하는 독특한 서술 방식을 취하고 있다. 작품 내에 삽입된 와카의 빈도는 동시대의 다른 일기 작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일기 문학이라기보다 노래가 중심이 된 이야기집인 우타모노가타리(歌物語)와 같은 성격도 엿보이는 작품이다.

* 함께 읽으면 좋은 책
헤이안 일기문학의 효시 ≪기노 쓰라유키 산문집≫(기노 쓰라유키, 강용자)
헤이안 여성 일기문학의 효시 ≪청령 일기≫(미치쓰나 어머니 / 정순분)
헤이안 수필문학의 효시 ≪마쿠라노소시 천줄읽기≫(세이쇼나곤 / 정순분)
헤이안 최초의 작가 일기 ≪무라사키시키부 일기≫(무라사키시키부 / 정순분)
헤이안 최초의 기행 일기 ≪사라시나 일기≫(다카스에의 딸 / 정순분)
헤이안 최초로 천황의 죽음을 그린 ≪사누키노스케 일기≫(사누키노스케 / 정순분)
세계 최초 장편소설 ≪겐지 이야기≫(무라사키시키부 / 김종덕)
≪겐지 이야기≫에 대한 최고의 해설서 ≪겐지 이야기를 읽는 요령≫(모토오리 노리나가 / 정순희)
헤이안 최초의 칙찬 와카집 ≪고금와카집≫(기노 쓰라유키 외 / 최충희)
일본 최초의 시가집 ≪만엽집 천줄읽기≫(유라쿠 천황 외 / 고용환, 강용자)


☑ 책 속으로

●한동안 장맛비가 이어져 견딜 수 없이 무료한 요 며칠 사이, 잔뜩 구름 낀 날이 계속되는 장마철의 음울함에, 여자는 ‘앞으로 황자님과의 관계는 어찌 되는 걸까’라는 끝도 없는 수심에 잠겨 있었다. ‘구애하는 남자들은 많지만, 지금의 나에게 그들은 아무런 의미도 없거늘, 세간에서는 그런 나를 곱게 보지 않고 이런저런 말들을 하고 있는 듯하다. 이것도 다 내가 목숨을 부지하고 있기 때문이겠지. 어디라도 좋으니 숨어 버리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며 힘든 나날을 보냈다. 그러던 참에 황자님으로부터 편지가 당도했다.

계속되는 장맛비의 무료함을 어찌 보내고 계시오?

멈추지 않는
여름 장맛비, 이는
당신 그리는
나의 눈물이라네
그대 헤아려 주오

おほかたに
さみだるるとや
思ふらむ
君恋ひわたる
今日のながめを 

우울한 5월의 정취를 간과하지 않는 황자님의 자상한 배려가 기뻤다. 자신의 처지와 앞일에 대한 걱정으로 울적했는데 때마침 황자님으로부터 전갈을 받았으므로,

나를 그리는
당신의 눈물이라
알지 못한 채
사랑받지 못하는 
처지 서글퍼했네 

慕ぶらむ
ものとも知らで
おのがただ
身を知る雨と
思ひけるかな

라는 노래를 적고는, 다시 그 편지의 뒷면에 또 한 수의 노래와 글월을 적어 보냈다.

●이런 전갈이 오고 간 뒤 이틀이 지나 해 질 녘에, 황자님께서는 아무런 기별도 없이 갑작스레 찾아오셔서는 방문 바로 앞에 우차를 대고서는 내리셨다. 어둠이 내리지 않은 이런 해 질 녘엔 여태껏 만나 뵌 적이 없었으므로 너무나도 수줍었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황자님은 이렇다 할 이야깃거리가 없이 다만 종잡을 수 없는 말씀만 하시고서는 돌아가셨다. 
그 후 며칠이 지났건만, 몹시 기다려질 정도로 아무런 연락도 주시지 않기에,

가을 저녁의
울적한 마음
달랠 길 없네 
며칠 전 당신 모습
또 다른 이유였네

くれぐれど
秋の日ごろの
ふるままに
思ひ知られぬ
あやしかりしも

정말이지 인간이란 존재는…. 

이라는 노래와 사연을 적어 보냈다. 이에 황자님께서는,

요 며칠간 격조했소. 하지만, 

당신은 몰라도
나는 잊지 않으리
세월 흘러도
그 가을날 해 질 녘
당신과의 만남을

人はいさ
われは忘れず
ほどふれど
秋の夕暮
ありしあふこと

이라는 답장을 보내 주셨다. 생각해 보면 종잡을 수도 없고, 믿고 의지할 수도 없는 이런 부질없는 노래에 삶의 기쁨을 느끼고 마음의 위안으로 삼으며 지내는 자신이 참으로 한심할 따름이다. 

●어느덧 10월이 되었다. 10월 10일 무렵, 황자님께서 찾아오셨다. 방 안쪽은 너무 어두워 으스스하고 침침했으므로 황자님께서는 여자와 함께 문가에 누워서 너무나도 친근하게 이런저런 말씀을 해 주셨다. 황자님의 말씀을 듣고 있노라니 여자의 마음은 더할 나위 없이 평온해졌다. 달은 짙은 구름에 가리어 있었고 때마침 차가운 비마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마치 두 사람을 위해 일부러 더할 나위없는 정취를 자아낸 듯한 정경이었으므로, 이런저런 생각에 심란해하던 여자의 마음에는 왠지 오싹할 만큼 한기가 느껴졌다. 심란해하는 여자를 보신 황자님께서는, ‘다른 사람들이 이 여인을 나쁘게만 말하는데 이상도 하지. 내 눈앞에 누워 있는 이 여인은 이리도 마음이 여린 사람인 것을’이라는 생각에 안쓰러워하셨다. 한밤중이 되었건만 여자가 눈을 감은 채 수심에 잠겨 잠 못 이룬다는 것을 알아채시고는 여자를 깨워 노래를 읊어 주셨다.

“초겨울 비도
이슬도 닿지 않은
사랑의 팔베개
이상히도 젖어 있는
팔베개 소맷자락”

時雨にも
露にもあてで
寝たる夜を
あやしく濡るる
手枕の袖

하지만 그녀는 단지 모든 것이 너무 힘겨워져 답변할 마음조차 들지 않았으므로 내리비치는 달빛에 아무런 말없이 주체할 수 없는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신 황자님께서는 애달파하며 “어찌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는 겁니까? 내 노래가 너무 형편없어 마음에 드시지 않은 겝니까? 내가 쓸데없는 노래를 지었나 봅니다”라고 말씀하셨다. 황자님의 말씀에 그녀는 “어찌 된 연유인지 그저 마음이 혼란스러워 그럽니다. 황자님이 읊으신 노래가 귀에 들어오지 않을 리 없습니다. 두고 보세요. 당신이 읊은 ‘팔베개 소맷자락’을 한시도 잊지 않을 테니”라고 농담조로 얼버무렸다.
동트기 전 귀가하신 황자님께서는 어젯밤 여자와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던 농밀하면서도 애잔한 분위기를 떠올리며, ‘그녀에게는 나 말고 의지하는 딴 남자가 없는 듯하니 애처롭군’이라는 생각을 하시고는 ‘지금 어찌 지내고 계십니까?’라는 서신을 보내오셨다. 이에 여자는 다음과 같은 노래를 읊어 보냈다.

밤새 흘린 눈물
오늘 아침엔 벌써
말라 있겠죠
나 위해 흘린 눈물
팔베개 소맷자락

今朝の間に
いまは消ぬらむ
夢ばかり
ぬると見えつる
手枕の袖

황자님께서는 여자의 노래에 ‘팔베개 소맷자락’이라는 구절이 있는 것을 보시고서는, 어젯밤 ‘팔베개 소맷자락은 잊지 않으리라’했던 여자의 말을 떠올리며 ‘역시 그녀는 매력적이야’라고 감탄하시며 이런 노래를 지어 보내셨다.

말라 버렸다 
그대 생각하지만
아직도 흠뻑
젖어 누울 수 없네
팔베개 소맷자락

夢ばかり
涙にぬると
見つらめど
臥しぞわづらふ
手枕の袖

●이런 일이 있고 나서 이삼일이 지났건만 황자님으로부터는 아무런 전갈도 없었다. 믿음직스런 태도로 말씀하셨던 일은 대관절 어찌 된 것인지, 줄곧 그 생각을 하고 있노라니 밤에 잠도 잘 수 없었다. 잠은 오지 않고, ‘벌써 한밤중이 되었네’라는 생각을 하며 누워 있는데 이때 대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나, 누굴까?’ 이 시각에 찾아온 사람이 누군지 전혀 짐작은 가지 않았지만 그래도 아랫사람을 시켜 알아보니, 황자님이 보내신 편지를 전달하러 온 동자였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시각이었으므로, ‘내 마음이 그분께 닿은 걸까?’라는 생각에 너무나도 기뻤다. 여닫이창을 열어 달빛 아래 편지를 펴 보니 이런 노래가 적혀 있었다. 

지금 당신도
나와 같은 맘으로 
보고 있는지
산 능선에 걸려 있는
청명한 가을 달을

見るや君
さ夜うちふけて
山の端に
くまなくすめる
秋の夜の月 

황자님이 보내신 노래가 여느 때보다 가슴에 와 닿았기에 여자는 자기도 모르게 달을 바라보며 황자님 노래를 읊조렸다. 대문도 열지 않은 채 편지만 받아 보았으니 동자가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생각에 얼른 답가를 지어 황자님께 전달하도록 건네었다.

밤이 깊도록 
잠 못 이루지만 
그대 생각나
달도 보지 못하네 
그대 너무 그리워

ふけぬらむと
思ふものから
寝られねど
なかなかなれば
月はしも見ず

황자님께서는 여자가 자신과 마찬가지로 달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노래를 보낼 줄 알았는데 예상과는 전혀 다른 답가를 받아 보시고서는, ‘역시 매력적인 여자야. 어떻게 해서라도 내 가까이에 두고 마음의 위안이 되는 노래를 화답하며 지내고 싶군’이라는 마음을 굳히셨다.


☑ 지은이 소개

이즈미시키부[和泉式部, 978?∼1035?)]
이즈미시키부의 출생 연도는 동시대의 다른 여성 작가와 마찬가지로 확실한 자료가 없다. 따라서 그녀를 둘러싼 육친, 또는 연인 등과 연령 차이를 고려해 추정할 수밖에 없는데, 대략 978년 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부친 오에노 마사무네(大江雅致)와 다이라노 야스히라(平保衡)의 딸인 모친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즈미시키부’라는 이름은 부친의 관직명인 ‘시키부(式部)’와, 첫 남편인 다치바나노 미치사다(橘道貞)의 부임지였던 이즈미(和泉) 지방의 지명에서 비롯했다고 전한다.
995년, 이즈미시키부는 18세에 다치바나노 미치사다(橘道貞)와 결혼한 것으로 추정된다. 결혼 이듬해에 미치사다와의 사이에서 딸 고시키부(小式部)를 출산한다. 미치사다의 이즈미 지방관 재임 기간은 999년부터 1003년까지로 알려져 있다. 다메타카 황자가 이즈미시키부 처소를 찾았다고 한다면 그 기간은 1000년부터 그 이듬해인 1001년 9월까지로 고작 1년 남짓인 것으로 추정된다. 
미치사다는 이즈미시키부가 아닌 다른 처자를 동반해 새로운 임지인 무쓰 지방관 생활을 시작했는데, 애당초 두 사람이 결별하게 된 원인은 미치사다가 새로운 부인을 만들었기 때문이며, 이에 이즈미시키부도 아쓰미치 황자와 사랑에 빠지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즈미시키부 생애에서 가장 농밀한 시기는 아쓰미치 황자와 함께한 때였을 것이다. 황자는 1007년 10월 2일 사망하므로, 1003년 4월 황자와의 관계가 시작된 이후 4년 정도의 짧은 기간이다. 이즈미시키부는 황자의 사십구재를 맞이해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만가를 읊는다. 
아쓰미치 황자가 사망한 지 1년 반 정도 지난 1009년 봄, 이즈미시키부는 이치조(一条) 천황의 중궁 쇼시(彰子: 후지와라노 미치나가의 딸)를 모시는 여관으로 출사한다. 궁정에서 여관으로 지내는 동안 미치나가의 가신이었던 후지와라노 야스마사(藤原保昌)와 만나게 되고, 이윽고 결혼에 이른다. 결혼한 시기는 확실하지 않지만, 대략 1009년에서 1011년 사이로 추정된다. 야스마사는 야마토(大和) 지방 지방관을 거쳐 1020년에는 단고(丹後) 지방의 지방관으로 임명되었고, 이때 이즈미시키부는 남편을 따라 단고 지방으로 내려간 것으로 전해진다. 
1027년 9월, 야마토 지방의 수령으로 가 있던 남편 후지와라노 야스마사를 대신해 황태후(후지와라노 미치나가의 딸)의 사십구재에 참석해 옥으로 만든 장신구와 와카를 지어 올렸다는 기록(≪영화 모노가타리≫)이 그녀에 관한 마지막 기록이다. 당시 그녀의 나이 50세 무렵이다. 이후 그녀의 행적은 묘연한데, 58세경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 옮긴이 소개

노선숙
노선숙(盧仙淑)은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어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이즈미시키부 일기의 심정 표현>에 관한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일본 쓰쿠바 대학 대학원 문예·언어연구과에서 <이즈미시키부 연구>로 석사 학위를, <이즈미시키부 가집 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8년부터 부산대학교 일어일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일본의 전통적인 시가 표현의 유형과 통사적 고찰을 통해 시어의 생성과 변용, 그리고 그 의미에 관한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저서에 ≪에로티시즘으로 읽는 일본 문화≫(공저, 2013), 옮긴 책에 ≪마음에 핀 꽃−일본 고전문학에서 사랑을 읽다≫(역서, 2013) 등이 있다.


☑ 목차

1003년 4월
1. 4월 10일이 지난 무렵 ··············3
2. 황자님과 처음으로 사랑을 나눈 밤 ········11
3. 주춤거리는 황자님 ···············20

5월
4. 4월에서 5월로 ·················27
5. 헛걸음이 되어 버린 황자님의 방문 ········36
6. 울적한 장맛비 ·················40
7. 5월 5일경 ···················45

6월
8. 달밤, 황자님과 한 우차를 타고 외박을 나감 ····55
9. 의혹을 품는 황자님 ··············63
10. 황자님의 방문 ················70
11. 여자를 둘러싼 터무니없는 추문 ········77

7월 
12. 7월 ·····················83

8월
13. 8월, 이시야마사(石山寺)로 향하는 여자 ·····93

9월
14. 9월 20일이 지난 무렵 ·············107
15. 감회를 적은 글 ···············110
16. 9월 말, 옛 연인에게 보낼 이별가를 대신 지어 달라는 황자님 ······················120

10월
17. 10월, 사랑의 팔베개 ·············127
18. 자택으로 들어올 것을 제안하는 황자님 ·····132
19. 편지를 전달하는 동자 ············138
20. 대낮에 찾아온 황자님 ············148
21. 가을비와 단 ·················157
22. 우차 안에서 뜨거운 사랑을 나눈 하룻밤 ····169
23. 황자님 저택으로 들어가기로 결심 ·······172
24. 황자님 저택으로 들어가기 전까지의 기간 ····180
25. 정이 가득 담긴 화답가 ············186

11월
26. 11월, 황자님 저택으로 들어가기 직 ······195
27. 마음의 위안을 주는 화답가 ··········208

12월
28. 12월 18일 ··················219

1004년 1월
29. 새해 정월 ··················227
30. 종국 ····················229

해설 ······················235
지은이에 대해 ··················253
지은이 연보 ···················268
옮긴이에 대해 ··················272


2013년 8월 12일 월요일

마사오카 시키 수필선(正岡子規隨筆選)


도서명 : 마사오카 시키 수필선(正岡子規隨筆選)
지은이 : 마사오카 시키(正岡子規)
옮긴이 : 손순옥
분야 : 일본 / 수필비평
출간일 : 2013년 8월 14일
ISBN : 979-11-304-1129-3
가격 : 18000원
사륙판 / 무선제본 / 250쪽




☑ 책 소개

하이쿠(俳句)와 단카(短歌)를 정립해 일본 근대 문학사에 지대한 업적을 남긴 마사오카 시키. 그러나 그의 삶은 짧고도 가혹했다. 29세부터 병상에서만 지냈고 모르핀 없이는 참기 어려운 고통에 시달렸다. 결국 35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떴다. 그러나 병상에서 쓴 수필에는 삶에 대한 열정과 인간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 가득하다. 고통 가운데서도 아름다움을 즐길 줄 알고, 죽음 앞에서도 유머 감각을 잃지 않는 인간 시키의 진솔한 모습을 만날 수 있다.


☑ 출판사 책 소개

이 책은 일본 운문 문학의 혁신을 가져온 마사오카 시키(正岡子規, 1867∼1902)의 수필을 뽑아 한 권으로 묶은 것이다. 시키는 회화의 ‘사생(寫生)’ 기법을 문학에도 적용해, 일본 전통 시가의 주제를 관념의 장(場)에서 생활과 풍경의 장으로 옮겨, 근대 시가(近代詩歌)라고도 할 수 있는 하이쿠와 단카를 탄생시킨 사람이다.
22세 때부터 폐를 앓아 객혈을 시작한 시키는 30세에 지은 한시(漢詩)에서 “무사 집에 태어나 가문도 일으키지 못했고, 장가도 못 가 가계(家系)도 잇지 못했다. 어찌 조상을 볼 수 있을까? 다만 내가 기대하는 것은 일본 문학사에 마사오카(正岡)라는 성(姓)씨가 기록되어 오래 남도록 하는 일”이라고 쓰고 있다.
시키는 그 자신의 다짐처럼, 생전에 하이쿠 혁신과 단카 활성화에 큰 공을 세웠다. 일본의 전통 시가인 와카(和歌)와 하이카이(俳諧) 및 그 작가들에 대해 면밀하게 연구하고 비평하는 학자인 동시에 그림을 그리고 시가를 짓는 시인이기도 했던 시키는 또한 수필을 남겨 우리에게 삶에 대한 많은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마쓰야마(松山)에서 태어난 시키는 16세에 도쿄로 유학을 와서 그 이듬해인 1884년 2월 13일부터 수필 <붓 가는 대로>를 쓰기 시작한다. <붓 가는 대로>는 1892년까지 계속했으며, 그 후 1896년 4월 21일부터 12월 31일까지는 4대 수필 중 하나인 <송라옥액(松蘿玉液)>을 신문 ≪일본(日本)≫에 연재한다. 그 내용은 문명론부터 친구에 대한 평론, 회상이나 일상의 견문, 자녀 교육, 야구 해설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그리고 척추 카리에스로 이승을 떠나기 2년 전, 더욱 병세가 악화해 가는 고통 속에서도 1901년 1월부터 7월에 걸쳐 수필 <묵즙일적(墨汁一滴)>을 ≪일본≫에 연재하며 9월부터는 병상일지나 다름없는 <앙와만록(仰臥漫錄)>을 쓰기 시작하고, 1902년 마지막 해에도 5월부터 9월까지 <병상육척(病牀六尺)>을 연재한다. 만년의 작품인 이 3대 수필에는 한정된 공간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젊은이가 자신의 죽음마저 객관화해 보여 주는 갖가지 내용들이 표출되어 있다.
바깥세상과 본의 아니게 떨어져 지내게 된 시키가 “1년 내내, 그것도 6년 동안 세상 돌아가는 일도 모르고 누워 지낸 병자”인 자신을 자각하면서 쓴 이 수필들은 어느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생생한 삶의 기록이다. “병상 6척, 이것이 나의 세계다. 그럼에도 이 여섯 자의 병상이 나에게는 너무 넓다…”고 기술하는 시키의 <병상육척>의 세계를 함께 읽어 가는 것은 젊은이는 물론, 누구에게나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무엇보다도 그 작은 공간이 매우 밝은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지독한 병마와 싸우면서도 그의 객관적 사고방식은 흐트러짐 없이 미(美)적 세계에 대한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았으며, 인간에 대한 애정도 각별했다. 유리 항아리에 담긴 금붕어를 보며 “아픈 것도 아픈 것이지만 예쁜 것도 예쁜 것이다”라고 즐기며 기뻐하는 모습이라든가, “깨달음이란 어떠한 경우에도 태연히 죽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잘못으로, 깨달음이란 어떠한 경우에도 태연히 사는 것이었다”는 단상, 또는 태연히 산다 해도 “즐거움을 발견하지 못하면 살아 있는 가치가 없다”는 등의 어록(語錄)은 성자의 경지를 느끼게 하는 것들이다.
특히 1901년부터 1902년에 걸쳐 쓴 세 수필에는 병고에서 해방되고 싶은 소박한 소망에서부터 하이쿠, 단카, 문학과 미술에 관한 비평, 물감으로 그린 정물화, 위문품의 일람표, 식사 메뉴, 조선 옷 입은 소녀의 그림, 세계의 문명론에 이르기까지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것들이 실려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병상육척>은 이웃에 대한 관심으로 열려 있는 소우주나 다름없다. 늘 죽음을 느껴야 하는 인간이 갖는 분노, 절망, 자기 연민에서부터 죽기 닷새 전에도 낫토 파는 장사꾼까지 배려한 따뜻한 마음이 함께 녹아 있는 살아 있는 문학이다.
여기서는 시키가 남긴 수필집과 또 때때로 잡지에 실은 수필 중에서 시키의 생활이나 정신적인 내면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문장을 골라 주로 연대순으로 엮었다.


☑ 책 속으로

·유리 항아리 속에 금붕어를 열 마리가량 넣어 책상 위에 놓아두었다. 나는 아픔을 참으면서 병상에서 찬찬히 들여다보고 있다. 아픈 것도 아픈 것이지만 예쁜 것도 예쁜 것이다

·병상에 누워 홀로 듣고 있으면 울타리 밖에 이웃집 아낙네들이 서서 이야기하는 소리가 재미있다. “이봐요, 초롱을 빌렸으면 새 양초를 끼워 돌려주는 것이 당연하지 않아요? 그렇죠! 그런데 그것을 전에 넣어 두었던 양초까지 가져가 버리는 사람이 있어요. 마찬가지로 이런 일이…”라고 누군가의 험담을 하고 있다. 지금의 정치가, 실업가 등은 모두 초롱을 빌려서 양초를 빼앗아 가는 쪽이다. 더욱 뻔뻔스러운 녀석은 초롱마저 가져가 버리고 태연한 얼굴을 하는 녀석도 있다.

손에 든 초롱/ 돌려줘 돌려 다오/ 두견새 우네
提燈を返せ返せと時鳥
(5월 24일)

·나는 지금까지 선종(禪宗)에서 말하는 깨달음이란 것을 오해하고 있었다. 깨달음이란 어떠한 경우에도 태연히 죽는 것인가 하고 생각했던 것은 틀린 것으로, 깨달음이란 어떠한 경우에도 태연히 살아가는 것이었다.

·10년 전쯤에 나는 일본화 숭배자로 서양화 배척자였다. 그 무렵 이잔 군과 우리나라 일본화와 서양화의 우열을 가지고 논쟁했으나 나는 좀처럼 질 기세가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이잔 군이 일본화의 둥근 파도가 바다의 파도가 아니라는 것을 설명하며 다음으로는 일본화의 옆얼굴과 서양화의 옆얼굴을 나란히 그리고 그 다른 점을 설명해 주었다. 참으로 고집쟁이인 나도 완전히 아마추어였으므로 이 실질적인 이론을 듣고서는 반은 놀라고 반은 감탄했다. 특히 일본화의 옆얼굴에는 정면에서 본 눈이 그려져 있는 것이라고 듣고 매우 놀랐다. 그렇지만 그림의 좋고 나쁨은 형태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이론으로 그 놀라움을 지워 버렸다. 그 후 후세쓰 군과 신문 ≪소일본≫에서 함께 일하게 되어 매일같이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다.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우리는 그 예의 그림에 대해 논쟁하곤 했다. 이때도 나는 일본화 숭배자였으므로 말하는 것마다 충돌했다. 내가 후지산은 좋은 산이라고 말하면 후세쓰 군은 속된 산이라고 말했다. 소나무는 좋은 나무라고 하면 후세쓰는 속된 나무라고 했다. 달마는 고상하다고 하면 달마는 비속하다고 했다. 일본 갑옷과 투구는 미술적이라고 하면 서양 갑옷과 투구 쪽이 미술적이라고 했다. 하나하나 충돌하므로 같은 인간의 감정이 이토록 다른 것일까 하고 너무나도 신기하게 여겨져 곰곰이 생각했다. 그러는 동안 불쑥 하이쿠와 비교해 보고 나서 크게 깨닫는 바가 있었다. 하이쿠에 후지산을 넣어서 지으면 비속한 구가 되기 쉽고 하이쿠에 소나무를 넣어 지은 구도 있지만 대개는 비속한 것이 많고 오히려 ‘겨울나무 숲’이라는 계절어를 넣어 지은 구에 우아한 것이 많다. ‘달마’를 시어로 해서 하이쿠에 넣으면 훨씬 운치가 없다. 이 정도의 것은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그림에 적용해 보지 않은 것이다. 하이쿠를 모르는 사람이 후지를 넣어 지은 구를 보면 매우 기뻐하는 것과 우리가 후지산을 넣은 그림을 보고 왠지 모르게 좋아하는 것이 마찬가지라는 것을 깨닫고 비로소 눈이 밝아진 기분이 들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일본화 숭배는 변함이 없으므로 일본화를 낮추고 서양화를 칭찬하면 뭔가 기분이 거슬려서 견딜 수 없다. 그래서 일본화와 서양화를 비교하는 것은 그만두고 일본화끼리의 비교 평론, 서양화끼리의 비교 평론 등으로 따로따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렇게 하니 하루하루 조금씩 알아 가는 기분이 들다가 10개월 정도 후에는 좀 더 분명히 알게 되었다. 그때 허심탄회한 마음으로 생각해 보니, 비로소 일본화의 단점과 서양화의 장점을 알 수 있었다. 드디어 이잔 군과 후세쓰 군에게 항복했다. 그 후는 서양화를 배척하는 사람을 만나면 신경질이 나서 크게 토론을 벌인다. 끝내는 그 옛날 이잔 군에게서 배운 대로 일본화의 옆얼굴과 서양화의 옆얼굴을 그려 놓고 “이것 보시게, 일본화의 옆얼굴에는 이런 눈이 그려져 있어. 자네 실제로 이런 눈이 있는 게 아니잖아?”라는 등 대단히 자랑스럽게 지껄인다. 그 의기양양함에는 나 스스로도 놀란다.
(1900년 3월 10일, ≪호토토기스≫)


☑ 지은이 소개

마사오카 시키(正岡子規, 1867∼1902)
마사오카 시키는 1867년 음력 9월 17일 마쓰야마(松山)에서 무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명은 쓰네노리(常規)였으며, 술을 많이 마셨던 아버지를 다섯 살 되던 해 여의고 세 살 아래인 여동생 리쓰(律)와 함께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랐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헤이지 모노가타리(平治物語)≫, ≪삼국지≫ 등 전쟁 소설 읽기를 좋아하던 시키는 사춘기에 들어서는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자유 민권 운동에 귀를 기울이며, 15세 때는 교내뿐만 아니라 청년 연설회에서 ‘자유’에 대해 연설하기도 한다. 정치열에 들떠 공부도 등한히 하게 된 시키는 정치가가 되려는 야심에 도쿄의 외무성에서 근무하고 있던 외삼촌에게 편지를 보내 그 허락으로 16세에는 꿈에 그리던 도쿄로 올라온다.
그 이듬해 1884년부터 옛 번주(藩主)의 육영 단체인 도키와카이(常盤會)의 급비생이 되어 공부하면서 도쿄대학 예비문에 합격, 이해에 수필 <붓 가는 대로>를 쓰기 시작한다. 도쿄대학 예비문은 2년 후 1886년에 제일고등중학교로 재편되었는데 이곳에서 시키는 동갑내기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도 만난다. 1889년 2월, 시키가 각종 문예 형식으로 집필한 7편을 ≪칠초집(七草集)≫ 한 권으로 묶어 비평을 부탁했을 때 나쓰메 긴노스케(夏目金之助)는 크게 칭찬하며 ‘소세키(漱石)’라는 필명으로 서명했고, 마사오카 쓰네노리(正岡常規)는 9월에 소세키의 기행·한시문집 ≪목설록(木屑錄)≫을 비평해 주었을 때 ‘시키(子規)’라는 필명을 쓴다. 시키는 이해 5월에 일주일 정도 객혈을 계속한 후, 이제부터 울며 피를 토한다는 두견새[子規]를 필명으로 하자고 결심하며 처음으로 사용했던 것이다. 이듬해 9월 시키는 도쿄제국대학 문과대학 철학과에, 소세키는 같은 대학 영문과에 입학한다. 그러나 시키는 다시 철학과에서 국문과로 전과해 하이카이(俳諧) 분류에 착수한다.
1892년 25세 되던 해 11월, 어머니와 여동생을 도쿄로 불러 함께 지내며 12월 1일부터 일본신문사에 입사해 하이쿠 시평(俳句時評)을 담당한다. 대학은 그 이듬해 3월 정식으로 그만둔다.
시키의 네기시 전셋집은 ‘시키암(子規庵)’ ‘네기시암(根岸庵)’이라 불리며 하이쿠와 단카 제자들은 물론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문예를 담론하던 ‘문학 살롱’ 구실을 했다. 시키는 ≪일본≫이 폐간되고 발간한 ≪소일본(小日本)≫의 삽화가로 일하게 된 나카무라 후세쓰(中村不折)와 만나 자연의 실경(實景)에 관심을 가지며 그의 예술적 지향이 된 ‘사생(寫生)’에 눈을 뜨게 된다. 27세 가을 무렵이다.
1894년 청일전쟁이 일어나 유능한 신문기자는 모두 종군 기사를 써서 인기를 떨치고 있을 때 시키도 간절히 원했던 종군이 허락되어 1895년 3월 중국으로 떠나 요동반도의 서쪽 금주(金州)·여순(旅順) 등에서 1개월 정도 머문다. 그때 육군 군의 부장으로 종군하고 있던 모리 오가이(森鷗外)를 매일같이 방문하기도 한다. 전쟁은 곧 끝나고 5월, 돌아오는 배 안에서 지병인 폐결핵이 재발해 고베(神戶)에 도착하자 병원에 입원한다. 8월 고향 마쓰야마에 돌아가 마쓰야마중학교 영어 교사로 근무하던 소세키의 하숙에서 동거하다가 11월에 도쿄로 돌아온다.
1896년 29세부터는 결핵균이 척추로 옮아가 보행이 불편해 대부분의 시간을 병상에서 지내게 된다. 하이쿠 혁신이 문단에서도 인정받아 이해 1월 3일, 시키암(子規庵)에서 열린 하이쿠 짓기 모임에는 오가이와 소세키도 교시(虛子), 헤키고토(碧梧桐) 등과 함께 참석한다. 4월부터 12월에 걸쳐 수필 <송라옥액(松蘿玉液)>을 신문 ≪일본(日本)≫에 연재한다.
병세가 악화하는데도 시키는 해를 거듭하며 <하이진 부손(俳人蕪村)>을 비롯해 <가인에게 보내는 글(歌よみに与ふる書)> 등을 연달아 발표하며 단카 혁신에도 힘을 쏟는다. 1898년 3월에는 최초의 단카 모임인 가회(歌會)를 시키암에서 개최했으며, 하이쿠 전문 잡지인 ≪호토토기스(ホトトギス: 두견새)≫를 도쿄에서 발간, 시키의 주재(主宰)로 교시(虚子)가 편집을 담당하도록 한다. 이해까지는 인력거를 타고 수차례 외출을 시도했다. 그러나 병세는 더욱 악화해 누워 지내는 나날 속에 1899년 3월에는 ‘네기시 단카회’가 정식으로 발족한다. 이해 가을부터 시키는 나카무라 후세쓰가 쓰던 그림물감을 건네받고 수채화를 그리기 시작한다.
시키는 자신의 생존 기간과 경쟁이라도 하듯이 1901년 1월부터 7월에 걸쳐서는 <묵즙일적(墨汁一滴)>을 연재하고 9월부터는 병상 일지와 다름없는 <앙와만록(仰臥漫録)>을 쓰기 시작한다. 1902년 1월부터는 병세가 더욱 급격히 악화해 문하생들이 교대로 간호하며, 원고는 구술로 집필된다. 5월 5일 <병상육척(病牀六尺)>을 연재하기 시작해 9월 17일 127회로 이승을 마감하기 이틀 전까지 계속한다. 그사이 6월 27일부터 8월 6일에 걸쳐서는 갖가지 과실을 그린 ≪과일첩≫을, 8월 1일부터 8월 20일 <나팔꽃>을 마지막으로 그린 ≪화초첩≫도 완성하고 있다.
9월 18일 오전, 어머니는 의사를 부르러 가고, 구가 가쓰난 부부, 헤키고토, 여동생 리쓰가 둘러앉아 머리맡을 지키는 가운데 마지막 힘을 다해 먹물을 머금은 붓으로 절필 3구(句)를 쓰고 나서는 곧 혼수상태에 들어간 채로 이튿날 9월 19일 새벽 1시에 영원히 숨을 거둔다. 만 35년의 생애였다.


☑ 옮긴이 소개

손순옥
손순옥(孫順玉)은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어과에서 일문학을 전공하고 <마사오카 시키(正岡子規)의 ‘사생(寫生)’에 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로 메이지 시기의 일본 지식인과 문학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다.
1989년 도쿄대학교 객원 연구 교수를 지냈으며, 중앙대학교 일본연구소 소장 및 한국 일본언어문화학회 회장으로 활약한 바 있다. 현재 중앙대학교 일본어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마사오카 시키(正岡子規)의 시가(詩歌)와 회화(繪畵)≫(중앙대학교 출판부, 1995), ≪子規の現在≫(공저, 增進會出版社, 2002), ≪조선통신사와 치요조의 하이쿠≫(한누리미디어, 2006), ≪韓流百年の日本語文學≫(공저, 人文書院, 2009) 등이 있으며, 번역으로는 ≪어느 날 아침 미쳐 버리다(吉增剛造詩選集)≫(들녘, 2004), ≪모리 오가이 단편집≫(지식을만드는지식, 2012) 등이 있다. 그 밖에도 <메이지 시대의 반전시 연구> 등을 비롯한 많은 논문이 있다.


☑ 목차

붓 가는 대로 ···················1
송라옥액 ····················19
묵즙일적 ····················37
앙와만록 ····················89
기타 잡지 ····················113
병상육척 ····················155

해설 ······················227
지은이에 대해 ··················232
옮긴이에 대해 ··················241

2012년 8월 30일 목요일

마쿠라노소시(枕草子)

마쿠라노소시(枕草子)
세이쇼나곤(淸少納言) 지음 / 정순분 옮김
분야 : 일본 수필
출간일 : 2012년 3월 12일
ISBN : 978-89-6680-301-9 00830
12000원 /  A5 제본 / 180쪽


☑ 책 소개


헤이안 시대 문학의 백미로, 일본 수필 문학의 효시로 대표되는 고전문학 작품이다. 천 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이 책에서 자연과 인간에 대한 생생한 묘사가 전해 주는 기발한 재치와 풍부한 감성을 느낄 수 있다.


☑ 출판사 책 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 천줄읽기>는 오리지널 고전에 대한 통찰의 책읽기입니다. 전문가가 원전에서 핵심 내용만 뽑아내는 발췌 방식입니다.
≪마쿠라노소시≫는 헤이안(平安) 시대에 쓰인 수필 문학으로, 이 시대는 도읍지였던 헤이안쿄[平安京: 지금의 교토(京都)]를 중심으로 귀족문화가 꽃피었던 시기다. 귀족들은 문화의 주체가 되어 화려한 왕조 문화를 형성했고, 대륙문화를 수용해 자국화하던 문화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시기다. 또한 일본 고유 문자인 가나(假名)가 정립되어 여류문학이 크게 발달하였으며, 일본적 계절감과 미의식이 정립되어 고유문화 형성에 토대가 되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일본 문화의 특징, 이를테면 섬세하고 기교적이며 인공적인 성격은 바로 헤이안 시대에 그 원류가 있으며, 이 책은 그러한 성격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마쿠라노소시≫는 11세기 초 세이쇼나곤(淸少納言)이라는 여방(女房: 우리나라의 상궁에 해당하는 고위 궁녀)이 천황비인 데이시(定子) 후궁에 출사하여 경험한 궁중 생활을 바탕으로 쓴 것으로, 당시 귀족들의 생활, 연중행사, 자연관 등이 개성적인 문체로 엮어져 있다. 세이쇼나곤은 특히 데이시 후궁(여기에서는 중궁을 중심으로 하는 여방들의 문예 집단을 의미함)의 영화로운 모습만을 그리고 있는데, 사실 집필 시기는 데이시 집안이 몰락한 이후였다. 천황비 데이시는 아버지가 사망하고 오빠들이 유배를 간 후 중궁의 자리에서 밀려났으며, 불우한 상황에서 아이를 출산하다 25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그러나 이 책에는 데이시 집안의 전성기 때의 영화로운 모습만 있을 뿐, 몰락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이 없다. 정적(政敵)에 의해서 정권이 교체된 것을 의식한 탓도 있겠지만, 데이시 후궁의 재기 넘치는 분위기를 책으로 엮어서 영원한 것으로 만들고자 한 세이쇼나곤의 의도 때문이라고도 추측해 볼 수 있다.
제목인 ≪마쿠라노소시≫를 살펴보면, ‘마쿠라(枕)’는 베개란 뜻이고 ‘소시(草子)’는 묶은 책을 말한다. 따라서 제목 ‘마쿠라노소시’는 몸 가까이에 은밀히 써놓은 비망록이라는 의미로, ‘베갯머리 서책’ 정도가 된다. 이는 당시 남성들의 공적인 기록과는 다른 여성들의 사적인 감상록이라는 뜻이 배후에 깔려 있는 것으로, 여성의 사회를 여성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여성적 감각에 의해 썼다고 볼 수 있다. 여성들은 학문의 기회와 사회 진출이 극히 한정되었던 당시 상황에서도 문학을 통해 자기의 정체성을 찾고 자신들만의 고유의 세계를 구축하고자 했다. 특히 ≪마쿠라노소시≫는 그러한 헤이안 여류문학 중에서도 재기발랄한 개성으로 오늘날까지 빛을 발하는 고전 중의 고전이다.


☑ 책 속으로

참새 새끼를 기르는 것. 어린아이가 뛰어노는 곳 앞을 지나가는 것. 고급 향을 태우며 혼자 누워 있는 것. 박래품 거울이 조금 어두워진 것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 신분이 높은 남자가 내 집 앞에 차를 세우고 시종에게 뭔가 묻는 것. 머리 감고 화장하고 진한 향기 나는 옷을 입는 것. 그런 때는 특별히 보는 사람이 없어도 가슴이 설렌다. 약속한 남자를 기다리는 밤은 빗소리나 바람 소리에도 문득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 53쪽

달 밝은 밤에 강을 건너면 소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마치 수정이 부서지듯 물방울이 튀는데, 그 광경은 정말이지 근사하다. - 159쪽


☑ 지은이 소개

세이쇼나곤(淸少納言, 964년경~1025년경)
964년경 유명한 가인을 여럿 배출한 중류 귀족 집안의 딸로 태어났다. 아버지로부터 일본 고유의 시 와카(和歌)와 한문을 배워 교양을 쌓았으며, 그 명성으로 993년 천황의 비인 중궁을 보필하는 여방(女房)으로 발탁되었다. 이후 후궁문화를 이끌어가는 재원으로 활약했으며, 그 후궁에 출사하며 생활한 경험을 토대로 일본 수필문학의 효시 ≪마쿠라노소시≫를 썼다. 풍부한 감성과 수준 높은 학식, 발랄한 문체를 발휘하여 중궁을 둘러싼 궁궐 귀족사회의 문예와 풍류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옮긴이 소개

정순분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어과를 졸업했으며 일본 와세다대학교 대학원 문학연구과(일본 문학 전공)에서 일본의 대표적인 고전문학인 헤이안 문학을 폭넓고 깊이 있게 연구, ≪마쿠라노소시≫에 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귀국 후 한국외국어대학교, 고려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등에서 강사로 활동하다가 현재 배재대학교 일본학과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7년 9월부터 2008년 8월까지 미국 플로리다대학 아시아어문학부 객원교수로 있었다.
저서로는 ≪枕草子大事典≫(공저, 2001), ≪枕草子 表現の方法≫(2002), ≪枕草子와 平安文學≫(2003), ≪平安文學の風貌≫(공저, 2003), ≪交錯する古代≫(공저, 2004), ≪日本古代文學と東アジア≫(공저, 2004), ≪일본고전문학비평≫(2006), 옮긴 책으로는 ≪돈가스의 탄생≫(2006), ≪마쿠라노소시≫(2008) ≪청령일기≫(2009) 등이 있으며 그 외에 헤이안 문학에 관련된 다수의 논문이 있다.


☑ 목차

해설
지은이에 대해

사계절의 멋 <1단>
스님이 되는 길 <4단>
오키나마루의 눈물 <6단>
전문직 여성 <21단>
밉살스러움−얄미운 것 <25단>
설렘−가슴 두근거리는 것 <26단>
미남 설경 법사 <30단>
여름날 새벽 정경 <33단>
단오절 예찬 <36단>
운치 있는 벌레 <40단>
부조화−어울리지 않는 것 <42단>
대전의 점호식 <53단>
새벽에 헤어지는 법 <60단>
가녀린 풀꽃 <64단>
대조의 미학−정반대인 것 <68단>
은밀한 곳의 멋 <70단>
있기 어려운 일−흔치 않은 것 <72단>
고귀한 것 <84단>
비파행 여자 <90단>
민망함−낯간지러운 것 <92단>
2월의 눈 <102단>
꼴 보기 싫은 것 <105단>
관백 찬가 <125단>
귀여운 것 <146단>
어느 여방의 이별 <175단>
유모의 서방 <182단>
후조 편지 <184단>
여자네 집에서 밥 먹는 남자 <189단>
그윽한 멋이 풍기는 것 <192단>
5월의 산골 마을 <209단>
모내는 아낙네들 <212단>
달빛 아래 <218단>
구경 나오는 우차의 자격 <223단>
남자란 동물 <251단>
환희−기쁜 것 <261단>
편지 읽는 모습 <279단>
향로봉 눈 <284단>

옮긴이에 대해



2012년 3월 16일 금요일

마쿠라노소시




☑ 책 소개


헤이안 시대 문학의 백미로, 일본 수필 문학의 효시로 대표되는 고전문학 작품이다. 천 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이 책에서 자연과 인간에 대한 생생한 묘사가 전해 주는 기발한 재치와 풍부한 감성을 느낄 수 있다.


☑ 출판사 책 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 천줄읽기>는 오리지널 고전에 대한 통찰의 책읽기입니다. 전문가가 원전에서 핵심 내용만 뽑아내는 발췌 방식입니다.

≪마쿠라노소시≫는 헤이안(平安) 시대에 쓰인 수필 문학으로, 이 시대는 도읍지였던 헤이안쿄[平安京: 지금의 교토(京都)]를 중심으로 귀족문화가 꽃피었던 시기다. 귀족들은 문화의 주체가 되어 화려한 왕조 문화를 형성했고, 대륙문화를 수용해 자국화하던 문화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시기다. 또한 일본 고유 문자인 가나(假名)가 정립되어 여류문학이 크게 발달하였으며, 일본적 계절감과 미의식이 정립되어 고유문화 형성에 토대가 되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일본 문화의 특징, 이를테면 섬세하고 기교적이며 인공적인 성격은 바로 헤이안 시대에 그 원류가 있으며, 이 책은 그러한 성격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마쿠라노소시≫는 11세기 초 세이쇼나곤(淸少納言)이라는 여방(女房: 우리나라의 상궁에 해당하는 고위 궁녀)이 천황비인 데이시(定子) 후궁에 출사하여 경험한 궁중 생활을 바탕으로 쓴 것으로, 당시 귀족들의 생활, 연중행사, 자연관 등이 개성적인 문체로 엮어져 있다. 세이쇼나곤은 특히 데이시 후궁(여기에서는 중궁을 중심으로 하는 여방들의 문예 집단을 의미함)의 영화로운 모습만을 그리고 있는데, 사실 집필 시기는 데이시 집안이 몰락한 이후였다. 천황비 데이시는 아버지가 사망하고 오빠들이 유배를 간 후 중궁의 자리에서 밀려났으며, 불우한 상황에서 아이를 출산하다 25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그러나 이 책에는 데이시 집안의 전성기 때의 영화로운 모습만 있을 뿐, 몰락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이 없다. 정적(政敵)에 의해서 정권이 교체된 것을 의식한 탓도 있겠지만, 데이시 후궁의 재기 넘치는 분위기를 책으로 엮어서 영원한 것으로 만들고자 한 세이쇼나곤의 의도 때문이라고도 추측해 볼 수 있다.

제목인 ≪마쿠라노소시≫를 살펴보면, ‘마쿠라(枕)’는 베개란 뜻이고 ‘소시(草子)’는 묶은 책을 말한다. 따라서 제목 ‘마쿠라노소시’는 몸 가까이에 은밀히 써놓은 비망록이라는 의미로, ‘베갯머리 서책’ 정도가 된다. 이는 당시 남성들의 공적인 기록과는 다른 여성들의 사적인 감상록이라는 뜻이 배후에 깔려 있는 것으로, 여성의 사회를 여성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여성적 감각에 의해 썼다고 볼 수 있다. 여성들은 학문의 기회와 사회 진출이 극히 한정되었던 당시 상황에서도 문학을 통해 자기의 정체성을 찾고 자신들만의 고유의 세계를 구축하고자 했다. 특히 ≪마쿠라노소시≫는 그러한 헤이안 여류문학 중에서도 재기발랄한 개성으로 오늘날까지 빛을 발하는 고전 중의 고전이다.


☑ 책 속으로

참새 새끼를 기르는 것. 어린아이가 뛰어노는 곳 앞을 지나가는 것. 고급 향을 태우며 혼자 누워 있는 것. 박래품 거울이 조금 어두워진 것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 신분이 높은 남자가 내 집 앞에 차를 세우고 시종에게 뭔가 묻는 것. 머리 감고 화장하고 진한 향기 나는 옷을 입는 것. 그런 때는 특별히 보는 사람이 없어도 가슴이 설렌다. 약속한 남자를 기다리는 밤은 빗소리나 바람 소리에도 문득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 53쪽

달 밝은 밤에 강을 건너면 소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마치 수정이 부서지듯 물방울이 튀는데, 그 광경은 정말이지 근사하다. - 159쪽


☑ 지은이 소개

세이쇼나곤(淸少納言, 964년경~1025년경)

964년경 유명한 가인을 여럿 배출한 중류 귀족 집안의 딸로 태어났다. 아버지로부터 일본 고유의 시 와카(和歌)와 한문을 배워 교양을 쌓았으며, 그 명성으로 993년 천황의 비인 중궁을 보필하는 여방(女房)으로 발탁되었다. 이후 후궁문화를 이끌어가는 재원으로 활약했으며, 그 후궁에 출사하며 생활한 경험을 토대로 일본 수필문학의 효시 ≪마쿠라노소시≫를 썼다. 풍부한 감성과 수준 높은 학식, 발랄한 문체를 발휘하여 중궁을 둘러싼 궁궐 귀족사회의 문예와 풍류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옮긴이 소개

정순분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어과를 졸업했으며 일본 와세다대학교 대학원 문학연구과(일본 문학 전공)에서 일본의 대표적인 고전문학인 헤이안 문학을 폭넓고 깊이 있게 연구, ≪마쿠라노소시≫에 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귀국 후 한국외국어대학교, 고려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등에서 강사로 활동하다가 현재 배재대학교 일본학과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7년 9월부터 2008년 8월까지 미국 플로리다대학 아시아어문학부 객원교수로 있었다.

저서로는 ≪枕草子大事典≫(공저, 2001), ≪枕草子 表現の方法≫(2002), ≪枕草子와 平安文學≫(2003), ≪平安文學の風貌≫(공저, 2003), ≪交錯する古代≫(공저, 2004), ≪日本古代文學と東アジア≫(공저, 2004), ≪일본고전문학비평≫(2006), 옮긴 책으로는 ≪돈가스의 탄생≫(2006), ≪마쿠라노소시≫(2008) ≪청령일기≫(2009) 등이 있으며 그 외에 헤이안 문학에 관련된 다수의 논문이 있다.


☑ 목차

해설

지은이에 대해

사계절의 멋 <1단>

스님이 되는 길 <4단>

오키나마루의 눈물 <6단>

전문직 여성 <21단>

밉살스러움−얄미운 것 <25단>

설렘−가슴 두근거리는 것 <26단>

미남 설경 법사 <30단>

여름날 새벽 정경 <33단>

단오절 예찬 <36단>

운치 있는 벌레 <40단>

부조화−어울리지 않는 것 <42단>

대전의 점호식 <53단>

새벽에 헤어지는 법 <60단>

가녀린 풀꽃 <64단>

대조의 미학−정반대인 것 <68단>

은밀한 곳의 멋 <70단>

있기 어려운 일−흔치 않은 것 <72단>

고귀한 것 <84단>

비파행 여자 <90단>

민망함−낯간지러운 것 <92단>

2월의 눈 <102단>

꼴 보기 싫은 것 <105단>

관백 찬가 <125단>

귀여운 것 <146단>

어느 여방의 이별 <175단>

유모의 서방 <182단>

후조 편지 <184단>

여자네 집에서 밥 먹는 남자 <189단>

그윽한 멋이 풍기는 것 <192단>

5월의 산골 마을 <209단>

모내는 아낙네들 <212단>

달빛 아래 <218단>

구경 나오는 우차의 자격 <223단>

남자란 동물 <251단>

환희−기쁜 것 <261단>

편지 읽는 모습 <279단>

향로봉 눈 <284단>

옮긴이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