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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2월 6일 금요일

복숭아꽃이 그려진 부채(桃花扇)


도서명 : 복숭아꽃이 그려진 부채(桃花扇)
지은이 : 어우양위첸(歐陽予倩)
옮긴이 : 김종진
분야 : 희곡
출간일 : 2014년 11월 17일
ISBN :  979-11-304-1292-4 (03820)
가격 : 16500원
규격 : 사륙판(128*188)  제본 : 무선  쪽 : 234쪽




☑ 책 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 희곡선집>은 인류의 유산으로 남을 만한 작품만을 선정합니다. 오랜 시간 그 작품을 연구한 전문가가 정확한 번역, 전문적인 해설, 풍부한 작가 소개, 친절한 주석을 제공하는 고급 희곡 선집입니다.

**나라 멸망을 배경으로 노회하고 부패한 정치인, 정의롭지만 세상일에 미숙한 청년 지식인, 아름답고 절개 곧은 여인들 이야기를 아름답고 슬프게 그려 낸 공상임의 <도화선>을 어우양위첸(歐陽予倩)의 화극으로 만난다.


☑ 출판사 책 소개

서문에 따르면 이 작품이 다시 화극으로 만들어진 것은 다소 우연한 일이었다. 어우양위첸은 중일전쟁 직후인 1946년, 타이완 순회공연 중 레퍼토리 부족을 현지에서 해결할 요량으로 단기간에 화극 <복숭아꽃이 그려진 부채>를 썼고, 이후 1950년대에 수정 보완해 지금의 텍스트를 완성했다. 1950년대 중국은 격동기를 보내고 있었다. 1956년, “백 가지 꽃이 일제히 피어나고 백 가지 주장이 경쟁하듯 울리는(百花齊放, 百家爭鳴)” 잠시의 해빙기 이후 1957년의 반(反) 우파 투쟁, 1958년 대약진운동으로 이어지는 정치적 경색은 마오쩌둥(毛澤東)의 권력을 점점 더 절대적인 것으로 만들면서 동시에 비판적 성향을 가진 지식인, 예술가에게는 끔찍한 악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어우양위첸이 이 작품을 다듬던 시기는 아마도 잠시의 해빙 시기인 1956년 전후였던 것으로 보인다. 
후조종과 기생 이향군은 백년가약을 맺지만 곧 후조종이 청나라 관군에 쫓기면서 이별을 맞는다. 명나라와 임을 향한 일편단심으로 모진 날들을 견디던 향군은 주변의 도움으로 드디어 후조종과 재회한다. 하지만 그녀는 청나라 과거에 부방으로 붙어 입신한 뒤 변발을 하고 나타난 후조종에게 실망하고 그를 원망하며 자결한다.


☑ 책 속으로

이향군: 전에 제게 뭐라고 말씀하셨죠? 당신 친구들 앞에서, 제자들 앞에서, 제 앞에서 힘을 내라며 뭐라고 말씀하셨죠? 목숨을 잃더라도 인의와 도덕, 절개는 영원히 지켜야 하는 것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왜 사가법 대인과 함께 양주를 지키지 않으셨나요? 집으로 숨어들었으면 이름을 숨기고 은거라도 했어야지, 왜 그렇게도 하지 않았나요? 왜 모두가 군사를 일으켜 어떻게든 명나라를 다시 일으키려는 이때, 그따위 부방에나 붙고 있는 건가요?
≪복숭아꽃이 그려진 부채≫ 201∼202쪽


☑ 지은이 소개

어우양위첸(歐陽予倩, 1889∼1962)은 화극 배우, 화극 연출가, 극작가, 연극 잡지 편집인, 영화배우, 시나리오 작가, 영화감독, 중국 전통극 배우, 중국 전통극 작가로 활약하며 다양한 분야에서 이름을 남겼다. 그의 이력은 요약하기도 벅차다. 그는 춘류사(春柳社)가 공연했던 중국 화극의 역사적인 첫 작품 <흑인 노예의 절규(黑奴籲天錄)>(1907년)에 배우로 출연함으로써 중국 화극과 탄생을 함께했다. 그리고 춘류사에서 알게 된 친구 루징뤄(陸鏡若) 등과 함께 일본 신파극을 학습했고, 귀국 후에는 신극동지회(新劇同志會), 춘류극장(春柳劇場)을 옛 친구들과 함께하며 문명희(文名戱) 시대 중국 화극을 선도했다. 루징뤄가 병사하고 춘류극장이 해산(1915년)되자 놀랍게도 그는 경극에 뛰어들어 극작가, 배우, 연출가로 활약하며 세계적인 경극 배우 메이란팡과 함께 “북쪽의 메이란팡, 남쪽의 어우양위첸”으로 병칭될 만큼 명성을 누렸다. 오사운동과 함께 다시 화극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지자 그는 화극계로 돌아와 희극협사(戱劇協社)에 가입(1922년), <말괄량이(潑婦)>, <집에 돌아온 뒤(回家以後)> 등의 극작품을 썼다. 그가 창작했거나 각색한 화극이 40여 편, 연출한 화극이 50여 편, 창작 및 각색한 전통 연극이 50여 편, 시나리오를 썼거나 연출한 영화가 13편이다. 그 밖에도 연극 연구자로서 <위첸 연극론(予倩論劇)>, <화극, 신가극과 중국 연극의 예술 전통> 등과 살아 있는 연극사의 증인으로서 <내가 연기를 한 이래로(自我演戱以來)>, <춘류를 추억하며(回憶春柳)> 등 회고록을 남겨 중국 연극(사) 연구에 소중한 자료를 제공했다. 


☑ 옮긴이 소개

김종진은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영동대학교 중국어과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중국 근현대 연극을 전공했으며 대표 저서로는 ≪중국 근대 연극 발생사≫(연극과인간)가 있고, 대표 논문으로는 <중국 화극의 중국성(中國性)과 중국적인 화극>, <중국의 화극 민족화와 민족 화극> 등이 있다.


☑ 목차

서문·······················3
나오는 사람들··················19
나오는 사람 해설·················21
제1막······················27
제2막······················81
제3막·····················139
해설······················207
지은이에 대해··················220
옮긴이에 대해··················226





2012년 8월 31일 금요일

혼수로 받은 수레(嫁粧一牛車)



도서명 : 혼수로 받은 수레(嫁粧一牛車)
지은이 : 왕전허(王禎和)
옮긴이 : 고운선
분야 : 타이완 소설
출간일 : 2012년 9월 1일
ISBN : 978-89-6680-524-2 02820
가격 : 18000원 / 규격 : A5 / 제본 : 무선제본 / 쪽 : 330쪽

☑ 책 소개

왕전허는 타이완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세대들이 보편적으로 겪은 체험과 처지를 잘 알고 가족관, 산업의 변화, 이농 현상, 미국 숭배 의식 등을 중심으로 작품을 썼다. ‘불협화음적인 조합’을 가진 인물 형상을 만들어 내지만 독자들이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에 어떤 편견이 개입되지 않도록 한다. 그들의 내면을 전면에 내세우고 어느 누구의 편에 서지 않는 방식으로 인간의 어리석음과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 말한다. 우리는 이 작품 속에 묘사된 타이완 사회가 낯설지 않을 것이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의 눈으로 본 세상이 담겨 있으며,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도 목격되는 다양한 풍경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 출판사 책 소개

전후(戰後) 타이완 1세대 작가 왕전허

1945년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하자, 타이완은 1894년 청일전쟁의 결과로 인한 50년간의 일제 식민 생활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그러나 오래 끌어 오던 중국 내전의 막바지에 이르러 국민당에게 퇴각할 만한 새로운 근거지로 낙점되면서 또 다른 풍파를 겪게 되었다.

타이완을 점령하기 시작한 국민당 군대는 도매상 강탈, 인신 납치, 위탁금 착복, 암거래 등에 개입했으며, 이에 불복하는 사람들을 공산주의자 또는 매국노로 낙인찍어 재산을 강제 몰수하고 투옥시켰다. 일본 유학과 고등교육을 통해 근대화된 사고방식을 가진 타이완인들은 국민당 군대의 횡포에 견디다 못해 저항하기 시작했다. 1947년 2월 28일, 중국 대륙에서부터 들어온 국민당 증원군은 국민들의 폭동을 막기 위해 타이완 섬 전역에서 대학살을 자행했고, 타이완의 지도자적인 기성세대는 완전히 소탕되다시피 했다. 타이완에는 계엄령이 선포되어 1987년까지 실시되었고, 타이완의 사상·문화계는 국민당 정권이 내세운 대륙을 수복하겠다는 정치적 이념에 근거한 중국(대륙)의 역사와 문화를 학습하도록 강요되었다. 게다가 국민당이 타이완으로 들어올 당시 같이 이주해 온 대륙 이민자는 150만∼200만 명 정도였는데, 그중 70만∼80만 명이 군인이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타이완 현대사에서 이들은 외성인(外省人)으로 불리게 된다. 1950년대 타이완 문단은 외성인 출신 작가들이 쓴 반공 문학에 장악되었다.

하지만 미국의 타이완 원조가 철저하게 자국의 정치·군사·경제적 손익 분계선에 따라 진행되었고, 타이완의 국가로서 지위가 세계 정치 무대에서 중공에게 밀리는 외교적 고립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국민당이 표방한 이상은 점차 입지를 잃었고, 그러한 통치 권력에 유착해서 활동했던 소위 어용 작가와 사상가들 역시 세력을 잃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정부의 강력한 대륙 지향적인 민족주의 교육에 억눌려 있던 타이완 사회의 저변에서,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진 대륙 수복의 꿈에서 벗어나서 생활의 근거지인 타이완 섬 자체와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타이완인들의 삶과 역사를 조명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

왕전허의 작품은 바로 이러한 타이완 문화계의 분위기 속에서 성장·발전했다.



작품 소개

<귀신·북풍·사람>은 왕전허가 대학생일 때 창작한 처녀작으로, 속으로는 서로의 처지를 잘 이해하고 애틋하게 생각하지만, 정작 그 마음을 상대에게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주인공들의 고통과 그로 인한 갈등이 오로지 작중인물들의 내적 독백을 통해서만 드러난다는 점이 묘미다.

<어느 여름날>을 통해서는 바로 타이완의 깊은 혼혈사를 엿볼 수 있다. 주인공인 바나가 한족 집안으로 시집와서, 한족 사회의 전형적인 고부 갈등을 겪고 남편의 부권(夫權) 의식 때문에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게 되는 이야기다. 머릿속에서 마구잡이로 떠오르는 대로, 따옴표 없이, 작중인물의 의식에서부터 직접 흘러나온 듯이 나열되는 내적 독백은, 가족의 일원이 되지 못한 채 홀로 분노를 삭여야 하는 바나의 혼란스러운 심정을 효과적으로 전달해 준다.

<혼수로 받은 수레>는 왕전허를 문단에 각인시킨 대표작이다. 타이완의 산업화에서 소외된 자들, 특히 공동화(空洞化)된 농촌에 남은 농민들의 극심한 경제난을 흥미진진하게 보여 주고 있다는 점에서, 1960년대 타이완 향토문학의 대표작으로 손꼽히기도 한다. 가난한 농민인 완파를 단순히 사회적 환경으로 인한 피해자이자 연민의 대상으로 묘사하지 않고, 그에게서 느껴지는 인생의 비극이, 실은 그 스스로의 우스꽝스럽고 특이한 성격이 야기한 것은 아닌지 한번쯤 생각해 보도록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 묘미다. 아울러 작품 곳곳에 등장하는 타이완 속어와 일본식 한자어는, 타이완의 복잡한 역사와 타이완인들의 삶이 그 무엇보다 ‘언어’에 가장 잘 기록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도록 한다.

<즐거운 사람>에서 왕전허의 창녀에 대한 시선은 독특하다. 창녀를 동정의 눈길로 보는 시각을 피함으로써 독자와 창녀의 계층적 지위를 지우고, 창녀가 창녀를 비웃는 방식으로 이야기의 초점을 전환시킨다. 그럼으로써 그녀들을 인간으로서 의지할 곳 없어 괴로운 것은 아닌지, 엘리트 남성들의 이중적인 면모를 압축적으로 제시해, 매춘을 양산하는 사회구조와 이중적인 도덕률을 용인하는 사회 풍조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거리를 제공해 준다. 중간에 삽입되는 당시(唐詩)는, 옛날 사람들이 기생들에게서 느꼈던 운치를 대체하는 역할을 하면서 작품에 독특한 느낌을 더한다.

<라이춘 아주머니의 쓸쓸한 가을>에서는, 중국의 전통적인 가족 관념이 미국의 경제원조와 함께 들어온 미국식 가족 관념에 의해 점차 어떻게 변해 가는지 잘 보여 주고 있으며, 문화적 차이로 인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가족 개념과 ‘전통’이라는 명분만으론 유지되기 힘든 그런 가족 개념 사이에서 시달렸던 타이완 사회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샤오린, 타이베이에 오다>는, 왕전허가 항공사와 방송국에서 직장 생활을 하면서, 하루 종일 마작에 빠져 살고 최신 유행을 쫓아가기 바쁜 직장 동료들을 보면서 쓴 작품이다. 시골에서 올라와 도시의 소시민으로 어렵게 적응하고 있는 ‘샤오린’의 시각을 통해, 타이완 사회에 만연해진 과도한 영어 사용 현상과 세련된 전문 직업인으로 보이기 위해 붙인 영어 이름이, 정작 중국어로 들으면 우스꽝스럽고 해괴망측한 의미가 된다는 것을 언어유희를 통해 풍자적으로 보여 주는 작품이다.‘언어’ 자체와 문학의 ‘형식’에, 과감한 실험과 파격적인 사용을 감행한 왕전허의 창작 기법상의 변화는, 이 작품의 매력을 배가시킨다.

<호랑이 두 마리>는, 사람은 좀 모자라지만 구두 가게 사장인 아샤오와 허우대는 멀쩡하지만 점원인 둥하이라는 대조적인 두 인물을 둘러싸고 전개되는 이야기다. 하지만 왕전허 소설 속의 평범한 사람들은, 독자에게 동정을 불러일으키고 세상의 부조리에 대해 성토하게끔 하는 불쌍한 사람들이거나 비참한 상황에 처해 있지는 않다. 너무 볼품없고 우스꽝스러워서 작품 속의 다른 사람들이 그를 조롱할 때 독자들을 동참하게 만들기도 한다. 실생활에서 사용하고 있을 것 같은 과격하고 천박하며 외설적인 말과 성적(性的) 농담이 전혀 걸러지지 않고 날것 그대로 등장한다.

왕전허는 문학사에서 흔히 언급되는 향토 문학 작가라는 타이틀보다 다양한 언어와 파격적인 기법을 과감하게 활용한 작가다. 또한 자신의 특권 의식과 권위 의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섣불리 박해받고 소외되는 자의 대변자로 나서기보다 어쩌면 값싼 동정이나 연민, 허접한 교양과 손바닥 뒤집듯 제멋대로인 도덕적인 시각을 벗어 버리고, 나의 가족과 이웃의 고통과 어리석음을, 고독과 허영을, 순진함과 상스러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자신의 작중인물들을 이렇게 형상화함으로써, 타이완 최고의 엘리트들에게 배운 작가로서의 사회적 책임을 조금이나마 실천하려 한 것은 아니었을까?


☑ 책 속으로

“그는 귀머거리야! 걱정할 필요 없어. 그가 들을 수 있다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야!”

한마디 한마디가 징이 울리는 것처럼 단단하게 닫혀 있는 완파의 귓속을 뚫고 들어왔는데, 그 여운이 얼마나 길던지! 출옥한 지 며칠 만에 완파는 얼굴이 온통 벌겋게 되어서, 뜬금없이 남들에게 비웃음을 사고 있는 것이었다.

-<혼수로 받은 수레> 중에서


☑ 지은이 소개

왕전허(王禎和, 1940∼1979)

왕전허는 1940년 타이완 동부에 위치한 화롄(花蓮)에서 태어났다. 19세에 타이완대학 외국어문학과(臺灣大學 外文系)에 합격해 도시로 나가기 전까지 줄곧 고향에서 살았다. 대학 2학년 때 처녀작 <귀신·북풍·사람>을 ≪현대문학≫ 잡지에 발표하면서 작가로 등단했다.

전후(戰後) 타이완대학 외문과는, 정부의 과도한 언론·출판·사상 통제와 국민당 정부가 강제로 주입하다시피 한 중화 문화 찬양 및 반공(反共) 문학 일색으로 황폐화된 타이완 문학계를 살리기 위해, 현재 타이완 사회의 실재를 반영한 작품, 그리고 문학 자체에 대한 탐구에 정진할 것을 주장하며 ≪문학잡지(文學雜誌)≫를 창간했다. ≪현대문학≫은 바로 이러한 스승들의 가르침을 이어받은 청년 세대가 창간한 문예 잡지였다. ≪현대문학≫은 1960년 3월에 창간되어 중간에 잠시 정간되었다가 1984년 5월에 폐간되었는데, 총 206편의 소설이 게재되었고 70여 명의 작가를 배출해, 전후 타이완 문학계에서 명실상부 중추적인 역할을 한 잡지라고 할 수 있다.

왕전허는 대학을 졸업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화롄중학(花蓮中學)에서 영어를 가르치다가, 2년 뒤 캐세이퍼시픽(Cathay-pacific) 항공사에서 근무했다. 1969년에는 다시 TV 방송국에 입사했는데, 그는 특이하게도 학교에 적을 두거나 전업 작가로 활동하지 않고, 항공사와 방송국으로 이직하며 창작 활동을 했다. 방송국에 근무하면서부터는, 자신이 발표했던 소설들 중 일부를 TV 극본으로 고쳐 써 TV 단막극으로 만들기도 했고, 1972년에는 미국 아이오와(Iowa)대학의 초청을 받아, 타이완을 대표하는 작가로서 국제 작가 워크숍(International writers’ workshop)에 틈틈이 참여하기도 했다.

초기 대표작들 <귀신·북풍·사람>(1961. 2), <어느 여름날>(1961. 7), <즐거운 사람>(1964. 10), <혼수로 받은 수레>(1967. 3), <이제 다시는(永遠不再)>(1969. 2) 등은 그러한 고향의 정취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특히 <혼수로 받은 수레>는, 왕전허를 타이완 문학사에서 1960년대 향토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기억하게 한 대표작이자 많은 비평가들에게 회자되고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문학계간(文學季刊)≫이라는 잡지에 발표되었는데, 1966년 10월에 창간되어 1970년 2월에 정간된 이 잡지는, ≪문학잡지≫와 ≪현대문학≫에 대해 척박한 타이완 문단을 일군 선구자로서의 역할은 했으나 아카데믹한 환경에 둘러싸여 타이완 사회의 변화에 소극적인 역할을 한다고 비판적인 평가를 했던 문학 동인들이 만든 것이었다.

1960년대 중반에서 1970년대로 접어들면서, 화려한 도시 생활에서 목격하고 경험했던 씁쓸하고도 우스꽝스러운 사회 풍경을 주로 작품화했는데, <라이춘 아주머니의 쓸쓸한 가을>(1966. 11), <호랑이 두 마리>(1971. 12), <샤오린, 타이베이에 오다>(1973. 10)를 예로 들 수 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1979년 39세의 젊은 나이에 암에 걸려 오랜 기간 병마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 와중에 <샤오린, 타이베이에 오다>의 모티브와 문제의식을 확장시켜 장편소설 ≪미인도(美人圖)≫(1982)와 ≪장미, 장미여, 사랑해(玫瑰, 玫瑰, 我愛伱)≫(1984)를 발표해 생애 두 번째로 문단에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향토 작가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타이완 문단의 대표적인 포스트모더니즘 작가로 거듭나게 되었다. 1987년에는 <어느 가수의 인생(人生歌王)>, <종신대사(終身大事)> 등과 같은 중편을 몇 편 발표했지만, 1990년 결국 오랜 병마로 심장까지 약해져 51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사후에, 미완성 유고인 중편소설 <두 번의 사랑(兩地相思)>(1993)이 ≪연합문학(聯合文學)≫ 제103기에 발표되었다.


☑ 옮긴이 소개

고운선

부산대학교에서 한문학을 전공하고, 같은 대학 석사 과정에서 중어중문학을 전공한 후, 고려대학교에서 중국 현대 작가 주줘런(周作人)에 대한 논문 <周作人 散文에 나타난 문학 담론 연구>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20세기 초반 동·서양 지식 교류의 역사 및 세계사적 지식 담론의 보급과 유통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통해 근대 시기 동아시아의 지식 담론이 어떤 원류를 거쳐 서로에게 영향을 주게 되었는지 관심을 가지고 있다. 특히 20세기 초반 지식의 생산과 유통에 중심 역할을 했던 중국의 각종 문예 잡지에 흥미를 가지고 있으며, 당시의 중국 작가들이 번역·출판했던 외국 작가들의 작품 번역본과 여기에서 관찰되는 문화적 길항작용에 흥미를 가지고 연구 중에 있다. 그간 발표 논문으로는 <性 담론의 수용과 周作人의 審美觀>, <현대 중국 사회 納妾의 과도기적 양상>, <1960∼1970년대 왕전허(王禎和)의 초기 단편소설 연구>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타이완 작가 중리허(鍾理和)의 ≪원향인(原鄕人)≫(지식을만드는지식, 2011)이 있다.


☑ 목차

혼수로 받은 수레(嫁粧一牛車)

어느 여름날(夏日)

귀신·북풍·사람(鬼·北風·人)

즐거운 사람(快樂的人)

라이춘 아주머니의 쓸쓸한 가을(來春姨悲秋)

샤오린, 타이베이에 오다(小林來臺北)

호랑이 두 마리(兩隻老虎)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2011년 1월 30일 일요일

예웨이롄 시선



타이완을 대표하는 현대시 작가로 최근 주목받고 있는 예웨이롄을 국내에서 처음 소개한다. 중국 대륙과 홍콩, 타이완, 미국 등 여러 지역을 오가며 자신의 정체성과 시적 탐구를 계속한 예웨이롄. 그의 대표작들을 한데 모은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동양적인 것과 서양적인 것, 전통과 현대를 두루 아우르는 시적 조화를 엿볼 수 있다.


시인의 창작이 그의 삶의 유·무형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집합체라면 예웨이롄의 시 세계는 시간을 초월하고 공간을 넘나드는 여러 이질적 요소들의 착종의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산과 추방, 국가와 민족, 중국과 서양, 과거와 미래, 현대와 전통….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진 사회적, 역사적, 문화적 삶의 조건과 의식적인 시적 추구는 이 같은 주제 안에서 자아와 세계에 대한 독특한 감수를 담은 일련의 시를 배태했다.
5·4운동 이래 중국의 현대 시인들은 세계문학과의 조우를 통해 시의 형식과 내용을 부단히 확장해 갔다. 세계문학의 거대한 조류는 중국 현대시라는 드넓은 미개척지에 일시에 들이쳤고, 시인들 역시 이를 계기로 다양한 문학적 시도를 통해 시의 영역을 부단히 넓혀 갔다. 그러나 중국과 서구의 역사적 경험의 상이함과 문화적 바탕의 이질성으로 말미암아 서구 문예의 성과는 중국의 전통 정감이라는 필터를 거쳐 이식될 수밖에 없었다. 중국 시와 서구 시의 이 같은 상호 교류로 인해 중국의 현대시는 부단히 확장되고 성숙해 갔다. 예웨이롄은 상이한 이 두 세계의 내면화를 통해 존재와 세계에 대한 사유의 총체성을 확보하고자 했다. “나는 현재와 미래 사이에서 고심하며, ‘탐구’하고 ‘모색’해 갔다. 이를 위해 전통과 현대의 상이한 문화적 시공을 넘나들며 문화와 역사의 다층적 반향을 두루 살펴보았다. 아울러 고전적 어휘와 이미지, 구법을 이용해 새로움을 빚거나 중국 시가 중시하는 현현의 방식을 사용해 시각적 이미지와 사건을 한데 어울렀다. 이 밖에 서양 현대시가 제공하는 함축과 다의가 농축된 언어로써 어지러이 산산조각 난 현대 중국의 경험을 길들여 갔다.”
1950∼1960년대 타이완의 많은 시인들은 고전적 어휘와 이미지를 자신의 시에 되살림으로써 중국문학의 본류를 재현하려 했다. 예웨이롄이 밝힌 ‘산산조각 난 현대 중국의 경험을 길들이기’ 위한 그 모든 ‘탐구’와 ‘모색’은 결국 ‘파편화된 문화 공간’을 ‘파괴’하고 ‘재건’하기 위한 시인의 주체적 자각이자 역사적 사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980년대 말에 이르기까지 예웨이롄에 대한 중국 학자들의 평가는 대체로 대동소이했다. 그의 초기 시작(詩作)을 서양 현대시의 학습과 적용에 실패한 사례로 꼽는가 하면, 순수시 창작을 시인의 역사적 사명의 방기로 단정 짓는 서술도 보인다. 이 같은 평가는 ‘문화대혁명’이 종결된 이후, 문예의 해빙기를 맞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중국 문단의 수준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바꿔 말하면 그때까지도 사회·정치적 효용성의 여부와 대중과의 소통 가능성을 시인과 개별 문학작품에 대한 부동의 평가 기준으로 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최근 수년 사이에는 시인 예웨이롄을 새롭게 주목하는 한편, 중국 당대 문학의 숨겨진 성과로 그의 시를 재평가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여기저기에서 포착되고 있다.
이 책은 예웨이롄과 그의 시 작품을 국내 최초로 번역, 소개한다. 옮긴이가 지은이 예웨이롄과 직접 연락을 주고받으며 의미 있는 작품을 선정한 것이어서 그 가치가 더욱 높은 책이다.


책 속으로

침묵은
귓전을 때리는 징소리보다
크게 진동한다
어쩌면
폭발해야만
산산조각 난 자신의
진실한 형상을 보게 될 것이다
- <심연> 중에서


가을이 깊었다.

나무는
형체를 잃은 채 뼈대만 덩그러니 섰다.

이파리 하나하나의
병력(病歷)은
차마 버리지 못하는 기억처럼
구석에 차곡차곡 쌓여
먼지 덮어쓴 채
빛바랬다.

청명한 푸른 하늘에
검은 새 한 마리
언뜻 스쳐 간다.
- <인생> 중에서


지은이 소개

예웨이롄(葉維廉, 1937∼)

1937년 중국의 광둥성(廣東省) 중산현(中山縣)의 바닷가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예웨이롄(葉維廉)은 중풍을 앓아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와 시골의 조산사로 일하던 어머니와 함께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1세이던 1948년, 그는 일본의 대륙 침략으로 인한 포화와 기아를 피해 가족과 함께 홍콩으로 거처를 옮기게 되고, 이후 1955년에는 타이완으로 이주해 타이완대학 외국어문학과에 입학한다. 1959년 타이완사범대학 대학원 영어영문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한 그는 1963년 미국 유학길에 올라 이듬해 프린스턴대학에서 비교문학을 전공해 1967년에 박사 학위를 취득하기에 이른다. 같은 해 9월부터 캘리포니아대학 교수로 비교시학 및 영미 모더니즘 시 그리고 중국 시 등을 강의했다. 33세 때인 1970년에 타이완으로 돌아온 그는 타이완대학 외국어과의 석좌교수를 지내며 비교문학 박사과정을 설립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아울러 1980년부터 두 해 동안 홍콩 중원대학(中文大學) 비교문학과의 번역센터장으로 초빙되어 비교문학연구센터를 주관했다. 초기에는 시 창작과 현대시 운동에 주력해 ‘타이완 10대 시인’으로 선정되기도 했으며 이후 시 창작을 계속하는 한편 문예 비평과 문예 이론 방면의 연구를 병행했다. 현재 미국 UC샌디에이고에 재직 중이다.
예웨이롄은 타이완대학 재학 시절부터 중국어와 영어로 시를 쓰기 시작해, 그가 쓴 시가 1964년 당시 ≪창세기(創世記)≫ 발간 10주년 최우수 작품으로 선정되기도 했고, 1977년에는 문예 중흥의 공로로 표창을 받기도 했다. 주요 저서 가운데 시집으로는 ≪푸가(賦格)≫, ≪의식의 가장자리(醒之邊緣)≫, ≪예웨이롄 자선 시집(葉維廉自選集)≫, ≪들꽃 이야기(野花的故事)≫, ≪꽃 피는 소리(花開的聲音)≫, ≪예웨이롄 시선(葉維廉詩選)≫, ≪빙하의 초월(冰河的超越)≫ 등이 있고, 산문집으로는 ≪중국의 바다(一個中國的海)≫, ≪우울한 철로(憂鬱的鐵路)≫, ≪탐색: 예술과 인생(尋索: 藝術與人生)≫ 등이 있다.
학술 방면에서 예웨이롄의 공헌은 그가 시 창작을 통해 거둔 성과를 앞서는 것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그는 동서 비교문학에서 서양의 문학 이론을 중국문학 연구에 어떻게 접목해 응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이의 적합성 및 그에 따른 위험 요소를 밝힘으로써 중서문학(中西文學)의 모형을 제시했다. 아울러 문학 연구에서의 더욱 합리적인 공동 규율 구축을 위해 다방면에 걸친 이론의 구조를 체계화하는 데 앞장섰다. 이 방면의 주요 저서로 ≪동서 비교문학 모형의 운용(東西比較文學模子的運用)≫(1974)과 ≪비교시학(比較詩學)≫(1983)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