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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26일 목요일

마테오 리치 중국 선교사 2(Della Entrata della Compagnia di Giesu e Christianita nella Cina)


도서명 : 마테오 리치 중국 선교사 2(Della Entrata della Compagnia di Giesu e Christianita nella Cina)
지은이 : 마테오 리치(Matteo Ricci)
옮긴이 : 신진호·전미경
분야 : 역사, 종교
출간일 : 2013년 12월 16일
ISBN : 979-11-304-1186-6 94900 / 979-11-304-1177-4 94900(세트)
가격 : 28,000원
사륙판 / 무선제본 / 592쪽




☑ 책 소개

서양의 종교는 어떻게 동아시아로 전해졌는가? 서양 선교사들은 중국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았는가? 서양과 중국은 무엇을 나누고 교류했는가?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가 중국에서 펼친 선교 활동을 스스로 정리했다. 그의 기록을 통해 동서양 문명 교류의 생생한 현장을 엿볼 수 있다.
이 책은 두 권으로 나누어 출간했으며, 그중 2권은 제4부와 제5부를 수록했다.


☑ 출판사 책 소개

이 책에는 1582년 마테오 리치가 중국 선교를 목표로 마카오에 첫발을 내딛고 갖은 고난을 무릅쓴 끝에 북경에 입성한 뒤, 선교를 비롯해 관계 인사들과의 교류, 지도 제작, 각종 저술 등의 활동을 펼치다가 1610년 생을 마감하기에 이르는 생생한 기록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외국과의 교류에 전혀 익숙하지 않았던 제국에서 낯선 이방인의 선교 활동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것이었지만, 리치의 선교는 여타 선교사와 차이가 있었다. 즉, 무력과 자문화 중심적인 교만함으로 제국주의의 첨병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던 여타 선교사들과 달리 리치는 과학적 재능을 바탕으로 수많은 천문 기기, 자명종, 항해 기구 및 세계지도 등을 만들어 당대 최고의 중국 과학자들을 놀라게 했다. 특히 <곤여만국전도(坤輿萬國全圖)>로 대표되는 세계지도는 당시 ‘중국이 곧 세계’라는 생각에 빠져 있던 중국인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안겼다.
또한 리치는 중국어를 배우고 중국식 복식을 갖춰 입으며 중국식 예절을 지키려 애쓰는 등 중국을 타자화하지 않고 그 사상과 문화를 가급적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였다. 이러한 개방적·수용적·평화적 태도는 서유럽이 지리상의 발견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선교사를 앞세워 팽창주의를 무자비하게 벌이던 시대였기 때문에 더욱 이채롭게 다가온다.
또한 이 책에서 그는 선교에 관련된 내용뿐만 아니라 당시 애정 어린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던 중국의 역사, 문화 및 사회생활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중국과 중국인에 대한 그의 시각은 매우 따뜻하며 온화하다. 서술한 내용 중에는 물론 중국 문화와 현상에 대해 서구인이 가지는 선입견이나 자료나 기술적 한계로 인한 오해와 착각도 존재하기는 하지만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 않으며, 오히려 이것이 기록의 사실성과 함께 인간미를 배가해 주기도 한다.
특히 문화적 차이로 빚어지는 수많은 갈등 양상이나 리치의 눈에 신기하게 비친 당시 중국 문화에 대한 묘사 등은 400년 전의 모습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 느껴질 정도로 생생하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굳게 믿는 종교적 신념과 그것의 전파를 위해 목숨까지 초개와 같이 버리는 선교사들의 희생 앞에서는 시대와 종교를 초월한 숙연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 책 속으로

신부들은 중국식 연말, 즉 1601년 정월 24일에 북경에 도착했다. 그날 그들은 성 밖의 태감 관사에 머물렀는데, 도착한 뒤 공물을 정리하고 목록을 만들었다. 이튿날 이 공물들과 마당의 물건들은 기세도 등등하게 황궁으로 향했다.
황제가 성상을 보고는 놀라며 “이것은 살아 있는 부처로다”라고 말했다. 이는 ‘살아 있는 천주’라는 의미였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참된 도리를 말한 것이었다.
-본문 606쪽

신부들은 북경에서 선교 사업을 시작할 때 매우 조심스럽게 그리고 일부러 서서히 일을 진행했다. 무슨 새로운 일은 다른 사람의 의심을 사기 마련이고 그렇게 되면 지금 거처를 세우려는 절박한 목표에 방해가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거처를 세우고 사람들이 안정되기만 하면 더 이상 늦출 이유가 없었다. 그들은 갖가지 방법을 써서 그들이 중국에 온 최후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처음에 이 특수한 장소에서 그들은 매우 조심스럽게 열성적인 교우들을 찾아냈고, 교우 숫자에 연연하지 않았다.
-본문 797쪽


☑ 지은이 소개

마테오 리치(Matteo Ricci, 1552~1610)
1552년 이탈리아 교황령 마체라타에서 태어나 1571년 예수회에 입회했다. 예수회는 성 이그나티우스 로욜라가 세운 가톨릭 수도회로서 뛰어난 지성과 건강한 육체와 함께 매력적이고 헌신적인 성품을 지닌 당대 엘리트만을 엄선해 가입시킨 조직이다. 1572년에는 예수회의 피렌체 기숙학교에서 인문과학을 공부했고, 1573년에는 로마대학교에서 철학과 기하학, 천문학 등을 공부했다. 리치가 중국 선교 활동 과정에서 탁월한 과학적 재능을 발휘했던 것은 이러한 지적 배경이 바탕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1580년에는 로마 가톨릭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가 로마를 떠나 외지 선교에 나선 것은 1578년이었고, 처음 도착한 곳은 인도의 고아(Goa)였다. 그곳에서 리치는 4년간 머물다가 중국 포교의 명을 받고 1582년에 중국 마카오에 첫발을 디뎠다. 이후 조경(肇慶), 소주(韶州), 남창(南昌) 및 남경 등을 거쳐 1601년에 북경에 입성했다. 신종 황제를 알현하고 천주교회 건립 허가를 받았다. 선교 외에는 1583년부터 1602년에 걸쳐 세계지도를 제작한 일이 그의 가장 큰 업적으로 꼽힌다. 이를 통해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고 그 밖의 나라들은 오랑캐라는 오만함에 사로잡혀 있던 중국인들에게 새로운 인식을 심어 주었다. 이후 상하 계층을 막론하고 선교와 문화 교류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다 1610년 북경에서 생을 마쳤다.


☑ 옮긴이 소개

신진호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중국현대문학의 세계≫(공저, 현암사, 1997), ≪중국문학사의 이해≫(지영사, 1998), ≪민족혼으로 잠들다≫(공저, 학고재, 1999) 등이 있고, 논문으로 <중국에서의 한류에 관한 고찰>, <魯迅과 郭沫若의 역사소설 비교론>, <1930년대 夏衍 극작의 경향성>, <老舍의 화극에 나타난 현실인식과 역사의식>, <陳白塵의 ‘세한도’ 재평가> 등이 있다. ≪중국현대문학비평사≫(신아사, 1994), ≪郭沫若 희곡선≫(공역, 학고방, 2005), ≪田漢 희곡선≫(공역, 학고방, 2006), ≪老舍 희곡선≫(공역, 학고방, 2006), ≪夏衍 희곡선≫(공역, 학고방, 2006), ≪陳白塵 희곡선≫(공역, 학고방, 2006), ≪족발≫(지식을만드는지식, 2008), ≪파시즘 세균≫(지식을만드는지식, 2008), ≪찻집≫(지식을만드는지식, 2009), ≪승관도≫(지식을만드는지식, 2009)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현재 연세대, 한양대, 명지대, 가천대에 출강하고 있다.

전미경
부산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표 논문으로는 <≪노생거 사원≫에 나타난 이중적 서술과 여주인공의 성장>, <제인 오스틴의 ≪설득≫에 나타난 변화>, <≪오만과 편견≫에 나타난 희극적 전복성>, <≪오만과 편견≫의 역설적 비전: 장자상속제의 문학적 재현>, <국어교육의 독서 활동 평가 방법과 입학사정관제 연계 방안> 등이 있다. 연세대학교 언어정보연구원 연구교수를 지냈으며, 현재 국민대학교 교양과정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 목차

제4부 남경에서 북경까지
1장 남경으로 돌아가다 ··············471
2장 최초의 북상 ·················480
3장 공물을 바칠 방법을 찾지 못하다 ········494
4장 다시 남경으로 ················506
5장 남경에서의 공개 강의 ············523
6장 남경의 인사들 ················535
7장 승려와 도를 논하다 ·············546
8장 남경에 거처를 정하다 ············557
9장 남경 개교 ··················566
10장 다시 북상하다 ···············575
11장 임청에서 어려움을 만나다 ··········585
12장 북경으로 들어가 공물을 바치다 ········602
13장 사이관(四夷館)에 들어가다 ·········617
14장 북경에서의 교류 ··············634
15장 절친한 친구 둘 ···············645
16장 요서(妖書) 사건 ··············655
17장 소주(韶州)의 지난 일 ············665
18장 여러 어려움 ················688
19장 남경의 선교 업무 ··············712
20장 북경의 선교 업무 ··············726

제5부 중국 교회의 독립과 발전
1장 마테오 리치의 지도 아래 독립적인 선교구가 되다 ·741
2장 마테오 리치의 중국어 저작 ··········749
3장 문인 교우와 그들의 저작 ···········762
4장 남창의 교회 ·················769
5장 소주(韶州)의 선교 상황 ············777
6장 구태소가 마침내 입교하다 ··········789
7장 유클리드 ≪기하원본≫의 중국어 번역 1판 ···797
8장 중국 선교구 창시자 발리냐노 신부의 죽음 ····809
9장 황명사 수사의 억울한 옥살이와 희생 ······814
10장 상상의 반란이 스스로 생겨났다 없어지고 선교사들이 누명을 벗다 ··········831
11장 카타이와 중국 ···············846
12장 카타이와 중국이 같은 곳임을 입증하다 ····858
13장 고이스 수사가 중국에서 잠들다 ········874
14장 소에이루 신부의 죽음과 남창의 고난 ·····888
15장 박해로 인해 남창 교우들의 믿음이 공고해지다 ·906
16장 중국의 첫 성모회 ··············913
17장 남경 교회의 성장 ··············927
18장 상해의 카타네오 신부와 서광계 교우 ·····939
19장 소주(韶州)에서 마카오까지의 어려운 여정 ···949
20장 마테오 리치의 죽음 ·············959
21장 황제가 마테오 리치에게 묘원(墓園)을 하사하다 ·970

찾아보기 ···················1019

해설 ·····················1041
지은이에 대해 ·················1046
옮긴이에 대해 ·················1048


마테오 리치 중국 선교사 1(Della Entrata della Compagnia di Giesu e Christianita nella Cina)


도서명 : 마테오 리치 중국 선교사 1(Della Entrata della Compagnia di Giesu e Christianita nella Cina)
지은이 : 마테오 리치(Matteo Ricci)
옮긴이 : 신진호·전미경
분야 : 역사, 종교
출간일 : 2013년 12월 16일
ISBN : 979-11-304-1185-9 94900 / 979-11-304-1177-4 94900(세트)
가격 : 28,000원
사륙판 / 무선제본 / 490쪽




☑ 책 소개

서양의 종교는 어떻게 동아시아로 전해졌는가? 서양 선교사들은 중국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았는가? 서양과 중국은 무엇을 나누고 교류했는가?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가 중국에서 펼친 선교 활동을 스스로 정리했다. 그의 기록을 통해 동서양 문명 교류의 생생한 현장을 엿볼 수 있다.
이 책은 두 권으로 나누어 출간했으며, 그중 1권은 제1부에서 제3부까지를 수록했다.


☑ 출판사 책 소개

이 책에는 1582년 마테오 리치가 중국 선교를 목표로 마카오에 첫발을 내딛고 갖은 고난을 무릅쓴 끝에 북경에 입성한 뒤, 선교를 비롯해 관계 인사들과의 교류, 지도 제작, 각종 저술 등의 활동을 펼치다가 1610년 생을 마감하기에 이르는 생생한 기록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외국과의 교류에 전혀 익숙하지 않았던 제국에서 낯선 이방인의 선교 활동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것이었지만, 리치의 선교는 여타 선교사와 차이가 있었다. 즉, 무력과 자문화 중심적인 교만함으로 제국주의의 첨병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던 여타 선교사들과 달리 리치는 과학적 재능을 바탕으로 수많은 천문 기기, 자명종, 항해 기구 및 세계지도 등을 만들어 당대 최고의 중국 과학자들을 놀라게 했다. 특히 <곤여만국전도(坤輿萬國全圖)>로 대표되는 세계지도는 당시 ‘중국이 곧 세계’라는 생각에 빠져 있던 중국인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안겼다.
또한 리치는 중국어를 배우고 중국식 복식을 갖춰 입으며 중국식 예절을 지키려 애쓰는 등 중국을 타자화하지 않고 그 사상과 문화를 가급적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였다. 이러한 개방적·수용적·평화적 태도는 서유럽이 지리상의 발견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선교사를 앞세워 팽창주의를 무자비하게 벌이던 시대였기 때문에 더욱 이채롭게 다가온다.
또한 이 책에서 그는 선교에 관련된 내용뿐만 아니라 당시 애정 어린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던 중국의 역사, 문화 및 사회생활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중국과 중국인에 대한 그의 시각은 매우 따뜻하며 온화하다. 서술한 내용 중에는 물론 중국 문화와 현상에 대해 서구인이 가지는 선입견이나 자료나 기술적 한계로 인한 오해와 착각도 존재하기는 하지만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 않으며, 오히려 이것이 기록의 사실성과 함께 인간미를 배가해 주기도 한다.
특히 문화적 차이로 빚어지는 수많은 갈등 양상이나 리치의 눈에 신기하게 비친 당시 중국 문화에 대한 묘사 등은 400년 전의 모습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 느껴질 정도로 생생하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굳게 믿는 종교적 신념과 그것의 전파를 위해 목숨까지 초개와 같이 버리는 선교사들의 희생 앞에서는 시대와 종교를 초월한 숙연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 책 속으로

고대에 중국이 스스로에게 붙인 명칭은 ‘문화국(文華國)’이었다. 중국 책에서 늘 논하는 오상(五常) 가운데 하나는 바로 ‘예(禮)’다. 이른바 오상은 바로 동서고금을 통해 변함없는 다섯 가지 도덕이다. 예는 상호 간에 이루어지는 공경에 있는 것으로, 일 처리를 하는 데 격식을 갖추는 것이다. 중국의 예법은 대대로 전해져 더해지기는 했으나 줄어든 것은 없어서 수많은 예법을 지키느라 정작 다른 일을 못할 정도다.
-본문 82쪽

새로운 종교가 중화민족 사이에서 의심을 초래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예수회 신부들은 공개적인 마당에서는 종교를 언급하지 않았다. 손님을 맞이할 때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시간은 중국의 어문과 작품, 그리고 풍속을 연구하는 데 쏟았다. 하지만 그들은 몸소 모범을 보이고 실제 덕이 넘치는 생활로 근처에 사는 비교인들을 가르쳐 이끌었다. 이렇게 그들은 천천히 민중의 마음을 얻기로 했다. 일부러 너무 꾸며 대지 않고 그들의 심령을 준비시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진리를 받아들이게 하는 동시에 지금까지 거둔 모든 성과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했다.
-본문 235쪽

다음 날 새벽에 리치 신부는 새집에서 미사를 드렸다. 그날은 바로 베드로와 바오로 두 분의 축일이었다. 이번 미사는 은혜에 감사하는 미사로, 천주님의 구원에 감사드리고 사도들에게 새로운 환경에서 잘 이끌어 주실 것과 앞으로 사업을 보호해 주실 것을 빌었다.
-본문 439쪽


☑ 지은이 소개

마테오 리치(Matteo Ricci, 1552~1610)
1552년 이탈리아 교황령 마체라타에서 태어나 1571년 예수회에 입회했다. 예수회는 성 이그나티우스 로욜라가 세운 가톨릭 수도회로서 뛰어난 지성과 건강한 육체와 함께 매력적이고 헌신적인 성품을 지닌 당대 엘리트만을 엄선해 가입시킨 조직이다. 1572년에는 예수회의 피렌체 기숙학교에서 인문과학을 공부했고, 1573년에는 로마대학교에서 철학과 기하학, 천문학 등을 공부했다. 리치가 중국 선교 활동 과정에서 탁월한 과학적 재능을 발휘했던 것은 이러한 지적 배경이 바탕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1580년에는 로마 가톨릭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가 로마를 떠나 외지 선교에 나선 것은 1578년이었고, 처음 도착한 곳은 인도의 고아(Goa)였다. 그곳에서 리치는 4년간 머물다가 중국 포교의 명을 받고 1582년에 중국 마카오에 첫발을 디뎠다. 이후 조경(肇慶), 소주(韶州), 남창(南昌) 및 남경 등을 거쳐 1601년에 북경에 입성했다. 신종 황제를 알현하고 천주교회 건립 허가를 받았다. 선교 외에는 1583년부터 1602년에 걸쳐 세계지도를 제작한 일이 그의 가장 큰 업적으로 꼽힌다. 이를 통해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고 그 밖의 나라들은 오랑캐라는 오만함에 사로잡혀 있던 중국인들에게 새로운 인식을 심어 주었다. 이후 상하 계층을 막론하고 선교와 문화 교류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다 1610년 북경에서 생을 마쳤다.


☑ 옮긴이 소개

신진호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중국현대문학의 세계≫(공저, 현암사, 1997), ≪중국문학사의 이해≫(지영사, 1998), ≪민족혼으로 잠들다≫(공저, 학고재, 1999) 등이 있고, 논문으로 <중국에서의 한류에 관한 고찰>, <魯迅과 郭沫若의 역사소설 비교론>, <1930년대 夏衍 극작의 경향성>, <老舍의 화극에 나타난 현실인식과 역사의식>, <陳白塵의 ‘세한도’ 재평가> 등이 있다. ≪중국현대문학비평사≫(신아사, 1994), ≪郭沫若 희곡선≫(공역, 학고방, 2005), ≪田漢 희곡선≫(공역, 학고방, 2006), ≪老舍 희곡선≫(공역, 학고방, 2006), ≪夏衍 희곡선≫(공역, 학고방, 2006), ≪陳白塵 희곡선≫(공역, 학고방, 2006), ≪족발≫(지식을만드는지식, 2008), ≪파시즘 세균≫(지식을만드는지식, 2008), ≪찻집≫(지식을만드는지식, 2009), ≪승관도≫(지식을만드는지식, 2009)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현재 연세대, 한양대, 명지대, 가천대에 출강하고 있다.

전미경
부산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표 논문으로는 <≪노생거 사원≫에 나타난 이중적 서술과 여주인공의 성장>, <제인 오스틴의 ≪설득≫에 나타난 변화>, <≪오만과 편견≫에 나타난 희극적 전복성>, <≪오만과 편견≫의 역설적 비전: 장자상속제의 문학적 재현>, <국어교육의 독서 활동 평가 방법과 입학사정관제 연계 방안> 등이 있다. 연세대학교 언어정보연구원 연구교수를 지냈으며, 현재 국민대학교 교양과정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 목차

마테오 리치 전서 서문 ···············xi
≪마테오 리치 중국 선교사≫의 원고와 판본 ····xvi

제1부 서론−중국과 중국인
1장 이 책을 쓴 동기와 서술 방식 ···········3
2장 중국의 명칭과 위치, 면적 ············7
3장 중국의 생산 물자 ···············14
4장 중국의 공예 ·················26
5장 학술 및 시험 제도 ···············36
6장 중국의 정치 ·················56
7장 중국의 예법 ·················82
8장 중국의 습속 ·················108
9장 미신과 그 밖의 폐단 ·············117
10장 종교 파벌 ·················140

제2부 처음 중국에 들어가다
1장 성 프란시스코 사비에르가 중국에 들어가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다 ·········169
2장 중국행, 두 번째 시도 ·············189
3장 1582년 세 번째로 중국에 들어갔으나 정착하지는 못하다 ··············202
4장 선교사가 초청받아 조경에 가서 집을 짓고 교회를 열다 ···············218
5장 교리를 강론하기 시작하다 ··········235
6장 루지에리가 마카오로 돌아오고 마테오 리치는 포로가 되어 풍채와 도량을 배우다 ·····244
7장 중국 주재 스페인 대사관 ···········261
8장 신부들이 재차 중국에 들어가고 루지에리가 절강을 여행하다 ·············270
9장 절강 여행을 마친 루지에리가 광서를 여행하다 ··278
10장 산드가 마카오로 돌아오고 루지에리는 무고를 당하다 ···············284
11장 루지에리가 마카오로 돌아가고 산드는 조경으로 돌아와 다시 한 차례 풍파를 겪다 ····295
12장 루지에리는 로마에서 대사관 설립을 준비하고 알메이다는 조경으로 오는 길에 여러 어려움을 당하다 ·301
13장 땅에 묻힌 씨앗 ···············311
14장 조경의 마지막 몸부림과 선교사 추방 ·····320

제3부 16세기 중국−마테오 리치의 일기(1583∼1610)
1장 전도소를 회복하고 소주(韶州)에 새로운 거처를 마련하다 ··············337
2장 발리냐노가 전도소를 건립하다 ········356
3장 구태소 ···················363
4장 소주(韶州)의 초창기 선교 사업 ········373
5장 알메이다의 죽음 ···············381
6장 남웅의 개교(開敎) ··············389
7장 밤에 강도가 출몰하다 ············396
8장 프란체스코 데 페트리스 신부의 죽음 ······408
9장 마테오 리치가 남경에 도착하다 ········413
10장 마테오 리치가 남경에서 쫓겨나다 ·······429
11장 남창의 개교 ················440
12장 남창의 황족 ················450
13장 남창에서 기초를 세우다 ···········455
14장 소주(韶州)에서 다시 소요를 겪다 ·······462


2013년 12월 24일 화요일

기독교 강요


도서명 : 기독교 강요
지은이 : 장 칼뱅
옮긴이 : 이은선
분야 : 인문 > 철학 > 종교
출간일 : 2010년 4월 15일
ISBN : 978-89-6406-527-3
가격 : 12,000원
A5 / 양장본 / 262쪽



10% 발췌


☑ 200자 핵심요약

종교개혁 당시의 신학 사상을 가장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제시한 책. 종교개혁의 정착과 발전에 상당한 기여를 한 신학적 명저로 평가받는다. 이 책은 중세 로마 가톨릭 교회의 부패를 개혁하고 참다운 교회를 세우려는 칼뱅의 신앙고백적인 신학적 진술을 담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종교개혁의 핵심적인 주장과 그 주장이 전해주는 감동을 동시에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책 소개

이 책의 구성 및 내용
이 책은 원전에서 약 10% 정도를 발췌했다. ≪기독교 강요≫ 최종판은 4권 80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은 4권 전 장에서 그 핵심적 내용만을 간추린 것으로, 칼뱅이 주장하는 종교개혁의 신학 사상을 보다 쉽고 알차게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1권은 창조주이신 삼위일체 하나님을 제시하고, 2권은 구속주 예수 그리스도, 3권은 성령의 구속 역사, 4권은 삼위일체 하나님이 세우신 외적인 은혜의 수단인 교회와 국가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네 권의 구조는 기본적으로 사도신경의 구조와도 일치하고 있다.

교회 개혁에 동참한 신앙인들을 위해 기독교 교리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을 설명
≪기독교 강요≫ 의 초판에서는 기독교 교리의 핵심적인 내용을 설명하기 위한 것으로, 십계명, 사도신경, 주기도문, 성례, 다섯 가지 거짓 성례전, 기독교인의 자유, 교회와 국가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이 책은 이러한 신앙의 기본적인 내용을 설명하면서 동시에 당시 프랑스에서 박해받고 있던 개신교 신자들을 위해 변증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칼뱅은 이 책에 실린 프랑스 왕에게 바친 헌사에서 자신들은 국가를 전복하려는 불순 세력이 아니라 성경 말씀에 따라 부패한 로마 가톨릭 교회를 개혁하여 참된 교회를 세우려는 성도들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자신의 신앙고백이자 개신교 신학에 대한 설명
칼뱅은 또한 ≪기독교 강요≫를 자신의 신앙고백이자 개신교 신학에 대한 설명으로서 저술했다. 
≪기독교 강요≫에서 그는 로마 가톨릭 교회와 함께 재세례파를 비롯한 여러 잘못된 개혁을 시도하는 신학 사상을 비판하고 있다. 또한 칼뱅은 자신이 가장 성경적이라고 믿는 신앙의 내용을 설명했다. 그는 여기서 오직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은 후에 하나님을 경외함으로써 섬기는 경건의 삶을 제시하고자 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루터와 츠빙글리를 비롯한 다른 종교개혁자들의 사상뿐만 아니라 아우구스티누스를 비롯한 초대 교부들의 신학 사상을 종합적으로 수용했다. 칼뱅은 초신자들을 위한 교리서의 성격을 띤 초판을 2판에서는 17장으로 증보하면서, 성경을 읽는 데 도움을 주려는 목적으로 당시의 논쟁거리였던 신학적인 주제들을 다루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기독교 강요≫는 논리적인 구조를 갖추면서도 호소력과 설득력을 지닌 뛰어난 저술이 되었다.


☑ 책 속으로

Tota fere sapientiae nostrae summa, quae vera demum ac solida sapientia censeri debeat duabus partibus constat, Dei cognotitione et nostri. 
우리의 지혜, 말하자면 진실하고 건전한 지혜는 거의 전적으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우리를 아는 지식의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 지은이 소개

장 칼뱅
장 칼뱅(Jean Calvin)은 1509년 프랑스 피카르디 지방의 노용에서 태어났다. 칼뱅은 14세 되던 1523년 파리의 라마르슈(La Marche)대학에 입학했다. 그는 이곳에서 훌륭한 인문주의자였던 코르디에(Maturin Cordier)에게서 라틴어를 배워 뛰어난 문필가로 성장했다. 칼뱅은 1528년에 오를레앙(Orlean)대학으로 가서 법률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탈리아 인문주의 법률학자인 알치아토(Andrea Alciato)에게 배우고자 1529년에 부르주(Bourges)대학으로 옮겼다. 그는 오를레앙대학에서 공부하던 1528년경부터 루터파 신자였던 법학 교수 볼마르(Wolmar)를 만나 헬라어를 배우며 종교개혁 진영의 인물들과 접촉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1533년 코프(Nicolas Cop)가 파리대학 총장으로 취임하면서 루터의 종교개혁 사상이 담긴 연설을 해서 박해를 받을 때 함께 쫓겨 다니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칼뱅은 이 무렵을 전후해서 로마 가톨릭 신앙을 떠나 종교개혁 신앙으로 회심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박해를 피해 다니는 동안에 만난 여러 사람들이 종교개혁의 신학 사상을 설명해 줄 것을 요청해 1536년에 ≪기독교 강요≫ 초판을 발행했다.
칼뱅은 1536년 7월 제네바를 지나가려고 들렀다가 파렐(William Farel)의 강권에 의해 제네바 종교개혁에 동참하게 되었다. 그는 제네바 1차 개혁에 실패하여 1538년 4월에 스트라스부르로 가서 3년 동안 500여 명의 프랑스 피난민 목회를 했다. 그는 이곳에서 목회를 하는 동안에 스트라스부르의 개혁자 부처(Martin Bucer)의 영향을 받았으며, ≪기독교 강요≫ 2판과  ≪로마서 주석≫을 발간하며 학문적으로 성장했고 결혼하여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는 제네바 개혁 활동을 하면서 동시에 지속적인 저술 활동을 통해 종교개혁의 신학적인 토대를 구축했다. 그의 중요한 저술들로는 신구약 성경책의 대부분에 대한 주석, ≪기독교 강요≫ 최종판, 재세례파와 리베르틴파를 비롯한 당시의 여러 가지 잘못된 신학적인 문제들에 대한 논쟁서들, 그리고 유럽의 여러 왕들과 지도자들과 교류했던 많은 서신서들이 있다. 그는 2세대 종교개혁자로서 이러한 저술들을 통해 종교개혁의 신학적 토대를 굳건하게 구축했다. 


☑ 옮긴이 소개

이은선
이은선은 충남 부여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역사교육과와 교육대학원을 마치고 총신대에서 목회학석사(M. Div.), 신학석사(Th. M.), 그리고 철학박사(Ph. D.) 학위를 받았다. 1991년부터 안양대학교 신학대학 기독교문화학과에서 교회사를 가르치고 있으며, 현재 교목실장직을 맡고 있고, 복음주의역사신학회 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2001년에는 예일대학교에 교환 교수로 있었다. 저서로는 ≪칼뱅의 신학적 정치 윤리≫(기독교문서선교회, 1997), ≪신학을 배우려는 젊은이들에게≫(노바출판사, 2008)가 있고, 역서로는 ≪16세기 맥락에서 본 진정한 칼뱅 신학≫(나눔과 섬김, 2003), ≪종교개혁 후 개혁주의 교의학≫(이레서원, 2002), ≪영국의 복음주의≫(한들출판사, 1998), ≪주제별 교회사 상·하≫(요나출판사, 1995), ≪개혁자들의 신학≫(요단출판사, 1994) 외 다수가 있다.


☑ 목차

해설
지은이에 대해

프랑스 왕 프랑수아 1세에게 드리는 헌사
제1권 창조주 하나님3
제2권 처음에 율법으로 조상들에게, 나중에 복음으로 우리에게 계시된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속자 하나님을 아는 지식
제3권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는 길: 은혜로부터 오는 유익과 효과
제4권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의 공동체로 인도하여 보존하시는 외적인 은혜의 수단

옮긴이에 대해




2011년 2월 17일 목요일

일본의 종교 日本の宗敎 日本史·倫理社會の理解に

무라카미 시게요시 村上重良(일본, 1928~)


무라카미 시게요시(村上重良)는 1928년 도쿄에서 출생했다. 1952년 도쿄대학 문학부 종교학 종교사학과 졸업. 도쿄대학 강사, 류타니(龍谷)대학 강사를 거쳐 현재 게이오(慶應)대학 강사. 일본의 종교, 특히 국가신도, 신종교, 현대의 종교 문제 등의 연구로 알려져 있다. 이 책의 자매편으로서 ≪세계의 종교≫(이와나미 주니어신서)가 있고 그 외, ≪국가신도≫, ≪위령과 초혼≫, ≪천황의 제사≫(이상 이와나미신서), ≪일본종교사전≫ 등의 저서가 있다.

해설            

일본의 종교는 원시사회에서 고대, 중세, 근세, 근대를 거쳐 현대에 달하는 긴 역사의 발자취와 함께 다채로운 전개를 이루며, 풍요로운 종교문화를 만들어왔다. 오늘날의 일본종교는 크게 불교, 신도, 기독교, 신흥종교의 4개 계통으로 나눌 수 있다. 일본 사회에서는 이러한 여러 계통의 400개가 넘는 종교가 공존하고 있는데, 원시농경사회에서 시작한 집단종교의 조직을 계속 유지해 온 신도의 존재가 특이하다. 종교의 다원적인 병존과 의례 중심의 집단종교인 민족종교의 존속이 일본종교의 두드러진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불교는 일본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핵심적인 단어 가운데 하나다. 아스카시대에 전래한 불교는 나라시대에 꽃을 피우며, 헤이안시대에 들어가서는 진호국가의 종교가 된다. 천태종, 진언종이 나타나고, 신불습합·본지수적설 등의 새로운 학설이 전개된다. 전란의 시대였던 중세 때 그 시대를 반영하여 정토종, 진종, 시종, 임제선, 조동선 등으로 전개된 불교는 마침내 일본의 독자적 불교인 니치렌(일련종)에 달하게 된다.

이처럼 다채로운 역사적 변천을 거친 현대 불교는 최대의 종교 세력으로 종파로는 법화·일련계와 정토계의 세력이 특히 크며, 이어서 선계, 진언계, 나라불교계 등이 있다. 국민의 대다수는 불교신도이나 불교의 각 종파는 오로지 의례로써만 국민과 연결되어 있어 종교로서의 영향력은 그다지 강하지 않다.

일본의 독자적 종교라고 말할 수 있는 신도는 불교 전래 이전에도 원시신도, 고대신도의 형태로 존재했던 일본의 원시종교다. 신도의 세계는 기키신화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이어 불교와 비슷한 시기에 전래된 도교와 유교에 힘입어 신기제도를 성립함으로써 그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중고중세시대에는 불교에게 그 자리를 내어주나 신불습합적인 모습으로 명맥을 유지해 나간다.

이 중 중고시대에는 어령신앙적인 면이 강조된다. 어령신앙은 도시에서 지방으로 퍼져 농촌에서는 병충해 등을 억제하는 어령제사로 이어진다. 어령제사는 강한 영의 힘을 눌러 잠재우는 것이 목적으로, 도시를 중심으로 낮 동안의 화려한 제사로 발달한다. 이리하여 화미한 장식을 만들거나 많은 사람을 모아서 행렬이나 가무를 함께하여 신의 위세를 나타내는 제례가 나타난다. 특히 인구가 밀집한 도시에서는 여름철에 역병 피해가 심해 이를 억제하기 위한 어령제사는 여름에 행해지는 축제로 정착한다. 한편 농경의례에서 시작한 신사제사는 봄과 가을에 행해지는 축제로서 일본문화를 새롭게 만들어가게 된다.

특히 중세시대에는 몽고에 의해 초래된 국난에 의해서 일본국이라는 국가의식이 높아지고 이에 이은 겐무의 중흥과 남북조의 대립으로 천황의 정치·군사상의 힘이 부활하여 천황을  중심으로 하는 일본이 신의 나라라고 하는 신국사상이 전개된다. 이러한 정치 격동을 배경으로 하여 가마쿠라 말기에서 남북조시대에 걸쳐 이세신궁 외궁의 신직인 와타라이 씨에 의해서 이세신도가 체계화된다. 이세신도는 헤이안 후기부터 발달하여 보급된 불교 중심의 본지수적 신불습합 신도와는 달리 신도를 주체로 하여 불교, 유교, 도교를 취한 최초의 신도 중심 신도설이다. 또한 신도의 흐름에 있어 특기할 만한 것은 에도 중기 유교의 고학파 융성에 자극되어 일본고전 연구가 성하게 되고 국학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국학의 흐름을 보면, 가다노 아즈마마로, 가모노 마부치, 모토오리 노리나가 등의 국학자가 나와 유교, 불교에 의한 일본고전 해석을 비판하고 고전에 깃들어 있는 일본정신을 구하고자 하였다. 이는 곧 일본사상과 일본철학의 태동이었다.

이처럼 막번제 사회에서는 유가신도로, 그리고 복고신도의 모습으로 이어져 오다가, 근대시대 신불분리와 배불훼석 운동으로 인해 국가신도로 자리 잡게 된다. 현재의 신사신도는 국민의 태반을 우지코 숭경자로 여기고 있으나 국민생활에 대한 영향력은 신사의 제사나 현세이익 신앙으로 한정되어 있다.

한편, 중세 말에서 근세시대에 걸쳐 일본에 들어온 기독교는 한때 70만 명이 넘는 신자를 확보할 정도로 발전하게 되나, 에도막부의 종교 통제로 심한 탄압을 받게 되어 마침내는 일본사회에서 숨어버리게 된다. 막부가 붕괴하자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아 선교사 밑으로 모이는 사족이나 상인의 자제가 갑자기 는다. 사실 기독교는, 일본사회의 근대화에 크게 공헌하나 그 유일신 신앙과 근대적 개인주의 윤리는 천황을 아라히토가미로 하고 충효의 국민도덕을 높이 내세운 근대천황제 하에서 끊임없이 비난과 공격을 받고 국체와 서로 맞지 않는 ‘외교(外敎)’라 치부된다. 이 때문에 프로테스탄트도 가톨릭도 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국민생활에 융합되어 크게 퍼질 수 없었다. 현대에 와서는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가 자리 잡기는 했으나 기독교 전체의 신자 수는 국민의 1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한다. 기독교는 종교로서는 작은 세력에 멈추고 있으나 일본사회의 근대화, 현대화에 사상적·문화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신종교(신흥종교)는 에도 후기에는 미코, 행자 등 직업적인 샤먼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양상을 보인다. 신들린 보통 사람이 스스로를 산 신이라고 하여 현세이익을 구하는 민중의 청에 답하는 식의 ‘살아 있는 신’ 신앙이 활발하게 된다. 이들 산 신 중에서 독자적으로 종합한 가르침을 설파하여 민중을 조직하는 창조자가 나타나 에도 후기에서 막말(幕末) 사이에는 여래교, 구로즈미쿄, 천리교, 금광교 등의 창조종교가 연이어서 성립하게 된다. 이들 새로운 종교는 막번제 지배 해체기에 습합신도를 기반으로 민중에게 병 치유 등의 현세적 이익을 약속하고 봉건사회 종교에서는 요구되지 않았던 인간 본위의 신앙을 설파해 수많은 농민, 상공인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리고 국가신도가 확립된 1880년대에는 천리교, 금광교를 비롯해, 이토 로쿠로베에가 연 마루야마교, 시마무라 미쓰를 교조로 하는 연문교 등 현세 이익과 민중구제를 내건 새로운 종교가 크게 발전한다. 민중의 생활에 뿌리를 내리고 퍼진 이들 종교에 이어, 메이지중기에 습합신도의 대본교가 생겨 근대 신종교의 커다란 원류가 된다. 이후 다이쇼부터 쇼와 초기 사이에는 신도계(히토노미치, 뒤의 퍼펙트 리버티), 불교계(영우회, 입정교성회) 등 여러   교로 나뉘어 전체로서 활발한 행동력을 가진다. 천리교에서 나눠진 혼미치, 대본교에서 나온 성장의 집 등의 신종교 중에서는 법화계가 가장 유력하며 신도계가 뒤를 잇는다. 유력한 신종교는 수십만, 수백만 국민을 조직하고 있으며 그 움직임은 사회 전체에 커다란 영향을 주고 있다.

그 외에 소수이나 이슬람교, 유대교의 신자도 있다. 또 홋카이도에서는 아이누 등의 북방민족 종교가 이어져 가고 있다.

이러한 종교적 흐름 속에서 일본에서는 1889년, 황실전범과 대일본제국헌법이 제정되어 근대 천황제 국가가 확립된다. 이는 불교, 음양도, 유교와 습합하여 발전해 온 신사신도에 종지부를 찍고 국가의 제사에 한정된 새로운 국교로서 국가신도를 만들어 신(神), 불(佛), 기(基)의 3교 위에 두었으며, 천황 숭배와 신사 숭경을 전 국민의 의무로 하고 있다. 또 제국헌법 제28조에서는 ‘일본 신민은 안녕질서를 방해하지 않고 또 신민으로서의 의무에 어긋나지 않는 자에 한해서 신교의 자유를 허락한다.’고 정하고 있다. 헌법은 천황을 일본국 및 일본국민 통합의 상징이라 규정하고, 천황은 정치적 권한을 갖지 않는 존재가 된다. 이러한 정교분리의 원칙에 따라서 황실 제사는 천황의 사적인 일이 되었고, 축제일은 폐지되었으며, 그 대신 ‘국민축일’이 제정된 것이다. 이처럼 국가신도 등의 부활 움직임이 염려되는 오늘날 일본에서는 국가가 종교에 개입하는 것도, 종교가 정치권력을 잡는 것도 허락하지 않는 정교분리의 원칙을 확립하고, 신교의 자유를 지키는 것은 극히 중요한 과제가 된다.

일본인을 알고 일본사회와 문화를 알기 위해서는 그들의 사상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아는 것이 선결 과제다. 이는 수천 년의 일본 역사를 알고, 또 그 역사 속에서 남겨진 문학을 알며, 나아가 그들의 종교를 아는 일일 것이다. 그 어떤 분야도 이천여 년에 이르는 한 국가의 긴 세월을 담고 있으니 그 양은 다대하다. 그런데 이 책의 제목은 ≪일본의 종교−일본사·윤리사회의 이해를 위해서≫다. 일본문학에 대해선 다른 곳에서 취급한다고 해도, 일본사회와 문화를 알기 위해선 이 책 한 권을 보면 대략 그 흐름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인의 사고 구조를 다른 말로 하면, 총체적으로는 일본사상, 다소 협의로는 일본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철학이란 말에 대해선 동서양의 인식 차이가 있어, 동양에서는 철학보다는 사상이라는 포괄적인 용어가 더 적당할 듯하다. 특히 일본사상이라면, 동양인의 인식구조가 그러하듯, 우선 종교의 세계가 그 사상을 절대적으로 지배하는 배경이 될 것이다. 그래서 근대적 시각으로 일본철학, 혹은 일본사상을 취급한다 해도 그 전제로 일본의 종교에 대한 탐구는 필수적인 수순이 된다. 이는 앞서도 이야기했듯 동양에서의 공통적인 양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렇듯 이 책은 일본철학, 일본사상, 일본종교를 이해하는 가장 기본적인 길잡이로서 기능할 것이다. 일본역사와 일본사회 및 일본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도 이 책을 한 번 훑어보는  것이 원하는 것을 습득할 수 있는 첩경이겠다. 그만큼 이 책은 기본적인 사항의 전후 관계를 이해하는 데 아주 도움이 되는 내용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제까지 일본에 대해 문외한이었다 하더라도 한번 본문을 읽어보는 것으로 일본인과 일본역사, 사회, 종교 등에 대해서 훌륭한 지식을 습득할 수 있을 것이다. 군더더기 없는 명료한 설명도 훌륭하다. 본문 내용이 잘 짜여진 관계로 사족일 듯한 이 서두는 독자들의 기억이  더욱 오래 지속되도록 하기 위해서다. 어떤 내용이라도 반복적인 학습이야말로 이해와 습득에 도움을 주는 비법이라는 것은 모든 학문에서 통용될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서두에서  그 전체 내용의 줄거리를 언급하는 것이다. 이는 독자에게 그 뼈대를 잡게 하는 것이고, 본문은 그 뼈대 위에 살을 붙이는 작업이 될 것이다. 나아가 각 행과 장을 읽어가면서 떠오르는 독자의 감상과 의문은 이에 피부를 입히는 일이 될 것이다.

또한 이 책은 어떤 사항에 대해 그 유래를 분명히 밝혀 놓고 있어 전후관계 파악에 많은 도움을 주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동양의 모든 종교의 유래와 그 전파과정 혹은 그 종교의 핵심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면서도 단점을 지적하자면, 대한민국 사람의 시점에서 볼 때 그 중간과정은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을 자아낸다는 것이다. 인도는, 중국은 저러하고 일본은 이러한데, 그럼 한국은? 하는 질문이 일어나게 한다. 즉 그 중간과정이 생략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을 접한 것을 계기로 우리는 그러한 질문을 더 파고들 필요가 있다. 독자들이 그런 의문에 대한 해답을 밝히려는 의욕이 일어나길, 나아가 한·중·일 비교 연구로 이어지길 은근히 그리고 강하게 바란다.

차례             

<이 책 읽는 법>

Ⅰ 일본의 원시종교(原始宗敎)
   조몬시대(縄文時代)의 종교
   벼의 농경의례
   야마타이코쿠(耶馬台國)의 여왕 히미코(卑彌呼)
   고분(古墳)
   제사 유적
   원시신도(原始神道)

Ⅱ 고대종교
  1 고대국가와 신도·불교
    고대신도
    기키신화(記紀神話)
    불교 전래
    아스카불교(飛鳥佛教)와 쇼토쿠태자(聖徳太子)
    나라불교(奈良佛教)
    대불개안(大佛開眼)
    교키(行基)
    도교와 유교의 전래
    신기제도(神祇制度)의 성립
  2 진호국가의 불교
    천태종(天台宗)과 사이초(最澄)
    히에이잔 엔랴쿠지(比叡山延暦寺)
    밀교(密教)와 진언종(眞言宗)
    고야산(高野山)과 구카이(空海)
    신불습합(神佛習合)
    본지수적설(本地垂迹説)
    어령신앙(御靈信仰)과 천신(天神)
    정토교(淨土敎)
    말법사상(末法思想)
    미륵(彌勒)·지장(地藏)·관음사상(觀音思想)


Ⅲ 중세종교
  1 가마쿠라불교(鎌倉佛教)
    정토종(淨土宗)과 호넨(法然)
    진종(眞宗)과 신란(親鸞)
    시종(時宗)과 잇펜(一遍)
    임제선(臨濟禪)과 에이사이(榮西)
    조동선(曹洞禪)과 도겐(道元)
    법화경(法華經)의 행자 니치렌(日蓮)
    법화경 본문의 가르침
    구불교의 개혁
  2 남북조(南北朝)·무로마치시대(室町時代)의 종교
    이세신도(伊勢神道)와 삼종(三種)의 신기(神器)
    야마부시종교(山伏宗敎)·수험도(修驗道)
    오산문화(五山文化)
    잇코잇키(一向一揆)와 렌뇨(蓮如)
    일련교학(日蓮敎學)과 법화잇키(法華一揆)
    요시다신도(吉田神道)

Ⅳ 근세종교
  1 기독교
    기독교의 전래
    기독교의 발전
    에도막부의 종교통제
    시마바라난(島原亂)과 잠복 기독교
  2 막번제 사회의 종교
    유가신도(儒家神道)
    현세이익신앙의 유행
    후지(富士)와 기소온타케(木曾御岳) 신앙
    존왕사상과 복고신도
    여래교(如來敎)·구로즈미쿄(黑住敎)
    천리교·금광교

Ⅴ 근대종교
   신불분리 분리와 배불훼석
   국가신도
   근대의 기독교
   불교의 근대화
   대본교(大本敎)·히토노미치·영우회(靈友會)

Ⅵ 현대 일본의 종교
   신교의 자유와 정교분리(正敎分離)
   입정교성회·창가학회
   오늘날의 일본종교

현대 일본의 주요한 종교

작품 중에서    
이 책은 이러한 일본종교의 발자취를 역사의 전개 속에서 상세하게 거슬러 올라가 주된 종교에 대해서 그 성립과 가르침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 의해서 일본종교에 대한 편중됨이 없는 종합된 지식을 습득함과 함께 일본인이 세계 종교를 흡수하면서 만들어낸 종교문화의 다종다양함을 반드시 알아주었으면 하고 생각합니다.
この本は、こういう日本の宗教の歩みを、歴史の展開のなかでくわしくたどり、おもな宗教ついて、その成り立ちと教えをまとめています。この本によって、日本の宗教についての、かたよりのないまとまった知識を身につけるとともに、日本人が、世界の宗教をとりいれてつくりだしてきた宗教文化の豊かさとすばらしさを、ぜひ知ってほしいと思います。
옮긴이          

강용자(姜容慈)는 일본 국학원(國學院)대학에서 석사학위, 박사학위를 받았다. 만요슈(万葉集: 문예와 문화 사이)를 전공했으며 부산대학교, 동아대학교, 부경대학교, 경남대학교, 부산외국어대학교, 해양대학교, 한국방송통신대학교를 거쳐 현재 창원대학교, 동의대학교, 동서대학교에 출강하고 있다.
번역서로 ≪인터넷시대의 종교≫(도서출판 역락, 2005), ≪女帝의 사랑−詩人 柿本人麻呂≫(제이플러스, 2003), ≪일본 풍토기≫(동아대학교 출판부, 1999), ≪풍토기≫(지만지, 2008) 등이 있으며, 논문으로는 <万葉 祈禱文化考>, <≪万葉集≫에서 보는 他界觀>, <万葉 ‘夢’考>, <万葉 神觀考>, <万葉 天皇考> 등이 있다.

편집자 리뷰    

고대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다양한 종교를 아우르는, 일본 종교의 기나긴 역사의 발자취를 남기는 책이다. 오늘날 400개가 넘는 일본의 종교는 일본만의 특징적인 형태로 공존하고 있다.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 시대의 종교에 대한 관념을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그러므로 일본사상, 일본철학, 일본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 일본종교의 이해는 선행되어야 할 수순이 된다. 이 책은 한번 읽어보는 것으로 일본인, 일본역사, 사회, 종교 등에 대해서 훌륭한 지식을 습득할 만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