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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10일 금요일

이하 시선 李賀 詩選


도서명 : 이하 시선 李賀 詩選 
지은이 : 이하
옮긴이 : 이규일
분야 : 인문 > 문학 > 중국 시
출간일 : 2009년 12월 일
ISBN : 978-89-6406-385-9
가격 : 12,000원
규격 : A5    제본 : 양장본    쪽 : 161쪽



200자 핵심요약

당나라의 시인 이하는 불우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토대로 자신만의 독특한 미의식을 구축했다. 현실 세계의 고통을 보상하기라도 하는 듯 그의 시세계는 더없이 화려하고 섬세한 표현과 시어들을 추구하고 있다.  하지만 자연의 서정을 노래하는 순간마저도 닿을 수 없는 현실 세계에 대한 동경으로 인해서 비애는 사라지지 않는다. 시귀(詩鬼)라는 음울한 별호가 그의 시세계를 단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 책 소개

생의 비애와 불안으로 꽃피운 예술 정신
중당(中唐) 시기의 시인 이하는 병약한 몸으로 태어났으며, 뛰어난 재능을 갖고도 벼슬길에도 오르지 못했다. 그는 27년의 짧은 생애를 사는 동안 끊임없이 절망과 공포에 시달려야만 했다. 그의 불우했던 삶은 험괴한 표현이 유행하던 당시의 풍조와 맞물리면서 기이하고 독특한 미감을 형성했을 것이다. 때문인 지, 그의 시에서 느껴지는 탐미적인 미의식은 오늘날의 독자들에게도 그리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하의 시가 중국문학사에서 개척한 독자적인 영역은 인생의 비애와 죽음에 대한 공포를 놀라울 정도로 집요하게 묘사했다는 점이다. 이하를 시귀(詩鬼)라고 부르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하의 시에 표현된 서정 자아의 형상은 천하를 호령하는 장수의 모습과 시간의 흐름을 두려워하는 쇠약한 정신의 청년이다. 이 두 가지 형상은 상반된 모습으로 이하의 마음속에 공존한다. 그는 끝까지 자신의 욕망을 포기하지 않았기에 그만큼 현실에서 받아야 하는 고통이 컸을 것이다. 천상과 영혼의 세계를 동경했던 것도, 저무는 청춘을 슬퍼했던 것도, 행락을 즐기는 소년들을 조롱했던 것도 실현될 수 없는 욕망 때문이었던 것을 우리는 안다. 병약한 신체로 자신에게 다가올 죽음을 두려워했기에 그가 표현한 시간은 중국 문학사의 유례없는 현상이 되었다. 시간을 대하는 중국 문인들의 일반적인 태도는 친구의 죽음을 슬퍼하거나 자신의 노쇠를 한탄하는 방식으로 표현된다. 생명을 자연의 일부분으로 인식하여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철학자의 모습도 있었다. 그러나 이하는 용의 다리를 잘라 살을 씹어 아침과 밤이 다시 순환되지 않게 하겠다고 말한다.(<고된 낮은 짧아(苦晝短)>) 목숨을 걸고 태양과 경주했던 신화 속의 거인처럼 질주하는 시간을 두려워하고 저주하면서 생명의 영원을 갈구했다. 또 시간의 흐름과 인간의 유한한 생명을 대비시키기도 하고, 영원히 순환하는 시간 앞에서 무기력하게 체념하기도 한다. 신선 세계의 황홀함을 동경하면서도 이하는 시간의 흐름을 느끼고 다가오는 생명의 영멸을 예감하면서 불안과 초조에 흔들렸다. 이하 시의 허무와 염세적인 정서는 시간을 극복하지 못하는 인간의 숙명으로부터 온다. 이 허무와 염세적인 정서는 이하 시의 아름다움을 구축하는 또 하나의 재료다. <술을 올리다(將進酒)>에서 쓴 것처럼 붉은 비처럼 쏟아지는 복숭아꽃 잎은 저무는 이하의 가엾은 청춘이기도 하고 쇠약한 생명이 추구했던 매혹적인 예술 정신이기도 하다.

독창적인 표현과 시 형식을 추구
이하는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어휘의 선택, 표현의 독창성에 매우 공력을 기울인 시인이다. 그의 시는 인공적인 미감에 가깝다. 떠오르는 시상을 메모했다가 나중에 고치고 다듬어 한 편의 시로 완성했다는 일화를 보면 그의 창작 방식을 알 수 있다. 즉흥적으로 단숨에 자신의 생각을 풀어놓는 스타일이 아니라 더 뛰어난 표현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말을 고치고 다듬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가을이 오다(秋來)>에서 가을의 분위기를 묘사하면서 “어스름 등불 아래 귀뚜라미 차가운 울음 하얗게 울린다(衰燈絡緯啼寒素)”고 표현한 구절을 보면 귀뚜라미 소리를 차갑다는 말과 하얗다는 말로 표현했다. 이러한 기법으로 인해 독자들은 귀뚜라미 소리를 연상하면서 차갑고 하얀 이미지가 주는 다양한 감각을 체험하게 된다. 희미한 등불 아래 귀뚜라미 소리를 듣고 있는 시인의 마음이 고통으로 가득 차 있음을 시각으로, 청각으로, 촉각으로 느끼게 되는 것이다. 또 “찬비에 혼령들은 이 가엾은 서생을 조문한다(雨冷香魂吊書客)”는 구절은 벗이 없어 혼령들의 위로를 받는다는 말이지만, 일반적인 위로가 아니라 죽은 이를 조문할 때 사용하는 조(吊) 자를 사용하여 시인의 고독과 절망을 공포에 닿을 정도로 몰아가고 있다. 병적인 심리 상태에서 표현된 말이기도 하지만, 한 글자의 언어가 만들어내는 감정의 증폭을 추구한 결과이기도 하다. <이빙의 공후인(李憑箜篌引)>에서 음악을 언어로 표현하기 위해 동원된 여러 기괴한 묘사들, 예를 들면 “돌은 깨지고 놀란 하늘은 가을비를 내린다”거나 “늙은 물고기 물결 위로 펄쩍이고 야윈 용은 춤춘다”는 등의 구절들 역시 언어의 미감에 대한 이하의 집요한 추구를 보여준다. 언어의 일반적인 규칙을 비트는 이러한 기법들은 이하의 독특한 문체로 평가받으며 ‘장길체(長吉體)’라고 불리게 된다. 그가 당시에 유행하던 근체시(近體詩)를 피하고 주로 고시(古詩)나 악부(樂府)의 문체로 시를 쓴 점도 평범함을 벗어나고 싶었던 그의 개성을 짐작하게 한다.


☑ 책 속으로

是靑春日將暮, 桃花亂落如紅雨.

청춘은 곧 저물어가는데
어지럽게 떨어지는 복숭아꽃 잎은 쏟아지는 붉은 비 같아라


☑ 지은이 소개

이하(李賀, 790∼816)
이하는 자가 장길(長吉)이고 고향이 창곡[昌谷, 지금의 허난성(河南省) 이양(宜陽)]이라 이장길, 이창곡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당나라 황실의 후손이지만 그의 성장기는 이미 가문이 몰락한 후였다. 재능이 뛰어났고 입신양명에 대한 포부도 컸지만 봉례랑(奉禮郞)이라는 작은 벼슬을 3년간 했을 뿐이다. 후인들은 그가 남긴 시를 높이 평가하여 시귀(詩鬼)라는 별호로 부르기도 하고 뛰어난 시인이었던 이백, 이상은과 함께 삼이(三李)라고 부르기도 한다.
어려서부터 학문과 창작에 뛰어나 신동으로 명성이 자자하여 7세 때 방문했던 한유와 황보식 앞에서 즉흥적으로 시를 지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아버지 이름이 진숙(晉肅)이었는데 그가 진사(進士)가 되는 것은 예에 어긋나는 일이라는 탄원 때문에 결국 과거도 치르지 못했다. 진숙의 진과 진사의 진이 같은 발음이라는 이유였다. 그의 재능을 아꼈던 한유가 특별히 <휘변(諱辯)>이라는 문장을 지어 그를 변호했지만 결국 과거에 응시하지 못했다. 그를 시기했던 사람들이 모함했다는 이야기도 전하지만, 관직에 나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막히면서 평생을 절망과 괴로움 속에서 살았다.
이하는 체격이 마르고 왜소했으며 병을 많이 앓아 그의 집에는 약 달이는 냄새가 가시지 않았다고 한다. 용모도 특이하여 코가 매우 크고 눈썹은 이어져 있으며 손톱이 길었다. 시에서 나이 스물에 벌써 백발이 되었다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 것을 보면 그의 병이 매우 심각한 상황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하는 또 일생 동안 결혼하지 못했다고 한다. 스스로의 외모와 처지에 대한 강박증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의 교유도 많지 않았고 이성과의 접촉도 어려웠으리라. 이러한 사정은 이하가 더욱 깊이 자신의 내면세계에 빠져들게 되는 배경이 되었다. 아름다운 여인에 대한 환상을 누차 시 속에 표현한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미래에 대한 희망과 기대가 사라진 후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시 쓰기에 몰두하는 것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그는 나귀를 타고 다니다가 우연히 시상을 얻으면 적어서 비단 주머니에 넣어두고 저녁에 가다듬어 시로 완성했다. 크게 취하거나 문상을 가는 날이 아니면 항상 이러했는데 모친이 그의 마음을 짐작하여 슬퍼했다고 한다. 이런 일화는 그가 얼마나 창작에 몰두하고 심취했는지 알 수 있는 단서가 되기도 하지만 작품의 특징과도 관계가 있다. 그의 시는 정경을 묘사할 때 화려한 색채미나 감각적인 표현을 선호했는데, 이러한 특징은 언어와 문자에 대한 집착과 고민의 산물이다. 예를 들면 이백 같은 시인은 시상이 생겼을 때 일필휘지로 단숨에 시를 적었는데, 이하의 작품은 글자의 선택 과정에서 신중하게 고민을 하고 완성 후에도 계속 새로운 표현으로 고치고 다듬은 흔적이 보인다. 또 한 작품 안에서 빛나는 한 구절의 표현을 추구하는 면도 있는데, 이런 특징들은 비단 주머니에 시상을 모았다가 나중에 정리하는 습관과도 관계가 있을 것이다.
 이하의 시는 모두 240여 편이 전하는데, 철저한 고독과 고통 속에서 자신의 내면을 섬세하고 정교하게 그려낸 기록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작품 세계 역시 아름다움과 기괴함, 신비로움과 슬픔, 차가움과 황폐함이 교차되는 매우 독특한 형태인데, 수많은 중국 시인들 중에서도 아무도 가지 않았던 곳을 향해 걸어간 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역시 자신이 원하여 자신의 의지로 선택했던 길이 아니라 그의 천재적 재능이 불행한 운명과 만나며 빚어낸 비극의 산물이었으므로 후대의 독자들은 더욱 감동적으로 그의 작품을 대하게 된다.


☑ 옮긴이 소개

이규일
이규일(李揆一)은 강원도 삼척 출생으로 국민대학교를 졸업한 후, 베이징대학교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영동대학교 중국어중국통상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중국고전문학 전공으로 위진남북조와 당나라 시기의 시가, 문학사, 문학이론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육기 문학 창작 연구≫(차이나하우스) 등이 있으며 <문학자각설의 전개와 의의>, <전통문화와 20세기의 문화 우상> 등 2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 목차

해설
지은이에 대해

이빙의 공후인
가지 끝에 걸린 거미줄 한 올
회계에서 돌아오다−서문과 함께
아우에게
칠석
마음을 읊다−둘
안문태수의 노래
소소소의 묘
꿈속 천상에 올라
당아(唐兒)의 노래−당아는 두빈공의 아들
푸른 종이에 적어 봉한 글−오 도사(吳道士)의 심야 제사를 돕다
천상에서 부르는 노래
크게 노래하다
가을이 오다
남원−넷
남원−다섯
남원−여섯
까마득한 세월
말을 노래함−하나
말을 노래함−넷
말을 노래함−다섯
말을 노래함−열
말을 노래함−열여덟
옥 캐는 늙은이
상심하여 노래하다
남산의 밭두둑
면애행(勉愛行) 두 수를 지어 여산(廬山) 가는 아우를 전송함−하나
술을 마시며
장가(長歌)에 이어 단가(短歌)를 부르다
그대 검무를 추지 마오−서문과 함께
창곡 북원에 새로 올라온 죽순을 읊다−하나
창곡 북원에 새로 올라온 죽순을 읊다−둘
창곡 북원에 새로 올라온 죽순을 읊다−셋
창곡 북원에 새로 올라온 죽순을 읊다−넷
느낀 바를 풍자함−하나
느낀 바를 풍자함−둘
느낀 바를 풍자함−셋
느낀 바를 풍자함−넷
느낀 바를 풍자함−다섯
하손(何遜), 사조(謝朓)의 시에 화답하여 ‘동작기(銅雀妓)’들을 추모함
창곡에서 글을 읽다 파촉의 동자에게 보여주다
파촉의 동자 답하다
나무를 심지 마라
떠남에 즈음하여
왕준(王濬)의 무덤가에서 짓다
나그네 길
숭의리(崇義里)에서 비 내려 머물다
나비 날다
뒤뜰에서 우물을 파다
수심을 떨치려고−꽃 아래에서 쓰다
규방의 그리움
고된 낮은 짧아
동타(銅駝) 거리의 슬픔
사나운 호랑이의 노래
해가 뜨다
한밤에 홀로 앉아
공후의 노래
무산은 높아
신에게 부르는 노래−하나
신에게 부르는 노래−둘
신에게 부르는 노래−셋
고관의 수레가 찾아오다−원외랑 한유와 시어사 황보식이 방문하시어 명을 받아 짓다
술을 올리다
소년을 비웃다

옮긴이에 대해



2015년 1월 28일 수요일

신기질 사선(辛棄疾詞選)


도서명 : 신기질 사선(辛棄疾詞選)
지은이 : 신기질(辛棄疾)
옮긴이 : 이치수
분야 : 중국 / 시
출간일 : 2014년 12월 30일
ISBN : 979-11-304-6066-6 03820
가격 : 18000원
규격 : 사륙판    제본 : 무선제본    쪽 : 212쪽





☑ 책 소개

소동파와 함께 송나라 호방사(豪放詞)의 양대 산맥을 이루는 신기질. 빼앗긴 조국 땅을 찾기 위해 직접 군대를 이끌고 싸웠던 만큼 작품에도 뜨거운 우국충정의 마음이 그대로 드러난다. 소박하고 담담한 표현으로 엮어 내는 비장하고도 시원스러운 기개는 인위적인 수식이 따라갈 수 없는 놀라운 경지다.


☑ 출판사 책 소개

신기질은 금나라가 지배하던 지역에서 태어난 뒤, 남쪽으로 내려와 남송에서 살며 출사(出仕)와 퇴은(退隱)을 거듭하면서, 시국을 바로잡고자 하는 염원과 그 좌절이 점철된 개인적인 생활사와 감정 세계를 모두 사에 드러내었다. 그의 사의 특색은 구체적으로 다음 몇 가지 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사의 내용과 제재에서 이전과 다른 특색을 나타냈다. 그의 사는 애국사(愛國詞), 또는 영웅사(英雄詞)로 불린다. 신기질은 남송과 이민족 금나라가 서로 대치하던 시대를 살며 잃어버린 중원 땅을 되찾고자 했으나 그런 기회가 찾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사에서 북쪽 땅이 이민족에게 함락된 것을 안타까워하고, 남북으로 나누어진 현실을 슬퍼하며, 무사안일을 꾀하는 조정의 주화파를 비판하고, 비록 중원 수복의 열망과 사명감을 가지고 있으나 종시 기회가 찾아오지 않음을 비탄했다. 이러한 내용은 이전 작가들에게서는 보기 드문 것이다. 물론 신기질의 사는 다양한 내용과 제재를 담고 있어, 이상과 같은 내용 외에도 산수 경치를 묘사하고 농촌 생활과 풍경을 노래하며, 사의 전통적인 주제인 남녀 간의 정을 읊은 것도 있고, 다른 사람의 작품에 창화(唱和)하고 다른 사람에게 수증(酬贈)한 것도 있으며, 꽃과 달, 바위 등 여러 사물을 노래한 작품도 있다. 또 신기질의 사는 풍부한 상상력을 발휘하기도 하고, 유머러스한 해학(諧謔)적인 내용도 있다. 하지만 신기질의 사를 대표하는 것은 역시 위에서 언급했던 우국(憂國)의 정(情)과 불우(不遇)한 처지를 노래한 사라 하겠다.
둘째, 표현 방면에서도 신기질 사는 이전의 작가와 구별되는 자기 나름의 성취를 거두었다. 우선 신기질은 사를 짓는 데 시(詩), 사부(辭賦), 산문을 짓는 방법을 동원했다. 이것은 북송(北宋)의 소식(蘇軾, 1037∼1101)이 시를 짓는 방법을 사에 운용한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다. 특히 산문화의 작법이 뛰어난데, 이것은 보통 산문으로 많이 나타내는 내용을 사로 표현하고, 산문의 장법(章法), 구식(句式), 어휘 및 표현 수법 등을 사에서 사용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렇게 함으로써 일찍이 없었던 새로운 표현을 통해 표현 수법을 풍부하게 만들었고, 내용과 제재의 확장을 불러왔다. 또 이와 더불어 신기질은 다양한 표현 형식과 체제를 시험했다. 문답체(問答體)를 사용하기도 하고, 경서(經書)에 나오는 말을 그대로 인용해 한 편의 작품으로 만들기도 하며, 굴원(屈原)의 <천문(天問)>체를 본뜨기도 했다.
셋째, 풍격 방면에서 사는 일반적으로 완약파(婉約派)와 호방파(豪放派)로 나뉘는데, 신기질의 사는 소식과 더불어 호방파의 사를 대표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런데 비록 같은 호방파라 할지라도 사풍(詞風)을 좀 더 세분하면 신기질의 사는 소식과 성격을 달리한다. 즉 소식의 사가 청광(淸曠)하다면 신기질의 사는 비장(悲壯)한 면이 두드러진다. 물론 신기질의 사에는 전통적인 완약(婉約)한 작품도 있으며, 그 외에도 평담(平淡), 청신(淸新) 등 다양한 풍격이 존재한다.


☑ 책 속으로

·축영대근
−늦봄

보석 비녀 나누어 갖고 헤어졌네
도엽 나루
안개 낀 버드나무 우거진 강가에서.  
높은 누각에는 올라가기 두렵구나
10일 중에 9일은 비바람 부네.
애간장 끊는 꽃잎이 한 잎 한 잎 날리건만
도대체 거들떠보는 사람 없는데
또 누가 꾀꼬리 울음소리 멈추도록 말 건넬까.
 
귀밑머리에 꽂은 꽃 흘깃 보고
꽃 쥐고 돌아올 날 점쳐 보고는
머리에 꽂았다가 금방 다시 세어 보네.
비단 장막 아래 등불은 희미한데
목이 메어 꿈속에서 말하네.
“저 봄이 근심을 가지고 왔는데
봄은 어디론가 돌아가 버리고
근심도 가지고 돌아갈 줄은 모르네.”


·추노아
−박산으로 가는 길에 벽에 적다

젊을 때는 아직까지 근심이 뭔지 모르면서
높은 누각 오르기를 즐겼네.
높은 누각 오르기를 즐기며
새로운 사 짓기 위해 억지로 근심을 말했네.
 
그런데 이제 근심을 다 알게 되니
말하려다 그만두네.
말하려다 그만두고는
도리어 말한다네, “날씨도 서늘하고 좋은 가을이로다”.


·청평악
−홀로 박산의 왕씨 초가집에 묵으면서

침상을 맴도는 굶주린 쥐들
박쥐는 날아다니며 등불 앞에서 춤춘다.
지붕 위 소나무 사이로 바람은 급한 빗발 뿌리고
찢어진 창호지는 창문에서 홀로 중얼거린다.
 
평생토록 북쪽 변방 지역과 강남 땅 돌아다니다가
돌아오니 흰머리 생기고 얼굴엔 노쇠한 빛 가득하네.
베 이불 덮고 가을밤 꿈에서 깨어나니
눈앞에 조국의 만 리 강산 펼쳐져 있네.


·심원춘
−술을 끊으려고 해, 술잔이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훈계하다

술잔아 너 앞으로 나오너라
이 늙은이 오늘 아침
내 몸을 점검해 보았다.
오랫동안 술 먹고 갈증이 심해
목구멍이 눌어붙은 솥 바닥 같았는데
지금은 잠자는 것 좋아해
코 고는 소리는 우레 치듯 한다.
너 술잔은 말하는구나. “유영이야말로
고금에 달관한 사람으로
술 취해 죽으면 그 자리에 파묻으면 그뿐이라 했습니다.”
네가 뜻밖에도 이런 말을 하다니
한탄스럽다 너는 친구에게
정말 무정하구나.
 
너는 또 노래와 춤을 매개로 해 우리를 꾀는구나.
생각건대 너는 인간에겐 맹독과 같은 존재.
하물며 원한은 크든 작든
좋아하는 것으로 인해 생겨나고
사물은 좋고 나쁘고 없이
지나치면 재앙이 되는 법이다.
내 너에게 분명히 말하는데
“더 머물지 말고 속히 물러가라
내 힘은 아직 너를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술잔이 두 번 절하고
말한다. “가라고 하시면 바로 물러가고
부르시면 반드시 오겠습니다.”


☑ 지은이 소개

신기질(辛棄疾, 1140∼1207)
신기질(辛棄疾, 1140∼1207)은 북송(北宋)의 황제와 황궁 사람들이 북쪽 금(金)나라로 끌려가는 정강의 난이 일어난 뒤, 금나라의 통치 아래 놓인 산동성에서 태어나 청소년 시기를 보내고, 23세에 남송으로 내려와서 68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남쪽에서 살았다. 신기질은 문무(文武)를 겸비했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문인들과는 다른 면이 있다. 그는 일생토록 금나라를 몰아내고 잃어버린 중원 땅을 수복하자는 주장을 폈으나 당시 조정 내부에 주화파와 주전파 간의 갈등이 심각하고 주화파가 상당 기간 정권을 잡으면서 뜻을 펴지 못했다.
그는 비록 조국 통일의 꿈을 이루지 못했으나 사인(詞人)으로서는 송대의 사(詞)를 대표하는 작가 중 한 사람으로 후세에 큰 영향을 미쳤다. 북송의 소식(蘇軾)과 더불어 호방파의 대표로 꼽히며, 또 중국 문학사에서는 남송에서 살며 우국적 내용을 사에 담은 작가들, 이를테면 육유(陸游, 1125∼1210)와 유과(劉過, 1154∼1206), 그리고 조금 뒤의 유극장(劉克莊, 1187∼1269) 등과 함께 ‘애국사파(愛國詞派)’라 일컬어진다. 실제로 신기질 사의 특색은 이 몇 가지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그 이전에 비해 제재와 내용을 더욱 확대하고 표현 수법을 새롭게 확장해 사 문학 발전에 괄목할 만한 성취를 거두었다.
그는 사 작가로 이름이 높지만 시(詩)와 산문도 남기고 있다. 145수에 달하는 시는 다양한 내용을 보이며, 그중에서도 한적한 생활과 심경을 노래하고 다른 사람과 창화(唱和)한 작품이 비교적 많다. 또 산문도 17편이 전하는데, 특히 송과 금의 형세를 분석하고 실지(失地) 수복의 전략을 논한 <미근십론(美芹十論)>과 <구의(九議)>를 대표작으로 꼽을 수 있다.


☑ 옮긴이 소개

이치수
이치수(李致洙)는 고려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타이완(臺灣) 국립타이완대학(國立臺灣大學)에서 석사 학위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경북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역서와 저서로 ≪진여의 시선(陳與義詩選)≫(지식을만드는지식, 2012), ≪육유 사선(陸游詞選)≫(지식을만드는지식, 2011), ≪조자건집(曹子建集)≫(소명, 2010, 공역), ≪도연명 전집(陶淵明全集)≫(문학과지성사, 2005), ≪송시사(宋詩史)≫(역락, 2004, 공저), ≪중국 시와 시인−송대편(宋代篇)≫(역락, 2004, 공저), ≪육유 시선(陸游詩選)≫(문이재, 2002), ≪중국 유맹사(中國流氓史)≫(역서, 아카넷, 2001), ≪陸游詩硏究≫(臺灣, 文史哲出版社, 1991) 등이 있다. 논문으로 <陳後山詩硏究>, <방옹 시 연구(放翁詩硏究)−광의식(狂意識)을 중심(中心)으로>, <중국 고전 시가(中國古典詩歌)에 나타난 협(俠)>, <중국 고전 시체(中國古典詩體) 중 육언절구(六言絶句)의 생성, 발전과 특색 연구>, <당대(唐代) 시학(詩學)의 전개에 있어서 ‘시법(詩法)’ 문제 연구>, <송대(宋代) 시학(詩學)의 발전과 당송시(唐宋詩) 우열논쟁(優劣論爭) 연구>, <중국(中國) 무협소설(武俠小說)의 번역 현황과 그 영향>, <섭은랑(聶隱娘)>에 관하여>, <중한(中韓) 고전(古典) 시론(詩論)의 상관성(相關性) 연구> 등, 다수가 있다.


☑ 목차

염노교 念奴嬌(我來弔古) ··············3
청옥안 靑玉案(東風夜放花千樹) ··········9
목란화만 木蘭花慢(老來情味減) ··········13
태상인 太常引(一輪秋影轉金波) ··········17
수룡음 水龍吟(楚天千里淸秋) ···········20
보살만 菩薩蠻(鬱孤臺下淸江水) ··········25
염노교 念奴嬌(野棠花落) ·············28
자고천 鷓鴣天(撲面征塵去路遙) ··········32
자고천 鷓鴣天(唱徹陽關淚未乾) ··········35
만강홍 滿江紅(過眼溪山) ·············38
모어아 摸魚兒(更能消幾番風雨) ··········42
완랑귀 阮郞歸(山前燈火欲黃昏) ··········47
심원춘 沁園春(三徑初成) ·············50
축영대근 祝英臺近(寶釵分) ············55
수조가두 水調歌頭(帶湖吾甚愛) ··········58
답사행 踏莎行(進退存亡) ·············62
수룡음 水龍吟(渡江天馬南來) ···········67
천년조 千年調(巵酒向人時) ············73
추노아 醜奴兒(少年不識愁滋味) ··········77
추노아근 醜奴兒近(千峰雲起) ···········80
청평악 淸平樂(遶牀飢鼠) ·············84
생사자 生査子(溪邊照影行) ············87
자고천 鷓鴣天(春入平原薺菜花) ··········89
자고천 鷓鴣天(枕簟溪堂冷欲秋) ··········92
청평악 淸平樂(茅簷低小) ·············95
청평악 淸平樂(連雲松竹) ·············97
자고천 鷓鴣天(陌上柔桑破嫩芽) ·········100
하신랑 賀新郞(細把君詩說) ···········103
파진자 破陣子(醉裏挑燈看劍) ··········108
작교선 鵲橋仙(松岡避暑) ············112
답사행 踏莎行(夜月樓臺) ············115
염노교 念奴嬌(倘來軒冕) ············118
생사자 生査子(靑山招不來) ···········123
서강월 西江月(明月別枝驚鵲) ··········126
최고루 最高樓(吾衰矣) ·············129
심원춘 沁園春(疊嶂西馳) ············133
심원춘 沁園春(杯汝來前) ············137
옥루춘 玉樓春(何人半夜推山去) ·········141
목란화만 木蘭花慢(可憐今夕月) ·········143
서강월 西江月(醉裏且貪歡笑) ··········147
하신랑 賀新郞(路入門前柳) ···········150
감황은 感皇恩(案上數編書) ···········155
하신랑 賀新郞(聽我三章約) ···········158
자고천 鷓鴣天(壯歲旌旗擁萬夫) ·········163
복산자 卜算子(千古李將軍) ···········166
분접아 粉蝶兒(昨日春如) ············169
하신랑 賀新郞(甚矣吾衰矣) ···········172
수룡음 水龍吟(老來曾識淵明) ··········176
남향자 南鄕子(何處望神州) ···········180
영우락 永遇樂(千古江山) ············183

해설 ······················189
지은이에 대해 ··················200
옮긴이에 대해 ··················202

2014년 9월 19일 금요일

주자 시선(朱子詩選)


도서명 : 주자 시선(朱子詩選)
지은이 : 주희(朱熹)
옮긴이 : 심우영
분야 : 중국 / 시
출간일 : 2014년 8월 29일
ISBN : 979-11-304-5800-7 03820
가격 : 16500원
사륙판 / 무선제본 / 160쪽




☑ 책 소개

성리학을 집대성하고 사서오경을 확립해 공자 다음가는 성인으로 추앙받는 주희. 그러나 그가 산수시의 대가라는 점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조선시대 사림에게 큰 영향을 준 <무이도가>를 비롯해 주자의 산수시 23편 45수를 실었다. 산과 물 가운데 흥이 있고 도가 있다. 


☑ 출판사 책 소개

주자는 일생 동안 강학과 저술에 온 힘을 바쳤지만, 어려서부터 시 짓기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하지만 정호와 정이의 이학을 신봉하기 시작하면서 ‘언지서정(言志抒情)’을 위주로 하는 시 창작에 대해 심리적 갈등을 많이 겪었다. 특히 주돈이가 주창한 ‘문이재도(文以載道)’라는 글의 역할과 정이의 ‘작문해도(作文害道: 글을 짓는 것은 도를 해치는 것이다)’라는 극단적 견해로 인해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러나 수려한 산수 경물을 보면 감정이 동하고 시흥(詩興)이 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는 가학(家學)과 사승(師承)의 관계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그의 부친인 주송은 당시 작시와 시학에 능한 유학자로 ≪위재집(韋齋集)≫을 세상에 내놓았으며, 천주(泉州)태수인 사극가(謝克家)가 주송의 시재를 높이 평가해 이름을 떨쳤다. 또한 주자의 청소년 시절 스승이었던 유자휘도 유학자이자 유명한 시인이었다. 그리하여 주자는 어려서부터 유학자로서뿐만 아니라 시인으로서도 자질을 키웠다. 남송 효종이 융흥(隆興) 연간(1163∼1164)에 공부시랑(工部侍郞) 호전(胡銓)에게 훌륭한 시인을 물색하라는 명을 내렸는데, 이에 1170년 말에 올린 상소문에 주자를 비롯한 15명의 명단을 올렸다. 이때 주자의 나이 41세였다. 또한 주자는 28세에 ≪목재정고(牧齋淨稿)≫라는 시집을 편찬했고, 이후 계속해서 10여 권의 시집을 냈다. ≪주문공문집≫을 보면, 앞 10권에 모두 1210수의 시사(詩詞)를 수록했고, 별집과 유집에도 187수의 시를 수록했다.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전송시≫에도 약 90수가 있으니, 도합 1487수가 된다(장세후 옮김, ≪주자시 100선≫ 6쪽). 
주자의 시가 중에 가장 많은 시는 산수시다. 그는 일생의 대부분을 정사와 서원에서 강학과 저술에 힘썼다. 그의 정사와 서원은 모두 수려한 산수 자연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는 천성적으로 산수를 좋아했을 뿐만 아니라, 강학과 저술로 일관된 무미건조한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새로운 활력과 리듬을 찾고자 명승지를 탐방하고 승경을 감상하며 풍물을 노래했다. 물론 길지 않은 관직 생활을 하면서도 여러 곳에 유람의 족적을 남겼다. 그는 언제나 이학가의 본분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애를 많이 썼다. ‘음풍농월(吟風弄月)’이라고 하는 자체가 유학자의 신분과는 배치되기 때문에 스스로 경각심을 야기해 수시로 반성과 사변을 통해 극복하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천성적인 산수 사랑과 풍부한 시정, 그리고 탁월한 시작 능력이 때로는 그의 이성적 사변을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학도(學道)’와 ‘음시(吟詩)’의 절충을 모색했는데, ‘공문시교(孔門詩敎: 공자 문하의 시 교육)’를 근거로 시작의 당위성을 내세웠고, 음풍농월의 행위 또한 이학가들에게 활력과 심리적 안정을 위해 꼭 필요한 대사 작용이라고 스스로 간주했다. 더욱이 천지 만물에 이(理)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산수를 관조하고 산수미를 파악하는 것은 천리(天理)를 깨우치려 하는 것으로, 이학가가 내세우는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주장과도 상응하는 것이라 여겼다. 따라서 ‘음풍농월’하는 것은 산수 자연으로부터 각 경물이 지니고 있는 존재 이유와 우주 만물의 섭리를 깨우치는 데 일말의 효용이 있다고 보았다. 또한 그의 산수시에는 남성적인 강건함과 호방하고 웅대한 풍격이 많이 등장하는데, 이것은 개인적인 기질과도 관련이 있지만 이학 사상의 심미관을 그대로 반영했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 책 속으로

·서시

무이산 산 위에는 신선이 있고
산 아래 찬 물결은 굽이굽이 맑네.
그중에 절경을 알고자 하니
뱃노래 두세 마디 한가롭게 들리는구나.

序詩
武夷山上有仙靈
山下寒流曲曲淸
欲識個中奇絶處
櫂歌閒聽兩三聲


·육곡

육곡에는 창병봉이 짙푸른 물굽이를 두르고
오두막에는 종일토록 사립문이 닫혀 있네.
나그네가 와서 노를 저으니 바위꽃 떨어지나
원숭이와 새는 놀라지 않고 봄 정취만 한가롭네.

六曲 
六曲蒼屛繞碧灣
茆茨終日掩柴關
客來倚棹巖花落
猿鳥不驚春意閑


·천주봉

우뚝 하늘로 솟은 기둥 하나
중추가 되어 운행하며 동쪽을 떠받드네.
단지 천지가 크다고만 말하지
사극(四極)을 세운 공을 누가 알겠는가?

天柱峰
屹然天一柱
雄鎭斡維東
只說乾坤大
誰知立極功


·무이정사를 둘러보다

신령스런 산 아홉 굽이 시내를 
거슬러 오르면 이 중에 가운데라네. 
물은 깊고 파도는 넓게 일어
푸른 봄이 떠다니며 세차게 흘러가네.
위에 있는 푸른 바위 병풍은
백 길 높이로 우뚝 솟아 장관이라네.
절벽에 드러난 가파른 바위는
높이 솟아 은하수에 닿을 만하지만,
얕은 산기슭은 굽이돌며 내려가고
깊은 숲 속에는 무성한 관목이 여전하네. 
천년 동안 어찌 문을 닫고 있었을까?
어느 날 이곳에 이르러 문을 열었네.
나는 새 마을에서 거룻배를 타고는
푸른 풀 무성한 언덕에 노 멈췄네.
덤불 자르고 호미질하길 좋아해서 
일구기를 다하면 다듬기를 고려했네.
편안한 마음으로 담장을 돌아보니
묘한 곳이 어찌 이리도 크고 많은가?
좌우로 기묘한 봉우리가 우뚝 솟아
주저하다 경치 좋은 곳으로 놀러 가네.  
봄이 거의 끝나 가는 시기인데도 
붉고 푸른 것이 뒤섞여 빛나고,
좋은 새들이 때때로 울어 대니
은사는 멀리서 손짓하며 부르네.
잠시 노닐었더니 마음은 상쾌하고
홀로 가려 하나 몸은 오히려 얽매이니,
몸조심하며 근엄한 사람의 자태는 버리고 
다시 돌아와 머무르며 은사와 짝하리라.

行視武夷精舍
神山九折溪
沿溯此中半
水深波浪闊
浮綠春渙渙
上有蒼石屛
百仞聳雄觀
嶄巖露垠堮
突兀倚霄漢
淺麓下縈回
深林久叢灌
胡然閟千載
逮此開一旦
我乘新村舠
輟棹靑草岸
榛莽喜誅鋤
面勢窮考按
居然一環堵
妙處豈輪奐
左右矗奇峰
躊躇極佳玩
是時芳節闌
紅綠紛有爛
好鳥時一鳴
王孫遠相喚
暫遊意已愜
獨往身猶絆
珍重捨瑟人
重來足幽伴


☑ 지은이 소개

주희(朱熹, 1130∼1200)
주자의 이름은 주희(朱熹, 1130∼1200)이며, 자는 원회(元晦) 또는 중회(仲晦), 호는 회암(晦庵), 시호는 ‘문(文)’이어서 ‘주문공(朱文公)’이라 부른다. 원적은 흡주(翕州) 무원[婺源, 지금의 장시성(江西省) 우위안시]인데, 흡주가 남송 때 휘주(徽州)로 개칭되었고, 휘주(지금의 안후이성) 아래쪽에 신안강(新安江)이 흘러서 그의 본관을 ‘신안’이라고 한다.
주자는 공자와 맹자 이후로 중국 역대 최고 사상가 중 한 사람이다. 북송 5자[주돈이, 정호, 정이, 장재, 소옹(邵雍)]의 유가 학문을 집대성하면서, 주돈이의 ‘태극(太極)’을 정호의 ‘천리(天理)’와 같은 것으로 보고, 정이의 ‘성즉리(性卽理)’ 사상을 발전시켜 성리학을 완성했다. 또 중국 유가 경전을 정리해 ≪논어(論語)≫, ≪맹자(孟子)≫, ≪대학(大學)≫, ≪중용(中庸)≫을 4서로, ≪시경(詩經)≫, ≪상서(尙書)≫, ≪주역(周易)≫, ≪예기(禮記)≫, ≪춘추(春秋)≫를 5경으로 분류했다.
19세 때 진사에 급제한 이후, 고종(高宗), 효종(孝宗), 광종(光宗), 영종(寧宗) 등 네 임금이 차례로 바뀌는 동안 실제로 벼슬을 한 기간은 지방 관리로 8년 여, 황제에게 조언과 강의를 하는 벼슬인 궁중 시강으로 46일, 도합 9년이 채 되지 않는다. 그는 관직 생활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을 무이산과 부근의 숭안, 건양 등지에서 보냈다.
주자는 강경한 성격과 단호한 태도로 인해 여러 사람들로부터 오해를 받았는데, 결국 당시 실세인 한탁주(韓侂冑)의 의도적인 배척과 호굉이 작성하고 심계조(沈繼祖)가 올린 탄핵문에 의해 1196년 시강과 사당 관리직에서 해임되었으며, 1198년에는 ‘위학(僞學)’으로 내몰려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일절 금지되었다. 물론 ‘위학’ 규정에 따라 벼슬도 하지 못했다. 그는 향년 71세의 나이로 1200년 음력 3월 9일에 건양 고정(孤亭) 마을의 창주정사(滄州精舍)에서 숨을 거두었다. 
사후인 1208년에 시호를 받았고, 정치적인 탄압 때문에 1221년이 되어서야 겨우 행장(行狀), 즉 전기가 나올 수 있었다. 그의 사위인 황간(黃榦, 1152∼1221)이 썼다. 1227년에는 ‘태사(太師)’라는 칭호를 받아 ‘신국공(信國公)’에 추봉(追封)되었으며, 이듬해 ‘휘국공(徽國公)’으로 개봉(改封)되었다. 
그가 편찬한 책은 80여 종, 남아 있는 편지글은 2000여 편, 대화록은 140편에 달하며, 총 자수로는 2천만 자나 된다. 주요 저서로는 ≪사서장구집주(四書章句集注)≫, ≪초사집주(楚辭集注)≫, ≪시집전(詩集傳)≫,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 ≪송명신언행록(宋名臣言行錄)≫ 등이 있으며, 그의 제자들이 편찬한 ≪주자어류(朱子語類)≫, ≪문공가례(文公家禮)≫, ≪주회암집(朱晦庵集)≫ 등이 있다. 그리고 여조겸과 공동 편찬한 ≪근사록(近思錄)≫은 주돈이(周敦頤), 정호(程顥), 정이(程頤), 장재(張載)의 글과 말에서 622개 항목을 가려 뽑아 14개의 주제별로 분류 정리한 책으로, 이후 성리학자들이 가장 중시하는 문헌 중 하나가 되었다. 주자는 경학, 사학, 문학, 불학(佛學)뿐만 아니라 ‘이(理)’가 물질세계의 근원에 존재한다는 차원에서 심지어는 자연과학 서적까지도 고증을 거치고 훈고를 행해 올바른 주석을 달았다.


☑ 옮긴이 소개

심우영
심우영(沈禹英)은 성균관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대만 국립정치대학(國立政治大學) 중문과에 교환학생으로 입학해 석사 학위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상명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국중문학회 회장, 한국중어중문학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캐나다 UBC에서 방문학자로 1년간 체류했다. 또한 교내에서는 부총장을 비롯한 주요 보직을 두루 거쳤고, 특히 한중문화정보연구소 소장을 역임하면서 여러 프로젝트를 수주해 중국 지역학 연구에 매진했다.
저역서로는 ≪중국 시가 여행≫, ≪중국 시가 감상≫, ≪태산, 시의 숲을 거닐다≫, ≪형산, 시의 산을 오르다≫, ≪아미산, 시의 여행을 떠나다≫ 등 다수가 있으며, 논문으로는 <소주 원림의 경명(景名) 연구>, <위진 원림시와 생활미학> 등 수십 편이 있다.
현재 중국의 산수 문학 연구에 집중하고 있으며, 중국의 명산(名山)과 관련된 산수시를 우리나라에 소개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 목차

구곡도가(九曲櫂歌) 10수 ··············3
서시 ·····················9
일곡 ····················11
이곡 ····················14
삼곡 ····················16
사곡 ····················18
오곡 ····················20
육곡 ····················22
칠곡 ····················24
팔곡 ····················26
구곡 ····················28
추진정 ·····················30
충우관 ·····················32
방지 ······················35
청허당(일명 무이정사 관묘당에서 묵다) ······39
제1수 ····················39
제2수 ····················41
오공제 시의 각운자를 써서 짓다 ··········42
천주봉 ·····················46
승진관 ·····················48
승진동 ·····················50
선학암 ·····················52
대소장봉 ····················54
무이정사 잡영(武夷精舍雜詠) 12수 ·········56
무이정사를 여러 가지로 읊고 서문을 아우름 ···56
정사 ·····················61
인지당 ····················63
은구실 ····················65
지숙료 ····················67
석문오 ····················69
관선재 ····················71
한서관 ····················73
만대정 ····················75
철적정 ····················77
낚시터 ····················79
차 끓이는 부엌 ················81
고깃배 ····················83
오공제 <정사> 시의 각운자를 쓰다 ········85
무이정사를 둘러보다 ···············87
대은병(일명 무이산에서 유람하다 요초 줍기를 서로 기약하면서, 운자를 나누어 집어 요 자를 얻었다) ··91
앙고당에서 유공보를 추모하며 ···········95
영봉(일명 무이산을 지나며 짓다) ··········97
악경을 위해 곡을 하다 ···············99
도수갱에서 짓다 ·················102
종정인 중기와 태사인 경인과 함께 산을 유람하는데, 문숙과 무실 또한 이르러 기뻐하다 ········105
앞의 각운자를 써서 중기와 이별하다 ········110
유자징이 멀리서 양구를 보냈는데, 또한 인을 품고 의를 돕는 말이 있었다. 두 수의 절구를 지어 사례하며, 천 리 먼 곳에 하찮은 것을 보낸다 ··············115
산을 나와 도중에 즉석에서 시를 짓다 ·······118


해설 ······················121
지은이에 대해 ··················126
옮긴이에 대해 ··················150


2013년 11월 26일 화요일

원매의 강남 산수 유람시(袁枚江南山水遊覽詩)


도서명 : 원매의 강남 산수 유람시(袁枚江南山水遊覽詩)
지은이 : 원매(袁枚)
옮긴이 : 최일의·왕잉즈(王英志)
분야 : 중국 / 시
출간일 : 2013년 11월 25일
ISBN : 979-11-304-1179-8 03820
가격 : 18000원
사륙판 / 무선제본 / 268쪽




☑ 책 소개

형식과 봉건 규범을 버리고 솔직하고 자유로운 성정을 노래했다. 67세의 나이로 여행을 시작해 82세로 세상을 뜰 때까지 절강, 안휘, 강서, 복건, 광동, 광서를 두루 다니니 시가 곧 자연이고 인간이다. 


☑ 출판사 책 소개

≪원매의 강남 산수 유람시≫는 “성난 물결이 산처럼 솟구치는데, 외로운 나룻배에 나는 홀로서 간다(水怒如山立, 孤篷我獨行)”는 강인한 용기와 “목숨을 내던져 산 오르는 일과 맞바꾸려 했으니, 위험을 만났어도 어찌 그만둘 수 있겠는가!(拼將命換山, 遇險那肯止!)”라는 굳센 의지로 길 위에 나서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중국 청나라의 원매(1716∼1798)가 강남 산수를 유람하고 지은 시들을 선별해 엮은 책이다. 
회재불우(懷才不遇)한 중국의 전통 지식인처럼 재능은 출중했지만 지방의 현령으로 전전해야 했던 원매는 일찍부터 벼슬에 환멸을 느끼고 남경(南京)에 수원(隨園)이란 주택과 정원을 가꾼 뒤에 그곳에서 살며 전업 작가의 길을 걸었다. 그는 개성이 강하고 주관이 뚜렷해서 유교적 예교주의 전통에 반기를 들고 인간의 자유로운 정욕(情欲)을 긍정했으며 시에서도 시인의 감정을 진솔하게 펴낼 것을 주장하면서, 정교(政敎) 상의 효용을 강조하던 당시의 보수 시단을 비판했다. 나아가 당시 지식인들은 거의 꿈꿀 수 없었던 여제자들을 직접 거느리면서 그들을 격려해 주기 위해 자신의 저술에 그들과 관련된 언론을 남겼고, 또한 그녀들의 시를 모아 시선집을 편찬해 주기도 했다. 이처럼 반전통적인 시론과 대담한 행동은 당시 시단에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키면서 성령시파(性靈詩派)를 형성하기도 했다. 
그런데 우리가 원매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또 다른 특이한 점은 바로 그의 유람벽(遊覽癖)이다. 그가 21세 때 숙부를 만나기 위해 강소성 남경에서 광서의 계림까지 장거리 출타를 한 적이 있는데 이것이 그의 긴 여정의 시작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중장년 시절에도 남경 주변 등지로 자주 유람을 나섰지만 더욱 주목할 만한 점은 당시로서는 완전한 노년이라고 할 수 있는 67세 때 절강성으로 장기간 원거리 유람을 떠난 것을 시작으로 안휘성, 강서성, 복건성은 물론 더 멀리 광동성, 광서성까지 다섯 차례 이상 유람을 나섰다는 점이다. 기간도 몇 개월씩 소요되었으며 심지어는 1년 이상 걸린 유람도 있었다. 
원매의 유람벽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그리고 무엇이 그로 하여금 그토록 유람에 신명이 나도록 했을까? 
첫째로는 당시 문인들에게 보편적으로 인식되었던 독만권서(讀萬卷書), 행만리로(行萬里路)의 관념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식을 광범위하게 축적하는 것 이외에도 직접 눈으로 보고 체험해 견문을 넓히는 것이 문학적 상상력을 발휘하고 창작 구상을 민첩하게 하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그로 하여금 산천을 유람하도록 강하게 이끌었던 것이다. 
다음으로는 원매 본인의 자유분방한 기질, 아름다움을 향유하고자 하는 강렬한 욕구, 새로운 문물에 대한 호기심 등이 종합적으로 작용해 그로 하여금 유람을 나서도록 재촉했을 것이다.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한 기질과 개성은 그를 수원동산에서 유유자적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또한 자연 산수의 이면에 존재하는 아름다움을 그 누구보다 사랑하고 맘껏 누리고 싶어 하는 강렬한 욕망이 그를 집 밖으로 나서도록 이끌었다. 그리고 명성은 익히 들었지만 직접 눈으로 보지 못한 명승지들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지적 호기심이 어떤 난관에도 불구하고 직접 현장에까지 이르도록 그를 견인했을 것이다.


☑ 책 속으로

·강을 건너는데 거센 바람 불어와

성난 물결이 산처럼 솟구치는데,
외로운 나룻배에 나는 홀로서 간다.
내 몸이 용의 등 위에 타고 있는 건 아닐까?
돛이 솟구치는 물보라와 나란하다. 
닻줄을 맬 곳조차 없는데,
선창 밖으로 악어의 울음소리 들려온다.
금산과 초산은 나그네가 오는 줄을 아는 것인지,
성 밖으로 나와 멀리서 나를 맞이한다. 


·최고봉에 올라

여러 봉우리들이 일제히 머리를 숙여
다투어 한 봉우리에 양보하고 있네. 
한 봉우리는 과연 당당하게 
홀로 푸른 하늘 위로 솟아 있네.
내가 여기에 오르니 하늘에 오른 듯 
나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것이 없네.
흰 구름은 뭉게뭉게 발밑에서 피어오르고
붉은 해는 바로 가슴 앞을 밝게 비추고 있네. 
닫힌 산사의 문을 손으로 두드리니
소리가 바람을 타고 산 아래로 퍼져 가네.
노승은 맞이하자마자 바로 나를 부축해 주니
내가 바람에 불려 하늘 너머로 떨어질까 두려워서이네. 
노승이 창문 열어 양주의 탑을 가리키며 알려 주는데
또 과주에서 종소리가 무척 선명하게 귀로 들리네.
섭산은 이곳에 이르자 형세가 완전히 바뀌어 
괴석과 기송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네.
이것들이 인간 세상 어디에 숨겨져 있는지 모르겠는데
장강의 물빛이 한 필의 비단처럼 흔들거리는 걸 느낄 수 있을 뿐이네.
머리 들어 보니 봉우리가 조물주의 자리를 침범할까 봐 걱정인데
긴 하늘에 나는 새의 소리는 벌써 끊겨 있네.
산을 유람할 적엔 정상에 이르려 하지 말지니
더 오르려 해도 길이 없어 돌아가고픈 마음만 일어난다네.
산을 등지니 채찍 휘두르듯 바람이 끊임없이 불어오고
손으로 던져 넣은 듯 해는 서해를 밝게 비추고 있네. 


·용정 샘물

용이 서호의 떠들썩함을 싫어해
여의주를 숨길 집을 따로 골랐다. 
용정의 샘물은 맑고 깊어
푸른 하늘 한복판이 떠서 출렁거린다.
잎이 떨어지자 새가 물고 가고
사람을 멀리하지 않고 물고기가 헤엄친다.
바야흐로 건륭 황제를 영접해야 하는 때라서
벼랑에 돌계단을 열었다.
구멍을 뚫어 신령한 샘물의 수원지를 준설하다가
모래를 긁어내니 기이한 돌이 나왔다.
폭포는 구천에서 쏟아지는데
흩어지며 수많은 곳들을 하얗게 만든다.
구슬을 뿜어내며 갖가지 꽃들을 떨어뜨리는 듯하고  
얼굴에까지 뿌리며 눈처럼 어지러이 날린다.
귀 기울이니 물소리 세차서
쟁쟁 둥근 옥이 부서지는 소리가 난다.
높은 누대에 돌기둥 차갑고
노송에 푸른 안개 켜켜이 쌓여 있다. 
차를 시음하던 사람들은 돌아갈 생각조차 잊었으니
물이 맑아 하늘도 어두워지지 않아서다.


·비래봉

기이한 산봉우리 허공을 날다가
우연히 떨어져 이 땅을 빌리게 되었다.  
여기 서호의 아름다움이 마음에 들어
돌아가지 않고 오랫동안 눌러앉기에 이르렀다.
나는 유람 왔다가 동굴로 들어가 둘러보려고
머리 숙이고 기꺼이 사타구니 밑으로 기어 들어왔다.
종유석은 번쩍번쩍 빛나는 연꽃 모양으로 드리웠고
쏟아지는 물은 슬픈 듯 요란하게 소용돌이친다.
악마가 사자후에 항복해 엎드린 듯 
용이 싸우고 나서 허물을 벗은 듯
어두운 벼랑에 박쥐가 날아다니는 듯
구름을 뚫고 붉은 사다리가 놓여 있는 듯 모습이 다양하다.
과아씨가 산을 옮기다가
왼쪽 다리에 다친 흔적이 아직 그대로인가 의심되는 것도 있고
또 거령신이 쪼개서
신선 손바닥에 태화봉을 나눠 왔나 의심되는 것도 있다.
객경 수백 명을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넓은
텅 빈 동굴이 정말이지 놀랍기만 하다.
머리카락은 뿌려지는 물에 점점 젖어 들고
한창 오후인데도 이미 밤이 되었나 의심이 든다.
영원토록 해가 보이지 않으니
사계절 중 어찌 여름이 있겠는가!
처음으로 작은 틈새로 하늘이 드러나는가 싶더니
구름이 피어나 또 틈을 메운다. 
앞 동굴에서 비바람 소리 들리니 
다시 찾아가 보고 싶지만 마음은 벌써 두렵다. 


☑ 지은이 소개

원매(袁枚, 1716∼1798)
원매(袁枚, 1716∼1798)는 청조(淸朝) 강희(康熙) 55년(1716) 3월에 절강성(浙江省) 전당현(錢塘縣, 지금의 항저우) 동원(東園) 대수항(大樹巷)에서 태어나 옹정(雍正)·건륭(乾隆) 연간을 살며 활동하다가 가경(嘉慶) 2년, 양력 1798년 1월 3일에 소창산의 수원에서 일생을 마쳤다. 그는 자(字)가 자재(子才), 호(號)가 간재(簡齋) 또는 존재(存齋)인데, 주로 지금의 난징(南京)시에 해당하는 강녕현(江寧縣) 소창산(小倉山)의 수원(隨園)에서 살았기 때문에 수원선생(隨園先生)으로 불리기도 했고 만년에는 스스로 호를 창산거사(倉山居士)·수원노인(隨園老人)·창산수(倉山叟) 등으로 부르기도 했다. 
원매는 일생 동안 많은 저작을 남겼는데 그의 창작이라고 확실하게 증명된 저작으로 총 10종이 있다. ≪소창산방시집(小倉山房詩集)≫ 39권, ≪소창산방문집(小倉山房文集)≫ 35권, ≪소창산방외집(小倉山房外集)≫ 8권, ≪원태사고(袁太史稿)≫ 1권, ≪소창산방척독(小倉山房尺牘)≫ 10권, ≪독외여언(牘外餘言)≫, ≪자불어(子不語)≫ 34권, ≪수원시화(隨園詩話)≫ 26권, ≪수원수필(隨園隨筆)≫ 28권, ≪수원식단(隨園食單)≫ 1권 등이다. 
이 중 ≪소창산방시집≫ 39권은 건륭 원년 21세 때부터 가경 2년 82세 때까지 지은 고금체시(古今體詩) 도합 4484수를 수록했다.


☑ 옮긴이 소개

최일의
최일의(崔日義)는 서울대학교 중문학과에서 문학박사를 취득하고 국립 타이완대학(國立臺灣大學)과 중국 랴오닝대학(中國遼寧大學) 방문학자를 역임했다. 지금은 강릉원주대학교 중문학과 교수로 있다.
주요 논저로는 ≪원매 시선≫(문이재), ≪중국 시의 세계≫(신아사), ≪중국 시론의 해석과 전망≫(신아사)가 있고, 논문으로 <실제 시가 분석을 통한 청대 4대 유파 시론 용어의 개념 검토>, <十九世紀朝鮮詩壇的性靈觀與清朝袁枚之關系> 등이 있다.

왕잉즈(王英志)
왕잉즈(王英志)는 베이징대학(北京大學) 중문과(中文系) 출신으로, 쑤저우대학(蘇州大學) 학보 편집 위원을 맡고 있다. 주요 논저로는 ≪淸人詩論硏究≫(江蘇古籍出版社), ≪續詩品注評≫(浙江古籍出版社), ≪袁枚與隨園詩話≫(上海古籍出版社), ≪紅粉靑山伴歌吟―袁枚傳≫(東方出版社) 등이 있다.


☑ 목차

밤에 과주에 들러 ·················3
강을 건너는데 거센 바람 불어와 ···········6
저녁에 청량산에 올라 ···············10
최고봉에 올라 ··················14
죽림사 ·····················20
천하 제이의 샘물 ·················23
호구에서 전경개와 술배를 띄우고 ··········26
소주의 서서포 거사가 옹동유 유생과 함께 나를 초청해 동정서산 섬을 유람하고 나서 석공산방에서 함께 묵고 짓다 29
표묘봉에 올라 ··················32
빗속에 호주에 들러 ················38
동강에서 짓다 ··················42
무림으로 돌아왔다 성을 나서며 짓다 ········44
도광사 ·····················47
용정 샘물 ····················52
비래봉 ·····················57
옥천에서 물고기를 감상하며 ············63
달밤에 단교에 홀로 앉아 ··············67
고산 ······················70
육화탑에 올라 ··················75
자운과 금고 등 여러 동굴을 노닐며 ·········78
난정 ······················83
후산 ······················87
천태산으로 들어가는 길에서 즉흥을 맘대로 쓴 시 ···92
국청사에서 고명사로 가는 도중 산색을 보고서 ····95
화정봉에 올라 노래하다 ·············101
석량에 이르러 폭포를 보고 ············105
경대 ······················110
입하에 천모사에 들러 ··············114
흔들바위 ····················118
자광사에서 걸어서 석동을 지나 나무 사다리를 타고 문수원에 이르다 ················122
내내 천도·연화 두 봉의 반쯤 구름에 잠긴 모습만이 보이다가 문수원에 이르니 비로소 전모가 살짝 드러나다 ··127
비 온 뒤 문수원에서 왼쪽으로 꺾어 내려오다 백보운제·일선천·오어동을 지나니 황산의 가장 높은 곳이로다 ·130
천도봉을 바라만 보며 과감하게 오르질 못하다 ···136
괴로운 구름 ···················139
황학루 ·····················142
동정호에 들러 ··················145
악양루 ·····················148
상수는 정말 맑아 열 길 깊이에도 바닥을 볼 수 있네 ·152
파양호 ·····················155
향로봉에서 폭포를 바라보며 ···········158
병상에서 일어나 나부산을 유람하며 시 다섯 수를 얻다 161
단강에서 계림까지 가는 수로의 산수가 기막히게 아름다워 천태산·안탕산보다 빼어난 점이 있기에 6언시 9수를 지었지만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을까 봐 끝내 산신령에게 죄송한 마음이다 ·············165
독수봉 ·····················168
계림의 여러 산들이 대개 다 우뚝 솟아 장난삼아 지은 절구 한 수 ··················171
흥안 ······················174
선하령에 들러 ··················177
8월 28일에 무이산 유람을 나서며 ·········180
배 안에서 천유봉을 뒤돌아보니 일람루는 벌써 하늘 위에 있네 ···················184

해설 ······················189
지은이에 대해 ··················249
옮긴이에 대해 ··················259


임포 시선(林逋詩選)


도서명 : 임포 시선(林逋詩選)
지은이 : 임포(林逋)
옮긴이 : 임원빈
분야 : 중국 / 시
출간일 : 2013년 11월 27일
ISBN : 979-11-304-1178-1 03820
가격 : 13500원
사륙판 / 무선제본 / 204쪽





☑ 책 소개

매화가 아내고 학이 자식이다. 경치 좋은 서호가 앞마당이요 한적한 고산(孤山)이 집이다. 책 읽고 시 읊다가 무료하면 밭일하고 낚시하니 세상에 부러울 것 하나 없다. 중국은 물론 우리나라의 수많은 선비들이 임포를 부러워한 이유다. 은일시, 매화시가 이로부터 유행했다.


☑ 출판사 책 소개

임포(林逋)는 송대(宋代) 초기에 널리 알려진 시인이다. 40세 전후에 지금의 항저우(杭州) 시후(西湖)호 부근의 구산(孤山)산에 은거해 도시로 나오지 않았다. 그곳에서 시를 지으며, 매화와 학을 벗하며 살았기에 후에 매처학자(梅妻鶴子)라는 은일 시인으로 명성이 널리 알려졌다.
원(元)나라 사람 방회(方回)는 송 초의 시단을 크게 백체파(白體派)와 곤체파(昆體派) 그리고 만당체파(晩唐體派)로 구분하면서, 임포를 만당체파(晩唐體派)에 속한다고 규정했다. 소위 만당체파(晩唐體派)란 승려나 도사같이 세상을 멀리한 사람들을 비롯해 현실에 참여하기보다는 은일을 추구한 시인들로, 그윽하며 맑고 고고한 풍격을 추구했다. 임포는 대표적인 은일 시인이므로 기본적으로는 만당체파(晩唐體派)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임포는 분명 은일 생활을 구가한 시인이지만, 어린 시절 학문의 원천은 역시 유교(儒敎) 경전이었다. 이에 따라 청소년 시절에는 세상을 경영하겠다는 정치적인 이상을 가졌다. 40세 전후 은거하기 이전의 20대와 30대 행적은 비록 명확하지 않지만, 지금의 장쑤(江蘇)나 저장(浙江)과 중원(中原) 지역을 여행하며 많은 경험을 쌓은 것을 그의 시를 통해 알 수 있다. 그는 <시의 최고봉(詩將)>에서 “풍소(風騷)를 최고봉으로 치켜세우니 천고(千古)에 위명이 높이 솟을 만하네. 두보(杜甫)는 늘 숭배를 받았고, 왕창령(王昌齡)은 아랫사람을 거느릴 만했다네(風騷推上將, 千古聳威名. 子美常登拜, 昌齡合按行)”라고 말한다. 이 시에서 풍소(風騷)란 바로 현실주의 시가를 가리키며, 그 대표적인 시인으로 당대(唐代)의 두보와 왕창령을 예로 들고 있다. 또한 ≪임화정 선생 시집(林和靖先生詩集)≫의 서문은 송 초 시인 매요신(梅堯臣)이 썼는데, 그 서문에서 “도를 말하는 데는 공자(孔子)와 맹자(孟子)를 들었다(其談道, 孔孟也)”라고 공맹(孔孟)의 유가 사상과 관련한 임포의 사상을 언급하고 있다. 
임포의 또 다른 핵심 사상은 은일 시인답게 불도(佛道)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은거한 이후에 불도에 많은 관심을 가졌고, 그런 사상을 바탕으로 은은하고 고고한 심정을 시를 통해 표현했다. 그러나 사실상 임포는 은거하기 이전에 이미 많은 승려나 도사와 왕래하며 고고한 품성을 길렀다. 시를 통해 보면 30여 명의 승려 및 도사와 왕래했음을 알 수 있으며, 또한 시가 창작에서도 불교나 도가와 관련된 용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그의 사상을 정리한다면, 역시 유가의 수양을 바탕으로 해서 불교 선종(禪宗)의 참선에서 배웠던 심리적 평정, 그리고 도가를 통해 형성된 고상하고 평온한 정신세계가 융합되었다고 할 수 있다. 
현존하는 그의 시가는 310여 수다. 원래는 더욱 많아 현재 남아 있는 시는 전체 시가의 겨우 10분의 1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정확한 수는 알 수 없다. 비록 310여 수에 불과하지만 그 내용은 상당히 다양하다. 크게 분류해 보면 은일 생활의 정서를 표현한 은일시(隱逸詩), 사물을 묘사하는 영물시(詠物詩), 왕래한 사람들과의 교유시(交遊詩), 일부분이지만 현실성을 가진 정치시(政治詩)가 있다.


☑ 책 속으로

·해 질 무렵 호수의 누각에서 멀리 바라보며 

호수에 하늘의 파란빛 비쳐서,
난간에 기대어 응시하며 한없이 바라보네.
석양 무렵 가을 산은 아직 푸름이 가득하고,
맑은 가을이라 새들이 높이 나네. 
큰 뜻은 천 리까지 이르렀지만,
뜬구름 같은 인생은 한 올 털과 마찬가지로 가볍다네.
깊은 숲 속 산사(山寺)를 여러 번 간 것은 아니지만,
아스라한 안개가 고기 잡는 거룻배 저편 산사에서 피어오르네.


·산속 정원의 작은 매화−첫째

많은 꽃들 다 시들었을 때 홀로 예쁘게 피어,
자그마한 정원의 아름다운 정취를 독차지하네.
희미한 그림자는 가로로 맑은 물 얕은 곳에 비껴 있고, 
그윽한 향기는 황혼 무렵의 달빛 속에서 풍겨 온다.
흰 새는 내려오려고 먼저 살짝 쳐다보는데,
흰 나비가 안다면 마땅히 애를 끊으리라.
다행히 나지막하게 읊조려 서로 친근해질 수 있으니, 
단목 악기나 금 술잔이 모두 필요치 않다네.


·겨울 저녁 산속의 촌락에서

나무 우거진 산기슭에 지은 초옥에도,
봄빛은 이미 어슴푸레하게 다가왔네.
눈 덮인 대나무 아래에는 차가운 푸른빛이 드러나고,
바람 맞은 매화 떨어져 늦은 향기를 풍기네.
나무할 때가 되면 대개는 홀로 나가고,
차밭 가꾸는 일은 늘 바쁜 것도 아니라네.
한 쌍의 백로 시시때때 하늘로 올라,
들판의 연못을 지나 비스듬히 날아가네.


·범중엄(范仲淹) 사승(寺丞)을 보내며

쓸쓸하고 한적한 산속에 있는 나의 오두막집을 두드리는데, 
부지런하기가 남아 있는 부스러기까지도 흔쾌히 챙길 정도인 것 같네.
책상을 물리고 맞이하며 강가의 나무에 대해 이야기하고,
술잔을 멀리하고 잠시 함께 정원의 채소를 따네.
사마상여(司馬相如)는 재주가 많아 늘 부(賦)를 잘 지었고,
매복(梅福)은 관직이 비천했지만 수시로 상서를 올렸네.
황제는 애써 바른 정치를 추구하는데,
어느 때 조서대로 실행되며 공거령(公車令)을 초빙할 수 있을까?


☑ 지은이 소개

임포(林逋, 967∼1028)
임포(林逋)는 송대(宋代) 초기에 활동한 은일 시인이다. 자는 군복(君復)이며, 967년 지금의 항저우(杭州)에서 태어났고 1028년 세상을 떠났다.
은일 시인이기에 그의 행적에 대한 자료는 그다지 많지 않으며, 혹 기록이 있다고 하더라도 소략하다. 지방지에 해당하는 ≪함순임안지(咸淳臨安志)≫에 기록된 <임포전(林逋傳)>, 명대의 판본 ≪임화정 선생 시집(林和靖先生詩集)≫에서 송인(宋人) 상세창(桑世昌)이 쓴 <임포전(林逋傳)> 그리고 ≪송사(宋史)·은일전(隱逸傳)≫에 임포에 대한 간략한 기록이 있다. 이러한 자료를 통해 정리하면, 임포는 일찍 부모님을 여의어 가난하고 고아로 자랐지만 어린 시절 학문에 힘써 박학다식했다. 또한 그는 가난한 생활 속에서도 자부심을 가지고 오만한 성격이었으며, 또한 세속적인 영리를 추구하지 않았다. 청소년 시절 집을 떠나 강회(江淮)와 중원(中原) 일대를 여행했으며, 40세 전후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서호(西湖)의 고산(孤山) 아래에 은거해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면서 줄곧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 청소년 시절의 여행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지만 그의 시가를 통해 일부 상황은 알 수 있다. 이 시기에 그는 여느 지식인과 마찬가지로 세상에 쓸모가 있는 사람으로 자임하며 이상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오만함과 협기, 굽힐 줄 모르는 성격 때문에 그 이상은 실현하기 어려웠다. 이 시기에 그는 많은 인물들과 폭넓은 교유 관계를 맺었지만, 이들 역시 대부분 권문세가가 아니라 풍류를 즐기는 평범한 인물이나 실의한 관리 그리고 불도(佛道)의 인물들이었다. 이러한 청소년 시기의 경험으로 더더욱 세상의 명예를 경시하는 성격을 가지게 되었으며, 자신만의 고매한 인격과 사상이 형성되었다. 그런 결과의 하나가 바로 이상 실현을 위해 권문세가를 찾아다니며 추천을 바라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가 통치 집단에 대해 분개하거나 비판하는 의견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즉, 그가 은거한 이유는 세상에 대한 반감은 아니며, 세상의 번다한 일을 싫어하고 고상한 품성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상에서 은일 생활을 시작한 임포는 서호(西湖)의 고산(孤山)에 은거한 후 20여 년 동안 이곳을 떠나지 않았다. 그는 이곳에서 결혼도 하지 않으며 시를 짓고 매화와 학을 기르며 살았는데, 이 때문에 ‘매화를 아내로, 학을 자녀로 한 시인[梅妻鶴子]’으로 현재까지 이름이 전한다. 은거한 후에 그의 고매한 품성이 오히려 널리 전해져 많은 인물들이 그를 찾아왔다. 그중 황제인 진종(眞宗)이 곡식을 하사하고 관리를 시켜 안부를 물은 일이 있어 그의 이름은 더욱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또한 임포에 관한 기록이 있는 문헌들을 보면 새로운 측면이 보이는데, 예들 들면 그는 시를 잘 지어 명성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서예와 그림에도 조예가 깊었다고 한다. 


☑ 옮긴이 소개

임원빈
임원빈(任元彬)은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 졸업 후에 동 대학원에서 중국 고전 시가를 전공하며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중국 상하이(上海) 푸단대학(復旦大學) 고전문학 박사 과정에 입학해 1998년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11년 2월부터 7월까지 중국 베이징대학(北京大學) 중문과에서 연구학자(硏究學者)로 연구 활동을 했다. 박사 학위논문은<唐宋之際文學與思想政局硏究>이다. 저서로는 ≪현대 중국어 실용문≫, ≪중국어 어휘 활용 100%≫, ≪중국 고전 시 세계≫, ≪고대 한중(韓中) 시승(詩僧)의 시가 탐구≫, ≪唐末詩人的心理世界≫ 등이 있으며, 편저로는 ≪중국 문학 사료학≫이 있고, 역서로는 ≪그 상상력의 비밀 3≫, ≪그 상상력의 비밀 4≫, ≪육구몽 시선(陸龜蒙詩選)≫,≪두순학 시선(杜荀鶴詩選)≫ 등이 있다. 논문으로는 <당(唐) 말(末) 시가에 나타난 문인 심리>, <송(宋) 초(初) 시가 중의 숙세정신(淑世精神)>, <불교 선종(禪宗) 문화와 당(唐) 말(末)의 시가>, <시승(詩僧) 제기(齊己)의 풍소지격(風騷旨格)과 시 창작>, <≪송릉집(松陵集)≫ 중의 피일휴(皮日休) 시가 연구>, <육구몽(陸龜蒙) 시가에 나타난 현실성>, <두순학(杜荀鶴) 시가에 나타난 심리 세계>, <두순학(杜荀鶴) 시가의 현실성>, <임포(林逋) 시가의 내용 고찰> 등 50여 편이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평택대학교, 숙명여자대학교, 국민대학교, 숭실대학교 등에 출강했으며, 현재는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연구소 연구교수다.


☑ 목차

권1(卷一) 오언고시(五言古詩) 오언율시(五言律詩)
해 질 무렵 호수의 누각에서 멀리 바라보며 ······3
가을날 서호(西湖)에서 한가로이 배를 띄우고 ·····5
서호에서 배를 타고 눈을 맞이하며 ··········7
호숫가 촌락에서 밤중에 흥이 일어 ··········9
호수와 산에서 은거하며−둘째 ···········11
숲 속에 은거하며 스스로 써 보다 ··········13
겨울 저녁 산촌에서 ················15
여관에서 마음속에 품은 것을 쓰다 ·········17
대성사(臺城寺)의 물가 정자를 바라보며 ·······20
우연히 적다 ···················22
장차 사명산(四明山)으로 돌아가려다, 밤중에 마주 앉아 이야기하다 임(任) 군과 이별하며 ······24
과거 보러 가는 수재(秀才) 풍팽년(馮彭年)을 보내며 ·26
선성(宣城)으로 가는 사제상인(思齊上人)을 송별하며 ·28
장회(張繪) 비각교서랑(秘閣校書郞)에게 드리는 아홉 가지 시제(詩題) 중에서 시의 최고봉 ······30
동소궁(洞霄宮)에 묵으며−둘째 ··········32
고산의 눈 속에서 보이는 것을 쓰다 ·········34

권2(卷二) 칠언율시(七言律詩)
호수와 산이 있는 곳에서 은거하며−첫째 ······39
호수에서 느지막이 돌아가며 ············42
서호(西湖)의 봄날 ················44
여름날 연못에서 ·················46
깊은 곳에 은거하는 중에 이런저런 흥이 일어서−첫째 48
깊은 곳에 은거하는 중에 이런저런 흥이 일어서−넷째 50
고산사(孤山寺) 단(端) 상인(上人)의 방에서 보이는 것을 쓰다 ··················53
산곡사(山谷寺) ··················55
정원의 오두막집 ·················57
눈−셋째 ····················59
산속 정원의 작은 매화−첫째 ···········62
산속 정원의 작은 매화−둘째 ···········64
매화 ······················66
또 두 수(매화 둘째) ················68
산림 은거 ····················70

권3(卷三) 칠언율시(七言律詩)
범중엄(范仲淹) 사승(寺丞)을 보내며 ········75
과거를 보러 가는 오(吳) 수재를 배웅하며 ······78
문광(文光) 스님이 천태산(天台山)으로 유람 가는 것을 배웅하며 ··················8
전당(錢塘)의 읍장(邑長) 고(高) 비교(秘校)에게 드리며 83
내문(耏門) 관직을 맡은 양(梁) 진사(進士)에게 부쳐 ·86
장원례(張元禮)에게 부쳐 드리며 ··········88
태백산(太白山) 이(李) 산인(山人)에게 부쳐 ·····90
봄 저녁에 조남(曹南)의 통수(通守) 임중행(任中行) 사승(寺丞)을 생각하며 부쳐 ··········93
주계명(周啓明) 현량(賢良)이 보내온 시에 화답해 ··96
희주(希晝) 스님이 서호에서 봄을 관망한 것에 화답해 ·99
괵략(虢略) 수재(秀才)가 칠언(七言) 사운(四韻)의 시를 보냈기에 다행히 본 것이 있어서 바로 화답하며 101
왕황주(王黃州)의 시집을 읽고 ··········104
병중에−첫째 ··················107
조카 유(宥)가 급제한 것에 기뻐하며 ········109

권4(卷四) 오언절구(五言絶句) 칠언절구(七言絶句)
민(閔) 선생이 천태(天台)에서 돌베개를 보내온 것에 대해 ·····················115
서호(西湖)에서 성(性) 상인(上人)과 이별의 이야기를 나누며 ··················117
중(中) 선생 초성(草聖)에게 드리며 ········119
고산(孤山)에 은거하며 벽에 쓰다 ·········121
가을에 호수 안의 정자에서 느낀 것을 적으며 ····123
대나무 숲 ···················125
고산(孤山)에 눈이 내릴 때 멀리 조망하며 쓰고, 경산(景山)의 선위(仙尉)에게 드리며 ········127
산중의 한식(寒食)−첫째 ·············129
가을에 강변에서 보이는 것을 적다 ·········131
늦봄에 무재(茂才) 풍팽년(馮彭年)에게 부쳐 보여 주며 133
금릉(金陵) 마(馬) 우승(右丞)에게 부쳐 드리며−첫째 135
재(才) 상인(上人)이 봄날 내게 보내온 시에 화답해 ·137
난계읍(蘭溪邑) 장(長) 사관(史官)에 대한 찬(贊)을 부치며 ····················139
제고(制誥) 이(李) 사인(舍人)이 소나무 부채 두 개와 시를 남겨 주었기에 역시 시운(詩韻)에 맞춰 시를 짓다 ··141
호문(皓文)에게 절구 두 수로 화답하며−첫째 ····143
몽(蒙) 위(尉)가 나에게 보내온 시에 화답해 ·····145
사(謝) 비교(秘校)가 서호(西湖)에서 말 탄 것에 화답해 ·····················147
사(謝) 위(尉)가 관직을 그만두었다는 것에 답해 ···149
진일장(陳日章) 수재(秀才)를 보내며 ·······151
다시 자(慈) 공(公)을 송별하고 호구산(虎丘山)으로 돌아오다 ···················153
즉석에서 강하(江夏)의 무재(茂才)를 보내며 ····155
정(丁) 수재(秀才)가 사명산(四明山)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내며 ··················157
선중(善中) 스님이 사명(四明)으로 돌아가는 것을 배웅하며 ····················159
대방(大方) 스님이 금릉(金陵)으로 돌아가는 것을 배웅하며 ····················161
감군(監郡) 오(吳) 전승(殿丞)이 은혜를 베풀었기에 붓과 먹 그리고 건계차(建溪茶)로써 각각 절구(絶句) 한 수를 지어 감사하며−붓 ·················163
감군 오 전승이 은혜를 베풀었기에 붓과 먹 그리고 건계차로써 각각 절구 한 수를 지어 감사하며−먹 ··166
감군 오 전승이 은혜를 베풀었기에 붓과 먹 그리고 건계차로써 각각 절구 한 수를 지어 감사하며−차 ··168
우는 학 ·····················170
스스로 생전의 무덤을 만들고는 절구 한 수를 써 놓으며 ·····················172

해설 ······················175
지은이에 대해 ··················188
옮긴이에 대해 ··················191

2013년 11월 1일 금요일

이백 시선(李白詩選)


도서명 : 이백 시선(李白詩選)
지은이 : 이백(李白)
옮긴이 : 임도현
분야 : 중국 / 시
출간일 : 2013년 11월 1일
ISBN : 979-11-304-1162-0 03820
가격 : 21500원
사륙판 / 무선제본 / 386쪽





☑ 책 소개

적선(謫仙), 귀양 온 신선이라는 뜻이다. 자유로운 영혼이었지만 끊임없이 돌아가고 싶어 했다. 이백이 그리워한 ‘하늘’은 과연 어디였을까? 슬픔과 외로움을 호방한 기상으로 애써 삭이는 그의 시에서 신선 이백이 아니라 인간 이백을 만난다.


☑ 출판사 책 소개

이백은 중국 역대 시인 중에서 누구보다도 개성을 뚜렷하게 드러낸 시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외물에 휘둘리거나 속박을 받지 않고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하는 것을 중시했으며, ‘남다른 존재’로서의 자신을 영원히 남기려는 이상을 가지고 있었고, 그 이상을 추구하기 위해서 다양한 방식으로 노력했다. 그 방식으로는 역사적 영웅이 되기 위한 정치적 공명 추구, 영원한 생명을 위한 신선술과 연단술 추구, 자연의 이치를 깨달아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자연 속에서의 은일 추구, 자신의 존재를 각인하기 위한 수평적이고 자기중심적인 교유 관계 형성 등을 들 수 있다. 그중에서 정치적 공명 추구는 이백이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과제였다. 당시 국가의 통치 이념인 유교적 정치사상에 경도된 여타 문인들과는 달리 이백은 다양한 사상과 지역 문화를 섭렵하면서 당시 사회 체제를 벗어나 자아를 추구하고자 하는 경향이 강했다. 하지만 ‘남다른 존재’로서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당 제국이라는 틀은 너무나 매력적인 것이었으며 그의 주된 생활 공간이 당 제국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관직에 진출해 정치적 공명을 이루어 이름을 드날리는 것은 그에게 언제나 중요했다.
예로부터 이백은 그 호방한 기풍으로 인해 대중이 좋아하는 시인이 되었고, 세속의 영리와 권세를 뛰어넘어 아무런 격식에 구애받지 않은 채 유유자적하게 행동하는 모습이 강조되었다. 그래서 그가 정치적 공명의 추구를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이 소홀히 다루어지는 경향이 있었다. 이백은 관직을 구하는 데 별 관심이 없었다거나, 혹은 관직을 구함에 상대방을 전혀 배려하지 않고 자신의 호방한 기상만을 강조하는 태도를 가졌다는 평가들이 있었다. 심지어 일부 논자들은 그가 관직 진출에 실패한 원인을 그의 안하무인격인 간알 태도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여러 시문을 살펴보면 그러한 작품은 오히려 예외적이며 관직을 구하기 위해서 상대방을 공손하게 찬양하거나 자신의 비참한 신세를 묘사하는 작품이 많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필자는 이백의 시 중 이러한 정치적 공명의 추구 양상을 잘 살펴볼 수 있는 시들을 위주로 이 선집을 엮게 되었다. 그래서 1부에서는 정치적 공명을 추구하려는 이백의 의지가 잘 드러난 시, 특히 다른 사람에게 관직을 청탁하는 간알시(干謁詩)를 많이 수록했다. 2부에서는 정치적 공명을 이룩하지 못해 슬퍼하는 마음을 읊은 시들을 수록했으며, 3부에서는 자신의 비참한 신세를 토로하는 시를 수록했다. 그리고 마지막 4부에서는 공명을 추구하기 위해 객지를 떠돌면서 외로워하는 마음을 표현한 시를 수록했다. 이 시선집이 이백 시 세계의 전모를 파악하는 데는 부족하지만 기존에 출간된 이백 시선집에서 간과했기에 미처 알려지지 않았던 이백 시의 모습을 보완하기에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아래에서는 이백 간알시의 특징에 관해 설명했는데, 이를 통해 이백이 시를 쓸 때 가졌던 마음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 책 속으로

·눈을 마주하고 친척 형님인 우성현령에게 바치다

지난밤 양원에서
이 동생이 추위에 떨었던 것을 형님은 모르실 것입니다.
정원 앞에서 옥같이 하얀 나무를 바라보다가
애끊게 연리지를 그리워합니다.


·범 금향현령께 드리다 2수 제1수

그대가 황송하게도 관심을 가져 주셔서
동쪽으로 온 것이 미혹한 것임을 알지 못하지만,
집 떠난 지 몇 달 되지도 않았는데
방 안에 귀뚜라미가 울고 있었습니다.
복숭아와 자두 같은 그대가 말을 하지 않아도
꽃을 따려고 길이 만들어지기를 바랐는데,
어찌 향기로운 서신을 보내 주셔서
은혜롭게도 저를 불러 이끌어 주셨는지요.
제게는 결록 같은 보배가 있지만
오랫동안 탁한 물의 진흙 속에 숨겨져 있었는데,
요즘 사람들은 이 물건을 버려둔 채
연산의 돌과 같이 취급합니다.
보배를 주워 와 닦아 그대에게 바치고
뜻을 펼치려고 하지만 길에 사다리가 없어서,
요동 사람의 흰 돼지일까 부끄럽고
초나라 나그네의 산계일까 부끄러울 뿐입니다.
공연히 미나리를 바치려는 마음을 가졌다가
결국에는 옥을 안고 눈물만 흘리니,
오직 스스로 적막하게 살아야 하겠지만
그래도 남아 있는 혀를 아내에게 보여 준답니다.


·숭산으로 돌아가는 배도남을 보내다 2수 제2수

그대 영수의 푸름을 그리워해
홀연히 다시 숭산으로 돌아가니,
돌아가서는 허유처럼 귀를 씻지 말고
나를 위해 그 마음을 씻어 주시게.
마음을 씻으면 진정한 마음을 얻지만
귀를 씻으면 헛되이 명성을 살 뿐이며,
사안처럼 끝내 한번 일어서서
더불어 백성을 구제하세.


·천마


천마는 월지국의 굴에서 온 것인데,
등은 호랑이 무늬이고 골격은 용의 날개라네.
푸른 구름 속에서 히힝거리고 
녹색 갈기를 드날리며,
얼굴 근육 비범해서 사라진 듯 없어진 듯 달리네.
곤륜산을 올라
세상 서쪽 끝을 지나는데
네 다리는 한 번도 헛디디질 않네.
닭이 울 때 연 땅에서 갈기를 빗고 해 질 녘에 월 땅에서 꼴을 먹으니,
신령이 지나간 듯 번개가 치는 듯 발길이 보이지 않네.
천마가 울면서
비룡처럼 내달리네.
눈은 샛별처럼 빛나고 가슴에는 한 쌍의 오리 모양 근육,
꼬리는 유성 같고 머리는 갈오 같으며,
입에서는 붉은 빛을 뿜어내고 가슴팍의 땀도 붉으니,
일찍이 당대의 용을 모시고 하늘 길을 뛰었다네.
머리의 금장식 끈이 수도를 비추고,
뛰어난 기상 반듯해 온 천지를 떨쳤으니,
산처럼 큰 흰 옥으로도 누가 감히 살 수 있으랴? 
고개 돌려 자연마를 비웃으니 
그저 너희들이 어리석다고 생각할 뿐이네.
천마가 내달리며
임금의 수레를 그리워하네.
재갈을 당기자 날아오르니 뜬구름이 뒤집히네.
만 리를 달리다 머뭇거리며
저 멀리 대궐문을 바라보는데,
한풍자를 못 만났으니
누가 지나가는 태양처럼 날쌘 말의 후손을 가려낼까?
흰 구름은 푸른 하늘에 떠 있고 
언덕은 먼데,
소금 수레가 우뚝 솟은 가파른 비탈을 오르니,
낑낑대며 억지로 가면서 날 저물까 두려워하네.
백락이 다듬고 쓰다듬었지만 중도에 버려졌으니 
젊었을 때 힘을 다 쓰고는 늙어서 버림받았구나.
원컨대, 전자방을 만난다면 
측은하게 여겨 나를 위해 슬퍼해 주련만,
비록 옥산의 나무벼가 있다 해도
고통스런 굶주림을 치유할 수 없구나.
오월 한여름의 된서리는 계수나무도 시들게 하는 법이라,
구유에 엎드려 원통함을 머금으니 두 눈썹이 처지네.
그대에게 청하노니, 나를 사서 목천자에게 바친다면 
여전히 그림자 희롱하며 요지에서 춤출 텐데.


☑ 지은이 소개

이백(李白, 701~762)
이백(701~762)은 사회 경제적으로 번성한 성당 시기와 국가적 환란 시기를 살았다. 그가 태어난 곳에 대해서는 키르기스스탄의 타클라마칸, 사천성 강유(江油), 감숙성 농성(隴城) 성기(成紀) 등 여러 가지 설이 있으며, 그의 혈통에 대해서도 아직 논란이 있다. 그는 어려서 ≪시경≫과 ≪서경≫을 비롯해 제자백가를 공부했고, 검술이나 신선술 등에도 남다른 관심이 있었다. 그의 사상적 기초에는 유가뿐만 아니라 도가, 불교, 종횡가 등도 포함되었으며, 그는 협객의 기질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분야의 독서와 자유로운 유람, 광범위한 교제를 통해 독특한 풍격을 갖추어 나갔다.
724년 가을 이백은 촉 지방을 떠나 형문(荊門), 초(楚) 지방, 동정호(洞庭湖), 금릉, 광릉, 월(越) 지방, 회계(會稽), 양주(揚州), 운몽(雲夢), 안륙(安陸)을 떠돌게 된다. 그러다 727년 안륙에서 고종(高宗) 시대 재상이었던 허(許) 상공(相公)의 손녀를 처로 받아들였다. 
이후 장안으로 가서 하지장(賀知章)과 만나고 하늘에서 귀양 내려온 신선이란 뜻인 ‘적선인(謫仙人)’이란 별칭을 얻게 된다. 장안 근처 종남산(終南山)에 은거하면서 당시 유력자였던 옥진공주(玉眞公主)를 통해 관직에 진출하려 했지만 실패로 끝났다. 자신의 재능과 포부를 알리지 못하는 실망감을 달래기 위해 장안 부근의 방주(坊州)와 빈주(邠州) 일대를 유람하거나 장안과 낙양을 오가면서 시정배들과 술과 노름으로 세월을 보낸다. 장안을 떠나 송성(宋城), 양원(梁園)을 지나 숭산(崇山)에 은거하면서 원단구(元丹丘)를 방문하고 최종지(崔宗之) 등과 교제하게 된다. 그 후 양양(襄陽)에 머물다가 태원(太原)에 들른 후 숭산에 가서 원단구와 잠훈(岑勛)을 만난다. 돌아오는 길에 양양에서 맹호연(孟浩然)과 만나고 안륙으로 돌아와 잠시 머물다 남양(南陽), 진주(陣州), 안의(安宜), 오(吳) 지방 등을 두루 유람한다. 다시 안륙으로 돌아왔다가 동로(東魯)로 이주해 임성(任城)에 기거한다. 740년 즈음에 조래산(徂徠山)에 은거하며 술과 시로 노닐었는데 당시 같이 지내던 이들을 죽계육일(竹溪六逸)이라고 한다. 
742년 식구들과 함께 남쪽으로 가서 가족들은 남릉에 남기고 홀로 월 지방으로 가 있다가, 회계에서 같이 지내던 오균(吳筠)의 추천으로 장안으로 들어왔으며 또한 옥진공주의 추천을 함께 받아 궁중으로 들어가 한림공봉(翰林供奉)이 되었다. 여태까지 여러 산을 떠돌며 은자로서 이름을 알린 것이 결실을 맺어서 관직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지만, 그가 한 일은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왕의 측근에서 글의 초안을 잡거나 연회에 불려 가 흥을 돋우는 시나 짓는 정도였다. 어용 문인의 생활에 회의를 느끼고 장안의 한량들과 어울려 다니며 시와 술로 지내다 결국 744년 장안을 떠나 유랑의 길에 접어든다. 
이백은 낙양에서 두보를 만나고, 양원에서 고적과 노닐다가 제남 자극궁(紫極宮)에서 고천사(高天師) 여귀도사(如貴道士)로부터 도교의 진록(眞籙)을 전수받는다. 장안에서의 회의와 좌절감이 이백으로 하여금 도교에 더욱 심취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후 양주, 금릉, 단양, 월 지방, 곽산을 유람하고 금릉에 오래 머물며 강남 지역을 유랑했다. 이때 아내 종씨(宗氏)를 맞이했다. 이후 유주(幽州)로 갔다가 다시 양주를 거쳐 남릉으로 오게 되는데, 이렇게 그는 동서남북으로 계속 유랑했다. 
755년 안록산의 무리가 낙양을 함락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부인 종씨를 데리고 남하해 여산(廬山)에 은거했다. 이때 영왕(永王) 이인(李璘)의 막부로 들어가서 어지러운 왕실의 기강을 회복하고 자신의 명예도 되찾으려 했다. 하지만 영왕의 무리는 반란군으로 몰려 패배하고 이백 역시 모반에 가담한 죄로 심양(尋陽)의 옥에 갇혔다. 하지만 여러 지인들의 도움으로 757년 옥에서 풀려나 야랑(夜郞)으로 유배길에 올랐다. 759년 사면을 받아 유배 생활을 마치게 되었지만 매우 쓸쓸하고 외로운 말년을 보내다가 762년 당도(當塗)에서 세상을 떠났다.


☑ 옮긴이 소개

임도현
임도현은 1968년에 태어났으며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금속공학과를 졸업했다. 1993년 금속공학과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기업체 연구소에서 첨단 소재 개발 관련 업무를 수행했다. 그러던 중 중국어를 공부하고자 사직하고 다시 수능을 치러 2003년 영남대학교 차이나비지니스 연합전공에 입학했다. 4년 동안 중국어를 열심히 공부했고, 그중 1년 동안은 중국 톈진(天津)에 있는 난카이대학(南開大學)에서 수학했다. 중국에 체류하는 동안 백두산, 태산, 승덕(承德)의 피서산장 등을 두루 여행했으며 특히 윈난성 일대를 40일간 배낭여행한 경험도 있다. 그중 매리설산(梅里雪山)에서 10여 일을 보냈는데 그때의 기억을 가장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이후 영남대학교 중문과에서 석사 과정을 수학하면서 중국 고전 문학에 관한 다양한 학습을 했으며, 그 결과 <이백의 시에 나타난 술의 이미지에 관한 연구>라는 제목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2009년에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박사 과정에 입학했으며 2012년 8월 <이백의 자아추구양상과 문학적 반영>이란 제목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지금은 이화여대 중문과에서 박사후과정 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으며, 서울대와 중앙대에 출강하고 있다. 연구 성과로는 ≪이백의 <고풍 59수>≫, <이백의 간알시에 나타난 관직 진출 열망>, <이백의 다원적 이상 추구와 그 좌절로 인한 비애>, <≪협주명현십초시(夾注名賢十抄詩)≫의 간행목적(刊行目的)과 유전양상(流傳樣相)> 등이 있다.


☑ 목차

1. 정치적 공명의 지향
고풍 59수 제26수 ·················3
고풍 59수 제38수 ·················6
진나라 여인이 천자의 옷을 말아 개다 ········8
한단의 궁녀가 시집가서 허드렛일 하는 부역인의 부인이 되다 ···················11
빈 땅의 노래를 읊어 형님인 이찬 신평장사께 올리다 ·14
영왕의 동쪽 순행 11수 제11수 ···········18
여도사 옥진공주 ·················20
친척 형님인 이호 양양현위께 드리다 ········22
범 금향현령께 드리다 2수 제1수 ··········26
왕 하구현위에게 주다 ···············31
오래도록 비 내리는 옥진공주의 별관에서 장 위위경님께 드리다 2수 제2수 ··············34
비서성의 위자춘께 드리다 ·············40
하창호 판관에게 주다 ···············45
배씨에게 주다 ··················48
고봉의 석문산 은거지로 들어오기를 권하기에 업중에서 왕창령에게 주다 ··············51
최성보 시어에게 주다 ···············55
급히 써서 독고명 부마도위께 드리다 ········60
이옹께 올리다 ··················63
왕충신 승주자사께 드리다 ·············65
배 사마에게 주다 ·················67
난리를 겪은 후 황제의 은택을 입어 야랑으로 귀양 가면서, 옛날 노닐던 것을 기억하고 느낀 바를 적어 강하태수 위양재께 드리다 ····················70
숙부이신 강하자사의 연회 석상에서 사흠 낭중께 드리다 ·····················91
장호 재상께 드리다 2수 제1수 ···········94
우문 선성태수께 드리며 아울러 최성보 시어에게 주다 101
조열 선성태수에게 드리다 ············112
벗에게 주다 3수 제1수 ··············119
친척 숙부인 이양빙 당도현령께 바치다 ·······121
오왕께 부쳐 올리다 3수 ·············129
숭산으로 돌아가는 배도남을 보내다 2수 제2수 ···134
노 땅에서 장안으로 과거 시험 보러 가는 두 친척 동생을 보내다 ··················136
왕숭 방주사마와 염 정자가 눈을 마주 보며 시를 지어 내게 준 것에 답하다 ·············139
고시를 본뜨다 12수 제2수 ············143
고시를 본뜨다 12수 제7수 ············146
흥취를 느끼다 8수 제6수 ·············148

2. 정치적 공명을 이루지 못한 애달픔
고풍 59수 제44수 ················153
고풍 59수 제52수 ················156
고풍 59수 제57수 ················158
먼 이별 ·····················160
왕숭 사마를 떠나다 ···············165
시국에 감개하며 종형인 서왕 이연년과 종제인 이연릉을 떠나다 ··················169
이광필 태위가 진의 백만 병사를 일으켜 남동쪽으로 출정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약한 사내가 적장을 잡으려 끈을 요청해 작은 능력이나마 펼 수 있기를 바랐지만, 중도에 병이 나서 돌아오게 되어, 금릉의 최 시어를 떠나며 19운을 짓다 ························180
금향에서 장안으로 가는 위씨를 보내다 ·······187
금릉에서 다시 동오 지역으로 가는 장씨를 보내다 ··189
비파협으로 가는 육 판관을 보내다 ·········192
숙부이신 이엽 형부시랑과 가지 중서사인을 모시고 동정호를 노닐다 5수 제3수 ···········194
경정산 북쪽 이소산을 올랐는데, 나는 당시 나그네 신세로 최성보 시어를 만나 함께 이곳을 올랐다 ··197
강남에서 봄에 생각하다 ·············199
처음 금문을 나와서 왕 시어를 찾아갔지만 만나지 못하고 벽 위의 앵무새를 읊다 ···········201
서역 사람이 피리 부는 것을 보다 ·········203
흥취를 느끼다 8수 제8수 ·············205

3. 비참한 신세에 대한 토로
고풍 59수 제22수 ················209
고풍 59수 제37수 ················213
고풍 59수 제59수 ················217
천마 ······················221
아침에 장끼가 날아오르다 ············229
한 쌍의 제비가 헤어지다 ·············233
문밖에 수레를 탄 손님이 있네 ···········236
길을 떠나며 ···················240
눈을 마주하고 친척 형님인 우성현령에게 바치다 ··242
유 도사에게 드리다 ···············244
취한 뒤 종조카 고진에게 주다 ···········248
옥중에서 최환 재상께 올리다 ···········252
가을밤에 홀로 앉아 고향 산을 생각하다 ······255
채 산인을 보내다 ················260
오송산 아래 순씨 할머니 집에서 묵다 ·······263
겨울밤 취해서 용문에서 묵다가 깨어 일어나 뜻한 바를 말하다 ···················265
고시를 본뜨다 12수 제9수 ············268
감우 4수 제2수 ·················270
정 판관에게 주고 헤어지다 ············272
최환 재상님께 백 가지 근심을 아뢰는 글 ······274
만 가지 분노를 써서 위 낭중에게 주다 ·······281
들판의 풀 중에 백두옹이라는 것을 보다 ······287
야랑으로 유배 가다가 아욱 잎을 쓰다 ·······289
추방된 후에 은혜가 내려졌지만 혜택을 못 받다 ···291
미인을 대신해 거울을 근심하다 2수 제1수 ·····293

4. 떠돌며 홀로 지내는 외로움
오랜 이별 ····················297
추포 17수 제1수 ·················300
까마귀가 밤에 울다 ···············302
아미산의 달 ···················304
조염 당도현위에게 부치다 ············306
심정을 써서 종제인 이소 빈주장사에게 부치다 ···308
백로주에 묵으며 양이물 강녕현령에게 부치다 ····311
심정을 이야기해 벗에게 주다 ···········314
남양에서 손님을 보내다 ·············320
벗을 보내다 ···················322
강하에서 벗을 보내다 ··············324
선성의 청계 ···················326
중양절 ·····················328
태원의 이른 가을 ················331
가을밤 판교포에서 배 띄워 달구경 하며 혼자 술 마시다가 사조를 생각하다 ·············333
달 아래서 홀로 술을 마시다 4수 제1수 ·······336
가을밤 나그넷길을 생각하다 ···········339
멀리 부치다 12수 제4수 ·············341
멀리 부치다 12수 제6수 ·············343
연꽃을 꺾어 주다 ················345

해설 ······················347
지은이에 대해 ··················368
옮긴이에 대해 ··················3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