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한국 수필비평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한국 수필비평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15년 3월 23일 월요일

필원잡기


도서명 : 필원잡기 
지은이 : 서거정
옮긴이 : 박홍갑
분야 : 한국 수필비평
출간일 : 2012년 6월 25일
ISBN : 978-89-6680-351-4 00810
가격 : 18000원
규격 : A5    제본 : 무선제본    쪽 : 169쪽




☑ 책 소개

서울에도 사가정길이라는 길 이름을 남기고 있는 조선조 최고의 문장가 서거정의 수필집. 역사에 누락된 사실들과 시중에 떠돌던 한담들을 모아 붓 가는 대로 기록한 것이다. 누에가 고치실을 뽑아내듯 그의 맛깔스런 문장이 고금을 통달하지 않고서는 풀어낼 수 없는 다양한 내용들을 줄줄이 엮어내는 것을 보면 왜 저자의 문명(文名)이 그토록 높았던가를 단박에 알 수 있다.


☑ 출판사 책 소개

≪필원잡기≫는 일종의 한문 수필집이다. 조선조 큰 학자로 추앙받는 서거정(徐居正)이 역사에 누락된 사실과 시중에 떠돌던 한담(閑譚)들을 채록한 것이다. 우리나라 한문 수필집으로는 신라 때 혜초가 지은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이나 최치원의 ≪쌍녀분(雙女墳)≫ 등이 비교적 초기 작품들이며, 고려 말기에 오면 이규보의 ≪백운소설(白雲小說)≫, 이인로의 ≪파한집(破閑集)≫, 이제현의 ≪역옹패설(櫟翁稗說)≫과 같은 작품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런 여파로 조선에 들어와서도 한문 수필집이 다양하게 엮어졌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서거정의 ≪필원잡기≫, ≪태평한화골계전(太平閑話滑稽傳)≫, 성현의 ≪용재총화(慵齋叢話)≫ 등이다.

서거정은 당대의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해박한 지식과 탁월한 식견을 가지고 우리나라 사적(事蹟)을 널리 채집하여, 역대 창업으로부터 공경대부들의 도덕과 언행, 문장과 정사들 중에서 모범이 될 만한 것을 가려 뽑고, 또 국가의 전고(典故)와 떠도는 여항풍속(閭巷風俗) 중에서 사회 교육과 관련된 사례는 물론이고, 나라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사실까지도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간결한 필체로 기술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필원잡기≫이다. 그 제목에서 보듯, 붓 가는 대로 주위에 널려 있는 이런저런 사실들을 모아 기록했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송나라 구양수가 남긴 ≪귀전록(歸田錄)≫에 버금가는 작품이 아닐 수 없다.


☑ 책 속으로

권익평(權翼平)이 경오년(1450)에 향시, 회시, 전시 세 시험에 모두 장원으로 합격하였는데, 군수 김수광(金秀光)은 향시, 회시, 전시 세 시험에 모두 꼴찌로 합격하였다. 당시 사람들이 웃으며, “삼장(三場) 장원은 고금을 통하여 흔히 있는 일이나, 삼장의 꼴찌는 천하에 정녕코 없던 일이다” 하였다.


☑ 지은이 소개

서거정(徐居正)
서거정은 세종 2년에 태어나 69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한 조선조 최고의 문장가요 학자였다. 자는 강중(剛中) 또는 자원(子元)이며, 호는 사가정(四佳亭) 혹은 정정정(亭亭亭)으로 불렸다. 목사를 지낸 달성 서씨 미성(彌性)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권근(權近)의 딸이다. 세종 20년에 생원·진사 양과에 합격하고, 세종 26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그의 학문은 폭이 넓어 천문·지리·의약·점성술·풍수에 이르기까지 통달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수양대군을 따라 명나라에 종사관으로 다녀왔고, 세조가 즉위하자 세자 사부로 보임될 정도로 신임을 받았다. 사은사로 중국에 갔을 때 그의 문장을 대륙에까지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고, 국가의 전책(典冊)과 사명(詞命)이 모두 그의 손에서 나왔다. 성종 때 달성군(達城君)에 봉해졌다. 조선시대 기본 법전인 ≪경국대전(經國大典)≫ 찬수에 깊이 관여하였고, ≪삼국사절요(三國史節要)≫, ≪동문선(東文選)≫, ≪동국통감(東國通鑑)≫,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등의 편찬도 그의 손을 거쳤다.
예문관 대제학과 성균관 지사를 오래도록 겸하면서 문형(文衡)을 맡았는데, 45년간의 관직생활 동안 절반이나 문형을 관장할 정도였다. 아울러 전후 23 차례에 걸친 과거 시험을 관장하여 수많은 인재를 그의 손으로 뽑았다. 학풍과 사상은 조선 초기 관학의 분위기를 대변하였고, 정치적으로는 훈구대신 입장을 견지하기도 했지만, 여러 전적들을 편찬할 때는 신진 사림계의 인물들과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그가 주축이 되어 편찬한 사서·지리지·문학서 등이 너무 많아 일일이 거론하기 힘들 정도다. 시호는 문충(文忠)이고, 문집 ≪사가집(四佳集)≫이 세상에 전한다. 대구 구암서원(龜巖書院)에 배향되었다.


☑ 옮긴이 소개

박홍갑
박홍갑은 1980년대 중반 이래 줄곧 국사편찬위원회에서 곰팡이 냄새나는 고서들과 씨름하며 우리 역사와 문화에 대한 조각들을 꿰맞추며 살아왔고, 그 미완성의 퍼즐이라도 널리 알리기 위해 강의실에서 혹은 방송이나 신문 잡지를 통해 많은 사람들과 만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조선시대 문음제도 연구≫(탐구당), ≪병재 박하징 연구≫(경인문화사) 등과 같은 묵직한 전문서적이나 삼십여 편에 달하는 조선시대 정치사, 사회생활사 관련 논문들도 있지만, ≪사관 위에는 하늘이 있소이다≫(가람기획), ≪양반나라 조선나라≫(가람기획)와 같이 대중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인문 교양서들을 보급하는 데도 적극적이었다. 틈틈이 다른 연구자들과 함께 작업해 펴낸 ≪한국전통문화론≫(북코리아), ≪교양한국사≫(도서출판 서원) 등의 공저도 그러한 결과물들이다. 상아탑에 갇힌 우리 역사 및 문화를 대중들 사이로 과감히 물길을 튼 시도는 좋았지만, 만족할 정도로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는 것이 본인 스스로의 평가다. 그렇기에 박홍갑의 우리 역사 문화 대중화 작업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 목차

권1
권2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2015년 1월 26일 월요일

용재총화 慵齋叢話


도서명 : 용재총화 慵齋叢話
지은이 : 성현(成俔) 지음
옮긴이 : 홍순석
분야 : 한국 / 수필비평
출간일 : 2014년 12월 29일
ISBN : 979-11-304-1661-8   03810
가격 : 42000원
규격 : 사륙판     제본 : 무선제본    쪽 : 778쪽




☑ 책 소개

조선 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어떤 음악을 듣고, 어떻게 시험 치고, 어디로 놀러 다녔을까? 고려 때부터 조선 성종 때까지, 역사책에도 나오지 않는 이야기들을 성현(成俔)이 맛깔 나는 문장으로 기록했다. 왕세가·사대부·문인·서화가·음악가 등의 인물 일화를 비롯해 풍속·지리·제도·음악·문화·소화(笑話) 등 사회 문화 전반을 336편의 이야기로 전한다.


☑ 출판사 책 소개

≪용재총화(慵齋叢話)≫는 조선 중기에 성현(成俔)이 지은 잡기류(雜記類) 문헌이다. 고려 때부터 조선 성종 때까지 왕세가·사대부·문인·서화가·음악가 등의 인물 일화를 비롯해 풍속·지리·제도·음악·문화·소화(笑話) 등 사회 문화 전반을 다루고 있다. 책의 저술 연도가 분명하지 않으나, 1499년(연산 5)까지의 일이 기록되었고, 성현이 1504년에 죽었음을 감안하면, 1499∼1504년 사이에 저술했다고 할 수 있다.
조선 성종과 당대 관료층 문인들의 잡기류에 대한 관심은 성현이 ≪용재총화≫를 저술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특히 성임(成任), 성간(成侃) 두 형의 영향이 크다. 성임과 성간은 경전(經典)만 추종하는 도학자(道學者)와는 다른 문학관을 지니고 있었다. 성임은 ≪태평광기상절(太平廣記詳節)≫ ≪태평통재(太平通載)≫를 엮었다. 같은 시기에 서거정(徐居正)은 ≪필원잡기(筆苑雜記)≫ ≪태평한화골계전(太平閑話滑稽傳)≫, 강희맹(姜希孟)은 ≪촌담해이(村談解弛)≫, 이육(李陸)은 ≪청파극담(靑坡劇談)≫을 저술했다. 이육은 성현의 절친한 친구이자 사돈이다. 이 같은 여건 속에서 성현이 ≪용재총화≫를 저술한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용재총화≫는 책 이름에서 시사하듯이 여러 유형의 이야기를 집록(集錄)한 그야말로 ‘총화(叢話)’다. 서거정의 ≪필원잡기≫ ≪동인시화(東人詩話)≫ ≪태평한화골계전≫ 세 유형의 이야기를 모두 수록하고 있다. 그러나 ≪용재총화≫는 서거정의 저술처럼 이야기를 유형별로 구분하고 있지 않다. 이육의 ≪청파극담≫처럼 내용을 분류해서 수록한 것도 아니다. ≪용재총화≫는 책의 권수만 구별되어 있을 뿐이며, 그나마도 기준이 있어 구별된 것도 아니다. 단지 비슷한 이야기가 군집해 있음을 살필 수 있다. 336편이나 되는 이야기가 권수만 구분된 채로 수록되어 있기 때문에 내용을 분석해 정리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용재총화≫에 소재한 이야기는 기실(記實)·골계(滑稽)·기이(紀異)·잡론(雜論)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기실이다. 잡론의 개인 기록까지 합치면 거의 전부가 필기류에 속한다. 성현은 ≪패설(稗說)≫ 6권을 저술했다. ≪용재총화≫ 외에 별도로 ≪패설≫을 저술했다는 사실은 성현이 필기와 패설을 구별해서 정리했음을 시사한다.
≪용재총화≫는 조선 초기의 사회상 전반을 관심 있게 다룬 잡기류 문헌이다. 성현은 파한의 자료지만 국승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 국사에 기록되지 못한 이야기를 관심 있게 기록했다. 이 책에 담긴 다양한 기록은 오늘날 사회학·민속학·구비 문학은 물론 한국학 연구의 사료로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 책 속으로

●1. 7 한양의 명승지

한양의 도성 안에는 경치 좋은 곳이 비록 적기는 하나, 그중에서 놀 만한 곳은 삼청동(三淸洞)이 가장 좋고, 인왕동(仁王洞)이 다음이며, 쌍계동(雙溪洞)·백운동(白雲洞)·청학동(靑鶴洞)이 그다음이다.
삼청동은 소격서(昭格署)의 동쪽에 있다. 계림제(鷄林第) 북쪽에는 맑은 샘물이 어지러이 서 있는 소나무 사이에서 쏟아져 나온다. 물줄기를 따라 올라가면 산은 높고 나무들은 빽빽한데, 깊숙한 바위 골짜기 몇 리를 못 가서 바위가 끊기고 낭떠러지를 이룬다. 뿌리는 물이 낭떠러지에 흰 무지개를 드리운 듯하고, 흩어지는 물방울은 튀는 구슬과 같다. 그 아래는 물이 괴어 깊은 웅덩이를 이루고, 언저리는 평평하고 넓어서 수십 명이 앉을 만하며, 장송(長松)이 엉기어 그늘을 이룬다. 그 위의 바위를 에워싸고 있는 것은 모두 두견화와 단풍잎이다. 봄과 가을에는 붉은 그림자가 비쳐 지위 높은 관리들이 많이 와서 논다. 그 위로 몇 걸음을 올라가면 넓은 굴이 있다.
인왕동은 인왕산 밑이다. 깊은 골짜기가 굽이쳐 돈다. 복세암(福世庵)은 골짜기 물이 합쳐서 시내를 이루는 곳인데, 도성 사람들이 다투어 와서 활쏘기를 한다.
쌍계동은 반궁(泮宮) 위의 골짜기에 있다. 두 개의 샘이 시내를 이룬다. 김유(金紐)가 시내를 끼고 집을 짓고, 복숭아나무를 심어 무릉도원을 모방했는데, 강희맹(姜希孟)이 부(賦)를 지었다. 김유가 문장이 우아해 당시에 이름을 떨쳤으므로 호준(豪俊)한 사람들이 많이 따르며 놀았다.

●1. 14 감찰의 신참례

감찰(監察)은 옛날의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의 직책이다. 그중에서 직급이 높은 자가 방주(房主)가 된다. 상·하 유사가 함께 내방(內房)에 들어가 정좌하며, 외방(外房)은 임명된 순위에 따라 좌석의 차례를 삼는다. 그중에서 수석에 있는 사람을 비방주(枇房主)라고 한다.
새로 들어온 사람을 ‘신귀(新鬼)’라고 부르면서 온갖 방법으로 모욕을 준다. 방 가운데서 서까래만 한 긴 나무를 신귀로 하여금 들게 하는데, 이것을 ‘경홀(擎笏)’이라 한다. 들지 못하면 신귀를 선생(先生) 앞에 무릎을 꿇게 하고, 선생이 윗사람으로부터 아랫사람으로 내려가면서 차례로 주먹으로 구타한다.
또한 신귀에게 물고기 잡기 놀이를 시킨다. 신귀가 연못에 들어가 사모(紗帽)로 물을 퍼내니 의복이 모두 더러워진다. 또한 거미 잡기 놀이를 시킨다. 신귀가 손으로 부엌 벽을 문질러 두 손이 옻칠한 듯이 검어지면 손을 씻게 한다. 그 물이 아주 더러워도 신귀로 하여금 마시게 하니 토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또한 신귀로 하여금 두꺼운 백지로 자서함(刺書緘)을 만들어 날마다 선생 집에 던져 넣게 하고, 또한 선생이 수시로 신귀의 집에 몰려가면 신귀는 사모를 거꾸로 쓰고 나와 맞이한다. 마루에 술자리를 마련하고 선생에게 모두 여자 한 사람씩을 안겨 주는데, 이를 ‘안침(安枕)’이라 한다. 술이 거나하면 <상대별곡(霜臺別曲)>을 노래한다. 대관(臺官)이 재좌(齋坐)하는 날에 이르러 비로소 자리에 앉는 것을 허용한다. 이튿날 아침 일찍 청사에 나아가면 상관인 대리(臺吏)가 함께 뜰 안으로 들어가 뵙는다. 예가 끝나기도 전에 밤에 숙직한 선생들이 방 안에서 목침을 가지고 큰 소리를 지르며 때린다. 신귀는 빨리 달아나서 밖으로 나온다. 지체하다가는 몽둥이에 얻어맞게 된다.
이러한 풍습의 유래는 이미 오래되었다. 성종이 이를 싫어해서 모든 신래(新來)를 괴롭히는 일을 엄하게 금지하니, 그 풍습이 조금은 숙어졌으나, 아직도 구습 그대로 폐하지 않은 것이 많다.

●2. 28 민대생 조카의 언변

중추(中樞) 민대생(閔大生)은 나이 90여 세였다. 정월 초하룻날 조카들이 와서 뵙고는 그중 한 사람이 말하기를, “원하건대 숙부께서는 백 년까지 향수(享壽)하소서” 했다. 중추가 노해 말하기를, “내 나이 90여 세인데 내가 만약 백 년을 누린다면 다만 수년밖에 살지 못할 것이다. 어찌 입에 이렇게 복 없는 소리를 담느냐” 하고는 내쫓았다. 또 한 사람이 나아가 말하기를, “원하건대, 숙부께서는 백 년을 향수하시고 또 백 년을 향수하소서” 했다. 중추는 “이것은 참으로 송수(頌壽)하는 체모로다” 하고, 잘 먹여 보냈다.

●9. 5 성균관 유생의 놀이

해마다 여름과 겨울에 성균관 유생들은 종이에 ‘궐(闕)’ 자를 써서 공자(孔子)를 왕으로 존경해 받들어 모신다. 동학(東學)을 복성공(復聖公)의 나라로 삼고, 남학(南學)을 술성공(述聖公)의 나라로 삼으며, 중학(中學)을 종성공(宗聖公)의 나라로 삼고, 서학(西學)을 아성공(亞聖公)의 나라로 삼아 제후가 천자를 우러러보는 것처럼 한다.
관내의 상사(上舍)·하사(下舍)의 사람들을 백관의 직책에 추천하되 이조가 인물을 전형해 선발하는 일을 맡는다. 사람의 현부를 변별해 후보를 추천하는 것을 모두 알맞게 한다.
승지에 임명된 사람은 은대연(銀臺宴)을 베풀며, 사람의 성(姓)에 공(孔) 자와 구(丘) 자에 관계가 있는 자는 모두 종정(宗正)의 벼슬을 준다. 만약 불손한 자가 있으면 가느다란 실띠로 항쇄(項鎖)를 씌워 가지고 와서 방의 판자 밑에 가두어 놓고 의금부 제조에게 명해 죄를 묻게 한다. 매우 죄가 많아서 횡역(橫逆)의 죄에 해당하는 자는 풀로 사람의 형상을 만들어서 참형에 처한다.
도읍을 옮기게 되면 ‘궐(闕)’ 자를 처음에는 동재(東齋)에 붙였다가 명륜당(明倫堂)에 올려 특사(特赦)를 내린 뒤에 서재(西齋)에 붙인다.
재추가 된 자는 종이로 띠를 만들어 맥초(麥草)를 붙여 금빛이 나게 하고, 백지를 잘라 망건에 붙여서 옥관자(玉貫子)라 부른다. 장수가 된 자는 종이를 잘라 깃[羽]을 만들어 갓 위에 꽂아 융복(戎服)의 모양을 만든다. 사학(四學)에서는 사신을 보내어 내조하는데 닭으로 송골매[海東靑]를 삼아 바친다. 예조에서는 사신에게 연회를 베풀되, 술 한 잔을 주며 안주로는 볶은 콩을 사용한다. 재(齋)에 수직(守直)하는 아이에게 명해 솥뚜껑을 치고 노래를 하면서 대접한다. 이를 ‘동악(動樂)’이라 한다.
관(館)에서도 또한 사신을 사학(四學)에 보내는데 이를 천사(天使)라고 한다. 그 학(學)에서는 베옷과 이불로 집 기둥을 싸서 이를 결채(結綵)라 하고 사신을 맞이한다. 옛날에 상사(上舍) 윤심(尹深)이 천사가 되어 겉에는 속이 붉은 옷을 입고, 대를 타고 저자 복판을 지나니 사람들이 다투어 웃었다. 윤심은 손을 휘두르며 중국 말 하는 시늉을 하면서 옆에 아무도 없는 양 제멋대로 떠들면서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석전제(釋奠祭) 하루 전에는 이름을 뽑아 삼공을 삼고, 그 나머지 상사는 모두 별명으로 백(伯)을 봉하며, 하재(下齋)의 유생들도 모든 벼슬을 임명하되, 차등이 있게 한다. 사학의 유생으로서 와서 제사를 돕는 자들에게는 해학으로 문제를 내어 제술하게 한다. 그 성적의 등급을 매겨 천장급제(天場及第)라고 하고, 뜰에서 방(榜)을 부른다. 크게 정초(政草)를 써서 대성전(大成殿)앞에 반포하면 헌관과 선배들이 모두 모여서 본다. 조정에서 하는 일과 다름이 없다.
태종 때 어떤 내환(內宦)이 천도(遷都)하는 것을 보고 달려가 상주하기를, “성균관 유생이 모반합니다”라고 아뢰었다. 태종이 자세히 그 사유를 자세히 듣고 전교하기를, “이는 유생들의 고례(古例)다. 그 유래가 이미 오래되었으니, 다시는 말하지 말라”라고 했다.


☑ 지은이 소개

성현(成俔, 1439∼1504)
성현(成俔, 1439∼1504)은 조선 초기의 문인으로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경숙(磬叔), 호는 허백당(虛白堂)이다. 용재(慵齋)·부휴자(浮休子)·국오(菊塢)라는 호도 사용했다. 시호는 문대(文戴)다. 아버지는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염조(念祖)다. 맏형 성임(成任), 둘째 형 성간(成侃)과 함께 당대의 문장가로 명성을 떨쳤다.
성현은 1462년(세조 8) 23세로 식년문과에 급제했다. 1466년 27세로 발영시(拔英試)에도 3등으로 급제해 박사로 등용되었다. 홍문관정자를 지내고 대교(待敎) 등을 거쳐 사록(司錄)에 올랐다. 1468년(예종 즉위년) 29세로 경연관(經筵官)이 되었으며, 이후 예문관수찬·승문원교검을 겸임했다. 맏형 성임을 따라 북경(北京)에 다녀왔으며, 이때 지은 기행시를 엮어 ≪관광록(觀光錄)≫이라 했다. 1475년(성종 6)에는 한명회(韓明澮)를 따라 재차 북경에 다녀왔다. 1476년 문과중시에 병과로 급제해 부제학·대사간 등을 지냈다. 1485년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로 천추사(千秋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대사간·대사성·동부승지·형조참판·강원도관찰사 등을 역임했다.
1488년에는 평안도관찰사로 있으면서 명나라 사신 동월(董越)과 왕창(王敞)을 접대했는데 연회에서 화답한 시편으로 시재(詩才)를 인정받았다. 이해에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로 사은사가 되어 다시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 뒤에 대사헌이 되었다.
성현은 음률에 정통해 다른 관직을 맡으면서 장악원제조(掌樂院提調)를 겸했다. 1493년에 경상도관찰사로 나갔다가 1개월 만에 예조판서로 제수되었다. 외직에 있으면서 장악원제조를 겸직하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이해에 유자광(柳子光) 등과 ≪악학궤범(樂學軌範)≫을 편찬했다. 성현은 예조판서로 재임 중에도 관상감(觀象監)·사역원(司譯院)·전의감(典醫監)·혜민서(惠民署) 등의 중요성을 역설해 그곳에 딸린 관원들을 종전대로 문무관의 대우를 받도록 했다.
연산군이 즉위한 후에 한성부판윤을 거쳐서 공조판서가 되었다. 그 뒤에 대제학을 겸임했다. 1504년 정월에 66세의 일기로 세상을 마쳤다. 죽은 뒤 수개월 만에 갑자사화가 일어나서 부관참시(剖棺斬屍)당했으나, 중종 즉위 후 바로 신원되고 청백리에 선정되었다. 저서로 ≪허백당집(虛白堂集)≫, ≪용재총화(慵齋叢話)≫, ≪풍아록(風雅錄)≫, ≪풍소궤범(風騷軌範)≫, ≪부휴자 담론(浮休子談論)≫, ≪주의패설(奏議稗說)≫, ≪태평통재(太平通載)≫ 등 17종을 남겼다.


☑ 옮긴이 소개

홍순석
처인재 주인 홍순석은 용인 토박이다. 어려서는 서당을 다니며 천자문에서 소학까지 수학했다. 그것이 단국대, 성균관대에서 한문학을 전공하게 된 인연이 되었다. 지역문화 연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강남대 교수로 재임하면서부터다. 용인, 포천, 이천, 안성 등 경기 지역의 향토문화 연구에 30여 년을 보냈다. 본래 한국문학 전공자인데 향토사가, 전통문화 연구가로 더 알려져 있다. 연구 성과물이 지역과 연관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동안 ≪성현 문학 연구≫, ≪양사언 문학 연구≫, ≪박은 시문학 연구≫, ≪김세필의 생애와 시≫, ≪한국 고전 문학의 이해≫, ≪우리 전통문화의 만남≫, ≪이천의 옛 노래≫, ≪향토사 연구의 이론과 실제≫, ≪용인학≫ 등 50여 권의 책을 냈다. 지식을만드는지식 고전선집 시리즈 가운데, ≪읍취헌 문집≫, ≪봉래 시집≫, ≪부휴자 담론≫, ≪허백당집≫, ≪용재총화 천줄읽기≫를 냈다. 짬이 나면 글 쓰는 일도 즐긴다. ≪탄 자와 걷는 자≫는 잡글을 모은 것이다.


☑ 목차

용재총화 권1
1. 1 역대의 스승 ··················3
1. 2 역대의 문장가 ·················5
1. 3 역대의 명필 ··················8
1. 4 역대의 화가 ·················10
1. 5 역대의 음악가 ················11
1. 6 역대의 도읍지 ················16
1. 7 한양의 명승지 ················19
1. 8 고금의 풍속 ·················22
1. 9 처용희 ···················26
1. 10 관화 ····················28
1. 11 구나 ····················30
1. 12 장례 ····················33
1. 13 대관과 간관 ················34
1. 14 감찰의 신참례 ···············38
1. 15 승정원 ···················40
1. 16 중국 사신과 문사들의 수창 ··········41

용재총화 권2
2. 1 집현전과 홍문관 ···············65
2. 2 과거 제도 ··················67
2. 3 동궁 ····················71
2. 4 삼관의 면신례 ················74
2. 5 성균관 ···················77
2. 6 함장들의 고집 ················79
2. 7 당대의 문벌 ·················80
2. 8 승지 ····················82
2. 9 약밥 ····················82
2. 10 세시명절의 행사 ··············83
2. 11 홍응의 청렴 ················87
2. 12 홍윤성의 호부 ···············88
2. 13 성간의 호학과 선견지명 ···········90
2. 14 최세원의 재담 ···············90
2. 15 비구니 암자에서의 버섯 소동 ·········94
2. 16 안평대군의 방탄 ··············95
2. 17 유방효의 풍류 ···············96
2. 18 김유의 우아한 문장 ·············97
2. 19 성(性)에 무지한 세 사람 ···········98
2. 20 성종조에 인출한 서적 ············99
2. 21 성현의 저술 ················100
2. 22 왕실과 사대부가의 재사 ···········101
2. 23 악관 박 모의 비천한 재주 ··········101
2. 24 전경법 ··················103
2. 25 성종의 호학 ················104
2. 26 성종의 문소전 개수와 서거 ·········105
2. 27 권초지례 ·················106
2. 28 민대생 조카의 언변 ············110
2. 29 예조 ···················110
2. 30 신상과 허조의 상이한 수완 ·········112
2. 31 최세원의 재담 ···············113
2. 32 성간의 꿈 ·················113
2. 33 성현의 예조판서 시절 ············115
2. 34 이육의 방달 ················116

용재총화 권3
3. 1 강감찬과 호승(虎僧) ············121
3. 2 영태의 광대놀이 ··············123
3. 3 이방실 남매의 용맹 ·············124
3. 4 신우의 광포 ················126
3. 5 신돈의 호색 ················128
3. 6 미친 척하고 난세를 피한 조운흘 ········129
3. 7 한종유의 방탕불기 ·············130
3. 8 최영의 홍분 ················132
3. 9 정몽주의 죽음 ···············134
3. 10 길재의 은둔과 교육 ·············135
3. 11 서견의 강개 ················138
3. 12 조반의 슬픈 사랑 ·············138
3. 13 이제현의 변언 ···············141
3. 14 조반의 외교 응대 ··············142
3. 15 김약항과 정총의 표문 사건 ·········143
3. 16 이숙번의 거만함 ··············145
3. 17 변계량과 김구경의 논시 ···········146
3. 18 변계량의 인색함 ··············148
3. 19 황희의 도량 ················149
3. 20 이맹균의 시 ················150
3. 21 정초의 총명 ················152
3. 22 이색이 자식을 잃음 ············153
3. 23 박석명이 사람을 잘 알아봄 ·········153
3. 24 박안신의 기개 ···············154
3. 25 맹사성과 성석린의 기연 ···········155
3. 26 순흥 안씨의 가계 ·············156
3. 27 안목이 파주 땅을 개간함 ··········157
3. 28 안원이 매와 개를 좋아함 ··········157
3. 29 음악에 조예가 깊은 정구와 정부 ·······159
3. 30 이옥이 왜구를 격퇴함 ············159
3. 31 하경복의 용기와 담력 ···········160
3. 32 성석린이 집터를 정함 ···········161
3. 33 성석연과 이행의 교유 ············162
3. 34 안종약이 귀신을 봄 ·············163
3. 35 안구와 귀신불 ···············166
3. 36 정씨의 귀신 이야기 ·············167
3. 37 태자가 안효례를 속임 ···········169
3. 38 성석연의 상주(上奏) ············170
3. 39 안숭선과 김종서의 반목 ··········171
3. 40 김처의 미친병 ···············172
3. 41 김허의 효성 ················172
3. 42 노중례의 치료담 ··············173
3. 43 글씨를 잘 쓴 축구 스님 ···········174
3. 44 이 모의 급하고 편협함 ···········174
3. 45 남간의 교주고집 ··············175

용재총화 권4
4. 1 유관의 청렴 ················179
4. 2 고득종 노비의 충직한 죽음 ··········179
4. 3 정갑손의 청빈과 너그러움 ··········180
4. 4 양녕대군이 두려워한 계성군 ·········181
4. 5 양녕대군의 활 솜씨 ·············182
4. 6 김호생의 호(號) ···············182
4. 7 박이창의 해학 ···············184
4. 8 버림받은 비구니의 복수 ···········186
4. 9 윤자당 어머니의 문복 ············187
4. 10 배후문과 이석정의 활 솜씨 ·········188
4. 11 이예의 희작시 ···············189
4. 12 홍일동의 호방한 성격 ···········190
4. 13 의원 백귀린의 청렴 ············192
4. 14 정자영의 어리석음 ·············192
4. 15 집현전 학사의 연구(聯句) ·········193
4. 16 성간과 이개의 시 ·············224
4. 17 최수와 김자려의 시 ············227
4. 18 성세순의 시재 ···············229
4. 19 안연의 시재 ················231
4. 20 성간의 세 아들의 재주와 불행 ········231
4. 21 김수온의 재주와 기행 ············234
4. 22 영천군의 풍류 ···············238
4. 23 비문의 글씨 ················240
4. 24 보현원의 변천 ···············241
4. 25 삼관의 신래 풍속 ·············241
4. 26 성현의 영험한 꿈 ·············242
4. 27 화생의 이치 ················244
4. 28 이학에 밝은 최지 ··············245
4. 29 이양생의 장자다운 풍모 ··········246
4. 30 기유 집안의 귀변 ··············248
4. 31 이두 집안의 귀변 ··············249

용재총화 권5
5. 1 세 사람의 지혜 겨루기 ············253
5. 2 맹인들의 비둘기 소동 ············253
5. 3 어리석은 형과 영리한 동생 ··········255
5. 4 상좌가 사승(師僧)을 속임 ··········257
5. 5 호색적인 사승(師僧)의 봉변 ·········258
5. 6 도수승 ···················259
5. 7 바보 사위 ·················262
5. 8 이 장군의 호색담 ··············263
5. 9 민 공의 소탕함 ···············266
5. 10 뱀이 되어 아내와 동침하던 스님 ·······267
5. 11 정절의 어려움 ···············268
5. 12 안생의 사랑 ················270
5. 13 명통사 맹인의 어리석음 ···········273
5. 14 개성 맹인의 어리석음 ···········275
5. 15 호색 맹인의 어리석음 ···········276
5. 16 서울 맹인의 어리석음 ···········277
5. 17 양녕대군의 해학 ··············278
5. 18 풍산수의 어리석음 ·············279
5. 19 맹인 김복산의 실수 ············280
5. 20 최호원과 안효례의 논쟁 ··········281
5. 21 흉내를 잘 내는 사람들 ···········282
5. 22 사냥꾼 김속시 ···············283
5. 23 봉석주의 탐욕 ···············285
5. 24 어우동 ··················287
5. 25 김 사문과 기녀의 사랑 ···········289
5. 26 윤통의 속임수 ···············295
5. 27 목 서방 거안 ················299

용재총화 권6
6. 1 지불배의 인색함 ··············303
6. 2 한봉련의 궁술 ···············304
6. 3 성균관 유생들이 선생을 기롱한 사건 ·····305
6. 4 두 사문과 기녀의 사랑 ············307
6. 5 성삼문이 강희안을 조롱한 시 ·········309
6. 6 홍경손의 발원시 ··············310
6. 7 김복창이 김윤량을 조롱한 시 ·········311
6. 8 처녀의 음란한 시 ··············312
6. 9 전목과 기녀의 희작시 ············313
6. 10 호색 맹인 처의 속임수 ···········314
6. 11 해초와 성세원의 쟁변 ···········315
6. 12 안초와 청귤 ················315
6. 13 수원 기생의 항변 ··············316
6. 14 김복창과 송여성의 쟁변 ···········316
6. 15 성임과 기녀의 사랑 ············317
6. 16 세 유생의 꿈과 해몽 ············327
6. 17 나옹 스님의 위엄 ·············328
6. 18 혼수 스님의 출가와 깨우침 ·········328
6. 19 만우 스님의 학문 ·············332
6. 20 키다리 스님 원심 ··············334
6. 21 계승 ···················336
6. 22 신수 스님의 기행 ··············337
6. 23 박거경의 시참 ···············340
6. 24 순평군과 종학 ···············341
6. 25 박생의 호색과 낭패 ············342
6. 26 두 정생의 호색과 낭패 ···········343
6. 27 최세원 형제의 해학 ············345
6. 28 내경청에서 지은 성임의 시 ·········346
6. 29 홍녀에 반한 서거정 ·············346
6. 30 손영숙의 진솔함 ··············347
6. 31 이차공의 재담 ···············348
6. 32 최탁과 이시번의 성품 ············350
6. 33 손영숙의 어리석은 행동 ··········351
6. 34 어세겸의 횡포 ···············355
6. 35 변구상과 조백규의 재간 ··········357
6. 36 신 모의 비루함 ···············358
6. 37 신 재추의 편급함 ·············359
6. 38 성간의 선견지명 ··············360

용재총화 권7
7. 1 은문과 문생 ················363
7. 2 태종이 동년 장원을 우대함 ··········364
7. 3 태종의 시재 ················365
7. 4 안렴사의 이별시 ··············365
7. 5 양녕대군의 해학 ··············366
7. 6 현맹인의 실수 ···············367
7. 7 임숙과 이유한의 실수 ············368
7. 8 손순효의 처세 ···············368
7. 9 이순몽과 민발의 발언 ············371
7. 10 이자야의 시와 죽음 ············372
7. 11 두 현감의 손님 접대 ············373
7. 12 자비승의 진솔함과 기행 ··········375
7. 13 유정손과 최팔준의 어리석고 망령됨 ·····376
7. 14 성현의 풍자시 ···············377
7. 15 성현의 어렸을 때 회상 ···········379
7. 16 조수 ···················381
7. 17 꿩의 맛 ··················382
7. 18 유사한 사물들 ···············382
7. 19 기우제 ··················384
7. 20 원각사 ··················385
7. 21 언문 창제 ·················387
7. 22 유구 사신이 본 세 가지 장관 ·········388
7. 23 활자의 종류와 주자법 ············389
7. 24 조선 초기의 두시 학습 ···········391
7. 25 윤자영의 옹졸하고 곧음 ···········392
7. 26 김종련의 우직함 ··············395
7. 27 박지번의 충직함 ··············397
7. 28 기순과 숭어 ················397
7. 29 여러 사람들의 풍자시 ············398
7. 30 토산물 ··················400
7. 31 일암의 사람됨과 교유 ············401
7. 32 사람의 기호 ················403
7. 33 정수곤과 기찬의 해학 ···········404
7. 34 파리 목사 ·················405
7. 35 박생의 지나친 호색 행각 ··········406

용재총화 권8
8. 1 불교의 성쇠 ················417
8. 2 여승들의 추문 ···············419
8. 3 승문원 ···················420
8. 4 다섯 아들이 급제한 가문 ···········422
8. 5 한집안에서 재상이 되거나 과거에 장원한 사람들·423
8. 6 역대 문장가와 저술 ·············425
8. 7 담화랑 성간의 대구 ·············429
8. 8 정창손 형제의 상이한 기상 ··········430
8. 9 함동원의 진솔함 ··············431
8. 10 전시에서 장원한 성임의 전문 ········432
8. 11 윤자운의 대구 ···············434
8. 12 향도의 미풍 ················435
8. 13 성현의 귀신 체험 ·············435
8. 14 김성동과 윤수언의 죽음 ··········436
8. 15 빙고 ···················437
8. 16 이름난 점쟁이들의 예언 ··········439
8. 17 사대부들의 사리 추구 ············442
8. 18 철원의 사냥감 감소 ············444
8. 19 정흠지 부자의 풍채 ············445
8. 20 주자가례 준행의 유래 ···········445
8. 21 성현의 골계 ················446
8. 22 성석린과 성간 후손의 불운 ·········448
8. 23 속담 중의 격언 ··············448
8. 24 김을부의 엉터리 예언 ···········449
8. 25 사람들의 억측 ···············449
8. 26 교주고집 ·················450
8. 27 박연의 재능과 불운 ·············451
8. 28 조모의 묘소를 찾은 성현의 기연 ·······453
8. 29 개구리의 울음소리 ·············455
8. 30 죽은 사람의 복수 ·············456
8. 31 성현과 채수의 관동 유람 ··········457

용재총화 권9
9. 1 조선인과 중국인의 비교 ···········465
9. 2 온천 ····················468
9. 3 이씨 네 사람의 풍류 ·············472
9. 4 훈장 ····················474
9. 5 성균관 유생의 놀이 ·············478
9. 6 승과 ····················482
9. 7 독서당 ···················484
9. 8 도성 밖의 원교 ···············485
9. 9 예조의 어려운 일 ··············487
9. 10 일곱 노인의 기상 ··············488
9. 11 성석린의 시 ················489
9. 12 김수온의 시 ················491
9. 13 사문 송씨의 자조시 ·············493
9. 14 기로연과 기영회 ··············494
9. 15 문무관의 대우 ···············494
9. 16 꼴찌로 급제한 박충지 ············496
9. 17 사량유생 최항의 장원 급제 ·········497
9. 18 부정으로 장원한 김자 ············498
9. 19 부정으로 장원한 윤사균 ···········498
9. 20 이칙의 골계 ················499
9. 21 성사형의 진솔함 ··············500
9. 22 제액 ···················501
9. 23 허조의 원만한 일면 ············502
9. 24 이집과 최원도의 신의 ···········503
9. 25 역대의 명장 ················505
9. 26 이숙감의 골계 ···············506
9. 27 안처관의 풍정 ···············506
9. 28 이극감과 성임의 교분 ···········508
9. 29 노사신의 골계 ···············509
9. 30 어효첨의 세밀함 ··············510
9. 31 어세공이 김승경을 놀리다 ··········511
9. 32 술 때문에 죽은 축산군과 민보익 ·······513

용재총화 권10
10. 1 하윤의 호협한 기상 ············517
10. 2 하윤과 정사의 난 ·············518
10. 3 임오년 사은일의 소동 ············519
10. 4 김순강의 어리석음 ·············521
10. 5 김세적의 활 솜씨 ··············521
10. 6 세조 만년의 파적 ··············523
10. 7 도자기 ··················525
10. 8 예조 청사 ·················526
10. 9 궁궐 안팎의 샘과 못 ············527
10. 10 종이 ···················529
10. 11 임흥의 즐거움 ··············530
10. 12 양잠 ···················531
10. 13 제단 ···················532
10. 14 세조 때 문신들이 각자 즐기는 취향 ·····534
10. 15 파산군의 서재명 ·············540
10. 16 기건과 김승경의 고지식함 ·········541
10. 17 시문 선집 ················541
10. 18 최세원의 골계 ··············542
10. 19 우계지의 송별시 ·············543
10. 20 삼포 왜인 ················544
10. 21 채수의 골계 ···············546
10. 22 의녀의 비술 ···············547
10. 23 권 모가 음악을 배운 이유 ·········547
10. 24 성임의 저술 ···············548
10. 25 세 번이나 공신이 되지 못한 성임 ······549
10. 26 신린과 박거경의 겁먹음 ··········551
10. 27 일본의 풍속 ···············552
10. 28 야인의 풍속 ···············555
10. 29 성불도·종정도·작성도의 놀이 ······558
10. 30 남계영의 편벽한 학문 태도 ········559
10. 31 이함녕의 불운 ··············560
10. 32 이정보의 졸필 ··············560
10. 33 최흥효의 서체와 불운 ···········561
10. 34 안지의 인품 ···············563
10. 35 귀화인 설장수의 가문 ···········563
10. 36 귀화인 명승과 진리 ············564
10. 37 향시 관리의 허술함 ············566
10. 38 정묘년 중시의 급제자 ···········567
10. 39 우리나라의 거족 ·············568

용재총화 발문(跋文) ···············571
용재총화 원문 ··················573

해설 ······················745
지은이에 대해 ··················755
옮긴이에 대해 ··················757

2013년 10월 21일 월요일

관물편(觀物篇)


도서명 : 관물편(觀物篇)
지은이 : 이익(李瀷)
옮긴이 : 천광윤
분야 : 한국 / 수필비평
출간일 : 2013년 10월 29일
ISBN : 979-11-304-1163-7 03810
가격 : 14500원
사륙판 / 무선제본 / 232쪽





☑ 책 소개

천재는 어떤 식으로 사고할까? ‘관물(觀物’은 말 그대로 사물을 바라보고 느낀 점을 메모한 글이다. 사물을 관찰해 본질을 파악하고 우주의 이치를 깨닫는다. 간명한 글 너머로 방대한 실학 명저 ≪성호사설≫이 보인다. 


☑ 출판사 책 소개

사람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대표적인 성호 이익의 저서는 ≪성호사설(星湖僿說)≫이다. 
성호는 자서(自序)에서, 경학(經學)을 깊이 연구한 궁경(窮經) 20년의 세월을 보내면서 여가가 있을 때마다 보존할 만한 것을 붓 가는 대로 기록하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글이 많아졌다고 했다. 
≪성호사설(星湖僿說)≫처럼 붓 가는 대로 기록한 ≪관물편(觀物篇)≫은 77조의 단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상생활 중 채소나 꽃을 키우고, 벌을 기르거나 동물의 행동을 보면서 느낀 것을 틈틈이 기록한 메모를 모은 책이다. 비록 사소한 생활 환경을 소재로 한 글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세상을 바라보는 올바른 안목을 갖추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관물(觀物)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한 사람은 송나라의 철학자 소옹(邵雍, 1011~1077)이다. 그의 저서 ≪황극경세서≫에서 관물에 대한 정의를, “관물이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는 것이다. 마음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이치로 보는 것이다. 천하의 사물은 이치를 갖지 않는 것이 없으며, 성(性)이 없는 것이 없으며, 명(命)이 없는 것이 없다. 이치란 궁구한 뒤에 알 수 있으며 성이란 극진히 한 뒤에 알 수 있다. 이 세 가지의 앎인 삼지(三知)는 천하의 참다운 앎인 진지(眞知)다”라고 했다. 
소옹은 사물을 바라보는 방법으로, 눈으로 보는 이목관물(以目觀物), 마음으로 보는 이심관물(以心觀物), 이치로 보는 이리관물(以理觀物)을 제시했다. 핵심은 자아로써 사물을 바라보지 말고 이치로써 사물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이리관물(以理觀物)이다. 결론적으로 사물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유용한 정보를 도출할 것인가 하는 관점(觀點)의 문제를 설정하는 것이 관물(觀物)이라 할 수 있겠다.
성호의 ≪관물편≫은 ≪성호사설(星湖僿說)≫의 거대한 그늘에 가리고, 일상생활에서 느낀 바에 관한 기록이라서 그런지 학술적으로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책을 보면서 깨달음이 있을 때마다 기록해 두는 성호의 학문적 양상과 지극히 평범한 사물을 남과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고 삶의 이치를 도출했다는 점에서는 ‘작은 성호사설’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 책 속으로

·외톨이가 되는 것을 경계하라

성호 옹이 모란꽃 한 포기를 심었는데, 줄기를 크게 키우려고 잔가지는 다 제거하고 곧은 줄기만 길렀다. 수십 년이 지나자 우뚝하게 높이 자랐다. 그러나 줄기는 늙어서 병들고, 위는 무거운데 아래는 빈약하고 떠받쳐 줄 가지가 없어서 바람에 꺾여 버렸다. 군자는 외톨이가 되는 것을 반드시 경계해야 한다.

·기질을 변화시키는 것은 쉽지 않다

성호 옹이 우물 치는 것을 보았다. 이미 우물을 쳤지만 물은 여전히 흐렸다. 비록 벌레와 오물을 제거했지만 흙탕물이 넘쳐흘렀다. 천맥(泉脈)이 아래에서 솟아올라 잠깐 사이에 물이 불어났다. 불어난 물이 가득 차서 넘친 지 오래되었지만 흐린 기운은 가라앉지 않았다. 성호 옹이 말했다. “이것은 차츰 맑아지기를 기다려야지 단번에 흐린 것을 바꿀 수는 없다. 아래에서 어느 정도 맑은 물이 불어나면 위로 흐린 물이 어느 정도 넘치고, 다 넘치고 나면 아마도 완전히 맑아질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새 물과 묵은 물이 섞여서 흐린 것과 맑은 것이 잘 나뉘지 않기 때문이다. 군자는 이것을 통해 기질을 변화시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은 기회를 만나느냐 못 만나느냐에 달려 있다

성호 옹이 산행을 하다가 숲 속에서 가시나무를 보았다. 집 뜰 계단 옆에 심으라고 했다. 넝쿨이 잘 자라서 키가 우뚝해졌다. 나무의 모습이 탐스러워서 보는 사람들이 기이하게 여겼다. 
성호 옹이 말했다. “사람은 기회를 만나느냐 못 만나느냐에 달려 있는데, 사물도 이와 같구나! 가시나무도 처음에는 거친 산에 있었다. 제멋대로 무성하게 자라서 본래는 사람들이 쳐다보지 않았다. 내 정원에 옮겨 심은 다음에 이와 같이 아름다운 것을 알았다. 풀은 무심한 것인데 어찌 꾸민다고 해서 산에 있을 때와 집에 있을 때의 차이가 있겠는가? 사람들이 다른 시선으로 보았을 뿐이다. 어떤 사람이 공허한 골짜기 속에서 생을 보내고 있으니 어찌 가시나무와 다를 바가 있겠는가? 아! 원망스럽다.”

·닭은 싸움이 끝나면 아무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한다

닭이 벌레를 잡자 다른 닭이 빼앗았다. 미처 삼키기 전까지는 서로 쫓아다니며 뺏으려 들었지만 다 삼키고 나면 곧 그만두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한다. 
성호 옹이 말했다. “사람이 세상에서 명예와 이익을 다툴 때는 일이 이미 끝났는데도 화를 더욱 심하게 내고 혹은 서로 살상하는 지경까지 이르니, 닭을 보고 마땅히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 지은이 소개

이익(李瀷, 1681~1763)
이익(李瀷, 1681~1763)의 본관은 여주(驪州), 자는 자신(子新), 호는 성호(星湖)다. 경기도 광주군 첨성리(瞻星里)에서 평생 동안 초야의 학자로 지냈으며, 주변에 있던 성호라는 호수의 이름을 따서 스스로 호를 지었다. 성호는 대사헌(大司憲)을 지낸 이하진(李夏眞)의 5남 3녀 중 막내아들이다. 이하진은 청나라 남쪽에서 오삼계(吳三桂)의 난이 일어나자 장차 서북 지방의 변란을 방지하기 위한 군비를 갖추어야 한다는 윤휴(尹鑴, 1617~1680)의 주장에 동조하다가 윤휴가 제거되면서 진주 목사로 좌천되었다. 1680년(숙종 6)에 경신환국(庚申換局)으로 남인이 쫓겨나고 서인 정권이 들어서면서 평안도 운산군(雲山郡)으로 유배 가서 1682년(숙종 8)에 죽었다. 성호는 부친의 유배지인 운산에서 1681년에 태어났다. 어릴 때는 병치레가 잦아서 모친인 권(權) 부인이 항상 약주머니를 차고 다니면서 약을 먹였다. 병약 체질로 10세가 지나서 학문을 시작했지만 같은 또래 중에서 총명함을 따를 자가 없었다. 둘째 형인 이잠(李潛)에게 학문을 배웠는데 다른 학생들과는 달리 하루 종일 묵묵히 공부하는 것을 보고 그의 모친은 “이 아이는 공부를 독촉하지 않아도 이처럼 학문을 좋아하니, 내가 걱정이 없다(是兒不待課督而嗜學如此 吾無憂矣)”고 했다.
성호는 천성적으로 학문에 재능을 타고났지만, 학문을 깊이 할 수 있는 환경도 좋았다. 증조할아버지인 이상의(李尙毅, 1560∼1624) 때부터 현손까지만도 과거 급제자를 50명 이상 배출한 명문가이고, 부친이 1678년 진위겸진향사(陳慰兼進香使)로 중국 연경에 갔다가 돌아올 때 청나라 황제가 하사한 돈으로 수천 권의 책을 사 왔다. 이 책들은 성호가 마음껏 학문을 탐구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어 주었다. 
성호가 26세 때인 1705년에 과거에 응시해서 증광초시(增廣初試)에 합격했지만, 녹명(錄名)이 양식에 맞지 않아 회시(會試)에 응시하지 못하면서 과거를 포기하게 되었다.
1706년에 둘째형 이잠(李潛)이 갑술환국(甲戌換局)으로 세자 이윤(李昀)을 지지했던 남인과 희빈(禧嬪) 장씨(張氏)가 몰락해 세자의 지위가 불안해지자 조정을 장악하고 있던 노론을 공격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국문 끝에 목숨을 잃었다. 이 사건으로 성호는 충격을 받아서 과거를 포기하고 재야에서 평생 동안 학문에만 전념하게 되었다.
선배 학자로는 율곡(栗谷) 이이(李珥)와 반계(磻溪) 유형원(柳馨遠)을 본받으려고 노력했다. 성호의 지도 아래 학문을 한 순암(順菴) 안정복(安鼎福), 소남(邵南) 윤동규(尹東奎), 하빈(河濱) 신후담(愼後聃), 정산(貞山) 이병휴(李秉休) 등의 문인들을 거느리고 성호학파(星湖學派)를 형성했다.
성호의 저서는 ≪성호사설(星湖僿說)≫ 외에도 ≪역경(易經)≫·≪시경≫·≪서경≫·≪논어≫·≪맹자≫·≪중용≫·≪대학≫·≪소학≫·≪근사록≫·≪심경≫·≪가례≫ 등 여러 경서의 ≪질서(疾書)≫가 있다. ‘질서’란 책을 보다가 의문점이나 깨달은 점이 있으면 바로 기록해 둔다는 의미다. 또 다른 저술로는 ≪사칠신편(四七新編)≫·≪상위일록(喪威日錄)≫·≪상위속록(喪威續錄)≫·≪곽우록(藿憂錄)≫·≪자복편(自卜篇)≫·≪관물편(觀物篇)≫·≪백언해(百諺解)≫ 등이 있다. 


☑ 옮긴이 소개

천광윤
천광윤(千光胤)은 경남대학교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성남시청, 해군 본부, 한국통신기술 등에서 근무했고, 원광대학교 동양학대학원에서 <왕부지의 주역대상해 연구>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대학 졸업 후 직장 생활을 하면서 틈틈이 ≪논어≫를 읽었고, 이를 계기로 동양학에 심취해 사서삼경(四書三經)을 접한 후로 지금까지 인연을 맺고 있다. 대학원 수학 중 일제 강점기말 주역 대가였던 야산(也山) 이달(李達, 1889~1958) 선사의 손자인 이전(利田) 이응국(李應國) 선생에게 ≪주역≫을 배웠다.
현재는 일반인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주역≫ 관련 저술에 몰두하고 있으며, 고전 문집 중에서 번역이나 학자들의 조명을 비교적 덜 받은 문장을 발굴해 일반인이 읽기 쉬운 현대문으로 재탄생시키는 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 목차

1. 처음에는 유실수를 좋아했다가 나중에는 꽃나무를 더 좋아하다 ··················3
2. 외톨이가 되는 것을 경계하라 ··········6
3. 어찌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가? ··········8
4. 기질을 변화시키는 것은 쉽지 않다 ········11
5. 채소만으로 밥을 먹어도 맛이 있었다 ·······14
6. 천하에 버려야 할 물건이다 ···········16
7. 벌레도 지혜롭구나 ···············19
8. 은혜를 베풀었다고 모두가 인자한 것은 아니다 ··23
9. 사람은 여기서 죽어 가고 약은 저기서 썩어 간다 ··25
10. 만물은 인간의 소유물이 아니다 ········28
11. 저 꽃들이 좋고 나쁜 것이 있겠는가? ·······31
12. 그대로 두는 것만 못하다 ···········33
13. 짐승도 사람의 마음을 안다 ··········35
14. 참새 싸움 ··················37
15. 천하에 재능은 버릴 것이 없다 ·········39
16. 이는 사람을 물지 않으면 굶어 죽고 물면 불에 타 죽는다 ····················42
17. 원거(鶢鶋) ··················45
18. 사람은 기회를 만나느냐 못 만나느냐에 달려 있다. 47
19. 꽃향기가 공중으로 흩어져도 꽃의 성품은 변하지 않는다 ····················52
20. 맛있는 음식도 목구멍을 내려가면 똥이 된다 ···55
21. 쥐는 이렇게 뛰어논다 ·············57
22. 나를 닮으라 ·················60
23. 아! 너무 늦었구나 ··············63
24. 세습 전통 ··················66
25. 참새와 뱀 ··················69
26. 인순지해(因循之害) ··············71
27. 어찌 보호받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73
28. 은혜를 모르는 닭 ···············77
29. 안항(雁行) ··················79
30. 벌은 한 번 침을 쏘면 죽는다 ··········82
31. 파리 ·····················85
32. 지렁이도 해로운 것과 이로운 것을 안다 ·····87
33. 개미 ·····················90
34. 닭은 싸움이 끝나면 아무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한다 ······················92
35. 일이 옮겨 가면 사물이 변하고 사물이 변하면 마음도 바뀐다 ···················95
36. 식음을 전폐한 거위 ··············97
37. 사소한 일로 원수가 된다 ···········100
38. 권세가 있으면 눈빛으로 지시해도 따른다 ····103
39. 식물은 밑둥치가 잘리면 가지는 저절로 마른다 ·106
40. 사물은 본래 쓸모없는 것을 가지고 쓰임으로 하는 것이다 ····················108
41. 재앙과 근심은 이쯤하면 되겠지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112
42. 만물은 이름을 받들고 세상에 나온다 ······115
43. 작고 큰 것에는 분수가 있고 득실에는 운수가 있다 117
44. 사단칠정 ··················119
45. 미친개 ···················121
46. 대야의 작은 물도 다행인데 어찌 강과 바다를 바라는가? ····················125
47. 탐욕은 지혜를 흐리게 한다 ··········127
48. 서로 해를 끼치지 않는 명석함 ·········129
49. 짐승은 어미는 알지만 아비는 모른다 ······131
50. 뱀 ·····················134
51. 둘 다 그대로 두어라 ·············137
52. 만남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 ·········139
53. 위험을 경계하지 않으면 죽음에 이른다 ·····141
54. 나무를 심는 법 ················144
55. 이로움이 있으면 해로움이 뒤따른다 ······146
56. 솔개와 같은 사람 ···············148
57. 어떤 땅이든지 그렇지 않겠는가? ········151
58. 좋고 싫은 마음이 금방 바뀌니 어찌 꽃의 잘못이겠는가! ····················154
59. 큰 나무도 썩으면 잡초의 거름일 뿐이다 ····156
60. 천지간의 생물은 각각 살아가는 이치가 다르다 ·158
61. 같은 환경에서 자란 풀도 성질이 다르다 ····162
62. 사람은 혹 기미에 어두워 실패에 빠지니 슬프도다 166
63. 습관은 교육으로 만들어진다 ·········168
64. 소인은 은밀히 기회를 엿보다가 자기의 뜻을 이룬다 ······················170
65. 어머니는 자식을 기르고 아버지는 자식을 교육한다 ······················173
66. 금수가 교접하는 것은 새끼를 낳기 위해서다 ··175
67. 어떤 사물이건 완벽한 것은 없다 ········178
68. 잡초의 뿌리를 완전히 뽑지 않은 것을 후회하다 ·180
69. 귀중한 것은 질이다 ·············182
70. 잡초는 뿌리를 남기지 말고 제거해야 한다 ···184
71. 사람이 여색에 빠지면 나라까지 망친다 ·····189
72. 초목이 자라는 것을 보고 자연의 이치를 알다 ··191
73. 진심으로 구하면 비록 맞지 않더라도 멀지는 않게 된다 ·····················197
74. 만물은 타고난 품성을 거역하지 못한다 ·····199
75. 기대 밖의 소득이 넘쳐도 그칠 줄을 모른다 ···202
76. 소나무 ···················205
77. 천직 ····················207

해설 ······················209
지은이에 대해 ··················217
옮긴이에 대해 ··················221




2013년 6월 18일 화요일

부휴자 담론(浮休子談論)



도서명 : 부휴자 담론(浮休子談論)
지은이 : 성현(成俔)
옮긴이 : 홍순석
분야 : 한국 / 수필비평
출간일 : 2013년 6월 19일
ISBN : 978-89-6680-997-4 03810
25,000원 / 사륙판 _ 무선제본 / 354쪽



☑ 책 소개

부휴자가 말한다. 작게는 이웃과 친구, 부모와 자식부터 임금과 신하, 하늘과 인간에 이르기까지, 만물의 질서가 여기 있다. 우화와 역사를 빌려 말하니 쉽고 재미있다. 그러나 그 본질은 성리학이다. 깊고 넓다. 조선 시대 우언(寓言) 문학의 전통을 제시한다.


☑ 출판사 책 소개

≪부휴자 담론(浮休子談論)≫은 조선 초기 대표적인 문인 성현(成俔, 1439∼1504)의 저술이다. 현전하는 목판본과 필사본은 모두 6권 1책으로 각각 두 권씩 <아언(雅言)>, <우언(寓言)>, <보언(補言)>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세 유형의 담론은 각각 다른 이야기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담론의 주체도 <아언>은 부휴자이고, <우언>은 허구적인 인물이며, <보언>은 역사 인물이다.
<아언>은 권1(18항목), 권2(22항목)에 40개 항목의 담론으로 구성되었다. ‘아언(雅言)’은 본래 ‘바른말’ 또는 ‘평소에 하는 말’이란 뜻이다. ≪논어≫에서 공자가 평소에 하던 말을 기록할 때 ‘자왈(子曰)’이라는 어구를 서두에 사용한 것같이 대부분의 이야기가 ‘부휴자왈(浮休子曰)’로 시작한다. 간혹 ‘유생문왈(柳生問曰)’, ‘동리선생문왈(東里先生問曰)’이라 해 문답식으로 전개된 담론도 눈에 띈다. 담론의 주체는 성현의 분신이라 할 수 있는 ‘부휴자(浮休子)’다.
여기에 실린 담론은 정치 사회 전반에 대한 성현의 인식이 주류를 이룬다. 특히 성현의 정치관이 논리적으로 피력되어 있는데‚ ‘하늘[天]−임금[君]−신하[臣]-백성[民]’의 관계를 일관된 시각에서 기술하고 있다.
성현 자신의 정치관을 성리학의 논리를 펴면서 직설적으로 피력한 글인데도 심각하거나 지루하지 않다. ≪좌전(左傳)≫이나 ≪장자(莊子)≫ 등 중국 고전에 나오는 옛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적절히 활용하고 있으며, 경구나 속담 등을 삽입해 구어(口語)에 가깝게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언>은 권3(17항목), 권4(20항목)에 37개 항목의 담론으로 구성되었다. 일반적으로 ‘우언(寓言)’은 ‘우의(寓意)를 지닌 말’이란 뜻이다. ≪장자≫ <우언>편에서 그 전례를 살필 수 있다. 장자는 자신의 견해를 설득력 있게 전달하기 위해 직설적인 담론이 아니라, 하나의 서사적인 이야기를 꾸미고 이를 통해 주제를 드러낸다. 여기서의 <우언>에도 ‘부휴자’가 등장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허구로 설정된 다른 인물들의 상호 대화로 구성되어 있다. 예를 들면 ‘저산생(樗散生)’, ‘공동자(空同子)’, ‘동고자(東皐子)’, ‘녹비옹[鹿皮翁]’, ‘동구선생(東丘先生)’, ‘강상노인(江上老人)’ 등이 실제 인물처럼 등장한다. 배경이 중국 전국 시대로 설정되어 있지만, 등장인물이 그 시대의 역사적 인물은 아니다. 이처럼 등장인물이 허구임을 나타내어, ‘우언’의 성격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성현의 <우언>에서는 어리석은 자와 현명한 자가 함께 등장해 어리석은 자의 행동을 풍자하거나 비판하는 내용이 주류를 이룬다. 구체적인 사례로 군왕의 실정, 가렴주구를 일삼는 권신을 우회적으로 풍자한다. 공훈이나 능력이 없으면서 높은 자리를 탐내는 자들을 공박하며, 권귀한 자들의 비윤리적인 삶을 질타하고 있다.
<보언>은 권5(16항목), 권6(16항목)에 32개 항목의 담론으로 구성되었다. ‘보언(補言)’은 ‘보충한 말’이라는 뜻이다. 성현은 이 글에서 중국의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에 가필(加筆)해 당시의 정치적 사회적 문제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폈다. 구체적으로, ≪좌전(左傳)≫, ≪사기(史記)≫, ≪열녀전(烈女傳)≫ 등에서 역사적 사건을 사례로 취하고, 역사적 인물의 입을 통해 어떤 문제에 대한 담론을 펼치는 방식을 택했다. 그러나 여기에서 담론을 개진하는 특정 인물이나 담론 자체는 실제 역사서에서 살필 수 없는 가공의 사실이다.
<보언>은 주로 역사 인물의 입을 통해 군왕에게 간언을 올리는 내용의 담론이다. 사냥을 자주 나가는 초나라 장왕(莊王)에게는 번희(樊姬)가 그 병폐를 간언하고, 도성 밖에서 놀기를 좋아하는 조나라의 숙후(肅侯)에게 대무오(大戊午)가 그 병폐를 간언한다. 또 잘못된 인사를 한 군왕에게도 간쟁하는 신하를 등장시킨다. 성현은 이 글을 통해 여러 가지 잘못된 정치적 상황에서 아랫사람들이 임금에게 어떻게 간언해야 하는가를 제시하고 있다.


☑ 책 속으로

·부휴자가 말했다.
“임금은 사람을 갑자기 교만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사람을 교만하게 하는 것은 높은 관직이다. 어진 이가 아닌데 벼슬에 나아가게 되면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 재주 있는 자가 아닌데 등용하면 직분을 감당하지 못한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직분을 감당하지 못하는 자가 어찌 오래갈 수 있겠는가? 비록 친하다 하더라도 멀리 대하고, 총애하더라도 벼슬은 낮추어야 한다. 임금이 그 병통을 적절히 처방하지 못한다면 그 사람도 또한 제 몸에 병통이 있는 것을 알지 못하고 반드시 원망하게 될 것이다. 원망하게 되면 반드시 어지러워지고, 어지러워지면 반드시 망하게 된다.
석작(石斫)이 이르길, ‘벼슬을 낮추어도 서운해하지 않고 서운해하면서도 참고 있는 자는 드물다(降而不憾 憾而能眕者 鮮矣)’고 했다. 이 때문에 임금은 점차로 관직을 올려야지 교만하게 해서는 안 되며, 조금씩 은혜를 베풀어야지 갑자기 귀하게 해서는 안 된다.”

·어떤 사람이 부휴자에게 물었다.
“숙부와 형 중에서 누가 더 소중합니까?”
부휴자가 대답했다.
“숙부가 소중하다.”
“숙부와 형 중에서 누가 더 친합니까?”
부휴자가 대답했다.
“형과 친하다.”
“소중한 것과 친한 것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앞선 것입니까?”
부휴자가 대답했다.
“소중하다는 것은 의(義)요, 친하다는 것은 정(情)이다. 의는 범범(泛泛)하고 정은 절절(切切)하니, 범범한 것을 절절한 것에 견줄 수 있겠는가? 숙부와 조카는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없다. 어깨를 나란히 하지 않는 것은 공경하기 때문이다. 공경하는 사이는 친하더라도 지극한 관계라 할 수 없다. 형제는 기러기가 나란히 날아가는 것에 비유해 ‘안항(雁行)’이라 한다. ‘안항’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사이를 뜻한다.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는 것은 친하기 때문이다. 친하다면 마음이 지극한 것이다. 그러므로 형제간에는 서로의 집에 미리 알리지 않고 들어가지만, 숙부와 조카는 미리 알린 후에 들어간다. 형제는 하루를 보지 못해도 생각이 나고, 생각이 나면 꼭 보고 싶어 한다. 숙부와 조카는 비록 며칠 동안 보지 못해도 보고 싶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숙부와 형이 같은 자리에 앉아 있을 때 술잔을 올려야 한다면 누구에게 먼저 올려야 합니까?”
부휴자가 대답했다.
“숙부에게 먼저 올려야 한다.”
“아우와 조카가 다른 집에 사는데 줄 물건이 있으면 누구에게 먼저 주어야 합니까?”
부휴자가 대답했다.
“아우에게 먼저 주어야 한다.”
“숙부와 형이 다른 사람과 싸움이 벌어졌는데, 내가 가서 구하면 살고 구하지 않으면 죽게 될 경우에는 누구를 먼저 구해야 합니까?”
부휴자가 대답했다.
“형이 당연히 급하지만 숙부 역시 늦추어서는 안 된다. 사력을 다해 양쪽에 가서 구하되, 구하지 못하는 것은 운명이므로 비록 죽더라도 유감이 없을 것이다.”
“어머니가 가지 말라고 명하시면 어떻게 합니까?”
부휴자가 대답했다.
“숙부와 형의 일이 비록 중요하더라도 어머니 명보다 중요하겠는가? 마땅히 울면서 간청해 가서 구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비록 간청했으나 허락받지 못했을 때에는 가서 살릴 수 있으면 가고, 살릴 수 없으면 가지 말아야 한다.”

·자봉(子封)이 조나라 자류(子柳)의 집을 찾아갔다. 마침 누에고치에서 누에가 나오고 있었다. 자류가 말했다.
“똑같은 고치인데 어떤 것에서는 누에가 나오고 어떤 것에서는 구더기가 나오니, 왜 그렇습니까?”
자봉이 말했다.
“사물의 변화는 무궁합니다. 사람의 품성도 또한 다릅니다. 요임금이나 순임금과 같은 아버지에게도 단주(丹朱)나 상균(商均)과 같은 용렬한 자식이 있었고, 주공(周公) 같은 아우에게도 영숙(營叔)과 같은 못난 형이 있었습니다. 유하혜(柳下惠) 같은 어진 형에게도 도척(盜跖) 같은 흉악한 아우가 있었습니다.
지금 그대의 형제는 두 명입니다. 그대의 아우는 입신양명해 궁궐에 출입합니다. 그런데도 그대는 나이 오십에 아무것도 이루어 놓은 것이 없어 개천에 처박힌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똑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났건만 똑똑하고 그렇지 못한 것이 이처럼 서로 다릅니다. 그러하니 누에와 구더기가 같지 않은 것이 어찌 이상하다 할 수 있겠습니까?”
자류가 화를 내면서 말했다.
“그대의 말이 정말 맞습니다. 또한 그대가 나를 놀리는 것이 심합니다. 그러나 의심스러운 것이 있습니다. 벼를 파종했는데 기장이 된 것을 본 적이 없으며, 복숭아를 심었는데 자두나무가 된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어찌하여 그런 것입니까?”
자봉이 대답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나무가 비록 다른 종류로 바뀌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어찌 나무의 크고 작음과 혹은 살지고 마른 차이가 없겠습니까? 거름을 주고 흙을 북돋우면 나무가 크고 살지게 되지만 버려두고 기르지 않는다면 작고 마르게 됩니다. 지금 그대가 말하고 있는 것을 보아도 사람임이 틀림없습니다. 앉았다 일어서는 것을 보아도 사람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렇지만 행실을 보니 아우와 같지 않습니다. 그대를 나무에 비유하자면 거름을 주거나 흙을 북돋아 주는 공을 들이지 않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조나라 자류는 대답할 말이 없었다.

·초나라 장왕(莊王)이 사냥 갔다가 돌아와서 큰 잔치를 벌였다. 번희(樊姬)가 짐승과 새의 고기를 먹지 않자 왕이 물었다.
“과인이 여러 신하들과 더불어 즐기려 하는데 부인이 고기를 먹지 않으니 무슨 까닭이오?”
번희가 울면서 대답했다.
“첩에게 세 가지 근심이 있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웁니다.”
왕이 물었다.
“세 가지 근심이 무엇이오?”
번희가 말했다.
“지금은 여름이라 만물이 성장하는데 잉태한 짐승의 배를 갈라 새끼를 살육하면서도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이 없으니, 이것이 첩의 첫째 근심입니다. 농사일이 바빠지는데 김매고 밭 가는 백성에게 짐승 모는 일을 시키면서도 어려운 백성을 구휼하지 않으니 이것이 첩의 둘째 근심입니다. 천금같이 귀한 임금의 몸으로 옷이 찢어지고 먼지를 뒤집어쓰시면서 옥체를 돌아보심이 없으니, 이것이 첩의 셋째 근심입니다. 이는 모두 나라를 위한 근심이지, 사사로운 근심이 아닙니다.”
왕이 말했다.
“부인의 말은 아름답다면 아름답소. 그러나 대전(大田)의 예를 제후로서 폐할 수 있겠소?”
번희가 말했다.
“옛사람들이 아무 이유 없이 그렇게 한 것은 아닙니다. 제사를 지낼 제수가 없으면 사냥을 했고, 손님들에게 이바지할 것이 없으면 사냥을 했으며, 임금의 부엌에 채울 것이 없으면 사냥을 했습니다. 이 세 가지가 아니라면 임금은 거동하지 않았습니다. 무릇 사냥을 나가 오랫동안 머물러 스스로 즐거워하는 것을 일컬어 음(淫)이라 하고, 즐거움에 빠져 싫증을 내지 않는 것을 일컬어 황(荒)이라 하며, 그칠 줄 모르고 말을 몰아 사냥해 대는 것을 일컬어 광(狂)이라 하고, 제멋대로 놀면서 궁궐로 돌아오기를 잊어버리는 것을 일컬어 방(放)이라 합니다. 이 네 가지 중에서 하나라도 있으면 나라는 반드시 망합니다. 하물며 사냥할 때도 아닌데 사냥을 한다면 더욱 백성의 원성을 살 것입니다. 지금 왕의 작은 창고와 마구간에는 소와 양이 많고 대궐의 동산에는 기러기와 오리가 넉넉하며, 연못 속에는 물고기와 자라가 모자라지 않고 제사를 지낼 때 쓰는 희생(犧牲)을 이바지하는 데에도 빠지는 것이 없습니다. 어찌 친히 위험을 무릅쓰면서도 지겨운 줄을 알지 못하십니까?”
왕이 말했다.
“그렇다면 계절마다 사냥을 통해 군사를 훈련한다는 뜻은 어찌 된 것이오?”
번희가 말했다.
“네 계절에 맞추어 사냥하는 일은 유사(有司)에게 맡겨서 필요한 것을 준비했을 뿐입니다. 병사를 뽑아 무예를 익히는 것은 모두 농한기에 해야 합니다. 지금 임금께서 급하지 않은 일을 하시어 모든 동물을 다 잡아들이는 것과는 같지 않습니다. 태강(太康)은 사냥을 나가서 백 일 동안 돌아오지 않았고, 걸(桀)도 사냥을 때를 가리지 않고 했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나라가 망했습니다. 탕(湯)은 오히려 그물을 열어 짐승들을 풀어 주었고, 문왕(文王)은 감히 사냥을 즐기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나라가 흥했습니다. 지금의 임금께서는 천하의 패자(覇者)가 되고자 하면서 탕과 문왕을 본받지 아니하고 태강과 걸이 한 짓을 따르려 합니다. 이런 까닭으로 첩이 슬퍼하는 것입니다.”
장왕은 이에 스스로 반성해 잘못을 책망하고 기강을 바로잡으니, 그 다스림이 중원(中原)과 나란했다. 이 모두가 부인의 힘이었다.


☑ 지은이 소개

성현(成俔, 1439∼1504)
성현(成俔, 1439∼1504)은 조선 초기의 문인으로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경숙(磬叔), 호는 허백당(虛白堂)이다. 용재(慵齋)·부휴자(浮休子)·국오(菊塢)라는 호도 사용했다. 시호는 문대(文戴)다. 아버지는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염조(念祖)다. 맏형 성임(成任), 둘째 형 성간(成侃)과 함께 당대의 문장가로 명성을 떨쳤다.
성현은 1462년(세조 8) 23세로 식년문과에 급제했다. 1466년 27세로 발영시(拔英試)에도 3등으로 급제해 박사로 등용되었다. 홍문관정자를 지내고 대교(待敎) 등을 거쳐 사록(司錄)에 올랐다. 1468년(예종 즉위년) 29세로 경연관(經筵官)이 되었으며, 이후 예문관수찬·승문원교검을 겸임했다. 맏형 성임을 따라 북경(北京)에 다녀왔으며, 이때 지은 기행시를 엮어 ≪관광록(觀光錄)≫이라 했다. 1475년(성종 6)에는 한명회(韓明澮)를 따라 재차 북경에 다녀왔다. 1476년 문과중시에 병과로 급제해 부제학·대사간 등을 지냈다. 1485년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로 천추사(千秋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대사간·대사성·동부승지·형조참판·강원도관찰사 등을 역임했다.
1488년에는 평안도관찰사로 있으면서 명나라 사신 동월(董越)과 왕창(王敞)을 접대했는데 연회에서 화답한 시편으로 시재(詩才)를 인정받았다. 이해에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로 사은사가 되어 다시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 뒤에 대사헌이 되었다.
성현은 음률에 정통해 다른 관직을 맡으면서 장악원제조(掌樂院提調)를 겸했다. 1493년에 경상도관찰사로 나갔다가 1개월 만에 예조판서로 제수되었다. 외직에 있으면서 장악원제조를 겸직하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이해에 유자광(柳子光) 등과 ≪악학궤범(樂學軌範)≫을 편찬했다. 성현은 예조판서로 재임 중에도 관상감(觀象監)·사역원(司譯院)·전의감(典醫監)·혜민서(惠民署) 등의 중요성을 역설해 그곳에 딸린 관원들을 종전대로 문무관의 대우를 받도록 했다.
연산군이 즉위한 후에 한성부판윤을 거쳐서 공조판서가 되었다. 그 뒤에 대제학을 겸임했다. 1504년 정월에 66세의 일기로 세상을 마쳤다. 죽은 뒤 수개월 만에 갑자사화가 일어나서 부관참시(剖棺斬屍)당했으나, 중종 즉위 후 바로 신원되고 청백리에 선정되었다. 저서로 ≪허백당집(虛白堂集)≫, ≪용재총화(慵齋叢話)≫, ≪풍아록(風雅錄)≫, ≪풍소궤범(風騷軌範)≫, ≪부휴자 담론(浮休子談論)≫, ≪주의패설(奏議稗說)≫, ≪태평통재(太平通載)≫ 등 17종을 남겼다.


☑ 옮긴이 소개

홍순석
처인재(處仁齋) 주인 홍순석은 용인 토박이다. 어려서는 서당을 다니며 한학을 공부했다. 그것이 단국대, 성균관대에서 한문학을 전공하게 된 인연이 되었다. 지역문화 연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강남대 교수로 재임하면서부터다. 용인·포천·이천·안성 등 경기 지역의 향토문화 연구에 30여 년을 보냈다. 본래 한국 문학 전공자인데 향토사가, 전통문화 연구가로 더 알려져 있다. 연구 성과물이 지역과 연관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현재 강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임하면서 출판부장, 인문과학연구소장, 인문대학장을 역임했다. 그동안 ≪성현문학연구≫, ≪양사언문학연구≫, ≪박은시문학연구≫, ≪김세필의 생애와 시≫, ≪한국고전문학의 이해≫, ≪우리 전통문화의 만남≫, ≪이천의 옛노래≫ ≪용인학≫ 등 50여 권의 책을 냈다. 번역서로 지만지 고전선집 가운데 ≪허백당집≫, ≪봉래 시집≫, ≪읍취헌 유고≫, ≪부휴자 담론≫ 등이 있다. 짬이 나면 글 쓰는 일도 즐긴다. ≪탄 자와 걷는 자≫는 잡글을 모은 것이다.


☑ 목차

제1권 아언(雅言)
1. 임금은 하늘과 같다 ···············3
2. 임금의 상벌은 곧 하늘의 상벌이다 ·········5
3. 천하를 다스리는 도는 공평에 있다 ·········9
4. 국가가 다스려지지 않는 것은 사특함과 참람함이 해치기 때문이다 ·················11
5. 임금은 사람을 갑자기 교만하게 해서는 안 된다 ··13
6. 성군은 백성을 아픈 사람처럼 대했다 ·······15
7. 임금이 되기는 어렵고 신하가 되기도 쉽지 않다 ··17
8. 임금에게 사려 깊은 계획보다 큰 일이 없다 ····20
9. 어떤 사람이 되는가는 인도하기 나름이다 ·····22
10. 사람을 등용하는 데는 물망에 오른 자를 쓰는 것보다 좋은 방법이 없다 ··············24
11. 여러 사람의 입은 쇠도 녹인다 ·········28
12. 임금은 하늘의 변고보다 사람의 변고를 더 두려워해야 한다 ··················33
13. 덕으로 왕이 된 사람의 정치 ··········37
14. 선비는 뜻을 고상하게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40
15. 명예라는 것은 실질의 껍데기일 뿐이다 ·····42
16. 왕이 지녀야 할 네 가지 도리 ··········44
17. 신하가 없으면 다스릴 수가 없고, 임금이 없으면 뜻을 펼 수가 없다 ················47
18. 신하는 다섯 종류가 있다 ············49

제2권 아언(雅言)
1. 현명한 자가 나라에 유익한가 ··········53
2. 사람은 친구를 잘 가리지 않으면 안 된다 ·····57
3. 부모를 사랑하고 공경하지 않는 이는 없다 ·····59
4. 나라를 다스리는 데 해가 되는 아홉 가지 ·····61
5. 사람에게는 하늘의 뜻을 되돌리게 하는 힘이 있다 ·63
6. 귀신은 하늘의 힘을 빌려 화복을 행한다 ······65
7. 사람의 천성은 변화시킬 수 없다 ·········72
8. 명예란 실질의 손님일 뿐이다 ··········76
9. 사람의 천성은 같지 않다 ············78
10. 천하에 아홉 번의 변화가 있었다 ········80
11. 천도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83
12. 공자가 죽자 정도(正道)가 사라졌다 ·······85
13. 도(道)에도 크고 작음이 있다 ··········89
14. 군자는 사람의 이치를 깨닫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93
15. 크게 간사한 자는 나라를 해치고 작게 간사한 자는 사람을 해친다 ················95
16. 군자에게는 일곱 가지 볼만한 것이 있다 ·····97
17. 사람의 마음이 서로 다른 것은 얼굴과 같다 ····98
18. 사람의 재능은 배워서 능하게 될 수 있는가 ···100
19. 부엉이 집에서 살면서 부엉이 소리를 싫어해서야 되는가 ····················102
20. 욕심에 동요하지 않으면 해를 당하는 일이 없다 ·104
21. 숙부와 형 중에 누가 더 소중한가 ········106
22. 남의 아들을 자식으로 삼는 것은 노계(魯鷄)와 같다 ·····················109

제3권 우언(寓言)
1. 만족할 줄 아는 만족이 항상 만족하는 것이다. ··113
2. 총애를 받으려면 왕의 마음에 들어야 한다 ····118
3. 음악은 하늘에서 나와 마음에서 갖추어지는 것이다 121
4. 재주가 높은 사람이 남에게 부림을 당한다 ····125
5. 하늘이 처음 사물을 낼 때 이빨이 있는 동물은 뿔을 빼앗았다 ·················128
6. 달이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구름이 달려가는 것이다 131
7. 사람에게는 능한 것과 능하지 못한 것이 있다 ···133
8. 책 속에 절로 즐거운 곳이 있다 ·········137
9. 베를 짤 때는 북과 바디가 중요하지 쇠꼬리는 끼지 못한다 ···················140
10. 성급하게 처리하면 반드시 다치기 마련이다 ···142
11. 월나라 까마귀 ················145
12. 관직은 그릇과 같다 ··············148
13. 물이 지나치게 맑으면 물고기가 노닐지 않는다 ··151
14. 가죽나무로 기둥을 만들 수는 없다 ·······153
15. 나라의 도적을 없애려면 사람을 가려 형벌을 맡기면 된다 ···················155
16. 담장을 높이고 싶으면 집을 낮게 지어라 ·····158
17. 세상에 굽은 것이 나뭇가지만은 아니다 ·····159

제4권 우언(寓言)
1. 부자를 좋아하는 것은 그가 베풀기 때문이다 ···163
2. 모기를 잡으려 칼을 빼 들고 쫓다 ········165
3. 참소리는 소리가 없으면서도 멀리 간다 ·····168
4. 땅에 맞게 씨를 뿌려야 뿌린 씨가 결실을 맺는다 ··170
5. 재상이 되어 가렴주구를 일삼은 갈공(葛公) ····172
6. 똑같은 고치에서도 누에와 구더기가 나온다 ···174
7. 생강은 땅 때문에 매운 성질을 바꾸지 않는다 ···177
8. 술을 가지고 비를 오게 하는 것이 낫다 ······179
9. 관료는 채소나 과일을 재배하지 않는다 ·····182
10. 주색을 좋아하는 사람이 가장 큰 바보다 ·····184
11. 난초가 들판에서 배척을 받으면 잡초가 돋보인다 ·186
12. 어찌 물고기를 먹을 때 황하의 방어만 고집하랴 ·188
13. 꽃은 보통 봄에 피지만 국화는 반드시 가을에 핀다 191
14. 군주는 어진 이를 수고롭게 구해 편하게 일을 맡긴다 ······················194
15. 의례에는 문(文)보다 중요한 것이 없다 ·····198
16. 재물과 곡식을 쌓아 두면 불이 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202
17. 물을 즐기는 이유 ···············204
18. 청렴함과 졸렬함 ···············206
19. 쥐를 잡으려 개를 키우다가 물려 죽은 부자 ···208
20. 과일은 좋고 나쁨이 없으며, 잘 익으면 버릴 것이 없다 ·····················211

제5권 보언(補言)
1. 예(禮)는 나라의 수단이요, 경(敬)은 몸의 중심이다 217
2. 10년간 전쟁을 열한 번 하다가 죽은 임금 ·····221
3. 이와 잇몸처럼 서로 돕고, 수레와 바퀴처럼 서로 의지하다 ···················224
4. 나라는 반드시 산과 하천에 의지해야 한다 ····226
5. 소인배들은 작게는 제 몸을 망치고, 크게는 나라를 망하게 한다 ···············229
6. 임금이 허물이 있으면 힘을 다해 간언해야 한다 ··233
7. 무신(巫臣)이 계략으로 원수를 갚다 ·······236
8. 곧은 나무는 먼저 베어진다 ···········241
9. 사치스러워지면 참람한 마음이 생긴다 ······243
10. 작은 것으로 큰 것을 섬기면 몸을 보전할 수 있다. 246
11. 신령한 용도 물을 잃으면 개미에게 제압을 당한다 248
12. 나라가 흥하고 망하는 다섯 가지 이유 ······252
13. 가지와 잎이 시들면 나무가 반드시 말라 죽는다 ·256
14. 종각에서 종을 쳐도 바로 밑에서는 들리지 않는다 260
15. 임금의 잦은 사냥을 말린 왕후 ·········263
16. 임금으로 하여금 올바른 인물을 등용하게 한 왕후 267

제6권 보언(補言)
1. 강물은 더러운 물도 받아들인다 ·········273
2. 희귀한 새와 진기한 짐승은 집에서 기를 수 없다 ··277
3. 토목 공사를 일삼다 망한 임금 ·········282
4. 대들보가 부러지면 집은 무너지기 마련이다 ···285
5. 임금은 궁궐에서만 즐겨도 충분하다 ·······289
6. 방 안에서 범을 기르며 ‘자신을 물지 않을 것’이라고 하면 되겠는가 ···············291
7. 오로지 덕만이 재앙을 없앨 수 있다 ·······295
8. 나라에 해가 되는 것 중에 참언보다 큰 것이 없다 ·297
9. 울타리가 무너지면 호랑이가 집에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 없다 ·················300
10. 산은 멀리서 보면 가벼운 것 같지만, 가까이서 보면 높고 넓음을 헤아릴 수 없다 ·········303
11. 팔다리에 병이 생기면 몸통이 온전할 수 없다 ··305
12. 신하는 충성을 다해 임금을 섬기고, 나라에 해가 되는 것은 물리칠 줄 알아야 한다 ········308
13. 임금은 사직을 위해 죽는다 ··········312
14. 평범한 사람은 죄가 없지만 벽옥을 품고 있는 것이 죄다 ····················315
15. 몸을 굽혀 부귀할 바에야 가난하게 마음대로 사는 것이 낫다 ··················320
16. 먼 것은 가까운 것만 못하다 ··········324

해설 ······················329
지은이에 대해 ··················337
옮긴이에 대해 ··················3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