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의 언어는 무엇이 다른가?
셰익스피어의 화려한 언어,
괴테의 정선된 언어만이
감동을 줄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렇지 않은 언어,
곧 뷔히너의 토막말을 만나보시라.
서민의 언어로,
그것도 몇 개의 단어만으로
독자를 감동의 소용돌이로 몰고가는 언어의 천재를 만나게 된다.
24세에 요절한 게오르크 뷔히너의 삶을 그가 남긴 문학 작품을 통해 들여다본다.
정선되고 다듬어진 문어(文語)만이 통용되던 당대 독일문단에서 외설과 일상 언어를 사용하고 반(反)영웅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던 뷔히너. 세상을 떠난 지 40년 후에서야 그의 리얼리즘 문학세계는 ‘힘 있는 언어’의 사용과 ‘생생한 묘사’라는 평가를 듣게 된다.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음에도 참다운 삶의 의미를 ‘더불어 사는 삶’에서 찾고자 했던 뷔히너는 반체제 운동에 가담하고 농민을 위해 투쟁에 앞장섰다.
임호일 교수는 이 책에서 뷔히너가 남긴 세 편의 드라마 ≪당통의 죽음≫, ≪레옹스와 레나≫, ≪보이체크≫와 소설 ≪렌츠≫, 그가 남긴 서신들을 인용하며 천재적 삶을 살다간 뷔히너의 짧은 생을 이야기한다. 저자가 풀어주는 뷔히너의 삶은 곧 저자의 삶의 모습이고 이를 읽는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우리의 상상력을 최대치로 확장할 수 있는 행간을 그 어느 텍스트보다 많이 지니고 있는 텍스트가 바로 뷔히너의 네 작품이다.”
본문 중에서
나는 뷔히너를 통해 진정 아름다운 언어, 힘 있는 언어가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 그렇다, 그는 나에게 전정한 심미안을 열어 준 작가다. 나는 셰익스피어의 언어처럼 화려한 언어, 괴테의 언어처럼 잘 다듬어진 정선된 언어만이 독자를 감동시키는 줄 알았다. 그런데 뷔히너는 일상어를 가지고도, 아니 서민의 언어, 이른바 토막말을 가지고도 나를 충분히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시가 아닌 드라마에서 문장이 아닌 단어 몇 개만 가지고도 얼마든지 우리를 감동시킬 수 있는 작가, 뷔히너는 정녕 언어의 연금술사요, 시대를 앞서간 천재다.
(...)
나는 뷔히너의 삶과 문학을 통해 부끄러움을 배우고 겸손을 배웠다. 독일문학사에 몇 안 되는 천재, 독일문학사가 공인하는 천재 뷔히너가 “교육이라는 우스꽝스러운 외관”과 “학식이라는 보잘것없는 잡동사니”를 무기 삼아 “자기의 이웃 집단을 가증스런 이기주의에 제물로 바치는 자들”을 질타했을 때 나 자신 부끄러웠고, “바보나 범죄자가 되고 안 되는 것이 그 어떤 개인의 힘에 달려 있지 않으며”, “우리가 똑같은 환경에 몸을 담았다면 우리는 모두 같아졌을 것”이라는 그의 말 속에서 나는 겸손을 배웠다. 천재는 환경이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뷔히너는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최소한 이성이나 교육이 빈약하다는 이유로 그 누구를 경멸하는 일은 결코 하지 않겠다”는 다짐은 바로 그의 이러한 천재 부정 사상으로부터 연유한다.(이상의 인용 문구들은 <양친에게 보낸 서신> 중에서 발췌한 것임)
24세에 요절한 뷔히너, 그는 나의 스승이요, 내 인생의 길잡이다. 그는 갈등과 고뇌가 저주가 아닌 축복이라는 사실을 나에게 일깨워 줬다. 그는 이 세상을 선과 악, 미와 추라는 이분법으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그의 삶과 문학으로 웅변해 준 작가다. 빛은 어둠에 빚을 지고 있듯이 가진 자는 가지지 못한 자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 뷔히너, 그는 나의 유토피아요, 오아시스다. 나도 이제 뒤늦게, 환갑이 지난 나이에 철이 들기 시작하는가 보다. 저 스승처럼 “고귀한 분들의 냉담한 마음에 고언(苦言)을 던지기보다는 고통받고 억눌린 사람들에게 동정 어린 눈길”(<양친에게 보낸 서신>중에서)을 한번이라도 더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차례
프롤로그 vii
1장 요절한 천재
1. 천재는 우연의 산물이다 3
2. 조금만 더 살았더라도… 9
3. 영원한 자유인 16
4. 뷔히너와 그의 시대 23
2장 추(醜)의 미학
1. ‘우리 시대는 순전히 물질적인 시대라오’ 29
2. 개방문학의 선구자 33
3. ‘가장 보잘것없는 존재의 삶 속으로 침잠해 보라’ 66
3장 모든 문학은 앙가주망이다
1. 사회주의자 브레히트와의 접목점 95
2. 개인주의자 한트케와의 접목점 125
4장 추의 미학의 형상화
1. ‘지능은 우리의 정신적인 영역의 극히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137
2. 오만은 편견을 낳는다 160
3. 진리는 역사적이다 181
4. 아이러니와 패러독스를 통한 진실과 허구의 전도(顚倒) 197
에필로그 208
작품 줄거리 요약 213
참고문헌 222
작가 연보 228
저자 소개 231
색인 232
저자 임호일은…
고려대학교 독문학과에서 학사, 석사 과정을 마치고 독일 뮌헨과 마인츠 대학에서 수학했으며, 오스트리아 그라츠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동국대학교 문과대학 독어독문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한국독어독문학회 부회장, 한국뷔히너학회 회장, 동국대학교 도서관장 및 문과대학장을 역임했다.
주요 논문으로는 <번역은 원전에 대한 도전이다?>, <추의 미학의 관점에서 본 뷔히너의 리얼리즘>, <가다머의 예술론>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변증법적 문예학≫(플로리안 파센 저), ≪진리와 방법≫(한스−게오르크 가다머 저, 공역), ≪한스−게오르크 가다머≫(카이 하머마이스터 저), ≪뷔히너 문학전집≫(게오르크 뷔히너 저)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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