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각국사(眞覺國師) 혜심(慧諶)은 수선사(修禪社) 1대인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의 제자다. 지눌은 고려 중기의 피폐한 불교계를 혁신시킨 인물이다. 당시의 불교계는 왕실의 비호 아래 종교인으로서의 책임은 망각한 채 갖은 부패의 온상이 되었다. 이에 지눌은 당시 불교계의 모순을 지적하고 새로운 불교 부흥운동을 전개하니 이것이 곧 정혜결사운동(定慧結社運動)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선교상쟁(禪敎相爭)을 불식하고 선(禪)에 의한 교(敎)의 흡수와 함께 새로운 선학의 체계를 수립하게 된다. 지눌의 이러한 사상은 이후 수선사를 중심으로 확고히 계승되었다.
혜심은 이러한 지눌의 사상을 근거로 그것을 다양한 양상으로 승화시켜 승려들에게는 물론 일반 재가신도에게까지 널리 전파하는 데 힘을 쏟았다. 그리하여 제작된 것이 한국 선가의 요체인 ≪선문염송(禪門拈頌)≫을 비롯한 그의 각종 저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혜심이 남긴 저술들을 보건대 그가 단순히 불교 포교만을 위해 문학을 이용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발견할 수가 있다. 당시의 언어 매체였던 한자를 통해 그의 사상과 정서를 유감없이 표현해 내고 있다. 더욱이 그는 출가 전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여 당시 최고의 교육기관이던 국자감에서 수학을 할 정도로 문학적 자질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가진 풍부한 문학적 자질은 승려라는 독특한 신분과 만나 한껏 빛을 발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혜심의 문학관(文學觀)
혜심은 국문학사상 최초의 본격적인 선시인(禪詩人)이라는 점에서 그 문학적 위치를 확고히 하고 있다. 더구나 당시의 문풍(文風)이 사장학 중심이었으니 그의 문학에 대한 조예는 깊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런 그가 불가(佛家)의 승려(僧侶)로서 바라보는 문(文)에 대한 인식은 어떠했을까? 그의 문학에 대한 견해가 보이는 것으로는 ≪선문염송집(禪門拈頌集)≫ 서(序)가 있다.
상고하면 세존 가섭 이후로 대대로 등불이 끊이지 않고, 서로 비밀히 부촉한 것으로써 바로 전한 것을 삼았다. 그 바로 전하고 비밀히 부촉한 것은 말이나 뜻을 갖추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말이나 이치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록 그것을 가리키기는 하나 문자를 세우지 않고 마음을 마음에 전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흐름을 찾아 올라가 그 근원을 얻고 끝머리에 의거하여 근본을 아는 것도 무방한 것이니, 그 본원을 얻은 사람은 만 가지로 구별해 말하더라도 맞지 않는 것이 없고, 그것을 얻지 못한 사람은 말을 끊고 침묵을 지키더라도 미혹이 아닌 것이 없다. 그러므로 여러 조사님들은 문자를 버리지 않고 자비를 아끼지 않으면서 묻기도 하고 들어보기도 하며, 대신(代身)하기도 하고 달리하기도 하고 게송을 읊거나 노래를 부르기도 하여, 심오한 이치를 후인에게 준 것이다. 그러므로 바른 눈을 뜨고 현기(玄機)를 갖추어, 삼계(三界)를 둘러싸고 사생(四生)을 구제하려는 사람으로서, 이것을 버리고 무엇으로 하겠는가?
이는 문학의 필요성을 부정하면서도, 또 긍정한 것이다. 흐름을 찾아 그 근원을 얻고 끝머리에 의거하여 근본을 아는 것은 무방하다고 한 것은, 흐름에서 근원을 찾고 끝에서나마 근본을 발견할 수 있다면 문학의 존재는 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본원(本源)을 얻지 못하면 침묵을 지켜도 의혹이 남게 되고, 본원을 얻게 되면 만 가지로 분별(分別)해도 맞지 않는 것이 없다고 했던 것이다. 즉 본원을 얻은 사람의 문학은 진정 문학으로서 가치를 지닌다는 것이다. 여기서 본원을 얻은 사람이라 함은 지혜를 깨달은 자를 말한다. 단순히 돌을 가리키고, 몽둥이질을 하며, 버럭 고함을 지르는 것이 본원을 얻지 못한 사람에게서 나왔을 땐 아무런 가치를 지니지 못하는 것이지만, 본원을 깨달은 자의 행동이라면 모두가 새롭게 창조된 초월적 언어 형식으로 인정될 수 있다는 말이다.
결국 그의 문학은 진심(眞心)을 개오(開悟)하기 위한 필요성에서 비롯된 것이지 문학 그 자체를 위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혜심은 “헛되이 침묵만 지키는 어리석은 선(禪)을 하는 선종(禪宗)도 배격해야 할 것이고, 다만 문자만 찾는 미친 지혜를 주장하는 교종(敎宗)도 배격해야 한다”는 지눌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는 것이다.
시 세계(詩世界)의 특징
혜심이 남긴 ≪진각국사어록≫의 구성을 보면 상당(上堂) 64편, 시중(示衆) 17편, 소참(小參) 12편, 대중기실(對中機室) 11편, 수대(垂代) 12편, 하화(下火) 12편, 법어(法語) 33편, 답서(答書) 10편 등이 있으며, 권상로가 수집하여 1940년 보제사본 권말에 수록되어 전하는 보유(補遺)에는 각종 게송(偈頌)과 선화(禪話) 27편이 실려 있다. 그리고 이것들의 실제 내용은 스님이 법당에 올라가 설법한 것, 승려가 일반 대중에게 설법한 것, 승려의 화장(火葬)시 게문을 창한 것, 왕이나 고관들과 주고받은 편지 등으로 한정되어 나타난다. 따라서 어록에 비친 혜심의 모습은 시인이라기보다는 공인(公人)으로서의 모습, 즉 수선사 주지로서 법을 전하는 법사로서의 모습이 뚜렷이 부각되고 있다.
반면 ≪무의자 시집≫에는 상하권 각각 68수, 180수 총 248수의 시가 실려 있다. 이는 혜심의 뛰어난 문학적 자질을 증명하는 것으로서 실제 그 내용을 보더라도 법사로서 법을 전수할 때의 시법시(示法詩)·개오시(開悟詩)는 물론이거니와 아름다운 자연과 사찰의 정경 묘사, 차 끓이며 자적하는 산사 생활의 즐거움, 대·연(蓮)·귤 등의 자연물에 대한 감흥, 재가신도와 타 승려들과의 교유시, 그리고 한사람의 인간으로서 생로병사(生老病死)를 읊은 인정시 등으로 무척 다양하다.
스님의 시 세계를 보면 우선 선사상(禪思想)을 문학적으로 표출(表出)하는 부분이 강하게 느껴진다. 스님은 화엄경을 강의하면서 해탈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읊었다.
보광명전이야말로 내 집이거니
삼법의 근원에서 막 깨어났다네.
한 찰나에 백십 유순을 거두어들이니
세간의 세월이야 그저 헛된 것이렷다.
普光明殿是吾家
三法一源初睡起
百十由旬一念收
世間時劫徒爲爾
≪진각국사어록(眞覺國師語錄)≫
<시중(示衆)·소화엄론차(消華嚴論次)>
이 선시에 나타난 보광명전은 인도 마갈타국 보리도량의 곁에 있는 곳으로 부처가 ≪화엄경≫ 9회 가운데 제2회, 제7회, 제8회의 설법을 행한 전(殿)이다. 이 보광명전이 내 집이라 함은 만유의 근원인 절대적 세계인 진여(眞如)가 바로 나의 집이란 말이다. 삼법일원은 심(心)·불(佛)·중생(衆生)이 하나의 근원인 절대적 진리에서 나왔다는 말인데, 여기서 깨닫게 되니 나는 절대적 세계인 진여와 같은 존재로서 이미 여기서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각후(覺後)에 오는 시간의 개념은 그저 헛된 것일 수밖에 없다. 여기서 혜심은 완전히 유유자적하는 해탈인의 모습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는 셈이다. 삼법일원에서 잠을 깨니 보광명전인들 내 안방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오고 가는 발걸음은 걸릴 곳이 없게 된다. 티끌 한 점 없는 하늘을 열반 그 자체라 한다면, 드리운 구름은 번뇌의 상징일 수가 있다. 그 번뇌는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라 다만 자초(自招)할 뿐이다. 구름 한 점 없는 허공에 태양이 솟아오르면 찬란한 광명이 세상을 비추듯이 인간의 마음 마음마다 불성이 출렁거리지만 다만 어리석은 인간들이 보지 못할 뿐이다. 대지는 온통 해탈문이나 다름없지만 그렇게 볼 수 있는 자만이 열반의 세계를 넘나들 수 있는 것이다.
혜심은 또 다음과 같이 해탈의 길을 설명했다.
해탈의 길을 알고자 하는가?
근경이 서로 닿지 않아야 하리.
눈과 귀에 견문이 끊어지면
성색은 부질없이 시끄럽기만 하리.
欲知解脫道
根境不相到
眼耳絶見聞
聲紹譊浩浩
≪진각국사어록보유(眞覺國師語錄補遺)≫
<이구화(尼拘話)>
여기서는 상식적인 논리의 부정을 통해 더 적극적인 근원을 파고드는 박진감이 잘 나타나 있다. 해탈의 길을 알고자 하면 육근(六根)이니 육경(六境)이니 하는 십이처의 작용마저 없애버리라고 했다. 보편적 논리로는 육근(六根)의 대상인 육경(六境)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관계마저 끊어버리라고 했다. 나아가 육근(六根) 가운데 있는 안(眼)과 이(耳)마저 그 기능이 마비되면 들리는 소리와 모습들은 부질없이 시끄러운 것이라는 데서, 안이(眼耳)뿐만 아니라 육근(六根)을 통해 느끼는 모든 현상마저 초월하고 나면 끝없는 지평선인 해탈문이 전개될 것이라는 암시가 숨어 있는 것이다.
스님에게 있어 자연은 생활의 주된 공간이다. 그러기에 산으로 대변되는 자연 속에서 자신의 선기(禪機)를 마음껏 펼쳤다.
비 개자 시원스레 목욕하고 나온 듯
남기가 엉켜 푸르름이 뚝뚝 맺힐 듯.
멍하니 보다 마음 일어 한 수 읊으니
내 온몸도 서늘하고 푸르러지네.
雨霽冷出浴
嵐凝翠欲滴
熱瞪發情吟
渾身化寒碧
≪무의자 시집(無衣子詩集)≫ 권상(卷上)
<비 온 뒤 송만(雨後松巒)>
비가 갠 후의 산의 모습과 그것을 바라보는 혜심의 상쾌함이 감각적인 시어를 통해 잘 나타나 있는 시다. 우선 싱그러운 산의 모습을 해질녘 먼 산에 떠오르는 푸르스름하고 흐릿한 기운인 남기가 모여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또한 그 푸른 기운이 비 갠 후 잎사귀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처럼 뚝뚝 떨어질 것 같다는 것이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상쾌하다 못해 짜릿함마저 느끼게 하는 그런 감각적인 언어 구사다. 이런 싱그러움 속에서 시를 읊조리는 혜심은 스스로가 한벽(寒碧)됨을 느끼는 것이다.
혜심의 시에는 안분지족(安分知足)의 삶을 노래한 작품들이 많은데, 주로 일상생활 속에서 느끼는 선적(禪的) 흥취를 묘사한 작품들이 거기에 해당된다 할 수 있다. 그 양상을 보면, 우선 산사 생활의 배경이 되는 자연과 그것을 배경으로 펼쳐진 사찰의 아름다움을 읊은 것을 들 수 있다. 둘째는 산사 생활의 즐거움에 관한 내용이다. 고적한 산사에서 펼쳐지는 승려들이 차를 끓인다거나 숲길을 산책한다거나 하는 일상생활의 모습들인 것이다. 물질적인 풍요보다는 청빈한 삶 속에서 존재의 의의를 찾고자 하는 승려들의 일상사를 혜심은 지족수분(知足隨分)의 차원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셋째는 사물에 대한 감흥이다. 이른바 영물시라고 하는 부분인데, 파초(芭蕉)·가사(袈裟)·연꽃·귤·밤·모란·달·지팡이·눈 등의 묘사가 그것이다. 이는 사물에 대한 혜심의 예리한 관찰력과 함께 한갓 미물이지만 그 미물에 쏟는 시인의 아름다운 시선을 쉽게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그 문학적 가치를 찾을 수 있다.
저무는 봄을 남몰래 아쉬워하며
작은 뜰에서 낮게 읊조린다네.
바람 부는 잎엔 푸른빛이 나부끼고
비 내린 꽃술엔 붉은 가루 떨어지지.
나비가 빨고 가니 꽃은 붉어지고
꾀꼬리가 따라오니 버들은 푸르러진다.
향기롭고 부드럽고 따스한 봄날의 모습이라
솔잎과 댓잎 같은 새순은 차고도 담박한 모습일세.
暗惜春將季
沈吟小苑中
葉風飜駭綠
花雨落粉紅
蝶兒咂去花唇赤
鶯友迎來柳眼靑
芳菲軟暖春家事
笋似松筠冷淡形
≪무의자 시집(無衣子詩集)≫ 권상(卷上)
<봄을 아쉬워하며(惜春)>
이 시는 어느 늦봄 지나가는 봄을 아쉬워하며 지은 것이다. 시인은 눈 덮인 바위에서 뛰쳐나와 이젠 꽃밭에서 꽃들을 관찰하고 있다. 시인은 꽃이 붉은 것은 나비가 꽃 입술을 물어 그렇고, 잎이 푸른 것은 바람에 놀라 그렇다고 했다. 한 떨기 수줍은 새색시 같은 꽃잎을 바라보는 시인의 마음은 그지없이 보드랍고 따스하다.
대붕은 바람 타고 수만 리 날아가지만
뱁새는 숲 속 한 가지에 깃들여도 만족하네.
장단은 비록 달라도 함께 자적하나니
야윈 지팡이에 다 떨어진 장삼이 제격이로다.
大鵬風翼幾萬里
斤鷃林巢足一枝
長短雖殊俱自適
瘦笻殘衲也相宜
≪무의자 시집(無衣子詩集)≫ 권상(卷上)
<소요곡(逍遙谷)>
이것은 ≪장자(莊子)≫의 <소요유(逍遙遊)> 편을 주제로 삼은 <소요곡(逍遙谷)>이란 시다. 대붕은 그 등의 길이만도 몇 천 리나 되고, 한 번 날아오르면 그 날개가 하늘에 드리우는 구름 같은 새다. 그래서 이 새는 태풍이 불 때에나 회오리바람을 타고 9만 리나 올라 구름 위로 솟구쳐 자연의 조화로 이루어진 남쪽 바다인 천지(天池)로 이동한다. 반면 뱁새는 팔짝 날아오르면 몇 길 높이도 못 오른 채 곧 떨어지며, 쑥대 사이를 파닥파닥 날아다닐 뿐인 아주 하찮은 새다. 하지만 대붕이나 뱁새나 그 장단(長短)은 다를진대 진정으로 자적하는 바는 같은 것이다. 따라서 비록 어느 금으로 수놓은 가사나 존자보다야 못하지만 혜심에겐 야윈 지팡이와 다 떨어진 장삼도 족한 것이다. 더구나 혜심이 당시 불교계를 좌지우지할 정도의 세력을 지닌 수선사 주지였던 것을 감안한다면, 그의 이런 지족수분하는 수도승으로서의 모습은 더욱 부각될 수 있는 것이다.
혜심은 한국의 불가한시사(佛家漢詩史)에서 최초의 본격적인 선시작가(禪詩作家)란 타이틀을 붙일 만한 인물이다. 물론 혜심 이전에 선(禪)의 철학적 경향을 문학화(文學化)한 예가 없는 것은 아니다. 멀게는 원효(元曉, 617∼686)와 의상(義湘, 625∼702)이 있고, 가깝게는 균여(均如, 923∼973), 의천(義天, 1055∼1101) 등이 있다. 하지만 그 규모나 질적 수준에 있어 혜심의 그것은 단연 돋보인다.
선시는 내용상으로는 깊은 깨달음의 선사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형식상에서는 정형보다는 파격을 즐겼다는 점에서 일반 문사들의 한시와는 그 궤를 달리 한다. 이러한 선시의 모습이 파편적으로 전해오다가 고려 시대에 와서야 하나의 양상으로 확고해졌다. 그리고 그 맨 앞에 혜심이 서 있는 것이다. 혜심의 작품들은 단순히 불교철학적인 냄새만을 풍기는 것이 아니라 일반 문사들의 창작 활동에 견주어도 조금의 모자람이 없는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오히려 일반 문사들에게서는 발견할 수 없는 깊은 사상적 내용과 아울러 참신함마저 쉽게 찾을 수가 있다. 뿐만 아니라 스님은 당대의 이름 높은 문사들과의 교우를 통해 파격적인 시형과 시어의 사용으로 그들과의 언어유희에서도 결코 뒤지지 않았던 것이다. 이는 한국 선시의 주된 특징을 규정짓는 것으로 혜심 문학의 우수성을 증명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혜심의 문학세계는 후대의 불교 시인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쳤는데, 고려조의 원감국사(圓鑑國師) 충지(沖止, 1226∼1292)·태고국사(太古國師) 보우(普愚, 1301∼1382), 조선조의 함허당(涵虛堂) 기화(己和, 1376∼1433)·허응당(虛應堂) 보우(普雨, ?∼1565)·청허당(淸虛堂) 휴정(休靜, 1520∼1604) 등이 바로 그들이다. 즉, 혜심의 문학이 갖는 문학사적인 위치는 선시라는 고도의 정신 지향의 문학성을 요구하는 문학 장르의 확립이라는 점에서 언급될 수 있는 것이다.
옮긴이는 지금 베이징의 대외경제무역대학 한국어학부에서 파견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한자와 불교를 매개로 한 ‘동아시아 문학론’의 수립을 평생의 학문 목표로 세운 이래, 중국에서 그 첫발을 떼고 있는 것이다. 이곳에서 만나게 될 무수한 진객(眞客)들과의 교유를 통해 한국 불가 시문학의 위상을 제고하고, 새로운 문학적 시각으로 재무장되기를 간절히 희망하고 있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혜심이 한국 불가시에서 앞자리를 차지하는 것과 같이 그의 문학이 담긴 이 책을 통해 세상에 우리의 불가 시문학을 알리고, 상호 비교의 장을 통해 보다 깊이 있는 학문적 기반을 수립할 것을 다짐하는 바다. 마지막으로 한국불가 한시 시리즈가 지속적으로 출간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는 지만지의 박영률 사장님 이하 편집팀의 후의에 감사의 뜻을 표한다.
☑ 저자 소개
진각국사(眞覺國師) 혜심(慧諶)의 생애에 대해서는 <월남사지진각국사비(月南寺址眞覺國師碑)>와 이규보(李奎報)가 찬한 <진각국사비명(眞覺國師碑銘)>을 통해 알 수 있다. 혜심은 1178년 전라도 나주 화순현(和順縣)에서 향공진사(鄕貢進士)인 최완(崔琬)을 아버지로, 배씨(裵氏)를 어머니로 하여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문장에 재주가 있었던 그는 어머니의 명에 따라 유학을 공부하여 24세인 1201년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한 뒤 태학(太學)에 들어가 학문을 닦게 된다. 그러나 모친이 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받고는 고향으로 돌아오지만 모친은 이듬해에 작고하고 만다. 본래부터 불교에 깊은 관심을 가졌기에 1202년, 조계산 송광사에서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 1158∼1210)을 모시고 승려가 되었다. 이후 용맹정진(勇猛精進)하던 그는 보조국사로부터 다양한 시험을 통과한 뒤 1210년, 지눌의 법석을 공식적으로 이어받는다.
지눌로부터 이어받은 수선사(修禪社) 2대의 자리는 당시의 사회적·종교적 측면에서 상당히 중요한 위치였다. 수선사는 당시 왕권과 결탁하여 온갖 부패와 모순을 낳았던 교종 중심의 불교계를 보며 지눌이 결성한 실천적인 결사운동이었다. 지눌의 이러한 결사운동은 당시 실질적인 정치권력을 행사하던 최씨 무신정권의 깊은 관심을 끌었다. 그 이유로는 첫째, 주위에 몰려 있는 정적(政敵)들에 대한 공포심을 줄여줄 정신세계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당시 불교의 타락을 비판하고 나선 지눌의 결사운동이 지닌 혁신성이다. 무신정권이 만일 이러한 수선사의 지원을 얻는다면, 그들은 자신의 정권을 정당화할 수 있는 사상적 기반을 얻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셋째, 복잡한 교리에 어두운 무인들에게 선종사상이 내세우는 수심(修心)에 의한 직시 위주의 단순성은 기존의 교종과는 달리 친근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결국 최씨 무신정권과 수선사는 현실적인 필요에 의해 물질적인 지원과 정신적인 후원을 서로 교환함으로써 밀착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혜심은 항상 그들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종교인의 본분을 다하는 데에 힘을 쏟았다. 그는 종교인이 권력과 밀착되었을 때 생기는 부작용을 알고 있었기에, 승려 본연의 자세와 개혁 정신을 유지하면서 수선사를 당시 정신계의 핵심으로 이끌 수 있었다. 이후 혜심은 20여 년간 수선사를 이끌다가 1234년 6월 26일 57세(법랍 32)의 나이로 월등사(月燈寺)에서 입적했다. 스님이 남긴 책으로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선서(禪書)로서 선가(禪家)의 고화(古話) 1125칙(則)과 선사들의 염송(拈頌)을 합쳐서 총 30권으로 완성한 ≪선문염송(禪門拈頌)≫과 생전에 행하신 각종 법어를 모은 ≪조계진각국사어록(曹溪眞覺國師語錄≫ 등이 있다.
☑ 옮긴이 소개
배규범은 1998년 문학박사 학위(<임란기 불가문학 연구>)를 받은 이래, 불가 한문학 및 한국학 연구에 전력하고 있다. 편역자는 한자와 불교를 공통 범주로 한 ‘동아시아 문학론’ 수립을 학문적 목표로, 그간 한국학대학원 부설 청계서당(淸溪書堂) 및 국사편찬위원회 초서 과정을 수료했으며, 수당(守堂) 조기대(趙基大) 선생께 사사했다. 경희대학교 국제교육원에서 지난 10여 년간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국어 및 한자 강의를 진행했으며, (사)한국한자한문능력개발원의 한자능력검정시험 출제 및 검토위원으로 재임 중이다. 2002년부터 2008년까지 학술진흥재단의 고전 번역 프로젝트를 수행했으며, 2000년부터는 국사편찬위원회의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고·순종≫교열 및 교감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현재 중국 베이징 대외경제무역대학 한국어과에서 객원교수로 재직하며 중국 학생들에게 한국어 및 한국문화를 강의하고 있다. 편역자는 향후 해외에서 우리의 말과 문화에 대해 보다 심도 깊은 연구와 전파에 뜻을 세우고 활동 중이다.
주요 논저로는 ≪불가 시문학론≫, ≪조선조 불가문학 연구≫, ≪사명당≫, ≪한자로 배우는 한국어≫, ≪요모조모 한국 읽기≫ 등이 있으며, 역저로는 ≪역주 선가귀감≫, ≪한글세대를 위한 명심보감≫,≪사명당집≫, ≪허정집≫, ≪청허당집≫, ≪허응당집≫, ≪역주 창랑시화≫, ≪정관대사일선시집≫ 등이 있다.
☑ 차례
해설
지은이에 대해
정 낭중을 전별하며 餞別鄭郞中
어떤 일에 느낀 바가 있어 因事有感
새로 선상을 칠하고서 新漆禪床
파초 芭蕉
시자가 묻기를 눈꺼풀이 얼마나 넓으냐고 하기에 시를 지어 대답하다 問侍者眼皮濶多少無對作詩示云
금성 경사록의 시운을 빌려 次錦城慶司祿 從一至十韻
작은 연못 盆池
사뇌사 집회를 마치고 시주 등의 전송을 받고 돌아와 감사하며 思惱寺罷會施主等相送至還謝之
스님을 전송하며 送僧
기사뇌가 碁詞腦歌
만족의 즐거움 知足樂
물시계 更漏子
식심게 息心偈
못가에서 우연히 읊다 池上偶吟
자비사에서 이틀을 묵으며 信宿慈悲寺
봄을 아쉬워하며 惜春
여뀌 蓼花
비 온 뒤 송만 雨後松巒
진인 상인이 와서 말하길 眞一上人來言曰
고분가 孤憤歌
하늘과 땅을 대신해 답하다 代天地答
전 녹사에게 답하다 答田祿事
성주천 가에서 차 마시며 얘기하다 주지 스님의 시운을 빌려 聖住川邊茶話次贈住老
몽인 거사가 목우시를 청하기에 夢忍居士請牧牛詩
한가위 달구경 中秋翫月
쌍봉 장로의 <감춘> 시에 화답하며 和雙峰長老感春
봄날 산에서 놀다 春日遊山
냉취대 冷翠臺
폭포 瀑㳍
맑은 못 淸潭
사계절에 대한 느낌 四時有感
우연히 흥이 일어 偶興
연지에 샘물을 대고 蓮池注泉
산에서 놀다가 遊山
고향을 지나며 過古鄕
양 상인을 전송하며 送亮上人
근친하러 가는 옥 상인을 전송하며 送玉上人覲親
그림자를 마주하고 對影
작은 못 小池
천관산 의상암에 깃들어 사는데 몽인 거사가 남긴 시를 보고는 운을 빌려 마음을 적다 寓居天冠山義相庵 見夢忍居士留題 次韻叙懷
눈 내리는 패주 죽림사에 묵으며 宿貝州竹林寺有雪
인월대 隣月臺
능운대 凌雲臺
부모님을 뵈러 가는 육미 상인을 전송하며 送六眉上人省親
팔령사 동재에서 묵으며 이경상의 시운을 빌려 宿八嶺寺東齋 次李敬尙韻
기능을 경계하다 誡技能
저물녘 비 개자 晚晴
산을 나서며 出山相讃
황 중사의 시운을 빌려 次黃中使韻
검원두가 게송을 구하기에 儉園頭求頌
남포원 누대에서 놀다 모란을 보고 遊南浦院樓看牧丹
응율사가 법을 구하는 시의 운을 빌려 次膺律師求法韻
작은 글자로 쓴 금강경을 찬하다 小字金剛經賛
청량굴 題淸凉窟
전물암에 깃들어 살며 寓居轉物庵
담령 상인이 육잠을 구하기에 湛靈上人求六箴
방일을 경계하다 誡放逸
시로 깨달은 바를 보여주기에 그 시운을 빌려 답하다 以詩呈悟處依韻答之
백운대 위에서 선사를 추억하며 白雲臺上憶先師
서석산 규봉에서 노닐다 남겨둔 시를 보고 그 운을 빌려 遊瑞石山珪峰見留韻次之
둥근 부채 團扇
조월암에서 피리 소리를 듣고 祖月庵聞笛
누군가 법을 구하기에 서암의 주인공 화두를 들어 게송을 지어주다 求法擧瑞巖主人公話作偈
목련 木蓮
자규 울음을 듣고 대중들에게 보이다 聞子䂓示衆
권백 卷栢
감흥 感興
좌우명 左右銘
산 속의 사위의 山中四威儀
암자에서 빗소리를 들으며 庵中聽雨
여름날 감원에서 처마를 수리해 준다기에 시를 지어 거절하다 暑月監院欲補簷作詩去之
겨울날 석상암에서 자다 冬日寄石上庵
신묘년 8월, 인홍사를 지나다 벽에 붙은 시운을 빌려 辛卯八月過仁弘寺次壁上韻
무위사 공 장로와 차를 마시며 茶無爲寺恭長老
연꽃 핀 못에서 蓮池
달을 읊다 咏月
비 온 뒤 雨後
물가에서 臨水
삼가 지장 일승통의 시에 화답하다 奉和地藏一僧統
유거 幽居
세상을 민망히 여겨 憫世
빙도자전 氷道者傳
대인명 병서 大人銘 并序
일암명 병서 逸庵銘 并序
옮긴이에 대해
☑ 책 속으로
봄을 아쉬워하며
저무는 봄을 남몰래 아쉬워하며
작은 뜰에서 낮게 읊조린다네.
바람 부는 잎엔 푸른빛이 나부끼고
비 내린 꽃술엔 붉은 가루 떨어지지.
나비가 빨고 가니 꽃은 붉어지고
꾀꼬리가 따라오니 버들은 푸르러진다.
향기롭고 부드럽고 따스한 봄날의 모습이라
솔잎과 댓잎 같은 새순은 차고도 담박한 모습일세.
惜春
暗惜春將季
沈吟小苑中
葉風飜駭綠
花雨落粉紅
蝶兒咂去花辱赤
鶯友迎來柳眼靑
芳菲軟暖春家事
笋似松筠冷淡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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