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 30일 월요일
보이체크 / 레옹스와 레나
☑ 책 소개
24세의 나이에 요절한 독일의 천재 작가 게오르크 뷔히너의 천재성이 여실히 드러난 <보이체크>는 독일문학 사상 최초로 하층민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뷔히너는 이 작품에서 단일 사회의 산물인 폐쇄극 형식을 과감히 폐기하고 다양한 현대 사회를 조명할 수 있는 개방 형식을 도입했다. 그는 이 형식을 통해 주인공 보이체크가 몸담은 사회의 모순과 파괴를 형상화했다. 또한 <레옹스와 레나>를 통해 오만의 찬 이상주의자의 이상이라는 것은 결국 허상에 지나지 않음을 폭로하고 있다.
☑ 출판사 책 소개
율리우스 바브라는 작가는 요절한 뷔히너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폭풍과 더불어 그 모습을 드러냈다가 폭풍 속으로 사라진 게오르크 뷔히너−우리는 일찍이 이런 작가를 가져본 적이 없다. 그의 운필(運筆)은 현존재의 총체적 기능으로부터 형성되는 숨결이다.
뷔히너는 정녕 천재요, 시대를 앞서간 사람이다. 1972년에 최초로 체계적인 뷔히너 평전(≪뷔히너와 그의 시대≫)을 쓴 뷔히너 전문가 한스 마이어는 뷔히너의 미학을 “젊은 천재적 인간의 정치적, 사회적 기본 구상”이라고 극찬한다. 그런가 하면 뒤렌마트와 더불어 스위스의 현대 (희곡)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막스 프리슈는 뷔히너 문학상 수상 연설에서 “우리는 결코 그의 천재성을 따라가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뷔히너의 마지막 작품 <보이체크>(1836∼?)는 오늘날 뷔히너의 작품 중에서 가장 무대에 많이 오르는 작품이다. 12음계를 창안한 작곡가 알반 베르크에 의해 1921년에 <보체크(Wozzeck)>라는 이름으로 오페라로 만들어진 이래로 이 작품은 음악 애호가들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가 하면 우리나라에서도 <보이체크>는 브레히트의 작품들과 더불어 독일 희곡작품 중 가장 많이 공연되는 작품이다. 뷔히너는 <보이체크>를 통해 현대 (희곡)문학의 내용과 형식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이 작품은 독일문학사에서 ‘추(醜)의 미학’의 효시를 이루는 작품으로, 독일문학사상 최초로 제4계급, 즉 하층민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레옹스와 레나>(1836년 초여름∼?)는 뷔히너의 작품 중 그 소재를 역사에서 취하지 않은 유일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뷔히너가 독일의 한 유수 출판사가 주관하는 현상모집에 응모할 생각으로 집필했지만 송고(送稿)가 기일 내에 이루어지지 못해 미개봉된 채 반송된 작품이다. <보이체크>와 <당통의 죽음>이 비극작품이라면 이 작품은 작가 자신이 밝히고 있듯이 희극작품이다. 그러나 엄밀하게 정의 하자면 이 작품은 대부분의 현대 희극이 그러하듯이 희비극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작품 텍스트의 ‘기표’는 희극적이지만 ‘기의’는 비극성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 작품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의 언어와 행동은 희극적이지만, 이들 언어와 행동 뒤에 감추어진 여백, 즉 행간에서는 비극적인 상황이 읽혀진다. 좀 더 엄밀하게 말하면, 이들 언어와 행동이 희극적이면 희극적일수록 행간의 이야기는 그만큼 더 비극성을 띤다.
☑ 책 속으로
Woyzeck : Herr, Hauptmann, ich bin ein arm Teufel, - und hab sonst nichts auf der Welt Herr Hauptmann, wenn Sie Spaß machen…
Hauptmann : Spaß ich, daß ich die Spaß, Kerl!
보이체크: 중대장님, 전 가난한 놈입니다. 그녀밖에는 이 세상에 가진 것이라곤 하나도 없습니다. 중대장님, 중대장님께서 농담을 하시면…
중대장: 내가 농담을 한다고? 내가 너를 상대로 농담을? 녀석!
☑ 지은이 소개
게오르크 뷔히너(Georg Büchner, 1813 ~ 1837)
요절한 천재 작가 뷔히너, 그가 남긴 작품은 희곡 3편(<당통의 죽음>, <레옹스와 레나>, <보이체크>)과 소설 1편(≪렌츠≫)에 불과하다. 그는 이렇듯 총 4편밖에 안 되는 작품을 남겼지만, 훗날 이 작품들이 일으킨 파문은 해일이 되어 독일 문단을 뒤덮는다. 그는 “이상적인 인물들만을 원하고” 정선되고 다듬어진 문어(文語)만이 공용어로 통용되던 당시의 독일 문단에 결함을 지닌 인간들, 예컨대 당통과 같은 쾌락주의자와 렌츠와 같은 광인을, 보이체크와 같은 제4계급 즉 기층민을 작품의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그리고 이들로 하여금 외설을 입에 담고 토막 언어를 사용하게 했던, 이른바 당대 문단의 이단아였다.
그는 등장인물을 영웅이 아닌 ‘반(反)영웅’으로 설정하고, 이들로 하여금 다듬어진 문어가 아닌 일상어로 말하게 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외적 언어가 주류를 이루던 당시에 ‘의식의 흐름’ 기법의 모태가 되는 내면의 언어, 즉 ‘경험 언어’를 그의 소설 ≪렌츠≫에 도입하기도 했다. 나아가 그는 완결된 문체와 더불어 완결된 구성, 즉 폐쇄 형식만이 문학의 예술성을 담보해주던 독일 문단에서 과감하게 미완의 형식, 즉 개방 형식을 들고 나왔다.
뷔히너의 작품 중 그의 생전에 출판된 것은 <당통의 죽음> 단 한 편뿐이었다. 더욱이 이 작품은 독창성이 부족하고, 등장인물들의 언어가 비속하며, 작품의 구성이 엉성하다는 혹평을 면치 못했다. 그의 작품 전집이 출간된 것은 그가 세상을 떠나고도 40여 년이 지난 1879년이었다. 독일문학사에 커다란 획을 그은 클라이스트, 횔덜린, 카프카 등이 그랬던 것처럼 뷔히너도 당대의 사람들에게는 인정을 받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뷔히너의 <보이체크>가 독일의 시적 리얼리즘 문학을 대표하는 켈러에 의해 “에밀 졸라의 ≪나나≫보다 사실성이 더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은 이래로 뷔히너는 총아로 부활하게 된다. 독일 자연주의 문학을 창도한 하웁트만은 1887년에 베를린의 어느 문학 협회가 개최한 강연회에서 뷔히너의 “힘 있는 언어”와 “생생한 묘사” 그리고 “자연주의적 인물 서술”을 극찬했는가 하면, 그의 작품 ≪사도(使徒)≫와 ≪선로지기 틸≫은 뷔히너의 영향을 받은 최초의 작품으로 기록되기도 한다. 이렇게 뒤늦게 천재성과 현대성을 인정받았지만 그때부터 뷔히너의 문학은 그 영향권을 급속도로 넓혀 나간다. 그는 베데킨트, 트라클 등과 같은 표현주의의 대표적인 극작가 및 시인을 비롯해서 브레히트, 첼란, 막스 프리슈 , 페터 바이스 등 수많은 독일 현대 작가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그 밖에도 12음계를 창안한 작곡가 알반 베르크의 오페라 <보체크> 또한 뷔히너의 <보이체크>를 소재로 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오늘날 독일 문단에서 뷔히너가 차지하는 자리, 즉 그의 의미는 더없이 크다. 이는 우선 뷔히너의 이름으로 수여되는 문학상이 오늘날 독일 문단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으로 자리매김 되었다는 사실에서도 입증된다. 그런가 하면 하인리히 뵐, 엘리아스 카네티, 귄터 그라스 등 독일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들은 뷔히너 문학상 수상 소감에서 모두가 한결같이 자신이 뷔히너 문학의 영향권에 있음을 자랑스럽게 고백한다.
대체로 천재는 개인적 성향이 강한 데 반해 뷔히너는 참다운 삶의 의미를 자신의 삶 안에서 찾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 밖에서, 즉 더불어 사는 삶에서 찾았다. 그는 유복한 시민계급, 즉 유산계급의 아들로 태어나 대학 교육을 받고 미래가 보장된 신분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독재 정권 타도를 위해 반체제 운동에 가담했는가 하면, 굶주리는 농민을 위해 투쟁에 앞장섰다. 그는 자신이 다니던 대학 도시 기센에서 ‘인권협회’를 조직하기도 하고, 농민의 혁명 의욕을 고취하기 위해 <헤센 급전>이라는 정치적 전단(傳單)을 작성해 배포하기도 했다.
뷔히너의 천재성은 문학 창작에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그의 학문 세계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짧은 기간에 문학과 철학, 종교를 비롯한 고대의 정신문화에 관한 서적을 폭넓게 읽었는가 하면, 현대 문학과 철학, 역사를 포함한 인문학 서적을 탐독했으며, 성서를 정독했다. 뷔히너는 읽은 것을 옮기고 그것에 대한 평론을 쓰기도 했다. 그가 남긴 <데카르트론>이라든가 <스피노자론> 등에는 합리주의 내지 관념론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 담겨있다.
이렇듯 인문학 분야에 넓고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던 뷔히너가 막상 대학에서 전공한 학문은 의학, 즉 자연과학이었다. 의사인 아버지의 강요에 못 이겨 택할 수밖에 없었던 전공이지만 그는 공부를 시작한 지 약 5년 되던 해인 1836년 9월에 <물고기 신경조직에 관해>라는 논문으로 슈트라스부르크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같은 해 11월에는 취리히대학으로부터 초빙을 받아 강단에 서기도 했다. 그러니까 그는 불과 23세에 교수가 된 것이다.
하지만 뷔히너의 삶은 안타깝게도 여기서 마감한다. 그는 취리히대학에서 <시험 강의>를 한 지 채 3개월이 지나지 않은 1837년 1월 말 발병해 다음 달 2일부터 병석에 눕는다. 그 후 불과 일주일 만에 혼수상태에 빠져들고, 끝내 같은 달 19일에 세상을 떠난다. 그가 취리히의 크라우트가르텐 공동묘지에 묻히던 날, 장례식에는 지역 유지들과 대학 관계자들이 대거 참석해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 옮긴이 소개
임호일
고려대학교 독문학과에서 학사, 석사 과정을 마치고 독일 뮌헨과 마인츠 대학에서 수학, 오스트리아 그라츠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한국독어독문학회 부회장, 한국뷔히너학회 회장, 동국대학교 도서관장 및 문과대학장을 역임했다. 주요 논문으로는 <번역은 원전에 대한 도전이다?>, <추의 미학의 관점에서 본 뷔히너의 리얼리즘>, <가다머의 예술론>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변증법적 문예학≫(플로리안 파센 저), ≪진리와 방법≫(한스ᐨ게오르크 가다머 저, 공역), ≪한스ᐨ게오르크 가다머≫(카이 하머마이스터 저) 외 다수가 있다.
☑ 목차
보이체크
레옹스와 레나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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