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26일 수요일

연암 산문집 燕巖散文集

지나친 수식과 격식을 버리고 단순 명쾌한 문장으로 문단을 주도해 결국 정조의 문체반정을 이끌어 낸 장본인, 고금 학자들이 우리나라 최고의 글쟁이라고 서슴없이 손꼽는 연암 박지원의 주옥같은 작품을 모았다. 연암에 푹 빠진 박수밀 교수의 정성스런 번역과 자상한 해제를 따라가다 보면 연암의 맛깔스런 문장과 혁신적인 사상뿐 아니라 그의 인간적인 숨결까지 느낄 수 있다.

☑ 책 소개

연암 박지원은 고금의 학자들이 인정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글쟁이이자 실학의 큰 나무다. 창강 김택영은 그의 문장에 대해 천년의 역사 가운데 일찍이 존재한 적이 없던 바라고 극찬했으며 퇴계와 율곡의 도학(道學), 충무공 이순신의 용병술과 더불어 조선의 세 가지 우뚝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현대의 많은 학자들도 연암을 우리나라 최고의 문장가이자 세계의 어느 문인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인물로 평가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연암집≫에는 이와 같은 박지원의 문학과 사상, 삶에 대한 모든 글들이 담겨 있다. 그가 <초정집서>에서 언급한 ‘법고창신’과 <영처고서>에서 말한 ‘조선풍’은 조선 후기 문학과 사상의 정수를 보여 주는 정신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산문은 조선 후기의 새로운 문학 정신과 세계에 대한 통찰력으로 가득하다.

특히 ≪연암집≫ 별집에 실린 ≪열하일기≫는 최고의 기행문학이자 사상서다. ≪열하일기≫에는 박지원의 두 가지 핵심 사상, 곧 백성들의 삶을 이롭게 하자는 이용후생의 사상과 청나라의 우수한 문물을 적극적으로 배워 가난한 조선의 현실을 바꾸는 데 도움을 주자는 북학(北學) 사상이 담겨 있다. 그 가운데 <허생전>은 북벌론의 허구성, 해외 진출 사상, 양반 사대부의 무능 비판, 상공업의 중요성, 이상 사회 건설 등의 주제 의식을 담고 있어 박지원의 생각을 가장 잘 보여 주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박지원은 ≪연암집≫에서 이른바 연암체라 불리는 고유한 문체를 사용해, 기존의 판에 박힌 글투를 과감하게 탈피했다. 전통적으로 지켜야 했던 바르고 고운 문체 대신 비속어를 적극적으로 끌어 쓰는 등 그만의 독특한 문체를 썼으며, 해학과 풍자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당시에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본 번역서는 기존의 번역서들을 두루 참고하면서도 차별화되는 지점을 찾기 위해 고민했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원칙을 정했다. 첫째, 수많은 산문 가운데 연암의 진면목을 총체적으로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주제 분류 및 선정에 심혈을 기울였다. 연암은 위대한 문장가이자 사상가였으며, 세상을 바꾸려는 개혁가이자 평범한 한 인간이었다. 이러한 면모들을 골고루 균형 있게 담아내고자 했다. 독자들이 이 번역서를 읽고 위대한 문장가이자 사상가로서의 연암뿐만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의 연암도 발견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작품을 선별했다.

둘째, 번역은 원문에 최대한 충실하되 가장 현대적인 언어로 바꾸기 위해 노력했다. 옛날과 지금은 사정이 많이 달라졌으므로 원문을 그대로 해석하면 그 의미를 알 수 없는 내용들이 많다. 그럼에도 우선은 원문 그대로를 충실히 번역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풀어 쓸 경우 자칫 연암의 간결한 문장과 맛깔스런 은유를 놓칠 수가 있겠기 때문이다. 따라서 풀어서 번역하면 그 의미가 더 쉽게 이해되는 경우라 할지라도 원문 고유의 색깔을 버리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사람의 자호(字號)만 밝힌 경우는 이름까지 적었으며 지명은 가능한 한 오늘날 명칭으로 바꾸었다. 그때는 호(號)만 써도 독자가 그 이름을 알 수 있었기에 따로 이름을 쓰지 않았을 뿐이다. 지금 연암이 살아 있다면 어떻게 표현했을까를 생각하며 번역을 진행했다.

셋째, 번역자의 주관적인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고 객관적인 언어로 쓰기 위해 노력했다. 예컨대 <일야구도하기>에서 ‘今吾夜中一夜九渡’의 일야구도(一夜九渡) 번역에 대해 많은 분들이 ‘아홉 번이나 건넜다’라고 번역했으나 옮긴이는 ‘아홉 번 건넜다’라고 번역했다. ‘이나’라는 표현은 번역자의 주관이 개입된 것인데, 이 경우 글의 의미를 명료하게 해 주는 장점은 있으나, 연암의 세계관이 매우 냉철하고 객관적이라는 점을 고려해서 가능한 한 감정이 드러나지 않도록 번역했다. 다른 글들도 이와 동일한 기준에서 번역에 임했다.

넷째, 각주는 최대한 줄였다.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글에서 각주까지 읽어야 이해가 되는 번역은 좋은 번역이라고 할 수 없다. 본문만으로도 의미가 쉽게 전달되도록 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 그러다 보니 어떤 경우는 원문에 나와 있지 않은 최소한의 정보를 첨가한 경우도 간혹 있다. 특히 긴 고사를 짧은 몇 마디 문장으로 표현한 원문의 경우, 각주로 달아 주기보다는 본문에서 최대한 요령 있게 압축해서 번역하고자 했다.

한편, 작품마다 해제를 달아 독자들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배려했다. 연암의 작품들은 감춤의 미학을 지향한다. 생각을 직접 전달하지 않고 비유와 알레고리 등을 통해 전달하기 때문에 그 의도한 바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작품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배경 정보들을 다루어 줌으로써 독자들이 작품을 감상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도록 배려했다. 그렇지만 연암은 작품 한 편 한 편마다 새로운 각도에서 접근이 가능하므로 작품을 어떻게 이해하느냐는 순전히 독자의 몫이다.

≪열하일기≫에서도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산문은 선별해 수록했다. 소설 가운데 연암의 면모를 잘 드러낸다고 판단되는 몇 작품을 수록했다. 오늘날 소설로 취급되는 연암 작품들은 사(史), 혹은 전(傳)의 맥락에서 쓰인 것임을 염두에 두었으면 한다. 이 책을 읽고 박지원의 새로운 문학 정신과 세계관, 한 인간으로서의 삶과 지식인으로서의 혜안을 함께 맛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작품을 번역하면서 박지원의 문장력과 생각의 힘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그의 글은 오늘날 그대로 옮겨 놓아도 전혀 진부하지 않고 신선하다. 절제된 언어, 감칠맛 나는 비유, 상식을 뒤집는 싱싱한 생각, 세계에 대한 냉철한 시선 등 좋은 글이 갖추어야 할 요소를 전부 갖추고 있다. 맛난 음식을 맛볼 때와도 같은 즐거움을 독자들도 함께 경험하기를 기대한다.

☑ 책 속으로

●마을의 어린애에게 천자문을 가르치다가 읽기 싫어하기에 꾸짖었더니, 그 애가 말합디다.
“하늘은 푸르고 푸른데 하늘 천(天) 자는 푸르지가 않아요. 그래서 읽기 싫어요.”
이 아이의 총명함이 창힐을 굶어 죽이겠소.

●백호 임제가 막 말을 타려 할 때였다. 하인이 나서며 말렸다. “나리! 취하셨는뎁쇼. 짚신과 가죽신을 한 짝씩 신으셨습니다요.” 백호가 꾸짖으며 말했다. “길 오른편에서 보는 자는 내가 짚신을 신었다고 할 테고, 길 왼편에서 보는 자는 내가 가죽신을 신었다고 할 텐데, 뭐가 잘못이란 말이냐?” 이로 미루어 말하자면 세상에서 보기 쉬운 것으로 발만 한 것이 없으나, 보는 방향이 같지 않으면 짚신인지 가죽신인지도 구별하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참되고 바른 견해는 진실로 옳다 그르다 하는 시비의 가운데에 있는 것이다. 땀에서 이가 생기는 것은 지극히 미묘해서 살펴보기 어렵다. 옷과 살갗의 사이에는 본래 빈틈이 있는데 떨어진 것도 아니고 붙어 있는 것도 아니며, 오른쪽도 아니고 왼쪽도 아니니 누가 그 가운데[中]를 얻겠는가? 말똥구리는 자신의 경단을 아껴 여룡의 구슬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여룡 역시 자신에게 구슬이 있다 해서 저 말똥구리의 경단을 비웃지 않는다.

●저 허공 속을 날며 우는 새는 얼마나 생기가 넘칩니까? 그런데 허무하게 ‘새 조(鳥)’라는 한 글자로 생기를 말살해 빛깔도 없애고 모습과 소리를 삭제하고 맙니다. 마을 모임에 나가는 촌 늙은이의 지팡이 끝에 새겨진 새와 뭐가 다르겠습니까? 어떤 이는 늘 쓰는 말이 싫다고 가볍고 맑은 글자로 바꿔 볼까 해 ‘새 금(禽)’ 자로 바꿔 쓰기도 합니다. 이는 책만 읽고 글을 쓰는 자들에게 나타나는 병폐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푸른 나무 그늘진 뜰에 철새가 짹짹거립니다. 부채를 들어 책상을 치며 크게 외쳤지요.
“이것이 내가 말한 ‘날아가고 날아온다’는 글자고, ‘서로 울고 서로 화답한다’는 글이다. 온갖 빛깔을 문장이라고 한다면 이보다 더 나은 문장은 없다. 오늘 나는 글을 읽었다.”

●나는 본래 삼류 선비다. 내가 본 장관을 이야기하겠다. 깨진 기와 조각이 장관이고, 냄새나는 똥거름이 장관이다. 왜냐? 깨진 기와 조각은 세상 사람들이 버리는 물건이다. 그러나 민간에서 담을 쌓을 때 어깨 높이 위쪽으로는 깨진 기와 조각을 두 장씩 마주 놓아 물결무늬를 만들거나 네 조각을 모아 동그라미 무늬를 만들거나 네 조각을 밖으로 등을 대어 붙이면 옛날 동전 구멍 모양을 이룬다. 기와 조각들이 서로 맞물려 만들어진 구멍들이 영롱하고 안과 밖이 마주 비치게 된다. 깨진 기와 조각을 내버리지 않자 천하의 무늬가 모두 여기에 있게 된 것이다. 동네 집들의 문 앞 뜰에 가난해 벽돌을 깔 수 없으면 여러 빛깔의 유리기와 조각과 냇가의 둥근 조약돌을 주워다 얼기설기 서로 맞추어 꽃·나무·새·짐승 무늬를 새겨 깔아 놓는다. 그러면 비가 오더라도 땅이 진창이 될 걱정이 없게 된다. 기와 조각과 조약돌을 내버리지 않자 천하의 훌륭한 그림이 모두 여기에 있게 되었다.
똥오줌은 세상에서 제일 더러운 물건이다. 그러나 이것이 밭에 거름으로 쓰일 때는 금싸라기같이 아끼게 된다. 길에는 버린 덩어리가 없고 말똥을 줍는 자는 오쟁이를 둘러메고 말 꼬리를 따라다니기도 한다. 이렇게 모은 똥을 거름간에다 쌓아 두는데 혹은 네모반듯하게 쌓거나 혹은 여덟모로 혹은 여섯모로 혹은 누각 모양으로 쌓아 올린다. 똥거름을 쌓아 올린 맵시를 보아도 천하의 문물제도는 벌써 여기에 버젓이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말한다. 기와 조각과 조약돌, 똥거름이야말로 진정 장관이다. 왜 하필 성곽과 연못, 궁실과 누각, 점포와 사찰, 목축과 광막한 벌판, 나무숲의 기묘하고 환상적인 풍광만을 장관이라고 불러야 한단 말인가?

☑ 지은이 소개


박지원(朴趾源, 1737∼1805)
박지원(1737∼1805)은 조선 후기의 문인이자 실학자다. 본관은 반남(潘南)이다. 자는 미중(美仲), 중미(仲美), 미재(美齋)이며, 호는 연암(燕巖), 연상(煙湘), 열상외사(冽上外史)다. 박사유(朴師愈)와 함평(咸平) 이씨(李氏) 사이에서 2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16세에 처사 이보천(李輔天)의 딸과 결혼했다. 장인에게는 ≪맹자≫를, 처삼촌 이양천(李亮天)에게는 ≪사기(史記)≫를 배워 본격적인 학문을 시작했다. 처남인 이재성(李在誠)과는 평생의 문우(文友) 관계를 이어 갔다. 청년 시절엔 세상의 염량세태에 실망해 불면증과 우울증으로 고생했으며 이러한 성장 배경을 바탕으로 진실한 인간형에 대해 모색한 전(傳) 아홉 편을 지어 ≪방경각외전(放璚閣外傳)≫이란 이름으로 편찬했다.

영조 47년(1771) 마침내 과거를 보지 않기로 결심하고 서울 전의감동(典醫監洞)에 은거하면서 홍대용, 이덕무, 박제가, 유득공을 비롯한 많은 젊은 지식인들과 더불어 학문과 우정의 세계를 펼쳐 갔다. 정조 2년(1778) 홍국영이 세도를 잡고 벽파를 박해하자 생명에 위협을 느끼고 황해도 금천군(金川郡)에 있는 연암협(燕巖峽)으로 피신해 은둔 생활을 했다. 연암이란 호는 이 골짝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정조 4년(1780)에 삼종형(三從兄)인 박명원(朴明源)의 연행(燕行) 권유를 받고 정사의 자제군관 자격으로 북경을 가게 되었다. 이때 건륭 황제가 열하에서 피서를 즐기는 바람에 열하까지 가는 행운을 누리게 되었다. 연행을 통해 깨달음을 확대한 연암은 기행의 경험을 수년간 정리해 ≪열하일기≫를 저술했다.

정조 10년(1786) 유언호의 천거로 음사(蔭仕)인 선공감(繕工監) 감역(監役)에 임명되었다. 정조 13년(1789)에는 평시서주부(平市署主簿)와 사복시주부(司僕寺主簿)를 역임했고, 정조 15년(1791)에는 한성부 판관을 지냈다. 그해 12월 안의 현감에 임명되어 다음 해부터 임지에서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이때 정조 임금이 문체를 타락시킨 장본인으로 ≪열하일기≫를 지목하고는 남공철을 통해 순정한 글을 지어 바치라 명령했으나 직접 응하지는 않았다. 정조 21년(1797) 61세에 면천 군수로 임명되었다. 이 시절에 정조 임금에게 ≪과농소초(課農小抄)≫를 지어 바쳐 칭송을 들었다. 1800년 양양 부사로 승진했으며 이듬해 벼슬에서 물러났다. 순조 5년(1805) 10월 20일 서울 가회방(嘉會坊)의 재동(齋洞) 자택에서 깨끗하게 목욕시켜 달라는 유언만을 남긴 채 세상을 떠났다. 선영이 있는 장단(長湍)의 대세현(大世峴)에 장사 지냈다.

박지원의 문학 정신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법고창신(法古創新)’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옛것을 본받되 변화를 알고 새롭게 지어내되 법도를 지키라”는 의미다. 그는 문학의 참된 정신은 변화의 정신을 바탕으로 창조적인 글을 쓰는 데 있다고 생각했다. 비슷하게 되려는 것은 참이 아니며, ‘닮았다’고 하는 말 속엔 이미 가짜가 들어 있다는 것이다. 연암은 억지로 점잖은 척 고상한 글을 써서는 안 되며 오직 진실한 마음으로 대상을 참되게 그려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하여 그는 틀에 박힌 표현이나 관습적인 문체를 거부하고 그만의 독특한 글투를 지향했다. 이러한 그의 글쓰기에 대해 세상 사람들은 ‘연암체’라고 불렀다. 나아가 옛날 저곳이 아닌 지금 여기를 이야기하고자 했다. 중국이 아닌 조선을, 과거가 아닌 현재를 이야기할 때 진정한 문학 정신을 구현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를 일러 ‘조선풍(朝鮮風)’이라고 하는데 ‘조선의 노래’란 뜻이다.

연암의 학문적 성취와 사상은 ≪열하일기≫에 집대성되어 있다. ≪열하일기≫에서 연암은 이용후생의 정신을 기반으로 청나라의 선진적 문물을 받아들여 낙후된 조선의 현실을 타개하자는 주장을 펼침으로써 북학파를 대표하는 학자로 우뚝 서게 되었다.

그는 ≪열하일기≫ 외에도 ≪방경각외전≫, ≪과농소초≫, ≪한민명전의(限民名田議)≫ 등을 직접 편찬했다. 연암의 유고는 그의 아들 박종의와 박종채에 의해서 정리되었는데 박종채가 쓴 <과정록추기>에 의하면 연암의 유고는 문고 16권, ≪열하일기≫ 24권, ≪과농소초≫ 15권 등 총 55권으로 정리되었다. ≪열하일기≫ 의 경우, 오늘날 완질은 26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연암의 작품은 대부분이 문(文)이며 시(詩)는 42편이 전한다.

☑ 옮긴이 소개


박수밀
박수밀은 경기도 양평 사람이다.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에서 <연암 박지원의 문예미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 연구교수로 있다. ≪박지원의 미의식과 문예이론≫, ≪18세기 지식인의 생각과 글쓰기 전략≫, ≪글로 만나는 옛 생각 고전산문≫ 등을 썼다. 분과 학문의 경계를 벗어나 문학을 교육, 철학, 미학 등과 가로지르는 통합의 학문을 지향한다. 인간과 자연, 문화와 현실, 민족과 민족 간에 새로운 관계를 만들고자 했던 실학자들의 인문 정신을 논리화해서 21세기 인간성 회복과 자본주의 모순 극복이라는 문제를 풀어 가고 싶어 한다. 고전에서의 글쓰기 전략, 실학의 인문 정신, 동아시아 문화 교류, 21세기 생태 사상에 대해 꾸준히 공부하고 있다. 성품이 온화하지만 우유부단한 면이 있으며, 자유와 평화, 정의와 진실, 배려와 헌신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낮은 것, 약한 것들에 대해 애정을 갖고 있으며, 지식이 삶에서 실천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믿고 있다.

☑ 목차

사이에서 생각하기
몸을 보존하는 법 以存堂記 ·············3
천자문을 싫어한 아이 答蒼厓之三 ··········8
고라니의 크기 答某 ················9
말똥 경단과 여의주 蜋丸集序 ············12
사물은 본디 정해진 색이 없다 菱洋詩集序 ·······16
영원한 것은 없다 泠齋集序 ·············21
공(空)을 보아라 觀齋記 ··············24
매미 소리와 귤 향기 蟬橘堂記 ············28
나를 사랑한다는 것 愛吾廬記 ············34
대나무를 사랑한 사람 竹塢記 ············38
울음의 역설 好哭場 ················41
하룻밤에 강을 아홉 번 건넌 사연 一夜九渡河記 ····46
코끼리 이야기 象記 ················52
시간와 역사 馹迅隨筆序 ·············58
백이를 말한다 伯夷論 上 ·············61
밤에 고북구를 나서다 夜出古北口記 ········65
문장가의 마음
글쓰기와 선변(善變) 楚亭集序 ···········73
글쓰기의 요령 騷壇赤幟引 ·············79
귀 울음과 코골이 孔雀館文稿自序 ··········85
습관이 오래되면 천성이 된다 自笑集序 ········89
책 읽기의 단계 素玩亭記 ··············94
천지자연이 독서다 答京之之二 ···········99
사마천과 나비 잡는 아이 答京之之三 ········101
글은 홀로 쓰는 것 答蒼厓 ·············103
매미 소리가 책 읽는 소리 與楚幘 ·········106
문장의 네 가지, 성색정경 鍾北小選自序 ······108
조선의 노래 嬰處稿序 ···············112
몰두해야 이룬다 炯言挑筆帖序 ···········117
비슷함을 구하지 말라 綠天館集序 ·········120
속 빈 강정과 개암 旬稗序 ·············124

생활의 발견
머리 기른 중 髮僧菴記 ··············131
새벽달은 누나의 눈썹 같고 伯姊贈貞夫人朴氏墓誌銘···139
여름날의 추억 夏夜讌記 ··············142
스승과 제자 酬素玩亭夏夜訪友記 ··········145
취해서 운종교를 거닐다 醉踏雲從橋記 ········152
말 머리서 무지개를 보다 馬首虹飛記 ········157
친구 석치를 조문함 祭鄭石癡文 ··········160
친구를 잃은 슬픔 與人 ··············163
여행길에서 꿈꾸다 渡江錄 七月六日 ·········166
유리창에서 고독을 외치다 關內程史 八月四日 ····171

현실과 사회
벗을 사귀는 방법 會友錄序 ············179
백영숙이 기린협으로 간 까닭 贈白永叔入麒麟峽序 ···185
열녀 함양 박씨의 죽음 烈女咸陽朴氏傳 ·······188
오랑캐란 모함에 대한 변명 答李仲存書 ·······196
친구는 제2의 나 繪聲園集跋 ············200
북학의 참뜻 北學議序 ···············204
송욱, 미치다 念齋記 ···············209
진정한 볼거리 壯觀論 ···············213
요술보다 무서운 것 幻戲記後識 ··········221
민 노인 이야기 閔翁傳 ··············228
참다운 친구, 예덕선생 穢德先生傳 ·········241
호랑이의 꾸짖음 虎叱 ··············249

해설 ······················269
지은이에 대해 ··················278
옮긴이에 대해 ·················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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