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왜 그 어렵고 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고 싶어 할까요?
영화 <러브레터> 기억나세요? 오겡키데스카! 영화에 감동받아서, 거기 나오는 책을 읽어보겠다고 매일 도서관을 다녔었습니다. 책을 사고 싶었는데 11권짜리라 도서관에서 빌려보는 수밖에 없었거든요. 결국 두 권도 채 못 읽고, 그해 겨울이 다 지나갔습니다. 저와 같은 경험을 한 분께, 이 책을 권합니다.
“≪스완의 사랑≫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거대한 대륙 속에 위치한 작은 호수 또는 작은 독립국과 같다. 즉 대륙에 에워싸여 대륙과 다양하게 교류하지만 독자성을 확실하게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왜 그렇게 어렵고 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고 싶어 할까요? 사랑의 본질에 대해 알고 싶어 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프루스트는 사랑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난데없이 우리를 사로잡는 불안의 열기”. 스완은 그렇게도 싫어하는 스타일의 오데트를 어느 순간 사랑하게 됩니다. 사랑은 인간이 스스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죠. 그건 사람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존재하는 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랑을 할 때, 자신의 의지와는 다른 행동을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심오하고 진지하게만 보이는 프루스트는 오히려 재미있는 사람이 아닐까 싶습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20세기 세계문학이 얻은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손꼽힙니다. 그렇지만 11권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 때문에 접근하기가 힘들었죠. ≪스완의 사랑≫은 그중 제1권에 삽입된 일화입니다. 텍스트에 주를 곁들인 주석본이라고 할 수 있죠. 최근에 바칼로레아(프랑스 대학진학자격고사) 프로그램에 포함되어 독립적인 작품으로서 인정받았습니다.
겨울입니다. ≪스완의 사랑≫으로 잃어버린 당신의 시간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
☑ 책 속으로
그를 매혹한 낯선 여인의 눈에 스완이란 이름 자체에는 내재되지 못한 귀족성을 과시하고 싶은 욕구를 일으켰기 때문이었다. 미지의 여인이 가난한 계층에 속했을 때 특히 그의 과시욕은 발동했다. 명석한 남자가 다른 명석한 남자의 눈에 바보로 보일까 봐 두려워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멋쟁이 남자가 자신의 멋이 무시당할까 봐 걱정하는 것은 대귀족 앞에서가 아니고 촌뜨기 앞에서인 것이다.
- p.24
스완이 화난 척하면 그녀는 함빡 웃음을 터트렸고 웃음은 키스 세례가 되어 그에게 다시 떨어지는 것이었다. 어떤 땐 그녀는 침울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는데 그러면 그는 보티첼리의 <모세의 생애>에 그려져도 좋을 만한 얼굴을 다시 보았다. 그는 그 얼굴을 거기에 올려놓고 오데트의 목에 적절한 기울임을 만들어 주었다. 그녀를 15세기의 시스티나 성당 내벽에 데트랑프 데트랑프(détrempe): 물감에 고무나 풀, 달걀을 섞은 물을 첨가하여 희석하는 방식으로, 시스티나 성당 내벽의 보티첼리 벽화의 마무리에 사용된 기법.
화로 다 그려 넣고 나면, 그렇게 했는데도 그녀가 현재 순간에 피아노 옆에 키스를 받고 소유될 준비가 되어 바로 거기 있다는 생각이, 그녀가 육신을 가지고 살아 있다는 생각이 얼마나 강렬한 힘으로 그를 도취시켜 주는지,
- p.86
이 음악회 이후, 스완은 오데트가 자신에 대해 가졌던 감정은 결코 다시 생기지 않으리라, 행복의 소망은 결코 실현되지 못하리라 이해했다. 그리고 우연히도 그녀가 자기에게 상냥하고 다정하게 대하고 섬세한 마음씨를 보이기라도 하는 날이면 그는 그녀 마음이 조금 되돌아온 것처럼 보이는 이 피상적이고 거짓된 표시들을 가슴에 새겨 놓았다.
- p.244
☑ 지은이 소개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
1871년 7월 10일 파리에서 태어난다.
1874년 동생 로베르가 출생한다. 후일 로베르는 아버지에 이어 외과의로 성장해 의과대학 교수가 된다.
마르셀은 1880년에 최초로 천식 발작을 겪는데, 이 병은 그를 평생 구속하게 된다.
1882∼1889년 그는 파리의 리세 콩도르세에서 중등교육을 받는다. 문학 소년 마르셀은 특히 상징주의 문학과 철학에 열중하는 한편 마들렌 르메르 살롱, 스트로스 부인 살롱 등 사교계 출입을 시작한다.
1890년 파리의 법과대학에 등록하지만 여전히 사교 생활에 열중한다.
1892년 상징주의 잡지인 <르 방케>에 글을 쓴다. 로베르 드 몽테스키외와 친분을 맺는다.
1898년 열렬한 드레퓌스파가 된다.
1899년 러스킨의 ≪아미앵의 성서≫를 어머니와 마리 노르드랭거의 도움을 받아 번역한다.
1904년 러스킨의 프루스트 번역 ≪아미앵의 성서≫가 출간된다.
1907년 <존속 살해자의 심리>를 발표하고, 알프레드 아고스티넬리를 운전기사로 채용해 노르망디 지방을 여행한다.
1900∼1912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제목의 작품을 두 권으로 엮어 낼 계획을 한다.
1913년 11월 이 책의 1편 ≪스완네 쪽으로≫가 그라세 출판사에서 출판된다. 전 운전기사 아고스티넬리를 타이프 기사로 재고용한다.
1914년 5월 4일 아고스티넬리가 비행기 사고로 사망한다. 프루스트는 제2권을 준비하던 중에 계획을 변경해 세 권으로 만들기로 작정하는데, 7월 28일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해 간행계획은 중단된다.
1914∼1918년 프루스트는 병 때문에 군복무를 면제받는다. 진행 중인 소설 집필에 몰두하는데 그러면서 작품은 길어진다.
1919년 3월 프루스트는 1908년에서 1909년까지 <르 피가로>지에 기고했던 모작들을 발전시킨 산문집인 ≪모작과 잡록≫을 NRF에서 출판한다. 같은 해 6월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제2권인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를 NRF에서 출판하는데, 이 책은 12월에 공쿠르상을 수상한다.
1920년 제3권 ≪게르망트 I≫ 출간.
1921년 ≪게르망트 II≫, ≪소돔과 고모라 I≫ 간행. 프루스트는 죄드폼 미술관에서 네덜란드 회화전을 관람하던 중에 몸에 이상을 느낀다.
1922년 4월 ≪소돔과 고모라 II≫ 간행. ≪갇힌 여자≫를 교정하던 중 11월에 폐렴으로 사망한다.
1923년 11월 ≪갇힌 여자≫는 로베르 프루스트와 자크 리비에르에 의해 출판된다.
1925년 ≪사라진 알베르틴 또는 사라진 여자≫ 출판.
1927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마지막 편인 ≪되찾은 시간≫과 ≪평론집≫ 발간.
1952 베르나르 드 팔루아는 프루스트가 1895년부터 1899년까지 작업한 소설 초고를 ≪장 상퇴유≫라는 제목으로 정리해 출판한다.
1952년 베르나르 드 팔루아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집필된 글들을 수합해 ≪생트뵈브에 반대함≫이라는 제목으로 출판한다.
1954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피에르 클라라크와 앙드레 페레의 주석과 감수로 세 권으로 묶여서 갈리마르 플레이아드 총서로 간행된다.
1962년 국립도서관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육필본을 지은이의 후손으로부터 인수해 소장한다.
1971년 탄생 100주년. 행사의 하나로 클라라크와 상드르의 감수 및 주석으로 ≪장 상퇴유≫와 ≪생트뵈브에 반대함≫이 플레이아드 총서로 출판된다.
요약하면 프루스트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단 한 작품을 남긴 작가다. 생전에 자비로 출판한 ≪즐거움과 나날≫은 젊은 시절에 쓴 산문집이며, 사후에 엮인 ≪장 상퇴유≫나 ≪생트뵈브에 반대함≫ 등은 미완의 글들이다.
☑ 옮긴이 소개
남수인
남수인은 프랑스 보르도III 대학에서 프랑스 문학(현대소설 전공)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현재 상명대학교 사범대학 불어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마르셀 프루스트와 마르그리트 뒤라스 같은 프랑스의 20세기 작가들과 프랑스어문학의 교수법에 대해 연구했다.
번역서로 가에탕 피콩의 ≪프루스트 읽기≫,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의 ≪하드리아누스의 회상록≫과 ≪알렉시≫, ≪세 사람≫, 나탈리 사로트의 ≪황금열매≫, 롤랑 바르트의 ≪라신에 관하여≫, 자크 데리다의 ≪글쓰기와 차이≫, ≪환대에 대하여≫, 모리스 메를로퐁티의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미셸 옹프레의 ≪계몽주의시대의 급진철학자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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