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2월 26일 토요일

사회에 관한 새로운 의견 A New View of Society

세계 최초의 유치원과 세계 최초의 생활협동조합을 만든 로버트 오언의 ≪사회에 관한 새로운 의견≫이 나왔다. 오언은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가 모든 사회적 관계를 파괴한다고 생각하고 새로운 사회를 꿈꾸었고 만들었다. 오언이 강조했던 새로운 교육의 필요성과 협동조합 운동의 중요성은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도 여전히 의미를 가진다.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가져온 심각한 사회적 양극화는 다시 일하는 사람들을 빈곤과 고통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교육은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을 소수를 선발하는 비합리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무엇이 이런 극단적인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이 책은 하나의 좋은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다.


지은이에 대해 

로버트 오언(Robert Owen)은 1771년 5월 14일 영국 웨일스(Wales)의 몽고메리 주(Montgomeryshire) 뉴타운에서 태어났다. 일곱 형제 중 여섯째로 태어난 오언은 10살 때부터 런던의 방직공장에서 도제로 일하며 일찍 세상에 눈을 떴다. 그 뒤 오언은 섬유와 관련된 각종 일거리들을 체험하면서 직물을 관리하고 다루는 방법, 재고를 기록하고 장부를 작성하는 법, 다양한 고객들을 상대하는 법 등을 배우며 십대를 보냈다.

열심히 노력한 덕분인지 불과 19살의 나이로 오언은 존 존스와 함께 방직기계 제조 공장을 차릴 수 있었다. 그리고 22살이 되던 1792년 4월에는 맨체스터(Manchester)에 있던 대규모 방직공장의 지배인이 되었다. 약 500명의 직공을 관리하던 오언은 제품의 질을 개량하고 작업 공정을 합리화시켜 영국 최고의 공장으로 만들었다.

도제로 일하기 전에 학교를 다닌 것을 제외하면 교육을 받지 못했던 오언은 이렇게 사회적 지위를 쌓은 뒤에 맨체스터대학교의 학자들과 교류하며 학문에 관심을 쏟기도 했다.
그러던 중 글래스고에서 만난 캐롤라인 데일(Caroline Dale)과 1799년 결혼하고 장인인 데이비드 데일에게서 뉴래너크의 방직공장을 인수해서 지배인이 되었다. 1813년 ≪사회에 관한 새로운 의견≫에서 얘기된 내용은 이 뉴래너크의 실험을 통해 증명되었다.

오언은 1812년 <뉴래너크 시설에 관한 주장>이라는 소책자를 발간했고 산업사회에서 자신의 실험이 가진 진보적인 의미를 강조했다. 1816년에는 어린아이의 성격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핵심 시설인 ‘새로운 시설(new institution)’을 실제로 만들어서 다양한 연령대의 아이들이 이 학교에서 시간을 보내도록 했다(세계 최초의 유치원으로 알려진 이 시설은 무료로 운영되었고 그 비용은 공장의 협동조합을 통해 마련되었다). 이런 다양한 실험으로 뉴래너크는 전 세계적으로 알려졌고 많은 사람들이 뉴래너크를 방문했다.

1817년에 오언은 <빈곤을 줄이기 위한 사회주의적 계획(Plans for alleviating poverty through Socialism)>을 발표해 자신의 구상을 사회주의와 연관시켰다. 오언은 이 글에서 인간 노동력과 기계가 경쟁하는 것이 영원한 고통의 원인이고 그것을 치료할 것이 바로 인간의 단결과 상호 협동이라고 주장했다. 오언은 이런 공동체의 공간적인 배치도 세심하게 설계했는데, 공동체는 1000∼1500에이커의 땅에 1200명 정도의 사람들이 생활해야 하고 공동 부엌과 식당 등을 갖춰야 했다.

오언은 이런 공동체들이 늘어날 때 세상도 자연스럽게 변화되리라 믿었다. 오언은 화폐로 계산되는 이윤만을 추구하는 기업가들을 비판하면서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협동조합으로 노동자들의 복지를 증진시키려 했다.

오언은 자신의 구상을 뉴래너크만이 아니라 영국 전체로 확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래서 총리를 비롯한 정부의 주요 지도자들과 얘기를 나눴고 영국 정부나 래너크 지방정부에 보고서를 제출하기도 했지만 오언의 제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리고 뉴래너크에서의 실험은 큰 성공을 거뒀지만 경제적인 이익을 고려하거나 종교 교육을 강요하는 동업자들은 오언의 계획을 방해했다.

결국 오언은 뉴래너크를 잠시 떠나 미국으로 향했고 1826년에 미국의 인디애나 주 뉴하모니(New Harmony)에 공동체를 세웠다. 하지만 이 공동체들은 2년을 넘기지 못했고, 오언은 다시 실패를 경험했다. 하지만 오언은 결코 자신의 신념을 포기하지 않았다.

1829년 다른 동업자들과의 갈등 때문에 오언은 뉴하모니와 완전히 관계를 끊었다. 미국에서 돌아온 오언은 주로 런던에서 활동했다. 오언은 대부분의 재산을 미국의 공동체 실험에 사용했기 때문에 부자가 아니었고, 그래서 실제 실험보다 사회주의와 세속주의가 결합된 자신의 이상을 선전하는 데 앞장섰다.

이 당시 오언이 벌였던 운동 중에서 흥미로운 것은 1832년부터 시작한 공정한 노동교환제도다. 오언은 전국공정노동교환소(National Equitable Labor Exchange)를 설립하고 활동을 시작했는데, 이 제도는 각자가 일한 기록만으로 직접 필요한 재화나 서비스를 장만하도록 해서 중간 유통 과정을 없앴고, 협동 노동으로 노동자의 자주성을 기르고 협동 사회를 실현하려 했다. 하지만 런던의 교환제도는 1833년까지 유지되었고, 버밍엄의 지부는 1833년 7월 이후 몇 달 동안만 유지되었다.

1835년부터 오언은 ‘모든 국가의 모든 계급들의 연합’을 얘기하기 위해 ‘사회주의’라는 단어를 쓰기 시작했다. 오언은 노동계급 사이에서 영향력을 얻었고 오언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퀸우드(Queenwood), 랠러하인(Ralahine), 클레어(Clare), 타이덜리(Tytherly)에서 공동체 실험을 벌였다. 이 공동체들은 잠깐 동안 큰 성공을 거뒀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그 뒤에도 오언은 소책자와 대중 강연, 잡지 등에서 자신의 생각을 열정적으로 펼쳤고 점점 유심론(Spiritualism)에 빠졌다. 1858년 11월 17일 오언은 자신의 고향에서 숨을 거뒀다.
오언이 죽은 뒤에도 뉴래너크는 계속 유지되었고, 1975년에는 뉴래너크 보존 트러스트가 만들어져 대부분의 건물을 잘 보존하고 있다. 2001년에는 유네스코가 이 지역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오언의 아들인 로버트 데일 오언(Robert Dale Owen)은 아버지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미국에서 부의 균등한 분배와 산업교육의 확대를 주장했다. 인디애나 주 주의원, 연방정부 하원의원을 지내기도 했던 데일 오언은 남북전쟁이 터지자 링컨 대통령에게 노예제도를 폐지하라고 권유하기도 했다.


옮긴이에 대해 

하승우는 1971년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 배정고등학교, 경희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 정치외교학과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경희대 정치학과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석사 논문으로 <마르쿠제(Herbert Marcuse)의 모더니티 비판>을, 박사 논문으로 하버마스의 공론장 개념을 재구성한 <풀뿌리공론장에 관한 이론적 고찰>을 썼다. 비판이론과 풀뿌리민주주의, 아나키즘, 시민사회이론 등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대학 시절부터 아나키즘에 관심을 가졌고 대학원을 다니면서부터는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비판이론을 전공했다(뭔가 기성사회에 불만이 많았던 게다). 그리고 2001년 시민자치정책센터(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와의 만남은 한국 사회의 풀뿌리 운동을 이해하고 이론을 현실에 적용할 기회를 줬다(너무 소중한 인연이다). 또 박사 논문을 쓰고 난 후인 2006년 한양대 제3섹터연구소에 연구교수로 들어가 지금까지 일하고 있다[공부하며 쌓은 빚을 청산하고 새 삶(?)을 시작하도록 도와줬다]. 그리고 2007년 문학평론가 이명원, 오창은과 함께 <지행네트워크>를 만들어 인문사회과학의 새로운 전망을 모색하고 있다(공생공락의 삶을 체험하는 소중한 인연이다).
이론적이고 현실적인 관심은 이런 관계와 만남을 통해 성장했다. 이런 성장의 결과물들을 모아 ≪희망의 사회윤리 똘레랑스≫, ≪참여를 넘어서는 직접행동≫, ≪세계를 뒤흔든 상호부조론≫, ≪군대가 없으면 나라가 망할까≫라는 책으로 묶었다. 그리고 ≪아나키스트의 초상≫(폴 애브리치), ≪리바이어던≫(토머스 홉스)을 우리말로 옮겼다. 그 외에 <공론장에서의 말과 행위에 관한 연구>, <정부의 주민투표제도 악용과 시민사회의 역할>, <한국의 지역사회와 새로운 변화 전략의 필요성>, <항일운동에서 ‘구성된’ 아나코 코뮨주의와 아나키즘 해석 경향에 대한 재고찰>, <한국 풀뿌리민주주의의 사상적 기원에 관한 고찰>, <풀뿌리민주주의, 엘리트민주주의에 도전하다>와 같은 논문들을 썼다.


차례

해설 ·····················7
지은이에 대해 ················17

제1에세이 ··················25
제2에세이 ··················30
제3에세이 ··················45
제4에세이 ··················87

옮긴이에 대해 ················138


책 속으로

These plans must be devised to train children from their earliest infancy in good habits of every description which will of course prevent them from acquiring those of falsehood and deception. They must afterwards be rationally educated, and their labour be usefully directed. Such habits and education will impress them with an active and ardent desire to promote the happiness of every individual, and that without the shadow of exceptions for sect, or party, or country, or climate. They will also ensure, with the fewest possible exceptions, health, strength, and vigour of body; for the happiness of man can be erected only on the foundations of health of body and peace of mind.

이런 계획들은 아이들이 어릴 적부터 모든 종류의 좋은 습관(당연히 이 습관은 아이들이 거짓말을 하거나 사람들을 속이는 습관을 몸에 익히지 않도록 막을 것이다)을 익히도록 고안되어야만 한다. 그 뒤에도 아이들은 합리적으로 교육을 받아야만 하고 그 노동력은 유용하게 지도되어야 한다. 그런 습관과 교육은 사람들이 능동적이고 정열적인 욕망을 품고 모든 개인의 행복을 늘리도록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리고 종파나 정파, 국가나 풍토 때문에 배제되는 일이 조금도 없을 것이다. 이런 습관과 교육은 거의 아무런 예외도 없이 건강하고 활기차며 생기 있는 육체를 보증할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행복은 육체의 건강함과 마음의 평온함에 의지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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