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어드는 소위 혁신주의와 상대주의 사관을 형성시킨 역사가이자 정치학자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1874년 인디애나(Indiana) 주의 나이츠타운(Knightstown)에서 태어나 드포(De Pauw)대학교과 컬럼비아(Columbia)대학교에서 수학하고 동 대학교에서 정치학을 가르쳤다. 1917년에 학문의 자유를 위해 교수직을 사임했고, 이후 몇 년을 제외하고는 대학에 돌아가지 않았다. 그는 역사 연구에 있어서 객관적인 역사 해석을 중시하는 19세기와 20세기 초의 레오폴트 폰 랑케(Leopold Von Ranke)식의 실증주의에 반기를 들고 역사적 상대주의를 주장했다.
1913년에 이 책이 출판된 후 1930년대까지 그의 주된 관심은 미국 제도에 대한 비판이었다. 미국 사학계에서 그의 학문적 영향력은 거의 절대적이어서 후학들 중 어느 누구도 그의 저작을 읽지 않고는 미국의 제도와 미국사와 미국 헌법 문제를 제대로 이해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심지어 그를 강력하게 비판한 마르크스주의자, 예를 들어 유진 제노비스(Eugene D. Genovese)조차도 그의 학문적 영향력을 인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점을 알 수 있다.
이 책의 주요 논지는 1787년 여름에 미국 헌법을 만든 55명의 제헌회의 대표자들과, 헌법이 만들어지고 난 후 이를 비준하던 주비준회의에 참석했던 사람들의 경제적 이익이 어떤 관계를 갖고 있었는가를 분석하는 것이다. 즉 미국 헌법을, 건국 선조들이 사리사욕을 초월해서 제정한 철학적 원칙을 가진 신성한 문서라고 보는 전통적인 해석에 대항하여, 그는 미국 헌법이 동산 소유자․채권자와 소농민․채무자 이익집단들 간 대립의 결과였으며, 전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경제적 문서라는 새로운 해석을 시도했다. 이런 기본적인 논지를 바탕으로 이 책은, 기존 역사 해석의 비판(여기서부터 1930년대 그의 상대주의적인 역사 해석의 뿌리가 보이고 있다), 제헌회의 대표자 선출에서의 경제적 이익, 소수 대표자 선출을 위한 투표권의 재산 자격 제한, 새 정부 출범으로 인한 제헌회의 대표자들의 경제적 이익(특히 동산), 경제적 문서로서의 헌법과 비준회의 대표자들의 경제적 이익 등을 차례로 논하고 있다.
이 책은 출간 이후 미국사와 미국 법조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미국 헌법을 신성시하던 미국인들은 경악했고, 혁신주의 성향이 일어나고 있던 당시 학계는 칭찬을 했다. 이 책은 경제적 결정론에 입각해 있지만 경제적 결정론자의 책은 아니다. 즉 1935년판 저자 서문에서 “역사가 경제적 관점이나 혹은 어느 기타 한 관점으로 ‘설명될’ 수 있다거나 혹은 ‘설명되어야’ 한다는 등의 생각을 결코 하고 있지 않다. 진정으로 역사를 ‘설명’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신학자들이 말하는 소위 신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고 말하여 그의 저술이 편파적인 것이 아님을 밝히고 있다. 말하자면 그는 마르크스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이나 마키아벨리의 저술, 심지어 미국 헌법을 지지하는 입장에서 작성된 ≪연방주의론≫ 제10호, 대니얼 웹스터(Daniel Webster, 1830∼1840년대 북부를 대변하던 미국 정치가)의 저술 등에서, 경제적 결정론이나 계급갈등이 존재했었다고 주장한다. 어느 역사가든 나름대로의 역사 해석을 할 수 있듯이, 그도 신념에 따라 경제적 분석을 했던 것이다.
프레더릭 J. 터너(Frederick J. Turner)와 함께 20세기 전반에 혁신주의 학파를 이끌었던 그는, 시간이 흐르면서 초기의 이런 경제적 결정론을 점차 미국적 민주주의를 찬양하는 방향으로 바꾸었다. 그런 점은 1943년 마지막 저술인 ≪공화국(The Republic)≫에 가장 잘 드러나 있다. 그는 초기의 산업주의 발견과 기성 제도 비판에서 점차 미국문명과 민주주의를 찬양하는 쪽으로 기울어졌다. 그는 대체로 전문적인 학술서는 제도에 대한 비판을 위주로 썼고, 개설서는 미국적 민주주의를 우호적으로 보는 관점에서 서술했다.
이 책은 저자의 학문적 권위와 문체 및 연구 방법론 등의 측면에서, 학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저자는 수많은 관련 인물들의 경제적 배경을 세밀하게 추적하여 결론을 끌어냈으며, 이를 통하여 새로운 연구 방법론과 서술상의 기술을 역사학도들에게 보여주었다. 그의 통계적인 기법과 유려한 서술 방식 또한 후학들의 귀감이 되었다.
여기서 미국 헌법에 대해서 간단하게 설명하는 것이 좋겠다. 미국 헌법은 미국의 기본적인 정치, 경제, 사법제도를 간명하게 체계화해 규정하고 있다. 미국 헌법 본문은 7개 조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조는 모든 입법권을 연방의회 상하 양원에 부여하고 있다. 이 권한에는 조세 부과, 금전 차용, 주간 통상(州間通商)의 규제, 군사력에 관한 규정, 전쟁 선포, 하원 의석수 및 의사 규칙 결정 등이 포함된다. 하원은 탄핵소추 절차를 개시하며 상원은 이에 대해 심판한다. 제2조는 행정권을 대통령에게 부여하고 있다. 대통령의 공식적 책무에는 행정부의 수반, 군의 총사령관, 조약 체결자(상원의원 3분의 2의 동의를 요함)로서의 책무 등이 있다. 제2조 2항 대통령의 임명권은 광범위하지만 상원의 ‘조언과 동의’(의원 과반수의 승인)에 따라야 한다. 대통령의 비공식적 책무는 의회에 대한 입법 제안을 비롯한 정치적 지도까지 포괄하는 것으로 확대되어왔다. 제3조는 사법권을 각급 법원에 부여하고 있다. 각급 법원에서 연방헌법을 해석하며 연방대법원은 주법원과 하급 연방법원의 최종 상소 법원이다. 미국 법원들은 법률의 합헌성 여부를 결정하는 사법 심사권을 가지는데, 법원이 이처럼 헌법에 명시되어 있지 않은 비상한 권한을 행사하는 예는 다른 나라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헌법 제5조에 의하면 헌법 수정안은 연방의회 양원에서 3분의 2의 투표로 제안하거나, 3분의 2 이상의 주의회 요구로 연방의회가 소집하는 헌법회의에서 발의할 수 있다. 주의회나 연방의회가 발의한 수정안은 주의회의 4분의 3 이상 혹은 같은 수의 주헌법회의에서 비준을 받아야 한다.
1789년 이래 26개의 수정 조항이 헌법에 추가되었다. 최초 10개의 광범위한 수정 조항들 이외에, 1865년 노예제를 폐지하는 제13조, 1868년 흑인에게 공민권을 부여한 제14조, 1870년 인종에 관계없이 투표권을 보장하는 제15조가 있다. 1913년 제17조는 연방 상원의원의 직선을 규정하고 있으며, 1920년의 여성 참정권에 관한 것은 제20조다. 1951년의 제22조는 대통령 재임을 2회로 제한하고 있다. 미국 헌법은 성문헌법이라는 외양에다가 국민에게 주권을 위임하고 연방의 주에 대한 우위를 천명했으며, 삼권분립 원칙과 지방자치제, 그리고 사법권의 위헌심사권이라는 내용이 들어 있다.
사실 미국 헌법은 미국 법들의 최고법이자 미국 법치주의의 근간이 되었다. 피상적인 헌법의 모습과 달리 미국 헌법을 만드는 과정에는 수많은 변수와 이해관계가 상충되었고, 합의를 찾아야 했다. 그 합의는 거대한 담론과 소소한 구절에 대한 토론과 해석의 길고긴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일일이 모든 자구를 가지고 토론을 하는 과정에 대표자들의 수많은 담론과 철학과 경제적 이해관계가 충돌했던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55명의 대표자가 누구도 경제적 이해관계로 헌법을 만들었다고 구두로 고백하거나 글로 남겨둔 경우는 없기 때문에, 비어드의 글은 모두 직설법이 아닌 추정이라 할 수 있다. 그 추정이 애매모호한 철학적 언사가 아닌 분명한 역사적 사실로 증명되고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더욱 분명하게 다가온다.
경제적 이해관계, 다시 말해서 55명의 대표자들과 각주의 비준회의 대표자들이 재산을 늘리려고 헌법을 만들었다는 생각은 얼마나 신선하며 비판적인가? 이 책이 나온 지 어느덧 100년이 되어가고 있다. 100년 가까이 계속해서 읽히고 끊임없이 논쟁이 되었으니 고전이라 할 만하다. 많은 학자들이 여러 가지 역사적 사실로 이 책의 잘못을 지적하고 있다. 비어드가 완벽한 인간이 아니고 완전한 역사학자가 아니었듯이, 이 책도 역사적 사실 확인에서 약간의 잘못을 저질렀고, 1935년판 서문에서 저자도 그것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약간의 잘못이 책의 명성을 바꿀 정도는 아니었다. 그는 그 후 한자의 자구도 고치지 않았으며, 지금까지 계속해서 그대로 출판되고 있다. 이것은 젊은 역사학도로서의 자신감과, 이 책의 영향력에 대한 저자의 믿음에 비롯된 것이리라. 결국 역사학을 전공하는 많은 후학들에게 영향을 끼친 책이 바로 이 ≪미국 헌법의 경제적 해석≫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 저자 소개
찰스 비어드(Charles A. Beard)는 1874년 미국 인디애나 주의 나이츠타운에서 태어났으며, 1948년에 코네티컷의 뉴헤이븐(New Haven)에서 사망했다. 그는 미국 정치제도의 발전 과정에 대해 반기를 든 역사학자이면서도 현실 개혁 운동가였다. 그는 역사에서 사회경제적 갈등과 변화가 가지는 역동성을 강조하고, 미국의 여러 제도가 성립되는 과정에 개입된 동기가 경제적이라는 것을 분석했다. 그는 인디애나 주 드포대학교를 졸업하고 영국의 옥스퍼드대학교에서 공부했으며, 1904년부터 컬럼비아대학교에서 정치학을 강의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후 혁신주의 운동과 자유주의 세력의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시카고 및 뉴욕 시정부와 행정부 및 국가 발전 계획에 개선을 요구하는 운동을 이끌었다. 그는 미국 최초의 여성복지관인 시카고의 헐하우스(Hull House)에서 강의를 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유럽사에 흥미를 느껴 J. H. 로빈슨(Robinson)과 함께 유럽사를 공동 집필했는데, 이 책은 교재로 널리 사용되었다. 이어 역사에서의 경제적 해석의 도식을 발전시켜 1913년에 유명한 ≪미국 헌법의 경제적 해석(An Economic Interpretation of the Constitution of the United States)≫을 내놓았다.
그는 부인 메리 R. 비어드(Mary R. Beard)와 함께 1927년에 미국사 연구의 기념비적 결정판인 ≪미국 문명의 흥기(The Rise of American Civilization)≫를 내놓았다. 이 책은 이후 1939년의 ≪중앙항로상의 미국(America in Midpassage)≫과 1942년의 ≪미국의 정신(The American Spirit)≫으로 보완되었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 와중에 일어난 ‘빨갱이 사냥’의 여파로 일부 교수들이 반국가 행위와 전복 기도 혐의로 조사받고 해고된 일에 항의하여, 1917년에 컬럼비아대학교 교수직에서 물러났으며, 1919년 뉴욕시 사회연구학교를 공동으로 창립했다. 비어드는 1930년대부터 다시 역사 저술 집필에 들어갔다. 그는 역사 연구에 있어서 객관적인 역사 해석을 중시하는 19세기와 20세기 초의 레오폴트 폰 랑케(Leopold Von Ranke)식 실증주의에 반기를 들고, 현대 역사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학파인 상대주의 학파를 만들었다. 이것은 역사 연구에서 절대적인 진리와 완벽한 과거 복원은 불가능하고, 역사가의 주관적인 사관이 필연적으로 개입된다는 사관이었다. 이 사관은 20세기의 대표적인 역사관이 되어 20세기 중반 이후 에드워드 카(E. H. Carr)로 이어졌고, 지금도 지배적인 사관이 되어 있다.
그는 1930년대 후반과 1940년대 후반까지 행정부의 외교정책을 비난하는 일련의 글들을 집필하고(예를 들면, 1948년 사망하던 해에 출판된 ≪루스벨트 대통령과 1941년 전쟁의 발발(President Roosevelt and the Coming of War 1941)≫) 고립주의자라는 비난을 받았다. 이후 많은 학자들의 연구 결과, 몇 가지 사실(史實) 선택이 잘못되었고, 해석에서 문제점이 있다는 비판을 많이 받았으나, 비어드가 내놓은 해석의 큰 틀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그는 현재까지도 미국 역사가들 중에 가장 영향력 있는 학자들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 옮긴이 소개
양재열은 1956년 경북 영천에서 태어나 1975년 대구 대륜고등학교를, 1983년 계명대학교 역사학과를 졸업했다. 이어 경북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치고 미국 라번대학교(University of LaVerne) 대학원에서 수학했다. 1993년 계명대학교 대학원에서 <1840년대 미국 정치와 지역주의>라는 논문으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전공은 서양사 중에서 미국사이며 주로 미국 정치와 지역주의에 대해 공부했다. 1997년에서 2004년까지 대구신학교 부교수로 재직했다. 현재는 영남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연구원이다. 역서로는 ≪미국 헌법의 경제적 해석≫(찰스 비어드), ≪미국의 정치국가≫(조엘 실비) 등이 있으며, 저서로는 ≪로마인 이야기≫, ≪중세인 이야기≫, ≪서양의 역사와 문화기행≫, ≪한국인을 위한 미국사≫, ≪1840년대 미국 정치와 지역주의≫, ≪미국외교사≫(공저) 등이 있다.
☑ 차례
해설
지은이에 대해
저자 서문
제1장 미국에 있어서의 역사 해석
제2장 1787년의 경제적 이해관계에 대한 개관
제3장 헌법 제정 운동
제4장 대표자 선출의 재산 자격
제5장 제헌회의 대표자들의 경제적 이해관계
제6장 경제적 문서로서의 헌법
제7장 제헌회의 구성원들의 정치적 신조
제8장 비준 과정
제9장 헌법에 대한 일반투표
제10장 헌법 비준 투표의 경제적 분석
제11장 동시대인들의 눈에 비친 비준을 둘러싼 경제적 갈등
결론
옮긴이에 대해
☑ 책 속으로
The Constitution was not created by 'the whole people' as the jurists have said; neither was it created by 'the states' as southern nullifiers long contended; but it was the work of a consolidated group whose interests knew no state boundaries and were truly national in their scope
헌법은 법학자들이 말하듯이 ‘전 국민’에 의해서 창조된 것이 아니며, 또한 남부의 연방법 무효화를 주장하는 자들이 오랜 기간 동안 주장해 왔듯이 ‘주’에 의해서 창조된 것도 아니다. 그것은 그들의 이해는 주의 경계를 넘어 그 범위에 있어서 진실로 전국적인 그런 결집력이 강한 한 집단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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