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18일 월요일

김성한 작품집


도서명 : 김성한 작품집 
지은이 : 김성한
엮은이 : 김학균
분야 : 한국 근현대 소설
출간일 : 2010년 3월 15일
ISBN :  9788964063040
가격 : 12000원
규격 : 148 * 210 mm    제본 : 양장본    쪽 : 198쪽




☑ 책 소개

『김성한 작품집』은 「지식을 만드는 지식 고전선집」 시리즈로, 사라져 가는 한국 근현대 소설 100종의 원본을 담았다. 한국문학평론가협회에서 작가 100명을 엄선하고 각각의 작가에 대해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를 엮은이로 추천했다. 또한 엮은이는 직접 작품을 선정하고 원전을 찾아냈으며 해설과 주석을 덧붙였다.


☑ 책 속으로

가난한 자 괴로워하는 자를 구하는 것이 크리스도의 본의일진대, 선천적으로 결정된 운명의 밧줄에 묶여서, 래틴말을 배우지 못한 그들이 쉬운 자기 말로 복음의 혜택을 받는 것이 어째서 사형을 받아야만 하는 극악무도한 짓이란 말이냐? 성찬의 빵과 포도주는 크리스도의 분신이니 신성하다지마는 아무리 보아도 빵이요 먹어도 빵이다. 포도주 역시 다를 것이 없다. 말짱한 정신으로는 거짓이 아니고야 어찌 인정할 도리가 있을 것이냐? 무슨 까닭에 벽을 문이라고 내미는 것이냐? 절대적으로 보면 같은 수평선상에 서 있는 사람이 제멋대로 꾸며낸 것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할 근거가 어디 있단 말이냐?
바비도는 울화가 치밀었다.
-<바비도>


☑ 지은이 소개

저자 김성한(金聲翰)은 1919년 함경남도 풍산에서 출생했다. 그는 1944년 일본 동경제대를 중퇴했으며, 195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무명로(無明路)>가 당선되면서 문단에 등단한다. 1955년 사상계사에 입사하면서 그의 문학은 <사상계>와 깊은 인연을 맺게 된다. 그는 1957년까지 <사상계> 주간을 맡다가 1958년 <동아일보>에 입사해 편집국장(1973), 논설주간(1977)을 맡았다. 그의 문학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사상계>는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한다. 김성한은 1955년 5월호부터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게 되었기 때문에, 창간호의 멤버는 아니지만, <사상계>에 깊이 관여하고 있었다. <사상계>는 2만여 명의 정기 구독자를 포함, 당시로서는 엄청난 부수인 7만여 부까지 발행하기도 했다. 당시 조선일보의 독자가 10만 명임을 감안하면 <사상계>의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다. <사상계>는 1952년 창간된 잡지로 월남한 서북 지역 출신의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제작되면서 뚜렷한 이념성을 지니고 있었다.
1950년대 <사상계>의 편집위원 29명 가운데 21명이 북한 출신이며, 대부분이 서북 지역 출신이었다. 그중에서도 장준하는 <사상계>를 창간한 핵심 인물이다. 그는 1918년 평북 의주 출생으로 부친 장석인은 기독교 목사였다. 열네 살에 평양 숭실중학교에 입학했다가 부친이 교목으로 부임한 평북 선천 신성중학교로 전학해 1937년에 졸업했다. 졸업 후 정주 신안소학교 교사로 3년간 근무하다가 1940년 도일해 1942년 일본신학교에 입학했다. 여기서 전택부, 문익환 등과 공부했는데 전택부는 후에 <사상계> 편집위원으로 참여하게 된다. 1944년 학병으로 끌려가게 된 장준하는 일본군을 탈출해서 김준엽 등과 함께 광복군 훈련반에 들어갔다. 광복 후 임시정부 요인들과 함께 귀국해 김구의 비서로 있다가 1949년 한국신학대학에 편입해서 학병 때문에 중단했던 학업을 마친다. <사상계>가 인지도가 없었던 초기에 장준하는 개인적인 친분을 이용해 필자들을 선정하게 되었으며, 그것은 북한 출신의 지식인들이 <사상계>에 참여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김성한은 서북 지역 출신은 아니지만, 북한 출신이라는 점에서 이들과 지역적 연고를 같이하고 있다.
<사상계>의 인맥은 사상적인 면에서도 뚜렷한 공통점으로 이어진다. 김성한 소설에서 지식인들의 타락을 경고하고, 지식인들의 적극적인 사회 참여를 독려한 것은 <사상계>의 정신을 이어받고 있다. 서북 지역은 기독교를 일찍부터 받아들였고, 이 시기 기독교는 민족주의와 융합해 사립학교 설립을 주도했다. 당시 평북 선천의 신성학교와 평양의 숭실학교는 미국 북장로회 계통의 미션 학교였다. 평북 선천의 신성학교 출신인 장준하와 많은 이 지역 출신 인맥 역시 기독교 정신주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이것은 <사상계> 발간 초기부터 드러나고 있다. 이런 기독교 정신주의는 김성한 문학이 초기부터 교회의 타락이나 종교적인 모티프를 줄기차게 문제 삼은 것과 연관되어 있다. 특히 1956년 사상계사가 제정한 동인문학상의 첫 회 수상작으로 김성한의 <바비도>가 선정된 것은 주목할 만하다. 심사위원들은 ‘이념’을 주목했고, 심사위원 중 한 명이었던 주요한은 “이 작품은 예술적인 동시에 현대 우리 사회에게 주는 한 개의 경종”이라고 평가했다. 주요한은 평양 기독교계의 목사 집안 출신이면서 광복 후에는 흥사단에 깊이 관여한 바 있고, 이 작품을 자유당의 정치적 전횡에 대한 비판으로 이해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서북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사상계>의 인맥은 기독교 정신주의로 이어지면서 김성한의 문학을 이해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1955년 김성한이 <사상계>의 편집주간이 되면서 편집 방향은 민족 통일 문제를 지상 과제로 삼았고, 민주 사상의 함양과 경제 발전, 새로운 문화의 창조, 식민지 정신의 청산을 내걸었다. 여기서 새로운 문화의 창조, 식민지 지배로 인해 비굴해진 민족성의 청산은 김성한 소설의 주제와도 일맥상통하고 있다. 이 시기부터 <사상계>는 비평과 소설을 다수 게재하면서 문학적 성격이 강화된다. <사상계>가 신인들의 등단을 주도하고 문학적 성격이 강화된 것은 김성한 이후였으며, 김성한에 이어 편집주간이 된 안병욱에 의해 더욱 활발해진다. 김성한은 <바비도>, <제우스의 자살>(이후 <개구리>로 개제), <폭소>, <귀환> 네 편을 <사상계>에 게재한다. 김성한 소설이 친일파나 사이비 지식인 등 부정적인 인물들을 형상화한 것은 ‘부정을 위한 부정’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기 위한 ‘건설’을 염두에 두었다는 것은 당시 장준하가 “오직 건설적 목적과 방안을 가진 정당한 비판만이 후진 정체 사회를 문명사회로 발전시킬 수 있다”고 말한 것과 연결되고 있다. 이처럼 김성한 소설은 <사상계>의 인맥과 편집 방향, 기독교 정신주의와 밀접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1957년 <사상계>를 퇴사한 김성한은 1958년 <동아일보>에 입사해 1981년까지 근무하면서 시대의 담론을 주도하는 언론인으로 활동한다. 그는 동아일보에 근무하는 동안에 영국 맨체스터 대학 사학과에서 수학하면서 역사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역사와 사회에 대해 항상 주목했다. 1967년에는 장편 삼부작 ≪이성계≫를 발간했고, 이후에는 ≪이마≫, ≪요하≫등의 역사 장편소설을 다수 발표한다. 일부 연구자들은 장편 ≪이성계≫에 그의 1950년대 단편소설에서 다룬 주제들이 통합되어 있음을 밝히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초기 단편소설에 주목하고 있다. 그는 1956년 <바비도>로 동인문학상을 수상했고, 1958년에는 <오분간>으로 제5회 아세아자유문학상을, 1987년 ≪임진왜란≫을 <동아일보>에 연재하던 중에는 보관문화훈장을 받은 바 있다.


☑ 엮은이 소개

해설
지은이에 대해

自由人(자유인)
暗夜行(암야행)
續·暗夜行(속 암야행)
골짜구니의 靜寂(정적)
五分間(오분간)
바비도
極限(극한)

엮은이에 대해


☑ 목차

천맥(天脈)

해설

지은이에 대해

엮은이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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