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31일 화요일

염상섭 작품집


도서명 : 염상섭 작품집
지은이 : 염상섭
엮은이 : 방민호 해설 : 권채린
분야 : 한국 / 소설
출간일 : 2009년 5월 15일
ISBN : 978-89-6228-226-9  00810
가격 : 12000원
규격 : 사륙판    제본 : 무선제본    쪽 : 148쪽



☑ 책 소개

치밀한 리얼리즘 기법으로 한국 현대소설의 문법을 개척한 염상섭. 그는 식민지 조선에 대한 냉철한 응시와 통찰을 통해 한국 근대 소설의 가능성을 탐색했다. 그동안 제대로 조명되지 못했던 단편들을 통해 그의 다양한 면모를 만나 본다.


☑ 출판사 책 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 ‘초판본 한국소설문학선집’은 점점 사라져 가는 원본을 재출간하겠다는 기획 의도에 따라 한국문학평론가협회에서 작가 100명을 엄선하고 각각의 작가에 대해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들을 엮은이로 추천했다. 엮은이는 직접 작품을 선정하고 원전을 찾아냈으며 해설과 주석을 덧붙였다.
각 작품들은 초판본을 수정 없이 그대로 타이핑해서 실었다. 초판본을 구하지 못한 작품은 원전에 가장 근접한 것을 사용했다. 저본에 실린 표기를 그대로 살렸고, 오기가 분명한 경우만 바로잡았다. 단, 띄어쓰기는 읽기 편하게 현대의 표기법에 맞춰 고쳤다.

횡보(橫步) 염상섭(廉想涉)은 한국 근대문학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작가로서, 신소설의 뒤를 이어 오늘날의 현대소설의 문법을 개척하고 완성했다고 평가받는다. 그는 픽션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바탕으로 근대적 인물과 플롯을 창조했으며, 식민지 조선에 대한 냉철한 응시와 통찰을 통해 한국 근대소설의 가능성을 탐색했던 작가였다. 
염상섭은 40여 년 동안 17편의 장편소설과 160여 편의 중·단편 소설을 발표했는데, 이러한 방대한 성과물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그의 문학은 몇 가지 특징으로 규정하기 어려울 만큼 복잡하고 다양한 층위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염상섭 연구가 가장 집중적으로 조명했던 부분은 이데올로기 면에서의 민족주의와 창작 방법상의 리얼리즘이었다. 국수적 독선에 치우치지 않는, 모든 세대와 계급을 아우르는 힘으로서의 민족주의적 전망과 치밀하고 총체적인 리얼리즘적 소설 기법은 염상섭 문학의 근간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삼대≫, ≪만세전≫과 같은 중·장편소설을 중심으로 많은 연구가 이루어진 점도 여기서 기인한다. 
이에 비해 염상섭의 단편에 대한 접근은 상대적으로 미미한 실정이다. 이 책에 실린 세 편의 단편소설은 민족주의와 리얼리즘 같은 염상섭 소설 세계에 대한 주된 평가에 비추어 볼 때 다소 낯선 작품들이지만, 바로 그러한 이유로 염상섭 문학이 지닌 다양한 면모를 가늠할 수 있는 유용한 사례가 될 수 있다. <표본실의 청개고리>는 염상섭의 데뷔작이자 초기 단편의 대표작으로 이미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지만, <검사국 대합실>과 <임종>은 구체적으로 논의되지 못한 작품들이다. 세 소설은 주제론적, 인식론적 차원에서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기 힘들 만큼 상이한 경향을 보이지만, 당대 소설적 풍토에선 이례적으로 ‘내면’에 대한 치밀하고 정치한 접근과 묘사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 책 속으로

·“네! 그러치 안습니. 네! …그것도, 바로 읽을 줄이나 알앗스면, 조켓지만, …假令 天地玄黃 하면, 하날 텬− 이러케 읽으니, 一大라 써노코 왜 하날 대 하지 안습니. 蒼穹(창궁)은 宇宙 間에, 唯一 最大하기 문에 蒼頡(창힐)이 가튼 偉人이, 一大라고 쓴 것이 아니왜니.  흙 야 할 것을 −디 하는 것도, 안 될 것이왜다. −란 무엇이왜니가. 흙이 아니요. 그리기에 흙 土 邊에 焉哉乎也(언재호야)라는 千字文의 왼  字인 이 也 字를 쓴 것이외다그려. 다시 말하자면 −는 흙이요,  宇宙 間에 最末位에 處한 故로 흙 土에 千字文의 最末字 되는 이 也 字를 쓴 것이왜다.”

·그러나, 오래비가 차저와서 질문을 하고 고소지 제긔한 것을 보면 사실 억울한지도 모를 것이다. ‘민중의 지도’니 ‘사회의 목탁’이니 ‘도덕상 방부제’니 하지만 신문 긔자 역시 사람이다. 귀신이 아닌 사람인 이상에는 남의 사행에 대하야 밋두리두리 분명히 알 수 업는 것은 물론이다. 더구나 그 녀자에게 마음을 두엇다가 을 일우지 못하고 제 분에 못 닉여서 그 녀자에게 욕을 보이랴고 긔자를 속여 그러한 보도를 하게 하얏는지 누가 알 일이냐? 신문이 아모리 권위가 잇다 하드라도 하여간 젊은 계집의 창창한 압길을 막아주는 것은―더구나 활자의 세력이라면 팟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고지 들을 만한 이지음의 민중을 상대로 하야 그러한 사실이 잇고 업고 간에 신문에 한 번 나기만 하면 그 시간이 벌서 그 녀자에게 대하야는 운명의 지침(指針)을 밧구어 저주는 날이다. 아모리 신문의 권위, 긔자의 신위가 소중하다드라도 일개인의 운명을 좌우하랴는 것은 무엇보다도 큰 죄악이다−이러한 지론을 가진 나로서는 이러한 문뎨를 당할 마다 량심상 가책을 늣기지 안흘 수 업섯다.

·‘…백 년을 산대도 가던 길을 반도 못 걷고 하던 일을 손에 붙든 채 쓰러지고 마는 것이 아닌가. 자기완성(自己完成)을 하고 떠나지는 못하는 것인데− 미완성인 대로 뒷대에 물려주고 가는 것이 인생이라면야 죽은 뒤에 남은 처자식이 어떻게 되던지 뒤를 깡그리 드리지 못했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죽음의 마지막 순간까지 다만 그것을 두 손으로 바당기고 막아내려는 것이 생물의 본능이나 좋게 말하자며는 생리적 조건이 허락하는 때까지의 자기주장(自己主張)이요, 자기의 존재를 잃지 않겠다는 무서운 단판 씨름이라 할 것이나, 그러나 자기완성을 허락지 않는 바에야 항복이 아니라 앞질러 선선히 길을 비켜서서 뒤에 물려주고 시사약귀(視死若歸)로 조용히 물러가라는 말인데… 그렇지만 ‘시사약귀’란 저마다 할 수 있는 노릇인가…


☑ 지은이 소개

염상섭(廉想涉, 1897. 8. 30∼1963. 3. 14)
염상섭(廉想涉, 1897. 8. 30∼1963. 3. 14)은 서울 종로구 필운동에서 염규환과 경주 김씨의 8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본관은 서원(瑞原), 본명은 상섭(尙燮), 호는 제월(霽月) 또는 횡보(橫步)다.
1906년까지 조부에게서 한문을 수학하다 11세 되던 1907년 관립사범부속보통학교에 입학한다. 그러나 학교에서 조선 역사를 가르치지 않고, 이토 히로부미의 서울 환영식에는 전체 학생을 참가시키고 고종 황제의 동적전 거행에는 반 대표만 보낸 것에 항의하여 3학년 겨울에 자퇴하고 보성소학교로 전학을 갔다. 1911년 보성중학에 입학하고 1912년 일본에 유학 가 아자부(麻布)중학, 세이가쿠인(聖學院)중학을 거쳐 1918년 교토(京都)부립 제2중학을 졸업했다. 1918년 게이오대학(慶應大學) 문과 예과에 입학하였으나 1학기 만에 병으로 자퇴했다. 
1919년 오사카에서 3·1운동 소식을 듣고 천왕사공원에서 거사하기로 했으나 피검되어 옥고를 치렀다. 옥중에서 <어째서 조선은 독립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라는 글을 써 아사히 신문사로 보냈다. 
1920년 동아일보 창간과 더불어 귀국해 정치부 기자가 되었다. 2∼4월 <폐허> 동인을 결성하고 7월에 <폐허> 1호를 출간했다. 남궁벽·황석우·김찬영·김억·오상순·민태원과 교류했다. 동아일보 퇴사 후 오산학교 교사로 재직했으나 이후 줄곧 신문·잡지 편집인으로 생활하면서 소설·평론에 전념했다. 1921년 <폐허> 2호를 간행하고 출세작 <표본실의 청개고리>를 발표했다. <동명>에서 기자로 활동하다가 1922년에는 <개성과 예술>, <지상선을 위하여>을 발표했고, ≪묘지(만세 전)≫를 <신생활> 7∼9월호에 연재했다. 1923년 변영로·오상순·황석우·송진우·최남선·진학문 등과 조선문인회를 결성했다. 1924년 <폐허 이후>를 간행하고, 시대일보 사회부장이 되었다. ≪묘지(만세 전)≫를 재연재·출간했고, 첫 창작집 ≪견우화≫를 냈다. 1926년 <신흥문학을 논하여 박영희군의 소론을 박함>으로 프로문학파에 도전했다. 1927년 <남충서>, <배울 것은 기교−일본문단잡관>, <사랑과 죄>를 동아일보에 기고했다. 1929년 33세의 나이로 김영옥과 결혼했고, 조선일보사 학예부장을 맡았다. 이듬해 조선일보에 ≪삼대≫를 연재하고 매일신보에 <무화과>를 연재했다. 1932년 김동인의 <발가락이 닮았다>로 논쟁이 벌어지고 <모델 보복전>을 <동광>에 보냈으나 실리지 않자 조선일보에 <소위 모델 문제>를 발표했다. 1934년 <모란꽃 필 때>, <무현금>을, 이듬해 <청춘항로>를 발표했다. 1936년 매일신보 정치부장, 만선일보 편집국장을 지냈다. 
1945년 해방을 맞이했고, 11월 신의주 학생 사건을 체험했다. 1946년 경향신문 창간 편집국장이 되었으나 이듬해 사퇴하고, 성균관대에 출강하며 창작에 전념했다. 1948년 ≪만세 전≫을 개작하여 출간했고, ≪삼대≫를 출간했다. 1949년 중간 노선을 견지한 채 문협에 참가했다. 1950년 6·25가 발발하자 12월에 이무영·윤백남과 해군에 입대했다. 이듬해 소령으로 임관하여 해군본부 정훈감실에서 편집과장으로 근무했다. 1952년 ≪취우≫를 조선일보에 연재하고 이듬해 해군 중령으로 제대했다. 1954년 서라벌 예술대학 학장으로 취임했다. 이후 <젊은 세대>, <대를 물려서>, ≪일대의 유업≫ 등을 발표했다. 1961년 가톨릭에 입교했고, 이듬해 12월 <횡보 문단 회상기>를 <사상계>에 발표했다. 1963년 67세로 성북동 자택에서 별세하여, 명동 천주교회에서 문단장을 치르고 방학동 천주교 묘지에 안장되었다. 생전에 서울시 문화상, 자유문학상, 예술원 공로상을 수상하고 대한민국 문화훈장을 받았다. 


☑ 엮은이 소개

방민호
방민호는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4년 ‘현실을 바라보는 세 개의 논리’로 제1회 창비신인평론상을 수상했다. 지은 책으로는 ≪비평의 도그마를 넘어≫, ≪납함 아래의 침묵≫, ≪행인의 독법≫, ≪감각과 언어의 크레바스≫ 등이 있으며, 엮은 책으로는 ≪채만식 중·단편 대표 소설 선집≫, ≪모던 수필≫, ≪구보 씨의 얼굴≫, ≪환상소설첩≫, ≪악마의 사랑≫ 등이 있다. 

권채린
해설을 쓴 권채린은 1974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현대문학을 공부하였고,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05년 중앙일보 중앙신인문학상에 문학평론 부문으로 등단한 이후 문학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 목차

해설 ······················11
지은이에 대해 ··················19

표본실(標本室)의 청(靑)개고리 ··········23
검사국 대합실(檢事局 待合室) ···········99
임종(臨終) ···················121

엮은이에 대해 ··················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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