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26일 월요일

초판본 오일도 시선



도서명 : 초판본 오일도 시선
지은이 : 오일도
엮은이 : 김학중
분야 : 시선집
출간일 : 2014년 4월 28일
ISBN : 978-89-6680-414-6 03810 
가격 : 16000원
규격 : 사륙판    제본 : 무선제본    쪽 : 144쪽



☑ 책 소개

범시단적 성격의 시 전문 문예 잡지 ≪시원≫을 발행해 예술지상주의를 꽃피웠다. ≪을해 명시 선집≫과 조동진의 유고 시집 ≪세림 시집≫을 편집 발간했다. 그러나 시인 오일도는 알려지지 않았다. 순수의 상실, 고향의 상실에서 오는 비극적 낭만성을 드러내는 그의 시를 통해 1930년대 우리 문학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

☑ 출판사 책 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 ‘초판본 한국시문학선집’은 점점 사라져 가는 원본을 재출간하겠다는 기획 의도에 따라 한국문학평론가협회에서 작가 100명을 엄선하고 각각의 작가에 대해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들을 엮은이로 추천했다. 엮은이는 직접 작품을 선정하고 원전을 찾아냈으며 해설과 주석을 덧붙였다.
각 작품들은 초판본을 수정 없이 그대로 타이핑해서 실었다. 초판본을 구하지 못한 작품은 원전에 가장 근접한 것을 사용했다. 저본에 실린 표기를 그대로 살렸고, 오기가 분명한 경우만 바로잡았다. 단, 띄어쓰기는 읽기 편하게 현대의 표기법에 맞춰 고쳤다.

시인 오일도는 그동안 우리 문학 연구에서 주로 시집과 잡지 발행인으로 평가해 왔다. 그는 1935년 2월에 시 전문 문예지 ≪시원≫을 창간했다. ≪시원≫은 범시단적 성격의 잡지로 출범하면서 당시 시단에 신선한 자극을 불러일으켰다. 창간호에 참여한 시인들의 면면을 보아도 당시 ≪시원≫이 추구했던 바를 짐작할 수 있다. 김기림, 노천명, 모윤숙, 이은상, 이하윤, 조희순, 함대훈 등이 필자로 참여하고 있는데, 이를 보아도 유파에 관계없이 당대 시인들의 목소리를 담으려고 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카프 계열 시인들의 참여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과 통권 5호로 잡지를 출간한 지 한 해도 되지 못한 채 12월에 종간되었다는 점 등 한계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카프 해산 이후 모더니즘과 시문학파 등 다양한 시류로 갈라지고 있던 1930년 문단에서 당시 시의 조류를 모두 아우르고자 했다는 시도는 높이 평가받고 있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시원≫을 주도했던 오일도에 대한 평가가 이루지고 있다. 더불어 오일도가 1936년에 국내외 신문, 잡지 등의 시들을 선별해 ≪을해 명시 선집(乙亥明詩選集)≫을 묶어 낸 것과 조지훈의 형 조동진의 유고 시집으로 ≪세림 시집≫을 1938년에 간행한 것 등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을해 명시 선집≫에선 ≪시원≫에 싣지 못한 카프 계열 시인들의 작품을 포함하고 있어 오일도가 우리 문단에 대해 넓은 관심을 지니고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잡지 발행인으로서 오일도의 넓은 시야나 편집자로서 뛰어난 능력과 달리 시인으로서 오일도는 그동안 거의 다루어지지 못했다. 가장 큰 이유로는 그가 생전에 시집을 내지 못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리고 그의 작품 수가 적다는 점도 한몫했다.
오일도는 1925년 ≪조선문단≫에 <한가람 백사장(白沙場)에서>를 발표하며 등단했는데,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하던 시기는 1930년대였다. 이 시기 자신이 간행하던 ≪시원≫을 통해 시를 발표하기도 했는데, 발표작은 그리 많지 않다. 해방 후에도 건강상의 이유 등으로 창작에 몰두할 수 없었다. 1946년 오일도가 세상을 떠나면서 그의 시 작품은 유고 형태로 조지훈에게 건네졌다. 그러나 오일도의 시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그 뒤로도 한참이 지나서였다. 처음 그의 유고가 세상의 빛을 본 것은 1973년이었다. ≪현대시학≫에 그의 유고가 특집 형태로 실렸다. 거기에 실린 시는 29편이었다. 오일도가 보여 준 시에 대한 열정에 비하면 아쉬울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누락된 원고들을 추슬러서 1976년에 발간한 유고 시집 ≪저녁놀≫에 실린 시 작품도 39편이 전부였다. 이에 반해 한시는 78수에 달할 정도라 오일도의 현대시에 대한 평가는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이 밖에도 오일도의 시가 1930년대의 특정 유파와 연관성을 결여하고 있다는 점, 그간의 시사가 주요 시인들의 연구에 중심을 두고 있었다는 점 등 때문에 오일도의 시에 대한 연구가 부재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최근 그에 대한 연구가 조금씩 시도되고 있다. 오일도의 현대시를 한시와 연관성 속에서 이해하려는 시도나 오일도 시 세계의 흐름에 대한 고찰을 시도하는 논문들을 살펴볼 수 있다. 이러한 시도들에도 불구하고 오일도의 시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는 앞으로도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러한 어려움들에도 불구하고 오일도의 시 세계를 되도록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은 우리 문학사의 다양성을 풍부하게 하는 데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그동안의 연구에 따르면 오일도의 시는 고향 상실 의식과 감상적 낭만주의, 현실 대결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이는 오일도의 시가 1930년대 우리 문학사와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가리킨다. 고향 상실 의식은 1930년대 우리 시단의 주요 특징 중 하나였다. 감상적 낭만주의는 시문학파의 연관성을 가리킨다. 또한 현실 대결 의식은 일제에 대한 대항 의식으로 읽을 수 있는데, 이 또한 1930년대 우리 시에서 여러 가지 방식으로 드러나는 주제 의식이다. 그런 점에서 오일도가 당시 시단의 유파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당대 문학의 흐름과 긴밀한 관계를 가졌음을 볼 수 있다.


☑ 책 속으로

●도요새
물가에 노는
한 쌍 도요새.

어느 나라에서 날아왔니?
너의 方言을 내 알 수 없고
내 말 너 또한 모르리!
물가에 노는
한 쌍 도요새.
너 작은 나래가
푸른 鄕愁에 젖었구나.
물 마시고는
하늘을 왜 쳐다보니?
물가에 노는
한 쌍 도요새.
이 모래밭에서
물 마시고 사랑하다가
물결이 치면
포트럭 저 모래밭으로.


●흰 구름
가을 大空에
흰 구름은
千 里!
萬 里!
저 흰 구름은
山을 넘고 江을 건너
우리 고향 가건마는
나는 언제나

●내 소녀
빈 가지에 바구니 걸어 놓고
내 少女는 어디 갔느뇨.
………………………
薄紗의 아지랭이
오늘도 가지 앞에 아른거리다.

●저녁놀
작은 방 안에
장미를 피우려다 장미는 못 피우고
저녁놀 타고 나는 간다.
모가지 앞은 잊어버려라
하늘 저편으로
둥둥 떠가는
저녁놀!
이 宇宙에
저보담 더 아름다운 것이 또 무엇이랴!
저녁놀 타고
나는 간다.
붉은 꽃밭 속으로
붉은 꿈나라로.


☑ 지은이 소개

오일도(1901∼1946)
시인 오일도는 1901년에 경북 영양에서 태어났다. 영양의 천석 거부 오익휴의 차남으로 본명은 희병(熙秉)이었다. 일도는 아명이었는데, 후에 필명으로 사용했다. 한학에 대한 조예가 깊은 집안이라 8세부터 14세까지 한학을 공부했다. 이때 공부한 한학의 영향으로 한시를 창작했으며 한시 78수를 남겼다. 아들의 증언에 따르면 굉장히 과묵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17세에 영양보통학교를 다니면서 근대 교육 체계 속에서 공부하게 되었다. 학습에 뛰어난 성취를 보여 1922년 18세 때에 경성제일고보에 진학했다.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릿쿄대학 철학과에 진학했다. 유학 중이던 1925년 ≪조선문단≫을 통해 <한가람 백사장에서>를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초기 시들은 비극적인 낭만성과 압축미가 있어 높은 미학적 완성도를 보여 주었다는 평을 받았다.
릿쿄대학(立敎大學)을 졸업하고 1929년 조선으로 돌아왔다. 귀국 후에 중앙, 휘문 등 여러 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고 전하나 이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오일도가 집안이 부유해서 일상적인 사회생활을 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1973년 ≪현대시학≫에 그의 유고가 발표되면서 함께 실린 김해성(金海星)의 <오일도의 시>에 그가 교편을 잡았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과 유고 시집 ≪저녁놀≫에도 그러한 기록이 실린 것으로 보아 한동안 교편을 잡고 학생들을 가르쳤던 것이 사실로 보인다.
귀국 후 여러 시인들과 교우를 쌓았다. 특히 이하윤과는 절친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30년대는 오일도가 시인으로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한 시기다. 이는 특히 그가 1935년 시 전문 문예지 ≪시원≫을 창간한 것과 관련이 깊다. ≪시원≫은 범시단적 잡지로 출범하면서 여러 시인들의 호응을 얻었다. 카프 계열의 시인들 작품을 싣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오일도는 ≪시원≫을 발간하면서 잡지 발행인으로 뛰어난 능력을 보여 주지만 안타깝게도 ≪시원≫은 5호를 마지막으로 종간되었다. 채 1년이 못 되는 기간 동안 총 5호 정도만 발간했지만 ≪시원≫은 1930년대 한국 문단에 커다란 영향을 남겼다. 그 외에 1936년에 ≪을해 명시 선집(乙亥明詩選集)≫과 1938년에 조동진의 유고 시집 ≪세림 시집≫을 발간하는 등 편집자로서의 재능도 발휘했다. 이들 시집은 한국 문학사에서 중요한 자료들로 평가되고 있다.
≪시원≫의 종간은 오일도의 심신에 큰 충격을 남겼다. 그는 이후 폭음 등으로 건강을 상했으며 결국 1942년 고향으로 낙향해 요양하게 된다. 1945년 해방을 맞이해 서울로 올라가 ≪시원≫을 복간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이데올로기의 갈등이 심화되어 ≪시원≫이 추구하는 방향성에 대해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게다가 건강이 악화되면서 오일도는 귀향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결국 1946년 고향 영양에서 투병 중에 병세가 악화되면서 여의전병원에서 운명했다. 사인은 과도한 폭음으로 인한 간경화로 추정된다.
오일도 시인의 대표작으로는 <내 소녀>, <도요새>, <지하실(地下室)의 달> 등이 있다. 한국 문학사에 길이 남을 작품을 남기지는 못했지만 오일도 시인은 ≪시원≫을 창간함으로써 1930년대 문단에 다양성을 가져오고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평과 함께 문학사적으로 조명받고 있다. 1973년 ≪현대시학≫을 통해 유고 시들이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3년 뒤엔 1976년 유고 시집 ≪저녁놀≫이 근역서재에서 발간되었다. 이들 유고는 오일도 시인이 생전에 조지훈 선생에게 맡겨 두었던 것인데, 조지훈 선생 사후 조지훈 선생의 고모인 시조 시인 조애영 선생이 묶었다. 이후에 ≪지하실의 달≫이 문화공론사에서 출간되었으며 1988년에는 영양 출신 시인 이병각, 조지훈, 조동진, 오일도 네 사람의 시를 묶어 낸 ≪영양 시선집≫이 나오기도 했다. 현재 경북 영양에는 오일도 생가가 보존되어 있으며 그 인근에 오일도 시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 엮은이 소개

김학중
김학중은 1977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경희대학교 대학원 국문학과 박사 과정에서 현대 문학을 전공하고 있다. 2009년 ≪문학사상≫ 신인상으로 등단해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해설한 책으로는 ≪정원석 동화선집≫, ≪한윤이 동화선집≫ 등이 있다.


☑ 목차

내 창이 바다에 향했기에 ··············3
가을 하늘 ·····················5
코스모스꽃 ····················6
地下室의 달 ····················8
봄 아침 ·····················10
봄비 ······················11
바람이 붑니다 ··················12
十月의 井頭園 ··················13
松園의 밤 ····················15
별 ·······················16
도요새 ·····················17
白沫 ······················19
五月 花壇 ····················20
누른 葡萄잎 ···················22
노랑 가랑잎 ···················23
壁書 ······················24
내 戀人이여! 가까이 오렴! ·············25
가을은 ·····················27
人生의 曠野 ···················29
눈이여! 어서 나려 다오 ··············30
窓을 남쪽으로 ··················32
아기의 눈 ····················34
올빼미 ·····················36
돌팔매 ·····················38
爐邊 哀歌 ····················39
解放의 거리 ···················41
멀리 오시는 님 어이 맞으오리까 ··········45
찬 壁 ······················51
검은 구름 ····················53
그믐밤[除夕] ···················55
꽃에 물 주는 뜻은 ·················57
새해 아침 ····················60
물의 誘惑 ····················61
한가람 白沙場에서 ················62
흰 구름 ·····················63
저녁놀 ·····················64


부록

積雪 ······················67
江村雪月夜逢故人 ················68
滿洲行一束 ···················69
    夜發大邱驛 ··················69
    鴨綠江 ····················70
    胡馬 ·····················71
    胡酒 ·····················72
    寄舍兄 ····················73
    戱與王道書院長 ················74
    幼子 ·····················75
    賭博軍 ····················76
    靑樓怨(過間島靑樓街見朝鮮女人有感) ······77
    隣家喪(見隣家平壤人喪老母有感) ········78
    歲暮 ·····················79
    又 ······················79
    南飛雁 ····················80
    病窓錄 三篇 ··················81
    夏夜苦 ····················82
    霖雨 ·····················83
    暮春 ·····················84
    夕暮 ·····················85
    秋感(懷) ···················86
    酒後愁 ····················87
    自傷 ·····················88
    悲秋 ·····················89
    城邊柳 ····················90
    春色 ·····················91
    園中匏 ····················92
    春日 ·····················93
    雨後江村 ···················94
    白雲 ·····················95
    白鷗 ·····················96
    別恨 ·····················97
    春恨 ·····················98
    籬下菊 ····················99
    招友人圍碁 ·················100
    秋雨 ·····················101
    西峯月 ····················102
    寒梅 ·····················103
    春暖 ·····················104
    有客叩門 ··················105
    苽(瓜)亭(오이집) ···············106
    述懷 ·····················107
    小屋成 ····················108
    幽居 ·····················109
    江山逢故人 ·················110
    春日三兒 ··················111
    夜無火 ····················112
    螢火 ·····················113
    迎春燕 ····················114
해설 ······················115
지은이에 대해 ··················129
엮은이에 대해 ··················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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