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1일 금요일

이백 시선(李白詩選)


도서명 : 이백 시선(李白詩選)
지은이 : 이백(李白)
옮긴이 : 임도현
분야 : 중국 / 시
출간일 : 2013년 11월 1일
ISBN : 979-11-304-1162-0 03820
가격 : 21500원
사륙판 / 무선제본 / 386쪽





☑ 책 소개

적선(謫仙), 귀양 온 신선이라는 뜻이다. 자유로운 영혼이었지만 끊임없이 돌아가고 싶어 했다. 이백이 그리워한 ‘하늘’은 과연 어디였을까? 슬픔과 외로움을 호방한 기상으로 애써 삭이는 그의 시에서 신선 이백이 아니라 인간 이백을 만난다.


☑ 출판사 책 소개

이백은 중국 역대 시인 중에서 누구보다도 개성을 뚜렷하게 드러낸 시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외물에 휘둘리거나 속박을 받지 않고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하는 것을 중시했으며, ‘남다른 존재’로서의 자신을 영원히 남기려는 이상을 가지고 있었고, 그 이상을 추구하기 위해서 다양한 방식으로 노력했다. 그 방식으로는 역사적 영웅이 되기 위한 정치적 공명 추구, 영원한 생명을 위한 신선술과 연단술 추구, 자연의 이치를 깨달아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자연 속에서의 은일 추구, 자신의 존재를 각인하기 위한 수평적이고 자기중심적인 교유 관계 형성 등을 들 수 있다. 그중에서 정치적 공명 추구는 이백이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과제였다. 당시 국가의 통치 이념인 유교적 정치사상에 경도된 여타 문인들과는 달리 이백은 다양한 사상과 지역 문화를 섭렵하면서 당시 사회 체제를 벗어나 자아를 추구하고자 하는 경향이 강했다. 하지만 ‘남다른 존재’로서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당 제국이라는 틀은 너무나 매력적인 것이었으며 그의 주된 생활 공간이 당 제국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관직에 진출해 정치적 공명을 이루어 이름을 드날리는 것은 그에게 언제나 중요했다.
예로부터 이백은 그 호방한 기풍으로 인해 대중이 좋아하는 시인이 되었고, 세속의 영리와 권세를 뛰어넘어 아무런 격식에 구애받지 않은 채 유유자적하게 행동하는 모습이 강조되었다. 그래서 그가 정치적 공명의 추구를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이 소홀히 다루어지는 경향이 있었다. 이백은 관직을 구하는 데 별 관심이 없었다거나, 혹은 관직을 구함에 상대방을 전혀 배려하지 않고 자신의 호방한 기상만을 강조하는 태도를 가졌다는 평가들이 있었다. 심지어 일부 논자들은 그가 관직 진출에 실패한 원인을 그의 안하무인격인 간알 태도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여러 시문을 살펴보면 그러한 작품은 오히려 예외적이며 관직을 구하기 위해서 상대방을 공손하게 찬양하거나 자신의 비참한 신세를 묘사하는 작품이 많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필자는 이백의 시 중 이러한 정치적 공명의 추구 양상을 잘 살펴볼 수 있는 시들을 위주로 이 선집을 엮게 되었다. 그래서 1부에서는 정치적 공명을 추구하려는 이백의 의지가 잘 드러난 시, 특히 다른 사람에게 관직을 청탁하는 간알시(干謁詩)를 많이 수록했다. 2부에서는 정치적 공명을 이룩하지 못해 슬퍼하는 마음을 읊은 시들을 수록했으며, 3부에서는 자신의 비참한 신세를 토로하는 시를 수록했다. 그리고 마지막 4부에서는 공명을 추구하기 위해 객지를 떠돌면서 외로워하는 마음을 표현한 시를 수록했다. 이 시선집이 이백 시 세계의 전모를 파악하는 데는 부족하지만 기존에 출간된 이백 시선집에서 간과했기에 미처 알려지지 않았던 이백 시의 모습을 보완하기에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아래에서는 이백 간알시의 특징에 관해 설명했는데, 이를 통해 이백이 시를 쓸 때 가졌던 마음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 책 속으로

·눈을 마주하고 친척 형님인 우성현령에게 바치다

지난밤 양원에서
이 동생이 추위에 떨었던 것을 형님은 모르실 것입니다.
정원 앞에서 옥같이 하얀 나무를 바라보다가
애끊게 연리지를 그리워합니다.


·범 금향현령께 드리다 2수 제1수

그대가 황송하게도 관심을 가져 주셔서
동쪽으로 온 것이 미혹한 것임을 알지 못하지만,
집 떠난 지 몇 달 되지도 않았는데
방 안에 귀뚜라미가 울고 있었습니다.
복숭아와 자두 같은 그대가 말을 하지 않아도
꽃을 따려고 길이 만들어지기를 바랐는데,
어찌 향기로운 서신을 보내 주셔서
은혜롭게도 저를 불러 이끌어 주셨는지요.
제게는 결록 같은 보배가 있지만
오랫동안 탁한 물의 진흙 속에 숨겨져 있었는데,
요즘 사람들은 이 물건을 버려둔 채
연산의 돌과 같이 취급합니다.
보배를 주워 와 닦아 그대에게 바치고
뜻을 펼치려고 하지만 길에 사다리가 없어서,
요동 사람의 흰 돼지일까 부끄럽고
초나라 나그네의 산계일까 부끄러울 뿐입니다.
공연히 미나리를 바치려는 마음을 가졌다가
결국에는 옥을 안고 눈물만 흘리니,
오직 스스로 적막하게 살아야 하겠지만
그래도 남아 있는 혀를 아내에게 보여 준답니다.


·숭산으로 돌아가는 배도남을 보내다 2수 제2수

그대 영수의 푸름을 그리워해
홀연히 다시 숭산으로 돌아가니,
돌아가서는 허유처럼 귀를 씻지 말고
나를 위해 그 마음을 씻어 주시게.
마음을 씻으면 진정한 마음을 얻지만
귀를 씻으면 헛되이 명성을 살 뿐이며,
사안처럼 끝내 한번 일어서서
더불어 백성을 구제하세.


·천마


천마는 월지국의 굴에서 온 것인데,
등은 호랑이 무늬이고 골격은 용의 날개라네.
푸른 구름 속에서 히힝거리고 
녹색 갈기를 드날리며,
얼굴 근육 비범해서 사라진 듯 없어진 듯 달리네.
곤륜산을 올라
세상 서쪽 끝을 지나는데
네 다리는 한 번도 헛디디질 않네.
닭이 울 때 연 땅에서 갈기를 빗고 해 질 녘에 월 땅에서 꼴을 먹으니,
신령이 지나간 듯 번개가 치는 듯 발길이 보이지 않네.
천마가 울면서
비룡처럼 내달리네.
눈은 샛별처럼 빛나고 가슴에는 한 쌍의 오리 모양 근육,
꼬리는 유성 같고 머리는 갈오 같으며,
입에서는 붉은 빛을 뿜어내고 가슴팍의 땀도 붉으니,
일찍이 당대의 용을 모시고 하늘 길을 뛰었다네.
머리의 금장식 끈이 수도를 비추고,
뛰어난 기상 반듯해 온 천지를 떨쳤으니,
산처럼 큰 흰 옥으로도 누가 감히 살 수 있으랴? 
고개 돌려 자연마를 비웃으니 
그저 너희들이 어리석다고 생각할 뿐이네.
천마가 내달리며
임금의 수레를 그리워하네.
재갈을 당기자 날아오르니 뜬구름이 뒤집히네.
만 리를 달리다 머뭇거리며
저 멀리 대궐문을 바라보는데,
한풍자를 못 만났으니
누가 지나가는 태양처럼 날쌘 말의 후손을 가려낼까?
흰 구름은 푸른 하늘에 떠 있고 
언덕은 먼데,
소금 수레가 우뚝 솟은 가파른 비탈을 오르니,
낑낑대며 억지로 가면서 날 저물까 두려워하네.
백락이 다듬고 쓰다듬었지만 중도에 버려졌으니 
젊었을 때 힘을 다 쓰고는 늙어서 버림받았구나.
원컨대, 전자방을 만난다면 
측은하게 여겨 나를 위해 슬퍼해 주련만,
비록 옥산의 나무벼가 있다 해도
고통스런 굶주림을 치유할 수 없구나.
오월 한여름의 된서리는 계수나무도 시들게 하는 법이라,
구유에 엎드려 원통함을 머금으니 두 눈썹이 처지네.
그대에게 청하노니, 나를 사서 목천자에게 바친다면 
여전히 그림자 희롱하며 요지에서 춤출 텐데.


☑ 지은이 소개

이백(李白, 701~762)
이백(701~762)은 사회 경제적으로 번성한 성당 시기와 국가적 환란 시기를 살았다. 그가 태어난 곳에 대해서는 키르기스스탄의 타클라마칸, 사천성 강유(江油), 감숙성 농성(隴城) 성기(成紀) 등 여러 가지 설이 있으며, 그의 혈통에 대해서도 아직 논란이 있다. 그는 어려서 ≪시경≫과 ≪서경≫을 비롯해 제자백가를 공부했고, 검술이나 신선술 등에도 남다른 관심이 있었다. 그의 사상적 기초에는 유가뿐만 아니라 도가, 불교, 종횡가 등도 포함되었으며, 그는 협객의 기질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분야의 독서와 자유로운 유람, 광범위한 교제를 통해 독특한 풍격을 갖추어 나갔다.
724년 가을 이백은 촉 지방을 떠나 형문(荊門), 초(楚) 지방, 동정호(洞庭湖), 금릉, 광릉, 월(越) 지방, 회계(會稽), 양주(揚州), 운몽(雲夢), 안륙(安陸)을 떠돌게 된다. 그러다 727년 안륙에서 고종(高宗) 시대 재상이었던 허(許) 상공(相公)의 손녀를 처로 받아들였다. 
이후 장안으로 가서 하지장(賀知章)과 만나고 하늘에서 귀양 내려온 신선이란 뜻인 ‘적선인(謫仙人)’이란 별칭을 얻게 된다. 장안 근처 종남산(終南山)에 은거하면서 당시 유력자였던 옥진공주(玉眞公主)를 통해 관직에 진출하려 했지만 실패로 끝났다. 자신의 재능과 포부를 알리지 못하는 실망감을 달래기 위해 장안 부근의 방주(坊州)와 빈주(邠州) 일대를 유람하거나 장안과 낙양을 오가면서 시정배들과 술과 노름으로 세월을 보낸다. 장안을 떠나 송성(宋城), 양원(梁園)을 지나 숭산(崇山)에 은거하면서 원단구(元丹丘)를 방문하고 최종지(崔宗之) 등과 교제하게 된다. 그 후 양양(襄陽)에 머물다가 태원(太原)에 들른 후 숭산에 가서 원단구와 잠훈(岑勛)을 만난다. 돌아오는 길에 양양에서 맹호연(孟浩然)과 만나고 안륙으로 돌아와 잠시 머물다 남양(南陽), 진주(陣州), 안의(安宜), 오(吳) 지방 등을 두루 유람한다. 다시 안륙으로 돌아왔다가 동로(東魯)로 이주해 임성(任城)에 기거한다. 740년 즈음에 조래산(徂徠山)에 은거하며 술과 시로 노닐었는데 당시 같이 지내던 이들을 죽계육일(竹溪六逸)이라고 한다. 
742년 식구들과 함께 남쪽으로 가서 가족들은 남릉에 남기고 홀로 월 지방으로 가 있다가, 회계에서 같이 지내던 오균(吳筠)의 추천으로 장안으로 들어왔으며 또한 옥진공주의 추천을 함께 받아 궁중으로 들어가 한림공봉(翰林供奉)이 되었다. 여태까지 여러 산을 떠돌며 은자로서 이름을 알린 것이 결실을 맺어서 관직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지만, 그가 한 일은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왕의 측근에서 글의 초안을 잡거나 연회에 불려 가 흥을 돋우는 시나 짓는 정도였다. 어용 문인의 생활에 회의를 느끼고 장안의 한량들과 어울려 다니며 시와 술로 지내다 결국 744년 장안을 떠나 유랑의 길에 접어든다. 
이백은 낙양에서 두보를 만나고, 양원에서 고적과 노닐다가 제남 자극궁(紫極宮)에서 고천사(高天師) 여귀도사(如貴道士)로부터 도교의 진록(眞籙)을 전수받는다. 장안에서의 회의와 좌절감이 이백으로 하여금 도교에 더욱 심취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후 양주, 금릉, 단양, 월 지방, 곽산을 유람하고 금릉에 오래 머물며 강남 지역을 유랑했다. 이때 아내 종씨(宗氏)를 맞이했다. 이후 유주(幽州)로 갔다가 다시 양주를 거쳐 남릉으로 오게 되는데, 이렇게 그는 동서남북으로 계속 유랑했다. 
755년 안록산의 무리가 낙양을 함락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부인 종씨를 데리고 남하해 여산(廬山)에 은거했다. 이때 영왕(永王) 이인(李璘)의 막부로 들어가서 어지러운 왕실의 기강을 회복하고 자신의 명예도 되찾으려 했다. 하지만 영왕의 무리는 반란군으로 몰려 패배하고 이백 역시 모반에 가담한 죄로 심양(尋陽)의 옥에 갇혔다. 하지만 여러 지인들의 도움으로 757년 옥에서 풀려나 야랑(夜郞)으로 유배길에 올랐다. 759년 사면을 받아 유배 생활을 마치게 되었지만 매우 쓸쓸하고 외로운 말년을 보내다가 762년 당도(當塗)에서 세상을 떠났다.


☑ 옮긴이 소개

임도현
임도현은 1968년에 태어났으며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금속공학과를 졸업했다. 1993년 금속공학과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기업체 연구소에서 첨단 소재 개발 관련 업무를 수행했다. 그러던 중 중국어를 공부하고자 사직하고 다시 수능을 치러 2003년 영남대학교 차이나비지니스 연합전공에 입학했다. 4년 동안 중국어를 열심히 공부했고, 그중 1년 동안은 중국 톈진(天津)에 있는 난카이대학(南開大學)에서 수학했다. 중국에 체류하는 동안 백두산, 태산, 승덕(承德)의 피서산장 등을 두루 여행했으며 특히 윈난성 일대를 40일간 배낭여행한 경험도 있다. 그중 매리설산(梅里雪山)에서 10여 일을 보냈는데 그때의 기억을 가장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이후 영남대학교 중문과에서 석사 과정을 수학하면서 중국 고전 문학에 관한 다양한 학습을 했으며, 그 결과 <이백의 시에 나타난 술의 이미지에 관한 연구>라는 제목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2009년에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박사 과정에 입학했으며 2012년 8월 <이백의 자아추구양상과 문학적 반영>이란 제목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지금은 이화여대 중문과에서 박사후과정 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으며, 서울대와 중앙대에 출강하고 있다. 연구 성과로는 ≪이백의 <고풍 59수>≫, <이백의 간알시에 나타난 관직 진출 열망>, <이백의 다원적 이상 추구와 그 좌절로 인한 비애>, <≪협주명현십초시(夾注名賢十抄詩)≫의 간행목적(刊行目的)과 유전양상(流傳樣相)> 등이 있다.


☑ 목차

1. 정치적 공명의 지향
고풍 59수 제26수 ·················3
고풍 59수 제38수 ·················6
진나라 여인이 천자의 옷을 말아 개다 ········8
한단의 궁녀가 시집가서 허드렛일 하는 부역인의 부인이 되다 ···················11
빈 땅의 노래를 읊어 형님인 이찬 신평장사께 올리다 ·14
영왕의 동쪽 순행 11수 제11수 ···········18
여도사 옥진공주 ·················20
친척 형님인 이호 양양현위께 드리다 ········22
범 금향현령께 드리다 2수 제1수 ··········26
왕 하구현위에게 주다 ···············31
오래도록 비 내리는 옥진공주의 별관에서 장 위위경님께 드리다 2수 제2수 ··············34
비서성의 위자춘께 드리다 ·············40
하창호 판관에게 주다 ···············45
배씨에게 주다 ··················48
고봉의 석문산 은거지로 들어오기를 권하기에 업중에서 왕창령에게 주다 ··············51
최성보 시어에게 주다 ···············55
급히 써서 독고명 부마도위께 드리다 ········60
이옹께 올리다 ··················63
왕충신 승주자사께 드리다 ·············65
배 사마에게 주다 ·················67
난리를 겪은 후 황제의 은택을 입어 야랑으로 귀양 가면서, 옛날 노닐던 것을 기억하고 느낀 바를 적어 강하태수 위양재께 드리다 ····················70
숙부이신 강하자사의 연회 석상에서 사흠 낭중께 드리다 ·····················91
장호 재상께 드리다 2수 제1수 ···········94
우문 선성태수께 드리며 아울러 최성보 시어에게 주다 101
조열 선성태수에게 드리다 ············112
벗에게 주다 3수 제1수 ··············119
친척 숙부인 이양빙 당도현령께 바치다 ·······121
오왕께 부쳐 올리다 3수 ·············129
숭산으로 돌아가는 배도남을 보내다 2수 제2수 ···134
노 땅에서 장안으로 과거 시험 보러 가는 두 친척 동생을 보내다 ··················136
왕숭 방주사마와 염 정자가 눈을 마주 보며 시를 지어 내게 준 것에 답하다 ·············139
고시를 본뜨다 12수 제2수 ············143
고시를 본뜨다 12수 제7수 ············146
흥취를 느끼다 8수 제6수 ·············148

2. 정치적 공명을 이루지 못한 애달픔
고풍 59수 제44수 ················153
고풍 59수 제52수 ················156
고풍 59수 제57수 ················158
먼 이별 ·····················160
왕숭 사마를 떠나다 ···············165
시국에 감개하며 종형인 서왕 이연년과 종제인 이연릉을 떠나다 ··················169
이광필 태위가 진의 백만 병사를 일으켜 남동쪽으로 출정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약한 사내가 적장을 잡으려 끈을 요청해 작은 능력이나마 펼 수 있기를 바랐지만, 중도에 병이 나서 돌아오게 되어, 금릉의 최 시어를 떠나며 19운을 짓다 ························180
금향에서 장안으로 가는 위씨를 보내다 ·······187
금릉에서 다시 동오 지역으로 가는 장씨를 보내다 ··189
비파협으로 가는 육 판관을 보내다 ·········192
숙부이신 이엽 형부시랑과 가지 중서사인을 모시고 동정호를 노닐다 5수 제3수 ···········194
경정산 북쪽 이소산을 올랐는데, 나는 당시 나그네 신세로 최성보 시어를 만나 함께 이곳을 올랐다 ··197
강남에서 봄에 생각하다 ·············199
처음 금문을 나와서 왕 시어를 찾아갔지만 만나지 못하고 벽 위의 앵무새를 읊다 ···········201
서역 사람이 피리 부는 것을 보다 ·········203
흥취를 느끼다 8수 제8수 ·············205

3. 비참한 신세에 대한 토로
고풍 59수 제22수 ················209
고풍 59수 제37수 ················213
고풍 59수 제59수 ················217
천마 ······················221
아침에 장끼가 날아오르다 ············229
한 쌍의 제비가 헤어지다 ·············233
문밖에 수레를 탄 손님이 있네 ···········236
길을 떠나며 ···················240
눈을 마주하고 친척 형님인 우성현령에게 바치다 ··242
유 도사에게 드리다 ···············244
취한 뒤 종조카 고진에게 주다 ···········248
옥중에서 최환 재상께 올리다 ···········252
가을밤에 홀로 앉아 고향 산을 생각하다 ······255
채 산인을 보내다 ················260
오송산 아래 순씨 할머니 집에서 묵다 ·······263
겨울밤 취해서 용문에서 묵다가 깨어 일어나 뜻한 바를 말하다 ···················265
고시를 본뜨다 12수 제9수 ············268
감우 4수 제2수 ·················270
정 판관에게 주고 헤어지다 ············272
최환 재상님께 백 가지 근심을 아뢰는 글 ······274
만 가지 분노를 써서 위 낭중에게 주다 ·······281
들판의 풀 중에 백두옹이라는 것을 보다 ······287
야랑으로 유배 가다가 아욱 잎을 쓰다 ·······289
추방된 후에 은혜가 내려졌지만 혜택을 못 받다 ···291
미인을 대신해 거울을 근심하다 2수 제1수 ·····293

4. 떠돌며 홀로 지내는 외로움
오랜 이별 ····················297
추포 17수 제1수 ·················300
까마귀가 밤에 울다 ···············302
아미산의 달 ···················304
조염 당도현위에게 부치다 ············306
심정을 써서 종제인 이소 빈주장사에게 부치다 ···308
백로주에 묵으며 양이물 강녕현령에게 부치다 ····311
심정을 이야기해 벗에게 주다 ···········314
남양에서 손님을 보내다 ·············320
벗을 보내다 ···················322
강하에서 벗을 보내다 ··············324
선성의 청계 ···················326
중양절 ·····················328
태원의 이른 가을 ················331
가을밤 판교포에서 배 띄워 달구경 하며 혼자 술 마시다가 사조를 생각하다 ·············333
달 아래서 홀로 술을 마시다 4수 제1수 ·······336
가을밤 나그넷길을 생각하다 ···········339
멀리 부치다 12수 제4수 ·············341
멀리 부치다 12수 제6수 ·············343
연꽃을 꺾어 주다 ················345

해설 ······················347
지은이에 대해 ··················368
옮긴이에 대해 ··················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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