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30일 목요일

스펙토르스키 / 이야기



도서명 : 스펙토르스키 / 이야기(Спекторский / Повесть)
지은이 : 보리스 파스테르나크(Борис Пастернак)
옮긴이 : 임혜영
분야 : 러시아 소설
출간일 : 2013년 5월 31일
ISBN : 978-89-6680-962-2   03890
19,500원 / 사륙판 _ 무선제본 / 288쪽




☑ 책 소개

“<스펙토르스키>란 제목의 운문 소설과 현재 이야기되는 이 산문 간에 모순은 없을 것이다. 곧 이 두 작품은 하나의 작품이다.”
운문 소설 <스펙토르스키>와 산문 소설 <이야기>. 형식은 다르지만 “하나의 작품”이다. 파스테르나크는 혁명, 역사, 예술가의 사회적 역할을 다루기 위해 고심했다. 그 해답이 바로 장르를 뛰어넘은 이 작품이다. 영국에서는 오페라로 공연되기도 했다. ≪닥터 지바고≫의 모태가 된 <스펙토르스키>와 <이야기>를 국내 최초로 소개한다.


☑ 출판사 책 소개

파스테르나크의 <스펙토르스키>(1924∼1930)와 <이야기>(1929)는 각각 서사시, 좀 더 정확히 말해 운문 소설과 산문이다. 두 작품은 형식상 다른 장르이지만, 저자가 직접 <이야기> 서두에서 규정했듯이 “하나의 작품”이다. 두 작품은 하나의 단일한 주인공 세르게이 ‘스펙토르스키’의 두 ‘이야기’인 셈이다. 바로 여기에 두 작품을 함께 묶은 이유가 있으며 서로의 연관성, 곧 시와 산문의 연관성을 추적해 볼 때 각각의 작품도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스펙토르스키>와 <이야기>는 파스테르나크의 산문 창작사에서 하나의 큰 획을 그은 중요한 작품이다. 두 작품이 영국에서 국영방송 BBC의 요청에 따라 오페라로 공연되기도 했듯이 서구에서는 저자 생존 시에 ≪닥터 지바고≫와 나란히 일찍 번역 소개되어 알려져 있었다. 무엇보다 두 작품은 혁명과 함께 예술가의 사회적 역할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었다는 점에서 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파스테르나크의 창작에는 오랜 기간 심혈을 기울여 창조된 대표적인 두 소설이 존재한다고 지적된다. 바로 운문 소설 <스펙토르스키>(그 보충인 <이야기>를 포함해)와 산문 소설 ≪닥터 지바고≫가 그것이다. 특히 <스펙토르스키>와 <이야기>는 시 이외에 큰 산문을 쓰고자 한 작가의 10여 년 동안의 갈망이 층층이 녹아 있는 작품으로 창작 전기의 경험을 종합한 작품이며 1920년대의 가장 중요한 작품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두 작품을 끝으로 1910∼1920년대의 창작 전기는 마무리되고 이른바 “제2의 탄생” 과정을 거친 새로운 창작기인 후기가 1930년대 초에 시작되기 때문이다.
큰 산문을 쓰고자 하는 강한 열망은 후기에도 이어진다. 하지만 스탈린 정권의 암흑기인 1930년대는 작가의 창작 활동이 거의 중단된 시기로 산문 창작도 몇몇 미완의 산문 습작(<지불트의 수기>, <1936년의 산문> 등)이 있을 뿐 공백기로 남는다. 본격적인 산문 작업이 시작된 것은 작가 자신이 성숙기라 칭한 1940년대에 들어와서다. ≪닥터 지바고≫의 창작 작업(1945∼1955)이 바로 그것인데, 이때 1930년대에 중단된 산문 습작 경험이 그 결실을 보는 셈이기도 하다. 강조되어야 할 것은 ≪닥터 지바고≫가 오랜 습작 경험을 종합해 1920년대 말경에 완성된 단일한 하나의 작품 <스펙토르스키>와 <이야기> 작업의 연장이라는 점이다. 1930년대 산문 습작 역시 위의 1920년대 소설을 바탕으로 했기 때문인데, 여기서 우리는 1920년대와 1940∼1950년대 양 시기에 쓰인 운문 소설과 산문 소설의 연관성, 나아가 전 생애 동안 큰 산문을 쓰고자 했던 바람의 최종 성취를 확인할 수 있게 된다. 강조컨대 <스펙토르스키>와 <이야기>, 그리고 ≪닥터 지바고≫는 각각 전, 후기를 종합하는 대표적인 두 소설이며 동시에 전 창작 시기에 걸쳐 창조된 하나의 ‘큰 산문’을 이룬다.


☑ 책 속으로

·세상엔 실제로 일어난 수많은 이야기가 있는 법,
더군다나 뛰어난 점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이야기가.
그러한 이야기에 관한 기사들이 특별한 역할을
하지 않았다면 나도 이 이야기에 파고들지 않았을 터.
그 기사들은 모두 과거에 관한 것이었고
과거의 일부분을 놀랍게 비추었다.
나는 현미경의 대물렌즈를 통해 바라보듯, 있는 그대로
<스펙토르스키>를 쓰기 시작했다.
주인공을 위해 특별한 것을 제시하지도
그에 대한 이야기를 즉시 시작하지도 않을 터.
하지만 나는 산더미처럼 많은 빛에 대해 썼다.
그는 멀리, 바로 그 빛 가운데서 내 앞에 보였던 것이다.
음식 창고의 작은 등잔만이 깜박이는 어스름에 대해 썼다.
이 어스름은, 우리 머리칼이 우리가 모르는
걸작(傑作)에 대한 소식에 놀라 꼿꼿이 설 때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일상처럼 여겨진다.
밤에 모스크바의 기울어진 가로등 갓이
어떻게 가로등 초점에 떨어진, 애수에 찬 비와 더불어
전율하며 먼 곳, 굴에서 굴로
이끌리는지에 대해 썼다.
어떻게 빗방울이 여행 소식을 전하는지에 대해,
모든 마차가 못 하나에 부딪쳐 딱딱 소리를 내는 편자로
밤새 내내 또각또각 말발굽 소릴 내며 때론 여기, 때론 저기,
때론 저 현관으로, 때론 이 현관으로 가는지에 대해 썼다.
날이 밝는다. 가을, 잿빛, 노쇠함, 흐림.
화분들과 면도기들, 솔들, 지진 머리 마는 컬용 종이들.
삶은, 닳아빠진 4륜 무개 마차가 덜커덕거리며 갈 때쯤의
밤처럼 지나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납빛 천장. 새벽. 물에 잠긴 마당들.
아주 많은 양철 지붕들.
하지만 대체 어디에 있는가? 어느 날 꿈에 세계가 나타나
뚫고 나왔던 때의 그 집, 그 문, 그 어린 시절은.

·벽장 속에 있는 어느 한 소녀의 갑작스런 외침.
때려 부순 벽장문, 움직임, 눈물, 울림,
그리고 헐벗은 계단이 깃발로 펄럭이고
억압받았던 소망이 피어오르고 있는 마당.
괴로워하며 끝없이 깊은 치욕을 앞치마에
파묻곤 했던 그녀가 이제 난폭해져
지극히 무한하고 공공연한 귀족 특권의
파괴로 생긴, 구멍 난 담장으로 나는 듯 달려간다.
날들, 순간들, 날들. 하나로 통합돼 이뤄진 세상의 뒤집힘으로
사건은 갑자기 벽 뒤에서 사라진다.
그대는 벽 뒤의 사건으로 압제와 허위가
얼어붙어 죽게 될 것으로 여긴다.
동시에 다음이 밝혀진다: 세상에
혈연관계의 작은 흔적이 없는 유골은 없다는 것이:
삶과 연대해서 공동생활 속에서 태어난 아이들인
마당과 아낙네, 갈까마귀와 장작이 각각 그렇다.
바로 여기 노을은 딸의 치욕을 잊는다.
노을은 뾰족구두 뒤축으로 창을 쳐부순 후
날아서 폭도의 손으로, 폭도의 손 위
구름 너머로 이동한다.
아들인 폭도의 옷깃이 노을 뒤에서 재빨리 사라진다.
여기 폭도에게 남는 건 물질적 수익이 아니다.
지평선 따라 펼쳐진 하늘은, 엉긴 우유 같은 눈이 지붕에
쏟아진 모든 야영 천막처럼 자리를 뜬다.
그대는 혼자 있다. 재앙은 다시 문을 두드릴 것이다.
야영 천막에 있던 자들에 의해 남겨진 기록 문서 하나.
그 내용은 그대와 그대의 삶은 낡은 것이며
혼자 있는 건 사치스런 로코코식이라는 것.
그러자 그대는 소릴 지르네. 농담하는 게 아니다! 폭력이다!
그대도 그들처럼 살았다고. 하지만 평가는 이미 결정돼 있다:
역사의 의미는, 우리가 무얼 지니고 있었나가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홀랑 벗겨진 채로 방치되었나에 있다고.

·별안간 새벽노을이 마른 건초처럼 단번에 확 불붙더니 또 그렇게 갑자기 노을 전체가 건초처럼 다 탔다. 기포 낀 볼록 유리 위를 파리들이 기어갔다. 가로등과 안개는 짐승마냥 서로 하품을 주고받았다. 노을 불꽃이 사방으로 흩어지는 사이 온통 희미했던 날도 곧 밝아졌다. 이 순간 세료자는 이제껏 누군가를 사시카만큼 열렬히 사랑한 적이 없었음을 느꼈다. 그리고 바로 이때 마음속으로 다음과 같은 광경을 보았다. 반드시 붉은 빛깔의 고기 얼룩이 드리우는 자갈 도로가 좀 더 멀리 떨어진 묘지 쪽 어딘가로 향해 있는 것을 말이다. 그 도로에 있는 조약돌은 관문 근처의 돌처럼 보통 돌보다 더 굵고 희귀하다. 가축을 실은 칸도 그냥 텅 빈 칸도 있는 화물칸들이 자갈 도로를 가로질러 삐져나왔다 들어가고 삐져나왔다 들어가면서 조용히 미끄러지듯 지나간다. 갑자기 전복(顚覆) 비슷한 현상이 일어난다. 화물칸들의 움직임이 뭔가로 인해 뒤바뀌고 도로 깊숙한 곳에서는 길이 끊긴 도로 끝 부분이 솟아난다. 이것은 텅 빈 무개 화차들이 1베르스타씩 서로 떨어진 채, 화물칸들이 가는 방향으로 지나가며 내는 소리였다. 하지만 이 무개 화차들은 건널목 근처에서 사람들과 달구지가 만들어 낸 촘촘한 벽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그곳 건널목 근처에는 엉겅퀴와 미나리아재비가 있었는데, 타는 냄새가 없었다면 들쥐 냄새마저 풍겼을 것이다. 바로 이곳에서 콧물투성이 사시카가 여섯 살 난 말괄량이처럼 활기를 띠며 분주히 돌아다닌다. 마침내 검은 기관차가 모든 차량보다 뒤처져 증기를 내뿜으며 다가와 객차를 봤는지, 객차가 지나가지 않았는지 묻는 듯하더니 이윽고 도로에 있는 이들을 뒤로하고 급히 지나간다. 바로 여기서 건널목 횡목이 위로 올라가고 거리는 곧은 화살처럼 사방으로 뻗어 간다. 또한 바로 여기서 움직이는 짐마차와 대금 치르는 사람들이 마주 보며 양방향에서 다가오더니 서로에게로 침투한다. 증기 기관차의 연기는 괴물의 따뜻한 위(胃)처럼, 그리고 세 번 감은 풀 한 포대처럼 이곳 자갈길 한가운데로 쿵하고 떨어진다. 이 연기는 바로 도시 외곽 빈곤 지대에서 식량으로 먹는 간(肝) 같다. 사시카는 당황한 채, 차 제품과 식민지의 상품, 판매 중인 궐련과 담뱃잎, 그리고 양철 지붕과 경찰들에 드리운 이 무시무시한 연기를 쳐다본다.

·하지만 이 사람이 지금 말한 모든 것을 다 체험한 듯 보이니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마치 누군가 그에게 번갈아 가며 때론 지상을 보여 주고 때론 소매 안에 숨긴 듯했다. 그는 존재가 비존재와 가장 뚜렷이 구별되는 점은 살아 있는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보았다. 그가 오직 한순간에만 떠오른 이러한 존재와 비존재의 차이점을 간직하고서 시의 불변하는 자질로 재생했다는 것은 그의 시의 참신성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어디서 이러한 현상들의 모습과 그것들이 사라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을까? 세대의 교체 속에서도 지상은 빛나고 있다는 것을 그에게 들려준 것은 온 인류의 목소리가 아닐까?
그가 말한 이 모든 것은 전혀 예외가 없이 영원불변한 예술에 관한 것이다. 그러한 예술은 모두 경계(境界)가 속삭이는 대로 무한한 것들에 대해 말한다. 또한 그러한 예술은 지상에 아주 많이 널려 있는, 끝없이 처절한 빈곤에서 탄생하는 법이다.


☑ 지은이 소개

보리스 파스테르나크(Борис Пастернак, 1890∼1960)
보리스 레오니도비치 파스테르나크는 1890년 2월 10일(구력으로 1월 29일, 19세기 시인 푸시킨의 사망일) 모스크바에서, 톨스토이의 ≪부활≫ 삽화를 그린 화가 레오니트 파스테르나크와 뛰어난 피아니스트인 로잘리야 카우프만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예술적인 집안 분위기에서 회화를 접했을 뿐만 아니라, 전문적으로 음악과 철학 수업을 받았다. 그러나 결국은 음악과 철학 공부를 중단하고 1912년부터 문학에 전념한다. 대학 시절 여러 문학 동아리−‘상징주의’, ‘미래주의’−에 참여했던 그는 1913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문학 활동을 시작한다.
창작 전기의 주요 특징은 1930년대 초 이전에 이미 파스테르나크의 고유한 창작적 경향이 확립됐다는 데 있다. ≪삶은 나의 누이≫에서 그의 “자연 철학”이 결정적으로 형성됐다면, 세 서사시 <1905년>, <시미트 중위>, <스펙토르스키>에서는 “역사 철학” 역시 결정적으로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삶과 미학적 신조’의 제시와 함께 ≪삶은 나의 누이≫에서 형성된 근본적인 창작 경향은 다소 변형되고 진화됐을 뿐 이후의 창작 전체를 관통한다. 위 세 서사시 또한 이 시집의 시학이 역사 테마 차원에서 전개된 예다.
창작 후기는 1932년에 시집 ≪제2의 탄생≫을 발행함으로써 시작된다. 이 시집에서 파스테르나크는 창작 전기의 난해성을 버리고 의미의 명료성을 추구했다. 1933년에는 작가동맹 대표단과 우랄 지방을 여행한다. 가혹한 비평적 공격을 받게 되는 1930년대 후반기에 그는 창작 활동을 중단한다. 1935∼1941년 번역에 몰두해 셰익스피어의 희곡, 그루지야 시인들, 바이런 및 기타 유럽 시인들의 시를 번역한다. 세계대전 발발로 치스토폴에 피난했다가 모스크바로 돌아온 후 1943년에 시집 ≪새벽 열차를 타고≫를 발행한다.
1945년에는 ≪닥터 지바고≫의 집필을 시작한다. 1946년에는 1955년까지 이어지는 소비에트문학의 즈다노비즘 시기가 시작되어 같은 해 작가동맹 제1서기 파데예프로부터 비판을 받는다. 1948년부터는 창작의 발표 기회가 막혀 번역으로 생활을 연명하게 되고 그 이후 셰익스피어와 괴테의 작품을 번역·출판한다. 1954년에는 잡지 ≪즈나먀≫에 <닥터 지바고에 실릴 시> 10편이 수록된다. 1955년에 ≪닥터 지바고≫ 집필을 완료한다. ≪닥터 지바고≫는 1956년에는 잡지 ≪노비미르≫를 비롯해 국내에서 출판이 거부되고, 1957년에 밀라노에서 이탈리아어로 출판된다. 1958년에는 각국의 언어로 번역돼 출판되고 같은 해 노벨문학상 수상이 결정된다.
1959년에는 파스테르나크의 마지막 시집이자, <유리 지바고의 시>와 시기적으로도 특성에서도 밀접하게 관련된 시집 ≪날이 맑아질 때≫가 파리에서 출간되고, 이어 1960년에 그는 페레델키노에서 사망한다. 1988년에는 잡지 ≪노비미르≫에 ≪닥터 지바고≫가 게재되고 파스테르나크의 복권이 이루어진다.


☑ 옮긴이 소개

임혜영
임혜영은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와 동 대학원 노문학과를 졸업했다. 졸업 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국립대학에서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소설 “닥터 지바고”, 작가의 일반 철학적 관념에 비추어 본 시와 산문>이라는 논문으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고려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논문으로는 최근의 <파스테르나크의 “삶은 나의 누이” 에 나타난 레르몬토프 전통>, <러시아 문학과 여성신화: 파스테르나크의 “페테르부르크”, “변주 있는 한 테마”, ‘파우스트 연작시’를 중심으로>, <파스테르나크와 신비주의: “닥터 지바고”에 나타난 신비체험을 중심으로> 이외 다수가 있다. 역서로는 ≪시간과 공간의 기호학≫(공역)과 ≪삶은 나의 누이≫가 있다. 파스테르나크를 비롯해 러시아 모더니즘에 관한 연구 논문 발표를 지속하고 있다.


☑ 목차

스펙토르스키 ···················1
이야기 ·····················109

부록 ······················243

해설 ······················251
지은이에 대해 ··················274
옮긴이에 대해 ··················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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