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9일 화요일

뮐러 산문선



도서명 : 뮐러 산문선(Prosa von Heiner Müller)
지은이 : 하이너 뮐러(Heiner Müller)
옮긴이 : 정민영
분야 : 수필비평
출간일 : 2013년 4월 10일
ISBN : 978-89-6680-663-8 03850
18,000원 / A5  / 156쪽



☑ 책 소개

“브레히트 이후 가장 의미 있는 독일어권 극작가”, “동독의 가장 중요한 작가” 하이너 뮐러. 그러나 정작 동독에서는 오랫동안 출판과 공연이 중지되었다. 동독 사회 내부의 모순과 갈등을 직시했기 때문이다. 그의 산문을 국내 최초로 소개한다. 난해할 정도로 자유로운 사고와 독특한 표현 방식은 경악을 통해 독자의 ‘틀’을 깨고 새로움을 창조한다.


☑ 출판사 책 소개

극작가로서 현대 독일 문학계에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하이너 뮐러(Heiner Müller, 1929~1995)는 극작품뿐만 아니라 많은 시와 산문을 남겼다. 그러나 그의 시와 산문은 너무도 뚜렷하게 드러난 극작품의 비중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그 주된 이유는 그의 시와 산문들 중 상당 작품이 극작품의 내용과 연결되어 있어서 극작품을 위한 자료 내지는 부차적 텍스트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뮐러의 산문에 대해 그동안 전혀 언급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의 자전적 산문인 <아버지>(1958)와 <사망 신고>(1975)는 극작품의 중심 주제인 역사 속의 폭력과 배반, 죽음, 그리고 저항과 관련해 빈번하게 인용되었고, 마지막 산문인 <꿈 텍스트 1995년 10월>(1995)에 대한 주관적 논평이라 할 에세이 한 권이 1996년에 출간되었다. 뮐러의 산문은 주어캄프 출판사가 1998년부터 2008년까지 12권으로 된 뮐러의 전집을 간행하면서 비로소 한자리에 모였다. 전집 중 제2권인 산문 편에는 21편의 유고를 비롯해 모두 54편의 산문이 실려 있다. 이 산문집의 발간으로 뮐러의 산문 연구를 위한 기본 자료가 정리된 셈이다.
하이너 뮐러의 사유와 극 쓰기 방식은 극단적이다. 그의 의식의 흐름은 고통을 수반하면서 때로는 악몽으로 때로는 전혀 비논리적인 환상의 세계로 이어진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뮐러의 시각에서 보자면 역사는 발전의 움직임을 멈춘 채 응고되어 있고 인간은 사유의 능력을 상실한 채 현재의 순간에 점령당해 있다. 모든 것이 석화해 있다. 뮐러는 이러한 현재 상황을 부수는 작업에 몰두한다. 새로운 것으로 전이, 새로운 역사의 움직임을 태동시키려는 그의 노력은 굳어 있는 모든 것들을 파괴하는 과정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가 만들어 내는 장면들은 극단적인 난폭성, 테러와 같은 공격으로 채워지고 압축된 언어는 수수께끼와 같은 암호와 상징, 은유로 덮여 있다. 뮐러는 모든 기존의 틀을 그 기초부터 흔들어 놓는다. “경악시키기의 요구”로 규정되는 그의 연극 텍스트는 이를 위한 수단이다. 기존의 틀에 갇혀 있는 독자와 관객에게 그 틀을 부수고 나올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기 위해 필요한 것은 “경악을 통한 교육” 그리고 “경악을 통해 배우기”다.
문학이 해야 할 일은 역사와 상황 그리고 인간 두려움의 중심을 찾아내 그것을 독자, 관객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두려움의 중심을 은폐하거나 덮어 두면 거기에서 얻을 수 있는 에너지에 접근할 수가 없다. 두려움과 대결을 통한 극복이 필요하다. 뮐러의 연극 텍스트가 갖고 있는 경악의 요소는 관객을 심리적 압박 아래 두고 어떠한 반응을 일으키도록 강요한다. 관객의 경악이 그 작품 자체를 향하고, 최소한 방어 반응으로서 어떤 저항감을 가지고 극장을 떠나게 되면 이미 새로운 경험과 기억이 그의 의식 속에 자리하게 되는 것이다. 뮐러는 관객의 이러한 경험이 그들의 실제 생활을 변화하도록 작용하기를 기대한다. 모든 것에 무감각해져 있는 현대인의 의식과 고정 관념의 틀을 깨기 위한 ‘경악시키기’의 표현 형식은 파괴로 이어진다. 뮐러에게 파괴는 건설적, 생산적 힘을 갖는다.


☑ 책 속으로

·그는 많은 사람들 속으로 시선을 돌렸다. 가까이에는 옷을 잘 차려입은 중년의 남자가 여자와 아이와 함께 서 있었다. 여자는 쇼핑백을 들고 있었고, 다른 쪽 겨드랑이엔 종이로 포장된 전기스탠드를 끼고 있었다. 남자의 양손은 비어 있었다. 아이는 여자 뒤에 바싹 붙어 서서 남자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 쳐다보지도 않은 채 말다툼을 했다. 아이가 뭐라고 말했다. 남자가 아이의 손을 잡아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여자는 아이를 자기 뒤로 끌어당기고는 쇼핑백을 남자를 향해 휘둘러 댔다. 왜 저들은 아이를 나누어 가지지 못할까, 대학생은 생각했다. 남자는 오른쪽 반을, 여자는 왼쪽 반을 가지고 서로 헤어져 걸어가는 장면을 상상하자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가 사람들 속으로 뛰어갔다. 남자는 여자에게 아이가 뛰어가 버렸다고 일러 주면서도 자기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여자가 놀라 아이를 뒤쫓아 뛰었다. 어째서 넌 나와 결혼하려 하지 않는 거지? 대학생이 물었다. 아가씨는 대답하지 않았고, 기차가 오자 그에게 악수를 청하고는 기차에 올랐다. 그는 그녀를 따라가려고 했을 때, 금연칸이라고 쓴 표지판을 보았다. 다음 칸으로 갔다. 그는 마치 자신이 시험에 불합격한 것 같았고, 배웠던 것을 다시 한 번 배워야만 할 것 같았다.

·그들은 납병정들을 전투 대열로 맞세워 놓고 교대로 상대방 전선에 돌을 튀기는 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대포 소리를 흉내 내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를 총독 각하라 부르고 사격할 때마다 의기양양하게 죽은 병정의 숫자를 불러 댔다. 병정들은 마치 파리처럼 죽었다. 푸딩이 걸려 있었다. 마침내 한쪽 총독 각하는 병정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 그의 군대는 모조리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이로써 승리자는 결정되었다. 쓰러진 병정들이 우군과 적군이 서로 섞여서, 살아남은 병정들과 함께 판지 상자에 날아들어 갔다. 두 총독 각하가 일어섰다. 그러곤 아침을 먹으러 갔다. 나는 따라갈 수 없었고, 지나가면서 그 아이들은 내 아버지가 범죄자이기 때문에 이제 나와 함께 놀 수 없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누가 범죄자인지 내게 말했다. 그들의 이름을 말하는 건 좋지 않다는 말도 함께. 그래서 나는 친구들에게 그걸 말하지 않았다. 그들은 12년이 지난 후, 위대한 총독 각하에 의해 화염 속으로 보내져, 수많은 진짜 화포의 천둥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2차 세계 대전의 끔찍한 마지막 전투 속에서 죽이면서 그리고 죽으면서 그걸 알게 되었다.

·내가 집에 돌아왔을 때 그녀는 죽어 있었다. 그녀는 부엌 돌바닥에 누워 있었다. 반쯤 배를 깔고 반은 모로 누워, 다리는 잠자고 있을 때처럼 구부리고, 머리는 문 가까이에 두고 있었다. 나는 몸을 굽혀 옆으로 돌려진 그녀의 얼굴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우리 둘만 있을 때 부르던 식으로 말을 건넸다. 나는 연극을 하는 느낌이었다. 나는 문틀에 기대어, 새벽 3시쯤 자신의 부엌 돌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어쩌면 의식불명인, 어쩌면 죽은 아내 위로 몸을 굽히고 그녀의 얼굴을 두 손으로 받쳐 든 채, 나 이외엔 아무도 없는 관객을 위해 마치 인형과 이야기하듯 그녀와 이야기하고 있는 남자를 반쯤은 지루하게, 반쯤은 흥미롭게 바라다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녀는 찡그린 얼굴이었으며, 턱은 마치 탈골된 듯했고, 벌린 입에는 위쪽 치열이 비스듬히 걸려 있었다. 그녀를 일으켜 세웠을 때, 나는 그녀의 입에서라기보다는 뱃속에서 나오는, 어쨌든 멀리에서 들리는 듯한 신음 같은 무엇인가를 들었다. 나는 이미 몇 번이나, 집에 돌아왔을 때 그녀가 마치 죽은 듯이 그곳에 누워 있는 걸 보았다. 그리고 그녀가 죽었으리라는 걱정(희망)으로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마치 필름을 편집한 듯 나는 끝도 없는 물속으로 빠져들었고, 안도와 함께 떠오르며 내 딸이 담긴 대나무 바구니가 내 위쪽, 시멘트 턱 위에 비스듬히 놓여 있는 것을 본다. 그리고 시멘트 턱이 너무도 높아 물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나를 향해 그 아이가 눈을 돌리고 바구니에서 기어 나오려는 것을 두려워한다. 널 도울 수 없는 내게서 떨어져 있어, 무엇인가를 요구하며 믿는 그 아이의 시선이 속수무책으로 물에 떠 있는 내게서 심장을 도려내는 동안 내가 가진 유일한 생각.


☑ 지은이 소개

하이너 뮐러(Heiner Müller, 1929~1995)
하이너 뮐러(Heiner Müller, 1929~1995)는 구 동독 출신으로 동독에서보다는 서구 연극계에서 더욱 주목받은 특이한 극작가에 속한다. 그의 생애를 살펴볼 때,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한 1950년대 이후 사망에 이르기까지 그의 도정은 비난과 오해 그리고 찬사가 한꺼번에 뒤섞인 모순의 과정이었다. 동독 문화 정책과 마찰을 빚은 데 따른 출판과 공연 금지의 역경에서부터 독일 통일 이후 이미 저명인사가 된 그에게 가해진 동독국가보위부(슈타지) 가담 전력에 대한 비난에 이르기까지 그는 계속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양 독일에서는 그의 문학을 중요하게 평하는 글들이 쏟아져 나왔고, 1990년에는 프랑크푸르트 연극제 ‘엑스페리멘타 6’(1990. 5. 19∼1990. 6. 4)이 그에게 헌정되었다. 겉으로 드러나는 이 같은 현상은 이 작가에 대한 명확한 평가를 어렵게 만드는 것이긴 하나, 다른 한편으로는 독일 문단에서 그의 특수한 위치를 암시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 옮긴이 소개

정민영
정민영은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독문학 박사) 독일 뷔르츠부르크대학교에서 현대 독일 문학을 공부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 교수다. 2002년부터 여러 연극인들과 희곡 낭독 공연회를 결성해 번역과 낭독 공연을 통해 여러 나라의 동시대 희곡을 소개하고 있다.
저서로 ≪카바레. 자유와 웃음의 공연예술≫, ≪하이너 뮐러 극작론≫, ≪하이너 뮐러의 연극 세계≫(공저), ≪하이너 뮐러 연구≫(공저) 등이 있고, 번역한 책으로 엘프리데 옐리네크의 ≪욕망≫, ≪하이너 뮐러 문학 선집≫, ≪하이너 뮐러 평전≫, ≪욘 포세 희곡집. 가을날의 꿈≫, 욘 포세의 ≪이름/기타맨≫, 우르스 비드머의 ≪정상의 개들≫, 볼프강 바우어의 ≪찬란한 오후≫, ≪브레히트 희곡선≫, 카를 발렌틴 선집 ≪변두리 극장≫, 독일어 번역인 정진규 시선집 ≪Tanz der Worte (말씀의 춤)≫ 등이 있다. 주요 논문으로 <독일어권 카바레 연구 1, 2>, <전략적 표현 기법으로서의 추>, <예술로서의 대중 오락−카를 발렌틴의 희극성>, <하이너 뮐러의 산문>, <한국 무대의 하이너 뮐러>, <하이너 뮐러의 󰡔사중주󰡕론>, <Zur Rezeption der DDR-Literatur in Südkorea> 등 많은 논문을 썼다. 주요 드라마투르기 작품으로 손정우 연출의 <그림 쓰기>, 백은아 연출의 <찬란한 오후>, <보이첵−마리를 죽인 남자>, 송선호 연출의 <가을날의 꿈>, 홀거 테슈케 연출의 <서푼짜리 오페라> 등이 있다.


☑ 목차

할아버지에 대한 보고 ···············3
위대한 관 판매상의 파산 ··············10
기이한 행진 ···················20
사랑 이야기 ···················25
농부들은 채석장을 등지고 섰다… ·········40
푸줏간 주인과 아내 ················41
철십자 훈장 ···················44
아버지 ·····················48
야경화 ·····················61
헤라클레스 2 또는 히드라 ·············64
사망 신고 ····················71
나는 어느 발코니에 앉아… ············77트라키아의 여름 ·················80
꿈 텍스트. 연출가들의 밤 ·············84
꿈 텍스트 1995년 10월 ··············91

해설 ······················95
지은이에 대해 ··················123
지은이 연보 ···················142
옮긴이에 대해 ··················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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