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 26일 금요일

전쟁론 천줄읽기


전쟁론 천줄읽기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 지음 / 정토웅 옮김
분야 : 천줄읽기
출간일 : 2011년 11월 11일
ISBN : 978-89-6406-988-2 00300
12000원 / A5 제본 / 122쪽




☑ 책 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 천줄읽기>는 오리지널 고전에 대한 통찰의 책읽기입니다. 전문가가 원전에서 핵심 내용만 뽑아내는 발췌 방식입니다.
≪전쟁론≫ 이전에 전쟁 이론은 대부분 전략 및 전술 중심의 테마로 구성되었으나 ≪전쟁론≫은 그 단계를 뛰어넘어 광범위하게 전쟁 자체의 현상, 구조, 내재적 역학, 그리고 전쟁과 사회의 관계 등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들을 다룬 점에서 선구적이었다. 또한 시대를 초월하여 항구적 가치가 있는 이론들을 밝힌 것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전쟁론≫은 클라우제비츠가 집필하기 전에 그가 소망한 대로 “2∼3년 지난 뒤면 쉽게 잊혀져버리는 것이 아니고 전쟁과 군사 문제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두고두고 읽고 참고할 만한 책”으로서 최고의 고전이다. 원전의 약 10%를 발췌했다.


☑ 출판사 책 소개

<전쟁론>은 병법 차원의 방법론적 기술만이 아니라, 전쟁의 본질과 성격을 논함으로써 전쟁을 사회과학적 이론의 수준으로까지 끌어올린 책이다. 이 발췌본은 전쟁의 본질과 성격을 논한 1, 2편과 결론에 해당하는 8편을 번역하여 전쟁이 정치의 수단임을 알려주고자 했다. 군사 이론가뿐만 아니라 정치학자나 사회학자들에게도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



☑ 책 속으로

Der Krieg ist ein Instrument der Politik; er muß notwendig ihren Charakter tragen, er muß mit ihrem Maße messen; die Führung des Krieges in seinen Hauptumrissen ist daher die Politik selbst, welche die Feder mit dem Degen vertauscht, aber darum nicht aufgehört hat, nach ihren eigenen Gesetzen zu denken.

전쟁은 정치의 한 수단이다. 전쟁은 필연적으로 정치적 성격을 띠고 있으며 정치적 잣대로 평가되어야 한다. 따라서 전쟁지도는 대국적인 관점에서 볼 때 정치 자체이며 펜 대신에 칼을 든 정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정치가 고유의 법칙에 따라 생각하는 것을 중단한 것은 아니다.


☑ 지은이 소개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1780~1831)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는 1780년 6월 1일 프로이센의 작은 도시 부르크에서 중산층 가정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일찍이 12살의 나이에 소년병으로 입대한 그는 프랑스혁명 후에 프로이센이 프랑스와 벌인 싸움에서 처음으로 전투 경험을 가졌으며 1831년 11월 16일 사망할 때까지 평생을 군에서 보낸 직업군인이었다.
그는 1803년 베를린 정규 사관학교를 수석 졸업했는데 당시 프로이센군 개혁의 기수였던 사관학교 교장 샤른호르스트(Gerhard von Scharnhorst) 중령의 총애를 받았으며 졸업 후 장교 생활 중에도 줄곧 두 사람은 매우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다. 클라우제비츠에게 샤른호르스트는 그의 말대로 “정신적인 아버지이자 친구”였다.
임관하자마자 클라우제비츠는 샤른호르스트의 천거로 프로이센의 젊은 황태자 아우구스트(August) 장군의 전속부관으로 발탁되었다. 그 후 그는 궁중 출입을 자주 하면서 여왕의 시녀였던 마리 폰 브륄(Marie von Brühl)을 만나 결혼하였다.
1806년 나폴레옹 군과 맞서 싸운 아우에르슈테트(Auerstädt) 전투에서 그는 황태자 아우구스트와 함께 포로로 붙잡혀 1년 동안 파리에 억류되었다. 포로 생활을 마치고 귀환한 뒤 그는 샤른호르스트 장군의 핵심 참모로 기용되었으며 프로이센군의 개혁과 개편 작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일련의 개혁 논쟁에서 인력 정책과 군기 및 훈련 제도 등 여러 분야에 걸쳐 당시 군내 분위기에서는 파격적인 주장을 많이 했다. 그 바람에 과격주의자라는 평판이 항상 따라다녔다.
그런데 클라우제비츠는 무엇보다도 프로이센 정부의 프랑스에 대한 굴욕적인 종속 상태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나폴레옹이 러시아 침공 지원을 요구해왔을 때 프로이센 정부가 너무 쉽게 그것을 수용하는 비굴한 모습을 보고서 그는 도저히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조국의 군대를 떠났다.
1812년의 전쟁에서 그는 러시아군에 입대하여 참전하였다. 이때 그는 대령 계급이었으나 언어 장벽 때문에 관전자 이상의 주요한 직책을 맡지 못했다. 그러나 종전 무렵에 프로이센군 군단장 요르크 폰 바르텐부르크(Yorck von Wartenburg) 장군을 찾아가 나폴레옹 군대에서 이탈, 전향하도록 설득함으로써 프랑스군에 큰 타격을 입혔다.
프로이센이 드디어 1813년에 반기를 들고 대(對) 프랑스 전쟁에 가담함으로써 이보다 앞선 클라우제비츠의 행동들은 모두 정당화되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프로이센 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Friedrich Wilhelm III)는 클라우제비츠의 프로이센군 복귀 요청을 상당 기간 동안이나 거절했다. 그의 과거 돌출적 행동에 대한 괘씸죄를 적용한 것이다.
프로이센군에 복귀한 클라우제비츠는 1815년 나폴레옹의 백일천하(百日天下) 시절에 제3군단 참모장으로 근무했다. 이 군단은 워털루(Waterloo) 전투에서 프랑스군의 그루시(Grouchy) 군단을 묶어놓는 중요한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함으로써 연합군 승리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나폴레옹전쟁이 끝난 뒤에 클라우제비츠는 프로이센 군부 내에서 늘 보수파로부터 심한 견제를 받아 최고위급 요직까지는 오르지 못했다. 1818년에 그는 당시 비교적 한가한 행정직인 베를린 사관학교 교장으로 부임했다. 그러나 덕분에 오랫동안 중단한 연구를 다시 재개함으로써 한직은 오히려 그를 위대한 전쟁 이론가로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여기서 그는 스승 샤른호르스트 전기를 집필하고 그 밖에 많은 독창적인 정치 및 군사 관련 논문들을 저술하였다. 그리고 역작 ≪전쟁론≫을 집필하는데 1819년부터 시작해 오랜 기간에 걸쳐 온 정열을 다 바쳤다. 하지만 초고 집필을 마친 뒤, 세심하게 수정 작업을 하던 중에 1831년 콜레라에 감염돼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결국 이듬해에 그의 부인이 유고를 모아 출판하였다. 따라서 엄격히 말하면 ≪전쟁론≫은 하나의 미완성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 옮긴이 소개

정토웅
육군사관학교에서 생도들에게 전쟁사를 30년 이상 가르쳤고 현재는 명예교수로 재직 중이다. 미국 캔자스 주립대학교에서 군사사를 전공해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저서로는 ≪전쟁사 101장면≫, ≪20세기 결전 30장면≫, ≪역사 속의 전사들≫, ≪세계전쟁사≫(공저), ≪한국전쟁사≫(공저), ≪군사사상사≫(공저) 등이 있다.


☑ 차례

해설 ·····················7
지은이에 대해 ················13

제1장 전쟁의 본질
1. 전쟁이란 무엇인가? ·············19
2. 전쟁의 목적과 수단 ·············37
3. 군사적 천재 ················51
4. 전쟁에서의 위험 ··············67
5. 전쟁에서의 육체적 노력 ···········70
6. 전쟁에서의 정보 ··············73
7. 전쟁에서의 마찰 ··············76
8. 결론 ···················82

제2장 전쟁 이론
1. 전쟁술의 분류 ···············87
2. 전쟁 이론 ·················94

제3장 전쟁 계획
1. 군사적 목표에 대한 상세한 정의 ·······107
2. 정치적 목적이 군사적 목표에 미치는 영향 ···113
3. 전쟁은 정치의 수단이다 ···········116

옮긴이에 대해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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