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7월 21일 목요일

빛 없이 있던 것 Ce qui fut sans lumière

오늘날 프랑스 문학계를 대표하는 시인이자 비평가인 이브 본푸아의 작품. 오랜 침묵을 깨고 발표한 ≪빛 없이 있던 것≫은 문학의 본질에 대해 성찰하고 있다. 현재까지도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그의 이 작품은, 뜯어 읽을수록 여러 가지 즐거움이 배어 나온다. 그의 시학이 가장 잘 드러난 걸작을 한국어로 처음 출간한다.


☑ 책 소개
본푸아가 시의 앞날을 향해 나아가는 길에는 늘 동행이 있다. “우리”라고 지칭되는 두 존재의 가닿은 시선은 역사를 꿰뚫고 우주를 공명시키며 불사조의 날갯짓으로 다가와 우리의 뇌리에 박힌다. 과연 시란 무엇인가? 본푸아는 문학의 근본을 묻고 있다. 시인은 ≪저 너머의 나라≫에 대한 아름다운 동경과 깊은 성찰을 거친 후, 오랜 침묵 끝에 우리에게 시학의 정점을 이루고 있는 ≪빛 없이 있던 것≫을 추억처럼 드러내고 있다.

‘빛 없이 있던 것’은 어둠의 존재다. 지각을 거부하는 밤의 세계는 사물들이 자신의 유한성을 드러내지 않은 채 가장 완벽한 모습으로 살 수 있는 공간이다. “비밀스런 램프”를 들고 떠나는 자들은 밖의 세계, “차가운 풀숲”으로 나아간다. 축제의 저녁은 끝나 가고, 언어의 과잉과 열기와 거짓 진술들은 어둠의 재로 묻혀 간다. 만약 우리가 영원성을 희망한다면 우리의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있었던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이 여기서 나오게 된다. 우리는 과연 이 “축제의 저녁”을 지새웠는지 아무런 증거가 없다. 우리의 실체가 명징성을 상실한 채, 새벽은 다가오고, “목소리”는 또다시 들려온다. 그것은 새벽에 울려 퍼지는 “개 짖는 소리”이며, 과거 목동이 불던 사라지지 않는 호적 소리인 것이다. 하루를 여는 이 소리들의 원초성과 그 생명의 순수성, 시인이 환기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런 변질될 수 없는 생명체들의 몸짓인 것이다. 그 몸짓은 어느 언어보다 우월하기 때문이다.


☑ 책 속으로
내 여인이여, 이것이 사실이냐.
시라고 불리는 언어 속에
아침의 태양과 저녁의 태양
기쁨의 외침과 근심의 외침
황량한 강 상류와 도끼질 소리
흩어진 침대와 폭풍우 치는 하늘
태어나는 아이와 죽어 가는 신을
지적하는 단어가 오직 하나뿐이라는 것이?
- 본문 17쪽, <고별> 중에서.

이어 나는, 부드럽게, 불꽃들의 침대 위에 너를 올려놓고,
수면 속에서 붉게 타오르는 너를 바라본다.
몸을 숙여, 아주 오랫동안 너의 손을
잡는다, 끝나 가는 유년 시절인 이 손을.
- 본문 47쪽, <나뭇가지> 중에서.

그러나 그는 램프를 끄지 않았다.
램프는, 하늘이 있음에도, 그를 위해 타오르고 있다.
또 다른 강의 작은 배, 아침의 잠든 자들이여,
갈매기들은 성에 낀 네 유리창에 영혼을 소리치고 있구나.
- 본문 106쪽, <희망의 임무> 중에서.


☑ 지은이 소개

이브 본푸아(Yves Bonnefoy, 1923∼  )
1923년 6월 24일, 프랑스 중부지방의 도시 투르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시절, 로트 지방의 생피에르 투아라크에 있는 외가에서 여름방학을 보낸다. 고향 도시 투르의 삭막한 거리가 담고 있는 일상적이고 관습적인 모습과는 달리, 삶의 근원을 담고 있는 듯한 거친 고원지대 투아라크의 풍경으로부터 소년 본푸아는 장차 시학의 중심이 되는 사물들의 현존에 대한 강한 인상을 받는다. 1941년, 대학입학자격시험 철학과 수학 과목에 통과하고 데카르트 고등학교의 수학 상급반에 들어가며, 그다음 해에 푸아티에 대학교에서 일반 수학을 전공하지만, 시에 대한 열정으로 파리로 올라간다. 브라우네르, 위바크 등 초현실주의 화가들과의 교류를 시작한다. 1945년 ≪혁명, 밤≫이란 잡지를 공동으로 창간했으나, 이 잡지는 제2호까지 나오고 중단된다. 이 잡지에 <새로운 객관성>이란 글을 실으면서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을 걷는다.
1953년, 첫 시집 ≪두브의 움직임과 부동성에 대해≫를 출간하고, 1959년에 시와 예술에 대한 에세이 ≪있음 직하지 않은 것≫을 발표한다. 1962년에는 그의 대표적인 작가론 ≪랭보≫가 나온다. 이후 시집 ≪반플라톤≫, ≪글로 쓰인 돌≫을 발표하고, 수많은 시집 및 산문집, 문예 비평집을 낸다. 특히 1972년에 출간된 ≪저 너머의 나라≫는 삶의 근원에 대한 깊은 성찰이 아름다운 문체로 드러난 산문의 백미로 평가되고 있다.
1987년에는 오랜 침묵 끝에 시집 ≪빛 없이 있던 것≫을 발표하는데, 이 작품은 그의 창작 기간의 중심에 탄생된 것이며 그의 시학이 가장 명료하게 시어를 통해 드러난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 이후 현재까지 그의 창작 열기는 지속되고 있다.


☑ 옮긴이 소개

한대균

한대균은 고려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한 후, 프랑스 투르의 프랑수아 라블레 대학교에서 랭보 작품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청주대학교 불문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위고, 보들레르, 랭보, 본푸아 등 프랑스 시인에 대한 강의 및 연구, 번역에 매진하고 있다.
한국 시의 불역에도 관심이 있어서, 지속적으로 번역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고은의 첫 시집인 ≪피안감성≫을 포함해 몇 권의 1960년대 초기 시집에서 발췌한 ≪돌배나무 밑에서≫와 조정권의 ≪산정묘지≫의 불역본을 프랑스에서, 구상과 김춘수부터 기형도와 송찬호에 이르는 ≪한국 현대시인 12인의 시 선집≫을 캐나다에서 출간했다. ≪산정묘지≫의 불역으로 2001년도에 한국문학번역원에서 수여하는 제5회 한국문학 번역상을 수상했으며,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교에서 한국 시에 관한 초청 강연을 하기도 했다.
연구 영역을 불어권으로 확장해 2006년에 한국퀘벡학회를 창설, 캐나다의 프랑스어권 문학의 연구 및 국내 소개를 위해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퀘벡 문학에 관한 연구로는 <가스통 미롱과 탈식민주의>, <퀘벡의 저널리즘과 문학> 등 다수가 있다.


☑ 차례
I
추억
나무들
새매
고별
곡면 거울
어떤 돌 하나
다시 시작한 목소리
목소리가 또다시

II
불가를 지나며
우물
우물, 가시덤불
구름의 빠른 속도
벼락
숲의 가장자리
어떤 돌 하나
‘가시덤불’이라고 했지
나뭇가지
눈 덮인 나뭇가지들 위에서


III
대지가 끝나는 곳으로
바람이 파고드는 저곳에서
랭엄에서 바라본 데덤

IV
‘사랑’의 성 앞에 있는 프시케
세상의 꼭대기
어떤 돌 하나

V
꿈의 동요
우듬지의 나라
여름밤
두 개의 수면을 담은 작은 배
희망의 임무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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