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2월 15일 화요일

유토피아 Utopia


"끝까지 포기할 수 없는 이상에 대한 꿈꾸기"

500년 전에 나온 ≪유토피아≫는 어떤 구체적인 이상향을 설계했대서가 아니라, 늘 절망적인 현실에 대한 비판인 동시에 끝까지 포기할 수 없는 이상에 대한 꿈꾸기를 ‘유토피아’라는 이름으로 최초로 인류에게 보여주었기에, 그리고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도 모어 자신처럼 그렇게 현실을 비판하고 ‘어떤 다른 곳’을 꿈꾸기를 권하고 있기에 영원한 고전으로 남아 있는 것은 아닐까?

모어의 ≪유토피아≫는 1, 2권으로 구성된다. 제1권은 현실비판, 제2권은 유토피아에 대한 이야기이다. 제1권에서 모어는 먼저 ‘저 좋을 대로’ 사는 르네상스인의 이상을 제기한다. 그러나 ‘저 좋을 대로’란 제멋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양심에 따를 뿐 부나 권력에 대해 욕심이 없음을 강조한 것이다. 따라서 현실에 대한 긍정을 전제로 한 마키아벨리와 모어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특히 모어는 군주에 대해서 명예롭고 평화적인 일이 아니라 전쟁 수행에만 몰두한다고 비판하고, 왕의 자문관도 왕에게 아부한다고 비판한다.

토머스 모어 Thomas More, 1477~1535

1477년 런던에서 태어난 토머스 모어는 옥스퍼드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했으나 사제가 되는 길을 포기하고 법률가가 되었다. 이어 25세에 국회의원이 되었으나 헨리 7세의 과중한 세금 부과안에 반대해 의원직을 사퇴했다. 1515년 38세에 ≪유토피아≫를 완성하고 친구인 에라스무스가 성서에 입각한 새로운 신학을 위해 그리스 고전의 연구와 성서의 번역을 장려하자 이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특히 종교개혁 논쟁에 뛰어들어 헨리 8세를 위해 배타적인 루터에 반대하는 여러 글을 썼다. 1523년(45세)에 하원의장이 되어 의회를 토론의 장으로 만들었고, 1529년(51세)에 일반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수상직을 겸하는 대법원장이 되었으나, 헨리 8세와 그의 이혼문제를 둘러싸고 대립해 반역죄로 1535년(57세) 처형당했다.

박홍규

박홍규는 영남대를 졸업하고 오사카시립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창원대학교를 거쳐 영남대학교에서 주로 노동법을 가르쳤고 오사카대학, 고베대학 등 일본 여러 대학에서 강의했다. ≪법은 무죄인가≫, ≪노동법 1≫, ≪노동법 2≫등의 법학저서와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과 ≪문화와 제국주의≫를 비롯한 번역서, 그리고 ≪내 친구 빈센트≫와 ≪총칼을 버리고 평화를 그려라≫ 등의 예술 관련 책을 냈다. 모어보다 1세기 뒤 영국에 살았던 셰익스피어를 제국주의자로 조명한 ≪셰익스피어는 제국주의자≫를 썼고, 모어의 ≪유토피아≫에 대해 몇 편의 글을 발표한 그는 유토피아 사상 전반에 관심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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