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2월 18일 금요일

토트 씨네 Tóték

외르케니 이슈트반 Örkény István (독일, 1864-1918)

외르케니 이슈트반은 1912년 4월 5일 부다페스트에서 약국을 경영하는 유복한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다. 인문계 학교를 마친 후 아버지의 뜻에 따라 부다페스트 공과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하여 약사가 되었다. 1937년 단편소설 <윤무>를 발표하면서 당시 잡지를 편집하던 어틸러 요제프와 친교를 맺었다. 1941년 헝가리가 독일과 함께 소련을 상대로 전쟁을 시작하면서 전쟁에 나갔고 종전 후 소련의 포로수용소에 있다가 늦게 귀국했다. 1946년부터는 주로 작가로 활동했다. 1953년 첫 장편 ≪부부≫를 출간하고 이어서 1955년에 발간한 단편집 ≪폭설≫로 어틸러 요제프 상을 수상했다. 1960년대 중반 연달아 네 권의 책을 출간함으로써 외르케니는 크게 주목을 받았고 성공도 거두었다. ≪예루살렘의 공작≫(1966), ≪파리 잡이 찐득이 위의 신혼여행≫(1967), ≪1분 소설≫(1968), ≪시간에 따라서≫(1971) 등이 그를 유명하게 만든 작품들이다.

1960년대 중반부터 외르케니는 연극계에 종사하면서 연극을 위한 대본과 영화 시나리오를 쓰는 한편 자기 소설을 연극용으로 개작하기도 했다. <글로리아>(1957), <토트 씨네>(1964), <고양이 놀이>(1963) 등. <토트 씨네>와 <고양이 놀이>가 외국에서 자주 공연됨으로써 외르케니의 이름이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는데, 특히 <토트 씨네>는 외국에서 가장 많이 공연된 헝가리 작품 중 하나다. 1972년 노동훈장, 1973년 코슈트상을 수상했고, 1979년 6월 24일 부다페스트에서 타계했다.


해설          

이 책은 원전의 분량이 많지 않으므로 발췌하지 않고 모두 번역하였습니다.
이 책은 번역의 원전으로 ≪Tóték≫(Magvető, 1974)를 사용하였습니다.

뱀이 자기 스스로를 삼켜버리면, 그런 일은 매우 드문 일이지만, 뱀의 빈자리는 남아 있을까? 인간으로 하여금 인간 존재의 최후의 마지막 조각까지 다 먹어 치우게 하는 그런 폭력이란 진정 존재하는 것일까? 존재할까? 존재하지 않을까? 존재할까? 어려운 문제로다!

이 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 소설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있을까? 없을까?’ 중의 하나다. 없다는 쪽으로 기울면 소설은 아름다운 동화의 모습일 터이고, 반대로 있다면 그건 매우 잔혹한 것이리라. 아름다운 이야기를 하면서 이렇게 무겁게 시작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과, 그래도 알 수 없다는 의혹이 동시에 떠오른다. 이런 점이 바로 외르케니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를 평가한 어떤 글의 한 대목이다.

‘어느 작가든 그의 예술적 특징은 그 작가의 작품을 한두 개 분석하면 대충 드러나는 게 보통이다. 그러나 외르케니는 그런 통념이 전혀 통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는 늘 새로운 마스크를 쓰고 등장하고, 따라서 그 마스크 속의 얼굴이 누구인지를 수수께끼처럼 찾아야 한다.’ 바로 그러한 수수께끼로 이 소설은 시작한다.

이 번역은 ≪Tóték≫(Magvetö, 1974)를 저본으로 삼아 전문을 옮긴 것이다. 이 소설의 가장 큰 테마는 전쟁이다. 전쟁을 통하여 인간성이 말살되어가는 과정을 이 소설은 보여준다. 외르케니는 인간성을 통째로 삼켜버리는 폭력이 있음을 제시했다. 2차대전에 참여했던 외르케니는 전쟁에 대하여 비판하면서 희극적인 것과 비극적인 것이 동시에 나타나는 희비극에 부조리극적 요소를 혼합한 소설을 썼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미쳐버린 인간들이다. 모든 젊은이들이 전쟁에 나간 뒤, 쓸모없고 모자라는 무지렁이 주리는 우체부가 되어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좋은 소식이 오면 쓰레기통에 버리고,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나쁜 소식은 다 없애버리고 좋은 소식만 배달해 주는 등의 우스꽝스런 행동을 한다. 토트 씨가 심신의 위안을 구하려고 찾아간 토머이 신부님도 마찬가지다. 이미 극도로 심신이 지친 토트 씨를 무조건 꾸짖으면서 비상식적인 엉뚱한 조언을 한다. 아무리 어려워도 전쟁 중임을 들어 다 참아야 한다며, 돌출행동을 하지 못하게 개처럼 방울을 달 것을 권유하는 것이다. 전 유럽에서 명성을 떨치는 의사의 처방도 가관이다. 소령보다 키가 커서 소령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듯하다는 얘기에 다리를 반쯤 구부리고 다니라고 말한다.

토트 씨가 신부님과 의사 등을 찾아가는 이유는 소령으로 인하여 고통을 겪으면서 심신이 피폐해졌기 때문이다. 얼굴을 쳐다보면 소령은 뒤에 뭐가 있느냐고 화를 내고, 밤 새워 일을 하다가 하품을 하면 하품을 하지 못하게 입에 전등을 물게 하고, 눈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모자를 눈 아래까지 푹 눌러 쓰게 한다. 토트 씨네는 이렇듯 온갖 수모와 고통을 참아낸다. 오직 참전 중인 아들의 상관인 소령의 기분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서다. 그런 고통을 호소하러 찾아간 그 지역의 인사들, 병을 치유하고 사람들을 돌봐야 할 사람, 정신적 어려움에 위로를 주어야 할 성직자들은 더 이상 제정신이 아니다. 이들은 하나같이 엉뚱한 답만 준다. 토트 씨네의 주변 환경은 완전히 정상궤도를 이탈한 것이다. 하나같이 다 미쳐버린 인간들이다.

이렇게 다 미친 세상에 그래도 제정신이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바로 토트 씨 자신이다. 그런데 인간이 더 이상 인간이 아닌 세상에서 그래도 아직 인간인 토트 씨, 인간임을 잊어버리지 않고 있는 그 토트 씨가 소령을 죽인다. 작두로 네 도막을 낸다. 세 도막을 냈느냐는 부인의 물음에 네 도막을 냈다고 태연하게 대답하는 장면은 참으로 희극적이다. 살인은 광기로부터 인간을 보호하려는 구원의 행위다. 배움이 많고 점잖고 지도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시류에 따라 미쳐가고 있을 때, 인간이 인간임을 보여주는 행위인 것이다.

이처럼 사회를 지탱해야 할 기둥들은 제정신이 아닌 광기에 휩쓸려 있다. 정신이 혼란스러운 보통사람들을 더욱 완벽하게 혼란에 빠뜨리는 지도자들의 행태를 보면서, 독자는 웃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소령이 도착했을 때 아들은 이미 전사한 상태다. 그러나 친절한 우체부의 배려로 그 사실을 모르는 채, 장차 소령이 귀대한 후 전선에서 아들에게 해를 끼칠까 봐 고통을 견뎌내는 장면들은 독자의 웃음을 자아내지만, 그 웃음은 필시 보이지 않는 눈물을 동반하게 될 것이다. 극히 비극적인 사건을 세부적인 희극적 요소로 치장한 구성은 참 인상적이다.

소설을 다 읽고 나서 느끼는 감정은, 인간으로 하여금 인간 존재의 마지막 조각까지 다 먹어 치우게 하는 그런 폭력이 진정 존재한다는 것이다.


차례          

해설
지은이에 대해

1장
2장
3장
4장

옮긴이에 대해


출판사 서평    

없다면 아름답고 있다면 잔혹한 것. 이것이 바로 폭력이라고 외르케니는 말한다. 그의 소설 <토트 씨네>를 국내 최초로 소개한다. 아들의 상관인 버로 소령 앞에서 무릎을 구부린 채 걸어다니고 밤을 새워 상자를 만드는 토트 씨와 가족들. 누가 정상이고 누가 비정상인지 알 수 없는 그들의 이야기 속에 인간성의 최후가 숨어 있다


본문 중에서    

Háromba? Nem. Négy egyforma darabba vágtam... Talán nem jól tettem?
De jól tetted, édes, jó Lajosom - mondta Mariska. - Te mindig tudod, mit hogyan kell csinálni.
Feküdtek, hallgattak, forgolódtak. Oly fáradtak voltak, hogy végül mégiscsak elnyomta őket az álom. Tót azonban alva is forgolódott, rúgott, nyögött, egyszer majd kiesett az ágyból.
Rosszat álmodott talán? Ez azelőtt nem volt.

“세 도막 냈느냐고? 그렇지 않아. 네 도막으로 잘랐소, 그것도 똑같이… 그런데 내가 뭐 잘못한 것이라도 있소?”
“당신도! 당신은 참으로 잘하셨습니다.” 머리슈커가 말했다. “당신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적이 없지요.”
그들은 다시 자리에 누웠다.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누웠다가 다시 뒤척일 뿐이었다. 그들은 엄청나게 피곤했다. 밀려오는 잠을 도무지 이길 수 없을 정도였다. 토트 씨는 그럼에도 다시 한 번 몸을 뒤척였다. 몸을 한번 쭉 뻗어보았다. 신음소리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 순간 그는 하마터면 바닥으로 떨어질 뻔했다.
그가 혹시 잠을 잘못 잔 것일까? 전에는 결코 그런 일이 없었는데 말이다.


옮긴이        

정방규는 전라도 고창에서 1948년 태어났다. 서강대학교에서 독문학을 전공하고 독일의 괴팅겐에서 헝가리문학과 독문학을 공부했다. 1990년부터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헝가리문학에 대하여 강의하고 있다. <통일 후 독일 지성인의 심리적 갈등 연구>(<문화예술논총 5>, 1993년) 등의 논문이 있고, ≪(서보 머그더의) 노루≫(1994년) 등의 번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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