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2월 18일 금요일

하일라스와 필로누스가 나눈 대화 세 마당 Three Dialogues between Hylas and Philonous

조지 버클리  George Berkeley  (영국, 1685 ~ 1753)

조지 버클리는 1685년 3월 12일 아일랜드 남부 킬케니의 토머스타운 인근인 다이사트 캐슬에서 태어났다. 양친은 혈통상으로는 영국계였으며, 신앙상으로는 프로테스탄트였다. 다이사트 캐슬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버클리는 열한 살 되던 해 킬케니 칼리지에 들어가고, 열다섯 살에는 더블린의 트리니티 칼리지에 진학한다. 1704년, 그러니까 열아홉 살 되던 해 그는 문학사 학위를 받으며, 1707년에는 문학석사 학위를 받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영국 성공회의 신부 서품을 받아 1709년 부제가 되고, 이듬해 사제가 된다. 그 무렵 그는 오늘날 우리가 ≪철학 노트≫라는 이름으로 인용하는 철학적 일기를 작성하기 시작한다.
1709년 버클리는 ≪새로운 시각 이론을 위한 한 시론≫을 발표한다. 거기서 그는 우리가 공간을 보는 것은 시각과 촉각의 규칙적인 공존의 기초 위에서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귀납적 추론을 행한 결과라는 견해를 개진한다. 1710년 버클리는 주저 ≪인간 인식의 원리들에 관한 논고≫를 발표하고, 1713년에는 ≪하일라스와 필로누스가 나눈 대화 세 마당≫을 공간한다. 후자는 전자에 대한 반응이 시원찮은 데 실망하여, 논쟁적 대화라는 보다 더 솔깃한 묘사 형식이 그의 철학적 아이디어들의 전파에 이바지 할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펴낸 야심작으로서 대화 문학의 압권이다.

여러 해 동안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견문을 넓힌 뒤, 버클리는 1721년 더블린의 트리니티 칼리지로 다시 돌아가 신학박사 학위를 받고 시니어 펠로로서 교육과 행정에 전념한다. 1724년 그는 데리의 교구장에 취임하기 위해 펠로 직을 사임한다. 1734년 버클리는 클로인의 주교로 임명된다. 여행과 모험의 날들은 이제 다 지나갔다. 남은 생애 동안 그는 교구민들을 조용히, 그리고 신실하게 보살핀다.

버클리는 슬하에 일곱 자녀를 두었는데 그중 셋이 어릴 때 죽었다. 버클리는 1752년 여름 은퇴하여 옥스퍼드로 주거를 옮긴다. 크라이스트처치 칼리지에 입학한 둘째 아들 조지의 대학 교육을 보살피기 위해서였다. 그는 1753년 1월 14일 주일날 저녁 홀리웰 가(街)의 자택에서 아내가 읽어주는 성경 구절을 듣다가 갑자기 숨을 거두었다. 그는 유언장에서 신체에 부패 징후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장사를 지내지 말 것을 당부했다. 유언에 따라 그의 장례는 그 다음 주 토요일에 치러졌다. 그의 유택은 크라이스트처치 대성당 안에 마련되었다.


해설                                            

이 책의 표준판이라 할 수 있는 루스와 제솝이 공동 편집한 ≪버클리 저작집(The Works of George Berkeley, Bishop of Cloyne)≫(edited by A. A. Luce and T. E. Jessop, 9vols., Edinburgh 1948∼1957, reprinted in 3vols., 1979) 제2권에 수록된 것을 저본으로 삼았습니다.
·이 책은 조지 버클리(George Berkeley, 1685∼1753)가 지은 ≪하일라스와 필로누스가 나눈 대화 세 마당(Three Dialogues between Hylas and Philonous)≫(London, 1713) 가운데서 <첫 번째 대화>와 <두 번째 대화>를 우리말로 옮긴 것입니다.

이 책의 저자 조지 버클리는 논지 개진에 효과적인 대화 기법을 사용해, 우리가 지각하는 감각적 성질의 담지자로서 ‘물질’이라 불리는 어떤 것이 존재한다고 믿는 이들, 이름 하여 ‘유물론자들(이 책에서는 ‘하일라스’가 저들을 대변함)’의 주장을 뿌리째 뒤흔든다. 그의 주장은 정신 속에 있는 관념이야말로 인식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유일하고 참된 실재라는 것이다. 이 책은 바로 이러한 결론을 위한 논변과, 모든 감각적 사물의 궁극적 기초를 위한 논변을 담고 있는 초기 근대 철학의 백미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대화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책 제목이 말하고 있듯이 하일라스와 필로누스가 사흘 동안 나눈 대화의 기록이다. 여기서 ‘하일라스’란 ‘물질’ 또는 ‘질료’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hyle’를 줄기 삼아 만든 이름이고, ‘필로누스’는 ‘누스(지성)를 사랑한다’는 의미의 그리스어 ‘philo-nous’를 음역해 만든 이름이다. ‘하일라스’는 ‘유물론자’의 대명사이고, ‘필로누스’는 버클리를 대변하는 ‘비(非)유물론자’의 은유인 셈이다.

이 책은 하일라스와 필로누스가 연사흘 동안 나눈 대화의 기록으로서 그 대강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하일라스는 유형(有形)의 세계의 진리성을 당연한 것으로 간주하는 한편, 유형의 세계에 대한 최근의 과학적 이론과 철학적 이론을 거칠게나마 알고 있을 만큼 충분히 교육을 받은 사람이다. 그가 주장하는 견해는 지각의 직접적 대상은 주관적 관념이라는 것이다. 주관적 관념이란 무엇인가? 유형적인, 감각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독립적인−예외적으로 신에게는 의존적인−실재들의 인상 또는 심상이 바로 주관적 관념이다. 신에 대한 믿음과 그리스도교적 계시에 대한 믿음은 하일라스와 필로누스가 공유하는 부분이다.

필로누스가 내세우는 견해는 버클리 자신의 견해다. 감관에 직접적으로 지각되는 세계는 유일하게 존재하는 유형의 세계이며, 그것의 전체적 존재 양식은 의식의 대상으로서 임시적으로는 우리의 대상이 되지만, 항구적으로는 신의 의식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첫 번째 대화>에서는 비유물론의 논변이 시작된다. 그에 따르면, 정신과 유리된, 감각의 대상이나 그 비슷한 것은 없다. 유형의 사물은 관념이다. 물질적 실체에 대한 믿음은 감각적 사물의 실재성에 대한 부정을 함축한다. <두 번째 대화>에서는 우리의 관념의 유래가 논의된다. 그에 따르면, 신이 관념의 유일한 원인이다. 물질 또는 물질적 실체는 관념에 대해 불필요하거니와, 그 존재는 불가능하기까지 하다. 이로써 비유물론을 위한 논변이 매듭지어진다. <세 번째 대화>에서는 각양각색의 반론이 논박된다. 앞서의 대화에서와는 달리, 하일라스가 질문자가 되어 반론을 제기하고 필로누스가 그것을 논박하는 식으로 대화가 진행된다.

비유물론을 위한 핵심적인 논변은 <첫 번째 대화>와 <두 번째 대화>에 전개되어 있어 마지막 <세 번째 대화>는 보론(補論)의 성격을 띤다. 그래서 비유물론의 이해를 위해서는 앞의 두 대화만 읽더라도 충분하다. 마지막 대화를 생략하고 앞의 두 대화만 번역한 이유다.


옮긴이                   

한석환은 숭실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괴팅겐 대학교와 함부르크 대학교에서 수학했으며, 숭실대학교 대학원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강릉대학교 철학과 교수와 독일 콘스탄츠 대학교 객원교수를 지냈으며, 현재 숭실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문제를 찾아서≫, ≪철학의 명저 20≫, ≪서양 고대 철학의 세계≫, ≪한국철학의 탐구≫, ≪존재와 언어≫ 등을 단독 또는 공동으로 저술했으며,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J. L. 아크릴), ≪철학의 거장들≫(O. 회페), ≪철학자 플라톤≫(M. 보르트) 등을 단독 또는 공동으로 번역했다. 서양 고대 철학, 존재론, 수사학이 주된 관심 분야다.


본문 중에서                

Pray tell me if the case stands not thus: at first, from a belief of material substance you would have it that the immediate objects existed without the mind; then that their archetypes; then causes; next instruments; then occasions: lastly, something in general, which being interpreted proves nothing. So matter comes to nothing. What think you, Hylas, is not this a fair summary of your whole proceeding?

서슴없이 말하게나, 사정이 이렇지 않거든 말일세. 즉 맨 처음에는 물질적 실체에 대한 믿음에서부터 출발하여, 자네는 직접적인 대상들이 정신과 무관하게 존재한다고 했다가, 다음에는 그것들을 원형들이라고 했다가, 그 다음에는 원인들, 그 다음에는 도구들, 또 그 다음에는 기회들, 마지막에 가서는 어떤 것 일반이라고 했는데, 풀어서 말하면 이것은 무(無)를 의미하는 것이네. 결국 물질은 무라는 결론이 나오네. 자네 생각은 어떤가, 하일라스? 자네가 밟아 온 전 과정의 실질적 내용이 이렇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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