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2월 16일 수요일

요정들의 사랑 Lais de Marie de France et d'autres

국내 최초 소개.

중세 프랑스 문예작품들 중 켈트문명의 잔영 내지 전설을 짙게 간직하고 있는 것들은 대개 세 부류로 나뉘어질 수 있을 듯하다. 아더 왕과 원탁의 기사들을 주축으로 하여 펼쳐지는 전쟁과 성배(聖杯, Saint Graal) 이야기가 그 하나로, 웨이스(12세기) 및 크레띠앵 드 트르와(12세기),보롱(12∼13세기) 등의 작품들이 대표적인 예이며, 그것들은 영화나 동화 형태로 개작되어 비교적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다. 또 다른 부류의 작품들은, 남녀간의 사랑을 지고(至高)의 가치로 여기는 이들이 남긴 것들로, 베룰(12세기)이나 토마스(12세기)를 비롯하여, 12~13세기의 많은 문인들이 노래한 트리스탄의 전설 등이 그 좋은 예일 것이다. 트리스탄의 전설 또한 숱한 문인들이 각자 나름대로의 시각과 감성으로 개작을 거듭하였고, 특히 바그너의 가극 <트리스탄과 이졸데> 덕분으로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낯설지 않은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 두 부류의 작품들을 태동시켰음직한 감성과 꿈의 원형을 보여주는, 요정들의 사랑 이야기 및 변신과 마법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작품들이, 또 하나의 범주를 형성하고 있다. 하지만 그 부류의 작품들은 우리들에게 별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 이유는 우선, 그러한 이야기들이 대부분 민담 형태로 구전되었고, 운문 단편소설(lai)의 형태를 갖춘 것들이 있기는 하나, 그 수가 많지 않기 때문인 듯하다. 또한 오늘날까지 전하는 몇 편 아니 되는 작품들을 지은 이들은, 프랑스 최초의 여류 문인이라고들 하는 마리 드 프랑스(Marie de France, 12세기) 이외에, 그 이름조차 알 길이 없다.
그러나 그 작품들이 우리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가장 큰 원인은, 프랑스 문예사가들의 등한함과 프랑스를 짓눌러온 종교적 전통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프랑스 문예사가들은 요정 이야기들을 한낱 실없는 옛날이야기 쯤으로 치부하여 왔다. 그 이야기들 속에 ‘이데올러기나 상상력이 결여되었으며’, 따라서 그저 ‘이야기하는 재미로’ 지은 가벼운 작품들이라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소박하되 세련된 언어로 씌어진 그 작품들을 관류하고 있는 인간의 원초적이고 짙푸른 욕망과 보편적인 몽상이, 한낱 심심풀이의 소산일 수 있을까? 특히, 대다수 작품에 선명하게 부각된 문명간의 혹은 종교간의 갈등 및 화해의 흔적들을, 실없는 이야기꾼의 수다로 단정하기는 더욱 어려울 것이다. 더구나, 그 무사무욕하고 열정적인 요정들의 모습이, 19~20세기에 이르러서도 프랑수와즈(≪어린 요정≫, 조르쥬 쌍드)나 알빈느(≪무레 사제의 실절≫, 에밀 졸라)라는 착한 소녀들의 모습으로 부활하여, 야만스러운 교조 및 편견과 선명한 대조를 이루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나아가, 질베르뜨나 오르안느를 각각 멜뤼진느와 호수의 귀부인(La Dame du Lac, 즉 비비안느)으로 몽상하는 프루스트의(≪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 그 은유적 원천을, 중세의 요정 이야기 이외에 어디에서 찾는단 말인가? 또한 ≪사랑에 빠진 마귀≫(까죠뜨, 18세기)나 ≪까르멘≫(메리메, 19세기)과 ≪옹딘느≫(지로두, 20세기), ≪씨도≫(꼴레뜨, 20세기) 등도 유사한 몽상의 소산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중세의 요정 이야기들은, 장구한 세월 동안 프랑스인들은 짓눌러온 지배교조와, 그에 편승하여 경도된 학문적 조류에도 불구하고, 면면히 생명력을 간직하고 있는 옛 켈트인들의 몽상과 맥박 그 자체이다.
이 편역집은, 마리 드 프랑스의 ≪운문 단편집≫(éd. H. Piazza, 1974)과, 작자 미상의 작품들을 모은 ≪12~13세기 운문 단편집≫(G-Flammarion, 1992)에서 선별한 작품들과, 쟝 다라스(14세기)의 ≪멜뤼진느≫(éd. Stock, 1979) 및 보롱의 ≪메를랭과 아더 왕≫(éd. R. Laffont, 1989), 랑글레의 ≪아더 왕 이야기≫(éd. H. Piazza, 1965) 등에서 발췌한 일화들로 재구성한 작품들로 이루어졌다. 또한 요정들의 사랑 이야기는 아니지만, 켈트 종교(드루이다교)의 특성 중 하나로 알려진 변신의 신화(혹은 마법)와 관련된 사랑 이야기도 포함시켰음을 밝혀 둔다.

차례               

해설
랑발
갱가모르
데지레
그랠랑
비비안느
멜뤼진느
요넥
기쥬메르
비스끌라브레

본문 중에서      

A toz jors m'avriez perdue,
Se ceste amor estoit seüe;
Jamês ne me porriez veoir,
Ne de mon cors saisine avoir.
이 사랑이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는 순간,
그대는 저를 영영 잃게 될 거예요.
다시는 저의 몸을 즐기지 못하실 뿐만 아니라,
저의 모습조차 보실 수 없을 거예요.

역자 소개        

이형식은 1972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1972년부터 1979년까지 빠리4대학과 빠리8대학에서 불문학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9년부터 지금까지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불어교육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는 ≪마르셀 프루스트−희열의 순간과 영원한 본질로의 회귀≫, ≪프루스트의 예술론≫, ≪작가와 신화≫, ≪감성과 문학≫, ≪정염의 맥박≫, ≪루시퍼의 항변≫,≪현대 문학 비평의 방법론≫(공저), ≪프루스트, 토마스 만, 조이스≫(공저), ≪프랑스 현대 소설 연구≫(공저), ≪그 먼 여름≫(장편소설) 등이 있고 역서로는 ≪외상 죽음≫(쎌린느), ≪밤 끝으로의 여행≫(쎌린느), ≪미덕의 불운≫(싸드), ≪사랑의 죄악≫(싸드), ≪철부지 시절≫(까바니), ≪미소 띤 부조리≫(사바띠에), ≪여우 이야기≫(이형식 편역), ≪트리스탄과 이즈≫(베디에), ≪중세 시인들의 객담≫(이형식 편역), ≪중세의 연가≫(이형식 편역), ≪농담≫(이형식 편역), ≪롤랑전≫, ≪웃는 남자≫(위고) 등이 있다.

편집자 리뷰    

≪요정들의 사랑≫은 프랑스에서 12~14세기에 쓰여진 사랑 이야기를 담은 작품집이다. 프랑스 최초의 여성 작가라고 하는 마리 드 프랑스의 작품들도 포함되어 있다. 중세의 이야기답게 황당한 요소들이 없지 않지만 현실을 초월하여 펼쳐지는 이야기들은 당시 사람들의 꿈과 소망을 엿볼 수 있는 창을 제공한다. 이 책의 특징은 옮긴이가 우리말의 호흡을 살려 번역했다는 점이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이야기 읽는 재미를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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