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2월 17일 목요일

신국론 De civitatae Dei

아우구스티누스 Augustinus(이탈리아, 354~430)

‘탕자에서 성자로’로 유명한 아우구스티누스(혹은 오거스틴, 354∼430)의 삶에 대한 선입견은 과장되었거나 단편적인 것일 가능성이 크다. 그를 이해할 때, ‘서양의 스승’ 혹은 ‘은총의 박사’라는 측면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의 생애와 사상에 관한 유난히 많은 기록들은 그의 영향력을 보여준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당시 로마 문화권에 속한 북아프리카에서 태어나 유럽 문화의 정수를 향유하고 북아프리카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는 354년 북아프리카 타가스테(Thagaste)에서 태어났다. 타가스테는 지금의 알제리에 해당하는 지역으로서, 지중해를 끼고 로마를 가까이 할 수 있는 문화적 조건을 지녔다.

기초적인 초등교육 이후 고향에서 약 30킬로미터 떨어진 마다우라에서 365년부터 369년까지 공부했던 시절, 그는 장래가 촉망되는 소년이었던 듯싶다. 하지만, 그는 영락없는 말썽꾸러기로 불량스러운 방황을 하게 된다. 가정 형편 때문에 공부를 잠시 쉰 것은 369년경이다. 그리고 371년경 카르타고에 유학하여 수사학을 전공했다. 이때 아우구스티누스의 방황은 절정에 달한다. 이 무렵 아우구스티누스는 어떤 여자와 동거 생활을 했고 372년경 아들 아데오다투스를 낳았다. 그리고 마니교에 심취했던 시기였다.

375년, 그는 고향에 돌아와 수사학을 가르쳤고, 이듬해 카르타고에 가서 수사학 교수로 활동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로마에 간 것은 383년경이다. 당시 세계 문화의 중심지 로마에서 그는 수사학 교수로 명성을 쌓았다. 그리고 로마 시의 공식 파견을 받아 밀라노에서 수사학을 가르쳤다. 이때 암브로시우스 주교를 만난다. 그는 점차 마니교에 흥미를 잃었고 그들의 주장에 오류가 있음을 깨달았다.

마침내 386년 밀라노의 정원에서 그는 결정적인 회심을 체험하고 기독교 신앙인으로 전향한다. 이후 밀라노 북쪽의 카시키아쿰(Cassiciacum)에 머물면서 세례 받을 준비와 함께 경건 생활을 한 후, 밀라노에 돌아와 아들 아데오다투스, 동료이자 후배인 알리피우스와 함께 암브로시우스에게 세례를 받았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고향으로 돌아가 수도 생활을 하고 싶어 로마 남쪽의 오스티아 항구에서 배를 기다리던 중 387년 어머니 모니카를 여읜다. 그는 로마에 몇 달간 머물며 집필 활동을 하다가 고향으로 돌아가 수도원을 세운다. 그때가 388년경이다. 그의 아들 아데오다투스가 이때 죽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서양의 스승으로서 진면목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391년 히포 교구에서 성직자로 세움을 받은 어간부터일 것이다. 특히 395년 히포의 주교로 선출되어 교회를 위해 헌신한 그의 활동은 아우구스티누스를 거장으로 기억하게 하는 중요한 자취다. ≪고백록≫을 쓴 것은 397년부터 400년 사이로 추정된다. 이후 배교했던 성직자 문제를 두고 폭력 사태로 비화된 도나티스트 분파주의자들과의 대립에서 교회의 일치를 위해 지도력을 발휘했고, 자유의지와 은총에 관한 펠라기우스와의 신학적 논쟁에서 은총의 중요성을 확립하는 등 아우구스티누스는 왕성하게 집필하며 열정적으로 목회했다. 이 무렵 저술한 그의 불후의 명저 ≪신국론≫에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인생의 변화, 성직자로서의 삶의 정황, 그리고 로마의 사회상 등이 종합적으로 어우러져 있다.

서기 410년,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로마가 함락되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430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무너져 내리는 로마를 바라보면서, 시간이 지나면 흘러가고 쇠망할 한시적인 가치들을 넘어 영원불변하는 참 진리의 소중함을 글로 남겨, 후세를 일깨우고 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읽게 될 ≪신국론≫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포스트모던을 기치로 하는 우리 시대의 문화에는 인간 해방적인 측면도 깃들어 있지만, 영원한 절대 진리를 와해시키려는 시도가 도사리고 있음 또한 부정할 수 없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작품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인간과 역사에 관한 진리를 찾아 나선 길에 나침반 혹은 내비게이션이 되어줄 것이라 기대되기 때문이다.

해설          

≪신국론(De civitate Dei)≫은 ≪고백록(Confessiones)≫의 확대판이다. ≪고백록≫의 성찰을 역사와 문화에 확대 적용한 셈이다. 그 방대한 분량과 치밀하고도 해박한 지식이 감탄을 자아내기도 하지만 동시에 지레 겁먹게 만드는 불후의 고전인 이 책, ≪신국론≫을 읽고 나면 아우구스티누스의 탁월성에 고개를 숙이게 되고 그의 논지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서양 최초의 역사철학, 시작과 종말을 잇는 직선 사관의 효시, 라틴문학 및 수사학의 거작 등 다양한 찬사를 한 몸에 받는 이 책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우선 엄청난 분량에서 입이 벌어지고, 유머도 없고 재미있는 이야기도 없는 탓에 큰 맘 먹지 않고서는 읽어내기 어려운 책이다. 이 점에서 번역자로서 말해두고 싶은 것이 있다. 이 번역본은 ‘숲’과 ‘나무’의 비유에서 ‘숲’에 해당한다는 점이다. 발췌 번역이 지니는 특징이자 한계다. 그도 그럴 것이, 22권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은 한 그루 한 그루의 나무로 셈하기에는 너무나 방대하고, 그렇다고 커다란 한 덩어리 숲이라고 단순화하기에는 부족함이 남는 묘미를 지닌다. 말하자면, 단행본에 담아내기에는 버겁고 전체의 분량을 읽기에는 인내심이 요구된다는 점에서 ‘숲’을 선택한 셈이다.

여기에 말한 ‘숲’이란 두 도성, 즉 하나님의 도성과 지상의 도성의 본질과 특징, 기원과 전개과정 및 종말에 관한 거대한 이야기요 하나의 대하(大河) 드라마다. ≪고백록≫을 완성한 후 12년이 지난 413년, ≪신국론≫은 특별한 배경 속에서 집필되었다. 책의 전체 구성을 보면 그 배경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신국론≫을 두 부분으로 나눈다. 전반부, 1∼10권의 기독교를 위한 호교론과 후반부, 11∼22권의 두 도성에 관한 고찰이다. 혹은 아우구스티누스가 제안한 것처럼, 전체를 5부로 나누어 다루기도 한다. 이 경우, 전체의 흐름은 기독교를 위한 호교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좋겠다. 호교론(護敎論, 혹은 변증론으로 사용되며 ‘apology’의 번역)이란 기독교에 대한 근거 없는 비방에 대한 응답의 하나로,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책을 통해 기독교를 위한 합리적 설득과 변호를 시도한다.

그렇지만, 이 책을 특정한 종교를 위한 책으로 제한할 필요는 없다. 역사에 관한 통찰을 키워주고 라틴 고전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키며 로마의 시대상과 철학 및 문화를 배우는 중요한 기초이기 때문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탁월성은 이 책 여러 곳에서 빛난다. 그리스ᐨ로마신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물론이고, 생물 및 광물을 포함한 자연과학적 지식의 방대함 또한 볼 수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라틴 수사학 전문가답게 고전의 권위를 빌려 자신의 논지를 전개한다. 당대 철학적 권위의 최고봉이라 할 플라톤을 들먹이는 것이 그렇고, 로마신화의 전문가 바로(Marcus Varro), 스토아철학의 거봉 키케로가 등장하는 것은 그의 해박한 지식을 보여준다. 성서에만 의존하는 일반적인 호교와 달리 문화를 통로로 보편적인 설득을 시도한 점에서 더욱 독창성이 드러난다. 심지어 자연과학에 관해서도 해박하다. 예를 들어, 제21권에서 나온 이야기, 영원한 불 속에서도 죽지 않고 징벌을 당하는 육체에 대한 설명에서 생물, 광물들에 대한 언급은 가히 훗날의 백과전서파 학자들을 능가할 정도다. 자신의 분야에만 갇히기 쉬운 현대인의 교양이 얼마나 얕은 수준에 머무는 것인지 반성하게 하는 대목이라고 생각된다.

이 책 전체의 흐름을 본다면, 먼저 로마의 역사적 현실, 즉 이방인들의 침입에 힘없이 무너져 내린 로마의 도덕적 위기에 대한 분석이 나온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그 역경의 때에 기독교가 보여준 배려와 포용의 기억을 상기시키면서 로마의 도덕적 타락이야말로 진정한 위기라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특히 로마의 타락은 참된 종교의 부재에서 오는 것이라고 하면서 반(反)기독교 세력을 오히려 설득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플라톤의 철학을 근거로 삼아 로마의 종교와 문화에 깔린 정령 숭배 혹은 문란한 신들의 문제를 지적한다. 로마가 위기를 맞이한 근본 이유는 도덕적 타락에 있으며, 그 원인은 그들의 종교가 인간의 타락을 경고하지 않은 데 있다고 본 것이다.

사실, ≪신국론≫이 직면한 정황은 로마인들이 야만인이라고 부르는 부족들에 의해 침략을 당한 직후 흉흉한 인심이었다. 이때 로마인들은 기독교를 희생양으로 삼아 온갖 비난을 퍼붓고 강력한 혐오를 토해냈다. 하지만, 기억을 되살려 올라가면, 오히려 기독교는 로마가 침략당할 때 로마 시민들에게 긍휼을 베풀었다. 교회는 로마의 침탈 당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신앙인 행세를 하며 교회로 피신해 오는 로마 시민들을 흔쾌히 품어주었고 소위 ‘야만인’들로부터 목숨을 부지하게 해주었다. 그러나 로마 시민사회는 역경이 지난 후 적반하장으로 로마의 고난이 기독교 탓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보기에, 나쁘고 불리한 것은 모두 기독교 탓으로 돌리는 로마인들의 어리석음은 착각에서 온다. 그가 보기에 기독교가 로마에 들어오기 전에 로마는 이미 문제를 안고 있었다. 도덕적, 종교적 타락이 그것이다. ≪신국론≫의 집필 배경에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이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독자들로 하여금 남을 탓하는 일방성에서 벗어나 도덕의 위기, 종교의 위기를 극복할 대안을 생각하도록 이끈다. 이를 위해 바람직한 사회와 타락한 사회, 즉 하나님의 도성과 지상의 도성의 비교를 통해 사회의 윤리적 이상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암시한다. 그는 성서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역사에 두 도성이 나타났다고 설명한다. 진리를 따르고 윤리적 성숙을 지향하는 도성, 그리고 탐욕과 명예에 집착한 나머지 진리를 외면하고 윤리를 상실한 도성, 이 두 도성의 차이가 바로 역사의 중요한 차이를 만든다는 것이다.

여기에 사용된 도성(都城) 개념은 라틴어 ‘civitas’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도시국가 혹은 공동체에 가깝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단어를 성서에서 응용했다. 오늘날의 도시(city)와는 뉘앙스가 다르다고 하겠다. 현대인이 생각하는 도시는 고층건물과 교통수단의 발전 등 과학기술의 발전에 수반되는 일종의 도시적 에토스(urban ethos)를 가진다. 그러나 아우구스티누스의 용어는 공동체의 본질 혹은 특성에 관계되는 것으로서, 두 도성의 기원 혹은 본질에 관해 ‘사랑’의 차이를 말하는 대목에서 분명하게 볼 수 있다. 하나는 지독한 자기 사랑으로 영원한 진리를 외면하고 소멸해 버릴 가치에 집착하는 자들의 공동체요, 다른 하나는 영원한 하나님에 대한 사랑으로 진리와 윤리적 완성을 바라보는 공동체다.

아우구스티누스에 따르면, 하나님의 도성(civitas Dei)과 지상의 도성(civitas terrena)의 전개과정과 결말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 하나님의 도성에 속한 자들은 지상에서의 가치들에 함몰되지 않고 영원한 도성을 향하여 순례자의 길을 간다. 그러나 지상의 도성은 지상에 매여 있다. 그들은 이 세상의 것이 영원한 듯 착각하면서 탐욕과 만용으로 전쟁을 일삼고 심지어 평화를 위해서 전쟁을 벌이기도 한다. 이러한 두 두성의 차이는 종말에 드러난다. 하나님의 도성은 영원한 진리 안에서 완성될 것이지만, 지상의 도성은 종말의 때에 분명한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이 아우구스티누스의 요점이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의 도성에 속한 자들에게 지상의 생활을 떠나 은둔하거나 밀의적인 생활을 하라는 뜻은 아니다. 그들 역시 지상의 평화를 사용하기도 하며 잠정적인 것들을 이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영원한 도성에서 이루어질 평화와 삶의 완성을 바라보며, 마치 나그네처럼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 게다가 하나님의 도성과 지상의 도성은 마치 밀과 가라지처럼, 혹은 알곡과 쭉정이처럼 이 세상에서는 혼재되어 있으나, 결국에는 가려질 것이요, 영원한 행복과 영원한 형벌로 결말이 날 것이다. 아마도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설명에서 하나님의 도성이 지니는 탁월성과 궁극적인 승리를 강조하고 싶었을 것이다.

유유히 흐르는 장강(長江)처럼, 아우구스티누스의 설명은 두 도성의 역사와 전개과정 그리고 종말에 이르는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 시작에서 종말로 이어지는 직선 사관을 아우구스티누스의 설명법으로 말하는 것도 여기에서 연유한다. 역사는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흘러가며 일정한 목표를 향하여 나아가고 있다는 관점이다. 이것이 바로 아우구스티누스를 역사에 관한 철학적, 신학적 성찰의 효시로 보는 이유일 것이다. 역사는 순환하는 것도 아니고 우연 발생적으로 흘러가는 것도 아니다. 목적과 방향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이 바로 아우구스티누스가 정리한 요점인 셈이다. 그는 하나님의 도성과 지상의 도성에 관해서, 그리고 종말에 관해서 다양한 이야기들을 쏟아냄으로써 서양사상의 샘이 되었다.

또한 인간의 진정한 행복에 관해서도 분명한 논지가 있다. 지상의 도성이 추구하는 행복과 하나님의 도성이 추구하는 행복 사이에 차이가 있다. 지상의 도성은 영원한 절대가치를 무시한다. 한시적이며 소멸하여 상실되고 말 것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도성은 영원한 절대자를 향한 소망으로 살며, 하나님을 뵈옵는 비전(visio Dei)으로 산다. 과연 누가 진정한 행복의 주인공인지 물을 필요도 없이, 영원한 삶을 향하는 자들의 행복이야말로 아우구스티누스적인 통찰의 요체다.

기나긴 논의 끝에 아우구스티누스가 도달한 것은 기독교에게 로마에 앙갚음하라고 선동하는 것이 아니었다. 진정한 삶의 길을 찾으라는 것이다. 로마인을 포함한, 혹은 로마 시민사회에 섞여 사는 모두가 참된 종교(vera religione)를 찾고 진정한 윤리적 성숙에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신국론≫은 기독교에 대해 감정이 좋지 않은 경우일지라도 반드시 한 번쯤 읽어야 할 고전이다. 그 안에 역사에 대한 통찰, 도덕과 윤리에 대한 성찰, 그리고 인간과 행복에 대한 지혜가 가득하기 때문이다.

번역자로서 아쉬운 것은, 이 책의 흐름을 일관성 있게 표현하고 싶은 마음에 아우구스티누스의 중요한 신학적이고 교리적인 언급들을 요약하는 형식으로 다룰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혹시라도 정확하고 완전한 번역을 원한다면, 이미 국내에 좋은 번역본이 나와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란다. 참고로 이 번역은 George E. McCraken이 영역한 라틴어ᐨ영어 대역판(Havard Univ. Press, 1981)을 저본으로 삼았음을 밝혀둔다. 번역자로서는 이 발췌된 번역을 통해 ≪신국론≫의 흐름을 파악하도록 안내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실로, 서양의 스승 아우구스티누스의 재발견은 신학자를 비롯한 인문학자들의 지속적인 관심사였다. 그의 사상은 기독교신학의 마르지 않는 샘과 같으며 시대적 간격을 넘어 오늘의 인간을 위한 통찰로 높이 평가된다는 점, 그것이 드러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본문 중에서    

Fecerunt itaque civitates duas amores duo, terrenam scilicet amor sui usque ad contemptum Dei, caelestem vero amor Dei usque ad contemptum sui.

두 가지 사랑이 두 도성을 만든 셈이지. 하나님을 멸시하기까지 하는 자기사랑이 지상의 도성을 만들었고, 자신을 멸시하기까지 하는 하나님 사랑이 하늘의 도성을 이룬 것이지.

옮긴이         

문시영은 숭실대 철학과와 대학원 석사 및 박사과정을 마치고 <아우구스티누스의 윤리에 있어서 행복의 문제>로 철학박사학위(Ph. D.)를 받았다. 또한 장로회신학대학원(M. Div.)을 마치고 풀러 신학교 D. Min.과정을 공부했고, 시카고 대학교(Univ. of Chicago)와 에모리 대학교(Emory Univ.)에서 방문교수로 연구했다. 현재 은혜 중심의 교회윤리 확립을 위한 새세대교회윤리연구소(NICE) 소장이며, 남서울대 교수(교목실장)다.

지은 책으로는 ≪아우구스티누스와 행복의 윤리학≫, ≪생명복제에서 생명윤리로≫, ≪은혜윤리≫, ≪긍휼−아우구스티누스와 함께 하는 은혜윤리 묵상≫ 등 10여 권이 있으며, ≪아우구스티누스의 윤리학≫, ≪책임윤리란 무엇인가?≫, ≪포스트모던시대의 기독교윤리≫ 등을 번역했다. <덕의 윤리에서 본 아우구스티누스의 자유의지론>, <자유의지론에 나타난 아우구스티누스의 자유개념> 등 50여 편의 학술논문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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