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7월 10일 목요일

신자하 시선 (申紫霞詩集)



도서명 : 신자하 시선(申紫霞 詩選)
지은이 : 신위
옮긴이 : 김갑기
분야 : 시
출간일 : 2008년 10월 15일
ISBN : 9788962281422
가격 : 12,000원
규격 : 128*188*20mm  양장 쪽 : 208쪽

☑ 책 소개

 이 책은 자하 신위의 시문집 ≪경수당집(警修堂集)≫ 소재 4069수의 시 가운데 42제 76수를 가려 뽑고 역주 및 해설을 덧붙인 것입니다. 아울러 김택영의 ≪신자하 시집≫과 ≪신위 전집≫을 아울러 함께 대비해 그 이동(異同)을 주에서 밝혔습니다.

≪경수당집(警修堂集)≫은 시·서·화 3절(三絶)로 조선조 5백 년의 문예를 집대성한 자하(紫霞) 신위(申緯, 1769∼1845)의 시전집이다. 이는 목판이나 활판으로 간행된 바 없는 필사본(筆寫本)인데다가 후손들이 보관하고 있는 별도의 원본이 확인되지 않아 정본(定本)이라 단정할 수 없는 채 몇 종의 이본이 전해질 뿐이다. 천착도 손팔주 교수의 선공(先攻)에 이은 필자의 몇 편 논고와 창강(滄江) 김택영(金澤榮) 중편 ≪신자하 시집(申紫霞詩集)≫ 2책 6권의 역주 외엔 큰 진전이 없는 상태다.
현전 이본으로는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소재 ≪경수당집≫ 16책 85권을 비롯하여, 규장각 소재 ≪경수당집≫ 16책과 이겸로(李謙魯)·임창순(任昌淳) 씨 소장본 등으로 대표된다.
≪경수당집≫은 마에마 교사쿠(前間恭作)가 지적한 대로 자하의 차자(次子) 명연(命衍)이 수집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소장 ≪경수당집≫은 자하 서거 1년 후인 1846년 연전(硏田) 정경조(鄭慶朝, ?∼?)가 필사하고 서문까지 쓴 것으로 추정된다. 매 권마다 권 명을 붙이고, 작품마다 창작 시기를 밝힌 편년체 기록이다.
1면 10행, 매 행(每行) 20자씩 정갈한 해서체(楷書體)로 필사했으며, 자주(自註)는 1행간 2자씩 기입하여 타 이본에 비해 가장 정밀한 편이다. 수록된 시는 총 4069수이며, 차운시의 경우 원작을 밝히기 위해 ‘부원운(附原韻)’이라 하고, 원문보다 한 자 내려 기록하고 있다.
규장각본 역시 16책 85권으로, 필사자는 조병의(趙秉儀, ?∼?)나, 서문과 권명이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본과 동일한 것으로 보아 정경조 필사본을 저본으로 필사한 것으로 유추된다. 체제 역시 1면 10행, 매 행 20자로 동일하나, 자주 대부분이 생략된 것으로 미루어 개인적 필요에 의한 필사일 듯하다.
창강(滄江) 김택영(金澤榮)이 중편한 ≪신자하 시집≫은 창강이 중국으로 망명할 때 문장보국의 충정으로 행리 속에 챙겨간 등사본을 3년여 동안 고선(考選)해, 광무 11년(1907) 중국 강소성 통주 한묵림에서 간행한 책이다. 상·하 2책 6권으로 상권(1·2·3권)에 508수, 하권(4·5·6권)에 460수, 그러니 창강의 언급대로 약 1/4을 정선한 묶음이다.
이 밖의 선집(選集)으로는 규장각 소재 ≪경수당 시선(警修堂詩選)≫ 1책과, 동국대학교 중앙도서관 소재 ≪신자하 시초(申紫霞詩鈔)≫가 있으나, 대개 초선자의 이름은 물론 연대도 알 수 없고, 그렇다고 대표작을 가려 뽑았다고 사료되지도 않는다.
특기할 바는 자하 신위 연구의 선공인 손팔주 교수의 ≪신위 전집(申緯全集)≫이다. 손 교수는 정경조 필사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본을 중심 자료로 조병의 필사 규장각본 외 각종 이본을 낱낱이 비교 대조하여 이동(異同)을 밝혀 교정했고, 각 작품에 대한 작시 연대를 서력으로 환산 기록했으며, 1권부터 85권까지의 일련번호를 면수(面數)로 했고, 전 작품에 구두(句讀)를 첨가하는 완벽은 물론, 총 목차와 함께 전체 시제(詩題)를 음별로 색인까지 작성하여 1983년 태학사에서 자료편 4권, 연구편 1권으로 공간하여 자하 시 연구의 기틀을 제공했다.
본 해제 역시 손 교수의 연구 편 해제에 힘입은 바임을 밝혀 정중한 사의를 올린다.
본 ≪신자하 시선≫은 필자와 함께 한성대학교 정후수 교수가 함께 역주한 창강 김택영의 ≪신자하 시집≫(이하 ‘申紫霞’로 표기)을 중심으로 선시(選詩)하되, 창강이 빠뜨린 작품은 손 교수의 ≪신위 전집≫에서 가렸으며, 아울러 함께 대비해 그 이동(異同)은 주에서 밝혔다.
한편 선시의 기준은 ‘유소입두(由蘇入杜)’라는 자하의 시론을 증빙할 자료적 가치를 배려했으며, 아울러 청나라 옹방강(翁方綱)을 통해 시·서·화(詩書畫)는 물론, 금석학 등 고증학적 관심과 함께 동파의 문에 들고자 했던 자하이기에 옹방강을 비롯한 청나라 석학거유(碩學巨儒)들과의 수답시를 가렸다.
이어 자하 시의 남다른 특징을 ‘가문(家門) 의식’, ‘삼절의 자오의식(自傲意識)’, ‘자유분방한 풍류’로 가늠하고, 이와 관련한 작품을 선시 대상으로 했으며, 끝으로 4대에 걸친 왕실의 총애를 입고 이에 감사해하는 시편들을 가려, 자하 시문학의 특성을 살피고자 했다.
총 선시 시수 42제 76수에 지나지 않음은 제한된 지면 때문이나, 선시 의도에는 크게 부족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 저자 소개

신위의 시조는 장절공(壯節公) 평산(平山) 신숭겸(申崇謙, 877∼927)이며, 가계는 14세(世) 문희공(文僖公) 개(槩, 1374∼1446)를 중시조로 하는 문희공파다. 신개는 태조 2년(1393) 식년문과에 급제, 세종 29년(1447) 좌의정에 이르렀고, 이후 서울의 귀족으로 누대에 걸쳐 학자·문인·예술가·장군 등이 배출되었다.
부 대승(大升, 1731∼1795) 역시 영조 38년(1762) 진사 급제에 이어 경연시 문과에 장원하고, 영조 52년(1776) 승지, 정조 8년(1784) 가선대부의 가자(加資)를 받았고, 이어 사헌부대사헌, 성균관대사성을 역임했다.
자하의 외가는 물론 처가 역시 당대의 명문이었으며, 특히 장인 조윤형(曺允亨, 1725∼1799)의 뛰어난 서·화(書畵)는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할 것이다.
자하는 이같이 가규(家規)가 드높은 경화사족의 가문에서 영조 45년(1769) 8월, 한성 장흥방에서 대승의 차남(次男)으로 출생했다, 자를 한수(漢叟), 호는 홍전(葒田)이라 했다가 후에 자하라 했다. 창강이 찬한 <연보>에 의하면 “그가 어려서 경기 시흥의 자하산 별야에서 수학했으므로 ‘자하’로 자호했다” 한다. 그러므로 그의 작품 속에 산견되는 남다른 가문 의식은 오히려 자연스럽기까지 하다.
한편 그의 취학은 ‘9세부터 시·서·화를 익히기 시작하여 삼절의 기틀을 잡았다’ 한다. 특히 시는 이건창(李建昌, 1852∼1898)의 <신자하 시초발(申紫霞詩鈔拔)>에 의하면 ‘자하의 시는 그 처음은 우리 집안 참봉군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이후 청나라에 가 옹방강을 흠모해 배우면서 비로소 스스로 유소입두를 주창했다(紫霞之詩 其始盖吾家參奉君, 其後入中國 服事翁覃溪 始自命由蘇入杜)’라 했다. 이건창이 말한 ‘오가참봉(吾家參奉)’은 곧 이광려(李匡呂, 1719∼1782)다. 그는 당시(唐詩)에 매진해 한때 시단의 거벽이었으니, 이만수(李晩秀, 1752∼1820)는 <참봉군제문(參奉君祭文)>에서 ‘시인으로서의 풍격을 도연명(陶淵明)에 견주었는가’ 하며, ‘국초 3백 년의 문교를 받아서 이광려가 났다’고 극찬했다. 그는 이처럼 문(文)의 박지원과 동격으로 추앙되던 학시(學詩) 스승이었다. 따라서 자하 역시 명민한 학당파(學唐派)였다. 그러나 창강의 <연보>에 따르면 ‘처음엔 성당의 시를 배웠으나, 연경에 가 옹방강에게 시학을 묻고 돌아와 이전의 작품 일체를 버렸다(始學盛唐 後改學蘇東坡,悉棄前作)’ 했고, 자하 스스로도 <후추류시 병서(後秋柳詩 並序)>에서 <전추류시>를 분고(焚稿) 운운하며 아쉬워하고 있다. 그렇다면 현전 ≪경수당집≫ 소재 4천여 수의 시작품은 연경으로부터 돌아온 1812년(공 43세) 이후의 작품이란 논법이거니와, 진실로 아쉽긴 그가 이광려에게 익힌 성당시 수용 여하를 가늠해 볼 수 없음이다.
아무튼 자하의 시를 누구보다 정독하고 아낀 이는 창강이다. 특히 망명객의 행리(行李)에 최준경(崔準卿)이 필사한 ≪경수당집≫을 3년여 동안 재가역완(再加繹玩)하여, ≪신자하 시집≫ 전6권으로 역어낸 <서>에서 ‘자하는 삼절로 천하에 이름을 떨쳤다’고 전제하고, 특히 ‘그의 시는 소동파를 스승으로 삼고, 서릉 서릉(徐陵): 남조 양·진시대의 문인. 문필에 능하여 유신(庾信)과 병칭됨.
·왕유 왕유(王維): 성당 시대 자연시인. 자는 마힐(摩詰). 시는 물론, 산수화에 능하여 남화(南畵)의 조(祖)로 불림. 만년에는 별장인 망천장(輞川莊)을 짓고 칭병고와(稱病高臥)함.
·육유 육유(陸游): 남송의 대표적 시인. 자는 무관(務觀). 호는 방옹(放翁). 청신한 시로 일가를 이룸. 특히 촉나라 풍토를 사랑해 시집 ≪검남시고(劍南詩稿)≫를 검남파로 칭함.
 같은 사람들의 사이를 출입했다’며, 그의 시 세계는 ‘천 가지 정과 만 가지 형상을 뜻에 따라 두루 뭉쳐서 살아 움직이지 않는 것이 없어 당장 눈앞에 있는 것과 같다. … 참으로 세상에 드문 기이한 재주를 갖추었고, 한 시대의 지극한 변체를 궁구해서 훨훨 나는 모습이 만년의 대가라 하겠다’고 극찬했다. 또한 자신의 문집 <잡언>에서는 ‘조선의 동파’라고 전제하며, 익재 이제현의 시가 공묘·청준으로 만상을 갖추었으므로 3천 년의 제1대가이니 가히 정종(正宗)으로 으뜸이요, 자하의 시는 신오하고 치빙하여 만상을 갖추었으므로 조선조 5백 년의 대가이니 변조로서 으뜸이다(…宋之詩 若以東坡爲第一, 則吾韓之詩 亦當以申紫霞爲第一. 李益齋之詩 以工妙淸俊 萬象具備 爲吾朝鮮三千年之第一大家 是以正宗而雄者也, 申紫霞之詩 以神悟馳騁 萬象具備 爲吾韓五百年之第一大家, 是以變調而雄者也, <소호당집·8>)라고 높이 평가했다.
한편 그에 대한 삼절론 역시 유종원·원진과 백낙천·황정견을 섭렵했으며, 유소입두(由蘇入杜)를 표방한 시는 물론, 화법[篔簹]까지 조선의 동파(東坡)이고자 한 데서 나온 것이다. 그런가 하면, 자신의 서체를 우(禹)의 구루비(嶇嶁碑)에 스스로 비교하며 왕희지와 동격으로 자부했다. 물론 청나라의 대표적인 석학 옹방강을 위시한 대방가들과의 격의 없는 교유, 게다가 4대에 걸친 왕실의 외호는 온전히 자하를 ‘삼절의 독보’로 격상시킨 바 있다.


☑ 옮긴이 소개

김갑기(金甲起)는 강원도 강릉 출신으로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1972), 같은 대학원에서 문학석사(1975) 및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1985). 청주대학교 사범대학 한문교육과 교수를 지내고, 현재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송강 정철의 시문학≫, ≪한국한시문학사론≫, ≪낯선 고전시가 찾아서 읽기≫, ≪동서 고전 연시≫(공저), ≪한시(漢詩)로 읽는 우리 문학사≫ 외 다수가 있으며, 역서로 ≪삼한시 귀감≫, ≪신자하 시집Ⅰ∼Ⅵ≫(공역), ≪한국 사찰 제영시≫, ≪대원집≫ 등이 있다.


☑ 차례

해설
지은이에 대해


서경에서 정지상의 운을 차하다 西京次鄭知常韻
참판 추사 김정희에게 부탁하다 屬秋史 金參判正喜
잔치 자리에서 물러나 돌아오는 배에서 짓다 宴退回舟作
청수 부용각에서 題淸水芙蓉閣
동파의 운을 차용하여 아들 팽석에게 부치다 寄男彭石, 用坡公韻
신계의 치행 이병규 동헌에서 짓다 題新溪李稚行秉奎東軒
왕재청이 손우거의 그림을 모방해서 보내준 그림에 짓다 題汪載淸 寄惠倣孫雨居畵
12월 19일 조송설이 그린 동파상을 다시 그리고… 十二月十九日 重摹趙松雪畫東坡遺像…
상산 군민에게 빌려준 돈과 곡식을 탕감해 준다는 임금의 명령서 뒤에 쓰다 題象山軍民錢粮蠲蕩 啓下公事後
상산 40영 象山四十詠
3. 명슬원 못에서  [三] 明瑟園池
18. 치마도  [十八] 馳馬道
20. 아미산  [二十] 峨眉山
21. 황고만  [卄一]黃姑灣
33. 관적사  [卅三] 觀寂寺
36. 마하탄  [卅六] 摩訶灘
윤유월 보름밤 달이 심히 밝아서 閏六月十五夜 月極明
새벽에 은대에 들어가다 曉入銀臺
담계 어른께 부치다 寄呈覃溪老人
담계가 금년 정월 27일 죽었다 覃溪以今年丁月卄七日亡
뒤에 지은 버들 시 後秋柳詩
북방의 풍속 貊風
1. 보리와 밀  [一] 麰麥
2. 귀리  [二] 鬼麥
3. 메벼  [三] 稉稻
7. 팥과 콩  [七] 豆菽
10. 마자  [十] 麻子
태사묘에 가을 제사를 드리는데, 복초재집의 운자를 공손히 사용하여 짓다 太師墓秋享 恭述用復初齋集韻
진락공 이자현의 문수원 중수비 眞樂公 重修文殊院碑
고려 연복사 옛 종에 쓰인 가정 이곡 선생의 명에 차운하다 高麗演福寺古鐘 次李稼亭先生穀銘詩韻
서긍의 고려도경에 쓰다 題徐兢高麗圖經
고려 노국공주의 정릉 원찰 보제광통사비 탁본 뒤에 쓰다 題高麗魯國公主正陵願刹普濟廣通寺碑拓本後
화장사 법능의 방에서 자고 아침에 일어나 패엽경을 뒤지다 공민왕의 상에 인사드리고 짓다 華藏寺宿法能房 朝起閱貝葉經 謁恭愍像作
추밀 윤언국이 나에게 죽순을 먹어보라고 주어… 尹彦國樞密 餉余竹筍…
벽로방에서 <청공도>를 보고 스스로 다섯 수를 화제로 짓다 碧蘆舫淸供圖 自題五首
1. 소나무  [一] 松
4. 대  [四] 竹
아들 명연이 십칠 세에 알성 무과에 올랐다… 兒子命衍十七 登謁聖武科…
난설 오숭량에게 보내 사례하다 寄謝吳蘭雪
세모에 희롱조로 동파집 운자를 차하다 歲暮戱次韻坡集
1. 해를 먹이다  [一] 饋歲
갑곶 甲津
임금의 명을 받들어 전당 근체시를 뽑아 올리고, 공손히 책 뒤에 명에 따라 쓰다 奉睿旨 選全唐近體訖 恭題卷後 應令作
오난설이 부인 금향각에게 부탁해 부채에 산수를 그려 내게 보내왔기로 시로써 답해 사례하다 吳蘭雪 屬哲配琴香閣於扇面畵山水 寄余以詩荅謝
큰아들 명준이 진사에 합격하여 관청에서 이름을 부르던 날 기뻐 짓다 伯子命準 擧進士 唱名日 喜賦
동인 논시절구 35수 東人論詩絶句 三十五首
소악부 小樂府
2. 백마 탄 사내와 젊은 여인  [二] 白馬靑娥
3. 붉은 촛농  [三] 紅燭淚
4. 대의 혼미함  [四] 竹謎
6. 자규의 울음. 앞 곡조  [六] 子規啼前腔
9. 물결에 달그림자 비침  [九] 影派
10. 손 안의 술잔  [十] 掌中盃
11. 나비야 청산 가자  [十一] 胡蝶靑山去
12. 고기잡이 풍류  [十二] 漁樂
13. 실제 일에서 올바름을 찾다  [十三] 實事求是
14. 자주 보는 손님  [十四] 慣看賓
15. 벽계수 [十五]  碧溪水
16. 푸른 풀 뜯는 청강 가의 말  [十六] 綠草靑江馬
18. 봄단장을 예쁘게 하다  [十八] 冶春
19. 떨어진 잎, 흐르는 물  [十九] 落葉流水
21. 신발 소리 아냐  [卄一] 響屐疑
22. 인생살이란 행락일 뿐  [卄二] 人生行樂耳
23. 십주는 좋은 곳  [卄三] 十洲佳處
11월 14일 첫눈이 내리자 스스로 묵죽을 그리고 화제를 쓰다 十一月十四日 始雪自題墨竹
명준은 극시를 맡고, 명연은 무고를 맡으니 희롱조로 한 절구를 지어 두 아이에게 보여주다 命準典棘寺 命衍掌武庫 戱以一絶 示兩兒
뉘우치는 마음 悔心
무술년 8월 11일은 내 70세 생일이다. 침계가 분에 넘치게 오래 살라는 시를 주기에 원운을 차운해 사례하다 戊戌八月十一日 僕七十生朝也 梣溪侈以壽詩 卽用原韻爲謝
기남의 변승애 여사가 가냘프고 예쁘게 생겼는데, 필묵 시중들며 모시겠단다… 畿南卞僧愛女史 纖小娟慧情 願以筆墨 侍我
죽사도위 김현근이 내게 산음 단산 오기보가 그린 지두화에 제시를 지어달라고 부탁하다 金竹史都尉賢根 以山陰吳丹山起寶 指頭畫 屬題
1. 버들 꽃 잡기  [一] 捉柳花圖
3. 삼소도  [三] 三笑圖
6. 소나무 아래에서 동자에게 묻는 그림  [六] 松下問童圖
8. 대안도를 찾아가는 그림  [八] 訪戴圖
임금이 내려주신 우유를 받고 공손히 절구 한 수 쓰다 御賜酪粥 恭紀一絶句
계묘년 초하루 아침 癸卯 元朝
병중에 외람되게 임금께서 연일 하문하시는 은총을 받고, 인해
녹용을 하사하셔 은혜를 기록해 시를 짓다 病中猥蒙聖上連日下問 因賜鹿茸 紀恩有詩
임금께서 예서 글자를 쓰라고 명령하고, 이어 나의 집에 서동 두 명과 부채를 보내주시니 특이한 운수다 上命書進隷字 因賜臣家兩書童貢扇 異數也

옮긴이에 대해


☑ 책 속으로

동인논시절구 35수(1)

눈을 크게 뜨고¹⁾ 한나라 문물을 보았으니
높기도 하여라, 그 공로. 학문의 산문처음 여셨네.²⁾
고운³⁾의 ‘一部方輿志’⁴⁾라 한 시구와
‘僧棋白日閑’⁵⁾의 시구는 백중일레라.

東人論詩絶句 三十五首 [一]

放眼威儀覩漢官     功高初祖始開山
顧雲一部方輿誌     爭及僧棋白日閑。
<申緯全集ㆍ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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