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2월 18일 금요일

한산 시선 寒山 詩選

한산(寒山) 지음(중국, ?~?)    

한산은 자신을 완벽하게 감춘 은자이기 때문에 그의 실명이 무엇인지 어떤 생애를 보냈는지 알 길이 없다. 대부분의 ≪한산 시집≫에는 태주 자사(台州刺史) 여구윤(閭丘胤)이 남긴 서문이 있는데 이를 통해 그의 삶의 흔적을 약간 엿볼 수 있을 뿐이다.

한산은 출가한 승려가 아니지만 불교에 매우 깊은 조예가 있어 심오한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깨달음을 얻었으면서도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인정받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후대에 전설이 가미되었으리라.

이 서문의 또 한 가지 문제는 글을 쓴 연도가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후대에 한산이 활동했던 시기에 대해서 설이 분분하다. 한산의 생존 연대에 대해서는 아직 설왕설래하고 있지만 대체로 성당에서 중당(中唐) 사이에 생존했던 인물로 보는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는 편이다.

한산 시를 자세히 읽어보면 시대를 추정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의 삶의 자취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한산 시에는 자전적인 작품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 과거에 낙방한 불우한 지식인을 읊은 작품이 두어 점 있다. 또한 그의 시 속에는 그 당시 과거 시험을 치는 사람들의 필독서였던 ≪문선(文選)≫의 구절들이 많이 등장하고 유가적 관점의 작품도 종종 있는데 이를 보아도 한산이 한때 과거 시험에 매진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현실에서 득의하지 못한 그는 구도의 길을 걷기 위해 한산에 들어와서 은거 생활을 시작했던 것 같다.

그는 초기에는 불로장생을 추구하여 한때 도교에도 심취했다. 당시 지식인들이 도교에 심취했던 것은 일종의 사회적 유행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불로장생의 허무함을 깨치고 마침내 불교에 귀의하게 된다. 불교 가운데서도 당시 새롭게 흥기하던 선종의 가르침에 심취하게 되고 마침내 선종의 깨달음을 얻었던 것 같다.

한산이 깨달음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국청사의 승려들에게 무시를 받았던 것은 우선 승려가 아니었던 것이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종파의 차이라고 짐작된다. 그가 머물렀던 천태산 국청사는 천태종의 본산이다. ≪법화경(法華經)≫의 가르침을 중시하는 천태종의 관점에서는 불립문자(不立文字)를 주장하면서 한 마음 돌이키면 바로 부처의 자리라는 선종의 가르침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때는 아직 선종의 세력이 약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인적 없는 깊은 골짜기에 홀로 기거하면서 깨달음을 얻었지만 세상 사람들로부터는 미치광이 소리를 들으면서 살았던 한산, 그는 자신의 마음을 시로 써서 바위에 나무에 새기는 것을 낙으로 삼았을 것이다. 그리고는 조용히 세상을 떠났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남긴 시는 세월이 흐를수록 많은 사람들에게 깨달음과 감동을 주었고 고독했던 그의 삶도 아름다운 전설이 되었던 것이다.


해설                                 

이 책은 ≪전당시(全唐詩)≫의 한산 시와 사고전서(四庫全書) ≪한산자 시집(寒山子詩集)≫을 저본으로 삼았고, 기타 여러 판본을 참고했습니다.
한산의 시 310여 수 중에서 65수를 가려 뽑았으며 습득과 풍간의 시는 수록하지 않았습니다.

한산 시(寒山詩)는 시의 극성기이자 불교의 극성기였던 당(唐)나라 중엽에 절강성(浙江省) 천태산(天台山) 국청사(國淸寺) 근처에 살았던 어느 은자의 시다. ≪한산 시집≫에는 판본에 따라 약간의 편차가 있지만 한산이 남긴 시 312수, 한산과 같이 어울렸던 습득이 남긴 시 54수, 풍간(豊干)이 남긴 시 2수가 실려 있다. 이들은 모두 천태산 국청사 근처에 살았기 때문에 ≪천태산국청사삼은시집(天台山國淸寺三隱詩集)≫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한산은 정통 시단에서는 그다지 비중 있게 다루어지지 않던 시인이다. 송대의 왕안석(王安石)이 <의한산습득시(擬寒山拾得詩)> 20수를 쓴 적이 있고, 몇몇 시인들이 한산 시에 대해 극찬을 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한산 시에 대한 일반 시인들의 관심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역대의 당시 선집에서는 한산 시나 한산이 거의 언급되지 않고 있다. 청대에 이르러 ≪전당시(全唐詩)≫와 ≪사고전서(四庫全書)≫에 편입되는 정도였다.

그러나 민간과 불교계에서는 꽤 일찍부터 널리 유포되었다. 당나라 시대에 이미 한산 시를 언급한 선사들이 등장했고 후대에 이르러 한산과 습득이 고승열전에 수록되면서 그 인기는 더욱 높아졌다. 송대 이후에는 고려와 일본에도 널리 유포되었다. 한산 시가 가장 널리 환영받았던 곳은 일본이었다. 현재 중국과 한국에서는 한산 시에 대한 주석본이 남아 있지 않지만 일본에서는 여러 승려들이 한산 시에 대해 주석을 남기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하이쿠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마쓰오 바쇼(松尾芭蕉) 또한 한산 시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한산 시가 일본에 얼마나 널리 퍼졌는가를 알 수 있다. 한산 시는 20세기 후반에 이르러서는 영어로 번역되어 구미 사회에서도 크게 유행했는데 이는 일본의 선승들과 선학자들의 영향이 크다. 한산 시에는 자신의 시가 눈 밝은 지음(知音)을 만나 천하에 퍼지기를 바란다는 구절이 있는데 천 몇백 년의 세월이 지나 바다 건너 구미 사회에서 인기를 얻을 줄은 짐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구미에서의 한산 시 열풍에 힘입어 중국에서 다시 한산 시 연구 붐이 일기도 했다.

≪한산 시선≫은 ≪한산 시집≫에 수록된 시 중에서 비교적 유명하거나 역자가 생각할 때 한산의 시세계를 잘 드러낸다고 간주되는 시 65수를 추린 것이다.


본문 중에서                

泉中且無月
月自在青天
吟此一曲歌
歌中不是禪

샘물에는 마땅히 달이 없으니
달은 스스로 푸른 하늘에 있구나.
이 한 곡조의 노래를 부르니
노래 속에 선이 있지 아니한가?


옮긴 이                      

박석(朴錫)은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학석사 및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현재 상명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중국문학 연구를 시작한 시기와 비슷한 시기에 명상에 입문하여 지금까지 명상 수련을 하고 있다. 석사학위 논문으로 <한산자 선시 연구(寒山子禪詩硏究)>를 씀으로써 한산과 인연을 맺었다. 저서로는 ≪송대의 신유학자들은 문학을 어떻게 보았는가≫, ≪대교약졸−마치 서툰 듯이 보이는 중국문화≫, ≪명상 길라잡이≫, ≪동양사상과 명상≫, ≪하루 5분의 멈춤≫ 등이 있고, 공저로 ≪두보 초기시 역해≫, ≪중국시와 시인−송대 편≫ 등이 있다.


출판사  서평                  

한산자/ 늘 이와 같다./ 홀로 거하여/ 나고 죽음 없네.
(寒山子/ 長如是/ 獨自居/ 不生死)

세계에서 가장 짧은 시라는 하이쿠보다도 짧고 간결한 한산의 시.
한산(寒山)에서 완성된 한산(寒山)의 시는 늘 이와 같다. 이름보다 시대도 불명인 그의 시를 온 세상 사람들이 여전히 읊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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