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2월 19일 토요일

오선록 吳船錄

범성대 范成大 (중국, 1126 ~ 1193)

범성대(范成大, 1126∼1193), 자는 치능(致能), 호는 석호거사(石湖居士)이며 정강(靖康) 원년(1126)에 태어났다. 열네 살에 모친을, 열다섯 살에 부친을 여의자 이후 10여 년간 고향에 칩거하여 학문에 정진하고 집안을 건사하면서 과거에는 뜻을 두지 않았다. 부친의 유지를 따르라는 권고에 과거 준비를 시작, 소흥(紹興) 24년(1154) 스물아홉 살의 나이로 진사(進士)가 되었다.

신안(新安), 처주(處州), 정강부(靜江府), 성도부(成都府), 명주(明州), 건강부(建康府) 등지의 지방행정장관을 역임하였고, 중앙에서는 교서랑(校書郞), 예부원외랑(禮部員外郞), 중서사인(中書舍人)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두 달여 간의 짧은 기간이긴 하지만 부재상의 직위에 해당하는 참지정사(參知政事)까지 승진하기도 했으며, 아무도 나서지 않던 금(金)나라 사행을 자청하여 다녀오는 기백과 충정을 발휘하기도 했다.

어려서부터 허약한 체질에 병치레가 잦았던 범성대는 순희(淳熙) 10년(1183) 58세에 건강상의 이유로 퇴직을 청하였고, 황제의 윤허로 30여 년에 걸친 관직 생활을 마감하게 된다. 이후 고향인 소주(蘇州)로 돌아와 석호(石湖) 부근에 살면서 소박한 전원생활을 누리다가 소흥(紹興) 4년(1193) 6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문학사상 육유(陸游), 양만리(楊萬里), 우무(尤袤)와 더불어 남송사대가(南宋四大家)로 칭해지는 범성대는 전원 풍경화를 보는 듯한 서정성 짙은 전원시와 농민의 애환을 담은 사회적 성격의 전원시 두 가지를 자연스럽게 하나로 융화시킨 전원시인으로 유명하다.


해설                      

순희 2년(淳熙, 1175) 범성대는 사천 성도부(成都府) 지부로 임명되었다. 촉 땅에서 생활한 2년 정도의 시간 동안 범성대는 군사 제도를 정비하고 민심을 수습하고 세금 부과를 가볍게 하는 등의 여러 치적을 쌓았다. 그러나 허약한 체질과 과다한 업무로 병이 위중해지자 고향으로 돌아갈 것을 청원하였고, 결국 황제의 윤허를 얻었다. 순희 4년(淳熙, 1177) 5월 29일 사천(四川)의 성도(成都)를 출발하여 10월 3일 고향인 소주(蘇州)로 돌아가기까지 약 4개월여의 뱃길 여행을 기록한 것이 바로 ≪오선록(吳船錄)≫이다.

≪오선록≫의 가장 큰 형식적 특징은 ‘일기’체라는 점이다. 그러나 중국에서 일기는 오랫동안 우리가 알고 있듯 나의 생활과 내면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가장 개인적이고 은밀한 사적(私的) 영역의 글쓰기가 아니었다. 일기는 역사를 기록하는 임무를 맡은 사관(史官)이 날짜에 따라 군주의 언행을 기록하던 기거주(起居注)에서 시작되었고, 따라서 역사적 사건과 중요한 인물을 중심으로 객관적 사실만이 기록되었고, 기술자의 주관적 의견은 철저히 배제되었다. 송대 이전까지 ‘일기’는 사적인 성격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매일의 연속성과 사실성에 중점을 둔 공식적인 역사 기록이었다. 따라서 그것은 역사적 글쓰기로 분류되었다.

송대 문인들의 일기는 이처럼 ‘여행’이라는 일정한 기간의 경험을 기록한 것이 많다.
‘일기’의 문체는 ‘여행’이라는 소재와 궁합이 잘 맞는다. 일기는 정형화된 틀이나 수사학적 제련이 전혀 필요 없고 날짜를 기입한 후 어떤 내용이든 속기가 가능하다. 그리고 하루로 끝나지 않는, 매일이 새로운 시작인 연일의 여행은 날짜별로 기록되어야 가장 완정하게 그 ‘과정’을 담아낼 수가 있다. 물론 여행의 경험은 ‘일기’가 아닌 한 편의 ‘유기(遊記)’로 기록될 수도 있다. 그러나 단편의 유기문은 글의 구성 방식에 있어 일정 정도의 ‘틀’을 갖는다. 전반부에는 해당 지명의 내력을 쓰고, 중반부에서는 경물의 묘사나 유람의 과정, 후반부에서는 개인의 심정이나 의견을 전개하면서 전체적으로 유기적인 짜임새를 갖는다. 하지만 매일매일 다른 풍경이 펼쳐지고 순간마다 의외의 상황이 펼쳐지는 여행의 과정은 단편적이고 구조적 완결성을 가질 필요가 없는 일기라는 문체 속에서 더 완전하게 전개될 수 있다. 범성대가 한 편의 유기가 아닌 일기체를 택한 것은 여행의 과정 전체가 일기 속에서 온전하게 표현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기록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 날에는 날짜와 머물렀던 곳의 지명만을 적어두기도 했는데, 이는 시간성이 개입된 전체적 여행을 온전히 기록하려는 의도에서 일기체를 선택한 것임을 보여준다.

이 그러하다. 기록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정보가 될 수 있느냐의 여부였다. 따라서 ≪오선록≫은 전통 목록학에서 지리류 서적으로 분류되었다. 범성대의 장강 뱃길 여행은 얼마 전 지진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은 사천(四川)의 도강언(都江堰) 근처에서 시작된다. 청성산(靑城山)과 아미산(峨眉山)을 두루 구경하고, 지금은 댐이 건설되어 예전 모습을 볼 수 없는 삼협(三峽)을 지나, ‘여산 진면목’으로 유명한 여산(廬山)을 거쳐 소주(蘇州)로 돌아오는 여정은 중국의 대표적 명승지를 콕콕 짚은 알찬 여행 패키지다. 게다가 ‘남송사대가’로 칭송되는 범성대의 문학적 재능과 감수성은 여행의 설렘과 흥분, 즐거움, 때로 맞닥뜨리는 위험한 상황에서의 두려움과 긴장,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수려한 대자연, 그를 마주한 경이로움과 감탄을 온전히 표현해 내 우리를 그 여정 속으로 함께 끌어들인다. 명대(明代)의 문인 진굉서(陳宏緖)가 평생을 소원하던 장강 여행을 ≪오선록≫을 읽음으로써 대신했다고 한 말은 빈말이 아닌 것이다.


옮긴이                   

안예선(安芮璿)은 중국 상하이(上海) 푸단대학(復旦大學)에서 ≪송인(宋人) 필기 연구−수필과 잡기류를 중심으로≫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고려대, 순천향대, 서울여대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무겁고 진지한 고문(古文)보다는 필기(筆記)나 일기(日記), 소품(小品)처럼 가볍고 솔직 담백한 글을 좋아하며, 이를 통해 전통 시기 문인들의 사적(私的)인 일상을 조명하는 것에 관심을 갖고 있다. ≪송대 필기의 문체적 의미≫, ≪송대 필기와 만명 소품≫, ≪송대 일기: 역사 기록에서 사생활의 기록으로≫ 등의 논문이 있다.


본문 중에서                

晚, 遂集南樓. 樓在州泊前黄鶴山上. 輪奐高寒, 甲於湖外. 下臨南市, 邑屋鱗差. 岷江自西南斜抱郡城東下. 天無纎雲, 月色奇甚. 江面如練, 空水吞吐. 平生所過中秋佳月, 似此夕亦有數.

저녁, 남루에 모였다. 남루는 주청 앞 황학산 위에 있다. 건물이 웅장하고 화려하며 높고 서늘하여 형호 지역에서 으뜸가는 곳이다. 아래로 남시를 내려다보니 마을의 집들이 비늘처럼 줄지어 있다. 민강이 서남쪽에서 비스듬히 성 동쪽을 감싸며 흘러내려 간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고, 달빛이 유난히도 밝다. 강물은 비단 같고, 하늘빛과 물빛이 섞여 하나가 된다. 평생 보았던 중추절 달이 오늘처럼 좋은 적은 손으로 꼽을 만큼 몇 번 되지 않는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