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2월 16일 수요일

데르자빈 시선 Гаврила Романович Державин

G. R. 데르자빈    Г.Р. ДЕРЖАВИН (러시아, 1743~1816)

가브릴라 로마노비치 데르자빈(Gavrila Romanovich Derzhavin)은 1743년 7월 14일(구력 7월 3일) 카잔 지방에서 소지주의 아들로 태어나서 1816년 7월 20일(구력 7월 8일) 노브고로드 지방의 즈반카에서 죽었다. 몰락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데르자빈은 카잔의 김나지움을 마치고 1762년에 사병으로 입대했고, 1772년 장교로 임관되었다. 1773년 푸가초프의 난이 일어나자 그의 소속 부대는 반란군 진압작전에 참여하였다. 이 사건 이후 1777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내무부 관리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공직생활 26년 동안 올로네츠와 탐보프의 지방장관과 상원의원, 그리고 법무장관을 지냈다. 관리 생활을 하는 동안 그는 시를 쓰기 시작했다.
데르자빈은 18세기 러시아 시인으로서 독창적인 서정시와 송시를 많이 남겼다. 그가 시인으로서 명성을 얻기 시작한 것은 예카테리나 대제에게 바치는 송시 「펠리싸」(1782)를 발표하면서 부터이다. 「펠리싸」는 전체가 260행으로 구성된 송시로서 한편으로는 계몽군주로서의 예카테리나 여제를 칭송하였으나, 다른 한 편으로는 신하들의 아첨과 위선을 신랄하게 풍자하고 있다. 예카테리나 대제에게 그 송시를 바쳐 여황제의 총애를 받았고, 계관시인이 되는 명예를 얻기까지 하였다. 한동안 여황제의 개인비서로 일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자유주의적인 정치성향 때문에 1803년 공직에서 물러나 노브고로드 지방의 즈반카에 있는 영지로 돌아와 생활하였다. 이곳에서 그는 시와 산문, 드라마와 회고록을 쓰면서 만년을 조용히 지냈다.
데르자빈의 다양한 시들을 소재나 주제에 따라 그룹을 지어보면 크게 몇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그의 시는 크게 송시와 아나크레온풍의 인생의 쾌락을 노래한 시로 구분된다. 데르자빈의 시 작품들 가운데 가장 특징적인 것은 말년에 집중적으로 창작한 아나크레온 풍의 시들이다. 그 시들은 즐겁고 감각적인 관능뿐만 아니라 다양한 유형의 삶에 대한 예찬과 사랑으로 고취되어 있다.

데르자빈의 시세계    

1. 18세기의 예술사조에 대한 담론
러시아 문학사에서 18세기에 대한 평가는 학자들에 따라 큰 차이가 있다. 러시아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18세기 전체를 고전주의시대로 간주하나, 서구의 학자들은 신고전주의나 의(擬)고전주의라는 용어를 선호한다. 신고전주의라는 용어는 브왈로에 의해 확립된 프랑스 고전주의의 영향 아래 생겨난 말이고, 의고전주의라는 용어는 서구의 고전주의와 유사한 문예사조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18세기를 좀 더 세분하여 바로크 시대(17세기 후반-1740), 고전주의 시대(1740-1770), 전(前)낭만주의시대(1770-1800)로 구분하는 학자들도 있다. 그러나 18세기의 모든 작가들을 연도별로 도식화시켜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 시대의 작가들 가운데에는 다양한 문예사조의 특성이 동시에 나타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작가가 18세기 최대의 시인이라고 할 수 있는 G. R. 데르자빈(1743-1816)이다. 그의 시를 분석해보면 바로크 요소와 고전주의 요소가 거의 혼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시인의 문학적 상상력을 하나의 틀 안에 넣어 설명하는 일은 복수 코드화가 특징인 데르자빈의 시에는 맞지 않는다. 실제로 데르자빈의 시 텍스트의 경우 고전주의의 시학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것들이 많다. 그의 시작품 속에는 고전주의 규범시학에서 벗어난 바로크적 세계관(감수성과 상상력)과 형식적 요소들이 풍부하게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2. 바로크 예술의 문제
18세기의 문학사조를 논할 때 고전주의와 바로크를 문예사조의 양대 축으로 간주하는 입장은 문학사적으로 볼 때에는 비교적 생소한 것으로서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부르크하르트, 뵐플린, 에우헤니오 도르스 등의 미학자들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바로크 재평가 운동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이들은 바로크 미학이 문예사조로 볼 때 르네상스 혹은 매너리즘과 로코코를 연결하는 특정한 시공간의 예술경향이지만 고전주의와 정반대되는 성격 때문에 시대를 관통하는 상수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균형, 질서, 그리고 명증성을 중시하는 고전주의적 예술 성향에 반하여 바로크는 부조화, 애매모호, 과장, 그리고 무질서 등으로 특징지어진다. 이 때문에 특히 18세기 신고전주의 운동 이후 바로크는 오랜 기간 동안 서구예술에서 “악취미 mal gusto”로 폄하되고 잊혀져 왔으며, 오늘날에도 “바로크적이다”는 말은 어딘지 어지럽고 기이하다는 경멸적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한 유럽의 미학자들은 바로크를 일회적이고 저속한 미학이 아니라 예술 사조를 통해 고전주의와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항존하는 보편적인 예술적 상수임을 깨닫게 해준다. 아놀드 하우저는 바로크 고전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바로크의 중요성을 인정하였다. “고전주의적 경향과 바로크적 경향의 기이한 병렬과 혼합이 이루어지고, 이 결과 그 자체가 하나의 모순이라고 할 수 있는 양식인 바로크 고전주의가 생겨난 것이다.” 이로써 바로크는 본질적으로 좀 더 동질적인 성격을 띠면서도 유럽 각 문화권에서 제각기 다른 형태로 나타난 세계관의 표현이 된다.
러시아 문학 연구에서 바로크 개념은 1937년 L. V. 품퍈스키에 의해 처음으로 도입되었고, 1961년 헝가리의 안쟐에 의해 본격적으로 연구되었다. 안쟐의 견해를 확대 해석한 모로조프는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전반까지의 문학을 모두 바로크로 규정하였다. I. L. 예료민은 바로크라는 개념 자체를 시대의 흐름이라 전제하면서 러시아 바로크는 “새로운 문학의 형성 과정을 촉진하였고, 문학으로 하여금 새로운 테마, 소재, 묘사 방법을 찾도록 했으며,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장르인 시와 희곡을 태동시켰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러시아의 D. S 리하초프와 벨코프에 의해 부분적으로 비판을 받게 된다. 리하초프는 러시아 바로크를 서구 르네상스의 대체물로 간주하는 예로민의 견해에 반대한다. 러시아 바로크는 중세로의 회귀가 아니라 중세로부터의 이탈이라는 것이다. 르네상스가 인간정신의 부활이라면, 바로크는 인간의 미적 계몽의 성격을 갖기 때문이다. 러시아 바로크 시대에 대한 연구가들 가운데 예료민과 리하초프는 데르자빈의 시학 연구에 아주 흥미로운 계기를 마련해준다. 러시아에서 바로크라는 것은 고전주의의 질서와 균형이 잡히고 조화와 논리성이 강조된 예술에, 우연과 자유분방과 때로는 기괴한 양상까지 섞어 넣은 결과로 생긴 예술양식을 말한다. 바로크는 단순한 자유분방과 불균형이 아니고, 최소한의 질서와 논리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강한 힘이 느껴진다. 특히 데르자빈의 바로크는 전통적인 표현방식과 자의식적인 자신의 시학을 융합시켜 새로운 효과를 창출하고 있다.

일러두기        

이 책은 ≪데르자빈 시전집 (Г. Р. ДЕРЖАВИН СОЧИНЕНИЯ)≫(ХУДОЖЕСТВЕННАЯ ЛИТЕРАТУРА, 1987)에 수록된 총 110편의 시 가운데 31편을 번역한 것입니다.


해설 중에서         

국내 최초 소개.
러시아 문학사에서 데르자빈의 바로크적 세계관과 토포이는 낭만주의나 상징주의(신낭만주의)로 전승되면서 새로운 시의 시대를 열었다. 그러한 의미에서 그는 독창적인 미적 사유 형식으로 러시아 시의 황금시대와 은시대를 예고해 준 미적 계몽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20세기 초는 예술사적으로뿐만 아니라 창작 분야에서도 바로크 문학이 부활하는 시기이다. 그리고 바로크의 부활은 곧 현대 예술의 출발을 의미한다. 서구 현대시의 시조로 간주되는 보들레르와 베를렌 등의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들은 우연한 기회에 파리에서 스페인의 대표적인 바로크 시인들을 만나고 그들의 현대적인 감각에 매료된다. 마찬가지로 러시아 현대 시인들이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받은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비단 문학에서뿐만 아니라 전체 예술의 범주에서 볼 때에도 바로크는 인상주의, 표현주의, 창조주의 등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아방가르드 예술에 자양분을 공급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현대시학에서 재조명되는 바로크의 문제는 러시아 문학사에서 과소평가되었던 데르자빈의 시학을 재인식하고 재평가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차례               

1. 기념비 3
2. 권력자들과 재판관들에게 4
3. 무상 5
4. 메쉐르스키 공의 죽음 6
5. 집시의 춤 9
6. 꿈속의 나이팅게일 11
7. 포도주들 12
8. 제비 13
9. 저녁초대 15
10. 침묵 17
11. 노인 18
12. 명상 19
13. 허무한 지상의 영광 20
14. 시간 22
15. 진리를 향해 24
16. 시골 생활 25
17. 올가 파블로브나 공주의 죽음 26
18. 첫 이웃에게 27
19. 점(占) 30
20. 철학자들: 술 취한 사람과 안 취한 사람 31
21. 등불 34
22. 희망 39
23. 백조 42
24. 예술애호가 44
25. 고백 45
26. 신 46
27. 나이팅게일 50
28. 러시아 처녀들 53
29. 황제마을에서의 산책 54
30. 폭포 56
31. 펠리싸 71
32. 작가연보 79-80
33. 데르자빈의 삶과 시적 세계관 81

역자 소개           

조주관은 대전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에 입학하여 러시아어문학을 전공하였으며, 동 대학원에서 러시아문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국비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미국에 건너가 오하이오 주립대학(OSU) 슬라브어문학과 대학원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고려대학교 석사논문은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에 나타난 분신 테마>이고, OSU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은 <데르자빈의 시학에 나타난 시간 철학(Time Philosophy in Derzhavin's Poetics)>이다. 한국러시아문학회 회장과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세계문학연구소 학술위원을 역임하고, 2000년 2월에는 러시아 정부로부터 푸시킨 메달을 받았다. 현재 연세대학교 노어노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대표 저서로 ≪러시아 문학의 하이퍼텍스트≫, ≪러시아 시강의≫, ≪‘죄와 벌’의 현대적 해석≫ 등이 있다. 그 외 번역서로는 ≪러시아 현대비평이론≫, ≪시의 이해와 분석≫, ≪러시아 고대문학 선집≫, ≪주인공 없는 서사시≫, ≪나의 사랑 나의 인생: 불라뜨 아꾸자바의 노래시≫, ≪비 이야기: 벨라 아흐마둘리나 시선집≫, ≪말로 표현한 사상은 거짓말이다: 튜체프 시선집≫, ≪자살하고픈 슬픔: 안나 아흐마또바 시선집≫, ≪오늘은 불쾌한 날이다: 만젤쉬땀의 시선집≫, ≪보즈네센스끼 시선집≫, ≪뻬쩨르부르그 이야기≫, ≪검찰관≫, ≪루슬란과 류드밀라≫등이 있다.

편집자 리뷰      

삶의 덧없음과 죽음의 불가피성은 언제나 인생을 허무하게 느껴지도록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르자빈은 이 지상에서 시간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절대로 후회 없는 순간의 순수한 쾌락을 즐기라고 한다. 삶이 단지 그림자에 불과하고 젊음이 사라진다 해도, 시인은 지금 이 순간을 마음껏 즐기라고 노래한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그러나, 카르페 디엠(carpe diem: 오늘을 즐겨라.)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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