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2월 15일 화요일

풍토기 風土記

해설 전문         

일본사의 시대구분 중 원시부터 794년 헤이안쿄(平安京) 천도까지를 일본 상대시대라 하고 이 시대의 문학을 상대문학(上代文學)이라 한다. 상대시대는 다시 아스카(飛鳥) 일대에 도읍이 있었던 야마토(大和)시대와 헤이조쿄(平城京, 지금의 나라)로 천도한 710년 이후의 나라(奈良)시대로 나눌 수 있다. 야마토시대 이전에는 오랜 전승 시대였으나 4세기경 백제 왕인(王仁)박사의 ≪논어≫와 ≪천자문≫의 전래에 의해서 본격적인 기록문학의 시대가 열리게 된다. 6세기 말 33대 스이코천황(推古天皇) 때의 섭정 쇼토쿠태자(聖德太子, 574~622)는 관위 12계와 헌법 17조를 제정하고, 607년에는 오노노이모코(小野妹子)를 필두로 한 견수사(遣隋使)를 파견해서 대륙문화의 적극적인 수용을 꾀하여 중앙집권국가 건설을 지향한다. 한편 고구려, 신라, 백제로부터의 도래인들도 아스카(飛鳥)의 호류지(法隆寺)를 중심으로 일본고대 문화형성에 지대한 역할을 한다.
야마토 조정은 다이카개신(大化改新, 645)과 임신난(壬申亂, 672)을 거치면서 더욱 강력한 중앙집권제에 의한 율령국가로 발전해간다. 특히 임신난에서 승리한 40대 텐무천황(天武天皇)은 율령을 정비하고 신라와 수 십 차례의 교류를 발판으로 해서 국사 편찬에 착수한다. 이윽고 701년에는 다이호율령(大寶律令)이 제정되어 명실상부한 고대율령국가의 건설을 완성하게 된다. 710년 헤이조쿄로 천도하여 794년 헤이안쿄(平安京, 현재의 교토)로 천도할 때까지의 80여년간의 나라(奈良)시대에는, 견당사(遣唐使)로 많은 유학생과 유학승들은 당나라에 건너가 선진의 대륙문화를 익혀온다. 또 이 시기는 한반도의 삼국통일 후 신라와는 관계가 나빠지나 발해와는 727년부터 약 200년 동안 30여회의 국사를 교환하며 활발한 무역을 이룬다. 그리하여 쇼무(聖武)천황의 덴표(天平, 729~749) 연간에는 당나라와 서역 등의 영향을 받은 덴표 문화가 번창하게 된다.
이러한 시대적인 분위기 속에서 문학 분야에서는 역사서로서 ≪고지키(古事記)≫와 ≪니혼쇼키(日本書紀)≫4)를, 지리서로서는 ≪후도키(風土記)≫가 편찬되어 중앙집권의 결정체를 이룬다. 일본 최초의 지방지리서라 불리는 일본의 ≪후도키≫란, <기후와 지역에 대한 기록>으로 한마디로 지지(地誌) 곧 지방지리서이다. 일본 고대의 주석가는 ‘사물을 양육하여 공(功)을 세우는 것을 風이라 하고, 앉아서 만물을 탄생시키는 것을 土라 한다.’(료슈게<令集解>)고 말했다. 나아가 <風>의 뜻에는 풍습·풍속·교화라는 의미가 있어 <풍토>라는 말이 나타내는 자연은 대단히 인간성이 풍부한 자연으로 인간의 성정이나 생활에 접한 것에서 취해진 자연이다. 그래서 <후도키>란 단순한 지지라기보다는 동시에 넓은 의미에서의 생활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내용 또한 실로 다채롭다. 즉, 당시의 지리서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 것 외에 풍속서, 설화의 집합체로서 고대인들의 사상과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문헌이다. 이런 까닭에서 일본을 연구하는데 기초되는 문헌의 하나인 ≪후도키≫는 오늘날 동시대에 생긴 ≪고지키≫와 나란히 고전으로서 높이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러한 ≪후도키≫는 개인적인 문학적 술작이 아니라 713년 5월 2일의 ≪후도키≫찬진(撰進)의 명령에 의해서 편찬된 것이다. 겐메이(元明)여제의 명령에 의해 찬진의 실제 책임자는 나라천도(奈良遷都)를 유도한 후지와라노후히토(藤原不比等)와 아와타노마히토(粟田真人)라고 추정된다. 그러면서도 이 관명을 실은 ≪쇼크니혼기(續日本紀)≫의 기사에서는 정작 서명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이 없다. 이것은 ≪쇼크니혼기≫의 오자와 탈자 혹은 착란(錯乱)일 수도 있고, 혹은 이 <사적>이 끝내는 공식적인 서명을 획득하지 못한 미완성작이었다고도 추정하게 된다.
처음 시도와는 달리 어느 새 지방문서로서 매장되어 있던 ≪후도키≫가 다시 중앙 정계에 알려지게 된 것은 다이고천황(醍醐天皇) 914년 4월에 칙령에 응해서 제출된 미요시키요유키(三善清行)의≪이켄호지쥬니죠(意見封事十二条)≫(혼쵸몬스이≪本朝文粋≫)에 의해서이다. 그 뒤 925년 후지와라노타다히라(藤原忠平)는 5기7도지방에 ‘급히 후도키를 작성하여 헌상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여러 지방에 있는 후도키문이라고 보이는 것을 지방청이나 군위 등에서 찾아내고 그래도 발견되지 않는다면 옛날 노인에게 물어서라도 속히 헌상하라고 지시하고 있다(≪朝野群載≫所収).
이런 상황에서 당시 중앙에서도 후도키가 어떠한 것인지 몰랐다는 것을 엿보게 된다. 나아가 시대적으로는 그 뒤 오닌란(応仁乱) 등의 전국적인 내란이 일어나면서 이러한 사회적 흐름 속에서 거의 소멸해 버렸을 가능성도 있었다. 713년 ≪후도키≫찬집명령 당시의 총 나라 수는 62개 지방 3도(島)이었다. 한 나라당 한 권으로 쳐도 완성하면 60권이 넘는 대집성이었을 것이나 ≪후도키≫중, 현재 볼 수 있는 것은 히타치(常陸)·하리마(播磨)·이즈모(出雲)·붕고(豊後)·히고(肥後)의 5개 지방이며, 이 중에서 ≪이즈모지방후도키(出雲國風土記)≫만이 완본으로 다른 것은 생략본이거나 파손본이다. 흔히 ≪후도키≫는, 여러 지방의 특유한 소박함을 잃지 않고 남아 있는 <와도후도키(和銅風土記)>(히타치후도키와 하리마후도키)와 실용주의적인 <덴표후도키(天平風土記)>(733년)에 ≪이즈모후도키≫가 완성되고, 거의 동 시기에 큐슈(九州)제후도키−≪붕고후도키≫≪히젠후도키≫가 현존−)가 있다.
그 내용은, ≪소크니혼기≫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기나이(畿内)·칠도의 제국은,(1)군·향의 이름에 호자(好字)를 붙이고,(2)그 군내에서 산출되는 은동·채색·초목·금수·어충(魚虫) 등의 품목을 상세히 기록하고,(3)토지의 비옥과 메마름(4)산천원야의 명칭 유래(5)옛 노인이 전하는 구문·이사(異事)를 사적에 실어 헌상하라.’

대체로 위 다섯 항목에 걸친 명령조항을 내리고 있다. 이것은 다른 조항과는 이질적인 행정명령으로 보이는(1)항,(2)(3)산물관계조항,(4)(5)토속관계조항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1)항의 <호자>에 의한 군향명의 표기를 요구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언령신앙(言靈信仰)16)의 영향으로 해석되며, 산물관계조항(2)(3)은 고대 국가형성 이래 가장 적극적으로 추구되어 온 항목이다. 그리고(4)(5)의 토속관계 사항은 전례가 없는 새로운 시도에 속한다. 이 사적편찬에 직접 참가한 관인에게는 소위 개척자적인 정열을 가지고 임해야 할 조항으로, 가장 중점이 두어진 부분이었다. 이는 현존 ≪후도키≫에서 가장 중시되는 부분이면서 ≪후도키≫를 가장 매력적인 것으로 하는 부분이기도 하여 본 발췌는 이 부분을 중심으로 꾸며보았다.
내용발췌에 있어 저본으로써는 고전문학대계의 ≪후도키≫(秋本吉郞校注, 岩波書店刊)를 기준으로 하였다. 그 내용은 신, 천황, 사람 등의 인물중심으로 얽힌 설화들을 우선적으로 발췌한다는 내용상의 균형을 취했다. 분량은 총 529페이지에 달하는 본문 내용에서 약 200페이지정도이다. 번역에 있어서는 ≪후도키≫(吉野裕譯, 平凡社, 1975)를 근간으로 하였으며, 고전문학대계≪후도키≫를 기준으로 삼아 목차의 편성 및 용어의 첨삭을 꾀하였다. 기간된 서적과는 달리 본 발췌문에 있어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후도키≫속에서 인물을 중심으로 꾸며보았다는 것으로 여러 개로 산견되어 나타나 있는 호칭을 하나로 통일하였다는 것이다. 이로써 인물의 전체적 동향을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시도했다(예: 가루시마의 아키라궁전에서 천하를 다스린 천황, 혹은 가루시마천황, 호무다 천황, 가루시마의 호무다천황, 가루시마의 아키라궁전에서 천하를 다스린 호무다천황, 가루시마의 도요아키라궁에서 천하를 평정한 천황⇒15대 오진천황<應神天皇>).
일본문학이나 어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자연적으로 그 주변 학문에도 깊은 관심을 쏟아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문학이나 어학을 만들어 낸 주체가 생활하는 기반이 그 시대의 역사, 정치, 지리 등의 제반 사항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서이다. 특히, 고대문학이나 어학을 연구할 경우에는 그 관계가 더욱 농후하여 주변 학문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참된 연구가 나오기 힘들다. 문학자체의 연구에 앞서 주변의 문화적, 역사적, 지리적 제반사항에 대한 것을 파악하는 것이 필수조건인 것이다. ≪후도키≫는 이러한 연구의 기본도서로서 한 몫과 위치를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후도키≫안에는 신라, 백제, 한국에 관련된 많은 사항들이 산적해 있음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일본으로 도래한 우리의 옛 선조들의 발자취가 남겨 있는 것만큼 우리들에게도 필독서가 되어야한다. 이는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부디 이에 이런 곳에서 착안하여 한일양국의 관계사에 대한 흥미가 일어나 더욱 깊은 연구로 이어질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또 그러한 독자가 많이 나타나기를 바라는 맘이 간절하다.

본문 중에서      

童女胸鉏所取而 大魚之支太衝別而 波多須々支穂振別而 三身之綱打挂而 霜黒葛闇々耶々爾 河船之毛々曾々呂々爾 国々來々引來縫国

童女の胸鉏取らして、大魚のきだ衝き別けて、はたすすき穂振り別けて、三身の綱うち掛けて、霜黒葛くるやくるやに、河船のもそろもそろに、国來々々と引き來縫へる国

처녀의 가슴과 같이 넓은 커다란 호미를 손에 들고 생선의 내장을 발라내듯이 괭이로 캐내서 참억새의 이삭을 나누듯이 산산이 나눠 굵은 새끼줄을 걸쳐서 서리 맞아 마른 검정 풀을 당겨오듯이 배를 끌어 올려 슬슬 나아가며, “나라여 와라, 나라여 와라”고 끌어당겨 이은 나라

출판사 서평       

일본 최초의 지방 지리서. 단순한 지리서가 아니라 풍속과 설화의 집합체로서 1300년 전 일본 사람들의 생각과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 같은 시대에 나온 ≪고지키(古事記)≫와 나란히 고전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사실 여부는 검증해야겠지만, 한반도와 관련된 내용도 다수 언급돼 있으므로 한일 양국 관계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역자 소개         

강용자
일본 국학원(國學院)대학 석·박사취득. 만요슈(万葉集−문예와 문화사이)≫전공.
부산대학교, 동아대학교, 부경대학교, 경남대학교, 부산외국어대학교, 해양대학교, 한국방송통신대학교, 현 창원대학교, 동의대학교, 동서대학교 출강.
번역에 ≪인터넷시대의 종교≫(도서출판 역락, 2005), ≪女帝의 사랑−詩人 柿本人麻呂≫(제이플러스, 2003), ≪일본 풍토기≫(동아대학교출판부, 1999.10) 등이 있으며, 논문에는 <万葉 祈禱文化考>, <≪万葉集≫에서 보는 他界觀>, <万葉「夢」考>, <万葉 神觀 考>, <万葉 天皇 考>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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