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2월 22일 화요일

부휴자담론 浮休子談論

이 책은 성현의 ≪부휴자 담론(浮休子談論)≫ 109편의 글 가운데 60편을 정선하여 번역하고 원전 순서대로 배열한 것입니다.

1.
≪부휴자 담론(浮休子談論)≫은 조선 초기 대표적인 문인 성현(成俔, 1439∼1504)의 저술이다. ≪부휴자 담론≫이 이육(李陸, 1438∼1498)의 저술이라는 설이 있으나‚ 성현의 문집에 <부휴자전(浮休子傳)>이 있을 뿐 아니라 김안국(金安國)이 쓴 <허백당선생문대성공행장(虛白堂先生文戴成公行狀)>에 ‘저술로 부휴자 담론 6권이 있다’는 기록이 있으므로 성현의 저술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에 대해선 필자가 ≪성현문학연구≫(한국문화사, 1992)에서 구체적으로 다룬 바 있다.
 이 책에는 서문이나 발문이 없어 출판 경위를 자세히 알 수 없다. 다만 ≪고사촬요(故事撮要)≫의 책판 목록을 보면 전라도 나주(羅州)에 성현의 문집인≪허백당집(虛白堂集)≫과 이 책의 판목이 있었다고 한다. 이로써 보면, ≪부휴자 담론≫이 처음 간행된 시기는 ≪허백당집≫이 간행된 조선 중종 연간으로 추정된다. 이래종, <부휴자 담론 해제>, ≪부휴자 담론≫, 소명문화사, 2004, 6쪽.
 규장각에 목판본이 전한다. 규장각 장서각 등지에 전하는 필사본은 모두 이 목판본을 다시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 현전하는 목판본과 필사본은 모두 6권 1책으로 각각 두 권씩 <아언(雅言)>, <우언(寓言)>, <보언(補言)>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세 유형의 담론은 각각 다른 이야기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담론의 주체도 <아언>은 부휴자이고, <우언>은 허구적인 인물이며, <보언>은 역사 인물이다.
<아언>은 권1(18항목), 권2(22항목)에 40개 항목의 담론으로 구성되었다. ‘아언(雅言)’은 본래 ‘바른 말’ 또는 ‘평소에 하는 말’이란 뜻이다. ≪논어≫에서 공자가 평소에 하던 말을 기록할 때 ‘자왈(子曰)’이라는 어구를 서두에 사용한 것같이 대부분의 이야기가 ‘부휴자왈(浮休子曰)’로 시작한다. 간혹 ‘유생문왈(柳生問曰)’, ‘동리선생문왈(東里先生問曰)’이라 하여 문답식으로 전개된 담론도 눈에 띈다. 담론의 주체는 성현의 분신이라 할 수 있는 ‘부휴자(浮休子)’다.
여기에 실린 담론은 정치 사회 전반에 대한 성현의 인식이 주류를 이룬다. 특히 성현의 정치관이 논리적으로 피력되어 있는데‚ ‘하늘(天)-임금(君)-신하(臣)-백성(民)’의 관계를 일관된 시각에서 기술하고 있다.
성현 자신의 정치관을 성리학의 논리를 펴면서 직설적으로 피력한 글인데도 심각하거나 지루하지 않다. ≪좌전(左傳)≫이나 ≪장자(莊子)≫ 등 중국 고전에 나오는 옛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적절히 활용하고 있으며, 경구나 속담 등을 삽입하여 구어(口語)에 가깝게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언>은 권3(17항목), 권4(20항목)에 37개 항목의 담론으로 구성되었다. 일반적으로 ‘우언(寓言)’은 ‘우의(寓意)를 지닌 말’이란 뜻이다. ≪장자≫ <우언> 편에서 그 전례를 살필 수 있다. 장자는 자신의 견해를 설득력 있게 전달하기 위해 직설적인 담론이 아니라, 하나의 서사적인 이야기를 꾸미고 이를 통하여 주제를 드러낸다. 여기서의 <우언>에도 ‘부휴자’가 등장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허구적으로 설정된 다른 인물들의 상호 대화로 구성되어 있다. 예를 들면 ‘저산생(樗散生)’, ‘공동자(空同子)’, ‘동고자(東皐子)’, ‘녹비옹(鹿皮翁)’, ‘동구선생(東丘先生)’, ‘강상노인(江上老人)’ 등이 실제 인물처럼 등장한다. 배경이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로 설정되어 있지만, 등장인물이 그 시대의 역사적 인물이 아니다. 이처럼 등장인물이 허구임을 나타내어, ‘우언’으로서의 성격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성현의 <우언>에서는 어리석은 자와 현명한 자가 함께 등장하여 어리석은 자의 행동을 풍자하거나 비판하는 내용이 주류를 이룬다. 구체적인 사례로 군왕의 실정, 가렴주구를 일삼는 권신을 우회적으로 풍자한다. 공훈이나 능력이 없으면서 높은 자리를 탐내는 자들을 공박하며, 권귀한 자들의 비윤리적인 삶을 질타하고 있다.
<보언>은 권5(16항목), 권6(16항목)에 32개 항목의 담론으로 구성되었다. ‘보언(補言)’은 ‘보충한 말’이라는 뜻이다. 성현은 이 글에서 중국의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에 가필(加筆)하여 당시의 정치적 사회적 문제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폈다. 구체적으로, ≪좌전(左傳)≫, ≪사기(史記)≫, ≪열녀전(烈女傳)≫ 등에서 역사적 사건을 사례로 취하고, 역사적 인물의 입을 통해 어떤 문제에 대한 담론을 펼치는 방식을 택했다. 그러나 여기에서 담론을 개진하는 특정 인물이나 담론 자체는 실제 역사서에서 살필 수 없는 가공의 사실이다.
<보언>은 주로 역사 인물의 입을 통하여 군왕에게 간언을 올리는 내용의 담론이다. 사냥을 자주 나가는 초(楚)나라 장왕(莊王)에게는 번희(樊姬)가 그 병폐를 간언하고, 도성 밖에서 놀기를 좋아하는 조(趙)나라의 숙후(肅侯)에게 대무오(大戊午)가 그 병폐를 간언한다. 또 잘못된 인사를 한 군왕에게도 간쟁하는 신하를 등장시킨다. 성현은 이 글을 통하여 여러 가지 잘못된 정치적 상황에서 아랫사람들이 임금에게 어떻게 간언해야 하는가를 제시하고 있다.

2.
성현이 재임하던 성종조까지도 여말선초의 혼란된 사회 분위기가 말끔히 가신 것은 아니었다. 세조 찬탈 이후 오히려 정치적으로는 불안정한 분위기에 있었고, 사상적으로는 유불 교체기의 혼란이 막바지에 있었다. 더욱이 사림파의 세력 확대로 지배 관료층은 더욱 긴장하고 있었다. 이 같은 시기에 성현은 지배층의 관료로서 혼란한 사회질서의 회복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구체적인 방편으로 주자의 성리학에 바탕을 둔 정도전·권근·하륜·서거정 등의 논리를 계승하여 전개했다.
성현은 여러 저술에서 군왕과 신료, 학자, 문장가, 예능인 등의 전범을 보여주고자 했다. ≪풍소궤범(風騷軌範)≫에서는 문장의 전범(典範)을 보였다. ≪악학궤범(樂學軌範)≫에서는 음악의 전범을 보였다. ≪부휴자 담론≫은 정치 사회의 전범을 보이기 위한 것이다.
성현은 ≪부휴자 담론≫에서 하늘-임금-신하-백성의 관계를 비교적 상세하게 다루었다. 이 책 첫머리에서부터 임금은 하늘과 같아 더없이 높고, 더없이 존귀하며, 더없이 크다고 하면서 하늘의 명령인 천리(天理)에 순응해야 한다고 했다. 하나이면서 둘일 수 없다는 것은 절대적인 이치의 속성이다. 임금의 덕은 천리로 주어지는 것이니, 하늘을 공경하듯이 공경해야 할 대상이다. 임금은 주어진 명분 질서에 따라 그 덕을 행사해야 하며, 천지만물로 하여금 각각 공능(功能)을 발휘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인간 세계의 질서도 바로잡힌다는 것이다.
성현은 하늘이 모든 자연 현상과 실재를 주재하기 때문에 절대시된다고 했다. 인간의 선악 화복에 따르는 감응의 이치까지도 하늘이 주재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하늘이 직접 인간에게 일일이 그것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하늘은 이(理)로써 인군(人君)에게 부가할 따름이다”라 했다. 천리를 따라 인군이 그것을 실행한다는 것이다. 성현은 군신의 관계에도 관심 있게 논술했다. “임금은 신하가 아니면 나라를 다스릴 수 없으며, 신하는 임금이 없으면 그 종적을 발할 수 없다” 했다.
성현은 성리학의 인성론(人性論)을 내세워 봉건 질서를 합리화하려 했다. 천리를 내세워 봉건적 사회관계를 절대시한 그는 우주 만물의 모든 것을 하늘이 주재하지만 개체에 따라 달리 나타난다고 했다. 이 논리는 조선 초기의 성리학자들이 왕권 강화와 신분적 질서를 확고하게 하려는 목적에서 특히 강조했다. 성현이 그의 여러 글에서 ‘질서관의 확립’ 운운한 논리도 같은 선상에서 비롯한 것이다.
성현은 정치관을 피력한 글에서나 예악이나 문학을 논하는 글에서까지 질서와 조화를 구현하는 것이 가장 긴요한 사명이라고 보았다. 이는 그가 관학파와 사림파의 정치적 갈등 속에서 관학파 입장에서의 통치적 지배 질서를 옹호하기 위한 변론으로 보인다.

3.
성현이 ≪부휴자 담론≫에서 담론의 대상으로 삼은 주제는 다양하다. 그리고 ≪부휴자 담론≫ 전편을 통해 비판 의식이 강렬하다. <아언>에서는 공자나 맹자처럼 군왕의 도리와 신하의 임무에 대해 직설적이면서도 논리적으로 피력하고 있다. 반면, <우언>에서는 장자처럼 허구적인 사건을 구성하여 사회적 병폐를 풍자하고 있다. <보언>에서는 중국의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을 옮겨다 놓고 가필하여 군왕의 실정 비판하고 있다. <우언>, <보언>은 우회적인 담론이기에 정치적인 문제나 사회적인 병리에 대하여 비판의 정도가 더욱 강하게 나타나 있다. 그만큼 더 문학적인 양상을 띠고 있다.
≪부휴자 담론≫은 서거정(徐居正)의 ≪필원잡기(筆苑雜記)≫와 함께 조선시대 필기문학(筆記文學)의 특징을 규명하는 데 필수적인 자료로 평가된다. 정환국, <부휴자 담론 해제>, ≪고서해제≫,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그리고 ≪부휴자 담론≫의 <우언>은 조선 초기의 우언문학(寓言文學)을 대표할 만큼 높이 평가된다.
조선시대 문인들의 문집 가운데 한두 편의 우언 작품이 수록된 사례는 있지만, 여러 우언 작품을 한데 모아놓은 우언집(寓言集)은 없는 실정이다. 그리고 이와 유사한 양식의 글은 성현 이후에야 눈에 띈다. 이종묵 교수에 의하면, 이종묵, <부휴자 담론과 우언의 양식적 특성>, ≪고전문학연구≫(5), 한국고전문학연구회, 1990.
 장유(張維)는 <우언>이란 작품에서 초공자(楚公子)와 영인(郢人), 동곽선생(東郭先生) 등 허구적인 인물을 등장시켜 ‘무위(無爲)’가 ‘인위(人爲)’보다 우수하다는 담론을 개진했다. 박지원(朴趾源)의 <호질(虎叱)>도 ≪부휴자 담론≫의 <우언>을 원용하고 있다. <호질>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북곽선생(北郭先生), 동리자(東里子)는 이미 ≪부휴자 담론≫에 등장한 허구적 인물이다. 구한말(舊韓末)에 이건창(李建昌)이 지은 <녹언(鹿言)>은 사슴의 입을 빌려 외치(外治)보다는 내치(內治)가 중요함을 역설하면서 당대 국제 정세 속에서 국가의 나아갈 길을 밝힌 것이다. 장지연(張志淵)의 <아환선생 문답(亞寰先生問答)>은 아환선생이라는 허구적인 인물을 등장시켜 러일전쟁 속에 대한제국이 내치에 힘써야 함을 강조한 글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성현의 ≪부휴자 담론≫은 조선시대 우언문학의 전통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 저자 소개

성현(成俔, 1439∼1504)은 조선 초기의 문인으로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경숙(磬叔), 호는 허백당(虛白堂)이다. 용재(慵齋)·부휴자(浮休子)·국오(菊塢)라는 호도 사용했다. 시호는 문대(文戴)다. 아버지는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염조(念祖)다. 맏형 성임(成任), 둘째 형 성간(成侃)과 함께 당대의 문장가로 명성을 떨쳤다.
성현은 1462년(세조 8) 23세로 식년문과에 급제했다. 1466년 27세로 발영시(拔英試)에 각각 3등으로 급제하여 박사로 등용되었다. 홍문관정자를 역임하고 대교(待敎) 등을 거쳐 사록(司錄)에 올랐다. 1468년(예종 즉위년) 29세로 경연관(經筵官)이 되었으며, 이후 예문관수찬·승문원교검을 겸임했다. 맏형 성임을 따라 북경(北京)에 다녀왔으며, 이때 지은 기행시를 엮어 ≪관광록(觀光錄)≫이라 했다. 1475년(성종 6)에는 한명회(韓明澮)를 따라 재차 북경에 다녀왔다. 1476년 문과중시에 병과로 급제하여 부제학·대사간 등을 지냈다. 1485년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로 천추사(千秋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대사간·대사성·동부승지·형조참판·강원도관찰사 등을 역임했다.
1488년에는 평안도관찰사로 있으면서 명나라 사신 동월(董越)과 왕창(王敞)을 접대했는데 연회에서 화답한 시편으로 시재(詩才)를 인정받았다. 이해에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로 사은사가 되어 다시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 뒤에 대사헌이 되었다.
성현은 음률에 정통하여 다른 관직을 맡으면서 장악원제조(掌樂院提調)를 겸했다. 1493년에 경상도관찰사로 나갔다가 1개월 만에 예조판서로 제수되었다. 외직에 있으면서 장악원제조를 겸직하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이해에 유자광(柳子光) 등과 ≪악학궤범(樂學軌範≫을 편찬했다. 성현은 예조판서로 재임 중에도 관상감(觀象監)·사역원(司譯院)·전의감(典醫監)·혜민서(惠民署) 등의 중요성을 역설하여 그곳에 딸린 관원들을 종전대로 문무관의 대우를 받도록 했다.
연산군이 즉위한 후에 한성부판윤을 거쳐서 공조판서가 되었다. 그 뒤에 대제학을 겸임했다. 1504년 정월에 66세의 일기로 세상을 마쳤다. 죽은 뒤 수개월 만에 갑자사화가 일어나서 부관참시(剖棺斬屍) 당했으나, 중종 즉위 후 바로 신원되고 청백리에 선정되었다. 저서로 ≪허백당집(虛白堂集)≫, ≪용재총화(慵齋叢話)≫, ≪풍아록(風雅錄)≫, ≪풍소궤범(風騷軌範)≫, ≪부휴자 담론(浮休子談論)≫, ≪주의패설(奏議稗說)≫, ≪태평통재(太平通載)≫ 등 17종을 남겼다.

☑ 옮긴이 소개

처인재 주인 홍순석은 용인 토박이다. 어려서는 서당을 다니며 천자문에서 소학까지 수학했다. 그것이 단국대, 성균관대에서 한문학을 전공하게 된 인연이 되었다. 지역문화 연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강남대 교수로 재임하면서부터다. 용인, 포천, 이천, 안성 등 경기지역의 향토문화 연구에 20여 년을 보냈다. 본래 한국문학 전공자인데 향토사가, 전통문화 연구가로 더 알려져 있다. 연구 성과물이 지역과 연관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현재 강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임하면서 인문대학장, 인문과학연구소장을 겸직하고 있다. 그동안 ≪성현문학연구≫, ≪양사언문학연구≫, ≪박은시문학연구≫, ≪김세필의 생애와 시≫, ≪한국고전문학의 이해≫, ≪우리 전통문화의 만남≫, ≪이천의 옛노래≫ 등 40여 권의 책을 냈다. 짬이 나면 글 쓰는 일도 즐긴다. ≪탄 자와 걷는 자≫는 잡글을 모은 것이다.

☑ 차례

해설
지은이에 대해

아언(雅言)

임금은 하늘과 같다
임금이 되기는 어렵고 신하가 되기도 쉽지 않다
어떤 사람이 되는가는 인도하기 나름이다
사람을 등용하는 데는 물망에 오른 자를 쓰는 것보다 좋은 방법이 없다
임금은 하늘의 변고보다 사람의 변고를 더 두려워해야 한다
선비는 뜻을 고상하게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명예라는 것은 실질의 껍데기일 뿐이다
신하가 없으면 다스릴 수가 없다
사람은 친구를 잘 가리지 않을 수 없다
사람에게는 하늘의 뜻을 되돌리게 하는 힘이 있다
사람의 천성은 변화시킬 수 없다
명예란 실질의 손님일 뿐이다
도(道)에도 크고 작음이 있다
크게 간사한 자는 나라를 해치고 작게 간사한 자는 사람을 해친다
사람의 마음이 서로 다른 것은 얼굴이 서로 다른 것과 같다
산에 살면서 부엉이 소리를 싫어해서야 되는가
욕심에 동요되지 않으면 해를 당하는 일이 없다
숙부와 형 중에 누가 더 소중한가

우언(寓言)

재주가 높은 사람이 남에게 부림을 당한다
이빨이 있는 것에게서는 뿔을 빼앗았다
달이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구름이 달려가는 것이다
사람에게는 능한 것과 능하지 못한 것이 있다
베를 짤 때는 북과 바디가 중요하지 쇠꼬리는 중요하지 않다
성급하게 처리하면 반드시 다치기 마련이다
월나라 까마귀
물이 지나치게 맑으면 물고기가 노닐지 않는다
담장을 높이고 싶으면 집을 낮게 지어라
세상에 굽은 것이 나뭇가지만은 아니다
부유한 자를 좋아하는 것은 그가 베풀기 때문이다
모기를 잡으려 칼을 빼들다
참 소리는 소리가 없으면서도 멀리 간다
땅에 맞게 씨를 뿌려야 결실을 맺는다
똑같은 고치에서 누에와 구더기가 나오는 이유
녹봉을 먹고사는 관료는 채소나 과일을 재배하지 않는다
난초가 들판에서 배척을 받으면 잡초가 돋보인다
물고기를 먹을 때 황하의 방어만 고집하랴
청렴함과 졸렬함
쥐를 잡으려다 개에게 물려 죽은 노인

보언(補言)

곧은 나무는 먼저 베어진다
사치스러워지면 참람한 마음이 생긴다
신령한 용도 물을 잃으면 개미에게 제압을 당한다
종각에서 종을 쳐도 바로 밑에서는 들리지 않는다
강물은 더러운 물도 받아들인다
희귀한 새와 진기한 짐승은 집에서 기를 수 없다
평범한 사람은 죄가 없지만 벽옥을 품고 있는 것이 죄다
몸을 굽혀 부귀할 바에야 가난하게 마음대로 사는 것이 낫다

옮긴이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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