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2월 17일 목요일

봄 물결 Вешние воды

이반 투르게네프 Иван Сергеевич Тургенев(러시아, 1818~1883)

이반 세르게예비치 투르게네프(Иван  Сергеевич  Тургенев, 1818∼1883)는 러시아 중부 오룔 현의 부유한 지주 가정에서 태어났다. 유년 시절 투르게네프는 당시 러시아 귀족 가정의 전형적인 교육을 받았다. 그 후 모스크바대학 문학부와 페테르부르크대학 철학부, 그리고 독일의 베를린대학에서 수학했다.
독일 유학 시절, 유럽 사상의 영향을 받고 러시아로 돌아온 투르게네프는 러시아의 후진성, 특히 농노제의 참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는 러시아 농촌과 자연을 따뜻한 시선으로 묘사한 ≪사냥꾼의 수기≫(1852)를 발표하고, 이 작품을 통해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었다. 작가의 길에 본격적으로 들어선 투르게네프는 이후 장편소설 ≪루딘≫(1857), ≪귀족의 둥지≫(1859), ≪전야≫(1860), ≪아버지와 아들≫(1862), ≪연기≫(1867), ≪처녀지≫(1877)를 잇따라 발표했다. 이 작품들은 당시의 러시아 사회가 당면한 가장 민감한 문제들을 다루고 있어서 러시아 문단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 밖에도 투르게네프는 작가 생활 35년에 걸쳐 ≪파우스트≫, ≪아샤≫, ≪첫사랑≫, ≪봄 물결≫, ≪클라라 밀리치≫ 등 주옥같은 중·단편 소설들과 산문시를 써서 러시아 문학뿐만 아니라 세계 문학에도 큰 발자취를 남겼다. 특히 ≪봄 물결≫을 비롯한 투르게네프의 후기 소설들은 문학적으로 가장 완성도가 높은 작품들로 평가된다.
평생 동안 독신으로 살았던 투르게네프는 임종의 자리에서 사상적 위기를 겪고 펜을 꺾었던 톨스토이에게 다시 문학으로 돌아와 달라고 유언하고 1883년 9월 4일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 후 톨스토이는 다시 펜을 잡고 ≪이반 일리치의 죽음≫, ≪부활≫과 같은 명작을 남겼다.

해설          

이 책은 원전의 약 80퍼센트를 발췌 번역했다. 따라서 이 책은 부차적인 인물들에 관련된 자세한 묘사나 설명 등이 생략되어 있을 뿐, 작품의 줄거리나 주제의 구조를 이해하기 위한 필수적인 내용들은 거의 대부분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독자들은 원전의 전체 줄거리를 파악하고 핵심 주제들을 이해하는 데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소설 ≪봄 물결(Вешние воды)≫(1872)은 투르게네프의 문학 세계와 상상력의 특징인 ‘바다 콤플렉스’가 소설의 전개 과정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실제로 이 소설은 바다, 심연, 수영, 잠수, 익사 등과 같은 물의 모티프를 다수 가지고 있고, 사랑과 죽음에 대한 주제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작가의 ‘바다 콤플렉스’를 보여주는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다.

≪봄 물결≫의 얼개를 이루는 액자 소설의 중층구조가 매끄럽고 일관된 흐름 속에 하나의 유기적 전체로 융합되는 과정에서, 소설 서사의 표층과 심층을 관류하는 풍부한 물의 모티프와 이미지는 플롯을 형성, 추동, 제어하는 핵심 장치로써 작동한다. 또한 이 소설에서 물의 모티프와 이미지는 가장 대담하면서도 미묘하고 섬세한 방식으로 두 여성 인물 젬마와 폴로조바의 대립적인 설정과 묘사에서 중요한 미학적 요소로 작용한다.

≪봄 물결≫에서 물의 모티프나 이미지는 소설의 제목에서부터 선명하게 들어나는데, 이는 “즐거운 세월, 행복한 나날이 봄 물결처럼 흘러가 버렸다”는 독일 낭만주의 시인 울란트의 옛 로망스에서 인용한 소설의 제사(題辭)를 통해 소설 텍스트의 표면으로 부상한다. 곧이어 나오는 액자소설의 외부 이야기에서 나이든 주인공이 인생의 무상함과 허무함을 탄식하면서, 마음의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모든 세월을 지긋이 관조할 때 물의 모티프는 다양한 형식의 은유로 변주되어 나타난다.

이러한 물의 모티프와 이미지는 작품의 내부 이야기에서도 중요한 기능적 의미를 갖고 다채로운 형태로 일관되게 등장한다. 이 점은 특히 ≪봄 물결≫의 내부 이야기의 전반부에 펼쳐지는 사닌과 젬마의 사랑 이야기와 후반부에 전개되는 사닌과 폴로조바의 불륜 이야기가 ‘서사의 물길’을 따라 반전되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폭넓게 발견된다.

이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것은 3장 서두에 언급되는 젬마의 “윤이 흐르는 물결치는 머리카락”이 사닌과 폴로조바의 불륜에서도 중요한 연결 고리가 된다는 점이다.

젬마의 “윤이 흐르는 물결치는 머리카락”에서 발원하는 물의 모티프와 ‘서사의 물길’은 소덴으로 가는 소풍 장면에서 예술 공간의 표면으로 부상하기도 하고, 사닌과 젬마의 관계를 묘사하는 수단으로도 사용된다. 그리고 이 점은 내부 이야기의 후반부에 가서는 의미는 전혀 다르지만 매우 유사한 양상으로 다시 나타난다. 사닌이 젬마와 가까워지고 그녀를 사랑하게 되자 이들의 관계는 본격적으로 물의 모티프나 물의 이미지를 중심으로 묘사된다. 이는 13장 서두를 통해 화자가 ‘단조롭고 조용하며 평범한 생활의 흐름 속에 커다란 기쁨이 숨겨져 있다’고 말하면서, 사닌이 바로 이런 일상의 매력에 자신을 내맡겼다고 덧붙이는 대목에서 알 수 있다. 이는 화자가 사닌이 프랑크푸르트에 머물면서 젬마와 함께 있는 시간을 빗대어 독일 낭만주의 시인 울란트가 로망스에서 노래하고 있는 것처럼 “삶의 고요한 흐름을 따라 한 척의 쪽배가 두 사람을 나르는 동안, 나그네여, 기뻐하고 즐겨라!”라고 외칠 때에도 되풀이 된다. 또 결투 사건을 기점으로 사닌과 젬마의 관계가 더 진지한 단계로 접어들면서 마침내 사닌이 젬마에게 열렬한 사랑의 고백을 담은 편지를 쓰게 되는 부분에서 화자는 다음과 같이 세차게 흐르는 강 물결 속으로 사닌이 뛰어들고 있는 것으로 묘사한다.

“고독하고 쓸쓸한 삶의 우울한 강둑에서 그는 소용돌이치는 물결 속으로 곤두박질치듯 뛰어들었다. 이 물결이 그를 어디로 실어갈까, 암초에나 부딪히지는 않을까, 그에게 그런 것은 상관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것은 더 이상 얼마 전 그의 마음을 달래주었던 울란트의 로망스에 나오는 조용한 흐름이 아니었다…. 그것은 저항할 수 없는 거센 물결이었다! 그것은 날아가듯 앞으로 돌진한다. 그리고 이와 함께 그도 날아간다.”

이것은 젬마와 사랑에 빠진 사닌의 내적 감정과 기분을 거센 물결의 이미지를 통해서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렇게 사닌의 내적 감정 상태를 표현하는 물의 이미지는 이미 참을 수 없는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 사닌과 젬마가 공원에서 몰래 만나는 장면에서도 중요한 배경 요소로 등장한다. 만남의 장소인 공원은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은 흐린 날씨, 분수대의 아주 작은 염주 알 같은 물방울들, 희뿌연 안개 등 풍부한 물의 이미지로 장식되어 낭만적 분위기를 풍겼다.

즉 물의 이미지는 젬마에 대한 사닌의 내적 감정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뿐만 아니라 외적인 풍경을 묘사하는 데 있어서도 중요한 미학적 요소로써 기능하는 것이다. 특히 공원에서의 비밀스러운 만남을 통해 사닌이 젬마의 사랑을 확인하는 장면에서 화자는 “만약 그 순간 젬마가 그에게 ‘바다에 뛰어들 수 있어요?’ 라고 물었다면, 그녀가 그 말을 마치기도 전에 벌써 그는 심연 속으로 뛰어들었을 것이다”라고사닌의 사랑을 물의 모티프를 이용해서 표현하고 있다.

이들의 사랑 이야기는 ≪봄 물결≫ 내부 이야기의 후반부에 이르러서 사닌과 폴로조바의 불륜 이야기로 반전되는데, 여기서도 물의 모티프는 중요하다. 내부 이야기의 전반부에서 소덴으로 간 소풍이 사닌과 젬마가 사랑에 이르는 계기가 되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후반부에서 비스바덴으로 떠나는 사닌의 여행은 사닌이 폴로조바의 사악한 유혹에 넘어가 그녀의 노예로 전락하는 계기가 된다. 이처럼 두 여행은 모두 물의 고장이라는 점에서는 유사하지만 여행의 결과는 정반대이다.

이 같은 상황은 물의 이미지와 연결되는 머리카락 모티프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젬마의 머리키락처럼 폴로조바의 머리카락도 사닌의 각별한 주의를 끈다. 내부 이야기 후반부의 서두를 구성하는 33장과 34장 사이에서 사닌과 폴로조바가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 묘사의 초점은 흐르는 물을 떠올리게 하는 그녀의 머리카락에 집중된다. 그러나 젬마의 머리카락이 긍정적 의미로 이탈리아 회화 속 유디트의 머리카락에 비유된 것과 대조적으로 폴로조바의 머리카락은 신화 속의 사악한 팜므 파탈 메두사의 머리카락을 연상시키는데, 이는 그녀의 사악성을 나타내는 중요한 상징적 기호다.

메두사의 머리카락을 떠올리게 하는 플로조바의 “뱀 같은 편발”과 그녀의 “탐욕스러운 잿빛의 눈”은 그녀가 사닌에게 찰거머리처럼 달라붙어 강력한 마력을 발휘할 것임을 암시한다. 특히, 사악한 뱀의 이미지는 이후 그녀가 비스바덴의 극장에서 오페라 관람을 핑계로 사닌을 유혹하자 그가 ‘뱀이다! 아, 이 여자는 뱀이다!’라고 생각할 때 다시 등장한다. 또 폴로조바가 사닌을 숲 속 깊은 곳으로 유인하고 마침내 그를 굴복시켜 정사를 치른 마지막 장면에서, 그녀의 이름 자체에 내재해 있는 사악한 뱀의 이미지는 “승리의 미소가 뱀처럼 기어가고 있었다”라는 화자의 묘사에서 다시 떠오른다.

마지막으로 머리카락의 모티프는 폴로조바의 유혹에 굴복해서 힘을 잃은 처량한 사닌의 모습에서 데릴라의 유혹에 넘어가 머리카락를 잘리고 힘을 잃게 된 성경 속 인물, 삼손의 모습을 상기시킴으로써 재등장한다.

이러한 신화적 차원과 관련해서 흥미로운 사실 한 가지는 폴로조바가 사닌을 유혹해서 굴복시키는 이야기도 물의 모티프와 직접 관련하여 펼쳐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폴로조바는 무엇보다도 슬라브 신화에서 남자를 유혹해 물에 빠뜨려 죽이는 루살카(русалка)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실제로 그녀가 이미 약혼한 사닌을 시험하고 유혹해서 끝내 굴복시키는 일련의 과정은 물의 이미지나 모티프와 함께 묘사되거나 제시된다.

예를 들어 폴로조바가 사닌의 마음을 떠보기 위해서 “누구든지 ‘저는 결혼할 예정입니다’라고 태연히 말할 수는 있지만, 아무도 태연하게 ‘저는 강물에 뛰어들 것입니다’라고 말하지는 못하지요”라고 사닌에게 말하자, 사닌은 “사람에 따라서 물에 뛰어드는 것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기도 합니다. 그 사람이 수영을 할 줄 안다면 말입니다”라고 자신 있게 그녀에게 응수한다. 하지만 폴로조바는 물에 빠져 죽은 자신의 남동생 이야기를 들려주며 ‘수영을 할 줄 아는’ 사닌 역시 ‘유혹의 물’에 빠져 상징적인 ‘익사’를 할 수도 있음을 불길하게 암시하고, 이는 후에 물의 이미지를 배경으로 숲 속에서 펼쳐지는 그들의 불륜 장면에서 그대로 실현된다.

작품의 내부 이야기 전반부에서 사닌이 젬마에게 호감을 느끼고 사랑에 이르는 과정이 은유적, 실제적인 동시에 물의 이미지를 통해서 묘사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후반부에서 그가 폴로조바의 교묘하고 노골적인 유혹에 굴복당하는 과정 역시 물의 이미지를 통해서 묘사된다. 이런 면에서 두 이야기는 두 여행이 그렇듯이 구조상 유사한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의미상 전혀 다른 내용을 담고 있다.

끝으로 그들이 숲 속의 오두막집에 들어가 정사를 치르기 직전에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는데, 이때 그것은 내부 이야기의 전반부에서 사닌과 젬마가 공원에서 밀회를 갖기 전에 내리던 빗방울을 상기시킨다. 그리고 사닌이 결국 ‘유혹의 강물’에 빠졌고, 상징적으로 추락하고 익사했다는 사실은 그가 에필로그 형식의 이야기에서 다시 젬마를 찾아 나서려고 시도할 때 그가 “어쨌든 물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법이다”라고 말함으로써 더욱 분명해진다.

이와 같이 ≪봄 물결≫은 처음부터 끝까지 물의 모티프와 이미지로 가득 차 있는 특이한 작품이다. 따라서 이 작품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작품 곳곳에 굽이굽이 흐르고 있는 ‘서사의 물길’을 통과해야만 할 것이다.

본문 중에서     

Все чудеса первой любви совершались над ними. Первая любовь - та же революция: однообразно-правильный строй сложившейся жизни разбит и разрушен в одно мгновенье, молодость стоит на баррикаде, высоко вьется её яркое знамя, и что бы там впереди её ни ждало - смерть или новая жизнь - всему она свой восторженный привет.

첫사랑의 모든 기적들이 그들에게서 일어나고 있었다. 첫사랑은 혁명과도 같은 것이다. 정연한 삶의 획일적이고 규칙적인 체제가 한 순간에 무너져 와해되고, 청춘이 바리케이드에 서고, 그 휘황한 깃발이 높이 펄럭인다. 그리고 죽음이든 새로운 삶이든 그 무엇이 앞에 기다리고 있든지 간에 첫사랑은 모든 것에 환희의 인사를 보낸다.

역자 소개      

라승도는 1968년 전북 고창에서 태어났다. 1987년 한국외국어대학교 노어과에 입학하여 이때부터 러시아어를 배우며 러시아 문학을 읽기 시작했다. 대학 졸업 후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노어과에 진학하여 러시아 문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했다. 대학원 졸업 후에는 군에 입대하여 육군 중위로 임관 후 육군사관학교에서 군복무와 함께 생도들에게 러시아어를 가르쳤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텍사스 주 오스틴에 소재한 텍사스 주립대학교 슬라브어문학과에서 수학했다. 2004년 8월 <문학수력학: 안드레이 플라토노프의 유동적 안티유토피아>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노어과에서 시간강사로 러시아어와 문학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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