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2월 16일 수요일

서경잡기 西京雜記

유흠 劉歆(중국, BC 53~AD 23)

유흠은 서한(西漢)의 문학가이자 목록학자(目錄學者)로서, 자는 자준(子駿)이며 유향(劉向)의 아들이다. 나중에는 이름을 수(秀), 자를 영숙(穎叔)으로 고쳤다. 부친 유향과 함께 비서(秘書)를 교정하라는 칙명을 받고 육경(六經)·전기(傳記)·제자(諸子)·시부(詩賦)·술수(術數)·방기(方技) 등의 서적을 두루 연구했다. 황문랑(黃門郞)·중루교위(中壘校尉)·시중태중대부(侍中太中大夫)·기도위(騎都尉)·봉거광록대부(奉車光祿大夫) 등을 역임했으며, 왕망(王莽)이 제위를 찬탈한 뒤에 국사(國師)로 모셔졌다. ≪서경잡기≫ 외에 부친 유향의 ≪별록(別錄)≫을 개편하여 ≪칠략(七略)≫을 지었는데, ≪한서(漢書)≫<예문지(藝文志)>는 바로 이것을 바탕으로 완성된 것이다.

해설            

∙이 책은 ≪사고전서(四庫全書)≫본 ≪서경잡기≫(上海: 上海古籍出版社影印, 1991)를 저본으로 하였으며, 기타 여러 판본을 참고하였습니다.

∙원전은 6권에 걸쳐 총 132조의 고사가 실려 있는데, 이 책은 전체 내용을 균형 있게 소개하는 데 중점을 두고 각 권의 주요 고사 100조를 가려 뽑아 실었습니다.

≪서경잡기(西京雜記)≫는 한(漢)나라 유흠(劉歆)이 짓고 진(晉)나라 갈홍(葛洪)이 모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 전형적인 잡록식의 필기저작으로, 총 132조의 고사로 이루어져 있다. 대부분 짤막한 고사지만 그 내용은 매우 복잡하고 광범위하다. 기록된 인물은 제왕장상·공경대신·비빈궁녀·문인학사·명공명장(名工名匠)·일반백성 등등이며, 기록된 내용은 궁중야사·궁원진기(宮苑珍器)·문인일화·학술저작·전장제도·풍속습관·기인묘기(奇人妙技) 등등이다. 따라서 ≪서경잡기≫를 통하여 한나라 도성인 서경 장안(長安)의 정치·경제·문학·학술·문화·민속 등 여러 방면의 상황을 엿볼 수 있다.
≪서경잡기≫의 작자에 대해서는 종래로 여러 설이 분분하여 아직까지 정론(定論)이 없는 상태이지만, 대체로 유흠이 짓고 갈홍이 모은 것으로 판단된다.
유흠(BC 53?∼AD 23)은 서한의 문학가이자 목록학자로 자는 자준(子駿)이며 유향(劉向)의 아들이다. 나중에는 이름을 수(秀), 자를 영숙(穎叔)으로 고쳤다. 어려서부터 시서(詩書)를 암송하고 문장을 잘 지었다. 성제(成帝) 때 함께 황문랑(黃門郞)이 된 왕망(王莽)과 친교를 나눴다. 하평(河平) 4년(BC 26)에 부친과 함께 비서(秘書)를 교정하라는 명을 받고 육경(六經)·전기(傳記)·제자(諸子)·시부(詩賦)·술수(術數)·방기(方技) 등의 서적을 모두 연구했다. 왕망이 제위를 찬탈한 뒤 그를 국사(國師)로 모셨다. 나중에 왕망이 그의 세 아들을 죽이고 남양(南陽)에서 병란이 일어나자 화가 자신에게 미칠 것을 두려워하여 왕망 주살을 모의했다가 일이 발각되어 자살했다. 그는 부친 유향의 ≪별록(別錄)≫을 개편하여 ≪칠략(七略)≫을 지었는데, ≪한서(漢書)≫<예문지(藝文志)>는 바로 이것을 바탕으로 완성된 것이다.
갈홍(284∼364)은 동진의 문학가이자 도교이론가·의학가·연단술가(煉丹術家)로서, 자는 치천(稚川)이고 자호는 포박자(抱朴子)이며 단양(丹陽) 구용(句容: 지금의 강소성 구용현) 사람이다. 갈홍은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했으나 집이 가난하여 땔감을 팔아서 어렵게 공부했다. 그는 유학에 뜻을 두는 한편으로 신선양생술을 좋아했고 의학에도 정통했다. 만년에 그는 연단을 통하여 장수할 생각을 품고 구루령(句漏令)을 자청하여 광주(廣州)로 갔는데, 그곳 자사(刺史)인 등악(鄧嶽)이 머물기를 청하자 곧장 나부산(羅浮山)으로 올라가 연단술을 익히면서 계속 저작에 임했다. 그의 저작으로는 ≪신선전(神仙傳)≫·≪포박자(抱朴子)≫·≪금궤약방(金匱藥方)≫·≪주후비급방(肘後備急方)≫ 등이 있다.
≪서경잡기≫가 지니고 있는 가치와 후대에 미친 영향은 크게 문학적인 측면과 사학적인 측면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문학적인 측면에서 볼 때 우선 ≪서경잡기≫는 잡기체(雜記體) 필기소설의 대표작으로 위진남북조 지인소설(志人小說)과 지괴소설(志怪小說)은 물론이고 멀리 명청대 소설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또한 한대 부(賦)의 대가인 사마상여(司馬相如)·양웅(揚雄) 등의 작부(作賦) 능력과 창작과정 및 작품에 얽힌 일화가 많이 수록되어 있어서, 한대 문인들의 문학 견해를 엿볼 수 있으며 문학 사료도 비교적 풍부하게 담겨 있다. 그리고 일부 고사는 후대의 시인·사인(詞人)·희곡가(戱曲家) 등 여러 문인들이 제재와 전고로 즐겨 사용하여 그 영향력이 지대하기 때문에 중국문학의 여러 제재 근원 가운데 하나를 밝히는 데에도 매우 유용한 가치가 있다.
사학적인 측면에서 볼 때 ≪서경잡기≫는 종래로 정사(正史)의 부족한 부분을 보충한다는 사료적인 특성이 부각되었다. 20세기에 들어와서는 고고학적인 발굴을 통해 기술된 내용의 사실성이 입증되면서 그 가치를 주목받고 있다.
≪서경잡기≫가 언제 처음으로 국내에 전래되었는지 그 정확한 시기는 규명하기 어렵지만, 대략 고려 선종(宣宗) 때인 약 1100년경에 전래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보다 분명한 기록은 조선 숙종(肅宗) 46년(1720)에 간행된 ≪오륜전비언해(伍倫全備諺解)≫의 인용서목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책은 사역원에서 역관의 양성을 위하여 간행한 교과서 가운데 하나로, 명나라 구준(丘濬, 1421∼1495)의 전기(傳奇) ≪오륜전비기≫를 역관 고시언(高時彦, 1671∼1734) 등이 우리말로 언해하고 주를 달아 놓은 것인데, 역주하는 과정에서 사용한 인용서목 중에 ‘서경잡기(西京雜記), 진 갈홍(晉葛洪)’이라는 분명한 기록이 있다. 한편 고시언의 서문에 따르면, 이 ≪오륜전비언해≫는 숙종 22년(1696)에 언해에 착수하여 24년 뒤인 숙종 46년(1720)에 완성되었다. 따라서 ≪서경잡기≫는 1696년 이전에 이미 우리나라에 전래되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은 ≪사고전서(四庫全書)≫본 ≪서경잡기≫(上海: 上海古籍出版社影印, 1991)를 저본으로 했으며, 기타 여러 판본을 참고했다. 원전은 6권에 총 132조의 고사가 실려 있는데, 이 책은 그중에서 각 권의 주요 고사 100조를 뽑아 전체 내용을 균형 있게 소개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엮은이          

갈홍(葛洪, 284∼364)은 동진(東晉)의 문학가이자 도교이론가·의학가·연단술가(煉丹術家)로서, 자는 치천(稚川)이고 자호는 포박자(抱朴子)다. 유학에 뜻을 두는 한편으로 신선양생술을 좋아했고 의학에도 정통했다. 승상(丞相)·사도(司徒) 등을 역임했으며 민란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워 관내후(關內侯)에 봉해졌다가 나중에 자의참군(諮議參軍)으로 전임되었다. 만년에는 연단을 통하여 장수할 생각을 품고 구루령(句漏令)을 자청하여 광주(廣州)로 가서 연단술을 익히면서 계속 저작에 임했다. ≪신선전(神仙傳)≫·≪포박자≫·≪금궤약방(金匱藥方)≫·≪주후비급방(肘後備急方)≫ 등을 지었다.

역자 소개      

김장환은 연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연세대학교 중문과를 졸업한 뒤 서울대학교에서 <세설신어 연구(世說新語硏究)>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연세대학교에서 <위진남북조 지인소설 연구(魏晉南北朝志人小說硏究)>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강원대학교 중문과 교수와 미국 하버드 옌칭 연구소(Harvard-Yenching Institute) 객원교수(Visiting Scholar)를 지냈다. 전공 분야는 중국 문언소설과 필기문헌이다.
그동안 쓰고 번역한 책으로는 ≪중국문학입문≫, ≪중국문언단편소설선≫, ≪중국연극사≫, ≪중국유서개설(中國類書槪說
≫, ≪봉신연의(封神演義)≫(전5권), ≪열선전(列仙傳)≫, ≪서경잡기(西京雜記)≫, ≪세설신어(世說新語)≫(전3권), ≪고사전(高士傳)≫, ≪태평광기(太平廣記)≫(전21권), ≪태평광기상절(太平廣記詳節)≫(전8권), ≪중국역대필기(中國歷代筆記)≫ 등이 있으며, 중국 문언소설과 필기문헌에 관한 다수의 연구논문이 있다.

편집자 리뷰      

중국 4대 미인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왕소군을 원제(元帝)가 흉노의 왕비로 보내고 저잣거리를 온통 화공의 피로 물들였던 사연, 기원전 동중서가 밝혔던 기후에 대한 견해를 들어본 적이 있는지. 후대 중국문학의 전고가 되었던 잡기체 필기소설 ≪서경잡기≫에는 짧지만 울림이 큰 이야기들이 봄날 꽃처럼 흐드러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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