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2월 17일 목요일

어림 語林

배계 裴啓(중국, ?∼?)

자가 영기(榮期)이며 하동[河東, 지금의 산서성(山西省) 영제현(永濟縣) 서쪽] 사람이다. 부친 배치(裴稚)는 풍성령(豊城令)을 지냈다. 배계는 동진(東晉)의 문학가로서 일생 동안 벼슬하지 않았다. 젊어서부터 뛰어난 품격과 재기를 지녔으며 고금의 인물을 논하길 좋아하여 그러한 내용이 담긴 ≪어림≫을 지었다. 그 밖에 자세한 생애는 알려져 있지 않다.

해설  
      
≪어림(語林)≫은 동진(東晉)의 배계(裴啓)가 지은 지인류(志人類) 필기문헌으로, 인물 품평에 관한 고사가 그 내용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수서(隋書)≫<경적지(經籍志)> 자부(子部) 소설가류(小說家類)의 ‘≪연단자(燕丹子)≫ 1권’ 조의 부주(附注)에 “≪어림≫ 10권은 동진의 처사 배계가 지었으나 망실되었다(≪語林≫十卷, 東晉處士裴啓撰, 亡)”라고 저록되어 있으며, 그 이후의 사지(史志)에는 보이지 않으므로 ≪어림≫은 수나라 때에 이미 망실된 것으로 보인다.

≪어림≫의 집본(輯本)으로는 ≪설부(說郛)≫본, ≪오조소설대관(五朝小說大觀)≫본, ≪고금설부총서(古今說部叢書)≫본, ≪옥함산방집일서(玉函山房輯佚書)≫본, ≪옥함산방집일서보편(玉函山房輯佚書補編)≫본, ≪고소설구침(古小說鉤沈)≫본(총 180조 집록)이 있는데, 이 중에서 ≪고소설구침≫본이 비교적 참고 가치가 높다. 근래에 나온 주능가(周楞伽) 집주(輯注) ≪배계어림≫(北京: 文化藝術出版社, 1988)은 등장인물을 전한인(前漢人)·후한인(後漢人)·삼국인(三國人)·서진인(西晉人)·동진인(東晉人)으로 분류하여 총 185조를 집록해 놓았는데, ≪고소설구침≫본을 보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작자 배계(裴啓, ?∼?)는 ≪진서(晉書)≫에도 그의 전(傳)이 실려 있지 않고 기타 자료도 거의 없어서 자세한 생애는 알 길이 없다. 다만 ≪세설신어≫<문학(文學)> 제90조의 유효표(劉孝標) 주에 인용되어 있는 ≪배씨가전(裴氏家傳)≫의 다음 기록이 전부다.

배영(裴榮)은 자가 영기(榮期)이며 하동(河東, 지금의 산서성 영제현 서쪽) 사람이다. 부친 배치(裴稚)는 풍성령(豊城令)이었다. 영기는 젊어서부터 뛰어난 품격과 재기가 있었으며 고금의 인물을 논하길 좋아하여 ≪어림≫ 수 권을 찬하여 ≪배자(裴子)≫라고 이름 했다.

이에 대하여 유효표는 “배송지(裴松之)는 배계가 ≪어림≫을 지은 것으로 여겼다고 단도란(檀道鸞)이 말했는데, 그것은 배영의 별명을 배계라고 한 것 같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그러나 ≪세설신어≫<경저(輕詆)> 제24조 주에 인용된 단도란 ≪속진양추(續晉陽秋)≫의 기록과 ≪수서≫<경적지>의 저록에는 모두 배계가 ≪어림≫을 찬했다고 되어 있으므로, ≪배씨가전≫과 유효표의 안어(按語)에서 배영을 본명으로 한 것은 그의 자인 영기와 혼동한 것이 아닌가 한다. 아무튼 배계가 동진의 문학가로서 일생 동안 벼슬하지 않았으며 고금의 인물을 품평하길 좋아하여 그러한 내용이 담긴 ≪어림≫이라는 지인소설을 지었다는 것은 사실로 보인다.

≪어림≫의 창작 시기와 시간 범위, 내용 특성에 대해서는 ≪세설신어≫<경저> 제24조 주에 인용된 단도란 ≪속진양추≫의 “진나라 융화(隆和) 연간(362∼363)에 하동 사람 배계가 한위(漢魏) 이래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언어응대(言語應對) 중에서 뛰어난 것을 찬하여 ≪어림≫이라 이름 붙였다”는 기록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현재 남아 있는 유문을 통하여 살펴보면, ≪어림≫은 한위에서 동진까지의 왕후장상(王后將相)·고관귀인(高官貴人)·문인명사(文人名士) 등 여러 계층 인물들의 인품과 재능을 그들의 언어응대를 통하여 묘사하고 품평한 것으로, 당시에 유행했던 청담(淸談) 기풍의 시대사상적 특성이 잘 반영되어 있으며 그 언어 묘사가 비교적 정채롭다. 또한 포괄하고 있는 내용이 조정대사·정치·문학·학술사상·인정세태 등 비교적 광범위하여 당시의 사회상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자료이기도 하다. 특히 전체 185조의 고사 중에서 절반이 넘는 103조가 동진의 인물에 관한 것으로 작자가 처한 동시대의 인물을 과감하게 논평한 것이 또 하나의 특징이다.

≪어림≫은 당시의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여 창작된 것으로 당시 사람들의 환영을 크게 받았는데, ≪세설신어≫의 기록을 보면 그러한 사정을 잘 알 수 있다.

배랑[裴郞: 배계(裴啓)]이 ≪어림≫을 지었는데 처음 세상에 나오자 원근의 사람들에게 널리 전해져서, 당시 청년들 중에 이를 전사(傳寫)하여 각각 한 권씩 지니고 있지 않는 자가 없을 정도였다. 그 책 중에 왕동정[王東亭: 왕순(王珣)]이 지은 <왕공의 주막 아래를 지나며 지은 부(經王公酒壚下賦)>가 실려 있는데 그 재기와 정취가 물씬 풍긴다.

위의 기록을 보면 당시에 ≪어림≫이 얼마나 유행했었는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내용 중에 사안(謝安, 320∼385)이 배계와 지도림(支道林, 314∼366)을 품평한 대목이 있었는데, 당사자인 사안이 그것을 사실이 아니라고 부정하는 바람에 ≪어림≫은 하루아침에 그 명성을 잃고 마침내 폐해지고 말았다. 이것은 배계가 정말 거짓으로 기록한 것인지 아니면 사안이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나 자신이 한 말을 나중에 고의로 부정한 것인지 그 자세한 내막은 지금으로서는 알 길이 없지만, 사안은 당시의 재상이자 명사계(名士界)의 영수 지위에 있었으므로 그의 말 한마디가 미치는 영향력은 가히 절대적이었다. 그래서 마침내 ≪어림≫은 더 이상 세상에 온전하게 유전되지 못하는 운명에 처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 이후 남조 송나라 유의경(劉義慶)의 ≪세설신어≫와 양(梁)나라 유효표의 ≪세설신어주≫와 은운(殷芸)의 ≪소설(小說)≫ 등에 그 고사의 상당한 분량이 실려 있으며, 수·당의 유서(類書)에도 그 유문이 많이 남아 있어서 완전히 사라져버린 것은 아니었다.

≪어림≫은 특히 인물 묘사에 뛰어나 짤막한 편폭에 간결하고 정련된 필치로 수많은 인물의 각기 다른 형상을 핍진하게 그려냈으며, 지인소설의 가장 큰 내용 특성 중의 하나인 인물 품평의 측면이 강하게 부각되어 있다. 그래서 위진남북조의 가장 완벽한 지인소설이자 중국 지인소설의 전범이라 할 수 있는 ≪세설신어≫에 ≪어림≫의 고사 82조가 채록되어 있다.

이 책은 ≪노신집록고적총편(魯迅輯錄古籍叢編)≫(北京: 人民文學出版社, 1999)에 수록된 ≪고소설구침(古小說鉤沈)≫본 ≪배자어림(裴子語林)≫을 저본으로 하고, 주능가(周楞伽) 집주(輯注) ≪배계어림(裴啓語林)≫(北京: 文化藝術出版社, 1988)을 참고했다. 저본에는 총 180조의 고사가 집록되어 있는데, 그중에서 몇 글자로 이루어진 단편적인 기록은 제외하고 총 171조를 옮겼다. 고사의 제목은 저본에는 없지만 옮긴이가 임의로 달았으며, 고사의 순서도 시대순으로 재배치했다.

본문 중에서     

육사형[陸士衡: 육기(陸機)]이 여러 사람이 모여 담론하는 자리에 있을 때, 반안인[潘安仁: 반악(潘岳)]이 오자 육기(陸機)가 곧장 일어나 나가 버렸다. 이를 보고 반악(潘岳)이 말했다.
“맑은 바람이 불어오니 먼지가 날려가는구먼.”
그러자 육기가 곧바로 대답했다.
“뭇 새가 모이니 봉황이 날아오르는 것이지.”

士衡在坐, 安仁來, 陸便起去. 潘曰: “淸風至, 塵飛揚.” 陸應聲答曰: “衆鳥集, 鳳皇翔.”

역자 소개       

김장환은 연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연세대학교 중문과를 졸업한 뒤 서울대학교에서 <세설신어 연구(世說新語硏究)>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연세대학교에서 <위진남북조 지인소설 연구(魏晉南北朝志人小說硏究)>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강원대학교 중문과 교수와 미국 하버드 옌칭 연구소(Harvard-Yenching Institute) 객원교수(Visiting Scholar)를 지냈다. 전공 분야는 중국 문언소설과 필기문헌이다.
그동안 쓰고 번역한 책으로는 ≪중국문학입문≫, ≪중국문언단편소설선≫, ≪중국연극사≫, ≪중국유서개설(中國類書槪說)≫, ≪봉신연의(封神演義)≫(전5권), ≪열선전(列仙傳)≫, ≪서경잡기(西京雜記)≫, ≪세설신어(世說新語)≫(전3권), ≪고사전(高士傳)≫, ≪태평광기(太平廣記)≫(전21권), ≪태평광기상절(太平廣記詳節)≫(전8권), ≪중국역대필기(中國歷代筆記)≫, ≪소림(笑林)≫ 등이 있으며, 중국 문언소설과 필기문헌에 관한 다수의 연구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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