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2월 15일 화요일

이청조 사선 李淸照詞選

이청조  李淸照(중국, 1038~1156) 


유장하고 광범위한 중국의 전통문학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조명을 받았던 여성은 송대(宋代)의 이청조(李淸照)였다. 이안거사(易安居士)라는 호로 알려진 그녀는 북송 말엽이었던 1081년, 경학에 조예가 깊었던 이격비(李格非)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의 탁월한 재능은 학문과 문학에 열정적이고 진지했던 부친의 지지와 학술과 예술을 애호했던 집안 분위기 때문에 일찌감치 발휘될 수 있었으며, 다양한 분야에서의 비판적 안목 또한 기를 수 있었다.
1101년, 18세에 이청조는 조명성(趙明誠)과 결혼하였다. 조명성은 문학과 금석서화에 조예가 깊었던 이로, 이청조에게 예리한 분석력과 종합적인 정리 능력을 배양시켜 주었다. 이들 부부는 공통 관심 분야였던 금석서화를 함께 연구하여 나중에 ≪금석록(金石錄)≫으로 그 결실을 맺게 된다. 더구나 이들 부부는 더없이 금실이 좋았기 때문에 이청조의 문학적 취향은 날개를 단 듯 낭만적 성격이 극대화되었다. 남편과 함께 지내면서 행복한 시기를 지냈던 그녀는 일상생활의 소소한 것을 섬세하게 관찰하여 그 안에서 의미를 찾아 작품화하는 데 열중하였다. 이듬해에 조명성은 원우당(元祐黨) 사건에 연루되어 이청조와 처음 이별하게 된다. 이후 1129년 조명성과 사별할 때까지 이러한 이별과 만남이 거듭되면서 이청조는 비로소 처완(凄惋)한 정취를 작품에 드러내게 되었다.
1127년 북송정권이 멸망하면서 이청조의 불행도 시작되었다. 1129년에 조명성은 호주지부(湖州知府)로 임명되어 가던 중 건강(建康)에서 열병으로 죽었다. 조명성의 죽음은 송의 남도(南渡)와 함께 이청조의 생애에 커다란 전환점으로 작용한다. 이청조는 남송 조정이 중원을 회복할 의사도 능력도 없음을 깨닫고 남송 조정의 무능함을 질책하고 비평하는 동시에 사회와 사대부의 부패에 대해 비분을 표시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다 1132년, 피란 와중에 장여주(張汝舟)에 개가하게 된다. 그러나 장여주에 대한 인간적인 고마움 때문에 맺어진 재혼은 한 달여 만에 인간성에 대한 불신만을 남긴 채 깨어진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이청조로 하여금 이전의 작풍에서 탈피하여 시대적, 개인적 불행을 강하게 표현하게 하였다. 이후 그녀는 항주(杭州), 금화(金華) 등지를 떠돌며 홀로 늙다가 세상을 떠났다. 졸년이 분명치 않으나 대략 73년 이상의 삶을 누린 것으로 추정된다.
이상에서 보듯 그녀의 생애는 북송 멸망을 기점으로 전후반기로 나뉜다. 그녀는 문학적 분위기가 짙은 가정적 환경 속에서 자신의 천부적인 문학적 자질을 배양할 수 있었으며, 이러한 취향은 조명성과 혼인하면서 더욱 깊이가 생겼고 수준이 높아졌다. 생애의 전반기에 지어진 작품은 주로 자연에 대한 사랑을 깔끔하고 밝게 그리고 있으며, 인간에 대한 정은 처완한 정조로 그리고 있다. 후반기에서는 그녀의 파란만장한 인생역정 때문에 사풍(詞風) 역시 슬프고도 비참하게 변하게 된다. 이러한 인생의 여러 경험은 그녀의 사에 다양한 정서로 표현되었으며, 결국 그녀로 하여금 불후의 명성을 누리게 하는데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내용 소개

이 책에는 전해지는 이청조의 사(詞) 78수 가운데, 이청조의 사가 아닌 것으로 생각되는 36수를 제외한 42수를 모두 실었습니다.

이 책은 이청조의 사(詞) 작품 중 대표작을 선록한 것이다. 그녀의 사 작품은 약 78수로 추정이 되는데, 송대(宋代) 판본은 실전되었고, 명대 이후 그녀의 작품을 엮어서 《수옥사(漱玉詞)》라고 이름을 붙였다. 그녀의 사 작품은 대체로 의미가 풍부하고 함축적인데, 후반기로 갈수록 슬프고 처량한 성격에 짙어졌다. 여인의 복잡한 감정을 섬세하고도 완곡하며 아름다운 필치로 그려낸 것이 그녀 작품의 대표적인 특징이며, 이러한 특징은 사 장르의 주요 성격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또한 그녀는 전란기를 거쳤기 때문에 애국적인 내용을 지닌 작품도 있어서 남성 문인들의 주목을 받아왔다.

머리말 중에서

사(詞)라는 체재가 다소 생소할지 모르겠지만, 운문의 일종으로서, 대략 성당(盛唐. 713-765년) 전후에 발생하여 송대(宋代)에 가장 번성하였던 문학양식이다. 수당(隋唐) 시대에 유행했던 자극적이고 신선한 음악이었던 연악(燕樂)에 가사를 붙여 발전된 것으로, 시적인 면과 음악적인 면을 복합적으로 지니고 있다. 따라서 시여(詩餘), 곡자(曲子), 악부(樂府), 장단구(長短句) 등의 다양한 명칭이 있다. 이들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가락에 맞추어 가사를 지어 불렀기 때문에 장단이 가지런하지 않고 매 구마다 쉬는 곳이 같지 않은 특색이 있다. 사를 창작할 때에는 일정하게 정해진 악보인 사조(詞調), 즉 곡조에 따라 지어져야 했고, 사조는 각각 특정한 명칭이 있었는데, 이를 사패(詞牌)라 하였으며 먼저 곡조가 있는 상태에서 가사를 지었기 때문에 사를 짓는 것을 전사(塡詞), 즉 ‘가사로 메운다’라 하였다. 사패는 일종의 가락의 명칭이기 때문에 사의 내용과 전혀 관련이 없어 시의 제목이 내용과 긴밀한 연관이 있는 것과는 다르다. 아쉽게도 현재는 그 가락이 실전되어 그저 사를 읽고 그 내용에 비추어 가락의 분위기 정도만 파악할 수 있을 뿐이어서 사의 전모를 파악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그러므로 필자는 사패를 굳이 해석하지 않고 그 음만 표기하였고, 작가가 때로 제목을 따로 정한 경우에 있어서는 제목을 해석하였다. (중략)
번역대상은 이청조의 작품이 의심되는 것을 제외한 총 42수로 선정하였다.1) 따라서 본 역서는 이청조 사 전역(全譯)이 된다. 이제까지 그녀의 사는 부분적으로 번역이 되어 사선(詞選)의 형태로 출판되었고, 학위논문이었던 김지현의 논문에서 시사가 모두 번역된 적이 있었을 뿐, 단행본으로 출간되는 것은 이번이 최초로 알고 있다. 따라서 이청조 사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중국 사문학 흐름을 파악할 때에도 주요 자료로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다른 나라의 여성 작가와도 비교 연구가 가능할 것이므로, 여성문학 연구 전반에 기초 자료로서 제공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천 년 전 작품을 현 시대에 맞게 번역한다는 것은 사실 쉽지 않은 작업이고, 사라는 체재는 음악과 뗄 수 없는 것임에도 지금 악보가 전해지지 않으니 제대로 그 맛을 느끼기에 한계가 있다. 더구나 한자로 쓰인 운문이 갖는 함축적 의미를 풀어서 전달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에 번역은 되도록 원문에 충실하도록 하였다. 그러므로 한 자 한 자 짚어가면서 읽는다면 또 다른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주석이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것은 주석을 달았는데 그 수를 최소화하여 작품 감상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였다. 각 사마다 짤막한 해석을 곁들여 작품 이해를 돕도록 하였는데, 오히려 누가 되지 않을지 걱정이다.
우리 삶은 고단하기만 하다. 고단한 현실은 과거에도 늘 있었고, 현재도 있으며, 물론 미래에도 첩첩이 있을 것이다. 이럴 때 천 년 전 지난한 삶을 살면서도 우아함을 잃지 않았던 한 여인이 풀어내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그녀는 어떻게 고단함을 견디었는가를 관찰하는 것도 고난을 극복하는 지혜가 아닐까. 그녀의 매력 속에서 살아가는 힘과 기쁨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면, 부족한 필자의 과분한 기대일까.

차례

해설······················  9
지은이에 대해·················    17

01. 남가자(南歌子)··············· 21
02. 전조만정방(轉調滿庭芳)···········    23
03. 어가오(漁家傲)··············· 27
04. 여몽령(如夢令)··············· 30
05. 여몽령(如夢令)··············· 32
06. 다려(多麗)·················    34
07. 보살만(菩薩蠻)··············· 39
08. 보살만(菩薩蠻)··············· 41
09. 완계사(浣溪沙)··············· 43
10. 완계사(浣溪沙)··············· 45
11. 완계사(浣溪沙)··············· 47
12. 봉황대상억취소(鳳凰臺上憶吹簫)·······      49
13. 일전매(一剪梅)··············· 52
14. 접련화(蝶戀花)··············· 55
15. 접련화(蝶戀花)··············· 58
16. 자고천(鷓鴣天)··············· 60
17. 소중산(小重山)··············· 63
18. 원왕손(怨王孫)··············· 65
19. 임강선(臨江仙)··············· 67
20. 취화음(醉花陰)··············· 70
21. 호사근(好事近)··············· 73
22. 소충정(訴衷情)··············· 76
23. 행향자(行香子)··············· 78
24. 고안아(孤雁兒)··············· 81
25. 만정방(滿庭芳)··············· 85
26. 옥루춘(玉樓春)··············· 89
27. 어가오(漁家傲)··············· 91
28. 청평락(清平樂)··············· 93
29. 자고천(鷓鴣天)··············· 95
30. 첨자추노아(添字醜奴兒)···········    97
31. 억진아(憶秦娥)··············· 99
32. 염노교(念奴嬌)··············  101
33. 영우락(永遇樂)··············  104
34. 접련화(蝶戀花)··············  108
35. 무릉춘(武陵春)··············  111
36. 성성만(聲聲慢)··············  113
37. 점강순(點絳唇)··············  117
38. 감자목란화(减字木蘭花)··········    119
39. 탄파완계사(攤破浣溪沙)··········    121
40. 탄파완계사(攤破浣溪沙)··········    123
41. 서자고(瑞鷓鴣)··············  125
42. 경청조만(慶淸朝慢)············       127

옮긴이에 대해·················    131

같이 읽으면 더 좋은 지만지 작품 

풍연사 《풍연사 사선》

역자    이지운  이화여대 중문과 

이지운은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서울여자대학교 등에서 시간강사를 역임하고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전임강사이다.
이지운은 중국 고전시 전반에 걸쳐 폭넓은 공부를 하고 있다. 고전시의 최전성기였던 당대(唐代)의 시가에 관해 천착하고 있으며, 특히 시적 아름다움을 화두로 삼아 공부중이다. 최근에는 전통시기 여성작가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이청조를 비롯하여 여러 작가들의 생애를 재구성하며 작품을 검토하고 있다.

편집 후기 

일단 원전의 제목을 그대로 번역한다. 이것이 제목을 정하는 우리의 원칙이다. 다만, 단편집이나 시선의 경우는 예외가 된다.
≪이청조 사선≫은 특이한 경우이다. 이청조의 모든 사(다른 이가 썼을 것이라고 의심이 되는 시를 제외하고)를 번역하였기 때문이다. ≪이청조 수옥사≫에는 이청조의 모든 사가 들어 있다. 그래서 제목을 ≪이청조 수옥사≫로 정하려고도 했었다. 하지만, ≪이청조 수옥사≫에는 이청조의 사가 아닐 것으로 판단되는 32수의 사도 포함되어 있다.(이를 제외한 모든 사를 번역하였다.) 그 사들은 모두 제외했기 때문에 제목을 ≪이청조 수옥사≫로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우리도 고민하고, 선생님께서도 고민하셨다.
결론은, ≪이청조 사선≫이었다. 다른 좋은 제목을 찾았다면, 더 좋았을 텐데...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독자들은 알 것이다. 비록 제목은 선집이지만, 그 선택은 이청조의 모든 사를 선택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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