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2월 17일 목요일

고리키 단편집 Челкаш

막심 고리키 Maxim Gorkij(러시아, 1868~1936)

막심 고리키는 19세기 러시아 문학과 20세기 소비에트 문학을 잇는 교두보 역할을 한다. 문학의 황금 세기의 훤한 대낮이 저물 무렵, 소리 없이 나타나 20세기 새로운 문학의 기초가 되었다. 소비에트 시기에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창시자’ 등으로 추앙 받았으나, 정작 예술가로서의 막심 고리키는 소외되었다. 막심 고리키 작품의 시기적 배경이 1905년 혁명 이전으로 국한되어 있다는 것은 매우 상징적이다. 작가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그의 작품의 주인공 역시 그 누구도 20세기 소비에트 시대를 진정 받아들이지도 않았고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막심 고리키는 1868년 니즈니노브고로트에서 출생했고, 아주 어린 시절에 부모를 여의고 조부모의 손에 맡겨졌다. 할아버지의 번창하던 염색공장의 운영이 어려워져 1879년 11살 되던 해, 다니던 학교도 그만두고 일찍이 ≪세상 속으로≫ 들어가 자신의 생계를 스스로 책임져야만 했다.
1879년부터 1884년까지 어린 고리키는 제화점 점원, 화공도제, 기선 주방일 등 다양한 직업을 전전하게 되었고, 1884년 대학 진학의 희망을 품고 카잔으로 떠났다. 그러나 대학 진학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다시 여러 직업을 전전하던 중 뜻한 바 있어, 1888년부터 1892년까지 러시아 남부 전역과 남 베사라비아, 크림과 카프카스를 포함하는 러시아 순례를 하기에 이른다. 순례 중에도 시골 날품팔이, 어부, 기선의 접시닦이, 철도원 보조 등의 일을 계속했다.
1892년 <카프카스 신문>에 막심 고리키라는 필명으로 첫 단편소설 <마카르 추드라>를 발표해 문단의 호평을 받았다. 1895년부터 1896년까지 <사마라 신문>의 주필로 일했는데, 바로 그 신문에 ‘이에구질 흘라미드’라는 필명으로 약 200편의 칼럼, 르포, 평론, 그리고 <이제르길 노파>를 포함한 다수의 단편소설을 발표했다. 당시 <사마라 신문>의 교정원 예카테리나 파블로브나 볼쥐나를 만나 1896년에 결혼했다.
1896년부터 1897년까지 고리키는 <니제고로트스키 리스토크> 신문사에서 일하다 갑작스러운 건강 악화로 1897년 아내와 남부지방으로 이주했고, 1898년 초 다시 니즈니노브고로트에 돌아와 ≪르포와 단편소설≫ 1·2권을 집필하여 출간하기에 이른다. ≪르포와 단편소설≫은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두었고, 비평가들은 한목소리로 ≪르포와 단편소설≫의 출현을 러시아의 사회문화적 사건, 작가의 자기 정체성 확립의 순간으로 평가했다.
1899년부터 1906년까지 고리키는 러시아 사회문화의 주요 인사가 되어, 체호프, 레핀, 샬랴핀, 메레즈콥스키, 안넨스키 등 당시 문화계 인사들과 두터운 교분을 나누게 되었다. 작가의 주변에는 이외에도 안드레예프, 부닌, 쿠프린, 베레사예프 등 ‘네오리얼리즘’ 작가 군이 늘 함께했다. 1898년 가을부터 고리키는 잡지 <삶>의 이념적 지도자가 되었고, 1900년 9월부터 출판공동체 <즈나니에>를 운영하여, 1904년부터 1913년 폐간 때까지 새로운 네오리얼리즘 계열의 문학 선집을 40권 출판했다.
1902년부터 1905년까지 고리키는 모스크바 예술극장의 고정 작가로 활동했는데, 희곡 <밑바닥에서>의 초연은 체호프의 <갈매기>와 함께 러시아 연극사의 한 장을 장식했다.
1905년 정치적 이유로 러시아를 떠난 고리키는 미국과 이탈리아를 거쳐 1913년이 되어서야 러시아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첫 망명 기간 동안 고리키는 많은 작품을 남겼다. 사회평론을 포함하여 ≪어머니≫(1906), ≪고백≫, ≪필요 없는 인간의 삶≫(1908), ≪여름≫(1909), ≪마트베이 코제먀킨의 삶≫(1910), ≪어린 시절≫(1912∼1913) 등 많은 작품들이 이 시기에 발표되었다. 내전 기간(1918∼1921) 중에 고리키는 러시아의 문학 역량을 하나로 모은 <세계문학>(1918)을 계획함으로써 당시 정치적 이유로 경제적 곤란을 겪고 있던 젊은 작가들을 도왔다. 건강 악화로 다시 러시아를 떠난 고리키는 1924년까지 독일과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체류했다. 1925년부터 고리키는 역사 서사시 ≪클림 삼긴의 삶≫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1928년 5월 소련으로 돌아온 고리키는 잡지 <우리들의 업적>(1929∼1936), <문학수업>(1930∼1941)을 창간했다.
1936년, 아직도 정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발표에 의하면 지병으로 사망했다.

해설           

∙이 책은  모스크바의 나우카 출판사에서 발간한 25권의 고리키 전집(1968∼1976) 중 1권∼6권을 저본으로 삼았습니다.
1890년대 막심 고리키의 초기 작품에 대한 비평 논문 및 연구서는 너무 많아서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그 가운데 동시대 비평가들의 몇몇 작업들은 작품에 대한 분석의 심오함이나, 각각의 작품뿐 아니라 고리키의 전 작품을 꿰뚫어보는 형안을 가지고 있어서, 시간과 이데올로기를 뛰어넘어 후세의 고리키 연구가들이 작가의 예술 세계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데 중요한 출발점이 되어준다. 미하일롭스키의 논문 <막심 고리키 선생과 그의 주인공들에 관해서>가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우선은 그의 논문이 갖는 의미를 간략하게 정리해 보자.

첫째, 미하일롭스키는 주인공에 관한 문제가 고리키 창작의 기본 축이라는 점과 작가의 전 작품이 러시아인의 삶과 문학에 새롭고 의미 있는 주인공을 창조하고 탐구하는데 집중되어 있다는 점에 주목해서 체계적인 분석의 결과를 최초로 내놓은 연구가다. 고리키는 창작의 전 생애에 걸쳐서 내내 단편소설을 포함한 다양한 장르의 소(小)산문들을 썼으며, 이들 작품 속에서 주인공의 문제는 바로 작가 자신의 최고 관심사였다.

두 번째, 일반적으로 고리키의 주인공은 사회적, 직업적인 속박에서 벗어나 있다. 주인공은 비록 능력이나 자질 면에서는 절대 남에게 뒤지지 않지만 대부분 농부도, 노동자도 아닌 말 그대로 떠돌이 ‘부랑인’이다. 그들의 처지에 대한 이유를 고리키는 주인공의 사회적 자각 정도와 개인적 기질에서 찾고 있다. 미하일롭스키가 논문에서 언급하고 있듯이 고리키의 주인공들은 타인에 의해 사회에서 “내쫓긴 자들이라기보다는 스스로 세상을 등진 자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들은 “곤궁으로부터 도피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곤궁과 스스로 맞서고 있다”.

그런 부류의 주인공들이 갖는 두 가지 특성은, 첫째, “그들은 새로운 러시아의 방랑자로서 감옥과 선술집을 전전하고 있지만 단 한 번도 자신들을 하나의 계급에 속해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그 옛날의 도망자, 떠돌아다니는 용자(勇者)의 직계 후손이라는 점”과 둘째, 그들은 방랑 생활을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러시아의 ‘로빈슨 크루소’라는 점을 들 수 있다. “섬, 바다, 하늘−넌 스스로를 위해서 살고 있는 거야. 네가 가지지 못한 것은 아무것도 없고 넌 완전한 자유인이야!” 그들은 누구나 “스스로의 주인이고 저만의 세상에서 왕이며 모든 속박과 구속으로부터 자유롭다”. 미하일롭스키도 지적하고 있지만, 고리키의 주인공은 “온 세상을 다 자기의 장소로 여긴다. 왜냐하면 어느 곳도 그들만의 세상은 없기 때문이다”. 미하일롭스키는 그들을 “자유의 기사”라고 역설적으로 부른다. 왜냐하면 그들은 가족 등의 인간적 관계 혹은 사회적 관계의 울타리 안에 갇히기를 거부하고, 그들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성벽(性癖)이 바로 근절할 수 없는 방랑벽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부랑인이 된 이유는 곤궁해서가 아니라 저마다 품고 있는 나름의 삶의 원칙과 그에 대한 끝없는 향수 때문이기도 하다.

미하일롭스키는 이러한 특징을 지닌 사람들을 가리켜 부랑인, 방랑자, 로빈슨이라 부른다. 더불어, 고리키의 주인공들이 갖고 있는 동질성, 즉 평범한 부랑인 첼카시와 말바, ‘이상적’ 부랑인 로이코 조바르와 랏다, 단코, 라라의 동질성을 지적하면서, 그 이유가 단순히 그들의 형판이 동일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 각각이 힘과 아름다움을 지닌 오만한 인간의 내적 풍성함을 각양각색으로 보여주는 변종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바로 이러한 다양성은 작가의 의식과 그의 상상력으로 창조된 설화적 주인공 조바르, 랏다, 단코, 라라, 반낭만주의적 집시 이제르길, 마카르 추드라, 부랑인 첼카시와 코노발로프, 말바와 그리시카 오를로프의 내적 통일성을 가능하게 해준다.

이처럼 미하일롭스키는, 이상을 추구하기 위해 현실 세계에 등을 돌린 주인공의 모습과 창조를 향한 작가의 예술적 갈망을 이해하는 것이 고리키 연구의 핵심임을 정확하게 간파하고 있다.

이후에도 많은 연구가들이 이러한 미하일롭스키의 관점을 빌려 고리키 연구의 깊이를 더하고 그 폭을 넓히고자 노력했다. 콜로바예바가 그런 예라고 할 수 있다.

콜로바예바는 고리키 초기 창작에서 볼 수 있는 일관된 개성의 문제를 연구하여 설화와 전설, 단편 소설의 주인공들이 가진 다양한 공통점을 발견했다. 첫째, 이들은 인간의 운명을 불요불굴의 인간의 자유분방한 유희로 받아들이고 있는 “개구쟁이”이자 “행복한 죄인들”이다. 둘째, 그들이 기본적으로 하고 있는 일은 “자유의 체험”이다. 고리키 작품 속 주인공들은 자유를 갈구하고 자유를 위해서라면 어떤 대가라도 달게 치르려 한다. 그들은 자유를 위해서 인생의 다른 일반적인 가치들은 주저 없이 거부한다. 셋째, 콜로바예바에 따르면, 고리키의 경우 자유의 문제는 반드시 개인의 책임이란 문제와 연결된다. 자유를 갈망하는 주인공들의 성격이 드러나고 있는 모든 구체적인 사건들 속에 작가는 주인공의 생각이나 선택, 행위의 고양, 즉 낭만성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 즉 이 글에서 연구되고 있는 도망, 영웅적 행위, 유혹 등의 고리키적 상황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가능하게 해준다. “초기 고리키는 하나로 결합된 사회적, 심리적, 철학적 잣대로 인간 세상을 간파해 내고 있으며 이는 새로운 세기의 문학이 그토록 갈구했던 완전성, 즉 예술적 종합이었던 바, 바로 그 속에 고리키의 창조적 힘의 근원이 있다”.

고리키의 초기 창작에 대한 연구가들 가운데 타게르는 개념론적 관점을 발전시켰다. 타게르는 고리키의 창작 방식을 ‘혁명적 낭만주의’라 칭하여 그에 대한 성격을 규정했으며, 이러한 창작 방식이 다양한 문체와 장르상의 특징들을 보이는 작가의 초기 단편소설들을 관통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타게르는 초기 고리키 작품의 통일성은 자의식의 단일성에 근거한다고 주장한다. “고리키 창작의 내적 파토스를 구성하는 것은 자유에 대한 꿈도, 심지어 자유를 위한 투쟁도 아닌 자유에 대한 점유, 소유능력, 즉 힘 있고 용감하며 자유로운 자의식이다”.

초기 고리키의 설화, 전설, 단편소설에 등장하는 인간형상의 기본 음조가 “유럽 낭만주의의 거인족의 파토스”와 닮았고, 작가의 초기 작품의 주인공이 “세상 악과의 투쟁 속에서 잠재적 승리자”로서 그려지고 있음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렇기 때문에 심지어 초기 고리키의 주인공들에게는 죽음마저도 항상 강인하고 자유로운 그들의 승리의 축제가 되곤 한다.

타게르는, 초기 단편소설의 주인공들이 지닌 낭만성은  단순히 ‘세상의 악’에 대한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민중의식의 담지자들이 지닌 ‘세상의 악’에 대한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개념과 연관된다고 지적한다. 그렇다고 그들이 작가의 이념을 전하는 단순한 전달자는 아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낭만적 형상들이 작가의 주관적인 측면이 아닌 민중들의 객관적인 의식의 측면에 투사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예술적 세계관, 정서, 내적 파토스, 기본 이념에 따라서 초기 고리키의 창작은 균형 잡힌 하나의 총체를 이룬다. 작가의 초기 창작 속에서는 “자신의 해방을 위해 투쟁하는 인간의 자유의지의 테마가 다양하게 펼쳐진다”. 고리키의 초기 창작에 대해 언급하면서 타게르는 두 단어, 자유와 자유의지의 의미를 동일하게 보고 있는 데 반해 콜로바예바의 경우는 보통 자유를 선호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그러나 고리키 창작의 이해를 위해서는 엄밀한 의미로 이 두 단어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자유의지에는 말 그대로 자유에 대한 주체의 갈망과 의지가 들어 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작품 안에서 이 단어를 사용하는 작가의 세계관이 확연하게 드러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고리키는 이러한 자유의 테마를 주로 구비문학 속에서 찾고 있다. 구비문학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호방함과 윤리를 초월한 자유에 대한 끝없는 갈망, 용감무쌍함 등의 기질을 고리키는 자신의 새로운 주인공들에게 성공적으로 이식해 내고 있다. 이는 또한 어렵고 험난한 현실세계를 환상의 세계로 대치하려는 작가의 세계관과 맞물려 있다.

이러한 이유로 고리키 연구에서 작가의 창작과 구비문학과의 관계 문제는 매우 중요하며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고리키는 민중들 사이에서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던 전설, 설화, 민요 등에 큰 관심을 보였고, 또 그에 대해서 누구보다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으며, 실제로 러시아를 순례하며 직접 자료를 모으고 기록하기도 했다. 구비문학이 문학에 첫발을 내딛던 그 순간부터 고리키 창작의 원천이었음은 명백하다.

‘고리키와 구비문학’이란 주제를 다루고 있는 글들은 대략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한 부류는 구비문학에 대한 작가의 관점을 다룬 글들이고, 다른 한 부류는 작가가 자신의 창작에서 구비문학을 어떻게 이용하고 있는지에 대한 연구이다. 특히 고리키적인 ‘설화(전설)’, 그리고 ‘설화적’이라고 일컬을 수 있는 초기 단편소설의 특징에 대한 문제로 국한시켜서, 그러한 설화적 요소들이 설화적 장르뿐 아니라 세태소설 속에서도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를 살펴보자면 고리키의 ‘구비문학’에 관한 일련의 연구논문을 발표한 바 있는 블라디미르체프를 빼놓을 수 없다. 블라디미르체프는 고리키가 다수의 설화적 슈제트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과 설화적 요소들을 창조적으로 재해석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그는, 설화적(전설적) 구성을 고리키는 창조적으로 자기의 것으로 소화해 냈으며 그 구성이 그의 예술작품의 내적 구조 속으로 침투되어 그 안에서 다시 작가적 원칙과 결합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작가는 설화적 서사문학의 모든 장르, 예컨대 동물 이야기, 마법 이야기, 민담, 일화 등을 인용하고 있다. 그의 작품 속에는 설화만이 아니라 설화와 한 가족이라 칭할 수 있는 전설, 민담, 동화 등이 존재한다. 이 모든 설화의 형태 및 형식들은 고리키의 소산문의 미학을 더욱 풍부하게 살찌우고 사회 정의라는 이상의 낭만주의화에 영향을 주었다.

초기 사실주의적 단편소설과 낭만적 색채가 확연히 드러나는 작품들 사이의 미묘한 차이점을 지적하면서도, 블라디미르체프가 내리고 있는 한결같은 결론은 두 부류의 작품들 모두에 고리키는 설화적 슈제트, 설화적 유형 및 성격, 담화구조가 갖고 있는 요소들을 공히 녹여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슈스토프는 단편소설 <마카르 추드라>의 구조를 설화적 규범과의 엄격한 상호연관성이란 측면에서 연구하고 있다. 그는 단편소설에서 다음과 같은 설화적 요소를 지적한다. 특히나 감정이 풍부하게 들어가 있는 서사문학적 색조, 생생하고 설화적인 억양, 언어의 특별한 구조, 예컨대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 문구와 단어의 반복이 그것이다. 문구 자체도 형식 그 자체로 생생한 상황을 전달할 수 있게끔 구성이 되어 있다.

고리키의 ‘구비문학성’과 설화의 이용 문제를 블라디미르체프나 슈스토프와는 다르게 연구하고 있는 이로 엘스베르크를 꼽을 수 있다. 그의 논문 <고리키의 문체>는 고리키 창작에서 설화적 요소의 문제를 아주 성공적으로 밝히고 있다. 엘스베르크는 설화성을 고리키 소산문 문체의 보편적 특징으로 보고 있다. 그는 “고리키의 작품은 장르의 여하를 불문하고 설화, 수수께끼, 민요의 억양을 띤다. 가장 일상적이고 평범한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설의 문체에서는 설화적 음조가 느껴져 마치 설화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여기서 우리가 이야기하는 ‘설화적 억양’, 설화적 음조는 항상 명명백백하게 드러나지도 않고 자주 눈에 띄지 않는 경우가 많으며 응집되어 폭발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엘스베르크는 새로운 세계를 열고 새로운 인간을 펼쳐내 보이는 작가의 문체의 낭만성을 “설화성”이라는 용어의 동의어로 간주한다. “고리키 문체의 ‘설화성’은 가장 행복하고 가장 무서운 것이 가능한 세계, 예민한 이해관계로 가득 차 있는 첨예한 갈등과 대립 속에서 새로운 인간과 새로운 삶이 탄생하는, 바로 그런 세계를 그리고 있는 소설에 제격이다”.

이처럼 고리키 연구가들은 고리키 창작 전반에 걸쳐서, 그리고 초기 창작에서 설화, 전설, 민요의 규범을 이루는 요소들에 대한 ‘인용’을 밝혀냈고 작가가 창조해 낸 특별한 문체, 고리키 초기 창작의 ‘신낭만주의’ 혹은 ‘혁명적 낭만주의’의 본질을 표현하고 있는 문체, 바로 이것이 무엇보다도 ‘설화성’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고리키만의 문체라는 사실을 발견해 냈다.

1823년에 고리키는 자신의 창작방법과 문체의 특징에 대해 고민하면서 자신을 “인간에 대한 관계에서 보자면 인간중심주의자”, “자연 묘사에 대한 관계에서 보자면 의인론자”라고 불렀다. 이들 두 특징은 옛날이야기꾼으로서의 고리키에 대한 적절한 설명이다. 고리키는 의인화된 자연의 강력한 힘과 전설적인 용감한 거인들에 대한 그럴듯한, 생생한 옛날이야기를 늘어놓듯이 그렇게 현대의 삶을 서술한다. 작가는 자신의 대지와 민중에 대한 낭만적 설화와 전설, 그리고 민요를 창조해 냈다.

차례           

해설 ·····················7

지은이에 대해 ················17

마카르 추드라 ················21
이제르길 노파 ················37
첼카시 ···················53
심심풀이 ···················87
코노발로프 ·················127
스물여섯 사내와 한 처녀 ············165
인간 ····················195

옮긴이에 대해 ················209

본문 중에서  

여기 새로이, 위대하고 무한한 능력을 가진 인간이 당당하게 머리를 높이 쳐들고, 육중한 걸음걸이로 유유히 낡은 편견의 쓰레기더미를 지나고 있다. 과거의 탁한 티끌의 먹구름 속을 지나서, 태연자약하게 그를 기다리는 모든 불합리한 모순덩어리들이 산적해 있는 곳을 향해 오류의 희미한 안개 속을 홀로 걸어간다.

그것들이 하늘의 별처럼 헤아릴 수 없이 많을지라도 인간에게 종착역이란 없다!
불굴의 의지를 가진 인간이 여기 당당하게 걸어간다.
앞으로! 더 높이! 좀 더 앞으로! 더욱 높이!

Вот снова, величавый  и  свободный,  подняв  высоко  гордую  главу,  он
медленно, но твердыми шагами идет по  праху  старых  предрассудков,
один  в седом тумане заблуждений, за ним - пыль прошлого тяжелой тучей, а впереди  - стоит толпа загадок, бесстрастно ожидающих его.

Они бесчисленны, как звезды в бездне неба, и Человеку нет конца пути!
Так шествует мятежный Человек - вперед! и - выше! все  -  вперед!  и  - выше!
(<<인간>> 중에서)

옮긴이         

최윤락은 1965년 천안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러시아 상트ᐨ페테르부르크(St. Petersburg) 국립대학교에서 논문 <1890년대 막심 고리키의 창작에서 소장르의 시학>(1999)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논문으로는 <고리키 초기 창작의 설화성>, <고리키의 발라드 세계>, <고리키와 니체>, <게으른 반항아 오블로모프>등이 있고, 역서로는 ≪어머니≫(열린 책들, 1989) ≪오블로모프 1, 2≫(문학과 지성사, 200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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